원수(계급)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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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 원수 계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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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장
정장, 약장 및 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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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원수 계급장(해군 수장).svg
해군 견장 및 수장

1. 개요
2. 상징물
2.1. 원수인장
2.3. 5개의 별
3. 원수부(元帥府)
4. 사례
5. 기타
6. 실존 인물
6.1. ~ 18세기
6.2. 19세기
6.3. 20세기
6.3.2.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6.3.3.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6.4. 21세기
7. 가상 인물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 영/미에서는 각각 Field Marshal/General of the Army(육군), Admiral of the Fleet/Fleet Admiral(해군), Marshal of the Royal Air Force/General of the Air Force(공군)으로 부른다.

군대의 장성급 장교의 최고 계급이자 군대 계급의 진정한 최고봉이다. 단지 일반적으로 평시체제의 군대에선 해당 계급을 받는 사람이 없을 뿐, 일단 원수 계급이 된다면 임시가 아니라 군축으로 인한 계급 강등은 없으며 현역, 예비역을 불문하고 계급 유지 및 종신 근속이 가능하다. 평시의 4성 이하 장군/제독들이 전역해서 민간인이 되면서 받는 제약사항들이 있지만 원수는 그런 게 없다.

미국이나 한국의 현대적 계급 측면에선 일반적으로 단순히 진급해서 올라가는 것은 아니고, 전시체제의 군대에서 대장 계급자 중에서 전공이 매우 높은 사람을 선별해서 국회의 인준과 대통령의 임명으로 부여받는 것으로, 일부 국가에는 대원수라는 상위 단계, 또는 상원수/부원수/(북한의 경우 차수라는 하위 계급도 있다. 보통은 장성급 장교로 분류하지만 대원수와 함께 장성급 장교 이상의 분류, 이를테면 수관급 장교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물론, 수관급으로 따로 빼더라도 계급 대신 장군, 제독이라고 부르는 관례는 대부분 유지된다.

해당 계급은 대부분 의전상 혹은 형식상의 계급이고,[1] 대장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도 원수제를 도입하여 고위 군인들의 계급 격차를 두려고 하는 시도는 없었다. 대장 계급 보직자 자체가 적기 때문에 몇 명 늘어난다 해도 통솔력 발휘에 크게 지장은 없기 때문으로, 현재 미군중국군만 해도 40~50명 정도의 대장 계급 보직자가 있지만, 대장 위에 대장을 두고 있어도 군대 잘만 굴러간다. 일례로 미합중국 육군 대장인 한미연합군사령관만 해도 그 위에 작전지휘권상으로는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 합동참모의장, 행정적으로는 육군참모총장이라는 3명의 대장을 상관으로 두고 있다.[2] 심지어 명목상 하급자인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조차도 대장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에는 해당 계급을 받은 사례가 없으며 미군의 경우도 현재 해당 계급으로 복무 중인 현역 군인은 없다.[3]

다만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야전군 여럿을 뭉쳐다가 집단군을 만들어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던지라, 대장들한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원수 계급이 필요했기에, 이 시기에 임명된 원수들은 형식상이 아니라 진짜로 그만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2. 상징물[편집]


사실상 특정 국가 군대의 최고 계급이기 때문에 다른 군 계급과는 달리 국가적 위신을 상징하는 권위있는 지위이다. 그래서 다른 계급에는 다 적용되는 연령정년이 없이 본인이 원하면 종신 현역도 가능한 지위인 만큼, 다른 군 계급에는 없는 특정한 상징물이 있다. 이 상징물들은 보통 계급장에 국장과 함께 새겨진다.


2.1. 원수인장[편집]


元帥印章. 고려 후기, 고려 조정에서 각 지역의 원수들에게 지급한 도장. 조정에서 해당 원수에게 징병권 및 군령권을 위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수인장은 동북면원수 이성계의 일파가 위화도 회군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1390년부터 점진적으로 회수되었다.


2.2. 원수 사령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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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04px-GenFeldmarschall_until_1945_(Wehrmacht).svg.png
영국군 육군원수 계급장
독일국방군[4] 육군원수 계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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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제국 육군 원수 이오시프 구르코의 원수 사령장

유럽 국가들은 원수 계급이 자리잡은 18세기부터 원수 사령장(marshal's baton)이라고 하는 지휘봉을 원수의 상징물로 사용했다. 그래서 미국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에서 '별 5개'가 원수 계급장인 것처럼, 유럽 국가들의 원수 계급장에는 x자로 교차하는 원수 사령장이 들어간다. 나치 독일군 원수들은 심지어 히틀러 앞에서도 거수경례 대신 원수 사령장을 오른손으로 들었다 내리는 것으로 경례를 대신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2.3. 5개의 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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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원수 계급장
미군식 계급체계를 따르는 국가들에서 원수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때문에 이들 국가들에서는 대장을 4성 장군이라 칭하듯, 원수를 5성 장군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미군, 그리고 대한민국 국군이 있다.

한편, 현대 프랑스군 원수의 경우 똑같이 별이 상징이지만, 그 숫자가 7개이다.


2.4. 원수성장[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rshal-Star_big1.jpg
파일:138px-Rank_insignia_of_маршал_Советского_Союза.svg.png
소비에트연방원수 원수성장
소비에트연방원수 계급장
소련군은 러시아 제국 시절 사용하던 원수 사령장을 폐지한 대신 원수성장이라는 금과 다이아몬드로 만든 큼지막한 별 형태의 장식 배지를 제작했다. 원수 사령장처럼 원수성장도 계급장에 새겨진다.

현재 러시아군에서 원수성장 자체는 폐지되었지만, 러시아군 원수 계급장에 큰 별 하나가 국장과 함께 새겨지는 전통은 여전히 남아있다. 또한 구 공산권 국가, 대표적으로 조선인민군에서는 여전히 사용중이다.
조선인민군 원수성장에 대한 기사


3. 원수부(元帥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원수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동북아시아 국가들에서 원수의 사령부를 칭하던 단어.


4. 사례[편집]



4.1. 한반도[편집]


근대 이전 한국사에서의 원수(元帥)는 어원적으로 중국에서 유래했는데, 전통적으로 전시에 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에게 임시로 부여하는 직책이었다. 그러다 대한제국이 설립된 이후의 한국계 국가들은 유럽에서 기원한 원수 계급제도를 받아들였다.


4.1.1. 고려군[편집]



4.1.1.1. 전기[편집]

파일:윤관 표준영정.jpg
▲ 여진 정벌 당시 고려군 별무반 행영대원수 문숙공 윤관.

왕조 전기의 고려군당 전기의 율령 군제를 도입하여 유사시 변란이 일어나거나 타국 침공을 위한 원정이 결정될 시 경군[5]이 모여 전, 후, 좌, 우, 중의 오군으로 개편되었고, 그 사령관으로서 원수(元帥), 그리고 부사령관으로 부원수(副元帥)가 임명되었다. 이 편제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이 여진족 정벌 당시의 별무반의 편제로, 원수 윤관과 부원수 오연총 및 그 참모진들이 이끄는 행영 원수부 아래, 각 병마사(兵馬使)들의 5개 군이 동원되었다.

고려 별무반 행영 군단
대원수(大元帥)
행영대원수(行營大元帥) 윤관
부원수(副元帥)
행영병마사(行營兵馬使) 오연총
판관(判官)
병마판관(兵馬判官) 최홍정
병마판관(兵馬判官) 황군상
병마판관(兵馬判官) 김부필
기타 지휘관
녹사(錄事) 척준경
권지승선(權知承宣) 왕자지
선병별감(船兵別監) 양유송
병과
신기군(神騎軍)
신보군(神步軍)
발화군(發火軍)
도탕군(跳盪軍)
경궁군(梗弓軍)
정노군(精弩軍)
항마군(降魔軍)
도합 170,000 명


4.1.1.2. 후기[편집]

파일:태조 어진.jpg
▲ 고려 무장 시절 고려군 동북면도원수였던 조선 태조 이성계.

고려 전기의 원수란 요즘으로 치면 야전군 총사령관, 부사령관에 상당하는 직책이었으나 고려 후기의 원수는 특정 지역의 방위를 맡은 사단장급 사령관으로 변화한다.

전기 고려군은 문벌귀족의 전횡과 요나라와의 전쟁을 거치며 약화되어 왔다. 이 때문에 여진족이 준동하던 12세기에는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정규군조직이 아닌 별도로 별무반이라는 기존 군제와 독립된 특설임시조직을 만들면서 별호제반에 의존하는 국방 체제가 시작되었다. 이미 이 때부터 기존의 2군 6위 체제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정벌 후에도 12세기 내내 이어졌던 이자겸의 난묘청의 난, 그리고 무신정변은 별무반을 통해 간신히 다시 끌어모은 고려의 국방력이 재차 소모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조위총이 북부지방의 주진군을 모아 중앙군을 상대로 일으킨 난은 고려의 핵심 전력 수만 명을 싸그리 갈아버린 대참사였고, 이를 계기로 금나라가 두려워했던 고려의 오군은 사실상 붕괴되고 말았다. 남은 얼마 안 되는 군사력은 무신정권의 친위대라 할 수 있는 삼별초가 증편되어 메꾸었지만, 이 또한 40년간의 여몽전쟁을 거치며 완전히 와해되었다.

이후로도 백년간 이어진 원나라의 간섭 아래 고려의 국방 자주권은 극도로 제한되었다. 도성만 겨우 방비할 정도의 궁궐 호위대, 그리고 일종의 내무군이라 할 수 있는 순군 정도만이 당시 고려 조정이 보유할 수 있던 병력의 전부였다. 그리고 14세기 말, 고려는 이런 답도 없는 상태로 팍스 몽골리카가 무너지면서 동아시아 전체가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드는 끔찍한 안보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왜구가 침공하고 반란군에 만주의 원나라 군벌, 홍건적, 여진족까지 사방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선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러자 보유한 군대가 사실상 아무것도 없던 고려 조정은, 각 지역들에 원수인장(元帥印章)을 받은 원수들을 파견, 또는 임명하여 징발권과 군령권을 맡김으로써 적들을 상대하고자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종의 계급 인플레이션이 발생, 도원수(都元帥), 상원수(上元帥), 부원수(副元帥)가 도마다 한 명씩 배정되며 원수직은 상설화되었고, 그 성격도 경군의 총사령관에서 지역을 방위하는 사령관이자 군벌로 바뀐다. 그리고 총사령관으로써의 의미가 퇴색된 기존의 원수직 대신, 최상급 사령관 직위는 중국 송나라의 예를 참고해[6] 도통사(都統使)로 명칭이 변경된다. 물론 송나라의 도통사는 고려에 대입하자면 도원수에 해당하므로 그대로 도입하지는 않았다.

각 도의 세 원수들은 맡은 역할이 조금씩 달랐다. 도원수는 중앙에서 자신의 도의 시위패를 관할했다. 상원수는 중앙에서 직무를 보다가 유사시 관할지로 돌아가 도의 방어를 맡았으며, 부원수는 재상직의 일종이자 군정, 민사 행정가라 볼 수 있는 도순문사(都巡問使)를 겸하며 지역에 상주하여 외적이 쳐들어오면 직접 병력을 지휘하는 야전 지휘관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들만으로 자신의 관할지에 침입한 외적을 방어하기 힘들 경우 타 도의 원수들이 조전원수(助戰元帥)로서 지원을 위해 그 지역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외적이 연해지역을 침공할 경우, 해군을 통솔하며 해안을 방위하는 해도원수(海道元帥)가 임명되기도 했다.

물론 원칙은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도원수-해당 지역 군대의 no.1 부원수-해당 지역 군대의 no.2 조전원수-해당 지역 군대의 주요 간부 이렇게 서열이 나뉘어진다.[7]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에 도원수로 두기엔 모자르나 부원수로 두기엔 넘치는 사람들을 위한 직위인 원수가 추가되었다.

원수들에게는 각자 자신의 사령부라 할 수 있는 원수부를 열 권한이 주어졌다. 그리고 이들은 원수인장이 보장하는 각 도의 징발권과 통솔권으로 임지에서 익군과 시위패 병사들을 조직하거나 동원했고, 참모부라 할수 있는 진무소에 자기 가문 사람 또는 문객[8] 들을 꽂아넣었다. 이로 인해 고려 말의 고려군은 사실상 각 지방 유력자들의 사병들이 모인 조직으로 변화했다. 고려 말기 심각했던 국가적 혼란으로 인해, 고려군의 원수들은 자기가 지휘할 병력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제대로 나왔다면 원수인장을 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고려 후기의 원수들이 직접 지휘하던 병력은, 고려 전/중기 원수들이 지휘하던 수만명 단위에서, 자신들의 가별초들로 구성된 수백~2000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원수들은 이 직속병력에 여기에 필요하면 해당 지역에 있는 백성들로 구성된 익군들을 임시로 동원해서 임무를 수행했다. 반면 도통사들은 이들 원수들을 통솔하며 수만 명 단위의 병력을 지휘했다.

결국 이러한 후기 고려군의 체제에서 여말선초 '신진 사대부'와 한 축을 이루는 '신진 무장세력'이 형성된다. 이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고려군은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당나라의 군대가 보여주었던 군제의 변화, 그리고 절도사/원수들로 대표되는 군벌들의 발호에서 비롯된 몰락이라는 전철을 비슷하게 따라갔던 셈이다. 이 시기 원수들이 넘쳐나던 고려군의 모습은 제2차 요동정벌 당시 편성된 공요군의 편제에서 잘 볼 수 있다. 자그마치 27명이나 되는 원수들이 좌/우군도통사에 분속되어 있다.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 최영(崔瑩)
좌군도통사(左軍都統使)
조민수(曹敏修)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李成桂)
서경도원수(西京都元帥)
심덕부(沈德符)
안주도도원수(安州道都元帥)
정지(鄭地)
부원수(副元帥)
이무(李茂)
상원수(上元帥)
지용기(池湧奇)
양광도도원수(楊廣道都元帥)
왕안덕(王安德)
부원수(副元帥)
황보림(皇甫琳)
부원수(副元帥)
이승원(李承源)
동북면부원수(東北面副元帥)
이빈(李彬)
경상도상원수(慶尙道上元帥)
박위(朴葳)
강원도부원수(江原道副元帥)
구성로(具成老)
전라도부원수(全羅道副元帥)
최운해(崔雲海)
조전원수(助戰元帥)
윤호(尹虎)
계림원수(鷄林元帥)
경의(慶儀)
팔도도통사·조전원수(助戰元帥)
이원계(李元桂)
안동원수(安東元帥)
최단(崔鄲)
배극렴(裴克廉)·박영충(朴永忠)·이화(李和)
조전원수(助戰元帥)
최공철(崔公哲)
이두란(李豆蘭)·김상(金賞)·윤사덕(尹師德)
팔도도통사·조전원수(助戰元帥)
조희고(趙希古)
경보(慶補)·이을진(李乙珍)·김천장(金天莊)
안경(安慶)·왕빈(王賓)
총 병력 50,473명 군마 21,682필

다만 왜구와 홍건적, 몽골 등의 외적들이 사방에서 침공해오고 있던 터라, 원수들의 독자행동은 정부에 대놓고 반기를 들 정도로 활발하진 않았다. 당연한 것인데 그 원수들이 각 도나 유력지방에서 재물과 사람을 모아 군대를 만들 수 있던 것은 바로 고려 중앙정부가 원수인장 수여를 통해 그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으면 제 아무리 원수라 해도 자기가 사는 동네, 크게 쳐줘도 자기가 사는 소재군현 이외에는 재물과 사람을 긁어모을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고려정부는 인사권과 중앙 조정에서 파견하는 감찰로 군벌이라 할 수 있는 원수들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 비교적 자유로왔던 원수가 하나 있었다. 바로 조상 대부터 함경도 함흥 일대를 중심으로 독자적 세력을 구축하여 가장 강력한 가별초를 육성해놓았던 동북면원수 이성계다. 이성계 가문의 영지는 고려에게서 원나라가 쌍성총관부란 이름으로 빼앗았던 지역에서 시작했고, 따라서 그 성장의 뒷배경에는 고려가 아니라 원나라가 있었다. 그리고 원나라의 몰락기에 이성계 집안이 쌍성총관부를 통째로 들고 고려에 자발적으로 귀순해오면서, 고려 정부는 반원 정책의 가장 큰 성과를 들고 온 이성계 가문이 가진 영지를 그대로 인정해주어야 했다. 거기다 이성계에게는 무주공산으로 변한 한반도 북부와 만주의 기존 원나라 영토에 살던 이민족 부족들에 대한 영향력도 건재했다. 따라서 다른 원수들과 달리, 이성계의 거대한 동북면 영지는 고려 정부의 영향력이 사실상 없었다. 이성계는 여타 원수들과 달리 고려시대 주요 권신들과도 비교해도 최씨정권정도를 제외하면 비교도 할 수 없는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최씨정권조차도 이런 수준의 기반을 가지지 못했고 그나마 진강, 진양, 진평 등 가라치기로 작위명을 갈아치우며 영향력을 억지로 이은 진주지역에서나 어느정도 비슷한 것을 해볼 만한 정도였다. 그리고 쌍성총관부 총관이던 조소생의 한양 조씨세력이 숙청되면서, 그의 영지인 동북면에서 그에 대적할 인물은 사라졌다.

그리고 후에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가 가장 큰 경쟁자인 팔도도통사 최영공요군 좌도도통사 조민수를 숙청하고 그나마 반이성계 세력의 실전무력을 가진 마지막 거물급 군벌인 변안열마저 숙청해버리자, 이성계에게 반할만한 세력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이후 정권을 장악한 이성계는 장차 위협이 될 수 있는 원수들의 인장을 회수하고 오군을 삼군으로 개편한 후, 최고사령부 격의 기관인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를 설치하여 자신이 그 장관이자 고려군 최고사령관이라 볼 수 있는 도총제사(都摠制使)에 올랐다. 이로써 상설직으로써의 원수직제는 폐지되어 여말선초의 도절제사, 그리고 조선왕조의 절도사제로 바뀌었다.


4.1.2. 조선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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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팔도도원수 충장공 권율.

후대의 조선군 또한, 중기 고려군의 원수직과 유사하게, 유사시 지방 각 도의 군사령관인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들을 총괄할 임시직으로써의 도원수, 그리고 이를 보좌할 부원수 제도를 운영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의 팔도 도원수 권율이 좋은 예다.

임시직이다보니 도원수의 지휘 범위는 몇 명의 병마절도사들을 통솔하는지에 따라 유동적이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같은 큰 전쟁에서는 전국 8도의 조선 육군 전체를 지휘하는 팔도도원수가 등장했지만, 일반적으로는 변란이 일어난 일대의 병마사들만을 지휘했다. 이는 전통적인 의미의 사령관으로써의 원수 직책이 복구됨을 의미했다. 다만 고려 중기의 원수가 중앙 3/5군의 사령관을 의미했다면, 조선 도원수는 지방군 작전사령관이라는 차이가 있다.

한편, 상대적으로 고려에 비해 중앙집권이 강화됨에 따라, 도원수 위에는 도체찰사, 도순무사, 체찰사 같은 재상이 임명되는 중앙 직속의 상위직이 또 있었다. 그 때문에 임진왜란 초기에는 4명의 도체찰사가 도원수 1인에게 명령을 내리는 등 경직되고 혼란한 지휘체계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곧 개선되었다.

파일:이순신.jpg
▲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한편 조선 수군의 경우, 임진왜란 시기에 신설된 수군 총사령관직인 삼도수군통제사, 정묘호란 이후 설치된 삼도수군통어사가 육군의 도원수직과 유사하다. 특히 삼도수군통제사는 조선 수군의 군령권과 군정권, 하삼도의 수군절도사들 전체와 주력함대 절대 다수, 그리고 그 방어진들을 전부 통할하는, 사실상 조선 수군의 총사령관에 해당하는 막강한 직위였다.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는 충무공 이순신이었다.

다만 통제사는 도원수와는 달리 상설직이었다. 품계도 도원수가 정 2품인 반면, 삼도수군통제사는 종2품이라는 차이가 있다.


4.1.3. 대한제국군[편집]


파일:대원수복 고종 원수복 순종.png
▲ 대한제국군 대원수 정복을 입은 고종 황제와 원수 정복을 입은 황태자 시절의 순종 황제.

▲ 대한제국의 국새 대원수보(國璽 大元帥寶). 대한제국군 원수부에서 원수지보(元帥之寶), 원수부인(元帥府印)과 함께 사용하던 세 인장 중 하나이다. 그 중 대원수보는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군의 대원수, 즉 통수권자로써 결재할 때 사용했다.

한반도에서 현대적인 원수 계급을 부여받은 사람은 대한제국 시절의 순종이 있다. 아버지 고종이 대원수였다.

구한말의 혼란 속에, 고종 황제는 국방부라 할 수 있는 군부가 휘둘릴 것을 우려하여, 국가의 무력을 확실히 장악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대한제국군 전체를 통할하는 황제 직속의 통수본부인 원수부를 설치했고, 군부의 권한을 대부분 원수부로 이전했다. 그리고 본인은 대원수로써 황제인 자신의 권위를 바탕으로 직접 군을 통솔했다. 원수는 대원수 바로 아래의 계급으로, 대원수의 명령을 예하부대에 하달했다. 황태자 시절의 순종 황제가 대한제국군 원수였다.

1904년 원수부를 일본이 폐지시킨 후 촬영된 순종의 군복 차림 사진을 보면 팔소매 계급장을 대장 계급장으로 착용하고 있어,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원수부 폐지와 함께 대원수, 원수 계급 자체가 없어지고 황제와 황태자의 계급이 대장으로 격하된 것으로 추정된다.

4.1.4. 대한민국 국군[편집]


현대 대한민국 국군의 원수 계급장은 미국의 영향을 받은 5개의 별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계급명칭은 전통적인 직책명인 원수(元帥)로 부르고 있으며, 영문 번역명은 미국과 같이 General of the Air Force로 호칭하는 공군 원수를 제외하고서는 육군과 해군 모두 영국식 표현을 사용해 Field Marshal, Admiral of the Fleet이다.

군인사법에서 원수 계급에 대해 규정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제8조(현역정년)
① 현역에서 복무할 정년(停年)은 다음 각 호와 같다. 다만, 전시·사변 등의 국가비상시에는 예외로 한다.
1. 연령정년
원수: 종신(終身)
(이하 생략)[9]
[
전문개정 2011·5·24
]

제17조의2 (원수임명)
① 원수(元帥)는 국가에 뚜렷한 공적이 있는 대장 중에서 임명한다.
② 원수는 국방부 장관의 추천과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
본조신설 2011·5·24
]

원수 임명에 대한 규정은 1962년 군인사법 제정 시부터 "원수는 국가에 대한 공적이 현저한 대장 중에서 임명한다." 라고 되어 있다. 과거에 제27조에 있던 조문을 제17조의2로 옮기면서 자구만 다소 수정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원수 계급이 법적으로는 존재하지만 2022년 현재까지 이 계급으로 진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원수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라 할 때의 원수는 元(으뜸 원, 장수 수)가 아니라 元(머리 수)이다.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는 한자의 동음이의어 문제와 국가 원수가 군통수권자라는 사실을 군 계급과 연결지어 오해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행사에 따라 군복을 입기도 하지만 이때의 군복에는 계급장이 아니라 대통령 휘장이 달린다.[10] 그리고 군대 계급 원수는 대한민국 대통령은커녕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보다 지위가 낮다. 엄밀히 말해서 민간인으로서 군대의 통수권을 가지는 문민통제 원칙에 따르기 때문이다. 문민통제의 원칙 때문에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 내각 구성원 중 하나인 국방부 장관은 군 계급이 없다.

어쨌거나 대장까지 오른 최고위직 장교가 한 계급 더 진급할 만큼 뚜렷한 공적을 세운다는 것은, 결국 국가를 전시·사변 등 존망의 위기에서 구해낸 구국영웅 정도 된다는 얘기이다. 반대로 보면 대한민국에서 원수가 나온다는 건 나라가 큰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므로 역설적으로 원수가 없는 게 좋은 일인 셈이다.

모 육군 부대의 병사들 사이에 돌던 풍문에 의하면, "한국이 북진통일을 이뤄냈을 때 그때의 합동참모의장이 원수로 진급한다."가 있는데, 딱히 그런 제도가 있는 건 아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원수 계급이 그만큼의 상징성이 있다는 이야기로만 알아두면 되겠다. 또한 부대에 따라선 총 병력이 100만 명을 넘어가면 원수 계급이 나오기 시작한단 소리도 있는데, 그럴 일은 없다. 원수가 사람 수에 비례해서 주는 계급은 아니다. 이 주장이 나온 이유는 군 편제상, 병력이 50만에서 100만을 넘어가면 집단군으로 편성이 가능한데, 이 집단군을 지휘하는 집단군사령관은 보통 원수가 부임하기 때문이다.

사실 대한민국 국군 총병력이 약 53만이고, 거기에 육군만 40만에 달하므로 이론상 지금 당장이라도 집단군 편제가 가능하긴 하다. 그리고 그렇게 안 하는 이유는 당연히 매우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11] 현 2개 야전군 편제(지상작전사령부제2작전사령부)로도 잘만 굴러가는데 굳이 명령 보고체계를 하나 더 만들 이유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동안 3개 야전군이 있던 시절에도 굳이 집단군을 편제하진 않았다.

군인사법에 규정된 원수의 신분이나 처우에는 모순 내지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원수의 연령정년은 종신(終身)이다(군인사법 제8조 제1항제1호). 그런데 만약 원수가 합참의장이라면 2년의 임기를 마치면 연령정년의 적용 없이 무조건 전역하도록 되어 있다(제18조 제3항, 제4항). 물론 연령정년이라는 것은 그 연령이 지나면 전역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 연령까지 무조건 현역복무를 보장한다는 의미는 아니므로 법적으로는 전역하는게 맞기는 하다. 그렇지만 국가에 뚜렷한 공적을 인정하여 원수를 종신직으로 정한 취지에 비추어 온당한 해석은 아닐 것이다.

만약 원수가 각군 참모총장이라면 서열에도 문제가 생긴다. 군인의 서열은 계급의 순위에 따르므로(제4조제1항) 원수인 참모총장이 대장인 합참의장보다 상급자가 되어야 맞겠지만, 한편 합참의장은 현역장교 중 최고의 서열을 가진다는 규정(제18조제2항)에 의하면 대장인 합참의장이 원수인 참모총장보다 상급자가 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명백히 모순 내지 충돌되는 규정이다. 또한 참모총장 역시 2년의 임기가 끝난 후 합참의장으로 전직(轉職)되지 아니하면 무조건 전역하여야 하며(제19조제4항), 설령 합참의장으로 전직된다 하여도 합참의장의 임기를 마치면 결국 전역하여야 한다. 결국 원수를 종신직으로 정한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합참의장도 참모총장도 아닌 대장이 원수로 진급한 경우,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무조건 전역하여야 한다는 규정은 없으므로 해당 보직의 임기를 마쳤다 하여도 종신토록 현역 원수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원수가 합참의장도 참모총장도 아니라면, 합참의장은 현역장교 중 최고의 서열을 가지며(제18조제2항), 참모총장은 해당 군의 현역장교 중 최고의 서열을 가진다는(제19조제2항) 규정에 비추어 현역 원수와 대장인 합참의장, 참모총장과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지는 여전히 문제이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에 원수 진급자가 없었으므로 실제로 이러한 점이 진지하게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정식으로 현역 원수가 임명될 경우 분명 문제의 소지는 있다. 물론 원수 계급의 엄청난 상징성과 명예를 감안할때 기왕 원수까지 임명한 군사영웅을 이런 자잘한 문제로 현역 원수를 불편하게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테고, 정부와 군에서도 알아서 예우를 하기야 하겠지만, 분명 법적으로 모순 내지 충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09년 무렵에는 6.25 전쟁에서 활약했던 퇴역 육군대장 백선엽을 명예 육군원수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만주군으로 만주 일대의 독립군들을 토벌할 목적으로 설치된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친일 경력이 문제가 되었고 군법상 예비군을 원수로 추대할 수 없다는 절차적 문제도 있어 무산되었다. 백선엽 못지 않은 위상을 가졌던 다른 창군원로들의 결사반대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정식 원수는 아니었지만, 독립운동가이자 한국군 창군원로인 김홍일 중장은 장제스의 국민혁명과 중일전쟁 당시 중국 국민당의 당군인 국민혁명군에 군적을 두고 복무해 중장까지 진급했고, 해방 후에는 고국으로 돌아와 한국군에서 소장 계급으로 두 번째 군 생활[12]을 시작,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해 중장까지 진급했다. 때문에 '오성장군'[13]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중일전쟁 와중 한국 광복군으로 잠시 군적을 옮겨 참장으로도 복무했기 때문에, 여기에 별 하나가 더 추가되어야 하는 것이 옳긴 하다. 광복군 참장은 현대 소장과 동급이지만 별 숫자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4.1.5. 북한군[편집]


조선인민군 원수 문서 참조.

4.2. 서구권[편집]



4.2.1. 프랑스군[편집]


프랑스군 프랑스 원수 계급장
육군
해군
Maréchal de France
Admiral d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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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 제국 원수 장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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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육군 원수 페르디낭 포슈. 그는 영국군과 폴란드군의 명예원수이기도 했다.

유럽에서 원수를 지칭하는 말인 '마레샬/마셜/마샬'(프랑스 Maréchal, 영국 Marshal, 독일 Marschall) 등은 모두 프랑스에서 유래된 것이다. 원래 중세 프랑스에서 '마레샬(마레스칼루스)'은 왕이 타는 어마(御馬)를 관리하는 직책이었다. 1185년 프랑스의 필리프 2세 때 알베릭 끌레망(Albéric Clément)에게 프랑스 원수(marescallus Franciae) 직함을 부여한 이후에는 왕을 보좌하는 장군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리슐리외가 군 조직 개혁을 하면서 1624년부터는 프랑스 육군 최고위 장군들을 프랑스 원수(maréchal de France)로 부르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총 263명이 이런 프랑스 원수 직함을 받았다.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제1제정 때에는 프랑스 제국 원수(maréchal d’Empire)를 수여받은 이들이 특히 유명하다. 1806년 수여받은 장 란부터 1815년 수여받은 에마뉘엘 그루시까지 총 26명으로, 흔히 이들을 나폴레옹의 26 원수라 부른다.

이후에도 프랑스군은 꾸준히 원수 계급을 부여하여 루이 18세가 7명, 샤를 10세가 3명, 루이 필리프가 10명, 제2공화국에서 7명, 제2제정에서 12명, 제3공화국에서 8명, 제4공화국에서 3명을 임명하였다. 제5공화국 들어서는 1984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쟁 영웅인 마리-피에르 쾨니그(Marie-Pierre Kœnig) 장군에게 추서된 것이 마지막이다.

참고로 프랑스 원수는 계급이라기보다는 칭호에 가깝다. 또한 계급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수 계급장의 별이 무려 7개이다. 한편 프랑스군 대장(야전군 장군)은 5개, 중장(군단 장군)은 4개, 소장(사단 장군)은 3개, 준장(여단 장군)은 2개이다.


4.2.2. 독일계 국가[편집]


Generalfeldmarschall 야전원수 (육, 공)
Großadmiral 대제독 (해)

독일계 국가들의 육군 야전원수(Feldmarschall) 계급 역시 프랑스가 기원이며, 최초로 임명된 시기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독일계 야전원수는 신성 로마 제국이 1542년 대오스만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제국군 원수 직책에 임명된 제국기사 요한 힐셴 폰 로르흐이다.

반면 해군 대제독(Großadmiral)의 경우, 독일계 국가들의 해군 전통이 일천했던 관계로, 1901년에야 임명되었을 정도로 매우 역사가 짧다.


4.2.2.1. 오스트리아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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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 야전원수 프란츠 사버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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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폰 외스터라이히테셴 대공의 원수봉

오스트리아의 육군 원수 계급은 신성 로마 제국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설립된 직후인 1805년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멸망하는 1918년까지 존속했다.

대다수가 오스트리아의 지배 계층이었던 독일계였지만 헝가리계도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으며, 소수의 슬라브계도 있었다. 대표적인 독일계 인물이 세계대전 당시 참모총장 프란츠 사버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이며, 체코계로는 요제프 라데츠키가 그리고 크로아티아계로는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 사령관 스베토자르 보로예비치 폰 보이나가 있다. 또한 그 당시 국가들의 전통대로, 타국의 군주들이나 군인들에게 수여된 사례도 존재한다. 영국 육군 원수였던 아서 웰즐리도 오스트리아 제국 육군 원수였다.

한편 해군 원수 계급은 세계대전 당시 황립해군 총사령관이었던 슬로베니아계 안톤 하우스 원수를 제외하고는 전원이 오스트리아 황실 또는 독일 황실 인물들이었고, 이 때문에 사실상 명예직이었다.


4.2.2.2. 독일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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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8년의 독일 제국군 육군 야전원수 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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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 육군 야전원수 헤르만 폰 아이히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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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 해군 대제독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프로이센과 독일 제국의 육군 야전원수(Generalfeldmarschall) 계급도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신성 로마 제국의 원수 전통에서 기인했기에, 원래는 고위 귀족 출신으로써 전시에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거나 중요한 지역을 점령한 사령관에게 수여되는 명예로운 호칭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1813-14년 전역에서 프랑스군을 대파하며 프로이센의 명예를 되찾았던 공로로 원수로 진급한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 그리고 독일 통일전쟁의 군사적 주역이었던 헬무트 폰 몰트케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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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제국군의 '원수와 동격의 상급대장' 계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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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제국군 육군의 '원수와 동격의 상급대장'(Generaloberst mit dem Range als Generalfeldmarschall)이었던 바덴 대공국 7대 대공 프리드리히 2세.

한편, 육군 상급대장(Generaloberst) 계급도 원래는 원수와 동격의 계급이었다. 당시 프로이센에는 왕족이 야전원수 계급을 수여받을 수 없다는 전통이 있었고, 상술했듯 야전원수는 전시에 공로가 큰 사령관에게만 수여되었기 때문인데, 이 원칙을 비껴나가면서 평시에 대장보다는 상위, 원수와 동격인 왕족 전용 계급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Generaloberst라는 단어 자체가 장군을 뜻하는 General에다 '~보다 위'를 의미하는 ober의 최상급인 oberst를 붙인 것이다. 초대 상급대장으로는 빌헬름 왕세자(훗날의 빌헬름 1세)가 임명되었다.

이후 '원수와 동격의 상급대장'(Generaloberst mit dem Range als Generalfeldmarschall) 계급이 신설되어 독일 구성국들의 왕실 인물들에게 명예원수 계급으로써 수여되기 시작했다. 상급대장 계급은 1911년이 되어서야 위 원수격 상급대장과 분리되어, 원수보다 한 단계 낮은,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계급이 되었다.

이는 1870년, 독일 통일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세자와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 대공이 왕족 중 최초로 원수로 임명되면서 왕족이 원수에 임명될 수 없다는 원칙이 서서히 깨졌기 때문이다. 이후 독일의 군국주의화가 강해짐에 따라 독일의 왕족들이 명예원수(상술한 상급대장 계급을 의미)계급을 수여받는 일은 매우 일반화되었다. 비단 프로이센뿐만 아니라 바이에른이나 뷔르템베르크 등의 왕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육군 야전원수(Generalfeldmarschall) 계급은 여전히 귀족 이상 계급 출신이면서 군에 큰 공을 세운 소수의 인물들만이 받을 수 있는 영예였다. 이 때문에 독일 제국군 장성들 중 야전원수로 진급한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심지어 1차 세계대전 도중에도 왕족들을 제외하면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헤르만 폰 아이히호른, 파울 폰 힌덴부르크, 레무스 폰 보이르슈, 카를 폰 뷜로 5명만이 원수로 진급했다. 해군은 더 심해서, 세계대전 도중 대제독(Großadmiral)로 진급한 이는 헤닝 폰 홀첸도르프 단 한 명 뿐이었다. 훗날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나폴레옹을 모방해 수십명의 원수를 임명하고, 그 중에는 에르빈 롬멜이나 발터 모델같이 평범한 집안 출신도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편 독일 제국 해군 원수(Großadmiral)은 1901년에야 신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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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육군 야전원수 발터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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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당시 나치 독일 육군 야전원수 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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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 독일 해군원수 견장

나치 독일의 원수들에 대해서는 독일 국방군/원수 문서로. 재무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36년에 국방장관 블롬베르크가 진급한 것을 시작으로, 도합 28명이 원수봉을 쥐었다. 특이하게도 제국원수(Reichsfeldmarschall)라는 계급도 있었는데 이는 헤르만 괴링 전용 계급으로, 굳이 번역하자면 대원수에 해당한다.


4.2.3. 미군[편집]


미군 원수 계급장
육군
해군
공군
General of the Army
Fleet Admiral
General of the Air Fo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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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1. 미합중국 육군 및 공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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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육군 원수 오마 브래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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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공군 원수 헨리 아놀드.

유럽 국가들에 비해 군사적 전통이 일천하고 육군 규모가 작던 미국은 '원수' 계급이 늦게 도입되었다. 남북전쟁 이전까지는 조지 워싱턴을 제외하면 3성 장군조차 없었다[14]. 여단장급 지휘관인 준장(1성 장군), 사단~군단장급 지휘관인 소장(2성 장군)만 있었다. 그러다가 남북전쟁 중에 야전군급 부대(게티즈버그 전투의 포토맥 군과 같은 부대)들이 대거 창설되면서, 1861년에 소장 계급의 장군들 중에서 야전군급 이상 지휘관들에게만 3성 계급장을 부여했다. 이어 1864년에는 공식적인 전시 3성 장군 계급으로 중장(lieutenant general)을 제정해 율리시스 그랜트부터 진급시켰다. 그러다가 남북전쟁 승전 1년 후인 1866년에 미국 의회는 다시 율리시스 그랜트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새로 4성 장군으로 '미 연방 육군 대장(General of the Army of the United States)'이라는 계급을 도입한다. 이는 미 육군 총사령관에 해당하는 장군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부여했다. 1866~69년에는 율리시스 그랜트가, 이어 1869~1883년에는 후임 윌리엄 테쿰세 셔먼이, 그 다음에는 후임 필립 셰리든이 1888년에 잠깐[15] 이 계급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중장(3성), 대장(4성)은 여전히 남북전쟁 때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일부 장군들에게만 부여한 임시 계급이었고, 평시 최고위 계급은 소장(2성)이었다.

여기에 다시 변화가 생긴 것이 제1차 세계 대전 때이다. 미 육군이 공식 참전하면서 다시 100만 대군의 위용을 갖추자, 미 의회는 육군 참모총장 태스커 블리스와 (후임) 페이튼 마치, 미국 원정군 사령관 존 퍼싱에게 임시 계급으로 대장(General, 4성) 계급을 다시 부여했다. 특히 존 퍼싱은 1차 세계 대전의 승리를 이끈 전공을 기리고자 1919년에 'General of the Armies of the United States'로 한층 격을 높인 계급이 부여된다. 이는 계급장 별은 똑같이 4개지만, 일반적인 은색 별과 달리 금색 별로 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존 퍼싱의 최종 계급은 실질적으로는 5성 장군(또는 6성 장군)으로 간주되며, 그의 계급도 '미 육군 원수(또는 대원수[16])'로 번역하기도 한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임시 계급이 원상복귀되면서 다른 장군들의 계급은 모두 정규군 소장(2성)으로 돌아갔어도, 존 퍼싱만은 예외적으로 1948년에 사망할 때까지 종신 계급으로 'General of the Armies' 직을 유지한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임박해오며 1939년 8월에는 중장(3성)과 대장(4성)도 임시가 아닌 정규 계급으로도 제정되었다. 다만 정규 대장(4성) 계급은 육군 최고위 장교인 참모총장에게만 부여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미 육군이 다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수많은 장군들이 임시 중장 및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5성 장군으로서의 정규 원수 계급이 정식 제정된 것은 1944년 12월의 일이다.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때와는 달리 미군이 명실상부한 전쟁 수행의 주도권을 가지고 연합작전을 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미군의 3성 또는 4성 장군들이 영국군의 즐비한 원수들을 휘하에 두는 일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예가 연합원정군 최고사령관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장이 영연방군 제21집단군 사령관 버나드 몽고메리 원수(1944년 9월 진급)를 지휘하게 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 내에서는 국가 위신을 세우는 차원에서라도 격이 맞는 5성 장군으로서의 원수 계급을 제정하자는 여론이 힘을 받게 되었다.

이때 미 의회에서는 새로운 정규 원수 계급의 명칭으로 'Field Marshal'을 쓸 것인지, 'General of the Army'를 쓸 것인지 약간의 논쟁이 있었다. 우선 'Field Marshal'을 쓰자는 의견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일단 이 용어가 너무 유럽 냄새가 난다는 거부감이 있었고,[17] 미국에서는 이미 '마셜(Marshal)'이 연방보안관을 지칭하는 용어로 널리 쓰여와서 군 계급에 쓰기에는 어색했다. 또한 당시 이 계급을 받을 1순위인 조지 마셜 참모총장에게 이를 붙였다가는 'Marshal Marshall'로 희화화될 위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18] 반면 'General of the Army'는 이미 그랜트, 셔먼 등의 전례가 있다는 점은 좋으나, 과거에 4성 장군을 지칭하는데 쓰였으므로 5성 장군에게 부여하기는 곤란하다는 이견이 제기되었다. 그렇다고 'General of the Armies'를 쓰기에는 이 계급을 가진 대선배 존 퍼싱이 그때까지 살아 있어서 후배 장군들 입장에서 함부로 맞먹기도 부담스러웠다. 이런 논란 끝에 미 의회는 그대로 'General of the Army'을 5성 장군 계급명으로 정하고, 공법 78-482호(1944년 12월 14일 제정)로 전시 임시 계급으로 공식화한다. 이에 의해 다음 4명의 육군 장군들에게 군내 서열 순서대로 1일 간격으로 원수 계급이 부여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군 원수는 전시 임시 계급으로 종전 후 6개월 뒤에 정규 계급으로 환원되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쟁 영웅들에 대한 예우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에 의해, 1946년 3월 23일에 제정된 공법 79-333호에서는 원수를 종신직으로 선언하고 전역 후에도 현직 때와 똑같은 급료를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그리고 1947년에 미합중국 공군이 육군 항공대에서 별도의 군종으로 독립하자, 헨리 아놀드의 계급은 공군 원수(General of the Air Force)로 개칭된다.

이후 1950년 9월 22일에 마지막으로 오마 브래들리가 육군 원수(General of the Army)로 임명된다. 이후로 현재까지는 미 육군에서 새로 원수가 임명된 사례가 없다.

1976년에는 미국 건국 200주년을 맞아, 생전에 중장이 최종 계급이었던 국부 조지 워싱턴에게 미 연방 육군 대원수(General of the Armies of the United States) 계급이 추서되었다. 이는 국부에게 최고 계급을 부여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4.2.3.2. 미합중국 해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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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해군 원수 체스터 니미츠.

미 해군은 당초 미 육군보다도 위세가 떨어졌기 때문에, 장성급 장교 계급도 없었고 최고 계급은 대령(Captain)이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뭔가 구대륙(유럽)과 차별을 두어야 한다는 내부 의견도 작용했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제독(Admiral)이라는 계급 명칭은 너무 유럽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굳이 함장(Captain)급 이상 함대/전대 지휘가 필요할 경우에는 'Flag Officer'라는 직책을 두었다. 그러다가 1857년에는 실질적인 장성급 장교 계급으로 'Flag Officer'을 도입한다.[19]

그러다가 미국 내전이 벌어지자 역시 해군도 팽창되며 제대로 확대된 장성급 장교 계급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분출되었다. 마침 데이빗 패러것(David G. Farragut)이 뉴올리언즈 점령을 성공리에 완수하자, 이 전공을 기리는 의미에서 Rear Admiral(2성 제독)과 Commodore(1성 제독) 계급이 도입되며 1862년 7월 16일자로 총 9명이 2성 제독에 임명된다. 다시 1864년 12월 21일에는 이중 가장 전공이 혁혁한 패러것만 새로 제정된 Vice Admiral(3성 제독)으로 진급하며, 종전 후인 1866년 7월 25일에 다시 추가로 신설된 Admiral(4성 제독) 계급을 받는다. 이때 패러것의 뒤를 이어 데이빗 포터가 3성 제독 계급을 받는다. 1870년에 패러것이 사망하자 포터가 4성 제독 계급을 이어받고, 스티븐 로완이 3성 제독 계급을 이어받았으나, 그 뒤로 한동안은 3/4성 제독은 임명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4성 제독이 부활한 것은 미국-스페인 전쟁이 계기가 되었다. 1898년 마닐라 만 해전에서 조지 듀이 제독이 이끄는 미 해군 아시아 함대는 스페인 함대의 장갑순양함 2척, 일반순양함 5척, 수송선 1척을 격침시키는 압승을 거뒀다. 이에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은 1899년 3월에 조지 듀이 제독을 Admiral 계급으로 승진시켰다. 이어 1903년 3월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Admiral' 대신 1899년에 의회에서 승인했던 새로운 'Admiral of the Navy'라는 계급을 부여해준다.

이 'Admiral of the Navy' 계급은 제정 당시에는 'Admiral'과 동일하게 4성 제독급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다가 1913년 미 해군은 이를 영국 해군의 'Admiral of the Fleet'와 동일한 5성 제독급으로 규정했다. 미 해군은 육군에 앞서 원수 계급을 도입한 셈이다. 그러나 계급장의 별은 여전히 4개이고, 대신 수장이 2인치 금줄 2개 사이에 1인치 금줄 1개가 들어갔다. 기존의 'Admiral' 계급의 경우 수장이 1인치 금줄 1개 위에 1/4인치 금줄 3개가 있었다. 다만 이 계급은 제정 당시부터 조지 듀이 한 사람에게만 부여하도록 규정되어, 1917년 1월 조지 듀이 사망 이후에는 자동 폐지되었다.

그러다 전술한대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미 육군에 5성 장군 도입이 추진되자, 미 해군도 5성 제독 계급을 다시 도입하게 되었다. 이때 미 해군은 'Fleet Admiral'이라는 명칭을 쓰기로 결정했다. 미 육군의 경우 'General of the Army'를 쓰기로 하여 결을 맞추자면 'Admiral of the Navy'를 쓰는게 맞아 보이지만, 이전에 조지 듀이에게 한 번 부여되었던 계급이라 다시 쓰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또한 'Admiral of the Fleet'는 영국 해군에서 5성 제독 계급 명칭으로 쓰이고 있기에, 이와는 다르게 가져가고자 'Fleet Admiral'로 정했다. 그리고 다음 순서대로 3명의 선임 제독에게 이 계급이 부여되었다.


그리고 종전 후인 1945년 12월 11일에 육해군간 균형도 맞추는 차원에서 해군의 윌리엄 홀시 제독에게 원수 계급이 추가로 부여되었다. 미 해군 역시 윌리엄 홀시 이후 현재까지는 원수 계급이 부여된 사례가 없다.


4.2.4. 영연방[편집]



4.2.4.1. 영국군[편집]

영국군 원수 계급장
육군
해군
해병대
공군
Field Marshal
Admiral of the Fleet
Captain General Royal Marines
Marshal of the Royal Air Force
수장
견장
수장
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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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px-British_Royal_Navy_%28sleeves%29_OF-10.svg.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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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육군 원수 아서 웰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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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대전 당시 영국 육군 원수 버나드 로 몽고메리.

영국에서 육군 원수(Field Marshal) 계급이 처음 제정, 부여된 것은 1735년의 일이다. 1735년 1월 조지 2세는 18세기 초 수많은 해외 원정에 참가하여 무훈을 세운 오크니 백작 조지 해밀턴에게 원수 계급을 수여할 것을 지시한다. 이듬해 아길 공작 존 캠벨에게 두 번째로 원수 계급이 수여된 이후 지속적으로 무훈이 탁월한 장군들에게 원수 계급을 부여했다. 영국의 원수 계급은 현역 장군들 외에도 퇴역 장군들에게 명예직으로 수여하는 경우도 많았다. 현역 가운데는 역시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가 44세의 나이로 수여받은 것이 가장 빠른 기록 중 하나이다.

영국은 또한 왕국이다보니 직계 왕자나 부마들에게 원수 계급이 부여되었다. 조지 3세의 아들(5남)이자 이후 하노버 왕국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가 된 어니스트 오거스터스 공이 1813년에 원수 계급을 받은 이래, 그의 동생 캠브리지 공 아돌퍼스 등 왕족들도 원수 계급을 받았다. 또한 친선 관계인 외국의 군주나 왕공족들, 대표적으로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와 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이 2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1세, 일본 제국의 다이쇼 덴노히로히토 덴노도 영국 육군 원수 계급을 받았다.[20] 그러다가 에드워드 7세부터는 국왕이 전 군종의 원수 계급을 받는 관례가 생겨났다.

한편 엘리자베스 2세의 경우, 본인이 아니라 국서인 필립 마운트배튼 공이 육해공군 원수가 되었다. 다른 왕정 국가들도 상당수 국왕이 군 원수[21]이다. 그 외 육군 중령 출신인 켄트 공작 에드워드 조지 니콜라스 폴 패트릭이 1993년 육군 원수 계급을 받았다. 보통 해병대는 규모가 영세하고 해군 산하라 원수 계급이 있을 필요가 없지만, 영국의 경우 국왕 혹은 부군이 전군 원수 계급을 받아야 하므로 해병대 원수 계급이 있다.

이처럼 영국은 현재도 왕실 의전 등의 문제로 원수 계급이 남아 있으며, 2021년 현재 왕세자인 찰스 필립 아서 조지가 육해공군 원수를 겸하고 있다.[22] 다만 찰스 왕세자는 해군 장교로 군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공식 석상에서는 주로 해군원수 정복 차림으로 나왔었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붉은색 육군원수 정복을 입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IRA와의 싸움이나 포클랜드 전쟁, 걸프 전쟁 등으로 영국군도 1990년대까지 나름대로 작지 않은 전쟁을 겪어왔기 때문인지 1990년대 중반까지는 합참의장을 원수로 임명했지만 21세기에는 왕실 의전 용도가 대부분이다. 영국군에서 원수를 달게 되면 이미 이전부터 각종 작위를 받아 귀족이 된 뒤인지라 국어로 번역할 때 많은 애로사항이 꽃핀다.

영국과 그 영향을 받은 나라들의 공군 장성계급은 준장을 제외하면 죄다 marshal이 들어가므로 marshal이 들어간다고 원수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영국 공군 원수의 명칭을 현재의 명칭으로 만든 사람은 휴 트렌차드 공군 원수로 영국 공군의 첫 번째 원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합참의장을 지낸 경우 퇴역 이후 원수 계급을 받기도 한다. 영국은 1990년대 후반까지 입헌군주국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각 군 참모총장, 국방참모총장에게 명예계급이 아닌 현역 군인에게 수여하는 실질적 계급으로서 운용하였다. 또한, 군주가 전 군종의 원수 계급을 가지고 있는 특성상, 미 해병대엔 없는 해병대 원수(Captain General Royal Marines) 계급도 존재한다. 다만 이 해병대 원수 계급은 실제 현역/예비역 장군들 중에서 임명된 바가 없고, 조지 5세~조지 6세까지의 국왕, 필립 마운트배튼 공, 해리 왕자에게만 부여되었었다.


4.2.4.2. 호주군[편집]

호주군 원수 계급장
육군
해군
공군
Field Marshal
Admiral of the Fleet
Marshal of the Royal Australian Air Force
수장
견장
수장
파일:Australian_Army_OF-10.svg.png
파일:80px-Royal_Australian_Navy_(sleeves)_OF-10.svg.png
파일:80px-Royal_Australian_Navy_OF-10.svg.png
파일:Australia_RAAF_OF-10.svg.png

호주 육군
  • 육군원수 토마스 알버트 블라메이 경 - 2차 대전 때 호주군 총사령관. [23]


4.2.4.3. 뉴질랜드군[편집]

뉴질랜드군 원수 계급장
육군
해군
공군
Field Marshal
Admiral of the Fleet
Marshal of the RNZAF
수장
견장
수장
견장
파일:NZ_Army_OF-10.svg.png
파일:RNZN_OF-10.svg.png
파일:RNZN-SHOULDER-OF10.png
파일:RNZAF_OF-10.svg.png
파일:NZ-Air-OF10.svg.png


4.3. 동구권[편집]



4.3.1. 러시아 제국군[편집]


파일:attachment/Kutuzov1.jpg
▲ 나폴레옹 전쟁 당시 러시아 제국군 육군 원수 미하일 쿠투조프


4.3.2. 소련군[편집]


파일:소련 국장.svg
소련군
원수

[ 펼치기 · 접기 ]
육군

소비에트 연방 대원수
Генералиссимус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이오시프 스탈린P

소비에트 연방 원수
Маршал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소비에트 연방 초기 5원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P · 미하일 투하쳅스키 · 세묜 부됸니 · 알렉산드르 예고로프 · 바실리 블류헤르

2차대전기

세묜 티모셴코 · 그리고리 쿨리크 · 보리스 샤포시니코프 · 게오르기 주코프 ·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 이오시프 스탈린P · 이반 코네프 · 레오니트 고보로프 ·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 로디온 말리놉스키 · 표도르 톨부힌 · 키릴 메레츠코프 · 라브렌티 베리야N

냉전기

바실리 소콜롭스키 · 니콜라이 불가닌P · 이반 바그라먄 · 세르게이 비류조프AD, SRF · 안드레이 그레치코 · 안드레이 예료멘코 · 키릴 모스칼렌코SRF · 바실리 추이코프 · 마트베이 자하로프 · 필리프 골리코프 · 니콜라이 크릴로프SRF · 이반 야쿠봅스키 · 파벨 바티츠키AD · 표트르 코셰보이 · 레오니트 브레즈네프P · 드미트리 우스티노프 · 빅토르 쿨리코프 ·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 세르게이 소콜로프 · 세르게이 아흐로메예프 · 세묜 쿠르콧킨 · 바실리 페트로프 · 드미트리 야조프
해군
소비에트 연방 함대 제독
Адмирал Флота Cоветского Cоюза


냉전기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 이반 이사코프 · 세르게이 고르시코프
비고
P : 정치장교, AD : 방공군, SRF : 전략로켓군, N : NKVD
※ 진급시기 기준 세분, 2차 대전기는 전간기부터 1945년 8월까지 해당.※ 소비에트 연방 대원수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추대되었으나 공식 승인되지 않음.
※ 공군은 최선임이 상원수(4성장군)였고, 연방원수(5성장군)가 없었다.





파일:Rokossowski.jpg
▲ 세계대전 당시 소련 육군의 소비에트 연방 원수 콘스탄틴 로코소프스키.

소련군은 1935년에 군사계급이 부활하면서 원수 계급도 부활했다. 소련군의 원수는 소비에트 연방 원수(Маршал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병과상원수(Главный Маршал рода войск), 병과원수(Маршал рода войск) 세 종류가 있었는데, 타국의 원수에 해당하는 계급은 소비에트 연방 원수이다. 병과상원수, 병과원수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전쟁 동안 크게 확장된 육군의 기갑, 포병, 공병, 통신 병과와 공군에 대해 신설되었으며, 대장과 소비에트 연방 원수 사이의 계급이었다. 이 두 계급은 서방식으로 직접 대입할 수 있는 계급은 아니라 번역에 애로사항이 꽃피는데, 굳이 따지자면 조선인민군 차수에 해당한다.

소련 해군은 1940년에 군사계급이 부활했으나 처음에는 원수 계급은 없었고 최고 계급은 상급대장(Адмирал флота) 이었으며, 1945년 5월 Адмирал флота가 육군의 병과원수와 동급으로 승격된 후 1955년에 육군의 소비에트 연방 원수와 동격인 소비에트 연방 함대 제독(Адмирал Флота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계급이 신설되어 해군원수가 되었다.


4.3.3. 러시아군[편집]


러시아군은 1997년에 전략로켓군 총사령관 이고르 세르게예프 상급대장이 러시아 국방장관에 취임하면서 러시아 연방 원수 계급으로 승진하였으며, 세르게예프 원수는 2001년 국방장관 직에서 물러난 후 2006년 사망했다.

그 후에는 러시아 연방 원수 계급에 임명된 사람은 없으며, 러시아 국방장관도 상급대장(генерал армии) 계급을 받는다.


4.4. 중화권[편집]


중국어에서 군대 계급으로서의 원수는 元帥를, 국가원수로서의 원수는 元首를 쓴다. 한국어에서는 두 명사 모두 원수로 발음되지만 중국어에서는 전자는 "위안솨이(yuánshuài)", 후자는 "위안서우(yuánshǒu)"로 발음이 다르다.[24]


4.4.1. 국민혁명군, 북양정부군, 대만군[편집]


파일:external/zurich.china-consulate.org/W020110809783193032269.jpg
호법전쟁 당시 대원수 예복 차림의 쑨원.

중화민국 북양정부 시절인 1913년,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육해군대원수(陸海軍大元帥) 직책이 신설되었다. 하지만 이미 중국 전체가 군벌들에 의해 사실상 분열된 상태였기에, 실제로 명시된 만큼의 지위는 없었다.

호법군의 대원수였던 쑨원의 경우 호법전쟁이 벌어지면서 북양정부에 대항해 호법군이 창설되자 육해군대원수에 올랐지만, 본인의 기반이 미약했기에 상징적 위치에 머물렀다. 그의 대원수부는 국민당이 기반한 광저우 일대에만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고, 그마저도 불편한 동거를 지속하던 천중밍을 비롯한 광둥 군벌들의 견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쑨원 사후 대원수 직책은 후한민이 대리했고, 1925년 국민정부가 수립되자 대원수부는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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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혁명 당시 안국군 육해군대원수 장쭤린.

한편, 국민당의 북벌에 맞서 군벌들이 결성한 안국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장쭤린은, 휘하 장령들의 추대를 받아 육해군대원수 직에 올랐다. 국민혁명군에 맞먹는 봉천군이라는 강력한 기반이 있었기에, 그의 원수직은 그만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원수에 취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암살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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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혁명군 특급상장 장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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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혁명군 특급상장 계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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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대만군 특급상장 계급장. 미국식으로 별 5개가 그려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민혁명이 벌어지면서 창설된 중국 국민당의 당군인 국민혁명군, 그리고 그 후신인 대만군에는 특급상장(特級上將)이라 하여 원수 또는 대원수에 해당하는 계급이 존재했다.

다만 원수에 해당하는 계급은 명확하지 않다. 특급상장은 국민당의 절대적 지도자이자 군사위원회[25] 위원장이었던 장제스 개인 전용의 계급이었기에 오히려 대원수에 더 가깝고, 실제로 해외에서도 이를 제네랄리시모(대원수)로 번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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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혁명군 일급상장 후쭝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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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혁명군 일급상장 계급장. 이급상장 계급장과 같은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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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대만군 육군 일급상장 계급장. 미국식의 별 디자인으로 바꾸면서 이급상장 계급장과 차별화되었다. 이급상장은 별이 세 개이다.

한편 특급상장의 아래 1급상장(一級上將) 계급이 있긴 했다. 해당 계급은 현대 한국군의 대장(4성 장군)과 동급으로 간주되는 2급상장보다 한단계 상위의 계급이다. 이 계급은 대만 합동참모의장에게만 수여되던 계급이지만 2013년 폐지되었고, 현재는 순직한 선이밍 공군 2급상장에게 추서되는 등 타국의 원수 계급과 유사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장성급 장교단에 준장이 없는 대만군의 계급제도상, 1급상장을 타국의 원수와 완전한 동급으로 볼 수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4.4.2. 중국 인민해방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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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인민해방군 원수 린뱌오.

중국 인민해방군의 경우는 개국공신에 해당하는 주더, 펑더화이, 린뱌오, 류보청, 허룽, 천이, 뤄룽환, 쉬샹첸, 녜룽전, 예젠잉 열 명만이 원수로 임명되어 일명 '홍군 10원수', 또는 '개국원수'나 '10대 상장(대장군)'이라고 불린다.

그 뒤 계급 체계를 일시 폐지했다가 부활시킬 때 '일급상장'이라는 이름으로 원수 계급이 잠시 부활했으나, 곧 다시 폐지되어 인민해방군 최고위 계급은 상장이 되었다. 그러나 원수계급 자체를 폐지시켰다기보다는 신규수여를 영구 중단한 것에 가깝고, 홍군 10원수는 그대로 원수계급으로 인정하고 있다.


4.5. 일본[편집]



4.5.1. 일본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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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육군 원수 하타 슌로쿠. 칼라에 대장 계급장을, 가슴에 원수 흉장을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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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해군 원수 도고 헤이하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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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제국군 원수 흉장

일본 제국군은 1872년, 육군원수(陸軍元帥) 계급을 제정했다. 어원과 용례 역시 중세 중국의 원수에서 따왔기에, 초대 원수로는 메이지 신정부군의 사령관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가 임명되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인 1873년에 메이지 6년 정변으로 사이고가 사퇴한 이후 계급으로써의 원수는 폐지되었다.

이후 일본군의 원수는 계급이 아닌 대장 계급자들에게 부여되는 명예 칭호로 변화한다. 따라서 정식 명칭은 원수대장이며, 계급장은 대장 계급장 그대로이고 단지 가슴에 원수 흉장을 달아 일반 대장과 구분한다. 1943년에 수여받은 스기야마 하지메 육군원수대장, 나가노 오사미 해군원수대장과 1944년에 수여받은 하타 슌로쿠 육군원수대장이 대표적이다.

대원수 계급도 존재했는데, 이는 천황 전용 계급이었다.

패전 후, 현 자위대에는 원수 계급이 없이 각군 막료장(대장)이 최고 계급이다.


5. 기타[편집]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이전에도 원수인 사람들은 많으며, 사후 추서된 원수도 있으며, 원수였지만 현역으로 나서지 않은 이들도 많이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 원수 계급을 부여한 독재자들도 많이 있었다. 자이르의 독재자 모부투 세세 세코,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 파키스탄의 아유브 칸, 이라크사담 후세인, 태국의 피분송크람, 타놈, 수단의 바시르, 아르헨티나의 비올라, 김씨 조선 왕국김정일 등이 있다. 비슷한 취지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군대 경력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정치장교 정도였던 거물급 정치인들이 정략적 차원에서 원수 계급을 받기도 했다.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26]라브렌티 베리야, 니콜라이 불가닌,[27]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드미트리 우스티노프, 북한의 김부자 등도 이 부류에 속한다. 이 전통은 사실은 유럽의 귀족 사회, 좁게는 제정러시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며, 근대 귀족이나 왕족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군 계급을 달고 전선에 나가곤 했다. 니콜라이 2세가 원수 계급을 달고 1차 대전을 지도한 점, 그리고 현재 러시아 연방에서 정치인이었던 세르게이 쇼이구가 국방장관에 임명되자 대장 계급을 달게 된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에서도 1955년 인민해방군에 계급이 도입될 때 마오쩌둥을 대원수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본인은 이를 거절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소련군, 조선인민군을 비롯해 사회주의 국가의 원수들은 정복의 어깨에 다는 견장에 해당 국가의 국장을 같이 새겨넣는데, 그만큼 군사적인 영향력뿐 아니라 국가적 위신을 상징하는 권위 있는 지위로 대접받는다.

오늘날에는 생존한 원수가 있는 나라가 별로 없다. 기껏해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바레인 같이 왕실의전용으로 원수 직위를 주거나 이집트, 시리아, 북한 같은 경우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니면 러시아, 인도같이 그냥 원수가 장수(...)한 경우도 있다.


6. 실존 인물[편집]



6.1. ~ 18세기[편집]








6.2. 19세기[편집]






  • 일본
    • 사이고 다카모리[28]
    • 야마가타 아리토모
    • 오야마 이와오

  • 미국
    • 율리시스 S. 그랜트[29]
    • 윌리엄 테쿰세 셔먼[30]
    • 제임스 A. 가필드 [31]
    • 필립 셰리든[32]


6.3. 20세기[편집]



6.3.1. 제2차 세계 대전 이전[편집]







농민과 노동자의 붉은 군대는 1935년도에 계급을 부활시키면서 투하쳅스키, 예고로프, 블류헤르, 보로실로프, 부됸니를 처음으로 원수직에 올렸다. 그중 투하쳅스키, 예고로프, 블류헤르는 2차 대전 이전에 숙청당한다.


  • 한국
    • 순종 - 당시 황태자로 부황인 고종이 대원수였다.

페브치 차크마크 [33]


6.3.2. 제2차 세계 대전 도중[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은 비록 짧은 시기이기는 했지만, 가장 많은 원수가 배출된 시기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1939년 9월 1일에서 1945년 8월 15일 시기에 임명되었거나, 그 이전에 임명되었지만 현역으로 활동한 인물들만 담도록 하겠다.

독일 육군은 총사령부와 참모본부가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독일군에는 원수들이 수두룩했는데 참모총장은 겨우 상급대장이냐?"라는 오해가 생기곤 하는데, 독일 육군 참모본부는 육군 총사령부의 하위조직으로, 참모총장은 참모본부의 장으로 야전군 작전을 기획하고 지시하는 업무만을 담당한다.


소련군의 원수는 소련원수(Маршал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병과상원수(Главный Маршал рода войск), 병과원수(Маршал рода войск) 세 종류가 있었는데, 타국의 원수에 해당하는 계급은 소련원수 뿐이었다. 병과상원수, 병과원수는 육군의 기갑, 포병, 공병, 통신 병과와 공군에만 존재하는 대장과 소련원수 사이의 계급이었다. 이 두 계급은 서방식으로 직접 대입할 수 있는 계급은 아니라 번역에 애로사항이 꽃피는데, 굳이 따지자면 조선인민군 차수에 해당한다. 이 명단에 나온 원수들은 당연히 소련원수다. 공군의 경우 육군을 보조하는 군종이라는 소련 특유의 군 분류 때문에 소련원수까지 진급한 장성은 한 명도 없으며, 공군 병과상원수가 진급 한계였다.


  • 영국
    • 조지 6세
    • 윌리엄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
    • 존 그리어 딜
    • 존 고트
    • 아치볼드 퍼시벌 웨이벌
    • 앨런 프랜시스 브룩
    • 해럴드 알렉산더
    • 버나드 로 몽고메리
    • 헨리 마이트랜드 윌슨 //육군 원수 이하
    • 시릴 뉴월
    • 찰스 포털 //공군 원수 이하
    • 로저 케예스
    • 더들리 파운드
    • 찰스 모턴 포브스
    • 앤드루 브라운 커닝엄
    • 존 크로닌 토비
    • 제임스 서머빌 //해군 원수 이하

  • 이탈리아
    • 피에트로 바돌리오
    • 에밀리오 데 보노
    • 로돌포 그라치아니
    • 우고 카발레로
    • 에토레 바스티코
    • 조반니 메세 // 육군 원수 이하
    • 이탈로 발보 // 공군 원수 이하

일본에서의 원수는 다른 나라와 달리 대장 위의 별도 계급이 아니라 대장 중 공적이 큰 자에게 수여하는 명예 칭호였다. 따라서 원수가 되어도 군 계급은 여전히 대장으로 원수 육군대장, 원수 해군대장으로 불린다. 물론 일본도 초기에는 계급으로서 원수를 두었다. 다만 훗날 규정을 개정했다.




6.3.3. 제2차 세계 대전 이후[편집]


아놀드는 1944년에 이미 육군 원수였지만, 1949년에 새로이 공군 원수 계급장을 받았다. 미군 장성 중에서 유일한 공군 원수이자 2개 병과의 원수를 지닌 유일한 인물이다.


이것도 최고지도자에 오른 다음 억지로 원수별을 단 것이라서 후에 비웃음을 받았다. 그가 2차 대전 이후 정치장교로 제대할 때의 계급은 소장[34]이었다. 그의 정치장교 직속상관이었던 흐루쇼프는 대장.
소련 장관회의 의장[35]을 지낸 정치가인데 원수계급을 받았지만 1958년 강등당했다.
아르메니아인이다. 아르메니아에서는 아직도 명장으로 추앙하고 있다.
GRU 사령관을 지냈다.
카자크족이다.
1976년~1984년 소련 국방장관을 역임.
소련군 총참모장 재임 중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이 터졌다.
1991년 8월 쿠데타 때 쿠데타 주역 중 하나였다.

  • 프랑스
    • 알퐁스 쥐앵
    • 필리프 르클레르
    • 장 드 라트르 드 타시니
    • 마리 피에르 쾨니흐

  • 중국[36]





6.4. 21세기[편집]


큰 전쟁이 없는 시기이므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국가원수나 그것을 자칭했던 자들[38]이다. 이런 경우는 @.
  • 벨라루스 - 알렉산드르 루카셴코(2001)@
  • 북한 - 김정은(2012)@, 현철해(2016), 리병철, 박정천(2020)
  • 리비아 - 칼리파 하프타르 (2016)#@
  • 시리아 - 바샤르 알 아사드@
  • 아프가니스탄 - 모하메드 파힘(2004)@, 압둘 라시드 도스툼(2019)
  • 영국 - 찰스 거스리(2012), 마이클 보이스, 조크 스터럽(2014) [39]
  • 요르단 - 사드 카이르(2005)
  • 이집트 - 압델 파타 엘 시시(2014)@
  • 인도 - 아르얀 싱(2002)
  • 스리랑카 - 사라스 폰세카(2015)@
  • 캄보디아 - 헹 삼린@, 체아 심, 훈 센(2009)@
  • 미얀마 - 탄 쉐@, 민 아웅 흘라잉@ [40]


7. 가상 인물[편집]


국가원수(元首)이지만, 실제로 군 계급상의 원수(元帥)계급도 가지고 있으며 전시 상황에서는 항상 이에 상응하는 군복을 착용한다.
천계에 있던 시절에 천봉원수였다.
  • 수호전 - 석보 : 방랍의 반란 정권의 남리대원수
  • 스타워즈 - 퍼무스 피에트[41], 갈리우스 랙스 [42]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 헥터 산티아고[43]
  • 스타 트렉 - 모로, 빌, 찰스 밴스, 조렐 퀸, 밥, 카트라이트, 커스틴 클랜시, 알렉산더 마커스(켈빈 타임라인) 스타플릿의 최고 계급으로 보통 스타플릿 총사령관을 맡는다. 다만 주로 정거장이나 지구에서 근무하기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스타 트렉 특성상 대부분 비중이 공기이다.
  • 아마기 브릴리언트 파크 - 카니에 세야
파크 매니저 제복 소매에 미합중국 해군 원수 수장과 같은 수장을 두르고 있다.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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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헌군주제 국가라면 군주가 원수 혹은 대원수 계급을 부여받지만 이것은 군주가 군대의 총사령관을 겸한다는 상징적 의미이며, 실질적 군통수권은 총리가 갖는다. [2] 한국의 정치가들이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이런저런 정치적인 제안을 하거나 조언을 구하는데, 정작 주한미군 사령관은 그만한 권한이 없다. 그는 최종결정권자가 아니라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 아래 4명의 대장 중 하나일 뿐이다.[3] 대한민국 공군 UH-60 헬리콥터 헬기 추락 사고 때 조종사, 전속부관과 승무원 등은 모두 1계급 특진하였지만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조근해 장군은 이러한 원수 계급의 특징으로 인해 계급 특진 없이 대장 계급 그대로 장례를 지냈다.[4] 나치 시대는 물론 독일제국을 거슬러 올라가 프로이센에서도 사용됐던 유서 깊은 계급장이다.[5] 중앙군인 2군 6위 중 6위. 지방군으로 5도에 주현군, 양계에 주진군이 있었다.[6] 건강부 도통사(建康府 都統使)같은[7] 중앙의 문관들이 무관들인 도원수나 부원수를 보좌하기 위해서 조전원수 직책을 받고 내려가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8] 사전적으론 어떤 가문에 손님으로 들어와 게스트로 지내는 사람을 뜻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얹혀 사는 집 주인의 세력을 뒷받침하는 가신들이라고 할 수 있다.[9] 이하 계급의 연령정년은 해당 문서로.[10] 예를 들어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05071308071620002010-001.gif 이렇게. 해당 사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병대 교육훈련단을 방문한 사진이다.당연히 군 계급의 원수와는 격을 달리할 정도로 국가 원수의 지위가 훨씬 높다. 군이라는 것은 국가에서 매우 중요한 조직 중 하나이지만 국가 그 자체는 결코 아니며 국가의 아래에 있는 무수히 많은 조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국가 원수는 그 무수히 많은 조직들을 총망라해서 관할하는 지위이다. 실제로 元首는 元帥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11] 집단군을 굴려서 이득을 보려면 엄청나게 넓은 전선에 수십만의 병력이 퍼져 있어야 한다. 한국은 인구는 많은데 땅이 좁아서 굳이 집단군을 굴릴 이유가 없다.[12] 엄밀히 말하자면 다섯번째다.[13] 국민혁명군에는 준장 계급이 없어서 소장이 별 1개, 중장이 별 2개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군에는 준장 계급이 있는 관계로 국군 중장은 별이 3개인데, 이로 인해 김홍일 장군의 군적을 전부 합하면 별이 5개이다.[14] 미국 독립 전쟁의 최고 지휘관인 조지 워싱턴을 기리고자 후임 대통령인 존 애덤스가 1798년에 중장(lieutenant general) 계급을 제정, 임명한다. 조지 워싱턴 뒤에는 다시 이를 폐지했고, 1855년에 윈필드 스콧(Winfield Scott) 장군에게 명예 중장 계급이 부여된 적이 있다.[15] 셰리든은 중장 계급으로 육군 총사령관 직에 있다가, 1888년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미 의회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6월 1일에 그를 진급시켰으나 이어 8월 5일에 사망하고 만다.[16] 후술하듯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General of the Army가 원수가 되었으므로, 그보다 더 높은 General of the Armies대원수로 번역하자는 것이다.[17] 여기에는 미국인들이 본래 (정규)군대에 대한 부정적 심상을 지녔다는 점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Marshal 자체가 중세에는 군주의 마굿간지기에서 시작하여 군주의 사령관으로서 궁중직이 된 것이 기원이다. 그런데 비록 시간이 꽤 흘렀다고는 하여도 미국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기억으로 말미암아 상비군 자체에 매우 부정적이었고, 어떻게든 예산과 자원, 권위 등 권력을 실어줄만한 일체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들었다. 당장 대통령조차 변변한 전문경호기관을 두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 미국이다.[18] 조지 마셜은 매우 엄숙하고 진지한 인물이라 이런 식으로 희화화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19] 해군도 상기 미합중국 육군과 사정이 비슷했다. 미국 독립전쟁 이후 상비군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은 부정적이었고, 가급적 군 규모를 최소화하고 권위와 특히 예산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범선시대 미 해군의 그 유명하고 독특한 '초중(重)형 호위함(super heavy frigate)'도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전열함은커녕 호위함 확보하기에도 여의치 않았던 미 해군의 몸부림 속 산물이었다. 미국은 해상교역이 확대되는 와중에 바르바리 해적과의 일련의 전쟁을 겪으면서도 전후에는 곧 군축과 폐선을 하기 일쑤였고, 이러한 현상은 미영전쟁에서 영국 해군에 괴멸적인 무역타격을 입은 동시에 자국 해군의 효과적인 통상파괴전 수행을 목도하고서야 개선되기 시작했다. 즉 이때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미국 내전기에 해군을 증강하는 것도 더 벅찼을 테고 흑선내항도 벌어지기 어려웠을 수 있었다. 참고·출처 [20]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고 일본은 나중에 영국의 적국이 되기는 했지만, 빌헬름 2세는 영국 왕실의 친척이기도 했고, 일본도 1920년대까지는 오랜 기간 동맹국이었다.[21] 여왕일 경우 여왕의 남편[22] 이전까지는 여왕의 부군인 필립 마운트배튼도 육해공군 원수 직위에 있었으나, 그가 2021년 4월에 99세를 일기로 사망함으로써 현재는 찰스가 유일하다.[23] 사실은 똥별이다. 코코다 트랙 전투에서 분투한 병사들을 박대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호주군에도 원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서 이렇다 할 공적이 없는 그에게 원수 칭호를 준 듯.[24] 퓌러를 번역할 때 元帥로 사용한다는 건 퓌러란 직위가 생긴지 얼마 안되어 뭐라고 번역해야 할지 모를 때의 일이지 그 이후로는 퓌러도 그냥 원수나 총통으로 번역한다.[25] 국민혁명군의 최고통수기관.[26] 1945년 6월 대원수로 격상되었다.[27] 베리야는 1953년 계급을 박탈당하고 처형당했고 불가닌은 1958년 강등당했다.[28] 후대와 달리 이 사람은 계급으로서 원수이기도 했다. 사실상 일본에서 덴노를 빼고 유일하게 대장 위의 계급에 있어본 격이다. 다만 1873년에 일본에서 계급으로서 원수는 폐지되어 대장이 되었다.[29] 1866년 원수로 임명되었다. 당시는 별을 4개만 받았으나 이는 공화국은 원수가 있을 수 없다는 당시의 미국식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대장이 아닌 원수로 보아야 옳다.[30] 1869년[31] 1872년에 임명되었다. 전역 전 최종 계급은 소장이었다. 다만 이는 당시 그랜트 정부 측에서 뇌물을 받고 된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 그랜트 임기 당시 뇌물과 부패가 많았던 편이었다. 하지만 그랜트는 가필드가 대통령 임기 때 허무하게 죽어버리자 그를 혹평한다.[32] 1888년[33] 터키의 원수는 아타튀르크와 차크마크 둘 뿐이다.[34] 준장이 없는 소련군에서는 별하나[35] 총리를 뜻한다[36] 중국의 경우는 1955년 제정되었다가 1964년 폐지.[37]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집권시절 대통령들이다.[38] 군벌 두목을 회유하느라 원수를 준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여기에 해당한다.[39] 이 세명은 각기 각 군의 참모총장들로 거스리 육군대장은 2012년에, 나머지 둘은 2014년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생일을 맞아 동시에 진급했다.[40] 공식명칭은 미얀마군 육군 상급대장[41] 호스 전투이후 대령에서 무례 4계급 특진 받으며 대장로 승진했으며 엔도 전투 직전에 해군 원수로 승진한다.[42] 팰퍼틴 황제의 대자로 엔도 전투에서 황제가 사망한 이후 제국 고문겸 해군 원수로 승진하며, 황제 대리였던 매스 아메다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그림자 위원회를 신 통치기구로 설립한뒤 그 대표자로 레이 슬로운 대제독을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자신이 뒤에서 모든 대권을 휘두르는 제국의 실질적 1인자로 거듭난다.[43] 스타크래프트 공식소설 암흑기사단에서 등장하는 제독으로 자치령 무적함대(자치령 우주 해군)소속이며 계급만으로는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의 테란 군인들중 가장 높지만. 설정상으로 자치령에는 더욱 지위가 높은 직책들이 군에 존재한다. 당시 황태자였던 발레리안 멩스크의 지시를 받아 미노타우로스 급 전투순양함 회색 호랑이호를 파괴하는 임무를 맡는다.[스포일러] 사후에 원수로 추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