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로어 폰 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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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프란츠 로어 폰 덴타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이다.
2. 생애[편집]
1854년 오스트리아 제국 트란실바니아 대공국의 아라드에서 육군 부사관 프란츠 덴타(Franz Denta)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징집병으로 황실군에 입대했었고 10년을 복무한 끝에 최종 계급 상사로 퇴역한 군인이었다. 1876년, 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프란츠 로어는 황립 및 왕립 울란 3연대 소속 소위로 임관하였다. 그 후 황립 및 왕립 전쟁대학을 다닌 후 중위로 진급, 장군참모부로 배치되었다.
1889년부터 프란츠 로어는 후사르 제1연대에서 복무했으며, 1890년 부터 다시 장군참모부로 배치되었으며, 1890년 5월 1일에 소령으로 진급하였다. 1894년 제13보병사단의 참모장으로 임명, 같은 해 11월 1일 중령으로 진급했다. 황립 및 왕립 전쟁부 (K. u. K. Kriegministerium) 의 6부서에 배치되었던 프란츠 로어는 1897년 12월 30일, 제2군단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고 대령이 되었다. 1903년 마침내 소장에 진급하면서 별을 달게 되었으며, 왕립 헝가리 방위군으로 전속되어 브라티슬라바에 있는 제73보병여단의 지휘관이 되었다.
1907년 4월 30일 중장으로 진급하였다. 1911년 11월 1일에는 마침내 최종계급이나 다름없는 기병대장까지 진급하였다. 그리고 왕립 헝가리 방위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이탈리아 왕국 방면의 국경을 수비하게 되었고, 자신의 이름을 딴 군을 지휘하게 되었다.[3]
1916년 2월 26일 본격적으로 육군의 계급으로 공식도입된 상급대장에 한번에 임명된 6명중 1명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제10군과 제11군을 지휘하다가 콘라트와 교체되어 루마니아 전선으로 이동하였다. 그 후 케렌스키 공세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을 훌륭히 방어해냈고, 1918년 1월 30일 루마니아 왕국이 항복하자 야전원수로 진급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전된후 프란츠 로어는 퇴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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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은 독일식이지만 성은 헝가리식이다. [2] 헝가리어로는 덴터이 로어 페렌츠 남작(Dentai Rohr Ferenc báró)[3] 그러나 이들의 군대를 지휘할 총사령관으로 오이겐 폰 외스터라이히테셴 대공이 부임하였는데, 오이겐 대공이 프란츠 로어 기병대장 직급이 같은데다가 나이까지 어린 상황이라 오헝군은 오이겐 대공을 임시로 상급대장으로 진급시켜서 지휘 체계 혼선을 방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