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토스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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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요제프 페르디난트 대공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 황족이다. 페터 페르디난트 대공은 요제프 페르디난트 대공의 동생이며 같이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복무하였다.
2. 생애[편집]
토스카나 대공국 마지막 대공 페르디난도 4세가 오스트리아로 망명온 후인 1872년에 파르마의 알리체 공녀와의 사이에 차남으로서 태어났다. 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요제프 페르디난트 대공은 항공을 연구하여 군사에 접목하는것을 구상하기도 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고, 빅토어 단클 폰 크라스니크의 제1군 휘하 제14군단을 지휘하였다. 후에 모리츠 폰 아우펜베르크 보병대장이 제4군 사령관에서 해임되자 그의 대체자가 되었다. 1916년 2월 26일 공식적으로 도입된 상급대장으로 진급하였다. 그러나 브루실로프 공세에서 제4군은 압도적으로 패배를 당하였고, 독일 사령부의 압력에 의해 결국 제4군사령관에서 해임되었다.
요제프 페르디난트 대공은 평민과 결혼해서 귀천상혼을 하였다.[3] 안슐루스로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되자, 나치에 반대했던 요제프 페르디난트 대공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다하우의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 3개월동안 수용소에서 고초를 겪은 요제프 페르디난트는 건강이 크게 상하게 되었다. 이를 보다못한 알베르트 괴링은 그를 도와주기로 결심하였다. 알베르트 괴링은 형인 헤르만 괴링에게 요제프 페르디난트 대공을 즉시 석방하도록 요구하였고, 요청은 이루어졌으나 석방 후에도 요제프 페르디난트 대공은 죽을때까지 게슈타포의 감시를 받으면서 살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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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명 모두 후처 소생이다. 황가의 성은 받았으나 황족 자격으로 받는 대공/여대공 작위는 받지 못했다. 클라우디아는 독신으로 사망했고 막시밀리안은 1녀를 두었으나, 막시밀리안의 딸도 독신이기 때문에 현재 요제프 페르디난트의 가계는 단절될 예정이다.[2] 부르봉파르마의 치타의 고모[3] 때문에 토스카나 대공가의 수장 자리는 동생인 페터 페르디난트 대공이 계승하게 되었고, 오늘날 토스카나 대공가는 페터 페르디난트의 가계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