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수(계급) (문단 편집) ===== [[프로이센군]], [[독일 제국군]] ===== [[파일:Generalfeldmarschall_Hermann_von_Eichhorn_1.png|width=50%]] ▲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 육군 원수 [[헤르만 폰 아이히호른]]. [[파일:P1976.857.809-1.jpg|width=50%]] ▲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 해군 원수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파일:DR_Generalfeldmarschall_1918.gif|width=150]] ▲ 1918년의 독일 제국 육군 원수 견장 [[파일:1000002422.jpg.png|width=150]] ▲ 1918년의 독일 제국 해군 원수 견장 프로이센과 독일 제국의 육군 원수(Generalfeldmarschall 야전원수) 계급도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신성 로마 제국의 원수 전통에서 기인했기에, 원래는 고위 귀족 출신으로써 전시에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거나 중요한 지역을 점령한 사령관에게 수여되는 명예로운 호칭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1813-14년 전역에서 프랑스군을 대파하며 프로이센의 명예를 되찾았던 공로로 원수로 진급한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 그리고 독일 통일전쟁의 군사적 주역이었던 [[헬무트 폰 몰트케]]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파일:440px-GrandDukeFriedrichII.jpg|width=50%]] ▲ 독일 제국군 육군의 '원수와 동격의 상급대장'(Generaloberst mit dem Range als Generalfeldmarschall)이었던 [[바덴 대공국]] 7대 대공 [[프리드리히 2세(바덴)|프리드리히 2세]]. [[파일:1000002421.jpg.png|width=75]] ▲ 독일 제국군의 '원수와 동격의 상급대장' 계급장. 일반 상급대장 계급장보다 별 장식이 하나 더 많다. 한편, 육군 [[상급대장]](Generaloberst) 계급도 원래는 원수와 동격의 계급이었다. 당시 프로이센에는 왕족이 원수 계급을 수여받을 수 없다는 전통이 있었고, 상술했듯 원수는 전시에 공로가 큰 사령관에게만 수여되었기 때문인데, 이 원칙을 비껴나가면서 평시에 대장보다는 상위, 원수와 동격인 왕족 전용 계급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Generaloberst라는 단어 자체가 장군을 뜻하는 General에다 '~보다 위'를 의미하는 ober의 최상급인 oberst를 붙인 것이다. 초대 상급대장으로는 빌헬름 왕세자(훗날의 [[빌헬름 1세]])가 임명되었다. 계급장도 대장을 의미하는 세 개의 별과 원수 사령장이 같이 새겨져 있어, 해당 계급이 원수와 동격임을 표시했다. 이후 '원수와 동격의 상급대장'(Generaloberst mit dem Range als Generalfeldmarschall) 계급이 신설되어 독일 구성국들의 왕실 인물들에게 명예원수 계급으로써 수여되기 시작했다. 상급대장 계급은 1911년이 되어서야 위 원수격 상급대장과 분리되어, 원수보다 한 단계 낮은,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대장]]급 계급이 되었다. 원수격 상급대장 계급장이 네 개의 별이 들어가는 형태로 바뀐 것도 이때. 이는 1870년, 독일 통일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세자와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 대공이 왕족 중 최초로 원수로 임명되면서 왕족이 원수에 임명될 수 없다는 원칙이 서서히 깨졌기 때문이다. 이후 독일의 군국주의화가 강해짐에 따라 독일의 왕족들이 명예원수(상술한 상급대장 계급을 의미)계급을 수여받는 일은 매우 일반화되었다. 비단 프로이센뿐만 아니라 바이에른이나 뷔르템베르크 등의 왕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육군 야전원수(Generalfeldmarschall) 계급은 여전히 귀족 이상 계급 출신이면서 군에 큰 공을 세운 소수의 인물들만이 받을 수 있는 영예였다. 이 때문에 의외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 장성들 중 야전원수로 진급한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왕족들을 제외하면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헤르만 폰 아이히호른]], [[파울 폰 힌덴부르크]], [[레무스 폰 보이르슈]], [[카를 폰 뷜로]] 5명만이 원수로 진급했다.[* 다만 전쟁 발발 이전에 진급해서 1차대전 당시 복무한 이들을 합하면 더 많다.] 해군은 더 심해서, 세계대전 도중 대제독(Großadmiral)로 진급한 이는 [[헤닝 폰 홀첸도르프]] 원수 단 한 명 뿐이었다. 훗날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나폴레옹을 모방해 수십명의 원수를 임명하고, 그 중에는 [[에르빈 롬멜]]이나 [[발터 모델]]같이 평범한 집안 출신도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편 독일 제국 해군 원수(Großadmiral, 대제독)은 1901년에야 신설되었다. 군인 중에서는 2대 해군 감찰관 한스 폰 쾨스터 원수가 1905년에 최초로 수여받았다. 이후 3대 해군 감찰관이던 황자 [[알베르트 빌헬름 하인리히]], 해군장관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그리고 해군본부장 [[헤닝 폰 홀첸도르프]]가 차례로 수여받았다. 외국인 중에서는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 그리고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2세]]가 수여받았다. 최후의 제국군 원수는 1955년에 사망한 바이에른 왕세자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