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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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4. 관련 세력 / 인물
5. 관련글



1. 개요[편집]


원말명초 화북강남 일대에서 일어난 원나라를 대상으로 일어난 한족 반란군 중 하나로 백련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봉기하였다. 홍건군이나 농민봉기로도 서술하나, 통상 홍건적, 홍두적, 홍적 등 도적으로 폄하해 부른다. 홍건이란 것은 황건적처럼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두르고 다닌 것에서 유래했다.


2. 중국사[편집]


원나라 말기에 봉기하여 한 군웅 세력은 화북의 원나라 계통 군벌들과 장사성, 방국진, 진우정, 하진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홍건적 계열이다. 다만 홍건적은 황건적과 마찬가지로 단일 종교단체라기보단 느슨한 정치·군사 종교세력으로 홍건적의 난을 일으킨 한산동, 유복통, 한림아[1] 휘하 동계홍건군의 송나라가 가장 세력이 큰 종주였으나 여러 동서남북 계열로써 원말명초의 붕괴 후 혼란기 난세군웅할거하였다.

결국 홍건적의 난으로 원나라가 무너지고, 홍건적 출신의 주원장명나라를 세웠으니 중국 역사에서 몇 안 되는 성공한 반란이라고 할 수 있겠다.[2] 백련교는 일명 '명교(明敎)'라고도 불렸는데, 주원장이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명(明)'으로 하였던 것에서 명교의 영향력이 있었다 여겨진다. 그러나 주원장은 명나라 건국 전후 정통 중화제국황제로 자처하면서 흑역사 홍건적의 성격을 부정하고 홍건적의 토대 백련교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여 백련교를 금지시키고, 자신을 추종하지 않고 명 왕조국가의 잠재적 위협이 되던 독자적인 명교 세력을 대거 숙청했다.[3]명나라에게 숙청된 명교


3. 한국사[편집]


홍건적은 한국의 역사와도 연관성이 있는데 여말선초 원의 토벌에 쫓겨나 2차례에 걸쳐서 고려를 침공하기도 했다.(홍건적의 침공)


4. 관련 세력 / 인물[편집]


여러 분파가 있으나 가장 세력을 떨친 것은 영주에서 일어난 동계홍건군과 기수 유역의 서계홍건군이 있다.

  • 한산동 - 동계홍건군의 시조로 영주에서 두준도, 유복통과 함께 봉기하려다가 봉기 직전에 원에 붙잡혀 죽음.
    • 한림아 - 한산동의 아들로 동계홍건군의 명목적 수장 대송국(혹은 연호를 따와서 "용봉 정권"이라고도 함)의 소명왕(小明王) 그리고 소명제(小明帝)로 옹립됨. 그러나 어려서 유복통의 실권하에 있다가 원나라의 토벌에 쫓겨 부하 주원장의 비호 하에 들어갔다가 후에 의문의 익사 사고로 사망하는데 주원장이 명목상의 주군 한림아를 처분하려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추정됨.
    • 유복통 - 한림아를 소명왕으로 옹립해 송나라를 세우고 세력을 실질적으로 장악하였다가 몽골 차칸테무르의 공격으로 세력이 크게 쇠하고 최종적으로는 장사성이 보낸 장수 여진에 의해 전사함.
    • 모귀 - 송의 중로군으로 북벌을 하여 산동을 경략하는 등 큰 공을 세웠으나 내부 분쟁으로 살해됨.
    • 조균용 - 서주에서 지마이(본명은 이이), 팽대와 함께 거병했으나 원군에게 패해 지마이는 살해당하고 성이 도륙당하자 팽대와 달아나 호주의 홍건군에게 가담했다가 영의왕을 자칭함. 이후 용봉 정권에 가담했으나 산동의 모귀와 갈등을 빚어 그를 살해하고 본인 또한 요양에서 돌아온 모귀의 부장 속계조에게 살해당함.
    • 대도오, 이희희, 백불신 - 송의 서로군으로 서정을 하였다가 패멸함
    • 관선생, 모거경, 모귀양, 사유, 주원수, 파두반 - 송의 동로군으로써 상도까지 함락시켰지만 원의 토벌로 밀린 후 2차례에 걸쳐 20만 대군을 끌고 고려를 침공하고 고려의 수도 개경까지 함락했으나 고려군의 반격으로 절반이 몰살당하고 원나라로 도망쳤다가 궤멸했다.
  • 서수휘(서진일 혹은 서정일) - 기수에서 일어난 서계홍건군으로 팽형옥의 추대를 받아 예문준, 추보승, 항갑(항노아) 등과 함께 세력을 일으켜 천완국을 건국하였으나 점차 예문준에게 실권을 빼앗겨갔고 예문준이 그를 시해하려까지 했으나 역으로 예문준을 살해하고 새로이 실권을 장악한 진우량에게 찬탈 • 시해됨.
    • 팽형옥 - 서계홍군의 창건자로 원주에서 주자왕과 함께 봉기.
    • 명옥진 - 서수휘의 부장이었지만 서수휘 사후에는 진우량의 찬탈 반대를 명분으로 사천에서 분립, 명하를 세운다.
    • 진우량 - 서수휘의 수하인 예문준의 부장이었지만 예문준을 죽이고 이어 서수휘까지 죽여 자립하여 한나라 (진한)를 세웠으나 파양호 대전에서 주원장에게 패사.
  • 곽자흥, 손덕애 등 5인 - 호주성의 홍건군으로 시작했으나 다섯 원수간의 대립으로 힘을 잃어갔고 점차 서주에서 온 팽대와 조균용에게 호주에서의 실권을 잃게 되자, 곽자흥이 그의 부하 장수 주원장이 새로이 남쪽으로 개척한 영토로 이동했으나 손덕애와 갈등을 빚고 분사함. 정치적으로는 동계홍건군 용봉 정권에 충성해 서계의 천완 • 진한 정권과는 대립하였으며 이는 곽천서 - 주원장대까지 이어짐.
    • 곽천서- 곽자흥의 아들로 그의 세력을 계승해 용봉 정권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았지만 항장 진야]의 통수 배신으로 사망.
    • 주원장 - 곽자흥의 사위. 곽천서의 세력을 흡수하고 진우량, 장사성, 원나라를 비롯한 여러 세력들을 물리쳐 명나라를 건국.
    • 팽대 - 서주에서 원군에게 패하자 호주의 홍건군에게 가담했다가 노회왕을 자칭함.
    • 팽조주 - 팽대의 아들로 팽대 사후에 세력이 쇠퇴한 상태에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노회왕을 자칭함.
  • 맹해마 - 남계홍건군.
  • 포왕삼 - 북계홍건군.

5. 관련글[편집]


[1] 황건적의 난에서의 명목상의 수령 장각, 진말한초진승초의제의 위치.[2] 중국 역대 왕조는 민중들의 반란이 계기가 되어 멸망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정작 반란을 주도한 세력이 새로운 왕조를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었다.[3] 현대 중국 역사에서는 민중들의 불만이 종교와 결합하여 왕조를 위협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중국 공산당이 인기가 높아져가던 파룬궁 및 여타 종교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한데는 단순 무신론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중국사의 역사적인 이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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