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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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 세가(世家) ]
1·2권
3권
4·5권
태조 · 혜종 · 정종定宗 · 광종 · 경종
성종 · 목종
현종 · 덕종
6권
7·8·9권
10권
정종靖宗
문종 · 순종
선종 · 헌종
11·12·13·14권
15·16·17·18·19·20권
21권
숙종 · 예종
인종 · 의종 · 명종
신종 · 희종 · 강종
22·23·24권
25·26·27권
28·29·30·31·32권
고종
원종
충렬왕
33·34·35권
36권
37권
충선왕 ·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 충정왕
38·39·40·41·42·43·44권
133·134·135·136·137권 ※ [ 열전 ]
45·46권
공민왕
우왕 · 창왕
공양왕
[ 지(志) ]
47·48·49권 「천문(天文)」 / 50·51·52권 「역(曆)」 / 53·54·55권 「오행(五行)」 / 56·57·58권 「지리(地理)」 / 59·60·61·62·63·64·65·66·67·68·69권 「예(禮)」 / 70·71권 「악(樂)」 / 72권 「여복(輿服)」 / 73·74·75권 「선거(選擧)」 / 76·77권 「백관(百官)」 / 78·79·80권 「식화(食貨)」 / 81·82·83권 「병(兵)」 / 84·85권 「형법(刑法)」
[ 표(表) ]
86·87권 「연표(年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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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후비·종실·공주 ]
88·89권 「후비(后妃)」
90·91권 「종실(宗室)」 · 「공주(公主)」
태조
신혜왕후 유씨 · 장화왕후 오씨 · 신명순성왕태후 유씨 · 신정왕태후 황보씨 · 신성왕태후 김씨 · 정덕왕후 유씨 · 헌목대부인 평씨 · 정목부인 왕씨 · 동양원부인 유씨 · 숙목부인 · 천안부원부인 임씨 · 흥복원부인 홍씨 · 후대량원부인 이씨 · 대명주원부인 왕씨 · 광주원부인 왕씨 · 소광주원부인 왕씨 · 동산원부인 박씨 · 예화부인 왕씨 · 대서원부인 김씨 · 소서원부인 김씨 · 서전원부인 · 신주원부인 강씨 · 월화원부인 · 소황주원부인 · 성무부인 박씨 · 의성부원부인 홍씨 · 월경원부인 박씨 · 몽량원부인 박씨 · 해량원부인
태자 왕태 · 문원대왕 왕정 · 증통국사 · 대종 왕욱 · 안종 왕욱 · 왕위군 · 인애군 · 원장태자 · 조이군 · 수명태자 · 효목태자 왕의 · 효은태자 · 원녕태자 · 효성태자 왕림주 · 효지태자 · 태자 왕직 · 광주원군 · 효제태자 · 효명태자 · 법등군 · 자리군 · 의성부원대군 · 안정숙의공주 · 흥방궁주 · 대목왕후 · 문혜왕후 · 선의왕후 · (정덕왕후 소생 공주) · 순안왕대비 · (흥복원부인 소생 공주) · (성무부인 소생 공주)
혜종
정종
광종
의화왕후 임씨 · 후광주원부인 왕씨 · 청주원부인 김씨 · 궁인 애이주
문공왕후 박씨 · 문성왕후 박씨 · 청주남원부인 김씨
대목왕후 황보씨 · 경화궁부인 임씨
흥화궁군 · 태자 왕제 · 경화궁부인 · 정헌공주 · 명혜부인
경춘원군 · (문성왕후 소생 공주)
효화태자 · 천추전부인 · 보화궁부인 · 문덕왕후
경종
성종
목종
헌숙왕후 김씨 · 헌의왕후 유씨 · 헌애왕태후 황보씨 · 헌정왕후 황보씨 · 대명궁부인 유씨
문덕왕후 유씨 · 문화왕후 김씨 · 연창궁부인 최씨
선정왕후 유씨 · 궁인 김씨
-
원정왕후 · 원화왕후
-
현종
원정왕후 김씨 · 원화왕후 최씨 · 원성태후 김씨 · 원혜태후 김씨 · 원용왕후 유씨 · 원목왕후 서씨 · 원평왕후 김씨 · 원순숙비 김씨 · 원질귀비 왕씨 · 귀비 유씨 · 궁인 한씨 · 궁인 이씨 · 궁인 박씨
평양공 왕기 · 검교태사 왕충 · 효정공주 · 천수전주 · 인평왕후 · 경숙공주 · 효사왕후 · 효경공주 · 경성왕후 · 아지
덕종
정종
경성왕후 김씨 · 경목현비 왕씨 · 효사왕후 김씨 · 이씨 · 유씨
용신왕후 한씨 · 용의왕후 한씨 · 용목왕후 이씨 · 용절덕비 김씨 · 연창궁주 노씨
상회공주 · (유씨 소생 공주)
애상군 왕방 · 낙랑후 왕경 · 개성후 왕개 · 도애공주
문종
인평왕후 김씨 · 인예순덕태후 이씨 · 인경현비 이씨 · 인절현비 이씨 · 인목덕비 김씨
대각국사 왕후 · 상안공 왕수 · 도생승통 왕탱 · 금관후 왕비 · 변한후 왕음 · 낙랑후 왕침 · 총혜수좌 왕경 · 조선공 왕도 · 부여후 왕수 · 진한후 왕유 · 적경궁주 · 보령궁주
순종
선종
정의왕후 왕씨 · 선희왕후 김씨 · 장경궁주 이씨
정신현비 이씨 · 사숙태후 이씨 · 원신궁주 이씨
-
한산후 왕윤 · 경화왕후 · (사숙태후 소생 공주) · 수안택주
숙종
예종
명의태후 유씨
경화왕후 이씨 · 문경태후 이씨 · 문정왕후 왕씨 · 숙비 최씨
상당후 왕필 · 원명국사 징엄 · 대방공 왕보 · 대원공 왕효 · 제안후 왕서 · 통의후 왕교 · 대령궁주 · 흥수궁주 · 안수궁주 · 복령궁주
승덕공주 · 흥경공주
인종
의종
명종
폐비 이씨 · 폐비 이씨 · 공예태후 임씨 · 선평왕후 김씨
장경왕후 김씨 · 장선왕후 최씨
광정태후 김씨
대령후 왕경 · 원경국사 충희 · 승경궁주 · 덕녕궁주 · 창락궁주 · 영화궁주
효령태자 왕기 · 경덕궁주 · 안정궁주 · 화순궁주
왕선사 · 왕홍기 · 왕홍추 · 왕홍규 · 왕홍균 · 왕홍각 · 왕홍이 · 연희궁주 · 수안궁주
신종
희종
선정태후 김씨
성평왕후 임씨
양양공 왕서 · 효회공주 · 경녕궁주
창원공 왕지 · 시령후 왕위 · 경원공 왕조 · 대선사 경지 · 충명국사 각응 · 안혜태후 · 영창공주 · 덕창궁주 · 가순궁주 · 정희궁주
강종
고종
원종
사평왕후 이씨 · 원덕태후 유씨
안혜태후 유씨
순경태후 김씨 · 경창궁주 유씨
수령궁주
안경공 왕창 · 수흥궁주
시양후 왕이 · 순안공 왕종 · 경안궁주 · 함녕궁주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제국대장공주 · 정신부주 · 숙창원비 김씨
계국대장공주 · 의비 · 정비 · 순화원비 홍씨 · 조비 · 순비 허씨
복국장공주 · 조국장공주 · 경화공주 · 명덕태후 홍씨 · 수비 권씨
강양공 왕자 · 소군 왕서 · 정녕원비 · 명순원비
세자 왕감 · 덕흥군
용산원자
충혜왕
공민왕
공양왕
덕녕공주 · 희비 윤씨 · 화비 홍씨 · 은천옹주 임씨
휘의노국대장공주 · 혜비 이씨 · 익비 한씨 · 정비 안씨 · 신비 염씨
순비 노씨
석기 · 장녕공주
-
세자 왕석 · 숙녕궁주 · 정신궁주 · 경화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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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 - 제신(諸臣) ]
92권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 유금필 · 최응 · 최언위 (최광윤 최행귀 최광원) · 왕유 왕자지 · 박술희 · 최지몽 · 왕식렴 · 박수경 · 왕순식 이총언 견금 윤선 흥달 선필 태평 · 공직 · 박영규
93권
서필 · 최승로 최제안 · 쌍기 · 최량 · 한언공 · 류방헌 · 김심언 · 최항 · 채충순
94권
서희 서눌 서공 · 유진 · 강감찬 · 최사위 · 황보유의 장연우 · 양규 (양대춘) · 지채문 지녹연 · 하공진 · 김은부 · 주저 · 강민첨 · 곽원 · 왕가도 · 김맹 · 류소 · 윤징고 · 위수여 · 전공지 · 이주헌 · 이주좌 · 안소광 · 조지린
95권
최충 최유선 최사제 최약 최윤의 · 이자연 이자량 이자인 이혁유 이자현 이자덕 이예 이공수 이지저 이오 이광진 · 박인량 박경인 박경백 박경산 · 황주량 · 류신 · 왕총지 · 위계정 · 소태보 왕국모 고의화 · 문정 · 정문 · 김원정 · 손관 · 최사량 · 김선석 · 임의 임원후 임극충 임극정 임부 임유 임익 임항 · 김한충
96권
최사추 · 김인존 · 윤관 윤언순 (윤언식 윤언민 윤언이) 윤인첨 윤세유 윤상계 · 오연총
97권
김부일 김부의 · 고령신 · 김황원 이궤 · 곽상 곽여 · 유재 호종단 신안지 · 김경용 (김인규) · 최홍사 · 한안인 · 이영 · 한충 · 임개 유녹숭 · 김준 · 류인저 · 강증 · 허경 · 문관 · 정항 정서 · 김극검 · 김약온
98권
김부식 김돈중 김군수 · 정습명 · 고조기 · 김정순 · 정극영 · 박정유 · 최사전 · 김향 · 최자성 · 김진 · 임완 · 최기우 · 김수자 · 최유 · 이숙 이위 · 허재
99권
양원준 · 최유청 최당 최린 최선 최종준 최온 최문본 최평 최옹 · 이공승 · 신숙 · 한문준 · 문극겸 · 류공권 류택 · 조영인 · 왕세경 · 이순우 · 임민비 · 최척경 · 함유일 · 염신약 · 이지명 · 유응규 유자량 · 현덕수 · 최균 최보순 최윤개 · 김거공 · 한유한
100권
두경승 · 우학유 · 노영순 · 조위총 · 방서란 · 박제검 · 기탁성 · 홍중방 · 경대승 · 진준 · 최세보 · 박순필 · 이영진 · 백임지 · 이준창 · 최충렬 · 정세유 정숙첨 정안 · 정국검 이유성 · 정방우 · 정언진
101권
민영모 민식 · 송저 · 김광중 김체 · 안유발 · 최여해 · 최우청 · 왕규 · 차약송 기홍수 · 정극온 · 류광식 · 권경중 · 김태서 김약선 김미 · 문한경 권세후 백돈명 · 노인수 · 김의원
102권
금의 · 이규보 이익배 · 유승단 · 김인경 김승무 · 이공로 · 이인로 오세재 조통 임춘 · 조문발 · 이순목 이수 · 김창 · 송국첨 · 최자 하천단 · 채송년 채정蔡楨 · 손변 · 권수평 · 이순효 장순량 · 송언기 · 김수강 · 김지대 · 이장용
103권
104권
조충 조변 · 김취려 김문연 김변 · 이적 · 채정蔡靖 · 박서 송문주 · 김경손 김혼 · 최춘명 · 김희제 · 이자성 · 김윤후 · 김응덕
김방경 김구용 김제안 김흔 김순 김영돈 김영후 김사형 박구 · 한희유 · 나유 나익희 · 원충갑 · 김주정 김심 김종연 김석견
105권
류경 류승 류돈 류만수 · 허공 허종 허관 허금 허부 허유 · 홍자번 홍승서 홍영통 · 정가신 · 안향 안우기 안목 · 설공검 · 유천우 · 조인규 조서 조연 조덕유 조린 조연수 조위
106권
백문절 백이정 · 박항 · 곽예 · 주열 · 이주 이행검 · 장일 · 김구 · 이승휴 이연종 · 김훤 김개물 · 정해 정오 정포 정공권 · 조간 · 심양 · 추적 이인정 채우 · 김유성 곽린 · 윤해 윤택 · 이영 · 엄수안 · 안전 · 최수황 · 박유 · 홍규 홍융
107권
108권
한강 한악 한수 한방신 · 원부 원충 원호 원선지 원송수 · 김련 · 김부윤 · 정인경 · 권단 권부 권준 권렴 권용 권적 (권고) 권화 권근 · 민지 민상정
민종유 민적 민사평 민변 민제 · 김지숙 김인연 · 정선 · 이혼 · 최성지 최문도 · 채홍철 · 김이 · 이인기 · 홍빈 · 조익청 · 배정지 · 손수경
109권
박전지 · 오형 · 이진 · 윤신걸 박효수 · 허유전 · 박충좌 · 윤선좌 · 이조년 이승경 · 이곡 · 우탁 · 안축 안종원 안보 · 최해 · 장항 · 이성 · 조렴 왕백 · 이백겸 · 신군평
110권
111권
최유엄 · 김태현 김광재 · 김륜 김경직 김희조 김승구 · 왕후 왕중귀 · 한종유 · 이제현 이달존 이보림 · 이능간
염제신 · 이암 이강 · 홍언박 홍사우 류연 · 류탁 · 경복흥 · 김속명 · 이자송 · 조돈 조인옥 · 최재 · 송천봉 · 홍중선 · 김도 · 임박 · 문익점
112권
이공수 · 류숙 류실 · 이인복 · 백문보 · 전녹생 · 이존오 · 이달충 · 설손 설장수 · 한복 · 이무방 · 정습인 · 하윤원 · 박상충 · 박의중 · 조운흘
113권
안우 김득배 이방실 · 정세운 · 안우경 · 최영 · 정지 · 윤가관 · 김장수
114권
윤환 · 이성서 · 이수산 이념 · 이승로 · 황상 · 지용수 · 나세 · 김선치 · 전이도 · 구영검 · 오인택 · 김보 · 변광수 · 정지상 · 임군보 · 나흥유 · 목인길 · 김유 · 양백연 · 지용기 · 하을지 · 우인열 · 문달한 · 김주 · 최운해
115권
116권
117권
이색 · 우현보 · 이숭인
심덕부 · 이림 · 왕강 · 박위 · 이두란 · 남은
정몽주 · 김진양 · 강회백 · 이첨 · 성석린
118권
119권
120권
조준
정도전
윤소종 윤회종 · 오사충 · 김자수
121권
「양리(良吏)」
「충의(忠義)」
유석 · 왕해 · 김지석 · 최석 · 정운경
홍관 · 고보준 · 정의 · 문대 · 조효립 · 정문감
「효우(孝友)」
「열녀(烈女)」
문충 · 석주 · 최루백 · 위초 · 서릉 · 김천 · 황수 · 정유 · 조희참 · 정씨 · 손유 · 권거의 노준공 · 신씨 · 윤구생 · 반전 · 군만
유씨 · (현문혁의 처) · (홍의의 처) · (안천검의 처) · (강화부 세 여인) · 최씨 · 배씨 · 문씨 · 김씨 · 안씨 · 이씨 · (권금의 처)
122권
「방기(方技)」
「환자(宦者)」
「혹리(酷吏)」
김위제 · 이녕 (이광필) · 이상로 · 오윤부 · 설경성
정함 · 백선연 · 최세연 · 이숙 · 임백안독고사 · 방신우 · 이대순 · 우산절 · 고용보 · 김현 · 안도치 · 신소봉 · 이득분 · 김사행
송길유 · 심우경
123권 「폐행(嬖幸)」
유행간 · 영의 · 김존중 · 정세신 · 백승현 · 강윤소 · 염승익 · 이분희 이습 · 권의 채모 이덕손 · 임정기 (민훤) · 주인원 · 이지저 고종수 김유 · 인후 인승단 · 장순룡 차신 노영 · 조윤통
124권 「폐행(嬖幸)」
윤수 윤길보 (송화) · 이정 김문비 이병 · 원경 · 박의 · 박경량 · 전영보 · 강윤충 · 배전 · 민환 · 윤석 · 손기 · 정방길 임중연 강융 · 신청 박청 · 왕삼석 양재 조신경 최노성 윤현 안규 · 최안도 이의풍 김지경 이인길 · 노영서 박양연 송명리 · 김흥경 · 반복해 · 신원필
125권 「간신(姦臣)」
문공인 · 박승중 · 최홍재 · 최유칭 · 박훤 · 송분 · 왕유소 · 송방영 · 오잠 석주 · 김원상 · 류청신 · 권한공 · 채하중 · 신예 전숙몽 · 이춘부 · 김원명 · 김횡 · 지윤
126권 「간신(姦臣)」
이인임 · 임견미 · 염흥방 · 조민수 · 변안열 · 왕안덕
127권 「반역(叛逆)」
128권 「반역(叛逆)」
129권 「반역(叛逆)」
환선길 · 이흔암 · 왕규 · 김치양 · 강조 · 이자의 · 이자겸 · 척준경 · 묘청 (정지상)
정중부 이광정 송유인 · 이의방 · 이의민 · 정방의 · 조원정 석린
최충헌 최이 최항 최의
130권 「반역(叛逆)」
131권 「반역(叛逆)」
한순 다지 · 홍복원 (홍차구 홍군상 홍선 장위 류종) · 이현 · 조숙창 · 조휘 · 김준 · 임연 · 조이 김유 이추 · 한홍보 · 우정 · 최탄 · 배중손
조적 · 조일신 · 김용 · 기철 · 노책 · 권겸 · 최유 · 홍륜 · 김문현 · 김의
132권 「반역(叛逆)」
신돈
133·134·135·136·137권
신우(우왕) (신창(창왕))


1. 개요
2. 생애
2.1. 임관 배경
2.2. 숙종 시기
2.3. 여진 정벌 준비
2.4. 서경 용언궁 창건 논란
2.6. 전후
3. 평가
4. 가족관계


吳延寵
(1055 ~ 1116)

1. 개요[편집]


고려의 인물. 해주 출신이다. 시호는 문양(文襄).


2. 생애[편집]



2.1. 임관 배경[편집]


오연총은 오나라 오씨 왕족의 후손으로 공부에 힘써서 글 쓰는 능력을 닦았고 과거에 급제한다.


2.2. 숙종 시기[편집]


숙종이 즉위한 뒤로부터 외국에 사절로 많이 파견된다. 숙종 원년(1096) 요나라에 가서 천안절(天安節, 황제의 생일)을 축하한다. 2년 뒤 기거랑 병부낭중에 오르고, 그로부터 2년 뒤인 숙종 5년(1100) 상서 왕하북송에 가서 황제 휘종의 즉위를 축하한다.

왕하와 오연총 등은 숙종으로부터 송나라에서 『태평어람』을 구해오라는 명을 받았는데 중간에서 송나라 사람들이 감추고 가져가지 못하게 한다. 오연총은 휘종에게 직접 표문을 올려서 간청했고 태평어람 1천여권과 함께 이듬해에 돌아오게 된다. 숙종은 부왕 문종때부터 구하려던 책을 훌륭한 사신들 덕분에 이제 얻게 되었음에 기뻐하며 정사 왕하, 부사 오연총과 기타 요좌들에게 후한 상을 내리는데, 오연총은 이 때 중서사인 관직을 얻는다.

고려에서는 벼슬에 오른 사람은 일정 기간 지방의 수령으로 나가야 하는 관례가 있다. 당시 숙종은 전주, 청주, 광주 세 곳의 수령과 송나라 사신을 대접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는데, 오연총을 전주목사로 보낸다. 고려사 오연총 열전에 따르면 이는 오연총이 재상이 될 능력이 있음을 알아보고 장차 크게 쓰려고 백성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시험하기 위험이었다. 오연총은 숙종의 기대에 부응해 선정을 베풀었고 인사 고과에서 최고점을 받으니, 숙종 9년(1104) 3월 개경으로 돌아가서 추밀원좌승선 형부시랑 지어사대사 관직을 받고 6월에 다시 상서좌승 한림시강학사로 관직이 옮겨진다.

숙종 말 오연총은 추밀원부사 한림학사(1104), 동지추밀원사 비서감 한림학사승지(1105)를 역임한 한편, 숙종 9년(1104)의 남경 행차에 호종하기도 한다. 예종이 즉위한 뒤 지추밀원사 어사대부 한림학사승지에 임명된다.


2.3. 여진 정벌 준비[편집]


예종은 고려 동북면 여진족들의 동향에 주목한다. 숙종 9년(1104) 국경에서 여진족과의 충돌이 있었다. 숙종은 여진 정벌을 위해 별무반을 편성했다. 부왕의 유지를 잇기 위해 예종은 중신들을 국경에 보낸다. 오연총은 예종 즉위년(1105) 11월 동북면병마사에 임명되고 12월에 동계행영병마사로 관직이 바뀌며, 지병마사 김기감과 병마부사 임신행이 오연총을 보좌한다.

오연총은 예종 원년(1106) 1월 동계행영병마사로서, 별무반 신기군의 징병 기준을 더 높일 것을 제안한다. 오연총의 제안으로 70세 이상 부모를 둔 외동아들은 면제됐고, 한 가구에서 서너명이 종군하는 경우 한 명은 면제됐으며, 재추의 자제는 자원한 것이 아니면 무조건 면제 대상이 됐다. 오연총의 관직은 검교사공 형부상서에 이른다.

예종 원년(1106) 11월, 오연총은 윤관과 함께 개경 숭인문 밖에서 별무반 신기군과 신보군을 사열한다. 둘은 12월에 왕과 평장사 최홍사 등의 앞에서 강론을 하고 이듬해 의대를 하사받는다.

여진 정벌을 망설이는 예종은 평장사 최홍사가 태묘에서 점을 쳐 길한 괘를 얻은 끝에 결심을 굳힌다. 여진 정벌에서 누가 원수가 될 것인가 의논이 오간 끝에 예종 2년(1107) 11월 원수에 윤관, 부원수에 오연총이 결정된다. 그런데 오연총은 윤관이 결심을 굳힌 것과는 반대로 여진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것인지 회의적이었다. 윤관은 오연총에게 의심하지 말라고 충고했고, 오연총은 잠자코 윤관을 따른다. 12월 서경 위봉루에서 예종은 삼군의 장수들과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두 원수에게 부월을 하사하고 동계로 보낸다.


2.4. 서경 용언궁 창건 논란[편집]


한편 여진 정벌 준비에 나선 같은 시기에 서경에 궁궐을 세우는 것에 관해 논란이 있었다. 이 논란은 한 술사가 서경 용언(龍堰)에 궁궐을 세우고 자주 순행할 것을 예종에게 권한 일에서 시작한다. 술사의 참언이 그럴듯하다고 여긴 예종은 양부(중서문하성, 상서성)와 장령전(長齡殿) 수교원(讎校員)의 유신들에게 논의하게 하는데, 이들 모두 술사의 말이 옳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추밀원사 오연총이 홀로 반대 의사를 내비친다.

최근에 남경의 공사가 막 끝났습니다. 백성은 피로하고 재물은 떨어졌습니다. 피로한 백성들을 동원해 새 궁궐을 세우는 것은 불가합니다. 그래도 순행하기를 바라신다면 옛 궁궐만한 것이 없습니다.

近者, 南京之役甫畢. 民勞財匱. 不可役疲民起新宮. 如欲巡御, 不如舊宮.

그러나 예종은 오연총에게 답하지 않는다. 예종 원년(1106) 9월 사천소감, 태사령 등을 서경에 보내 용언의 터를 살피게 한다.

이듬해 예종 2년(1107) 9월 평장사 최홍사가 서경 용언에 궁을 세우고 아예 그곳에서 조회를 받을 것을 제안한다. 오연총은 다시 세 가지 근거를 들며 최홍사의 의견에 반대한다.

  1. 전례(문종의 실책)
문종은 현명한 왕이었지만 한 차례 술수에 빠져 서경에 좌우궁궐을 지은 일이 있었다. 문종은 새 궁궐을 축조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낭비한 것을 후회했고, 순행해봐도 효엄은 없을 것이라고 여겨 끝내 순행조차 하지 않았다.
  1. 남경과의 비교
비슷한 이유로 남경을 새로 세운 지 7~8년이 다 됐는데도 길한 일이 일어난 바 없다.
  1. 기존 궁궐의 존재
새로 궁궐을 지으려는 서경 용언 근처에는 이미 옛 궁궐이 있다. 그런데도 굳이 새 궁궐을 짓기 위해 민가를 헐면 백성들만 소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예종은 최홍사의 주장을 따랐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애석하게 여긴다.


2.5. 고려의 여진 정벌[편집]


여진 정벌 중인 예종 3년(1108)에는 골짜기에서 적습을 당해 포위되고 화살까지 맞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이른 일이 있다. 척준경이라는 녹사가 구원하러 달려오고 원군이 여진군의 포위를 푼 끝에 윤관과 오연총 등이 모두 기적적으로 살아나올 수 있었다. 동북 9성을 쌓고 4월에 협모동덕치원공신(協謀同德致遠功臣)으로 녹훈되며 상서좌복야 참지정사에 임명되고 웅주(雄州)에서 내구마 1필을 하사받는다.

둘은 9일 개선해 개경의 동쪽 교외에 이르러 대방후 왕보, 제안후 왕서의 마중을 받고, 연회에 참석한다. 이어 경령전에서 윤관과 함께 받았던 부월을 다시 바친 뒤 문덕전으로 자리를 옮겨 밤늦게까지 변방의 일을 의논한다.

얼마 뒤 23일에 여진족이 다시 웅주를 습격하는데, 이번에는 오연총이 홀로 부월을 받고 정예병 1만을 거느리고 구원에 나선다. 오연총은 문관, 김준, 왕자지와 네 길로 나누어 웅주로 향한다. 여진족은 오음지령(烏音志嶺)과 사오령(沙烏嶺) 꼭대기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데 오연총 등이 산을 올라가서 기습한다. 북쪽으로 도망가서 다시 진을 치고 싸우려는 여진족들을 마저 크게 이기니 적들은 목책을 불사르고 퇴각한다. 오연총은 웅주성에 들어가서 원군을 기다리지 않고 함부로 출전한 장수들을 차등 있게 벌하고 8월에 개경으로 개선한다. 오연총에게 양구진국공신 수사도 연영전대학사가 더해진다.

예종 4년(1109) 4월, 오연총은 동계병마부원수로 부임하기 위해 다시 개경을 떠나며 왕에게 하직인사를 올린다. 웅주성에서 패퇴했던 여진족들은 다시 부족들을 규합해 길주성을 포위했고, 병마부사 이관진과 병마판관 허재, 김의원 등이 성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길주를 구원하기 위해 또 부월까지 직접 받고 나선 오연총은, 이번에는 패배의 쓴맛을 본다.

공험진까지 진군한 오연총은 도중에서 여진군과 마주쳐 전투를 벌였으나 크게 패했고 병사들은 모두 각 성으로 흩어진다. 여러 성들이 여진군에 함락되고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한다. 오연총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윤관까지 구원에 나선다. 오연총은 스스로를 탄핵하는 장계를 올린 뒤 윤관과 합류해, 여전히 성을 지키고 있는 길주성을 마지막으로 구원하러 나선다. 길주로 향하던 도중에 함주사록 유원서가 말을 타고 달려와서 여진족들이 강화를 청하고 있다고 전한다. 오연총과 윤관은 성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조정에 알렸고, 논의가 오간 끝에 9성을 여진에 반환하는 조건으로 전쟁이 끝난다.


2.6. 전후[편집]


여러 대신들이 전쟁에서 진 오연총과 윤관을 탄핵했다. 아직 두 원수가 돌아오기도 전인 6월 평장사 최홍사와 김경용, 참지정사 임의와 추밀원사 이위가 오연총과 윤관에게 죄를 물을 것을 청하니 예종은 사람을 보내 두 사람의 부절과 부월을 미리 걷어버린다. 7월에 돌아온 오연총과 윤관은 부절과 부월이 없으니 복명할 수 없어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11월에는 간의대부 이재와 김연, 어사대부 최계방 등 간관들이 패전의 죄를 물으라고 간언하는데, 예종이 듣지 않자 각문 밖에서 강하게 간쟁한다. 이듬해 예종 5년(1110) 5월에는 최홍사와 김경용이 대간들과 함께 휴직해가며 처벌을 촉구한다. 그러나 대신들이 아무리 처벌을 요구해도 예종은 공신호를 박탈하는 것 이상의 죄는 묻지 않았다.

이 해 12월 수사도 중서시랑평장사 판삼사사에 임명되면서 오연총은 복직한다. 오연총은 표문을 올리며 사양했으나 예종은 오연총이 '처음에는 의심하고 주저하며 망설였지만 나중에는 능히 적을 토벌하고 평정했으니, 목을 벤 것과 포로 잡은 것이 많고, 영토를 개척해 성과 해자를 열었다'( 初若遲疑而猶豫, 後能征討以蕩平, 斬馘旣多, 俘虜亦夥, 拓開封境, 築設城池.)고 하여 지위를 복구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복직할 것을 요구한다.

예종 7년(1112) 3월 시랑 임언과 함께 진사시를 감독해 정지원 등 28명을 선발한다. 오연총은 이후 수사도 판상서병부사(1112),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1112), 수태위 판예·병부사(1113), 판이부사(1114) 등을 역임한다. 예종 9년(1114) 12월에는 다시 추충공신(推忠功臣)호를 받는다. 예종 10년(1115) 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청해도 예종은 끝까지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는다. 예종 11년(1116) 3월 수태위에 임명되는데, 이 해 5월 10일에 62세의 나이로 죽는다.


3. 평가[편집]


몸을 단정히 하고 행동은 삼가는 것이 분명히 참됐고, 충성과 검소를 자부해 명예를 구하지 않았다. 관직에 있으면서는 당시의 폐단을 없애는 데 힘썼고, 일찍이 사사로운 일로 공적인 일에 해가 되도록 하지 않았던 고로 왕이 그를 중하게 여겼다.(飭躬謹行恂恂然, 以忠儉自許, 不干譽. 當官持論務祛時弊, 未嘗以私害公故, 王重之.)



4. 가족관계[편집]



고려 예종 때 여진을 함께 정벌한 도원수 윤관과 부원수 오연총은 아들과 딸의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이기도 했다.

“사돈이라는 말은 고려시기 두 장군이 녀진족의 침략을 격퇴하는 과정에 맺어진 우정으로부터 생겨났다.”

북한 주간신문 ‘통일신보’는 최근호(4월 8일)에서 중국에서 친가(親家)라고 하는 사돈은 예로부터 우리 나라의 고유한 말이라고 하면서 사돈의 유래에 대해 이같이 정리했다.

신문이 전하는 사돈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고려시기 장군인 원수 윤관과 부원수 오연총이 서로 자기의 자녀를 결혼시켰다.

이 두 사람은 시내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서로가 술 생각이 나서 윤관은 술병을 들고 오연총의 집으로 찾아 나섰고 마침 오연총 역시 술병을 들고 윤관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밤사이에 시내물이 불어 서로 건너갈 수 없었다. 이때 윤관이 묘안을 내 이렇게 제안했다.

“내가 대감께 술을 권하면 대감은 갖고 계신 술을 내 술로 생각하며 한잔 하고 대감이 내게 술을 권하면 내 술을 대감의 술로 생각하며 한잔 하도록 합시다.”

이렇게 해서 나무등걸에 앉아 한사람이 술잔을 권하면 다른 사람이 머리를 조아리고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신문은 그리하여 “나무등걸에 앉아 머리를 조아리고 술을 마시는 관계”라는 의미로 ‘덩걸 사(査)’, ‘조아릴 돈(頓)’을 써서 ‘사돈’(査頓)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신문은 등걸은 큰 나무를 벤 밑둥이인데 ‘덩걸 사’는 등걸이 발음상 변화된 것으로서 ‘사’는 나무등걸이라는 뜻이고 ‘돈’은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끝으로 신문은 속담에 ‘사돈팔촌’이라고 하는 것은 친척도 아니면서 연관관계가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연줄을 중시하는 우리 민족의 풍속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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