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폰 슈타인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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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국 육군 원수
카를 폰 슈타인메츠
Karl von Steinmetz


파일:440px-Karl_Friedrich_von_Steinmetz.jpg

이름
Karl Friedrich von Steinmetz
카를 프리듸리히 폰 슈타인메츠[1]
출생
1796년 12월 27일
신성 로마 제국
사망
1877년 8월 2일 (향년 80세)
독일 제국
복무
프로이센군 (1813 ~ 1871년)
독일 제국군 (1871년)
최종 계급
육군 원수(Generalfeldmarschall)
주요 참전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주요 서훈
붉은 독수리 훈장 대십자상
푸르 르 메리트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카를 폰 슈타인메츠는 프로이센군과 독일제국군의 장성으로 최종계급은 원수이다.

2. 생애[편집]


1796년 12월 27일, 슈타인메츠는 신성 로마 제국에서 테어났다. 슈타인메츠는 베를린에 있는 생도학교에 갔고 1813년 임관되어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에 참전하였다. 많은 전투들에 참여하며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슈타인메츠는 1818년 중위가 되었다. 1848년에서야 그는 본인의 군사적인 기량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에서 슈타인메츠는 2개의 대대를 지휘하였고 푸르 르 메리트를 수훈받았다. 비록 전쟁에서는 졌지만, 슈타인메츠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였다. 이후 진급을 거듭하였고, 1864년에는 5군단의 군단장이 되었다.

슈타인메츠의 5군단은 프리드리히 왕세자의 2군에 배치되었다. 나호드 전투에서 슈타인메츠는 자신의 군단을 잘 이끌어 수적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가져왔다. 게다가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의 승리로 오스트리아군을 쾨니히그레츠까지 몰아넣었다. 그렇지만, 결정적이었던 쾨니히그레츠 전투에는 참여하지 못하였는데 이유는 오스트리아군을 정리하다 본진에서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적군을 약 13,000명 정도 사살하였고, 본인의 군단의 사상자는 2,889명이었다. [2] 이 공적으로 빌헬름 1세에게 검은 독수리 훈장을 받았다.[3]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슈타인메츠는 74세의 나이에 전성기만한 역량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7군단과 8군단을 지휘하였는데, 여러 실수를 범하며 2군을 지휘하는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와의 마찰을 빚었다. 결국 슈타인메츠의 지휘권은 한개 군단이 되었다. 또한번 슈타인메츠는 실책을 범하며 결국 원수의 계급으로 1871년 사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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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슈타인메츠'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보오전쟁에서 교환비는 약 1:4.5인데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평균 1:4였다.[3] 빌헬름 1세가 준 첫번째 검은 독수리 훈장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