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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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슬람 공화국[1]
[2] | Islamic Republic of 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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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 ، [3]
독립, 자유, 이슬람 공화국
상징
국가
이란 이슬람 공화국 국가
( | Sorud-e Melli)
역사
이란 숭고국 건국 1781년
이란 제국 건국 1925년
이란 혁명 1979년
이란 이슬람 공화국 수립 1980년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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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최대도시
테헤란
면적
1,648,195km²
접경국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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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89,647,869명(2024년) | 세계 17위
출산율
CIA 자료 1.93명[1] 언론사 자료 1.71명(2022년)[2][3]
민족구성
페르시아인 51%
아제르바이잔인 24%
길란-마잔다란족 8%
쿠르드인 7%
아랍인 3%
루르인 2%
발루치인 2%
튀르크멘인 2%
기타 1%
인구 밀도
48명/km²(2019년) / 세계 162위
HDI
0.857[4]
공용어
페르시아어
공용 문자
페르시아 문자
국교
시아파 이슬람(12이맘파)[5]
종교
이슬람교 99.38%
그리스도교 0.16%
조로아스터교 0.03%
유대교 0.01%
기타 0.42% (2011)
군대
이란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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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
공화제, 이슬람 국가 제정일치, 신정제, 대통령제
민주주의 지수
1.96점, 권위주의 (2023년)
(167개국 중 153위)
라흐바르
(국가원수)

알리 하메네이
대통령
(정부수반)

에브라힘 라이시
제1부통령
모하마드 모크베르
국회의장
모함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대법원장
골람호세인 모흐세니에제이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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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3,679억(2023년 4월) / 세계 43위
1인당 GDP
$4,251(2023년 4월)/세계 119위
GDP (PPP)
$1조 4,706억(2019년 10월)
1인당 GDP(PPP)
$17,661(2019년 10월)
국부
$1조 2,900억 / 세계 30위(2020년)
통화
이란 리알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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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
페르시아력[1]
시간대
UTC +3:30 (IRST, 이란 표준시)[2]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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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 1962년 10월 23일
북한 : 1973년 4월 15일
국제연합(UN) 가입
1945년 10월 24일
무비자 입국
한국인 → 이란 : 도착비자
이란인 → 한국 : 비자필요
주한 대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장문로 45

ccTLD
.ir
국가 코드
364, IRN, IR
국제 전화 코드
+98
여행경보
여행자제
출국권고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출국권고
시스탄발루체스탄 주, 튀르키예ㆍ이라크 국경지역, 페르시아만 연안 3개 주(후제스탄, 부셰르, 호르모즈건(Hormozgan)

위치
파일:이란 위치.svg





1. 개요
2. 국가 상징
2.1. 국호
2.2. 국기
2.4. 국가
7.2. 종교
7.3. 교육
8. 정치
8.1. 인권
8.2. 분리주의
8.3. 국적법
9. 문화
9.1. 문학
9.4. 실용적인 건축
10. 지리
10.1. 기후
10.2. 갤러리
10.4. 이란의 행정구역
10.5. 이란의 도시
11. 관광
12. 교통
14. 창작물에서
14.1. 이란 국적, 출신의 캐릭터
1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서아시아이슬람 공화국으로 수도테헤란(, Tehran)이다. 종교 국가로서 국교시아파 이슬람이며, 정치 체계는 최고 지도자인 라흐바르의 하위에 명목상으로 삼권분립이 되어있다.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서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준한 법률 체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란 헌법에는 시아파의 마흐디[4]가 재림할 경우, 마흐디에게 국가통치권을 양도한다는 구절이 있다.


2. 국가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정식 국호는 이란 회교 공화국[5] 또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6]( / Jomhuri-ye Eslāmi-ye Irān)이다. '이란( / Irān)'의 유래는 초기 인도이란조어로 '아리아인'을 뜻하는 '아리아스(*Áryas)'이다.

이것이 이란조어의 '아리아흐(*Áryah 또는 *Āryah)'를 거쳐 아베스타어 '아리이아( / airiia)'·박트리아어 '아리아(αρια / aria)'·파르티아어 '아리( / ary)'·고대 페르시아어 '아리야( / ariyaʰ)'와 같이 옮겨졌고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가 되면 이란계 사람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거의 굳어졌다. 베히스툰(Behistun) 비문이나 낙쉐 로스탐(Naqsh-e Rostam) 비문을 보면 다리우스 1세크세르크세스 1세가 아리아인이라고 써 있다. 즉 인도이란조어에서 유래된 '아리아스'가 이란조어의 '아리아흐'와 고대 페르시아어 '아리야'를 거쳐 사산 왕조 시대의 중세 페르시아어, 혹은 팔라비어로는 '에르( / ēr)'로 이어지며 이 민족명에 복수형 접미사가 더해진 것이 '에란( / Ērān)'이다. 이 표현이 현대 페르시아어의 '이란'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란은 어원적으로 '아리아인의 땅( / Sarzamin-e Āriyāyiyān)'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관련 자료, 관련 글.

이란 바깥에서는 오랫동안 페르시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이름은 고대 이란계 부족의 이름 혹은 지명인 파르스에서 유래했다. 이들이 주로 살던 이란 서남부의 땅을 고대 페르시아어로 파르사( / Pārsa), 중세 페르시아어로 파르스( / Pārs)라고 했는데, 이 파르스 출신의 키루스 2세아케메네스 왕조를 개창하면서 파르스 사람들이 주도세력이 되었다. 이 파르스를 고전 그리스어로는 페르세스(Πέρσης / Pérsēs), 페르시케(Περσική / Persik), 페르시스(Περσίς / Persís)와 같이 기록하였다. 이것을 라틴어로 페르시아(Persia)라고 쓴 것이 서구 세계에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

이 두 이름 중 현지인들이 전통적으로 써 온 것은 '이란'이다. 당시 이란계 종족들은 출신 지역이나 종족별로 쪼개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문화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있었다. 이들 중 특히 현대의 이란 국경과 비슷한 강역을 지배했던 파르티아 시대에 '아리아인'이라는 종족 관념이 점차 확대된 것 같다. 전술했다시피 아리아인이라는 개념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지만, 아케메네스 왕조는 지배층인 페르시아인들이 아리아인의 한 분파였을 뿐이지 공통적인 민족 정체성 따위가 확산되지 않은 다민족 제국이었다. 파르티아 역시 다민족 제국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다하/파르니 정복자들, 파르티아인, 페르시아인, 메디아인, 박트리아인, 소그드인 기타 등등의 여러 이란계 종족들이 하나의 국가 범주 안에서 수세기 동안 부대끼면서 공통적인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체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 파르티아를 멸망시킨 에란샤흐르 제국, 즉 사산 왕조의 국가 건설 과정인데, 사산 왕조는 '아리아인/이란인의 국가( / Ērānšahr)'이라는 개념을 이용했다. 종교적, 추상적 개념에 가까웠던 "아리아인의 땅"이라는 개념을 현실 정치에 끌어들여,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고, 조로아스터교를 믿으며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구체적인 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비(非)아리아인( / Ānērān)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른 종족들(사산 왕조의 지배 하에 있든 아니든 간에)을 타자화함으로써 이란의 정체성을 강화하였다. 사산 왕조의 군주들이 '이란과 비이란의 왕중왕( / šāhān šāh ī Ērān ud Anērān)'이라는 칭호를 쓴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이후 아랍의 정복과 이슬람 시대의 도래로 이란인들은 이슬람 세계의 일부분으로 흡수되었다. 아랍 문자와 이슬람을 받아들였으며, 오래 부대끼고 사는 통에 생활 습관의 변화, 혼혈도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자는 바뀌었을지언정 언어와 학문 분야는 대부분 유지되었고, 중세 이슬람 황금기의 '실질적 축'을 담당한 이란 출신 학자들과 문인들에 의해 이란이라는 이름과 독자적 문화, 정체성이 기억되었다. 7세기 아랍의 대홍수가 거쳐간 뒤에도 11세기 이후 튀르크의 대홍수, 13세기 몽골의 침공 등으로 인해 이란은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으나, 그 와중에도 이란의 독자적 정체성은 살아남아 현대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1935년 팔레비 왕조에서 공식적으로 국호를 '이란 제국( / Dowlat-e Šāhanšāhi-ye Irān)'으로 못박았다. 물론 이는 나라 이름을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바꿨다는 뜻은 아니며, 다른 국가에 스스로를 페르시아가 아니라 이란이라 불러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오늘날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이란이라는 나라 이름보다는 이란 지역의 역사적인 지명이나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들의 총칭으로서 더 많이 쓰인다. 팔레비 왕조가 1979년에 이란 혁명으로 무너지고 호메이니가 이슬람 공화국을 세우면서 나라 이름도 이란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꿨다.


2.2. 국기[편집]


파일:이란 국기.svg
국기는 녹백적의 가로 삼색기이다. 뒤집으면 국장을 차치하고 타지키스탄이나 헝가리 국기가 된다. 녹색, 백색, 적색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 이전의 근대 왕정 시절에도 이란 국기에 쓰였던 색깔들인데, 1906년의 입헌 혁명 당시부터 혁명가들이 즐겨 쓰던 색깔이다. 그전에도 녹색과 흰색이 페르시아의 왕조를 상징하는 색깔로 잘 쓰이다가 붉은색이 추가된 것. 국기의 녹색은 성장, 행복, 통일, 자연 등을 상징하며, 흰색은 자유를 상징하고, 붉은색은 순교, 용기, 불, 생명, 사랑, 온화함 등을 상징한다.

이란 국기 가운데는 이란의 국장으로 페르시아어로 알라를 형상화한 것이며 가운데 직선은 칼날로 알라 신과 이슬람을 수호하고 이교도(이스라엘 유대교 및 시온주의자 등) 및 적대세력으로부터 국가와 신을 지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국기의 각 색깔의 경계에는 특이한 문양 같은 것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문양이 아니라 아랍 문자로 알라후 아크바르( , 하나님(알라)은 위대하시다)를 위아래 각각 11번 써넣은 것이다. 이러한 서체를 쿠파체( , Kufic script)라 한다. 이를 합치면 22개의 구절이 되는데 이것은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팔레비 왕조를 축출하면서 일으켰던 이란 혁명이 완수된 날짜인 페르시아력 1357년 바흐만(페르시아력의 11월) 22일[7]을 의미하는 것으로 녹색의 구절은 11월의 월(月)을, 나머지 빨강의 구절은 남은 11개를 뜻하는 22일의 일(日)을 뜻한다. 실제 이란에서는 이 날을 혁명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

파일:팔라비 왕조 국기.svg
이란 혁명 이전의 제정 시절에는 사자태양의 문장을 국장으로 썼으며 물론 국기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이란 혁명 이후에는 압제적인 친서방 제정을 상징한다며 폐기. 이란 혁명 이후 국외에 망명한 이란인들 사이에서 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반대하는 의미로 쓰고는 하지만 이란 현지에서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2022년 이란 시위에서는 이란 시민들이 현 이슬람 신정체제에 반대하는 뜻으로 이란 국내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2.3. 국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란/국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 국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 국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페르시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란/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외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란/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군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란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경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란/경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사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란/사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1. 민족[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란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2. 종교[편집]


표면적으로는 신정국가답게 인구의 99.4%가 통계상으로는 이슬람을 믿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기독교도 비율이 생각보다 높고 젊은 층에서는 아예 종교 자체를 가진 이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서류 상으로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신앙을 보일 뿐이다.

국교시아파(시아파 중의 12 이맘파)로 정해져 있고, 이란의 전체 인구 중 시아파가 인구 91.5%로 주류를 이루며, 수니파가 7.9%를 차지한다. 전세계 시아파의 본좌 국가로 시아파 인구 70%가 이란에 산다. 이란은 사파비 제국의 발흥으로 인구의 다수가 시아파가 되면서 시아파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만다야교, 바하이교조로아스터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유대교 등 많은 소수종교가 있다. 물론 이들은 차별을 받긴 하지만 요즘은 그래도 상황이 좀 나아졌다. 국가 공인 종교는 이슬람(시아파, 수니파),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이나, 이들은 극소수이며, 샤리아법 때문에 비이슬람 종교로의 개종도 전면금지인데다 그나마도 허울만 좋은 종교권리 보장과 계속되는 실질적 박해 때문에 상당수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수니 이슬람 신자들이 이란을 떠나 망명했다.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이 이슬람화된 이후부터 인도로 주로 망명해온 역사가 있다.

최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이스파한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반크 성당도 있는데, 아르메니아인들이 와서 수르프 바다락(성찬 예배)을 보게 한다. 물론 오래 전부터 살아오던 기독교인들에게 한하여 많이 개방적이다. 1979년 혁명 당시에는 이란 전국에서 가톨릭 사제 및 개신교 목사들이 살해당하며 성당들을 불태우는 테러가 벌어졌음에도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성당들은 대체로 무사했다. 이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팔라비 왕조 시절 유대인 우대정책 덕에 도외시된 점에 호메이니를 지지했던 점이 컸다. 그래서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소속 성당들이 많이 남게 되었다. 그래도 막상 가본 기독교 계열 선교사들이 이란은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 터키에 견주면 기독교에 대하여 꽤 양호한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가톨릭이나 정교회, 개신교 종파들도 소수 존재한다. 물론 이슬람 근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선교 때문에 선교만큼은 절대 금지되어 있다.[8]

유대교 역시 이란에서는 배척받는다. 이란은 대표적인 기독교 탄압국으로[9] 오픈도어선교회의 세계 기독교 박해 순위(WWL·World Watch List)에서도 9위에 올라 있다. 다만 사우디처럼 개종자를 마구 처형하는 일은 그나마 드물고, 대부분 징역형을 선고하는데, 문제는 이게 장기간 복역하는 중형이다. 게다가 이란은 배교와 개종을 금지하며 중죄로 다스린다. 실제로 이란 법원은 이슬람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18명에게 최대 24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현재 이란에서 선교활동은 금지되며, 외국인 선교사는 입국금지에다 선교가 적발될 시 무조건 추방이다. 특히 페르시아어로 이루어지는 경우에 더 심각하다면서 기독교 전교에서 성경 공부 또는 성경이나 기독교 서적을 발간하거나 설교하는 것이 모두 불법이다. 2014년에만 최소 75명의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었으며 이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감옥행이 선고됐으며 이들은 구금 후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악랄한 인권탄압과 폭정을 저지르는데도 이란은 미국보다 살기 좋은 국가라며 한심한 정신 승리나 해댄다. 이 점에서 북한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스라엘 역시 이것을 빌미로 이란은 우리 욕할 자격 없다며[10] 이란을 비난한다.

이스라엘과 원수라 유대교를 부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전혀 아니다. 호메이니조차도 살아 생전 말하길, 우린 히틀러 같은 미치광이와 다르다고 강조하고 유대인들을 증오하고 없애자는 게 아니라 엉터리 유대인들이 정권잡고 유대인 괴롭히는 이스라엘이란 폭력적 제국주의 국가를 증오하고 반대하는 것이라며 이슬람 혁명 이후 자국에 살던 유대교인에 대하여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유대교는 이란에서 엄밀한 국가 공인 종교 중 하나이다. 중동 국가에 비하면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편이며, 이스라엘 국적이라도 이란 계통이라면 비자를 얻어 방문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이다. 그래서 국외 거주 유대인들이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력 행사를 껄그럽게 여기는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반대로 반유대주의 역시 굉장히 심하다. 게다가 자국의 유대인 여성들에게까지 이슬람 복식을 강요하고 있다.

또 이란에서의 복장에 대해 어이없는 것 중 하나는, 이란 시아파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넥타이를 서구 제국주의식, 기독교식 문화의 산물이라며 금지한다. 그래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란의 공직자들과 공무원, 외교관, 사회인사등을 보면 와이셔츠와 수트는 입어도 유독 넥타이는 안매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들이 시아파 신정정권의 넥타이 금지령을 엄격하게 따르기 때문이다. 웃긴 건 넥타이를 뺀 수트, 서양식 구두, 와이셔츠 등은 서구 제국주의의 산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넥타이 대신 조끼를 많이 입는 편이다. 단 넥타이 금지는 이란 이슬람 정권의 괴악한 해석일 뿐, 이란 본토나 헤즈볼라 등을 제외하면 이런 모습은 거의 없다. 당장 팔레비 2세만 해도 넥타이 잘 매고 다녔고, 해외 망명 이란인들, 비이란 계열의 시아파인 알라위파나 이란 외의 시아파 거주자들은 이런 교리에 신경쓰지 않고 넥타이를 일반인과 다름없이 잘 매고다닌다. 옆나라 이라크의 시아파인 누리 알 말리키 전 총리나, 시아파로 인정받은 알라위파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등 버젓이 넥타이를 착용하고 다니는 시아파 유명인들도 상당하다.

그 외에 소수 종파인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의 전통 종교라서 겉으로는 간판으로 삼고 있지만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을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강제로 강요받는 상황에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조로아스터교 계율은 술을 허용하고 담배를 절대 금지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술을 금지하고 담배는 방치하는데, 조로아스터교도들 입장에서 무슬림들한테 함부로 앞에서 담배 피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 무척 애매하다고 한다. 또한 조로아스터교는 개를 신성한 동물로 여기지만 시아 무슬림들이 개를 워낙 싫어하기에 갈등이 일어난다.

시아파에서 갈라진 바하이교 또한 잔혹한 박해를 일삼는다. 사실 이쪽이 제일 심한데 이란 정부는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 만댜야 등 다른 쪽은 최소한 "종교"라고 인정은 해주지만 바하이는 식민 지배 시기 서구의 지원으로 생긴 사이비 종교의 일종으로 보기 때문에 종교로 분류하지도 않는다.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바하이들에게도 시민권을 주려고 했으나 보수적인 시아파 율법학자들이 대대적으로 반발해서 취소되었고, 이슬람 혁명 당시 바하이 중에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고 대거 미국으로 망명했다. 신정 정부에 의해서 많은 수의 바하이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만약에 신정 정부가 유대인, 조로아스터교 신자, 만다야교 신자, 아시리아인같은 고대 소수파 종교 신자들을 죽이면 국제 사회에서 맹비난을 받게 되지만, 바하이를 탄압하면 대내적으로는 보수 율법학자도 만족시키고 대외적으로는 걸프 순니 아랍 국가들의 호응을 받기 때문이다.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이며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이슬람이긴 하나 수니파도 마찬가지로 억압의 대상이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의 주적으로써 수니파 무장단체 다에쉬알카에다 등이 이란 내에서는 크게 사고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2017년에 IS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국회의사당과 남부 호메이니 영묘에서 테러를 벌였다. 이 테러로 17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부상당했다. 이로써 이란도 더이상 IS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게 되었다. 이란은 테러의 배후가 미국과 사우디에 있다며 복수하겠다고 했지만 미국과 사우디는 부정하며 테러를 비난했다.

이란은 이슬람 탓에 주말은 오직 금요일[11]이며 현지에서 을 마시면 징역을 살아야 한다. 다만 페르시아력의 새해인 춘분이 있는 3월에 전체 공휴일 중 적어도 5일[12] 가량이 있다.

위에서 이슬람 이외 종교를 탄압한다고 하였지만 이란 현지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종교가 아예 없는 무종교이다. 그러니까 한국인 관광객들은 혹시 본인이 종교가 없다고 해도 그냥 기독교나 잘 모르겠으면 하다못해 유교나 불교라도 대는 편이 아예 종교 없다고 말하는 것보단 낫다. 다만 이란이 종교탄압국이긴 하지만 이란인 개개인들은 어지간해선 외국인 단기 방문객의 종교 같은 걸 가지고 귀찮게 굴진 않는다.

현실은 2020년도의 네덜란드 대학의 온라인 통계에 5만명이상의 자가응답 조사 통계에서, 90%이상이 이란에 사는 이란 인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아파나 그외 수니파, 그 이외 분파를 합쳐도 무슬림은 고작 40.4%에 불과하다. 무슬림식 1일 5회 기도를 드리는 비율은 불과 27%, 전혀 기도를 드리지 않는 사람이 60% 다. 기독교나 조로아스터 등 다른 종교를 포함해도 종교를 가진 사람은 60% 정도이고 나머지는 무종교, 무신론, 불가지론, 인본주의 등 비종교적 인구가 40% 가량이다. 즉 이란에서 무슬림보다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인 인구가 훨씬 많다.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23% 정도만 찬성하고 56% 는 반대하며 더구나 법적인 의무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15%만 찬성이고 72%는 반대한다. 이 통계결과를 두고 이란 현지인들은 이 통계는 이란 현지인들은 공감하지만 외국인들은 신뢰못하는 전형적인 통계라고 말할 정도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99.4%가 이슬람을 믿는다는 이슬람의 정부 통계는 명목상의 통계일 뿐이다. 표면적으로는 정부가 시아파 이슬람교를 강요하니 믿는 척은 하지만 내심으로는 절반 정도의 인구는 어떤 종교든 종교 자체에 관심이 없는 무종교인이라는 것이다. 이 비율은 무종교인 비율이 중국과 맞먹을 정도로 높다는 것을 말한다.

성직자나 이슬람 혁명 수비대와 같은 이란의 보수층은 대체적으로 독실 한 것은 아니고 보수층의 자녀들 역시 종교 행위에 별 관심이 없고 놀고 먹는데에만 관심이 있다. 한국에서 관광 혹은 유학하는 이란인 여성 중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경우는 10명 중 한두명이 될까말까이다. 이란에 출장 혹은 여행 다녀온 사람들에 의하면 정부가 신정 정치 체제인 것과는 별개로 이란인들의 종교 성향은 사우디인보다는 외려 터키인에 가까워서 의외였다는 평도 있다. 그래서 앞머리를 아예 내놓는 수준의 히잡을 착용하는 이란 여성들이 차도르를 착용하는 여성들보다 많다. 도시의 젊은 남성들도 서구식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7.3. 교육[편집]


대학입시 시험으로는 콩쿠르()를 치른다.


8. 정치[편집]






이란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
24점
2023년, 세계 149위[13]
언론자유지수
24.81점
2023년, 세계 177위[14]
민주주의지수
1.96점
2023년, 세계 153위

이슬람 법학자 통치체제라 불리는 특유의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

중동에서 몇 안 되는, 선거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가능한 공화제를 채택한 나라다. 물론 정교분리가 안 되어있어 이슬람 최고 지도자가 왕인마냥 정치에도 간섭한다는게 가장 큰 문제점이긴 하지만, 이슬람 최고 지도자도 일단은 국민들이 선거로 뽑은 의원들의 합의로 선출되는 방식이라 이란 국민들의 의사가 어느 정도는 반영되고, 대통령 역시 정권의 성향에 따라 그 안에서도 보수/개혁처럼 사회적 분위기나 색깔도 어느 정도는 바뀌는 나라다.

이란 헌법에는 시아파구세주인 '마흐디'가 재림할 때까지 이란의 정치를 시아파 율법 전문가(호자톨 이슬람, 마르자 에 타클리드 등으로 부름)들이 맡아 대리로 통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란의 국가원수(라흐바르)는 곧 종교지도자이고 국가 운영에 종교인(이슬람 시아파)이 직접 참여한다. 때문에 이란 정치를 자유민주정이 아니라 '이슬람법 전문가정'이라고 평가하는 정치 논객들도 있으며, 이란에서 민주주의이슬람 근본주의를 보좌하기 위한 구색맞추기에 불과하다는 평과 그럼에도 그것조차 안하는 주변 전제군주정 국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민주적이란 평이 공존한다. 옆동네 사우디아라비아만 해도 왕이 하고 싶은대로 다스리고 장관도 전부 직계 왕족이 맡고 국회의원도 없는 식이니.[15] 물론 이란도 서아시아 수준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비교해보면 그리 민주적이지도 않고 인류 보편적 인권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또, 혁명세대의 족벌정치도 심각한 상태다.# 그래도 상당수 이란 국민들은 각 정치인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자국 고유의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어찌됐든 본인들이 혁명을 통해 부패한 전제왕정을 무너뜨리고 세운 체제라고 다수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

결과적으로 이란은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형태의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 1979년 혁명 이후 이슬람 공화국이 된 이란은 표면적으로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란 대통령은 4년 임기에 1회 연임이 가능하고 국민 직접선거결선투표로 선출되어 정부수반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현임 대통령은 2021년에 선출된 에브라힘 라이시이다. 그 외에도 역시 국민의 직선 및 결선투표로 선출된 4년 임기의 국회가 있으며, 사법부도 그 수장 후보군 명단을 보내면 대통령이 지명하는 형태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8년 임기의 직선 의원 88명으로 이뤄진 이슬람 율법 전문가 회의( )가 있고, 이들이 선출한 종신직의 라흐바르( )[16]국가원수의 역할을 한다. 현 라흐바르는 2대인 알리 하메네이로 1989년 취임한 이래 현재까지 이란의 국가원수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뿐만 아니라 국가원수도 겸하지만, 이란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 6명의 이슬람 율법 전문가와 6명의 법학자, 총 12명의 위원으로 이뤄진 헌법수호위원회( , 또는 수호자 평의회)가 있다. 6명의 이슬람 율법 전문가는 라흐바르가 임명하고, 6명의 법학자는 사법부의 지명을 받아 국회가 동의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들은 헌법을 해석하고 헌법재판소처럼 헌법 재판을 하기도 하며, 무엇보다 율법 전문가 회의, 대통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는 모든 사람들을 심사해 부적격자를 떨어뜨리는 엄청난 권한을 가진다.

이런 식의 정치체제는 삼권분립신권 정치를 결합한 정치체제라는 평가를 받는데, 말만 삼권분립이지 라흐바르가 모든 국가권력을 쥐고 휘두르며, 라흐바르는 임기 그딴것 없이 종신직으로써 수십년을 해먹고 있다. 특히 헌법수호위원회의 후보 심사 과정에서 개혁파 후보들을 죄다 떨구어 법학자 체제와 심각한 인권 탄압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래도 선거가 그럭저럭 이뤄지기는 하기에 전제 왕정이나 세습 대통령이 수두룩한 중동에서 이스라엘, 레바논, 이라크, 튀니지 등을 제외하면 그나마 대의제 민주주의가 자리잡아 체제 내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나라기도 하다. 그 동네에서는 민주의식이 높기는 한 모양인데, 예컨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직후에 신 아프간 헌법을 논의하는 본(Bonn) 회의에서, 아프간 헌법에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을 넣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은 미국 대표가 아닌 이란 대표였다. 헌법 초안을 검토하던 이란 대표가 말하길, "이와 같은 문서라면 마땅히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중에 미국 대표가 말하길, "내가 받았던 훈령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는 점을 특별히 언급해야겠군요." 또한, 문서에 아프간이 국제 테러리즘에 대항해 협력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 또한 개혁파로서 서방과의 화해를 적극 추진했던 하타미 대통령 치하의 이란 대표였다.[17]

헌법수호위원회도 어디까지나 부적격자를 떨구는 것이지 일단 적격자로 된 사람이 실제 선거에서 이겨서 뭔가가 된다면 대놓고 확 쳐낼수는 없다. 이는 최고지도자도 마찬가지. 아무리 실권은 딸려도 국민들이 직접 뽑았다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지라 일단 되고 나면 함부로 내칠 명분은 없다. 때문에 어느정도 맞지 않더라도 다들 조금씩 양보를 하고 마찰을 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대통령도, 헌법수호위원회도, 최고지도자도 서로 대놓고 충돌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다. 사실 정말로 이질적인 사람은 헌법수호위원회가 부적격자로 미리 자르기 때문에,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 차이가 있을지언정 극단적으로 갈리는 경우는 없어서 그럭저럭 합의점을 찾는 편이다.

1987년 호메이니의 교시에 따라 정당을 허용하지 않고 개인 자격 정치만 허용하며, 따라서 이란의 의회는 정파 중심으로 돌아간다. 정견을 공유하는 느슨한 정파연대를 중심으로 정치단체를 구성한다. 이란 국회의원 선거에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헌법수호위원회가 후보자가 후보 신청을 하면 사전자격검증을 거쳐야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당연 이러한 행위를 반민주적이라고 지적하지만 이란은 서구식 민주공화제가 아닌 이란 고유의 이슬람 공화국이기에 후보자 검증과정에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 나라의 선거 연령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15세부터다. 이란 현지 고등학교 1학년[18]에 해당하는 나이부터 선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변화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란 사회 진보의 가장 강력한 동력원이다. 이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반발이 적지 않고 이 때문에 이슬람 법학자 정부의 탄압을 받아 감옥에 들락날락하는 친구들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대선 후보자 수가 1,636명이라서 화제며 나이도 18세부터 92세까지 다양했다. 헌법수호위원회의 심사 후에 후보가 6명으로 좁혀졌으며 이 중 여성 후보는 모두 탈락해서 여성계의 반발이 있었다. 이 선거에서 하산 로하니 현임 대통령이 57%의 지지율로 재선되었다.2017년 대선 대선 후에는 라흐바르알리 하메네이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갈등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2017년말 이후 반정부 시위가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1년 대선에서 보수파 에브라힘 라이시 대법원장이 당선되면서 8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후보 중에서 하산 로하니같은 개혁파 후보는 모두 사전검증에서 낙마하고 피선거자가 보수 일색이 되고 이에 대해 반발하는 국민들이 투표 보이콧을 선언, 지난 대선보다 무려 24.55%p나 낮은 48.78%로 역대 이란 대선 중 최저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무려 72.3%에 가까운 득표율로 압승했고 약 13.7% 남짓의 득표율로 참패한 모흐센 레자이도 같은 보수파. 중도파는 압돌나세르 헴마티를 단일 후보로 내세웠으나, 9.8%도 안 되는 처참한 득표율로 광탈했다.

팔라비 왕조를 혁명으로 뒤엎고 현재의 정부 체제를 수립한 나라라 그런지, 이란 혁명 당시 미국 등 서방으로 망명한 팔라비 구 왕족들에 대한 이란 귀국이나 방문을 일체 허락하지 않고 있다.


8.1. 인권[편집]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로 인권 탄압 상황도 심각하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나마 정권에 따라 사회 분위기나 색깔도 조금씩 변하지만 그래봤자 탈레반 집권 하의 이웃나라 아프가니스탄보다 조금 온건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 이슬람 신정체제 국가이다.[19] 대표적인 수니파 꼴통 국가로 꼽혔던 사우디아라비아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집권 이후에 비록 진정성이 의심되긴 해도 개혁정책을 펼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 색채를 점차 빼고, 어느정도 세속적인 사회상으로 바뀌고 있어 이란과 신세가 역전되었다. 적어도 사우디는 마구잡이로 자국민들에게 기관총을 갈겨 학살하거나 사형수를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처형하지는 않는다.

1979년 이전 팔라비 왕조 시절에 백색혁명으로 여성이 참정권, 교육권을 얻고 사회진출도 하며 서구 문화도 어느정도 들어온다. 부패한 전제왕정을 무너뜨린 것은 좋았지만 이슬람 국가로 회귀한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공공장소에서의 공연을 법으로 금지하며 심지어 국영 방송에서도 음악 연주장면을 거의 방영하지 않는다. 성차별도 심각해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과 소수민족, 타종교 여성에게까지 히잡을 비롯한 이슬람 복식을 강요한다.[20] 심지어 SNS상에서도 여성은 히잡 쓴 사진만 올리게 하며 쓰지 않은 사진을 올릴 경우 처벌한다.# 그런데 정작 이란 고위층 자녀는 마음껏 올린다.[21] 특히 이란 여성들은 스포츠경기 관람 등 공공장소에서의 사회활동에 심각한 수준의 제약을 받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6월 남자 배구 경기를 관전했다는 이유로 이란계 영국 여성 변호사인 무함마드 레자 다바르자니와 인권운동가 곤체 가바미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1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2017년 국제배구협회의 압력을 못 이겨 배구 경기에 여성의 입장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의 스포츠경기 관람을 허용해 유일하게 여성이 경기를 관람할 수 없는 나라였으나 이듬해인 2019년 여성의 경기장 출입을 허용한다. 2022년 현재는 이란도 여성이 자유롭게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도 미혼의 남녀 배우가 같이 주연을 맡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하며 반드시 부부배우만이 주연을 맡는다.[22]

이란의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앨범 커버에 나온 여성들을 합성으로 지워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현재 이란에서는 이슬람 신앙생활을 관장하는 별도의 도덕경찰( /gašt-e eršād/Guidance Patrol)[23] 따로 있어서 인권을 탄압한다. 특히 도덕경찰들의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해 여성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동영상을 올렸다고 태형을 하며 여성이 진하게 화장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복장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여성을 단속하고 그 자리에서 매질까지 하며 또 복장에 문제가 클 경우 거액의 벌금과 함께 채찍형에 처한다. 심지어 파티장까지 급습한다.

또 이란은 국내의 공공장소에서 노래도 금지한다. (다만 결혼식이나 노루즈라고 부르는 새해에는 집안이나 공터에서 밤을 세워가며 춤을 춘다) 언급했듯이 이란에서는 단순히 남자 배구경기를 관전했을 뿐인 영국계 여성을 샤리아를 어겼다면서 체포하고 징역형으로 처벌하고 월드컵에서 자국을 응원하며 춤추고 노래한 사람들을 타락했다며 체포했다. 또한 이란 여배우 골쉬프테 파라하니가 누드화보를 찍자 이에 이란 정부는 그녀의 가슴을 잘라내서 아버지에게 전달하겠다라는 망언을 했다. 결국 골쉬프테 파라하니는 망명을 가 프랑스인이 되었다.

2015년 9월에는 이란 사법 당국이 이성과 악수했다는 이유로 남녀에게 각각 99대의 채찍질을 선고해서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실제로 여러 인권 단체들에 의하면 이란에서 친족 이외의 이성과 악수하는 것을 간통까지는 아니지만 적절치 않은 성적 행위로 간주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2015년 3월 이란 의회가 출산율을 높여 인구를 늘리기 위한 대책이 비난받는데 바로 피임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한것이다. 여성 인권을 침해한다는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이 법안은 하메네이가 2012년 7월에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가 심각하기에 머지않아 인구감소가 시작될 것이라서 현재 80,000,000명 정도의 인구를 향후 50년간 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입법 움직임이 일었는데 하메네이는 당시 "부부가 왜 아이를 1 ~ 2명만 낳거나 아예 출산하지 않으려 하는지 이유를 연구해봐야 한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머지 않아 이란은 '노인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법으로 이제부터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정관 절제 수술 등의 영구 피임을 위한 수술을 금지하고 이 법을 위반한 의사는 엄청난 처벌을 받는다. 또한 출산하지 않은 여성에게 취업 시 불이익을 주는 법안도 통과될 예정이다. 이 법안을 통과하면 고용주는 1순위로 아이 있는 남성 2순위로 아이 없는 남성 3순위로 아이 있는 여성 4순위로 아이 없는 여성을 고용해야 한다. 또 이란 정부는 정부가 지원하는 가족계획 프로그램을 없애고 이혼 절차를 어렵게 하는 등 출산 촉진책도 병행한다. 한마디로 정부가 국민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것이다. 사실 이란도 출산율이 상당히 낮고 고령화도 빠르고 인구감소가 일어나 골칫거리다.[24] 그래서 이란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추진한 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기는 한데 강압적으로 해 문제다. 국제앰네스티는 2015년 3월 11일 이 두 법안에 대해 이란 여성의 권리를 수십 년 전으로 후퇴시킬 것"이라고 했으며 이란 정부가 여성의 핵심 권리를 박탈해 여성을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기본권을 가진 인격체가 아닌 애낳는 기계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이란의 청년층은 실업과 고물가로[25] 생활고에 시달려 출산을 많이 할 수 없다. 이런 판국에 강제로 하려고 하니 해결이 안 된다.

이란의 법 집행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샤리아법이라 마구잡이식으로 이루어져 억울한 옥살이를 하며 희한한 해석도 많다. 대표적으로 정당방위로 칼을 휘두른 20대 여성을 교수형에 처한 사건이 있다. 이란 사법 당국은 2014년 10월 28일 레이하네 자바리(26. 1987년생)에게 살인혐의로 교수형을 집행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자바리는 10대였던 2007년 이란 정보기관 요원 출신인 사르반디에게 취업 제안을 받고 집에 따라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는데 자바리는 성폭행을 피하려 갖고 있던 칼을 휘둘렀다. 경찰에 체포된 자바리는 재판에서 모두 정방방위이며 성폭행 당하려는 자신을 보호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자바리의 계획된 범행으로 봐 성인이라는 이유로 2009년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여러 인권단체들은 그녀가 사르반디를 죽였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재심을 요구했으며 국제 앰네스티는 자바리의 범행이 아닌 정체불명의 남자가 등장해 사르반디를 죽였다고 했으나 이란 정부의 거부로 재조사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 앰네스티는 이 처형은 이란 인권 역사에 핏자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이란 정부를 비난했다. 기사 2016년에는 시스탄-발루치스탄 주에서 한 마을의 성인 남성 전원을 마약 혐의로 처형했다.#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310181142640104011.gif
잔혹한 전근대적 형벌을 폐지하지 않고 여전히 시행하고 있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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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의 투석형 반대 퍼포먼스에 참여한 이란계 여인. 이 사진은 퍼포먼스이지만 실제로 이란 및 서아시아에서는 종종 저렇게 여자를 땅에 묻고 머리만 쳐서 죽인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가 강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란 재판부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몇몇 여성들에게 여성을 어깨까지 묻은 후 죽을 때까지 돌을 던져 결국 사망하도록 하는 투석형을 내린것이다. 2015년 한 여성은 남편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런 투석형을 당해 결국 엄청난 고통 속에 사망했다. 심지어 이란 정부가 세계 인권의 날(International Human Rights Day)에 이토록 잔인하게 한 여성에게 투석형을 선고해 죽게 한 것은 국내외로 큰 공분을 산다. 영국의 인권보호센터(Human Security Center)의 총무인 줄리 레나즈(Julie Lenarz)는 앞서 예루살렘 포스트(Jerusalem Post)에 "이란법에서 여성들은 간음죄에 대해 투석형을 선고하고 있고, 청소년들의 처형도 허용한다"면서 "이란에서는 매일 3명의 교수형이 집행되고 있으며 인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불량국가(pariah state)"라고 비난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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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단기로 손이 잘리는 사람

이란에서 범죄자의 손가락을 자르는 형벌이 공개적으로 추진되어 논란이 됐었는데 실제로 집행하는 장면을 공개하여 집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상에서는 대중이 모인 광장에서 눈을 가린 남성이 복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집행관 2명에 붙잡혀 손가락 절단기에 손을 올려놓았으며 나머지 한명이 절단기 장치에 부착된 핸들을 돌려 남자의 손가락을 잘랐다. 이후 남자의 피 묻은 손가락은 요오드에 담겨져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됐다. 이란 정부는 형이 집행되기 전 약을 먹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하나 이 영상은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전세계에서 너무나 잔혹하며 도가 지나쳤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또 이란은 언론 탄압이 극심하다. 2023년 기준으로 언론자유지수가 177위로 세계 최하위권이며 현재 이란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언론인들과 사회 활동가들이 구금돼 있는데 이란은 언론 자유를 탄압해 중국에 이어 가장 많은 30명의 언론인을 투옥한 상태라고 인권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는 밝혔다. 실제로 워싱턴 포스트 제이슨 레자이언은 이란의 국가 안보에 반하는 행동을 한 간첩 혐의로 체포돼 1년 넘게 수감돼 있으며 이란 정보 당국이 세계인권의 날인 2014년 11월 10일 유명 여성 인권변호사 나스린 소투데를 이유도 밝히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체포해 구금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고작 몇 사례에 불과할 정도로 많은 기자들이 이란에 의해 불법적으로 구금돼 있다. 특히 이란에서 진보적이라는 언론사 카르고자란 신문사도 틈만 나면 이란 정부에게 탄압을 받는데, 카르고자란 신문은 2009년 1월에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저지르는 인권침해를 비판해 이란 정부에 의해 정간당하고 이 비판 글을 쓴 기자가 체포되었다. 이유도 기가 막힌 게 단순히 하마스의 인권침해가 너무 심하다고만 했는데 이것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정당화하고 하마스와 무장단체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다고 했다.

2020년에 이란 체제와 인권탄압을 비판한 언론인 루홀라 잠을 체포하려다 그가 프랑스로 망명하자 프랑스까지 쫓아가 납치하여 강제로 끌고와 재판에 세웠는데 1심 법원이 사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에서도 사형선고 받은지 나흘 만에 사형에 처해버려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학문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고 심각하게 탄압한다.#, # 이란의 시인 에크테사리와 무사비는 신성 모독 내용을 담은 책을 썼다는 혐의로 각각 11년 6개월과 9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책을 발간하기 전에 이란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았고 결정적으로 이들이 증언하기로 신성 모독 혐의에 대한 자백을 고문까지 이뤄진 강압적인 수사 아래서 했다고 한다. 또한 두 시인과 유사한 혐의가 적용된 영화 제작자 카이반 카리미 역시 최근 6년 징역형 및 223대의 채찍질형을 선고 받았다고 미국에 있는 인권단체인 이란의 인권을 위한 국제 캠페인 측이 밝혔다. 또한 이란에서는 영화산업에 대한 이슬람의 지나친 규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작품을 찍었는데, 그 영화에 나온 여배우에게 태형 90대와 징역 1년을 선고하는 막장 독재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악마의 시를 지어 호메이니를 화나게 만든 인도계 영국인 살만 루시디도 이단으로 취급해 아직도 사형선고를 취소하지 않고 있으며 루시디가 정신질환자에게 피습당했을때 자업자득이라며 대놓고 모욕하는 행태를 보였다.

국경없는 기자회의 일원인 모이니는 이란에서 단순히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언론인이 200여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란 교도소의 인권침해도 심각한데 카르지 지역에 있는 고하르다스트 교도소의 상황을 폭로한 이란의 한 정치범은 포화상태의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것을 지옥과 인간 재앙으로 표현했다. 이란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는 한 정치범은 공개서한에서 이를 폭로했는데 이란 교도소의 수감자 학대가 심각하며 수감자는 벌거벗은 채로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에 물린 붉은 자국아 온몸에 가득하다고 말했다. 교도소 안은 더럽고 오염된 공기와 쓰레기가 썩는 냄새 그리고 막힌 변기에서 나온 오물과 식중독 환자가 뱉어 놓은 토사물과 가래로 가득한 비참한 환경이라고 한다. 이란에서 망명을 와서 캐나다의 왕립군사대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하우창 하싼-야리 교수는 많은 수감자의 가족이 이와 비슷한 상황을 전한다고 해 이 정치범의 말은 사실로 보인다. 이란의 정치범은 신선한 공기와 제대로 된 음식 또는 의약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며 심지어 이란 교도소 측은 거의 대부분의 수감자들에게 잠을 재우지 않고 목욕도 못하게 하며 정신적, 신체적 고문까지 하고 있다고 하싼-야리가 말했다.

이란의 사형제도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이란은 2014년 세계에서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사형에 처했다. 이란 정부가 마약사범 척결에 나서서 2015년 7월까지 이란의 사형자 수가 최소 694명으로 역대 최고치였던 2014년의 753명에 육박하며 2015년 안에 1,000명을 넘을 수 있다고 아흐메드 샤히드 유엔 이란인권 특별보고관이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밝혔다. 현재 이란의 사형 문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가장 심각한데 이란 정부는 흉악범과 마약사범에 대해서는 사형을 원칙으로 하기에 이렇게 사형수가 많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여러 인권 단체들은 모두 거짓이며 실제로는 정치범에게 마약 사범이라는 누명을 씌워 사형에 처하거나 정치범들이 마약사범으로 처리되어 사형당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법원에 의해 형이 선고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모호하게 표현하고 지나치게 광범위한 범죄나 또는 범죄화조차 되어서는 안 되는 행위에도 사형이 선고되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란에서 피고인이 조사 단계에서 변호사 접견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항소, 사면, 감형 절차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아 사법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또 이란에서 처형된 사형수 중에는 신에 대한 적대세속적 타락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쿠르드족 정치범과[26] 수니파 이슬람교도, 배화교, 바하이교, 발루치족 등의 소수민족과 소수종교 및 친서방, 세속주의자, 무신론자, 동성애자도 있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의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이란에서 복역 중인 사형수는 수천여명에 이른다.

이란 정부는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의 80%가 마약사범이라고 밝혔지만 정확한 숫자는 공개하지 않으며 여러 증언에 의하면 마약 사범이라는 누명 아래 사형당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도 사법살인을 당한다. 국제 앰네스티에 따르면 2015년 소년범 160명 이상이 이란에서 사형 집행을 받을 예정인데 문제는 고작 15세밖에 안 된 아이들을 사형에 처한다고 이란 정부를 비난한다.# 2019년에도 17세 소년 2명을 채찍질한 다음 사형선고도 하지않고 비밀리에 처형했다.# 이는 이란에서 만 15세 이상을 성인으로 분류했기에 이게 가능하다. 또한 대부분 사형이 집행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소식을 들으며 더 심한 경우엔 가족들이 사형집행 후 수일, 또는 수주가 지난 뒤에 생사를 알게 된다. 실제로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언제라도 교수형이 집행될 수 있는 상태일 정도로 수감자에 대한 처우가 매우 나쁜 상태다. 또한 여성 죄수의 경우 처녀는 사형을 시키지 않는 법 때문에 사형 전에 교도관과 강제로 결혼식을 올리고 강간한 다음 처형하기도 한다.[27] 그래서 종파만 시아파인 다에시가 따로없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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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사형교수형으로 집행하는데 척추를 부러트리는 롱드롭 방식도 아니고 공개처형이라 피형자에 대한 처우가 매우 나쁘다. 상황에 따라서는 크레인으로 교수용 밧줄을 끌어 올려 죽인다.[29] 사실 이란이 사형수를 롱드롭으로 안 죽이는 이유는 일부러 고통을 줘서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고정적인 사형집행장을 만들어두지 않아서 그렇다. 사형이 확정되면 신속하게 날짜랑 장소 정하고 하루 만에 뚝딱 사형집행장을 가설하고 끝나면 바로 해체한다. 롱드롭 방식 교수형으로 처형하려면 구조상 고정 시설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사형집행이 실패해서 살아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이 경우 율법해석을 통해 살인 등 중대범죄에 속하지 않으면 적당히 감형해 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토록 억압적인 사회라 이를 견디지 못한 많은 이란인들이 해외로 이민한다. 특히 이란은 두뇌유출이 심하며 고학력자와 청년일수록 억압적인 조국의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싶은 욕망이 강해서 해외로 이민을 가고 싶어한다.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이란인들은 약 4,000,000명이며 주로 영미권유럽에 많다. 그러다보니 해외에 사는 이란인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하다. 여성들의 경우 자국과 달리 베일을 안하며 서구적으로 꾸민다. 이민을 못 하는 사람은 아예 이란을 탈출하여 난민이 되는데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난민 중에 이란에서 온 난민도 있다. 해외의 이란인들은 'United for Iran' 같은 이란 난민 신문을 만들어 이란의 인권탄압을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이란인들의 인권운동과 이란 난민에 대한 구제에 애쓴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갈수록 커져 2016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시민 권리 장전'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란의 신정체제가 근본적인 문제라 로하니 대통령의 선언이 제대로 지켜질 것이라고 국제사회와 이란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게다가 종교국가인 이란은 라흐바르의 말이 법이지 정부 수반에 불과한 이란 대통령의 선언은 그 무게가 떨어진다.

이란의 현실이 이런데 이란이 이웃 아랍 국가들보다 개방적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한국 웹에 퍼져 있다. 이란 젊은이가 SNS 등에 올린 서구 스타일 파티 사진을 보고 이란을 개방적인 국가라고 판단하면 이는 어이없는 오류다. 그런 걸 올리는 거 자체가 이란 사회에서는 일탈이며 도덕경찰이 눈씻고 찾는다. 그 파티를 안 보이는 곳에서 몰래 연다. 젊은이의 '일탈'은 결국 이런 식으로 끝나기도 한다. 또한 인터넷은 검열당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SNS는 VPN으로 우회해서 접속한다. 과거 한국 사례처럼 두발 단속을 하고 2014년 퍼렐 윌리엄스에게 헌정하는 팬메이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체포됐다.기사 2017년 찢어진 청바지를 단속했다.# 이렇게 개방적인 것과 거리가 먼 모습을 이란에서 쉽게 본다. 도덕경찰에게 걸려서 태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례가 많다.

이란 이슬람 혁명 전이면 몰라도 아랍 나라보다 이란이 융통성 있고 개방적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사회나 문화가 개방적인 걸로 따지면 이집트는 비록 독재국가지만 정부의 강력한 세속 정책과 맞물려 문화 산업과 연예계가 발전해 아랍 전역에 영상 매체를 수출한다. 아랍 국가들중 세속화와 개방도의 끝판왕인 레바논[30] 과는 비교가 불가능하고 이란과 비교 가능하거나 혹은 더 억압적인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도다. 우리에게 이슬람 막장 나라라고 알려진 이란의 이웃국가 파키스탄은 적어도 대도시 지역들은 이란에 비하면 훨씬 세속적이고 정상적이다.[31] 도덕 경찰이 존재한다는자체가 개방적인 거와 거리가 멀다. 중동 종교경찰의 양대산맥이 이란의 도덕 경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타와다. 다만 사우디의 종교 경찰은 2020년대 들어서는 히잡을 안했다고 연행하지는 않는다. 미혼 남녀의 길거리 애정행각을 잡고 음란물을 규제하는 정도다. 하지만 이란의 종교 경찰은 2022년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흐사 아미니를 연행해 사망케 함으로써 2022년 이란 시위를 촉발시켰다.

언론의 자유도 물론 없다. 언론자유지수 지도를 보면 2023년 기준으로 177위며 이란은 중동의 대표적인 독재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등과 함께 새까맣게 칠해져 있다. 특히 2020년에 반정부 시위를 보도하여 프랑스로 망명한 자국의 언론인을 납치하여 이란으로 끌고와 사형에 처했다.#

2022년 9월 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않았다는 이유로 사설 경찰에게 끌려간 뒤 맞아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가뜩이나 경제난으로 인해 쌓여온 불만이 이 사건으로 폭발하여 탈히잡 시위2022년 9월 이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


8.2. 분리주의[편집]


이란은 중동에서도 거대하고 다양한 다민족국가이다 보니까 분리주의 역시 존재한다. 특히 이란에서는 소수민족들이 차별을 받기에 이란의 소수민족들은 이란과 주류민족인 페르시아인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종교와 관련된 민족갈등도 있기는 하지만 시아파를 믿는 소수민족들조차도 페르시아인과 갈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서부 이란령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거주지로서 쿠르드족은 이라크, 터키랑 달리 이란과는 같은 페르시아어족이긴 하나 엄연히 별개의 민족에다가 종교 역시 수니파로 달라 이란으로부터 분리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라크, 터키와 함께 쿠르드족이 1,000,000명 이상으로 많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나라. 터키처럼 쿠르드인이나 소수민족 통계를 자세히 하지 않아서 정확한 수치는 불명이지만 인구 8%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도 인구가 81,800,000명이 넘는 이 나라에서는 5,000,000 ~ 6,000,000에 이르기에 무시못할 수치다. 1946년에는 이라크와 인접한 이란 서부, 마하바드()라는 도시에 모하바드 공화국( )이라는 정부가 잠시 세워져 독립운동이 벌어지긴 했지만 가혹하게 진압해서 터키나 이라크와 달리 저항 세력이 분쇄되어버렸다. 공교롭게도 쿠르드인 탄압에 팔라비 왕조가 큰 기여를 했던 점도 있다. 더불어 차별도 여전하고 대다수가 서북쪽 춥고 서늘한 산악지대에 모여살아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수준이고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지만, 감시의 눈길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근래에는 잠잠한 편이었으나 2010년대 들어서 다시 쿠르드 무장단체들이 결성되어 이란군과 교전을 벌이는 등 분리주의가 거세지고 있다.

동남부 발루치스탄에는 발루치족이 사는데 이들은 이란과 또다른 지배국인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강력한 운동이 있다.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오만에 분할 편입된 점을 봐서 가히 작은 쿠르드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파키스탄에는 6,900,000명, 이란에는 1,560,000명, 오만과 아프간에는 각각 430,000명과 300,000명이 거주한다. 이란의 발루치족은 대부분 시스탄오발루체스탄 주에 산다. 발루치스탄 이란령 쪽으로 가면 수니파 계열 살라피스트 테러리스트가 분포해 있긴 하지만 이들 조직의 지도자 대다수가 사살되어 현재는 별 다른 활동은 없다. 하지만 발루치스탄-시스탄의 주민들이 모두 수니파이며 시아파인 이란 정부에 대한 반감이 굉장하여 이 지역에 발루치 무장단체들이 다시 활개치고 있다. 특히 비민주 국가인 이란 정부는 발루치인들에 대한 처우 개선은 하지 않고 그저 극단적인 정책으로만 토벌하려고 하니 해결은 전혀 되지 않고 발루치 무장단체들은 이란 정부를 계속 게릴라전과 테러로 엿먹이고 있어 이란 정부에게서 골칫거리다.

북서부 아제르 투르크인이 아제르바이잔보다 이란에 더 많아서 역시 분리주의 및 아제르바이잔이랑 페르시아 아제리인이 서로 합쳐서 대아제르바이잔을 이룩하잔 대아제르 투르크주의(통칭 아제리스탄)가 있기도 하지만 발루치, 쿠르드의 분리주의에 비하면 훨씬 미미한 편.

서남부 이라크와의 접경지대 후제스탄아랍인의 땅이라 분리주의가 있는데 1980년대 당시 이라크는 후제스탄은 아라비스탄, 호람샤르는 모하마라라 불르면서 이라크의 영토로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8.3. 국적법[편집]


  • 이란인은 25세 전까지 이란 국적을 포기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로 귀화하고자 하는 25세 이하의 이란인은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복수국적을 허용하지 않지만 이란인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묵인해 주는 국가도 있다. 대한민국독일은 25세 이하의 이란 국적자가 귀화를 신청하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본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로 분류하여, 이란 국적을 유지하면서 자국 국적을 취득하여 복수국적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 이란인과 결혼한 여성 외국인 배우자는 비자발적으로 이란 국적을 부여받게 된다. 한국인 여성이 이런 케이스에 해당하게 된다면, 대한민국 국적법이 대한민국 국적 자동 상실을 규정한 외국 국적 자진 취득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6개월 이내 국적보유신고를 하면 대한민국 국적이 소멸되지 않으며, 한국과 이란의 이중국적을 2년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2년 이내로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고 한국과 이란의 이중국적을 평생 허용받거나 또는 하나의 국적만을 선택할 수도 있다.

  • 2019년 이란 여성과 외국 남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에게도 이란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한국이 1998년부터 부계혈통주의에서 양계혈통주의로 바꾼 것을 보았을 때 상당히 늦은 셈.


9. 문화[편집]


이란을 얘기할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란은 아랍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래 내용에도 아랍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지만 이란과 아랍권은 오랫동안 대립하는 문명권이었다. 이란은 한때 페르시아 제국의 지위를 누렸고 인종도 언어도 문화도 산업도 다르다. 이란을 아랍권이라고 부르는 건 마치 한국인이나 일본인중화권 민족으로 취급하는 것과 같은 실례이고 이란인은 화를 낸다. 이란은 아리아인 계통의 농경민족이고 이란의 공용어인 페르시아어인도이란어파 계통이다. 반면 아랍인은 셈족 계통의 인종이고 전통적으로 유목민족이었고 아랍어셈어파 계통이다. 또한 아랍인은 주로 아프리카 북부, 아라비아반도 주변에 한정돼 분포하지만 이란인종페르시아인 외에도 터키의 쿠르드족, 아프가니스탄파슈툰인, 파미르 고원파미르인과 같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종교와 사용 문자에 있어서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긴 하나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고 (시아파는 그외 이라크에도 많고 아프간, 예멘 등에 일부 흩어져 있다) 아랍의 수니파(이란, 이라크 외 대부분의 아랍 이슬람국 들)와 크게 대립을 하고 있다. 즉 이란은 이슬람국이지만 아랍국은 아니다. 이란과 아랍의 관계는 터키와 아랍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문명권이라고 보면 된다.

이란에는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을 좋아하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만날 때마다 안부인사를 몇 차례나 주고받고, 처이(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모습은 이런 문화에서 기인한 것.

이란인들의 사랑은 각별하다. 어디를 가든 차는 빠지지 않는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도 마시고, 가게에 물건 사러 갔다가 마시고, 버스 운전하면서도 마시고, 짬이 나면 설탕이나 사탕을 듬뿍 넣은 차를 시도때도 없이 마신다. 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으면 차장이 차 같이 마시자고 주기도 한다. 택시에서도 준다. 심지어 여자를 꼬실 때도 차 마시고 갈래?라니 말 다했다.

손님 대접에 큰 신경을 쓰며, 아직도 시골동네에 놀러가면 나를 초대한 친구의 가족들은 물론 거짓말 조금 보태 근처에 사는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몰려와 함께 밥을 먹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낸다.[32][33] 외부인에게 뭔가 베푸는 일에 주저함이 없는 편인데, 돌아다니다가 곤란에 처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생면부지의 현지인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날이 갈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정도의 호의가 일상적으로 오고간다. 몇 번 받다 보면 내가 다 미안해질 정도.

물론 지역에 따라 온도차는 조금씩 있다. 또한 우리나라도 과거에 길손들에게 일상적으로 호의를 베풀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하자면, 이란의 이런 문화도 도시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조금씩 약해질 듯 하다.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도 강한데, 우리나라의 빈말과 유사한 '터로프'가 대화에 일상적으로 묻어난다. 가면을 쓰고 자기의 본심과는 다르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어, 진심으로 편의를 봐주는 줄 알고 덥썩 물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즉 "우리집에서 편하게 있어~"라고 하길래 정말로 남의 집에 드러눕고 편하게 있다가는 집주인의 뚜껑이 열릴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인의 정서와 유사한 구석이 꽤 있어 흠칫 놀랄 때가 많다. 물론 이러한 정서는 2020년대에 들어선 현재는 중장년층 이상의 이란인에게서 한정적으로 나타난다.


9.1. 문학[편집]


페르시아어페르시아 문자는 중동 지역의 유구한 전통 링구아 프랑카(국제어)로 이슬람 세계의 지식인의 언어와 문자로 쓰였다. 특히 이란 사람들은 수필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가끔 뉴스 아나운서가 시를 한 수 읊는다든가,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유명한 시인의 생가가 무사한지의 소식을 꼭 전하거나 시인의 묘에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을 지경. 실제로 피르다우시, 하페즈, 오마르 하이염, 사디, 잘랄 웃 딘 루미 등 전통적으로 유명한 시인을 수없이 배출해낸 나라.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오마르 하이염의 시집 <로버이여트>는 19세기에 서구에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루미의 시집은 페르시아어로 된 쿠란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란의 영화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시선(詩仙) 이태백이 이란계라는 설마저 있다.[34] 그 외에도 중동인들은 시를 매우 사랑하여 시 낭송으로만 이루어진 오디션 프로그램도 있다.


9.2. 영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란 영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란은 아시아에서 영화산업이 강세를 보이는 국가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국 영화시장이 그리 크지않고, 검열이 심한 가운데서도 굵직한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영화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란 영화를 세계에 알린 이란 뉴 웨이브의 기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35],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아쉬가르 파라디, 국가안보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20년간 영화 창작금지와 출국금지 조치를 당했던[36] 것으로도 유명한 자파르 파나히, 그리고 모흐센 마흐말바프[37]등의 감독들이 대표적이다.[38] 배우로는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타라네 알리두스티가 유명하다.


9.3. 스포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란/스포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4. 실용적인 건축[편집]


파일:바드기르.jpg
냉방시설로 바드기르 (), 영어로는 Wind catcher 로 표현되는 시설이 있다. 야즈드 같은 옛 도시마다 건물에 세로로 길게 구멍이 뚫린 굴뚝 형태의 구조물이며, 하단의 물과 만나 증발하는 과정에서 내부의 온도를 최대 10도까지 낮춰준다 한다. 이란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걸프 아랍 국가들의 구도심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바드기르의 도시로 유명한 야즈드에는 무려 34m 높이의 바드기르도 있다.

난방시설은 일본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바로 '코르시'()인데 겨울이 되면 탁자 밑에 불을 때는 장치를 설치하고 그 위를 카페트로 덮은 뒤, 그 안에 다리를 집어넣고 석류를 까먹는다는 것이다. 고타쓰와 아주 비슷하다.(사진)

파일:이란  풍차.jpg
파일:아스바드.jpg
의외로 유럽 전원 풍경의 상징 중 하나인 풍차가 본래 중세 이란에서 발명된 것이다. 이란 동부 레자비 호라산 주의 나쉬티반에 가면 10세기부터 내려오는 현존하는 최고의 풍차가 있다. 지금까지도 기능하고 있어 경탄을 자아낸다. 이란어로 풍차는 아스바드라 불린다.


10. 지리[편집]


파일:케르만샤 2.jpg
자그로스 산맥 중에 있는 주요 도시 케르만샤의 전경

파일:이란 고원.jpg
이란고원의 평범한 도시. 사진은 샤흐레코르드 인근의 하프셰잔이다.

1,648,195km²(한반도 전체 면적의 8배)에 이르는 땅 면적은 서아시아 지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넓은 나라다. 아시아 전체에서도 중국(9,640,821km²) - 인도(3,287,263km²) - 카자흐스탄(2,724,900km²) - 사우디아라비아(2,149,690km²) - 인도네시아(1,904,569km²) 다음으로 큰 나라다. 한반도의 8배가 넘는 나라답게 엄청나게 더운 사막성 기후와 더불어 눈이 엄청 내리거나 춥고 시원한 날씨를 가진 알브로즈 지역이 골고루 자리잡고 있다. 알브로즈 지역에 위치한 이란 최고봉인 다마반드 산(Damavand Mountain, 5,610m)을 겨울에 보면 그야말로 히말라야급으로 눈이 와 쌓인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39] 또한 사계절이 뚜렷하고 숲이 우거진 지역도 꽤 있다.[40] 북쪽으로 갈수록 무진장 추운 지역도 있다. 이게 이란을 남북으로 나누면 북부지방은 대한민국과 거의 같은 위도에 있고 이란 최북단은 북한의 중남부지역인 평안남도와 비슷한 위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남쪽인 것도 아니다. 이란 서북부 이란령 아제르바이잔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중부지방과 비슷한 위도이고 우르미아와 타브리즈서울과 위도가 같다. 그리고 이란 최북단은 평양보다도 북쪽에 있다. 당장 수도인 테헤란만 해도 일본의 도쿄, 전라북도 전주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과 거의 같은 위도에 속한다. 다만 남쪽은 대한민국보다 분명히 남쪽에 있으며 최남단이 위도상으로 대략 대만이나 방글라데시 북쪽과 비슷한 저위도이다. 이때까지 이란에서 기록된 최고기온은 섭씨 70.6, 최저기온은 섭씨 -36.0이다. 더운 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축에 속하며 여름에는 50도가 넘어가는 맹렬한 폭염이 맹위를 떨치며 추운 곳은 한국의 강원도만큼 추워지기도 한다.

파일:사막 이란.png

이란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무덥고 뜨거운 곳이 존재한다. 이란의 남동부에 위치한 루트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최고 기온 섭씨 70.6도라는 엄청난 더위로 위용을 떨쳤다. 어찌나 더운지 박테리아들이 자동으로 멸균되어 우유가 상하지 않을 정도이다.[41]

현재 유일하게 아시아치타가 서식하는 지역이기도 한데, 이란마저도 아시아치타가 멸종위기이며 그 숫자가 70마리 정도 밖에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시아치타는 역사서에서도 페르시아 왕실 엽수로 사용한 유서 깊은 이란의 자랑거리인지라 당국은 악착같이 보호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갈수록 늘어가는 로드킬 사고와 밀렵이 아시아치타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10.1. 기후[편집]


파일:CIT Iran.png
[1] 외교부 명칭은 이란 회교 공화국이다.[2] Jomhuri-ye Eslāmi-ye Irān[3] Esteqlāl, Āzādi, Jomhuri-ye Eslāmi[4] 시아파에서 말하는 구세주.[5] 대한민국 외교부의 표기.[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표기며, 주한 이란 대사관의 정식 명칭이 주한 이란이슬람공화국 대사관이기도 하다.[7] 서력 1979년 2월 11일[8] 미국 등 서방과의 연관성도 부인할 수 없다. 선교사 다수의 국적은 대부분 미국이나 한국, 유럽이기 때문이다.[9] 이란의 토착 종파인 오리엔트 정교회는 위협이 되진 않아 박해가 덜하지만 가톨릭, 개신교 같이 외래 교파에 선교를 열심히 하는 종파는 심게 탄압한다.[10] 이란이 이스라엘을 항상 비난하는 중요한 주제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이다.[11] 이란에서는 일요일은 물론 주변 아랍 국가에서 주말 휴일인 토요일마저도 평일로 취급해 토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출근한다. 다만 일부 사업장은 목요일을 반(半) 공휴일 취급하여 주 5일제 시행 이전의 토요일처럼 오전 근무만 한다.[12] 페르시아력 새해 연휴 4일, 석유 국유화 기념일. 그 외 이슬람력에 따라 매년 바뀌는 공휴일이 더 있을 수 있다.[13] #[14]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있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100점, 언론자유 최악은 0점,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 #[15] 그래서 사우디 등 아랍 왕정 국가들은 이란 방식으로 왕정이 무너지는 것을 매우 경계해 왔다.[16] 한국에서는 흔히 '최고지도자'로 번역하며 영어로는 supreme leader를 쓴다.[17]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철저한 수니파라서 자국 내의 시아파를 탄압했기 때문에 시아파 국가 이란과 매우 적대적이었다. 특히 이란 외교관을 처형하기도 해서 이란과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다. 그에 따라 이란은 탈레반을 증오해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에는 미국에 정보 협력을 해주기도 했던 터라, 아프간에 대한 이런 태도를 다르게 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18] 이란은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4년의 12년 학제이다. 이란에서 고등학교 1학년은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한다.[19] 아프가니스탄은 이란과 달리 한국 외교부에서도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되어 있다.[20] 이때문에 외국인 여성들도 이란 관광을 기피한다. 다만 이란의 히잡은 보면 알지만 정말 보수적인 중동나라 복장에 비해 정수리가 드러날 정도로 노출이 많고 상대적으로 널널하다. 그래봤자 오십보백보긴 하다.[21] 이란의 유명한 배우이자 모델인 사다프 타헤리안도 이것 때문에 아랍 에미리트로 망명을 가 현재까지도 이란으로 돌아오지 않고 해외에서 활동한다.[22] 이러다보니 비정상회담에서 나온 이란 대표 모센도 정부의 히잡 강요가 심하며 자율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23] 사우디의 종교경찰인 무타와와 비슷하다.[24] 해외로 떠나는 이란인도 많은 것도 있다.[25] 이란은 제조업이 취약해서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비싼 관세를 매기다보니 물가가 비싸다.[26] 쿠르드인은 무슬림이지만 세속주의를 추구해 이를 혐오하는 이란 정부에게 심한 차별과 탄압을 받는다. 사실 팔레비 왕조도 쿠르드인을 탄압했지만 이는 모두 분리주의 때문에 탄압한것이지 순응하며 살 경우엔 탄압하지는 않았다.[27] 이란계 미국인 만화가와 작가가 만든 만화 '자라의 파라다이스'에서 이를 잘 보여준다. '자라와 파라다이스'는 이란의 악명 높은 인권 탄압과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어 출판되었을 때 무려 20개국에서 극찬을 받았으며 이란의 국가 이미지를 크게 떨어뜨렸다. 이 때문에 작가와 만화가는 현재 이란 정부에게서 살해 위협을 받고 있어 실명을 밝히지 않고 필명으로 활동한다.[28] 이란 신정이 적대하는 이스라엘은 이러한 점을 들어서 이란이 다에시와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한다.[29] 대중매체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은 아니지만 이란을 배경으로 하는 첩보물이라면 충분히 등장한다. 홈랜드 시즌3 피날레 에피소드에서 이런 방법으로 교수형을 진행한다. Apple TV+의 드라마 테헤란 시즌 1의 1화에서도 묘사되어 있다.[30] 마찬가지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전해 아랍 가요계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동성애 혐오가 극심한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는 유일한 나라다.[31] 파키스탄의 이슬람 관련 사건사고는 주로 아프간 접경지대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아프간과 파키스탄은 별로 사이가 안 좋다.[32] 영국남자 채널에 출연한 이란인 자파가 밝힌 일화로, 자신이 영국으로 이민 왔을 때 돌봐줬던 유모를 모시고 이란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새벽에 도착했음에도 6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몰려나와 환영해줬다고 한다.[33] 채널의 메인 프로듀서인 세피의 아버지다.[34] 정확히는 페르시아계 소그드인, 이건 어디까지나 그냥 설이지만 중국 역사, 특히 나라 시대에는 많은 민족들이 뒤엉켰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예 신빙성이 0%인 건 아니다.[35] 한국에서도 개봉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체리 향기 등이 유명하다. 그 시절엔 키아로스타미 작품 외에도 천국의 아이들 등 이란 뉴 웨이브 영화가 시네필들 사이에서 나름 유행을 했던지라, 90년대 중후반 영화 프로그램에서도 몇 번 소개가 되곤 했었었다.[36] 물론 이 상황에서도 파나히 감독은 자신의 재판 중 가택연금 기간의 삶을 iPhone캠코더로 찍어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라는 이름의 영화로 만들었고, 편집본을 컵케익에 쑤셔박은 다음 그걸 프랑스행 항공편으로 보내서 기어이 칸 영화제에 출품, 개봉시켰다. 이후에도 아들을 외국에 보내 영화를 만들게 하거나 아니면 후속작 택시처럼 블랙매직 포켓 시네마 카메라만으로 찍어대는 거 보면 이란 정부에서도 거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37] 칸다하르, 그리고 최근작인 대통령 등이 유명하다.[38] 다만 이란 뉴 웨이브의 기수들은 대부분 타국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데, 어떻게든 자국에 남아있는 파나히 등에 대한 탄압도 생각처럼 심하지는 않은 편이다.[39] 때문에 이란의 스키장들은 모두 이란 북부 엘부르즈 산맥 지역에 몰려 있다.[40] 배틀필드 3의 카스피해 접경지대 맵이 이란/투르크메니스탄 국경 주변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비행기 타고 높이 올라가 보면 알겠지만 이란 쪽으로도 지평선 끝까지 초록색이 펼쳐져 있다.[41] 다름이 아니라, 파스퇴르우유 저온살균 온도가 63도다. 여기 기온은 그것보다 더 높은 셈이다.


파일:Cfa RashtKOR.png
파일:BSk TehranKOR.png
파일:BWk IsfahanKOR.png
파일:BWh ZahedanKOR.png}}}
이란 라슈트의 기후 그래프
이란 테헤란의 기후 그래프
이란 이스파한의 기후 그래프
이란 자헤단의 기후 그래프

국토의 대부분이 건조 기후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막 기후(BWh)와 한랭 반건조 기후(BSk)가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 카스피해와 접하는 일부 도시들만 지중해성 기후(Csa)와 온난 습윤 기후(Cfa)로 분류된다.

기후 분포가 여러가지 섞여 있다 보니 대부분 도시들이 점이지대에 놓여 있다. 수도인 테헤란의 경우, 한랭 반건조 기후(BSk)와 지중해성 기후(Csa)의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도시인 마슈하드한랭 사막 기후(BWk)와 한랭 반건조 기후(BSk)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고지 지중해성 기후(Dsa, Dsb, Dsc) 지역도 있으나, 이는 단순히 해발 고도가 높아 최한월이 영하로 떨어지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10.2. 갤러리[편집]


파일:이란 무지개.jpg
호르모즈 섬의 무지개 산

파일:이란 문양 사막.jpg
파일:이란위성.png
파일:이란 사막 4.png
파일:이란 셈난 산맥.jpg
이란의 카비르 사막을 위성 사진으로 보면 매우 다채로운 모습이 보인다.


10.3. 물 부족[편집]


물부족은 이란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고대부터 이란의 물부족은 정말 심각했는데 생명을 주는 강이라는 뜻의 자얀데 강(자얀데루드)의 경우 천 년 넘게 이란 중부의 도시 이스파한의 젖줄 역할을 했지만, 오랜 개발의 역사와 인구증가로 인한 물수요의 증가로 점점 말라가 모래만 남은 황량한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 물이 말라가는 사막화도 심각하지만, 강수량도 세계 평균의 1/3인 200mm에 불과해서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는데 그나마도 기후 변화와 가뭄이 심해지면서 급감하고 있다. 그래서 지하수를 퍼내는 방식으로 물을 조달하고 있지만 이조차 갈수록 수위가 낮아져 바닥을 드러낼 정도다. 비록 세계 최대의 호수 카스피해와 접하고 있다지만, 카스피"해"의 물은 바닷물에 준하는 짙은 염분을 함유하고 있어 사실 쓸모가 없다.

물부족은 농업에도 큰 영향을 미쳐 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망치고 파산해 농촌의 실업문제가 심각하다.[42]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불과한 농업이 이란 수자원의 90%를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이 파산하다보니 식량 자급도 불가능해져 식량수입국[43]이 되기도 했다.

또한 이란의 도시와 마을들은 물부족이 심한 나머지 정부에서 통제하는 급수탱크에 의존한다.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대도시들도 예외가 아니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도시로 가는 수도관을 파괴해 물을 탈취하는 사건이 터질 정도. 중부와 남부는 아예 수원 자체가 없으며 물 공급률도 40%에 불과해 물부족이 이란에서 가장 심각하다. 그러다보니 이란에서는 이상적인 집이 물이 마음껏 나오고 수영장이 있는 집이다. 물부족이 심한 나머지 부자집들조차 수영장을 가지기 힘들다.

수자원 문제 때문에 주변국들과도 갈등이 심해졌다. 이라크와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수자원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남서부 후르 알 아짐 습지도 고갈될 위기에 처했고, 북동부 국경 하리루드 강은 비슷한 처지의 아프가니스탄이 농업용수 사용을 위해 상류를 막아 이란의 제2도시인 마슈하드가 마실 물도 부족한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과는 헬만드 강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남동부 하문스 지역에서도 갈등을 빚고 있다.

물부족은 오래 전부터 우려되었기에 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 지도자인 호메이니가 티그리스강을 반드시 차지하고자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있고[44] 산업화로 인한 물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수자원 고갈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란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수 담수화 산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지만 해수담수화로도 수자원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버거운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이사 칼란타리 전 이란 농무부 장관이 물부족은 미국이나 이스라엘보다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7000년의 역사를 지닌 이란이 지하수의 빠르고 기하급수적인 파괴가 지속된다면 20년 안에 살지 못하는 땅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한탄할 정도다.

파일:external/www.un.org/2013_06_08_water_scarcity.png

사실, 물부족은 이란 말고도 중동 나라들에게 심각한 사항이다. 물 부족 국가에서 나오듯이 이란과 앙숙이라는 이스라엘도 물 부족 국가임을 알 수 있으며 이스라엘 역시 이란이나 다른 아랍권 나라와 전쟁보다도 물부족으로 큰 위협이라고 비상이 걸린 상황이며 지도에 나오듯이 중동권 나라들 모두가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니,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역시 물이 풍요로운 게 아니라서 저 강들을 죽기살기로 가지려고 하는 상황이다.

한편, 2019년 1월 지하수 남용으로 인해 곳곳마다 싱크홀 문제에 시달려 이란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10.4. 이란의 행정구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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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display:inline-flex; vertical-align:middle; text-align: left"
이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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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헤란[45]
  • 이스파한
  • 타브리즈
  • 쉬라즈
  • 야즈드
  • 케르만
  • 니샤푸르
  • 마슈하드[46]
  • 라슈트
  • 카즈빈
  • 고르간
  • 코이
  • 아몰
  • 슈쉬
  • 페르세폴리스
  • 호라마바드
  • 카라지
  • 부칸
  • 아바단
  • 아바즈
  • 호람샤르
  • 람사르






























  • AP 비교정부정치학: 해당 과목에서 다루는 6개 나라 중 하나다.
  • 한국외국어대학교 페르시아어 이란학과가 존재한다.#

[42] 그러다보니 농촌 인구가 계속 도시에 몰리고 있어 이란의 도시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데다 도시에서 각종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이란뿐만 아니라 사막화가 심각한 중동과 아프리카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다.[43] 한국에도 수입되는 이란산 농산물(과일이나 견과류 등)은 무엇이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이건 가격이나 품질에서 우위가 있어서 수출하는 일부에 불과한 것이고 실상은 수입하는 양이 더 많다.[44] 이란은 인구가 수자원이 있는 동북부 호라산 지역, 북부 타바리스탄 지역, 파르스 서부, 남서부 지역에만 밀집되어 있고 다른 지역들은 인구밀도가 굉장히 희박하다.[45]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테헤란로가 해당 지명에서 유래했다.[46] 현직 라흐바르 알리 하메네이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