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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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 국왕 폐하의 군대
British Armed Forces | His Majesty's Armed Forces
파일:BritishArmedForces.svg
파일:영국군기.svg
명목상 통수권자
영국 국왕
(現 찰스 3세)
실질적 통수권자
영국 총리
(現 리시 수낙)
상비군
196,000명
예비군
37,000명
병역제도
모병제 / 왕실 징집제
육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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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227대
장갑차
(APCs/IFVs)
2,308대
견인포
126문
자주포
89문
다연장로켓
35문
수송 차량
12,611대

해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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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전투함 총합
75척
주력 수상함
8,000톤 이상 ~ 9,000톤 미만
방공구축함
6척
7,000톤 이상 ~ 8,000톤 미만
호위함
(+8척)
5,000톤 이상 ~ 6,000톤 미만
호위함
(+10척)
4,000톤 이상 ~ 5,000톤 미만
호위함
12척
6,000톤 이상 ~ 7,000톤 미만
초계함
1척
4,000톤 이상 ~ 5,000톤 미만
초계함
1척
1,500톤 이상 ~ 2,000톤 미만
초계함
8척
100톤 미만
초계함
18척
모함, 상륙함, 수송함
60,000톤 이상 ~ 70,000톤 미만
항공모함
2척
15,000톤 이상 ~ 20,000톤 미만
LPD
2척
잠수함
14,000톤 이상 ~ 16,000톤 미만
SSBN
4척(+4척)
7,000톤 이상 ~ 8,000톤 미만
SSN
5척(+2척)

공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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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대 전투기
29기(+19기)
4.5세대 전투기
137기
조기경보관제기
(AWACS)
(+2기)
전자전기
13기
공중급유기
9기
공군기 총합
498기
헬리콥터
312기
항공기 총합
663기

예산
국방비 총합
484억 달러
영국 국방부 홈페이지
1. 개요
2. 수뇌부
3. 인적 규모
4. 사관학교
5. 계급
6. 군복
7. 군장
9. 예산과 경제규모
10. 역사
10.1. 중세
10.2. 근대
10.3. 현대
10.4. 감축의 흐름과 서브프라임 사태의 영향
10.4.1. 육군 감축
10.4.2. 해군 감축
10.4.3. 공군 감축
10.5. SDSR 2015 이후
11. 특징
12. 한국과의 인연
13. 주요 부대
14. 총 전력
15. 주요 무기 및 장비
15.1. 1, 2차 세계대전기
16. 관련 문서
17.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영국군대이자 국왕의 사병.


2. 수뇌부[편집]


국왕 겸 영국군[1] 원수
(명목상 통수권자)
총리
(실질적 통수권자)
국방장관[2]
국방참모총장
국방참모차장
파일:royal2804_PA-71928461.webp
파일:리시 수낙2.jpg
파일:Grant_Shapps_Official_Cabinet_Portrait,_October_2022_(Sunak_ministry,_cropped).jpg
파일:토니 라다킨 경 - 영국 국방참모총장.png
파일:Commandant_General_Royal_Marines_2022.jpg
찰스 3세
리시 수낙
그랜트 섑스
해군 대장 토니 라다킨
해병 대장 그웬 젠킨스
육군참모총장
해군본부 제1해군경
해병대사령관
공군참모총장
합동군사령관
파일:Patrick_Sanders_salute.jpg
파일:Admiral_Sir_Ben_Key.jpg
파일:Commandant_General_Royal_Marines_2022.jpg
파일:Sir_Richard_Knighton.jpg
파일:Jim_Hockenhull.jpg
육군 대장 패트릭 샌더스
해군 대장 벤 키
해병 대장 그웬 젠킨스
공군 대장 리처드 나이튼
육군 대장 짐 하킨헐

영국군주임준위
육군주임준위
해군주임준위
해병대주임준위
공군주임준위

파일:Paul_Carney.jpg
파일:Carl_Steedman.jpg

파일:Warrant_Officer_Murugesvaran_Subramaniam.jpg
리처드 앵거브 해병 1등준위
폴 카니 1등준위
칼 스티드맨 1등준위
리처드 앵거브 1등준위
무루게스바란 수브라마니암 1등준위
참모총장 정도 되면 대체로 작위를 받아 Sir(남성)/Dame(여성)[3] 호칭이 붙는다. 게다가 지금은 왕실 의전 및 퇴역 참모총장의 의전용으로 쓰이는 원수(계급)가 상설 계급처럼 쓰이던 시절엔 Lord[4]도 있었으니 번역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자체적으로는 참모총장 보직이 각 군의 유일한 4성급 보직이지만, NATO군부사령관참모장도 대장이라서 영국군 대장 이 이 보직들에 가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은 독일군 역시 마찬가지.


3. 인적 규모[편집]


영국군은 23만 1천명으로 19만 4000명의 현역, 37000명의 예비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2023년 기준) https://www.globalfirepower.com/country-military-strength-detail.php?country_id=united-kingdom

4. 사관학교[편집]


미국의 사관학교들이 4년제로 졸업과 동시에 소위임관하는 것과 달리 영국의 사관학교들은 고졸학력 또는 다른 대학에서 학위를 따거나 입학 조건을 구비한 다음에 들어오게 된다.

이들은 의무적인 교육기간은 1년이 안 된다. 한국으로 치면 육군3사관학교 또는 학사장교와 비슷하다.[5] 각 사관학교에 대한 설명은 아래의 항목을 참고할 것.

또한, 영국의 왕실은 남성.여성 가리지 않고 왕실의 규칙상 의무적으로 왕자 공주 등 왕실의 구성원이면 반드시 남군/여군 장교로 반드시 입대하도록 조치를 하는데, 이들은 왕실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입학 조건은 별도로 구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교로 지원시 지원자의 신분귀족 신분인 경우에는 일반인보다 우선적으로 선발되는 혜택을 받는다.


5. 계급[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영국군/계급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군복[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군복/영국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군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군장/영국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구르카[편집]


영국 정부에서는 구르카족을 영국군 인사통계를 낼 때 따로 낸다. 관련자료 2014년 10월 1일 기준으로 2,780명의 구르카가 영국군에서 근무 중이다. 2011년에는 3910명에 달했지만 군축세로 많이 줄어들었다. 구르카족은 5년을 영국군에서 복무하면 영국 시민권을 얻는다. 그리고 전원 영국 육군에서 근무한다. 1947년에 맺어진 TPA 조약으로 구르카는 네팔에 거주함에도 네팔군, 인도군, 영국군에 지원할 수 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에도 구르카 전역자를 특채하는 제도가 있었고 싱가포르엔 아직도 남아 있다. 1947년에 인도 제국군의 구르카 부대 일부가 영국군으로 넘어왔고 일부는 인도군에 남았기 때문에 영국과 인도에서 자국 국적자가 아닌 네팔인 구르카를 특채하는 제도가 여전히 남은 것.


9. 예산과 경제규모[편집]


영국 역대 국방 예산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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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전체 명목 GDP
(10억달러; 약 1조원)
경제성장률
영어위키 국방비 자료
SIPRI(10억달러; 약 1조원)
2000년
1,496
4.3%
35.8
2001년
1,485
2.1%
35.7
2002년
1,623
2.2%
39.3
2003년
1,877
3.9%
46.0
2004년
2,221
3.1%
52.5
2005년
2,324
3.2%
55.2
2006년
2,486
2.7%
57.3
2007년
2,858
3.4%
64.7
2008년
2,709
-0.7%
66.9
2009년
2,217
-5.1%
60.4
2010년
2,296
1.6%
58.2
2011년
2,464
1.1%
59.7
2012년
2,470
0.2%
61.0
2013년
2,523
1.7%
57.9
2014년
2,989
2.9%
60.8
2015년
-
2.3%
65.8
2016년
-
-
-
2017년
-
-
-
2018년
-
-
-


냉전이 끝난 뒤 영국의 GDP 대비 국방비는 NATO 회원국의 마지노선으로 인식되곤 하는 2%대 중반에 머물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보수당 정부가 대대적인 긴축재정에 들어서면서 영국의 국방비 성장세는 사실상 정체했다. 지금은 2.07-2.1% 수준이며, 보수당 정부는 국방비를 GDP 2% 이하로 절대 떨어뜨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 국방비는 국민의료보험만큼이나 보호받는 예산이며, 언제나 실질 성장률보다 더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5-16 FY부터는 실질 국방비가 다시 큰 폭으로 상승 전환됐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긴 하다.


10. 역사[편집]



10.1. 중세[편집]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e35d23cd5b1b894ce408532046c7755a.jpg
11세기부터 잉글랜드의 지배층을 점령한 노르만족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전투민족으로, 이들의 주축이되는 노르만 기병대는 당시 유럽 최고의 기병대 중 하나였다. 노르만 왕조가 열리면서 앵글로색슨계열의 강력한 중보병인 허스칼과 유럽 내 손꼽히던 노르만 기병대가 합동 훈련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사자심왕 리처드 1세의 3차 십자군이 살라흐 앗 딘의 군대를 연파한 것으로 유명하며, 제 3차 십자군 전쟁의 주력은 잉글랜드군 8,000명과 프랑스군 10,000명의 연합군이다. 물론 필립 왕이 귀환한 뒤에는 리처드가 완전히 지휘했다, 중세에는 널리 유행하던 석궁보다 웨일스로부터 전래된 장궁을 주력으로 보유하고 장궁부대를 상설[6]했을 정도다. 말그대로 기병, 보병, 궁병 모두 최상급의 노하우를 보유했었다.

한 때 "무영토왕" 존 왕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프랑스 내 잉글랜드 영토의 상당수를 잃기도 했으나, 백년전쟁 당시 장궁병을 앞세워 프랑스 기사군을 크레시 전투, 푸아티에 전투, 아쟁쿠르 전투에서 여러 차례 격파함으로써 명성을 날리기도 한다. 당시 중세로선 상당히 파격적인 군대라고도 할수가 있었다. 평민이 대다수인 보병 궁병 위주에 잉글랜드 중기병들도 말에서 내려서 보병들 틈에 섞이는 데다 말에서 내린 중기병들이 다시 말에 올라타서 돌격을 하는 등 상당히 기보궁 모든 병과를 활용하는 군대였다. 하지만 프랑스측이 잔 다르크가 나와 프랑스군의 사기를 돋구고 반격을 함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프랑스가 100년전쟁에서 승리한다.

스코틀랜드잉글랜드와 여러 차례 치열한 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농업생산성이 떨어져 인구가 열세였으며 장기전에서는 자주 발려 왔다. 하지만 용병으로는 유명하여 중세 용병의 대표는 이탈리아도시국가들과 스코틀랜드 용병이 가장 유명했으며 스위스인들이 본격적으로 용병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가장 용맹한 용병으로 명성을 떨쳤다.


10.2. 근대[편집]


현대 영국 육군(British Army)은 1707년 연합왕국 성립시 잉글랜드 육군(English Army)과 스코틀랜드 육군(Royal Scottish Army)의 통합으로 생성되었다. 물론 잉글랜드 군은 이전부터 역사상 계속 쭈욱 있어왔다. 영국의 지리적 특성상 상비군이 잘 발달 하지 않았다지만 상비군은 계속 존재해왔고 아예 폐지한 것은 아니다. 대륙 영토의 상실/평시의 비용 문제/재원이 많이 소요되는 해군의 필요성 등으로 인해 육군력이 상대적으로 저평가/약화의 길을 걸었을 따름이지 말이다. 그렇기에 크롬웰의 군대가 영국 육군의 기원이라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정확한 사실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중세때 나름 전면전에서 깽판치던 나라였음을 잊어선 안된다.

영국 내전시 의회와 국왕이 충돌하자 런던을 탈출한 찰스 1세는 그를 따르는 군대를 규합하여 초기에는 의회군을 압도했으나 올리버 크롬웰의 사병집단인 철기병대(Ironsides)가 등장하자 전세가 역전된다. 그리고 이 철기병대의 강한 군기와 훈련법을 기초로 의회파 군대 전체를 훈련시킨 것이 바로 'New Model Army' 즉, 새로운 모델의 군대다. 물론 크롬웰의 군대만이 의회파는 아니었고 크롬웰의 부대가 조직력과 전공이 가장 컸기 때문에 왕당파에 승리하고 나서도 영향력이 컸다. 그리고 크롬웰을 비롯한 의회세력이 결국 찰스 1세를 처형하면서 사실상의 '영국 육군'이 되었다. 최종적인 내전 종결 직후에 의회는 이 강력한 군 조직을 해산하려 했으나 그에 실패했고[7], 올리버 크롬웰 사후 1661년 왕정 복고가 이뤄 지면서 찰스 2세를 따르는 군대와 현존하는 군대를 긁어모아 다시 잉글랜드 군이 재건되었다. 이 와중에 신편제군 부대 상당수가 찰스 2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영국군 근위대 소속인 콜드스트림 근위 연대와 블루스 앤 로얄스 제 1 근위 용기병 연대가 바로 이 때 합류한 부대들이다. 블루스 앤 로얄스 제 1 근위 용기병 연대는 엄밀히는 왕립근위기병연대와 1왕립용기병연대가 합쳐진 것인데, 왕립근위기병연대의 근간이 올리버 크롬웰이 창설한 흉갑기병연대다. 이들이 신편 잉글랜드 군에 합류했다.

파일:external/3.bp.blogspot.com/English+Civil+war.jpg
영국 내전 당시의 New model army

이후 권리장전으로 영국의 왕은 성문법상으로 상비군을 가질 수 없게 되었으며,[8] 그런 탓에, 현재의 영국 육군은 해공군과 달리 '왕립'[9]의 칭호를 받지 못하고 단순히 브리티쉬 아미(British Army)라고만 불린다. 그러나 육군 사관학교는 왕립의 칭호를 받았다. 그 외에도 예하부대 단위로 왕립 타이틀을 달고 있는 곳이 많으며,[10] 이는 해군이나 공군의 예하부대에 없는 것(애초에 '왕립~군'이 이미 붙었으니 무의미)과 대조된다. 다만 이는 대체로 의장으로서의 의의가 큰 군단, 연대 등에 해당하고, 실제 기능 편제인 사단, 여단 등에서 나타나는 일은 적다. 봉건제 하에서, 영국군의 시초는 각 지방 영주들이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사병들에서 기초한다. 때문에 현재의 영국군 부대는 'XX 공작의 의용병'이라든지 'ㅁㅁ지역 방위대' 같은 식의 요상한 부대명칭이 많은데, 실제로 이들 중에는 300년이 넘어간 부대 역사를 지닌 곳도 많다.

반면 해군은 예나 지금이나 전통적으로 영국의 국가 원수인 국왕 일가에게 충성을 바치는 군대다. 때문에 영국 해군은 일반적으로 왕립해군, 즉 로얄 네이비(Royal Navy)라고 불리며 함선 명칭의 접두어도 국왕 폐하의 함선이라는 뜻의 HMS(His/Her Majesty's Ship/Submarine)가 붙는다. 1차대전 말에 창설된 공군 역시도 왕립공군, 로얄 에어포스(Royal Air Force)다. 2차대전 관련 자료에서 많이 보이는 RAF가 바로 왕립공군.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해적과 무장 상선을 모아 편성한 해군이 스페인무적함대를 격퇴한 이후 해군 강국이 되었다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로 해군력이 신장된 것은 올리버 크롬웰이 "항해 조례"를 발표하여 네덜란드의 무역 선단의 힘을 꺾고 네덜란드 해군과와 대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네덜란드 해군과의 건함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게다가 네덜란드가 프랑스에게 연달아 털려 국력이 쇠퇴하여 해군력도 약화되면서- 사실상 유럽 최강 해군국으로 떠오르며 세계의 바다를 주름 잡기 시작한다. 그러나 초기에는 해군력만으로는 경쟁국을 누르기 어려워 아메리카 대륙 연안의 스페인 세력을 누르기 위해 사략선 허가를 남발했다가 카리브해해적 전성시대를 열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와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우세한 해군력으로 상대의 본국으로부터의 지원과 보급을 끊고 약체화된 적 지상군을 격퇴하는 전법으로 번번히 프랑스를 엿먹인다. 게다가 프랑스의 최전성기중 하나인 루이 14세 시대에는 걸출한 육군 지휘관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이 등장하여 군 제도를 일신했고, 그 결과로 당시 육상에서 최강이라던 프랑스군을 연달아 격파하기도 한다.

파일:external/www.britishbattles.com/25th-foot.jpg
7년 전쟁 중 민덴 전투의 영국군

7년전쟁에서 프랑스와의 전쟁을 승리하며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 세력을 내쫓는가 싶었으나, 새로운 영토의 현지 원주민을 영국왕의 신민으로 받아들이려는 정책이 식민지 개척민들의 반발을 사고,[11] 이후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소모한 재원 마련을 위해 영국 정부가 새로운 세금을 거두려 하자 이에 반발하여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초전에는 제대로 전열을 갖추지 못한 13개 식민지 저항군인 대륙군을 찰스 콘월리스 등의 무능한 지휘관 투성이의 영국 육군[12]이 화력과 선진적인 전열보병 전술로 압도해 버렸지만, 영국에 한방 먹여줄 기회만 엿보던 프랑스가 프랭클린 등의 식민지 특사들에 의해 대규모 군사 및 경제적 지원을 해준 덕에 13개 식민지 대륙군의 총체적 승리로 미국이 독립해 버린다.

그리고 프랑스는 이 여파로 왕실재정이 파탄나서 내부 갈등이 심각해진다. 그 결과 프랑스 혁명이 나고 최종적으로 나폴레옹 전쟁으로 확대되자, 영국군은 강력한 해군을 활용하여 프랑스군의 해외 진출을 막고 프랑스와 동맹을 맺으려는 일부 국가들을 응징한다. 특히 프랑스 이집트 원정군의 발을 묶은 아부키르 만 해전과 스페인-프랑스 연합함대를 괴멸시킨 트라팔가르 해전이 유명하며 이런 영국 해군의 강력함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대륙 봉쇄령을 내렸다가 오히려 프랑스와 유럽 경제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영국은 포르투갈과 동맹을 맺어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 참전, 스페인 게릴라를 지원하며 나폴레옹의 후방을 교란시킨다. 나폴레옹은 실제로 "이베리아 전선이 내 위장을 더 쓰리게 한다."라고 말한 바 있으며, 나폴레옹이 위장병을 갖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이 무렵 요크 공작 프레드릭의 주도하에 육군을 개혁하여 연공 서열 제도를 도입하여 매관매직 제도를 보완하고 군의 훈련 체계를 표준화, 상대적으로 약체였던 육군력을 강화하기 시작한다. 19세기까지 영국 육군은 귀족이 자신이 창설한 각 부대를 지휘하는 것을 당연히 여겨 매관매직제가 제도화되어 있었다. 이는 장교지위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돈을 내고 진급이 가능하고 보다 상급부대도 지휘할 수 있는 제도였다. 그러나 이런 제도는 무능하고 돈만 많은 자들이 군을 장악하는 문제점이 있었으며, 이런 잘못된 제도의 결과는 크림 전쟁에서 보여준 영국군의 삽질이었다. 또한 각 계급에도 시세가 매겨져 있어 계급을 사고 파는게 가능했다. 하지만 역시 장성급은 어느정도 근속과 실적을 요구했다. 또한 아무때나 계급을 살수는 없고 최소 근속년수를 채워야 진급할 수 있었다. 또한 샌드 허스트 육군 사관학교를 설립하여 보다 전문적인 장교 양성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자, 영국이 자랑하는 불세출의 명장 아서 웰즐리를 앞세워 이베리아 반도를 석권하고 남프랑스를 장악하여 나폴레옹을 몰락시키는데 일조하고, 이후 재기한 나폴레옹을 프로이센군과 함께 워털루 전투에서 아슬아슬하게 박살낸다. 나폴레옹 전쟁당시의 전열보병은 각국을 상징하는 다양한 색상의 군복을 착용했다. 프랑스는 파란색을 쓰고, 대영제국빨간색을, 오스트리아흰색, 러시아 제국초록색, 프로이센남색, 오스만 제국은 전열보병개념은 없으나 황토색~주황색이며, 미국은 프랑스군 군복 복제의 영향을 받은 흑단색 군복이다.[13]

파일:external/britishbattles.homestead.com/British_square_at_Waterloo_op_544x744.jpg
카트르브라 전투당시의 28보병연대

매관매직, 태형 같은 후진적인 면모[14]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은 실탄을 사용하여 훈련에 임하였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값비싼 실탄을 훈련에 사용하는 몇 안되는 나라였다. 이는 원래 부유한 영국이기에 가능했다. 프랑스군만 해도 실탄은 물론이고 수석총부싯돌조차 아까워서 나무조각을 대신 끼워 훈련했을 정도였다. 당대 유럽국가중 가장 빠르고 정확한 머스킷 사격을 퍼붓는 등 실전에 있어서는 맹위를 떨쳤다. 이 빠른 장전속도를 활용하여, 2열 정도의 가늘고 긴 대열을 형성해서 가급적 모든 화력을 일시에 적에게 쏟아붓는 레드 코트만의 전술은 씬 레드 라인(Thin Red Line, 가는 붉은 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타군에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워털루에서도 바로 이 전술로 그전까지 돌격이 막힌 적이 없던 나폴레옹의 근위대를 개발살낸다. 다만 주의할점이 당시 프랑스군은 극한의 한계에 달한 시점였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러시아 원정의 후유증)

크림 전쟁까지 전통적으로 영국 육군은 최고 사령부 역할을 근위대가 담당했으나, 독일군이 장군참모부(Generalstab)를 설치하여 효율적으로 군을 통제,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군을 관광 시켜주는 것을 보고 참모부를 설치하게 된다.

식민지 쟁탈전쟁에서 영국군은 라이벌 프랑스를 상대로 비록 실제 전투는 벌이지 않았으나 식민지 땅따먹기란 이렇게 하는 거란다를 시전하며 우세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보어전쟁에서 현지주민과 연계된 게릴라 전법에 제대로 당하며 쓴맛을 본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현지 주민들을 모조리 수용소에 가두고 게릴라를 소탕하여 보어전쟁에서 어떻게든 승리하지만 국내외에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영일동맹이 체결되는 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남아프리카에서 워낙 악명을 샀고, 동시에 러시아를 왜 막아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데에 실패하는 바람에 동아시아동남아시아에 진출한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영국과 협조하려 들지 않으려 했다. 때문에 동아시아 내에서 러시아의 세력이 커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던 일본제국영일동맹을 맺었고, 또한 필리핀에서의 우위권과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인정받아야 했던 미국과도 여러 협정을 맺게 됐다. 이런 이유로 1차 영일동맹 조약은 대한제국의 명목상 독립을 "보장"하는 조항을 넣는 등 일본과의 다소 간의 불협화음이 있었다.[15] 이후 일본제국은 영국과 미국의 지원 의사를 확인하고 러시아 제국에 전쟁을 선포하였는데, 해당 시점에서도 영국은 일본제국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였고 영국 내 여론은 무모하게 전쟁을 건 일본을 비웃었으나, 예상 외로 일본제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며 영국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동아시아 문제가 전개되게 됐고, 미국의 주선 아래에 일본과 러시아가 평화협정을 맺자 영국은 일본의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어쨌든, 나중에 이러한 수용소 제도는 소련스탈린나치히틀러라는 두 악당이 청출어람 수준으로 따라하게 된다.

또 보어전쟁을 거치며 영국군은 전체적으로 카키색 전투복을 채용하면서 레드 코트에서 토미로 탈바꿈하게 된다. 붉은색 제복 자체는 예복이나 군악대, 의장대의 행사복 등으로 아직도 남아있으며, 각국에서는 이들의 전훈을 본받아 위장색을 도입하게 되지만 여전히 정신 못차린 국가가 하나 있긴 했다. 결국 그 정신 못차린 프랑스도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수많은 병사들이 과녁판이 되어 쓰러지면서 저시인성 군복으로 바꾸게 되었으니 영국군 입장에서는 더 큰 피해를 입기 전에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다.

제국주의 시대 최대의 제국을 이룬 국가인 만큼 각지에서 벌어진 군사적 격돌의 주역이 되었고, 그 결과 패배의 경험을 간혹 겪은 바 있다. 크림전쟁 중 겪은 발라클라바 전투, 사망자 비율 55:386에 사상자 비율로는 333:2459를 기록한 뉴올리언스 전투, 마이소르 왕국과의 전쟁에서 참패한 폴릴루어 전투, 1차 아프간 전쟁(1839-1842)에서 16,5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전멸당한[16][17] 카불 퇴각 작전, 줄루 전사들에게 당한 참패인 이산들와나 전투[18] 등의 굵직한 참패들이 있었다. 다만, 이산들와나 전투 이후에 벌어진 로크스 드리프트 전투에서 탄약만 제대로 불출받았을 뿐인데 1:40의 병력비를 딛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을 보면 옥의 티라고 봐도 될 것이다.

10.3. 현대[편집]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육군은 보어 전쟁의 경험으로 사실상 프랑스군이나 독일군보다 더 현실적인 전략을 펼친다. 1차대전 발발 직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단기전을 예상하고 있을 때 영국만이 장기전을 예상하고 대규모의 지원병을 받아서 훈련시켰으며,[19] 각국이 총력전 양상에 돌입했을 때도 그 중에서 식량 생산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영국 뿐이었다. 다만 참호전의 경우로 까이는 경우가 있지만 이건 독일이나 프랑스나 마찬가지다. 방어전술이 발달하고 공격전술이나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를 벌인 건 누구나 똑같았다. 물론 삽질이 있었지만 주요참전국가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적은 피해를 입었다.[20] 해군의 경우 개전부터 종전까지 탈출을 시도하는 독일 제국의 대양함대를 가둬두었고 포클랜드 해전에서 순양전함들의 활약으로 독일의 태평양 함대를 궤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이 무렵 영국이 징병제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삽질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서 해군은 순양전함의 삽질로 유틀란트 해전에서 전술적으로는 손해를 보고 전략적으로는 승리하는 어정쩡한 결과를 거두거나, 유보트의 창궐로 해상 보급로가 위협받는 등 육해군 모두 삽질을 연속하더니, 결국 오스만 제국을 전쟁에서 이탈시키고 러시아와의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벌인 갈리폴리 전투에서 육해군이 돌아가며 삽질을 남발, 극심한 피해를 입고 물러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이후 정신을 좀 차리고 서부전선에 "Tank"[21]를 투입하거나 독일군이 장악한 고지 아래에 대규모 폭약을 묻었다가 터트리는 불꽃놀이를 벌이며[22] 반전을 꾀하고, 중동 전선에서 아랍인들을 충동질하여 오스만 제국등짝을 노렸으며, 당시 크게 활약 했던이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다. 육군 및 해군 항공대를 통합하여 RAF를 결성, 세계 최초로 공군 조직을 만들어 방공망 건설과 공중 공격 전술에서 선두에 선다.

그러나, 1차 대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비로 소모된 재화와 인력이 극심하여 한동안 경제가 바닥을 기고, 염전 분위기에 휩사여 군축이 진행되자 영국 육군은 해군과 공군에 치어 발전다운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23] 해군도 사정이 좋지 않아서 제한된 자금과 자원으로 과거와 같은 세계최강 해군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져, 결국 미국 해군에 추월 당하고 만다. 신설 공군은 사정이 좀 나았으나, 폭격기 제일주의에 빠져 전투기를 등한시하는 우를 범할 뻔 하였으나 휴 다우딩같은 뛰어난 지휘관들이 있어서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같은 기체를 개발하여 전쟁에 대비하였고 현대적인 방공 체계의 기반을 닦았다.

전간기 동안 영국 육군독일이나 소련처럼 전차의 사용법을 두고 고민하는데, 1차 대전과 같은 보병 지원목적으로 써야 한다는 파벌과 풀러 장군을 중심으로 하는 구세대의 기병 역할을 전차가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파벌이 팽팽하게 나뉘어 결국 보병전차순항전차의 2원 체계로 2차 세계대전을 맞이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활약을 따지면 못하는 건 못했지만, 잘하는 것이 더 많았고, 특히 소련과 미국의 참전 전까지 다른 연합국이 나가 떨어지는 와중에 홀로 버텨내는 것에 성공함으로서 결과적으로 파시즘, 우생학, 인종주의 등으로 인류에 해악을 끼치던 추축국으로부터, 서구식 의회제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적 오랜 세계질서를 지켜내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블레츨리 파크로 대표되는 첩보전, 암호해독 측면에서 영국은 발군의 역량을 과시했다. 이때 당시 미국의 정보전 역량은 비교적 새싹 레벨 밖에 되지 않았다. CIA의 전신인 OSS가 2차대전기에 발족할 정도로 미국의 대외 정보전 능력은 크게 낙후돼 있었다.[24]

명색이 전직 최강국으로 있었던 역량이 어디 간 것은 아니라서 추축국과 가장 오래 싸웠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시점인 1939년에서 종전 시점인 45년에 이르기까지 연합군 중 사실상 유일한 개근 멤버다. 폴란드는 개전 시작 한 달 만에 굴복해버렸고,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 전까지는 관망 중이었고, 소련은 독일-일본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독일과 손잡고 폴란드를 분할하는 등 이윤을 취하다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그제서야 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영국과 동맹이었던 프랑스는 독일이 쳐들어오자 버벅거리는 모습만 보여주다가 6주 만에 항복하여 본토를 빼앗겼고, 소수의 자유 프랑스군과 레지스탕스들을 제외한 비시 프랑스는 사실상 영국의 적이었다. 예외로 중국(당시 중국 국민당)이 있는데, 중국의 경우 특히 국민당군이 영국에게 여러가지 도움을 주기도 했으며, 막대한 희생을 내면서도 일본군의 중국 내륙 진출을 막는데 성공해 발목을 잡기는 했다. 물론 한계가 있었지만 말이다. 더불어 노르망디 상륙작전 즈음까지는 그야말로 서부 연합군의 주력을 책임짐에 따라왔다. 즉 정치적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사실 미군은 초반에는 서부, 아프리카 전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소한 헐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정도에 비하면 생각보다 안 컸다. 오히려 생초반에는 이탈리아군 취급을 받은 흑역사도 있다. 이 굴욕을 씻은 것이 조지 S. 패튼 장군이다. 한동안 미소와 거의 동급으로 대접받았고 못해도 서방진영 No. 2로서 상왕 대접을 받기는 했으며 그리고 최고사령관만 내줬지 연합군 사령부 주요 인물들 상당수는 영국이 사전에 정치적, 행정적 준비를 해둔 덕에 영국인이었다. 이덕에 현재도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확보해 국제 사회에서 제법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국 본토 항공전이나 독일 본토 폭격, 몰타에서의 활약 넓게 보아 비스마르크 격침 사건이나 타란토 공습과 독일 해군 전력 괴멸 등 공군이 크게 선전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영국 공군의 아버지인 트랜차드 정도 되면 초창기 전세계 공군 역사상 손꼽히는 네임드다. 사실 영국 육해공 3군 중 가장 활약한 군으로 꼽히는 게 공군이다.

마지막으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케냐,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영연방 자유세계 국가들의 참전을 이끌어 내고 이들을 지휘한 것도 영국이다. 미얀마 전선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선전해 인도 본토를 지킨 것도, 이탈리아의 침공으로부터 케냐를 방어하고 오히려 이탈리아에게 점령당해 이탈리아의 본진 역할을 하던 에티오피아를 해방시킨 것도, 마다가스카르 전투에서 일본 해군과 비시 프랑스를 격퇴하고 마다가스카 섬을 해방시킨 것도 영국군과 영연방군이었다.

망가진 것을 들자면 육군의 경우 나치 독일과 붙었을 때 몇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다. 됭케르크에서 밀려난 것은 초반에 준비가 안 되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초반에는 북아프리카에서는 에르빈 롬멜독일 아프리카 군단 휘하 기갑사단들을 상대로 당시 주력이었던 마틸다 II 보병전차와 크루세이더 순항전차를 가지고도 밀리는 인상을 보였다. 이후 영연방과 미국의 병력적, 군사적 원조가 본격적으로 들어오자 엘 알라메인 전투를 시작으로 밀어내기 시작했으며, 결국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국을 몰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다만 초반 롬멜의 활약과 지원 부족에 허덕이던 영국군의 모습 때문에 좋은 이미지로 남지는 않았다. 마켓 가든 작전과 굿우드에서 영국군 수뇌부가 보여준 오판은 당시 영국군의 한계 중 일부를 보여 준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를 일본에 점령당한 것도 영국군의 패착으로 기록된다. 다만 당시 동원된 군인들이 대부분 부랴부랴 징집된 영연방 출신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영연방군의 주력이었던 호주군뉴질랜드군의 경우 갑작스럽게 소집된 병력이 주력에, 구식 무기도 많았다. 미국 또한 필리핀을 내주는 참패를 맞이했으며 영국은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과 같이 결국 전쟁 후반기에 식민지를 수복했다. 오히려 프랑스, 네덜란드와 같이 식민지를 재식민화하기 위해 침공하는 추태를 보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깔끔하게 물러났으며, 영연방 체계를 이용해 군사적, 경제적 후원을 제공함으로써 지금도 싱가폴, 말레이에 대한 영향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해군의 경우 당시 2위 혹은 공동 1위였지만 규모에 비해서 상태가 좋지 못했다. 말레이 해전에서 전함 두 척이 일본의 공습으로 허무하게 침몰하는 참상을 겪기도 했다. 본래라면 항공모함이 동행할 예정이었으나 하필 암초를 박고 수리를 받으러 간 사이 일이 터진 것. 물론 영국이 일본의 장거리 대함 공격능력을 만만하게 본 것도 있으니 엄연히 오판인 건 사실. 그러나 당시 영국군이 붙일 수 있는 함재기의 성능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이 큰 문제였다. 유보트 때문에 대서양 항로 해상 안전에 문제가 생겼고 아직 준비가 덜 된 초반에는 상당한 피해를 보기도 하였으나 대잠전력을 확충하고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서서 결국 대양에서 유보트의 씨를 말려버렸다. 이렇게 리즈시절에 비해 많이 약해진 모습과 미국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2차대전 내내 북서 대서양, 지중해,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근해의 제해권을 연합군이 쥐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전부 영국과 영연방 해군의 힘 덕분이었다.[25] 이탈리아 해군과 독일 해군은 U보트 같은 비대칭 전력으로 선전한 것 이외에는 수상함 대부분이 제해권 확보는 커녕 사실상 영국 해군에게 쫒겨다니다 전멸해버렸다.

제2차 중동전, 즉 수에즈 분쟁에서 영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면서 프랑스와 함께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한 이집트를 침공하지만, 소련의 위협과 미국의 비난에 직면하며 수에즈 운하의 소유권을 포기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영국은 독자노선을 포기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 세계 질서에 편입되어 국익을 도모하는데 치중하게 되며, 냉전이 한창인 1960년에 징병제를 폐지하여 국내외에 충격을 준다. 영국이 징병제를 폐지하면서 전통의 연대 체계도 소멸하고 여러 오래된 부대들도 통폐합된다.

해군 역시 군축을 단행, 50년대 말에 전함을 없애고, 70년대 말에는 경제위기 때문에 항모도 없앤다. 이걸 보고 "영국도 끝이네"라고 생각한 아르헨티나가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을 벌이지만 영국의 경항모와 해리어, 그리고 특수부대(공수부대, SAS, SBS에 마무리로 구르카까지!)에게 왕창 털리고 정권마저 무너지는 추태를 보여준다. 공군도 군축의 예외가 아니어서 1980년대 후반 폭격기 사령부를 해체하고 당시까지 쓰이던 폭격기들은 상징적으로 운용할 벌칸 단 한대[26]를 제외하고 대부분 폐기하고 쓸만한 핸들리 페이지 빅터는 개조해서 공중 급유기로 사용 했으나, 빅터가 노후화 되면서 신형 급유기 도입과 함께 다들 사라졌다.

흑역사로 북아일랜드 사태악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피의 일요일 사건을 일으켰는데 1972년 영국군 공수부대가 비무장 아일랜드인 시위대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많은 사상자를 낸 이사건으로 IRA와의 전쟁이 199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었고 심지어 지금도 산발적인 공격이 있다.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은 해당 공수부대원들에게 훈장을 수여했었고 분노한 IRA는 여왕의 숙부인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을 폭탄 테러로 요트째 날려버려 끔살시켰다.

이후 냉전이 종식되자 영국은 전차를 대폭 줄이고,[27] 장거리 지대공미사일도 별로 쓸모가 없다며 후속 무기도 없이 그냥 퇴역시킨다.

2014년에 영국 육군은 2개 사단/1개 독립여단을 중심으로 하는 신형 편제, Army 2020을 바탕으로 한 개편을 진행했다. 1기갑사단은 1사단으로 개칭되어 향토방위군을 주축으로 한 예비대 지휘부 역할을, 3기계화보병사단은 3사단으로 개칭되어 예하에 기계화된 3개 여단을, 그리고 신속대응을 위한 공중강습여단 16여단이 그 중핵을 이룬다. Army 2020에 따른 영국군 개편안은 다음과 같다.

[ 신속대응군 ]
신속대응군: 유사시 예하 공중강습여단과 3사단 휘하의 1개 여단이 신속대응을 위해 파견된다.
  • 제3사단[22]
    • 제1포병여단
      • 제1 왕립기마포병연대[1]
      • 제3왕립기마포병연대[2]
      • 제4왕립포병연대[3]
      • 제19 왕립포병연대[4]
      • 제26 왕립포병연대[5]
    • 25 근접지원공병단[6]
      • 21 공병연대
      • 22 공병연대
      • 26 공병연대
      • 36 공병연대
    • 제1강습여단
      • 하우스홀드 기병연대 (기갑기병[7])[8]
      • 왕립 근위 용기병연대 (기갑기병)[9]
      • 스코틀랜드 근위연대 제1대대 (기계화보병)[10]
      • 소총병연대 제3대대 (기계화보병)[11]
    • 제2강습여단
      • 왕립창기병연대 (기갑기병) [12]
      • 국왕의 후사르연대 (기갑기병) [13]
      • 왕립 스코틀랜드연대 4대대 (기계화보병)[14]
      • 요크셔연대 1대대 (기계화보병)[15]
        • 제3 근접지원연대
      • 제10 여왕구르카 군수지원연대
      • 제6 왕립 기계화 전자기기 공병대대 (기갑)
      • 제1 왕립 기갑의료연대
    • 제12기갑보병여단
      • 왕립 전차연대 (기갑)[16]
      • 왕립 웨일스연대 제1대대 (기갑보병)[17]
      • 메르시안연대 1대대 (기갑보병)[18]
    • 제20기갑보병여단
      • 여왕의 후사르연대 (기갑)[19]
      • 소총병연대 5대대 (기갑보병)[20]
      • 왕립 퓨질리어연대 1대대 (기갑보병)[21]
    • 제101군수지원여단 (공병대 포함)
      • 제1 근접 군수지원연대
      • 제3 근접 군수지원연대
      • 제4 근접 군수지원연대
      • 제6 군수지원연대
      • 제7 군수지원연대
      • 제10 여왕의 구르카 군수지원연대
      • 제27 군수지원연대
      • 제 1 왕립 전자기기 공병대대
      • 제 2 왕립 전자기기 공병대대
      • 제 3 왕립 전자기기 공병대대
      • 제 4 왕립 전자기기 공병대대
    • 제1 헌병여단
      • 제 1 헌병연대
      • 제 3 헌병연대
      • 왕립 헌병대 특수 수사 연대
    • 제16공중강습여단 (독립여단)
      • 제16 공중강습여단 본부중대
      • 제216 공수부대 통신중대
      • 공수연대 제2대대 (공수보병)
      • 공수연대 제3대대 (공수보병)
      • 제7왕립포병연대 (제16공중강습여단 지원부대)
      • 제13공수지원연대
      • 제15공중강습 근접지원연대
      • 제7공중강습 왕립 전자기기 공병대대 (기갑)
      • 제23공중강습 공병연대
      • 제16의료연대
      • 132 공중 지원대대

[ 통합 헬기사령부 ]
  • 통합 헬기사령부
    • 육군항공대 제1연대
      • 652 육군항공대대 (와일드캣)[1]
      • 659 육군항공대대 (링스)
      • 661 육군항공대대 (와일드캣)
    • 육군항공대 제2연대 (지상요원 훈련)
    • 육군항공대 제3연대
      • 653 육군항공대대 (아파치)
      • 662 육군항공대대 (아파치)
      • 663 육군항공대대 (아파치)
    • 육군항공대 제4연대
      • 656 육군항공대대 (아파치)
      • 664 육군항공대대 (아파치)
    • 육군항공대 제5연대 (정찰기)
      • 651 육군항공대대 (가젤)
      • 665 육군항공대대 (링스)
    • 육군항공대 제7연대 (조종사 훈련)
    • 47왕립포병연대 (무인기 포대)
      • 10 (본부) 포대
      • 31 무인기 포대
      • 43 무인기 포대
      • 74 무인기 포대

[ 본토 대응군 ]
  • 본토 대응군[4]
    • 제1사단
      • 전문화 보병단[1]
        • 왕립 스코틀랜드연대 제1대대
        • 소총병연대 제4대대
        • 랭카스터 대공연대 제2대대
        • 웨일스 공녀연대 제2대대
        • 왕립 구르카 보병연대 제3대대
      • 제4보병여단
        • 경 용기병연대 (경기병[2])
        • 요크셔연대 제2대대 (경보병)
      • 제7보병여단
        • 여왕 용기병연대(경기병)
        • 왕립 앵글리안연대 제2대대 (경보병)
      • 제11보병여단
        • 왕립 구르카 보병연대 제1대대 (경보병)
        • 웨일스 근위보병연대 제1대대 (경보병)
        • 근위 척탄병연대 제1대대 (경보병)
      • 제38보병여단
        • 왕립 앵글리안연대 제1대대 (경보병)
        • 소총병연대 제2대대 (경보병)
      • 북서부 사령부[3]
        • 메르시안연대 제2대대 (경보병)
      • 제51보병여단
        • 왕립 스코틀랜드용기병연대 (경기병)
        • 왕립 스코틀랜드연대 제2대대 (경보병)
        • 왕립 스코틀랜드연대 3대대 (경보병)
        • 발라클라바 중대 (독립소총중대)
      • 제160보병여단
        • 소총병연대 제1대대 (경보병)
        • 왕립 아일랜드연대 제1대대 (경보병)
      • 키프러스 주둔군
        • 랭카스터 대공연대 제1대대 (키프러스 주둔)
        • 웨일스 공녀연대 제1대대

[ 지원사령부 ]
  • 지원사령부[3]
    • 제1통신여단
      • 전투지원 통신대대[NATO]
      • 22 통신연대
      • 30 통신연대
      • 299통신중대[1]
    • 제1정보수집 및 감시여단
      • 제1 군정보연대
      • 제2 군정보연대
      • 제4 군정보연대
      • 지상작전 융합센터
      • 방위 특별중대
      • 특수정보대대
      • 14 통신연대
      • 제5왕립포병연대 (대포병 레이더)
      • 제32왕립포병연대 (무인기)
    • 제2의료여단
      • 제22군병원
      • 제33군병원
      • 제34군병원
    • 제8공병여단
      • 21공병연대
      • 22공병연대
      • 26공병연대
      • 32공병연대
      • 35공병연대
      • 36공병연대
      • 39공병연대
      • 62건설대대
      • 63건설대대
      • 64건설대대
      • 66건설대대
      • 11폭발물 처리연대
      • 33 (EOD)연대
      • 101 (EOD)연대
      • 제1 군견연대
    • 제11통신여단
      • 1통신연대
      • 2통신연대
      • 3통신연대
      • 10통신연대
      • 15통신연대
      • 16통신연대
      • 21통신연대
    • 77여단
    • 104군수지원여단
      • 항구 및 해상수송지원연대
      • 해상수송지원연대
      • 5 지원대대, 왕립 기계화 전자기기 공병대대
    • 통합대공사령부[2]
      • 제12왕립포병연대 (HVM 대공장갑차)
      • 제16왕립포병연대 (Rapier 대공미사일)
      • 제49왕립포병중대 (사전정찰)

[ 영국군 근위대 ]
  • 런던사령부
    • 238 통신중대
    • 20 수송대대 (수송차량 제공)
    • 콜드스트림 근위연대 제1대대 (경보병)
    • 아일랜드 근위연대 제1대대 (경보병)
    • 척탄병연대 니잠중대 (독립중대)
    • 스코틀랜드 근위연대 F중대 (독립중대)
    • 콜드스트림 근위연대 제7중대 (독립중대)
    • 하우스홀드 마운트 기병연대 (의장연대)
    • 국왕의 왕립기마포대 (의장연대)

[ 통합전투사령부 ]
  • 통합전투사령부[4]
    • 제42공병연대
    • 포클랜드 방위군
    • 포클랜드 중대 (포클랜드 주둔)
    • 대공포병중대[1]
    • 1개 보병중대[2]
    • 왕립공병대 분견대
    • 왕립군수지원대 분견대
    • EOD연대 분견대
    • 통합통신중대
    • 브루나이 주둔군
    • 브루나이 주둔군 사령부
    • 왕립구르카연대 2대대 (16공중강습여단 소속)
    • 제7육군항공대대, 육군항공대[3]
    • 정글 및 산악전 교육부대
    • 브루나이 헌병중대
    • 지브롤터 주둔군
    • 왕립지브롤터연대
    • 통합경비 및 감시연대
    • 버뮤다 주둔군
    • 왕립버뮤다 연대
    • 영국 육군 특수부대
    • 제22SAS 연대
    • 특수정찰연대
    • 공수연대 제1대대
    • 특수부대 지원단
    • 제18통신지원연대
    • 제657대대, 육군항공대 (링스 공격헬기)
    • 제658대대, 육군항공대 (가젤, 유로콥터 돌핀 정찰헬기)
    • 3코만도여단
    • 제29왕립포병연대 (야포 운용)
    • 제24왕립공병연대
    • 코만도 군수지원연대
    • 383 코만도 원유지원중대
    • 새로 편성될 부대
    • EOD 연대
    • 왕립 웨일스 왕자연대 (예비군)
    • 소총연대 8대대 (예비군)


또, 2018년 초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테리사 메이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2020년까지 프랑스군과의 공동군 1만명을 창설키로 했다.

영국 정부가 2021년 3월 16일에 열리는 외교국방 전략 방안을 발표하면서 180발로 돼 있는 보유 핵탄두 수 상한을 늘릴 예정이라고 영국 언론이 2021년 3월 13일에 보도했다.#


10.4. 감축의 흐름과 서브프라임 사태의 영향[편집]


영국군의 감축은 홍콩 반환1997년부터 시작된다. 영국령 홍콩에는 신계지구에 중국 인민해방군을 막기 위해 50여 곳의 영국군 기지를 건설하고 무려 4만 명이나 파병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국령 홍콩중화인민공화국에 넘기는 홍콩 반환이 이뤄지자 이 때부터 홍콩 주둔 영국군 체계를 해체하는 식으로, 영국군 감축 행렬이 시작된다.

2010년에 들어서는 무서울 정도로 감축중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경제가 흔들리면서, 금융업 의존도가 높았던 영국경제가 직격탄을 맞고야 만 것이다. 이에 2010년 10월 영국 보수당 정부는 총리 발표를 통해 대대적인 감축을 결정하였다. 2012년, IMF 자료 기준으로 영국의 정부부채는 GDP 대비 82.7%이다.[28] 2012년 한편 CIA 자료 기준의 공공부채는 88.7%이다.[29]


10.4.1. 육군 감축[편집]


덤으로 현 400대 운용 중인 챌린저2 전차를 3개 연대(200대 미만)으로 감축.[30], 워리어 장갑차는 800대에서 270대로 감축, 그리고 1,400대의 APC와 1,200대의 CVRT 경전차는 모두 스크랩 처리한다.

경제가 많이 어렵기 때문.# 군인이나 국민이나 국토 방어를 포기했냐며 한목소리로 정부를 까고 있지만 정부로선 어쩔수가 없으며 문제는 이렇게 군축을 해도 영국 정부는 여전히 심각한 재정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해군은 상징성 때문에 감축에 한계가 있고, 공군 역시 섬나라라는 특성상 해군과 함께 순수 방위 측면에서 보다 중요한데다, 아예 해체하고 해군 예하 해병대 등으로 지상전 부대를 유지하는 방법 등이 있어 가장 감축하기 만만한 군대라는 평을 듣고 있다.

장군들의 대가리 수가 아파치나 챌린저보다도 많다고 까이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지적으로, 2022년에는 영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차보다 군마가 더 많다는 통계가 나왔다. 2022년 기준 영국 육군이 보유하는 전차는 챌린저2 227대, FV107 시미터 경전차 181대인데 반해, 영국 육군이 보유하는 말은 총 492마리이다. #

2023년 기준 227대의 전차를 보유중이다. 2023년 마크 프랑수아 영국 정치인에 따르면 영국이 운용 가능한 전차 대수는 40대에 불과하다고 한다.https://www.dailymail.co.uk/news/article-12264611/Britain-just-40-tanks-dozen-frigates-destroyers-ready-war.html

육군 병력을 2025년까지 현재의 7만 6,500명에서 7만 2,500명으로 4천명 가량 줄이는 대신 드론과 군용 로봇, 사이버전쟁 장비를 확충한다.#

10.4.2. 해군 감축[편집]


년도
잠수함
항공모함
LPH, LPD
주력전투함
기뢰함
초계함/경비정
총합
잠수함
총합
SSBN
SSN
SS, SSK
항모
총합
CV(항모)
CV-L(경항모)
주력전투함
총합
순양함
구축함
호위함
1960년
48
0
0
48
9
6
3
0
145
6
55
84
-
-
202
1975년
32
4
8
20
3
1
2
2
72
2
10
60
43
14
166
1995년
16
4
12
0
3
0
3
2
35
0
12
23
18
3
106
2005년
15
4
11
0
3
0
3
2
28
0
9
19
16
26
90
2010년
12
4
8
0
3
0
3
3
24
0
7
17
16
23
78
2013년
10
4
6
0
1
0
1
3
19
0
6
13
15
22
70
2014년
12
4
8
0
1
0
1
3
19
0
6
13
15
22
66
2015년
10
4
6
0
0
0
0
3
19
0
6
13
15
22
69
2016년
11
4
7
0
0
0
0
3
19
0
6
13
15
22
70
2017년
11
4
7
0
0
0
1
3
19
0
6
13
15
22
70
2018년
10
4
6
0
1
1
0
2
19
0
6
13
13
22
67
해군 총기함 아크로열의 즉각 퇴역 및, 함재기로 운용하던 해리어들마저 전량 퇴역시키기로 결정했다. 이에 같은 해 12월 아크로열이 퇴역하였고, 영국에 남는 항공모함은 일러스트리어스 뿐인데 이마저 헬기만을 운용하게 된다.

더군다나 인빈시블급을 대체하기로 한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 1번함 퀸 엘리자베스마저 당초 원자력추진에서 가스터빈으로 변경되고, 심지어는 해외로의 매각 검토의 대상에까지 오른 바가 있다. 이는 영국이 원래 해리어 대체기로 도입하기로 했던 F-35 B형 모델의 개발비가 너무 상승하자 이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어 F-35B 도입을 포기하고 본격적인 해군형인 'F-35C'를 대신 도입하기로 한 것 때문이다. 결국 퀸 엘리자베스급의 원안은 F-35B 운용이 전제된, 스키점프대만을 갖춘 상태에서 전자기식 캐터펄트를 갖춘 안으로 변경되어, 1번함 퀸 엘리자베스 및 2번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 모두 캐터펄트를 갖춘 사양으로 건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다시 F-35B로 회귀했는데, 그 이유는 F-35C를 도입하게 된다면 '수직이착륙기가 아닌' F-35C의 특성상 예산이 기존에 운용하던 항공모함에 캐터펄트를 설치해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드는 데다, F-35C를 다루는 조종사의 항공모함 이착함 훈련이 'F-35B를 다룰때처럼 기존의 수직이착륙으로 하는 방식'이 아닌 항공모함에 있는 어레스팅 와이어에다가 F-35C의 테일후크에 인위적으로 걸리게 하여 전투기를 착륙시키는 전혀 다른 방식의 이착함 훈련이기 때문에, 기존의 수직이착륙 방식의 훈련을 없애고 조종사의 항공모함 이착함 훈련을 아예 0부터 다시 새롭게 시켜야 한다는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괜한 소동으로 항공모함의 건조만 지연시킨 셈이다. 1번함이 2020년, 2번함이 2023년에 취역을 할 예정이라, 영국 해군은 향후 앞으로 최소한 9년간은 항공모함과 전투기가 없는 포클랜드 전쟁 직전의 상태로 다시 전락한다. 한때 건조를 취소하는것까지 진지하게 고려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 지속되었으나, 결국에는 퀸 엘리자베스함과 프린스 오브 웨일즈함이 모두 제때에 취역하였다. 당시에 건조가 이미 너무 많이 진행되어버렸기에, 건조계약을 만약 취소할 경우에는 정부가 뒷감당을 해야 할 비용이 취소로 인해서 절약이 되는 비용보다 높다고 판단이 되어서 이렇게 된 이상은 그냥 어쩔 수 없이 완성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10.4.3. 공군 감축[편집]


유로파이터 감축.

2005년에 도입한 유로파이터 트렌치1 55대를 업그레이드 할 돈도, 유지할 돈도 없어서 전량 중고매각한다고 한다.# 덤으로 구입시 토네이도도 제공한다고 한다. 나아가 영국이 신품으로 구입하기로 한 유로파이터 트렌치3 의 232대 중 88대는 구입할 돈이 없어서 싸게 매각한다고 한다.# 헐값으로라도 해외에 넘기려는 이유는, 이미 맺어진 유로파이터 물량을 취소할 경우 물어야 하는 위약금이 그야말로 막대하기에 취소는 어떻게든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로파이터는 빨리 감축시키는게 현명한 결정이었다.

Sentinel R1 정찰기의 전량 퇴역.

2009년에 실전배치되었으나 예산문제로 도입 6년차인 2015년에 퇴역하기로 결정했으나, 2014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종결된 이후에도 Sentinel R1 전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계속 유지되나 싶었으나, 결국 21년 3월 퇴역이 이루어졌다.

Nymrod MRA4 대잠초계기사업 취소 및 전량 퇴역.
배치 지연 8년, 예산 초과 2배 상태였던 MRA4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영국군의 대잠초계전력에 구멍이 발생했다. 물론 이전에 운용하던 MRA2 사양의 기체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2010년 초순에 이미 퇴역해버렸고, 고정익 대잠초계전력이 완전히 소멸해버리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것.

C-130J Hercules 수송기 조기퇴역 결정.
기존 일정보다 10년이나 빠른 2022년에 모두 퇴역시키기로 결정되었다.

이러다가 영국군은 폴란드군 신세로 전락할 지경.[31] 이미 육군은 감축 중이라 감축이 완료되면 이탈리아는커녕 스웨덴, 네덜란드 육군과 비슷한 신세로 전락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국군 감군과 반대로 호주군은 고급 인력부족으로 전직 영국군을 수입하고 있다는 점.[32]


10.5. SDSR 2015 이후[편집]


파일:external/i1164.photobucket.com/Screen%20Shot%202015-11-23%20at%2017.57.05_zpsdctufdff.png
▲ SDSR 2015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 그래픽 자료

SDSR 2015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영국의 경제 성장과 대외 영향력 확장 등의 이유로 군비 축소를 취소하고 군비를 대규모로 확장한다고 한다.

영국 정부는 다가올 수십 년간 영국이 맞닥뜨릴 주요 위협을 다음과 같이 상정하고 있다.
1.테러리즘과 극단주의, 사회적 불안정성의 증대
2.국가 단위 분쟁의 격화
3.기술 발전으로 인한 사이버전 위협
4.국제 질서의 쇠퇴로 전지구적 협의를 이뤄내는 게 힘들어짐.

러시아의 노골적인 군비 증강(비록 경제 위기로 최근 기세가 꺾였다 하더라도), 파리 테러, 대규모 해킹 사건 등으로 영국을 둘러싼 안보 위협은 보다 더 강화되고 더 다양하게 변모했다. 또한 북한 핵문제, 중국의 팽창 등 영국의 해외 속령들과, 영연방 국가들, 그리고 영국의 핵심 동맹국들을 위협하는 문제들도 떠오르고 있다. 이에 최근의 경제 회복에 힘입은 영국 정부는 2015년 추계 예산 편성에서 사실상 중앙 정부 예산 긴축을 끝내고 보다 소비 지향적인 모습을 보였는데[33], 덕분에 영국군의 예산은 큰 탄력을 받았다.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영국군은 국방 장비 도입에 총 1780억 파운드(310조원)을 사용할 예정이다. 이 금액은 영국 국방부가 앞으로 10년간 할당 받을 국방비의 20%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육군은 약 1만명의 병력과 38-43톤급 Ajax 신형 정찰 장갑차 600여대가 포함된 두 개의 강습 여단을 증설할 예정이다. 이 강습여단은 대테러활동과 평화유지활동에 중점을 맞추며, 유사시 도심에 파견되어 경찰이나 전투경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할수 있도록 편성될 예정이다. FRES 8x8 신형 장갑차 도입 사업 역시 새로운 예산을 받아 탄력이 붙을 예정이며, 길고 길었던 병력 감축도 끝을 맺는다. 이로써 영국 육군은 11개의 전투여단과 10개의 지원여단을 보유한 약 8만명 규모의 중규모 군 조직이 된다. 각각의 강습여단은 12대 정도의 차륜형 자주포 (프랑스의 CAESAR와 유사한 155mm 장착형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120대 이상의 AJAX 정찰 장갑차, 100대 이상의 복서 장륜장갑차와 약 5,000여명의 군인으로 구성되며 미국의 스트라이커 여단과 비슷한 편제를 보일 예정이다. 이외에도 동맹국 군대 훈련/저강도 분쟁에 특화된 4개 전문화 보병대대가 일반 경보병 대대에서 전환되어 창설될 예정이며, 2018년 10월 기준으로 3개가 편성이 완료되었다. 각 전문화 보병대대는 300명 내외의 병력을 보유하며, 1개 보병 중대와 1개 중화기 중대, 1개 본부 중대로 구성된다. 영국 육군의 외인부대인 구르카 역시 증원되며, 구르카로 구성된 36 공병연대와 10 군수지원연대가 각각 1개 중대씩을 신설한다고 한다. 거기다가 구르카연대 (전투부대) 3대대가 전문화 보병대대로 신설된다고 하니 (3대대는 종래와는 달리 여군도 지원 가능하다.), 현재 3,150명 정도 수준인 구르카가 800명 이상 증원되 4,000여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부대가 되어 영국 육군에서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할 듯 하다. 이것은 현재 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영국 육군이 더욱 효율적으로 병력의 질과 양, 두 가지를 모두 보장받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육군 예비군 역시 크게 감축된 현역의 간극을 매우기 위해, 3만에서 3만 5천으로 증강되며, 유사시 소집되는 동원예비군 격인 예비군 (Reserve Forces)까지 합하면 영국 육군은 약 6만 5천 가량의 예비전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규군 병력의 절반 가량이지만, 영국 육군의 정규군이 42개의 전투대대를 보유한 것에 비해, 육군 예비군이 18개의 대대를 보유하고 있으니, 전투 병력의 수에서는 비율면에서 크게 밀리지 않으며, 기량 또한 미국의 주방위군과 같이 정기적인 훈련과, 정규군과의 연합훈련까지 받으므로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한편 해군은 P-8 포세이돈을 20억 파운드(3.5조원)의 예산을 들여 9기 구입하여 기존 님로드의 전량 퇴역으로 구멍이 뚫린 영국의 대잠초계전력을 복원할 계획이며, 26형 호위함을 115억 파운드(20조원)의 예산을 할당해 8척 건조하고 장기 업그레이드와 유지를 안정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원래 26형 호위함은 120억 파운드로 13척을 구매할 계획이었으나, 이 경우 도입 대수를 맞추기 위해 함선의 실질 성능을 계속 낮췄어야만 했다. 영국 해군은 대잠전 특화에 전장 150m, 만재 배수량 8,000+톤에 달하는 대형 26형 호위함을 소량 도입하는 대신 성능을 대폭 끌어올리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차기 호위함 사업은 이걸로 종료되지 않는다. 26형의 도입 대수가 줄어든 대신, 더 저렴하고 보다 다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경호위함을 추가로 설계, 최소 5척 이상 도입한다. 이 사업은 2030년 이후로도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영국 해군은 기존 계획보다 더 많은 호위함을 가지게 될 예정이다. 이 호위함은 대략 5,000~6,000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34] 2017년 6월 기준으로 영국군은 이 31형 호위함 6척을 건조할 것이라고 발표하였으며, 약 5,400톤의 배수량을 가질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 개량된 리버급 OPV를 5척 더 건조한다. 이 함선들은 배수량 2,500t 정도에 달하는데 멀린 헬기를 탑재할 수 있을 정도이다. 2025년까지 12척의 기뢰제거함이 남아있을 예정이다. 현재 영국군은 16척이 넘는 기뢰제거함을 운용하고 있으나, MHPC 프로그램으로 기뢰부설, 제거, 탐색 능력을 무인화, 소형화하려는 중이다. 영국의 주력 방공 구축함 Daring급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다. 특히 데어링급은 BMD 능력을 집중 연구할 예정. 처음에는 퇴역할 예정이었던 리버급 OPV 초기형 3척은 유지될 예정이며, 영국 내에서 어업활동 보호등의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지브롤터에 주둔하는 24t급 고속정 시미터급을 대체할 고속정 역시 건조될 예정이며, 현재의 시미터급보다 훨씬 더 큰 크기에, 많은 무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 조선에서 건조하는 4척의 타이드급 유류보급함은 원래 계획대로 인도된다. 알비온급 LPD와 베이급 LSD을 합쳐 총 5척의 보조함은 계속 유지되겠지만, 해병대 상륙함으로 쓰이는 HMS 오션은 2018년 퇴역한다. 군축의 영향이 아니라, 오션함의 원래 수명이 2018년 까지다. 또한 기존의 화물선을 개조한 연안타격함(Littoral Stirke Ship) 2척이 도입되며, 항모전단에서 활동하며 오션급의 퇴역으로 감소하는 영국군의 상륙 능력을 보완할 예정이다.

잠수함은 영국 해군 중 가장 많은 예산을 받았다. 특히 뱅가드급 전략탄도탄 핵잠수함의 후계급인 드레드노트급 잠수함 4척 획득에 무려 50조원 가량이 투입된다. 기존 계획보다 10조원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왕립 해군은 핵잠수함에 매우 급진적인 설계를 도입할 예정이다.

신형 함선들이 대거 취역할 예정이기에, 왕립 해군은 400명의 인력을 증강한다. 두 대의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은 각각 2017년, 2020년 취역한다. 이 중 2번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강습 상륙함 기능이 강화되어 오션의 공백을 메운다.

공군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의 수명은 10년 더 연장되어 2040년까지 쓰이고, 전량 퇴역 예정이었던 구형 T1 유로파이터가 계속 유지되며, 전체적으로 140대 가량의 타이푼 전투기를 유지할 계획이다. 160대를 유지할 계획이었으나, 비용 부담과 부품 부족으로 2018년 1월, 16대의 스크랩을 결정하였다. 전체 보유 대수를 줄인 대신, 가동률을 끌어 올릴 계획인듯 하다. 유로파이터 중 트렌치 2/3 107대는 미티어 공대공 미사일 통합, AESA 레이더 업그레이드, 브림스톰 및 스톰쉐도우 공대지 미사일 통합등을 골자로한 업그레이드(센츄리온 계획)으로 완전한 다목적 전술기로서의 능력을 갖출 예정이고, 나머지 37대의 유로파이터 트렌치 1 중, 훈련용을 제외한 24대는 2개 공군대대에 나누어 배치되어 신속대응전력으로 활용될 것이다.

F-35B 전투기의 138기 도입이 확정되었고, 장기적으로는 그 이상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35] 장기적으로 영국 공군은 300기 안팎의 4.5-5세대 전술기를 운용하는 질적으로 극히 뛰어난 중규모 공군이 될 듯 하다.[36]

영국 공군과 영국 해군 항공대는 합산 280대 이상의 전투기를 보유할 예정이며, 근미래에는 총합 11개의 일선 전투비행대대 (Squadron)을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중 7개는 유로파이터 타이푼으로 무장하였으며, F-35B를 장비한 2개의 공군 대대와 2개의 해군 항공 대대는 퀸 엘리자베스급에 파견되어 운용될듯 하다. 300대 이상을 보유하는 동북아시아 공군들에 비하면 빈약해 보이지만, 유럽 수준에서는 양과 질적인면 모두에서 상당한 수준의 공군이며, 미래에 개발되어 배치될 BAE 템페스트까지 합하면 영국 공군의 전투기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현대 영국 공군을 전략 공군으로써 매우 중요하게 만들어주는 ISTAR, 조기경보 자산[37]들은 2030~2035년까지 계속 유지되고 최신식으로 업그레이드 될 예정이다. Shadow R1 정찰기 2기가 더 도입된다. E-3 센트리 조기경보통제기 역시 교체될 예정이며, 후속 기종으로는 대한민국 공군, 호주 공군, 터키 공군 등이 운용하는 E-7 웨지테일이 도입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2022년 12월까지 5대가 도입될 예정이라고.

'Protector' 라고 언급된, 리퍼 UAV의 후계기가 최소 20기 이상 도입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종인지, 영국에서 개발될 것인지 아님 미국에서 들여올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2020년 기준으로, Protector는 MQ-9 리퍼의 개량형으로 짐작되며, 최소 16~26대 가량이 도입되어 현재 보유하고 있는 MQ-9 10대를 대체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 투자도 눈에 띄는데, 퀴네티크 사의 초고고도 무인기 제피르를 기반으로 한 초고고도 정찰 무인기 개발에 투자한다고 한다.# 제피르는 거의 우주에 근접해 체공할 수 있으며 체공시간도 3개월에 가까워 일종의 의사위성(pseudo-satellite)으로 쓰일 수 있다. 글로벌 호크같은 대대적인 정찰기 자산으로 쓰이기엔 아직 탑재량이 부족해서 좀 더 기술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헬리콥터에도 거의 100억파운드(18조원) 가까이 투자된다. 이미 아파치 E형 50기의 업그레이드가 계약 되어 있으며, 그 이후는 아직 상세히 나오지 않았다. 이와는 별도로 20억 파운드가 특수부대 강습용 헬기 구매에 투자된다. C-130 13기가 스크랩되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38] A400M 신형 전술 수송기의 도입 수량에는 변화가 없다. 따라서 영국은 총 47기의 전술 수송기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2016년부터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등에 해외 영국군 사령부들이 설치되고 참모진들이 주둔하게 된다. 이를 통해 영국은 각 지역 영연방 국가와 한국, 일본 등 동맹 국가들과의 군사 공조 체계를 구축하며 전세계 작전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이외에 지상 기반의 MD 요격능력에 영국군이 다시 투자한다. 특히 지상 탄도탄 감지 레이더 개발에 집중 투자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탄도탄 요격 능력에 상당히 소극적이었던 영국 국방부의 행보와 비교해보면 꽤 이례적인 결정이다.

19억 파운드의 예산이 사이버전 수행능력 강화에 투자된다. 또한 인공위성 통신과 우주 기반 감시 장비를 새로 개발한다고 한다. 현재 영국 공군은 Skynet5 시스템으로 군용 통신 위성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데, 오는 2020년대에는 적절한 대체 수단이 필요하긴 하다.

곧바로 배치 가능한 전략 핵탄두의 개수를 180개 이상으로 늘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현재 영국군은 약 220개의 전략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고, 이중 약 160여개가 배치 가능한 상태에 있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기존에 진행되던 챌린저 2 LEP, FV510 워리어 WCSP, 스토머 HVM 개량 사업 등 노후화된 영국군의 기갑 장비 개량 사업에도 탄력이 붙게 됐다. 또한 SDSR 2015를 기점으로 챌린저 2를 대체할 미래형 차기 전차 사업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그 가능성 또한 상당히 커졌다.

결론적으로 영국군은 미래에도 육군 8만 2천명, 해군 3만 3천명, 공군 3만 4천명등 약 15만 내외의 병력을 유지하는 정예 군 조직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며, 예산상의 문제로 도입이 결정된 신무기가 취소되거나 수량만 감축되지 않는다면 근미래에도 상당히 위협적인 군으로 영국과 그 동맹국들을 영국의 적으로부터 지킬 것이다.

결론적으로 2010년 경제 위기로 무자비한 군축을 감행해야만 했던 영국군에게 이번 SDSR 2015 계획은 가뭄 속 단비와 같은 것이다. 영국군의 군 장비나 병력의 수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에 잡혀 있었던 첨단 장비 도입 계획을 확실시하고, 첨단화, 정예화, 그리고 유연화와 근본적 군사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SDSR 2015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2015, 2016년 2년 연속 영국군이 전세계 실질 군비 지출 3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2019년 4월, 영국의 더 타임지에 의하면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산 부족으로 영국 국방부에서 챌린저 2 LEP 대상 전차를 148대로 한정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즉 현재 보유하고 있는 227대의 전차 중 79대는 퇴역 처리한다는 것이다. # 이로써 영국 육군의 전차 보유대수는 러시아의 1.1%, 87분의 1밖에 되지 않고 세르비아나 캄보디아 심지어 미얀마보다 적다며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세르비아군은 구형 T-72 계열 전차들을 주력으로 운용하고 있고, 캄보디아와 미얀마는 이것보다 더 사정이 열악해 운용하는 전차들 중 대다수가 T-54/55, 59식 전차 등의 구식 전차라 질적으로 비교가 무의미한 수준인 데다, 러시아는 광활한 대륙을 국토로 삼고 있는 데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주변 국가들과도 우호적인 관계가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에 영국과는 방위 개념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어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영국군 운용 전차 감축 추이는 냉전 이후 영국군의 육군 전력 감축 추이를 확인하는 데에는 유용하다.


11. 특징[편집]


영국군은 전통을 중시하는 면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부대가 존재하는 등 확실히 전통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필요 없어진 부대나 무기체계는 과감히 해체하는가 하면 신무기 도입에도 적극적인 면모를 보인다. 세계적인 해군뿐만 아니라 육군 역시 역사적으로 소수정예의 강군으로 유명하다. 공군 역시 일찍이 독립 군종으로 편성하였고, 이들은 2차 대전에서 대활약하며 세계 전쟁사에 이름을 남겼다.

외국으로 군을 파병할 경우 각지의 연대(Regiment)에서 대대(Battalion)를 차출하여 여단(Brigade)을 꾸리고 이러한 여단을 몇개씩 묶어 사단을 편성하는 특이한 구조로 되었다. 다른 나라가 대대-연대-(여단)-사단의 일직선형 구조를 갖는 것과 좀 다르다. 즉, 영국 밖의 전쟁에는 연대 자체는 출병하지 않고 본국의 주둔지에서 신설 대대를 편성하고 훈련 하여 각 여단에 공급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영국 해군의 경우 오랫동안 해군 전략과 전술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었고, 현대의 미해군 조차도 18-19세기 영국이 세운 해군 전략/전술 체제를 많은 부분 참고한 바 있다. 19, 20세기 초만 해도 영국 해군 전력은 영국 해군 VS 세계연합 해군으로 싸워도 우세를 차지할 정도였고 전함, 순양함, 구축함의 표준을 만든 것도 영국이었다. 또한 항공모함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는데, 최초의 실용항모를 건조했고, 처음으로 다른 군함을 개조한 배가 아니라 처음부터 항모로 설계된 배를 건조 시작하였으며 (단 취역을 세계 최초로 하지는 못했다. 세계 최초의 취역 항공모함은 일본의 호쇼), 최초의 캐터펄트를 개발했고, 현 미 해군 대형 항모가 쓰는 증기 캐터펄트를 만든 것도 영국이었다. 최초의 밀폐형 격납고를 갖춘 항모 건조, 경사 비행갑판 개발, 항공기 착함절차, 스키점프 이륙방식 개발 등 현대 미국 항모들조차도 영국 해군의 연구개발 성과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영국 해군이 영향을 미친 점에는 복식, 즉 군복 또한 있다. 영국해군 특유의 세일러 복식을 세계 각국 해군이 모방하였고 특히 장교/부사관의 흰색/검은색 정복은 모든 해군의 공통 요소이자 상징이 되다시피 했다. 심지어 북한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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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빈시블급 항모

현재, 영국군의 병력은 23만명 내외 수준이지만, 그 대부분은 간부와 상시 유지되는 정예병력들이며, 전시에 긴급충원을 통해 확대할 수 있는 구조로 여유롭게 편제를 가진 부대가 여럿 존재한다. 오랜 경험과 노하우 등으로 숫자는 적지만 내실이 튼튼한 군대로 평가받으며, SAS 같은 경우는 전세계 최고의 탑급 특수부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육군이 계속되는 군비축소 때문에 열악한 상황이지만, 해군은 90년대말~21세기 초의 경제 회복으로 인해 70년대 후반 사라졌던 정규항모의 도입계획이 잡혔고, 공군도 유로파이터의 순조로운 도입과 F-35의 도입계획으로 순항하고 있는 등, 육군과 해-공군간의 대우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39]

또다른 특징으로는, 비슷한 군사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프랑스에 비해, 독자 전력을 구축하기보다는, 미국 등 동맹국과의 연합을 염두에 둔 군 전력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일례로 영국 공군은 규모에 비해 많은 정찰자산을 보유하는데, 이는 영국에 주둔한 미 공군전력과 다른 NATO 회원국 공군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또한, 영국 해병대를 보아도 네덜란드 해병대 등 유럽 국가 해병대와의 연합 작전을 기본적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육군은 아예 NATO군 예하로 실질적인 야전 전력 전체를 배정하고 있다. 물론 영국도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국익이 요한다면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하겠지만, 5개의 눈의 일원이자 NATO의 핵심 멤버인 영국 입장에서 굳이 독자 노선을 고집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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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전투식량의 경우 개선 전에는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생겼으나, 뜯어서 먹으려고 보면 모양이나 맛이 좀 떨어졌다고 한다. 구성품 자체는 영양학적으로 신경 많이 쓰고 내용물도 두둑하게 하려 하고 있으나, 실제로 먹어본 사람들에 의하면 내용물 중에서 간식으로 들어간 사탕 쪼가리나 컵라면이 제일 맛있다고 할 정도. 첫 개선품이 나왔을 당시에는 그럭저럭 먹을만했다라는 평도 있고, 여전히 맛이 없었다는 평도 있었다. 이후 지속적인 개선 노력으로 상당히 수준 높은 전투식량을 만들고 있다. 전투식량/영국군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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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도 영국인답게 티타임을 중요시한다.
  • 윈스턴 처칠1차 세계대전 중에 이런 말을 남겼다. "영국군에게는 군수품이 아니라 가 필요하다."
  • 걸프전 당시에도 미군과 영국군이 나란히 싸울 때, 영국군은 탱크 위에서 전자식 물 끓이는 주전자가 부착되어 시간이 날 때마다 차를 끓여 마셨다고 한다. 이런 장비는 일선 장병들의 컨디션 유지 등에 좋은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꽤 인기가 좋다. 현재 대부분의 영국군 기갑 차량에 전기식 주전자가 달려있으며, 미군도 M1 에이브람스 전차와 M2 브래들리에 이 장치를 장착했다고 한다. 자세한 건 챌린저 2 항목 참조.

여담으로 영국군에는 일반 영국인이 아닌 왕실과 왕실 귀족(일가 친인척)들과 한 단계 낮은 왕실에 속한 소수의 귀족[40]들에 한해서 엄격한 징병검사를 거쳐서 영국군 장교신분으로 징집하도록 영국 병역법에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할 경우 미군과의 아주 묘한 관계가 강조되곤 한다. 과거의 적인 동시에 과거부터 동맹이기도 하기 때문인 듯 하다. 그와는 별개로 특수부대들 때문인지 강하게 나온다.

무기관리체계가 다소 허술하다. 마가렛 대처 치세 당시, 그녀의 아들인 마크 대처가 자신이 '총리의 아들'이라는 직함을 이용해서 영국군의 무기를 몰래 빼돌려서 중동에 대량으로 밀판매한 적이 있다. 마크 대처는 무기를 밀매하기, 용병단을 운영하기, 적도기니 쿠데타에 동참하기 등의 행적이 있다.

냉전 종식 이후 군축의 영향으로 방비 태세가 크게 약화된 바 있다. 링크는 이라크 파병 초기 영국군이 방탄복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내용의 기사이며, 영국 국방부는 L85A1의 신뢰성 문제, 챌린저 2의 방호력 문제를 부정하다 결국 여론의 질타를 받고 개선에 뛰어든 전력이 있다.

해외 파견이나 주둔 중에 사망하면 유해를 본국으로 수습하기보다는 전사한 땅에 묻는 전통이 있다. 장례식과 추모도 현지에서 치른다. 캐나다나 호주도 영국과 비슷하게 전사한 땅에 묻는 편이다. 비슷한 문화권의 미군이 해외 전사자들을 어떻게든 수습하려 하는 것과는 반대인 셈.

오랜 실전 경험들로 인하여 유럽 내에서는 군사력 최강국들(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중 하나이다.

한국 및 미국의 학군단과 유사한 'UOTC (University Officers' Training Corps)'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졸업을 한 이후에 군 복무 하는것은 선택사항이다.

미국의 최우방국인 만큼, 미군이 전쟁을 하면 영국군도 같이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같은 파이브 아이즈국가인 호주군이나 캐나다군도 비슷하다.

해군과 공군의 경우, 특이하게 나라 이름인 "British"가 아닌 "Royal"을 사용한다. 직역하면 왕립 해군, 왕립 공군인 셈. 실제로도 역사적으로 영국 해군은 헨리 8세 이후 영국 왕실이 단일한 조직으로 창설하고 운영한 말 그대로 '왕립 해군'이었고, 영국 공군 역시 창설 당시부터 왕실 헌장(Royal Charter)을 받은 단일 조직이다. 반면 육군은 봉건전통에 의해 지방 귀족들이 자신들의 영지에 가지고 있던 상비 연대들의 집합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영국 육군을 통틀어 Royal이라는 명칭을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대신 개별적인 연대나 군단에 일종의 전투 영예(Battle Honour)로서 Royal 접두사를 붙는 경우가 있다.

권리장전에 의해 국왕은 의회 허락 없이 국내에 상비군을 둘 수 없으므로, 영국 의회는 5년 마다 한 번씩 국군법(Armed Forces Act)을 갱신하여 영국군이 합법적으로 유지될 수 있게 하고 있다.

12. 한국과의 인연[편집]


대한민국영국은 외교적으로도 서로 밀접하고 중요한 사이인만큼, 군사적으로도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첫만남은 한국(당시에는 조선)의 입장에서는 흑역사라 할 수 있는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한국과 관련된 역사로는 1885~87년에 걸친 영국 해군의 거문도 점령 사건이 있다. 조선병인양요때의 프랑스군신미양요때의 미군을 어떻게든 물리쳤지만 (물론 엄청난 피해를 감수한 패배라고 보려는 시각도 있다), 이 때는 전라남도 하나를 2년이나 통째로 내주며 영국 국기를 걸게 놔두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비록 2년 간이라고는 하지만, 일본이 아닌 서구 열강에게 우리 땅을 고스란히 뜯겼던 유일한 사례. 하지만 당시 거문도 사람들은 그다지 영국 해군에 대하여 반감을 보이지 않았고 뜻밖에도 영국 해군은 꽤 관대한 지배를 했다고 한다. 거문도에서 영국 해군 시설을 만들 당시 현지인들을 공사에 차출했는데 대가를 꼬박꼬박 주었다고 한다. 영국 돈이 안 통하니까 물품을 주었는데 요긴하게 쓰였다고 한다. 이는 조선 조정이 백성들을 온갖 공사에 차출하여 써먹곤 일절 대가를 주지않은 것과 대조적이었다. 그리고 영국 해군이 여왕(빅토리아)의 생일 축포를 쏘기전 마을 사람들에게 놀라지 말라고 언질을 주었으나 대포 소리에 놀란 개들이 놀라 달아나는 일이 벌어졌는데 영국군은 이 일로 거문도 사람들이 분노할까봐 해병대를 풀어 개들을 모조리 잡아서 주인들에게 돌려줬다고 한다. 이때 주둔 당시 병으로 죽은 영국 해군 수병 3명의 무덤이 거문도에 지금도 남아있다고 하는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여길 들려서 이 무덤에 헌화를 하려했으나, 복잡한 사정[41] 및 일정 변경으로 취소되었다.

6.25 전쟁에도 주한UN군의 일부로 파병되어 왔다. 미국에 이어 2번째 참전국이자, 미국에 이어 2번째로 많은 56,000여 명의 육군과 해군 병력을 파병했다. 초기에는 동해를 전담했고 그 후 서해 바다를 트라이엄프 항공모함 전단 등의 영국 해군이 담당하였다. 육군 전투병으로도 많은 수의 병력을 파병했으며, 당시 영국군에 배치된지 얼마 안 된 최신예 센추리온 전차 등으로 구성된 기갑 부대를 투입해 북한군과 중공군 상대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현재 부산 UN기념공원에 885구의 영국군 유해가 안장돼 있다. 그 후 1993년까지 주한영연방군이 한국에 남아 대한민국 국군주한미군과 함께 지원했다.

이후로도 해군의 경우 꾸준히 미국과 함께 합동 훈련을 하고 있으며, 군사 장비 제작-판매나 사이버 안보, 테러리즘, 특수부대 양성 등의 분야에서 국군과 영국군 사이에 꾸준히 교류가 이뤄져왔다.

2016년 11월 사상 최초로 한국 공군과 영국 공군, 미국 공군의 연합훈련이 오산 공군 기지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2020년, 대한민국 해군이 경항공모함 사업을 추진하면서 영국군의 도움을 받고 있음을 암시하는 정황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42] 외교적으로 상당히 큰 분쟁이 갑작스럽게 터져서 양국이 외교를 단절할 정도로 악화되지 않는 이상, 영국군과 한국군의 이러한 동반자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될 듯 하다. 실제로 미군을 제외하고 한국과 군사적으로 가장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는 나라는 영국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영국 모두 영어가 국어나 다름없으니 소통 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는 편이다.

2022년에는 한국 육사생도 출신의 샌드허스트 최초 졸업자가 배출되기도 했다.#

2023년에는 국군과 영국군 스코츠가드연대 예하 1개 중대가 연합훈련을 펼쳤다. #

13. 주요 부대[편집]




14. 총 전력[편집]




14.1. 해외 주둔군[편집]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영국이 패권국이었고,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 자국군을 파병했으며 이는 현재 캐나다군, 호주군, 뉴질랜드군으로 계승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독일이나 키프로스, 영국령 인도양 지역, 어센션 섬 등 해외 엉토에 기지를 세웠고, 싱가포르 등에는 기지 이용권 연장을 했다. 이 것이 현대 영국군 국외 주둔 기지의 근간이 되었다. 6.25 전쟁 이후에는 주한영연방군 방식으로 파견되었으나 지금은 유엔군사령부에 파병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15. 주요 무기 및 장비[편집]



15.1. 1, 2차 세계대전기[편집]




15.2. 제2차 세계대전 이후[편집]


  • 육군

  • 보병 화기
    • L9A1
    • L106A1
    • L131A1[43]
    • L85A1/L85A2/L85A3
    • C7
    • L119A1/L119A2[44]
    • L1A1 SLR[45]
    • L42A1[46]
    • L96A1[47]
    • L115A1/L115A3/L118A1/AW 코버트/L121A1[48]
    • L2A1/L2A3/L34A1[49]
    • L92A1[50]
    • L80A1/L90A1[51]
    • L91A1[52]
    • L4A4[53]
    • L86A1/L86A2[54]
    • L1A1 12.7mm HMG[55]
    • L7A2 GPMG[56]
    • L129A1
    • 재블린
    • 스타스트릭


  • 항공기
    • 아구스타 웨스트랜드 아파치(AgustaWestland Apatch)[58]
    • 에어로스페시알 가젤

  • 해군





  • 공군




  • 훈련기
    • BAE 호크 T1
    • 튜터 T1 초등훈련기(Tutor T1 elementary training aircraft) [59]






16. 관련 문서[편집]




17.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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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해공군은 물론 영연방 왕국들의 모든 군대[2] 대내적인 직위명은 국왕 폐하의 국방 담당 국가 수석 비서관(His Majesty's Principal Secretary of State for Defence)이다.[3] 준남작 이하의 작위를 받은 사람에게 붙는 호칭.[4] 여성형은 Lady였지만 여성 원수는 없었다. Lord와 Lady는 남작 이상의 작위를 받으면 붙는 호칭이다.[5] 물론 3사는 편입학 사관학교이며 학사장교는 정식 사관학교가 아니라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한국의 4년제 사관학교보다는 선발방식이나 교육과정에서 이쪽과 대략적으로 비슷하다는 말이다.[6] 요먼이라는 중층 농민들에게 장궁과 함께 살도록 했다.중세시대 유일무이한 예비군적인 존재.[7] 윈스턴 처칠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2차 영국 내전? 거 간단하지. 왕이고 귀족이고 지주상인이고 도시나 촌이나 신부든지 목사든지 스코틀랜드건 웨일스건 잉글랜드건 가리지 않고 한 놈 쥐어 패려고 한 전쟁이야! 근데 그 한 놈(New Model Army)이 다 때려부쉈지!"[8] 이때의 상비군은 지배수단으로서의 군대를 말한다. 공격수단으로서의 군대는 여전히 보유가능하며, 그런 의미에서 로열네이비(왕립해군), 로열에어포스(왕립공군)을 보유한다.[9] 엄밀히 말해 Royal은 '왕립'이라는 뜻이 아니다. 편의에 따른 번역일 뿐이다.[10] 전쟁에서 큰 공적을 새운 부대에서 왕립의 칭호를 수여한다.[11] 식민지 개척민들은 영국군을 도와 프랑스 세력을 몰아내면 새로운 영토를 자기들 소유로 내 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12] 대체 영국 육군에 왜 이렇게 병사들을 못살게 굴며 소모품 취급을 해대는 똥별이 많았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매관매직 문서의 해당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13] 미군으로 개편되기 이전 대륙군 시절 때는 주 연대마다 군복 복제와 색상들이 달랐다.[14] 근데 이건 영국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 군대에 만연한 악습이었다. 오히려 태형은 범죄자 같은 저질 인력의 비율이 높았던 프로이센군이 영국군보다 훨씬 심했다.[15] 다만 이 당시 시점에서도 일본제국 내각의 목표는 대한제국의 보호국화였고, 영국이 일본을 필요로 하는 것만큼 일본도 영국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대한제국에 대한 명목상의 독립을 보장하는 해당 조항이 큰 문제 없이 내각과 의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16] 이 중 군인은 4,500여 명. 12,000명은 군무원/군인 가족 등의 민간인이었다.[17] 포로로 잡힌 것은 단 9명 뿐이었고, 살아서 도망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알려지기로는 단 1명 뿐이었다.[18] 이 당시 영국군은 디바이드 앤 룰에는 그야말로 전문가 수준인 대영제국의 통치술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보를 보인다. 줄루 제국 침략과 폭압에 대해 깊은 증오심을 가진 다른 흑인 민족들이 적극적인 지리 정보와 온갖 정보를 제공하고 같이 싸우기까지 했지만, 영국군은 오히려 같은 흑인이라 자신들을 배신때릴까봐 이들을 따로 배치하였고 총기류를 전혀 주지 않았다. 심지어 줄루 군대에게 반수가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보다 못한 다른 흑인 민족들이 와서 총기를 달라고 돕겠다고 하는 순간에도 믿지 않으니 다른 민족들은 안되겠다고 달아나버렸고 영국군 부대가 전멸당하는 참패를 겪었다. 이 패배에 영국군은 엄청난 욕을 먹고 물량 공세 및 이후 다른 전투에서 믿어보고 다른 흑인민족들에게 총기를 제공하니 잘 싸워주면서 결국 줄루 제국은 무너져 영국이 승리하게 된다.[19] 이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애초에 프랑스는 독일보다 국력이 딸려서 장기전 가면 결국 불리해진다는 압박감이, 독일은 장기전으로 가면 프랑스와 러시아를 상대로 양면전선을 펼쳐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 전쟁을 빠르게 끝내는 방안을 모색해야 했었다. 반면 영국은 섬나라로써 비교적 시간을 두고 병력을 징집하여 단련하며 길게 보는것이 가능했으니 영국이 타국에 비해 장기전을 염두에 둘 여유가 많았다.[20] 그러나, 이건 단순한 피해량으로만 계산하기 그런 것이, 전투가 가장 격렬하게 일어났던 서부전선에서 영국군의 비중은 평균적으로 프랑스나 독일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1915년까지는 소규모 상비군이 다였으며, 그나마 1916년이 되어야 대규모 육군을 구성하여 솜 전투에 참전한다. 즉, 개전 직후 2년간 서부전선은 거의 프랑스vs독일 수준.[21] 최초의 전차 시리즈로, Mark I부터 Mark VIII까지 등장. 그 이름 tank는 러시아군에 을 공급하는 차량을 만든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리며 나왔다.[22] 아직도 몇몇 지역에 묻은 불발탄이 남아 있다고 하며 1970년대에 벼락으로 인화되어 폭발한 적이 있다고 한다.[23] 1939년 당시 전쟁 분위기로 대폭적인 증강이 이뤄졌음에도 영국 육군은 10개 사단을 보유하는 등 적어도 수적으로는 열세였다. 동시기 독일 국방군은 히틀러의 집권 겨우 6년만에 100개 보병사단과 6개 기갑사단을 확보했다. 프랑스군은 90개 보병사단을 보유했고 열강의 말석이라는 이탈리아 왕국군조차도 59개 보병사단, 6개 알피니 사단, 3개 쾌속사단, 3개 기갑사단을 보유하는 등 머릿수에서는 영국 육군보다 많았다.[24] 낙후되었다는 평가는 지나친 저평가로 미국은 영국, 소련만큼 대전 당시 첩보에 있어 한 끗발 했던 것은 아니지만 태평양 전쟁 내내 맵핵을 켜고 게임을 했다고 할 정도로 일본군의 암호를 뚫어 승승장구 했고 독일의 암호도 영국과 공조하며 풀어나갔다. 즉 중상은 한 셈이다.[25] 미 해군의 주력함들은 태평양으로 몰려갔고 일부 주력함들은 잠깐씩 얼굴을 비추기는 했으나 그게 전부다.[26] 이것 역시 2005년을 기점으로 퇴역하게 된다.[27] 냉전 때는 영국군의 전차가 2000대에 육박했지만, 현재 영국군의 MBT는 챌린저 2만 249대 정도이다. 다만 치장물자로 181대가 창고에 있고, CLEP로 이중 일부를 다시 현역으로 돌린다고 한다. 더불어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심각한 수준으로 군축을 해서 2016년 기준으로 영국 육군이 프랑스 육군은 물론 전차 강국이라 불렸던 독일 연방 육군보다 더 많은 MBT를 운용하고 있어 전차 수로만 따지면 서유럽 1위 전차 대국이 됐다.[28] (IMF) 자료[29]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ublic_debt[30] 한국에서는 1개 연대만 남겨놓겠다! 로 알려져 있는데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현재 영국군 개편안인 Army 2020 기준으로 영국군은 2개 사단과 1개 공수여단으로 재편되며, 이 중 주력이 되는 구 3기계화보병사단(3사단으로 개명) 휘하에 드는 3개 여단은 각 1개 전차연대(타국의 대대)를 보유한다.[31] 오히려 폴란드군은 일단 NATO의 대러시아 방어선의 최전방에 위치하기 때문에 미국, 독일 등의 지원을 계속 받고 있어서 사정이 상당히 낫다.[3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438387 [33] 엄청난 경제성장으로 영국은 선진국들 중 가장 잘나간다는 타이틀은 얻은 상황이다. 거기다 선진국 중에는 상당히 높은 출산율과 영연방 국가 출신 이민자 유입으로 중장기 경제 성장 전망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34] 영국 해군은 이 경호위함을 해적 퇴치, 국제군 파견, 선단호위 등 자잘한 임무에 이용할 예정이다[35] 영국의 항공모함등 전력의 수를 생각하면, F-35B의 대수는 오히려 약간 과할 정도로 많다. 추가로 도입되는 기체는 좀더 저렴하고 무장 탑재량이 많은 F-35A가 될 가능성이 높다.[36] 사실 유럽 공군의 추세이기도 하다[37] E-3D, 센티넬 R1, Rivet Joint 등 영국 공군은 매우 다양한 전략 정찰기 자산들을 운용한다[38] 1대가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39] 섬나라인데다 따로 지상에서 싸울 식민지 같은게 없는 상황에서 육군의 도태는 당연한 일일 듯.[40] 영국은 아직도 귀족 신분을 가진 자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장교 선발시 우선 선발되는 큰 혜택을 보고 있다. 귀족/영국 문서 참조.[41] 위 사정이 어쨌든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영토가 타국에 점령당한 민감한 사건인지라 지금은 상호 우방일지라도 영국이 조심스러워 할 수 밖에 없었다.[42] 대한민국 국군은 영국군과 같이 신규 항모에서 F-35B 운용 및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항모전단을 해공군 혼성부대로 편성하려 하고 있다.[43] 2013년 2월 브라우닝 하이파워를 대신하여 제식화되었다. #[44] C7의 단축형인 C8 SFW.[45] 1987년까지 사용한 영국군 제식소총이고, 반자동소총이다.[46] 리-엔필드의 7.62×51mm NATO 탄을 쓰는 저격용. 1982년에 아래의 L96A1(PM)으로 교체된다.[47] AI사의 프리시전 마크스맨(Precision Marksman, PM)의 영국군 제식명. AW 계열 소총의 아버지격이다.[48] 각각 L115A1은 AWM, L115A3는 AWSM, L118A1은 표준형 AW, AW 코버트는 단축 총열+소음기 일체형 모델, L121A1은 AW50의 영국군 제식명이다. 참고로 AW 코버트는 특수부대에서만 사용.[49] 스털링 기관단총의 영국군 제식명. L2A1과 L2A3는 표준형이고, L34A1은 소음기 일체형 버전이다.[50] "MP5SD3(소음기 일체형)"의 영국군 제식명이고, 영국군 특수부대가 사용한다.[51] "MP5K"와 "MP5KA1"의 영국군 제식명.[52] "MP5A3"의 영국군 제식명[53] 브렌의 7.62×51mm NATO 탄 사용 버전. 후에 아래의 L86 LSW로 대체된다.[54] L85의 분대지원화기형.[55] 유명한 M2 브라우닝. HMG는 Heavy Machine Gun의 약어. 중기관총이란 뜻이다. 제식명이 L1A1인데 위 L1A1 SLR과는 다른 물건이니 헷갈리지 말자.[56] GPMG는 General Purpose Machine Gun의 약자로, 다목적 기관총이란 뜻이다. 영국 한정으로 GPMG는 바로 L7A2, 즉 FN MAG를 뜻한다.[57] FV101 스콜피온, FV102 스트라이커, FV103 스파르탄 등의 베이스 차량이다.[58] 'AH-64D 아파치 롱보우'를 아구스타 웨스트랜드 사가 라이센스 생산하여 영국식으로 한 것.[59] 독일산 그롭 G 115를 라이센스 생산한 프로펠러 훈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