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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야쿠봅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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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소련 육군의 군인.
2. 생애[편집]
농민 가정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7년제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벽돌 공장에서 근무했다. 이후 1932년 노농적군에 입대했다.
2.1. 제2차 세계 대전[편집]
야쿠봅스키 대위는 서부전선 제20기계화군단 제26전차사단 전차훈련대대장을 역임했다. 비아위스토크-민스크 전투, 민스크 공방전에 참전한 뒤 적기훈장 수훈 대상자로 지명됐다. 1941년 9월, 나치 독일 육군에 의해 포위됐으나 무사히 탈출해 브랸스크 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야쿠봅스키 대령은 1943년 봄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제3근위전차군 직할 여단에 배치된 후 쿠르스크 전투, 드니프로강 공방전에서 승리를 쟁취했다. 야쿠봅스키의 부대는 하루 만에 30여 대의 전차를 파괴한 덕분에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 수훈자로 지명됐다. 이후 1944년 6월부터 제3근위전차군 제6근위전차군단 부군단장을 역임하면서 리보프-산도미에시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1944년 9월, 소련 최고회의 법령에 따라 두 번째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받게 됐다.
2.2. 전후[편집]
1960년 4월부터 서부군집단 총사령관으로 임명됐으나 베를린 위기 때문에 이반 코네프가 그의 뒤를 이었다. 야쿠봅스키는 반강제적으로 해임됐으나 얼마 후 복직할 수 있었다. 이로서 야쿠봅스키 상장은 소련의 군집단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총사령관직을 두 번 역임한 셈이다.
1967년 4월, 안드레이 그레치코가 국방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야쿠봅스키는 원수로 진급한 뒤 제1국방차관을 역임했다. 이후 1976년 11월에 사망한 뒤 크렘린 벽 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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