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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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소련의 구성국이자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명목상으론 소련의 15개 구성국 중 하나일 뿐이지만 면적(76.3%)·인구[2] ·경제력·연방 내 위상 등등 모든 면에서 소련의 맹주이며, 소련의 거의 모든 것이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결성되기 전인, 1917년 11월 7일 10월 혁명의 성공과 함께 출범했다.
인류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넓은 행정구역이었다.[3] 지금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인 러시아가 소련의 구성국으로 있었는데 당연했다. 1936년 이전에는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도 러시아의 영역이 있었으니 현재의 러시아보다도 더 넓었다.
2.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소비에트(Совет)는 러시아어로 '회의'라는 뜻인데, 작게는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공동체부터 크게는 국가의 입법부 및 행정부 또는 국제기구에서 그에 상응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회의기관까지 폭넓게 사용된다. 예를 들어 기업의 이사회는 Совет директоров(임원 회의),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는 Совет Безопасности(안보회의)라고 부르는 식이다.
이 단어가 국호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러시아 혁명 당시 노동자 및 군인들이 결성한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와 러시아 혁명군사 소비에트가 중심이 되어 국가를 수립했기 때문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페트로그라드에서 러시아 임시정부가 전복되고 소비에트 정부가 수립될 당시, 혁명정부는 '러시아 공화국',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러시아 연방 공화국' 등 다양한 호칭을 사용하다가 1922년 소련을 수립하면서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이라는 국호로 확정지었다. 이후 1936년 신헌법이 제정될 당시, 연방 내 구성국에서 통용되던 다양한 국명을 통일시키는 과정에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으로써 변경 후 1991년까지 사용하였다.
정식 명칭이 워낙 길다 보니 소련 시절에도 보통 국호를 불러야 할 때는 RSFSR(РСФСР), 러시아 SFSR(Russian SFSR, Российская СФСР) 또는 러시아 연방 등으로 불렀고 이 중 '러시아 연방'은 1991년 소련 해체 과정에서 신생 러시아 국가의 명칭으로 채택되어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
국호의 '연방'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Federal'이 아니라 'Federative'인데,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의 구성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연방'임을 표현하기 위해 제한적인 표현을 쓴 것이다.
2.2. 국기[편집]
소련 해체 이후 지금도 오룔 시 깃발에는 낫과 망치 모양을 살린[7] 1954-1991년 사이 쓰인 RSFSR 깃발에 시 문장만 박아서 사용하고 그 외에는 케메로보 주, 알타이 지방, 블라디미르 주 깃발이 색깔 패턴에서 따 왔다. 그래서 낫과 망치 문양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보인다.
2.3. 국가[편집]
1917년부터 1918년까지는 혁명 당시 폭넓게 불렸던 '노동자 마르세예즈'가 국가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1944년까지 인터내셔널가를 사용했다. 다른 공화국과 달리 자체적인 국가를 지정하지 않고 소련 국가를 그대로 사용하다가, 소련 해체 직전에 미하일 글린카의 애국가가 채택되었고, 그 이후 러시아에서는 2000년에 러시아 연방 찬가가 새 국가로 지정되기 이전까지 국가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가 제정의 움직임이 있긴 했지만 모두 계획으로만 남고 실제로 제정된 곡은 없었다. 위 곡은 1945년에 스테판 시파초프(Степан Щипачёв)가 작사,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Сергей Прокофьев)가 작곡한 비공식 곡이다.
2.4. 국장[편집]
3. 역사[편집]
1917년 11월 7일, 10월 혁명으로 수립되었다. 1918년 1월 세 번째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국호를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정했다. 3월에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서쪽 영토 상당부분을 잃었다. 1918년 7월 10일에 소비에트 러시아 헌법을 제정했으며, 국호도 현재의 국호로 고쳤다. 또한 러시아 내전이 발발하고 서방 간섭군이 개입하자, 영국 해군이 해안도시인 수도 페트로그라드를 침공할 것을 우려해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겼다. 신생 소비에트 러시아는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주권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고, 1920년 타르투 조약으로 발트 3국과 핀란드에게 주권 국가로 인정을 받았다.
1922년 12월 30일 제1차 전연방 소비에트 대회에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자캅카스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과 함께 소비에트 연방을 결성하였다.
▲ 소련 성립 당시의 러시아 SFSR의 영역(1922년)
소련 성립 당시에는 중앙아시아 5국도 포함했으나[9] , 1924년 투르크멘 공화국과 우즈베크(타지크 포함)가 떨어져나가고, 1936년 카자흐와 키르기스가 별도의 공화국이 되었다.
▲ 1936년의 러시아 SFSR의 영역
1944년 투바 인민공화국[10] 을 흡수하였고,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으로 동프로이센 북부(칼리닌그라드)와 가라후토(사할린 섬 남부), 쿠릴 열도(치시마 열도)를 얻었다. 1954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크림 반도를 넘겨주었다. 1956년에는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흡수하여 러시아에 소속된 카렐리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고, 이때 확정된 영역이 소련 붕괴 당시까지 이어졌다.[11]
8월 쿠데타 이후 다른 소련 내 구성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SFSR도 독립을 향해 나아갔다. 우선 1991년 11월 1일에는 국기를 러시아 삼색기로 바꾸었다.[12] 소련 붕괴 하루 전인 1991년 12월 25일 러시아 연방[13] 으로 국호를 바꾸었으며,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은 UN 사무총장이었던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에게 서한을 보내 러시아가 독립국가연합 창설국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소련의 대외 권리(UN 상임이사국 등)와 의무(국채 등)를 승계했음을 알리는 서한을 보냈다. 당시 유엔은 러시아 연방이 소련을 승계하는데 동의했으며, 이로써 러시아는 국제법상 독립국가로써 인정받음과 동시에 소련을 승계하게 되었다.
소련 해체 과정이 워낙 급속도로 진행되었기에 해체 이후에도 한동안 헌법 및 정부기관을 비롯하여 러시아 SFSR의 제도와 법률이 잔존했다. 이렇게 구체제와 신체제가 공존하는 전환기에서 갈등을 빚은 대표적인 사례가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였다. 헌정위기 이후 1993년 12월 12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신헌법이 58.43%로 가결되면서, 1978년 제정된 사회주의 헌법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4. 정치[편집]
소련 시절 러시아는 제도적으로 소련에 속한 구성국 중 한 나라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공용어(러시아어)나 수도(모스크바) 등 여러 면에서 사실상 연방을 주도하는 지역이었다. 가령, 소련 공산당은 러시아 지역을 별도 지부 없이 직접 관할했으며, 러시아어는 다른 연방 구성국에서도 사실상 공용어이자 사무언어로써 교육되고 통용되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소련 시절 러시아는 오늘날 영국에서 잉글랜드와 비슷한 지위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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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법과 정부 기관 등은 러시아 헌정위기까지 운용되었다.[2] 약 60% 정도. 러시아의 인구가 감소세인 지금도 50% 정도는 된다.[3] 현재 세계에서 가장 넓은 행정구역은 역시나 러시아의 자치공화국인 사하 공화국이다.[4] 철자 표기법을 대대적으로 바꾸기 이전이기 때문에 현재 러시아에서는 쓰지 않는 키릴 문자들이 보인다.[5] 비공식 국기이다.[6] 현재의 러시아 연방 국기보다 푸른색이 옅으며 비율이 2:1이다.[7] 다만 낫과 망치의 모양이 러시아 연방 공산당의 엠블럼의 모양과 더 비슷하다.[8] 1956년 이전에는 Р.С.Ф.С.Р.로 쓰여 있었는데, 1956년 러시아어 문법 개정에 따라 약자 사이의 마침표를 삭제했다.[9] 구 히바 칸국, 부하라 칸국의 영역 제외.[10] 청나라의 영토였다가 몽골로부터 떨어져나가 미승인 국가 상태로 있었다. 사실상 소련의 괴뢰정권이었는데, 산하의 자치주로 만들었고 1961년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되었다.[11] 이때 넘겨진 크림 반도의 영유권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서 후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전쟁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12] 현재의 삼색기에 비해 가운데 파란색이 좀 더 하늘색에 가깝다.[13] 러시아 연방이라는 표현 자체는 소련 당시에도 가끔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