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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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제4조(대한민국의 국기) 대한민국의 국기(이하 “국기”라 한다)는 태극기(太極旗)로 한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국기다. 흰색 배경 중앙에 파란색과 빨간색의 태극을, 네 귀퉁이에는 팔괘 중 상하가 대칭되는 사괘인 건(乾, ☰), 곤(坤, ☷), 감(坎, ☵), 리(離, ☲)를 그렸다. 이는 음양화합을 상징한다.
1882년(고종 19년)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최초로 사용되었으며, 1883년 3월 6일(음력 1월 27일) 조선의 정식 국기로 제안되어 고종에 의해 공포되었다. 대한제국이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상실한 이후 일제에 의해 사용이 금지되었으나 1919년 3.1 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의해 국기로서의 정통성이 계승되었고 광복 이전까지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기능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국기로서의 기능을 회복하였고 대한민국 제1공화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1949년 10월 15일 국기시정위원회에서 「국기제작법」 고시가 확정되었다. 이후 문교부고시 「국기제작법」, 대통령고시 「국기게양방법에 관한 건」, 대통령령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 등의 규정들이 마련되었으며, 2007년 제6공화국 참여정부 시기에 통합된 「대한민국국기법」이 마련되었다. 자세한 건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태극기의 내력과 담긴 뜻, 제작, 게양, 관리에 관해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한편 북한에서도 광복 후 1948년 7월까지 태극기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였으나, 소련군정의 유물론 사상에 회유되어 1948년 북조선인민위원회에서 새로 인공기를 제정한 뒤로는 적대 중인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쓰인다는 점 때문에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예시]
2. 대한민국국기법[편집]
현행법상 세탁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으므로 당연히 국기 세탁도 가능하며, 관공서에서도 국기를 잘만 세탁해서 쓴다. 다만, 국기가 변색이 되거나 찢어지는 등 원상복구되지 못할 정도로 훼손되었다면 지체 없이 소각 등 적절한 방법으로 폐기하여야 한다.[5] 못 쓰게 되어 처치 곤란한 국기를 가지고 있다면 가까운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로 가져가자. 지방자치단체 민원실에는 폐 태극기 수거함이 의무적으로 비치되어 있다.
국기를 영구(靈柩)에 덮을 때에는 국기가 땅에 닿지 않도록 하고 영구와 함께 매장하여서는 아니 된다.[6] 따라서, 관을 매장할 때에도 관을 감쌌던 국기는 수거하고 관만 매장한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 때 태극기를 관 위에 올려놓고 매장을 진행하던 중 행정안전부가 "국기법 위반이다"라고 지적함에 따라 다시 꺼낸 일도 있다. 같은 이유로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고자 할 때에는 화장로에 들어가기 전 태극기가 제거된 뒤 들어가며, 이렇게 제거된 태극기는 고인이 화장로에 들어가기 전 유족에게 전달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과 채명신 장군의 장례식 영상의 예시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3. 국기의 모독[편집]
자세한 내용은 국기에 관한 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 국기모독죄[편집]
대한민국 「형법」 제105조는 국기·국장모독죄(國旗國章冒瀆罪)라 하여,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제거 또는 오욕하는 행위라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 붙기 때문에, 세간에서 가끔 화제가 되는 국기모독 관련 뉴스가 실제로 기소유예나 집행유예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았다는 이야기는 듣기 어렵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105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3.2. 국기비방죄[편집]
한편, 국기를 욕보이는 것에는 단순히 물리적 행위뿐만이 아니라 언어적, 무형적 행위도 포함되어 처벌 대상이 된다. 대한민국 「형법」 제106조에서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비방한 자에게 최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대해서는 한때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물론 이 법의 경우는 전조의 목적(국가 모독)으로 비방을 하였을 때에만 해당하는 목적범이기 때문에, 실제 처벌은 없다시피하다.
예를 들어, 단순히 "태극기는 XX같은 국기다"라고만 말해서는 성립이 안 되고, 태극기를 왜곡시키고 선동을 함으로써 실제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를 크게 더럽힐 정도의 비방을 행해야 성립이 되는 것이다.
4. 역사[편집]
4.1. 태극의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태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태극기의 역사[편집]
4.2.1. 태극기의 제작 과정[편집]
또 배마다 반드시 국기를 달아야 하는데 국기는 지극히 귀중한 물건으로서 갑국(甲國)의 배가 을국(乙國)의 국기를 도용(盜用)한 경우 해적(海賊)과 동일하게 보아 을국의 군함이 잡아 징벌할 것입니다.
고종실록 13권, 고종 13년(1876년) 2월 3일 을축 1번째기사 중 미야모토 고이치(宮本小一)의 수록(手錄) 발췌
그러던 1882년 5월 14일, 미국 공사 로버트 슈펠트는 5월 22일 있을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을 앞두고 조인식에 사용할 국기를 지정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이에 통리기무아문의 김홍집이 역관 이응준에게 국기를 그리게 하였다. 이게 최초의 사용례인 속칭 '이응준 태극기'#이다. 2004년 미국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1882년 7월 19일 미국 해군부(Navy Department) 항해국이 제작한 서류 중 《해상 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에 지금의 태극기에서 태극 모양이 약간 다를 뿐 전체적으로 매우 흡사한 태극기 도안이 첨부되어 있는 것이 나타났으며, 2018년에는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앞서 발견된 태극기보다 두 달 빠른, 조약 당시(1882년 5월)의 도안도 발견되었다.#
사실 태극기를 누가 먼저 고안했느냐 하는 논쟁은 1880년대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논쟁이다. 1882년 10월 2일자 도쿄 일간신문인 《시사신보》(時事新報) 제179호에 따르면 당시 이홍장에 의해 조선에 파견되어 조미수호통상조약체결을 도왔던 마건충(馬建忠; 마젠중[8][9] )이 약 한 달 전 '청나라 국기'를 모방한 국기를 제안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조선에 국기가 없었는데 이번에 청국에서 온 마건충이 조선의 국기를 청국의 국기를 모방하여 삼각형의 청색 바탕에 용을 그려서 쓰도록 한데 대하여 고종이 크게 분개하여 결단코 거절하면서, 사각형의 옥색 바탕에 태극도를 적색, 청색으로 그리고, 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의 괘를 붙여서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하교하였다."
청나라는 당시 청 황실의 깃발로 사용하던 삼각형 황룡기를 변형하여 조선에 "속국의 모습을 보이라."라고 제안하였는데, 말이 제안이지 사실상 명령이었다. 이 과정에서 황색 바탕을 백색 바탕으로 바꾸고 청색 용은 붉은 용으로 바꾸며 청색 구름도 추가하여 백저청운홍룡기를 만들어 쓰라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었다. 동양의 오방색에서 황색은 중앙을, 청색은 동쪽을 의미한다. 또한 청룡은 동쪽을 관장하는 신수이니, 청나라가 황룡기를 사용하고 조선이 청룡기를 사용하라는 의미는 곧 변방에 있는 신하의 예를 갖추라는 말을 의미했다. 또한 조선의 용은 격식을 낮추어 발톱이 하나 적게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고종은 청나라의 이런 일방적인 명령을 분개해하여 거부하였으며, 태극기를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마건충이 '청국의 국기를 모방한 것'뿐만 아니라 '태극 팔괘도' 또한 제안했으며, 따라서 태극기의 도안자는 마건충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는 《청국문답(淸國問答)》에 수록된 마건충과 김홍집 간의 필담이 제시된다.
마건충 "국기문제는 중대사안이므로 돌아가서 정부 당로자와 세밀히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 일전에 이 문제[10]
를 논의한 후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흰 바탕 중앙에 태극도를 그리고 그 주위에 팔괘를 두른다면 조선 8도의 수와 합치되고 있다. 8괘의 색깔은 완전 흑색으로 하여 드러나게 하고, 태극의 색깔은 반홍반흑으로 하며, 깃발 가장자리에는 홍색선을 두른다면 어떻겠는가. 단, 이같은 견해는 본인의 사견이다. 마땅히 우리 정부에 보고할 것이다.김홍집 "귀하의 가르침을 받들겠다. 우리 조정에 이 문제를 보고해서 알리겠다."
1882년 4월 11일 당시 마건충과 김홍집이 나눈 필담 내용 중[11]
여기서 역사적 해석이 갈리는데, 위 기록들을 모두 사실로 전제하고 절충하자면 상기한 필담 내용에서 '태극팔괘도'를 언급한 것은 4월 11일, 슈펠트의 요청 및 국기 제작일이 5월 14일로 알려져 있는 만큼, 발상 자체는 마건충이 제안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현대 중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논리를 채택해 "태극기의 제작자는 중국의 외교관 마건충이다."라고 못박고 내부적으로 그것을 교육/선전한다.[12]
그러나 마건충이 김홍집과의 필담에서 조선 국기의 형태를 제안했다고 알려진 1882년 4월 11일은 음력 날짜로, 양력 날짜로는 5월 27일에 해당한다.[13] 그 이전 시점인 5월 22일(양력)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시에 태극기가 사용되었으므로, 마건충의 제안 이전에도 이미 태극기의 도안은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마건충이 태극기의 형태를 제안했다고 볼 수 없다. 태극기 사용이 이미 진행된 상황에서 마건충이 태극기의 도안을 제안하는 투로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청나라의 영향력 하에서 태극기가 도안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14] 였다는 의견과, 홍룡기 사용을 관철하지 못한 자신의 체면치레를 위해 이미 도안된 태극기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 것에 불과[15] 하다는 의견이 있다.
아울러 고종이 직접 태극기 제작에 관여한 구체적인 기록도 박영효의 일기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고종은 군주를 상징하는 붉은색, 신하를 상징하는 파란색, 백성을 상징하는 흰색 등의 색 배치를 제안했다. 그러나 김홍집은 그 도안이 일장기와 비슷함을 지적하면서, 주변에 조선 8도를 상징하는 팔괘를 추가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여기에 영국인 선장이 괘가 8개나 있으면 너무 그리기 어렵고 번잡하니 4괘로 단순화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고, 마침내 도안이 확정되었다.
물론 고종의 개인적인 식견으로 없던 도안을 창조해낸 것은 아니다. 태극 자체는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그려진 것이 6세기 백제 때일만큼 오래 된 문양이었으며, 유교 이전에도 아시아 각국에서 영험한 문장으로 쓰이다가 송나라 대 유학자인 주돈이가 태극도를 만들어 주희 이후 성리학적 이론의 바탕으로 흡수되었다.
조선 왕실의 상징이었던 어기 역시 태극도에서 유래한 기본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임진왜란 이전부터 사용했던 조선군의 좌독기도 테두리에 둘러싸인 낙서(洛書)[17] 를 제외하고 보면 어기와 모양이 똑같다. 좌독기는 명나라에서 도입된 것으로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창안한 디자인은 아니나,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팔괘로 둘러싸인 태극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모양이었을 것이다.
4.2.2. 태극기의 공포(公布)[편집]
일본에 도착한 박영효 일행은 숙소에서 태극기를 게양한다. 이 때의 4괘 태극기 역시 일본 신문에 실린 그림과 박영효가 귀국한 뒤 고종에게 올린 서한에서의 내용이 다르다. 태극기의 정확한 도안이 확정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에서 아뢰기를, "국기(國旗)를 이미 제정하였으니 팔도(八道)와 사도(四都)에 행회(行會)하여 다 알고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20권, 고종 20년(1883년) 1월 27일 기유 1번째 기사
이듬해인 1883년 3월 6일(음력 1월 27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요청을 고종이 수락하여 태극기가 조선의 국기로서 정식 공포되었다.# 그러나 태극기의 도안은 이후에도 계속 바뀌었고 1897년 독립문에 태극기를 새기고 나서도 다시 다른 도안으로 제작된 태극기가 등장하는 등 민, 관 모두에서 세부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4.2.3. 근현대의 태극기[편집]
1910년 8월 경술국치로 한국 최후의 왕조 대한제국이 멸망하게 되자 대한제국의 국기였던 태극기도 사용이 금지된다. 일제강점기 시기, 태극기는 곧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1919년 3.1 운동에서도 전국적으로 휘날렸다.
한국을 강제 병탄한 일제는 태극기를 '불령선인'의 상징으로 보아 제조·소지를 금하였다. 당시 태극기는 소용돌이치는 중앙의 태극과 대각선의 팔괘라는 기본 개념 외에는 고정된 개념이 없었기에 3.1 운동 시기 휘날린 태극기의 도안도, 의병 전쟁 시기 사용된 태극기의 도안도, 임시정부가 사용한 태극기의 도안은 모두 달랐다.
당연히 파란 물감을 구하기 힘드니 대강 먹칠을 해서 빨간색과 검은색의 태극기가 휘날렸다. 괘 역시 대한제국 시절의 제도를 기억하는 서울에서는 정확히 사괘를 그렸지만 중장년층 이샹 세대 위주로 그냥 태극기라는게 있었다 정도만 기억하는 지방에서는 지역에 따라 팔괘태극기나 무괘태극기를 그리기도 했다. 한 동네 안에서도 태극기 형태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어 그냥 팔괘태극기와 사괘태극기를 둘 다 그리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대한제국 정부가 태극기의 형태를 법적으로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제 강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광복 당시 태극기 문양의 정확성에 대한 담론은 의미가 없다.
1948년 7월 1일 제헌 국회는 대한민국 국기로 태극기를 채택하였다(재석 188, 찬성 139, 반대 4). 다만 대한민국 국기를 태극기로 한다는 조항을 헌법 제2조에 넣을지 제4조 후단에 넣을지 설왕설래하다 결의만 하되 헌법에는 넣지 않기로 했다.[22] 이 결정에는 조헌영 의원(한국민주당)의 주장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중앙청에 걸려 있는 태극기도 정확한 국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극기를 국기로 결정했을 뿐, 태극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도안인지는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1949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은 총무처장에게 국기 도안을 확정지을 것을 지시한다.[23] 그렇게 하여 여러 유력 인사들을 불러 김일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기시정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검토 끝에 최종적으로 후보가 된 것은 총 4가지였다.#
1949년 2월 7일, 제1차 전체 회의에서 확정된 것은 당시 정부의 주요인사들이 망라된 '우리 국기 보양회'[24] 가 제안한 태극기였다. 그런데 2월 28일, 2차 전체 회의에서 최남선[25] 과 법조계 인사들은 독립문 태극기를 5번째 후보로 제출하면서 독립문 태극기야말로 진정한 국기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갑론을박 끝에 다시 독립문 안으로 번복되어서 발표되었다. 하지만 이후 열린 제3차 전체 회의(3월 25일)에서 독립문 태극기의 4괘가 역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 나와 다시 '우리국기 보양회' 안을 채택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투표 결과는 찬성 28[26] , 반대 11[27] , 기권 1(이병렬)[28] 였다. 광복과 함께 새로 국기를 만들자는 주장을 한 인사(노응도[29] , 권혁채[30] )도 있었으나 사상이 불손하다는 이유로 바로 배척되었다. 이 회의 결과를 토대로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고시가 공포되었다.
이때 양음의 배색을 단순히 빨강색(진홍색)과 파랑색(아청색)으로 규정했는데 90년대 배색 논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CIE 1931이나 Munsell 색체계는 이 당시에도 있었지만, 색깔까지 구체적으로 표준화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듯하다.
4.3. 태극기의 변천[편집]
1997년 이전에는 연한 빨강-진한 파랑과 진한 빨강-연한 파랑이 같이 사용되었다. 1978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의 9대 대통령 취임을 다룬 대한뉴스의 영상을 보면, 취임식장의 태극기는 연한 파랑을 쓰지만 7분 41초에 나온 청와대에 게양된 태극기는 진한 파랑을 쓰는 등 통일되어 있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현재도 총무처고시 공식 색상 이외의 진한 파랑의 태극기가 가끔씩 보이긴 한다. 대표적인 예로 2022년 문재인 정부의 K9 자주포 이집트 수출 당시 발표회의 태극기. 참고로 오른쪽에 있는 건 이집트의 대통령기다.# 이 외에 국경일에 거리에 게양하는 태극기나 상품 포장에 그려놓은 태극기에도 진한 파랑 버전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국경일 게양용은 진한 파랑을 이용하는 추세다.[37]
4.4. 정통성[편집]
이러한 점에서 훗날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 한국 탄생을 가정할 경우에도 국기로 채택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물론 태극기가 된다. 국가나 국장 등의 국가 상징물은 통일 이후 새롭게 탄생할 여지도 있으나 국기의 경우는 태극기로 유지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5. 국기 게양[편집]
국기를 다는 법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행정안전부의 관련 페이지에 수록돼 있다. 국기를 '게양한다'는 표현도 맞지만, 국립국어원은 이를 일본식 한자어로 보아 '달다' 혹은 '올리다'라고 순화하여 표현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5.1. 태극기 구매[편집]
태극기는 시군구청 또는 주민센터에서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태극기와 깃대, 보관함까지 합쳐서 5,000~8,000원 정도다. 일반적으로 카드결제는 안되고 현금결제만 가능하다. 또는 인터넷에서 우체국 쇼핑이나 태극기 판매업체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5.2. 국기 다는 날[편집]
현재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3월 1일(삼일절), 6월 6일(현충일), 7월 17일(제헌절), 8월 15일(광복절), 10월 1일(국군의 날), 10월 3일(개천절), 10월 9일(한글날) 국기를 달도록 되어 있다.[40] 그 외에 국가장 기간이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날에도 달도록 되어 있다.[41][42]
경축일 또는 평일에는 깃봉과 깃면의 사이를 떼지 아니하고 단다.[43] 그러나, 현충일과 국가장 기간 등 조의를 표하는 날에는 태극기 하나가 들어갈 공간만큼을 내려 다는 조기(弔旗)를 달도록 되어있다.[44] 과거에는 제헌절, 국군의 날 등 쉬지 않는 국경일 및 기념일에만 게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사람들이 다는 것 자체가 드물어졌다.
1980년대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까지만 해도 오후 5시가 되면 도심이나 농촌을 가리지 않고 관공서 등에서 국기를 내리며 1분간 애국가를 울리면, 길 가던 시민들이나 농사짓는 농민들이 움직이지 않은 채로 가슴에 손을 얹는 국기하강식이라는 의례가 있었다. 군부대가 아닌 민간에서는 폐지되어 하지 않는다. 시민의식이 현대화되어 전체주의적인 행동이라는 시각이 퍼져 이렇게 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국민의례도 있다. 1960년대~1980년대에 초, 중, 고등학교 에서는 아침 8시와 오후 5시에 각각 애국가를 틀고 게양, 하강을 했고 2000년대까지 매주 월요일 아침 자습시간에는 애국조회를 하며 전교생이 모두 운동장에 모여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후 애국가를 틀고 태극기 게양과 하강은 제6공화국으로 바뀐 1988년을 기점으로 1990년대 이후로 거의 다 사라졌고, 애국조회는 2010년대 이후로 거의 다 사라졌다. 사실 애국조회를 위한 구령대 자체가 일제강점기의 잔재라 요즘 개교하는 학교에는 구령대가 없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태극기에 물 한 방울, 티끌 한 점 묻히지 못하도록 우천 시 올리는 것을 금지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관련 법이 개정되어 달고 싶으면 1년 365일 달 수 있다.[45] 하지만, 비나 눈 등은 상관이 없으나, 국기가 찢어질 염려가 있을 정도로 심한 악천후라면 지금도 달지 못하도록 한다.[46] 아파트 고층에서는 국기 달기에 많이 유의해야 한다. 가끔 강풍에 날려서 발코니 난간에 깃봉을 꽂아 단 태극기가 깃봉 채로 빠져 떨어져 차량을 파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플라스틱이라도 고층에서 떨어지면 차 유리창 정도는 우습게 부순다. 심지어 태극기를 달려다 실족사 할 수도 있다.#
원래는 1월 1일 신정도 국기 게양일이었으나, 2007년 「대한민국국기법」이 제정되면서 구법인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과 함께 폐지됐다.##
5.3. 공공 기관 등에서의 국기 달기[편집]
6. 국기에 대한 경례[편집]
국민의례를 할 때 가장 처음 하는 일은 모든 참석자가 태극기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것이다. 애국가 제창은 생략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생략하는 일[49] 은 거의 없다. 이 때 태극기를 직접 바라보아야 하며, 일반 국민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 위에 얹고, 만약 모자를 쓰고 있다면 모자를 벗어 오른손과 함께 왼쪽 가슴 위에 얹어야 한다.
프로야구 경기 등에서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외국인 선수들 중 대한민국과 비슷한 규정이 있는 미국, 멕시코, 도미니카 공화국 등의 출신 선수들도 비슷하게 가슴에 모자를 얹는 것을 볼 수 있다. 군인이나 경찰 등 제복을 입은 시민은 오른손으로 거수경례를 하되 경례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총을 들었다면 집총경례인 '받들어 총'을 하되, 역시 경례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경례구호를 하지 않는 이유는 국기는 인간처럼 경례를 받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극기뿐만 아니라 외국 국기에 대한 예우를 할 때도 경례구호는 없다.
국기에 대한 맹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7년 7월 27일에 개정하여 지금에 이른다.
(변경 전)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스런' 이라는 표현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틀린 표현이기 때문에 올바른 ㅂ 불규칙[50] 활용형 표준어인 '~스러운'으로 개정하였으며, 내용도 일부 개정되었다.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라는 내용이 군사독재의 잔재가 아니냐는 논란에 의해 결국엔 수정되었으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문구를 새로 만들어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하여 충성을 한다는 민주주의적인 사상을 더욱 강조하였다. 민주주의의 최선봉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상기한 충성의 맹세를 통해 국기와 국가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 여전히 행해지긴 하지만 미국은 의외로 굉장히 앞뒤가 안맞는 나라라서 국가주의적인 사상이 강한 나라다.[51] 일단 판례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자에 대한 학교 등의 징계에 대해 적법하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변경 후)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노동당, 녹색당, 민중당 등 진보, 노동단체 대부분은 각종 행사 때 국민의례,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을 일체 거부하고, 대신 '민중의례'라 하여 노동 열사에 대한 추모 묵념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대체한다. 2004년 첫 민주노동당 첫 원내진입 이후, 대한민국 국회에 등원하는 공식 정당 의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거부함을 허용해야 하는지 논란이 벌어졌다. 요즘에는 진보 정당 인사들도 당내 행사가 아닌 외부 행사에서는 국민의례를 할 때는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아나키스트와 세계 시민주의자들은 사상적인 이유로 이를 거부한다. 이들은 전세계 어디서든 그 나라의 국가 제창이나 국기에 경례를 하지 않는다.
참고로 깃발로 행해지는 제식 중 받들어 기를 행할 때, 국기인 태극기는 그 어디에도 굽히지 않는다. 나라와 국민 자체를 상징하는 태극기가 어딘가에 굽혀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국기의 불경례로 칭하며, 원칙적으로는 그 어떤 순간에도 태극기는 경례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군대를 사열할 때에도 태극기는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열병시 대통령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한다.
7. 도안법[편집]
태극과 사괘[52] 가 그려진 이 도안은 동양사상에서의 우주의 원리가 담겨 있다. 즉, 동양 철학을 집대성한 국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앙의 태극은 음과 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좌측 상단의 건괘는 하늘, 우측 하단의 곤괘는 땅, 우측 상단의 감괘는 물, 좌측 하단의 이괘는 불을 상징하며 대한민국의 자연과 강산을 나타낸다. 태극은 몽골의 소욤보 문장, 티베트의 설산사자기와 함께 세계에 몇 안 되는 우주의 원리를 담겠다는 의도를 나타내는 국기. 흰색,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이 들어간 국기에 깃발의 봉의 노란색까지 넣어 오방색이 모두 들어갔다고도 한다.[53]
도안이 비교적 복잡한 관계로 외국인에게 그리기 몹시 어려운 국기로 꼽히나, 구불구불한 유기적 형태의 그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형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형상이기 때문에 자와 컴퍼스 정도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충분히 그릴 수가 있다. 수식으로 나타내는 것도 2009 개정 과정 기준으로 고등학교 수준에 더해 회전변환 행렬만 배우면 쉽게 나타낼 수 있다(2015년 개정 이후부터는 경제수학 수강 필요). 그래프 그리는 목적으로 개발된 desmos라는 프로그램으로 30×20 규격의 태극기를 그리면 이와 같다.
전 세계의 문장과 상징을 놓고 보면 태극기는 그다지 복잡하거나 어려운 도안도 아니다. 다만 2색기, 3색기, 십자가기 등 간결한 국기가 많아 상대적으로 복잡해 보일 뿐이다. 특히 3색기는 프랑스 혁명 이후 모든 인민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명제 아래서,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기억하고 따라 그릴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들 색상기가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태극기는 기하학적 형상이기 때문에 벨리즈 국기(웃통을 벗은 사람의 근육과 바지 주름), 부탄(용)[54] , 멕시코 국기(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에 앉아있는 모습), 과테말라 국기(과테말라의 국조(國鳥) 케찰(케트살)및 과테말라 독립 문서), 투르크메니스탄 국기(융단 무늬), 바티칸 시국(교황관과 성 베드로의 천국 열쇠), 벨라루스 국기, 브라질 국기, 사우디아라비아 국기(아랍 문자)보다는 그리기 쉽다. 이런 나라들은 대내적으로는 아예 문양이 없는 국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비교적 그리기 까다롭기는 하지만 외국인에게는 태극 문양이 주는 동양적 이미지가 꽤 인상적이라고 한다. 태극과 건곤감리가 들어간 지극히 도교스러운 디자인 때문에, 중국에서는 태극기를 보고 한국인의 조상 세대에서 도사가 많았거나, 혹은 조선이나 대한민국 자체가 도사가 세운 나라가 아니었나 생각하면서 한국인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55]
외국인에게 태극기의 의미를 설명하는 법: 1번 및 2번
태극기를 그릴 때 헷갈리는 요소는 사괘, 태극 문양의 경계선과 위아래의 색 등이 있다. 쉽게 외워서 그리는 팁 중 하나는 사괘와 태극 문양의 경우에는 S를 왼쪽으로 90도 돌린 후, S를 쓰는 순서대로 3(건괘), 4(이괘), 5(감괘), 6(곤괘)를 그리면 된다. 태극 문양의 경계선 역시 S를 왼쪽으로 90도 돌린 모양처럼 왼쪽이 아래로 볼록하고, 오른쪽이 위로 볼록하기 때문에 같이 외우면 된다. 소문자 n을 쓰는 순서로 줄 수가 늘어난다고 외워도 좋다. 또는 책 읽는 순서로 하나씩 외워도 된다. 물론 괘의 순서만 맞게 그린다고 태극기를 제대로 그렸다고 볼 수는 없고, 태극과 각 괘의 모양, 위치, 크기 등이 전부 세밀한 규격이 있다. 다만, 괘를 대칭이 되도록 그려야 한다를 조건으로 그리기 시작하면 비교적 쉽게 외울 수 있다. 무조건 대칭이 되도록 그려야 할 땐 3, 4, 5, 6 모두 한 가지 도안 밖에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4괘의 위치 기억은?" "위아래위위아래"
태극의 위아래 색을 헷갈리는 이들도 있는데 정말 단순하지만 쉽게 외우는 방법으로 위는 태양, 아래는 바다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헷갈릴 일은 없다. 더 간단한 방법은 그냥 위는 북쪽을 상징하는 색(빨간색), 아래는 남쪽을 상징하는 색(파란색)으로 외우는 것이다. 태극의 두 색을 나누는 경계선이 치우친 방향을 헷갈리는 이들도 있는데, 왼쪽 절반은 아래쪽으로 볼록하고, 오른쪽 절반은 위로 볼록하다.
그런데 태극기를 제작할 때 규격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자주 발생하며, 이는 인터넷상에 잘못된 규격의 국기 이미지가 돌아다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특히 실수가 많이 발생하는 경우는 4괘 부분으로, 4괘를 이루는 효(막대기 1개)의 굵기는 정확히 효와 효 사이의 간격의 두 배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효의 굵기가 가늘어서 효와 효 사이의 간격과 동일하거나 그보다도 가는 경우 국기에 힘이 없어보이고 국기의 위엄이 급격히 저하된다.
결론적으로 태극기라고 알아볼 수준으로 그리기는 쉬우나 사괘나 태극 문양(특히 경계선과 그 곡률) 등의 규격을 정확하게 맞춰서 그리기는 어려운 국기이다. 그래서 실제로 캐드 실습, 포토샵 실습 등 그래픽 툴 학습교재로 애용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저 비율 맞추는 것 자체가 그래픽 툴 학습 용도로는 너무나 제격이다.
한편 태극 문양과 세로의 비율은 1:2이다.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창작물 등에서 파란 태극무늬와 건곤감리등을 떼거나 붙여서 일장기로 위장하거나 반대로 태극기를 급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엄밀히 말해 도안에 맞지 않게 된다. 일장기의 경우 빨간 원과 세로의 비율이 3:5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위에서 서술했듯 이 당시에는 태극기의 형태가 법적으로 정해진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반영 오류라고는 할 수 없다.
7.1. 색상[편집]
태극기의 표준 색도는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 별표 2에 규정되어 있으며 아래 표와 같다. 인쇄물 등에 태극기를 인쇄할 때에도 되도록이면 정해진 색을 써야 하지만, 그럴 수 없을 경우에는 흰색 부분과 빨간색 부분을 인쇄물 등의 바탕색으로, 파란색 부분과 괘를 검은색으로 표시한다.
- 법정 표준 색도
하지만 웹 콘텐츠 등에 필요한 sRGB 값은 법에 따로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된 규격도 없고 믿고 따를 만한 규격도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위키백과 등에서 사용하는 위키미디어 공용의 최신 태극기 이미지에는 표준 색도를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계산한 sRGB 색상값이 적용되어 있다. 그 밖에는 아래에 소개하는 값들을 참고할 만하다. 단, 같은 sRGB 값을 가지고도 디스플레이가 실제로 표현하는 색상은 기기마다 다르기 때문에, 지금 보고 있는 디스플레이 기준으로 아래 표시된 색상이 실제로 천이나 종이 위에 구현되는 표준 색상에 가깝다는 보장은 없다. 또한 태극기의 표준 파랑은 sRGB 색역 밖에 있을 뿐만 아니라, 3원색으로 합성이 불가능한 영역에 속하는 색이어서 이를 사용하는 디스플레이로 재현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것.
- 국가기술표준원
- 팬톤 컬러
- 구 행정자치부 홈페이지
- Munsell 색체계를 다룰 수 있는 R 라이브러리인 Munsellinterpol을 사용하여 sRGB로 변환한 값은 다음과 같다. # 전반적으로 위의 국가기술표준원의 값과 비슷하며 국가기술표준원의 sRGB 코드값과 마찬가지로 검정이 #000000이 아니고, 하양이 #FFFFFF가 아니다. 파랑은 sRGB의 표현범위를 벗어나기에 R값을 0으로 맞춘 근사치를 사용하였다.
- 법정표준색도의 변환값
7.2. 주의점[편집]
외국에서 제작한 태극기나 국기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일부 대중들의 도안, 특히 작은 태극기, 만국기나 태극기를 사용한 소품 등에서 오류가 자주 보인다. 대표적인 예는 삼원색을 사용하거나, 태극과 괘의 비율을 달리하여 태극기를 제작하는 경우다. 이는 기법에 어긋나는 잘못된 깃발일 뿐만 아니라 채도가 강렬한 원색을 썼기 때문에 눈이 아프고, 태극이나 괘의 크기가 다르면 전체적인 비율이 일그러져 보인다.
디스플레이 비율이나, 카드를 이용한 태극기 표시, 공간 부족, 앱 아이콘처럼 정사각형의 태극기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일본은 그냥 붉은 원을 그리면 되고, 미국은 오른쪽 부분을 조금 잘라서 맞추는데, 대한민국은 태극기를 축소하면 사괘가 이상하게 표시되는 경우가 많고, 태극기를 그대로 그 비율로 만들어버리면 태극 문양이 타원형이 되기 때문에 태극 문양이라도 원형으로 맞추려고 원래의 태극기와 다른 도안을 사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찾아보면 비율 적용 문제 때문에 이런 식으로 그려진 태극기가 꽤 많다. 심지어 국가기관에서도 사용한다.
8. 북한에서의 태극기[편집]
역사에 무지한 경우 북한에서 분단 이전 태극기를 사용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마저 있으나 분단 이전은 북한은 남한과 그냥 한 나라였기에 3.1운동 당시에도 매우 잘 사용했다. 북한 땅에서 태어난 유명 마라토너 손기정도 일제강점기 시절 몰래 태극기를 보았고 해방 후 행사에서 태극기를 들고 감격에 겨워 울기도 했다.
남북한 모두 태극기를 사용하던 시기의 북한에서는 태극기를 뒤집어서 사용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당장 위의 사진들 가운데서도 태극기가 뒤집힌 모습이 눈에 띄는데, 38선 이북 지역임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뒤집은 것이다.
- 태극기는 새로운 민주 국가의 성질에 위반된다.
- 태극기는 그 근거 되는 주역, 주돈이의 '학설'이 비과학적이며 미신적이다.
- 태극기는 처음부터 일정한 의의와 표준이 없이 제정된 것이다.
- 태극기는 무용한 난해로 인한 각양각색의 불통일 된 폐가 있다.[64]
또한 인공기는 베트남의 금성홍기와 중국의 오성홍기 등과 같이 각국이 지니는 고유한 문화적 가치나 전통적으로 내려온 민족적 상징을 배제하고 공산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상징을 내세운다는 특징이 있다.
오늘날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분단 이전, 또는 남한 통치를 기억하거나 남한 체제에 접점이 있는 일부나 평양 거주민 같은 고위층을 제외하면 태극기의 존재 자체도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 김일성 시절 제작된 북한 선전물 민족과 운명이나 '이름없는 영웅들'같이 북한 시각에서 본 남한을 다룬 작품에서 가끔 보여주긴 했다. 예를 들어 민족과 운명의 경우 2016년 개편 이전 정부문장이나 경찰 마크도 나온다.
다만 텔레비전에 나오는걸 보고 따라 그렸다가는 인생 종치는 건 확정인 데다 해당 작품들이 오랜 텀을 두고 제작되는 시리즈물인 점, 되도록 재방송이 없이 과거 작품에 출연했던 일부 출연진들이 숙청될 경우 그 회차가 통째로 로스트 미디어가 되는 까닭에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초창기에는 태극기를 중국에서 바라보는 청천백일만지홍기의 모습처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정권 창건' 이전 존재했던 조선의 상징으로 묘사하는 사례가 존재하였으나, 8월 종파사건과 주체사상 선포로 북한 정권이 교조적이고 히스테릭화 하면서 기록말살 수준으로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심지어 저런 법이 시행되고 나서는 아예 남한이 매체에서 보이는 모습 자체를 검열하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팀, 대한민국 기업의 광고가 나오는 것은 모조리 편집하다가 외부의 거센 비판을 의식한 모양인지 16강에 진출하자 그때서야 대한민국 팀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지만 그 경기에서도 태극기를 통으로 편집했다. 심지어 국가대표팀 팔에 붙은 태극기까지 모자이크 처리하고 간혹 편집을 못한 태극기가 나온 정도다. # 2002년에 비해서도 후퇴한 모습이다. 2018년경에야 잠깐 여러 행사를 진행하기는 했지만 그때도 봄이 온다 같은 것을 단속하여 당성이 강한 핵심계층을 제외한 주민들은 보지 못하게 했다.
2012년 조선일보가 탈북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북한에 체류하고 있을때 대한민국('남조선')의 국기로서의 태극기의 존재를 알았던 이는 20퍼센트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나마 그 20퍼센트도 중국을 통해 남한 매체를 접하거나 핵심계층 출신 인사들이었다.
같은해 정치범수용소의 수용자 명단 일부가 남측 언론에 공개되었는데, 1992년 수감된 여성 안○○ 씨처럼 가택 수색에서 태극기가 발견된 주민이 포함되어 있었다.
남북고위급회담이나 남북정상회담에서와 같이 남측 인사들과 북측 인사들이 동시에 만나는 경우 남측 인사들은 태극기 뱃지를 착용하는데, 이는 북한 당국자와 공민들이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김일성 배지(이른바 '초상휘장')의 안티테제이다. 이는 공직자와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남측 참가인원 모두에게 적용한다.
9. 기타[편집]
- ||<table width=100%><width=49.5%> ||<width=50%> ||
- 《주역》의 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나와 있는 태극 → 양의(兩儀) → 사상(四象) → 팔괘(八卦)라는 우주 생성론을 나타내는 태극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조선의 태극팔괘도는 복희선천팔괘(伏羲先天八卦)가 아닌 문왕후천팔괘(文王後天八卦)이다. 원이 나타나는 태극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을 의미하며 도교에서는 태소(太素), 탄드라밀지에서는 카르마무드라라고 하며 사고의 개입이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위를 의미하는 무아전위(無我全爲)의 우주일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징한다.
- 항시 게시해도 된다는 법 개정과 더불어, 2002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태극기가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는 등 이전보다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오게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태극기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아 국기법 위반이나 아니냐로 논란이 있는 편. 원칙상으로 태극기에 구멍을 내거나 절단하는 행위는 법률로 금지돼있다. 또한 태극기 응원이 범람하다보니 응원이 끝난 후 수많은 태극기가 길바닥에 버려지거나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런 응원도구들은 가급적 집에 가져가서 조용히 처리하라고 권한다.
-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를 비롯한 보수 집회 및 보수성향 단체에서 애국주의 마케팅을 위해 자신들의 상징으로 태극기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태극기는 정치성향에 앞서 대한민국의 국기이기 때문에 민주당계나 진보정당계에서도 태극기를 사용하지만 보수정당계에서 훨씬 적극적으로 여기저기에 사용하기에 태극기가 보수집회의 상징이란 인식도 어느정도 생겼다.
- 폭주족들이 삼일절, 광복절 등에 오토바이에 태극기를 달고 질주하는 바람에 경찰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기도 한다. 자기들은 애국심이라고들 하지만 이건 자기들 범법 행위를 태극기를 이용하여 애국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행위다. 애국이라는 말로 욕 좀 안 얻어먹으려나 한 것 같은데, 그저 허울 좋은 구실일 뿐이다. 한편 2008년 이후 북악산길을 태극기를 달고 자전거로 질주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아마도 시야 방해와 국기 훼손 때문인 듯하다.
- 1997년에 태극기를 주제로 공익광고가 제작되기도 했다.
영광이 있는 곳에 태극기가 있습니다.한국 전통화가가 붓으로 그린 듯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잘 보면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태극마크 형상의 공을 던져 스트라이크를 맞추고, 축구 경기에서 축구선수들 역시 태극마크 형상의 공을 주고 받으며 골문을 뚫는 데 성공하여 국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는 펄럭이는 태극기와 한반도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여 어떤 남성이 국민의례를 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27년이 지난 2024년에도 좋은 평을 들을 정도로 예술미와 전달력이 뛰어난 광고로 손꼽히고 있으며, 실제로도 이 광고를 기점으로 공익광고협의회가 만드는 광고의 질이 크게 좋아졌다. 내레이션은 김기현.
태극기가 있는 곳에 내가 있습니다.
태극기는 또 다른 나의 얼굴입니다.
- 1997년 당시 박찬호 선수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야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무대에서 멋진 활약을 하고 있었던데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또한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좋은 행보로 승승장구 하며 국가대표팀 공식 서포터즈 붉은악마가 본격적인 틀을 갖추었을 정도로 스포츠 경기에 대한 범국민적인 관심과 사랑이 많던 시절이었다. 해방 이후 국내 시위 등에서 공식적으로 태극기가 불태워진 적은 없으나, 한때 통일이 되면 예멘이 통일 후 새 국기를 제정했던 것처럼 태극기가 아닌 국기(ex. 한반도기)를 써야 하나에 대한 주제가 나온 적이 있는데, 태극기는 분단 이전부터 사용했기 때문에 독일이 통일하고도 국기를 안 바꾼 것[71] 처럼 이대로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 2004년에 조선일보가 가장 오래된 태극기를 공개했다. 한국어 판, 영어판(2번째 부분), 일본어 판(아쉽게도 비밀번호가 걸려있다), 비교사진, 한국의 비교사진.[72]
- 태극이 펩시의 마크와 닮아 엮인다. 구글에 Pepsi Korea flag를 검색하면 수많은 펩시 마크와 합성한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실제로 펩시콜라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지극히 우연일 뿐이다. 2001년 개봉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는 이 밈을 역이용해서 오히려 펩시가 국산품 아니냐는 드립을 쳤는데, 단순한 영화 각본상의 개그가 아니라 펩시측의 정식 PPL이다(...). 주유소 습격사건 문서를 참조해 보면 꽤 성공적인 간접광고라고 내부에선 평가한 것 같다. 또한 태극 마크를 모티브로 만든 대한항공 로고 또한 펩시 로고와 유사하다는 평가 때문에 외국 항덕들 사이에서는 “Pepsi Air(펩시항공)”이라 불리고 있다. 실제로 예전의 펩시콜라 마크는 굴곡이 조금 더 적은 태극마크와 유사했으나, 이후 로고를 바꾸면서 유사성이 약간 떨어졌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에도 개막식에 등장한 대형 태극기를 보고 해외 네티즌들이 '펩시의 마케팅이 성공적이다'라는 류의 우스개 소리를 SNS에 올리기도 했는데, 태극기와 펩시 로고의 유사성 때문에 생겨난 이러한 오해를 설명하는 영어 사이트도 있을 정도.
- 대한민국 국대를 통틀어서 특히 태극 색깔을 베이스로 한 유니폼을 입는 축구대표팀을 '태극 전사'라고 부르는데 이 표현은 이제 외국에서도 자주 쓰는 표현이 되었다. 문제는 영문 표기시 대부분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의한 'Taegeuk Warrior'가 아니라 'Taeguk Warrior' 라고 한다는 것이다. 외국에서야 어떻게 발음하든 별 상관이 없긴 하지만 한국인이 보기에 좀 거슬리는건 어쩔 수 없는 듯. [73]
- 2015년부터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전군 군복에 태극기를 부착하게 되었다.[74]
- 2016년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발표 때 나온 홍보물에 태극기가 있는데 4괘의 순서가 Z자로 잘못 표시됐다. 자세히 보면 태극의 방향도 잘못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1949년까지 사용된 태극기를 첨부했는데, 다시 말해서 67년 전 태극기를 정부 부처라는 곳에서 뜬금없이 자랑스레 내건 것이다.[76]
- 이 태극 무늬가 기묘하게도 위쪽이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으로도 잘 쓰이는 빨간색이고, 아랫쪽이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색으로 자주 쓰이는 파란색인데다, 두 색의 경계선 모양이 군사분계선과 흡사해서, 옛 사람들이 태극기를 고안하면서 한국이 분단 국가가 될 것을 예언했다는 농담이 있지만 초기 시절 도안을 보면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이건 그냥 농담에 불과할 뿐, 진지하게 받아들일 게 아니다. 일부 사람들이 태극기에 이태극을 넣어서 나라가 두 도막이 났다(...)며 삼태극을 썼어야 한다는 참신한 개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다.[77]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독일팀이 이 국기를 같이 들고 나왔다고 한다.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경기를 하는 상대국 팬들이 이탈리아를 도발할 때 태극기를 사용한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뉴질랜드 팬들이 대표적.
- 대한민국 국군에서 병사들은 남의 생활관이나 행정반 등에 들어갈 때, "충성, (계급 홍길동), ○○○에 용무 있어 들어왔습니다."라 말한 후 최선임자가 경례를 받아준 후에 들어간다. 다만 태극기를 들고 있을 땐 목례만 하고 들어간다.
-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브레이브의 1호 주역메카 브레이브 티라노킹의 도색이 이 태극기와 매우 흡사하다. 아무래도 다이노포스 브레이브가 수전전대 쿄류저의 대한민국 버전이기 때문에 노린 걸지도.
9.1. 태극기 펄-럭[편집]
9.2. 국제 대회에서의 태극기[편집]
근대 올림픽에서 태극기가 처음으로 등장한 순간은 1948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이 된다. 시상대에 태극기가 처음 등장한 때는 1948 런던 올림픽에서 김성집이 동메달을 획득한 순간이었다. 이후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1960 로마 올림픽, 미국의 보이콧에 동조해 불참한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시상대에 태극기가 등장하고 있다.
FIFA 월드컵의 경우, 태극기가 처음으로 등장한 때는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조별리그 헝가리전이다. 1954 스위스 월드컵은 온전한 주권을 가진 아시아 국가가 처음으로 참가한 월드컵이기도 한데 대한민국은 아시아 독립국 최초로 월드컵에 참가한 국가로 기록된다.[78] 그 후 1958년은 불참, 1962년 유고슬라비아에 패배해 탈락, 1966년 기권, 1970년과 1974년은 호주에 패배해 탈락, 1978년 이란에 밀려 탈락, 1982년 쿠웨이트에 패배해 탈락해 월드컵에서 태극기를 볼 수 없었으나 1986년 대한민국이 32년 만에 다시 월드컵에 진출하면서부터는 월드컵에 꾸준히 태극기가 등장하고 있다.
유로 2004에도 태극기가 등장한 적이 있었다.(사진)
- 이 케이스는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에 패배한 이탈리아 대표팀을 조롱하기 위해 태극기를 내건 것이다. 이 경기는 무득점 무승부로 끝났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조별리그에서도 뉴질랜드 관중이 태극기를 꺼내들었고, 그 경기 또한 1:1 무승부를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