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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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대표팀 수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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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Korea Republic National Football Team
FIFA 코드
KOR
축구 협회
파일:대한축구협회 로고.svg대한축구협회 (KFA)
대륙 연맹
파일:아시아 축구 연맹 로고.svg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 연맹
파일:동아시아 축구 연맹 로고.svg동아시아 축구 연맹 (EAFF)
홈 경기장

마스코트
백호[1] (번호: 105)
별명
태극전사[2], Reds[3], 붉은 악마[4], 아시아호랑이
감독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파울루 벤투 (Paulo Bento)
주장
C
손흥민 (Son Heung-min)
부주장
C
김영권 (Kim Young-gwon)[5]
라이벌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6]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7]
FIFA 랭킹
28위 (2022년 6월 23일 기준 / #)
Elo 랭킹
26위 (2022년 6월 14일 기준[8] / #)

[ 대표팀 기록 보기 ]
A매치 최다 출전
홍명보 (136경기)
A매치 최다 득점
차범근 (58골)
월드컵 최다 득점
안정환 - 3골 (2002, 2006)
박지성 - 3골 (2002, 2006, 2010)
손흥민 - 3골 (2014, 2018)
첫 국제경기 출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vs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영국령 홍콩 5:1
(영국령 홍콩 / 1948년 7월 6일)
최다 점수차 승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vs 파일:네팔 국기.svg 네팔 16:0
(대한민국 인천 / 2003년 9월 29일)
최다 점수차 패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vs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0:12
(잉글랜드 런던 / 1948년 8월 5일)
자세한 내용은 역사/기록을 참고하십시오.


[ 대회별 성적 보기 ]
세계대회
월드컵
[출전] 11회[1][2]
[최고] 4위 (2002)[3]
컨페드컵
[출전] 1회
[최고] 5위(조별리그)[4] (2001)
올림픽
[출전] 8회[5]
[최고]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2012)
대륙대회
아시안컵
[출전] 14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1956, 1960)[6][7]
아시안 게임
[출전] 12회[8]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1970, 1978, 1986, 2014, 2018)
EAFF컵
[출전] 8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2003, 2008, 2015, 2017, 2019)
골드컵
[출전] 2회
[최고] 4위 (2002)
기타 대회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컵

[출전] 1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1987)
다이너스티컵
[출전] 4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1990)
코리아컵
[출전] 23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1971, 1974, 1975, 1976, 1978, 1980, 1981, 1982, 1985, 1987, 1991, 1997)
기린컵
[출전] 1회
[최고]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1978)
킹스컵
[출전] 10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1969, 1970, 1971, 1973, 1974, 1975, 1998)
메르데카컵
[출전] 20회[9]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1960, 1965, 1970, 1972, 1975, 1977, 1978)
홍콩 구정컵
[출전] 4회
[최고] 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1986, 1995, 2006)
네루컵
[출전] 1회
[최고]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1982)
머라이언컵
[출전] 1회
[최고] 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1982)
자카르타 창립
기념대회

[출전] 3회[10]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1981)
인도네시안
인디펜던스컵

[출전] 2회
[최고]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1987)
아랍에미리트
4개국 친선 대회

[출전] 3회
[최고] 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2000, 2001)
남베트남
인디펜던스컵

[출전] 1회
[최고] 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1967)
LG컵
[출전] 4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2000, 200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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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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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

원정
상의


하의


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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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
골키퍼 1
골키퍼 2
골키퍼 3
상의



하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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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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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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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1. 개요
3. 특징
4. 플레이 스타일
4.1. 신체 조건
4.2. 전통적 팀 컬러
4.3. 진보적 축구 전술
4.4. 득점력
4.5. 에이스 윙어
5. 문제점
5.1. 고질적인 백패스
5.2. 판정에 대한 임의해석
5.3. 강약약강
6. 라이벌
7. 랭킹
9. 출처
10.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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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소개 영상(FI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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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호랑이, 세계를 삼켜라(TIGERS OF ASIA, CONQUER THE WORLD)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출전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슬로건

대한축구협회 산하의 대한민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강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별명태극전사아시아의 호랑이[9][10], 마스코트하얀 호랑이 백호, 유니폼 스폰서나이키이다.


2. 역사/기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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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징[편집]


파일:FPSc5OgUcAENEXg.jpg[11][12]
강인한 체격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 세계적인 수준의 빠른 스피드와 7번 넘어져도 또다시 일어서는 백절불굴의 처절한 투지, 극한에 몰릴수록 오히려 전투력이 점점 더 증가하는 불가사의한 정신력[13][14] 등등 다른 나라에선 보기 힘든 독특한 특징들로 무장한 게 특징이며 종종 저 강점들을 무기삼아 세계 최강팀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려 침몰시키는 예측불허의 대이변을 일으키는, 델피에로 말마따나 심한 농담을 만들어내는 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저런 케이스들은 말 그대로 정말 자주 일어나기 어려운 케이스이며, 평소엔 상대적 약팀에게까지 빌빌대다가 참패하는 등 상술한 경기력이 꾸준하지 못하고 성적이 들쑥날쑥 기복이 심한 편이라 해외에서는 한국을 강호보다는 도깨비팀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유로2004 우승한 그리스가 유로2004 우승하였다고 그리스를 독일, 스페인과 같은 우승후보로 여기지 않는것과 비슷하다. 아무튼 카잔 대첩 이후 한국이 승점자판기 취급받는 일은 크게 줄었으며, '방심했다간 큰 코 다치는 1라운드 본선 조별리그 32강 (상대적) 약체팀' 정도로 취급받는다.

3.1. 태극전사[편집]


전통적으로 남자 축구 대표팀을 태극전사라고 불렀다. 물론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도 국가대표를 이렇게 호칭하고 있다. 또한 여자 축구 대표팀도 태극낭자로 불린다. 근래에는 과거와는 달리 붉은 악마보다는 이 별명으로 많이 지칭하는 편이다.

3.2. 붉은 악마[편집]


붉은 악마라는 별칭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 팀을 현지 언론에서 붉은 악령(Red Furies)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이걸 번역하는 과정에서 악령이 악마가 되었고 후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서포터즈가 결성이 되면서 공식적으로 붉은 악마로 이름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 붉은악마의 원조는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의 별명이기도 해서 대한민국한테는 최근에 잘 사용 안한다.[15]

3.3. FC 코리아[편집]


태극전사, 국가대표, 평가전, 친선경기는 성인 남자 축구 대표팀의 A매치를 떠올릴 정도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가대표팀이다. 그로 인해 축구 국가대표팀의 인기로 많은 방송사들이 시청률이 보장되는 이들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 특히 손흥민, 황의조, 황희찬, 이강인 등 유럽 해외파가 참가하는 경기의 중계권을 무척 따내고 싶어한다.[16] 이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인기는 또한 대한축구협회를 운영하는 현대가문의 빵빵한 지원까지 더해져 대한축구협회는 국내 스포츠 협회중 유일하게 스폰서만으로 자급자족이 되는 기관이다. 세금은 1,000억이 넘는 예산중 10억 정도밖에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금으로 먹고 사는 협회들은 좀 까여도 된다."'라는 논리가 사실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마저도 명목을 위해 국가에서 받는 돈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FC 코리아"라고 비판이 섞인 명칭이라고도 불린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평소에 한국 축구나 K리그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가 월드컵 등 국가대표 경기 기간에 한해서만 축구 국가대표팀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국내 스포츠팬들의 기이한 현상에 대한 비판의 뜻이다. 축구가 매번 잘할 수는 없다. 또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FIFA 월드컵 아시아 최다 출전과 아시아 최다 승점 27점(28위)[17]FIFA 월드컵 4위, FIFA 월드컵 19위권 총 4회[18] 등 큰 업적을 세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몇몇 경기를 가지고 그 선수들과 감독들에게 지나치게 비난을 하는 등 선수들과 감독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물론 잘못한 것은 비난을 받을 부분이지만 가족들에게까지 조롱과 비난을 하는 정말이지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3.4. 응원 구호[편집]


응원 구호는 박수를 다섯 번 치면서 '(짝짝짝짝짝) 대한민국!'[19][20] 응원곡은 전통민요 '아리랑', 윤도현'오!! 필승 코리아!'[21], 교향곡 제9번(베토벤), 트랜스픽션'승리를 위하여', 레이지본'우리의 힘을...'[22] 등을 부른다. 득점 후에는 김수철의 '젊은 그대'를 부르는 전통이 있다. 자세한 사항은 역대 응원가 참조.

3.5. 아시아의 호랑이[편집]


1948년 축구 국가대표팀이 창설된 이후 세계무대와의 격차를 꾸준히 좁혀왔다. 1980년대, 1990년대 국제대회에서는 동네북 신세였다.[23]

2000년대 이전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동아시아 골목대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 골목대장이라는 하는 이유는 아시아권 내에서 최대 규모의 축구 대회인 AFC 아시안컵에서 초대 대회 1956년, 제 2회 1960년 우승으로 2연패를 달성한 이후 무려 63년간 우승을 하지 못했고, 그 후 아시아 대회 우승은 1990월드컵 아시아 예선 우승 진출[24][25] 아시안 게임 축구 종목에서는 1970, 1978, 1986[26] , 2014, 2018에 금메달을 5회 따냈으며, 아시아 게임 참가 국가들 중에서 최다 우승 국가이며,[27] 아시아 클럽 대회 AFC아시아챔피언스리그 12회 최다 우승국가이다. 하지만 더 큰 대회인 올림픽에서는 상대적으로 저조해서 본선 진출조차도 쉽지 않았다. U23 대회가 된 이후가 오히려 더 성적이 좋다. 이런 면을 종합해서 보자면 동아시아 골목대장 정도가 맞는 수식어다.

2000년대 이후에 이르러서는 일본이 동아시아 골목대장 자리를 차지했다고 봐야 하지만, 1990년대 이후로 일본과 전력이 비슷해지면서 1990년대 이전에는 일본 축구가 약체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보자면 동아시아 골목대장이 맞긴 하다.

아시아권의 국가들 사이에서 가장 기복없이 꾸준히 상위권에 자리를 유지하고 있던 것은 단연 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약점이 있다면 아시안컵에서 1인자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 너무 오래됐다는 것이고[28] 경쟁국인 이란, 사우디, 일본이 1위를 할 때만큼의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의 맹주보다는 동아시아권의 골목대장 정도가 더 확실하고 온건하지만 그래도 아시아의 맹주도 아예 못 쓸 정도의 수식어는 아니다.

3.6. FIFA 월드컵 아시아 최다 출전국 및 최다 승점기록[편집]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월드컵 진출을 이뤄냈다. 그 월드컵이 1954년 스위스 월드컵.[29] 이후 예선탈락, 기권[30], 신청서 분실[31] 등의 사유로 32년 동안 본선에 나가지 못하다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두 번째로 출전한 뒤로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하며, 통산 11회 월드컵 진출을 기록, 아시아 최다 월드컵 승점 27점(월드컵 전승 우승 승점 21점) 획득하며, 월드컵 서열 28위를 기록하였다.[32]

2002년 한일월드컵 4위에 오른 것이 최고로 높이 올라간 기록이다. 최고순위, 연속진출[33], 최다 진출 횟수 세 가지 모두 아시아 최고 기록이다. 또한 2026년 월드컵부터 본선 진출국이 48개국 48강으로 대폭 확대되고 아시아에 배당된 출전권도 8장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남에 따라, 앞으로도 연속 본선 출전 기록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대단히 높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나 최종 예선에서 다른 나라의 도움으로 탈락을 모면하고 진출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34] 1994 FIFA 월드컵 미국 아시아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만약 일본이[35] 이라크에게 승리했다면 우리는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이라크와의 무승부로 인해 골득실이 앞서 월드컵 본선 24강에 진출하게 되었다(도하의 기적).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 덕분에 32강 조별리그 1라운드 탈락의 위기를 모면하고 16강에 진출했으며[36],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이란 덕분에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 위기에서 벗어나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본선 조별리그 3차전에서 한국이 독일을 잡아준 덕분멕시코가 스웨덴에 대패를 함에도 불구하고 멕시코가 조 2위로 16강에 간신히 올라갔다.

아시아에서 FIFA 월드컵 통산 랭킹이 꽤 높은 편이다. 유럽과 남미를 제외하면 멕시코, 미국에 이어 3위, 전체적으로 따지면 28위에 랭크되어 있다. 하지만 FIFA 랭킹은 2014년 8월 57위에서 2014년 12월~2015년 1월 69위까지 하락했던 적이 있었다. 2018년 6월에는 57위. 브라질월드컵 및 러시아월드컵 예선 평가전에서의 삽질이 워낙 심해서 축협이 그나마 아시안컵 준우승은 하고, 아시아권 하위권 팀들 상대로도 양민학살을 좀 하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 직전쯤 되어야 30위권으로의 복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아시안컵 준우승 없이도 금방 30위권에 다시 들어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대회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에서 34경기를 치러 6승 9무 19패 34득점 70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한 경기에서 3골 이상 넣은 적은 없으며, 멀티 골을 기록한 선수도 없다.[37] 그리고 1998년 네덜란드전과 1954년 두 경기를 제외하고는 5점 차 이상의 패배 기록도 없다.[38]

FIFA 월드컵 3개 대회에 연속 출전하여 연속 득점한 선수가 있는데, 바로 대한민국의 전설 박지성이다. 3개 대회 연속 골 기록은 아시아에서 박지성이 첫번째다.[39][40][41]

마지막으로 월드컵 최다골은 안정환, 박지성, 손흥민으로 3골이다.[42][43]

조별리그 이름이 알파벳으로 변경된 1986년 월드컵 이후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월드컵의 모든 조(A~H조)에 1회 이상씩 모두 속해본 적이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44] 이는 역대 월드컵 최다 출전국인 브라질이나 전통의 강호 독일, 이탈리아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은 기록이다.[45] 2018년 월드컵 전까지는 E조만 두 번 들어갔고 나머지 조는 F조를 제외하고 모두 다 한 번씩 들어갔었는데, 10번째로 참가한 2018년 월드컵 조 추첨에서 들어가 보지 못한 F조에 편성됨으로서 이 진기록을 달성했다. 월드컵 진출 단 10회, 1986년 이후로는 9회만에 월드컵 조별리그 8개 조에 모두 들어가본 적이 있다는게 대단히 특이한 점.

자세한 성적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참고.

언론에서 발표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우승 확률은 보통 0.5% 미만에서 형성된다.

3.7. 강팀에 강한 팀[편집]


물론 진지하게 강팀을 패고 다닌다는 뜻은 절대 아니지만, 당연히 질거라고 생각하는 매치업에서 선전하는 경우가 꽤 많다.

아시아 최초로 1999년 A매치에서[46] 피파랭킹 1위 브라질을 1:0으로 승리한 적이 있으며, 2002월드컵에서는 본선 진출국들 중 프랑스,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우승후보들을 제치고 월드컵 4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2004년에 최정예 독일과 A매치에서 3:1로 승리[47]했으며,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에서 피파 랭킹 1위 & 디펜딩 챔피언 요아힘 뢰브 감독의 독일을 2:0으로 승리를 거두며, 독일을 탈락시켰다.

아시아 강팀 라이벌 일본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전적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2012런던올림픽에서 스페인을 격파한 일본을 2:0으로 격파해 첫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2017년 일본동아시안컵 도쿄에서 알제리쇼크 감독의 일본을 4:1로 격파했다.

이외에 1986멕시코월드컵에서 16강 15위 불가리아와 1:1 승점 1점[48], 우승팀 아르헨티나와 1:3 석패[49],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와 2:3 석패[50], 2006독일월드컵에서 프랑스와 1:1 승점 1점[51], 1994미국월드컵에서 스페인과 2:2 승점 1점[52], 남미팀 볼리비아와 0:0 승점 1점[53], 독일에게 2:3 석패, 1998프랑스월드컵에서 벨기에를 1:1 무승부 탈락시켰고[54],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북중미 미국에 1:1 승점 1점[55] 4강전에서 독일에게 0:1 석패,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러시아전 1:1무승부 승점 1점[56], 벨기에에 0:1로 석패,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스웨덴[57],멕시코와 각각 1점차 패,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에 1점차 석패하는 등 강팀과 치열한 경기를 펼친 적이 많다. 신기하게도 강팀들이 한국에게 점유율면에서 압도할지 몰라도 경기가 잘 풀리지가 않는다. 강팀에는 강하지만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약팀에게는 어이없게 진 경우가 번번한편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역시 한국 축구팀에게 제일 익숙한 주무기인 선수비 후역습 스피드전이나 뻥축구가 변수가 굉장히 많은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비교적 약체팀을 상대할 변수 적은 빌드업 축구나 티키타카같은 것도 시도하지만 결국 월드컵 시즌에 한국보다 월등히 강한 강팀을 잡는데는 변수도 많고 전술적으로는 비교적 단순한 선수비 후역습과 뻥축구가 최적이고, 월드컵에서의 성과를 엄청나게 중요시하는 문화도 비교적 이쪽에 치중되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월드컵 전적

3점차 이상 승리
0
2점차 승리
3
1점차 승리
3
무승부
9
1점차 패배
9
2점차 패배
6
3점차 이상 패배
4

아시아 팀들이 전부 그렇듯 전적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2002년 이전에도 무승부 승점 1점 기록과 석패가 꽤나 쌓여있다. 특히, 무승부 중 2002 월드컵 8강전 스페인전 0:0무(승부차기 5:3승)도 포함되어있다.

3.8. 독이 든 성배[편집]


사실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스포츠 국가대표팀 중에서는 가장 관심도가 높다. 그러다보니 언론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한다. 또한 여론과 언론의 영향이 매우 강해 몇몇 어그로성 여론이 좌우하려는 시도도 많았다. 그리고 언론의 적당한 입김은 축구 국가대표팀을 쇄신할 수 있지만 지나친 입김으로 인해 많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경기장에서의 실수와 성적부진으로 인해 그 동안의 공헌도와는 상관없이 축구선수와 감독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경기중에 실수를 하면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하거나 성적이 좋지 않으면 도중에 감독이 해임되기도 했다.

그러나 또 동시에 성공만 한다면 한국에서 이만큼 달콤한 보상이 따라오는 스포츠팀도 없다. 대표적으로 2002년 4강 멤버는 은퇴 후 그야말로 예능의 단골손님이자 항상 나오기만 하면 찬사를 받는다. 테리우스 안정환은 본인의 자질도 있지만 은퇴 후 오랜 시간 동안 연예인으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풍운아 이천수도 은퇴 후 반 축구인, 반 셀럽의 인생을 살고 있다. 또한 어지간한 2002 주요멤버들은 K리그 무대에서 비교적 쉽게 감독직에 취임하고 있다. 감독인 히딩크조차도 국빈이자 전국민이 알아보는 귀인 대접을 받고 있다. 박항서, 고트비, 베어백 등 주요 스태프들도 유명하다고 할 수 있으며 다른 스태프들도 2002년 스태프였다고 하면 꽤 관심을 받는다. 이만큼 한 번 성공만 한다면 엄청난 명예가 뒤따라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대표 입성에 경쟁이 치열하다.

3.9. 개방성[편집]


대한민국은 일본과는 달리 귀화 선수는 없다.[58] 혼혈이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59][60]

귀화 선수는 과거 신의손이나 샤샤 드라쿨리치, 마시엘[61]을 상대로 시도되긴 했다. 신의손은 타지키스탄 대표로 1경기 뛴 전적이 있어 실패했다.[62] 샤샤는 귀화 의욕이 높았지만 정작 발이 느리다고 히딩크가 거부했다. 마시엘은 2중 국적 유지 여부를 물으며 브라질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2003년 이성남이싸빅이 실제 대한민국으로 귀화를 했으나, 이성남은 러시아 국가대표로 A매치 2경기를 뛴 경력이 있었고, 이싸빅은 크로아티아 올림픽 대표로 유럽 올림픽 예선 경기에 출전했던 이력이 있어 국가대표에 선발될 수는 없었다. 이후 최강희호 출범 당시 최강희 감독이 전북에서 잘 알고 지도했던 에닝요를 발탁하려 했지만, 당시 에닝요는 귀화 요건이 맞지 않아 실패했다.[63] 이후 조나탄이나 말컹 등이 귀화 의사를 보인 적도 있지만, 적극적이지 않기도 했고 귀화 요건도 맞지 않았다. 대구에서 뛰는 세징야가 상당히 강력한 귀화의사를 보였고[64] 실력도 K리그 탑급이라 귀화만 성공한다면 일단 몇 경기라도 대표팀에서 뛸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에 따르면 귀화하고 싶은 이유는 국가대표가 목표가 아니며 치안이 좋다, 은퇴 후 지도자로 한국에서 쭉 지내고 싶다라 하는 등 한국이 좋아서이다. 결국 세징야의 한국국대 승선은 없었다.

혼혈 선수로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차범근호의 수비수로 활동한 장대일[65]이 있으며, 2003년 김준[66]이 U-17세 대표로 발탁되었다. 최근에 유명했던 혼혈 선수는 강수일이지만, 슈틸리케호에 발탁되어 화려하게 재능을 꽃피우려는 차에 발모제(...) 사건과 음주운전으로 커리어가 박살났다. 강수일 이후 젊은 선수들로 포항 출신의 골키퍼 김로만[67], FC 에르츠게비르게 아우에의 골키퍼 케빈 하르[68]가 있으며, 꼬꼬마 유망주로 영재발굴단에도 출연한 원태훈-원태진 형제[69], 온예카 오비 존[70] 등이 있다. 2017년에는 U-20 월드컵을 앞두고 야스퍼 테르 하이데가 화제가 되었고[71],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스웨덴과 한 조가 된 것을 계기로 스웨덴 리그에서 활동하는 요한 램혼과 세바스티안 램혼 형제 센터백이 축구팬들 사이에 알려지기도 했다.[72] 최근 레알 마드리드 1군에 데뷔하며 이슈가 됐었던 마빈 박 또한 한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선수로 원칙적으로 대한민국 국가대표 차출이 가능한 선수다. 특히 이 선수의 포지션이 현대 축구에서 귀한 측면 수비기 때문에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73][74]

해외 교포 선수로는 허정무호에 발탁된 바 있는 재일교포 3세 박강조가 있으며, 이충성도 청소년 대표까지는 한국에서 뛰었다. 재미교포로는 버지니아 주립대학에서 재학하던 유지영이 1999년 울산 현대에 입단해서 뛰기도 했다.[75] 교포 출신 선수의 경우 이충성의 경우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 있을 때 '반쪽바리' 소리를 들으며 멸시를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이충성을 대표팀에 추천한 오장은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76] 축구협회에서도 일단은 해외에서 활약 중인 교포나 혼혈 선수를 지켜보고는 있다고 한다.[77] 최근 팬들 사이에선 재일교포 골키퍼인 박일규J리그에서 활약이 좋아서 대표팀 가능성 여부에 대한 토론이 있기도 했다.[78]

이렇게 귀화 선수나 혼혈 선수, 교포 출신 선수들이 대표팀에 쉽사리 발탁되지 않는 건 이들의 기량이 한국 선수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거나, 귀화 요건[79] 등이 맞지 않거나,[80] 또는 이성남이나 신의손처럼 기량이 충분히 있더라도 이미 다른 나라 국가대표로 뛰었기 때문에 못 뛰기 때문이다. 즉 딱히 한국이 외국계 선수를 차별하거나 이들에게 배타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81] 오히려 잘하는 선수 있으면 어떻게든 귀화시키고 싶을 것이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히딩크의 토탈 풋볼, 홍명보의 점유율 축구, 신태용의 두 줄 수비 등 감독이 바뀔 때마다 변화는 있었지만 월드컵 본선에서 주로 스피드와 활동량에 기반한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을 취했다.


4.1. 신체 조건[편집]


아시아에서는 이란호주와 더불어 손꼽히는 수준의 피지컬을 자랑한다. 이는 먼 과거인 50년대 공격수 최정민, 60 ~ 70년대 수비수 김호김정남, 공격수 이회택이 있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90년대까진 독일의 강한 피지컬과 스피드를 활용한 플레이 스타일의 영향을 받았고, 히딩크 부임 이후로는 토탈 풋볼로 대표되는 네덜란드의 활동량 축구의 영향을 받아 몸싸움, 스피드, 체력 등 전반적인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이 세계구급으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레벨로 성장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한국 선수들의 체격이 유럽·남미권 선수들과 견줘도 오히려 압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82] 일례로 한국의 역대 주요 스트라이커들을 살펴보면 최정민-이회택-김재한, 차범근-최순호-황선홍, 김도훈, 최용수-이동국-조재진-박주영-황의조 모두 피지컬이 약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선수들이다.[83]

그러나 실제로는 신태용 감독이 최종예선 이란전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키가 크더라도 팔다리 길이나 어깨 너비, 코어 근육에서 비롯되는 신체 밸런스에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다소 불리한 편이다.[84] 따라서 전통적으로 한국을 상대하는 팀들은 체격 조건도 체격 조건이지만 한국이 빠른 팀이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손흥민, 차범근, 차두리, 이천수, 서정원, 황희찬, 홍철 등은 순간 스피드가 세계구급으로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리고 많은 대표팀 선수들을 배출한 K리그 역시 전통적으로 거친 몸싸움과 빠른 역습으로 승부를 보는 플레이 스타일을 구사하는 편이다.


4.2. 전통적 팀 컬러[편집]


역사적으로 세계적인 강팀들을 상대로 개인 기량과 피지컬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활동량과 스피드, 정신력을 앞세우는 경향이 컸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늪 축구가 한국 축구의 특기라 알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대한민국의 역대 월드컵 출전 역사를 보면 월드컵에서 대패한 사례가 많지 않다.[85] 선전한 사례를 보면 투지와 많은 활동량이 주효했던 경우가 많았다.[86] 그러나 이런 축구는 몇몇 용감한 팀을 제외하면 세계 무대에서 약팀들이 흔히 보여주는 전술이기도 하다.

한국 축구는 역사적으로 보면 아시아권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으며 월드컵 무대가 메인이라고 볼 수 없다. 단지 과거에는 주로 롱패스나 크로스로 빠르게 공격을 전개하는 전술을 구사해, 볼이 정신없이 필드를 오가며 난전으로 치닫다보니 아시아권 국가를 상대하든 세계 레벨의 강팀들을 상대하든 진흙탕 축구로 이어지는 확률이 꽤 높았던 것이다.[87] 물론 한국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 상술하다시피 예나 지금이나 강한 피지컬로 유명한 독일 역시 과거에는 유사한 플레이 스타일을 구사했다.

이처럼 롱패스나 크로스 위주의 선 굵은 축구로 대표되다보니 뻥축구라는 비아냥도 많았지만, 어쨌건 아시아라는 범주 내에서 그 동안 주요 대회에서 기록한 성과와 쌓아올린 위상은 탑 레벨 수준이다. 아니었다면 아시아에서 한 팀, 두 팀밖에 진출하지 못하던 시절 월드컵에 결코 진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4.3. 진보적 축구 전술[편집]


한국 축구는 그때 그때마다 세계 무대에 유행하던 전술들을 연구하고 받아들이려는 성향이 크다. 과거 한국에서 어렵사리 구한 비디오로 당시 세계 무대에서 유행하던 팀들의 전술 연구를 하고 카피하고 했다고 원로들의 인터뷰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축구가 세계에서도 아시아에서도 항상 투박했었니 어쩌니 하는 것은 편견이고, 유럽과 남미를 목표로 삼고 있어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지 아시아 기준으로는 괜찮은 축구를 했고 부족한 정보력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연구를 했다. 어느 정도 경제력이 발달한 이후에는, 차범근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영향도 있고 독일인 지도자인 데트마어 크라머를 초빙하기도 했고 또 동구권에서 지도자를 데려오기도 하는 직접 지도자 초빙하는 시기에까지 이르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4위의 성적을 기록한 히딩크의 초빙 이후 한동안 네덜란드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이식해 네덜란드의 아시아판, 마이너 카피팀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세계적 유행 이후 역시 세계 유행을 따라가는 한국팀 전통의 기조를 벗어나지 않고 스페인 식의 티키타카를 받아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조광래, 홍명보, 울리 슈틸리케 등 국대에서 점유율 축구를 구사했던 감독들의 성적은 다소 좋지 않은 편이었고, 세계 축구도 티키타카의 유행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서 짧은 패스 신앙에서 벗어나게 되긴 했다.

신태용 이후 부임한 파울루 벤투는 앞의 사례처럼 짧은 패스를 통해 이뤄지는 후방 빌드업을 중요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의 압박을 풀어나가며 공격을 준비하는 단계로, 공격 전체를 티키타카로 전개하진 않는다. 대신 센터백 위치까지 내려간 수비형 미드필더의 롱패스로 공격 전개를 시작하며 양측 풀백들이 활발한 오버래핑과 크로스로 공격을 지원한다는 점, 상대가 라인을 높게 올릴 경우 예기치 못한 롱패스로 수비 뒷 공간을 빠르게 공략한다는 점에서 기존 팀컬러를 부분적으로 계승하는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멕시코처럼 팀 단위의 수준 높은 압박을 구사할 경우 후방 빌드업 자체가 흔들린다는 점, 상대가 빈틈없는 텐백으로 페널티 박스 내외에서 공간 자체를 내주지 않을 경우 공격이 무력화된다는 점, 빈약한 선수풀로 좌우측 풀백 자리에 확실한 주전이 없다는 점, 플랜 B의 부재 등이 꾸준히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4.4. 득점력[편집]


국제무대에서는 언더독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라 월드컵 본선에서의 다득점이 드문 편이다. 10회나 월드컵에 나갔지만 아직 단일 경기 3골 이상 득점한 적이 없을 정도.[88] 득점 양상도 세트피스, 중거리 슈팅, 루즈볼 슈팅 등 데드볼 상황에서 선수들 간의 합이 맞아떨어지거나 그때 그때 상황을 어쩌다 득점으로 잘 연결한 것이 대부분이었다.[89] 그러다보니 세트피스 전술, 개인 기량, 등이 중요한 루트로 많이 이뤄졌다.

  • 세트피스 득점
1990년부터 2010년 월드컵까지 무려 6회 연속 프리킥 득점을 기록했고[90], 1998년 유상철, 2002년 안정환, 2010년 이정수의 2골은 프리킥 및 코너킥이 어시스트로 연결된 것이다.

  • 중거리 슛 득점
중거리 슛은 거의 매 대회에서 꾸준히 기록한 득점이다. 1986년 박창선, 1990년 황보관, 1994년 홍명보, 2002년 유상철, 송종국, 2006년 안정환, 2014년 이근호, 2018년 손흥민이 있었다.

  • 루즈볼 득점
상대 수비가 놓친 루즈볼을 바로 연결한 득점도 종종 있다. 2002년 설기현, 2010년 이청용의 2골, 2018년 김영권이 있었다. 2014년 구자철의 골도 상대의 수비 실책으로 발생한 루즈볼을 이근호가 횡패스로 연결해 기록한 것이었다.

4.5. 에이스 윙어[편집]


상기한 내용을 토대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 수준의 윙어들이 가끔씩 출현했다.[91] 특히 소속 클럽에서 좋은 활약을 하며 대표팀에서도 에이스로 손꼽히는 윙어들이 꾸준히 배출되었다.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축구 레전드로도 평가받는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이 대표적인 예로, 셋 다 대표팀에서 주전 윙어로서 한국 축구의 역사를 써내려갔다.[92] 일례로 나라마다 에이스의 등번호는 상이하지만, 남미에서는 10번을 많이 달고 유럽은 클럽이나 국가마다 차이를 보이는데 반해 한국은 박지성, 손흥민으로 이어지는 에이스 윙어 계보로 인해 전형적인 윙어의 등번호인 7번이 에이스 등번호로 굳혀졌다.[93]

4.6. 앙팡테리블[편집]


앙팡테리블(Enfant Terrible)의 뜻은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이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신예로 들어와 선배들 사이에서도 기 죽지도 않는다. 또한 경기장에서는 당돌한 성격과 과감한 플레이로 인해 축구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거나 기대시켜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앙팡테리블의 계보는 1990년대 고종수, 이동국이나 2000년대 이천수, 기성용이나 2010년대 손흥민, 이승우, 이강인의 계보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예전처럼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점차 사라지는 방항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서 과거처럼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분위기는 아니며 과거 같은 폭력이나 기합은 더이상 축구 대표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선수 개개인들의 개성을 잘 표현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5. 문제점[편집]



5.1. 고질적인 백패스[편집]



5.2. 판정에 대한 임의해석[편집]


경기 중 심판의 휘슬이 울리기도 전에 파울이라고 주장하거나 오프사이드라고 주장하면서 손을 든다. 이는 오래 전부터 의미 없는 행위인 것을 스스로도 잘 알텐데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2006년 독일 월드컵 3차전 스위스전, 알렉산더 프라이의 골 장면에서 한국 선수들은 심판의 휘슬이 울리기도 전에 오프사이드라고 손을 들면서 넥스트 플레이를 하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94] 프라이는 끝까지 달려가 공을 빈 골문에 차넣었고 이는 골로 인정되었다. 항의를 한 들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고 0:2로 패하며 1승 1무 1패 대회 17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2022년 이집트와의 친선 경기에서도 심판의 휘슬이 울리기도 전에 파울이라고 손을 들면서 심판만 바라보고 서있었고 실점을 허용하였다. 경기는 승리하였으나 여전히 고질병을 고치지 못하며, 이기고도 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5.3. 강약약강[편집]


상대적 약팀을 만나는 경우 온갖 몸싸움과 성질을 부리고 넘어져도 그냥 무시하거나 공을 멀리 던져버리는 등의 행위를 한다.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아무리 바디체킹을 당하고 파울을 당해도 순한 양이 되고, 넘어진다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는 등 다른 의미의 강약약강의 행태를 보여준다.

6. 라이벌[편집]



6.1. 일본[편집]


  • 전통적인 숙명의 라이벌
대부분의 한국 스포츠[95]와 마찬가지로 일본과의 라이벌 의식이 매우 강하다. 건국 초기부터 역사적인 이유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라이벌 의식이 매우 강했다.

  • 1990년대 이전
축구적으로만 봤을 때 일본은 한국 국가대표팀의 적수가 아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일본을 몇 수 아래로 여겨왔다. 그러나 한일전은 서로의 실력을 차치하고 양국 관계 때문에 1950년대부터 서로를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친선전이건 전력승부건 큰 스코어로 지거나 굴욕을 당하면 축구팬이 아닌 사람들조차도 분노하는 사람이 많았고 축구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 1990년대 ~ 2000년대 이전
일본은 1992년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뒤 1993년에 J리그를 창설하면서 야심차게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 일본 축구 시장과 실력이 차츰 향상되기 시작한 이후로 1994년에는 아깝게 월드컵 본선행이 좌절되었으나 1998년에는 월드컵에 진출하는 등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1990년대에는 홍명보가 국가대표 경기에서 일본을 못 잡으면 은퇴한다는 충격발언을 하는 등 비장한 각오로 일본을 상대하곤 했지만 이미 과거의 격차보다는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확정과 1998년 월드컵 진출로 월드컵 2연속 진출이 확정된 일본은 이 시점에 와서는 축구적으로만 봐도 라이벌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여태껏 쌓아 놓은 자산으로 아시안컵, 월드컵, 상대전적 등에서 압살하고 있던 상황이라 일본을 도전자쯤으로 여기던 견해도 혼재했던 시기였다.


  • 2000년대 ~ 2010년대 이전
2000년에 접어들어 일본은 한국에게 뒤졌던 커리어를 하나하나 다 따라잡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성과로는 월드컵 16강 진출 3회[96], 아시안컵 우승 3회[97]가 있다.

상대전적은 이미 너무 벌어진지라 뒤집지는 못해도[98] 2000년대 이후부터는 호각이고 월드컵 최고 성적은 못 미쳐도 2라운드 진출횟수는 한국보다 한차례가 많다.[99] 아시안컵의 우승횟수는 아예 한국을 추월한 상태이나, 아시안컵 서열은 한국이 2위(승점 124점), 일본이 3위(승점 102점)이다.[100]비로소 커리어부분에서도 균형 맞는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따라 서로간의 대결에서도 2000년대 이후에는 그 전과 같은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과거에 비해서 무거운 분위기가 아닐 뿐이고 최대 라이벌전인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여전히 다른 국가들과의 경기와는 부담감은 차원이 다른 수준이고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오히려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올라가면서 일본 입장에서 한국이 정치, 경제적으로 껄끄러운 상대가 되어버리고 일본인들에게도 한국은 가장 큰 라이벌이 되면서 일본에서 한국전에 대한 경쟁의식이나 투지가 많이 올라왔다. 물론, 일본에서도 여전히 한국을 강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절대로 저평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상호간에 승부욕이 강한 라이벌로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다.

과거[101]와는 달리 A급 대표팀 경기는 양측 모두가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서로가 꺼린다고 한다. 한국 입장에서 고사하는 비중이 더 높지만, 일본에서도 점점 한국전 패배가 부담스러워졌다고 한다. 지는 순간 엄청난 비판과 비난을 들어야하고 만약 월드컵같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한일전을 했다가 지게 되면 엄청난 비난으로 인해 선수단의 분위기가 위축될 수도 있다. 그 결과로 2011년~2021년 10년 동안 1군 대표팀 경기가 단 두 번 밖에 없었다. 국내파로만 무장하여 친선전에 가까운 동아시안컵(한국 2승 1무 1패)이나 연령별 대표팀 경기만 치러졌다.

친선전을 빼면 만날 수 있는 게 월드컵 예선과 아시안컵인데, 월드컵 지역 예선은 2018년은 둘 다 2시드여서 못 만났고 2014, 2022 두 번 모두 만날 확률 50%를 피했다. 아시안컵에서는 2015년 조별리그에서 만날 확률 25%였으나 피해갔고 결승에서 만나는 대진이었으나 일본 8강 탈락, 한국 준우승으로 못 만났다. 2019년 조별리그에서는 둘 다 1시드여서 못 만났고 결승에서 만나는 대진이었으나 한국 8강 5위 탈락, 일본 준우승으로 못 만났다.[102] 이렇게 서로를 만날 확률이 높았음에도 만나지 않아서 아쉬워하는 축구팬이 많다. 하지만, 지금은 정기적으로 동아시안컵처럼 공식 타이틀이 걸린 한일전을 진행하고 있으며 친선전보다 동기부여가 높아지기 때문에 굳이 매년 한일 정기전을 진행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


  • 2010년 ~
21세기의 한일전 전적은 2022년 기준으로 5승 7무 5패로 호각세다. 오히려 이제는 지난 30년 간 급성장한 일본 축구에 매번 추월당했다는 평가도 받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00년 이후로는 제대로 된 양팀간 맞대결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성과 위주로 일본이 우위라는 관점으로 봐도 아직까지는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는 듯하다. 어쨌거나 한국은 아직까지는 항상 유력한 아시안컵 우승후보였고, 일본의 월드컵 성적도 아직까지는 8강까지 간 적은 없기에 현재 앞선다고 봐도 한 발 정도 앞선 형국이기 때문이다.


  • 팬들의 관점
이런 상황이라 각 대표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국가대표 팬들은 자주 논의를 벌이곤 한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일본이 우위라고 주장하는 팬들은 상술했듯 아시안컵 우승 4회, 월드컵 16강 진출 3회[103], 1군 풀맴버로 상대한 평가전 성적을 주장한다. 반면 여전히 한국이 더 우위라고 주장하는 팬들은 한일전 전적, FIFA 월드컵 진출 횟수, 역대 월드컵 서열 순위(한국 28위, 일본 31위), FIFA 월드컵 4위, 월드컵 19위권 총 4번[104], FIFA랭킹 1위 격파[105], 월드컵 디펜딩챔피언 격파, 일본 4:1 격파[106], 2012런던올림픽 2:0승 동메달[107],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 클럽매치 울산 6:0 오사카 격파[108]

AFC챔피언스리그 12회 최다 우승 등 양팀이 직접 맞붙은 상대 전적에서 압도하고 있기 때문에 우위라고 주장한다.

  • 외국의 관점
한일관계의 라이벌은 세계의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기 때문에 아시아 축구 최고의 라이벌전으로 한일전을 뽑는 팬들이 많다. 2014년에는 영국 가디언지가 선정한 "국가대표팀 더비 매치 TOP 10"에 한일전이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의식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어떻게 보건 관계없을 정도이다.

  • 역대 전적
일본 대표팀과의 역대 전적은 2021년 10월 13일 A대표팀 기준 80전 42승 23무 15패#, 한국 대표팀이 압도적 우세를 점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일전/축구 문서 참고.

6.2. 이란[편집]


  • 지긋지긋한 악연
전통의 아시아 축구 최강 4개국 중 한 국가로, 국제무대에서 죽을 쑤지만 아시아 내전에서 가히 최강의 면모를 보여준다. 한국에 강하고 일본에 약한 편으로, 한국, 일본, 이란, 호주 4개국 사이에는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한국과는 각종 국제대회 및 지역 예선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만나게 되어 우리나라가 월드컵에 무난하게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팀이었다.

특히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이끌던 시절에 한국은 이란을 상대로 승리는커녕 골 넣는것도 힘겨워했다. 2011년 아시안컵 8강전 이후 11년 후인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이란을 이겨보지 못할 정도였다. 케이로스 감독이 떠난 후 그 위세가 많이 죽은 편이었지만 2020년 들어 이란의 유망주들의 포텐이 갑자기 폭발했다. 사르다르 아즈문러시아 프리미어 리그를 거쳐 분데스리가의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이적했고, 알리레자 자한바크슈에레디비시에서 득점왕을 해 가공할 만한 득점력을 보유하고 있어 대한민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에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아시아 최고 라이벌 매치는 한일전으로 꼽히지만 1998년 이후 한국과 일본은 월드컵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본 적이 없는 반면 반대로 서로 만나지 않은 동안 한국과 이란이 자주 만나게 되어 악연이 쌓인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일본이 강해지고 국제 무대에서 거두는 성과가 늘었지만 한국과 일본은 중요한 길목에서 만나지 않고 있다.[109] 그래서인지 막상 라이벌 매치라도 경기 전에 긴장감이나 승부욕에 이해 경기 후에는 뒤끝이 개운한 편이다.

반면 이란과는 여러 대회에서 지긋지긋한 악연을 쌓고 있는데 아시안컵에서는 1996년 대회부터 2011년 대회까지 5번 연속으로 8강에서만 맞대결을 펼쳤고, 1996년에는 이란 쇼크를 당하기도 했다. 월드컵 예선에서도 마찬가지인데 2010 월드컵 최종예선부터 2022 월드컵 최종예선까지 4번 연속으로 같은 조에 속하는 악연이 계속 되고 있고,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그 유명한 케이로스 감독의 주먹감자 논란이 터지기도 했다.

아무튼 아시아 축구계의 숨겨진 빅매치라 부를 수 있는 라이벌 관계. 식스투 참사2011 아시안컵 이란전, 그리고 역대 한국-이란전 중 최고 명승부라는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 결정전 등, 한국과 이란이 뻥축구 VS 침대축구 둘다 딱히 재미있는 축구를 하는 팀들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이 둘이 맞붙는 경기마다 역대급 명승부가 나오는 경우가 흔했고, 한일전에 가려져서 그렇지 AFC 내에서 가장 흥미로운 더비매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세계 무대에서는 아시아 톱 레벨의 성적을 거두는 한국이지만 아시아 내에서는 유독 자주 만나는 이란에게 자꾸 덜미를 잡히며 고전하고 있다. 이란은 원래 일본과 달리 국가적으로 별 관계가 없지만 축구로 자꾸 만나면서 악연을 적립한 쪽이다. 앞서 언급됐듯이 케이로스 부임 후부터 쌓여온 악연으로 감정적 어그로 문제가 있다. 또한 이란 측에서도, 이런저런 인터뷰를 통해 엿보면 역시 지긋지긋하게 만나고 있고 같이 아시아 탑에서 경쟁한다는 측면에서 한국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미있게도 한국의 주유니폼은 붉은색, 보조유니폼이 흰색이지만 이란은 주유니폼이 흰색이고 보조유니폼이 붉은색으로 정반대이며[110], 대표팀의 별명(이자 상징동물) 또한 한국이 호랑이[111], 이란이 사자[112]인 점 등 여러 면에서 대조되는 점이 많다.

  • 침대 축구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이후 한국 대표팀은 유럽 축구나 세계 무대 같은 곳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한국이 처해 있는 현실은 아시아이고 세계 무대에서는 도전자지만 아시아 무대에서는 역으로 한 수 아래 상대들을 요리해야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약팀인 아시아 상대들은 한국을 상대로 밀집 수비나 침대 축구를 하는 비중이 높다.

이란은 자신들이 불리하다 싶을 때는 침대 축구를 취하고, 대등하다 싶을 때는 대등한 경기를 하고, 유리하다 싶을 때는 압도하는 축구를 통해서 한국을 잘 상대한다. 서아시아권에서 침대 축구에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한국과 2000년대 이후 너무 자주 만나며 실속을 잘 챙겨갔다. 축구에 관심이 있지 않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란이 아시아에서 강팀인지도, 한국과의 역대전적이 백중세인 것도 잘 몰랐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자주 매칭됐고, 특히 상징적으로 케이로스와 최강희 간의 주먹감자 신경전까지 터지면서 제대로 된 감정적 어그로가 끌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본과의 대결은 기술 대 기술이나 전략과 전략의 맞대결로 뒷맛은 개운하지만[113] 이란과의 대결은 이란이 한국이 강할 때는 숙이고 약할 때는 난타하는 철저하게 실리적인 경기 운영으로 인해 한국이 극도로 농락당하면서 화를 내는 팬들이 많다.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뛰고 있었던 시절에는 한국이 이란보다 강했고,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도 홈, 원정에서 모두 1:1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서 웃게 됐고, 이란은 탈락하면서 절망했다. 하지만 2011년 박지성의 은퇴 이후에는 7경기에서 3무 4패로 단 한 차례도 이기지 못하면서 10여 년간 철저하게 농락당하다가 2022년에 12년 만에 2-0으로 승리를 거뒀다.

기원전 6세기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부터 시작하는 이란은 선수들의 자부심과 애국심이 강하고, 신태용이 말한 것처럼 서양인 체형이라 한국보다 다리길이, 어깨너비, 근력 등 많은 부분에서 신체적 장점이 있어서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한국이 아시아권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는 애국심으로 인한 정신력, 아시아에서는 뛰어난 편인 신체능력 이 두 가지에서 한국과 대등 혹은 그 이상으로 상대할 수 있는 팀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난적이다. 이들이 웅크리고 있을 때 한국보다 축구에서 체형이 유리하기 때문에 쉽게 열어젖힐 수 없고, 웅크리고 있다가도 상당한 순간가속력과 몸빵으로 치고 나갈 수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는 슈틸리케 체제에서 크게 부진하던 한국 정도는 침대축구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열심히 뛰는 이란에게 유효슈팅 하나 없는 처참한 경기력으로 0:1로 패배했다.[114]

  • 역대 전적
이란 대표팀과의 역대 전적은 2022년 3월 24일 기준 32전 10승 10무 13패로, 한국 대표팀이 열세이다. 전적을 보면 알겠지만 사실 과거사로 인한 양국 간 감정 때문에 한일전에 관심이 압도적으로 쏠려서 그렇지, 진짜 한국의 라이벌은 이란이다.

비교적 근래에 아시아 톱 레벨에 진입한 일본과 달리 일찌감치 아시아 축구의 강자였으며 아시안컵 최다 승점을 보유한 무시 못할 강팀이다. 우리나라보다 국제무대 성적이 낮다고 하지만[117] 2000년대 중반까지도 상대전적으로 열세였던 만큼 최근에 와서야 이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밀렸던 상대전적을 대등하게 맞춰갔지만 2010년대 넘어와서 다시 벌어졌다. 이란은 언제나 까다로웠고 또 중요한 길목에서 매우 자주 만나는 골치아픈 상대다.

이란 원정을 가서 고전을 면치 못한 것도 크다. 이란은 우리나라 홈에 원정을 와서 3번의 승리를 거뒀던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란 원정에서 2004년에 U23대표팀이 이천수의 결승골로 승리를 제외하고, 단 1경기도 이긴 적이 없다. 이란의 홈구장인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8전 3무 5패이고, 득실차도 4득점 11실점으로 열세다.



7. 랭킹[편집]



7.1. FIFA 랭킹[편집]


  • 최고 순위: 17위 (1998년 12월)
  • 최저 순위: 69위 (2014년 11월~2015년 1월)
  • 현재 순위: 29위 (2022년 3월)

2021년 12월 23일 FIFA 랭킹 발표 이후 A매치에서 4연승을 거두었기 때문에 랭킹포인트가 1522.84점으로 상승하여 2022년 2월 기존 33위에서 4계단 뛰어오른 29위를 기록중이다. 2012년 이후 9년 만에 20위권에 진입했다.

7.2. Elo 랭킹[편집]


  • 최고 순위: 15위 (1980년 9월, 2020년 6월)
  • 최저 순위: 80위 (1967년 8월)
  • 현재 순위: 26위 (2022년 3월)


8. 現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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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1월 18일 (49세)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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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10일 (49세)
코치
필리프 코엘류

Filipe Amaral Rino COEL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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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0월 20일 (42세)
코치
최태욱

CHOI Tae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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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2월 16일 (41세)
GK코치 / 전력분석관
비토르 실베스트르

Vitor Jose Lopes SILVES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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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7월 19일 (39세)
피지컬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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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1월 18일 (4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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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축구협회
마지막 수정 일자: 2022년 7월 13일





9. 출처[편집]




10. 관련 문서[편집]


[1] 2001년에 엠블럼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호랑이가 너무 순해 보인다는 둥, 고양이 같다는 둥, 예전 해태 타이거즈의 엠블럼의 호랑이가 간지 넘치니 훔쳐오자는 둥, 시끌벅적했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며 유야무야 정착되었다.# 오히려 2020년 19년 만에 변경된 엠블럼이 호랑이인지 사자인지 고양인지 분간이 안 되는 해괴한 디자인이라서 팬들은 다들 실시간으로 절규를 시전 중이며, 기존 엠블럼은 그래도 무난했다고 재평가받는 실정이다.[2] 가장 대중적인 별명.[3] 태극전사 다음으로 대중적인 별명.[4] 정확히는 서포터즈 클럽의 명칭이다. 무엇보다 이 별명의 원조는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의 것이라서 국대를 칭할 땐 거의 안 사용한다.[5] 3주장은 이용, 4주장은 정우영.[6] 1990년대 이전에는 한국 대표팀이 한 수 위의 실력을 갖고도 단지 일본이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뛰는 등 축구 외적인 라이벌 구도가 강했다면 1990년대부터 J리그 창설로 규모를 확장하고, 월드컵 개최를 위해 강한 자본력을 투입한 일본의 유소년 해외유학과 인프라 강화 등의 성과로 일본의 전력이 크게 성장하여 한국과 대등해지면서 축구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라이벌로 변화했다.[7] 21세기 아시아에서 가장 치열한 라이벌리로 봐도 무방하다. 월드컵 예선, 아시안컵 등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계속해서 마주치며 경기가 감정적으로 치닫거나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붙잡는 경우가 많아 경기내적인 부분에서 가장 경쟁심이 강한 상대이다.[8] Elo 레이팅스는 상시 나오는 것이므로, 가장 최근 A매치와 그 직전 A매치 사이의 순위변동을 기입함.[9] 한국에선 태극전사와 Reds를 혼용하며, 영어권에선 Taegeuk Warriors(태극전사), 중화권에선 太極虎(태극 호랑이)라는 별명이 유명하다. 일본에선 アジアの虎(아시아의 호랑이)라 불리는 게 가장 일반적인 듯하다.[10] 영어권에서 Tigers of Asia는 아시아의 네 호랑이를 뜻하기 때문에 (애초에 저 별명 자체가 여기서 따온 언어유희다.) 마이너한 별명인 듯하나, 일본에선 아시아의 네 호랑이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부르기 때문에 アジアの虎라고 하면 십중팔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뜻한다. 애초에 호랑이는 아시아에서만 서식해서 아시아의 호랑이는 사실상 역전앞이랑 다를 게 없는 표현이다.[11] 'Capable of Making Noise'는 '이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팀)'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도깨비팀[12] 참고로 저 이미지에선 멕시코, 미국, 세르비아와 함께 묶여서 언급되고 있는데, 한국은 저 팀들에 비하면 약팀이긴 하나 한국이 해외에서도 저 팀들 못지않은 강팀 킬러로 평가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 미국의 경우 상대전적에서 근소하게 앞서고 세르비아의 경우 유고 시절을 포함하면 압도적 열세지만 국가명을 세르비아로 바꾼 뒤에는 1승 1무 1패 백중세이다. 심지어 이란, 일본, 스위스보다 위다(...)[13] 카잔 대첩 이후 브라질의 코치진이 대한민국을 평가하였을 때 브라질보다 나은점이 굳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받자 만장일치로 "절박할 때 나오는 정신력과 투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브라질은 선수단이 여러 가지 요인으로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자 미네이랑의 비극이라는 대참사를 썼지만, 한국은 최악의 상황에서 오히려 카잔의 기적을 일으킨 걸 인상 깊게 보았던 모양.[14] 하지만 이 탓에 98월드컵에서 멕시코전과 네덜란드전 2연패 탈락확정 후 3차전 벨기에전에서 벨기에를 무승부 탈락시켰고, 2010월드컵에서 2차전 아르헨티나전에서 4:1 참패 후 3차전 나이지리아전에서 나이지리아를 무승부 탈락시키며 원정 2라운드(16강)진출, 2014월드컵에서 2차전 알제리전에서 알제리한테 4:2 참패 후 3차전 벨기에전에서 아쉽게 0:1 석패 ,2018월드컵에서 스웨덴과 멕시코전에서 각각 아쉽게 PK 1점차 패배로 3전패 위기 가운데 마지막 3차전 독일전에서 피파랭킹1위 & 디펜딩챔피언 독일을 2:0으로 격파하는 모습들을 본 한국 팬들은 한국이 항상 본선 조별리그 3차전 막판에만 잘한다고 까기도 한다(...)욕먹기전에 좀 잘하지.[15] 자세한 내용은 각 문서를 참조.[16] 실제로 '주간 서형욱'에서 이민호 MBC 스포츠국 PD가 직접 언급한 말이다. K리그의 중계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냐는 질문에 축구 국가대표팀 중계권과 연계하면 판매하기 쉬울 것이라며 말한 바 있다.[17] 월드컵 전승 우승 승점 21점[18] 2002 4위, 2006 17위, 2010 15위(16강), 2018 19위[19]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1990년대 응원구호에서 따 온 것이다.[20] 다만 음원은 신해철의 ‘In to the Arena’다. 신해철 소속사에서는 공공재로서 저작권을 열어놓은 상태. 공교롭게도 함께 녹음한 서포터즈는 당시 안양 LG 치타스.[21] 부천 SK의 응원곡 '나의 부천 영원히'에서 따온 것이다.[22] 빌리지 피플Go West 번안곡[23] 다만, 1986년 월드컵과 1994년 월드컵때는 운이 안 따라주었던 것도 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승점자판기는 아니기는 했다.[24] 준우승 진출은 UAE[25] 90월드컵 아시아 예선 당시에는 아시아 전체가 합쳐서 단 2팀 우승팀과 준우승팀만 1990월드컵 본선 24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26] A매치 아시아 대회 단독우승[27] 이 중에 1970년과 1978년은 공동 우승. 한편 라이벌 일본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만 금메달을 획득했다. U23 게임이 된 이후 모든 팀들이 그렇듯 일본이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성인대회였을 때는 그렇지만도 않았다.[28] 물론, 2002년으로부터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나 아시아 대회 우승이 없던 가운데 툭 튀어나온 대회 하나이기 때문에 애매하다면 애매하고 할 수 있다. 아시안 게임도 성인대회였던 시절인데 1988년 우승 이후 U23 대회로 바뀐 2014년에야 우승했기 때문에, 아시안게임도 아시안컵도 2개의 대회 우승이 없이 2002년 4위만으로 확고한 1인자였던 시기라고 하기에는 뭔가 조금 애매하다.[29] 실질적인 아시아의 첫 번째 월드컵 진출국은 1938년 프랑스 월드컵네덜란드령 동인도(現 인도네시아)이지만, 독립국으로서는 우리가 최초이다. 1938년에는 예선 그룹에 동인도와 일본만 포함되었지만 일본이 기권해 동인도가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한 관계로, 지역예선 경기를 치러 통과한 것도 역시 대한민국이 처음이다.[30]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기권.[31]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참가 당시 그랬다.[32] 일본은 현재 월드컵 승점 20점(월드컵 평균 우승 승점)으로 아시아 2위이자 월드컵 서열 31위.[33] 세계 전체에서도 월드컵 연속진출 기록으로는 무려 5위로, 세계 최상위권이다. 브라질(22회), 독일(17회), 이탈리아(14회), 아르헨티나(13회)만이 한국보다 위이며, 영국이나 스페인처럼 일반적으로 알려진 강팀들은 한국보다 연속진출기록이 낮다. [34] 한국 대표팀만 그런게 아니라 토너먼트 대회의 조별리그에서 간신히 올라간 모든 팀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표현이다. 축구 강국에서도 흔한 케이스이며, 피파랭킹 16위에 든적도 없는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하는것이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35] 일본은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최종 예선 조별리그 1위였다.[36] 사실 4년 전과 비슷한 양상이 있었지만, 그때는 토고프랑스를 상대로 최소한 비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2010년때는 아르헨티나그리스를 이기면 16강 진출이 가능했기에 나름대로 편안하게 경기를 치를수 있었다.[37] 대한민국이 다득점으로 승리한 경기는 2002년 대 폴란드 전 2:0, 2006년 대 토고전의 2:1, 2010년 대회의 대 그리스 전의 2:0,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2:0이다.[38] 1954년 헝가리전 - 0:9 패
1954년 터키전 - 0:7 패
1998년 네덜란드전 - 0:5 패
[39] 2002 한일 월드컵 조별예선 3차전 포르투갈전 1골, 2006 독일 월드컵 조별예선 2차전 프랑스전 1골,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 그리스전 1골로 3개 대회 연속 골 기록이다.[40] 어려운 이유는 8년 이상 국대 실력을 갖추고 골도 3~4경기만에 다른 나라 톱클래스 선수를 상대로 골을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41] 2번째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일본의 혼다 케이스케가 세네갈전 골을 넣어 2010-2014-2018 월드컵 본선 3연속 득점 동점기록을 세운 것.[42] 단, 손흥민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골이라도 추가를 하게 되면 기록은 바뀌게 된다.[43] 2위는 홍명보(1994년 2골), 황선홍(1994 1골, 2002 1골), 유상철(1998 1골, 2002 1골), 이정수, 이청용(2010 2골).[44]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진출했던 1954년 FIFA 월드컵은 1조부터 4조까지 4개 조 체제였으며, 당시에 대한민국은 2조로 편성되었다.[45] 브라질은 역대 월드컵에서 H조에 속해본 적이 없고, 독일은 B조와 H조, 이탈리아는 C조와 H조에 속해본 적이 없다.[46] U-23 일본 대표팀이 아시아 최초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에서 마리우 자갈루 감독의 호나우두 브라질을 이겼으며, A매치에서 브라질을 이긴것은 한국이 아시아 최초이다.[47] 독일의 A매치 첫 아시아팀에게 패배[48] 당시 예선에서 프랑스를 2:0으로 승리하며 본선진출한 팀이며 이 팀을 상대로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첫 승점을 기록했다.[49]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첫 골.[50] 대한민국 월드컵 첫 다득점.[51] 당시 피파랭킹 8위, 대회 준우승팀.[52] 당시 피파랭킹 5위, 스페인에 승점 1점을 획득한 최초의 아시아팀[53] 남미팀에 첫 승점획득, 당시 볼리비아는 예선에서 홈고지대로 브라질을 2:0으로 승리(브라질 예선 사상 첫 패배), 우루과이를 3:1로 격파하며, 아르헨티나를 제치고 남미예선 3위로 통과 후 본선 24강 94월드컵에 진출했고, 코파아메리카도 우승을 한 경력이 있다.[54]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상대팀을 탈락시킨 첫 경기[55] 당시 피파랭킹 13위, 북중미에 첫 승점획득.[56] 당시 피파랭킹 19위.[57] 브라질과 공동 8강팀.[58] 1997년 도쿄 대첩 시절 브라질 출신 귀화선수 로페즈 와그너가 있었고,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으로 뛰었던 알렉스 산토스 등이 있었다.[59] 일본 대표 선수는 어머니가 이탈리아계 브라질인인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 어머니가 독일인인 사카이 고토쿠, 미국인 아버지를 둔 슈미트 다니엘 등이 있다.[60] 부모가 모두 네덜란드 본토인 출신이지만, 집안 전체가 일본으로 귀화해 일본에서만 자란 마이크 하프나같은 케이스도 있다. 종목은 다르지만 우리나라 육상 기대주로 손꼽히는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와 같은 케이스다.[61] 2000년대 초반 전남의 브라질 용병 수비수. 김태영, 강철로 이루어진 마태철 3백은 당시 알아주는 빗장수비였다.[62] 그 한 경기가 바로 대한민국과의 1997년 평가전이었다. 야구 국가대표팀처럼 국적 규정을 적용했다면 신의손이 한국 대표팀으로도 뛸 수 있었을 것이다.[63] 당시 기성용이 주어를 밝히지 않았지만 매우 뻔한 욕설 섞인 반대의사를 SNS를 통해서 밝히며 아주 강력한 반발을 보이기도 했다.[64] 특별귀화가 불발되어도 일반귀화를 할 것이라 밝히며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65] 부친이 영국인이다. 홍명보 대타로 활약했는데, 의외로 프랑스 월드컵 미남 선수 베스트11에 뽑혔고, 실제로도 잘생겼다. 선수 생활 은퇴 후 연예인으로 활동하며 MBC 드라마에도 출연한 바 있다.[66] 부친이 주한미군 상사였다고 한다. 수원 삼성에 2006년까지 있었고, 2012년까지 K3리그에서 활동했다.[67] 어머니가 러시아인인 러시아계 한국인이다.[68] 한국명 최민수. 2017, 2019 U-20 대표로 선발된 바 있으며 독일인 아버지를 둔 독일계 한국인이다.[69] 아버지가 모로코인이다.[70] 나이지리아계 아버지를 두었다. 아버지는 현재 한국인으로 귀화한 상태.[71] 이 선수는 좀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어머니는 인도네시아-네덜란드 혼혈이시고, 아버지는 3살때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온 한국계 네덜란드인이다. 따라서 혈통은 한국계 혈통이 맞지만, 법적으로 네덜란드 단일국적인 상태로, 선수가 한국인이 되기 위해선 일반귀화를 할 수 밖에 없다. 다만 2021년까지도 SNS 게시물로 한국 귀화 의지가 드러난 게시물을 여전히 올리고 있는 등 한국인의 정체성은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 듯 하다.[72] 아버지가 스웨덴인, 어머니가 한국인으로, 둘 다 칼마크 FF 1군 선수였다. 스웨덴 U-17 국가대표로써 2013년 FIFA U-17 월드컵에 스웨덴 대표로 형제가 모두 출전해 스웨덴의 3위 입상을 이끌었다. 그러나 동생은 2018년 인대 부상으로 인해 은퇴를 했고, 형 또한 같은 해 칼마르 FF를 끝으로 프로 생활을 접었다.[73] 이 선수는 어머니의 국적인 대한민국, 아버지의 국적인 나이지리아, 태어나고 자란 스페인 등 3중국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3개국 국가대표 중 한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74] 다만 본래의 주 포지션은 윙어이다. 성인 무대에서는 아무래도 소속팀이 레알인지라 선수층이 워낙 두텁기 때문에 풀백으로도 출전하며, 풀백으로 나오는 경우에도 그럭저럭 괜찮은 활약을 보여준다. 만일 우리나라 대표팀에서 뛴다면 풀백 뿐만 아니라 취약한 포지션인 오른쪽 윙어로도 자주 출전할 것이다.[75] 당시에 허정무 감독도 그를 살펴보긴 했지만 딱히 특출나진 못했다고 한다. K리그 등록명은 미국 이름을 그대로 발음한 제프 유였다고 한다.[76] 당시 공격진에 박주영, 심우연, 신영록, 김승용 등이 있고 경쟁이 치열해서 일본 대표팀 쪽으로 돌아섰을 것으로 보고 있다.[77] 혼혈 선수의 경우 앞서 언급되었던 장대일이나 김준도 있고, 강수일이 대표팀 근처까지 갔을 때 환영하던 여론이 대다수였던 것도 있으니 한국에서 자랐거나 한국인으로서의 의식이 좀 있는 경우라면 한국팬들도 많이 열려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78] K리그에서 아시아쿼터제도를 활용해 교포선수를 쓰고 있다.[79]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특별귀화를 해주지 않는다.[80] 아직 귀화자는 병역의무가 없다.[81] 단 기성용이 에닝요 귀화추진 시기에 공개적으로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였던 것처럼 선수 개인은 다를 수 있다.[82]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 평균신장은 183.8cm로 본선 참가국 32개국 중에서 5위였다. 월드컵 수준의 국제 대회에서도 웬만해서 한국을 상대로 높이로 승부를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195cm 이상의 장신인 김신욱이범영이 평균치를 크게 올려줬지만 이 두 선수를 제외하고 평균치를 내더라도 182.5cm, 전체 13위이다. 그리고 애초부터 피지컬에 강점이 있는 국가들은 대부분 장신 공격수나 장신 골키퍼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두 선수를 포함한 평균치가 높은 것도 절대로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83] 물론, 이태호같은 선수도 있어서 모두가 그렇다고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현역 시절의 이태호도 키는 작았지만 빠른 스피드로 승부를 하는 타입이라서 그렇지, 좋은 볼 컨트롤이나 기술만큼 몸싸움도 그럭저럭 밀리지 않았고 비교적 준수했던 편이었다.[84] 실제로 축구 이외에 다른 종목 선수들도 공통적으로 하는말이 백인이나 남미 선수들의 힘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축구의 특성 상 피지컬과 신체 능력의 차이가 타 종목에 비해서 비교적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85] 그나마 대패한 사례인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여러 모로 대패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대회였다. 휴전한지 1년도 안 되어 출전한 월드컵 본선이었고, 선수들이 처한 상태도 극히 열악했다. 게다가 당시 한국과 상대팀, 특히 매직 마자르 헝가리와의 격차는 현 한국 대표팀과 다른 축구 강국들과의 차이보다 한참 더 컸다. 오히려 당시엔 '겨우 그 점수만 나왔다고?'라며 놀라는 반응이 많았다.[86] 이게 제대로 먹힌 대표적 사례가 바로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독일전이다. 전반 3실점을 통해 얼마나 대패를 당할지에나 시선이 집중되던 후반, 댈러스의 가혹한 더위에 지칠대로 지친 독일 선수들을 상대로 20여분 동안 2골을 만회했다. 결과적으로는 2-3 석패였지만 당시 위르겐 클린스만"한국이 전반부터 저런 플레이를 보였거나 후반전이 5분만 더 늦게 끝났더라면 무승부 혹은 역전패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한국의 왕성한 활동량이 위협적이었다. 디펜딩 챔피언인 독일 입장에선 어느 정도 망신이긴 했다.[87] 그러나 이런 전술이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세계 레벨에서 전혀 무용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대가 공간을 많이 허용하거나 대표팀에 확실한 타겟형 스트라이커가 있을 경우 유효한 필드 골 찬스가 종종 있었다. 대표팀이 2002년 월드컵에서 기록한 필드 골 6골 중 절반이 크로스(이을용 1도움, 이영표 2도움)에서 비롯된 것이며 2006년 월드컵의 조재진설기현의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해 1도움을 기록했다. 2010년 월드컵의 박주영과 2014년 월드컵의 김신욱 역시 헤더 골이나 도움 기록은 없어도 길게 날아오는 공중볼을 수차례 따며 전방의 공성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손흥민은 2014년 월드컵과 2018년 월드컵 모두 기성용주세종의 롱볼을 받아 각각 한 골을 기록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무용하진 않았던 수준으로, 득점력 항목에서 후술하듯 언더독 특성상 득점 유형이 상당히 제한적이었다.[88] U-17 월드컵, U-20 월드컵, 올림픽 등 연령별 대표팀에서는 3골 이상 득점한 기록이 있다.[89] 원정 월드컵 첫 16강의 쾌거를 달성한 2010년 월드컵 조차 필드골은 공격적인 압박으로 볼을 탈취한 후 바로 연결한 박지성의 골과 상대의 실수를 놓치지 않은 이청용의 두 골이 전부였다.[90] 1990년 황보관, 1994년 홍명보, 1998년 하석주, 2002년 이을용, 2006년 이천수, 2010년 박주영[91] 축구 전술의 변화로 과거에는 측면 돌파와 크로스가 장점인 정발 윙어, 현대에는 중앙으로 이동해 슈팅과 패스로 공격을 지원하는 역발 윙어로 배치된다. 하지만 발 빠르고 킥 좋은 유소년 에이스 선수들이 윙어로 자리 잡거나 윙어 포지션을 경우에 따라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패스 축구를 추구하는 일본이 중앙에서 공격을 만들어 나가는 미드필더와 공격 지원에 강점을 보이는 풀백을 꾸준히 배출하는 것과 대조되는 부분.[92] 물론 좌·우·중앙 모두 공격적인 역할을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삼인방인 만큼, 윙어로만 배치되지 않거나 윙어로 배치되더라도 사실상 프리롤로 공격 전반에 기여하는 역할 역시 종종 수행했다.[93] 참고로 차범근의 현역 시절 등번호는 7번과 함께 전형적인 윙어의 등번호라 할 수 있는 11번으로, 마찬가지로 윙어 포지션에서 유럽 커리어를 써내려가고 있는 황희찬이 대표팀에서 11번을 계승하고 있다.[94] 물론 부심의 기는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주심의 휘슬은 울리지 않았다.[95] 예외는 양궁, 쇼트트랙, e스포츠 정도. 이들은 일본의 주력 종목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이 잘 하는 편이라 최대 라이벌이 사실상 중국이다.[96] 2002월드컵 9위, 2010월드컵 9위, 2018월드컵 15위[97] 2000, 2004, 2011년[98] 만약 한국이 계속 199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마저도 계속 따라잡히고 있었을 것이다. 일본이 성장하는 만큼 한국도 성장했고 진정한 의미의 라이벌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99] 다만 아시아에서나 16강 진출을 업적이라 쳐주지 사실상 16강 진출은 조별리그 조편성 운에 따라 좌우가 큰 편이라 그 횟수가 멕시코처럼 연속으로 16강 15위권 안에 들어서 압도적인게 아닌 이상에야 결국은 최고 성적으로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다.[100] 일본은 4회 우승, 한국은 2회 우승으로 우승횟수에서는 앞서지만 총 승점에서는 한국이 앞서며 한국은 준우승만 4번이나 하여 준우승 1회인 일본과 비교해봤을 때 결승 진출 횟수는 1회 더 많다.[101] 과거에는 1년마다 하는 한일 정기전도 꽤 많이 했던 만큼 역사적으로 보면 두 나라의 축구는 교류가 많았다. 일본은 한국이 가장 많이 A매치에서 맞붙은 나라이기도 한데 한일 정기전 같은 걸로 많이 실력을 겨뤄왔기 때문이다.[102] 2010 월드컵 예선도 최종예선에서 만날 확률 50%였으나 비껴갔다. 2011년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만날 확률 25%였으나 피해갔고 1월 25일 4강에서 만나 일본이 승부차기 승을 했다.[103] 2002월드컵 9위(16강), 2010월드컵 9위(16강), 2018월드컵 15위(16강)[104] 2002월드컵 4위, 2006월드컵 17위, 2010월드컵 15위(16강), 2018월드컵 19위[105] 1999브라질전 승리, 2018독일전 승리[106] 무려 2017도쿄대첩이며 일본감독은 알제리 쇼크 감독이었다.[107] 당시 일본은 스페인을 1:0으로 격파했다.[108] 한중일 챔피언 대결이었던 A3 챔피언스컵 2006년 대회 도쿄에서 울산 현대 호랑이가 J리그 우승팀으로 올라온 감바 오사카를 이천수해트트릭으로 6:0 최고 골득점차로 승리했으며, 한일 축구 모든 매치에서 최다 점수차 경기이며, 당시 한국 울산감독은 김정남 감독이었고, 일본 오사카 감독은 2018월드컵 일본 16강 15위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었다.[109] 친선전, 동아시안컵 등의 맞대결에서 한쪽의 뚜렷한 우위라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청소년 대표팀 같은 경우는 역시 말하기 애매하다.[110] 이 탓에 두 팀이 맞붙는 경기는 항상 양쪽 다 주유니폼만 착용한다. 이유는 한쪽만 보조유니폼을 입으면 양쪽 유니폼 색이 똑같아서...[111] 정확히는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112] 정확히는 'Shiran e Iran(이란의 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113] 워낙 감정적인 부분이 심해서 스스로를 속이는 것에 가깝다. 예를 들어서 소위 말하는 삿뽀로 참사 같은 경우 거의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있다. 반면 도하 대첩 같은 경우는 거의 30년이 지난 2020년대까지 우려먹고 있다. 게다가 00년대 이후로 일본과 친선이 아닌 제대로 된 공식적은 2011 아시안컵 단 한 게임밖에 없었기 때문에 개운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리고 한일전이 벌어지면 비매너 행위는 한국이 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2011 아시안컵에서 기성용의 원숭이 인종차별 행위가 있으며 2021 친선경기에서는 이동준이 토미야스의 이빨을 날렸고 김태환이 K리그에서 하던 비매너행위를 그대로 보여줬다. 그리고 런던올림픽을 비롯해서 각급 대표팀에서는 제대로 된 실전승부가 있는데 여기서는 승률이 좋아서, 비매너행위를 한국이 하거나 친선전 패배는 바로 잊어버리거나 각극 대표팀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뒷맛이 개운하다고 하는 것이다.[114] 카타르도 2018 예선에서 정면승부를 펼쳐 3:2로 한국을 격파했고, 2019 아시안컵 8강에서도 한국을 떨어뜨리는 등 서아시아의 침대축구는 한국이 강했기에 취했던 전략적인 스탠스라는 것을 보이기도 했다.[115] 최다 우승국 일본은 서열 3위, 한국은 서열 2위[116] 당시 유럽팀이자 76유로 우승팀 체코슬로바키아를 이기고 진출한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이란은 월드컵 데뷔골과 무승부 첫 승점 1점을 기록하였고, 비록 이란은 8강 진출은 실패했지만, 78월드컵 최종순위에서 무려 헝가리,멕시코를 제치고 78월드컵 14위를 기록했다.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참조[117] 이란의 국제대회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다. 아시안컵에서도 최다 승점을 쌓아서 아시안컵 서열 1위를 기록과[115] 78월드컵 예선에서 아시아+오세아니아에서 단 1자리에 들어가서 78월드컵 진출과 78월드컵 14위(1라운드 16강 조별리그)[116] 이후 2라운드만 진출 경험이 없다. 무엇보다 월드컵의 경우 들쭉날쭉한 기복으로 탈락도 자주하고 나가면 조편성이 좋지 못한 불운도 겹쳤다. 이 불운이 극에 달한 것이 2018 월드컵인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3포트로 나갔으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만나는 불운을 겪었다. 한국, 일본은 그렇다치더라도 사우디나 심지어 북한도 해본 2라운드 진출 경험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성과 측면에서는 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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