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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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이후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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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활동
2.2.1. 초기
2.2.2. 잦은 감독 교체
2.2.3. 재선임
2.2.4.1. 12강 조별리그 아랍에미리트전 - 1:1 무승부
2.2.4.2. 12강 조별리그 인도네시아전 - 4:2 승리
2.2.4.3. 12강 조별리그 쿠웨이트전 - 0:2 패배
3. 이란 쇼크 이후 및 평가



1. 개요[편집]


박종환 감독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지도자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활동[편집]



2.1.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기[편집]


<^|1><bgcolor=#ffffff,#1f2023><height=3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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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nd[각주]}}}}}}}}} ||||}}}}}}}}} ||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김찬기호

박종환호

김삼락호
U-20의 업적으로 1980년대에는 히딩크 못지 않은 명성을 얻게 되었지만, 그 이후의 대표팀에서 활약상은 딱히 없었다.

박종환은 U-20의 업적으로 여러번 국대팀 지휘를 맡았는데, 당시에는 전임감독제가 아니라 대회마다 소속팀 감독을 겸임하며 국대 감독을 맡는 방식이었다. 쉽게 말하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나가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감독을 생각하면 된다. 그리하여 1984~85년, 1986~1988년, 1990년, 1996년 각각 국가대표팀을 맡았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이렇게 수차례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으나, 월드컵 대표팀은 끝내 맡지 못했다. 박종환 본인은 인터뷰에서 꼭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겠다는 다짐을 여려차례 했지만, 워낙 독불장군인 성격 탓에 협회와 축구인은 물론이고 지도하는 선수들마저 등을 돌릴 정도였으니 선뜻 대표팀을 맡길 리가 없었다. 심지어 월드컵을 앞두고 전초전 성격으로 맡은 대표팀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거나 결정적인 순간 성적을 내지 못하고 좌절했기 때문에 그 순간만큼은 여론마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표팀이 죽을 쑤기만 하면 지금 감독을 자르고 박종환 감독을 앉히라는 성화가 들끓었다. 1983년의 후광이 1990년대 중반까지 무려 10년 넘게 이어진 것이다. 어쨌든 U-20월드컵에서 4강까지 올라간 것은 히딩크 전까지 한국 국대팀의 최상 커리어였으며, 그는 대중들에게 명장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국가대표팀을 여러차례 맡았고, 현재까지도 올림픽팀 포함해 국가대표 감독을 5차례나 맡은 박종환보다 더 많이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사람은 없다.

그의 열성팬 중 한 사람이 축구광이었던 전두환이었는데, 그가 국대감독을 지휘할 때 청와대에서 TV 중계를 지켜보다 휴식시간에 전화해서 작전지시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거짓말 같지만 박종환 본인이 확인해 준 일화이다. 전두환과 박종환이 이렇게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인지, 퇴임 이후에도 박종환과 그 친구인 이주일을 불러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주일의 5공 초반에 출연금지[1]를 사과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축구에 전문가가 아닌 이상 세대를 불문하고, 1983년의 업적은 당시를 지냈던 모든 일반인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를 성남 FC로 영입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도 마찬가지인데, 야권 성향의 인권변호사 출신인 이시장은 전두환과 정치적 성향은 거의 반대되지만, 그럼에도 대구FC이후 초야에 묻혀있던 박종환을 삼고초려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불명예 퇴진이 반복되었다.

1983년 청소년 대표팀의 호성적에 힘입어 1984년 LA 올림픽 축구 대표팀을 맡았으나, 역시 강압적인 지도 방식이 문제가 되어 최순호, 최인영, 이태호, 변병주, 박경훈 다섯명이 태릉선수촌을 무단이탈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하다못해 듣보잡도 아니고 대표팀 핵심 멤버들이라 파장은 더욱 심각했다. 선수들도 줄빠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시대인데도, 공개적으로 항명하면서 팀을 이탈할 정도였으니 박종환 감독의 지도가 얼마나 강압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당시 정서상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축구협회는 이들에게 3년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긴 하지만, 이때부터 대중들 사이에 박종환은 불통의 아이콘이란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징계를 받은 5명은 사실상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중추였기 때문에 슬그머니 출전정지 처분은 해제되고 대부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그대로 나간다.

그리고 이런 우여곡절끝에 맞이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사우디전 편파 판정으로 억울하게 4대5로 패하고[2], 플레이오프[3]인 이라크전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1:0패배.. 이때도 선수들이 후반에 태업이라고 보일 정도로 움직임이 둔화되었다. 박감독은 직전의 사우디전에서 체력을 지나치게 소모한 탓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1985년까지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이해 열린 고베 유니버시아드에서 5위로 마감하여 사퇴한다.

여담으로 이 당시 박종환 자체가 워낙 인기였고 박종환이 이끌던 올림픽 대표팀의 전력도 강해서 국민들 사이에서는 박종환의 올림픽 대표팀과 김정남의 국가대표팀중 누가 더 강한지에 대한 설전이 있었고, 결국 두팀은 1985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 각각 참가하여 결국 결승에서 맞붙었다. 잠실주경기장에서는 3만 명의 팬들이 몰렸고, 김정남 감독은 형이 '질수는 없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으며, 박종환 감독 역시 '져줄수는 없다'며 경기전 부터 장외 신경전을 펼쳤다.[4]. 결국 경기에서 국가대표가 올림픽 대표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었으나, 올림픽 대표팀은 대등하거나 오히려 앞서는 경기 내용을 보여 오히려 박종환 감독이 국가대표팀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일부러 져줬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었다.

1986~1988년에는 임시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올림픽 직전에 평가전겸으로 열린 대통령배 축구대회[5][6]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게 패하고 결승 진출에 실패하자[7] 당시 김우중 대우 회장이 이끌던 축협 지도부와 마찰을 빚고 1988년 7월 사임했다. 이때도 대표팀에서 매질을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8]

1990년에도 8월에 이차만[9] 감독대행 후임으로 대표팀 감독을 맡아서 1990년 남북 친선축구경기의 감독으로 방북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준결승에서 이란에게 패해 금메달획득에 실패하며 동메달에 그치자 잘렸다.

카리스마가 강해서 스타 선수들이 찍소리도 못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국가대표팀을 맡자마자 한 일이 머리를 기르던 김주성 선수에게 머리를 짧게 깎도록 지시한 일이었는데, 개성 강한 김주성이 그 포스에 쫄아서 바로 머리를 깎고 훈련에 합류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당시 프로가 정착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런 지도는 많은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했다.


2.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편집]



2.2.1. 초기[편집]


한국 대표팀은 94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10]과 볼리비아에 2무 승점 2점 조 3위 대회 20위를 거뒀지만 지역예선부터 김호 감독의 수비 위주의 전술에 언론과 팬들의 불만이 높아져 있었고 그 결과 아나톨리 비쇼베츠가 영입되지만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차상광의 역대급 알까기와 함께 4강에서 탈락하며 외인 감독론도 쏙 들어가던 차였다. 이에 공격 축구를 지향하는 박종환을 원하는 국민 여론이 커지기 시작했다. 당시 일화와 K리그 3연패를 이룬 터라 반박하는 여론도 없었고 박종환은 안방 잔치인 1995년 코리아컵에 맞추어 국대 감독으로 화려하게 복귀하게 된다. 그러나 대회 내내 비교적 순항하다 예선에서 이미 손쉽게 이긴 바 있는 잠비아와의 4강전에서 석연치 않은 연속골을 얻어맞으며 2:3으로 져 탈락하게 된다.[11]

사실 이 경기는 식스투 참사에 묻혀서 그렇지, 후반 들어 급격히 경기력이 저하되며 대표팀 태업 논란을 불러일으킨 몇 안 되는 경기 중 하나이다. 팬들도 의구심으로 바라보는 중에 박종환 본인이 국대 핵심 멤버들의 음주로 인한 패배 비난 논란을 꺼내들며 국대 멤버들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감독직을 사퇴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표팀 감독이 공중에 뜨게 되는데 서로 감독직을 고사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던 시기이다.


2.2.2. 잦은 감독 교체[편집]


결국 1995년 8월 12일 수원에서 있었던 브라질 대표팀과의 친선 경기는 당시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자 훗날 대표팀 감독을 두 차례나 맡는 허정무 감독이 임시 감독으로 경기를 지휘했고(결과는 0-1 패), 9월 30일 잠실에서 열린 CA 보카 주니어스와의 초청 친선 경기는[12] 당시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던 정병탁 감독이 맡았다(결과는 1-2 패). 또 10월 31일에 역시 잠실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친선 경기는 당시 울산 현대 감독이던 고재욱 감독이 임시로 지휘봉을 잡는 등(결과는 1-1 무승부) 원 포인트 릴리프로 이 감독 저 감독이 돌아가며 대표팀을 맡는 촌극이 벌어지게 된다.


2.2.3. 재선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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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봄 박종환은 국민 여론 및 동정론을 등에 업고 어렵게 다시 국가대표팀에 승선하게 되는데, 그 계기가 2002월드컵 유치 기원으로 마련된 AC 밀란과 유벤투스 초청 경기였다. 정몽준 회장이 추진하는 중요 이벤트였기에 기회를 잡게 된 박종환은 AC 밀란을 3:2로, 유벤투스 FC를 4:0으로 격파하는데, 비시즌에 유로 96[13] 관계로 국가대표에 차출된 선수들이 빠진데다가 시차적응도 안된 채 친선경기에 나선 세리에팀이 컨디션은 좋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유벤투스는 챔스 결승전 승리 후 5일만의 한국행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델 피에로, 라바넬리, 데샹, 콘테, 페루치 등 주요 선수들은 유로 1996 대표 선발로 제외됐다. 이 두 경기는 당시 2002년 월드컵 유치전을 펴고 있던 축협에 의해서 대대적으로 선전되어 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다. 그래도 그 당시 세계최강 세리에의 조지 웨아, 로베르토 바조, 잔루카 비알리 등이 왔고, 거기다 그 해 챔스 우승팀을 초청했다는 점에서 정몽준의 당시 피파 내의 입지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탈리아 특유의 일자수비에 대응한 맞춤형 작전으로 홍명보의 횡패스에 서정원이 침투하는 작전을 써먹어 두게임에 모두 성공시키는 등 쇼 성격의 게임이긴 했지만 역시 국내 지도자 중 전술 이해도는 뛰어난 감독임을 알 수 있다. 국대에서 애제자인 신태용이 링커, 고정운이 윙어로 활약해 주어 시작은 나쁘지 않았고 누구도 프랑스 월드컵 감독으로 박종환을 의심치 않던 시기였다. 박종환은 파비오 카펠로마르첼로 리피에게 이긴 유일한 아시아 출신 감독인 셈이다.[14]


2.2.4.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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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진출 실패[6개국]
1980

김정남호
말레이시아 · 카타르 · 쿠웨이트 · 아랍에미리트 · 북한 · 쿠웨이트[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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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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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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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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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 · 요르단 ·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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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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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1. 12강 조별리그 아랍에미리트전 - 1:1 무승부[편집]



2.2.4.2. 12강 조별리그 인도네시아전 - 4:2 승리[편집]



2.2.4.3. 12강 조별리그 쿠웨이트전 - 0:2 패배[편집]



2.2.4.4. 8강 이란전 - 2:6 패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란 쇼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그러나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15] 8강전에서 이란에 2-6으로 떡실신당하는 식스투 참사로 하루아침에 인심이 돌변, 엄청난 비난 세례를 받으면서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사실 이 대회는 조별본선[16]부터 박 감독이 공격 성향의 김주성을 스위퍼로 내리고 홍명보를 중미로 올리는 동시에 일화 출신 이영진을 주전 윙백으로 기용하는 등 변칙 포메이션을 고집하며 시작부터 언론이 강한 의구심을 보였다. 조별본선[17] 내내 언론이 비난하고 팬들은 불안해하는 와중에 팀 케미가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며 심지어 인도네시아전에서도 2골을 내준 끝에 4대2로 겨우 신승하였다. 박감독을 비롯한 홍명보, 황선홍 등 핵심 멤버의 얼굴은 조별본선 내내 썩어 있다시피 했고 쿠웨이트전에서 이미 실망의 극치를 보여주는 플레이로 0대2로 지면서 사실상 짐 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1승1무1패로 고전한 끝에 다른 조 일본이 중국을 상대로 (원치 않았던 듯한) 골을 종료직전에 넣으며 승리해 당시 12강 조별리그 조 3위 경합에서 가까스로 8강에 합류하였다. 박감독은 이란과의 8강전에서 수비의 김주성을 공미로 끌어올리는 변화를 주는데, 전반전은 박감독이 원한대로 경기가 풀려 나가면서 애제자 라인인 김주성-신태용-고정운 그리고 박감독이 코리아컵부터 원톱으로 중용하기 시작한 김도훈의 활약으로 2대1로 앞서 나갔다. 어디까지나 심증이지만 후반전부터 급격히 수비에 구멍이 나며 팀 전체가 무기력한 플레이로 돌변하여 결국 "식스투 참사"라고 불리는 결과가 초래되었고 박종환 감독은 사실상 한국 축구계에서 영구까임권을 얻는다. 한국팀은 전반과 후반에 완전히 다른 팀처럼 플레이했다. 전반에 김도훈이 먼저 첫골을 넣고 동점골을 허용한 뒤, 신태용이 추가골을 넣어 2-1로 전반을 마치고 앞서나가다가, 후반에 들어오자마자 한 골을 내준 후, 알리 다에이에게 거의 5분마다 한 골씩 4골을 연속으로 내주면서 개발살났다.[18]

4골을 뽑아낸 알리 다에이가 대단한 선수이긴 했지만, 문제는 한국 수비수들이 후반에 걸어 다니면서 이란 공격수들을 구경만 할 정도로 막지를 못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태업 논란이 벌어졌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비난여론이 등등하자 차범근은 박종환을 옹호하는 칼럼을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다. 근데 차범근 자신도 2년 후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때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19] 그런데도 박종환은 위에서 말했듯이 수원 감독 시절의 차범근을 디스한다.

1990년과 1996년에 번번히 이란에 패하면서 몰락했다. 1984년에는 이라크에게 패해 몰락했으니 중동 팀에 약한 징크스가 있다.

3. 이란 쇼크 이후 및 평가[편집]


이란전 대패의 여파로, 박종환은 두 번 다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지 못한다. 그리고 이 충격적인 씩스투 참사 패배 때문에 박종환에 대한 대중의 호감도는 매우 싸늘하게 변하면서, 박종환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두 번 다시 나오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다만, 장난조로 꺼내는 사람이 있긴 하다. 일례로 2011년 조광래 감독이 석연찮게 경질당한 이후에 대표팀이 정신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에서 월드컵 3차 예선 쿠웨이트전 한 경기 땜빵 감독으로 쓰자는 이야기가 장난식으로 나왔다.

당시 이란전 패배가 어찌나 충격적이었는지, 박종환식 강압적인 지도에 반발한 선수들이 고의 태업을 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올대와 국대에서 실패한 이유가 빠따질에 반발한 스타 선수들의 태업이란 설이 팽배하나, 실제로 체력저하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사실 체력저하라고 보는 것이 맞다. 상식적으로 전반은 잘하다가 후반만 말아먹는 태업은 당연히 말이 안된다. 당시 경기를 보면 후반 10분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선수들이 거의 기어다니는 수준이었는데, 진짜 태업이라면 후반에 갑자기 그렇게 티나게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거스 히딩크 이후 세대에겐 '더블 스쿼드'나 '셔틀런' 같은 용어가 낯설지 않겠지만, 쌍팔년도만 해도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대한민국 선수들의 장점은 체력과 정신력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체력 훈련이나 컨디션 관리, 경기중 상황에 따른 완급조절 등의 중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20] 당연히 전반전에 훨훨 날아다니다가 후반 들어서 급격한 체력 저하 현상을 보이며 걸어다니는 선수들을 보고 태업해서 안 뛴다고 생각할 수밖에.
[1] 이주일의 대머리가 전두환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방송에 나오지 못했다.[2] 심판이 대 놓고 사우디 편파 판정. 당시 피파 부회장이 쿠웨이트 왕자로 당시 중동 국가 이기는 것은 한국 홈에서 조차 1골 도둑 맞고, 1골 공짜로 주는 시절이다.[3] 당시 아시아 최종 예선은 두 조로 나누어 실시했으며, 본선 진출권은 세 팀에 주어졌다. 조 1위 두 팀은 본선 진출, 조 2위 두 팀이 맞붙어서 승자 한 팀이 본선에 진출하는 방식. 한국은 사우디에 패하면서 조 2위가 됐다. 당시 본선 막차를 탄 이라크가 전쟁 때문에 불참하면 이라크 대신 본선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당시 있었으나 이라크는 전쟁 중임에도 참가했다.[4] 그밖에 김정남 감독은 아우에게 지는 형이 될 수 없다,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88팀의 10가지 작전을 붕괴시키고 승리하겠다'고 말했고, 박종환 감독은 '우리가 체력이 우세하다. 3년 동안 손발을 맞춰온 조직력으로 개인기를 압도할 수 있다'응수 했다[5]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생겼기 때문에 팍스컵이라고 해외에 알려져 있었다. 1990년대는 코리아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1999년 이후 폐지되었다. 한국팀이 두팀(대표팀, 올림픽팀) 출전하고 해외 대표팀이나 클럽팀을 초청하여 A,B조로 나뉘어 예선전을 벌인 후, 준결승-결승으로 열리는 경기였다. 2000년대 생겼다 폐지된 피스컵과 형식이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6] 사실 월드컵 진출이 어려웠던 1960~70년대 그리고 1980년대 초반까지는 우리나라가 개최하는 대통령배와 동남아에서 열리는 킹스컵 그리고 메르데카컵이 거의 세계 3대 축구대회 수준이었다. 어디까지나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차범근, 허정무, 조광래 이상 축구인들에게는 이 3대 대회에서 피터지게 싸웠다는 회고담을 쉽게 들을 수 있다.[7] 유럽의 강호 체코슬로바키아에 패한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이 결승에 못오른 건 이 대회가 생긴지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 대회는 한국팀에 유리한 극심한 편파판정으로 국제적으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8] 박종환은 이 경기후에 "(소련, 체코, 유고와 같은)동유럽팀 별거 아니다"는 식으로 인터뷰를 해서 빈축을 샀다. 아래도 나오지만 이후에도 올림픽 우승 감독인 비쇼베츠를 "동유럽은 축구 선진국이 아니다"는 식으로 디스하기도 했다.[9] 이회택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3전 전패로 사임한 이후 2개월간 감독을 맡았다[10] 피파랭킹 5위[11] 당시 잠비아 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2년전 사고로 스쿼드가 모조리 사라진 상태였고, 사고 후 급조된 선수들로 코리아컵에 나섰는데, 이런 잠비아에게 패했으니 그 충격과 실망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고도 남을 것이다.[12] 이 때 바로 디에고 마라도나가 같이 내한했다.[13] 첫 16개국 본선 진출 대회[14] 사실 리피는 2016년까지 광저우 헝다에 있었는데, 헝다는 내국인 감독이 맡은 중국팀에게 패한 적이 있고, 최강희 감독도 전북 현대 감독으로 이긴 적이 있으므로 꼭 그런 건 아니다. 어쨌든 리피가 광저우를 맡기 전까지는 박종환이 유일한 승전을 거둔 것은 맞는 말인 듯... 다만 카펠로까지 포함해서 이겨본 감독으로는 유일한 아시아 감독이 맞다.[15] 12개국 본선 진출 대회[16] 12강 조별리그[17] 12강 조별리그[18] 알리 다에이는 2016년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로 이 경기를 꼽았다.기사 [19] 자신이 운영하던 딴지일보에 기고한 "차범근을 사형시켜라[20] 그러니 거스 히딩크가 부임해서 대표팀 훈련을 시켜본 뒤에 "대한민국 선수들의 기술은 수준급. 그러나 체력과 정신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했을 때, 다들 '저놈이 무슨 개소리하냐'식의 반응이었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직접 피지컬 트레이너까지 불러 와서 체력훈련을 시킨 다음 월드컵 본선에서 90분 내내 대표팀이 거구의 유럽 선수들과 몸싸움하면서 압박하는 모습을 본 다음에야 체력훈련, 과학적인 피지컬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다들 깨닫게 된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축구 아니 종목 불문하고 스포츠계 전체가 후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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