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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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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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HD FC 2024 시즌 스쿼드
1 조수혁 · 2 심상민 · 3 홍재석 · 4 김기희

C
· 5 임종은 · 6 보야니치 · 7 고승범
8 이규성 · 9 마틴 아담 · 10 김민우 · 11 엄원상 · 13 이명재 · 14 이동경 · 16 이재욱
17 루빅손 · 18 주민규

VC
· 19 김영권 · 20 황석호 · 21 조현우 · 22 김민혁 · 23 김주환
24 박상준 · 27 이청용 · 28 장시영 · 29 설현빈 · 30 강윤구 · 31 아타루 · 33 강민우
37 문현호 · 66 설영우 · 70 최강민 · 91 박주영 · 95 마테우스 · 96 김지현 · 97 켈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홍명보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경수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상록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조광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양지원 · 파일:일본 국기.svg 이케다 세이고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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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관련 틀



홍명보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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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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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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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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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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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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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김병지
(1998)

홍명보
(1999~2002)


유상철
(2003~2004)


홍명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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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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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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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FIFA 월드컵 브론즈볼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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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 1994 · 1995 · 1996 · 2002
파일:J1리그 엠블럼.svg

파일:2000_아시안컵_로고.png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심볼.svg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EDA702; font-size: 0.9em"
2002 FIFA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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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이달의 감독상 수상자
7월
조성환
(인천 유나이티드 FC)

8월
홍명보
(울산 현대)


9월
이병근
(대구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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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이달의 감독상 수상자
3월
홍명보
(울산 현대)


4월
고정운
(김포 FC)


홍명보의 기타 정보















울산 HD FC
ULSAN HD FC

이름
홍명보
洪明甫|Hong Myung-Bo
출생
1969년 2월 12일 (55세)[1]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장동
(現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2]
181cm / 74kg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3],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소속
선수
상무 축구단 (1991 / 군 복무)
포항 제철 아톰즈 (1992~1997)
벨마레 히라츠카 (1997~1998)
가시와 레이솔 (1999~2001)
포항 스틸러스 (2002)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2003~2004)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 (2005~2007 / 수석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06~2008 / 수석 코치)
안지 마하치칼라 (2013)
감독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09)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09~2012)
대한민국 대표팀 (2013~2014)
항저우 뤼청 (2016~2017)
울산 현대/울산 HD FC (2021~ )
행정
대한축구협회 (2017~2020 / 전무이사)
국가대표
137경기[4] 10골 (대한민국 / 1990~2002)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등번호
20[1]
학력
서울광장초등학교 (졸업)
광희중학교 (졸업)
동북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2])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박사[3])
종교
무종교[4]
가족
본인 1남 2녀 중 첫째
가족 배우자 조수미 장남 홍성민, 차남 홍경민[5]
서명
파일:홍명보서명.png}}}


1. 개요
2. 축구인 경력
2.2.1. 감독 스타일
2.2.1.1. 전술
2.2.1.1.1. 울산 현대 부임 이전
2.2.1.1.2. 울산 현대 부임 이후
2.2.1.2. 매니지먼트
2.3. 행정가 경력
3. 기록
3.1. 선수
3.1.1. 대회 기록
3.1.2. 개인 수상
3.1.3. 수훈
3.1.4. 통산 기록
3.1.4.1. 클럽
3.1.4.2. 국가대표
3.2. 감독
3.2.1. 대회 기록
3.2.2. 개인 수상
5. 홍명보에 대한 언사
6. 어록
7. 사단
8. 여담
8.1. 10년 주기설(?)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그 사람들은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중요해. 그 사람들은 그 결과 하나 가지고 일주일을 생활하는 사람이야."

푸른파도2 EP 2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現 울산 HD FC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


2. 축구인 경력[편집]


1990년대 대한민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14년간 국가대표팀에서 137경기를 출전한 대한민국 역대 최다 A매치 출전자이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무려 4번의 월드컵에 출전하였으며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선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팀 공격의 핵심 역할을 했고,[5] 유럽 강호들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이 때부터 유럽 클럽들도 여러 이적설을 띄우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우리나라 선수 최초로 FIFA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득표하여 21위에 올랐다.[6] 그의 명성이 정점에 다다른 대회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고 한국을 4위에 올려놓은 성과를 인정받아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한 월드컵 브론즈볼과 월드컵 올스타팀, FIFA 올해의 선수 17위, FIFA 100 등 엄청난 커리어를 쌓았다.[7]

그러나 감독으로서는 극과 극을 경험했다. 2009 U-20 월드컵 8강,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차지하는 등 초반에는 연령별 대표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따라 많은 국민들에게서 극찬을 들었으나, 성인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기존에 스스로 세운 원칙을 깨뜨리고 자신이 올림픽에서 썼던 '런던 세대'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여 '으리 축구' 논란을 일으켰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라는 성적으로 국민들에게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8] 결국 월드컵이 끝나고 사임, 이후 2016년 중국 슈퍼 리그항저우 뤼청 감독을 맡았으나 1년 만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며 사실상 지도자로서 커리어가 끝난 것으로 보였으나 2021년, 울산 현대의 감독을 맡으면서 명예회복과 재기를 노렸으며 2022년과 2023년, K리그 2연패를 달성하면서 감독으로서 재기에 성공하였다.

행정가로서는 호평을 받았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전무이사로 활동했는데, 초반에는 A대표팀 감독 시절의 비판, 낙하산 인사 문제, 당시 축구협회의 논란에 의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에 김판곤홍콩 감독을 초빙하여 축구협회의 미숙한 행정 처리를 상당히 개선시켰다. 대체로 감독 시절보단 행정가로서 더 유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실제 재능도 이쪽이 더 높아 보인다. 원래 본인의 꿈은 지도자가 아닌 행정가였는데, 처음부터 협회에서 앉혀준 국가대표 코치 말고 행정가로서의 말단부터 차근차근 올라갔다면 지금보단 평가가 백배 나았을 수도 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실패 때문에 긍정적인 면도 저평가 받았지만, 꾸준히 행정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데다 K리그 승부조작범의 사면과 관련해서 완강하게 거부를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재평가를 받고 있다.


2.1. 선수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1. 플레이 스타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플레이 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1. 감독 스타일[편집]



2.2.1.1. 전술[편집]


2.2.1.1.1. 울산 현대 부임 이전[편집]

홍명보의 초기 감독으로서의 문제점은 홍명보호/논란과 평가, 홍명보호/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문서에 너무나도 잘 정리되어 있으니 이 문서들을 참고하자.

파일:130619_22_1.jpg

사실 전술 폭이 너무 좁은 감독이라 전술에 관해 논하기는 애매한 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시절의 홍명보는 4-2-3-1을 응용한 두 줄 수비를 즐겨 사용했다. 국대 시절의 명보볼을 점유율 축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오히려 기성용의 롱패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전형적인 뻥축구+텐백에 가까웠다. 실제로 득점들도 대부분 뻥축구로 얻어낸 득점이 대부분이었고, 이 당시의 득점 루트를 보면 기성용이나 김영권, 정성룡, 윤석영 등이 공을 높이 띄우면 제공권이 받쳐주는 박주영이 떨궈주고 공미인 구자철이나 측면 미드필더 자리로 내려간 윙어인 손흥민, 이청용, 지동원, 김보경[9] 등이 순간적으로 공격 라인까지 치고 올라가 주워먹는 패턴이었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알겠지만 윙어들을 철저히 갈아버리는 전술이다. 윙어들로 하여금 피치 끝에서 끝까지 왕복하게 하며 수비랑 공격을 번갈아 뛰게 해야 되는 전술이라 윙어들의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론 손흥민, 이청용, 지동원, 김보경은 모두 강철 체력으로 유명한 선수들이니 그렇게까지 비현실적인 전술은 아니지 않냐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체력만 문제인 게 아니란 것이 문제다. 당시 손흥민은 아직 포텐이 터지기 전인 유망주였고 이청용, 지동원은 부상으로 부진했으며 김보경도 폼이 엄청 떨어진 상태였다. 따라서 이들을 이용해 텐백+롱볼 역습으로 빈약한 전력을 극복해 보려던 나름의 현실주의 노선 전술은 이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부진으로 완전히 만화축구로 전락해 버렸다. 애시당초에 구자철은 공미를 소화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처진 공격수에 가깝게 플레이했고, 박주영은 분명 제로톱 같은데 타겟맨에 가깝게 뛰는 등 전체적으로 굉장히 괴상하게 돌아가던 팀이었다. 그리고 이 전술을 들고 나온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의 결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용병술 솜씨는 미묘한 편이었다. 잘 쓸 땐 진짜 예지력이 있나 싶을 정도로 천재적이고 번뜩이는 용병술을 보여주지만[10], 못 쓸 땐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황당한 용병술을 보여주었다. 좋게 말하면 파격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뜬금없는 용병술을 보여주는 감독.

안타깝게도 홍명보는 감독 스타일상 기본적으로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 스타일이다. 새로운 선수에 대한 적응 기간이 너무 길어서 원래 아는 선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고, 말더듬이라 불릴 정도의 눌변으로 악명이 높은 홍명보답게 언변 능력이 워낙 떨어져서 비호감으로 낙인찍히기 딱 좋다. 그리고 추억보정에 약해서 과거에 자신이 한 번 믿어줬을 때 잘해줬던 선수가 지금 엄청 부진해도 이번에도 믿어주다 보면 잘하겠지 하고 굳게 믿으며 팬들이 제발 걔 좀 그만 쓰라 해도 끝까지 믿으며 기적이 일어나길 비는 경향이 있다. 2012 런던 올림픽 때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때 박주영을 끝까지 신임한 것이 대표적인데, 결과적으론 런던 올림픽 땐 진짜 믿음 끝에 기적이 일어났지만 브라질 월드컵 땐 홍명보와 박주영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로 끝났다.


2.2.1.1.2. 울산 현대 부임 이후[편집]

자신의 너무나도 좁은 전술 폭의 한계를 깨달은 것인지 울산 현대의 감독을 맡은 후에는 4-1-4-1 등 전술의 변화를 주면서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22 시즌부터는 경기마다 다른 전술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K리그 감독 중에서는 다채로운 전술 변화를 보여주는 편이다.

주전 선수 대부분이 출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은 주전 멤버의 과감한 포변과 교체 멤버들을 활용한 파격적인 용병술로[11] 하늘이 대놓고 지라고 짜놓은 경기에서까지 꾸역승을 해내는 스퀴즈 플레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미묘하다는 평가를 듣던 교체 전술도 울산 부임 이후 일취월장해 교체 선수를 투입하고 승리한 경기가 굉장히 많다. 2022년 K리그 파이널 라운드의 사실상의 결승전이라고 볼 수 있는 35라운드 현대가 더비에서 이 용병술이 빛을 발했다. 김태환을 빼고 마틴 아담을 투입했는데 교체로 들어간 마틴 아담이 추가 시간에만 멀티 골을 꽂아넣고 역전승을 거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발전 덕분에 첫 시즌은 비록 우승은 실패했지만 공격 축구를 보여준 덕에 선수와 관중 모두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면서 연임에 성공했다. 2022년에는 완전히 환골탈태하여 리그 초반 선두로 치고 나갔고 중반 이후 전북의 급반등으로 매서운 추격을 받았으나 결국 승점 3점 차이로 우승을 이뤄냈다.[12] 이 때문에 2020년 이후 김기동, 이정효보다는 덜하지만 K리그에서 현대 축구를 잘 따라가는 감독이라는 평가까지 듣고 있으니 정말 8년 전과는 다른 감독이 된 셈이다.

그렇다고 홍명보가 명장병 걸린 감독이란 뜻은 아니다. 홍명보의 뜬금포 용병술로 전해지는 사례들은 런던 올림픽 시절 김기희의 군 면제를 위한 센터백 교체나 인천전에서의 설영우 센터백 포변 등 대부분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냥 엔트리 선발 자체가 문제라고 하면 모를까 적어도 용병술 면에선 딱히 비판거리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또한 울산 감독 부임 이후에는 용병술은 잘 들어맞는 모습을 보여주며 적어도 용병술 하나만큼은 K리그 감독 중 상위권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다만 울산현대의 브랜드인 철퇴축구가 사라졌는데 그 원인의 홍명보 였다는 것을 존재하고 있다.


2.2.1.2. 매니지먼트[편집]

전술적 평가와는 별개로 대표팀 감독 시절부터 매니지먼트 능력만큼은 국내에선 절대적인 위치에 있다.[13] 당장 K리그 감독 P급 라이센스 의무화가 시행되기 전인 2020년 이전인 2010년에 이미 이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탓인가 신기하게도 홍명보 체제 하의 선수들은 하나같이 홍명보에 대한 엄청난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대 국대 감독들을 보면 박종환 시절엔 최순호, 최인영, 이태호, 변병주, 박경훈이 무단이탈 사건을 일으켰고, 김호, 아나톨리 비쇼베츠 시절에는 홍명보가 항명을 했으며, 차범근은 울산 감독 시절 최강희와 대판 싸웠던 적이 있었고, 조 본프레레이을용과 불화를 빚었고, 조광래이청용에게 전술 관해서 디스를 당한 적이 있고, 최강희는 기성용을 위시한 해외파에게 아예 감독으로서 무시당하는 최악의 곤욕을 치렀고, 울리 슈틸리케 시절엔 선수단 전체가 항명을 했으며# 신태용성남 감독 시절 윤빛가람의 태업과 라돈치치와의 불화로 고생했으며, 파울루 벤투 시절엔 이승우가 감독 앞에서 물병을 걷어차는 등 크던 작던 선수들이 감독을 무시하고 개기는 사건들이 있었는데[14] 홍명보가 국대 감독이던 시절만큼은 신기하게도 이 골때릴 정도로 개성이 강한 국대 선수들이 하나같이 순한 양 모드가 되어서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을 보였다.[15]

전임 감독과의 불화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준 기성용과 자기 친구와 불화를 겪고 캐삭빵을 하기도 했던 박주영 등등 성격이 특이하기로 유명한 해외파 선수들을 모조리 품어내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그 악동 집단인 해외파 선수들은 신기할 정도로 홍명보 체제에선 큰 말썽 없이 조용했다. 심지어 월드컵 마지막 벨기에전 이전까진 계속 벤치에만 앉아있었던 김승규, 김신욱과 부상에도 불구하고 감독 명령에 악깡버로 뛰어야 했던 홍정호 등은 홍명보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었을 법한데도 홍명보가 사퇴할 때 격렬히 반대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고, 대표팀 내의 파벌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정했던 곽태휘 역시 홍명보를 은근히 실드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저 선수들이 대인배인 게 제일 크긴 하겠지만 그래도 위 사례들이랑 비교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홍명보가 김호, 박종환 같은 소위 '호랑이' 스타일은 아니다. 대표팀 선수들의 증언에 의하면 오히려 화를 거의 안 내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심지어 세간에 알려진 꼰대 이미지와 정반대로 선수들과 편한 관계를 유지하며 군기도 널널하게 잡는 편이다. 자칫하면 호구잡히기 쉬운 성향 탓에 당시 수비 코치인 김태영이 총대 메고 군기반장 노릇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데, 김태영이 선수들을 잡고 다니자 오히려 홍명보가 김태영에게 애들 잡지 말라고 혼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렇다고 덕장이라 부르기엔 애매하다. 일단 마틴 오닐이나 해리 레드냅마냥 쓸놈쓸 성향도 있고, 코치 시절 미들즈브러에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던 이동국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에 데려가기 위해 간청하거나 월드컵 시절 부상 여파로 폼이 엉망이던 홍정호, 김영권, 곽태휘를 악깡버로 강제로 경기를 뛰게 하는 등 쌍팔년도 스타일 기질도 있다.[16] 그렇다고 또 그렇게까지 무지성으로 까라면 까 주의자인 건 아니고 선수들을 챙겨줄 땐 확실히 챙겨준다. 덕장과 독재자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이것이 조화가 잘못 되면 이도저도 아닌 미묘한 성격의 리더가 될 수도 있지만 홍명보는 이런 두 성향의 조화가 잘 되어있는 편이다.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하나된 팀'을 지키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이게 말만 들으면 좋아 보이지만 이걸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단 게 문제. 사람 사는 세상에 크건 작건 다툼이 없을 수 없고 그건 팀 내에서도 마찬가진데 홍명보는 이런 팀 내의 분열을 아예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브라질 월드컵 당시의 홍명보호의 예를 들면 당시엔 감독 부임 전부터 해외파 VS 국내파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고 이 두 파벌을 모두 끌어안으려면 팀내 분열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홍명보가 (자신이 해외파[17]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국내파를 아예 포기하고 해외파로만 대표팀을 꾸린다는 최악의 선택을 했던 걸 생각해 보자.[18]

홍명보의 이런 병적으로 '하나된 팀'에 집착하는 성향은 특유의 인터뷰 스킬에서도 드러나는데, 우선 공식석상에서 자기 선수들을 절대 함부로 비난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 선수들의 책임을 홀로 책임지는 등 선수진이 흔들리지 않게 세심하게 신경써 가며 인터뷰를 하는 편이라 팀 내 선수들의 지지도가 상당하다. 타 감독들 중에 경솔하게 자기 선수를 비판하다 팀 내 분위기를 망쳤던 케이스가 많았던 걸 생각하면 이건 분명 홍명보만의 장점이 맞다.

반면 (좋지 않게) 자신을 떠난 선수에게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비정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울산을 통수치고 J리그로 이적한 오세훈을 두고서는 '우리 선수가 아니니 더 이상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또한 울산과 임대 연장 계약을 논의하던 중 전북과도 임대 계약에 대해 논의하면서 전북으로 이적한 아마노 준을 두고서는 모두를 당혹케 할 정도로 강한 수위의 비난 발언을 KBS 9시 뉴스 인터뷰 등에서 하기도 했다.[19] 이처럼 자기 선수냐 아니냐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극단적으로 갈린다.[20]

사실 이건 홍명보의 전략적인 인터뷰라 보는 시각이 많은데, 주축 선수들이 계속 팀과 좋지 않게 헤어지며 팀 내 선수진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탈영병공개처형하는' 방식으로 팀을 하나로 결집시키려 한다는 것. 이렇듯 철두철미할 정도로 팀 분위기를 확실히 휘어잡는 그의 언론플레이는 팬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편이지만 (인간적인 면과 별개로) 팀의 감독으로선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대부분인 듯하다. 게다가 의도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다른 국가의 리그에 비해서 조용하고 화제거리가 없는 K리그에서 이런 화제를 만들어 K리그에 관심을 끄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사실 홍명보가 선수들에게 안 먹히고 대접받는 것은 국대 레전드 출신 감독이라는 메리트가 꽤 크다. 카리스마고 뭐고 딴 거 다 집어치우고 그 팀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긴 대선배인데 후배들 입장에선 말 안 듣고 개길 수도 없는 것. 참고로 해외에서도 가레스 사우스게이트[21], 앨런 시어러, 젠나로 가투소, 게리 몽크[22], 지네딘 지단 등 구단 레전드가 그 구단 감독을 맡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들은 감독으로서의 성패와 별개로 높은 확률로 선수단을 제대로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특유의 느낌을 쉽게 설명하자면 군대에서 일이병 시절 군생활 가장 열심히 하던 에이스가 말년 되면 후임들에게 화 안 내고 착해빠지게 행동해도 후임들이 알아서 선임으로서 대우하는 경우랑 비슷하다 보면 된다. 특히나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에는 감독 말을 들으면 군면제라는 최고의 포상까지 더해지니 선수들 입장에선 충성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특징들 탓에 국대 감독 시절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감독으로서의) 홍명보를 안 좋게 보지만, 정작 현장에서 뛰는 선수들은 가장 존경하는 은사로 홍명보를 꼽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현역 시절 후광빨로 장악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과묵하고 특유의 카리스마 있는 성격, 그리고 언론으로 부터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며 거기에 대한 시선과 비판을 본인에게 돌림으로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는 성격과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 등 리더십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편이다. 그리고 이런 리더십은 그동안 울산에게 모자랐던 위닝 멘탈리티를 심어주며 17년만의 리그 우승을 거머쥐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쌓아올린 멘탈리티는 다음 해에도 그 진가가 드러났는데, 4번의 동해안 더비와 현대가 더비, 총 8번의 더비 매치에서 겪은 패배는 단 1번 뿐이었다. 즉 아무리 다른 팀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도 더비에서 잡아야할 경기는 귀신같이 잡아냈단 소리.

요약하자면 한 번 겪은 실패에도 주저앉지 않고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형 감독인 셈.

선수들의 인성과 기본 예의를 중요하게 여기는듯 하다. 울산 현대축구단 일부 선수가 2023년 초 포르투갈에서 진행된 전지훈련에서도 무례하게 행동해 홍명보 감독에게 혼났다는 일화가 있다. 전지훈련 식당 아주머니한테 버릇없이 굴자, 홍명보가 "너희 그러는 게 어른으로서 할 짓이냐?"고 말하며 선수들을 진지하게 혼냈다고. 선수들은 식당에서 먹은 음식을 안 치우고 그냥 갔고 홍명보가 이 모습을 목격하고는 "난 축구만 잘하는 선수는 필요 없다. 예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


2.3. 행정가 경력[편집]


2017년 대한축구협회의 파동에 따른 조직 개편에서 전무이사로 선임되었다.[23][24] 분명 감독 시절의 실책이 크기는 하지만 선수 시절의 훌륭한 경력과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성과 등 실적이 없는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거기다 홍명보/지도자 경력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홍명보 본인은 이전부터 지도자보다 행정가 쪽으로 꿈꾸고 있었다.

본인의 자서전에도 행정가가 되는 것을 더 희망하기도 했으니 어떻게 보면 궁극적으론 본인이 원하던 대로 행정가가 된 셈. 다시 감독직을 절대로 수행하지 않으리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단 감독 생활의 끝이 썩 유쾌하지도 않았고 본인이 희망하는 진로로 다시 가닥을 잡았으니 감독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지도자는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행정가의 길을 갈 작정이라고 한다.

단, 홍명보의 행적에서 드러나듯 축구협회 파동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치라인을 탄 인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축구팬들은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박지성, 홍명보를 발탁한 협회의 깜짝인사가 애초에 근본적으로 스타 마케팅이자 2002년 추억보정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구조 개편으로 이미지 쇄신을 꾀했던 협회의 이미지는 좋아지기는 커녕 바닥을 모르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25] 애초에 전무이사라고 하면 고위 임원급 보직인데 홍명보는 행정가 준비를 하기는 하였으나 제대로 행정 실무를 수행한 적은 없으니 못 해도 전무급의 고위직은 아닌 위치에서 시작해야 정상이다. 사실상 낙하산이다.

애초에 행정가라는 어감 때문에 착각하기 쉬울 뿐 우리가 생각하는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은퇴 이후 한국 축구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고위직을 지망했다고 봐야 한다. 현장에서 뛰기 보다는 바로 고위직에 오르고 싶어했다는 이야기인데 뒤에 나오는 해설가들 비판 발언들을 보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2018년 3월 22일 서울특별시 중구 두타몰 특설무대에서 열린 2018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컬렉션 런칭 이벤트 '이빨을 드러내라' 토크쇼에 참석했다.[26]

김판곤을 협회 부회장 겸 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하는 데에 홍명보 전무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김판곤 말로는 서로 간의 연이 전혀 없는데 도대체 왜 본인을 추천했는지 놀랐다고. [27]

바이에른 뮌헨과 MOU 계약을 맺거나 2020 도쿄 올림픽을 위해 김판곤과 같이 선수 차출을 위한 협상을 뛰는 등 행정가로서는 큰 실책이라 할 것 없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

축구협회는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홍명보가 전무이사로 부임하기 전에는 비주류 인사가 선임되기 힘든 구조였으나, 다름아닌 축협의 황태자 소리를 듣던 홍명보가 이러한 행보를 보이면서 비주류 인사 섭외가 전보다 늘어났다. 김판곤 체제가 결과를 내며 팬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그를 초빙하고 뒤에서 힘을 실어준 홍명보 역시 호평을 받았다.

2021년에 KFA의 전무이사직에서 물러나고 울산 현대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행정에는 잠시 손을 놓게 되었다. 그런데 홍명보가 협회에서 물러나더니 김판곤도 손발이 하나씩 잘리면서 그가 구축한 시스템이 무너지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잦아졌고,[28] 결국 김판곤이 물러난 이후 축협이 삐걱대기 시작하면서 홍명보와 김판곤이 계속 재평가되고 있다.

한편 2023년 대한축구협회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및 번복 사건이 터지면서 난리가 났는데, 그동안 협회 내부에서 사면론이 꾸준히 일었지만 홍명보 전무가 이러한 주장을 원천 차단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홍명보가 물러나고 나서야 이런 불순한 건의가 협회 윗선에 올라갔다고 한다. 행정가로서 홍명보의 능력이 한번 더 주목된 셈, 덕분에 사면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이영표, 이동국, 이임생 등과는 달리 홍명보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좋아졌다.


2.4. 아시아베켄바워[편집]


결론부터 말하자면 홍명보가 프란츠 베켄바워를 롤모델로 의식하고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는 홍명보의 자서전을 보면 명확히 드러나는데, 자신의 수많은 별명 중 '아시아의 베켄바워' 라는 별명을 제일 먼저 올려놓았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홍명보 본인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별명이라는 이야기다. 지금 후배 선수들이 홍명보를 존경해서 제2의 홍명보라는 별명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듯이, 홍명보도 베켄바워를 존경해서 '아시아의 베켄바워' 라는 별명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단 당시의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축구팬들은 홍명보를 진짜로 아시아의 베켄바워라고 인식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사실 선수로서의 홍명보와 베켄바워는 선수로서의 클래스는 둘째치더라도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다르며 홍명보는 사실 리베로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물론, 홍명보의 실질적인 포지션이 바이에른 뮌헨식 앵커맨이었고 베켄바워도 이 포지션에서 자주 뛰었던 걸 생각하면, 아시아의 베켄바워라는 호칭도 완전 엉터리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홍명보는 자기 자서전에 본인은 은퇴한다면 감독이 아닌 행정가 쪽으로 가고 싶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 책이 나온 시점인 2002년 월드컵 직전은 바로 베켄바워가 DFB 수뇌부이자 FIFA 핵심 인사 중 한 명으로서 화려하게 활약하고 있던 시점이다. 특히 베켄바워는 자신의 충실한 오른팔인 페도르 라트만을 대동해 역사상 가장 깔끔한 월드컵 유치전 승리를 거머쥐는 등, 그야말로 축구행정가로서는 전성기를 찍던 시점이다. 그리고 베켄바워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행정가 중에선 가장 성공한 케이스이다. 그나마 미셸 플라티니가 베켄바워랑 비슷한 위상까지 올랐던 스타플레이어 출신 축구행정가인데, 막후 거래와 관련해서 말은 많아도 적어도 일은 잘한다는 평을 받는 베켄바워와는 달리 플라티니는 부패한데다가 일도 못한다는 평을 듣는 것을 보면 사실상 베켄바워 말고는 세계구급 축구행정가로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스타플레이어는 없다고 봐도 좋다. 홍명보도 그런 베켄바워를 보면서 인생의 롤모델로 삼아 배우고 싶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베켄바워는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성공했는데 홍명보는 베켄바워랑 비교하면 감독 경력은 초라한 편이었다. 물론 2012 올림픽 동메달과 같은 영광의 순간도 있었지만 2014 월드컵이나 항저우 뤼청 감독 시절처럼 안 좋은 기억이 많았다. 그래도 울산 현대 감독으로 부임해서 다시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고 2022년에 울산을 17년 만의 리그 우승으로 이끌면서 감독으로서도 자랑할만한 경력을 만들어내면서 아시아의 베켄바워라는 이미지를 점점 각인시키고 있다.

어쨌거나 홍명보는 베켄바워가 거쳤던 길인 스타플레이어 → 명장 감독 → 행정가 수뇌부의 길을 착실하게 밟고 있는 중이다.[29][30] 적어도 행정가로 뽑히는 선임 과정에 관해선 굉장히 논란이 많은 홍명보였지만 그가 행정가로 일했을때는 유능하단 평을 듣고 있다. 홍명보를 싫어하는 안티들마저도 행정가로 일하는 부분에서는 비판이 거의 없을 정도다.


3. 기록[편집]



3.1. 선수[편집]



3.1.1. 대회 기록[편집]








3.1.2. 개인 수상[편집]


  • FIFA 올해의 선수 후보: 2002 (17위), 1996 (21위)[31]
  • FIFA 월드컵 브론즈볼: 2002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2002
  • FIFA XI: 1997
  • AFC 아시안컵 토너먼트의 팀: 2000
  • AFC 아시안컵 올타임 XI: 2018
  • AFC 아시안컵 올타임 드림 XI: 2023[32]
  • AFC 아시안 올스타[33]: 1997, 2000
  • K리그 MVP: 1992
  • K리그 베스트 XI: 1992, 1994, 1995, 1996, 2002
  •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XI: 2013
  • K리그 공로상: 2012
  • K리그 명예의 전당: 2023
  • J리그 디비전 1 베스트 XI: 2000
  • J리그 디비전 1 올스타: 1999, 2000, 2001
  • KFA 대상: 2009[34]
  • 백상체육대상 대상: 1994
  • FIFA 100: 2004
  • AFC 명예의 전당: 2014
  • AFC 아시아 월드컵 올타임 XI: 2020[35]
  • IFFHS 20세기 아시아팀 (1901–2000)
  • IFFHS 올타임 아시아 드림팀: 2021


3.1.3. 수훈[편집]


  • 체육훈장 맹호장: 2002[36]


3.1.4. 통산 기록[편집]



3.1.4.1. 클럽[편집]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2
포항제철 아톰즈
한국프로축구대회
29
1
-
-
8
0
1993
포항제철 아톰즈
한국프로축구대회
11
1
-
-
1
0
1994
포항제철 아톰즈
코리안리그
17
4
-
-
0
0
1995
포항 아톰즈
코리안리그
24
1
-
-
7
0
1996
포항 아톰즈
프로축구대회
29
7
0
0
5
0
1997
포항 스틸러스
프로축구대회
0
0
0
0
6
0
1997
벨마레 히라쓰카
J리그
10
0
3
1
0
0
1998
벨마레 히라쓰카
J리그
32
2
2
0
0
0
1999
가시와 레이솔
J리그 디비전1
28
5
4
2
5
2
2000
가시와 레이솔
J리그 디비전1
29
2
2
0
2
0
2001
가시와 레이솔
J리그 디비전1
15
0
0
0
3
0
2002
포항 스틸러스
K-리그
19
0
0
0
0
0
2003
LA 갤럭시
메이저리그 사커
25
0
2
0
-
-
2004
LA 갤럭시
메이저리그 사커
31
0
0
0
-
-


3.1.4.2. 국가대표[편집]

2002년 11월 20일 기준이다.
연령
출전

U-17
0
0
U-20
0
0
U-23
1
0
A대표
136
10
합계
137
10


3.2. 감독[편집]



3.2.1. 대회 기록[편집]





3.2.2. 개인 수상[편집]




4. 비판 및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비판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홍명보에 대한 언사[편집]


파일:na1339632097.jpg

"홍명보는 한국의 기형적인 시스템이 낳은 기형아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저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1994 미국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해설자[37]


"홍명보가 만일 지금 다시 축구를 시작한다면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유럽에서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 그러나 지금 늦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IHT)의 칼럼리스트 랍 휴스


"마치 두 명의 말디니가 서 있는 것 같군요."

이탈리아 해설자, 세계 올스타 경기에서 파올로 말디니와 함께 수비를 조율하는 홍명보를 보고


"나폴리를 떠나 유벤투스로 가게 된 치로 페라라의 자리를 홍명보로 메우고 싶었는데 안타깝다."

SSC 나폴리 구단주, 1994년 홍명보의 영입에 실패한 후


"한국이 예선탈락한 것은 결코 한국 축구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차범근 감독은 홍명보같은 유능한 선수를 몰라봐 그를 공격수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38]

아나톨리 비쇼베츠


"그 주장(홍명보)의 플레이를 정말 좋아한다. 경기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는 뛰어난 수비수다. 그런 수비수가 있어서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리오 퍼디난드[39]


"골대를 지키고 있다 보면 앞에 선 등번호 20이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 모른다."

미나미(가시와 레이솔 골키퍼)


"좋은 선수는 많지만 위대한 선수는 많지 않다. 위대한 선수란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성품, 태도, 마음가짐 모두가 균형을 이루는 선수다. 그런 면에서 선수 홍명보는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앞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이영표


"선수 시절 홍명보에게서 나오던 아우라는 김민재도 따라하기 힘들 것이다. 실력도 정말 좋아서 전성기였다면 유럽 5대 리그 빅클럽에서도 기용되었을만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이천수



6. 어록[편집]


선수 시절 및 국가대표 감독 시절에는 말을 잘 더듬고 말실수가 있었으나 울산 현대 감독 부임 후에는 매니지먼트 문단에도 나와있듯이 온갖 명대사를 기깔나게 잘 뽑는다.[40]

볼이 뜨는 경합 상황이 오면 바셔버려.

--

2012 런던 올림픽/축구(남자)/동메달 결정전 당시, 경기 시작 전 미팅에서.[41]


니네 거짓말쟁이야 새끼들아!?


그 사람들은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중요해. 그 사람들은 그 결과 하나 가지고 일주일을 생활하는 사람이야.


자 수고했고 경기 결과 아쉽지만... 이거는 경기 결과, 결과를 떠나서 다른 이야기이지만 너네 왜 경기 계속하면서 조금만 부딪히면 아! 하고 넘어지는거야? 그러고 심판 쳐다보고. 여기는 내가 얘기했지! 인터내셔널 매치라고. 그러고 골 먹고 전부 다 심판(보고) 손 들고. (운동가방을 걷어차며) 이게 팀이야?? 이게 팀이야!?!? 전부 다 넘어지면 아! 아!! 내가 분명히 얘기했지! 이건 또 다른 경기라고, K리그 아니라고!! 더 힘들면, 넘어지면 빨리 일어나서 다음 갈 생각을 해야지. 넘어지면 손 들고 레프리 쳐다보고! 이거는 경기 결과하고 다른 얘기야. 니들의 이 부분은 오늘 분명 최악이었어 내가 보기엔!

푸른파도2 4화에서 나온 대사로, 아마도 축구팬들에게 제일 유명할 대사다.


우리 서포터를 솔직히 이야기하면 굉장히 다른 서포터들에 비해서 양반이야.


한가지만 딱 얘기할게. 오늘 끝나고 니네들이 정말로 좋은 선수, 잘하는 선수라고 한다고 하면 이번주 주말에 이겨. 경기 내용이고 컨디션이고 필요 없어. 이겨. 이기는 길밖에 없어. 무슨 얘긴지 알겠어? 이길 수 있어. 빨리 이틀동안 회복해가지고 주말에는 진짜로 우리 팬들 실망시키지 말자.

22년 FA컵 4강 현대가 더비 탈락 후


마지막 날 여러분한테 이런 얘기를 해야 한다는게 굉장히 유감이고... 우리는 지금 계속 이 과정에서 어떤 선수가 어떤 선수와 조합이 잘 맞는지 계속 지켜보는 과정인데 내가 그 안에서 조끼를 못 입었다고 해서 벌써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 보이고 그런 선수 몇 명 있어. 용병도 마찬가지고. 나한테 중요한 것은 누구였냐가 중요한게 아니야. 나한테 중요한 것은 지금 얼마만큼 좋은 태도로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중요하지. 내가 누구였나, 지난 해 어떻게 했다, 나한텐 중요하지 않아. 여기는 모두 다 11명을 위해서 경쟁해야 하는 자리고, 조금 부족해도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경기장에 나가야 하는 게 맞아. 그렇게 아니면은 너네 다 죽어. 올해 다 죽는다고. 작년에 우승한 거? 작년에 우승한 거 누가 지금 기억해? 어제 내린 눈이야 보이지도 않아.[42]

작년에 우승했다고 올해 쉬울 것 같아? 내가 얘기했잖아. 더 어려울 거라고. 내가 굉장히 오늘 마지막 날이라서 내가 너네한테 이런 얘기 하는게 굉장히 유감이야. 진짜로

푸른파도3 1화


세상에는 완벽한 준비라는건 없어. 그 준비가 얼마만큼 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도 결과를 낼 수 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고. 이제 개막전, 38경기 중에 한 경기야. 3점을 따도 되고, 1점을 따도 되고, 0점을 따도 되는 경기야. 근데 세상 살다 보면 똑같은 일이지만 어떤 걸 너무 많이 잃을 수도 있고, 어떤 건 너무 많이 얻을 수도 있는거야. 우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에 따라, 또 어떤 내용을 가져오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많은걸 잃을 수도 있고, 또 많은걸 얻을 수도 있다고. 전북? OK, 다 인정해. 걔들이 얼마나 칼을 갈겠어? 얼마나 우릴 죽이고 싶겠어? 근데 그걸 알고도 그냥 칼을 맞아? 걔들이 정말 총칼을 들고나올걸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하고 거기에 맞으면 그건 좋은 일이 아니야. 예측하고 대비해. 개인적으로도, 팀으로도.

푸른파도3 2화


승점 3점 딴 거 축하할 일이고 기뻐할 일이야. 근데 그거 외에는 후반전은 내가 보기에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아. 여러분 만족해, 후반전? 이런 축구 계속 할거야? (중략) 승점 3점 딴 거 OK, 6연승 OK. 그거는 여러분들이 축하받을 일이고 기뻐해야될 일이야. 하지만 우리가 좀 더 나은 팀으로, 더 강한 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즐겁다 하더라도 우리는 정확하게 반성할 때는 반성하자고.

푸른파도3 3화


축구란 게 내 마음대로, 준비한 대로 되면 그게 축구야? 축구 아니라고.

푸른파도3 5화


내가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항상 어떤 상황이라도 배움의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야. 그래서 쉽게 얘기하면 모든 일들에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배울 수 있다는 게 좋은 거지. 여러분한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여러분 인생이나 축구가 가볍지 않았으면 좋겠어. 여러분이 제일 잘해야 되는 건 축구야. 괜히 SNS에 감성글 올리고 '내 기분이 어떻다', '나 어디 가서 옷 샀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그럴 수 있다'라고 하지만 여러분이 최우선으로 해야 되는 거는 그게 아니라 운동장에서 좀 더 시간을 내서 땀 흘리고, 부족한 거 메워야 되고, 그게 제일 여러분한테는 중요한 거라고. 근데 여러분이 축구만 잘하면, 문수경기장 안에 가면 그건 내가 직접 느낄 수 있어. 아니 눈으로도 볼 수 있어. 거기에 여러분 보이지 않는 거에 자꾸 손 뻗으려 하지 말고 내가 지금 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거기에 좀 더 시간을 들였으면 좋겠어.

내가 여러분들한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패배에 대해서, 물론 패배라는 거는 굉장히 뼈아프고 다른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돼. 하지만 특히 우리 울산 같은 경우는 이제 1번 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약올리고 더 해. 내가 얼마 전에 얘기했지? 그걸 이겨내는 방법은 우리가 경기장에서 이기는 거야. 그거 외에는 답이 없어. 다른 사람들이 우릴 시기해? 경기장에서 더 얄밉게 축구하면 돼. 그리고 승리를 가져오면 되는 거야.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푸른파도3 7화


지금은 운동장에서 웃지 마. 웃지 말고 고통 느끼면서 전북전 이길 때까지 참아. 그 다음에 웃어. 그 다음에 전북 박살낸 다음에 웃으라고.

오늘 지금 밖에 날씨 덥고, 습도 높고, 여러분 집중력 떨어져. 하지만 어느 누구도 90분동안 휘슬 불기 전까지 집중력 떨어뜨리지 말잔 말이야. (중략) 오늘 팬들도 많이 왔는데 오래간만에 우리가 팬들한테 결과? OK. 결과 주는 게 제일 좋아.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뭔가 감동 있는 경기를 한번 해보자고.

세상에 예를 들면은 도덕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좋지 않을 때 일반 사람들하고 달라. 더 그만큼 혹독한 시간을 보낸단 말이야. 여러분도 마찬가지야. 나는 매일매일 웃으면서 운동할 수 있어. 근데 그게 꼭 답은 아니야. 어떨 때는 우리가 힘든 모습도 보여야 되고, 힘들어 해야 되고 그래야지 오늘같이 통쾌한 승리가 있단 말이야.

푸른파도3 8화



7. 사단[편집]






8. 여담[편집]


  • FIFA 월드컵 본선 무대를 가장 많이 경험한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인이다. 선수로서 1990년을 시작으로 1994년, 1998년, 2002년을 통틀어 16경기를 뛰었다. 지도자로는 수석코치로 2006년 그리고 감독으로 2014년에 각각 선수들을 지휘한 바 있다.

  • 파일:external/thumb.photo.naver.net/myung%5B1%5D.jpg

  • 파일:/image/001/2012/08/05/PYH2012080502640001300_P2.jpg
위 :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서 8강전에서 영국을 승부차기로 꺾고 4강 진출을 확정짓고 환호하는 장면이다.
아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8강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짓고 난 후다.


위의 짤들에서 보이듯이 사적인 자리에서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으며 침착하고 과묵한 성격이다. 결혼을 한 뒤 아내와 함께 있을 때도 마찬가지라서 홍명보의 아내는 가끔 인형과 대화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고 홍명보의 자서전인 '영원한 리베로'에서 직접 언급했다. 참고로 선수시절 나온 TV프로그램에서 직접 밝히길 프로포즈는 "김치찌개를 잘 끓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끓여줘"였다고 핬다. 근데 이런 스타일의 인물은 입만 열면 지혜가 드러나는 명언이 술술 쏟아져 나오는데, 홍명보는 오히려 입만 열면 논란을 키우니 그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조차 제발 입 다물라 할 정도로 정반대라 할 수 있다. 본인 특유의 논란을 몰고 다니는 화법을 잘 알아서 말을 안 하는 걸지도 모른다.

  • 하지만 울산 감독에 부임하고 나서는 팬들이 사진 촬영을 요청할 때는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찍어준다.

  • 팀에서의 등번호20번. 처음 국가대표로 출전했을때부터 달았던 번호로 황선홍의 18번처럼 홍명보를 상징하는 번호로 자리잡았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와 함께 가장 유명한 20번 선수로서 한국 축구 한정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등번호가 되었다. 홍명보가 은퇴하자 그를 존경했던 포항 후배 이동국이 이어받았고, 이동국의 국가대표 차출이 불안해지자 제 2의 홍명보라 평가를 받는 홍정호가 이어받았다. 지금도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공격수가 주로 다는 20번을 수많은 한국 수비수들이 너도나도 다는 것을 볼 수 있다.

  • 2002 국대 시절에 주장 홍명보에게 이천수"명보야. 밥먹자!" 라고 반말을 했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소문으로는, 김남일이 반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김남일 본인이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없다" 라고 해명했고 진짜로 이렇게 말을 한 사람은 이천수였다고 밝혔다. 이에 홍명보는 2021년 인터뷰에서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둘 중에 누구였든지 반말을 할 만한 사람들이지 않느냐." 라고 농담을 했다. 참고로, 이천수와 홍명보의 나이 차이를 현재 2020년대로 체감하자면 대표팀에서 거의 막내급인 이강인이 국대에서 은퇴한 기성용이나 구자철한테 반말을 하는 정도로 비교할 수 있다. 실제로, 이천수는 2002 세대에서 거의 막내급이었다.

  • 나중에 이천수가 해명하길, 팀원들끼리 딱딱한 위계 질서를 깨기 위해서 선후배 관계와 상관없이 서로 반말을 하도록 명령을 한 사람이 다름아닌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었다고 한다. # 이천수가 말하길,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본인을 따로 불러서 밥을 먹고 있는 홍명보에게 반말을 하라고 직접 시켰다는데 본인은 그 순간이 엄청나게 무서웠다고 한다. 히딩크 전 감독의 말을 듣지 않으면 엔트리에서 짤릴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고 회상하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뻘개지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한다. 옆에서 홍명보에게 반말을 하는 것을 본 선배들은 거의 뒤집어지듯이 웃었다고.

  • 선수/지도자로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를 모두 달성한 케이스. 다만 홍명보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상무에서 병역 생활을 했고 그나마 4대 독자여서 6개월만 복무했다.[43]

  • 87학번 동기 사이인 황선홍과 매우 절친한 사이다. 출신 학교는 다르지만 오랜 기간 국가대표애서 각각 공수 핵심으로 활약하며 함께한 바 있다. 국가대표로는 대학교 4학년이던 1990년 월드컵에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월드컵까지 무려 4회의 월드컵을 함께했다. 국가대표 은퇴식도 합동으로 치뤄졌다. 프로구단에서는 포항 스틸러스가시와 레이솔에서 팀메이트로 뛰었다. 게다가 지도자로 전업한 이후로 자신이 이끌었던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도유망한 선수들의 병역특례를 이끌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44]

  • 1992년 K리그 최초 데뷔 시즌 MVP 수상 선수, 2002년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표팀 주장,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2022년 울산 현대 감독으로 리그 우승을 경험해 10년마다 대운이 온다는 기사도 쓰였다. #

  •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에서 프랑스에게 5:0으로 진 경기에서 프랑스의 스트라이커 니콜라 아넬카에게 "와 봐! 새X야!"라고 소리쳤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도는데, 사실 이는 거짓이다. 애초에 말 자체가 별로 없는 홍명보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욕설을 하는 모습이랑 매치가 되는가?[45]

  • 홍명보가 홍명바로 둔갑한 사건이 있었으니.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8강 스페인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4:3 상황에서 호아킨의 슛이 이운재에게 막혀 대한민국의 4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자 KBS서기철 캐스터가 흥분한 나머지 홍명보를 홍명바로 발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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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홍명보를 주인공으로 한 일본만화가 존재한다. 제목은 홍명보 이야기. 이 만화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화이며 작가는 닥터 노구치의 작가인 Toshiyuki Mutsu가 그렸다. 한마디로 작가가 홍명보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정성껏 만든 만화책이다. 스펀지 시즌 1에서도 다룬 바 있다.

  • 파일:871577869.jpg파일:10834108156633116507-a902769ed721a7aed362c67923d709a0.jpg
어게인!!의 작가 쿠보 미츠로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연재한 만화 3.3.7 박수[46]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학교선배이자 상사인 우메의 모티브가 홍명보라고 작가가 직접 밝혔다. 위의 닥터노구치 작가 작화에 비하면 꽤 많이 닮긴 했지만 차이점도 존재하는데, 우선 특유의 오대오 직모장발이 아닌 사카타 긴토키를 연상시키는 샤기컷 백발이며 맹한 눈빛의 우메와는 달리 홍명보는 상대의 이마를 히트비전으로 꿰뚫어 버릴 정도로 강렬한 눈빛의 소유자다.

  • 장남의 이름이 홍정민으로 잘못 나온 적이 있다. MBC 기분 좋은 날과 홍성민군의 미술전시회 등에서 나온 게 그것인데, 여기서 둘째의 이름이 잘못 적혀 이런 이야기가 나온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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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서 요술봉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이는 봉(보)의 일본어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 개그. 원작에서는 4권 제 51막에서, 애니메이션에서는 1기 9화에 등장. 변신시 사용자의 아버지를 누드로 만든다. 여담이지만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만화 자체에서 한국인 이름을 엉뚱한데다 많이 쓴다. 월간 최홍만, 월간 최지우,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라 할 수 있는 소드마스터 야마토가 연재된 월간 최용수가 있다.[47] 거기에 위 짤방은 축까들이 홍명보 및 홍명보호를 깔 때 등장하기도 한다.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오재석, 김승규와 함께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3위~4위전 이란과 경기 후 기자회견에 나선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 중 병역혜택을 우선으로 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연평도에서 전사한 장병에게 염치없는 짓을 하지 않았다. 남들이 피자, 햄버거 등을 섭취할 때 우리는 스스로 컨트롤했다"고 말하며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운 야구국가대표팀을 비하 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사실 야구선수들은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패스트푸드로 때운 반면 축구대표팀은 국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아 매끼 한국음식을 비롯한 호화로운 식사를 했다.#

  • 브라질의 축구선수 둥가가 그와 비슷한 면이 많다. 해당 문서 참고.

  • 게다가 차범근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한 하석주와 감동의 재회를 했는데[48] 칼럼에서 차범근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이후 자신에게 연락을 안 한 선수는 하석주와 홍명보 뿐이라고 언급하면서 논란이 또 커졌다. 하석주야 각주에도 적혀 있듯이 죄책감이 너무 커서 연락을 못 했고 차범근도 이를 이해했지만, 홍명보에게는 그럴 이유도 없었고 게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여론에게 비호감으로 찍혔었다.




  • 현역 시절 1994년 미국 월드컵, 유럽 올스타 vs 세계 올스타전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수의 스페인팀과 대표적인 명문팀 FC 바르셀로나에서 영입제의를 받은적이 있다고 한다. 2002년 당시 기사 원문은 삭제된 상태고 퍼온 기사 내용만이 남아있는 상태다. #

  • 잘 알려진 사실로 빠른 1969년생이라 황선홍과도 상당히 친하다.

  •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토지 80여평을 11억원에 매입해 땅명보, 홍땅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

  • JTBC에서 방영한 '마이히어로' 에서 그에 일대기를 방영하였다. 이때 대표팀 감독 선임 뒷이야기도 나오는데 사실 대표팀 감독을 하는 것에 대하여 이회택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나 김병지 등 주변 사람들이 전부 반대하였다고 한다. 당시 대표팀에 내부 관계자들은 현재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었고 대표팀 감독 자리도 이미 흙탕물이 되어버려서 잃을 것이 더 많은 자리가 되어서 누가 와도 결과는 뻔한 상황이며 이번 월드컵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짐작했다고 한다. 홍명보 역시 이러한 상황을 알고는 있었고 머리로는 절대로 하면 안된다는 것을 인지했으나 현재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이 자리를 맡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나라에 받은 혜택을 생각하면 피해서는 안된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홍명보 감독의 능력 부족도 능력 부족이지만 당시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 울산 감독 부임 후 주목받고 있는 사실인데 아주 높은 확률로 ~하자고 라는 말투를 사용한다.

  • 울산 현대 선수들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태도 문제를 보이자 라커룸에서 머리 끝까지 화난 상태로 "이게 팀이야?" 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유명하며, 실제로 유튜브에 접속하여 '개빡친 홍명보'라고 검색해서 그 중 하나를 선택하면 홍명보 감독이 아이스박스를 걷어차는 장면이 등장한다.

  • 제주도를 좋아한다. 여행도 자주 다닐 정도라고 한다.

  • 피파 시리즈피파 2002에 표지 모델로 출연했고, 게임 내 한 업적은 아시아 대회에서 우승하면 홍명보의 사진을 해금한다.

  • 본인이 한국축구계에 많은 파급력을 가진 것을 프로 선수때 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 2023년 3월, 대한축구협회의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및 번복 사건으로 인해 과거 행정가 시절의 행보가 재조명받고 있다. 과거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재직중이던 시절에도 사면 시도가 있었는데 당시 홍명보가 강력하게 반대했기에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었다.# 다른 이들처럼 반대 의견을 내지 않고 안건 가결에 침묵을 지킨 이영표, 이동국, 이임생, 박경훈, 조원희 등의 축구선수 출신 축구협회 임원들에 대한 여론이 바닥을 찍는 것과 반대로 홍명보는 진정한 2002 레전드로 재평가되고 있다. 홍명보-김판곤 시기 대한축구협회가 달라졌다는 호평이 많은게 우연이 아닌 것임을 이번 사태를 통해 도리어 보여준 셈이다.

  • 홍명보 장학재단을 만들어 선행도 많이 하고 있다.# 아무래도 설립자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축구선수 육성이 주 목적으로 보인다.

  • 선수 시절부터 현재까지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스타일에 살짝살짝 변화를 주는건 여러번 해봤어도 기본은 귀 위를 살짝 덮고 목까지 기른 장발이다. 탈모도 없어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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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 키와[49] 은퇴 이후에도 슬림한 몸매, 중후하고 젠틀한 이미지 덕에 수트빨이 굉장히 잘받는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며, 여러차례 패션 화보를 찍기도 했다.

  • 위에도 문단이 따로 있을 만큼 울산 현대 감독 부임 후 여러 명언들을 뽑아내고 있지만, 본인이 뽑은 최고의 명언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남겼던 "바셔버려"라고 밝혔다. 45분 10초부터

  • LG 트윈스 염경엽 감독과 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김상식 감독과 친하기로 유명하다. 셋 다 고려대학교 87학번 동문이며, 2023년 한국시리즈가 열릴 때 LG 트윈스를 응원했다고 한다. 또한 비시즌 중에 김상식 감독이 울산에서 밥 한끼 먹었는데 자신에게 우승의 기운을 받겠다고 얘기했으며 정관장(당시에는 안양 KGC인삼공사)은 그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다.[50] 아울러 2023년에만 야구, 축구, 농구에서 고려대학교 87학번 출신 감독이 이끄는 팀이 모두 우승을 했다.

8.1. 10년 주기설(?)[편집]




이전부터 축구팬들 사이에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한국이 월드컵 사상 첫 4강을 이뤄냈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냈으니,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한국이 다시 한번 호성적을 내는 게 아니냐" 라는 10년 주기설(?)이 우스갯소리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홍명보가 울산 감독으로서 17년 만에 울산 현대에 우승을 안기자, "사실 10년 주기설의 주체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니라 홍명보가 아니냐" 라는 새로운 가설이 제기되었고 실제로 홍명보의 축구 인생을 돌아보면 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데.
  • 1992년: 포항에서 프로 데뷔 첫 시즌에 K리그 MVP, K리그 베스트 11, K리그 우승을 모두 석권

  • 2002년: 주장으로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아시아 사상 첫 4강 진출 견인 및 아시아 선수 최초로 브론즈볼 수상 및 월드컵 베스트 11 달성


  • 2022년: 감독으로서 울산 현대의 17년 만의 K리그 우승을 이끌고 감독상도 수상.

그리고 결국 대표팀 역시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면서 10년 주기설은 대표팀과 홍명보 모두에게 적용되게 되었다. 이를 근거로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을 홍명보가 맡으면 무조건 금메달이라는 드립도 있다(...) 한술 더 떠서 2042년 월드컵 감독을 시키면 우승할거란 드립까지 나왔는데 물론 이때 홍명보의 나이는 74세(...)가 되기에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을 통해 월드컵 최고령 감독 기록을 갱신한 루이 판할 전 감독이 7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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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빠른년생으로 68년생인 황선홍을 포함해 다른 68년생들이랑 친구로 지내고 69년생인 사람들은 선배라고 부른다.[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프로필[3] 스위퍼[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 1위. 1998년 3월 7일에 열린 홍콩 대표팀과의 다이너스티컵 경기를 포함하여 137경기로 대한민국 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자이다. 홍콩 팀에 게리 매키언(Gary McKeown)이라는 잉글랜드 국적의 외국인 선수가 기용되어 있어서 대한축구협회와 홍콩 축구 협회는 A매치로 인정하지 않아 136경기로 기록되었지만 FIFA에서는 이 경기를 A매치로 인정하여 총 137경기로 대한민국 대표팀 최다 출장자가 되었다.[5]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1골 1도움으로 득점에 모두 관여했고, 최종전인 독일전에서는 0:3으로 뒤진 후반전 상황에서 황선홍과 함께 연달아 득점하여 2:3까지 치고 올라갔었다.[6] 다만, 이 시기에는 1996년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이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었고 홍명보 본인도 태업 의혹을 받던 시기였다.[7] 아시아에서 가장 수준급 선수가 나오기 힘든 포지션이 센터백과 골키퍼인데 동양인의 경우 평균적으로 다른 인종보다 체구가 작고, 체구가 클 경우 민첩성 등에서 손해를 보는데 이 부분이 센터백으로서 가져야 할 강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시아 센터백들 중 이 만한 수상 경력을 쌓은 선수는 없으며, 독보적인 위상을 가졌기에 역대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아시아 베스트 11을 뽑을 때 그의 파트너로 거론될 수 있는 선수들이 유럽 빅리그에서 활동한 요시다 마야, 라만 레자에이, 쑨지하이 정도. 사실 굳이 센터백으로 한정하지 않고 차범근, 손흥민을 포함한 모든 필드 플레이어와 비교했을 때도 홍명보는 국가대표로서 이룰 수 있는 걸 대부분 이뤘다고 볼 수 있다.[8] 자세한 내용은 2012 런던 올림픽/축구 문서와 홍명보호/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문서 참고.[9] 아마 박지성이 국대 은퇴를 번복했다면 박지성도 무조건 이 윙어 포지션에 투입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전술에는 체력이 되고 수비력도 좋은 윙어가 필수이기 때문.[10] 대표적인 게 런던 올림픽 영국전 때 지동원을 투입했던 것이다.[11] 코로나 집단 감염과 국대 차출로 기용 가능한 센터백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풀백을 좌우 스토퍼로 놓았고 윙어를 윙백에 놓는 3-4-3 전술로 풀 주전 상태인 포항을 상대해 이겼다. 당시 포항의 감독이 졸장도 아니고 명장인 김기동이었음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다.[12] 물론 이는 라이벌 전북 현대 모터스김상식의 지휘 하에 졸전을 펼치며 초반 우승 레이스에서 승점을 많이 잃은 탓도 크다. 그래도 김상식이 크게 비판 받을 일이지 어쨌든 리그 선두를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홍명보의 지휘가 그렇게 폄하될 이유는 없다.[13] 이로 인해 울산에 부임하면서부터는 이런 저런 명대사도 기가 막히게 뽑아낸다. 개요 문단의 대사도 그렇고 요즘 유행하는 팀 드립까지 있었다.[14] 거스 히딩크허정무는 성적으로 선수들에게 인정받은 특이 케이스니 제외.[15] 현재 울산 홍명보 감독의 핵심 주전인 김영권이 BJ 감스트와 합방에서 이야기하길 본인이 청대시절 당시 홍명보 감독에게 몇 안되는 쌍욕을 먹은 선수 중 한명이었다고 말했는데, 일화로 훈련 중 집중력이 떨어진 나머지 기본적인 실수를 엄청해 훈련을 중단시키고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 불러세운뒤 "야 김영권 네가 축구를 그렇게 잘해?"라며 팀에서 나가라고 들었었고 나중에 숙소 도착 후 "진짜 짐을 싸야하나?"라고 고민할 때 홍명보가 감독실에 따로 본인을 불러 "오늘같은 정신 상태면 짐싸서 나가라. 하지만 앞으로 오늘 같은 정신 상태를 갖지 않겠다고 나한테 약속하면 너는 내가 앞으로 데리고 가겠다."라고 이야기 해 김영권이 홍명보 감독에게 감동을 먹었다고 이야기했다.[16] 이 탓에 이동국은 커리어가 꼬여버렸고, 월드컵 수비진의 경우 말 그대로 시원하게 멸망했다.[17] 해외파의 주축은 거의 대부분 런던 올림픽 당시의 멤버들이다.[18] 사실 이 대표팀 내의 균열은 홍명보뿐 아니라 후임 감독들조차 완전히 봉합하는 데 실패했고 심지어 이 모든 사태의 만악의 근원 기성용이 은퇴한 뒤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저 링크된 사건은 선수들과 스태프 간의 갈등이지 국내파, 해외파 간의 갈등은 아니라서 결이 다르다. 저 링크된 사건에는 국내파 선수들도 상당히 많기도 하고.[19] 49초부터[20] 그리고 2023 시즌 홈 개막전에서 전북을 상대했는데 울산 서포터들이 うそつき あまの(거짓말쟁이 아마노의 일본어) 라는 걸개를 내걸면서 아마노를 디스했다.[21]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미들즈브러의 감독인 스티브 맥클라렌이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미들즈브러를 떠나자 선수 생활 은퇴와 동시에 미들즈브러의 임시 감독을 맡았다. 사실 감독 부임 당시에 제대로 된 자격증이 없어서 임시 감독이 되었던 것이지만 그전 시즌부터 맥클라렌에게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었으며 임시 감독 부임 후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후에 정식 감독으로 임명된다.[22] 선수 생활 마지막 시즌 도중에 전임 감독 미카엘 라우드럽이 경질되면서 감독 대행으로 임명되었고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정식 감독이 되었다. 사우스게이트와 비슷하지만 시즌 도중에 감독 대행으로 임명되었다는 차이가 있다.[23] '축구협회 조직개편... 전무 홍명보, 유스본부장 박지성', 김태현, 국민일보, 2017년 11월 8일[24] 참고로 박지성은 유스전략본부장이고 기술발전위원장은 놀랍게도 이임생. 199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카리스마 캡틴이었던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란 점을 높게 산 듯하다.[25] '한국축구 쇄신 핵심 '홍명보·박지성' 위기 탈출 '특급 조커'로 나선다', 권영준, 스포츠월드, 2017년 11월 8일[26] 인사말하는 홍명보 축구협회 전무이사, 2018년 3월 22일, 네이버스포츠 박지혜 기자.[27] 당시 김판곤은 홍콩 국가 대표팀 감독을 비롯, 홍콩 축구협회의 전반적인 큰 역할을 맡으면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었으나, ‘일을 잘 할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감독님이 적격 인 것 같습니다.‘ 라는 홍명보의 설득에 ‘도저히 거절을 할 수 없었다.’ 라고 회상 하였다.[28] 대표적으로 U-23 대표팀 감독 선임이 있다. 김판곤파울루 벤투 때처럼 검토, 인터뷰, 재검토 등 절차를 거치려 했으나, 감독 후보 인터뷰도 다 안 끝났는데 협회 높으신 분들이 냅다 황선홍으로 결정해버렸다.[29] 미셸 플라티니도 의외로 베켄바워랑 비슷한 행보를 걸었었는데, 플라티니 역시 베켄바워처럼 은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국인 프랑스의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그러나 베켄바워가 2번의 월드컵 결승 및 한번의 우승, 1번의 유로 준결승을 찍은것에 비해 플라티니는 1990년 월드컵에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유로 1992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초라하게 감독 커리어를 마무리했다.[30] 홍명보도 사실 대한축구협회의 희생양 격으로 희생당한 측면이 강했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의 부진을 제외하면 감독 커리어도 사실 훌륭하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사상 최초의 동메달을 따기도 했고, 2021 시즌 울산 현대에서는 무관에 그치긴 했지만 전북 왕조를 위협하며 다음 시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2022 시즌에는 국대 차출과 코로나19 감염에 굴하지 않고 다양한 전술로 1위를 지켜 우승을 시키면서 기어코 전북 왕조를 무너뜨렸다.[31] 1996, 2002[32] 팬 투표[33] 2000년 폐지[34] 이광종과 공동 수상[35] 팬투표, 옵타 선정 베스트 XI에 모두 포함되었다.[36] 02 월드컵 선수단 전원 수훈[37] 어찌보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홍명보의 플레이 스타일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로도 볼 수 있다. 플레이 스타일 문서를 참조.[38] 이 발언은 여러모로 이상한게, 홍명보는 미드필더로 놓기에도 기본기가 부족한 편이었지만 탁월한 축구 지능으로 리베로 역할을 맡은 선수인데 이런 선수를 공격수로 놓지 않았기에 탈락했다는 얘기는 상당히 기괴하다. 오하려 차범근호에서 홍명보는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그나마 좋은 평을 받았었다.[39] 2005년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박지성이 리오 퍼디난드 본인에게 들었던 내용을 인터뷰에서 밝혔다.[40] P급 라이센스 과정에 면접과 논문도 있기에 감독들은 무조건 말을 잘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죽어라 연습한듯.[41] 이 말은 2023년 K리그 공식 유튜브 채널 인터뷰를 통해, 홍명보 본인이 한 최고의 명언으로 꼽았다.[42]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리누스 미헬스가 결승에서 서독에게 패한 후 한 말을 인용했다.[43] 원래 당시 기준으로는 방위 대상이지만 그냥 본인희망으로 상무에서 복무한듯 하다.[44] 홍명보는 2012년 올림픽 대표팀에서 동메달을 지휘하여 박주영, 구자철, 기성용, 김영권, 지동원 등이 병역특례를 받았고, 황선홍은 2023년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금메달을 지휘하여 백승호, 정우영, 홍현석, 이강인 등이 병역특례를 받았다.[45] 홍명보는 기분이 수틀리면 욕 대신 그 특유의 돌부처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살짝 깔고 노려보는 버릇이 있다. 대표적으로 술집에서 홍명보를 만난 알바가 술을 잘못 내왔던 썰 등이 있다.[46] 이 만화는 학산문화사에서 정발되었다.[47] 몇몇 자막에서는 제이온스라고 되어있다. 뜻은 같고 발음의 차이다.[48] 하석주월드컵 때 자신이 한 실책이 너무 죄송스러워서 그 이후로 차범근과 연락을 못 했다고 한다.[49] 181cm로 2022년 기준 한국 남성 평균키는 172.5cm인 것을 감안하면 해당 연령대는 물론 요즘 젊은 사람들과도 비교했을 때 큰 키이다.[50] 정규리그 와이어 투 와이어정규리그, 플레이오프, EASL을 모두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