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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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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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영
2018~2019

차두리
2020~2021

김필종
2022~




차두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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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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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 2015
파일:2015_아시안컵_로고.png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Korea Republic National Football Team

이름
차두리
車두리|Cha Du-Ri
출생
1980년 7월 25일 (43세)
서독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81cm / 체중 79kg
직업
축구 선수 (수비수[2][3]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2~2004)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2002~2003 / 임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03~2004 / 임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04~2006)
1. FSV 마인츠 05 (2006~2007)
TuS 코블렌츠 (2007~2009)
SC 프라이부르크 (2009~2010)
셀틱 FC (2010~2012)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2012~2013)
FC 서울 (2013~2015)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 (2017~2018)
대한민국 대표팀 (2023~ )[4]
감독
오산고등학교 (2019~2021)
기타
대한민국 대표팀 (2016~2017 / 전력 분석관)
FC 서울 (2021~2023 / 유스 강화실장)
대한민국 대표팀 (2023 / 테크니컬 어드바이저)
국가대표
76경기 4골 (대한민국 / 2001~2015)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본관
연안 차씨 (延安 車氏)
학력
울산양정초등학교 (졸업)
현대중학교 (전학)
배재중학교 (졸업)
배재고등학교 (졸업 / 114회)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신문방송학 / 학사)[1]
종교
개신교(예장통합)
가족
아버지 차범근, 어머니 오은미
누나 차하나, 남동생 차세찌[2], 제수 한채아
딸 차아인[A](2010년 2월생)
아들 차아일[A](2011년 5월생)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3.1.1. 슈틸리케호 전력 분석관
3.1.2. 신태용호 코치
3.2. FC 서울 U-18 오산고 감독
3.3. FC 서울 유스 강화실장
3.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테크니컬 어드바이저
4. 기술위원 경력
5. 기타
5.1. 로봇설
5.2. 딸과 관련된 문신
5.2.1. 부전자전 외모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코치. 2023년부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다.

한국 축구계의 레전드 차범근의 1녀 2남 중 둘째이자 장남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 잠시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한 뒤 2013년에 K리그 클래식FC 서울로 이적하였다. 2015년 10월 31일, 팀의 FA컵 우승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5]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차두리/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차두리/국가대표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3. 기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차두리/기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 플레이 스타일[편집]



현역 시절 차두리하면 피지컬과[6] 몸싸움, 스피드가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었다. 유럽과 한국에서 뛰는 동안 리그에서나 국가대표팀에서나 어떤 선수를 만나더라도 압도적인 몸싸움을 보여준 덕분에 차미네이터, 차이콘, 두리케라톱스, 차이언맨, 차두라리스크, 폭주기관차, 인간흉기, 인간 수류탄, 발업 질럿, 차드로이드 등의 수많은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중에서도 현재는 역시 차미네이터란 별명이 가장 대표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차두리의 피지컬은 당시 국가대표팀 동료들도 치를 떨 정도였는데, 오죽하면 2002 월드컵 기간에 상대 선수와의 충돌 대비 훈련 도중 이영표가 차두리에게 부딪혀 부상을 입고 조별예선 2경기에 결장한 적도 있었고, 수비 연습을 같이 해주던 정해성 코치는 차두리와 충돌한 직후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히딩크는 차두리에게 오히려 잘했다며 윙크를 날렸다는데, 이 정도의 힘과 투지라면 외국의 거구들도 나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7] 박지성, 안정환, 이을용도 공통적으로 차두리랑은 부딪히는게 아니라 피해야 된다고 말한 바 있다.# 2023년 김민재도 차두리와 조우해 자기가 안된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실제 차두리는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 수준의 피지컬[8] 무시무시한 스피드, 가공할 순간돌파력을 갖춘 선수였다. 2002 월드컵 히딩크호 선수들 중 30m와 100m 모두 가장 빠른 속도로 주파했다고 한다. 측정된 기록으로는 30m 기록은 3.8초, 100m 기록은 11.2초[9]로, 그 외 50m와 125m도 1위였다고 한다.[10] 당시 차두리의 최고 속도는 대략 36km/h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런 단거리, 장거리 가리지 않는 뛰어난 스피드는 몸싸움과 결합해 차두리 특유의 직선적인 돌파력으로 나타났고, 특히 달리는 거리가 길 수 밖에 없는 윙백/풀백 시절 돋보이게 된다.

몸싸움 역시 비록 은퇴 직전이긴 했지만 독일 최강의 하드웨어로 손꼽히던 슈테판 에펜베르크[11]가 리그 경기에서 차두리를 상대하다가 벌렁 나자빠질 정도였다. 그야말로 신체 능력은 가히 월드 클래스.[12] 하지만 기본기가 떨어져서[13] 어느 순간 공과 따로 놀거나[14] 경기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는 문제가 종종 있었다. 결국 이 문제 때문에 처음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으나, 둔탁한 볼터치에 결정력이 좋지 않아서 윙 포워드, 윙어로 점점 내려가다 결국 2000년대 중후반 풀백/윙백으로 전향한다.

풀백으로 말년인 2010년대 중반까지도 대기만성한걸 생각하면 좀 더 일찍 포메이션 전환하지 못한게 아쉬운 부분인데, 2002년 당시 히딩크 감독도 차두리에게 윙백 전향을 권유한 바 있기에 더 아쉬운 부분이다. 이땐 아버지 포지션에서 성공해야 된다는 생각도 있어서였는지 차두리가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 2006~07시즌 1.FSV 마인츠05에서 뛰면서 위르겐 클롭 감독의 권유로 수비수로 전향한 후 그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히딩크, 클롭 두 명장이 모두 풀백을 권유한거 보면 차두리 특징을 잘 캐치한 모양. 그리고 그들의 안목이 틀리지 않아 수비수로 전향한 뒤 차두리는 타고난 철벽같은 몸과 엄청난 순간 가속으로 주포지션인 라이트백뿐만 아니라 센터백 자리도 필요할 땐 가담하는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공격 능력이야 포변하기 전 공격수 능력이 있는데다 특히 압박이 덜한 후방, 그것도 측면에 위치하며 이전보다 상대편의 견제를 덜 받게 되었고, 윙어가 중앙으로 좁혀 들어오며 풀백이 측면 공격에 가담하는 전술이 대세가 되자 공격수 시절보다 안정적인 크로스와 드리블을 많이 보여줬다. 수비수가 되면서 오히려 공격력이 상승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성인 무대에 데뷔하고 몇년이 지난 이후에야 포메이션을 변경한 탓에 수비 스킬은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이를 속도와 피지컬로 커버했다.

만약 이러한 포지션 변경을 선수 커리어 초기에 했다면 안정적인 수비와 적극적인 공격가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선수 수준으로 성장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역시 너무 늦은 나이가 문제.[15] 하지만 분데스리가를 그만두고 FC 서울로 이적해 K리그 무대를 밟으며 계속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등 입지를 다지다가 2010년대 중반 은퇴 직전 올라탄 슈틸리케호에서 제대로 포텐이 터지게 되어 측면파괴자로서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하여 박수 칠 때 떠난다는 말을 제대로 증명하고 떠나게 되었다. 하드웨어가 워낙 좋다 보니 대표팀에 부임하는 감독들이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차두리의 유혹에서 벗어나질 못했는데, 처음부터 수비수로 뛰었다면 송종국 부진 이후 2000년대 중후반 내내 대표팀의 고질병이었던 라이트백 문제는 진작 해결되었을 것이다.[16]


3. 지도자 경력[편집]



3.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기[편집]



3.1.1. 슈틸리케호 전력 분석관[편집]


2016년 10월 27일 국가대표 전력 분석관으로 선임됐다. 원래 슈틸리케 감독도 차두리를 코치로 쓰고 싶어했고 여론도 상당히 우호적이나 차두리가 아직 대표팀 코치에 필요한 A급 자격증을 따지 못했다고 한다.[17] 계약 기간은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까지이며 재계약은 추후에 논의한다고 한다. 독일어에 능통하고 불과 1년 전까지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던 차두리의 선임으로 이란 전 이후 침체에 빠진 대표팀에 활력을 넣을 역할을 기대했지만 돌연 2017년 4월에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기사


3.1.2. 신태용호 코치[편집]


하지만, 울리 슈틸리케의 경질 이후 월드컵 진출 실패 위기로 급하게 새롭게 부임한 신태용 감독의 강력한 추천과 설득으로, 2017년 7월 12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선임되었다.[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경기 분석관을 맡아 기자석에서 헤드셋 무선 교신 장비를 이용해[19] 1차전과 3차전에서 실시간으로 신태용 감독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20][21]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후 대한축구협회는 신태용 감독과 계약이 종료되어 이에 따라 차두리도 대표팀을 떠나게 되었다.

대표팀 코치에서 물러난 후, 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로 단기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는데 오노 신지 선수와 만나기도 했고, 구성윤 선수에게 멘토를 해주기도 했다.


3.2. FC 서울 U-18 오산고 감독[편집]


2019년 11월, FC서울 사정에 밝은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차두리는 서울 산하 18세 이하(U-18) 유스팀인 오산고 감독에 내정되었다고 보도되었다. # 평소 축구 유스 육성 시스템에 관심이 컸었던 만큼 상당히 이상적인 선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2019년 12월 5일, 오산고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오피셜이 떴다. # 부임한 첫 해, 오산고를 이끌고 K리그 주니어 A조에서 8승 2무, 최다 득점 및 최소 실점으로 무패 우승을 이끌었다. #

팀 성적보다는 선수들 개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두며 팀을 운영하고 있다.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평가가 좋다고 한다. 차두리가 감독을 맡은 이후 졸업한, 혹은 재학 중이나 준프로계약로 콜업된 강성진이나 이태석, 백상훈 등 오산고 출신 선수들이 2021시즌 들어 FC 서울에서 프로로 데뷔하면서 거의 매 경기마다 선수들을 보러와서 K리그 중계카메라에 잡힌다.

그리고, 2021년 10월 14일 경북 구미 낙동강 체육 공원에서 열린 제102회 전국체육대회 고등부 결승전에서 전북 현대 U-18 팀인 전주 영생고를 2-1로 꺾고 우승했으며 지도자로서의 안정적인 커리어도 기대해볼만 한 상황이다. 그러나 11월 27일 사임 의사를 밝혔다. 당시 언론은 차두리가 P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해 서울을 잠시 떠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3.3. FC 서울 유스 강화실장[편집]


2021년이 지나기 전인 12월 27일, FC 서울의 유스 디렉터로 부임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오산고·오산중 등 유소년 구단을 총괄하는 역할이며 이는 박지성 전북 현대 모터스 어드바이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역할이다. 박 위원이 전북 1군과 유소년 구단을 오가며 조언을 한다면 차 감독은 유소년 구단에 집중할 예정이다.

12월 28일, FC 서울 유스 강화실장 선임이 확정됐다. #

2022년 11월 7일, 대한축구협회 P급 지도자 강습회 수강생에 선발됐다.# 일반 전형으로 조건이 충족되었음에 불구하고 A매치 50경기 이상 출전 선수 특례조항으로 선발되긴 했지만 은퇴 직후부터 착실히 지도자 수업을 받으며 준수한 성과를 낸 덕에 같은 특례 조항 수혜자인 안정환과는 달리[22] 공정성 논란이 일진 않았다. 차두리는 은퇴 이후 A매치 50경기 이상 특례 조항이 없어도 충분히 P급 지도자 과정에 선정될 수 있는 지도자 경력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허나 2023년 후술한 국가대표팀 합류로 수행하는 3월 A매치 일정과 겹친 탓에 P급 취득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3.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테크니컬 어드바이저[편집]


카타르 월드컵 TSG에서 함께했던 위르겐 클린스만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자 차 감독이 코치진에 합류할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다.[23]

그러나 클럽 유스 디렉터로서 차근차근 지도자 경력을 쌓아가는 도중에 갑작스럽게 대표팀으로 차출될 경우, 홍명보, 신태용의 사례처럼 유망 지도자를 소방수로 소모하는 케이스가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으며 과거 마이클 김 코치의 사례도 그렇고 협회가 K리그 구단을 존중하지 않은채 고심 끝에 공들여서 선임한 스태프를 빼앗는 꼴이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자칫 이번 선임이 국가대표 제일주의로 부추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후 테크니컬 어드바이저 신분으로 FC서울 유스 강화실장직과 병행하며 1월 2023년 카타르 아시안컵까지만 클린스만호에 소속되기로 결정되었다.# 계약 기간을 내년까지로 못박았는데, P급 라이센스 취득도 미룬 상태이기에 월드컵 시작 전에 갑자기 자리를 바꿔앉을 일은 없을 거라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축협이 최강희 때처럼 하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다 앉힌 게 아니냐는 의구심만 더 커졌다.

2023년 3월 20일, 클린스만호가 처음으로 소집 훈련을 가졌지만 단체 사진을 찍지 않고 멀리서 훈련만 지켜보는 등 자신의 역할은 그림자와도 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이후엔 나름 훈련에도 참가해서 선수들 지도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쇼츠. 과거 국대에서도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분위기 메이커였고, 손흥민 등 고참들이랑은 같이 2015년까지 국대 생활도 했고 2018년 월드컵 코치로도 참여했기 때문에 친분도 있어 쉽게 녹아든 것으로 보인다.


3.5.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기[편집]


2023년 8월 31일, 마이클 김 코치가 대표팀에서 하차하게 되었으며 코치 자리로 보직 이동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FC 서울 구단 측에서도 대승적 차원으로 이를 허용해줬다고. 그러나 클린스만호가 2023년 외유 논란 등으로 워낙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어 축협이 방패막이로 쓰려고 이미지 좋은 차두리 억지로 빼가는 거 아니냐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커리어 차근차근 밟아서 훗날 아껴써야 되는 자원인데 괜히 커리어 망칠까봐 걱정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2023년 9월 1일, 차두리는 클린스만호 코치로 직책을 바꿨다. 기사(연합뉴스) 그는 "내가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축구에 기여하는 방법을 언제나 고민해왔다. A대표팀 코치인 만큼 클린스만 감독과 팀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 대표팀이 오는 아시안컵에서 64년 만의 우승컵을 들어 올려 한국 축구의 한을 풀었으면 좋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A매치 벤치 직캠을 살펴보면 차두리 코치가 클린스만 감독, 헤어초크 수석 코치의 지시 사항을 필드 위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24] 전술적인 부분을 떠나 예상대로 차두리 코치가 선수단과 외국인 코칭스태프 간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알다시피 차두리는 실제로 독일 출신이라 독일어를 잘한다.

4. 기술위원 경력[편집]


2022년 11월 19일,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기술연구 그룹(TSG)에 포함됐다.

아르센 벵거를 수장으로 차두리를 포함해 위르겐 클린스만, 알베르토 자케로니, 선데이 올리세, 파리드 몬드라곤, 파스칼 추버뷜러[25]의 인물들과 함께 월드컵 기간 동안 세계 각국 축구의 트렌드와 흐름을 파악하고자 경기당 15,000개 이상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 #

클린스만 감독은 이러한 기술위원 경력에 대해 존중과 기대를 보낸다고 하며 입국전에 차두리 어드바이저와 함께 우선적으로 한국의 모든 경기를 모니터링했고 테크니컬 어드바이저인 만큼 전술적인 부분의 조언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영상. 월드컵 기술위원으로서 현대 축구의 최신 데이터와 트렌드에 대해서 익혔기 때문에 한국 축구 대표팀 내부뿐만 아니라 축구 팬들로부터 기대를 받고 있다.

하지만 2023 아시안컵이 4강에서 요르단에게 처참한 경기력으로 패하면서 끝나자 이 기대는 사실상 없어진 상황이나 마찬가지이고, 급기야는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위르겐 클린스만의 감독 선임에 그도 역시 아버지 차범근과 함께 관여했다는 괴소문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26]


5. 기타[편집]


  • 민머리로 다니다 보니 간혹 탈모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탈모가 아니고 그냥 본인이 편해서 밀고 다니는 것이다.[27] 고려대 재학 시절에 스티븐 제라드의 머리를 따라하려는 의도[28][29]로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을 때부터 삭발을 했는데, 이게 너무 편해서 이후로도 계속 삭발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머리를 민 것이 딱 차두리가 유명해질 시점이었다 보니 오해가 생긴 듯하다. 이는 선수 활동 중 간간이 보였던 머리기른 모습을 보면 확인이 가능하다.마인츠 시절 머리기른 차두리 FC 서울 시절 머리 기른 차두리

  • 2001년 월드컵 대표팀이 고려대와 연습 경기를 끝마친 후, 히딩크 감독은 고려대 선수 하나가 계속 개인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다 끝났다'고 일러주었는데, 선수는 '난 지금 고려대 선수니까 우리 감독의 말을 듣겠다'며 훈련을 계속했다. 이 당돌한 선수가 누군가 싶어 물어보니, "차두리라고 그 유명한 차붐의 아들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히딩크는 차두리를 월드컵 대표 선수로 발탁했다.

  • 2003년 말에 굿데이 기자를 폭행했다고 모함을 당한 김병현을 옹호하는 글을 싸이월드에 올리기도 했다. 내용은 대충 "저는 야구를 잘 보지도 않고 김병현 선수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기자들이 워낙 엉뚱하게 기삿거리를 만들다 보니 억울하게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힘내십시오."라는 것이었다. 한편, 이때 유달리 욕설과 악플을 달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걸 본 오마이뉴스 기자가 IP를 추적했더니 굿데이 신문사가 나왔다고 한다.(...) 당시 굿데이는 이 보도를 부정했지만, IP 기록이 있는지라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사실 며느리 사정은 동서가 안다고, 차두리 역시 스포츠 신문 기자에게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인터뷰를 거절하자 다음날 '어린 놈이 좀 잘나간다고 오만방자하게 군다'는 훈계 조 기사가 났다고 한다.

  • 2010년 6월 29일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스코틀랜드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따로 탔다. 이유는 경기 종료 후 이틀 뒤 스코틀랜드 팀으로 러브콜이 들어와서 그 때문에 바로 비행편을 잡고 대표 팀과 인사를 나눈 뒤 탑승 게이트로 들어가 스코틀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김남일도 요하네스버그에서 바로 러시아 팀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명문 클럽 셀틱과 2년 계약을 맺었다.

  • 셀틱으로 이적할 때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에서 뛰려면 영국 노동법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근래 2년 간 A매치의 75% 이상을 뛰거나 혹은 보증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차두리의 A매치 출전 횟수가 기준에 못 미치다보니 결국 보증인밖에 길이 없었고, 다행히 아버지와 절친하다는 어느 아저씨가 보증을 서줬는데 그 사람이 바로 축구계 레전드 올타임으로 꼽히는 프란츠 베켄바워.[30] 보증인의 격이 황당하리만큼 높아서 지금도 잊을만하면 회자되곤 한다.[31]

  • 한때는 축구 선수가 아니라[32] 스포츠 기자를 꿈꿨다고 한다. 아버지의 기자 친구들처럼 축구를 잘 아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그래서 그의 고려대 시절 전공은 체육 쪽이 아닌 신문방송학과였으나,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때 아버지가 감독에서 갑자기 짤리는 등 수모를 겪은 것을 본 후로 정나미가 떨어져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이런 이력 덕에 운동 선수답지 않게 각종 시사 상식과 지식이 풍부한 편이며 언변도 수려해서 아버지와 함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해설을 맡아 호평을 들었다.

  •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어려서 외국 생활을 오래 한 덕에 독일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한다. 단순히 독일어를 잘 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어보다 독일어를 더 편하게 느끼며, 메모를 할 일이 있으면 독일어로 하기 때문에 배성재가 커닝이 안 된다며 장난을 걸기도 했다. 한국어도 오랜 한국 생활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원어민 수준이라 다중언어 구사자에 가깝지만 일단 제1언어는 독일어인 셈. 대표팀 초년에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독일어에 능통했기 때문에[33] 둘은 통역 없이 직접 독어로 대화했었고 2023년 대표팀 코치로 부임한 이후에도 독일어가 가능한 손흥민과 대표팀 소집 중에 독일어로 둘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대표팀 유튜브 채널에 스쳐 지나가며 잡히기도 했다. 또한 독일 국가대표 팀 경기를 해설 할 때는 장난스럽게 독일을 응원하기도 하고 독일 선수 라인업을 본토 발음으로 소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대표 팀 감독인 울리 슈틸리케와도 독일어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정도.[34] 차두리의 독일어 인터뷰. 재밌게도 아버지 차범근은 꽤 오랫동안 독일에서 생활했음에도 독일어를 잘 못한다고 한다. 부자가 함께 참여한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가 나와 차두리가 오랫동안 살았는데 그렇게 못 할 수가 없다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차범근은 나는 축구를 잘했잖아라고 일축해 웃음을 주었다.[35] 차범근의 장녀이자 차두리의 누나인 차하나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과를 전공하고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에서 일했다고 한다.

  • 셀틱 FC에서 두 시즌 간 활동했던 경력이 있는 만큼, 영어도 수준급으로 구사한다. FIFA와 진행한 차두리의 영어 인터뷰.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한 독일어 실력 덕분에 문법 구조와 단어들이 어느정도 유사한 영어도 상대적으로 쉽게 익혔을 것으로 보인다.

  •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 국적 설정이 독일과 한국 이중국적으로 되어있다. 물론 이 경우는 차두리의 출신지가 프랑크푸르트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독일 국적도 추가된 케이스다. 한국은 병역 문제 등으로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거나 국내에선 권리행사를 포기하게 하는데, FM에서는 이중 국적 금지를 반영하지 못해 저렇게 표시된 것으로 보인다.[36]

  • 고교 시절의 축구부 동기 중에 연예인이 있었는데, 바로 개그맨 노우진이었다. 그러나 차두리의 어머니는 노우진을 싫어했다고 하는데, 노우진이 차두리에게 같이 개그맨을 하자고 해서라나..

  • 2009년 한 살 연상의 회사원[37]과 결혼식을 올렸다. 일에 쫓겨 어린 아들을 제대로 코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밝혔던 차범근은 손자가 태어나면 축구 선수로 키우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후 1남 1녀를 둔 아버지가 되었다.

  • 하지만, 2013년 4월 3일에 이혼 기사가 떴다. 아내가 오랜 해외 생활을 견디지 못해서 부부 사이가 소원해졌고 이에 차두리가 먼저 이혼 조정 신청을 했다고 한다.[38] 이혼 여파인지 경기에 출전도 제대로 못 하였고, 결국 독일 소속팀과 재계약하는 것을 포기하고 K리그 진출 의사를 밝혔다. 아버지의 팀인 수원에서 함께 뛰고 싶어 했다는데 차범근은 이미 2010년에 수원 삼성 감독에서 물러났던 터라 무산되었고, 차범근의 대표팀 감독 시절 애제자였던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FC 서울로 이적하였다.

  • 성격이 좋아서 훈훈한 일화들이 여럿 있다.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예선 첫 경기인 바레인전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자기 얼굴에 침을 뱉은 상대 선수와 유니폼을 교환했다. 국가대표 초년병 시절 잉글랜드 대표 팀과의 경기에서 교환 요청을 하다 거절 당한 경험이 떠올라[39] 그의 사과를 받아주고 유니폼을 건네줬다고 한다. 이란 전에서도 연장전에 터진 윤빛가람의 골로 1:0으로 패배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란 선수를 위로하는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파일:attachment/v121230.jpg
예방접종을 위해서 주사를 맞았을 때, 깜짝 놀라는 표정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로봇이라 인간 주사 맞으면 안되는데 표정.

  • 국가대표 축구 팀 주치의 송준섭 유나이티드 병원장은 차두리가 타고난 신체라는 것을 설명하며 "로봇 심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엘리트 운동선수들은 심장 근육 벽이 일반인보다 두꺼워지는 심장 비대(肥大)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극심한 운동에 몸이 적응하는 현상이다.[40] 그런데 차두리의 심장은 기능이 원래 뛰어나서 심장 벽의 두께가 두꺼워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반인과 별 차이 없다고 한다.#

  •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호처참한 경기력으로 광탈하고 왔음에도 홍명보가 유임되자 "98년에는 왜...??? 혼자서..."라며 애둘러서 불만을 표했다.# 이후에 '차두리의 쿨한 브라질' 마지막 칼럼에서 밝히길 "그 입 다물라!"는 차범근의 엄중한 제지가 떨어져 반성하고 있었다고 한다.[41] 그 와중에 최용수 감독은 제자인 차두리가 해설만큼 축구도 잘했으면 좋겠다, 자긴 아주 열심히 공부하는 훌륭한 감독이다라고 차두리한테 세뇌시키는 우스갯소리도 했다고 한다.[42]

  •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방영된 차범근, 차두리 다큐멘터리를 보면 자신이 박지성이나 손흥민만큼 축구를 잘하지 못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언제나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차범근은 반대로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부담 때문에 아들이 힘들어했던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후 2014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후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드디어 인정받은 것 같다고 소회를 밝힌걸 보면 워낙 성격이 좋아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살아오며 마음고생이 꽤나 심했음을 알 수 있다.

  • 사실 차두리가 이만큼 해온 것도 대단한 것이다. 이름 없는 선수의 아들이 유명선수가 되거나 유명 선수의 아들이 별 볼 일 없는 선수가 된 사례는 정말 수도 없이 많지만[43] 유명한 축구 선수의 자식이 아버지 따라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꽤 드문 케이스다. 기껏해야 파올로 말디니,카스퍼 슈마이켈 정도. 애초에 차범근이 이룬 커리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일뿐 한국에서 차두리만한 커리어도 드물다. 애초에 초중고 거치며 1% 남짓한 엘리트들만 남는다고 하는 프로 축구계에 진출한 것도 모자라 그 중에서도 엘리트들만 모인다는 국가대표까지 출전할 정도면 이미 절대치론 프로축구선수로 대성한 초엘리트다. 심지어 공격수로는 대성하지 못했지만 윙백/풀백 전향 이후로는 주전을 넘어 오른쪽 풀백 국대 역대 순위에서도 거론될 정도로[44] 탁월했다. 차범근도 인터뷰나 기고문에서 독일에 가면 현역 시절 동료들에게 아들이 국가대표라고 자랑하면 다들 부러워한다는 얘기를 몇번씩 했다. 前 키커 편집장이던 라이너 홀츠슈는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분데스리가를 통틀어도 차붐 부자처럼 대를 이어 왕성한 활약을 보인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고, 트란스퍼마르크트는 차붐 부자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역대 부자 랭킹 3위로 올렸다.[45]

  • 팬들은 차두리가 활약을 보일 때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기량이 많아졌다라는 표현을 쓴다. 일종의 관용구인데 위에서 서술한 독일전 전설적인 3-1 승리 때 필립 람과 스피드경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송재익 캐스터가 친 멘트에서 유래. 왜 기량이 '많아졌'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어색하면서도 묘한 어감 때문에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 아이돌 가수 선미가 차두리의 팬이다. 이상형으로 차두리를 뽑은 적도 있을 정도. '24시간이 모자라' 활동 시절에는 같이 안무 추고 싶은 남자로 엠블랙이준과 함께 그를 뽑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유행할 적에는 다음 상대로 차범근, 차두리, 그리고 차두리의 동생 차세찌 씨를 지목했다. 차두리 역시 자신을 지목해준[46] 선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리며 아이스 버킷에 가담했다.

  • 안티가 드문 축구선수 중 한 명이다. 차미네이터, 차붐의 조종로봇아들로 대변되는 캐릭터상이 확실한데다,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얼굴까지 일명 웃상이라 팬들이 많다. 대개 유명 선수들은 그 선수가 소속된 팀의 안티팬들이 엮이거나 축구 외적인 면으로 구설수에 올라 까이거나 아니면 명성에 비해 형편없는 기량으로 비난을 받거나 그것도 아니면 단지 잘나간다는 이유만으로도 욕을 먹거나 하는데, 차두리는 그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는 드문 케이스.[47]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데, 누가 봐도 "언제나 많이 뛰고 잘 뛰었다."

  • 고려대학교 동기인 이택근과 친구 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경기가 없는 날엔 이택근의 초대로 목동 야구장찾는다든지 경기가 없는 날엔 서로 만난다든지 하는 친분을 과시했고, 이택근의 동료인 박병호가 50홈런을 쳤을땐 축하한다는 인스타를 남기기도 했다.[48]


  • 2016년부터 한국일보에서 자신의 칼럼 '차두리의 유로話'를 연재하게 되어 스포츠 기자의 꿈에도 한발 가까워지게 됐다. 차두리 본인이 해외축구계에 정통하고 해설 경력까지 갖춘 만큼 필력도 좋고 분석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선한 사람됨이 잘 드러나는 글을 쓰고 있는데 따뜻한 칼럼들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던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이유들로 칼럼니스트로서도 큰 호평을 받고 있다.

  •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 영국에서 기성용 응원차 방문해서 새우를 먹었는데 눈이 퉁퉁 부었다고 한다.

  • 이미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시절부터 스타 선수인 차두리는 2010년 짱구는 못말려 10기 - 염색을 해요- 편에서 짱구(박영남 성우)가 염색을 하고 스스로 베컴, 차두리 라고 언급했다. 반삭 헤어스타일은 차두리 선수의 트레이드 마크였고, 당시 2010년은 남아공 월드컵이 열린 해였기에 축구선수인 데이비드 베컴과 차두리로 로컬화 했다.

  • 변신자동차 또봇의 주인공인 차두리가 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49]

  • 파일:external/pds.joins.com/2012032008243657512_3.jpg
국가대표팀 선배인 이동국의 K리그 최다골 기록을 축하하면서 '동궈형님'이라는 호칭을 쓴 적이 있다.

  • FC 온라인(舊 피파 온라인 4)에서는 사기적인 체감으로 박주영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적폐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데, 공격엔 박주영, 수비엔 차두리로 만인의 주적(...) 순위 1,2위를 다툰다. 겜상에선 보통 주 포지션인 라이트백이 아니라 센터백으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작은 편이 아닌 키와 게임 내 거의 모든 선수를 튕겨내는 능력치 이상의 몸싸움, 발군인 스피드, 일명 코다리라 불리는 한국 팀케미 특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버프까지 겹쳐 센터백으로의 활약이 어머어마하기에, 차두리에게 당한 많은 유저들의 원성을 샀다. 심지어 차범근까지 사용하면 가뜩이나 빠른 스피드에 속력과 가속력을 1 올려주는 아버지와 아들 특성 팀컬러까지 받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피파 온라인 3 시절에도 공격수로 출시되었었는데 이때도 몸싸움 하나만큼은 사기 수준이라 등지기 버튼만 연타하며 탱크처럼 뚫고 가는게 가능할 수준이였지만 다른 능력치가 별로라 잘 쓰이지 않았고, 피파4 초창기에도 급여 문제로 잘 쓰이지 않았지만 이후 피파4에서는 모든 면에서 만능인 사기 캐릭터로 군림중인 상황이다.


5.1. 로봇설[편집]


파일:attachment/차두리/003.jpg
파일:/image/213/2010/07/04/20100704_1278240492_75923300_1.jpg
인터넷 몇몇 사이트들에서 신빙성을 얻고 있는 가설이다. 차두리는 사실 차범근의 아들이 아니라 차범근이 제작한 무선 조종 로봇이라는 음모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차두리의 사기급 육체 포텐셜과 차두리가 볼을 잡았을 때 반드시 일어나는 상황, 차두리의 표정 등 여러 가지에서 추론되고 있는 가설로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고 있다.

  • 유명인의 자녀라면 어린 시절부터 주목을 받기 마련인데 어린 시절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50]
  • 고되고 힘든 훈련에서도 매번 혼자 웃고 있다.
  • 차두리가 볼을 잡으면 차범근이 조용해지는데, 차두리를 조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름이 차두리인 이유는 Dr. CHA의 역두문자어이기 때문이다.
  • 등번호 11번은 사실 백넘버로 위장한 콘센트다. 이후 220V로 업그레이드해서 등번호가 22번이 되었다고 한다.
  • 차두리의 머리가 자라지 않는 이유는 머리에 태양광 발전판이 있기 때문이다.
  • 차두리는 전진과 후진밖에 못 한다.
  • 차두리의 몸싸움을 보면 사람 대 사람으로 부딪힌다고 볼 수 없다.
  • 아르헨티나전에서 그토록 한국이 열세였음에도 그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경기장의 해발 1,700m의 기압과 온도에 의해 기계 오작동이 생겨서 그렇다.

사실 2002년 한일월드컵 무렵에 나온 개그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저런 개그가 계속 나오는 것도 차두리의 피지컬이 그만큼 높고, 또 차두리의 활동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저런 개그가 계속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런 만화까지 나왔다. 심지어 이 만화는 2010년 6월 15일 YTN에서 매스컴도 탔다. 그 후 6월 24일 KBS 9시 뉴스에는 이 로봇 설을 총 정리한 뉴스가 떴다. 이걸 알게 된 차두리는 장난스럽게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고, 2~3일 뒤 네이버에선 차범근에게 질문을 하는 코너에서 차두리 로봇의 설계도를 언제 공개 하냐고 묻자 이런 답변이 나왔다.

로보트
이건 일급비밀이야.
많이 알면 다친다고!!!
로보트 아빠는 상관없지만 로보트 엄마가 비밀로 부치고 싶어 해.
이해해줘.
로보트 가족 중에서는 엄마 힘이 젤 쎄다고!!!

출처. 6월 15일 17시 37분 33초의 질문에 대한 답변.

그리고 23일에 있는 나이지리아전을 앞두고 차두리가 USB 꽂고 충전하고 오겠다고 하기도 했다. 부자가 이 가설을 즐기는 듯하다.

2015년 1월 22일 아시안컵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차두리 로봇설이 다시 제기되었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해설을 하느라 조이스틱 조정이 힘들었는데, 해설을 그만둔 후 VR로 원격 조종해서 조종이 더 편해졌다는 설도 나왔다. 그리고 실은 여태 OS가 독일어 버전이었기 때문에 본프레레, 슈틸리케등 독일어를 아는 사람이어야 제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독일인인 슈틸리케야 말 할 것도 없고 본프레레는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절 차두리는 꼭 한 번씩은 놀랄 만한 명장면을 뽑아낸다. 게다가 한일 월드컵 당시의 감독이었던 히딩크도 네덜란드인이지만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51]

파일:external/file2.instiz.net/2333f1ae2758cbec70fab1041f7e3654.gif

차두리에게 직접 독일어로 작전을 전달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모습.[52] 이 경기에서 위의 손흥민 골 어시스트 장면이 나왔다.

파일:external/www.etobang.com/e9dfa14334c77e8298190d1f183ac3e7_TlgGIqfMkqTgeEO8cyHn2RwzMOqn7kX.png

출력저하설이 제기되었는데, 차두리를 까는 게 아니라 오히려 출력을 줄임으로써 되려 폭주가 줄고 밸런스가 좋아져서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출연하던 KDB 대우증권의 광고를 찍었는데, 본인이 로봇이라는 설을 부정했다.


5.2. 딸과 관련된 문신[편집]


파일:attachment/chaduri_tatoo.jpg

2010년 월드컵 때 윗도리를 벗어 젖혀서, 문신을 한 모습이 공개 되었다. 왼쪽 옆구리와 오른쪽 팔에 각각 문신을 하였다.

  • 왼쪽 옆구리
왼쪽 옆구리의 문신은 로마 숫자 표기법으로 된 숫자이며 2개의 날짜를 의미한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구분을 위한 점이 찍혀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V I I . I I . M M X → 7.2.2010 → 2010년 2월 7일
X I I I . I X . L X X V III → 13.9.78 → (19)78년 9월 13일

첫 번째 날짜는 딸 차아인양의 생일이며, 두 번째 날짜는 부인인 신혜성씨의 생일이다.

  • 오른쪽 팔

파일:attachment/hebrew_ayin.jpg

오른쪽 팔의 문신은 히브리어아인(Ayin)이라는 글자이다. 위의 4개의 글꼴 모두 모두 아인에 해당하는데, 이중 4번째 글꼴과 동일한 문신을 했다. 문신의 의미는 당연히 딸의 이름을 의미한다. 딸내미바보 확정이었다. 참고로 2011년 아들을 얻었는데, 아들의 생일에 맞추어 문신을 추가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파일:/image/109/2013/04/14/201304141603772626_516a5564ad9b9_59_20130414160702.jpg

2013년 경에는 양팔 가득히 문신을 추가했다.

차범근의 칼럼에 이 문신에 관한 비화가 나왔다. 이혼을 진행하던 중 충격 때문인지 양팔에 잔뜩 문신을 했는데 가족들은 이걸 FC 서울 경기를 보면서 알았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다고. 차범근의 말로는 잠시 축구를 접고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던 시기라 앞으로 반팔 입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거 같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기성용과 당시 서울 감독이던 최용수의 설득으로 FC 서울에 입단한 것이다.

차씨 집안의 실권을 쥐고 있는 차범근의 부인(일명 두리엄마)이 화가 폭발하여 무려 한 달 가까이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고 하며 이후로도 집안에서는 사시사철 긴팔만 입게 한다고 한다. 차두리 말에 따르면 당시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뭐라도 했었어야 했다고 해명했다. 베컴 덕후인 차두리가 베컴의 양팔 가득한 문신을 따라한 것이라고 차범근은 추측했다고 밝혔고, 차두리는 베컴 덕후다. 생제르망에 입단한 베컴의 유니폼을 사기 위해 독일에서 파리까지 직접 가서 줄을 서서 유니폼을 샀던 전력이 있다. 게다가 베컴 집에 가보고 싶어서, LA 갤럭시로 이전을 고민한 적도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심지어 아직까지도 차두리는 한여름에도 집에서 긴팔만 입고 생활한다고 한다.


5.2.1. 부전자전 외모[편집]


파일:external/pds.joinsmsn.com/htm_2010120219011560006010-001.jpg

아버지 차범근과 여러모로 판박이 외모. '부전자전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파일:C6LQilx.jpg

차씨네 가문 3세. 일단 우는 표정은 아빠를 닮은 듯.

참고로 6살 아래 동생 차세찌도 차두리와 매우 닮았다. 오죽하면 쌍둥이 아니냐는 평이 있을 정도다.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은 쪽이 차두리다.[53]

파일:B0_1097279308.jpg

그 외 차범근의 장녀이자 차두리의 2살 위(1978년생) 누나 차하나가 있으며 차하나는 부친보다는 모친을 많이 닮았다.


5.3. 피곤한 간 때문이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간 때문이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둘러보기[편집]


직책
이름
국적
생년월일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

Jürgen KLINSMANN

파일:독일 국기.svg
1964년 7월 30일 (59세)
수석 코치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Andreas HERZOG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1968년 9월 10일 (55세)
코치
파올로 스트링가라

Paolo STRINGARA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962년 9월 22일 (61세)
코치
차두리

CHA Duri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0년 7월 25일 (43세)
골키퍼 코치
안드레아스 쾨프케

Andreas KÖPKE

파일:독일 국기.svg
1962년 3월 12일 (62세)
피지컬 코치
베르너 로이타르트

Werner LEUTHARD

파일:독일 국기.svg
1962년 1월 24일 (62세)
피지컬 코치
이재홍

LEE Jaeho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년 3월 23일 (41세)
2024-03-28 19:13:26 기준


1 이운재 · 2 현영민 · 3 최성용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유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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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윤정환 · 18 황선홍 · 19 안정환 · 20 홍명보

C
· 21 박지성 · 22 송종국 · 23 최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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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일 헤센프랑크푸르트[2] 주 포지션은 라이트백이였으며, 윙백으로도 자주 나왔다. 또한 후방에서의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압박 수비에 능했기 때문에 3백의 오른쪽 스토퍼 자리에도 종종 기용됐었다.[3] 유스 시절 및 데뷔 초창기엔 윙어로도 자주 기용됐었다.[4] 어드바이저에서 코치로 변경[5] 은퇴식은 11월 7일 홈 수원전이다.[6] 체력도 뛰어나 셔틀런을 박지성 못지 않게 잘 했다고 한다.[7] 출처: 히딩크 자서전 '마이 웨이' 229p.[8] 아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상위 1%에 들만한 피지컬이다. 당대 최고의 피지컬 플레이어였던 디디에 드록바와의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을 정도니 말 다했다. 링크된 움짤은 전설의 한일전 두리블.[9] 참고로 육상 100m 달리기 한국 기록이 2017년 6월 김국영이 기록한 10초 07이다. 또 당시 축구 국대 선수들은 (골키퍼 라인을 제외하면) 아무리 느려도 12초대는 주파했다고 한다. 즉, 당시 국대하려면 11~12초대는 나와야 된다는 것.[10] 여담으로 그 외 빨랐던 선수로는 이천수, 최태욱, 박지성 등이 있었다.[11] FC 바이에른 뮌헨를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레전드 선수이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 독일전에서 법규를 시전하신 한성깔하는 인물이기도 하다.[12] 이 무지막지한 몸은 부친 차범근의 유전빨에 더해 차범근이 프로선수로 성공하고 본인이 어릴 적 못 먹은 고기를 아들은 실컷 먹여가며 만든 결과로 보인다. 여담으로 이러한 차범근의 피지컬은 차두리에게만 물려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차두리가 근육으로 압축해 놓은 몸이라면 누나인 차하나는 다 풀어 놓은 상태라는 목격담이 있다. 실제로 차하나가 차범근과 같이 찍은 결혼식 사진을 보면 키 179cm인 아버지와 큰 차이가 없다. 차하나 씨 결혼식 때 아버지와 찍은 사진. 해병대 출신 막내 세찌 또한 강력한 피지컬을 자랑한다. 덕분에 일부 네티즌들은 이 집안은 품종 유지(?)를 위해서라도 골격 좋은 배우자랑 만나 자손 많이 낳아야 한다는 드립도 친다.(...) 배성재 캐스터는 실제로 2010년대 초반 요르단 2차전 때 당시 차범근 해설 위원 보고 "얼마 전에 2030년 월드컵 주축이 될 유망주를 얻으셨죠?"라고 농담삼아 말하기도 했다.[13] 차두리가 본격적으로 축구선수가 된 것은 중학생 때였으며, 후술되어 있지만 98년 월드컵 전까진 축구 선수가 아닌 스포츠 기자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2002년 당시 히딩크가 국대에 콜업한 것도 프로선수가 아닌 대학생 차두리를 뽑은거였다. 이렇게 차두리가 늦게 선수 생활을 시작해서 그런지 차범근도 차두리의 기본기를 봐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한다.[14] 국가대표 경기 도중에는 공보다 더 빨라서 차두리가 먼저 골라인 밖으로 나간 다음에 공이 골라인 밖으로 나간 적도 있었다. 덕분에 오죽하면 '30대가 된 뒤부터는 피지컬이 전성기보다 떨어져서 공이랑 같이 달려 전성기가 온 것'이라는 농담까지 생겼다.[15] 사실 20대 중후반에 포지션을 변경해서 성공한 케이스가 아주 드물지는 않다. 차두리의 경우 나이 문제보다는 본인의 부족한 기본기 문제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16] 레프트백은 이영표가 은퇴한 2011년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고, 그마저도 조광래가 수비 포지션 파괴를 하고 홍명보가 폼이 떨어진 윤석영만 기용해서 문제를 심화시킨 면이 더 컸다. 하지만 라이트백은 송종국의 전성기가 3년도 채 못가면서 2006년 독일 월드컵 이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온 문제였다. 폼 떨어진 송종국을 대체할 멤버가 필요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아드보가트호에선 조원희를 꾸준히 시험했으나 공수밸런스 문제가 두드러져 월드컵에선 토고전에 송종국을 썼고 송종국의 폼이 너무 저조하자 전성기였던 김동진을 주전 레프트백, 이영표를 라이트백으로 쓰는 임시방편으로 떼웠다. 2007년 베어벡호에서 급부상한 오범석은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점점 불안해져서 라이트백 포지션에 완전히 적응한 차두리가 주전이 되었다. 최철순, 최효진 같은 선수들도 있긴 했지만 피지컬이 약해서 유럽,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정면으로 맞서기는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다.[17] 당시 UEFA-B급 자격증까지는 취득했지만 B급 자격증으로 성인 국가대표의 코치는 수행할 수 없다.[18] 이 공백기간에 UEFA-A급 자격증을 취득하여 정식으로 코치직을 수행하는데 별 문제가 없어진 점도 있다.[19] 국제축구연맹(FIFA)은 러시아 월드컵부터 벤치 밖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코치진이 실시간으로 감독과 헤드셋 무선 교신 장비를 소통할 수 있게 했으며, 이는 경기중 서피스북 및 리시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NFL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신태용 감독도 K리그 지도자 시절 무전기로 지휘를 한 적이 있다.[20] 하비에르 미냐노 코치, 채봉주 분석관도 함께 했다.[21] 멕시코 전은 전경준 코치가 분석했다.[22] 정확하겐 이미 방송인으로 성공해서 프로 지도자 생활을 딱히 진지하게 하진 않을 것 같은 안정환이 굳이 다른 지원자들 대신 특례조항으로 T/O(정원)를 채우는게 맞냐는 비판이 있었다.[23] 차두리는 독일에서 태어났고 유년기를 보냈으며 선수 생활 대부분을 독일에서 했던 경력이 있어 독일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기 때문에 독일인 클린스만과 언어 장벽이 없다.[24] 중계 화면에서 볼 수 있듯, 클린스만 감독도 직접 지시를 내린다.[25] 2006 FIFA 월드컵에서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를 맡았다. 대회 무실점을 기록했다.[26] 알 사람은 알겠지만 현재 위르겐 클린스만의 선임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이 확실한 사람은 정몽규 회장뿐이다. 따라서 이 주장은 현재로서는 근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찌라시에 가깝다.[27] 고화질 사진들을 보면 삭발을 했음에도 이마라인이 선명해서 탈모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버지 차범근을 보면 노년에 접어든 나이임에도 머리숱에 두드러진 변화는 눈에 띄지 않는데, 탈모가 유전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것을 고려하면 아들인 차두리 역시 탈모일 가능성은 낮다.[28] 스티븐 제라드는 전성기에 돌입하기 이전인 2000년대 초반에 반삭의 헤어스타일을 유지했던 적이 있었다.[29] 차두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태생으로 흔히 독일 선수나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선수를 더 선호하거나 존경할 것 같지만 의외로 잉글랜드 선수도 좋아한다. 지금 소개된 제라드의 사례도 그렇고 데이비드 베컴파리 생제르맹 FC에 뛰던 시기에 파리 현지 스토어샵까지 방문하여 베컴의 져지를 구입했다는 일화도 있다. 또한 스코틀랜드 클럽이긴 하지만 셀틱 FC 소속으로 영국에서 두 시즌을 뛴 적도 있다.[30] FC 바이에른 뮌헨의 유러피언컵 3연패와 독일의 유로와 월드컵 우승을 이끈, 역대 최고의 수비수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게다가 감독 능력도 사기적이라서 축구 역사상 두번째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바 있다.[31] 차범근의 뒤를 잇는 한국축구의 레전드 박지성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할 때 워크퍼밋 발급조건이 안 맞아 보증인 3명이 필요했다. 박지성의 은사이자 PSV의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와 박지성을 영입하고자 했던 맨유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이 보증을 서줬고, 마지막으로 박지성의 플레이를 좋아한다는 어떤 네덜란드 아저씨가 보증을 서줬는데, 그 사람이 바로 베켄바워의 숙명의 라이벌인 또 다른 레전드 요한 크루이프였다는 것. 아마도 같은 네덜란드인인 히딩크 인맥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32] 애초에 차두리는 중학교때부터 축구를 시작해서 체육 엘리트 출신도 아니었다.[33] 네덜란드어독일어는 유사성이 매우 높아, 독일어를 잘 구사하는 네덜란드인들이 상당히 많다.[34] 독일 본토 사람들도 말하길 얼굴만 가리면 그냥 독일 원어민이 말하는 것 같다고 한다. 많은 기간 공부를 해서 독일어를 능숙하게 해도 외국인 특유의 억양이나 사소한 부분에서 어색한 면이 느껴지는데, 차두리는 그냥 독일의 어느 축구선수처럼 위화감 없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평가다. 어린 시절 독일에서 지내며 사실상 모국어로 익혔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소리.[35] 물론 상대적으로 아들보다 독일어를 못한다는 거지, 실제로는 차범근도 독일어에 능통하다. 차두리만큼 유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듣는 건 거의 다 되고, 은퇴한지 한참 지난 시점에도 거스 히딩크위르겐 클린스만 등 독일어 화자 외국인과 독일어로 대화했다.[36] 중국 귀화 선수들의 국적 표기 예에서 보듯 FM 최신작에서는 시스템적으로 보완하는 방법이 생겼음에도 여전히 이중국적이다. 아무래도 선수 말년, 은퇴 이후라 스포츠인터랙티브에서도 크게 신경을 안 쓴 듯싶다.[37] 말이 회사원이지, 서울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 신철호 회장의 맏딸이다. 그래서 장인 덕보려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차두리가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 적도 있었다. 아버지 후광이 더 큰데 굳이...?[38] 그런데 축구 커뮤니티 사이트나 관련 기사에서 차두리가 가족 때문에 휴가 쓰면서 뒤셀도르프에서 얼마 못 뛰고 방출 당했던 것을 들어, 축구 선수와 가정을 이루면 해외 생활도 각오하여야 되는데 차두리를 배려하지 않았다며 차두리의 아내가 비판을 받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결혼생활이란 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낯선 해외에 나가서 생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므로 당사자의 입장이 아닌 이상은 그래도 참고 살아야 한다고 함부로 말할 일은 아니다. 이혼이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하는 문제도 아니고, 당사자들만의 의사인 만큼 제3자가 함부로 끼어들 일은 더더욱 아니다.[39] 데이비드 베컴 문서 참고.[40] 의학용어로 스포츠 심장이라고 한다.[41] 차범근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조광래와 정반대 성격으로 설사 자기가 불합리한 일을 당했어도 다른 사람 험담을 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홍명보에 대해 변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만 차두리의 트윗도 홍명보보다는 축구협회를 저격했다는 느낌이 강하다.[42] 최용수는 98 월드컵 당시 차범근 감독 제자였는데, 이때 선발 라인에서 김도훈 선수한테 밀려서 차범근한테 섭섭했던 감정을 이후 방송에서 유머스럽게 털어놔서 차범근이 공개 사과하기도 했다. 이때 쌓인게 있어서 FC서울 감독 시절 제자였던 차두리를 보면 "두리야. 너네 아빠는 큰 실수를 하셨어. 집에서 혹시 내 얘기 안하시디?"라며 집요하게 물어봤다고 한다.[43] 전자의 대표가 펠레, 손흥민이고 후자의 대표가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들, 지네딘 지단의 아들이다. 마라도나 쪽은 사생아다.[44] 2020년대 기준, 보통은 송종국 바로 다음으로 거론될 정도다.[45] 1위는 귄터 쿤츠 - 슈테판 쿤츠, 2위는 프란츠 베켄바워 - 슈테판 베켄바워를 꼽았다.[46] 물론 선미만 그를 지목한 것은 아니고 모태범, 임상협, 신아영 등이 그를 지목했다.[47] 다만, 인기 때문에 풀백으로서는 늦게 전향한 것도 있고 해서 공격력 대비 수비력이 크게 좋진 않았는데 그 부분까지 과대평가되는 거 아니냐는 말은 있었다. 그러나 다른 면, 특히 피지컬에서 경쟁자들에 비해 확실히 우위에 서 있고, 경력이 쌓이면서 이를 장점으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인 덕에 크게 논란이 되지는 못했다.[48] 참고로 차두리는 야구팬으로 유명하다.[49] 참고로 또다른 주인공인 차하나누나의 이름을 따 왔다.[50] 차범근이 찍은 유제품 CF에 등장한 적이 있다. 이때부터 몸싸움의 귀재였다. http://media.adic.co.kr/tv/wmv300/199808/V2000617.wmv[51] 네덜란드어는 독일어와 비슷한 점이 많아 서로 배우기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52] 사실 뒤에 등장한 통역관은 스페인어 통역관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르헨티나인인 수석 코치 아르무아를 배려해 통역관이 두 명이 붙을 필요가 없도록 공식 석상에서는 스페인어를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기서 통역관은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대화를 아예 못 알아듣고 있었을 것이다.(...)[53] 차세찌에서 턱살을 빼고 눈썹을 가늘게하고 머리를 빡빡이로 해보자. 그야말로 붕어빵이다. 반대로 차세찌는 형과 달리 머리를 길렀기에 어느정도 구분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