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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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우승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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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우승국
우승연도
우승 횟수
1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대한민국
1956, 1960
★★
2회
2
파일: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이스라엘[1]
1964

1회
3
파일: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이란
1968, 1972, 1976
★★★
3회
4
파일:Kuwait_FA.png
쿠웨이트
1980

1회
5
파일: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사우디아라비아
1984, 1988, 1996
★★★
3회
6
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일본
1992, 2000, 2004, 2011
★★★★
4회
7
파일:Iraq_National_Team_Badge.png
이라크
2007

1회
8
파일: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호주
2015

1회
9
파일:카타르 축구 협회 로고.svg
카타르
2019

1회
[1] 1976년 AFC에서 축출, 현재는 UEFA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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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우승 국가
첫 우승 연도
최근 우승 연도
우승 횟수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2003년
2019년
★★★★★
5회
2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2005년
2010년
★★
2회
3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2013년
2022년
★★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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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시안 게임 로고.svg









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サッカー日本代表[1]
FIFA 코드
JPN
축구 협회
일본축구협회 (JFA)
대륙 연맹
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 연맹
동아시아 축구 연맹 (EAFF)
홈 경기장
도쿄 국립경기장 (68,000석)
별칭
사무라이 블루
SAMURAI BLUE (サムライ・ブルー)[2]
감독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틀:국기|
]]
모리야스 하지메 (MORIYASU Hajime)
주장단
C
엔도 와타루 (ENDO Wataru)
VC
이타쿠라 코 (ITAKURA Ko)
라이벌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대한민국[3][4]
[[호주|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틀:국기|
]][[틀:국기|
]]
호주
FIFA 랭킹
17위 (2023년 11월 30일 기준 / #)
Elo 랭킹
13위 (2023년 11월 22일 기준 / #)
공식 웹사이트
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대표팀 기록 보기 ]
A매치 최다 출전
엔도 야스히토 (ENDO Yasuhito)
- 152경기 / 15골
A매치 최다 득점
가마모토 쿠니시게 (KAMAMOTO Kunishige)
- 76경기 / 75골
월드컵 최다 득점
혼다 케이스케 (HONDA Keisuke)
- 4골 (2010, 2014, 2018)
첫 국제경기 출전
(비공식)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vs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중화민국]] 0:5
일본 도쿄 / 1917년 5월 9일)

(공식)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vs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필리핀]] 7:2
(일본 도쿄 / 1930년 5월 25일)
최다 점수차 승리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vs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필리핀 국기(1936-1985, 1986-1998).svg
필리핀]] 15:0 >
(일본 도쿄 / 1967년 9월 27일)
최다 점수차 패배
(비공식)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vs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필리핀]] 2:15
(일본 도쿄 / 1917년 5월 10일)[1]

(공식)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vs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0:8
(독일 베를린 / 1936년 8월 7일)


[ 대회별 성적 보기 ]
세계 대회
월드컵
[진출] 7회
[최고] 9위/16강 (2002, 2010, 2022)[1]
컨페드컵
[진출] 5회
[최고] 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 (2001)
올림픽
[진출] 10회
[최고]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 (1968)
대륙 대회
아시안컵
[진출] 9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 (1992, 2000, 2004, 2011)
아시안 게임
[진출] 13회
[최고]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 (1951, 1966)
EAFF컵
[진출] 8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 (2013, 2022)
코파 아메리카
[진출] 2회[2]
[최고] 9위/조별리그 (2019)
기타 대회
여름 토너먼트
[진출] 1회
[최고] 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 (2004)
다이너스티컵
[진출] 4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 (1992, 1995, 1998)
기린컵
[진출] 32회
[최고]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 (1991, 1995, 1996, 1997, 2000, 2001, 2002, 2004, 2007, 2008, 2009, 2011)


유니폼 컬러

어웨이
골키퍼
상의


하의
20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파일:아디다스 심볼 블루.svg
6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파일:아디다스 심볼 화이트.svg
23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파일:아디다스 심볼 화이트.svg
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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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2000년대 이전
2.2. 2000년대~2010년대
2.3. 2020년대
3. 상징
4. 현재 스쿼드
5. 플레이 스타일
6. 역대 감독
7. 기록
7.1. A매치 최다 득점 선수
8. 역대 전적
9. 청소년 대표팀
10. 주요 선수
10.1. 현재
10.2. 레전드
11. 한국인 선수
12. 라이벌
13. 관련 문서
1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일본축구 국가대표팀. 대한민국,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호주와 더불어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강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현재 감독은 모리야스 하지메이다.

이웃나라이기에 대한민국과 가장 많이 겨루는 팀이고, 대한민국과의 대결인 한일전은 아시아 축구계를 대표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더비 매치이다. 차이점이라면 일본 대표팀 역시 한일전에 라이벌의식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위상에 따라 주어진 와일드카드를 한장도 쓰지 않고 대학생신분의 선수들을 쓰는 식으로 분별하는 경향이 있다.[5]


2. 역사[편집]



2.1. 2000년대 이전[편집]


비교적 근래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축구 변방인 아시아 내에서도 강팀이 아니었다.[6] 이때까지는 축구 프로 리그도 출범하지 않았고[7] 일본은 1988년 이전까지 아시안컵 10개국 본선을, 1998년 이전까지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축구의 불모지였다. 실제 이 시점까지 일본의 국기(國技)였던 야구스모에 비해 축구에 대한 민간의 관심은 현저히 낮았고 제대로 된 투자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프로 축구 리그인 J리그가 출범하고 92아시안컵 8개국(8강) 본선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해 축구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아시안컵 최다 우승국이자 월드컵 본선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아시아의 강호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상술한 이유로 월드컵과는 꽤나 늦게 인연을 맺었는데, 지역예선에서 한국에게 패하여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16개국 본선부터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고 줄곧 지역예선에만 머물렀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는 숙적 한국에 첫 승리를 거두고 이 기세를 몰아서 이라크를 꺾어 본선에 진출하는 듯 했으나 옴란 자파르의 동점 헤딩 골로 인해서 이라크와 무승부를 거두는 바람에 골득실에서 한국에 밀리면서 94 월드컵 24강 본선 진출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8]

참고로 일본 축구 역대 최다 실점 패를 안겨준 나라는 필리핀이다. 일본 대표팀[9]의 첫 국제 대회 참가인 1917년 일본 극동컵 경기에서 무려 2:15로 졌는데, 이는 당시 필리핀에 스페인계 혼혈인 파울리노 알칸타라(1896~1964)가 맹활약했기에 가능했다.[10] 일단 일본 축구 협회는 이 대회를 공식 A매치로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축구협회가 공인하는 일본 대표팀의 첫 A매치는 1923년 극동컵 필리핀과의 경기였다. 이 경기 역시 1:2로 패배했다. 일본 대표팀의 A매치 첫 승리 상대 역시 필리핀이었는데 1927년 극동컵에서 2:1로 승리했다.

그리고 2:15 패배로부터 딱 50년 뒤인 1967년, 일본은 1968 멕시코 올림픽 지역예선에서 이번에는 필리핀을 상대로 15:0으로 승리하면서 시원하게 복수했는데, 이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다.[11][12]



96 애틀란타 올림픽 축구[13]에서 니시노 아키라[14] 감독의 U-23 일본 대표팀이 아시아 모든 연령 최초로 피파랭킹 1위이자 마리우 자갈루 감독의 호나우두 브라질을 1:0으로 이기는 이변을 일으키고 뒤이어 헝가리도 이겼으나, 금메달팀 나이지리아[15]에 패하여 2승 1패 대회 9위로 8강은 실패했다.

32강으로 확대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지역 최종예선에서는 또 다시 한국과 만났고 도쿄에서 열린 1차전에서는 야마구치 모토히로가 선제골을 기록했으나 후반전에서 서정원이민성의 골로 인해 2:1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 경기 이후 카자흐스탄과의 경기에서도 어처구니 없이 종료 직전에 동점골을 먹혀 1:1로 비긴 바람에 가모 슈 당시 대표팀 감독이 전격 경질[16]되었고, 수석 코치인 오카다 다케시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래도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의 2차전에서 승리하였고 B조 2위를 기록하며 A조 2위인 이란과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서 치러진 플레이오프에서는 전반 36분 나카야마 마사시가 선취골을 뽑아냈으나, 후반 25초 이란은 알리 다에이의 패스를 받은 호다다드 아지지가 동점골을 뽑아내며 추격을 시작했고, 후반 14분에는 다에이가 헤딩골로 뽑아내며 역전에 성공한다. 패색이 짙어지던 찰나 후반 31분 나카타 히데토시의 패스를 받은 조 쇼지가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승부는 원점이 되었고, 연장 후반전 13분에는 나카타의 슛이 이란 골키퍼의 손을 맞고 나온 공을 오카노 마사유키가 슬라이딩으로 밀어넣어 3:2로 승리하면서 처음으로 월드컵 32강 본선에 진출했다. 이 경기는 일본에서는 조호르바루의 환희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32강 본선에서는 크로아티아, 아르헨티나, 자메이카와 함께 H조에 배정되었으나 3전 전패를 당해 대회 전체 31위에 머물며 탈락했다. 그래도 모든 경기에서 1골차로 패배하는 등 처녀 출전임을 감안하면 선전했으며, 자메이카 상대로 월드컵 첫 득점을 기록했다.


2.2. 2000년대~2010년대[편집]


2001 FIFA 한일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브라질에 0:0 무승부를 거두어 승점 1점을 획득하고, 승승장구하며 브라질을 제치고 대회 준우승을 하였고[17]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2강 조별리그 1위로 16강에 진출하여 대회 9위를 기록하면서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공동 개최국인 한국의 4강 신화에 완전히 가려졌고, 홈 그라운드였기 때문에 대체로 큰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졸전 끝에 32강 본선 조별리그 조 최하위에 전체 29위로 탈락했다. 첫 경기 호주전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종료 6분을 남기고 3골을 연달아 먹어 1:3으로 역전패한 것이 실패의 결정타였다.[18] 2차전인 크로아티아전에서는 그 유명한 신칸센 대탈선슛이 나오는 등 한심한 경기력을 보인 끝에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최종전인 브라질전에서는 선제골을 넣는 등 초반에 나름 선전했으나 결국 내리 4실점하여 1:4 대패를 당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유럽 예선을 1위로 통과한 덴마크와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사무엘 에투가 버틴 카메룬을 둘 다 잡아내는 위엄을 선보였다. 네덜란드에 0:1로 패하긴 했으나, 네덜란드는 이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고 전통의 강호로 평가받는 만큼 나름 선전한 편이었고 대회 이전의 여론을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좋은 결과였다. 특히 덴마크를 3-1로 압도했는데, 그나마 실점도 페널티킥이었다. 16강에서 파라과이를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배해 탈락하였다.[19] 대회 순위는 9위로, 16강에서 탈락한 팀들 중 가장 높았다.

이 2010년부터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이전까지가 일본 축구의 전성기였다. 월드컵 선전의 기세를 몰아 2011년에는 아시안컵 우승을 거머쥐었고, 2010년~2013년 사이의 A매치 평가전, 친선경기에서 일본은 그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 황금 세대를 등에 업은 벨기에, 그리고 프랑스까지 이겼다.[20]

반면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과 더불어 승점자판기 신세로 다시 돌아간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2006 독일 월드컵과 똑같은 순위인 29위를 기록하며 32강 본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성인 대표팀은 아니지만, 20세 이하 대표팀은 199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필립 트루시에가 지휘봉을 잡았으며 카메룬, 미국, 잉글랜드와 같은 조에 편성되어 2승 1패 조 1위로 통과, 결승까지 진출했다.[21][22]

그리고 사실 성인 대표팀도 AFC 국가로는 처음으로 FIFA 주관 남자 성인 대회 우승을 달성할 뻔했다.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에서 간발의 차이로 결승전에서 프랑스에게 지며 준우승[23]을 했기 때문.[24]

아직 전력이 강하지 않았던 1980~90년대 초에는 K리그 팀과 평가전을 했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클럽과 대표팀 간의 친선경기가 활발했다.[25]

브라질 월드컵 이후 자케로니 감독이 사임하고 멕시코 출신이자 라리가에서도 잔뼈가 굵은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을 영입했다. 그런데 영입한 아기레 감독이 과거 레알 사라고사 시절 때 승부조작을 했다는 혐의를 받는 상태였다. 만약 아기레 감독의 혐의가 인정되면 감독 활동에 지장이 생길 게 틀림없고 일본 대표팀의 상황도 꼬여버린다. 스페인의 축구 선수 가비가 레알 사라고사 시절 레반테 UD와의 최종전에서 구단의 요청을 받고 승부조작을 했다는 사실을 시인함에 따라 아기레 감독의 책임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아기레 감독은 혐의를 부인하고 일본에 머물면서 대표팀 지도를 계속했다. 2014년 10월 10일 자메이카와의 평가전에서 상대 자책골로 간신히 1:0으로 이겼으나 브라질전은 네이마르에게 4골을 헌납해 0:4로 완패했다. 11월 A매치에서는 온두라스를 6:0으로 꺾었으며 호주에도 2:1로 승리했는데, 이는 하세베 마코토, 우치다 아쓰토, 엔도 야스히토, 콘노 야스유키 등 원래 2014년 월드컵 후 대표팀에서 은퇴하려 한 선수들이 결정을 번복하고 돌아오면서 거둔 성적들이라 일본 내에서는 세대 교체가 더 늦춰지게 됐다고 우려하는 팬들도 있는 모양이다. 사실 우치다 아쓰토 같은 경우는 국가대표를 은퇴하기에는 워낙 어린 나이라서 번복할 만 했다고 쳐도, 엔도와 하세베 같은 경우는 일본의 중원을 지난 10년간 책임져 온 선수들이라 은퇴의 임팩트가 더욱 더 컸고, 실제로 일본은 월드컵 후 이들이 없는 A매치 경기들에서 매우 안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그리고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에서 졸전을 펼치면서 8강 상대인 UAE에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배해 탈락(5위)하자 일본 축구 협회는 승부조작 혐의 의혹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아기레 감독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2015년 3월, 새로운 감독으로 이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 대표팀을 16강 14위를 기록한 바히드 할릴호지치가 선임되었다. 다만 라이벌 한국을 박살낸 감독이라 해도 이전부터 드세고 고집 센 성격으로 실제로 협회나 구단, 선수들과 마찰이 심해서 여러 팀[26]을 오고 간 전력이 있었기에 일본에서도 서둘러 감독을 구하느라 별 다른 비전 없이 차기 감독을 뽑아버렸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월드컵 2차 예선을 앞두고 할릴호지치 감독은 러시아 월드컵 3위를 목표로 했다.# # 겉으로 보기에는 패기가 있어 보이나 2006년의 지쿠나 2010년의 오카다 다케시, 2014년의 알베르토 자케로니[27]도 목표는 월드컵 4강이었다.[28] 아시아 최고 수준의 개인기와 패싱력, 거기다 선수들은 감독 말 잘 따르고 전술 이해 능력도 높으니 한 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경기가 의도대로 안 되거나 꼬이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게 일본 축구의 전통적인 문제였다. 한 예로 2022 카타르 월드컵 이전까지 일본이 월드컵에서 역전승을 거둔 경기는 단 1번도 없었던 반면, 역전패를 당한 경기는 무려 4경기였다.[29]나 된다.

2015년 6월 FIFA에 대한 비리가 대대적으로 적발되어 수사하는 도중 2000년 당시 일본 축구 협회장 나가누마 겐이 남미 축구 연맹에 2002년 월드컵 유치 사례로 150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스페인 언론을 통해 폭로되었다. 사실 대회 유치 결정은 그 전에 결정이 났지만, 일본은 현재 카타르처럼 1998년 자력 진출 이전에 월드컵에 출전한 사례가 없기에 명분적으로 한국에 밀리는 상황이었다. 실제 대회 유치 직전의 기사를 보면 나가누마 축구협회장과 유치위원회 오구라 사무총장의 마지막 해외 활동 일정은 극비로 진행되고 있었기에 의문이 큰 상황이다. 일본 측에서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지만, 돈이 오간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도 있으며, 그 서류에는 돈을 받은 당사자인 레오스 전 남미 축구 연맹 회장과 아내의 서명이 기재되어 있다고 알려져 앞으로 두고 봐야 할 일이다.

2016년 1월 31일, AFC U-23 챔피언십 결승에서 한국을 꺾었다. 이때 감독이 테구라모리 마코토였는데, 할릴호지치 부임 후 코치 직책을 맡던 중 U-23 감독으로 가게 되었다. 리우 올림픽 이후 할릴호지치 감독과 일본축구협회의 요청으로 다시 성인 대표팀 코치로 복귀하였다.

2016년 9월 1일,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 홈에서 UAE에 역전패했다. 역대 최종예선 1차전 패배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사례가 없다는 징크스 때문에 일본 축구계가 멘붕했지만 2017년 5월 현재 조 1위의 호성적을 유지했다. 더불어 지난 아시안컵부터 한국 못지 않은 앙숙이 된 UAE를 상대로 한 2차 원정경기에서 2:0으로 설욕하면서 팀 분위기도 많이 오른 상태. 결국 막판까지 좀 고전하는가 했지만 최종예선 9차전 홈경기에서 호주를 2:0으로 이기며 조 1위를 확정지어 이란에 이어 아시아 2번째로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으며 1998 월드컵 이후 6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이뤄냈다.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콜롬비아, 세네갈, 폴란드와 한 조가 되었다.

이후 2017년 겨울, 자국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안컵에서 알제리 쇼크로 무너뜨렸던 신태용 감독의 한국에 1:4로 참패해 우승을 내줬다. 자세한 건 도쿄 대첩 참조. 저 도쿄 대첩까지 포함하여 이후부터 연이은 졸전과 선수단 및 언론 축구협회와의 불화 등으로 인해 월드컵을 두 달여 앞둔 2018년 4월 9일, 할릴호지치는 전격 해임된다.

후임 감독으로는 2010년에 좋은 성적을 거둔 오카다 다케시가 물망에 올랐으나, 감독 라이선스를 반환하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사양하는 바람에 현 일본축구협회 기술위원장 니시노 아키라를 독으로 선임하여 급한 불을 끄게 하였다.[30]

그런데 이런 도박에 가까운 수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비록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벌인 노골적인 시간 끌기로 비난도 받았으나,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였다. 이 16강 진출로 인해 일본의 월드컵 8년 주기설(2002년 16강 9위 - 2006년 29위(32강 조별리그) - 2010년 16강 9위 - 2014년 29위(32강 조별리그) - 2018년 16강 15위)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16강에서 만난 벨기에한테 2대3으로 역전패를 당하며 숙원인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최종 15위)

2010년대 일본의 간판 스타 혼다 케이스케가 아시아 선수로는 2번째로 월드컵 3회 연속 득점을 기록해 통산 본선 4골을 기록했다. 이는 호주의 팀 케이힐에 이은 아시아 선수 본선 최다골 2위 기록이지만, 케이힐이 OFC 소속으로 월드컵에 나선 2006년 대회의 2골이 있기 때문에 혼다가 사실상 아시아에서 월드컵 본선 최다골을 넣은 선수이다.

2021년 9월에는 독일에 별도의 훈련장을 지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허나 2022년 5월 25일, 현재도 소식이 없다.


2.3. 2020년대[편집]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16강(15위), 2019년 아시안컵에서 준우승, 2020년[31] 도쿄 올림픽 4위, 2022년 동아시안컵 우승을 기록하는 등 국제대회에서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두다가 마침내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죽음의 조를 1위로 돌파해 16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FIFA 랭킹도 일시적이나마 18위까지 뛰어올라, 일본 축구사의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사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우승후보인 독일스페인과 조가 되었기에 일본의 조기 탈락을 일찌감치 점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독일과의 첫 경기부터 독일을 2-1로 잡아내는 대이변을 일으키더니 3차전 스페인전도 역시 2-1로 승리하는 이변을 다시금 연출하며 조 1위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고, 이로써 아시아 축구 사상 최초로 월드컵에서 두 대회 연속으로 16강에 진출한 신기록을 달성했다.

특히 일본 축구가 질적으로 확연히 달라졌음은 경기 내용으로도 증명되었다. 단적으로 상술했듯이 이전까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에 나와서 단 한 번도 역전승한 적이 없고, 오히려 역전패만 4번을 기록했을 정도로 뒷심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독일과 스페인을 상대로 모두 선취점을 내준 다음에 2골을 몰아쳐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PK로 넣은 골이나 상대 선수의 퇴장으로 인원수에서 앞서는 상황[32]에서 얻어낸 골이 아닌, 모두 정상적인 상황에서 필드골로 득점한 것이다.

비록 16강에서 크로아티아를 만나 무승부 승점 1점을 얻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또 다시 탈락하며 8강 진출을 눈 앞에 두고 짐을 싸야 했지만 일본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죽음의 조'를 1위로 통과하였다는 점과 또 월드컵 9위를 세번째로 기록하였고,[33] 16강 상대 크로아티아가 뒤이어 8강에서 우승후보 브라질까지 잡고 대회 3위의 호성적을 거둔 강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괄목할만한 성과였다.(최종 9위)[34] 이러한 성과는 지난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선전이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일본 축구의 질적 성장에 기반했음을 입증하였다. 다만 네 차례나 접전 끝에 8강 진출에 실패했다는 뒷심 부족은 일본 축구계에 여전한 과제로 남게 되었다.

2023년 U-20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고 우승을 목표로 하였으나, 조 3위 16강 경쟁에서도 밀려서 대회 18등으로 조기 탈락했다.

독일과의 친선전, 독일의 홈에서 4:1로 이겼다.


3. 상징[편집]



3.1. 응원가[편집]


バモ日本

바모닛폰이라 읽는다. 바모(バモ)는 스페인어 Vamos에서 유래되어 '가자!'라는 뜻이다. 보통은 'Let's go'와 같은 뉘앙스로 사용한다. '할 수 있다 일본!'이라 해석하면 쉽다.


3.2. 역대 엠블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엠블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3. 역대 유니폼[편집]







4. 현재 스쿼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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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등번호
한글 이름
일어 이름
생년월일
출장

클럽
GK

가와시마 에이지
川島永嗣
1983년 3월 20일
93
0
파일:Strasbourg.png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

곤다 슈이치
権田修一
1989년 3월 3일
24
0
파일:shimizu-s-pulse-jap-logo-B42753A7A5-seeklogo.com.png 시미즈 S펄스

타니 코세이
谷晃生
2000년 11월 22일
0
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honanBellmare.png 쇼난 벨마레
DF

우에다 나오미치
植田直通
1994년 10월 24일
16
1
파일:NîmesOlympique.png 님 올랭피크

무로야 세이
室屋成
1994년 4월 5일
16
0
파일:하노버 96 로고.svg 하노버 96

나가토모 유토
長友佑都
1986년 9월 12일
127
4
파일:FC Tokyo emblem.png FC 도쿄

토미야스 타케히로
冨安健洋
1998년 11월 5일
24
1
파일:아스날 FC 로고.svg 아스날 FC

사카이 히로키
酒井宏樹
1990년 4월 12일
66
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UrawaReds.png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이타쿠라 코
板倉滉
1997년 1월 27일
5
1
파일:FC 샬케 04 로고.svg FC 샬케 04

요시다 마야
吉田麻也
1988년 8월 24일
109
11
파일:Sampdoria.png UC 삼프도리아

나카야마 유타
中山雄太
1997년 2월 16일
5
0
파일:Zwolle.png PEC 즈볼러

하시오카 다이키
橋岡大樹
1999년 5월 17일
2
0
파일:K._Sint-Truidense_V.V.png 신트트라위던 VV
MF

엔도 와타루
遠藤航
1993년 2월 9일
30
2
파일:VfB 슈투트가르트 로고.svg VfB 슈투트가르트

시바사키 가쿠
柴崎岳
1992년 5월 28일
51
3
파일:CD 레가네스 로고.svg CD 레가네스

하라구치 겐키
原口元気
1991년 5월 9일
63
11
파일:1. FC 우니온 베를린 로고.svg 1. FC 우니온 베를린

카마다 다이치
鎌田大地
1996년 8월 5일
15
4
파일: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로고.sv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미나미노 타쿠미
南野拓実
1995년 1월 16일
31
16
파일:리버풀 FC 로고.svg 리버풀 FC

이토 준야
伊東純也
1993년 3월 9일
26
5
파일:Genk.png KRC 헹크

미요시 코지
三好康児
1997년 3월 26일
5
2
파일:Antwerp.png 로열 앤트워프 FC

모리타 히데마사
守田英正
1995년 5월 10일
5
1
파일:CD Santa Clara New.png CD 산타 클라라

타나카 아오
田中碧
1998년 10월 10일
2
0
파일:포르투나 뒤셀도르프 로고.svg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아사노 타쿠마
浅野拓磨
1994년 11월 10일
24
5
파일:VfL 보훔 로고.svg VfL 보훔

도안 리츠
堂安律
1998년 6월 16일
20
3
파일:PSV_Eindhoven logo.png PSV 에인트호번
FW

오사코 유야
大迫勇也
1990년 5월 18일
51
24
파일:Vissel Kobe.png 비셀 고베

오나이우 아도
オナイウ阿道
1995년 11월 8일
2
3
파일:ToulouseFC.png 툴루즈 FC

후루하시 쿄고
古橋亨梧
1995년 1월 20일
8
3
파일:Celtic.png 셀틱 FC
출처: 일문 위키피디아 / 마지막 수정 일자: 2021년 9월 29일





5. 플레이 스타일[편집]


체격이 작기 때문에 피지컬 축구보다는 아기자기한 패스 플레이가 발달했다. 한국처럼 개인기량을 앞세우기보다는 여럿이서 협동하여 공격을 전개해 나가는 플레이에 능숙하다. 선수들간의 유기적인 호흡과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조직력이 오랜 강점이다. 이와 같은 스타일은 전성기 때 '40분 바르셀로나' 라는 어마어마한 고평가를 받은 적까지 있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일본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이란-사우디 등에 밀려 변방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으나, 생활 체육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저변 확대로 조호르바루의 환희를 이뤄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으로 첫 출전 이후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매번 개근하여 현재로서는 이견이 없는 아시아 톱 클래스 그룹에 속한다.

다만 고질적인 약점으로, 부족한 피지컬과 체력이 지적받는데, 이는 피지컬이 좋은 스포츠 유망주들이 다른 스포츠로 많이 빠지기 때문이다. 일본인들 자체의 평균 체격이 작은게 사실이나 그건 결국 평균일 뿐이고, 인구수가 굉장히 많고 개인별 신장 편차가 큰 국가라 피지컬이 좋은 인재들이 차고 넘친다. 문제는 그런 인재들의 대부분이 축구보다는 일본 현지에서 더 주목도가 높은 야구, 유도, 스모 등으로 쏠린다는 것이다. 피지컬적인 약점은 경기 후반에 드러나곤 하는데, 당장 월드컵에서 굵직한 역전패들을 많이 당했다. 초반에는 기세를 올리다가 후반전에 체력이 고갈되면서 소나기 골을 먹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2006년 호주전과 브라질전, 2014년 코트디부아르전, 2018년 벨기에전에서 잘 드러난 바 있다.[35] 전성기의 호칭인 40분 바르셀로나에도 이러한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최근에는 일본 내 축구 인기의 상승과 혼혈 선수의 유입, 피지컬의 중요도 인식으로 인해 유소년 레벨에서는 한국에 밀리지 않는 피지컬을 보유하기 시작했다.[36]

한편, 일본은 개인이 돋보이는 최전방 스트라이커나 골키퍼보다는 유기적인 호흡이 중요한 중앙 미드필더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나카타 히데토시혼다 케이스케, 카가와 신지 등이 그 예이다. 3명의 선수 모두 패스나 연계 등에 탁월한 강점을 보이는, 그야말로 일본스러운 선수들이다. 다만 아시아권에서는 전통적으로 패싱 게임을 통한 유려한 축구를 선보이는 반면에 월드컵에서는 점유율을 포기하면서까지 선수비 후역습의 극단의 실리축구로 나오는게 특징이며 일본이 16강 진출이란 결실을 달성할 때는 극한의 실리축구를 추구했다.[37] 한편으로 일본의 실리축구를 살펴보면 단순히 페널티 박스에 내려앉아서 자리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위험지역에서 이탈리아 축구 못지 않은 효과적인 지역방어를 하면서 몇몇 선수는 상대 선수를 위험지역 밖(경기장 사이드 지역)으로 계속 밀어낼 정도로 강한 밀착 마크를 시도한다.[38] 이를 보면 일본 축구가 강조하는 패스와 움직임을 강조하는 교육이 수비시에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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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장악을 중요시하는 숏 패스 위주의 플레이가 주를 이루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우스갯소리로 스시타카라고 부른다. 20세기 초부터 약 100년간 이러한 스타일을 유지했다. 티키타카의 일본 버전이라고 스시타카라고 부르지만, 일본의 그 누구도 자신들의 축구를 티키타카라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도 전형적인 티키타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점유율을 중시하는 티키타카에 비하면 일본 축구는 속도를 더욱 중시한다. 티키타카가 숏패스를 돌리는 게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기 위함이라면, 일본 축구가 숏패스를 돌리는 건 단순히 앞에 찔러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점유율은 그냥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역대 일본 국대 감독들이 강조한 부분도 대부분 '스피드', '공격성', '조직력' 등이지, 딱히 점유율에 비중을 두진 않았다.

또 다른 별명으로는 45분 바르셀로나. 초반에는 정교한 패싱플레이와 점유율 축구로 상당히 괜찮은 경기력을 보이지만, 경기 막바지에 들어 체력과 피지컬이 발목을 잡아 우세했던 경기를 말아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2014 월드컵 코트디부아르전, 2018 월드컵 벨기에전, 2017 도쿄대첩 등이 이런 사례이다.

일본인들 사이에도 일본 축구의 피지컬이 유럽이나 남미 등 타대륙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한국과 중동에 비해 열세라는 인식이 있어서 패스와 기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분석도 있으나, 피지컬 문제와 기술 중심의 축구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물론 J리그가 그다지 거친 몸싸움을 즐기는 리그는 아니다 보니 해외파가 아닌 국내파 출신 국가대표 선수들은 몸싸움이나 경합 면에서 약세를 보인다. 이러한 문제는 혼다 케이스케 역시 지적한 바 있다.[39]

일본 사커 리그가 폐지되고 프로 리그인 J리그가 갓 시행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센터백이 180cm도 되지 않는 등 피지컬, 특히 신장 문제가 발목을 잡았으나 축구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고 보급되기 시작한 지금에 와서는 큰 문제라고 보기 힘들다. 다만 J리그에서 최전방 공격수를 외국인 용병으로 해결하는 것이 대세가 되면서 장신의 스트라이커 수급 부족 문제는 오히려 심화된 면이 있다.

이러한 패스 위주의 플레이 경향은 할릴호지치 감독 부임 이후, 스피드와 상대 선수와의 '듀얼(Duel)'[40], 역습을 중시하는 전술로 바뀌려 했던 적이 있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2017년 10월 대표팀 명단 발표식 때 기자단에 지난달 바이에른 뮌헨과 파리 생제르맹(PSG)의 챔스 B조 2차전 경기를 예로 들며 바이에른은 PSG보다 점유율, 패스 수, 슈팅 수, 크로스 수에서 PSG를 압도했지만 단 하나, 듀얼 분야에서 바이에른은 PSG에게 10% 넘게 뒤졌고 이때문에 3:0으로 바이에른이 패배했다고 일갈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PSG는 바이에른에 강한 압박을 통해 공을 탈취한 뒤, 네이마르, 카바니와 같은 골 결정력이 높은 선수들에게 계속 공을 배급하며 득점 기회 확률을 높여나갔고 바이에른이 볼을 잡고 위험지역으로 공을 가져왔을 때에도 듀얼로 끊어 공을 다시 가져온 뒤 네이마르, 카바니 등에게 다시 배급하는 전략을 구사했고 이런 전략이 승리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할릴호지치는 이전부터 점유율, 하프라인에서의 잦은 숏 패스, 크로스와 같은 것은 단지 수치에 불과하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성향이며 상대 지역에서의 공격 작업 횟수와 상대의 공격 작업 방해[41] 등 직접적인 득점 관여 행위를 중시한다.

발표식에서 이례적으로 감독이 타 팀의 경기를 분석한 자료를 선보인 이유는 할릴호지치의 스타일에 대해 일본 축구 관계자 및 스포츠지 기자들 대부분이 전통적인 일본 축구 스타일을 파괴하고 있다며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만 혼다, 나가토모 등 고참급 선수들과 선수진들은 할릴호지치의 스타일을 상당히 선호하기 때문에 감독으로서의 지휘력이 약화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이 월드컵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둔 남아공 월드컵 '오카다 재팬' 시절에 대해 혼다는 '성적은 좋았을지 모르지만 과연 좋은 축구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오카다 재팬은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며 세트피스로만 점수를 따내는 극단적인 수비 전술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일본 축구 스타일이었다. 반면 할릴호지치는 기존 일본 축구에서 다소 부족했던 '듀얼' 즉 강한 체력과 거친 몸싸움을 통한 적극적 볼 탈취와 이를 기반으로 한 빠른 공격 전개와 많은 공격 작업 횟수를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2010년대 이후 일본의 플레이 스타일은 과거의 일본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가진다.

팀플레이를 강조하는 탓인지 선수 개개인의 과감성은 떨어지는 편. 충분히 해볼 만한 공격 기회에서도 자신이 직접 처리하려는 노력보다는 옆 사람에게 패스하기 바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것도 피지컬의 열세 극복이지만, 역으로 이것이 약점이 되어 강하고 거친 압박 축구를 활용하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문에 강한 피지컬을 갖춘 선수들과 플레이를 해본 해외파와 J리그 내에서 강한 피지컬로 압박하는 유형의 선수를 주로 기용하는 것으로 체질 개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로인해 주전과 비주전의 경기력 및 플레이 스타일 격차가 상당히 심한 편이다. 쉽게 말해 주전 선수들이 참여한 경기에서는 감독이 추구하는 듀얼과 빠른 공격 전개를 추구하는 플레이를 하는 반면, 비주전 선수들이 많이 포함된 스쿼드에서는 감독이 요구하는 수준의 플레이를 소화하지 못해 전통적인 축구 스타일로 회귀하는 형태이다.

굳이 비슷한 스타일을 찾자면 브라질 축구가 있다. 1980년대 브라질 최고의 미드필더였던 하얀 펠레 지쿠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J리그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보내다가 은퇴했다. 지쿠의 유려한 패싱플레이는 일본 축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나중에 일본 대표팀 감독도 역임했다. 구체적으로는 개개인의 피지컬과 테크닉이 딸리는 브라질 축구고, 그 부분을 조직력으로 커버하고 있다. 다만 대대로 세계 최정상급의 공격수가 뛰던 브라질과는 달리, 일본 역시 골잡이 부재에 허덕이는 중이다. 클럽으로 따지자면 아스날 FC와 비슷하다는 소리도 듣는데, 실제로 아르센 벵거 부임설도 있었다. 벵거는 아스날 감독 부임 전에 잠깐 나고야 그램퍼스 감독을 맡아 일본 축구팬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고, 벵거 자신도 선수 식단 관리의 중요성 등 이후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하여 일본 축구에 우호적이다. 이나모토 준이치미야이치 료의 아스날 진출도 이때 얻은 일본통에 의한 것.

수비는 좋게 말하자면 굉장히 깔끔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수비를 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압박을 하긴 하는데 거친 몸싸움에는 소극적. 수비에서도 개인 능력보다는 수비연계를 우선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최근 전체적으로 피지컬이 크게 상향화된 영향으로 몸싸움에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피지컬이 강한 상대로 제공권과 몸싸움에 밀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 부분은 한국 대표팀처럼 1980~90년대에 수비 스타일이 정립이 된 건데 한국은 독일의 수비 스타일을 표방하면서 바이에른 뮌헨식 앵커가 끼는 3백을 메인으로 홍명보로 대표되는 든든한 앵커맨의 수비 지휘를 믿고 행동대장에 가까운 파이터 스타일의 투 스토퍼로 아시아 축구에서 강력함을 뽐냈다면 일본은 당시 최선의 수비 전술인 존 디펜스를 이식해 아시아 축구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켰다. 1990년대부터 4-4-2를 도입했고 윙백의 적극적인 측면 오버래핑을 활용한 빌드업으로 수비수가 최전방까지 공격에 올라온다는 축구 흐름을 몰랐던 한국 대표팀을 엄청나게 괴롭혔다.[42] 당시 일본의 양 윙백라인은 항상 한일전 때마다 최고 요주의 대상이었을 정도. 한 예로 왼쪽의 나가토모와 오른쪽 우치다의 윙백라인은 삿포로 한일전에서 3:0 패배라는 참사를 낳았으며, 우치다의 장기 부상으로 공석이 된 오른쪽 윙백을 현재 리그앙 올림피크 마르세유에서 뛰는 사카이 히로키가 대체해 이어져 오고 있다.

일본 수비 라인의 중심에 아시아 탑 축구 지능의 소유자인 센터백 이하라 마사미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도 한국처럼 이하라의 의존도가 상당히 높았는데 센터백의 파트너 성격에 따라 유연하게 수비를 조율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던 일본은 아시아에서는 센터백의 자질이 당시 기준으로 쓸 만하면 나머지는 이하라가 알아서 다 해줬던지라 당장 월드컵 진출에 매달렸던 상황에서 한국만 피하면 나머진 알아서 잘 되겠지 싶었고 실제로도 그랬는데 프랑스 월드컵 이후 이하라의 은퇴 뒤에 존 디펜스의 숙련도가 높아지고 한국의 스타일도 예전만하지 못하게 되자 탈 아시아를 선언했는데 너무 성급했던 감이 크다. 간단히 말해 일본이 잘나기 보단 한국이 일시적으로 정체되었던 것. 거기에 존 디펜스는 수비 조율과 커버링, 그 커버링을 위한 왕성한 체력 이외에 일대일 수비 능력이 하다못해 한국이나 호주의 대표팀급 공격수를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물고 늘어지는 실력이 기본적으로 있어야만 탈 아시아 급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으나 일본은 이 뒤쳐지는 부분을 커버링과 협력 수비로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고만 판단했는데 그건 아시아에서나 통하지 정작 탈 압박이 좋은 팀을 만나기만 하면 고전했으며, 특히 4-4-2를 메인으로 썼던 시대에 4-4-2를 썼던 팀치고 중원에서 무시무시한 활동량과 투쟁심으로 상대 미들 진을 압박했던 홀딩 미드필더가 없었던 팀이 없었는데, 일본 대표팀은 나카타 히데토시를 중앙 미드필더로 쓰면서 나카타의 약점을 메꿀 홀딩 미드필더를 제대로 둔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상대가 중앙에서 피지컬로 찍어 누른다면 답이 없었다.[43]

이런 피지컬 문제를 할릴호지치가 뜯어고치겠다고 선언하며 선수들 체지방까지 체크해서 언론에 공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사실 일본이 2000년대 후반부터 유소년 대표부터 피지컬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드리블이나 패스를 중시하기 시작한 우리 유소년 축구 입장에선 황당하다는 반응. 한국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긴 한데, 한국은 그래도 2002 월드컵을 기점으로 거스 히딩크의 주도 하에 체력에 많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적어도 일본보다 10년은 앞선 셈. 그런데 한국과 함께 월드컵을 치렀고 똑같이 외국인 감독 데려다 쓴 일본이 그로부터 10년도 더 늦게서야 체력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보듯이 철퇴축구를 따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과 다르게 체격적인 문제는 개선하기 까다롭다. 그래도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해외리그 진출에 적극적인 경향을 보이면서 일찍부터 피지컬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고 관리하는 선수들도 상당히 많아진 추세다. 실제로도 오사코 유야, 사카이 히로키, 아사노 타쿠마, 요시다 마야, 엔도 와타루 등은 해외 리그에서도 피지컬적으로 밀리지 않고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할릴호지치의 대표팀 차출 성향 역시 유럽권 선수와 피지컬적으로 맞상대할만한 선수가 아니면 아예 뽑지를 않는다. 어쨋든 적극적인 해외 진출 덕분에 피지컬 문제는 상당수 극복된 상태이다.

하지만 해외파가 아닌 국내파 선수들의 피지컬적인 능력은 국제적인 수준에서 떨어진다. 여기에 할릴호지치가 어설프게 접목한 파워 축구가 기존의 일본 패스 축구 컬러와 엇박자를 일으켰고, 이것은 2017년 말에 대형참사로 이어졌다. 이 참패로 인해 일본 축구계는 국내파에 대한 불신이 강해졌지만, 러시아 월드컵을 100일 앞둔 시점에서 다수의 해외파 선수들이 부상이나 벤치 신세를 지면서 딜레마에 빠졌다. 이에 할릴호지치는 일단 국내파 선수들과 해외파 중 하세베와 같은 노장급 선수들을 고루 섞어 대비했다.

한국이 에닝요라돈치치의 귀화 및 대표 팀 발탁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 것[44][45]과 달리 외국인의 귀화 문제에 자유로운 듯하다. 사실 일본은 이민 문제에 소극적이고 지금도 일반적으로 귀화가 힘든 나라로 여겨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축구 국가대표 팀에는 비교적 일찍부터 귀화 선수들을 발탁해왔다. 도하의 비극 현장에도 있었던 라모스 루이[46]를 비롯해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대표로 뽑힌 로페스 바그너(Wagner Augusto Lopes),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2006 독일 월드컵 대표 알렉스[47] 등이 있다. 그리고 리 타다나리[48]역시 일본으로 귀화한 사례이다.

하지만 할릴호지치 부임 이후 초반에 마이크 하프나[49]가 1경기에 기용된 것 외에는[50] 귀화 일본인 선수에 대한 차출은 없는 상황이다.

현재 일본이 가진 문제점 중 하나는 젊고 우수한 골키퍼의 부재다. 현재 일본의 젊은 골키퍼 중에는 과거에 오랫동안 일본 대표팀의 골문을 든든하게 지켜온 가와구치 요시카쓰, 나라자키 세이고, 가와시마 에이지의 계보를 이을만한 레벨의 골키퍼를 찾기 힘들다.[51]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여러 차례 실수를 한 노장 가와시마 에이지가 여전히 일본 대표팀에서 가장 뛰어난 수준의 골키퍼인 게 현실이고[52] 그 가와시마마저 러시아 월드컵과 이듬해 아시안컵을 끝으로 일본 대표 커리어가 마무리될 것이 유력하기에 후계자 수급 문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한편 이런 상황과 맞물려 벌어지는 기현상이 있는데, J리그 팀들이 괜히 K리그나 대한민국 아마추어 레벨의 우수한 골키퍼들에게 눈독을 들이고 대거 스카우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골키퍼 3인 중 조현우를 제외한 김승규김진현이 J리그 출신으로 발탁된 것이 그 예로, 이들 외에도 정성룡, 권순태 등 한국 대표팀의 골리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들도 적잖이 현해탄을 건너갔다. 현재는 포르투갈 리그의 포르티모넨스 소속의 곤다 슈이치와 벨기에 신트트라위던의 혼혈 골키퍼 다니엘 슈미트가 주전 골키퍼를 두고 경쟁한다.

골키퍼 문제 못지 않은 문제는 바로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부재. 정확히 말하면 오사코 유야의 후계자 문제이다. 물론 단순히 득점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한국에서의 편견과는 달리 일본의 득점력은 아시아 최상위권이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1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멀티골을 기록했다. 또한 예전처럼 원톱에게만 득점을 기대하는 시대가 지났고, 이제는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는 역발 윙어나 쉐도우 스트라이커가 득점을 담당하며 스트라이커는 최전방에서 수비수들의 이목을 끌어주는 역할에 보다 치중하는 시대가 왔다. 다만 이렇게 수비수들을 끌고 몸싸움을 하며 소위 등딱을 해줄 스트라이커는 여전히 필수적인데 J리그는 점점 이런 역할을 외국인 선수에게 맡기다 보니 스트라이커를 맡을 자원이 마땅치가 않다. 이 문제로 인해 월드컵 무대에서 신칸센 대탈선슛 같은 빅 찬스 미스가 발생한 적이 있었을 정도. 현재 오사코 유야가 노쇠화하면서 새로운 스트라이커를 발굴할 필요가 있는데, 일단 후보로 꼽히는 선수인 스즈키 유마스즈키 무사시, 후루하시 쿄고 같은 선수들은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상하리만치 기용하지 않는 중이다. 다만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서는 신장에 비해 볼 키핑이나 포스트 플레이를 준수하게 하면서 압박 가담도 성실하게 하는 마에다 다이젠을 기용하면서 성공적으로 본선을 마쳤고, 그 외에도 역습 상황에서 폭발력을 갖춘 아사노 타쿠마를 재발굴해서 발탁하며 스트라이커 부재를 어느 정도 해결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6. 역대 감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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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록[편집]



7.1. A매치 최다 득점 선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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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이름
활동기간
경기수
득점
1
가마모토 쿠니시게
1964-1977
76
75
2
미우라 카즈요시
1990-2000
89
55
3
오카자키 신지
2008-2019
119
50
4
하라 히로미
1978-1988
75
37
4
혼다 케이스케
2008-2018
98
37
6
카가와 신지
2008-2019
97
31
7
다카기 다쿠야
1992-1997
44
27
8
기무라 가즈시
1979-1986
54
26
9
오사코 유야
2013-2022
57
25
10
나카무라 슌스케
2000-2010
98
24
11
타카하라 나오히로
2000-2008
57
23
12
나카야마 마사시
1990-2003
53
21
13
미야모토 데루키
1961-1971
58
19
14
미나미노 타쿠미
2015
51
17
※ 현역 선수는 한글 이름을 볼드체 표기한다.[1]
※ 최종 수정 및 출처 : 2023년 11월 21일,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7.2.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편집]




[ 펼치기 · 접기 ]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엔도 야스히토
152회
2002.11.20
(vs 아르헨티나)
2015.1.23
(vs 아랍에미리트)
2
나가토모 유토
131회
2008.5.24
(vs 코트디부아르)
2021.11.16
(vs 오만)
3
이하라 마사미
122회
1988.1.27
(vs 아랍에미리트)
1999.7.5
(vs 볼리비아)
4
오카자키 신지
119회
2008.10.9
(vs 아랍에미리트)
2019.6.25
(vs 에콰도르)
5
가와구치 요시카쓰
116회
1997.2.13
(vs 브라질)
2008.11.19
(vs 카타르)
6
하세베 마코토
114회
2006.2.10
(vs 미국)
2018.7.2
(vs 벨기에)
7
요시다 마야
113회
2010.1.6
(vs 예멘)
2021.11.16
(vs 오만)
8
나카자와 유지
110회
1999.9.8
(vs 이란)
2010.9.4
(vs 파라과이)





8. 역대 전적[편집]



8.1. FIFA 월드컵[편집]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29위
⑯⑯⑯⑯

대회
결과
순위
경기
승점



득점
실점
일본 제국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1930년 우루과이
불참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934년 이탈리아
파일:프랑스 국기.svg
1938년 프랑스
기권[53]
일본국
파일:브라질 국기.svg
1950년 브라질
출전 금지[54]
파일:스위스 국기.svg
1954년 스위스
본선 진출 실패[16개국][55]
파일:스웨덴 국기.svg
1958년 스웨덴
불참
파일:칠레 국기.svg
1962년 칠레
본선 진출 실패[16개국][56]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966년 잉글랜드
불참
파일:멕시코 국기.svg
1970년 멕시코
본선 진출 실패[16개국][57]
파일:독일 국기.svg
1974년 서독
본선 진출 실패[16개국][58]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1978년 아르헨티나
본선 진출 실패[16개국][59]
파일:스페인 국기.svg
1982년 스페인
본선 진출 실패[24개국][60]
파일:멕시코 국기.svg
1986년 멕시코
본선 진출 실패[24개국][61]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990년 이탈리아
본선 진출 실패[24개국][62]
파일:미국 국기.svg
1994년 미국
본선 진출 실패[24개국][63]
파일:프랑스 국기.svg
1998년 프랑스
조별리그
31위
3
0
0
0
3
1
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2002년 한일
16강
9위
4
7
2
1
1
5
3
파일:독일 국기.svg
2006년 독일
조별리그
29위
3
1
0
1
2
2
7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2010년 남아공
16강
9위
4
7
2
1
1
4
2
파일:브라질 국기.svg
2014년 브라질
조별리그
29위
3
1
0
1
2
2
6
파일:러시아 국기.svg
2018년 러시아
16강
15위
4
4
1
1
2
6
7
파일:카타르 국기.svg
2022년 카타르
16강
9위
4
7
2
1
1
5
4
파일:캐나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멕시코 국기.svg
2026년 북미









파일:스페인 국기.svg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파일:모로코 국기.svg
2030년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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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16강 (4회)
7/22[64]
25
27
7
6
12
25
33

1998년 대회부터 내리 7연속 본선진출에 성공했고,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까지의 기록은 25전 7승 6무 12패, 25득점 33실점, 총 승점 27점[65](2026월드컵 전승 우승 승점 24점)으로 한국에 이어 아시아 2위, 통산 랭킹 29위에 랭크되어 있다. 2018년 대회에서 1승 1무 2패로 아시아 최초 3번째 2라운드[66](16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터키, 불가리아, 카메룬, 스코틀랜드를 제치고 순위가 네 계단 상승하였다. 심지어 30위 코스타리카와 승점이 같아졌지만 평균 점수[67]에서 코스타리카 1.11(승점 20점 / 18경기), 일본 0.95(승점 20점 / 21경기)로 밀려 순위가 뒤쳐져 있다. 이어 2022년 대회에서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독일과 스페인을 제압하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 크로아티아와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탈락(9위)하며 승점 7점을 추가하여 27점으로 코스타리카를 제치고 29위를 기록, 한국에 이어 월드컵 서열 29위안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두 번째 아시아 팀이 되었다.

일본은 자국에서 공동 개최된 2002 대회에서 32강 조별리그 1위로 16강전까지 올랐으며 대회 결산 4전 2승 1무 1패 5득점 3실점, 16강 최종 9위에 올랐다. 또한, 2010 대회에서 32강 조별리그 2위로 16강전에 올랐으며 대회 결산 4전 2승 1무 1패 4득점 2실점, 16강 최종 9위에 올랐다. 이 성적이 그동안 일본이 월드컵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다. 32강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했다는 점과 다득점을 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방에서 열린 2002 대회에서의 세부 기록이 2010 대회보다 근소하게 더 좋은 편이다. 마찬가지로 2018 대회에서 16강에 올랐다. 이 대회 결산 4전 1승 1무 2패 6득점 7실점, 16강 최종 15위로 2002 및 2010 대회 때보다 세부 기록은 좋지 않은 편이다.

다른 나라들과의 역대 전적은 아래와 같다. 볼드체로 표기한 팀은 월드컵 우승 경력이 있는 팀들이다.
브라질: 1패(2006)
독일: 1승(2022)
아르헨티나: 1패(1998)
스페인: 1승(2022)
네덜란드: 1패(2010)
파라과이: 1무(2010)[68]
덴마크: 1승(2010)
러시아: 1승(2002)
벨기에: 1무 1패(2002, 2018)
폴란드: 1패(2018)
자메이카: 1패(1998)
크로아티아: 2무 1패(1998, 2006, 2022)[69]
호주: 1패(2006)
코스타리카: 1패(2022)
튀르키예: 1패(2002)
튀니지 : 1승(2002)
카메룬: 1승(2010)
코트디부아르: 1패(2014)
그리스: 1무(2014)
콜롬비아: 1승 1패(2014, 2018)
세네갈: 1무(2018)

대륙별 상대 전적은 다음과 같다.
유럽: 4승 4무 5패
남미: 1승 1무 3패
북중미: 2패
아프리카: 2승 1무 1패
오세아니아: 1패[70]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륙별로 살펴보면 아프리카에 다소 강하고 아메리카에 약세를 보이며, 유럽과는 백중세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까지는 한국이 독일, 이탈리아와 같은 전통적인 우승후보와 그보다는 다소 급이 낮지만 우승후보에 속하는 포르투갈을 상대로도 승리를 경험과 2002년 준준결승전(8강)에서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탈락시킨 반면 2022년 이전까지 일본은 유럽에서도 B급으로 취급받는 러시아덴마크에 승리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스페인독일 모두에 2:1로 승리하면서 이전까지 유럽 팀과 역대 월드컵 우승국들을 상대로 부진했던 경력을 한방에 일소했다.

남미 팀을 상대로는 이웃 한국과 달리 1승을 기록한 바 있으나 북중미 팀을 상대로는 2전 전패를 기록했다. 참고로 북중미 팀과의 만남은 1998년 자메이카전 이후로 24년만이었는데, 이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대륙별 안배 원칙에 따라 아시아와 북중미가 같은 그룹에 속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팀을 상대로는 2002년에 튀니지, 2010년에 카메룬을 만나 모두 무실점으로 승리하며 전승을 기록했으나 2014년에 코트디부아르에 1:2로 역전패를 당하며 아프리카 팀을 상대로 기록한 무패와 무실점 신화가 깨졌고 2018년에는 세네갈과 2:2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또 하나 특이한 사항이 있다면 일본은 월드컵에 진출했던 나라들 중 유일하게 오세아니아 대륙에 열세를 기록하는 팀이라는 것이다. 오세아니아 대륙에 속한 팀이 월드컵에서 기록한 승리는 단 1승인데 바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호주가 일본을 3:1로 이긴 경기였다. 그러므로 일본은 오세아니아에 열세를 기록하는 유일한 팀이자 오세아니아 팀에 패한 유일한 팀이다.

일본에 패배를 안긴 팀은 아르헨티나(1패), 크로아티아(1패), 자메이카(1패), 터키(1패), 호주(1패), 브라질(1패), 네덜란드(1패), 코트디부아르(1패), 콜롬비아(1패), 폴란드(1패), 벨기에(1패), 코스타리카(1패)로 총 12개팀인데, 이 중에 크로아티아, 콜롬비아, 벨기에를 제외한 나머지 9개팀을 상대로는 전패를 기록중이며, 모두 한번씩만 패배했다. 아직 일본이 2패를 당한 나라가 없는데 이것은 상대적으로 월드컵 진출, 경기 횟수가 적어서 일어난 현상이다. 월드컵 무대에서 세 번 만난 크로아티아와 두 번 만난 콜롬비아, 벨기에를 제외하면 모든 나라와 한 번씩 붙었다.

일본이 우세한 팀은 러시아, 튀니지, 카메룬, 덴마크, 독일, 스페인으로 총 여섯 팀이다. 호각세를 보이는 팀 역시 파라과이, 그리스, 콜롬비아, 세네갈 네 팀이다. 반면 브라질,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벨기에, 폴란드, 자메이카, 크로아티아, 호주, 터키, 코트디부아르, 코스타리카를 상대로는 열세를 보인다.

최다 득점 기록은 2010년 32강 조별리그 덴마크전으로 3:1로 승리해[71] 한국보다 한 경기 득점수가 앞선다. 최다 실점 기록 역시 2006년 32강 조별리그 브라질전 1:4 패, 2014년 32강 조별리그 콜롬비아전 1:4 패로 한국의 9실점보다 월등히 낮은데, 이는 아시아 축구가 세계와의 격차가 현재보다 더 컸던 월드컵 16개국 본선과 24강 본선 시절에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8.1.1. 월드컵 우승팀과의 전적[편집]


일본은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우승팀들을 4번 만났다.

2022년 이전까지 일본은 1998년에 아르헨티나, 2006년에 브라질을 만난게 전부였는데,[72] 하지만 2022년에 조별리그에서 독일과 스페인을 만나며 횟수가 4회로 늘었다. 전적은 위에 서술한대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1패, 스페인과 독일에 1승을 거두었다. 아직 매치가 성사되지 않은 우승 경험국은 우루과이, 이탈리아, 프랑스, 잉글랜드이다.


8.1.2. 월드컵 징크스[편집]


  • 8강에 진출하지 못한다.
- 일본 축구의 최대 징크스.[73] 일본이 월드컵 본선에서 32강 조별리그를 통과하여 16강에 진출한 4회 모두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아쉬운 점은 상대팀들이 일본 입장에서도 모두 해볼만한 팀이었고 실제 경기 내용도 거의 대등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역대 16강전 결과는 다음과 같다.
  • 2002년 터키전: 전반 11분 위미트 다발라에게 헤딩 실점을 허용한 후 이를 만회하지 못하고 0:1로 패배해 탈락.(최종 9위)
  • 2010년 파라과이전: 루즈한 120분의 경기 끝에 0:0으로 무승부를 거두고 승부차기에 돌입하였으나 3번 키커 고마노 유이치가 실축하며 승부차기에서 3:5로 패배해 탈락.(최종 9위)
  • 2018년 벨기에전: 후반 초반 2득점에 성공해 2:0으로 앞서나갔으나 경기 후반부에 내리 3실점을 허용해 2:3으로 역전패하며 탈락.(최종 15위)
  • 2022년 크로아티아전: 전반 마에다 다이젠의 득점으로 앞서나갔으나 후반 초반에 이반 페리시치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1 무승부를 기록하였고 연장 후 승부차기에 돌입하였으나 일본 선수들의 연이은 실축으로 승부차기에서 1:3으로 패배해 탈락.(최종 9위)

  • 승부차기 승리를 포함하여 일본에 승리한 팀은 우승에 실패한다.
- 해당 팀들은 일본이 상대한 순서대로 나열하였으며, 다음과 같다.
  • 1. 1998년 아르헨티나 - 8강전에서 네덜란드에 패배하여 최종 6위.
  • 2. 1998년 크로아티아 - 4강전에서 프랑스에 패배한 후 3위 결정전에서 네덜란드에 승리하며 최종 3위.
  • 3. 1998년 자메이카 - 32강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 된 상태에서 일본을 상대로 승리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최종 22위.
  • 4. 2002년 터키[74] - 4강전에서 브라질에 패배한 후 3위 결정전에서 대한민국에 승리하며 최종 3위.
  • 5. 2006년 호주[75] - 16강전에서 이탈리아에 패배하여 최종 16위.
  • 6. 2006년 브라질 - 8강전에서 프랑스에 패배하여 최종 5위.
  • 7. 2010년 네덜란드 - 결승전에서 스페인에 패배하여 최종 준우승.
  • 8. 2010년 파라과이[76] - 8강전에서 스페인에 패배하여 최종 8위.
  • 9. 2014년 코트디부아르 - 콜롬비아, 그리스에 차례로 패배하고 조 3위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최종 21위
  • 10. 2014년 콜롬비아[77] - 8강전에서 브라질에 패배하여 최종 5위.
  • 11. 2018년 폴란드 -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 된 상태에서 일본을 상대로 승리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최종 25위, 독일과 유이하게 톱시드 팀 조 4위.
  • 12. 2018년 벨기에[78] - 4강전에서 프랑스에 패배한 후 3위 결정전에서 잉글랜드에 승리하며 최종 3위.
  • 13. 2022년 코스타리카 - 최종전에서 독일에 2:4로 패배하고 조 꼴찌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최종 27위.
  • 14. 2022년 크로아티아[79] - 4강에서 아르헨티나에 패배한 후 3위 결정전에서 모로코에 승리하며 최종 3위.

  • 16강에서 일본을 이긴 팀을 이긴 팀이 우승한다.
- 일본 16강 징크스의 연장선으로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일본을 탈락시킨 팀을 탈락시킨 팀이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 2002년: 브라질 - 16강에서 일본을 꺾은 터키를 4강에서 탈락시키고 최종 우승
  • 2010년: 스페인 - 16강에서 일본을 승부차기로 꺾은 파라과이를 8강에서 탈락시키고 최종 우승
  • 2018년: 프랑스 - 16강에서 일본을 꺾은 벨기에를 4강에서 탈락시키고 최종 우승
  • 2022년: 아르헨티나 - 16강에서 일본을 승부차기로 꺾은 크로아티아를 4강에서 탈락시키고 최종 우승

  • 한 경기에서 멀티골을 넣지 못한다.[80]
- 한 경기에서 한 선수가 2골 이상을 넣어본 기록이 없다. 득점력 있는 공격수의 부재가 그 원인으로 추정되며, 이것 역시 언젠가는 깨뜨려야 할 숙제이다.

  •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승리하면 16강 진출에 성공하고[81], 패배하면 조 꼴찌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다.[82]

  • 조별리그에서 1승만 성공하면 무조건 토너먼트에 진출한다.[83]
- 일본이 월드컵에 진출하여 32강 조별리그에서 1승을 거두면 무조건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2002년 대회에선 러시아와 튀니지를 꺾고 16강 진출에 성공했으며 2010년 대회에선 카메룬과 덴마크를 잡고 16강에 진출했고, 2018년 대회에서도 콜롬비아를 잡고 16강에 진출했다. 반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을 때엔 단 1번도 1승을 거둔 적이 없고 무조건 조 최하위로 탈락하였는데 1998년에는 31위, 2006년과 2014년에는 29위로 탈락했다. 특히 2014년 대회 직전에 열린 평가전에서 당시 황금세대로 불리던 벨기에를 3:2로 잡는 위엄을 보이고도 정작 실전에서는 1명이 퇴장당한 그리스를 상대로도 0:0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이는 2023년 현재까지 그리스의 유일한 월드컵 클린시트 경기로 남아있다.

  • 일본이 16강에 진출하면 일본과 같은 조였던 아프리카 팀이 다음 대회 본선에 진출한다.
- 일본이 본선에 처음으로 진출한 1998년 이후, 아프리카 팀과는 2002년, 2010년, 2014년, 2018년 대회에서 같은 조로 배정되었다. 일본이 16강에 진출하면 당시 같은 조의 아프리카 팀은 다음 대회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고, 반대로 일본이 32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 같은 조의 아프리카 팀은 다음 대회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2002년에는 튀니지와 같은 조였으며, 튀니지가 탈락한 대신 일본은 16강에 진출했다. 따라서 튀니지는 다음 대회인 2006년에 본선 진출하는 데 성공했으며[84] 2010년에는 카메룬과 같은 조였다. 카메룬 역시 32강 조별리그에서 탈락(31위)했지만 일본이 16강에 진출해서 카메룬은 2014년 대회의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2014년에는 코트디부아르와 같은 조였으며, 이때 코트디부아르는 일본에 2:1로 역전승을 하였지만 이후 나머지 2경기에서 차례대로 패배하면서 일본과 함께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 때 일본이 C조 꼴등 대회 29등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코트디부아르는 2018년 대회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8년 대회에서는 세네갈과 같은 조가 되었으며 세네갈이 17위로 아쉽게 16강에 실패한 대신 일본이 16강에 진출했으며 세네갈은 다음 대회인 2022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징크스가 이어지게 되었다.

  • 크로아티아와 만나면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한다.
- 처녀 출전이었던 1998년 대회에서 크로아티아와 H조에 편성되어 크로아티아전을 포함해 3전 전패로 탈락(31위)했고, 2006년 대회에서는 F조에 편성되어 무승부를 거뒀지만 1무 2패로 탈락(29위)했다. 2022년 대회에서는 무려 독일과 스페인이라는 두 거함을 잡고 ‘죽음의 조’를 1위로 통과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정작 16강에서 조2위로 겨우 올라온 크로아티아에 승부차기에서 패해 탈락(9위)했고 해당 대회에서 유일하게 조1위 출신 국가 중 8강에 오르지 못했다. 가히 일본의 천적이라 할 수 있다.[85]

  • 2승으로 16강에 진출할 경우 16강 탈락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순위인 9위를 기록한다.
-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16강에 진출했으나 이때는 1승 1무 1패였고 순위도 아르헨티나보다 높은 15위를 기록했다. 나머지는 2승을 거두면서 16강에 진출했고 3번 모두 9위를 기록하면서 16강에서 탈락한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 일본과 본선에서 처음 만난 상대는 다음 대회 성적이 최대 16강에 그친다.
    • 1. 1998년 아르헨티나 -> 2002 월드컵에서 32강 조별리그 탈락(18위)
    • 2. 2002년 벨기에 -> 2006 월드컵에서 유럽예선 탈락
    • 3. 2006년 호주 -> 2010 월드컵에서 32강 조별리그 탈락(21위)
    • 4. 2010년 카메룬 -> 2014 월드컵에서 32강 조별리그 탈락(32위)
    • 5. 2014년 코트디부아르, 그리스 -> 2018 월드컵에서 지역예선 탈락
    • 6. 2018년 세네갈, 폴란드 -> 2022 월드컵에서 폴란드 16강(15위), 세네갈 16강(10위)
    • 7. 2022년 독일, 스페인, 코스타리카 -> ?

  • 남미팀이 톱시드인 조에 들어가면 조 꼴찌로 탈락[* 반면, 일본의 라이벌 팀은 2010년에 남미팀(아르헨티나)이 톱시드인 조(B조)에 들어가고도 16강 진출에 성공했다.(15위)]하고 유럽팀이 톱시드인 조에 들어가면 조별리그를 통과한다.
    • 1. 1998년 아르헨티나 -> H조 4위로 32강 조별리그 탈락(31위)
    • 2. 2002년 일본[86] -> H조 1위로 32강 조별리그 통과
    • 3. 2006년 브라질 -> F조 4위로 32강 조별리그 탈락(29위)
    • 4. 2010년 네덜란드 -> E조 2위로 32강 조별리그 통과
    • 5. 2014년 콜롬비아 -> C조 4위로 32강 조별리그 탈락(29위)
    • 6. 2018년 폴란드 -> H조 2위로 32강 조별리그 통과
    • 7. 2022년 스페인 -> E조 1위로 32강 조별리그 통과

  • 조별리그에서 3위를 기록하지 않는다.
- 위 문단에 대회별 조별리그 순위를 보다시피 조별리그 1위(2002, 2022), 2위(2010, 2018), 4위(1998, 2006, 2014)는 모두 경험하였으나 유일하게 3위만 기록한 사실이 없다.

  • 조별리그에서 E조로 편성되면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 위 문단의 대회별 조별리그 순위에서 보이듯 E조에 편성되면 조별리그를 통과한다.

  • 16강에서 실점할 경우, 첫 실점은 항상 헤더이다.
- 일본의 16강 진출 횟수가 총 4번인데[87], 실점을 할 때 항상 첫 번째 실점은 헤더였다. 0:0으로 비겨서 승부차기로 갔던 2010년 파라과이와의 16강은 실점이 없었으므로 이 징크스에서 제외.
  • 1. 2002년 터키와의 16강 -> 위미트 다발라에게 선제 헤딩골 실점. 이는 양팀의 유일한 득점으로 기록되며 0:1로 패배 탈락(9위).
  • 2. 2018년 벨기에와의 16강 -> 얀 베르통언에게 만회 헤딩골 실점. 이후 일본은 연달아 골을 내주며 2:3으로 역전패 탈락(15위).
  • 3. 2022년 크로아티아와의 16강 -> 이반 페리시치에게 동점 헤딩골 실점. 그리고 승부차기 끝에 탈락(9위).


8.1.2.1. 깨진 징크스[편집]

유독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깨진 징크스가 많다.

  • 역전승이 없다.
선제골을 넣어 이긴 경기는 있지만, 일단 골을 먼저 먹히면 한 번도 뒤집지 못했다. 오히려 상대에게 당한 역전패만 4번인데 2006년 독일 월드컵 32강 조별리그 1차전 호주와의 경기에서 1:3 역전패, 3차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1:4 역전패를 당한 바 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32강 조별리그 1차전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에서 1:2 역전패, 2018년 러시아 월드컵 16강전에서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2:3 역전패를 당했다.[88] 또한 선제골을 내주고 무승부라도 건져낸 경기조차 2002년 벨기에전과 2018년 세네갈전의 단 2경기 뿐이었다. 하지만 2022 카타르 월드컵 32강 E조에서 독일과 스페인을 상대로 두 차례나 2:1로 역전승을 달성하며 징크스를 깨뜨리는데 성공했다.

  • 전반전에는 리드 당하지 않는다.
21세기에 치른 월드컵 본선 18경기중 2002년의 터키와의 16강전 전반전에 0:1로 리드당한 것을 제외하면 전반전에는 리드당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18경기 중 무려 8경기를 패했기에 반대로 생각하면 대부분 후반전에 결승골을 얻어맞고 졌을만큼 뒷심이 너무나 부족했다. 하지만 2022 월드컵에서는 독일과 스페인과의 경기 모두에서 0:1로 리드당한 채 전반전이 종료되었지만 후반에는 2:1로 역전에 성공하며 이 징크스와는 정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 8년 주기로 16강 진출과 조별리그 탈락을 반복한다.
2002년, 2010년, 2018년 16강에 진출하고 1998년, 2006년, 2014년 조별리그에서 탈락(모두 29위)하며, 징크스가 유지되고 있었으나 2022년에 16강에 진출함으로써 징크스가 깨졌다.

  • 월드컵 우승 경력이 있는 팀과 한 조에 편성되면 무조건 32강 조별리그 탈락
- 일본은 그동안 32강 조별리그 체제에서 여태껏 월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팀과 한 조에 편성되면 무조건 광탈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선 아르헨티나와 한 조에 편성되었는데 이 때 일본은 3전 전패를 기록하며 조 꼴찌로 대회 31등으로 탈락했다.[89]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선 브라질과 한 조에 편성되었는데 이 때에도 크로아티아와 겨우 0:0으로 비기고 호주와 브라질을 상대로 역전패를 당해 1무 2패, 대회 29등의 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징크스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깨졌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은 스페인, 독일과 한 조에 편성되었는데,[90] 스페인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승팀이고, 독일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포함한 4회 우승팀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첫 경기부터 독일을 격침하고 3차점 상대인 스페인을 상대로도 유사한 흐름으로 역전승을 거두어 16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징크스를 극복했다.

  • 톱시드 국가를 상대로 승점을 획득하지 못한다.
- 2002년 개최국 자격으로 자국이 톱시드가 된 대회를 제외하고 모든 대회에서 톱시드를 상대로 승리는 고사하고 무승부도 기록하지 못하며[91] 승점 0점으로 전패했으나, 2022년 톱시드 국가인 스페인을 상대로 2:1 승리를 하며 오랜 징크스를 깨고, 톱시드 국가를 상대로 승점 3점을 획득하였다.[92]

2022년 이전에 깨진 징크스
  • 일본과 편성된 톱시드 국가는 조별리그를 통과한다
- 일본이 월드컵에 등장하기 시작한 1998년부터 2014년까지의 톱시드 국가[93]들은 모두 토너먼트에 진출 하였으나 2018년에 폴란드가 조 4위로 탈락(25위)하며 징크스가 깨졌다.


8.2.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편집]


대회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1992 사우디
진출 실패
1995 사우디
조별리그
6위
2
0
0
2
1
8
1997 사우디
진출 실패
1999 멕시코
2001 한국/일본
준우승
2위
5
3
1
1
6
1
2003 프랑스
조별리그
6위
3
1
0
2
4
3
2005 독일
조별리그
5위
3
1
1
1
4
4
2009 남아공
진출 실패
2013 브라질
조별리그
7위
3
0
0
3
4
9
2017 러시아
진출 실패
합계
준우승 1회
5/9
16
5
2
9
19
25


8.3. 올림픽[편집]


  • 1936 베를린 올림픽[94] : 8위(8강)[95]
  • 1956 멜버른 올림픽 : 10위(1라운드)[96]
  • 1964 도쿄 올림픽 : 8위(8강)[97]
  •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 3위 동메달[98]

U-23 대표팀 체제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9위[99]
  • 2000 시드니 올림픽: 5위
  • 2004 아테네 올림픽: 13위
  • 2008 베이징 올림픽: 15위
  • 2012 런던 올림픽: 4위[100]
  • 2016 리우 올림픽: 10위
  • 2020 도쿄 올림픽: 4위[101]


8.4. AFC 아시안컵[편집]


AFC 아시안컵 대회 순위 : 3위

대회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승점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1956년 홍콩
기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0년 대한민국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1964년 이스라엘
파일:이란 국기.svg
1968년 이란
본선 진출 실패[5개국]
파일:태국 국기.svg
1972년 태국
기권
파일:이란 국기.svg
1976년 이란
본선 진출 실패[6개국]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1980년 쿠웨이트
기권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1984년 싱가포르
파일:카타르 국기.svg
1988년 카타르
조별리그
10위
4
0
1
3
0
6
1
파일:일본 국기.svg
1992년 일본
우승
1위
5
3
2
0
6
3
11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1996년 아랍에미리트
8강
5위
4
3
0
1
7
3
9
파일:레바논 국기.svg
2000년 레바논
우승
1위
6
5
1
0
21
6
16
파일:중국 국기.svg
2004년 중국
우승
1위
6
4
2
0
13
6
14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파일:태국 국기.svg 파일:베트남 국기.svg
2007년 아세안
4위[102]
6
2
3
1
11
7
9
파일:카타르 국기.svg
2011년 카타르
우승
1위
6
4
2
0
14
6
14
파일:호주 국기.svg
2015년 호주
8강
5위
4
3
1
0
8
1
10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2019년 아랍에미리트
준우승
2위
7
6
0
1
12
6
18
파일:카타르 국기.svg
2023년 카타르
조별리그 탈락
24위
3
0
0
3
3
8
0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2027년 사우디아라비아
?
?
?
?
?
?
?
?
?
합계
우승 (4회)
10/18
48
30
12
6
92
44
102

아시안컵 진출 횟수 9번, 최고 성적은 우승 4번, 총성적은 30승 12무 6패, 92득점 44실점으로 아시안컵 서열 순위 2위 한국 다음으로 일본이 3위에 올라있다.[103] 첫 진출은 1988년으로 동남아, 중동 국가들보다 한참 늦었지만 1992년 자국 대회 우승을 기점으로 실력이 급상승하면서 이후로는 아시아 최강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래서 기존 진출국들의 순위를 무섭게 따라잡으며 현재는 3위에 올랐고, 일본에 승점이 앞서는 나라는 이란과 한국 뿐이다.

다른 나라들과의 역대 전적은 아래와 같다.

국가명
전적
대회연도
이란
2승 2무
1988, 1992, 2004, 2019
대한민국
2무 1패
1988, 2007, 2011
중국
4승
1992, 1996, 2000, 2004
사우디아라비아
5승 1패
1992, 2000(2회), 2007, 2011, 2019
쿠웨이트
1패
1996
이라크
2승
2000, 2015
아랍에미리트
1승 2무 1패
1988, 1992, 2007, 2015
우즈베키스탄
3승
1996, 2000, 2019
호주
1승 1무
2007, 2011
카타르
1승 2무 2패
1988, 2000, 2007, 2011, 2019
시리아
2승
1996, 2011
바레인
1승
2004
요르단
1승 2무
2004, 2011, 2015
태국
1승
2004
북한
1무
1992
오만
2승
2004, 2019
베트남
2승
2007, 2019
팔레스타인
1승
2015
투르크메니스탄
1승
2019

지역별 상대 전적은 다음과 같다.

지역
전적
동아시아
4승 3무 1패
서아시아
16승 6무 5패
중앙아시아
6승 2무
동남아시아
4승 1무

일본에 패배를 안긴 국가는 카타르(2패), 대한민국(1패), 아랍에미리트(1패), 쿠웨이트(1패), 사우디아라비아(1패)로 총 다섯팀인데, 이 중에 가까운 이웃이자 라이벌인 대한민국을 제외한 나머지 네 팀은 서아시아 소속이며, 쿠웨이트를 상대로 1경기 뿐이지만 전패를 기록했다. 카타르를 제외하면 전부 1패씩만 당했고, 이 중 3패가 첫 대회인 1988년 카타르에서 얻은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1992년부터 지금까지 최근 8개 대회에서 3패밖에 당하지 않았는데, 이는 전세계 모든 메이저 대회를 통틀어 가장 높은 패배 방어율 기록이다.

일본이 승리를 거둔 적이 있는 나라들은 사우디아라비아(5승), 중국(4승), 우즈베키스탄(3승), 시리아(2승), 이라크(2승), 이란(2승), 오만(2승), 베트남(2승), 카타르(1승), 태국(1승), 바레인(1승), 아랍에미리트(1승), 호주(1승), 팔레스타인(1승), 요르단(1승), 투르크메니스탄(1승)을 기록중이다. 이 중 중국, 우즈베키스탄, 시리아, 이라크, 오만, 베트남, 태국, 바레인, 팔레스타인, 투르크메니스탄까지 총 10팀을 상대로 전승을 기록중이다.

일본이 열세를 보이는 팀들은 대한민국, 쿠웨이트, 카타르 세 팀 뿐이고, 호각세를 이루는 팀들은 아랍에미리트북한이며, 나머지 팀들을 상대로는 전부 우세를 보인다. 일본이 아시안컵에서 가장 많은 승점을 획득한 팀은 사우디아라비아로 6경기에서 무려 15점이나 획득했다. 그 다음으로 4경기 12점을 기록한 중국이 그 뒤를 잇는다. 일본은 중동의 맹주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상대로는 모두 전적 우세를 기록하며 천적으로 군림하지만 이상하게 그보다는 급이 낮은 아랍에미리트나 카타르, 요르단 등을 상대로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아랍에미리트를 상대로는 전적에서 호각세이며 카타르에는 열세, 요르단에는 근소한 우세를 보인다.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은 2000년 당시 12강 조별리그 우즈베키스탄전 8:1 승리, 한 경기 최다 실점 기록은 1988년 당시 10강 조별리그 카타르전 0:3 패배였다.


8.5. EAFF E-1 풋볼 챔피언십[편집]


대회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승점
파일:일본 국기.svg 2003년
준우승
2위
3
2
1
0
3
0
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5년
준우승
2위
3
1
1
1
5
3
4
파일:중국 국기.svg 2008년
준우승
2위
3
1
2
0
3
2
5
파일:일본 국기.svg 2010년
결선리그
3위
3
1
1
1
4
3
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3년
우승
1위
3
2
1
0
8
6
7
파일:중국 국기.svg 2015년
결선리그
4위
3
0
2
1
3
4
2
파일:일본 국기.svg 2017년
준우승
2위
3
2
0
1
4
5
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년
준우승
2위
3
2
0
1
7
2
6
파일:일본 국기.svg 2022년
우승
1위
3
2
1
0
9
0
7
합계
우승(2회)
9/9
27
13
9
5
46
25
48


8.6. 코파 아메리카[편집]


  • 1999년 대회에 초청받아 출전하였다. 99코파 12개국 본선에서 일본은 승점 1점 1무 2패 10등을 기록했다.[104]

  • 2019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 12개국 본선에서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과 함께 초청받아서 아쉽게 8강은 실패했으나, 일본 승점 2점 2무 1패 9등, 카타르 승점 1점 1무 2패 10등을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두 팀이 2019 AFC 아시안컵 결승에서 맞붙었는데, 카타르가 일본을 3:1로 이기며 아시안컵 첫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주전급 선수들이 상당수 빠지고, 몇몇 주전급에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한 차원에서 23세 이하의 어린 선수들로 선수단을 꾸려서 갔다.


8.7. 아시안 게임[편집]




9. 청소년 대표팀[편집]



9.1. U-23 대표팀[편집]



9.1.1. AFC U-23 아시안컵[편집]


연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파일:오만 국기.svg
오만 2014
8강
7위
5
4
1
2
1
7
4
파일:카타르 국기.svg
카타르 2016
우승
1위
18
6
6
0
0
15
4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2018
8강
5위
9
4
3
0
1
5
5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2020
조별리그
15위
1
3
0
1
2
3
5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우즈베키스탄 2022
4강
3위
13
6
4
1
1
12
3
파일:카타르 국기.svg
카타르 2024
?
?
?
?
?
?
?
?
?
굵은 글씨는 올림픽 진출권이 걸린 대회
합계
우승 (1회)
5/5[105]
46
23
14
4
5
42
21


9.2. U-20 대표팀[편집]



9.2.1. FIFA U-20 월드컵[편집]


연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파일:튀니지 국기.svg
1977년 튀니지
예선 탈락
파일:일본 국기.svg
1979년 일본
조별리그
12위
2
3
0
2
1
1
2
파일:호주 국기.svg
1981년 호주
예선 탈락
파일:멕시코 국기.svg
1983년 멕시코
파일:소련 국기.svg
1985년 소련
파일:칠레 국기.svg
1987년 칠레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1989년 사우디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1991년 포르투갈
파일:호주 국기.svg
1993년 호주
파일:카타르 국기.svg
1995년 카타르
8강
7위
4
4
1
1
2
6
6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1997년 말레이시아
8강
8위
7
5
2
1
2
12
9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1999년 나이지리아
준우승
2위
13
7
4
1
2
11
9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2001년 아르헨티나
조별리그
17위
3
3
1
0
2
4
4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2003년 아랍에미리트
8강
6위
9
5
3
0
2
6
10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2005년 네덜란드
16강
16위
2
4
0
2
2
3
5
파일:캐나다 국기.svg
2007년 캐나다
16강
9위
8
4
2
2
0
6
3
파일:이집트 국기.svg
2009년 이집트
예선 탈락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2011년 콜롬비아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2013년 터키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2015년 뉴질랜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년 대한민국
16강
14위
4
4
1
1
2
4
6
파일:폴란드 국기.svg
2019년 폴란드
16강
13위
5
4
1
2
1
4
2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2023년 아르헨티나[106]
조별리그
18위
3
3
1
0
2
3
4
합계
준우승 (1회)
11/23[107]
60
46
16
12
18
60
60

1999년 나이지리아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두었다.

2009년, 2011년 대회는 대한민국에 지는 바람에 아시아 지역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으며, 2019년 대회에서도 16강에서 오세훈의 헤더 득점에 힘입은 대한민국에 0:1로 지면서 8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9.2.2. AFC U-20 아시안컵[편집]


연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AFC youth championship 대회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1959 말레이시아
결선리그
3위
6
4
2
0
2
12
11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1960 말레이시아
3위[108]
7
4
2
1
1
10
11
파일:태국 국기.svg
1961 태국
조별리그
9위
1
4
0
1
3
4
8
파일:태국 국기.svg
1962 태국
조별리그
8위
3
4
1
0
3
4
9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1963 말레이시아
조별리그
10위
4
5
1
1
3
8
13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1964 남베트남
조별리그
7위
1
3
0
1
2
1
4
파일:일본 국기.svg
1965 일본
조별리그
5위
6
4
2
0
2
8
4
파일:필리핀 국기.svg
1966 필리핀
조별리그
12위
0
4
0
0
4
2
13
파일:태국 국기.svg
1967 태국
조별리그
13위
0
3
0
0
3
2
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8 대한민국
1라운드
11위
1
3
0
1
2
0
6
파일:태국 국기.svg
1969 태국
8강
6위
3
3
1
0
2
5
11
파일:필리핀 국기.svg
1970 필리핀
4강
4위
7
6
2
1
3
5
13
파일:일본 국기.svg
1971 일본
4강
4위
13
6
4
1
1
13
2
파일:태국 국기.svg
1972 태국
8강
7위
8
5
2
2
1
12
5
파일:이란 국기.svg
1973 이란
준우승
2위
5
5
1
2
2
5
6
파일:태국 국기.svg
1974 태국
8강
6위
6
4
2
0
2
9
4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1975 쿠웨이트
조별리그
10위
6
4
2
0
2
10
5
파일:태국 국기.svg
1976 태국
조별리그
10위
5
4
1
2
1
2
4
파일:이란 국기.svg
1977 이란
4강
4위
5
5
1
2
2
8
6
파일:방글라데시 국기.svg
1978 방글라데시
조별리그
11위
4
4
1
2
1
8
6
파일:태국 국기.svg
1980 태국
결선리그
3위
6
4
2
0
2
4
5
파일:태국 국기.svg
1982 태국
예선 탈락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1985 UAE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1986 사우디
파일:카타르 국기.svg
1988 카타르
조별리그
7위
0
3
0
0
3
3
7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1990 인도네시아
조별리그
5위
4
3
1
1
1
5
4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1992 UAE
4강
3위
6
5
3
0
2
8
4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1994 인도네시아
준우승
2위
12
6
4
0
2
9
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 대한민국
4강
4위
10
6
3
1
2
12
6
파일:태국 국기.svg
1998 태국
준우승
2위
10
6
3
1
2
18
10
파일:이란 국기.svg
2000 이란
준우승
2위
10
6
3
1
2
15
8
파일:카타르 국기.svg
2002 카타르
준우승
2위
13
6
4
1
1
11
4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2004 말레이시아
4강
3위
9
6
3
0
3
10
3
파일:인도 국기.svg
2006 인도
준우승
2위
11
6
3
2
1
12
6
AFC U-19 챔피언십 대회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2008 사우디[109]
8강
6위
7
4
2
1
1
10
6
파일:중국 국기.svg
2010 중국
8강
5위
9
4
3
0
1
11
4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2012 UAE
8강
8위
4
4
1
1
2
2
4
파일:미얀마 국기.svg
2014 미얀마
8강
5위
7
4
2
1
1
7
5
파일:바레인 국기.svg
2016 바레인
우승
1위
14
6
4
2
0
13
0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2018 인도네시아
4강
3위
12
5
4
0
1
15
5
AFC U-20 아시안컵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2023 우즈베키스탄
4강
3위
13
5
4
1
0
11
4
합계
우승 (1회)
38/41[110]
121
173
74
30
69
304
236


10. 주요 선수[편집]



10.1. 현재[편집]




10.2. 레전드[편집]




11. 한국인 선수[편집]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007271001210107000001070100-001.jpg

파일:jpa.png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스웨덴전 선발 명단[112]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한 해 앞둔 1935년, 일본은 국내 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대표팀 선수단을 차출하려고 하였다.

이 때 경성축구단이 1935년 제1회 전일본종합축구선수권대회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조선인 축구 선수를 뽑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김용식, 김영근이 차출되어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하였고 그 이후에도 일본령 조선의 축구 선수가 여러 차례 일본 대표팀에서 뛰었다.



12. 라이벌[편집]



12.1. 대한민국[편집]


자세한 내용은 한일전/축구, 도쿄 대첩 항목 참조

광복 이전인 1942년에 경성(현재의 서울)에서 ‘조선’ 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5:0으로 승리한 적이 있지만, 대한민국 독립 이전이었기 때문에 양국의 축구협회 모두 이걸 공식 A매치로 취급하지 않는다.

최초의 한일전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지역 예선 경기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입국 거부로 인해 한국에서 치러야 하는 경기도 일본에서 치러야 했는데 출국을 앞두고 '지면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선수단 모두가 서명을 했고, 결국 아시아 예선[113]에서 일본에 승리하고 돌아오자(5:1승, 2:2무, 1승 1무) 성대한 퍼레이드와 함께 전국적인 환영을 받았으며, 대한민국은 54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하였다.

오랜 기간 동안 일본은 한국에 비해 현저한 열세에 있었으나 1990년대 초부터 J리그의 출범 및 미우라 카즈요시를 필두로 하는 브라질 유학파들의 성장에 힘입어 단기간에 전력을 따라잡았다. 1992년 다이너스티컵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한국이 패배하는 일이 벌어지자 국내에서도 그동안 얕봤던 일본의 전력 상승을 우려하기 시작했고, 기어이 1993년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일본한테 0:1로 패배해 24강 본선 실패 직전까지 몰리는 사태가 오자[114] 한국도 일본 축구의 성장을 인정하고 본격적으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한일 양국 어느 쪽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팽팽한 라이벌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과의 역대 전적은 81전 16승 23무 42패[115]로 일본의 열세이다. 또한, 한국은 일본이 가장 많이 A매치에서 맞붙은 나라이다. 2010년대에는 2010년 동아시안컵의 한일전 패배와 2010년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사이타마 스타디움에 열린 한일전에서 유명한 박지성의 산책 세레모니 굴욕과 함께 0:2로 패배했지만 2011년 조광래호 시절 한국이 0:3 대패 당하는 삿포로 참사가 있었고, 2013년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대회에서 2:1로 승리했다. A매치는 아니지만 2012런던올림픽 축구에서 유일하게 세계 메이저 대회 한일전이 펼쳤고 당시 일본은 피파랭킹 1위 스페인까지 격파하여 압승이 예상되었으나, 한국이 2:0으로 승리하여 첫 동메달을 차지하였고, 2017년에는 한국과 일본 모두 러시아월드컵 본선[116] 진출을 달성한 이후 신태용감독의 한국이 2017일본동아시안컵 도쿄에서 알제리 쇼크할릴호지치 감독의 홈팀 일본을 4:1로 꺾고 우승했다.[117] 2019년 동아시안컵에서는 양쪽 모두 해외파가 결장한 상태에서 일본이 한국에게 0:1로 패배하였으나, 2021년 3월 요코하마에서 열린 80번째 한일전에서 손흥민이나 황의조 등 주력 해외파가 빠진 한국에 3:0으로 승리했으며 황선홍이 이끄는 U-23 대표팀의 2022 AFC U-23 아시안컵 한일전 0:3 패배에 의한 대회 8강 탈락에 이어 2022 EAFF E-1 풋볼 챔피언십에서 또다시 3:0으로 완승을 거두면서 아챔에서 한국팀이 일본팀을 여러차례 승리한것과는 다르게 국대 한일전에서는 한국이 일본에 밀리는 형세가 되었으며, 그러다가 9월 대한민국 안양에서 열린 덴소컵 대학국대매치에서 한국이 일본에게 3:2로 승리하였다.[118] 그리고 2023년 8월 17일 일본 쿠사나기 스타디움에 열린 U18매치 한일전 sbs컵에서 1:0으로 승리하여 최근 국대 참패들을 극복하고 있다.[119]

양국의 과거사까지 겹쳐 팽팽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지만 경기 외적인 뒤끝은 별로 없다. J리그나 유럽 리그에서 한솥밥을 먹던 선수들도 많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지역예선 이후로는 지역 예선에서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소위 숙명의 라이벌 치고는 극심한 부담감과 불쾌한 뒷맛으로 이어지진 않았다.[120] 대부분 평가전이나 동아시아컵 같은 대회에서 만났고 극심한 부담감을 가질만한 경기들은 대개 연령별 대표팀에서 만났다.


12.2. 호주[편집]


호주 국가대표팀 서포터즈와 일본 국가대표팀 서포터즈는 서로 도발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다.

시초는 호주 국가대표팀 서포터즈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이었던 이란전에서, 경기에 상관없던 제3자 일본을 향해 갑작스러운 도발 현수막을 내건 사건이었다.

파일:20220928_140842.jpg
Nippon Forever In Our Shadow (일본은 영원한 우리의 그림자)
심지어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소문에 의하면 호주 국가대표팀 서포터즈는, '일본은 영원한 우리의 그림자이며, 우리의 2중대야'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세번째 도발은, 2015 아시안컵 결승전의 상대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임에도 불과하고 경기에 상관없는 삼자였던 일본을 향해 난데없이 똑같은 루트로 또 도발 현수막을 내걸었다.
파일:f0f54cb1.jpg
그러자 이에 참다못한 일본 국가대표팀 서포터즈 역시,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을 결정짓는 최종예선에서, 정면으로 반박했다.

파일:20220928_140839.jpg
AUS Forever In Our Shadow (호주는 영원한 우리의 그림자)
결국 호주 국가대표팀 서포터즈의 계속된 도발 현수막으로 인해, 일본과 호주 국가대표팀 서포터즈는 서로 도발 현수막을 주고받는 관계로 이어졌다.

또한 근래에는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이란, 일본은 호주를 계속 만나면서 한국-이란, 일본-호주 간의 축구 라이벌리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13. 관련 문서[편집]




1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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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우승국
우승연도
우승 횟수
1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대한민국
1956, 1960
★★
2회
2
파일: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이스라엘[1]
1964

1회
3
파일: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이란
1968, 1972, 1976
★★★
3회
4
파일:Kuwait_FA.png
쿠웨이트
1980

1회
5
파일: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사우디아라비아
1984, 1988, 1996
★★★
3회
6
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일본
1992, 2000, 2004, 2011
★★★★
4회
7
파일:Iraq_National_Team_Badge.png
이라크
2007

1회
8
파일: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호주
2015

1회
9
파일:카타르 축구 협회 로고.svg
카타르
2019

1회
[1] 1976년 AFC에서 축출, 현재는 UEFA 소속.




[1] 일본어: 삿까 닛뽄 다이효 (Sakkā Nippon Daihyō)
한자 히라가나 표기: サッカーにっぽんだいひょ
[2]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하며 발표한 별칭.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앞두고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이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브랜드 명을 발표한 것을 참고해 만들었다. 그러나 사무라이 블루라는 말 자체는 사무라이 재팬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예로 2006년 밴드 ZZ가 발표한 월드컵 응원가 이름이 사무라이 블루다.[3] 스포츠적 경쟁 의식은 물론 양 국가의 국민 감정이 얽혀 있어 세계적으로도 치열한 라이벌 매치이다. 2000년대 이전에는 한국 대표팀이 단지 일본이라는 이유 때문에 죽기 살기로 뛰는 등 축구 외적인 라이벌 구도가 강했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과거 같은 살벌한 분위기는 없어졌지만 일본의 전력이 크게 올라 대한민국과 대등해지면서 축구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라이벌로 변화했다. 자세한 내용은 한일전/축구, 도쿄 대첩 참고.[4] 다만 2010년 이후 한일 평가전은 잘 안 열린다. 동아시안컵에서 만나기도 하고 평가전 잡았다가 지면 후폭풍이 크니 서로 꺼린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이상하게 만나지를 못한다. 주로 대한민국은 이란, 일본은 호주나 사우디와 매칭이 잘 잡힌다.[5] A B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6] A B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7] 대한민국은 프로축구가 일본보다 10년 이른 1983년에 출범했다. 1980년대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 격차를 고려하면 일본 프로축구 출범이 굉장히 늦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8] 이 당시 일본이 받은 충격은 말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움란 자파르의 동점골이 기록되는 순간 일본 선수들은 그대로 그라운드에 누워버렸고 본국에서 TV를 통해 응원전을 펼치던 팬들 역시 그대로 굳어졌다. 그리고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면서 일본 전역은 울음바다가 되었다.[9] 대표팀이라지만 사실은 선발 과정을 거친 대표팀이 아닌 대학교(현재의 쓰쿠바대학) 축구부였다.[10] 알칸타라는 FC 바르셀로나에서 399경기 395골로 경기 당 거의 1득점씩을 기록한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플레이어였고 당연히 리오넬 메시가 경신하기 전까지는 구단 역사상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11] 필리핀에는 최다 실점 패 기록이다.[12] 여담으로 라이벌 대한민국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스웨덴전 0:12 패가 한 경기 최다 실점, 2003년 아시안컵 예선 네팔전 16-0 승리가 한 경기 최다 득점이다. 중국은 2012년 브라질에 당한 0:8 패배가 한 경기 최다 실점, 2000년 을 상대로 거둔 19:0 승리가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지만, 괌에게 한 경기 최다 실점 기록을 안겨준 팀은 2005년에 21:0으로 이긴 북한이다. 북한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에 당한 0:7 패배가 한 경기 최다 실점인데, 애초에 중국과 북한은 오랫동안 국제대회에서 빠졌기 때문에 일본과 한국보다 참가한 경기 수가 적다.[13] 16개국 본선 진출 대회[14] 2018월드컵 일본 16강(15위) 감독.[15] 당시 나이지리아에는 본프레레가 있었으며, 금메달은 나이지리아, 은메달은 아르헨티나, 동메달은 브라질이었다.[16] A B C D E F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17] 월드컵 우승국, 각 대륙 우승국, 개최국이 진출한 8개국 본선 대회[18] 당시 호주 대표팀의 감독은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였다. 그리고 일본을 꺾은 호주는 역사상 처음으로 16강 진출했고 16강에서도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를 상대로 0-1로 아쉽게 패배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19] 파라과이도 그 힘든 남미 예선을 통과한 팀으로 우승팀 스페인마저 8강에서 1:0으로 힘겹게 승리를 거둔 만큼 만만하지 않은 팀이었다.[20] 여기를 참조. 당시 감독은 알베르토 자케로니였다.[21] 조별리그에서는 카메룬 1:2 패, 미국 3:1 승, 잉글랜드 2:0 승, 8강전 멕시코 2:0 승, 준결승전 우루과이 2:1 승, 결승 스페인 0:4 패[22] 이 당시 멤버들이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1979년생 동갑내기 다카하라 나오히로, 이나모토 준이치, 모토야마 마사시, 오노 신지, 빠른 1980년생 엔도 야스히토가 멤버였다.[23] 3라운드이기 때문에 월드컵으로 치면 월드컵 8강급이다.[24] A B C D E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25] 일례로 FC 바르셀로나는 브라질과 맞대결을 가졌고, AC 밀란이나 유벤투스 FC가 1996년에 방한해 대한민국과 경기를 가진 적도 있다. 2002년 월드컵 개막 직전에도 대구에서는 월드컵 개막 기념 행사로 포항 스틸러스(대구 FC는 월드컵 이후인 2003년에 창단한 팀이라 당시에는 없었기에 연고지가 포항으로 가까운 포항 스틸러스가 경기를 가졌다.)가 카메룬 대표팀과 경기를 했다. 하지만 이후 국제 축구 연맹에서 클럽과 대표팀 간의 경기를 지양하면서 현재는 월드컵과 같은 큰 대회 직전의 연습경기를 제외하면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친선전은 전무한 상태이다.[26] 가장 오래 감독으로 역임한 팀은 3년 8개월 동안 있었던 프랑스 리그 1LOSC 릴이었고, 3년 1개월 동안 있었던 알제리 대표팀이 뒤를 이었다.[27] 한국전 2승 1무로 유일하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못 이겨본 감독이다. 우리에게 있어 악몽같은 2011년 삿포로 참사와 2013년 동아시안컵을 이긴 감독이며, 그나마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4강전 무승부가 있지만 그마저도 승부차기에서 0:3으로 졌다. 그만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천적이었다.[28] 일본에서는 2002년 한국의 4강 진출을 몹시 부러워하는 입장이기에 매 대회마다 4강의 성적을 부르짖곤 해서 저 발언을 정말 할릴호지치가 했는지, 협회 측의 발언인지, 일본 언론의 설레발인지 따져볼 일이다.[29] 2006년 독일 월드컵 호주전(1:3)과 브라질전(1:4),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코트디부아르전(1:2), 그리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벨기에전(2:3).[30] 니시노 아키라는 1994년에 일본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아 일본을 28년만에 올림픽 본선에 올려놓은 바 있고, J리그에서도 가시와 레이솔, 감바 오사카, 비셀 고베,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감독을 지내며 통산 270승(2018년 현재 J리그 전현직 감독 중 통산 최다승)을 거둔 베테랑 감독이다. 감바 오사카 감독 시절이던 2008년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31] 코로나 사태로 인해 실제 경기는 2021년에 이루어졌다.[32] PK나 상대의 퇴장 등의 상황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그럴 것도 없다. PK를 얻어내는 것도 결국 우리 편이 상대 위험지역에서 공격을 전개했다는 것이며, 상대의 퇴장으로 인한 수적 우위 상황인 것도 상대방의 자멸적 행위인 것이다.[33] 2002년 9위, 2010년 9위, 2018년 15위.[34] 카타르 월드컵에서의 활약상은 모리야스 재팬 문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35] 특히 코트디부아르전을 제외한 3경기 모두 후반에 3골 이상씩을 허용하며 역전패하였다.[36] 그동안의 일본 선수들은 단순히 피지컬에서 약점만 보였던 것이 아니라 상대와의 경합에서 소극적이진 않더라도 적극적이진 못한 면 역시 크다. 일본산 스포츠 만화나 드라마 등에서 유달리 근성이니 뭐니 강조하지만 이는 포기하지 않는 끈기나 지구력에 가깝지 눈앞에 있는 상대를 강압적으로라도 제압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본문의 내용대로 최근 일본 축구계가 피지컬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지만 이러한 심리적 요소의 중요성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도 있다. 한일 축구계가 아직도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분야가 바로 이러한 스포츠심리학적 요소들이다.[37] 대표적으로 2010년, 2018년, 2022년의 모습이 딱 이랬다.[38] 이 정도의 수비는 뛰어난 드리블링과 빠른 슈팅 타이밍을 가진 포워드가 없으면 깨기 힘들다. 아니면 전성기 바르샤의 '세 얼간이(샤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급의 황금 미드진을 갖추던가.[39] 참고로 일본 야구는 피지컬 문제로 컨택트와 제구를 매우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40] 볼 경합시 몸싸움, 볼 탈취 등 상대에 대한 직접적 압박과 투쟁심 등을 가리킨다.[41] 전방 압박과 볼 탈취 등.[42] 한국 또한 1990년대에는 윙어에서 보직 이동한 하석주의 공격 가담을 톡톡히 활용했다. 그러나 한국은 허정무호 이전에는 일자 수비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윙백은 수비수로 취급하지 않았다.[43] 일례로 J리그 최고의 파이터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정대세는 분데스리가2 시절에는 그냥 '발이 빠른 선수'로 불렸다. 거친 압박이 대세인 K리그에서 뛰던 국내 공격수들이 J리그로 가면 하나같이 득점이 올라가는 게 압박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조재진이다. 하지만 압박이 거의 없고 패싱 게임 위주의 J리그에서 뛰다가 몸싸움 능력이 퇴화하는 국내 공격수와 미드필더도 상당히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어린 선수들의 J리그 진출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다.[44] 오해하면 안 된다. 일본의 외국계, 귀화선수들은 애초에 일본 혼혈이거나 일본에서 오래 활약한 탓에 선수 본인들이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애정이 크고 무엇보다 일본어 구사능력이 매우 높아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요소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귀화를 시도했던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의 국적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실력적으로 한국 대표팀에 큰 이점이 없었으며, 실력을 갖췄음에도 K리그 외의 다른 나라 리그로의 임대나 이적문제로 거주기간 요건 미충족, 선수 본인의 경기력 저하, 결정적으로 한국어 구사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져서 기존 선수들과의 즉각적인 의사소통 문제 등 대표팀 케미스트리에 방해되는 요소들이 잔뜩 산재해서 결과적으로 흐지부지 된 것이지 한국 사회나 대표팀 분위기나 외국계나 혼혈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 아니다.[45] 설령 한국이 요구하는 요건을 갖춰 귀화를 했어도 귀화전 본래 국가의 대표팀 경기에 출전한 적이 있거나 나이가 너무 많고 기량이 떨어져서 귀화와 무관한 실력 문제로 대표팀에 차출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언어 문제가 큰데, 한국과 K리그에 애정이 큰 외국인 선수들조차도 한국어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한국어 공부에 지나치게 소홀했다.[46] 1977년부터 요미우리 즉 현재의 도쿄 베르디에서 뛴 일본 최초의 외국인 축구 선수. 영화 <버블로 GO! 타임머신은 드럼 방식>에서 1990년으로 돌아간 주인공이 이 사람과 마주하는데 디스코장에서 춤춘다. 미래에서 온 주인공이 도하에서 후반전 추가시간에 코너킥에 주의하라고 조언해준다.[47] Alessandro dos Santos[48] 리 타다나리(한국명 이충성)는 원래 재일교포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태어난 나라인 일본을 선택했다. 일본에서 태어났으니 혈통과는 별개로 일본어와 일본의 문화와 정서가 본인에게는 더 익숙했을 것이다. 2011 아시안컵에서 결승전 결승골로 일본에 우승컵을 안기기도 했다.[49] 당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ADO 덴하흐에서 뛰었고 현재는 J리그 비셀 고베로 복귀했다. 덴하흐 시절 2015-2016 시즌에는 리그 16골로# 유럽 주요 리그 일본인 최다 득점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고, 강한 피지컬과 큰 키를 통한 높은 제공권을 갖춘 선수다.[50]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아프가니스탄전에 후반 교체 출장했다.#[51] 사실 니시카와 슈사쿠, 히가시구치 마사아키, 나카무라 고스케 등 일본의 서브 골키퍼들도 J리그에서는 최정상급 골키퍼들이다. 물론 국제 경기 경험이 적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당장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맹활약한 한국의 조현우만 해도 러시아 월드컵 전까지는 국제 경기 경험이 많은 골키퍼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카무라 고스케의 경우 J리그 뿐만 아니라 2016 리우 올림픽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준 골키퍼라 일본 내에서는 러시아 월드컵에서 가와시마 대신 나카무라 고스케를 주전 골키퍼로 기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다.# #[52] 다만 가와시마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16강 벨기에 전에서 두 차례의 슈퍼 세이브를 해내기도 했으며, 조별리그 3차전 베스트 11 골키퍼 부문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기본 실력만큼은 여전히 아시아에서는 손꼽힐만한 골키퍼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덧붙여서 가와시마가 이번 월드컵에서 끝까지 주전으로 기용된 건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 유난히 베테랑을 중용했기 때문인 점도 있다.#[53] 당시 일본은 중일전쟁이 한창이라 축구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54] 추축국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 서독, 동독과 함께 대회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다. 물론 당시 일본 전력상으로는 아쉬울 것도 없었다.[55] 일본 도쿄에서 치러진 아시아 예선에서 대만도 기권하고 대한민국과 1,2차전을 치렀으며, 도쿄에서 대한민국한테 1차전 1:5 참패, 2차전 2:2무승부로 탈락하여 결국 54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했다.[56] 1라운드 대한민국과의 홈(2-0), 원정(1-2) 2패로 탈락하였다.[57] 1차예선에서 호주, 대한민국에 이어 3위로 탈락.[58] 1라운드 A조 준결승에서 이스라엘에 패하였다.[59] 1라운드 2조에서 대한민국, 이스라엘에 밀려 최종예선에 오르지 못했다.[60] 1라운드를 4개조로 나눠 각조 1위가 최종 예선에 오르는 방식이었는데, 4조 준결승에서 북한에 패하여 최종예선에 오르지 못했다.[61] 최종예선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1차전은 1:2로 패배, 2차전은 0:1로 패배하며 24강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62] 1라운드 6조에서 북한에 밀려 최종예선에 오르지 못했다. 홍콩과의 두경기를 0-0 2무로 마무리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63] 예선 때 도하의 비극이 일어났다. 경기 종료를 10초 남겨두고 이라크에게 동점골을 헌납했고 대한민국과 승무패가 같았으나 득실차에서 밀려 아시아 3위로 탈락하여 24강 본선 94월드컵에 진출 실패[64] 월드컵 본선 진출 비율[65] 역대 월드컵에서 한국은 38전 7승 10무 21패, 39득점 78실점에 총 승점 31 월드컵 서열 26위다. 다만 총 골득실에서는 일본이 -8점으로 한국의 -39점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한편, 전적상으로 무승부로 처리되는 승부차기에 있어 한국은 1승(2002 8강 스페인전), 일본은 2패(2010 16강 파라과이전, 2022 16강 크로아티아전)가 있다.[66] 한국도 일본을 이기고 진출한 1954 월드컵 16개국 본선 진출까지 합하면 16강 이상 진출 총 3회이나, 1954 월드컵 당시는 1라운드 16강 조별리그였다.[67] 승점/경기횟수를 나눈 점수[68] 승부차기에서 3 : 5 패배 탈락했다. 다만 승부차기 패배 탈락은 전적상으로는 무승부로 기록되기 때문에 무승부로 표기한다.[69] 2022년 승부차기에서 1 : 3 패배 탈락했다. 다만 승부차기 패배 탈락은 전적상으로는 무승부로 기록되기 때문에 무승부로 표기한다.[70]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호주는 오세아니아 팀이었다. 2026년까지 오세아니아 국가에게 유일하게 패가 있는 국가이며(2022 월드컵은 오세아니아 국가가 진출하지 못하여 2026년까지 유지), 2번째가 언제 나올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2026년부터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48개로 확대되어 오세아니아 국가에게 1장의 티켓이 부여되므로 바로 2026년에 나올 가능성도 있다.[71] 이 경기로 인해 아시아 최초로 한 경기에 3골 넣고 승리를 거둔 팀이 되었다.[72] 라이벌 한국이 잉글랜드를 제외하곤 우승 경험국들을 전부 마주한 사실을 생각하면 적은 편이었다. 참고로 한국은 2018년까지 브라질과의 매치가 없었으나, 2022년 16강에 진출하여 처음으로 맞붙었다.[73] 한국 축구에 있어 아시안컵 징크스와 같이 일본 축구에 있어 최대의 아킬레스건이다.[74] 16강전에서 서로 격돌했다.(1:0으로 터키 승)[75] 이 당시 호주는 OFC 소속이었다.[76] 16강전에서 서로 만났으며 파라과이가 일본에 승부차기로 승리했다.(PSO-5:3 파라과이 승)[77] 2018년에 2:1로 이기며 복수에 성공했다.[78] 16강전에서 서로 격돌했다.(3:2로 벨기에 승)[79] 16강전에서 서로 만났으며, 크로아티아가 일본에 승부차기로 승리했다.(PSO-3:1 크로아티아 승)[80] 이는 2018년 월드컵까지 모든 아시아 국가들에 해당되는 내용이었지만 2022년에 메흐디 타레미, 조규성이 달성하며 이란과 한국에서는 깨졌다. 참고로 호주의 팀 케이힐이 2006년에 멀티골을 기록한 전례가 있지만 당시 호주는 오세아니아 소속이었다.[81] 2002년은 벨기에와 비겼음에도, 16강 진출에 성공했다.[82] 1998년 31위, 2006년 29위, 2014년 29위.[83] 한국의 경우 2006년과 2018년에 1승에 성공했으나 조별리그 탈락을 경험했다.[84] 심지어 2006년 대회의 아프리카 팀은 튀니지를 제외하고 전부 다 첫 본선 진출국이었다.[85] 실제 크로아티아가 월드컵 무대에서 가장 많은 승점(5점)을 챙긴 상대가 바로 일본이다.[86] 개최국 자격으로 탑시드 배정[87] 2002년 9위(16강), 2010년 9위(16강), 2018년 15위(16강), 2022년 9위(16강)[88] 이는 라이벌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역전패를 당한 것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32강 조별리그 1차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하석주가 선제골 넣고 퇴장당해 1:3으로 역전패한 경기가 유일하고, 오히려 역전승을 거둔 것만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2:1 역전승, 2006년 독일 월드컵 32강 조별리그 1차전 토고와의 경기에서 2:1 역전승까지 2번 있었다는 것과 비교된다.[89] 참고로 경기 내용을 보면 1998 월드컵은 졌잘싸에 가까웠다. 세 경기 모두 1점차로 패했고, 자메이카전에서 나카야마가 일본의 월드컵 첫 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0:1, 0:1, 1:2) 다만, 똑같이 월드컵에 첫 진출하였고 본선을 앞두고 한국과의 평가전에서도 패한 바 있어 그나마 1승 상대로 여겨지던 자메이카전마저 패하면서 어느 정도 욕을 먹었다. 참고로 자메이카는 이 대회 이후 본선 진출을 못하고 있다.[90] 1986년 대한민국이 아르헨티나, 이탈리아와 한 조에 편성된 것과 유사하다.[91] 1998 - 아르헨티나 0:1 패, 2006 - 브라질 1:4 패, 2010 - 네덜란드 0:1 패, 2014 - 콜롬비아 1:4 패, 2018 - 폴란드 0:1 패[92] 이웃국가인 대한민국은 2022 이전까지 승점 5점(1994 - 스페인 2:2 무, 2006 - 프랑스 1:1 무, 2018 - 독일 2:0 승)이었으며, 2022년에 포르투갈을 2:1로 승리하며 8점이 되었다.[93] 1998년 아르헨티나 - 8강(6위), 2002년 일본(개최국 자격) - 16강(9위), 2006년 브라질 - 8강(5위), 2010년 네덜란드 - 준우승, 2014년 콜롬비아 - 8강(5위)[94] 이 시절 올림픽 축구는 1930년에 출범한 월드컵과 함께 A매치 세계 메이저 대회였다. 다만 올림픽 축구는 이후 그동안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미루어졌던 1950 월드컵이 다시 시작되면서 월드컵과 올림픽의 격차가 커지면서 올림픽 축구는 유럽과 남미팀들에게 메이저대회로 평가 받지 못하였고, 1950년대 이후로 월드컵과 차이가 나면서 주로 공산국가에서 메달을 차지하면서 축구계에서 위상이 현저히 낮고 1950년대 이후로는 프로팀과 아마추어팀의 격차가 커졌다.[95] 첫 진출임에도 16개국 본선 16강 토너먼트에서 강호 스웨덴을 3-2로 이기며 "베를린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참고로 한국 축구계의 대부인 김용식이 미드필더로 출전한 대회였다. 그리고 8강전 금메달팀 이탈리아에게 0:8로 패하여 일본은 아시아 최초로 메이저 대회 8강 8위를 기록하였다.[96] 1라운드(5개국이 기권해 11개국 진출)에서 0-2으로 호주에게 패했다.[97] 개최국 자격으로 진출하였고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를 3:2로 이겼다.[98] 16개국 본선 16강 조별리그에서 브라질에 1:1 승점 1점, 나이지리아를 3:1 승리, 스페인에 0:0 승점 1점 기록, 8강에서 프랑스에 3:1 승리, 4강에서 금메달팀 헝가리에 0:5 패하여 동메달전에서 홈팀 멕시코를 2:0 승리하여 일본은 동메달을 획득했다.[99] 니시노 아키라(2018월드컵 일본 16강 15위 감독)감독의 U-23 일본 대표팀이 아시아 최초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에서 피파랭킹 1위이자 마리우 자갈루 감독의 호나우두 브라질을 1:0으로 이기는 이변을 일으키고 뒤이어 헝가리도 이겼으나, 금메달팀 나이지리아(당시 나이지리아에는 본프레레가 있었으며, 은메달은 아르헨티나, 동메달은 브라질이었다.)에 패하여 2승 1패 대회 9위로 8강은 실패했다.[100] 3위 결정전에서 대한민국에 0대2로 패배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자세한 내용은 2012 런던 올림픽/축구(남자)/동메달 결정전 항목 참조.[101] 3위 결정전에서 멕시코에 1대3으로 패배하며 멕시코한테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동메달전의 복수를 당했고,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자세한 내용은 2020 도쿄 올림픽/축구(남자)/동메달 결정전 항목 참조.[102] 4강전 탈락 후 3,4위전 최종 4위[103] 1위는 이란, 4위가 중국[104] 이 대회에서 일본은 죠 쇼지를 비롯한 기존의 국가대표 멤버들이 1999년 나이지리아 청소년 월드컵에서 준우승한 황금세대로 대부분 물갈이 되었다. 살아남은 건 공격수인 나카야마 정도. 이렇게 물갈이 된 일본을 트루시에가 시드니 올대를 겸해 단련시켜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을 우승하는 등 좋은 전력으로 올려놓아, 2002년 월드컵에서 일본 최초로 16강 9위를 기록했다.[105] AfC U-23 아시안컵 본선 진출 비율[106] 2021년 대회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취소[107] FIFA U-20 월드컵 본선 진출 비율[108] 4강전에서 탈락 후 3,4위전 최종 3위[109] 이 대회부터 3.4위전 폐지[110] AFC U-20 아시안컵 본선 진출 비율[111]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표팀 자격으로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12] 왼쪽 하프백(LH)으로 김용식이 보인다.[113] 그 후 한국도 54월드컵 16개국 본선에서 헝가리와 터키에 참패탈락(16위)하자 피파는 아시아 수준이 16개국 본선에 진출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58월드컵 16개국 본선부터는 지역예선에서 아시아+타 대륙 합동예선으로 바꾼다.[114] 요즘이야 A매치에서 일본을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고 최종예선에서 만나기엔 부담스러운 상대이지만, 당시만 해도 지역예선에서 일본에게 진 적이 없었고 지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115] 승부차기전까지 포함하면 19승 43패이다.[116] 32개국 본선[117] 당시 일본은 2018월드컵 아시아 예선 2위(B조 1위)로 통과했으며(1위는 이란(승점 22점, A조 1위), 2위 일본은 승점 20점), 1954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도쿄에서 5:1로 한국이 승리한 이후로 63년만에 일본 홈에서 4골 3점차 승리이다.[118] 전반전,후반전,연장전반,연장후반,##그 해 2022년 8월에 대학매치에서 일본에게 0:5참패와 연령별 연패를 설욕하였다.[119] 그리고 참고로 2020년대 국대와는 다르게 아챔에서는 대한민국팀이 일본팀을 여러차례 승리하였으며, 대표적인 대한민국팀의 한일전 승리 중 2021년 아챔 8강에서 대한민국 포항이 일본 나고야를 3:0 승리, 2022년 8월 아챔 8강전 일본 사이타마에서 대한민국 전북이 일본 고베를 3:1로 격파하였으며, 아쉽게 4강전에서 우라와에게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졌다.[120] 그래도 2007 아시안컵과 2011 아시안컵에서 만나긴 했다. 둘다 승부차기까지 갔고 2007년엔 한국이, 2011년에는 일본이 웃었다. 그 뒤로 아시안컵에서 만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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