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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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고질적인 백패스
3. 빈약한 골 결정력
4. 판정에 대한 임의해석
5. 약팀에 약한 팀
6. 언론과 팬들의 선수 기용 비난 및 간섭 시도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문제점을 정리한 문서.


2. 고질적인 백패스[편집]


공격 작업을 하다가 조금만 압박이 들어와도 탈압박이 아닌 뒤로 패스를 해버린다. 물론 여의치 않으면 백패스를 한 뒤 좌우 측면으로 방향을 전환하거나 숨을 고르는 것은 정당하지만, 문제는 주변 동료들을 활용해 전진이 가능한 경우에도 백패스를 남발하는 것. 이는 파울루 벤투 감독 선임 이후 조금 나아지는 듯 했으나 여전히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소위 말하는 U자형 빌드업을 사용한다. U자형 빌드업은 오버래핑한 좌우 풀백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끼리만 패스를 주고 받는 빌드업이다. 이로 인해 중앙의 선수들에게 발밑으로 패스가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좌우측에서 시도하는 무수한 크로스들이 유일한 공격 패턴이 되고 만다. 또한 빌드업이 아닌 빌드다운이 나오는 등 아쉬운 모습이 많이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3. 빈약한 골 결정력[편집]


골 결정력의 경우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A매치에서 강팀을 상대로든 약팀을 상대로든 부실한 결정력으로 인해 승리를 놓치거나, 패한 경기들이 상당히 많다. 메이저 국제 대회에서도 2019 아시안컵 8강전 카타르전, 2022 월드컵 32강 조별리그 2차전 가나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슈팅을 20개 이상 가져가도 득점은 1 ~ 2골, 심한 경우 무득점에 그치는 등 빈약한 골 결정력은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아쉬움이다. 사실 축구에서 3골 차 이상의 다득점 경기가 나오려면 양팀의 전력차가 커야한다. 더군다나 월드컵은 뛰어난 공격수 뿐만 아니라 세계 정상급 수비수와 골키퍼들까지 득시글하다. 강팀들은 공격과 더불어 수비도 강하고 약팀은 아예 수비에 치중한다. 이걸 뚫기가 알고 보면 굉장히 어렵다. 그렇기에 세계무대에서 언더독 입장인 한국 대표팀은 어쩔 수 없이 득점 기회를 많이 가져가기 어렵고, 오히려 대량 실점한 경기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을 칭찬받아야 한다. 손흥민이라는 월드클래스 공격수조차 월드컵 본선을 세 번[1]이나 출전했으나 커리어 통산 세 골에 불과하다.[2][3]

그나마 벤투호 이후에는 대표팀에 빌드업을 성공적으로 이식한 덕분에 백패스만큼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치르면서 많이 사라진 모습을 보였다. 다만 골 결정력은 우루과이전의 황의조, 가나전의 손흥민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빅 찬스 미스를 기록하며 여전히 숙제로 남게 되었다.[4]


4. 판정에 대한 임의해석[편집]


경기 중 심판의 휘슬이 울리기도 전에 파울이라고 주장하거나 오프사이드라고 주장하면서 손을 든다. 이는 오래 전부터 의미 없는 행위인 것을 스스로도 잘 알텐데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5]

그리고 2022년 이집트와의 친선 경기에서도 심판의 휘슬이 울리기도 전에 파울이라고 손을 들면서 심판만 바라보고 서있었고 실점을 허용하였다. 경기는 승리하였으나 여전히 고질병을 고치지 못하며, 이기고도 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사실 이는 국대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로 보이며 울산 현대의 감독 홍명보도 이런 현상에 대해 '이게 팀이냐'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자의적으로 오프사이드 라고 판단하고 습관적으로 멈추는 선수들이 전세계에 많긴 하지만 한국은 이런 모습들이 국제 대회에서도 종종 나온다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5. 약팀에 약한 팀[편집]


해당 문서에 서술된 '강팀에 강한 팀'과는 정반대되는 문제점으로서, 이상하게 월드컵이나 큰 국제대회에서는 강팀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데 아시아권 약팀만 만나면 고전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6] 특히 이러한 모습은 2010년 조광래호부터 2017년 슈틸리케호까지 절정을 달했었다. 이 때문에 이 당시의 국가대표팀 경기들은 월드컵을 제외하고는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주목을 많이 받지 못했다.

2010년대 초 FC 바르셀로나의 패싱플레이인 티키타카가 세계 클럽사를 지배했는데, 세계 흐름에 뒤처진다는 조급함에 빠졌던 건지 한국식 티키타카를 만들겠다고 덤벼들었다가 한동안 부진의 수렁에 빠졌었다. 한국의 전통적인 강점인 빠른 스피드와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 축구가 이 당시에 씨가 말라버렸으며 재미와 결과 둘 다 잡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경기 양상은 대개 3가지로 선제실점을 한다음 침대축구에 끌려다니거나, 의미없는 볼 돌리기 패스로 지루한 공방전을 하거나, 공격수들이 상대 골키퍼를 강제로 야신으로 만들어주는 골 결정력을 보이는 경우다. 덕분에 매번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겨우겨우 통과했는데, 벤투호가 오랜만에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깔끔하고 편안하게 통과하면서 이러한 모습이 조금은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은 아프리카 팀에 취약한 경향을 보이는데, 아프리카 팀들의 FIFA 랭킹은 전반적으로 낮아 이것만 보고 언론의 설레발과 상대 분석 미비로 방심했다가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알제리 쇼크 참고. 이들 같은 경우는 실력있는 귀화 선수들을 대표팀에 합류시켜 월드컵 본선 시즌에 풀장착하기 때문에 예선전과는 아예 다른 팀이라고 할 정도로 실력차가 많이 나고, 다른 대륙의 팀들 보다 더 분석하기 어렵다. 게다가 아프리카 선수들은 신체 조건이 유럽 강팀도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좋기 때문에, 한국이 아프리카와 맞붙으면 크로스 차단 및 공중볼 경합, 몸싸움에 크게 밀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7]

명심해야 할 것이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아프리카팀한테 1승을 기록한 것은 토고 단 한 번 밖에 없고, 나이지리아는 힘겹게 무승부로 탈락시켰고[8], 심지어 토고한테 선제골을 먼저 주고 토고 선수 한 명이 퇴장 당한 것을 이용해 그 상승세를 이용하여 진땀승을 거두었다고 볼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팀이든지 겨루든간에 방심은 절대 금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6. 언론과 팬들의 선수 기용 비난 및 간섭 시도[편집]


한국은 월드컵 기간만 되면 3천만명이 감독이 된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신태용 감독이 남긴 말. 평상시에는 K리그 등 국내 축구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월드컵 때만 되면 갑자기 나타나서 죽여라 살려라 하는 이들의 태도를 직설적으로 꼬집은 발언이다.


축구가 인기 종목인 여느 나라들이 그렇듯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는 팀이기 때문에 조금만 부진해도 수많은 비난이 날아올 수밖에 없는 위치다. 대표팀 자리가 독이 든 성배라고 불리는 것도, 성공하면 남부럽지 않은 명예를 얻게 되지만 실패하면 자칫 국민역적이 되어버릴 수 있는 대표팀의 특수성 때문.

대표팀의 결과가 좋지 않았거나 무언가 좋지 않은 이슈거리가 생기면 부정적인 여론이 생기는데, 이런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을 속칭 FC 코리아라 한다. 이들이 저지르는 폐해는 이루 말할 수도 없지만, 특히 큰 문제는 선수 기용이나 전술 운용에 실제로 간섭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웃기는 건, 자기들끼리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싸우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는 점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목소리만 많으면 오히려 조직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갈 수가 없다. 대표팀도 마찬가지며, 그렇기 때문에 감독에게 결정권과 책임을 맡기는 것이다. 물론 생산적인 비판은 할 수 있지만, 분풀이성 인신공격이나 도를 넘는 선수 기용 지적질 따위의 일들이 대표팀 운영과 선수들의 동기부여에 도움이 될 거리가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참고로 이들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FC 코리아 문서를 참고하도록.

[1] 2014 브라질 월드컵, 2018 러시아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2] 2014 브라질 월드컵 32강 조별리그 2차전 알제리전에서 한 골, 2018 러시아 월드컵 32강 조별리그 2차전 멕시코전, 3차전 독일전에서 각각 한 골씩을 기록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득점 없이 32강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전에서 1개 어시스트만 기록했다. 손흥민의 어시스트를 받아 골을 기록한 선수는 황희찬이었다.[3] 본문에 먼저 서술 돼 있듯이 이건 손흥민이라는 선수의 개인 기량보다 한국 대표팀의 전력이 열세인 것이 더 큰 원인이다. 애초에 당대 최고의 선수를 보유하고도 월드컵에 나가지도 못한 나라가 더 많다. 예를 들자면 긱스와 베일을 보유하고도 월드컵에 못 간 웨일스처럼 말이다. 당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인 셰브첸코도 30살이 되어서야 처음 월드컵에 나갔고 두골 밖에 넣지 못했다.[4] 손흥민이 포르투갈전 어시스트를 제외하면 가나전에서 매우 부진했던 것은 사실이나, 부상으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뛰는 등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황의조는 월드컵 당시 전성기를 지나 폼이 떨어진 상태였다.[5] 다만 2006년 독일 월드컵 32강 조별리그 3차전 스위스전을 들면서 알렉산더 프라이의 골 장면에서 한국 선수들은 심판의 휘슬이 울리기도 전에 오프사이드라고 손을 들면서 넥스트 플레이를 하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당시 한국선수들에게는 매우 억울한 지적이다. 당시 경기 영상을 보면 선수들은 자의적으로 멈춘게 아니고 부심이 기를 들어서 이를 보고 멈춘 것이다. 항의할때도 부심이 기를 들었다고 제스처를 취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축구 경기에서 부심이 기를 들었는데 주심이 휘슬 안 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이는 한국 선수들이 운이 없었던 것이다. 예시를 들거면 다른 예시를 들고오자. 차라리 2014년 월드컵 러시아전 동점골 상황이 적절한 예시다.[6] 대한민국의 아시안컵 잔혹사역시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7] 가나는 2014월드컵에서 우승팀 독일에 무승부 승점 1점 획득과 카타르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스위스를 2-0으로 꺾고 포르투갈을 3-2로 석패하는 등 남아공 월드컵 때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월드컵 32강 본선 확대 이후로 아시아끼리는 같은 조편성이 될 수 없는 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같은 조편성이 될 수 있는 이유이며, 이러한 아프리카의 피지컬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에서 유럽 국대로 귀화하는 선수들도 많다.[8] 아르헨티나도 나이지리아를 월드컵에서 5번 만났으나, 모두 1점차로 겨우 이길정도이고 심지어 스페인도 98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한테 2:3으로 참패할 정도로 나이지리아가 강팀에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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