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퀴즈 온 더 블럭/1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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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상금 수령자 · 부제 및 시청률 · 잇템 · 난리났네! 난리났어 · 논란 및 사건 사고



1. 개요
2. 첫번째 유퀴저: 박정민
3. 두번째 유퀴저: 김영달
4. 세번째 유퀴저: 윤여순
5. 마지막 유퀴저: 신승건
6. 기타



1. 개요[편집]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109화 방영 내용에 관한 문서.


2. 첫번째 유퀴저: 박정민[편집]


페루의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이곳은 늙은 봉우리라는 뜻의 고대 도시입니다. 이곳은 해발 2,400m에 세워진 잉카 문명의 유적지로 1911년 한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진 존재가 알려지지 않아 잃어버린 공중도시라고 불렸는데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뽑히는 이곳은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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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르 불문 독보적인 연기력으로 충무로 캐스팅 0순위에 오른 배우 박정민 자기님은 백상예술대상에서 조연상을 받았다. 대상 수상자인 큰 자기 유재석의 케미를 이뤄냈다.
  • 응답하라 1988에서 성보라의 전 남친 역을 맡았는데, 고작 3분 밖에 출연 안 했지만, 응답하라 시리즈 통틀어 가장 나쁜 배역을 맡아 당시 욕을 많이 먹었다고 뱕혔다.
  • 유퀴즈 애청자로 쭉 시청했다고 한다. 특히, 시즌 1 때 “시간이 되면 다음주에 찍으러 오겠다는게 너무 신박했다”라고 전했다.
  • 유퀴즈에 출연한 이유는 영화 홍보 때문이라고 하며, 자연스럽게 영화 홍보 타임을 가졌다. 하지만 영화 개봉이 밀렸고 개봉할 때 다시 언급해주겠다고 약속한다.
  • 최근 근황은 영화 '기적'의 개봉이 밀렸고 단편 영화 연출하면서 지냈고 운동하거나 대개 집에서 머문다고 한다.
  • 촬영 장소가 친 환경이 가득한 곳이라서 청설모, 고양이가 뛰어다녔다.
  • 학창 시절에는 뛰어난 수재[1]라고 한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한예종에 지원했는데, 떨어져 고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고려대를 재학 중 자퇴하고 댜시 한번 한예종을 선택했다. 이에 가족들이 한번은 붙잡았지만 이미 자퇴서를 낸 상태였다. 하지만 자신보다 뛰어한 능력을 가진 친구들을 보먄서 한예종을 다니는 게 후회해서 전에 다녔던 학교에 다시 갈까 생각했다고 한다.
  • 한예종 면접 당시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예술대이니까 자소서도 풍부한 감상적으로 쓰다가 면접관에게 혼나고 떨어졌다고 한다. 그 때 감독관이 “이 학교 떨어지면 어쩔건데'라는 질문에 박정민 자기는 " 서울대 갈 건데요"라고 대답했다. 이후 다시한번 한예종 면접을 보는데 ‘서울대 갔냐’고 물어보시더라”라고 전했다.
  • 배우의 꿈은 중 3 때 꿈꿨는데, 지망하게 된 사연에 대해 이야기 했다. 당시 친구 가족의 별장에 갔는데, 술취한 아저씨들이 박정민 자기와 친구를 불러 자신을 영화배우라고 소개했다. 그 사람이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박원상 선배님이라고 밝혔다.
    • 이후 고려대 자퇴를 하고 한예종이 들어가기 6개월 정도 남았는데, 박원상 자기를 만나고 싶었고 마침 박원상 자기의 얼굴이 있는 포스터를 붙여져 있고 메일을 보내고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2] 이후 군대가기 전까지는 스태프로 일했고 제대 후 영화과에서 연기과로 전과를 했다고 한다.
    • 5년간 무명시절을 보냈을 때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정민 자기는 그 당시에 어느 누구도 '열심히 해', '희망을 잃지 마' 등의 말을 해주지 않았다. '네가 무슨 연기를 한다고'라고만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원상 자기는 '너 내가 지켜볼 거니까 잘해라'라고 격려의 말을 해주셨다. 그 말이 없었다면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라고 밝혔다.
  • 2011년에 개봉된 데뷔작인 영화 파수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파수꾼으로 캐스팅이 되고 주목을 받은 게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 함께 출연한 이제훈 자기가 이 영화에서 주목받았는데, 이에 박정민 자기는 자신은 긴장을 너무 했고 이제훈 자기는 연기를 엄청나게 잘했고 가지고 있는 에너지에 압도를 당하면서 아무것도 못 하고 돌아온 내 자신이 좀 한심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아버지가 영화에 대해 물어보다가 순간 다툼이 났다고 한다. 지금은 투자사가 어딨냐고 물어본다.
  • 박정민 자기는 연기를 포기할려는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3] 결국 긴 무명시절에 지쳐서 연기를 관두고 유학가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준익 감독이 영화 출연 제의했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출연했던 영화가 동주였다.
  • 기억에 남는 영화가 뭐냐는 질문에 부끄러워서 시사회 때 한번 보고 안 봤는데 유일하게 극장에서 본 영화가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한다. 마지막 피아노를 치는 장면을 보면서 울컥했다고 한다.
  • 받은 상금과 스태프하고 25만원씩 나눠가졌다.

3. 두번째 유퀴저: 김영달[편집]


이것은 ‘식물’이라는 그리스어와 ‘죽이다’를 뜻하는 라틴어의 합성어입니다. 1942년 러시아의 생물학 교수가 처음 사용해 알려진 말로 숲속 식물들이 만들어 내는 살균성 물질을 이것이라 하는데요. 한 조서에 의하면, 지리산의 이것이 도심 속 공원보다 10배 이상이나 많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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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공부를 못하면 엄마한테 혼났고 혼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2] 현장에는 이성민, 문소리가 있었다고 한다.[3] 그 당시에는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려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인생 3막을 즐기고 있는 김영달 자기는 86세의 나이에 매일 7분 동안에 플랭크(Plank)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 플랭크 운동은 간단해보이지만 운동을 안하면 10초동안 버티기.힘든 운동이라고 한다.[4]
  • 건강을 유지하게 위해 시작한 플랭크 운동은 3년되었다고 하며 이전에는 마라톤만 180번 완주했다고 한다.
  • 프랭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오랫동안 마라톤을 해왔는데 나이를 들면서 다리에 힘이 없어지면서 달리기는 커녕 걷는 것도 힘들었고 고민하던 찰나에 유튜브를 보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처음에는 10초 가량했는데, 일주일에 1초씩 더해서 1년에 1분에 하자는 마음으로 했다고 한다. 이후 매일 플랭크 운동을 하다가 10분 넘게 했다고 한다. 촬영 당일에도 하고 왔다고 덧붙였다.
  • 현장에서 직접 플랭크 시범을 보였고 이후 두 자기들도 같이 따라했다. 자기 보다 한참 어린 유재석과 조세호를 거뜬히 이기고 약 5분을 버텨 놀라움을 자아냈다. 플랭크를 하다가 두 자기가 신경전을 붙게 되었다.
  • 초 3때 알파벳을 몰랐는데, 우연히 책방에서 영어 소설을 찾았고 소설을 보다가 하루에 100편씩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대충보다가 꾸준히 읽으면서 6개월 후에는 그 소설이 쉬운 지 어려운지 파악했다.
  • 젊은 시절 배움에도 남다른 열정이 있었다고 한다. 1959년에 대학을 자퇴하고 무작정 미국에 유학을 갔고[5] 공부를 마친 뒤에는 현지 학교 교수로 취임하기도 했다고 한다.
  • 클래식을 들으면서 운동하게 된 사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후 클래식을 들으면서 두 자기와 함께 스쾃을 했다.
  • 하루의 일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9시에 일어나서 플랭크 하고 아침 먹고 스쾃 300번 하기였다. 이어 계단 22층을 오른 다음 만 보를 걷고 뛰고, 점심 먹은 후에 책 읽고 음악 들으며 앱으로 외국어 공부 2시간을 하는 것. 그는 “앱으로 공부한 지 8년 됐는데 아주 재밌다. 불란서 책도 거의 다 읽을 정도”라고 과시했다.
  • 후회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면서도 "집사람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다했다. 1~2년도 아니고 30년 동안 그랬다. 그러나 한 번도 잔소리를 안 했다. 보답을 못하고 잘해주지 못한 게 고맙고 미안하다. 그동안 도와줘서 감사하고 앞으로 열심히 애쓰겠다"며 약속을 했다.
    • 정작 아내는 하고 싶은 말은 별로 없다며 살다 보면 사는 거라고 한다. 유학 가는 바람에 30년 살다 여기 와서 적응하려다 보니 세월이 너무 빨리 갔다. 그만하면 우리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쿨하게 말했다.
  • 부인도 현장에 왔으며, 같이 플랑크를 한다고 한다.
  • 오랫만에 신청곡이 나왔다.

4. 세번째 유퀴저: 윤여순[편집]


이것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문을 지키는 신입니다. 이것은 서로 반대편을 보고 있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어, 문을 경계로 펼쳐지는 안과 밖의 세계를 모두 관리했다고 하는데요. 두 얼굴을 가진 모습에 빗대어 오늘날 ‘선과 악’을 모두 지닌 이중적인 사람을 이것에 비유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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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세한 내용은 플랭크 문서 참조.[5] 비행기값이 1000불이 넘었다고 한다.


  • 열정과 추진력으로 대기업 최초 여성 CEO가 된 윤여순 자기님은 40대의 나이에 대기업 부장으로 입시했고 4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 실제 배우 윤여정의 친동생이며, 눈이 비슷하다는 작은 자기의 말에 자신이 예쁘지 안냐고 농담을 했다. 유퀴즈 출연에 대해서도 윤여정 자기는 살살하라고 말했다.
  • 윤여정 자기가 오스카상을 받았을 당시 축하 인사를 건넸냐는 물음에는 “가족이기 때문에 그냥 쿨하게 ‘언니 정말 큰 일 했다’는 말을 해줬다”고 답했다.
  • 윤 전 대표는 LG그룹 교육연수원에 입사한 지 4년 만에 임원이 됐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서 교육공학 박사를 받고 취득하고[6]한국으로 돌아온 뒤 입사했는데 41살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4년만에 임원이 되었다고 한다.
  • 입사했을 때 당시 직장 동료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고 윤여순 자기도 적응하기 힘들고 억울해서 항상 사직서를 품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그냥 나가기엔 자존심이 있어 기업 내 온라인 사이버 아카데미 시스템을 개발했고 홍보했다고 한다.
  • 하지만 이에 쉽지 않아 퇴사할려고 생각했던 찰나에 구본무 회장에 의해 첫 여성 임원이 되었다고 한다.[7]
  • 임원으로서로 여러 가지 편의성이 있었지만 성과를 내야해서 책임감이 무거워 진다고 한다. 최초의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무게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 때문에 성장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유일한 여성 임원으로서 겪은 황당한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했다.[8]
  • 임원이 된 후, 딸과의 약속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당시 딸이 3~4 학년 때 일 안하면 안되냐며 울었다고 한다. 이에 윤여순 자기는 20년 세월 중 최대의 고민이었고 자신의 인생을 위해 딸을 희생시켜야 하나 싶어 털어놨다. 이후 딸을 위해 시간을 내겠다는 약속은 꼭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그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 현장에서는 딸과 함께 왔다고 한다. 딸은 처음에는 엄마랑 같이 있는 게 좋았지만, 자유를 누릴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 윤여순 자기는 일하는 여성에겐 육아은 큰 딜레마라며, 열심히 일함에도 큰 죄책감을 걎게 된다고 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이 잘못될 수 있지만 그건 일하는 엄마라 생긴 게 아니라며 여성 후배들이 이런 고민을 눈물 흘리면서 한다고 한다. 또한 일하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크다면서 엄마가 열심히 살면서 보여주는 그것이 산 교육이라 생각한다고 워킹맘들을 위로했다. 이를 들은 큰 자기 역시 "육아와 성장 과정에 있어서 모든 것들이 여성에게만 전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2014년 LG를 퇴임 후 비즈니스 코칭가로 변신했다고 한다. 이후 딸에게도 어떤 코칭을 하냐는 질문에 하는 일이 달라 자신 일만 묵묵히 한다고 한다. 또한 엄마는 자신의 친구라고 말했다.[9]

5. 마지막 유퀴저: 신승건[편집]


전혀 다른 분야가 만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이끌어 내는 것을 ‘이것 효과’라 하는데요. 이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예술가나 학자들이 교류할 수 있게 후원하여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이 가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현재 악보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인 ‘에우리디체'를 이 가문의 결혼식에서 처음 선보였다고 하는데요. 이 가문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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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6] 당시 미국에 유학간 남편 따라 공부를 하다가 시대가 시대다 보니 주변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사 취득을 했다고 한다.[7] 당시 구본무 회장은 글로벌기업이 되려면 여성 임원이 나와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꺼낸 뒤 윤여순 자기가 1순위 후보로 올랐다고 한다. 이에 회장님은 ‘들어와서 한 일은 있습니까’라고 묻자 인사팀에서 ‘사이버 아카데미 프로젝트를 맡아 매우 미래 지향적인 일을 했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럼 딱이네요’라고 이야기 하셨다고 들었다고 한다.[8] 윤여순 자기는 교육 연수원 내 골프 연습장을 관리 차에 들어갔는데, 당시 골프장은 남성 임원들 전용이었던 공간이라서 윤여순 자기의 등장 자체가 낯설었다고 한다. 이때, 나이가 지긋한 한 남성 임원은 윤여순 자기를 보고 골프공을 가져오라는 무례한 요구를 했고 고민 끝에 골프공을 가져다 드리고 난 후 큰 목소리로 '여기 사용법이 있는데 각자 받아 쓰시는 셀프 서비스'라고 했다. 그러고 나오는데 젊은 남성 임원이 지나가면서 귓속말로 너무 잘했다고 말을 했다.[9] 이 답변을 들으면서 매우 조마조마하고 안절부절 못했다.


  • 어릴 적엔 선천적으로 세 번의 심장 수술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의사를 많이 만나서 의사에 꿈을 가졌다고 한다.
  • 3살 때 처음으로 심장병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초등학교 4학년 때 두번째 수술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 받았으며, 인공 판막으로 교체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고 한다.
  • 학창시절에 대해 힘든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는 고등학교 때 마라톤을 했다고 한다. 당시 수술받고 난지 6개월이 되었고 주변에 말렸음에도 마음을 굳게 다녔다고 한다. 마라톤을 하던 중 통증이 와 겁이 났고 선생님들이 와서 중단할려고 했지만 끝까지 완주했다고 한다.
  • 의사가 되고 싶은 결정적인 계기로 마지막 수술을 받기 전날 밤 병실 창문에 비친 의학도서관의 불빛에 이끌렸다고 한다. 지금 자신은 환자로서 병실 침대에 있지만 언젠가는 저 의학도서관에서 환자들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의사가 되고 난 후 20년 넘게 진료를 도와준 주치의에게 갔고 의사가 되었음을 밝혔다. 이후 당시 20년 넘게 진료를 해준 주치의의 인터뷰를 했다.
  • 보건소에 일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받는 것이 있으면 되돌려 주겠다면서 보건소를 선택했다고 한다.
  • 보건소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 보건소의 주 업무는 코로나 검사인데, 안 아프게 할려고 연구하다가 그냥 빠르게 하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6. 기타[편집]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특집
  • 오프닝에서 큰 자기의 제57회 백상예술대상 대상 수상을 축하하는 인사를 나눴다.
  • 전 편에 이어 이번에도 모든 자기들이 상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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