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퀴즈 온 더 블럭/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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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상금 수령자 · 부제 및 시청률 · 잇템 · 난리났네! 난리났어 · 논란 및 사건 사고



1. 개요
2. 첫 번째 참가자: 김진호
3. 두 번째 참가자: 김인현
4. 세 번째 참가자: 박미경
5. 네 번째 참가자: 권오철
6. 마지막 참가자: 진기주
7. 기타



1. 개요[편집]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97화 방영 내용에 관한 문서.


2. 첫 번째 참가자: 김진호[편집]


이것은 ‘아무 모양이나 만들 수 있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됐습니다. 이것은 열이나 압력을 가해,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만들 수 있어 ‘20세기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불렸는데요. 그러나 오늘날 이것은 심각한 환경 오염을 일으키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규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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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직 파일럿이자 현직 스타트업 대표다. 그는 2010년에 국내 항공사 부기장으로 입사해 2020년까지 총 10년 정도 근무했다. 부기장으로 5년 일하다가 2015년에 기장으로 승격했다. 2017년에 중국항공사로 이직했다"고 이력을 말했다.
  • 파일럿을 지망하는 이유와 되기 위한 노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라를 지킨다는 사명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종사로 부적격 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신체검사 기준이 까다롭다"고 말했다. 이후 관제사가 되는 항공 교통 물류학부에 진학해 석사 학위까지 공부했지만 파일럿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미국 비행학교로 갔다고 한다. 이후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계획서를 냈다고 한다. 항공사에 취업하면 부모님에게 7200만원 정도 상환이 든다고 이야기 했지만, 실제로 두 배 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상환이 끝났다고 한다.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에체류 비용을 아끼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끝에 빨리 라이센스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 김진호 자기는 승격하고 난 뒤의 첫 비행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는데, 화창하고 하늘이 예뻣다고 한다. 또한 기장으로서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착륙 실력으로 승객들을 200% 만족시켰던 기장 시절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1]
  • 그러면서 세게 착지한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바람이 쎄게 불 때 착지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 비행기 조작을 모르는 항공사 승객이 대신 비행기 운행을 할 수 있냐는 질문이 불가능 하지는 않으나 항공 일을 한 사람을 찾을거라고 한다.
  • 작은자기의 친구 아버지가 파일럿이었다면서 항공사 베네핏에 대해 물어봤다. 조종사 뿐만 아니라 항공사에 근무하는 모든 인원은 가족들까지 이용할 수 있는 비행기 표를 받는다면서 설명해줬다. 직원과 직계 가족 합해서 1인당 5장을 준다고 힌다. 다만, 베네핏 티켓은 자리가 만석은 사용불가라고 한다.
  • 2017년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중국 항공사로 이직했었는데, 그는 많은 나라에서 오는 기장들과 넓은 세계에서 비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공군사관학교와 국내 대형 항공사에 실패했다. 항공 산업이 붐을 이룰 때였다.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 하지만 코로나 19 때문에 퇴사했다. 당시 그는 가족들과 계획된 휴가로 나와있었는데? 코로나 상황이 안 좋아서 '외국 기장의 안전을 위해서 미복귀와 대기발령을 통보했다. 한 두달이면 될줄 알았는데 돌아갈 수 없었다. 11월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2]
    • 당시 비행을 못하게 되는 운명인가라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고 나름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게 슬펐다면 토호했다. 그와 동시에 외국에서 직장을 다니던 아내 역시 그만두게 되었고 많이 미안했다고 한다.
  • 김진호 자기는 파일럿을 그만두고 현재 스타트업 대표로 변신했는데 전업한 이유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선배의 제안으로 지난 7월부터 아르바이트처럼 연구에 참여했다. 원래 비행 전에 연구소 랩실에 있었고 항공교통분야를 연구했다. 생각보다 10년 쌓아온 실무가 연구에 많이 반영이 됐다. 매력도 있었고, 제가 많이 쓰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대표직을 제안 받았다고 말했다.
  • 일을 하면서 생각보다 재밌고 10년간의 지식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다만 파일럿 시절 때 비하면 1/10 정도라고 한다. 대표지만 아주 영세한 작은 기업이기 때문에. 연구원들 월급도 줘야 해서 정작 본인의 월급이 많지 않다. 이에 큰 자기는 "그래도 대표님인데 이렇게 많이 차이날 줄은 몰랐다고 당황했다.
    • 참고로 파일럿의 연봉은 세계 비행기 기장의 평균 연봉은 약 1억5천만원 내외로 알려졌다. 국내 대형 항공사 조종사 평균 연봉은 약 1억5천만원 정도이며, 기장의 경우 대략 1억8천~2억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 68시간 정도를 근무하면 세후 월 1천만원 이상을 받게 된다고 한다.
  • 현장에는 아내도 함께 왔다. 직접적인 대화는 안나누고 화면에만 잠깐 등장했다.

3. 두 번째 참가자: 김인현[편집]


‘이것은 파도의 높이가 만 장에 이른다’는 고사성어인데요. 약 3m를 나타내는 길이 단위인 ‘장’이 ‘만 개’나 된다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이나 기복이 심한 삶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흔히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가리켜 ‘이것’한 삶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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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기장이 되기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마친 상태라고 한다.[2] 메일을 보낸 사람이 공교롭게 입사시험 볼 때 합격 시험을 알려준 인사과 직원이었다.


  • 전직 선장 현직 해상법 로스쿨 교수로 선장 시절, 외항상선을 운행했다고 한다.
  • 앵무새를 몰고 수영잘하고 배멀미 하지 않는 등 흔한 선장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도 나눴는데, 실제로는 그런 이미지는 없다고 한다.
  • 선장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 오랫동안 항해를 하면 느낀 기분으로, 미국에 가는 동안 배 한 척도 못 보고, 가끔 돌고래를 본다고 한다.
  • 가족들의 소식을 못 듣냐고 할때, 두 달에 한번 교체하는데, 그 때 편지를 보거나 신문을 읽는다고 한다.
  • 기억에 남는 항해에 대해 물어봤는데, 적도제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위도가 0도를 지날 때, 사람들이 다 모여서 제사를 차린다.돼지 머리를 올려서 고사를 지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옛날에는 범선 시대지 않았나 대항해 시대 때는 그러먄서 배가 항해를 하다 보면 적도를 안 지날 수가 없는데, 바람이 없는 적도는 배가 움직이지 않고는 바람에 한시라도 빨리 지나가고 싶은 선원들은 빨리 바람을 일으켜달라는 뜻으로 제를 지냈다고 한다고 전했다.
  • 앨리트 코스를 밟은 최연소 선장으로, 32살에 처음으로 선장이 되고 난 후 처음으로 항해할 때의 에피소드를 말했다. 첫 항해에서 좌초 사고가 나서 배가 전손이 되는 대형 사고를 겪었다고 한다.[3] 다행히도 선원들은 안전하게 구출했지만 이 일로 국제 소송을 걸었다. 김인현 자기는 그 충격으로 6개월간 칩거했고 결국 교수로 이직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선장의 식탁에는 아무도 앉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대해 묻자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영부인이 배에 올랐는데 선장 식탁를 영부인에게 권했더니 ‘선장 자리는 아무도 앉으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 교수로 이직하게 된 과정을 자세하게 이야기 했다. 좌초사고 이후 당시 국제 소송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호주 법정에 섰는데, 당시 법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는데 호주에서 보니 변호사와 함께 일을 봐주는 선장이 있었다. 내가 법을 공부해서 나같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라는 마음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 법학 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1년 정도 걸렸다고 한다. 물론 대학원 학비가 부족해서 고향 후배에게 빌렸고 학비는 조교라서 공짜라고 한다.
  • 대학원에 합격한 후 대학원 가면서 겪은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법공부가 재밌고 선장 출신이라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 도시 생활하면서 힘들 때 가끔 바다가 그리운데, 이때 고향에 가면서 힐링되고 기운이 난다고 한다.
  • 김인현 자기의 아내는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은 선물로 "프랑스산 냄비 세트"를 언급한다.

4. 세 번째 참가자: 박미경[편집]


이것은 원래 터를 잡은 자취를 뜻하는 말입니다. 집을 세웠던 터를 보면 주춧돌을 놓았던 자리나 기둥을 세운 흔적이 남게 되는데요. 터를 세운 흔적이 없어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빗대어 오늘날 ‘이것이 없다’라는 말은 어떤 말이나 행동이 전혀 근거가 없을 때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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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

[3] 사용하는 지도가 오래 되었는데, 그걸 갱신하지 못했다고 한다.


  • 전직 배우[4]이자 현직 한의사로 박미경 자기는 ”세계 최초 메두사 출신 한의사다”라고 인사해 시작부터 웃음을 샀다.
  • 연예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박미경 자기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96학번 학생이었고 그 당시에 여대생들이 입학하면 교양 필수 과목보다 더 중요한 게 잡지를 사서 보는 거였다. 그런데 전속 모델 공고가 났고 친구가 찍어준 사진을 냈는데 바로 합격해서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 추가로 아담의 여동생인 사이버 가수 류시아 모델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이를 들은 두 자기는 깜짝 놀랐다.
  • 백터맨의 메두사 역할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고, 당시의 인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메두사 시절의 대사로는 '벡터멘을 없어 없애버려", " 내가 처리한다. 하하하하"
  • 당시 CG 촬영이 없을 때는 모든 게 모형이고 슈트입는지라 힘들었다고 한다. 근데 다른 배우들 비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한다.[5]
  • 벡터맨 이후로 햇빛속으로 등 연이은 러브콜에 출연 제의가 왔지만 거절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미경 자기는 배우로서 자신의 한계를 너무 많이 느꼈다. 당시 명문대 출신 여배우 콘셉트로 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서울대 출신의 김태희씨가 나타났고 이후 자신의 그릇이 여기까지인 것 같다 인정하고 배우 생활을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고 한다.
  • 연예계 떠난 이후 복학하고 대학 생활을 마무리를 지었지만 당시 경기가 안좋을 때라서 취업하기 힘들었고 한다. 너무 막막해서 인생을 다시 셋팅하자고 했고 결국 한의사가 되기 위해 노량진에 가서 다시 공부해서 한의대에 입학했다.
  • 공부할 당시 어려운 점으로 본래 문과 출신이라 이과 공부를 다시 했는데, 1년 만에 한의대에 입학했다고 전했다.
  • 현재 직업에 대한 만족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수동적인 연예계 생활보단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한의사인 지금이 맘에 든다.
  • 큰 자기와 작은자기의 맥을 짚은 뒤 조세호의 맥을 ‘아기 맥’이라고 발언해 주변의 빵터졌다.[6] 이에 큰 자기의 맥은 개미상이라고 하며 지방질을 드시라고 권유했다.

5. 네 번째 참가자: 권오철[편집]


해바라기처럼 노란색 꽃을 피우는 식물인 ‘이것’의 뿌리는 생김새가 감자와 비슷해 돼지감자라고도 불리는데요. ‘이것’은 따로 심지 않아도 논밭을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자라서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엉뚱한 사람을 가리켜 ‘이것’이라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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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구용사 벡터맨’에서 ‘메두사’ 역할을 했다.[5] 당시 다른 배우들은 두꺼운 슈트를 입고 야외 촬영하는 씬이 많았고 그마저도 잘 안 나올때가 많았다고 한다. 정작 본인은 촬영장에서만 간단하게 촬영했고 가끔 유혹하는 신 촬영하기 위해 야외촬영을 했다.[6] 너무 다이어트해서 힘이 없고 물이 쫙 빠진다고 한다.


  • 전직 대기업 회사원이자 현직 전업 천체 사진가. 원래는 조선공이라고 한다.[7]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 1992년 고등학생때부터 천체 카메라를 찍었다고 한다.
  • 천체 사진은 1992년도부터 찍기 시작해 올해로 29년 정도를 진행하거 있다. 왜 이렇게 별을 좋아했냐는 질문에 권오철 자기님은 뭔가 싫어하는덴 이유가 있지만 좋아하는데는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 무려 4번을 한 ‘프로 이직러’인데, 첫번째 직업으로 거제도 4년간 조선소에서 잠수함 설계하는 일을 했다.[8] 이후 벤처 붐이 일어난 시기에 벤처 붐으로 이직을 했으나 벤처 붐이 꺼지고 회사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모바일 컨텐츠 회사 사업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워낙 인기에 좌지우지 하면서 은퇴했다. 이후 5년간 대기업에 근무했다. 대체로 일은 재밌으나 그렇게 오래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 이직자들과 전업자들에게 대한 조언을 건냈다.
  • 당시 회사는 제일 바쁜 시기[9]였는데, ‘오로라’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사진으로 담아낸다는 사념하에 이를 제쳐두고 휴가를 냈다고 한다.
    • 오로라를 보면서 느꼈던 감동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는 오로라를 보면 거의 울고 사람이 못 움직인다고 한다. 그는 인간이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최대의 경이로움이다”라며 “그때 무슨 느낌이였냐고 물어보는 건 무의미하다.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큰 충격받고 한다. 같이 갔던 사람들, 월급쟁이가 하나도 없으며 다 자기하고 싶은대로 하는데 살아있다고 한다. 하고 싶은거 하고 사는데 밥을 안 굶는다고 해서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 오로라를 다 보고 회사에 복귀했지만 당연히 회사에서 혼났고 그만뒀다고 한다. 그만둔 후 회사에 빌려고 했지만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 당시 아내는 이를 말리지 않았는데, 자칫 잘못되면 큰 병에 걸린다고 생각[10]해 이번에 그만두면 말리지 않겠다고 한다. 6개월 후 건강검진을 해보니 깨끗했다고 한다.
  • 자기님은 14년의 회사 생활은 한 마디로 “헬(지옥)”이었다고 고백해 폭소를 유발한다. 뭐가 싫냐면서 하는데, 다 싫다고 한다. 지옥과도 같았던 매주 금요일 저녁 6시에 회의를 하고 새벽 2~3시에 끝났고 그걸 월요일에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했다고 한다. 이에 큰 자기는 “내 회사도 아닌데 금요일?”이라며 “진짜 짜증난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 천체 사진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에 이야기했다.
  • 자기가 울룽도에서 찍은 독도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 회사에 다닐때 보다 지금이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 회사에 그만두지 못하고 망설이는 이들에게 조언을 건냈다.


6. 마지막 참가자: 진기주[편집]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요. 과거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함께 타는 마차를 ‘이것’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여기서 유래해 오늘날 하나의 주제 안에 여러 명의 감독이 연출한 단편을 합쳐 놓은 영화를 가리켜 ‘이것 영화’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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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대학 원서를 쓸 때가 되니까 성적에 맞출 것을 권했고 전했다. 이에 서울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고 한다.[8] 그 때 당시 설계했던 잠수함이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9] 연말에 성과급 결정하고 진급 결정했던 시기였고 갔다 오면 책상이 없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10] 당시 위벽이 흘려내려 위암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 삼성SDS 컨설턴트(삼성그룹공채 52기), 기자, 슈퍼모델을 거쳐 배우가 된 자기님은 각각의 직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찾게 된 사연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 큰 자기와는 런닝맨에서 만났으며, 작은 자기와는 초면이다.
  • 유퀴즈에 나온 계기에 이야기했다.
  • 원래 꿈은 기자였는데, 기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항상 아버지를 통해 사회 소식을 먼저 알게 되었고 이후 기자에 매력이 느꼈다고. 하지만 점수에 맞춰 중앙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지만 후회했고 지금도 컴맹이라고 밝혔다.
  • 대학 졸업 후 대기업을 입사했고 당시 회사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실무보다는 신입사원 연수를 많이 했다. 동기들과 함께하는 교육이 훨씬 많아서 마냥 재밌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하계 수련대회가 있었는데. 다영한 그룹 계열 신입사원이 다 온다. 공연 같은 걸 만들어서 대결하는데 그 대회 준비를 위해 두 달 합숙한다. 저는 공연단이었는데 그 순간은 애사심 가득한 '파란 피'였다"라고 말했다.
    • 회사 다닐 당시 가장 많이 했던 말로는 '네',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 삼성 복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당시 놀이동산 할인이 있었고 PS, PI를 받았다고 한다.
    • 3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회사를 다니면서 점점 얼굴이 어두워졌는데, 어느날 하루는 퇴근할 때 엄마가 너무 힘들면 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셨다. 처음에 그 말 들을 때는 사실 짜증을 냈는데, 취업이 힘들다, 새로운 일 하는 게 쉽지 않다 했었기 때문. 하지만 끝내 그만뒀다.
    • 진기주 자기는 퇴사할 때 사실 속으로 연기자를 꿈꿨지만 남들이 비웃을까 봐 티를 못 냈다고 한다. 누구나 동경만 했던 직업인데 주변에 누구에게도 말 안 했다. 말하면 비웃을 것 같았다고...
    • 그만둔 후 회사 선배와 동기들에 대해 어떤 조언을 받았냐면서 물었는데, 안그래도 메일을 찾아봤는데, 선배와 동기들의 응원과 조언을 보게 되었다.
  • 어릴 적의 꿈인 기자가 된 이유[11]와 기자의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어릴 적 꿈이었던 기자가 돼서 뿌듯했지만 개인 생활이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들다고[12] 너무 힘들어서 머리감으면서 막 눈물을 흘렸고 이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게 아닌데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수습기간 3개월을 끝나자마자 바로 관뒀다고 한다.
    • 사수에게 술 한잔 사 달라고 하면서 '너무 죄송하다. 저 연기할 거다' 했다"라고 밝혀 웃음을 샀다.
    • 기자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말로는 '야이 XX야'라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이면 본인은 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 진기주 자기는 연기자가 되기 위해 방법을 찾다가 모델하우스 - 룸 오브 텐에서 슈퍼모델을 지원했다. 지원하는 계기와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 모델 이후로 tvN드라마 두번째 스무살에 출연하게 되면서 연기자가 됐다고 설명했다. 진기주 자기는 두번째 스무살 출연 전까지는 오디션에서 죄다 떨어졌는데, 모든 오디션이 1차 탈락이었다. 맨날 듣는 말이 나이가 많다는 거였다. 이에 연기는 나이가 상관 없지 않냐며 당당하게 말했었지만, 속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 그러다 김형식 PD를 만나 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재능이 있는데 왜 눈치를 보냐고 하시더라. 감독님이 연기를 시작할 수 있게 해준 은인이었다"라고 고백했다.
  • 배우로 데뷔후 삼성SDS 컨설턴트의 동기들이 엄청 기뻐했고 이후 커피차도 쐈다고 한다. 이에 동기들한테고 커피차를 받는냐면서 인성이 좋다고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 현재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어떠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불안하고 자존감을 깎이지만 있는 그대로라서 좋다고 한다.
  • 상품을 받고 싶냐는 질문에 퀴즈를 풀어보고 싶다고 한다.
  • 이후 자신의 SNS에 출연 인증글을 남겼다.

7. 기타[편집]


  • 이직의 기술 특집.
  • 점심식사 PPL이 들어와 오랫만에 점심식사하는 장면이 전파탔다.
  • 여성 자기들 공통적으로 연예계에 몸담았고[13] 열심히 공부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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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토익 만료된 걸 갱신하다가 또 언론고시를 준비하게 됐었다고 한다.[12] 새벽부터 경찰서, 대학병원 등을 오가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체크했다고 한다.[13] 단, 박미경 자기는 전직 배우이고, 진기주 자기는 현직 배우다.[14] 각각 한의사 시험, 언론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