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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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연기[편집]
''나는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목숨 걸고 한 거였어요. 요즘도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어. 배우는 목숨 걸고 안 하면 안 돼. 훌륭한 남편 두고 천천히 놀면서, 그래 이 역할은 내가 해 주지, 그러면 안 된다고. 배우가 편하면 보는 사람은 기분 나쁜 연기가 된다고, 한 신 한 신 떨림이 없는 연기는 죽어 있는 거라고."
76세의 원로배우로 데뷔 58년차다. 2023년 현재까지도 주연/조연, 상업영화/독립영화를 가리지 않고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특출하게 필모의 다양성이 돋보이는 편으로, 파격적일 만큼 독특한 캐릭터를 여럿 맡아 완벽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대체로 까다롭고 엄격하고 보수적인 시어머니 포지션의 배역이나 잔소리 잘하고 무척이나 고집 센 아주머니, 할머니 정도의 이미지가 널리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영화에서는 돈의 맛에서 같은 카리스마 있는 역할부터 가루지기에서 같은 미묘한 색기가 있는 역할까지 다양한 연기를 보여준다. 손자 손녀를 끔찍이 아끼는 다정한 할머니 역할부터 돈을 받고 노인들에게 성을 파는 박카스 할머니까지 대단히 넓은 스펙트럼을 가졌다.
전면에 나서지 않는 배역이어도 극의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기술적으로 상당히 뛰어난 완급조절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초기부터 자신만의 리얼리즘적인 방향성을 구상하고 연구한 결과물이다. 신인시절 과한 동작과 분장 등으로 극대화되고, 실제와 유리된 연기를 선보이는 기성 배우들의 연기에 강한 반감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연기력은 해외서도 인정받아, 아시아 배우 최초로 미국 영화배우조합상 여우조연상과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상(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리하여 오늘날에는 연기자로서 독보적인 입지와 넓은 스펙트럼, 독창적 정체성을 확립하여 세계적인 명배우, 대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뛰어난 정통 영어 실력까지 보유했다. 발음은 정확하다 보기 어려운 한국식이지만,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시상식이나 토크쇼에서도 발음이 상관 없어질 정도로 의미 전달에 문제가 없고, 재치까지 겸비한 회화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3. 생애[편집]
3.1. 젊은 시절[편집]
윤여정은 배우들 사이에서도 대본 암기력이 뛰어나며, 집중력이 좋은 것으로 소문난 배우인데, 어렸을 때에도 웅변이나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고 한다.1959년 성신여대 주최로 개최된 백일장에서 윤여정이 상을 탄 수필이 조선일보에 게시되었다.제목은 우리집부엌으로, 문명특급에서의 인터뷰에서 언급되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당시 명문학교인 이화여자고등학교[8] 를 들어갔으나 고3때 위계양으로 고생하고, 2차로 원하지 않는 한양대학교를 가게 되었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 중에 한양대를 다니는 친구나 선후배를 찾기 힘들어 자존심이 많이 상하였다고 한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 죄송함에 등록금이라도 마련하기 위한 알바로 당시 김동건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을 했다. 그때 김동건이 윤여정에게 TBC 탤런트 공채 시험을 보라고 권하였고, 1966년 TBC 탤런트 공채에 응시하여 합격해 TBC 3기 탤런트가 되었다. 그리고 배우 생활을 위해 대학을 중퇴하였다. 배우가 된 것에 대해 윤여정은 "우리 엄마한테는 내가 스타였다. 그래서 남의 눈에 띄는 일을 하면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당시 배우는 떠오르는 신종 직업이었는데, 명문 서울고-서울대 출신의 당시로는 초엘리트인 배우 이순재가 활동 하는 것을 보고, 결코 창피한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한다.
윤여정은 신인 때부터 종횡무진의 활약을 펼친 배우였다. TBC시절에는 단역 조연을 했지만, 공채전속이 풀린 직후인 1970년[9] 갓 TV를 개국한 MBC로 스카우트 되어, 많은 드라마에서 주연급[10] 으로 활약했다.
TV에서 얻슨 유명세를 바탕으로, 1971년 영화계에 진출, 거장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최고의 성취를 거두게 된다. 1971년 한국영화 흥행 1위의 영화로 윤여정은 주인집 남자를 유혹하는 가정부로 출연해서 스타덤에 올랐는데, 당시 신문에서도 천재 여배우 나왔다고 대서특필할 정도.[11] 윤여정은 이 작품을 통해 대종상 신인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같은 해 7월[12] 부터 방영된 MBC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을 맡으며, 장희빈 역시 크게 히트해 곧바로 방송계에서도 톱탤런트[13] 로 올라선다. 윤여정의 악녀 연기가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기 장희빈 나쁜 X 간다!!"고 욕을 해대는 통에 거리를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했을 정도였고, 하고 있던 오란씨 광고모델에서 잘렸다고 한다.
또 1972년 연이어 '충녀'에 출연하면서 젊은 전성기를 화려하게 불태웠고, 역시 절륜한 연기를 선보여 여배우 이화시와 함께 이른바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게 된다.
김기영 감독과는 재미난 일화들이 많은데, 김기영 감독 영화가 대개 그렇듯 윤여정은 <화녀>에서 쥐를 맨손으로 잡는 연기를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한다. 그래서 이 감독과는 다시는 작업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나, 공교롭게도 다음 시리즈인 '충녀'에도 또 나오게 되었다. 원래 김기영 감독은 전형적인 미인 여배우보단 좀 특이하고 퇴폐적인 느낌의 여배우를 선호했던지라, 윤여정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14] 그래서 그녀가 미국으로 떠나고 난 후에도 그녀에게 '내 작품에 출연해달라는 건 아니고, 미스 윤이 살던 집 값이 내렸으니 한국에 한 번 와봐요.'[15] 라는 식으로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김기영 감독은 윤여정을 '내 말을 이해한 유일한 배우'라고 칭했을 정도이니, 그녀를 얼마나 아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당시 윤여정은 드라마 출연을 하면 영화보다 돈을 많이 받을 때였고, 드라마 '장희빈' 덕분에 인기도 있어서 영화를 할 생각이 별로 없었지만, 김기영 감독이 출연료도 당시 최고의 인기 배우이던 신성일이 받는 만큼 두둑히 챙겨 주고, 여러모로 많이 배려해주었던 덕분에 함께 3편이나 하게 됐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자신과 끈질기게 대화하며, 영화 속 자신의 캐릭터 형성을 위해 연구하는 등 그의 열의가 당시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에게 늘 존댓말을 사용했던 점이 매우 인상깊었던 점 중 하나라고 한다.[16] 김기영 감독을 다룬 다큐인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에 의하면, 윤여정은 김기영 감독과 일한 이후로는 다른 감독들의 작품에는 만족을 못 했다고 한다. 실제 출연료 많이 준다고 해서 다른 영화를 해보니, 자연히 김기영 감독과 비교를 하게 되었고, 그 후 영화를 좀 가려서 찍게 되더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또한 김기영 감독은 당시 윤여정이 TV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던 기존의 생기발랄한 이미지와는 매우 다른 연기를 이끌어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루는 윤여정이 김기영 감독과의 영화 촬영이 너무나도 고된 나머지 김 감독에게 '자신을 왜 캐스팅했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김 감독이 낄낄 웃으며 "청승맞아 보여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윤여정은 그 당시엔 어이가 없었는데, 나중에 슬픈 역을 맡고 보니 "내가 정말 청승맞아 보이더라"고 고백하기도. 또한 김기영 감독은 윤여정에게 "알렉 기네스 같은 배우가 되라"고 덕담을 하기도 했는데, 윤여정은 당시엔 그 말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훗날 영화 '인도로 가는 길'에서 알렉 기네스가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하는 걸 보고, 김기영 감독의 조언을 지키는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이후 윤여정은 2021년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소감에서도 김기영을 천재적인 감독이자, 자신의 첫 감독이었다며, 그가 살아있었다면 이 수상을 무척 기뻐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20대 시절만 해도 연기 생활에는 큰 애착이 없었다고 한다. 될 수 있으면 빨리 이 판을 떠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당시 여배우면 다들 한 번씩은 찍던 수영복 화보 같은 것도 찍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데뷔할 때부터 배우로 대성할 싹수가 보였던 셈인데, 중간에 결혼으로 인해, 배우 생활을 잠시 쉬기 전까지 배우로서의 커리어에 큰 슬럼프 한 번 없었을 정도로 꾸준한 배우이기도 하다. 다만 결혼 생활에 있어서는 한 번의 이혼을 겪기도 했는데, 조영남과 결혼 후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신학대학교로 유학길에 오른 조영남을 따라 플로리다에서 주부로서 13년을 살다가[17] 대한민국에 돌아와 이혼해 싱글맘이 되었다.[18] (윤여정이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내용). 이후 조영남도 출연해 입장을 밝혔다. 당시 38세였던 윤여정은 플로리다의 Publix 식료품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최저 임금 2.75달러를 받아, 두 아들을 부양할 생각을 했다면서 언어 장벽과 한국에서의 낙인의 무게 때문에 계산원으로 일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미국 NBC와의 인터뷰에서) 결혼생활 동안 조영남은 바람끼가 다분했고, 돈을 한 푼도 안 벌었으며, 결국엔 윤여정이 모아둔 돈을 싸그리 다 탕진해버렸다. 그래서 윤여정은 배우 생활을 재개한 이후, 두 아들과 자신을 지키려고 온갖 작품에 뛰어든다.[19]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쌀독에 쌀이 있던 때보다 떨어졌던 때가 더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결혼생활 동안 윤여정은 굉장히 헌신적이었다. 70, 80년대는 미국에서 두부 구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두부를 좋아하는 조영남을 위해 직접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었을 정도다. (이 이야기는 조영남의 자서전에도 언급된다.)
이 시절의 일화를 알고 있는 중장년층이 나름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인 조영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이유가 바로 이것인데[20] , 심지어는 인간 쓰레기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어느 자리에서건 조영남을 험담하지 않아서 어마어마한 대인배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냥 조영남을 너무 싫어해서 언급도 하고 싶어하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 조영남도 무릎팍도사에서 "윤여정이 입을 열었다면 나는 사회적으로 매장됐을 것."이라고 인정한 바 있으며, 현재까지 공개되어 조영남 본인이 시인한 일화만 해도 이미 충분히 인간 쓰레기로 단단히 찍힐 마당이다.
당시 윤여정과 이혼하면서 "네가 너무 못생겨서 같이 살 수가 없다."는 식의 막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조영남 자신의 얼굴 꼴을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많은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 오히려 윤여정은 젊을 때부터 외모를 검증받은 배우였고, 무릎팍도사에서 이장희도 발랄하고 당찬 성격과 미모 덕에 모든 세시봉 멤버가 윤여정을 좋아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윤여정이 일일이 다 까발렸었다면, 조영남의 이미지는 회생불능이 되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영남과의 결혼생활은 윤여정 본인에게 기억하기도 싫은 트라우마이자 인생의 큰 상처라고 볼 수 있다. 실제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프로그램 컨셉상 예민한 주제의 질문도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강호동과 유세윤도 이 얘기만큼은 겨우겨우 돌려서 물어봤을 정도로 조심스러워했고, 물어보면서도 조영남의 본명을 언급하지 않을 정도였다. 참고로 윤여정이 조영남과의 결혼생활에 대해 직접적으로 자세하게 언급한 인터뷰는 2005년 딴지일보 주최로 김어준과 한 인터뷰가 유일한데, 이 때도 조영남의 본명을 말하지 않고 "걔"나 "C모 가수"로 불렀다. #[21]
귀국 이후, 김수현이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자, 그녀의 주연작인 박철수 감독의 작품 <어미>(1985년작)에서 인신매매로 끌려간 딸을 구출했지만, 정신적 충격으로 자살한 딸을 대신해 자신의 딸을 그렇게 만든 인신매매범들을 하나씩 처단하는 엄마로 나와 살기어린 연기로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준 작품이다. 특히 인신매매범 한 명을 차에 태우고 가는 도중 '니 여동생도 그 동네에 창녀로 팔아먹었니?' 하며 얼굴에 염산을 끼얹고, 담배를 피우며 운전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다. 오랜만의 복귀작으로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유니크한 그녀만의 연기적 세계관을 설립시키는 데에 상당한 기반이 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후일 이렇게 강렬한 감성을 지향하는 숱한 영화계 거장들이 극찬을 보내기도 하였다.[22]
이후 1987년에 김수현 작가의 MBC 드라마 사랑과 야망으로 안방극장에 복귀하여[23][24]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 큰 인기를 얻었다. 1991년 사랑이 뭐길래와 1995년 목욕탕집 남자들로 또다시 김수현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대중 연예인의 입지를 다시 굳히게 되었다.
3.2. 21세기 충무로의 대모[편집]
이 때의 인연으로, 윤여정은 이후 임상수 감독의 전 필모그래피에 참여하게 되어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영화의 문을 열고 닫는 키로서 '철없는 엄마' 역을 맡아 등장하고 오래된 정원에서는 남주인공 현우의 어머니로 함께하게 된다.
2007년의 황진이, 2008년의 가루지기[27] 에서도 '할멈'이라는 공통된 이름의 역할을 연이어 맡으며 작품을 준수하게 뒷받침했다.
황금 물고기에서는 이태곤의 계략에 말려들어 정신병원에 감금당하기도 하는 등 고생하는 역할도 했는데, 이 때 연기가 대단히 사실적이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곧이어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 역을 맡아 브라운관을 장악하여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훔쳤다.
2011년 <푸른소금>에서는 청부살인 집단의 대모로 등장하여 실수한 부하에게 공포스러운 러시안 룰렛을 시키고 헤드샷을 날려버리는 후덜덜한 포스를 보여주며, 또 다른 부류의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 표현했다.
2012년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는 30년 전 잃어버린 아들을 찾게 되는 어머니 '엄청애' 역을 맡았는데, 긴 세월 기른 정이 없다보니 반가움에도 서먹한 아들과 바른 말 잘하는 며느리와의 불편한 고부관계를 보여주며 전형적인 시어머니 연기를 펼친다. 귀남이를 잃어버린 범인이 동서란 걸 알았을 때,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연기는 가히 압권이었다. 51회 참조. 같은 해 드라마 더킹 투하츠의 대비 마마로 출연하여, 외유내강의 한국적 어머니상을 흠 잡을 곳 없이 연기하였다.
또한 홍상수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춰, 다른 나라에서에서 팬션에 머물며, 보증을 선 언니를 찾아온 정유미의 어머니 역할로 나와 극의 시작을 열었으며, 이자벨 위페르, 도올 김용옥과 동시에 연기합을 맞추는 전무후무한 역할을 진솔하게 소화하였다. 이 역시 평가가 좋아, 두 작품을 배출했던 2010년에 이어 2년만에 칸 영화제로 향했다.
또한 다른나라에서 촬영 도중 함께 찍은 홍상수 감독의 단편 리스트에도 출연했다. 장편 작품의 스핀오프 꼴인데, 완성도는 마찬가지로 매우 높다.
2013년에는 tvN의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 출연하여 난생 처음 예능에 도전. 스키니진을 소화하는 패션감각에 스마트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 끝없이 문제를 일으키며 트러블 메이커로의 모습도 보여주며, 평소의 완벽한 이미지와는 다른 다각도의 모습을 보여주어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과 네 번째로 작품을 함께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 출연, 한옥집에 살며 늘 딸을 걱정하는 김민희의 어머니 역할로 출연했다. 조연으로 역할에 꼭 맞는 완급조절이 잘 느껴진다.
또 워쇼스키 자매가 감독한 미드 Sense8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그런데 시즌 1, 2 비중을 보면, 그냥 카메오 수준이 아니라 출연하는 한국인 배우 중에서는 대사량으로 따지면, 최소 2등은 될 정도로 출연 빈도나 대사가 많다.
임상수 감독의 최근작인 나의 절친 악당들에도 잠시 출연하는데, 마땅한 역할이 없자 '지나가는 단역으로라도 얼굴을 비출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으로 출연한 것이다. 임 감독과 상당한 케미스트리가 형성되어 애정깊은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 동세대 배우들과 함께 출연하면서 좋은 평가와 화제성을 얻었다.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서사와 배우들의 앙상블이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는 호평이 많았다.
윤여정은 이 영화로 자칫 천박할 수 있는 윤소영이란 캐릭터를 특유의 무심한 듯 따뜻한 연기로 그녀가 아니면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대체불가의 캐릭터를 연기했고, 그 연기를 통해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부일영화상 등 유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과 심사위원대상을 휩쓸었으며, 한국에서 또한 그 영화를 보고 '윤여정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을 연기'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명연기를 펼쳤다. 작가 노희경은 이 영화를 '어떤 인문학 강의보다도 깊고 통찰력있는 영화'라 표현했고, 영화감독 강형철은 '윤 선생님의 아주 작은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영원토록 기억될 영화'라고 표현했다.
2017년 나영석 PD가 tvN에서 만든 윤식당에 캐스팅되어 식당의 사장을 맡아 요리를 담당했다. 윤식당은 최고 시청률 14%를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 2018년에는 스페인 테네리페에서 촬영한 윤식당 2에 출연하고 있다. 방영 2화만에 최고 시청률 14.8%를 기록, tvN 예능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며,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남은 방영 횟수를 생각하면, 훨씬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듯하다.
미국 드라마 하이랜드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2018년에는 이병헌, 박정민 주연의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어머니 역할로 출연해 극을 크게 이끌어갔다. 애환이 가득 담긴 슬픈 연기를 보여준다.
3.3. 충무로를 넘어 세계로[편집]
"우리에게는 언제나 늘 좋은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있었다. 세계가 우리를 갑자기 주목하는 것일 뿐이다."
- 윤여정,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뒤에 영국의 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중예술이 갑자기 각광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질문에 대답한 내용이다.
2020년 1980년대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이주한 한인가족을 그린 미국 영화 미나리에 출연했다. 환경의 변화로, 딸의 집에서 손주를 돌보며 함께 생활하게 된 할머니 순자 역을 자유롭고 뛰어나게 소화하여 인생 캐릭터를 획득했다는 압도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정이삭 감독의 실제 할머니를 모티브로 하지만, 이를 구현하는 것에 있어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할머니상을 비틀어 새로운 감각의 어머니를 구현해냈으며, 여태껏 겹겹이 쌓아온 윤여정의 독특한 정체성과 영화의 구성 요소가 절묘하게 맞물려 매우 사랑스러운 인물로 그려졌다.
전면 주연은 아니더라도 영화의 키를 맡던 기존의 포지션 역시 한층 더 높아져, 마지막 부근의 해묵은 갈등 사항의 해법을 제시하고, 끝내 홀로 살아남는 미나리를 심는 절절하고 원더풀한 모습과 연출에 각자의 할머니가 떠오르는 벅찬 경험을 했다는 관객이 많다. 독립 영화임에도 2주 이상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크게 성공했고, 이 작품으로 윤여정은 전 세계적인 유명세와 명성을 얻게 되었다.
미나리는 제36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대상 격인 심사위원대상과 최우수상 격인 관객상을 둘 다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이후 각종 매체들은 윤여정을 <보랏 속편>의 마리아 바칼로바,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과 함께 강력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목하였다. 그리고 그 기대감을 충족이라도 하듯, 수많은 미국의 비평가 시상식 및 독립 영화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거나 후보로 올랐다.[29] 윤여정은 이후 미국배우조합상(SAG)과 영국 아카데미상(BAFTA)에서는 여우조연상 후보 노미네이트에 성공하였다. 한국 배우로는 최초의 결과이다. 미국 언론에서도 올해 최고의 연기나 주목해야 할 배우 리스트에 오르는 등 상당한 기대를 받고 있다. 결국 한국 배우 최초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여우조연상으로 노미네이트[30] 됐다. 74세의 나이에 충무로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 줄곧 찬사가 이어졌다.
미나리가 해외를 휩쓰는 동안, 2021년 1월부터 한국에서는 나영석과의 또 다른 예능인 윤스테이가 방영을 시작했다. 첫 화부터 8.9%라는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박을 냈고, 연일 화제를 낳으며, 예능에서도 존경받는 배우이자 어른으로서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애플TV+에서 제작하는 미국 드라마 파친코에 캐스팅되어 2021년 상반기 촬영을 마무리지었다.
브래드 피트 씨, 마침내,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희가 털사[34]
에서 영화 찍을 땐 어디 계셨어요?[35] 여기서라도 만나게 되어 무척 영광이예요.아시다시피 전 한국에서 왔고, 사실 제 이름은 '윤여정'이지만 유럽에서는 많은 분들이 제 이름을 '여영'이라고 부르거나 '유정'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오늘만은 모두 용서해 드릴게요. 저는 그간 지구 반대편에서 오스카 시상식을 TV로, TV프로그램으로만 봐왔는데 오늘 이 자리에 직접 서게 되니 믿을 수가 없네요.
제가 조금 정신을 가다듬을게요.[36]
아카데미 관계자 분들과 제게 표를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그리고... 그 다음 소감은 다들 이렇게 말하죠.
미나리 팀에게 깊이 감사합니다. 스티븐, 이삭 감독, 예리, 노엘, 앨런 등과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 모두는 가족이 되었어요. 무엇보다 정이삭 감독님, 감독님이 없었다면 오늘 저는 이 자리에 없었겠죠. 그는 우리의 캡틴이자 나의 감독님이었어요.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저는 경쟁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글렌 클로즈를 이기겠어요? 전 그 분의 여러 연기를 오랫동안 봐왔습니다. 그저 오늘 노미네이트된 다섯 명은 모두 각자 다른 영화의 다른 역할을 연기한 승리자들입니다.[37]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경쟁할 수가 없습니다.[38] 오늘 밤 제게 조금 운이 따라주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아마 제가 운이 좀 더 좋았나 봐요. 한국의 배우에게 베푼 미국식 호의라고 볼 수도 있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깊이 감사드립니다.또한 제가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 준 두 아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상을 높이 들며)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게 바로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
이 상을 제 첫 영화의 감독이자 천재적인 김기영 감독님에게도 바칩니다. 저는 그와 첫 영화를 만들었어요. 현재 살아계셨다면 제 수상을 무척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셨을 거예요.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맞게 이야기 했나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소감(해석) 전문
Mr. Brad Pitt. finally nice to meet you. Where were you while you were filming in Tulsa? [39]
It's truly honor to meet you.As you know, I'm from Korea. Actually my name is 여정 윤. Most of the European people call me '여영', some of them call me '유정'. But tonight, you are all forgiven. And well... usually... When I'm living in the other part of the world, I just watched television. This is Oscar, event on the television. Just watching, like a television program for us. But me being here by myself, I cannot believe it that I'm here.
Okay, let me put myself together.[40]
Thank you. Tremendous thanks to the Academy members who voted for me.and Next speech, they usually say....
Thank you for the wonderful MINARI family. Steven, Isaac, Yeri, Noel(노엘), and Alan(앨런). We became a family. And most of all, Lee Isaac Chung, without him, I couldn't be here tonight. He was our captain and my director. Thanks to you, too many thanks to you.
And I'd like to thank to... see...
Well, I don't believe in competition. How can I Glenn Close? win over Glenn Close? I have been watching her do many performances. So this us just... all the bominees, five nominees, we are the winner for the different movies.[41]
We played different roles, so we cannot compete with each other.[42] Tonight I'm here is that just because of a little bit if luck. I think. Maybe luckier than you. But anyway thank you so much. And also maybe... Is that an American hospitality for the Korean actor? I'm not sure, anyway thank you so much.And I'd like to thank to my two boys who made me go out and work. (상을 높이 들며) So, beloved sons, this is the result because mommy works so hard.
And I'd like to dedicate this award for my first director, Kim Ki-young who was a very genius director. I made a movie together with my first movie. I think he will be very happy if he is still alive.
Thank you very much! Tremendous thanks for everybody. Thank you.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소감 영어 전문
2021년 4월 25일[43] ,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오스카 레이스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미나리에서 딸 역할을 맡은 배우 한예리와 LA 유니언 스테이션에 직접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44] 수상소감 도중 그녀만의 센스 있는 표현들을 자주 사용해[45] , 현장에 참석한 관계자들에게도 많은 호응을 받았다.
- 한국 영화인 최초로 아카데미 배우상(여우조연상) 수상[46]
- 아시아계 배우로는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48]
-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영어가 아닌 자국어 연기[47] 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한편 미국배우조합상(SAG)을 비롯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OSCAR)의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자연스럽게 내년 해당 시상식의 남우 혹은 여우조연상 시상자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다른 시상식은 몰라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시상자로 나설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후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최근 아시아 영화의 약진과 할리우드의 다양성 확대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사람의 정체성에 의한 차별을 반대할 것을 주장했다.#
심지어 무지개도 7가지 색깔이 있다. 여러 색깔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과 흑인, 황인종으로 나누거나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로 구분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따뜻하고 같은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이다. 저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끌어안아야 한다.
2021년 10월 28일, 문화예술 공로자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A] 해외 촬영 일정 때문에 수상은 여동생 윤여순이 대리수상했고, 미리 준비된 수상 소감 영상을 통해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미국 시간 2022년 3월 27일에 열리는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부문의 시상을 맡았다. 수상자인 트로이 코처[49] 가 청각장애인이어서 소리내어 이름을 부르기 전 수어로 축하를 먼저 전하는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수어 시상’에 ‘파란 리본’까지…윤여정의 품격 / KBS.[50][51]
4. 출연작[편집]
4.1. 드라마[편집]
4.2. 연극[편집]
4.3. 영화[편집]
4.4. 방송[편집]
4.5. 라디오[편집]
4.6. 애니메이션[편집]
- 더 보이즈: 디아볼리컬[67] (2022년) 1기 7화 존과 선희 - 선희(Sun-hee)[68][69]
4.7. 광고[편집]
5. 수상[편집]
영화 미나리로 각종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44개나 들어올렸으며 이 역시도 현재진행형이다. 배우 앙상블상을 제외하고 여우조연상[73] 단독 수상만 보더라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포함하여 41관왕이다.
6. 말말말[편집]
윤여정의 발전 여부가 앞으로의 우리 영화의 질적 향상을 가름하는 표본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작업할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 능력과 재능을 떠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책임감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작업할 때 저는 또 한 번 선생님의 멋진 면을 보았습니다. 대본에서 손을 안 떼고 연구를 하시더니 제 대본에서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억양과 발음으로만 역할을 재정비해 오셨습니다. 선생님은 남들보다 뭘 먼저 해서 신여성이 아니에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온 힘으로 살겠다는 마음. 밥을 먹고 사는데 연기로 살겠다는 강인한 다짐은 배우의 자의식을 뛰어넘은 것임을 느낍니다. 처음 뵌 62세 때나 지금이나 그래서 그렇게 선생님은 똑같나 봅니다.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는 연기를 할 거라 하셨죠. 제가 더블 개런티를 드릴 때까지 건강히 오래오래 웃으면서 제 곁에 있어주세요."
영화감독 김초희
“영광이고, 선생님이 재치도 있고 매력적인 분이지 않나. 이런 유머가 현장에서 좋은 에너지구나, 필요한 에너지구나라고 생각했다. 저는 웃길 수 없는 사람이구나, 다시 태어나야 하는구나 싶었다. 또 선생님을 통해 용기를 배웠다. 모르는 사람들과 외지에서 작업을 하시면서도 걱정없이 ‘두잇!’(DO IT) 하시더라. 저는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근데 선생님을 보면서 뉘우치기도 했다. 또 솔직함도 배웠다. 남의 눈치 볼 거 없이 힘들면 힘들다고 하고 좋으면 좋다고 생각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는데, 저희는 다 알고 있지 않았나. 좋은 연기를 보여주신 분이라는 걸. 이제야 미국에서 선생님을 알게 된 게 조금 아쉽기도 하고, 선생님이라는 좋은 배우를 그들이 알게 돼서 기쁘기도 하다.”
배우 한예리
"윤 선생님에 대한 존경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많은 것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택한 삶의 방식에 대한 나의 경외심으로 내가 얼마나 그녀를 존경하는지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윤 선생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녀의 진실됨을 느낄 수 있었다. 진실됨은 내 삶에서도 구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진짜다. 그것이 내가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배우 스티븐 연
"'미나리' 촬영을 시작하기 전 대본도 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런 조건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거절할 만한 상황이었어요. 한국에서처럼 편안하게 대우받으면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니까요. 그 나이에 자기 돈을 써가면서 함께 하셨고 이런 결과를 맞이하신 건, 그 분이 몸보다 마음이 젊은 분이어서겠죠."
"(윤여정은) 어려울 때 꺼내 쓸 수 있는 옆 주머니에 따로 찬 지갑처럼 언제나 마음 든든하게 내 편이 되어주는 배우."
영화감독 임상수
"제게는 선배님이기도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여배우로서 끊임없이 작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여배우들에게 자극을 주는 모습이 너무 좋다."
배우 전도연
윤 선생님은 카리스마도 대단하지만 상대방에게 영감을 주는 분이에요. 지금 어느 정도 연기를 한다 하지만, 저는 나 하나 챙기기가 바쁘고 상대 배려하기가 참 힘들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상대가 그분의 눈만 봐도 몰입할 수 있게 만드세요.
배우 배두나
그에게는 사모님의 옷이 없다. 까만 콤 데 가르송 치마와 하얀 스니커즈를 신는다. 그에게는 어머님의 옷이 없다. 스키니 진과 가죽으로 된 단화를 신는다. 윤여정의 집에는 엄마의 소파가 없다. 마르셀 브로이어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가구가 있다. 그리고 아트페어에서 구입한 미국의 초사실주의 아티스트 캐롤 퓨어만의 수영복을 입은 여성의 조각이 있다. 나는 어떠한 한국 인테리어 잡지에서도 윤여정의 집처럼 주인과 똑 닮은 집을 본 적이 없다. 그 건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주인의 취향으로 하나하나 모은 것들이 너무나도 조화롭게 스윽 스며든 집이다. 세련되고 모던하다는 지루한 말을 어쩔 도리 없이 다시 꺼내게 될 만큼 세련되고 모던한 집이다. 그러나 윤여정은 집을 공개하자는 당신의 요청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요청을 한다면 그건 분명히 이 글을 읽었기 때문일테니 나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제발 요청하지 마시라. 대신 상상해보시라. 바르셀로나 체어에 비스듬히 앉아서 화이트 와인을 한 잔 하며 과학자가 새로 펴낸 책이나 새 시나리오를 읽는 윤여정의 모습을. 그는 당신의 엄마가 아니다. 한국의 엄마도 아니다. 오직, 오로지, 윤여정이다. 윤여정은 먼 미래에 누군가가 펴낼 ‘한국 배우 백과사전’에 혼자만의 챕터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챕터는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먼저 걸어나갔던 배우가 있었다.
영화평론가 김도훈[75]
7. 여담[편집]
"...서진이가 메뉴를 추가하자고 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센스가 있으니 들어야죠. 우리는 낡았고 매너리즘에 빠졌고 편견을 가지고 있잖아요.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많이 오염됐어요. 이 나이에 편견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니들이 뭘 알아?'라고 하면 안 되죠. 난 남북통일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 소통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윤식당 당시의 인터뷰 중에서 발췌.
- 배우들 중에서도 명석하고 지성미 넘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동년배 배우들 사이에서 쏟아지는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원로 배우 중에서도 최고참인 김영옥은 '나 같은 경우는 대본이 안 외워져서 손에서 놓지를 못 하는데, 여정이는 어느 순간 손에서 대본을 딱 놓고 안 볼 정도로 대단히 집중력과 암기력이 뛰어난 영민한 여배우이다' 라고 얘기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하고, 원로배우 이순재는 '윤여정은 역할을 대충하거나 상식적으로 해석하는 배우가 아닌 여러가지로 분석을 해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내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배우'라고 극찬한 바 있다. 동료이자, 선배인 배우 박근형은 '<장희빈> 시절 함께 호흡을 맞출 때부터 총명하고 명석했다. 윤여정 같은 배우가 세네 명만 있어도 중년 배우들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인터뷰한 내용이 있다.
- KBS 연기대상 MC로 나선 윤여정이 우수연기상을 받은 직후 시상자로 나온 강부자는 '윤여정은 그 좋은 머리로 그 긴 대사를 NG 한 번 없이 촬영해준 덕에 우리 <넝쿨당> 촬영이 편안했다. 만약 윤여정이 NG를 냈으면 우리 모두 힘들었을 거다. 정말 고생했다'라는 말로 그녀를 칭찬하였고,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둘째 며느리로 활약한 중년배우 박순천 또한 '윤여정 선배님은 머리가 비상한 배우이다. 대본을 보고 연기가 떠오르지 않을 땐 윤여정 선배님을 찾아간다.'라고 할 정도이다. 김수미는 예능에 나와서 윤여정과의 일화를 종종 말하고 다녔는데, 그때마다 지적이고 옷을 참 잘 입는 멋쟁이라고 칭찬해주었다. 이 정도면 동료 선후배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명석함을 꽤나 인정받는 듯하다. 또한 그녀는 엄청난 대사량으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의 사랑이 뭐길래를 촬영할 때, 몸이 정말 좋지 않은 상태에서 작중 그녀의 분량인 대본 1~132페이지까지 쭉 외우고, 원테이크로 NG 없이 촬영 후 기절을 했다는 얘기로 방송국에서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배우계의 엄친딸인 셈이다.
- 능숙한 영어 회화는 윤여정을 지적인 배우로 보이게 하는 데 한몫한다. 해외에서 촬영한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 윤식당, 윤스테이 등을 통해 수준급 영어 실력을 많이 보였다. 꽃보다 누나 촬영 당시, 외국인과 자유자재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며, 후배 여배우들로부터 리스펙을 받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영화 미나리 무대 인사 때도 통역이 있었지만, 본인 의사는 본인이 직접 영어로 진행했다. 한편 윤스테이 출연 후에는 나영석이 캐나다 사람인 최우식과 뉴욕 대학교 출신인 이서진은 냅두고, 먹고 살려고 생활 영어나 잠깐 배웠던 자기한테 계속 외국인 손님 응대를 시키는 바람에 그게 보기 싫어서 윤스테이를 안 본다고 밝히기도 했다.
- 옷을 잘 입기로도 유명하다. 동년배 배우들 중 패셔니스타 대접을 받는 건 윤여정이 유일. 일단 본인이 젊은 시절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출연료를 몽땅 옷 사는 데 쓰는 등, 윤여정 정도 되는 나이가 되면 보통은 특유의 '할머니 룩'을 입고 다니기 마련인데, 그런 것 없이 유행을 자연스럽게 잘 소화하는 편. 또한 여배우들에 함께 출연해 친해진 패셔니스타 김민희에게 돈을 주고 옷 심부름을 시키기도 한다고 밝혔다. 소싯적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정장 한 벌을 직접 지어준 적도 있다고 한다. 헤어스타일에도 엄청나게 신경쓰는 모양이다. 꽃보나 누나에서 고데기를 20년간 써왔다는 장면이 나온다. 20년간 사용한 고데기가 고장 나자, 이승기가 새로운 제품을 사다줬다.
- 윤여정의 모친은 1924년생이며, 2020년 10월 2일에 향년 96세로 별세하였다.
- 8살 밑의 여동생인 윤여순은 LG 아트센터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게다가 LG 최초의 여성 상무였고, 역시 LG 최초의 여성 전무 자리에 올랐다. 본인 역시 문교부장관을 역임했던 국가 원로인 민관식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대표로 소감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당시 자료가 민관식 컬렉션에 전시되어 있다.
- 윤여정의 할머니는 윤여정이 매우 어렸을 시기인 6.25 전쟁 도중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증조할머니는 좀더 오래 사셔서 기억이 난다고 한다. 전쟁 직후 물자가 부족하고 가난하던 시절에 증조할머니는 다른 가족이 이미 사용한 물로 목욕을 했는데, 윤여정은 어린 마음에 증조할머니를 더럽다고 생각하여 싫어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증조할머니는 손자들을 더 먹이고 싶어서 본인 끼니는 거를 정도로 희생적이셨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증조할머니에게 얼마나 못되고 어리석게 굴었는지 깨달았으며, 지금도 증조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미나리>의 순자 연기를 할 때도 증조할머니를 생각하며 했다고 한다.
- 영화 쎄시봉의 여주인공인 민자영 역의 모티브 역할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며, 한효주와 김희애가 역할을 맡았다.
- 인터뷰에서 자주 언급하는 내용이 있는데, 본인이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는 아니라고 한다. 다른 배우들은 어떠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린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윤여정은 언제나 "이 캐릭터가 나였다면?"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연기 스타일 또한 조금은 다른데, 예를 들어, 슬프게 오열하는 연기를 보면 대체로 바닥에서 통곡하는 연기가 많은데, 본인은 그런 연기보다 소리내지 못 하고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울음을 삼키는 연기가 더 아프고 더 슬픈 거 같다며, 언제나 과장되지 않은 다큐 같은 연기를 지향한다고 한다.
- 애연가다. 그 윤식당에서조차 윤식당2 비하인드 스토리 방송에서 전자담배가 모자이크된 채로 나왔을 정도. TV 오디오에서 잘 잡히는 특유의 목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흡연을 시작했다고 한다. 금연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76]
- 박근형과 드라마 장희빈부터 모래성, 꼭지, 비단향꽃무, 그대 목소리, 유행가가 되리, 장수상회 등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작품에 같이 출연하였다. 그중 대부분이 연인 혹은 부부관계로 나온다.
- 동남방언을 쓰는 배역을 맡을 때,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영화)에서 사투리를 배우는데 집중하다 연기를 망쳤다고 하며, 그래서 파친코(드라마)에선 제작사에서 사투리 코치를 붙여줬으나 "내버려 두라"고 하면서 사투리를 배우지 않았고, 선자가 오랜 이국 생활로 이상한 말투가 됐으리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한다.# 본인이 늙은 배우이기에 사투리 코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과거 “내 마음대로 하는 환경에서 일하면 괴물이 될 수 있어. 그게 매너리즘이지. 그런 환경에서 일하면 내가 발전할 수 없을 거야."#라고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부분. 그 정도로 동남방언 사용하는 배역을 맡을 때 부담감을 크게 느낀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77]
- 미나리 관련 해외 매체 화상 인터뷰 중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 불리던데?”의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분과 비교된다는 데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저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배우다. 제 이름은 윤여정이다. 저는 그저 저 자신이고 싶다.”, “배우들끼리의 비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칭찬에는 감사드리지만, 제 입장에선 답하기 어렵다” 라고 답하며 자칫 난감해질 수 있는 질문에도 현명하고 센스 있는 답변을 하여 취재진들의 찬사를 받았다. 관련 기사
- 2021년, 2016년 12월 2일 당시 가졌던 '배우 윤여정 데뷔 50주년 기념 파티' 영상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된 것을 기념하여 소속사에서 공개했다. 영상
-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마이너 갤러리,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역알못의 상징으로 통한다. 꽃보다 누나에서 아야 소피아에 방문했을 때, 윤여정은 아야 소피아를 보면서 '이 사람들은 잘 화합을 한 거다, 이슬람이랑 천주교랑'이라는 말을 했는데, 정교회와 천주교를 구별하지 못한 것도 그렇고 오스만 제국의 역사 또한 화합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심했기 때문이다. 물론 윤여정은 역사 전공자도 아니니 제대로 모를 수도 있고, 1차적인 잘못은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엉터리 대본을 써준 꽃보다 누나 제작진에게 있지만, 결국 이 발언은 디시콘으로도 만들어졌다.
-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자, 다른 나라 미디어들도 윤여정을 조망하는 기사를 앞다투어 내보냈는데, 특히 일본, 대만, 동남아 각국 등 아시아권에서의 관심이 뜨겁다. 이 중 한 대만 매체는 윤여정의 데뷔를 임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했다며 오보를 내기도 했다. 임상수, 홍상수 등과 영화를 자주 하긴 했지만, 알다시피 윤여정의 데뷔는 그보다 까마득한 옛날의 김기영 감독의 "화녀"이다. 기사 본문에 임상수 감독이 여러 번 언급되었기 때문에 아마도 기사 쓰는 과정에서 기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 씨네21에서 주최한 봉준호 감독과의 줌 인터뷰(Part 1, Part 2)에서 봉준호가 연기에 관한 질문을 하자, 자신을 작품에 캐스팅해주면, 봉 감독이 궁금해하는 걸 보여주겠다고 강력하게 어필했다.# 하지만 정작 봉준호가 어필에 대한 대답을 끝까지 안 해서 평소 그의 성격을 아는 씨네필들이 "윤여정이 저렇게 얘기해도 대답을 안 하는 걸 보니 역시 봉준호는 봉준호"라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78] 한편 "저는 가족 영화를 만들어도 결국 피바다로 가게 되더라"는 봉준호의 말에 "봉 감독이랑 임상수 감독이 사회학과를 나와서 그래"라고 대답해 보는 사람들을 빵 터트리기도 했다.
- 임상수 감독 영화들 중 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을 제외한 모든 영화에 주연, 조연, 단역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였다. 특히 하녀에서 선배 하녀 역할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그 해 청룡영화상, 대종상영화제, 부일영화상, 춘사영화상같은 국내 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고, 아시안 필름 어워드에서도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 특이하게도 그의 필모그래프를 차지하는 수많은 배역 중에서 <순자> 라는 이름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순자(드라마), 파친코(드라마)[79] ,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미나리(영화)) 특히 2020년과 21년 연달아 영화에서 순자, 그리고 치매걸린 할머니의 역할로 등장했으며, 외국 작품에서도 순자 배역을 받는 등 국내외를 따지지 않을 수준이다.
- 허스키한 저음의 목소리가 매우 특징적으로, 한번은 114에 전화했더니 상담원이 "윤여정 씨 아니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 2021년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이 있는 100인에 들어갔다.
- 예능 <뜻밖의 여정>에서 본인이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었을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 윤여정과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의 결별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윤여정이 후크를 떠나게 된 진짜 이유가 전해졌다. 압수수색을 당한 이후, 회사에서의 피드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과, 권진영 대표와 회사 임원진들의 사치스러운 모습에 실망을 했기 때문.
-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이후 "사실 말을 잘 거를 줄 모른다. 그건 장점도 단점도 아니다. 저는 겸연쩍어하는 게 일종에 겸손이라고 배웠다"라고 하며 달라진 점이 없다고 밝혔다.#
8. 외부 링크[편집]
매체 인터뷰
- JTBC, 배우 윤여정 "깐깐함·예민함이 날 배우로 만들었다(201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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