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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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신인왕인 박종훈, 90년대 말 선발투수로 활약했으며 은퇴 이후 방송 활동과 사건사고 및 논란으로 더 유명한 강병규, 2000년대 말 KILL 라인의 일원이었던 이재우 등이 사용했으며 2018년을 앞두고 핵심 불펜 자원이었던 함덕주가 61번에서 1번으로 변경하면서 3시즌을 활약하였다. 2021년을 앞두고 함덕주가 트레이드 되면서 현재는 박치국이 사용중이다.
초창기 OB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김우열이 사용했던 등번호로도 유명하지만 이 번호를 달고 가장 뛰어난 활약을 했던 선수는 두산의 역대 최고 2루수였던 안경현이다. 1992년 데뷔 이래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8년까지 무려 17시즌을 달고 활약했다. 안경현의 3번 또한 김동주의 18번 못지않은 영구결번 후보였으나, 역시 감독 혹은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SK로 이적해 은퇴하여 영구결번은 없던 것이 되었다.
이후 이렇다 할 3번 플레이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현재는 2021년 입단한 내야 유망주 안재석이 사용중이다.
원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한 김유동,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두산의 리드오프를 맡은 정수근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이후 2010년대 중후반에 내야수 류지혁이 이 번호를 달고 활약했으며, 2022년에는 안권수가 8번을 달고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며 전반기 동안 리드오프로 활약하기도 하였으나 병역 문제가 걸리자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된 후 롯데로 이적하였고 현재는 송승환이 사용 중이다.
초창기 OB 베어스의 핵심 선수였던 윤동균의 등번호였다. 원체 상징적인 선수였기 때문에 은퇴 이후 KBO 영구결번까지 받았지만 감독 부임 이후 구단 역사상 최악의 항명 사건에 연루되어 불명예 퇴진하며 영구결번이 해제되었다.
윤동균 이후로는 10번을 다는 선수들 중 제대로 된 활약을 한 선수가 드물다. 문희성은 2군을 전전하다 은퇴, 강혁은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대타로만 활약하다 병역 면탈 시도가 적발되며 선수 생활이 꼬이게 되었고, 심재학은 이적 첫 해 V3의 주역이 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지만 그 때가 플루크 시즌이었다. 최준석이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중심타선에서 활약한 것이 유일한 예외이다. 최준석 이후에 10번을 단 김강은 2군을 전전하다 은퇴, 박세혁이 2017년부터 10번을 달며 양의지의 백업으로 활약하다 2019년 V6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잔혹사를 끊는가 했지만 그 이후 성적이 하락세를 타고 있다. 이 때문에 베어스의 10번에는 저주가 걸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 2022 시즌이 끝나고 FA가 된 박세혁이 NC로 떠나면서 결번이 되었다가, 병역을 마치고 돌아온 박지훈이 2023년 6월 23일부터 달게 되었다.
20세기에는 외국인 선수 도입 첫 해에 에드가 캐세레스가 수비형 2루수로 활약한 것이 전부였을 정도로 큰 의미가 없는 등번호였지만 2003년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손시헌이 주전으로 도약한 뒤로 2013년까지 활약하면서 위상이 올라간 등번호이다. 손시헌이 NC로 이적한 이후에는 허경민이 등번호를 물려받았다. 허경민은 2015년부터 주전 3루수로 도약하면서 두산의 최전성기를 이끈 선수들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2000년대 후반 두산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강팀으로 도약하게 만든 고영민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2002년 데뷔 이래로 2011년 3번을 달며 1시즌 일탈한 것을 제외하고는 2016년 은퇴까지 14번은 그의 몫이었다. 고영민의 은퇴 이후에는 내야 유망주인 이유찬이 14번을 달고 2시즌을 뛰다가 2021년을 앞두고 입대하면서 오재일의 보상선수로 이적한 박계범이 14번을 달고 있다.
초대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양세종, 90년대 중후반 김상진과 원투펀치를 이루며 1995년 한국시리즈 헹가래 투수의 영예를 거머쥔 권명철, 2000년대 중후반 불펜에서 마당쇠 역할을 한 김승회 등이 달았던 등번호이다. 2013년을 앞두고 김승회가 보상선수로 이적하면서 이원석이 16번을 달고 뛰다가 2016년을 마치고 삼성으로 FA 이적했다. 이후에 방출되었던 김승회를 재영입하면서 김승회가 다시 16번을 달게 되었다. 이후 김승회는 중간계투로 활약하다 2020년 이후에 은퇴하였다. 현재는 서예일이 2021년부터 16번을 달고 있는 상태.
80년대 중후반 사이드암 에이스로 활약한 김진욱, 2000년대 초반 좌완 중간계투로 활약한 차명주,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활약한 외야수 임재철 등이 달았던 등번호이다. 2019년부터는 내야 백업요원으로 뛰었던 류지혁이 17번을 달고 활약하다 2020시즌 중반 KIA로 트레이드되면서 트레이드 상대였던 홍건희에게 17번이 넘어갔다. 이후 홍건희가 필승조 불펜으로 각성하면서 현재까지도 활약하고 있는 중이다.
한 때는 영구결번 후보(1)
KBO 역사상 최고의 3루수이자 국가대표 4번타자였던 김동주의 등번호였다.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타자였기 때문에 영구결번 후보로도 꼽혔지만 급격한 노쇠화와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인해 2014년을 끝으로 은퇴식도 없이 초라하게 은퇴, 이후에는 선수 시절의 압도적인 실력으로 겨우 무마했던 사생활 문제가 재조명되면서 영구결번은 물건너간 상태이다. 현재는 거포 유망주? 인 김민혁이 18번을 달고 있다.
OB 베어스의 상징이자, 한국프로야구 원년 최고의 스타 불사조 박철순의 등번호이다. 원년부터 은퇴 시즌인 1996년까지 쭉 21번을 달고 있었으며, 은퇴 이후에는 아무도 21번을 달고 있지 않다가 2002년에 영구결번 처리되면서 박철순은 유일무이한 베어스의 21번으로 남게 되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22번(이만수)와 더불어 KBO 리그에서 유이하게 한 팀에서 단 한 명만이 사용했던 영구결번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포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등번호답게 김경문, 진갑용, 최기문 등의 포수들이 사용했지만 이 번호를 달고 가장 큰 활약을 한 선수는 홍성흔이다. 2000년대 초반 두산의 주전 포수를 맡으며 양의지의 등장 이전까지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2008년까지 22번을 달며 두산의 안방을 책임졌다.
이후 홍성흔이 FA로 롯데로 이적 하면서 투수 유망주였던 성영훈이 22번을 달았다가 2013년을 앞두고 홍성흔을 재영입하면서 홍성흔에게 22번을 다시 넘겨주었다. 이후 홍성흔은 2016년까지 두산에서 뛰다가 은퇴, 이후에는 이용호, 성영훈, 강동연 등 투수들이 22번을 달다가 2020년부터 다시 포수인 장승현이 달고 있다.
아마 홍성흔이 롯데로 이적하지 않고, 롯데에서의 성적을 두산에서 냈었더라면 이 번호 또한 홍성흔의 영구결번이 되었을 것이다. [10]
前 두산 베어스 감독인 김태형이 현역 시절 사용하던 등번호였다. 현역 시절 임팩트 있는 활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10년 넘게 두산의 안방마님으로 활약하기도 했고, 23번을 달고 크게 활약한 선수가 없던지라 베어스의 23번 하면 김태형을 떠올리는 사람들(특히 OB시절부터 응원했던 올드팬들)이 많다. 그 외에는 정진호가 2017년에 이 등번호를 달고 최소 이닝 싸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2022년부터는 강승호가 23번을 달고 있는 상태.[11]
원년 OB팬들에게는 80년대 중반 선발투수로 활약한 재일교포 최일언의 등번호였다. 200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까지는 김경문 키즈 시절 주전 포수로 추억을 남긴 용덕한이 사용했던 등번호였고[12] , 현재 젊은 팬들 사이에서는 두산의 최전성기 당시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던 오재원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엄밀히 말하면 오재원이 24번을 단 2016년 이래로 제대로 활약한 시즌은 2018년이 유일한데다 커리어 하이인 2014년에는 17번을, 본인의 유일한 타이틀(도루왕)을 수상한 2011년에는 53번을 달았지만 선수 생활 중 가장 오랫동안 달았던 등번호이기도 하고 팀의 최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의 등번호인지라 24번을 대표 등번호로 인식하는 팬들이 많다.
한 때는 영구결번 후보(2)...였으나 2차 FA로 두산에 복귀하며 다시 현재 진행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포수이자 2010년대 두산의 최전성기를 이끈 안방마님 양의지의 등번호이다. 공수에서 정상급 활약을 하면서 두산 소속으로 4번의 포수 골든글러브[13] 와 2번의 우승, 2016년 한국시리즈 MVP 등의 활약을 하면서 영구결번 후보로도 점쳐졌으나 2018년을 끝으로 NC로 FA이적했으나 2023년 FA로 두산으로 복귀하면서 영구결번 유력 후보 중 하나이다.
한편, 20세기에는 조범현이나 이도형 등 포수 자원이 달았던 등번호이기도 하며 양의지의 이적 이후에는 배영수가 25번을 달고 2019년 한국시리즈의 헹가래 투수라는 영예를 얻으며 화려하게 은퇴하기도 하였다. 2022시즌부터 25번을 달기 시작한 황경태가 시즌 중 은퇴하면서 잠시동안 결번이었다가 시즌 말미에 이유찬이 전역하면서 비어있던 25번을 달게 되었다.[14]
2000년대 초중반 에이스로 활약했던 박명환이 달았던 등번호로 유명하며 2007년을 앞두고 박명환이 LG로 FA이적을 하자 외국인 에이스 다니엘 리오스가 27번을 달고 다승왕과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박명환과 리오스 모두 금지약물 복용자라는 것. 심지어 2011년에 거포 유망주였던 김재환이 27번을 달고[15] 금지약물이 적발되면서 졸지에 약쟁이 등번호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나마 김강률이 2017년부터 이 등번호를 달고 포텐이 폭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면서 흑역사를 씻어내고 있는 중이다.
올드 팬들에게는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던 미스터 OB 김형석의 등번호로, 젊은 팬들에게는 8년 연속 10승과 통산 101승을 거둔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좌완투수 유희관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그 외에는 초창기 박철순의 뒤를 받히며 좌완선발로 활약한 선우대영 정도가 있다. 2022시즌을 앞두고 유희관이 은퇴하면서 2022시즌은 결번이었으나, 2023시즌부터 좌완 유망주인 이병헌이 등번호를 물려받았다.
90년대 말 선발투수로 활약한 이경필도 유명하지만 30번을 달고 가장 큰 활약을 한 선수는 니퍼트 이전까지 두산의 최고 외국인 투수였던 맷 랜들이었다. 두산에서 4시즌을 뛰며 통산 49승을 거둔 랜들은 2009시즌을 앞두고 선릉역 계단에서 미끄러지며 전치 6주의 부상을 당하고 안타깝게 은퇴하게 된다. 그 이후 30번을 단 외국인 선수들이 모조리 부진하면서[16] 팬들 사이에서는 이를 랜들의 저주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2022년부터 외야 유망주인 강현구가 30번을 달기 시작했으나 시즌 도중 입대하면서 현재는 SSG에서 트레이드로 이적한 김정우가 달고 있다.
베어스 소속으로 최다승(109승)을 기록한 장호연과 2015년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아기곰' 정수빈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두 선수 모두 선수 생활 내내 31번을 달았다[17] .
90년대 후반 우동수의 일원으로 활약한 우타 거포 심정수와 2010년대 후반 두산의 4번 타자를 책임진 김재환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다만 김재환이 두산에서 거둔 성적과는 별개로 금지약물 복용이라는 원죄가 있다 보니 영구결번은 아예 언급도 되지 않고 있다. 두 선수 외에는 해외파 선수인 김선우가 32번을 달고 2000년대 후반 선발투수로 활약한 적이 있다.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타자인 타이론 우즈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이 등번호를 달고 5시즌 동안 홈런왕, 정규시즌 MVP 한국시리즈 MVP 등을 수상하면서 우동수 클린업으로 대표되는 2000년대 초반 두산의 강타선을 이끌었다.
우즈 외에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주전 외야수로 활약한 김광림이 달기도 했다. 2020년부터 김문수 선수가 33번을 달았으나 2022년을 끝으로 방출되면서 현재는 2023년 새로 영입한 외국인 투수 딜런 파일이 달았다 방출되면서 현재는 공번 상태.
조쉬 린드블럼이 2018년부터 34번을 단 이래로 외국인 투수들이 달고 있는데, 이 선수들이 모두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외국인 에이스 등번호로 거듭나고 있다. 린드블럼은 2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에 2019년 정규시즌 MVP 수상, 크리스 플렉센은 정규시즌에서는 부상으로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후반기와 포스트시즌에서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이며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다. 워커 로켓은 부상으로 124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올스타 급이라 평가받는 4.10의 sWAR를 기록하는 좋은 피칭 퀄리티를 보여줬으며, 로버트 스탁은 직전 시즌 MVP인 미란다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1선발로 활약하였다. 현재는 내야수 권민석이 달고 있다.
80년대 OB의 마무리를 책임진 윤석환과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두산의 마무리를 책임진 진필중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그 외에는 민병헌이 2012시즌 경찰청 야구단에서 전역하자 마자 임시로 달기도 하였다. 현재는 내야수 전민재가 달고 있다.
2000년대 말 LG에서 트레이드로 넘어온 이성열이 36번을 달고 2010년 24홈런을 치며 깜짝 활약을 하기도 했지만 36번을 달고 가장 큰 활약을 한 선수는 2012시즌 중반 이성열과 맞트레이드되어 두산으로 이적한 오재일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두산의 주전 1루수로 자리잡으면서 4년 연속으로 20개 이상의 홈런을 치며 두산의 클린업 트리오로 활약했고 2017년 플레이오프와 2019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는 등 2010년대 두산의 최전성기를 이끈 타자 중 하나로 활약했다.
2022년을 앞두고 두산의 중간계투로 활약했던 윤명준이 42번에서 36번으로 등번호를 옮겨 달았으나 시즌 종료 후 방출되며 결번 상태이다. 이후 두산의 11대 감독으로 이승엽이 선임되면서 본인의 선수 시절 등번호였던 36번[18] 을 달 것이라는 예상도 일부 있었으나 본인이 사양하고 다른 등번호를 달 것이라 밝혔다.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활약한 장원진, KILL 라인의 일원으로 활약한 중간계투 고창성, 2010년대 후반 두산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한 박건우 등이 37번을 달고 활약했다. 박건우가 2022시즌을 앞두고 NC로 이적하면서 현재는 외야 유망주인 김대한이 달고 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두산의 리드오프와 중견수를 책임진 '종박' 이종욱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이종욱의 NC이적 이후로는 외야 유망주인 김인태가 2016년부터 달고 있는데, 2019년 말부터 조금씩 가능성을 보여주더니 2021시즌에는 주전 자리를 노릴 정도로 성장하면서 39번을 달고 활약하는 또 다른 선수가 탄생할 전망이다.
한 때는 영구결번 후보(3)
두산 베어스를 넘어 KBO 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꼽히는 더스틴 니퍼트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2011년에 두산에 입단한 이래로 7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단순한 외국인 선수가 아닌 팀의 레전드로 활약했지만 2017시즌을 끝으로 구단이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2018년 kt에서 1시즌을 뛰고 은퇴하였다. 그래도 현재는 두산 유니폼을 입고 3번이나 시구[19] 를 하는 등 구단과 화해 분위기에 들어가면서 다른 후보들 보다는 어느 정도 영구결번의 가능성이 생기기는 하였다.
니퍼트 이외에는 2010년 팀의 1선발로 활약한 켈빈 히메네스나 2018년 다승왕을 차지한 세스 후랭코프 등이 40번을 달고 활약하였으며, 팀의 초대 감독인 김영덕 감독이 원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때 40번을 달기도 했다[20] . 이후 투수 현도훈이 40번을 달았으나 2022시즌 후 방출되며 공번 상태다.
이후 2023년 1월 16일 발표된 구단 배번 현황에도 공번 상태임이 확인 되었다.
중간계투와 마무리를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한 정재훈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2003년 데뷔 이래로 은퇴 시즌인 2017년까지 장원준의 보상 선수로 롯데로 잠시 이적했던 2015년의 1년간을 빼면 41번은 정재훈의 몫이었다. 정재훈 이후로는 여러 투수 유망주들이 달다가 2022년부터는 투수 김동주가 달고 있다.
1995년 정규시즌 MVP와 최초의 잠실 홈런왕으로 대표되는 활약으로 90년대 OB의 타선을 이끈 김상호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그 외에는 44번이 거포의 상징으로 유명한 만큼 거포 유망주들이나 외국인 타자들이 주로 달았다. 골육종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두환이나 거포 외국인 타자였던 닉 에반스도 44번을 달고 활약했었다.그리고 외국인 타자 먹튀 2연타로 유명한 지미 파레디스와 스캇 반 슬라이크까지. 현재 44번을 달고 있는 홍성호도 거포 유망주이다.
2010년대 중후반 두산의 주전 우익수로 활약한 민병헌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민병헌이 롯데로 FA이적한 이후에는 백동훈이나 강진성 등 외야수들이 달고 있다[21] .
한 때는 영구결번 후보(4)
2000년대 후반 두산의 간판스타였던 '타격기계' 김현수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2008년 타격왕을 차지하며 신고선수 신화를 써내려간 것을 시작으로 꾸준한 성적을 찍어내며 타선을 이끌었고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팀의 대표 선수가 되며 영구결번 0순위로 올라섰지만 2015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하였고 이후 국내 복귀를 할 때 잠실 라이벌 LG로 복귀하면서 영구결번에서 멀어졌다.
김현수 이후로는 선발 유망주인 이영하가 2017년부터 50번을 달기 시작하였다. 2018년에 10승, 2019년에 17승을 거두는 활약을 보이며 팀의 핵심 선발투수로 성장하나 싶었지만 이후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헤매는 중이다.더욱이 2021년 초 선린인터넷고 재학 시절 학교폭력 가해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후 2022년 8월에 해당 건으로 검찰에 기소까지 되는 등 그야말로 흑역사로 전락하고 있는 중이다. 이후, 누명을 쓴 것으로 보이며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0년대 두산의 최전성기를 이끈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 김재호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2015-2016년 2년 연속으로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2016년에는 주장으로써 두산의 21년만의 통합우승을 이끌기도 하였다. 김재호의 성적이 영구결번급은 아니기 때문에 은퇴 후에 다른 선수에게 등번호를 물려줄 것이 확실시되는데, 김재호를 롤모델로 하고 있기도 하고 구단에서도 차기 주전 유격수로 밀고 있는 안재석이 52번을 물려받을 것이라 예상하는 팬들이 많다.
2000년대까지는 특출난 선수가 없었지만 2010년대 들어 53번을 달고 주전으로 도약한 내야수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2010년에 53번을 달기 시작한 오재원은 주전 2루수였던 고영민이 부상으로 폼이 급격하게 하락하자 그 틈을 타서 주전 자리를 꿰찼고 2011년에는 도루왕도 차지했다. 이후 최주환이 2017년부터 53번으로 등번호를 바꿔 달자마자 본격적으로 각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주전 자리를 꿰차기 시작하며 2020년까지 활약했다. 최주환이 SSG로 떠난 이후에는 오명진이 53번을 달고 있다가 시범경기 도중에 양석환이 트레이드로 입단하면서 53번을 내주었다. 이후 양석환은 1루수로 자리잡으며 커리어하이를 갱신, 최주환과 오재일이 떠나면서 공백이 생긴 두산의 중심타선을 메워주었다.
2002년과 2004년에 두산에서 활약하였고[22] 2004년 17승[23] 으로 다승왕을 차지한 게리 레스와 2021년 225탈삼진으로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갱신하며 MVP를 수상한 아리엘 미란다가 57번을 달고 활약한 대표적인 선수이다. 2022시즌 중 미란다가 부상 여파로 부진을 면치 못한 끝에 방출되었고 이후에는 미란다의 대체 선수로 영입된 브랜든 와델이 57번을 쓰고 있다. 공교롭게도 언급된 선수들 모두 좌완 외국인 투수이다. 2023년부터는 양찬열이 사용하며 다시 한국인 선수의 등번호가 되었다.
90년대 OB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김상진, 2010년대 두산의 핵심 불펜 자원이었던 함덕주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함덕주가 2018년을 앞두고 등번호를 1번으로 교체하자 대졸 2년차 사이드암 최원준이 61번을 달았는데, 2020년부터 선발진에 진입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국내 1선발 자리를 꿰차며 80년대 김진욱 이후 없다시피 했던 베어스 사이드암 선발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김경문이 코치 및 감독 시절에 달았던 등번호이다. 2004년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다시 강팀으로 도약시킨데 더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감독으로 9전 전승의 신화를 쓰며 대거 팬들을 유입시키는 등 팬들의 지지를 받던 감독이었지만 2011시즌 도중 자진사퇴한지 2달 만에 NC 다이노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한데 더해 코치진까지 대거 빼가는 통수를 치면서 평가가 급락하였다. 김경문 이후에는 정명원 투수코치와 유지훤 코치 등이 사용하다가 2021년 부터 김지훈 배터리코치가 사용하다가 2022시즌 끝으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 현재는 한화에서 복귀한 조성환 1군 수비코치가 사용 중이다.
1군 타격코치와 2군 감독을 오가며 20년 넘게 두산 야수들을 길러낸 송재박 2군 코디네이터가 사용한 등번호이다. 1995년부터 2군 코디네이터로 부임하기 직전인 2017까지 23년간 79번을 달고 두산 선수들을 지도해 왔다. 현재는 박정배 1군 불펜코치가 사용 중이다.
김인식 前 감독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1995년 부임하여 2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기록하며 암흑기를 청산하고 잠실 라이벌 LG와의 관계를 역전시킨 감독으로 OB 베어스 시절을 대표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김인식 이전에는 김성근 前 감독이 감독 시절에 사용했고 김인식 이후로는 강인권 코치와 김우열 코치를 거쳐 2014시즌부터 2022시즌까지 강동우 타격코치가 사용중이었다가 현재는 정수성 코치가 사용 중이다.
김태형 前 두산 베어스 감독이 감독 시절 사용한 등번호이다[24] . 2015년 부임 이래로 3번의 우승과 4번의 준우승을 기록하며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등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활약했다. 현재는 정진호 2군 수비·작전코치가 사용 중.
70번대 이상의 높은 등번호는 주로 코칭스태프가 다는 편이지만[25] 정작 두산의 88번은 김태형 이전에는 선수들이 주로 달았다. 최재훈 - 김응민 - 곽용섭 - 문진제 등 신인급 선수들이 88번을 달았었다.
두산은 원년구단이자 초대 한국시리즈 우승을 자랑하는 전통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영구결번 선수가 상당히 적은 편이다. 90년대, 00년대에 주로 활약한 선수들은 대부분 구단과의 마찰이 주 이유이고, 10년대에 활약한 선수들은 모두 두산 특성의 재정난으로 인해 FA로 떠나보냈다. 영결은 박철순과 김영신 두 명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박철순의 21번만이 유일한 영구결번이나 다름 없는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영구결번이 될 뻔한 선수는 많다는 것을 아래 항목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92년 데뷔 이래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8년까지 무려 17시즌을 등번호 3번을 달고 활약했다.
안경현의 3번 또한 김동주의 18번 못지않은 영구결번 후보였으나, 역시 감독 혹은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SK로 이적해 은퇴하여 영구결번은 없던 것이 되고 말았다.
선수시절 별명으로는 안쌤이 있다.
두산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타자이자 원클럽맨으로 그야말로 OB-두산을 대표하는 레전드로 활약했으며 국가대표 4번타자로도 출중한 활약을 펼치며 국제매치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실력만 놓고 보면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3루수 중 한 명이자, 우타자로 평가받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러나 여러 비판거리들로 인하여 타팀 팬들에게 김동주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하며, 두산 팬들 가운데서조차 다소 호불호가 엇갈리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선수생활 말미에는 구단과의 사이도 그리 좋지 못했다.
결국 최고의 실력과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누가보더라도 의심의 여지없는 두산의 영구결번 1순위일 것 같았던 김동주는 영구결번은 커녕 은퇴식도 치르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초라하고 씁쓸하게 마무리 짓고 말았다.
하지만 베어스 역사의 흐름에서 강팀이 되는 분기점이 바로 김동주의 데뷔였고, 논란으로 인해 언급이 쉽지 않을 뿐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두산 팬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를 대표하는 별명은 바로 두목곰.
KBO 통산 타-출-장 3-4-5 라인을 찍으며 은퇴한 세 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
1999년 1차 지명으로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데뷔 후 신인왕을 수상하고, 팀의 주전포수로 도약하여 포수 부문 KBO 골든글러브를 2회 수상하는 등 리그 정상급 포수로 활약하였다. 뿐만 아니라 훈훈한 외모와 특유의 쾌활한 성격으로 팬들의 인기도 어마어마했다.
양의지의 등장 이전까지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포수로 꼽힌다.
사실 홍성흔의 현재 두산팬 내에서 여론은 좋지 못한 것이 현실[26] 이나, 베어스에서 세운 기록을 두고보면 홍성흔 또한 팀의 영구결번급 선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마 롯데로 이적하지 않고 해당 성적을 두산에서 냈다면 두 말할 여지 없는 영구결번이었을 것이다.
선수시절 대표 별명으로는 홍포가 있다.
두산 역대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양의지는 2019년 두산을 떠나기 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강민호와 더불어 2010년대 KBO 최고의 포수로 활약함과 동시에, 두산의 부동의 주전 포수이자 김현수와 더불어 두산 베어스의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27] 로 자리매김 하였다.
양의지의 FA가 다가왔을 때 당시 두산팬들이 보여준 양의지에 대한 사랑은 양의지가 두산팬들에게있어 어떠한 존재였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만수-김동수-박경완-강민호로 이어지는 KBO 리그 최상위 포수 계보의 5번째 주자로 활약했으며, 이 시절 양의지는 KBO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 기록만 해도 4회나 수상 할 정도로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골든글러브 외에도 2010년 신인왕과 2016년 한국시리즈 MVP까지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두산의 독보적인 선수로 떠올랐으며, 2015년 한국시리즈,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을 차지하는 것과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두산 시절 별명으로는 여우같은 곰 등이 있다.
다만, 2022년 11월 22일 창원에서의 4년 생활을 마치고 4+2년 총액 152억에 친정 팀 두산의 복귀를 선언 하였다!
KBO 리그 외국인 투수 최초 100승, 1000탈삼진을 기록한 투수이며, 2010년대 KBO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 중 한 명이자 KBO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평가받는다.
두산 베어스에서의 7년 동안 두산 팬들은 물론 모든 야구 팬들에게 인정받는 외국인 투수였으며, 실력과 인성 모든 게 빛났던 두산의 영원한 1선발이다.
두산에서 활약할 동안 두산 팬들에게서 니느님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고, 팀 내에서 니퍼트의 상징성은 날로 커져만 갔다. 두산팬들에게 있어서는 절대 잊지 못할 용병, 그 이상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무려 7년간 두산의 최고 에이스로 활약하였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두산과의 이별이 찾아왔다. 원인은 노쇠화에 따른 기량 하락이었다.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 한 이후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제패를 노리는 두산에서 그간 함께한 니퍼트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새 외인 조쉬 린드블럼을 영입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니퍼트는 두산과 작별하게 되었다.
이후 kt wiz의 김진욱 감독이 니퍼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렇게 kt wiz로 이적하여 1년 동안 기량 하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kt의 에이스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비슷한 이유로 재계약에는 실패했고, 2018 시즌을 끝으로 KBO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 사실상 은퇴하였다.
니퍼트가 7년 동안 베어스에 끼친 영향력과 헌신을 생각하면 은퇴식은 물론이거니와 영구결번의 영예를 얻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정규리그 MVP, 다승왕, 평균자책점 1위를 모두 경험해봤고, 매년 1선발로서 제 역할 그 이상을 해주었던 투수였던 점을 감안하면 팀 레전드로서의 자격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가 은퇴한지 어느덧 3년이 지났음에도 영구결번은커녕 성대한 은퇴식도 치러지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도 현재로서 같은 항목의 다른 선수들과 달리 양의지와 함께 두산에서 기대해볼만한 유이한 영구결번 후보 선수다. 니퍼트가 만약 향후 영구결번으로 지정된다면 KBO 최초의 외국인 영구결번 선수가 되며, 두산에서는 박철순 이후로 20여년 만에 새로운 영구결번 선수가 탄생하게 된다.
그가 두산을 떠나기 전 까지 두산하면 김현수가 떠오를 정도로, 그야말로 두산을 대표하던 두산 베어스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영구결번 0순위 후보였다.
2006년 어느 팀에게도 지명을 받지 못하여 결국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이내 타격 잠재력을 뽐내며 단숨에 리그 수위타자로 발돋움 하며 신고선수 신화를 썼다. 꾸준한 성적으로 두산 타선을 책임졌고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팀의 대표 선수가 되었다. 2008~2010 3년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를 대표하는 별명은 타격기계.
2015 시즌에는 마침내 꿈의 한국시리즈 우승 또한 달성하였으며, 이후 FA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였고, 한국 복귀 당시 LG 트윈스로 이적하게 되면서 두산에서의 선수생활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되었다.
관련 문서: 두산 베어스/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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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번호 변화 일람
2. 주요 등번호
2.1. 1
2.2. 3
2.3. 8
2.4. 10
2.5. 13
2.6. 14
2.7. 16
2.8. 17
2.9. 18
2.11. 22
2.12. 23
2.13. 24
2.14. 25
2.15. 27
2.16. 29
2.17. 30
2.18. 31
2.19. 32
2.20. 33
2.21. 34
2.22. 35
2.23. 36
2.24. 37
2.25. 39
2.26. 40
2.27. 41
2.28. 44
2.29. 49
2.30. 50
2.31. 52
2.32. 53
2.34. 57
2.35. 61
2.36. 74
2.37. 79
2.38. 81
2.39. 88
3. 한시대를 풍미한 선수의 등번호
1. 등번호 변화 일람[편집]
* 베어스 커리어만으로 WAR 10 이상을 달성한 경우, 베어스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경우, 정규시즌 혹은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된 경우, KBO 골든글러브 혹은 신인왕을 수상한 경우, KBO 개인 타이틀홀더를 1번 이상 달성한 경우, 감독으로써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경우 중 하나라도 속하는 선수는 볼드체 처리.
* 1시즌 동안 WAR 4 이상을 최소 1번 달성한 경우, 베어스 커리어만으로 1군 기록이 8년이 넘고 통산 WAR 2 이상을 기록한 경우, 와일드카드,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된 경우, 감독으로써 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경우 중 하나라도 속하는 선수는 활약이 뛰어나진 않았어도 팬들의 기억에 남는 걸 감안해 밑줄 처리.
2. 주요 등번호[편집]
2.1. 1[편집]
초대 신인왕인 박종훈, 90년대 말 선발투수로 활약했으며 은퇴 이후 방송 활동
2.2. 3[편집]
초창기 OB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김우열이 사용했던 등번호로도 유명하지만 이 번호를 달고 가장 뛰어난 활약을 했던 선수는 두산의 역대 최고 2루수였던 안경현이다. 1992년 데뷔 이래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8년까지 무려 17시즌을 달고 활약했다. 안경현의 3번 또한 김동주의 18번 못지않은 영구결번 후보였으나, 역시 감독 혹은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SK로 이적해 은퇴하여 영구결번은 없던 것이 되었다.
이후 이렇다 할 3번 플레이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현재는 2021년 입단한 내야 유망주 안재석이 사용중이다.
2.3. 8[편집]
원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한 김유동,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두산의 리드오프를 맡은 정수근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이후 2010년대 중후반에 내야수 류지혁이 이 번호를 달고 활약했으며, 2022년에는 안권수가 8번을 달고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며 전반기 동안 리드오프로 활약하기도 하였으나 병역 문제가 걸리자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된 후 롯데로 이적하였고 현재는 송승환이 사용 중이다.
2.4. 10[편집]
초창기 OB 베어스의 핵심 선수였던 윤동균의 등번호였다. 원체 상징적인 선수였기 때문에 은퇴 이후 KBO 영구결번까지 받았지만 감독 부임 이후 구단 역사상 최악의 항명 사건에 연루되어 불명예 퇴진하며 영구결번이 해제되었다.
윤동균 이후로는 10번을 다는 선수들 중 제대로 된 활약을 한 선수가 드물다. 문희성은 2군을 전전하다 은퇴, 강혁은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대타로만 활약하다 병역 면탈 시도가 적발되며 선수 생활이 꼬이게 되었고, 심재학은 이적 첫 해 V3의 주역이 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지만 그 때가 플루크 시즌이었다. 최준석이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중심타선에서 활약한 것이 유일한 예외이다. 최준석 이후에 10번을 단 김강은 2군을 전전하다 은퇴, 박세혁이 2017년부터 10번을 달며 양의지의 백업으로 활약하다 2019년 V6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잔혹사를 끊는가 했지만 그 이후 성적이 하락세를 타고 있다. 이 때문에 베어스의 10번에는 저주가 걸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 2022 시즌이 끝나고 FA가 된 박세혁이 NC로 떠나면서 결번이 되었다가, 병역을 마치고 돌아온 박지훈이 2023년 6월 23일부터 달게 되었다.
2.5. 13[편집]
20세기에는 외국인 선수 도입 첫 해에 에드가 캐세레스가 수비형 2루수로 활약한 것이 전부였을 정도로 큰 의미가 없는 등번호였지만 2003년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손시헌이 주전으로 도약한 뒤로 2013년까지 활약하면서 위상이 올라간 등번호이다. 손시헌이 NC로 이적한 이후에는 허경민이 등번호를 물려받았다. 허경민은 2015년부터 주전 3루수로 도약하면서 두산의 최전성기를 이끈 선수들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2.6. 14[편집]
2000년대 후반 두산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강팀으로 도약하게 만든 고영민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2002년 데뷔 이래로 2011년 3번을 달며 1시즌 일탈한 것을 제외하고는 2016년 은퇴까지 14번은 그의 몫이었다. 고영민의 은퇴 이후에는 내야 유망주인 이유찬이 14번을 달고 2시즌을 뛰다가 2021년을 앞두고 입대하면서 오재일의 보상선수로 이적한 박계범이 14번을 달고 있다.
2.7. 16[편집]
초대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양세종, 90년대 중후반 김상진과 원투펀치를 이루며 1995년 한국시리즈 헹가래 투수의 영예를 거머쥔 권명철, 2000년대 중후반 불펜에서 마당쇠 역할을 한 김승회 등이 달았던 등번호이다. 2013년을 앞두고 김승회가 보상선수로 이적하면서 이원석이 16번을 달고 뛰다가 2016년을 마치고 삼성으로 FA 이적했다. 이후에 방출되었던 김승회를 재영입하면서 김승회가 다시 16번을 달게 되었다. 이후 김승회는 중간계투로 활약하다 2020년 이후에 은퇴하였다. 현재는 서예일이 2021년부터 16번을 달고 있는 상태.
2.8. 17[편집]
80년대 중후반 사이드암 에이스로 활약한 김진욱, 2000년대 초반 좌완 중간계투로 활약한 차명주,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활약한 외야수 임재철 등이 달았던 등번호이다. 2019년부터는 내야 백업요원으로 뛰었던 류지혁이 17번을 달고 활약하다 2020시즌 중반 KIA로 트레이드되면서 트레이드 상대였던 홍건희에게 17번이 넘어갔다. 이후 홍건희가 필승조 불펜으로 각성하면서 현재까지도 활약하고 있는 중이다.
2.9. 18[편집]
한 때는 영구결번 후보(1)
KBO 역사상 최고의 3루수이자 국가대표 4번타자였던 김동주의 등번호였다.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타자였기 때문에 영구결번 후보로도 꼽혔지만 급격한 노쇠화와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인해 2014년을 끝으로 은퇴식도 없이 초라하게 은퇴, 이후에는 선수 시절의 압도적인 실력으로 겨우 무마했던 사생활 문제가 재조명되면서 영구결번은 물건너간 상태이다. 현재는 거포 유망주? 인 김민혁이 18번을 달고 있다.
2.10. 21(영구결번)[편집]
OB 베어스의 상징이자, 한국프로야구 원년 최고의 스타 불사조 박철순의 등번호이다. 원년부터 은퇴 시즌인 1996년까지 쭉 21번을 달고 있었으며, 은퇴 이후에는 아무도 21번을 달고 있지 않다가 2002년에 영구결번 처리되면서 박철순은 유일무이한 베어스의 21번으로 남게 되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22번(이만수)와 더불어 KBO 리그에서 유이하게 한 팀에서 단 한 명만이 사용했던 영구결번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2.11. 22[편집]
포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등번호답게 김경문, 진갑용, 최기문 등의 포수들이 사용했지만 이 번호를 달고 가장 큰 활약을 한 선수는 홍성흔이다. 2000년대 초반 두산의 주전 포수를 맡으며 양의지의 등장 이전까지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2008년까지 22번을 달며 두산의 안방을 책임졌다.
이후 홍성흔이 FA로 롯데로 이적 하면서 투수 유망주였던 성영훈이 22번을 달았다가 2013년을 앞두고 홍성흔을 재영입하면서 홍성흔에게 22번을 다시 넘겨주었다. 이후 홍성흔은 2016년까지 두산에서 뛰다가 은퇴, 이후에는 이용호, 성영훈, 강동연 등 투수들이 22번을 달다가 2020년부터 다시 포수인 장승현이 달고 있다.
아마 홍성흔이 롯데로 이적하지 않고, 롯데에서의 성적을 두산에서 냈었더라면 이 번호 또한 홍성흔의 영구결번이 되었을 것이다. [10]
2.12. 23[편집]
前 두산 베어스 감독인 김태형이 현역 시절 사용하던 등번호였다. 현역 시절 임팩트 있는 활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10년 넘게 두산의 안방마님으로 활약하기도 했고, 23번을 달고 크게 활약한 선수가 없던지라 베어스의 23번 하면 김태형을 떠올리는 사람들(특히 OB시절부터 응원했던 올드팬들)이 많다. 그 외에는 정진호가 2017년에 이 등번호를 달고 최소 이닝 싸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2022년부터는 강승호가 23번을 달고 있는 상태.[11]
2.13. 24[편집]
원년 OB팬들에게는 80년대 중반 선발투수로 활약한 재일교포 최일언의 등번호였다. 200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까지는 김경문 키즈 시절 주전 포수로 추억을 남긴 용덕한이 사용했던 등번호였고[12] , 현재 젊은 팬들 사이에서는 두산의 최전성기 당시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던 오재원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엄밀히 말하면 오재원이 24번을 단 2016년 이래로 제대로 활약한 시즌은 2018년이 유일한데다 커리어 하이인 2014년에는 17번을, 본인의 유일한 타이틀(도루왕)을 수상한 2011년에는 53번을 달았지만 선수 생활 중 가장 오랫동안 달았던 등번호이기도 하고 팀의 최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의 등번호인지라 24번을 대표 등번호로 인식하는 팬들이 많다.
2.14. 25[편집]
한 때는 영구결번 후보(2)...였으나 2차 FA로 두산에 복귀하며 다시 현재 진행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포수이자 2010년대 두산의 최전성기를 이끈 안방마님 양의지의 등번호이다. 공수에서 정상급 활약을 하면서 두산 소속으로 4번의 포수 골든글러브[13] 와 2번의 우승, 2016년 한국시리즈 MVP 등의 활약을 하면서 영구결번 후보로도 점쳐졌으나 2018년을 끝으로 NC로 FA이적했으나 2023년 FA로 두산으로 복귀하면서 영구결번 유력 후보 중 하나이다.
한편, 20세기에는 조범현이나 이도형 등 포수 자원이 달았던 등번호이기도 하며 양의지의 이적 이후에는 배영수가 25번을 달고 2019년 한국시리즈의 헹가래 투수라는 영예를 얻으며 화려하게 은퇴하기도 하였다. 2022시즌부터 25번을 달기 시작한 황경태가 시즌 중 은퇴하면서 잠시동안 결번이었다가 시즌 말미에 이유찬이 전역하면서 비어있던 25번을 달게 되었다.[14]
2.15. 27[편집]
2000년대 초중반 에이스로 활약했던 박명환이 달았던 등번호로 유명하며 2007년을 앞두고 박명환이 LG로 FA이적을 하자 외국인 에이스 다니엘 리오스가 27번을 달고 다승왕과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박명환과 리오스 모두 금지약물 복용자라는 것. 심지어 2011년에 거포 유망주였던 김재환이 27번을 달고[15] 금지약물이 적발되면서 졸지에 약쟁이 등번호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나마 김강률이 2017년부터 이 등번호를 달고 포텐이 폭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면서 흑역사를 씻어내고 있는 중이다.
2.16. 29[편집]
올드 팬들에게는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던 미스터 OB 김형석의 등번호로, 젊은 팬들에게는 8년 연속 10승과 통산 101승을 거둔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좌완투수 유희관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그 외에는 초창기 박철순의 뒤를 받히며 좌완선발로 활약한 선우대영 정도가 있다. 2022시즌을 앞두고 유희관이 은퇴하면서 2022시즌은 결번이었으나, 2023시즌부터 좌완 유망주인 이병헌이 등번호를 물려받았다.
2.17. 30[편집]
90년대 말 선발투수로 활약한 이경필도 유명하지만 30번을 달고 가장 큰 활약을 한 선수는 니퍼트 이전까지 두산의 최고 외국인 투수였던 맷 랜들이었다. 두산에서 4시즌을 뛰며 통산 49승을 거둔 랜들은 2009시즌을 앞두고 선릉역 계단에서 미끄러지며 전치 6주의 부상을 당하고 안타깝게 은퇴하게 된다. 그 이후 30번을 단 외국인 선수들이 모조리 부진하면서[16] 팬들 사이에서는 이를 랜들의 저주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2022년부터 외야 유망주인 강현구가 30번을 달기 시작했으나 시즌 도중 입대하면서 현재는 SSG에서 트레이드로 이적한 김정우가 달고 있다.
2.18. 31[편집]
베어스 소속으로 최다승(109승)을 기록한 장호연과 2015년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아기곰' 정수빈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두 선수 모두 선수 생활 내내 31번을 달았다[17] .
2.19. 32[편집]
90년대 후반 우동수의 일원으로 활약한 우타 거포 심정수와 2010년대 후반 두산의 4번 타자를 책임진 김재환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다만 김재환이 두산에서 거둔 성적과는 별개로 금지약물 복용이라는 원죄가 있다 보니 영구결번은 아예 언급도 되지 않고 있다. 두 선수 외에는 해외파 선수인 김선우가 32번을 달고 2000년대 후반 선발투수로 활약한 적이 있다.
2.20. 33[편집]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타자인 타이론 우즈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이 등번호를 달고 5시즌 동안 홈런왕, 정규시즌 MVP 한국시리즈 MVP 등을 수상하면서 우동수 클린업으로 대표되는 2000년대 초반 두산의 강타선을 이끌었다.
우즈 외에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주전 외야수로 활약한 김광림이 달기도 했다. 2020년부터 김문수 선수가 33번을 달았으나 2022년을 끝으로 방출되면서 현재는 2023년 새로 영입한 외국인 투수 딜런 파일이 달았다 방출되면서 현재는 공번 상태.
2.21. 34[편집]
조쉬 린드블럼이 2018년부터 34번을 단 이래로 외국인 투수들이 달고 있는데, 이 선수들이 모두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외국인 에이스 등번호로 거듭나고 있다. 린드블럼은 2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에 2019년 정규시즌 MVP 수상, 크리스 플렉센은 정규시즌에서는 부상으로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후반기와 포스트시즌에서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이며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다. 워커 로켓은 부상으로 124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올스타 급이라 평가받는 4.10의 sWAR를 기록하는 좋은 피칭 퀄리티를 보여줬으며, 로버트 스탁은 직전 시즌 MVP인 미란다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1선발로 활약하였다. 현재는 내야수 권민석이 달고 있다.
2.22. 35[편집]
80년대 OB의 마무리를 책임진 윤석환과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두산의 마무리를 책임진 진필중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그 외에는 민병헌이 2012시즌 경찰청 야구단에서 전역하자 마자 임시로 달기도 하였다. 현재는 내야수 전민재가 달고 있다.
2.23. 36[편집]
2000년대 말 LG에서 트레이드로 넘어온 이성열이 36번을 달고 2010년 24홈런을 치며 깜짝 활약을 하기도 했지만 36번을 달고 가장 큰 활약을 한 선수는 2012시즌 중반 이성열과 맞트레이드되어 두산으로 이적한 오재일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두산의 주전 1루수로 자리잡으면서 4년 연속으로 20개 이상의 홈런을 치며 두산의 클린업 트리오로 활약했고 2017년 플레이오프와 2019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는 등 2010년대 두산의 최전성기를 이끈 타자 중 하나로 활약했다.
2022년을 앞두고 두산의 중간계투로 활약했던 윤명준이 42번에서 36번으로 등번호를 옮겨 달았으나 시즌 종료 후 방출되며 결번 상태이다. 이후 두산의 11대 감독으로 이승엽이 선임되면서 본인의 선수 시절 등번호였던 36번[18] 을 달 것이라는 예상도 일부 있었으나 본인이 사양하고 다른 등번호를 달 것이라 밝혔다.
2.24. 37[편집]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활약한 장원진, KILL 라인의 일원으로 활약한 중간계투 고창성, 2010년대 후반 두산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한 박건우 등이 37번을 달고 활약했다. 박건우가 2022시즌을 앞두고 NC로 이적하면서 현재는 외야 유망주인 김대한이 달고 있다.
2.25. 39[편집]
2000년대 중후반부터 두산의 리드오프와 중견수를 책임진 '종박' 이종욱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이종욱의 NC이적 이후로는 외야 유망주인 김인태가 2016년부터 달고 있는데, 2019년 말부터 조금씩 가능성을 보여주더니 2021시즌에는 주전 자리를 노릴 정도로 성장하면서 39번을 달고 활약하는 또 다른 선수가 탄생할 전망이다.
2.26. 40[편집]
한 때는 영구결번 후보(3)
두산 베어스를 넘어 KBO 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꼽히는 더스틴 니퍼트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2011년에 두산에 입단한 이래로 7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단순한 외국인 선수가 아닌 팀의 레전드로 활약했지만 2017시즌을 끝으로 구단이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2018년 kt에서 1시즌을 뛰고 은퇴하였다. 그래도 현재는 두산 유니폼을 입고 3번이나 시구[19] 를 하는 등 구단과 화해 분위기에 들어가면서 다른 후보들 보다는 어느 정도 영구결번의 가능성이 생기기는 하였다.
니퍼트 이외에는 2010년 팀의 1선발로 활약한 켈빈 히메네스나 2018년 다승왕을 차지한 세스 후랭코프 등이 40번을 달고 활약하였으며, 팀의 초대 감독인 김영덕 감독이 원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때 40번을 달기도 했다[20] . 이후 투수 현도훈이 40번을 달았으나 2022시즌 후 방출되며 공번 상태다.
이후 2023년 1월 16일 발표된 구단 배번 현황에도 공번 상태임이 확인 되었다.
2.27. 41[편집]
중간계투와 마무리를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한 정재훈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2003년 데뷔 이래로 은퇴 시즌인 2017년까지 장원준의 보상 선수로 롯데로 잠시 이적했던 2015년의 1년간을 빼면 41번은 정재훈의 몫이었다. 정재훈 이후로는 여러 투수 유망주들이 달다가 2022년부터는 투수 김동주가 달고 있다.
2.28. 44[편집]
1995년 정규시즌 MVP와 최초의 잠실 홈런왕으로 대표되는 활약으로 90년대 OB의 타선을 이끈 김상호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그 외에는 44번이 거포의 상징으로 유명한 만큼 거포 유망주들이나 외국인 타자들이 주로 달았다. 골육종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두환이나 거포 외국인 타자였던 닉 에반스도 44번을 달고 활약했었다.
2.29. 49[편집]
2010년대 중후반 두산의 주전 우익수로 활약한 민병헌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민병헌이 롯데로 FA이적한 이후에는 백동훈이나 강진성 등 외야수들이 달고 있다[21] .
2.30. 50[편집]
한 때는 영구결번 후보(4)
2000년대 후반 두산의 간판스타였던 '타격기계' 김현수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2008년 타격왕을 차지하며 신고선수 신화를 써내려간 것을 시작으로 꾸준한 성적을 찍어내며 타선을 이끌었고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팀의 대표 선수가 되며 영구결번 0순위로 올라섰지만 2015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하였고 이후 국내 복귀를 할 때 잠실 라이벌 LG로 복귀하면서 영구결번에서 멀어졌다.
김현수 이후로는 선발 유망주인 이영하가 2017년부터 50번을 달기 시작하였다. 2018년에 10승, 2019년에 17승을 거두는 활약을 보이며 팀의 핵심 선발투수로 성장하나 싶었지만 이후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헤매는 중이다.
2.31. 52[편집]
2010년대 두산의 최전성기를 이끈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 김재호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2015-2016년 2년 연속으로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2016년에는 주장으로써 두산의 21년만의 통합우승을 이끌기도 하였다. 김재호의 성적이 영구결번급은 아니기 때문에 은퇴 후에 다른 선수에게 등번호를 물려줄 것이 확실시되는데, 김재호를 롤모델로 하고 있기도 하고 구단에서도 차기 주전 유격수로 밀고 있는 안재석이 52번을 물려받을 것이라 예상하는 팬들이 많다.
2.32. 53[편집]
2000년대까지는 특출난 선수가 없었지만 2010년대 들어 53번을 달고 주전으로 도약한 내야수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2010년에 53번을 달기 시작한 오재원은 주전 2루수였던 고영민이 부상으로 폼이 급격하게 하락하자 그 틈을 타서 주전 자리를 꿰찼고 2011년에는 도루왕도 차지했다. 이후 최주환이 2017년부터 53번으로 등번호를 바꿔 달자마자 본격적으로 각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주전 자리를 꿰차기 시작하며 2020년까지 활약했다. 최주환이 SSG로 떠난 이후에는 오명진이 53번을 달고 있다가 시범경기 도중에 양석환이 트레이드로 입단하면서 53번을 내주었다. 이후 양석환은 1루수로 자리잡으며 커리어하이를 갱신, 최주환과 오재일이 떠나면서 공백이 생긴 두산의 중심타선을 메워주었다.
2.33. 54(영구결번)[편집]
원년 한국시리즈 MVP였던 김유동이 1984년에 잠시 달았으나 시즌 중 삼미로 트레이드되었고 이듬해에 1984 LA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신이었던 유망주 포수 김영신이 54번을 달게 된다. 하지만 조범현과 김경문에게 밀리며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였고 결국 1986년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구단에서는 추모의 의미로 영구결번 처리를 하며 54번은 이후 아무도 달지 않고 있다.
2.34. 57[편집]
2002년과 2004년에 두산에서 활약하였고[22] 2004년 17승[23] 으로 다승왕을 차지한 게리 레스와 2021년 225탈삼진으로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갱신하며 MVP를 수상한 아리엘 미란다가 57번을 달고 활약한 대표적인 선수이다. 2022시즌 중 미란다가 부상 여파로 부진을 면치 못한 끝에 방출되었고 이후에는 미란다의 대체 선수로 영입된 브랜든 와델이 57번을 쓰고 있다. 공교롭게도 언급된 선수들 모두 좌완 외국인 투수이다. 2023년부터는 양찬열이 사용하며 다시 한국인 선수의 등번호가 되었다.
2.35. 61[편집]
90년대 OB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김상진, 2010년대 두산의 핵심 불펜 자원이었던 함덕주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함덕주가 2018년을 앞두고 등번호를 1번으로 교체하자 대졸 2년차 사이드암 최원준이 61번을 달았는데, 2020년부터 선발진에 진입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국내 1선발 자리를 꿰차며 80년대 김진욱 이후 없다시피 했던 베어스 사이드암 선발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36. 74[편집]
김경문이 코치 및 감독 시절에 달았던 등번호이다. 2004년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다시 강팀으로 도약시킨데 더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감독으로 9전 전승의 신화를 쓰며 대거 팬들을 유입시키는 등 팬들의 지지를 받던 감독이었지만 2011시즌 도중 자진사퇴한지 2달 만에 NC 다이노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한데 더해 코치진까지 대거 빼가는 통수를 치면서 평가가 급락하였다. 김경문 이후에는 정명원 투수코치와 유지훤 코치 등이 사용하다가 2021년 부터 김지훈 배터리코치가 사용하다가 2022시즌 끝으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 현재는 한화에서 복귀한 조성환 1군 수비코치가 사용 중이다.
2.37. 79[편집]
1군 타격코치와 2군 감독을 오가며 20년 넘게 두산 야수들을 길러낸 송재박 2군 코디네이터가 사용한 등번호이다. 1995년부터 2군 코디네이터로 부임하기 직전인 2017까지 23년간 79번을 달고 두산 선수들을 지도해 왔다. 현재는 박정배 1군 불펜코치가 사용 중이다.
2.38. 81[편집]
김인식 前 감독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1995년 부임하여 2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기록하며 암흑기를 청산하고 잠실 라이벌 LG와의 관계를 역전시킨 감독으로 OB 베어스 시절을 대표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김인식 이전에는 김성근 前 감독이 감독 시절에 사용했고 김인식 이후로는 강인권 코치와 김우열 코치를 거쳐 2014시즌부터 2022시즌까지 강동우 타격코치가 사용중이었다가 현재는 정수성 코치가 사용 중이다.
2.39. 88[편집]
김태형 前 두산 베어스 감독이 감독 시절 사용한 등번호이다[24] . 2015년 부임 이래로 3번의 우승과 4번의 준우승을 기록하며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등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활약했다. 현재는 정진호 2군 수비·작전코치가 사용 중.
70번대 이상의 높은 등번호는 주로 코칭스태프가 다는 편이지만[25] 정작 두산의 88번은 김태형 이전에는 선수들이 주로 달았다. 최재훈 - 김응민 - 곽용섭 - 문진제 등 신인급 선수들이 88번을 달았었다.
3. 한시대를 풍미한 선수의 등번호[편집]
두산은 원년구단이자 초대 한국시리즈 우승을 자랑하는 전통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영구결번 선수가 상당히 적은 편이다. 90년대, 00년대에 주로 활약한 선수들은 대부분 구단과의 마찰이 주 이유이고, 10년대에 활약한 선수들은 모두 두산 특성의 재정난으로 인해 FA로 떠나보냈다. 영결은 박철순과 김영신 두 명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박철순의 21번만이 유일한 영구결번이나 다름 없는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영구결번이 될 뻔한 선수는 많다는 것을 아래 항목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3.1. No.3 안경현[편집]
안경현은 OB-두산 베어스 역대 최고의 2루수로 꼽히는 선수다. 베어스 역대 2루수 골든글러브 최다수상(3회)과 최고의 WAR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92년 데뷔 이래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8년까지 무려 17시즌을 등번호 3번을 달고 활약했다.
안경현의 3번 또한 김동주의 18번 못지않은 영구결번 후보였으나, 역시 감독 혹은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SK로 이적해 은퇴하여 영구결번은 없던 것이 되고 말았다.
선수시절 별명으로는 안쌤이 있다.
3.2. No.18 김동주[편집]
해설: 뛰어난 3루수들이 많습니다만은, 공수주를 통틀어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에 국가대표를 하고 잘 한 선수 중에 한 명을 꼽으라면 바로 김동주니까..
캐스터: 그렇죠. 네. 정말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4번타자 아니겠습니까.
2010년 플레이오프 4차전 7회말 김동주의 타석에서 허구연 해설위원과 한광섭 캐스터의 말. # 1분 45초부터.
두산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타자이자 원클럽맨으로 그야말로 OB-두산을 대표하는 레전드로 활약했으며 국가대표 4번타자로도 출중한 활약을 펼치며 국제매치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실력만 놓고 보면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3루수 중 한 명이자, 우타자로 평가받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러나 여러 비판거리들로 인하여 타팀 팬들에게 김동주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하며, 두산 팬들 가운데서조차 다소 호불호가 엇갈리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선수생활 말미에는 구단과의 사이도 그리 좋지 못했다.
결국 최고의 실력과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누가보더라도 의심의 여지없는 두산의 영구결번 1순위일 것 같았던 김동주는 영구결번은 커녕 은퇴식도 치르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초라하고 씁쓸하게 마무리 짓고 말았다.
하지만 베어스 역사의 흐름에서 강팀이 되는 분기점이 바로 김동주의 데뷔였고, 논란으로 인해 언급이 쉽지 않을 뿐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두산 팬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를 대표하는 별명은 바로 두목곰.
KBO 통산 타-출-장 3-4-5 라인을 찍으며 은퇴한 세 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
3.3. No.22 홍성흔[편집]
1999년 1차 지명으로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데뷔 후 신인왕을 수상하고, 팀의 주전포수로 도약하여 포수 부문 KBO 골든글러브를 2회 수상하는 등 리그 정상급 포수로 활약하였다. 뿐만 아니라 훈훈한 외모와 특유의 쾌활한 성격으로 팬들의 인기도 어마어마했다.
양의지의 등장 이전까지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포수로 꼽힌다.
사실 홍성흔의 현재 두산팬 내에서 여론은 좋지 못한 것이 현실[26] 이나, 베어스에서 세운 기록을 두고보면 홍성흔 또한 팀의 영구결번급 선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마 롯데로 이적하지 않고 해당 성적을 두산에서 냈다면 두 말할 여지 없는 영구결번이었을 것이다.
선수시절 대표 별명으로는 홍포가 있다.
3.4. No.25 양의지[편집]
두산 역대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양의지는 2019년 두산을 떠나기 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강민호와 더불어 2010년대 KBO 최고의 포수로 활약함과 동시에, 두산의 부동의 주전 포수이자 김현수와 더불어 두산 베어스의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27] 로 자리매김 하였다.
양의지의 FA가 다가왔을 때 당시 두산팬들이 보여준 양의지에 대한 사랑은 양의지가 두산팬들에게있어 어떠한 존재였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만수-김동수-박경완-강민호로 이어지는 KBO 리그 최상위 포수 계보의 5번째 주자로 활약했으며, 이 시절 양의지는 KBO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 기록만 해도 4회나 수상 할 정도로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골든글러브 외에도 2010년 신인왕과 2016년 한국시리즈 MVP까지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두산의 독보적인 선수로 떠올랐으며, 2015년 한국시리즈,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을 차지하는 것과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두산 시절 별명으로는 여우같은 곰 등이 있다.
다만, 2022년 11월 22일 창원에서의 4년 생활을 마치고 4+2년 총액 152억에 친정 팀 두산의 복귀를 선언 하였다!
3.5. No.40 니퍼트[편집]
니퍼트, 니퍼트라면 기꺼이 내 등번호 21번을 양보하겠다. 니퍼트는 외인 선수가 아니다.
박철순에게 니퍼트는 어떤 선수인지 물어보았을 때 #
KBO 리그 외국인 투수 최초 100승, 1000탈삼진을 기록한 투수이며, 2010년대 KBO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 중 한 명이자 KBO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평가받는다.
두산 베어스에서의 7년 동안 두산 팬들은 물론 모든 야구 팬들에게 인정받는 외국인 투수였으며, 실력과 인성 모든 게 빛났던 두산의 영원한 1선발이다.
두산에서 활약할 동안 두산 팬들에게서 니느님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고, 팀 내에서 니퍼트의 상징성은 날로 커져만 갔다. 두산팬들에게 있어서는 절대 잊지 못할 용병, 그 이상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무려 7년간 두산의 최고 에이스로 활약하였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두산과의 이별이 찾아왔다. 원인은 노쇠화에 따른 기량 하락이었다.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 한 이후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제패를 노리는 두산에서 그간 함께한 니퍼트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새 외인 조쉬 린드블럼을 영입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니퍼트는 두산과 작별하게 되었다.
이후 kt wiz의 김진욱 감독이 니퍼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렇게 kt wiz로 이적하여 1년 동안 기량 하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kt의 에이스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비슷한 이유로 재계약에는 실패했고, 2018 시즌을 끝으로 KBO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 사실상 은퇴하였다.
니퍼트가 7년 동안 베어스에 끼친 영향력과 헌신을 생각하면 은퇴식은 물론이거니와 영구결번의 영예를 얻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정규리그 MVP, 다승왕, 평균자책점 1위를 모두 경험해봤고, 매년 1선발로서 제 역할 그 이상을 해주었던 투수였던 점을 감안하면 팀 레전드로서의 자격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가 은퇴한지 어느덧 3년이 지났음에도 영구결번은커녕 성대한 은퇴식도 치러지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도 현재로서 같은 항목의 다른 선수들과 달리 양의지와 함께 두산에서 기대해볼만한 유이한 영구결번 후보 선수다. 니퍼트가 만약 향후 영구결번으로 지정된다면 KBO 최초의 외국인 영구결번 선수가 되며, 두산에서는 박철순 이후로 20여년 만에 새로운 영구결번 선수가 탄생하게 된다.
3.6. No.50 김현수[편집]
그가 두산을 떠나기 전 까지 두산하면 김현수가 떠오를 정도로, 그야말로 두산을 대표하던 두산 베어스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영구결번 0순위 후보였다.
2006년 어느 팀에게도 지명을 받지 못하여 결국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이내 타격 잠재력을 뽐내며 단숨에 리그 수위타자로 발돋움 하며 신고선수 신화를 썼다. 꾸준한 성적으로 두산 타선을 책임졌고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팀의 대표 선수가 되었다. 2008~2010 3년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를 대표하는 별명은 타격기계.
2015 시즌에는 마침내 꿈의 한국시리즈 우승 또한 달성하였으며, 이후 FA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였고, 한국 복귀 당시 LG 트윈스로 이적하게 되면서 두산에서의 선수생활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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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9년은 코치. 1985~1988까지는 공번이였다.[2] 1993시즌은 코치였다.[3] 1989시즌은 코치였다.[4] 당시 OB 베어스 구단은 팀 내에서 차지하는 윤동균의 상징성을 감안해 KBO 리그 사상 처음으로 정규시즌 중 선수 개인을 위한 은퇴경기를 열어줬고 KBO 영구결번까지 시켰다. 그러나 감독 시절 발생한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인해 결국 영구결번에서 해제됐다.[5] 당시 KBO 원년의 골든글러브에 해당되었던 베스트나인을 수상했다.[6] 21번은 비록 2002년 4월에야 공식 영구결번 처리되었지만 그가 은퇴하고부터 두산으로 바뀐 2002년까지 누구도 달지 않았다.[7] 창단 당시에 7번 이근식과 이름이 같지만 이쪽이 1살 많아서 7번은 작은 이근식, 28번은 큰 이근식으로 구분했다고 한다.[8] 2007년 신인왕이었지만 2011년 사건 이후 완전히 금지어로 전락했다.[9] 2011년 도루왕을 차지했지만, 가장 오랫동안 사용했으면서 은퇴할 때까지 사용한 24번을 볼드체 처리.[10] 애초에 롯데로 이적하지 않고 그 성적을 두산에서 냈더라면 부전드 드립 또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11] 그리고 강승호는 리버스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12] 멘도사 라인을 넘나들던 백업 포수로 커리어를 보낸 용덕한이 커리어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던 시절이 두산에서 24번을 달았던 시기였다.[13] 2014, 2015, 2016, 2018. 이후 NC에서 2번의 포수 골글과 1번의 지명타자 골글을 추가로 수상한다.[14] 2023 시즌에는 이유찬은 오재원이 사용했던 24번을 사용할 것이라고. 그러나 7번을 사용하게 되었다.[15] 김재환이 27번을 단 시즌은 2011년이 유일하다.[16] 후안 세데뇨, 레스 왈론드, 라몬 라미레즈, 페르난도 니에베, 스캇 프록터, 개릿 올슨, 데릭 핸킨스, 크리스 볼스테드 모두 시즌 중간에 교체되거나 재계약에 실패했으며 그나마 프록터가 마무리 투수로 사람답게 던져줬지만 아슬아슬한 투구를 보여주며 팬들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했다.[17] 단 정수빈이 군 복무로 빠져 있던 2017~18년에는 홍성호와 김정후가 31번을 달긴 했다.[18] 당연하지만 선수 시절 소속팀이었던 삼성 라이온즈의 영구결번이기도 하다.[19] 2020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 2022시즌 개막전, 2022시즌 중 KBO 레전드 40 선정 기념 초청[20] 김영덕 감독은 1983년에는 50번을 달았다.[21]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FA 보상선수로 두산에 입단했다. 심지어 백동훈은 민병헌의 보상선수이다.[22] 2008년에도 두산에서 뛰기는 했지만 그때는 등번호가 56번이었다.[23] 2015년에 유희관이 18승으로 기록을 갱신하기 전까지 베어스 역사상 단일 시즌 좌완 최다 승수였다.[24] 참고로 배터리코치 시절에는 80번을 달았다.[25] 다만 90번대의 경우에는 선수들도 많이 다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95번을 단 카림 가르시아나 99번을 단 류현진이 있다.[26] 이적도 이적이지만 FA로 두산으로 복귀 후 이른 바 부전드 드립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27] 두 선수 모두 잔류했다면 각각 50번, 25번의 영구결번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