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파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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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前 콜로라도 로키스, 두산 베어스 소속이였던 좌투우타 야구선수이다. 포지션은 투수. 2000년에 두산 베어스의 외국인 선수로 계약했다.
2. 선수 시절[편집]
2.1.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편집]
타자로 입단했지만 ML 콜업 직전에 투수로 전향하여 토론토의 카를로스 델가도를 3구 삼진으로 잡아낸 적이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7경기에 나와서 1패, 7.71에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2.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2.2.1. 2000년[편집]
두산이 에드가 캐세레스와 재계약을 실패하자 자체 트라이아웃을 열었고 최종으로 영입되었다.
스프링캠프 동안은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4월 12일 드디어 모습을 보였지만 투구 성적은 5이닝 4볼넷 6안타 4실점으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 경기에서는 6이닝 1안타로 호투했다.
이후로 전반기가 종료할 때까지 9승을 적립했다. 하지만 후반기 팔꿈치 통증으로 구속이 하락하며 1승을 간신히 추가하는 데 그쳤다.
최종성적은 27경기 10승 9패 평균자책점 4.54. 그래도 선수 퍼포먼스 평가가 투승타타이던 시절 10승은 어찌어찌 거두었고 전반기의 퍼포먼스가 워낙 좋았기에 재계약에는 성공하였다.
2.2.2. 2001년[편집]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동안 제구력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막상 시즌을 들어서니 부상이 재발하면서 단 3경기만 나와 1승 2패 평균자책점 9.00을 기록하고 5월, 퇴출되었다.
3. 연도별 성적[편집]
4. 플레이 스타일[편집]
140km 초중반에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구사했다. 바로 이 부분이 초반에 파머가 9승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 당시 아직 수준이 낮았던 한국 프로야구에서 체인지업은 매우 드문 구종이라[2] 타자들은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의 타이밍 이지선다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 당시 20승을 할 것이니 등번호 20번을 주십시오 라고 했다. 그런데 2000년 시즌에 9승 이후 승수를 적립하지 못하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프리배팅을 했다고 한다. 타자로 전향한 지 좀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잠실구장 상단을 맞히곤 했다고 한다.
5.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웨이버 공시 이후 다른 두산의 외국인 선수 트로이 닐과 술집에서 환송회를 하다가 일반인과 시비가 붙어 폭행으로 입건되었다.
6. 관련 문서[편집]
[1]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2] 체인지업 구사자가 적은 것도 아니었고 알려지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체인지업을 패스트볼과 차별화시킬 정도로 구속이 나오거나 구종가치가 높은 선수가 적었고 구사자들도 투구 비중이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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