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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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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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체육훈장 수훈자
파일:체육훈장.png
연도
2005년
이름
김민재
분야
스포츠
사유
체육발전유공
체육훈장기린장(5등급)

김민재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펼치기 · 접기 ]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2

파일: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02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로고.svg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2008

파일:두산 2019V6.png파일:SSG 랜더스 우승 엠블럼 V5.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19
2022

보유 기록
통산 최다 실책
264개
통산 최다 희생번트
229개


김민재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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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3번
정구선
(1987~1990)

김민재
(1991~1992)


송태일
(1993)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4번
박정태
(1991~1992)

김민재
(1993~2001)


이동욱
(2002~2003)
SK 와이번스 등번호 14번
신주일
(2000~2001)

김민재
(2002~2005)


김동건
(2006)
한화 이글스 등번호 14번
문용민
(2005)

김민재
(2006~2009)


이대수
(2010~2014.6.3.)
한화 이글스 등번호 76번
노찬엽
(2009)

김민재
(2010~2012)


김종모
(2013~2014)
두산 베어스 등번호 73번
이철성
(2006)

김민재
(2013)


전상렬
(2014~2017)
kt wiz 등번호 79번
팀 창단

김민재
(2014~2016)


최영필
(2018~2022)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8번
서한규
(2016)

김민재
(2017~2018)


강영식
(2019~2023)
두산 베어스 등번호 79번
김태균
(2018)

김민재
(2019~2020)


정병곤
(2021~2022)
SSG 랜더스 등번호 76번
박재상
(2018~2020)

김민재
(2021~2023)


결번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번


김민재
(2024~)


현역


A대표팀 참가 경력
[ 펼치기 · 접기 ]














롯데 자이언츠 No.
김민재
金敏宰 | Kim Minjae

출생
1973년 1월 3일 (51세)
부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부산중앙초 - 경남중 - 부산공고
포지션
유격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1년 신고선수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1~2001)
SK 와이번스 (2002~2005)
한화 이글스 (2006~2009)
지도자
한화 이글스 1군 수비·작전코치 (2010)
한화 이글스 1군 수비코치 (2011~2012)
두산 베어스 1군 수비코치 (2013)
kt wiz 수비코치 (2014)
kt wiz 1군 수비코치 (2015~2016)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17~2018)
두산 베어스 1군 작전코치 (2019~2020)
SSG 랜더스 1군 수석·수비코치 (2021)
SSG 랜더스 1군 수석코치 (2022)
SSG 랜더스 1군 작전·벤치코치 (2023)
롯데 자이언츠 1군 수석코치 (202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비·주루코치 (2023~)
응원가
SK 시절: 찬송가 - 예수님 찬양[1][2]
한화 시절: 룰라 - 연인[3]
상훈
체육훈장 기린장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연도별 성적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유격수.

FA 직전 시즌에는 짭짤한 성적을 올리고 준수한 계약을 이뤄낸 원조 FA로이드 수혜자다.


2. 선수 경력[편집]



2.1. 롯데 자이언츠[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0420161807174G.jpg


부산공업고등학교 출신으로 1991년 롯데 자이언츠(고졸 출신)에 입단하여 1992년에 롯데의 V2를 경험.[4] 3년차인 1993년 주전 2루수인 박정태가 무려 2년을 날려먹은 엄청난 부상[5]을 당하는 바람에 주전 2루수로 기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 해 6월 6일 사직 해태전에선 양팀 통틀어 유일한 득점을 홈런으로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8회초 수비에서 이순철의 안타를 지우는 호수비를 선보여 자신의 이름을 야구팬들에게 깊이 아로새겼다. 1994 시즌부턴 주전 유격수 박계원이 군복무를 하게 되어 신인 김종훈에게[6] 2루수를 넘겨주고 주전 유격수로 출장하기 시작하며 주전급 선수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90년대 당시 삼성의 키스톤 콤비는 강기웅 - 류중일이 있듯이 롯데엔 김민재 - 박정태가 키스톤 콤비를 이루었었다.

통산 타율이 2할 5푼이 안 되지만 팀 배팅에 능하고, 리그 정상급의 견고한 수비가 장점인 선수로 내야 전 포지션 수비가 가능하다. 그 점을 높이 사 강병철의 양아들의 소리와 함께 1군 주전으로 뛰게 되었고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등 국가대표팀에도 많이 발탁되었다. 삼성 라이온즈김재걸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특히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본선 2라운드 한일전에서 3루까지 무리해서 진루한 것이 가까스로 세입이 되었는데 이때 심판의 판정을 기다리는 일본팀 3루수였던 이마에 토시아키와 같이 그 표정짤방급이라 최훈의 WBC카툰에도 기합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재조명되었다.

출장 경기 수로 치면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경기에 출장한 선수였다.[7] 고졸 출신의 선수가 뛰어난 자기 관리를 하면 이 정도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수.

롯데 팬들에게는 진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데, 1995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 맹타를 휘두르며 그 경기를 승리로 이끌기도 했고, 1999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7차전 연장 11회에서 결승 2루타를 쳐냈기 때문이다.[8] 또한 전준호와 더불어 가장 오래 리그에 남았던 92년 우승의 멤버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92년도 포스트시즌때는 2경기 대수비로 나온게 전부지만...[9] 99년도 포스트시즌 때 동영상은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 참고. 그래서 김민재가 롯데를 떠나 다른 팀에 있었을때도 사직구장에 가면 한잔 걸친 아재들이 "김민재는 (언제나)롯데 꺼!"라고 외칠 정도였다.


2.2. SK 와이번스[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31017234934542.jpg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40828225046289.jpg


2001 시즌이 끝나고 첫 FA 자격을 얻어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고,[10][11] SK에서도 타격은 낮았지만 견고한 수비를 바탕으로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팀 내야를 지켰고, 국가대표팀의 부름도 받았다.

SK 이적 첫 해인 2002년에는 131경기에 출장해 타율은 0.258로 낮았으나 12홈런으로 커리어 유일의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고, 전년도 틸슨 브리또에 이은 SK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2003년에는 시즌 중반까지 1할 후반대의 타율로 멘도사 라인을 기록했지만 시즌 막판 올라온 타격감으로 최종 타율 0.211을 기록하며 2할대를 커버하는 데 성공했고, 수비력은 여전했다. 더군다나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하면서 페넌트레이스 4위팀이었던 SK를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켰다. 그해 KIA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1차전 1회초에서 김진우를 상대로 포스트시즌 최초 홈스틸까지 뺏어내기도 했다. 아쉽게도 팀은 당시 최강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간 끝에 준우승에 그쳤다.

2004년 9월 18일~20일에는 9연타석 안타 신기록을 세웠으며, 이는 2013년 7월 LG 이병규가 NC전에서 손민한을 상대로 10연타석 안타를 때려내면서 깨졌다.

2005 시즌 종료 후 두 번째 FA 자격을 얻었으나 SK와 재계약에 실패했고, 4년 총 14억에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였다.[12] 이것으로 FA 계약으로 팀을 두 번이나 이적한 최초의 선수가 된다.[13] 금액상으로는 SK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한화에서는 금액은 SK보다 낮지만 계약기간이 4년이었고 거기에 은퇴 후 코치직 보장이라는 조건을 제시해서 이적했다고 한다.[14]


2.3. 한화 이글스[편집]



파일:/image/117/2007/10/04/200710042152382227_1.jpg


2006년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이후부터는 타격 스탯은 낮으나 돌글러브 이미지가 강했던 한화 내야에 큰 힘이 됨으로서 팀 수비 안정화에 공헌하였다. 특히 2007년에는 타율 0.273로 타격에서도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김태균-한상훈-이범호-김민재로 이어지는 철벽내야를 구축하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초대형 계약도 아니었기에[15] 숨겨진 FA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좋은 수비 덕분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대표팀에 승선. 대회 성적은 13타수 무안타 2볼넷 출루율 0.154의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였지만 애초에 박진만과 함께 수비만을 보고 데려간 선수인지라 안정된 내야수비를 보여줌으로써 대표팀 금메달에 일조하였다.

2009 시즌이 끝나면 세 번째 FA 자격을 얻게 되는데…. 이제 슬슬 나이를 먹어서 기량이 노쇠화되고 있으므로 다시 장기 계약이 힘들 것 같았고, 본인 스스로도 후배들에게 자리를 점점 비켜주고 있는 모습을 보여줘 코치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국 2009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며 데뷔 19년차 내야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2010년 8월 6일 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그의 은퇴식이 조촐하게 펼쳐졌다. 오랫동안 꾸준한 건 사실이었지만, 사실 은퇴식을 할 정도의 레전드도 아니고 한화 이글스에서 몸담은 기간이 4년 밖에 안될 정도로 프랜차이즈 스타도 아니란 점에서 한화 구단의 대인배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마침 그 날의 상대팀이 자신이 데뷔한 팀이자 가장 오랫동안 몸 담았던 롯데 자이언츠였다. 이 날 경기는 롯데가 한화를 11-3으로 대파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3.1. 한화 이글스 코치[편집]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01206211418772091_1_0_20120621150003.jpg


은퇴하자마자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선임됐다. 하지만 코치 연수도 받지 않고 곧바로 1군에서 수비코치, 작전코치, 주루코치 등 요직을 맡고 있는데 팬들 사이에서 평가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3루에서 주자에게 냅다 팔을 돌려서 홈에서 주자가 비명횡사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등, 한화 루상횡사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한화 선수들의 수비 능력은 그야말로 사상 최악이다.

한화팬들로부터 무뇌 코치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으며, 조경택, 정민철과 세트로 물러나야 할 코치진의 암세포로 찍혔다.

결국 2012년 시즌 종료 후 이종범이 주루코치로 부임함과 동시에 한화 측이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하면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


3.2. 두산 베어스 코치 1기[편집]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01301091406777642_50ecfb6c7da05_59_20130109142024.jpg


2012년 10월 23일 문동환, 강성우와 함께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갔다. 그러나 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 평가가 나빴던 데다 전임 주루코치이자 LG 트윈스로 옮긴 김민호 코치의 업적 때문에 두산 팬들은 김민재의 영입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중이다.[16] 다행히 2013년 시즌 무난한 코칭 능력을 보여 주면서 비난 여론은 많이 잦아진 상태.

그러나 시즌 종료 후 김진욱 감독이 경질되자 그 여파로 조원우 외야수비코치와 함께 사의를 표명하면서 1년만에 두산을 떠났다.


3.3. kt wiz 코치[편집]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1403672744617_99_20140625145905.jpg


2013년 12월 16일 정명원 코치와 함께 kt wiz의 코치로 영입되었다.# SK 선수 시절 조범현 감독과 함께 한 인연으로 보인다.

2015년 kt가 1군 리그에 참여함에 따라 그도 1군 수비코치로 보직이 결정되었다.

2016 시즌 후 조범현 감독이 재계약에 실패하고 김진욱이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과거 두산 시절 같이했다 보니 kt에 잔류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10월 20일 롯데 자이언츠 코치로 옮기는 게 확정나면서 팀을 떠났다.


3.4. 롯데 자이언츠 코치 1기[편집]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201611211158912222_1_99_20161121115904.jpg


2016 시즌을 끝으로 kt wiz 조범현 감독이 팀을 떠났고, 친분이 두터운 롯데 자이언츠 조원우 감독과 김원형 신임 수석코치의 설득 끝에[17][18] 2017년에는 롯데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이로써 친정 팀 롯데 자이언츠에는 무려 15년 만에 복귀하게 되었다. 보직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그대로 1군 수비코치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17 시즌이 끝나가는 현재, 번즈와 함께 롯데의 내야수비를 강화한 공로로 칭송받고 있는 중.

그러나 2018 시즌 종료 후 조원우 감독이 물러난 뒤 코칭스태프 개편 과정에서 그 역시 재계약에 실패해 친정팀 롯데를 2년만에 떠났다.


3.5. 두산 베어스 코치 2기[편집]



파일:돡민재.jpg


2019 시즌을 앞두고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영입되며 2013년 이후 6년 만에 두산 코치로 되돌아오게 된다. 보직은 3루 작전코치.

두산이 201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롯데 선수 시절이던 1992년 한국시리즈 이후 27년 만에 코치로서 첫 우승반지를 껴보게 되었다.

2020년 정규시즌이 종료된 후 플레이오프가 진행된 가운데 신임 SK 1군 수석코치로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아직 포스트시즌이 모두 진행되지 않아서 복자처리되긴 하였으나, 해당 코치는 김원형 신임 SK 감독과 선수와 코치로 한솥밥을 먹은 적 있고, 국가대표에 여러 번 나간 야수 출신으로 리더십과 친화력이 좋은 사람으로 제시되어 있다. 종합해 보면 김민재 현 두산 1군 작전코치가 사실상 내정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기사


3.6. SSG 랜더스 코치[편집]


예상대로 한국시리즈가 종료된 직후 SK의 1군 수석코치로 합류한다는 기사가 떴다. 선수 시절이던 2005년 이후 16년만의 복귀이다. 이후 조원우가 2군 감독으로 합류하면서 김원형-조원우-김민재 세 명은 롯데에 이어 SSG에서도 코칭스태프로 다시 뭉치게 되었다.

2022년 8월 6일 같은 팀 선수이자 후배 최정이 과거 김민재 본인이 세웠던 최연소 2000경기 기록을 새로 갱신하자, 8월 23일 홈 경기를 앞두고 최정의 최연소 2000경기 기록 시상식에 참여해 꽃다발을 직접 건네줬다.

2022년 한국시리즈 종료 이후 친정팀인 롯데 자이언츠로 다시 복귀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으나,[19] 실제로 롯데에 이적한 코칭스태프는 최경철 코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기존 수석코치 자리는 조원우에게 넘겨주고 1군 3루 작전코치 겸 벤치코치로 보직이 변경됐다.


3.7. 롯데 자이언츠 코치 2기[편집]


2023년 10월 25일, 김태형 감독의 부름을 받고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의 수석코치로 부임하면서 5년만에 롯데로 복귀하게 되었다. #[20]

4.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성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1
롯데
16
15
.133
2
0
0
0
1
0
0
0
.133
.133
1992
82
96
.177
17
2
1
0
3
11
0
3
.219
.202
1993
104
253
.261
66
5
4
(8위)
3
22
30
2
23
.348
.320
1994
98
248
.246
61
9
3
3
30
27
7
25
.343
.310
1995
122
325
.215
70
14
4
(9위)
1
32
37
5
41
.292
.299
1996
115
302
.242
73
11
3
4
31
33
6
31
.338
.310
1997
114
289
.232
67
16
1
2
21
21
11
19
.315
.278
1998
120
323
.238
77
16
2
5
43
36
13
33
.347
.306
1999
130
389
.272
106
20
1
6
53
54
18
35
.375
.328
2000
133
382
.249
95
3
3
(10위)
3
33
47
14
42
.314
.322
2001
105
335
.301
101
14
1
2
37
48
6
28
.367
.35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
SK
131
488
.258
126
21
3
(7위)
12
50
51
15
37
.387
.308
2003
129
369
.211
78
16
1
4
36
43
14
48
.293
.299
2004
129
435
.260
113
13
1
4
40
57
11
27
.322
.300
2005
125
440
.277
122
19
0
2
37
58
20
48
.334
.346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6
한화
121
375
.211
79
17
0
5
27
41
11
35
.296
.277
2007
118
395
.273
108
17
0
6
47
43
7
35
.362
.332
2008
114
357
.241
86
13
0
5
35
26
13
32
.319
.303
2009
105
272
.206
56
11
1
4
29
33
1
28
.298
.280
KBO 통산(19시즌)
2111(6위)
6088
.247
1503
244
29
71
607
696
174
570
.331
.308


5. 여담[편집]



  •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종범 선수의 말에 의하면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본선 2라운드에서 열렸던 미국전에서 주자일 때 유격수를 보던 데릭 지터에게 I like you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터는 Me too로 응답, 이에 대해서 김민재 자신은 사실 "I like your play"라고 말하고 지터도 이에 대해 응답한 건데 이게 와전되어서 동성애자라고 몰릴 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종범은 그거나 저거나 마찬가지라며 시치미를 떼었다. 참고로 이 경기에서 김민재는 공격에서는 5타수 3안타와 수비에선 다이빙캐치를 선보이며[21]공수에서 맹활약하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22]


  • 펠릭스 호세에게 '하리수 사랑해' 문신을 해준 사람? 이라는 소문이 있다.

  • 롯데 팬을 제외한 마구마구 유저들, 특히 마구마구 갤러리에서는 거의 공공의 적 수준으로 까인다. 그냥 꾸준히 선수생활 오래 뛰었다는 점 말고는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커리어에, [23]무엇보다 롯데의 프랜차이즈이긴 하더라도 팀의 레전드나 간판 스타급이라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김민재가 느닷없이 롯데 자이언츠의 하점달린 유격수 레전드 카드로 나왔기 때문. 이 카드의 등장으로 창단 이래 언제나 구멍으로 평가되던 롯데계열 덱의 유격수 자리가 드디어 채워졌으며, 거기다 통산 기록과는 한없이 위화감이 느껴지는 능력치를 말 그대로 퍼받아 11롯데 세트덱과 같은 롯데계열 세트덱에 넣으면 충격과 공포급 스탯이 되었다. 한때는 타석에 해당 카드가 등장하면 김민재 개X끼가 챗창에 도배되기도... 시간이 좀 지나서 그보다 못한 김민호, 이종열 마저 당당하게 하점달린 키스톤 레전드로 나온 지금은 그런 과격한 표현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그런 자격미달 레전드의 시조인 탓에 등장 때마다 사기소리 듣는 것은 여전하다.[24]

  • 위에서 까인 이유 중 하나는 '시즌 중 준수한 기록을 달성'했다는 척도로 여겨지는 레어 카드가 현역시절을 통틀어 단 한 장도 나오지 않은 선수가 뜬금없이 레전드 카드를 받았다는 것이었는데, 결국 마구마구에서는 2차 재평가 때 드디어 01김민재의 레어카드를 추가시키고야 만다. 근데 그게 롯데 자이언츠 역사상 유일한 유격수 레어카드이기도. 게다가 그 레어카드에 팀케미스트리(=하이점프캐치, 대신에 단일덱, 올스타덱에서만 사용가능)가 달려 있어 레어마저 퍼주냐며 온갖 악담을 들었지만, 그 해 도루수가 적었던 관계로 스피드 책정이 낮아 똥차 취급을 받으며 롯데덱의 필수중 필수 소리를 듣는 레전드 카드에 비해 말 그대로 찬밥 신세에 있다.

  • KBO 통산 실책 최다 기록 보유자로 선수 시절 총 264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현역인 오지환이 실책 216개로 선수생활 중 경신할 것으로 보이지만 당분간 통산 실책 기록 1위는 깨지지 않을듯 하다.

  •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선이 굵은 미남형 마스크였던 덕에 롯데 시절 결혼하기 전까지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사직의 아이돌 스타였다. 특히 1996년 TV 중계 당시 '민재 오라버니 열녀모임'이라는 피켓을 든 여자 고등학생이 중계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 아들인 김동욱 군이 대전고등학교 야구부 소속 선수로 활동했으며,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영남대학교 야구부로 진학해 대학야구에서 활약 중이다. 이로 미뤄봐서는 은퇴 후에도 가족들은 김민재의 현역 마지막 팀인 한화의 연고지인 대전에 여전히 거주중인 걸로 보인다.

  • KBO 최다 희생번트 기록자로 선수 생활 동안 229개의 희생번트를 기록했다. 2019년 기준으로 현역 1위였던 나주환의 통산 번트는 142개인데, 나주환은 당시 15년차이므로 사실상 경신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고, 결국 나주환이 2021년 기록 경신에 실패하고 은퇴하면서 당분간은 희생 번트 1위 자리를 유지할 듯 하다. 번트는 과거와 달리 데이터 기반의 야구를 할 수록 줄어들기 마련이니 어떤 의미로는 가장 경신이 힘들다고 할 수도 있는 타격 기록이다.

  • 왼쪽 팔에 문신이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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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타 김민재~ 안타 김민재~ 김민재 안타 날려라~ (안타!) (x2)[2] 강귀태가 넥센 시절 썼던 응원가이기도 하다.[3] 민재 민재 김민재! 민재 민재 김민재! 안!타! 김!민!재! (X2)[4] 사실, 이 해에 롯데의 주전 유격수는 박계원이었다. 김민재는 플레이오프 2경기에만 대수비로 출장한 것이 1992 포스트시즌 출장의 전부이다.[5] 이 해 타격 1위를 달리던 5월 23일 사직 태평양전에서 1루에서 2루로 슬라이딩을 하다 염경엽과 충돌하여 발목이 부러졌다.[6] 삼성 라이온즈프랜차이즈 스타로 알려진 그 김종훈이 맞다. 대부분 외야수로서 활약한 것만 기억하지만 신인 시절에는 내야수였다.[7] 첫 번째는 바로 정성훈.[8] 실투를 잘 노린 경우가 아니라 뱀직구를 순수하게 기술로 쳐냈다. 이후 SK 시절에도 당시 리그를 삼켜버린 조용준의 하드 슬라이더를 쳐낸적이 있을 정도. 다른 건 몰라도 슬라이더 하나는 탁월하게 공략했다.[9] 2009 시즌이 끝나고 두 명 다 은퇴했다.[10] 2001 시즌에 커리어 유일하게 타율 3할을 달성했다. FA로이드의 대표적인 예. 참고로 이해 김민재의 3할이 롯데 유격수 중 유일한 3할로 알려져있는데, 이 시즌 김민재는 부상으로 인해 규정타석을 다 채우지 못해 2019년까지 롯데 소속 유격수 중 규정타석 3할은 없다. 2018년 신본기가 맹타를 휘두르며 롯데 유격수 대부분의 타격 지표를 갱신했으나, 시즌 말미 부진으로 정작 3할 달성에는 실패했다.[11] 이 당시의 일화. 프런트가 자신과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걸 깨닫고 고민 끝에 롯데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김민재는 후배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당시 후배였던 박기혁, 조성환, 신명철 등의 후배 내야수들을 불러서 같이 식사를 하면서 팀을 떠날 것을 이야기하면서 "너희 앞길을 막는 것 같아 미안했다." 라고 하면서 롯데를 부탁한다고 했고, 후배들도 슬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중 한 명이(대체로 신명철이라고 알려져 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기뻐해 열이 받았었다고 한다. 속으로 '뭐 이런 것들이 다 있노.'라고 생각했다고. 그래서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잠시 '뭐 이런것들이 다 있노.' 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12] SK로 이적할 당시 롯데는 보상선수 대신 보상금만 받아갔으나, 한화 이적 때 SK는 김민재의 보상선수로 투수 정병희를 뽑아갔다. 그러나 2005 시즌에 혹사당한 상태였던 정병희는 새 소속 팀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병역을 마치자마자 방출당했다.[13] 이후 홍성흔이 2009년 두산 베어스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2013년 롯데에서 다시 두산으로 FA 이적을 하면서 더 이상 유일은 아니게 되었다.[14] 이 당시 같은 해에 FA 자격을 취득한 정경배와 김민재는 같은 아파트 단지 앞, 뒷동에 살고 있었는데, 협상 기간에 우연히 창밖을 보던 김민재는 구단 직원들이 앞동의 정경배의 집에만 들르고 자신의 집에는 들르지 않고 가버리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이후 SK는 우선협상기간 막판 3년 14억을 제시했으나 김민재는 4년 계약을 원해 결국 협상이 결렬되었고, SK와 협상이 결렬되자마자 곧바로 한화 구단 관계자들이 김민재의 집을 직접 찾아와 4년 14억과 은퇴 후 코치직 보장이라는 계약 조건을 제시하자 군말없이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훗날 SK 구단 관계자가 김민재에게 왜 자신들이 제안한 계약 조건보다 더 낮은 조건에 한화와 계약했냐고 묻자, "아니 왜 그때 정경배한테만 가고 옆 동에 사는 나한테는 안왔대. 한참 기다리고 있었구만." 이라고 답했다고.[15] 계약금 5억, 연봉 2억, 옵션 1억.[16] 게다가 이 셋은 물론이고 롯데에서 옮겨 온 조원우 외야수비코치까지 합하면 김태룡 단장과 같은 부산광역시 출신이기 때문에 낙하산, 인맥 야구로 팀이 망가질 것이라는 우려가 더 높아지고 있다. 물론 강성우 코치와 조원우 코치는 각각 삼성과 롯데 코치 시절 평가가 좋았다는 장점이라도 있지만...[17] 조원우 감독과는 같은 부산광역시 출신이고, 선수 시절 SK와 한화에서, 코치 시절 두산에서 한솥밥을 먹은 적 있다. 또한 김원형 수석코치와도 선수 시절 SK에서 같이 뛴 적 있기도 하다.[18] 사실 2015년 조원우가 롯데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도 김민재 코치를 데려오려고 시도했으나 당시에는 kt와의 계약 문제 등으로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고, 1년 뒤 영입에 성공하게 된다.[19] 참고로 전형도, 이대진, 세리자와 유지 코치와 김정준 데이터센터장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각각 NC 다이노스, 한화 이글스,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이적 소식이 알려졌다.[20] 참고로 이날은 SSG 랜더스의 2023 시즌 준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된 날이었으며 플레이오프 진출 좌절과 동시에 시즌이 종료되자 곧바로 발표한 걸로 보인다.[21] 경기 마지막 아웃 카운트도 김민재가 잡았다.[22] 특히 이날 미국의 2루수인 체이스 어틀리가 눈이 썩는 수비를 보여줘서 더 비교가 되었다.[23] 다만 개인커리어는 빈약한 편이지만 팀 커리어는 꽤 좋다. 한국시리즈 우승반지에, 2002 아시안게임 우승, 2006 WBC 4강 멤버,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등.[24] 게다가 잠재력 슬롯에 달린 잠재력 3개도 모두 가관인데, 카드정보를 보면 왼쪽부터 순서대로 명품수비, 레전드, 하이점프캐치이다 하점캐가 최종보스이긴 하나 다른 잠재력들도 쓸데없는 잠재력 없이 뭐 하나 버릴 게 없는 잠재력. 그래서 더 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