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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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필중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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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s20.postimg.org/OB1995.png파일:external/s20.postimg.org/doosan2001.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5
2001


파일:2000 시드니 올림픽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
2000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9, 2000 KBO 리그 구원왕

OB
/
두산 베어스 등번호 35번

강병규
(1991~1994)

진필중
(1995~2002)


박진철
(2004)
KIA 타이거즈 등번호 35번
소소경
(2000~2002)

진필중
(2003)


주창훈
(2004)
LG 트윈스 등번호 35번
장준관
(2000~2003)

진필중
(2004~2007)


이형종
(2008)
{{{#fff [[우리 히어로즈|우리]] / [[서울 히어로즈|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39번}}}
팀 창단

진필중
(2008)


전인환
(2009)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85번
이동훈
(2014~2015)

진필중
(2016~2017)


김도규
(2018)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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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진필중.jpg

진필중
陳弼重 | Jin Piljung

출생
1972년 10월 13일 (51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역삼초 - 휘문중 - 휘문고[1] - 중앙대
신체
180cm, 91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5년 2차 2라운드 (전체 11번, OB)
소속팀
OB-두산 베어스 (1995~2002)
KIA 타이거즈 (2003)
LG 트윈스 (2004~2007)
우리-서울 히어로즈 (2008)
지도자
한민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09~2011)
경찰 야구단 투수코치 (2011~2013)
롯데 자이언츠 3군 투수코치 (2016)[2]
롯데 자이언츠 2군 투수코치 (2016)[3]
롯데 자이언츠 2군 불펜코치 (2017~2018)
동원대학교 야구부 감독 (2021)
해설위원
XTM 야구 해설위원 (2014)
SPOTV 야구 해설위원 (2015)
1. 개요
3. 피칭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1기
5. 해설위원 경력
5.1. 편파해설 논란
6. 지도자 경력 2기
7. 연도별 성적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OB-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LG 트윈스, 우리 히어로즈 소속의 투수. 전 롯데 자이언츠 2군 투수코치.

OB-두산 시절에는 기대되는 선발 유망주로 시작해 리그 정상급 클로저로 변신하며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으나, 이 시기의 혹사로 인해 빠르게 기량을 잃어 KIA 시절 이후부턴 먹튀로 전락했다. 홍현우 - 진필중 - 마해영 - 박명환 - 정현욱 - 정상호 - 차우찬으로 이어지는 LG 트윈스 먹튀 산맥의 한 축을 담당하며, 진필패라는 별명이 몰락 이후 진필중의 추락해버린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 선수 경력[편집]


진필중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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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피칭 스타일[편집]


전형적인 포심-슬라이더의 투피치 불펜투수로 150km/h를 넘나드는 강력하고 묵직한 포심 패스트볼이 주무기이다. 전성기 때만 해도 강력한 구위를 자랑했고 이 덕에 최고의 투수 중 하나로 꼽혔다. 패스트볼의 구위뿐만 아니라 제구까지 좋아 바깥쪽 낮게 들어오는 포심을 잘 구사했다. 포심 패스트볼 외에 슬라이더도 위력적으로 구사했다. 그 외 커브와 포크볼도 사용할 줄 알았으나 비중은 높은 편은 아니였고 사실상 포심-슬라이더 투피치였다.

그러나 계속된 혹사로 인해 구위를 잃어버리면서 바깥쪽 포심은 더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로케이션을 다양하게 하기도 하고 심지어 마무리에서 내려와 선발로 전향했으나 포심-슬라이더의 투피치, 완급조절의 부족으로 인해 선발로서도 성공하지 못하며 몰락해 버린 비운의 투수다. 당대 비슷한 사례로는 같은 OB/두산에서 뛰었던 박명환이 있다. 다만 둘의 몰락에는 3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LG 시절의 먹튀+삽질로 이미지가 크게 떨어졌지만, 두산 시절만 한정하면 지금의 오승환과 맞먹을 수 있는 특급 마무리였다. 김경원, 구대성, 선동열의 아성에 도전했던 몇 안되는 선수. 동시대에 뛰던 대항마로 유일한 마무리는 삼성의 임창용 정도가 있었다.[4]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선발로만 계속 뛰었으면 혹은 1이닝 마무리로 철저히 관리받던 시절에 뛰었다면 좀 더 나은 업적을 달성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선수다. 마무리로 뛴다는 선수가 선발로 등판하여 완투까지 할 정도였으니, 투수들이 철저히 분업화된 2010년대부터의 관점으로 보면 아무리 옛날이라도 상식 밖의 투수 활용이었다.


4. 지도자 경력 1기[편집]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에도 열심히 재기를 노렸지만 결국 2009년 1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2009년 한민학교의 투수코치로 지도자로 첫 걸음을 내딛었다.

"투수코치 진필중"의 첫 작품으로는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 140km/h 중반대의 구속을 던지는 파워 피쳐로 변신하여 삼성 라이온즈2010년 2라운드 지명을 받은 우완투수 김현우를 꼽을 수 있다. 코치로 만들어낸 첫 선수의 잠재력을 봤을 때, 코치로서의 가능성을 기대해 봐도 될 듯했다.

2011년 11월 자로 경찰 야구단의 투수코치로 부임했다. 재미있게도 경찰 야구단의 전임 투수코치는 OB 시절의 선배인 김경원이었다. 김경원 코치가 두산 베어스의 투수코치로 옮기면서 진필중이 경찰 야구단의 투수코치로 들어가게 되었다.


5. 해설위원 경력[편집]


2013 시즌을 끝으로 코치직에서 물러난 후 2014 시즌에는 XTM에서 해설을 맡았고 베이스볼 워너B에도 출연했다. 2015년에는 SPOTV의 중계 방송에 해설로 참여했다.


5.1. 편파해설 논란[편집]


해설 수준은 그야말로 최악. 쉽게 말해 마해영의 LG 편파 버전이다. 거기에 본인의 커리어를 칭찬하느라 해설시간을 허비해서 그 수준은 심각했다. 결국 분노한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마해영 자르지 말고 진필중도 자르라고 워너B 게시판을 초토화시켰다.

파일:attachment/jin_1.png
파일:attachment/jin2.png
분노의 현장

SPOTV 유튜브 채널에 XTM 해설이 나오면 마찬가지 반응인데, 모두들 분노했지만 그 중 한 사람은 20억 먹은 먹튀인데 저 같아도 편파해설 하지요.라고 비꼬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똑같이 편파해설을 한 마해영 전 해설위원은 완전히 퇴출되었으나, 진필중은 2015년까지 해설위원을 했다.


6. 지도자 경력 2기[편집]


2015 시즌 후 염종석의 사퇴로 공석이 된 롯데 자이언츠의 드림팀(육성군, 3군) 투수코치로 선임됐다. 야구 팬들은 진필중의 해설을 안 듣게 됐다며 환호하는 중. 공교롭게도 염종석 전 코치는 진필중이 해설위원으로 있던 SPOTV 해설위원으로 영입되면서 두 사람이 서로 자리를 맞바꾼 셈이 됐다.

2016년 8월 18일 코치진 개편으로 퓨처스(2군) 불펜투수로 올라왔다. 이 날 개편으로 크리스 옥스프링이 2군 코치에서 1군 투수코치로 올라오고, 주형광이 1군 투수코치에서 3군 투수코치로 보직 이동했다.

2018년 시즌 종료 후 양상문 체제로 바뀜과 동시에 재계약에 실패하며 롯데 코치직에서 물러났으며, 2019년 1월 7일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에 <Closer 35> 피칭트레이닝 센터를 오픈했다고 한다. 블로그

2021년 4월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동원대학교 야구부의 창단 감독으로 선임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2022년 3월 기준으로 前 KIA 코치였던 정회열[5] 감독으로 소개되고 있는 걸 봐서는 사임한 걸로 보인다.


7.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세이브
홀드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5
OB 베어스
36
109⅓
6
2
2
0
3.21
112
40
50
1996
32
191
13
10
4
0
3.11
186
47
69
1997
26
130⅔
7
12
0
0
3.72
152
43
72
1998
61
(5위)
158⅓
8
6
19
(5위)
0
2.33
(4위)
135
47
100
1999
두산 베어스
73
(3위)
114
16
(4위)
6
36
(1위)
0
2.37
84
41
114
2000
59
(5위)
73
5
5
42
(1위)
0
2.34
64
25
61
2001
51
89⅓
9
6
23
(1위[6])
0
3.22
87
41
88
2002
54
62⅓
4
5
31
(1위)
0
3.47
60
19
5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세이브
홀드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
KIA 타이거즈
46
64⅓
4
4
19
(5위)
0
3.08
64
24
7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세이브
홀드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4
LG 트윈스
34
32⅔
0
4
15
0
5.23
49
13
23
2005
13
51
3
7
0
0
5.82
58
28
27
2006
25
43⅓
0
3
0
2
3.95
54
15
18
2007
1군 기록 없음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세이브
홀드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8
우리 히어로즈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2시즌)
510
1119⅓
75
70
191
(6위)
2
3.20
1105
383
751

8. 관련 문서[편집]


[1] 83회 졸업생[2] ~8월 17일[3] 8월 18일~[4] 그나마도 임창용은 2000년에 관리받으면서 안식년을 갖고 2001년~2003년 3시즌은 선발로 전향했었다. 이후 임창용이 일본에서 특급 마무리로 활약한 뒤 메이저리그까지 찍고 불혹이 넘은 2018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간 반면 진필중은 2002년 이후 하락세를 타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LG 시절 먹튀 이미지까지 겹치며 이후 완전히 밀리게 된다.[5] 현재 KIA 타이거즈에서 뛰고 있는 정해영의 아버지기도 하다.[6] 세이브 숫자로는 1위였으나, 당시 세이브왕의 기준은 세이브+승수의 개념인 세이브포인트 제도였고, 신윤호에 비해 승수가 밀리면서 세이브 1위에도 세이브왕을 수상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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