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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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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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s20.postimg.org/OB1995.png파일:external/s20.postimg.org/doosan2001.pn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1995
2001
2010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9 프리미어 12
은메달(코치)
2019

파일: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코치)

2022

파일:2023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로고.svg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준우승(코치)
2023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86 KBO 리그 승률왕

{{{#fff [[OB 베어스|OB 베어스]] 등번호 24번}}}
박종호
(1982~1983)

최일언
(1984~1989)


김익재
(1991~1995)
{{{#fff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34번}}}
하기룡
(1982~1989)

최일언
(1990)


김성준
(1991~1993)
{{{#fff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
최동원
(1989~1990)

최일언
(1991)


이광길
(1992)
{{{#fff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7번}}}
윤석환
(1991)

최일언
(1992)


한명호
(1993~1995)
{{{#fff [[OB 베어스|OB]]
/
{{{#fff [[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등번호 78번}}}
결번

최일언
(1993~2003)


한영준
(2004~2010)
한화 이글스 등번호 77번
김수연
(1996~1999)

최일언
(2004~2005)


한용덕
(2006~2012)
{{{#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77번}}}
이충순
(2001)

최일언
(2006~2011)


알바레즈
(2012)
NC 다이노스 등번호 78번
팀 창단

최일언
(2012~2018)


배민서
(2019~2020)
LG 트윈스 등번호 71번
최경훈
(2015~2018)

최일언
(2019~2020)


김경태
(2021~)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No.73
최일언
崔一彦 | Choi Il Eon
[1]
일본명
山本一彦 (야마모토 가즈히코)
출생
1961년 7월 27일 (62세)
일본 야마구치현 산요오노다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하부초 - 하부중 - 시모노세키상고 - 센슈대
신체
177cm, 80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4년 해외교포 입단 (OB)
소속팀
OB 베어스 (1984~1989)
LG 트윈스 (1990)
삼성 라이온즈 (1991~1992)
지도자
OB-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1993~2003)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04~2005)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06)[2]
SK 와이번스 2군 투수코치 (2006~2010)[3]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10~2011)[4]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2012)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 (2013~2016)
NC 다이노스 1군 수석코치 (2017)[5]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 (2017~2018)[6]
NC 다이노스 잔류군 투수코치 (2018)[7]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19~2020)
LG 트윈스 투수 인스트럭터 (2021~)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2019 / 2021 / 2023)

1. 개요
2. 유년 시절
3. 선수 경력
4. 지도자 경력
5. 여담
6. 연도별 성적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KBOOB 베어스,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야구선수이자, 現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재일교포 출신으로 일본식 이름은 야마모토 가즈히코(山本一彦).

OB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투수로, 친정팀인 베어스를 비롯한 여러 팀의 투수코치로 몸 담으며 손꼽히는 유능한 코치 중 한명으로 평가 받는다.

2. 유년 시절[편집]


일본 야마구치현 출신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 고시엔에 서는 것을 목표로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까지는 정식 야구부가 아닌 동아리 야구부였다는데, 다행히 야구를 잘 했는지 명문 시모노세키상고에 진학하게 됐다. 신입생 360명 중 11등으로 들어갔다 하니 공부도 꽤 잘했던 모양.

고등학교 3학년 때 그토록 바라던 봄 고시엔[8]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대회 개막전이었던 1회전에선 승리를 했으나 2회전에선 그 해 우승팀이었던 미노시마고를 만나 4회에만 실책 4개로 5점을 주면서 결국 탈락하게 된다. 고시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도 여느 탈락한 팀 선수처럼 흙을 퍼갔다. 그 흙은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고. 그 해 여름방학 때 봉황대기에서 재일교포 야구팀으로 참가함으로써 처음 대한민국을 찾았다고 한다.

센슈대 4학년 2학기 때 일본프로야구 입단을 목표로 좋은 조건을 받고 사회인야구에 갈 예정이었는데 앞서 말한 봉황대기 때 당시 감독이었던 한재우의 설득으로 KBO 리그OB 베어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3. 선수 경력[편집]




파일:OB베어스 최일언 선수시절.jpg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OB 베어스 선수시절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LG 트윈스 선수시절 [9]


1984년 김일융을 놓쳐 아쉬움이 컸던 OB 베어스에 입단했다. 당시 OB 감독이었던 김성근재일교포 출신에다가 자신과 같은 일본 사회인야구 출신이었던 최일언을 매우 편애했다. 최일언이 입단했을 때 김성근은 "최일언은 일본 사회인야구에서 정통파로 피칭을 배운 선수다."라고 치켜세웠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일본의 '사회인 야구'는 한국의 '실업야구'에 해당한다. 그 유명한 노모 히데오도 1989년 프로 입단 전에는 사회인야구에서 에이스로 활약, 서울올림픽에 출전한 바 있다.

기대대로 입단 첫 해부터 167.2이닝 9승을 올리며 활약했다. 특히 입단 3년차였던 1986년에는 19승 4패 방어율 1.58로 데뷔 후 최고 성적을 올렸다. 이때 승률 타이틀을 수상하면서 선동열의 4관왕을 저지했다. 또한 단 5명만이 가지고 있는(박철순, 김시진, 선동열, 이상훈, 최일언) 200이닝 이상 피안타율 1할의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한다. 또한 시즌 피홈런은 단 2개만을 기록하며, 절정의 구위를 보여 주었다.

당시 해태를 상대로 엄청나게 강했는데,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등판한 경기에서 13연승을 거두며 해태 킬러로 활약하기도 했다. 거기에 OB선동열 킬러 김진욱이 있는 건 덤 그 이유로 해태 타자들이 몸쪽 패스트볼에 약한 타격폼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몸쪽 패스트볼에 바깥쪽으로 빠지는 커브볼을 던지면 해태 타자들이 맥을 못췄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자면 김광현급. 하지만 해태와의 1987년 2승 1패로 앞서있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연장 끝내기 폭투로 패전했고, 이보다 앞선 1차전에서도 대량 실점하며 패했다. 결국 플레이오프의 승자는 해태가 되었고, 그 기세를 몰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도 4연승 싹쓸이로 우승했다.

투구 속도보다는 변화구 구사 능력이 뛰어났다. 사실상 한국프로야구에서 포크볼을 본격적으로 선보인 첫 투수였고,[10] 상당한 각의 슬로우 커브, 체인지업, 싱커도 구사하였다. 전성기였던 1986 시즌에는 원하는 대로 공을 유도할 정도로 싱커 제구가 잘 됐다고 한다. 훗날 SK 와이번스 투수코치 시절 송은범에게 느린 커브를 전수하기도 했다.

1989시즌 최일언은 급격한 노쇠화를 겪기 시작했고 시즌이 끝나고 김상호를 상대로 LG 트윈스트레이드되었다. 이것은 LG 트윈스에 있어서 트레이드 잔혹사의 서막이었다. 김상호는 포지션을 외야수로 바꾸며 OB 베어스 타선에 힘을 불어넣었고[11], 최일언은 개막전 선발투수가 되며 LG 트윈스의 이름을 달고 첫 선발투수가 되었으나 이해 단 3승에 그치며 1990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그나마 LG 시절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우승 반지는 껴보게 되었다.

이후 1991 시즌을 앞두고 삼성 감독으로 부임해서 각 팀의 베테랑들을 현금 트레이드로 대거 영입하고 있던 김성근에 의해 삼성으로 영입되었다. 삼성에서 잠시 활약했지만, 1992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4.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에는 송재박처럼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1992년부터 2003년까지 친정 팀 OB-두산 베어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하여, 박명환, 진필중 등 수많은 유망주들을 키워 내며, 팀의 평균자책점이 좋아지고 1995년 - 2001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2000년대 중반까지 현대김시진, 삼성양일환과 함께 KBO 리그 3대 투수코치로 손꼽히기도 했다. 2004년에는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를 맡기도 했으며,[12] 2006년부터 2011년까지 SK 와이번스 코치로 활약하다가 어수선했던 SK의 2011 시즌 종료 후 새로 창단하는 NC 다이노스로 옮겨 초대 투수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후 김경문 사퇴로 코치진 줄사퇴때 NC에서 나오게 되자 류중일이 지켜보다 냉큼 LG로 데려왔다. 이후 류중일이 2020년 포스트 시즌 이후 재계약을 못하게 되자 같이 나오게 되었다. 선수 은퇴직후 2020년까지 한 해도 쉬지 않고 60살까지 투수코치를 해먹었다는 점에서 현장에서 얼마나 최일언의 코칭 능력을 인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직도 투수코치 직함을 유지하고 있으니 바로 국가대표팀 투수코치이다.


4.1. NC 다이노스[편집]




파일:external/ncdinos.firstmall.kr/64_1458440845_20112714_profile.jpg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2011~2018).svg NC 다이노스 코치 시절

2012년 야큐 리포트 인터뷰 1부, 2부

2013년 내내 NC의 선발진은 리그 탑급을 달렸으나 방화범만 가득한 불펜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그래도 최일언 투수코치를 비난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정도. 2014년부터는 불펜 방화범들을 어떻게 소방수로 키워내느냐에 따라 그의 역량이 좌지우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NC 불펜진은 2014년은 김진성, 원종현, 손정욱을, 2015년은 임창민, 임정호, 최금강, 2016년 박민석, 박준영, 2017년 윤수호 등 새로운 자원들을 계속 발굴해내면서 리그 최상급의 불펜진을 보여주고 있다. NC가 단시간에 강팀으로 성장한 이유 중 하나가 이 불펜진인 이상 이쯤 되면 투수조련에 일가견이 있다는데 동의할 만 하다.

2017 시즌부터는 투수코치에서 수석코치로 보직을 변경한다. 하지만 국내 선발진들의 큰 부진 탓인지 시즌이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5월 19일에 투수코치로 복귀했다. 앞으로 장현식, 구창모 등 젊은 선발 유망주들이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따라 본인과 팀 투수진의 운명이 달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재학, 구창모, 최금강 등이 시즌 초에 비해 좋은 활약을 선보였으며 임시 선발이었던 이형범까지 생애 첫 선발승과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는 등 답이 없던 국내 선발진들을 어느 정도 살렸다! 이에 엔갤에서는 종신투수코치를 해야한다고 찬양하고 있다.

6월 11일 경기를 앞두고 NC의 현재 투수진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이재학이민호에게 아쉬움이 크다고 한다.

구종 전수에 상당히 일가견이 있다.(커브, 체인지업, 포크볼 등등) 이재우에게 포크볼을 전수한 장본인이며, 김진성도 그에게 포크볼을 배웠다. 이혜천에게는 투심도 전수했다. 왕웨이중에게는 커터도 전수했다. 또한 2017시즌에 데뷔 후 최저 성적에 그친 이재학을 다시 살리고 유원상, 강윤구 등 이적생들이 140km/h 중반의 구속을 회복하는 것 역시 최일언의 코칭 덕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불펜진의 혹사 문제에서는 투수코치로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실제보다 과대평가를 받는다는 견해도 있다. 투수 개개인에 대한 지도 능력만큼은 좋지만, 그렇게 키워 낸 선수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무의미하기 때문. 물론 김경문 감독의 의지를 이기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최소 방관했다는 소리이므로 그건 그거대로 문제. 밑에 나와 있는 인터뷰에 따르면 3일 연속 등판을 막는 등 나름대로 투수 관리를 했기 때문에 혹사가 아니라고 하는데, 당연하겠지만 단지 연투만 막았다고 혹사가 아닐 수는 없다. 등판 횟수나 이닝, 투구수만 보아도 NC 불펜들이 여러모로 과부하가 걸렸다는 것은 야구 좀 보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기 때문이다. 결국 김경문 감독이나 최일언 코치 둘 다 구시대적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팀을 운용했다는 것은 굉장히 아쉽다고 볼 수 있다.

결국 2018년 6월 4일 김경문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후 코치진 개편으로 잔류군인 D팀 투수코치로 보직을 옮겼다.

D팀 코치로 옮긴 이후 김종문 단장대행에게 계속해서 사의를 밝혔지만 9월 20일까지만 기다려달라는 대답을 받았고, 결국 시즌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시즌 후 사의를 수리 받고(기사 상은 재계약 불가 통보) 팀을 떠나게 되었다. 사임 이후 인터뷰에서 2018년 팀 케미스트리 붕괴, 두 외국인 투수의 실패, 투수 혹사 논란, NC 선수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남들 놀 때 쉬고 남들 훈련할 때 훈련하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과 NC 선수들이 오재원을 롤모델로 삼으면서 열정과 노력, 욕심을 배워야 한다는 쓴소리도 했다. 다만 3연투만 없다면 일주일 4번 등판은 혹사가 아니라는 논리를 펼치며 김경문 감독을 옹호한 것 때문에 많은 팬들은 아쉬우면서도 떠날 사람 잘 떠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4.2. LG 트윈스[편집]




파일:LG 최일언 코치.jpg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 LG 트윈스 코치시절

2018년 10월 24일 이종범, 김재걸, 김호 코치와 함께 LG 트윈스의 코치진에 합류하여, 1990년 선수로 LG에서 활동한 지 29년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LG 팬들은 일언매직의 힘을 기대하며 강상수가 전 투수들을 138km 클럽으로 만들어버리면서 멸망시킨 투수진을 살려주길 바라고 있다.

2018년 12월 5일 1군 메인 투수코치로 확정되었다. 먼저 진해수를 1:1로 맡아 부활시켜보겠다는 기사가 나왔다.

아직 판단하기에 이른 감은 있지만 최소한 말도 안되는 좌우놀이는 안 보게 되고 불펜진의 짜임새가 살아나 전임자에 비하면 호평이 나오고 있다.

작년 끔찍한 투구 내용을 보인 이우찬의 제구를 잡아 4월 13일 10.1이닝 무실점 피안타율 .034라는 활약을 하게하였다.

작년에 평균자책점 5.29로 6등인 팀을 4월 17일 평균자책점 2.19를 기록하면서 2위인 두산 베어스의 3.02와는 0.83으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강상수를 영입한 KIA 타이거즈는 5.35로 10개구단중 9위를 기록중이다. 평균자책점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투수코치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투수들이 많이 좋아졌다.

5월 들어서 타선들이 죄다 못치면서 오로지 투수진의 힘으로만 승리를 챙기고 있다. 특히 구원 WAR은 5월 12일 기준으로 4.83으로 압도적이 1위이며 구원 ERA도 2.59로 압도적인 1위이다.

그리고 불펜이던 이우찬을 선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LG의 승리 요정이 되어, 6월 15일 기준 현재 4승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이우찬이 선발인 그 날 경기는 대부분 승리하여 일언 매직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다만 고졸신인으로 전반기에만 불펜으로 50이닝을 던진 정우영이 올스타전 이후 어깨 염증으로 말소되면서 '3연투는 시키지 않았으니 혹사는 아니었다'고 말한 인터뷰가 재조명되고 있다.

후반기 들어 이우찬이 볼넷을 남발하며 흔들리고 임찬규가 스윙맨으로 무리하는 등 상반기 활약으로 인해 과부하가 걸린 투수진이 흔들리고는 있으나 8월 12일 기준 7회까지 리드 시 45승 1패의 철벽불펜진을 구축하면서 명의로 칭송받고 있다. 강상수 의문의 1패

다만 이 불펜진들의 면모를 들어다보면, 혹사 정도가 장난이 아니다. 그 NC에서도 늘 나오던 비판이 하나도 고쳐지지 않았다. 특히 고우석정우영에 대한 혹사가 심하다. 고우석은 63경기 69이닝[13]을 찍고 말았고, 정우영은 54경기 64이닝을 찍으며 둘 다 힘이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14]

특히 고우석4연투를 했다!!! 9월 22일 경기에도 8회말에 등판한 것. 154까지 찍히던 패스트볼이 148밖에 안 나오면서, 볼넷을 남발하고 박건우에게는 볼넷을 주며, 만루상황에 대타 김인태를 상대로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는 등 매우 흔들렸다. 9회 말에도 등판하였으나, 정수빈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고 폭투로 2루까지 진루하고 1사 1, 3루 위기에서 블론을 저지르는 등으로 매우 흔들렸다. 15일 16일 18일 22일.. 이게 과연 최주환에게 좌전안타를 맞은 진해수 만의 문제일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인데, 진해수는 올 시즌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로 나오긴 했으나, 71경기를 출장했으며, 이보다 많이 나온 투수는 72경기 등판에 빛나는 고효준 밖에 없다. 거의 노예 수준으로 구른 것. 당장 오현택이 왜 안 나오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2019년도 팀은 준플레이오프에서 키움 상대로 탈락하였다.

SK와 NC시절에도 하도 혹사를 시켜서 불펜들 팔 갈아먹는걸로 유명했는데, 20시즌에 LG 불펜 정우영과 고우석이 19시즌의 혹사 여파인지 연습경기때 불안한 구위를 선보이며 최일언은 욕을 먹고있다.

특히, 2020시즌 5월 10일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의 마산 경기에서 그동안 쉴새없이 최일언이 혹사시켜서 갈아먹은 임창민이 말그대로 대폭발하여 LG가 대역전승을 했는데 그것을 보면서 LG팬들은 나중에 최일언이 떠나면 LG불펜이 저렇게 되지 않을까 쎄한 감정을 느꼈다.

2020년 5월 15일, 원래부터 무릎부상이 있었고 그동안 열심히 혹사시키던 고우석은 무릎수술로 수술대에 오르며 2개월간 재활하게 되었고 NC에서의 혹사 희생양 임창민 SK전에서 4볼넷을 내주며 자멸하며 블론세이브를 내주고 말았다.

2020년 6월 들어 좌타자 나올때마다 진해수, 최성훈을 꼬박꼬박 등판시키며 조금씩 갈아먹는 모습을 보이고, 정우영을 제외한 대부분의 불펜 투수들이 나왔다 하면 볼질을 해대서 팬들을 속터지게 만들고 있다.

8월 20일 이기면 1위가 코앞인 상황인데 키움전에서 승계주자 실점을 하긴했으나 비교적 잘던지던 정우영을 내려버리고 6점대 고우석으로 클로저로 올려버리는 과감한 결정을 했으나 역시나 고우석이 털리면서 키움한테 져버렸다.

이렇게만 보면 최일언이 무슨 압도적인 투수 10위팀으로 만든것처럼 보이지만, 2020시즌 LG 트윈스는 9월 2일 스탯티즈 기준 선발방어율 2위, 구원방어율 3위이다. 투수진에서 선발 정찬헌, 이민호를 10일 로테를 통해 1군에 안정적으로 정착시켰고, 김윤식 역시 빈자리가 생기자 적극 기용해서 5선발로 나름 던져주고 있다. 불펜에서는 작년 1차지명자 이정용이 1군에 합류하면서 호투중이다. 결국 최일언 코치가 비판받을 요지는 불펜 기용 문제와 정우영 혹사 논란 정도.

9월 15일 한화를 상대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하는 상황에서 고우석이 2사 후 제구가 완전히 날리며 흔들리고 있는데도 벤치에서 꿈쩍도 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결국 3연속 사사구로 자멸하며 패배했다.

9월달 들어서 열흘 사이 대역전패 4개로 불펜진이 너무나도 손쉽게 무너지는 모습이 많아지자 감독인 류중일과 함께 비판이 심해졌다. 결국은 위에서 제기된 문제점인 불펜 기용 문제와 정우영의 혹사가 스노우볼이 되어버렸다. 8월달까지만 해도 지지여론이 많았던 팬들사이에서 류중일과 함께 처내야 한다는 의견이 점점 우세해지는 상황.

2020년도 팀은 막판 두 경기에서 가장 매운 고춧가루를 먹으며 그것도 한화전에선 6:0으로 이기던 경기를 6:7로 패배 2위에서 4위로 추락. 그 여파 때문인지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상대로도 패하며 아쉬운 시즌을 마감했다. 이후 류중일 감독이 사의를 표명함으로써 같이 팀을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총평: NC시절부터 이어져오던 혹사논란에 대해서는 절대 자유로울수 없다. 또한 소극적인 마운드 방문이나 멀티이닝 논란 등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LG 투수코치로서 재임한 2년의 기간 모두 팀은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으며 그 사이 젊은 투수들이 기회를 받고 성장했다. 19년도에는 김대현-정우영-고우석이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고, 20년도에는 이민호-김윤식-이정용-남호 등이 기회를 받으며 팀의 미래를 밝혔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일본으로 떠나기 전 LG구단 이규홍 사장과 차명석 단장이 식사 자리를 따로 마련하며 예우를 표했다고 한다. 몇몇 LG투수들은 시즌이 끝나고 '코치님,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잘 던졌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라고 인사가 왔다고도 한다. 팬들 사이에선 평가가 엇갈렸지만, 적어도 팀내 선수단과 구단에게 있어서는 신망이 두터웠음을 알수 있는 대목.

이후 인터뷰에 의하면 12월 초, 자신의 고향인 시모노세키로 떠났고 어머니집에 잠시 머물다 내년엔 와이프와 딸이 머물고 있는 미국에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러기 아빠 탈출 또한 국내파 투수진들의 부진에 대해 언급하며, 연습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했다. 훈련의 양을 줄이는 것이 미덕처럼 보이고 있어 아쉽다고 표현함과 동시에 일본에서의 흔한 강속구 투수가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이유 또한 훈련의 차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3월에는 귀국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때까지 휴식을 취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그의 투구이론에 따르면 팔이 올라오는것은 절대 안되고 던지고 공을 잡으라고 LG트윈스 선수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후 4월 27일 LG와 투수 인스트럭터로 다시 계약하면서 5개월만에 복귀하였다. 최일언이 떠난 이후, 경헌호 투수코치가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클러치 상황에서 불안한 운영을 보이자 많은 팬들은 2군이라도 복귀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기사


5. 여담[편집]


  • OB/두산 시절 김인식 감독 휘하에서 투수코치를 하던 당시에 김인식 감독이 투수를 교체해야겠다 싶어서 "일언아~"하고 최일언 코치를 불렀는데 최일언 코치는 가만히 있고 선수들만 눈치보면서 웅성웅성거리기만 하길래 좀 더 큰 목소리로 "일언아!"하고 외쳤더니 "일어나"로 알아들은 선수들이 우르르 덕아웃에서 일어났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스포츠 조선에서 김인식 감독 관련 에피소드들을 소개한 기사에 실릴 정도.

  • LG 트윈스에서 1990시즌 한 시즌만 뛰고 고작 3승밖에 못했지만, 1990년 OB와의 개막전에서 선발등판해 LG 트윈스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선발등판한 투수이기도 하다.

  • '일언'이라는 발음이 '이런'이라 '이런매직'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매직 본 적이 있습니까?


6. 연도별 성적[편집]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4
OB
37
167⅔
9
6
3
0.600
2.84
145
6
73
86
60
53
1.25
1985
38
144⅔
10
14
3
0.417
2.43
(5위)
119
4
80
(5위)
88
57
39
1.34
1986
33
221⅔
19
(2위)
4
2
0.826
(1위)
1.58
(3위)
140
2
107
(2위)
101
49
39
1.09
1987
24
154⅔
14
(4위)
8
1
0.636
(5위)
2.56
129
4
76
70
52
44
1.29
1988
20
115⅔
6
4
0
0.600
2.18
(3위)
100
0[15]
53
50
33
28
1.28
1989
28
136⅓
7
12
2
0.358
4.29
132
4
84
62
75
65
1.5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0
LG
15
48⅔
3
2
0
0.600
4.62
49
6
36
24
26
25
1.69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1
삼성
32
96⅔
9
6
0
0.600
4.47
100
4
56
56
54
48
1.58
1992
13
29⅓
1
1
0
0.500
4.60
28
4
16
19
16
15
1.47
KBO 통산
(9시즌)
240
1115⅓
78
57
11
0.578
2.87
942
34[16]
581
556
422
356
1.33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4년
2완투
0완봉
1985년
2완투
0완봉
1986년
12완투
(공동 4위)
6완봉
(2위)
1987년
9완투
2완봉
1988년
2완투
0완봉
1989년
3완투
1완봉
1990년
1완투
0완봉
KBO 통산
31완투
9완봉

7. 관련 문서[편집]


[1] WBSC 공식 등록명[2] ~6월 19일[3] 2006년 6월 20일~2010년 6월 29일[4] 6월30일~[5] ~5월 19일[6] 2017년 5월 20일~2018년 6월 3일[7] 6월 4일~[8] 선발고교야구대회(센바츠 대회)라고 한다.[9] 딱 1시즌 있었던만큼 정말 찾기 힘든 LG 트윈스 선수시절 사진. 출처
왼쪽 사진은 김용수, 오른쪽 위 사진은 정삼흠, 그 밑의 사진이 최일언이다.
[10] 앞서 말한 고등학교 3학년 때 포크볼을 처음 배웠다고 한다. 그 전이었던 고시엔 때는 커브를 주로 던졌다고.[11]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홈런왕, MVP, 골든 글러브를 차지했다. 이는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에서 배출한 최초로 배출한 홈런왕이었다.[12] 이 때, 문동환이 그에게 체인지업을 배워, 에이스로 거듭났다.[13] 참고로 2014년손승락2016년김세현이 62경기 62.1이닝을 찍고, 각각 2015년2017년에 잦은 블론을 저지르다 결국 망하고 말았다.[14] 이마저도 부상으로 1달을 쉬고 나서 기록한 성적이다. 과장 좀 보태서 8년 전 신인왕 후보까지 올랐으나 혹사로 데뷔 시절의 강속구를 잃어버린 임찬규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15] 유일한 규정이닝 무피홈런기록이다.[16] 통산 규정이닝(1000이닝) 최소 피홈런 2위. 1위는 선동열28피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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