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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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헌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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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15
2016

파일:2014 인천 아시안게임 로고.svg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14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5 프리미어 12
우승반지

2015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9 프리미어 12
은메달

2019



파일:KBO 퓨처스리그 엠블럼.svg
2011 KBO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타격왕





두산 베어스 등번호 49번
채상병
(2004)

민병헌
(2006~2010)


이혜천
(2011)
두산 베어스 등번호 35번
조승수
(2009~2011)

민병헌
(2012)


정혁진
(2013)
두산 베어스 등번호 49번
오성민
(2012)

민병헌
(2013~2017)


박신지
(2018)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번
김건국
(2017.4.19.~2017)

민병헌
(2018~2021)


신윤후
(2022~)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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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헌
閔炳憲 | Min Byung-Hun

출생
1987년 3월 10일[1] (37세)
서울특별시 강서구[2]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화곡초 - 잠신중 - 덕수고
신체
178cm, 87kg, O형
포지션
우익수, 중견수[3]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6년 2차 2라운드 (전체 14번, 두산)
소속팀
두산 베어스 (2006~2017)
롯데 자이언츠 (2018~2021)
병역
경찰 야구단 (2011~2012)
등장곡
두산 시절
TJR - What's Up Suckaz
롯데 시절
빅뱅 - BANG BANG BANG[4]
응원가
두산 시절
ABBA - Honey Honey[5][6]
자작곡[7]
롯데 시절
자작곡 1[8][9]
자작곡 2[10]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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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어머니 안경숙[1], 남동생 민병돈[2]
고종사촌 최효종[3]

아내(2014년 결혼 - 현재)
장녀 민세원(2013년생)
차녀 민세아(2014년생)
본관
여흥 민씨 (驪興 閔氏)[4]

1. 개요
3. 은퇴 이후
4. 플레이 스타일
4.1. 타격 및 주루
4.2. 수비
5. 논란 및 사건 사고
6. 별명
7. 여담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건우야, 오늘만 야구하는 거 아니지? 내일도 하지? 내년에도 하지? 마흔 살까지 할 거지? 뭐 144경기를 다 이길 수 있나. 오늘 지면 내일 또 이기면 되는 거야."[11]

2016년 5월 10일, 두산 베어스가 4연패를 달리던 와중 박건우에게 #


"야구 일찍 끝나면 재미없잖아. 엄청난 긴장감과 많은 관중 속에서 경기하는 거 진짜 재밌어."

2019년 스프링캠프를 마치며 올해 롯데에서 두산의 향기가 난다며 후배들에게 자주 해준다는 말. #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소속 야구 선수. 포지션은 외야수.

두산 베어스 시절에는 주로 우익수로 활약하면서 2015, 2016 한국시리즈에서 2연패에 기여했다. 주로 리드오프 혹은 3번 클린업으로 출장을 많이 했으며 어느 타선에서든 본인의 역할을 잘 해내주었다. 2014시즌 커리어 하이를 갱신한 후에는 국가대표에도 승선하여 활약하였다.

이후 2017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두산을 떠나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다. 이적 후 주장까지 맡는 등 활약했으나 선수 생활 내내 따라왔던 질병인 뇌동맥류로 인해 35세라는 다소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2. 선수 경력[편집]




3. 은퇴 이후[편집]


은퇴 선언 직후인 2021년 12월, 친정팀인 두산 베어스에서 선수로서 영입 제안을 보냈으나 선수 본인의 건강 상태가 최악이라 은퇴 쪽으로 마음을 굳히면서 결국 두산 복귀 역시 자연스럽게 결렬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은퇴 선언 이후 MBC SPORTS+에서 해설제의를 했지만, 일단 본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기도 하고 카메라 울렁증도 겪는데다 당장은 현장 복귀에 마음이 없어 거절했다는 소식도 추가적으로 전해졌다.

은퇴 이후에는 사회인야구 경기에 용병으로 이름을 올린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2022년 7월에는 제주도에 있는 야구 레슨장에 후원을 하고 레슨장 홍보를 했다는 소식을 모 LG 트윈스 팬이 전하기도 했다. 근황에 따르면 은퇴 직전에 비해서는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으나 여전히 부상과 뇌동맥류 후유증이 남아있다고 한다.

2022년부터 B.H Baseball 아카데미의 감독을 맡고 있다.[12] 처음에는 일산에서 레슨장을 열었으나 이후에는 부천으로 야구 레슨장을 옮겼다. 아카데미에서 독립야구에 출전하는 프로 출신이나 아마추어 선수들은 물론 사회인야구에 뛰는 일반인들의 야구 상담도 받는다고 한다. 모 두산 팬의 방문기에 의하면 야구팬들이 많이 상담을 받으러 가는지 같이 사진을 찍어주거나 싸인도 직접 해준다고 한다.#

현재 서귀포시 베이스볼 SBC 라는 유소년 클럽을 창단했다. 현재는 SBC minbyunghun 이라는 인스타와 함께 선수를 모집하고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4.1. 타격 및 주루[편집]



파일:170623.gif

민병헌의 시그니쳐, 기마 자세 타격폼[13]

신인 시절부터 빠른 발을 가진 리드오프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2007년, 고졸 2년차에 타율 0.244 OPS 0.640 3홈런 31타점 30도루 28볼넷 56삼진의 신인치고는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육상부로 유명한 두산에서도 고졸 2년차에 30도루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정수근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에 대단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후 타격에서 지지부진한 성장세를 보이며 임재철 등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점점 출장이 줄어들었다. 장타력이 거의 없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100경기 이상 출전해 타율 2할 6푼을 넘긴 적이 없는 컨택이 큰 문제. 적극적인 타격 성향까지 더해져서 출루율은 3할 초반에 머물렀으며, 컨디션이 좋을 때와 나쁠 때의 기복도 심한 편이었다.

그러나 경찰청 입대 이후 친구 양의지를 따라 버프를 받고 2012년 제대 후 2013년에 wrc+ 131.7을 찍으며 타격이 폭발했고, 이후 꾸준히 준수한 타격을 보여주며 리그 수위급 우타 외야수로 발돋움하였다. 한마디로 발을 내주고 타격을 얻었다.[14]

부동의 리드오프이자 주전 중견수였던 이종욱이 2013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하며 NC 다이노스에 이적함에 따라, 리드오프 자리는 민병헌이, 중견수 자리는 정수빈이 대체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임자의 빈자리가 느껴지기는 커녕, 민병헌은 리그 최강급의 리드오프가 되어 커리어 하이를 갱신하면서 날아다녔고[15] 그 활약에 힘입어 인천 아시안게임 엔트리에 들며 데뷔 후 처음으로 국가대표 A팀까지 합류했다. 그리고 국대만 나가면 미치는 또 다른 친구 김현수 따라 큰 활약을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16]

타석에서는 상당히 공격적인 면모를 보였다. 전 두산 선수였고 지금은 해설위원이 된 김선우에 따르면, "민병헌 선수는 스트라이크가 곱게 들어오고 있는 걸 못 본다"라고 한다. 성적만 놓고 보면 중장거리 유형의 타자지만, 원래 선수 본인이 타격에 임하는 자세는 짧고 가벼운 배트를 보다 더 짧게 잡고 컨택에 집중하는 유형이었다. 이 문단 상단의 타격폼 움짤만 봐도 얼마나 짧게 잡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민병헌이 사용한 배트는 길이 33인치 - 무게 860g으로 보통 아마추어 선수들이 쓰는 사양인데, 배트 스피드가 워낙에 빨라 짧고 가벼워진 배트의 장타력을 상쇄한다. "안타를 치다 보면 홈런이 나온다", "적극적으로 타석에 임하되 욕심부리지 말자"는 게 타격 지론이라고 한다.

홍성흔이 은퇴한 2016 시즌부터는 양의지와 함께 팀 내 병살 1, 2위를 기록하였고 더 이상 발이 빠르다고 보긴 힘들어졌다. 물론 그들의 타구 속도가 굉장히 빠른 것도 원인이지만 해설진마저 빠르지 않은 내야 땅볼이 나왔을 때 민병헌 정도면 병살은 안 되겠거니 예상하는데 넉넉하게 아웃되는 경우도 있다. 도루 시도 역시 2015년 이후 중심타선에 배치되는 일이 잦아지고 잔부상을 달고 살면서 크게 줄어들었다. 그래도 롯데 이적 후 2019년 13도루를, 2020년 시즌을 죽쑤면서도 10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준수한 주력을 유지했다.

시즌 초반과 후반의 성적 차이가 꽤 큰 선수였다. 제대 후 플래툰으로 나오다 5월 즈음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한 2013년을 제외하면, 한결같이 전반기 대활약, 후반기 방전 패턴을 반복했다. 2014~2016년 사이의 기록을 보면 전반기 타율이 후반기 타율보다 항상 높았고, 홈런 역시 전반기에 다 쳐놓고 후반기에 빌빌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2014년의 경우 5월까지 .377/.424/.596의 슬래시 라인에 8홈런, 6도루를 기록하며 이종범의 재림, 신개념 1번타자 등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었지만 6월 이후 팀과 함께 침몰하며 스탯을 크게 깎아먹었다.[17] 2015년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특히 2015년 9월의 민병헌은 거의 아웃카운트 판매기 수준.(.188/.247/.212). 2016년에는 5월 중순에 무려 10홈런을 달성하며 어렵지 않게 데뷔 첫 20홈런을 달성할 줄 알았으나 이후 7월에 3홈런 친 것을 제외하면 한 달에 1홈런을 치며 16홈런으로 시즌 마무리.

체력적으로 무리가 많은 포지션이기도 하고 잔부상도 달고 사는데다 엄청난 연습벌레다 보니[18] 시즌 초반의 타격감을 그대로 이어가기엔 체력이 버티기 힘든 탓인 듯하다. 민병헌 특유의 기마 자세 타격폼도 사실 힘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폼이기도 하다. 대신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나오면 다시 시즌 시작한 것마냥 불방망이를 휘두르기에, 민병헌이 퍼질 기미가 보인다 싶으면 라인업에서 민병헌 일주일 정도만 빼라는 말이 꽤 나왔다. 다만 본인도 이를 인식해서 시즌을 치를수록 이 현상은 점점 나아졌다.

고질적으로 허리통증이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19]로 추측된다. 허리 특성상 한번 통증이 생기면 계속 통증이 생기는 데다가 육체를 많이 쓰는 직업 특성상 더더욱 고치기 어렵기에[20] 특유의 한 달 결장의 원인이 바로 이 부상이다.

총평하자면 전성기에는 한 팀의 중심타자로 손색이 없는 타자였으나, 부상과 뇌동맥류 질환으로 인해 일찍 은퇴를 하게 된 안타까운 선수였다.

4.2. 수비[편집]


신인 시절부터 대주자 및 대수비 롤로 1군에 있었던 만큼 수비도 일품이다. '좋은 외야수'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타구 판단력을 가졌음은 물론 발이 빠른 만큼 넓은 수비범위를 자랑하며 어깨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수준이었다. 두산 시절 주로 우익수로 출장했지만 좌중우 모두 가능하며, 2014년 이후로 중견수 주전에 공백이 생기면 중견수 자리에 백업 멤버가 들어오는 게 아니라 민병헌이 중견 알바 1순위로 기용되고 우익수에 백업이 들어올 때가 많았다. 외야 어디에 들어가도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지만, 허리와 햄스트링 쪽에 부상이 있어서 풀타임 중견수로 뛰는 건 힘들었다.[21][22]


5.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5.1. 마산구장 공 투척 사건[편집]



2015년 5월 NC와의 경기에서 해커와 오재원의 마찰로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다. 그러나 두산의 더그아웃쪽에서 의문의 야구공이 날아와 해커가 맞을뻔 했고, 결국 자신이 던졌다고 주장한 장민석이 퇴장당했다. 허나 이 공은 민병헌이 던졌다는 것을 네티즌이 밝혀냈고 그제서야 직접 사과를 했다. 이후 3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만약 그 공에 누군가 맞았더라면 큰 상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는데 만약 들키지 않았다면 사과를 안 했을 것이냐라는 비난을 받았고 구단과 감독에게까지 민병헌은 주전이라 백업한테 덮어씌운 것이냐며 강도 높은 비난을 받았다. 이후 코치에 의해 백업인 장민석이 대신 퇴장당한 것이 밝혀졌고 사건 다음 날 선수들에게 사건에 대해 함구령까지 내려져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6. 별명[편집]


별명으로는 이름을 줄인 "민뱅", 응원가에서 파생된 "허니"[23], 가공할 만한 비더레 성공률로 생긴 "민더레", 하도 동료들의 귀를 만져대서 생긴 "귀성애자" 등이 있다.

  • 틈만 나면 동료 선수들의 귀를 만지는 장면이 자주 포착되어 팬들 사이에선 귀성애자로도 불리고 있다.[24] 2015년 우승기념 팬페스트 질문타임 에서 왜 그렇게 선수들의 귀를 자주 만지냐는 질문이 나왔는데 그에 대한 대답이 걸작이다. 저기.. 커밍아웃 할게요. 아니.. 그게 아니라.. 어머님도 그렇고 애기도 그렇고 수빈이도 그렇고 덕주도 그렇고 다 제 껍니다 이 대답 직후 장내 MC가 어떤 선수의 귀 촉감이 제일 좋냐고 질문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본인의 바로 왼쪽 옆에 있던 정수빈을 지목하며 너무 질투들 하지 마시고요, 제 꺼니까 탐내지 마세요라는 말로 화룡점정을 찍으며 장내는 초토화.[25] 장내 MC의 주도로 그 선수에게 본인의 귀가 잡힌 건 덤. 영상 이제는 롯데로 이적하면서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대신 그 상대가 한동희로 바뀌었다.

  • 13 시즌, 14 시즌 타격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들이 뒤에 '신'자를 붙여 부르기 시작했는데... 민병神이 되어버려서 부르기 애매하다는 듯. 그래서 '갓민뱅', '민뱅신'으로 부르기도 하고, 추신수 같은 홈런 치는 1번 타자라 하여 '추병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외에도 '민친놈', '민뱅갓' 등등 두산 팬덤에서는 그야말로 신이 내린 1번 타자로 추앙받는 중이다. 워낙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다보니 아시안게임 대표선수 후보로도 자주 거론되었다. 그리고 진짜로 뽑혀 나가서 대활약.

  • 2017년 팬들을 뒷목잡고 쓰러지게 만드는 병살을 치기 시작해 민메로, 민성흔이라는 별명이 생긴 적이 있다.

  • NC 팬들에게는 민류탄이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에릭 해커에게 빈볼을 던진 마산구장 공 투척 사건의 진범으로 2014년 이후 주적 취급받았고, 이후 좋은 감정이 없는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더더욱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지만 민병헌의 옛 동료였던 양의지가 NC로 이적하고 박민우와도 자주 장난치는 모습이 포착되는 것을 보면 선수들 사이에는 전혀 나쁜 감정이 없어 보인다.

  • 분명 멀쩡하게 생겼는데 선수들과 놀 때나 경기 중에 하도 이상한 짤을 많이 생산하는 지라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그냥 민병신이라 부르기도 한다. 멸칭이라기보다는 애정이 묻어있는 별명이다.


7. 여담[편집]



  • 덕수고등학교 시절 스펀지에서 '양배추를 머리에 쓰면 시원하다'는 주제로 실험을 하였을 때 실험맨으로 등장, 머리에 배추를 쓰고 시원하다고 했던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 방송을 본 아내의 추천으로 인해 양배추를 머리에 쓰다가 투구 동작 중 모자가 벗겨지며 양배추가 드러난 것이 박명환의 박배추 사건.
파일:attachment/민병헌/minbaechoo.jpg

  • 고등학교 2학년 때, 당시 다니던 학교에서 개인훈련을 하던 이승엽에게 찍혔다고 한다. 물론 좋은 쪽으로. #


  • 2009년 무렵 폐쇄몰 형태의 민뱅49라는 이름의 쇼핑몰을 연 적이 있다. 당시 두산 팬들에게는 충격과 공포, 지금은 흑역사로 취급되는 분위기다. 물론 금방 폐쇄했다.
파일:attachment/민병헌/minbang49.jpg
파일:attachment/민병헌/minbang492.jpg

  • 비더레의 아이돌이다. 웬만하면 부진하는 상황에도 어떻게든 경기 당 1안타 정도는 쳐주기 때문. 단지 안타 생산 능력만 좋아서는 안되는 것이, 2016 시즌 최다안타 순위는 15위(166안타)에 불과하지만 비더레 성공률 만큼은 134경기 중 104경기, 77.6%로 수위권을 다툰다. 오죽하면 별명이 '민더레'일 정도. 이는 기본적으로 잘 치는 것에 더해, 볼넷을 안기다리고 적극적으로 휘두르고 상대 투수 유형을 가리지 않는 성향이 있어야 가능하다.[26]

  • 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서 투구수 122개와 24개의 홈런이라는 역사를 썼다.

  • 다른 선수들과 달리 항상 통 넓은 바지를 입고 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입어와서 오히려 편하다고.

  • 2021년 기준 현재 35세인데 딸이 둘이다. 참고로 첫째 딸의 유전자 파워로 유명하다. 이목구비가 빼다박은 수준.. 증거 딸이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아빠다!" 라 했다는 일화도 있다.

  • 개그맨 최효종은 그의 고종사촌이다. 민병헌의 결혼식 사회를 최효종이 봐주기도 했다. 함께 복무한건 아니지만 둘 다 의경 신분으로 민병헌은 경찰 야구단에서 군복무를 마쳤고, 최효종은 경찰홍보단에서 군복무를 마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 사구에 맞으면 소리를 지르며 가장 적극적으로 아파하는 타자이다.[27] 그러나 이후 험악한 상황으로 이어지거나 이로 인해 투수와 시비 붙은 적이 없다는 점으로 볼 때 그저 순전히 사구에 맞은 것이 아파서 소리 지르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공이 날아오는 중에, 그러니까 공에 맞기도 전에 소리부터 지를 때도 있다.


  • 두산 시절에는 허경민과 만담 콤비였을 정도로 굉장히 친하다. 자세한 내용은 허경민 문서 참조. 롯데 이적 후에도 경기 전 훈련시간에 이야기하는 모습과 개그씬이 카메라에 자주 잡힌다.

  • 롯데 이적 후에는 한동희와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경기 전 밥도 같이 먹고, 개인운동도 같이 다닌다고 한다. 개인운동은 체육관 직원의 인증샷으로 확인사살. 그래서 롯데 팬들은 민병헌이 부진하면 한동희 빨리 1군 올리라는 드립을 치기도 한다.

  • 중학교 1학년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안경숙[28][29] 밑에서 야구에만 집중하며 컸다고 한다. 한번은 야구부 선배들의 구타에 못이겨 동기들이 단체로 숙소를 이탈할 때 민병헌만 혼자 남았는데, 감독이 너는 왜 안나갔냐 물어보니 울면서 "그러면 우리 엄마 쓰러지세요" 라고 했다고... 한편,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들(전주고등학교 1972년 졸업생 모임)이 "병헌이는 야구 계속 시켜야한다"며 꾸준히 돈을 모아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미담.


  • 2021년 1월 22일에 뇌동맥류 수술을 받았다.[30]

  • 14년의 선수생활을 마치고 팬들이 수고했다고 서면역에 지하철 광고 이벤트를 하였다. 광고기간은 11.29~12.28일까지 진행이 되었다. 응원해준 팬들이 있어서 민병헌 본인도 고맙다고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서포트한 팬들도 최고의 팬이라고 생각한다. 관련링크

  • 은퇴 선언 직후였던 2021년 포스트시즌 당시 친정팀 두산의 강승호에게 본인이 쓰던 배트를 빌려줬다고 한다.[31]


8. 관련 문서[편집]



[1] 여흥민씨세보 6권 937쪽에는 3월 15일생으로 기재되어 있다.[2] 조상의 선산은 광주광역시 동구전라남도 화순군 사이 무등산 자락에 있으며, 아버지 민장(閔樟, 1953년 5월 13일~2000년 9월 16일)은 전주고등학교 출신이다.[3] 데뷔 초에 잠깐 중견수로 뛰었었고, 제대한 뒤로 거의 대부분의 경기를 우익수로 출장하다가 2016년 들어 중견수로 나오는 빈도가 크게 늘었다. 2017년에는 주전 우익수로 뛰었으나 2018년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며 주전 중견수로 뛰게 되었다.[4] 박병호와 동일[5] 허니허니 민병허니~ 안~타! 민병헌!×4 초기에는 허니허니 민병허니~ 허니허니 민병헌! 이었다.[6] 저작권 문제로 인해 2017 시즌 중반에 폐기되었다.[7] "허니 허니"라는 사실상 응원가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이전 응원가에서 가사와 율동은 그대로 가지고 왔다.[8] (뱅! 뱅! 뱅! 뱅! 뱅! 뱅! 뱅!!!) 뱅~뱅~뱅~ 롯~데 롯데 롯데 민병헌×4[9] 처음에는 뱅뱅뱅~민병헌 부분을 2번 반복한 뒤 다시 뱅×7로 돌아갔으나, 너무 길어져서인지 시즌 중 변경되었다. 주로 민병헌이 안타를 치고 나갔을 때 사용한다.[10] (최! 강! 롯! 데!) 롯데의 민병헌 오오오 오오오x4. 주로 민병헌이 타석에 섰을 때 사용한다.[11] 하지만 자신은 뇌동맥류 치료를 위해 35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는 다소 슬픈 말이 되고 말았다.[12] 9월 29일 한화전에서 열린 레전드 40인 시상식에 참석한 김동주도 이를 언급했다.[13] 보면 알겠지만 기마 자세를 그대로 쓰는 폼이라 무릎, 허리 건강에 좋은 폼은 아니다. 고질적 허리 통증의 원인일 수도. 2020 시즌 극심한 타격 부진으로 기마 자세에서 약간 일어선 타격폼으로 바꿨다.[14] 벌크업을 하면서 발 자체가 예전보다는 확실히 느려졌다. 물론 절대적으로 봤을 때 느린 건 아니지만 2015년 이후 부상의 영향으로 도루를 자제하게 되었다.[15] 참고로 중견수 자리 공백을 메운 정수빈 또한 풀타임 중견수에 박아놓은 첫 시즌부터 단숨에 리그 탑 수비수로 올라섰고 타격에서도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16] 당시 타 팀 팬들이 "쟤 병역특례 받으려고 미쳐 날뛰는 거냐"는 말까지 할 정도였지만, 앞서 서술해있듯이 이미 경찰청에서 군복무를 마친 상태였다.[17] 사실 제대로 퍼진 6월과 아시안게임+부상 크리를 맞은 10월을 제외하면 의외로 스탯 자체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장타가 꽤 줄어든 것.[18] 자신이 못 치는 날에는 특타를 하지 않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고, 평소에도 훈련을 많이 한다고 한다.[19] 오버 트레이닝, 타격폼[20] 무턱대고 손을 대자니 허리부상 특유의 긴 재활기간이 문제다.[21] 그러나 2016 시즌에는 기존 중견수이던 정수빈이 타격 부진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메꾼 박건우, 김재환은 1군 중견수 경력이 없기에 중견수로 상당히 많이 출장했다. 그리고 가을야구가 확정된 시즌 후반에는 코치진이 박건우를 중견수로 박아 굴렸고, 다행히 박건우도 성공적으로 정착해서 둘을 중견수-우익수 포지션에 돌려가며 쓸 수 있게 되었다. 김재환은 당시 좌익수 전향 1년차였고, 박건우는 2군에서 중견수로 뛰면서 가망성을 보여준 적은 있기 때문에 이렇게 결정한 듯하다. 중견수가 대놓고 많이 뛰어야 하는 포지션이라 보기보다 체력 소모가 크고 몸에 부담도 많이 가는데, 박건우도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있기 때문에 둘 다 한 시즌 내내 중견수로 뛰는 건 무리가 있어서 향후 둘을 돌려가며 기용하게 된다.[22] 다만 민병헌 본인은 수비만 놓고보면 중견수 수비를 가장 편하게 생각했다고 한다.[23] 최훈이 카툰에서 민병헌의 상징물로 꿀단지를 쓴다.[24] 어렸을 때부터 버릇이라는데, 요즈음엔 자기 딸의 귀를 그런 식으로 만지고 있다고 한다.[25] 여담으로, 민병헌-정수빈은 원정 룸메이트를 해온 기간이 꽤 길다. 그만큼 정수빈은 민병헌에게 귀를 제일 많이 희생한 장본인으로, 2016 시즌 후 군입대를 할 때 팬들이 "수빈이 갈 때 귀는 놓고 가라"는 드립까지 쳤을 정도였으니... 실제로 구글 이미지검색에 민병헌 정수빈이라고 치면 민병헌이 정수빈 귀를 잡고 있는 사진이 어마어마하게 뜬다.[26] 주전 초기엔 좌상신-우상바 기질이 있었는데 극복하는 데 성공했고, 지금은 좌완-우완-언더 상대타율이 전부 3할이 넘는다. 발까지 빠르기 때문에 내야안타도 기대할 수 있으며 당시의 두산 타자들 중 밸런스가 제일 좋은 축이다.[27] TV로 시청할 경우 '악!'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 지른다.[28] 다음은 이하 출처 사진이다. 파일:민병헌 일가 족보 1.png파일:민병헌 일가 족보 2.png[29] 족보에 오류가 있는데, 민병헌의 아버지는 1999년이 아닌 2000년 음력 8월 19일(양력 2000년 9월 16일)에 돌아가셨다.#[30] 2020 시즌에 부진했던 이유가 이 지병 때문인 듯 하다.[31] 여담으로 민병헌의 배트를 빌려 쓴 강승호는 이 포스트시즌에 쾌조의 타격감을 보여주며 두산의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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