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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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POTV 로고.svg[[파일:SPOTV 로고 화이트.svg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svg[[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중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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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colbgcolor=#000000><width=10%> 캐스터 ||<width=10%> 김민수 ||<width=10%> 최두영 ||<width=10%> 조주영 ||<width=10%> 이승현 ||<width=10%> 김민준 ||<width=10%> 정세현 ||
|| 해설자 || 민훈기 || 양상문 || 이대형 || 이성우 || 윤석민 ||



양상문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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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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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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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1c24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1번}}}
이문한
(1984)

양상문
(1985~1986)


이문한
(1987~1988)
{{{#ff9933 [[청보 핀토스|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37번}}}
오문현
(1985)

양상문
(1987~1988)


홍문종
(1989)
{{{#ff9933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13번}}}
권두조
(1984~1988)

양상문
(1989~1993)


신상윤
(1996~1998)
{{{#000000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9번}}}
결번

양상문
(1994~1997)


윤학길
(1999~2001)
{{{#000000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3번}}}
결번

양상문
(1999~2001)


성준
(2007~2009)
{{{#fff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73번}}}
김용달
(1997~1999)

양상문
(2002~2003)


양영재
(2005)
{{{#fff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9번}}}
윤학길
(1999~2001)

양상문
(2004~2005)


결번
{{{#fff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79번}}}
김은철

양상문
(2007~2008)


다카하시
(2009~2011)
{{{#fff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9번}}}
결번

양상문
(2009~2010)


윤학길
(2011~2012)
{{{#fff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79번}}}
강상수
(2012~2014.5.10.)

양상문
(2014.5.11.~2017)


황병일
(2018~2023)
{{{#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9번}}}
손상대
(2015~2018)

양상문
(2019)


오태근
(2020)




대한민국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 No. [[감독#s-2|

]]
파일:SPOTV 로고 화이트.svg 해설위원
양상문
楊相汶 | Yang Sangmoon

출생
1961년 5월 8일[조기입학][1](62세)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
(現 부산광역시 남구)[2]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부산대연초 - 부산동성중 - 부산고[3] - 고려대 (학사, 석사)[4][5]
신체
175cm, 82kg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3년 1차 지명 (롯데)
1985년 1차 지명 (롯데)
소속팀
한국화장품 야구단 (1983~1984)
롯데 자이언츠 (1985~1986)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1987~1993)
지도자
롯데 자이언츠 1군 투수코치 (1994~1997, 1999~2001)[6]
롯데 자이언츠 2군 투수코치 (2001)[7]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02~2003)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04~2005)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07~2008)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2009)
롯데 자이언츠 1군 투수코치 (2010)
SK 와이번스 투수 인스트럭터 (2011)
LG 트윈스 감독 (2014~2017)[8]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19)[9]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1999 / 2006 / 2009)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2013)
대한민국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23~)
프런트
LG 트윈스 단장 (2018)
경력
KBO 기술위원 (2012)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 (2014 / 2022)
해설위원
MBC ESPN 야구 해설위원 (2006)
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1~2014)
SPOTV 야구 해설위원 (2021~)
병역
예술체육요원[10]
종교
불교(대한불교 천태종)
1. 개요
2. 선수 경력
2.1. 부산고 - 고려대 - 한국화장품 - 롯데
2.2.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
4. 프런트 경력
4.1. LG 트윈스 단장
4.1.1. 황금세대 등장의 숨은 공신
4.1.2. 2018년
6. 여담 및 기타
7. 연도별 주요 성적
7.1. 시즌 성적
7.2. 완투, 완봉 기록
7.3. 감독 시절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現 대한민국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투수.

선수로는 한국화장품, 롯데 자이언츠,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에서 뛰었다.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 입단하여 2년간 활약한 후 이를 바탕으로 1985년, 프로 지명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롯데에서 2년 동안 활약한 후 청보 핀토스로 트레이드되어 청보(1987)와 그 후신인 태평양 돌핀스(1988~1993)에서 7년간 활약하여 태평양 돌핀스의 간판 선수가 되었다.

은퇴 후에는 롯데 자이언츠LG 트윈스에서 투수코치로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2004~2005년 당시 리그 최연소 1군 감독이라는 타이틀로 롯데에서 두 시즌 맡은 적도 있었고, 2014년[11]~2017년까지 LG 감독으로 지도자 커리어를 쌓았다. 2018년에는 LG 트윈스 단장으로 지냈고, 2019년에는 동년 여름까지만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맡았다.

중간에 현장에서 물러나 있을 때는 MBC SPORTS+에서 프로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2021년 부터 현재까지 SPOTV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 선수 경력[편집]



2.1. 부산고 - 고려대 - 한국화장품 - 롯데[편집]



부산 출신의 안경잡이 에이스라는 것 때문에 최동원의 후계자로 기대를 받았다. "한국야구사"에서는 1977년을 부산고등학교의 해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주역이 바로 양상문. 1977년 대통령배 준우승[12]을 이끌면서 이름을 알린 양상문은 1978년 정부 방침으로 출전 제한이 걸려 3개 대회만 나가게 된 상황에서 부산고가 출전한 대통령배, 청룡기, 화랑대기에서 모두 우승을 이끌면서 부산 지역 야구 팬들에게 화려한 시절을 선사했다.

화려했던 고교 시절 성적과 명성을 바탕으로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려대 1학년 시절에도 최동원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는 등 크게 두각을 나타내면서 빼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부상을 당하여 2학년을 거의 통으로 쉬었다. 3학년 때 복귀했으나, 졸업반인 4학년 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1983년 실업리그 한국화장품에서 입단하여 2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실업야구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국가대표로 뽑히지 못했다.

1985년 1차 지명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데뷔 시즌 첫 출발은 상당히 좋았다. 처음에는 구원으로 기용되었는데 승운도 따라주면서 4월까지 2승 무패 4세이브라는 빼어난 성적을 거두었고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었다. 이후 선발로 전환되어 전반기에 4승 3패를 거두고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하지만 후반기에는 페이스가 떨어지며 전반기에 비해 신통치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이듬해인 1986시즌에는 구단 실세였던 박종환 전무에게 찍혀 많이 출장하지 못하며 단 1승에 그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시즌이 끝난 후 임호균 등과 함께 청보 핀토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파일:attachment/yangsangmoon2.jpg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롯데 자이언츠 선수 시절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롯데 자이언츠 선수 시절 투구폼


2.2.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편집]



파일:external/image.sportsseoul.com/l_2014051301000642100037871.jpg

파일:태평양 돌핀스 엠블럼(1988~1993).png 태평양 돌핀스 선수 시절

1986시즌이 끝나고 롯데와 청보간의 다대다 트레이드에 의해 청보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트레이드된 선수는 임호균, 양상문, 배경환, 이진우, 김진근(이상 롯데), 정구선, 정성만, 우경하(이상 청보)였다. 트레이드 핵심은 롯데의 '삼미 시절 활약했던 임호균 + 양상문'과 청보에서 가장 날렸던 2루수 정구선의 트레이드였다. 전반적으로는 청보가 좀 더 득을 많이 본 트레이드로 기록된다.

이적 첫 해인 1987년 청보에서 12승 13패 ERA 3.10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커리어와 팀내에서 갖는 상징성 등으로 명목상 임호균이 청보의 에이스였으나, 성적상으로는 양상문이 임호균보다 나은 활약을 보였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태평양그룹이 청보 구단을 인수하면서 태평양 돌핀스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된다. 임호균의 급격한 노쇠화로 명실상부한 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으면서 9승 12패 ERA 3.83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파일:external/suxmedia.com/1405671511.jpg

파일:태평양 돌핀스 엠블럼(1988~1993).png 태평양 돌핀스 선수 시절, 김성근 감독과 오대산 훈련

앞에서 두번째, 즉 김성근 바로 뒤가 양상문.[13]

1989년 김성근이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이해에 소위 태평양 3인방으로 불리는 신인 정명원, 최창호, 박정현이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양상문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래도 선발진의 한축으로 활약해서 1989년과 1990년 160이닝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과 8승 11승을 올린다.

이후 1993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기까지 4시즌간 팀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제 역할을 했으나, 팀의 인기가 워낙 저조한데다가 3인방에 가려 별로 제대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심지어 은퇴 시즌에도 4완투나 했다. 부상이 있었는지 꽤 이르게 은퇴한 편.

투수로서의 능력만 본다면 꽤 쓸 만한 기교파였으나, 팀이 부진의 절정을 달린 청보와 태평양이다 보니 까먹은 승수가 많아 통산 기록은 63승 79패 13세이브 40완투(10완봉) 평균자책 3.59에 불과하다.

부산 출신으로 롯데에서 데뷔를 했지만 프로 시절 커리어 대부분을 인천 연고팀인 청보-태평양에서 보냈고, 청보와 태평양의 역사에서도 한 시기를 대표할만한 선수이자, 암흑기 에이스였던 선수였다. 1987년~1988년 두 시즌 동안은 성적상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고, 3인방이 등장한 이후에도 4시즌간 팀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1990년에는 4완봉승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는 좌완투수 단일시즌 최다 완봉으로 남아 있다. 또 선수층이 얇은 청보-태평양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면서 1987~1988 2년 연속 출장 경기수 2위를 할 정도로 혹사를 했고, 이러한 혹사는 김성근 재임기까지 이어졌다. 김성근 감독이 취임하면서 갑툭튀한 3인방으로 인해 일순간 에이스에서 3~4선발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출장 경기수나 이닝은 1988시즌과 거의 차이 없었다. 다만 3인방이 양상문보다 더한 혹사를 당했을 뿐.

초기에는 팀에서 상징성이 컸던 임호균이 에이스로 대접받았고, 1989시즌부터는 3인방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매스컴의 폭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임호균, 박정현, 정명원, 정민태 등이 짧게 반짝한 후 부침을 겪으며 명멸하는 동안 부상없이 스테디하게 태평양의 마운드를 지킨 이는 양상문이 유일했다. 어찌보면 비인기팀의 에이스였던 불운에다가 그 비인기팀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비운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롯데에서 스테디하게 활약하며 장기적으로 팀에 가장 크게 기여했던 윤학길보다, 한 해 반짝했던 염종석이 훨씬 더 많이 기억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불운한 케이스다.


3.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상문/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상문/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프런트 경력[편집]



4.1. LG 트윈스 단장[편집]


2017 시즌 마지막 날인 개천절, 삼성 라이온즈 왕조 시절 감독이었던 류중일을 후임 감독으로 선임하고, 양상문 감독은 단장으로 보직을 변경한다는 기사가 떴다. 그러나 최종일 경기 시작 전이어서인지 구단의 공식 발표는 아직은 없는 상태. LG는 사직에서 열린 최종전이 끝난 후 류중일 감독과의 3년 계약 및 양상문의 단장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송구홍은 자연스레 단장에서 물러났다.

엘지팬들 사이에서는 송구홍이 물러난 것은 환영하지만 양상문이 단장을 하는 것도 영 믿음이 안 간다는 어정쩡한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다. 세세한 선수기용을 제대로 하거나 건곤일척의 승부를 거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마운드 ERA 1위를 달성하고 팀 평균 연령대를 낮추었듯 큰 그림은 잘 그린다는 옹호의견과, 잠실 거포배제 및 번트/도루 지시를 보면 그 큰 그림도 뭔가 잘못 그리고 있던 감독이었기에 단장이 되어 봐야 나아질 것이 없다는 비판적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롯데 시절 감독에서 짤리고도 로이스터 감독 밑에서 투수코치를 한 것처럼 LG에서도 감독에서 물러나면서도 단장을 하게 되는 독특한 인물이 되었다.

양상문이 단장이 되자마자 벌인 짓은 당시 팀내에서 박용택에 이어 wRC+ 121.2로 팀내 박용택에 이어 2위를 기록했던 정성훈을 비롯해, 손주인, 이병규, 유원상, 백창수를 날려버린 일이었다.

손주인이 스프링캠프에서 부상을 입고난 이후, 시즌 중 기량을 펴지 못했고, 정성훈이 KIA에서 88게임 타율 0.295의 성적을 거둔 이후 은퇴하였지만, 이 겨울에 팀을 떠난 다섯 명의 선수가 시즌 대부분을 1군 엔트리에서 보냈다. 반면 가뜩이나 양상문 감독 재임 말기에 야수진이 약화돼있던 팀에서 그나마 1~2년은 더 쓸 수 있던 선수까지 정리해 버리니 팀은 역대급 DTD 및 두산전 1승 15패를 하고 8위를 하게 되었다.


4.1.1. 황금세대 등장의 숨은 공신[편집]


어찌보면 양상문이 LG에 적을 두며 이룬 최대의 공헌이자 역작. 이 부분은 분명히 재평가받아야 한다.

2018년 9월 10일에 실시된 2019년도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선수들이 빠른 시일내에 1군무대에서 큰 활약을 동시다발적으로 해 나가면서 단장으로써 선수 지명과 리빌딩에 있어 재평가 받고 있다. 양상문이 단장으로 있으면서 딱 한번 했던 신인 드래프트였지만 1차 지명 이정용, 2차 1라운드 이상영, 2차 2라운드 정우영, 2차 3라운드 문보경, 2차 6라운드 구본혁, 여기에 더해 2차 8라운드 임준형[14]까지 무려 6명이 불과 3년만에 1군에서 대활약[15]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황금의 드래프트[16]라고 불러도 될 정도.

게다가 2차 10라운드 한선태는 비선출 출신으로 1군 무대를 밟았고 2군에서 0점대 ERA로 콜업을 기다리고 있으며 2차 5라운드 남호는 함덕주를 데려올 따 트레이드 카드로 시용됐다. 망한 선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성공한 드래프트. 그 이전 신인 드래프트를 거슬러 올라가봐도 한 명이라도 1군에서 활약한 선수가 있으면 성공한 드래프트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LG의 신인드래프트 및 육성은 늘 실패였다. 당장 2015년부터 거슬러 올라가봐도 1차지명 김재성이 2021년에야 처음으로 백업포수로 1군에 올라온 정도[17]. 2016년에는 LG 최고의 성공작 홍창기[18]를 뽑긴 했으나 김대현, 김호은등이 가능성만 보여주고 아직도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2017년에는 마무리 고우석이라는 걸출한 인재가 있었으나 그 외에는 큰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손주영, 오석주등이 이제 겨우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도. 2018년에는 그나마 데뷔 시즌 1군 무대를 밟은 김영준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인물들이 없다. 먼저 뽑은 선배 선수들도 이런 상황인데 2019년의 신인들이 이정도로 활약하는 건 분명히 성공했다고[19]평할 만 하다.

다음 해인 2020년 드래프트도 이민호나 김윤식, 이영빈등 좋은 선수들이 들어와서 LG 드래프트는 2년 연속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단연 최근 10년간 최고의 드래프트는 양상문이 단장으로 있던 2019년 드래프트라고 하겠다. 물론 스카우트 팀의 역량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단장의 허락없이 뽑을수는 없다. 특히 이정용, 정우영, 이상영 등 걸출한 투수들이 많았다는 점은 양상문 단장의 시각이 포함되었을 가능성[20]이 매우 높다.


4.1.2. 2018년[편집]


11월 22일 정성훈을 아무런 미래보장도 없이 방출을 통보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성훈이 완전히 기량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2017 시즌에 wRC+ 121.2를 기록하는 등 아직 팀내 상위권의 공격력을 지닌 타자였기에 LG 팬들은 단체로 멘붕중. 이진영에 이어 아무 대책없이 팀내 레전드를 내친 것을 보고 순페이가 떠오른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21][22]

2차드래프트로 손주인, 백창수, 유원상, 이병규가 이적했다는 소식이 드러났다. 2017년에 되도 않는 리빌딩이랍시고 강승호를 밀어주었더니 2016년에 커리어하이 찍은 주전 2루수를 드랲으로 풀어버린것. 위의 정성훈 소식과 맞물려서 LG팬들은 분노를 넘어서 해탈할 정도이다. 점점 LG의 신금지어로 가고있다. 물론 기회를 줄만큼 줬음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나이만 먹은 이병규을 내보낸 것은 LG 팬덤에서도 수긍할만 했지만, 정성훈과 손주인을 내보낸 것을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작뱅 풀어준 것은 의미가 없다. 급기야 단장 퇴출 시위가 있었고, 직구와 조크볼에서도 를 깠을 정도.

이후론 안익훈, 이형종, 채은성을 키워야 해서 FA 데려오기 힘들다는 언플을 하고 있다. 안익훈이야 96년생이고 24세 이하로 이뤄진 선동렬호 1기에도 뽑혀간 선수지만 채은성, 이형종은 각각 빠른 90, 89년생인데 낼 모레 서른인 이 둘이 과연 안익훈과 같은 유망주 패키지로 묶여야 할 선수들일까? 김현수와 손아섭이 88년생으로 양상문이 유망주 딱지붙여서 애지중지하는 이 둘과 한 살 차이 밖에 안난다. 언플의 제왕답다. 근데 안익훈 빼고 다 터졌다

12월 초 휴대폰 전화번호를 바꿨다. 누군가 양상문의 휴대폰 번호를 입수하자 이를 양상문 반대 측에 퍼트렸고, 온갖 욕설 문자와 전화에 시달린 양상문은 결국 전화번호를 바꿔야 했다.[23]

선수 키운다고 무작정 고참 내치다가(김재현, 이상훈) 팀 암흑기를 열어버린 이순철과 계속 비교가 되고 있다. LG 팬들은 보통 정말 웬만한 일 아니면 저 금지어 이름을 안 꺼내기 때문에 팀과 팬들 사이의 갈등이 보통 깊은 것이 아니다.

그 와중에 허프까지 놓쳤다는 기사가 떴다.기사 FA는 전부 놓치고 베테랑들은 찬밥으로 풀어버리고 잘 던지는 외국인 선수도 다른 팀 보내고.. 이 쯤 되면 단장으로서 뭘 협상한건지 알 수 없을 지경. 현재 양상문이 이끄는 프런트 측은 2017시즌 연봉과 비슷한 금액을 제시했지만 허프가 200만 달러 이상을 요구하며 헥터 노에시급을 요구하였다 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결국 리즈-허프 체제로 가려는 것이 실패하여 버리려고 했던 헨리 소사에게 재계약 콜을 부랴부랴 넣는 상황 + 새 외인을 찾는 상황이 되었고 모든 구단 중 유일하게 외인 계약 성사를 하지 않자 엘지 팬들은 소사에게 차갑게 대해놓고 잘도 계약하겠다며 양상문을 비판하고 있다. 결국 소사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이번엔 지나치게 비싸게 계약했다며 비판받고 있다.

그리고 15일 엠스플에서 LG와 같은 조건으로 일본행? 이라는 기사를 통해 실제 허프와 계약 협상 테이블을 차린 일본 구단 스카우트가 귀띔해 준 내용으로는 LG구단이 제안한 금액과 일본 구단이 제안한 금액이 거의 같은 금액이었다는 말과 허프도 한국 생활에 만족하며 잔류를 하고 싶어했다는 말에 가뜩이나 이번 겨울 양상문의 행동에 불만이 엄청 쌓인 LG팬 일부는 이 기사를 보고 사실이라면 양상문이 엄청 일을 못 하는 것이라며 비난했고 신중론은 어쩌면 금액은 똑같지만 보장금액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라는 반응도 보였다.

4일 후 19일 김현수를 우여곡절 끝에 4년 115억원(계약금 65억, 연봉 50억)에 영입했다. 이로서 정성훈 방출 등으로 그를 보는 눈이 비우호적이었던 LG 팬덤의 마음을 돌릴 계기가 마련되었다.
당시 LG행으로 점쳐졌던 후보는 손아섭과 황재균이었다. 손아섭의 경우 사인하기 직전까지 갔으나 결국은 영입이 무산된 상황에서 영입할만 한 선수가 김현수이긴 했으나 김현수의 전 소속팀인 두산은 자금이 풍족지 않았고 타팀들의 경우도 페이롤이 바닥난 상황에서 김현수의 몸값을 감당할 곳은 LG밖에 없었던 상황임을 감안해 볼 때, 그만한 예산을 따냈다는 것은 단장으로서의 역할을 잘했다고는 볼수 있지만, 영입 경쟁을 뚫고 협상 능력으로 영입을 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현수의 영입은 LG가 기대했던 타격을 보여주는 것 뿐만 아니라 김현수가 리더십을 발휘해 선수단의 체질을 바꾸고 채은성과 유강남 등 야수들이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성공한 영입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2018시즌 새로운 외국인 선수 영입을 타일러 윌슨, 아도니스 가르시아로 마무리 지으며 깔끔한 일처리를 보여주면서 스토브리그 한정이지만 논란을 가라앉히는데 성공했다. 적어도 전임자 송구홍이 운영팀장과 단장으로써 4년이나 외국인 스카웃과 FA 영입을 망친 것을 생각해본다면, 양상문의 일처리는 송구홍과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깔끔하게 처리됐다는 평. 더불어 앞서 노장들의 정리와 정성훈 방출건도 깊이 들여다보면 여러가지 측면에서 납득이 간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는데, 2차 드래프트로 이적한 손주인, 이병규와 방출된 정성훈은 새팀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

그러나 2018년 5월 6일 현재 엘지의 2루수 쪽은 손주인을 대안없이 내보낸 결과 강승호, 박지규의 1할대 타율과 매경기 실책으로 인해 8연패에 이르렀다. 4월에 이뤄놓은 연승을 다 까먹고 말았다.

5월 중순에 들어서도 엘지는 팀전력이 심각하게 약화된 모습을 보이며 온갖 팀에 두들겨맞고 있다. 30년 내내 육성에 답이 없던 팀을 젊은 선수 키우겠다고 그나마 사온 선수들도 다 내보내니 팀이 될 리가 있나.

5월 24일 기준으로 2016년 밀어주던 정주현이 안정적으로 2루에서 손주인을 완벽히 대체하며 공백을 지워버렸고 양아들로 입적된 양은성은 사실 그 양이 양상문이 아니라 양준혁이라는 말을 들으며 LG타선을 이형종, 김현수와 함께 이끌며 자신을 폄하하던 LG팬들에게 무력시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채은성은 KBO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성적으로 타율 11위, 최다안타 4위, 득점 9위, WAR 7위, 타점은 이대호에 이은 공동 2위를 기록하며 김현수에게 묻혔지만 KBO를 폭격하고 있다. 팀내에서는 모든 타격지표가 김현수와 함께 선두권을 달릴정도. 정주현도 비록 지표는 적지만 안정적인 수비와 더불어 LG팬들이 강승호에게 기대하던 타격쇼마저 보여주며 3할 1푼의 고타율을 기록 중이다.

단장으로서 실수는 지금까지는 아도니스 가르시아. 4월에 드러눕더니 월드컵 다 보고 올 기세로 먹튀짓을 실시 중이다. SNS 관종짓까지 더해 팬들의 분노를 끌어올리는 것은 덤. 엘지에서 타자 용병이 이런 적은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양상문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주목이 모이고 있다. 그러나 결국 복귀 이후에도 실책남발을 하다가 또 허벅지가 터진 놈을 교체하지 않고 지켜보겠다고 발표하면서 양구홍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여름에 들어서면서 방화신기를 재탄생시킨 강상수의 억제기 역할을 했다는 것에서 은근한 재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류중일, 류지현 감독 체제에서도 후반기 DTD, 두산전 열세, 포스트시즌 첫 라운드 광탈 등 영 신통찮은 결과들이 나오자 양상문의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재평가되었다. 타격코치로 10년 팀킬 중이던 서용빈을 데리고서도 플옵에 2번 갔기 때문. 거기에 양상문이 있던 시즌에는 김현수도 없었고 외국인 타자도 16년 전반기 히메네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었다.

10월 19일 성적 부진 책임을 이유로 사퇴했다. 이후 신임 단장에는 LG 트윈스 투수 코치, 해설위원 경력이 있던 차명석이 부임한다.[24]

10월 21일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선임된다는 공식 발표가 났다.


5. 해설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상문/해설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여담 및 기타[편집]


  • 선수 시절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석사 출신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두뇌파, 학구적이란 이미지에 비해 실제 지도력은 너무나 형편없다는 혹평을 받으며 학벌로 생명을 이어가는 불사조라고 코치 시절 내내 까였다.

  • 고려대 재학(경영학과 1979학번) 시절,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자는데 혼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점을 높이 사서 구타로 악명높은 최남수 감독이 집합에서 양상문만 열외시켰을 정도.

  • 현역 때는 멀미로 인하여 구단 버스를 이용하는 대신 혼자서 철도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다음 경기 선발투수의 경우 배려 차원에서 전날 따로 이동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건 선수 보호를 중시하는 기조가 강조된 최근에야 생긴 문화다. 더구나 고속철도도 없이 새마을호가 유일한 특급열차였던 당시의 열악한 철도환경을 생각하면 흠좀무.

  • 태평양 돌핀스 시절에는 당시 KBS 일요일 오전에 방송된 인기 프로그램 열전! 달리는 일요일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온갖 관문을 통과하고 최종 관문인 마법의 다리까지 도전했지만 다리 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면서 열전 용사에 오르는 데 실패하였다. 운동 선수로서 열전! 달리는 일요일에 출연하여 최종 관문까지 도전한 두 명 중 하나.[25]

  • 태평양 돌핀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성근 감독은 양상문을 평소에 높게 평가한다. 김성근의 책 중 하나인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를 보면 양상문을 똑똑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기도 하며 양상문을 믿으며 제대로 된 리더로 키우고 싶었다는 말까지 한다.

  • 감독, 단장으로서의 행보는 성적을 내는 것보다는 리빌딩에 능한 편이다.[26] 다만 이로 인하여 팬들에게는 저평가를 받는 경우도 허다한 편. 롯데의 비밀번호를 끊는 기반을 다졌고, LG에서도 김기태 감독이 떠난 팀을 일으켜 세운 사령관이 되었지만, 2015 시즌에 LG가 환승역 없는[27] 9호선을 타는 신세가 되자 1년만에 (나쁜 의미로) 재평가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2016년에는 젊은 선수들 기용으로 이래저래 말이 많았지만 결국 리빌딩을 하면서도 성적까지 얻어낸 기적의 시즌을 창출하면서 4위로 LG의 가을야구 진출을 만들어냈었다.

  • 이래저래 욕 많이 먹은 지도자였지만 롯데에 대한 애정만큼은 확실했다. 롯빠아재로 유명한 송승준 이전에 성공한 롯빠라고 할 수 있는 인물로 2011년 해설위원으로 컴백했을때 롯데팬들의 반응은 "이제 마이크 잡았다고 과거 이야기하면서 롯데 무진장 까겠군." 이라며 견제했지만 오히려 해설내용은 친 롯데. 그 때문에 롯데팬들은 타팀 출신의 마음에 안 드는 스태프가 있을 경우 양상문은 롯데를 사랑하기라도 했지라며 깐다. 게다가 2012년 시즌 예상에서 롯데를 4강 후보로 꼽았던 몇 안되는 인물이며 유일하게 4강 진출팀을 모두 맞췄다. 그래서 의리의 양상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13년 시즌 예상에서도 유일하게(!) 롯데를 4강 후보로 꼽았다.[28] 다만 이 예상은 이번에는 빗나갔다.

  • 2014 시즌 후 과열된 FA 시장의 거품 논란을 잠재우려면 FA 선수를 공개입찰을 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비웃음을 들었다. 이는 FA 제도 목적이 뭔지 모르는 발언인데 FA 자격을 얻은 선수가 자유롭게 팀을 골라 선택할 자격을 주지 않으면 FA의 근본적인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지극히 선수에게 불리한 방법이다. 자유계약선수(Free Agent)가 아니라 자유경매(Free Auction)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양상문 감독과 비슷한 생각으로 실행했다가 비웃음을 들으며 꼬리를 만 경우가 있는데, KESPA가 예전 E-스포츠에서 이런 식의 FA를 했다가 질타만 들었다.

파일:external/photo-media.daum-img.net/20110504161643931.jpg

  • 2014 시즌 후 FA를 선언한 차일목이 2년 4억 5천만 원에 계약하자 44년 4억에 계약해도 안 데려올 거라고 고유라 기자에게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다른 팀 선수[29]에게 쓸데없이 비난을 했다는 평이다. 물론 차일목의 기량, FA 계약 후 발언 등으로 차일목이 어그로를 끌었지만 굳이 저런 발언을 할 필요가 있냐는 비판이 있다.


  • 김경문 감독과 막역하다. 김경문을 따라 공주고에 진학할 뻔 했다. 결국 김경문이 먼저 있던(경영학과 78학번)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입학 동기로는 양승호(사회교육학과 79학번), 대학에서 같이 뛰었던 후배들은 김광림(무역학과 80학번), 정삼흠(경제학과 81학번), 선동열(경영학과 81학번), 박노준(경영학과 82학번), 이효봉(82학번), 민경삼(82학번)이 있다. 대학시절 활약상 롯데 감독으로 선임 되었을 때에도 당시 두산 코치였던 김경문을 수석코치로 영입하려 했었고, 또 김경문 본인도 롯데로 이적할 결심을 굳혔으나, 며칠 후 김경문도 두산의 감독으로 승격돼서 김경문의 롯데 이적이 무산 되었던 비화가 있다.

  • 염경엽 감독과도 사이가 좋은 편. 웹에서 검색하면 대개 서로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30]이 눈에 띄는데, 대학(고려대) 선후배 사이에다 태평양 선후배 사이인 것이 크다 .2016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 후, 염경엽 감독이 갑작스런 사퇴를 발표했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가 끝난 후, 직접 염 감독에게 찾아가 포옹하며 위로해 주는 모습이 팬들에게 포착되었다.

  • 부산고-고려대 계열의 최고참 급이다. 후배로는 박동희(야구선수), 한영준, 마해영, 강상수, 손민한, 진갑용, 조원우, 박계원, 정근우, 김수형[31], 홍재호, 박성호 등이 있다. 강상수와는 꽤 오랜기간 감독-코치로 호흡을 맞췄고, 조원우의 후임으로 2019시즌부터 롯데 감독이 되었다.

  • 선수들과의 관계는 대체적으로 무난한 편. 2013년 스프링캠프에서 이동현 선수가 양상문 당시 MBC+ 해설위원의 패션 등을 두고 놀리면서 "아저씨, 전화하면 씹지 말고 좀 받으세요"라고 디스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는 뒤집어서 말하자면 그만큼 선수들과 관계가 좋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2016년 포스트시즌에서 덕아웃에 붙어있는 선수 명단에 누군가가 "양상문 짱"이라고 낙서한 모습이 캡쳐되었는데, 팬들은 양석환이나 임찬규 아니냐며 의심(?)을 하는 중.[32] 2016년에 LG 트윈스의 덕아웃 분위기가 바뀐데에는 주장 류제국의 공이 컸지만, 그만큼 양상문 감독이 선수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LG 감독 시절에, 롯데 (출신) 선수들과도 친한 모습을 보였다. 역시나 가장 친분있는 모습을 보인 건 친목질의 대가. 정수근 역시 평이 갈리는 자이언츠 1기 시절의 양상문을 좋게 평가하는 듯.[33]


  • 의외로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인데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이다.

  • 은퇴한 전직 투수 이동현에게 해설위원 데뷔를 권유한 사람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동현과 양상문의 친분이 두터운 편인데 이동현이 양상문을 향한 영상편지에서 "아저씨(...) 문자 좀 씹지 마세요"라고 할 정도. 양상문은 이동현의 결혼식 주례까지 해주기로 약속했으나 하필 이동현의 결혼식날 아침 양상문이 부친상을 당하는 바람에 남상건 LG스포츠 사장이 대신 주례를 했다고 한다.

  • 2019년 롯데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농부의 삶을 살아가는 듯 하다. 스포츠조선 박재호 야구부장이 전한 바에 따르면 감독 사임 후 귀농했다고 한다. 다만 아주 지방으로 이주한 것은 아니고 서울특별시와 지방을 오가며 생활한다고 한다.

  • 감독 시절일 때는 다른 구단 감독들과 다르게 팬 서비스는 좋았다고 한다. 사진도 흔쾌히 찍어준다고 한다.

  • 고려대학교 79학번이라 감독/코치 시절 대부분을 79번을 사용했다고 한다.

  • 감독으로 벤치클리어링을 2번이나 한 이례적인 기록을 남겼다. 첫 번째는 2014년 LG 감독시절 두산의 유네스키 마야가 벤치에 욕설을 했을 때 마운드로 올라갔으며, 두 번째는 2019년 롯데 감독시절 두산의 김태형 감독이 구승민에게 욕설을 했다는 이유였다.

  • 1990년대초에 발간된 주간야구 잡지에서 어느 학생 야구선수가 당시 현역투수였던 양상문에게 체인지업을 던지는 요령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자 '중고등학교 단계에서는 체인지업 연마 대신 구속 향상에 더 중점을 두고 훈련할 것'이라고 조언을 한 바 있다.

  • 환갑을 지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걸그룹에 대해 빠삭하다.


  • 2014년 LG 감독 부임 이후 최하위 나락에서 4위까지 극적으로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제갈양상문,'양갈량', '잠실 부처,' '양상타치,' '갓상치'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외에도 '입동님'이라는 별명도 있다. 확실히 전임 김기태 감독에 비해서는 말이 많은 편이다. 다만 선수들 개별에 대한 인터뷰를 줄이고, 감독에게 인터뷰를 몰리게 했다는 말도 있어서 평가는 유보됐다. 최근엔 인기가 높아져 알파고에 빗대어 '양파고'라고 불리고 있다. 어느 감독이든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평이 요동치는 건 어쩔 수 없듯이, 잘하면 '갓상문,' '갓상치,' '양파고,' 못하면 '돌상문,' '양상치,' '명장병자,' '양상문재앙'등으로 불린다.[34]

  • 롯데와 LG 시절 코칭스태프 시절이나 LG 단장 시절 스타일 모두 롯데나 LG 팬들에게 있어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감독으로서는 롯데 시절 4년 연속 꼴지를 하던 팀을 2005년 5위의 성적으로 마감하며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LG 시절 2014년에 4위를 기록하며 가을야구에 성공하긴 하였으나 그 특유의 세대교체 형식이 자연스레 자리를 꿰차는 것이 아닌 베테랑 배척에 가까운 형식의 세대교체라 프렌차이즈 스타라는 스타 시스템에 열광하는 한국 야빠들 사이에서는 평이 좋지 않은 편에 속하며, 이로 인해 호불호가 유독 많이 갈리는 감독이다.[35]


  • 단장 시절에 불펜 투수가 전체적으로 무너져 불펜 투수가 급하다는 현장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무리하게 트레이드를 시도하게 되면서 투수 문광은을 받고 내야수 강승호를 내주었다. 그 결과 문광은은 별 활약을 못하고 강승호는 2018년 SK 우승의 쏠쏠한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다음 해에 진해수와 문광은이 터지고 강승호는 음주운전으로 임의탈퇴 처리되면서 다시 좋은 의미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36]

  • 공교롭게도 김성근 감독의 인연으로 인해 LG 트윈스 후임 감독으로 한 때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인연이 있는 류중일 감독이 부임하면서 잘하는 듯 하나 추락도 하면서 재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팀의 구성원에 따라 등락이 엄청 컸던 감독. 영원한 고향이자 집 같은 롯데 자이언츠 또한 코치 스타일이 나은 허문회 감독이 잘하고 있지만 승부처를 놓치는 조원우의 모양새를 보이면서 안쓰러움과 운이 따르지 않으면서 재평가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성근 감독과의 인연으로 인해 인스트럭터를 맡았던 제2의 고향 같은 인천 연고팀인 SK 와이번스 감독 후보군에도 있었는데 같은 모교 출신의 선배인 김용희 감독과 후배인 염경엽 감독의 추락과 함께 비교평가를 받고 있다.

  • 스포티비 해설을 하며, 준비되지 않은 해설과 편파적인 해설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선수의 입스를 확인하기 위해 번트를 다시 대라느니, 배트가 투수에게 날라가는데 아주 올바른 타격이라는 둥 본인이 해설인지 감독인지 정신못차리는 해설로 해설자로서 퇴진을 요구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고, 심지어 음소거로 시청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7.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7.1. 시즌 성적[편집]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5
롯데
33
101
6
3
4
0.667
3.83
120
7
30
58
57
43
1.436
1986
21
37⅓
1
2
0
0.333
1.93
27
2
14
21
8
8
0.96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7
청보
36
(2위)
209⅓
(3위)
12
13
0
0.480
3.10
188
18
71
84
87
72
1.213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8
태평양
38
(2위)
169⅓
(5위)
9
12
3
0.429
3.83
185
12
56
68
89
72
1.411
1989
35
161⅔
8
11
4
0.421
3.28
131
12
77
91
60
59
1.249
1990
34
162⅓
(5위)
11
9
1
0.550
3.22
151
10
57
68
72
58
1.269
1991
25
123⅓
6
9
1
0.400
3.50
122
6
46
80
54
48
1.354
1992
28
144⅓
7
8
0
0.467
4.55
134
22
78
83
78
73
1.455
1993
22
101
3
12
0
0.200
4.46
110
9
50
46
62
50
1.545
KBO 통산
(9시즌)
272
1209⅔
63
79
13
0.444
3.59
1168
98
479
599
567
483
1.335

7.2. 완투, 완봉 기록[편집]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5년
0완투
1완봉
(9위)
1986년
0완투
0완봉
1987년
13완투
(4위)
3완봉
(9위)
1988년
8완투
(4위)
0완봉
1989년
0완투
0완봉
1990년
6완투
(6위)
4완봉
(9위)
1991년
3완투
1완봉
1992년
1완투
0완봉
1993년
4완투
0완봉
KBO 통산
40완투
10완봉


7.3. 감독 시절[편집]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4
롯데 자이언츠
133
50
72
11
8위
-
2005
126
58
67
1
5위
-
통산
259
108
139
12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4
LG 트윈스
94
52
41
1
4위
4위[37]
2015
144
64
78
2
9위
-
2016
144
71
71
2
4위
4위[38]
2017
144
69
72
3
6위
-
통산
526
256
262
8
­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9
롯데 자이언츠
94
34
58
2
10위[39]

통산
94
34
58
2

총계
879
398
459
22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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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입학] [1] 음력 1961년 3월 24일. 그런데 실제 나이보다 학교를 1년 빨리 입학하는 바람에, 1960년생들과 동기고, 생년월일이 1년이나 차이나는 김용수와도 친구로 지내고, 겨우 20여일 늦게 태어난 이순철은 유급까지 했기에 2년 후배다.[2] 출생 당시엔 직할시 승격 이전이자 자치구가 아닌 일반구였기에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 출신이다.[3] 32회 졸업생이다.[4] 경영학과 1979학번[5]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체육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석사 학위 논문 : 危機狀況의 遂行能力과 不安과의 關係에 관한 硏究(위기상황의 수행능력과 불안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 1987년)[6] ~6월 9일[7] 6월 10일~[8] 5월 11일~[9] ~7월 18일[10] 197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 준우승#[11] 시즌 도중 5월 11일 부터 제 11대 감독으로 부임했다.[12] 결승전에서 1년 선배 김경문공주고와 대결했다. 김경문은 대회 최우수선수상 및 타격상을 수상했다. 공주고는 36년후인 2013년에 대통령배를 다시 품에 안았다.[13] 물론 저 사진은 1990년에 촬영한 광고용 컨셉 사진이었다. 실제로 오대산 극기훈련 당시 김성근은 숙소에 있었고 산악 구보 훈련에는 동행하지 않았다고 한다.[14] 2021 시즌 막판에 첫 선발승을 따냈다. 버리는 게임이 아니라 긴박한 순위쟁탈전 중에 귀중한 1승을 따낸 것.[15] 심지어 정우영은 신인왕[16] 이대호, 이정후 등의 슈퍼스타가 없는 LG답게 미미해보일 수 있으나, 내실 있는 세대가 아닐 수 없다. 1차 지명부터 2차 10라운드까지 11명을 뽑는 중에 6명이 1군, 1명이 1군급, 또 다른 한명이 타 팀 1군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불과 2~3년만에 이루어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 2023년 정규 우승에도 공헌했다.[17] 2차 1라운드 안익훈이 반짝 활약을 하긴 했다.백승현은 투수로 전향했다[18] 2차 3라운드[19] LG 트윈스 프랜차이즈 사상 최고의 드래프트는 당연히 신인 4인방으로 단숨에 우승을 차지한 1994 드래프트이다. 신인들이 1군을 밟는것도 모자라 전반기에만 10승을 찍어낸 괴물 투수(인현배, 다들 알다시피 후반기에는 뭘 못 했다.), 신인왕(유지현), 고졸 20-20(김재현), 3할, 시즌 최다 안타(서용빈)로 활약하며 팀을 우승시켰다. KBO 전체로 봐도 탑을 다툴만한 드래프트.[20] 양상문이 해설위원으로 돌아온 이후 해설을 들어보면 선수 스카웃을 위해 선수들을 많이 보러 다니고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단순히 스카우트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면밀하게 선수들을 직접 챙긴 것.[21] 이에 대한 불만 및 비판을 가진 쪽에서는 노장이 되면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정성훈도 예외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선수를 떠나보낼 때는 떠나보내더라도 저렇게 선수에게 모멸감을 들게 떠나보내면 안 된다는 것이 중론으로 나오고 있다. 더구나 정성훈도 엘지에서 9시즌을 뛰는 동안 FA 자격이 2번 더 주어졌는데 2번 모두 본인의 가치보다 LG 측에 훨씬 싸게 사인해주었다는 이야기도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초반 분위기에 비해 비교적 영입 시장을 차분히 마무리 했지만 선수 대우에 대한 태도 만큼은 아직도 큰 비판거리.[22]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직전 시즌까지 주전 1루수였던 정성훈의 공백과 가르시아의 부상이 겹쳐 김현수가 1루 수비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고, 본인의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무리를 하던 김현수는 결국 부상으로 시즌이 아웃됨과 함께 LG의 순위 또한 나락으로 떨어졌다.[23] LG 트윈스에서도 2010년에 비슷한 일이 일어났으며, 이듬해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한 양승호 전 감독 역시 부임 초반 기대 이하의 성적에 비슷한 일을 겪은 바 있다.[24] 차명석 또한 MBC SPORTS+ 해설위원이였다는 것이 같다.[25] 나머지 한 사람은 농구 선수 한만성으로 허재용산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기아농구단(현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 입단했다. 당시 기아 농구단 선수 전체가 출연할 때 나왔다.[26] 양상문의 지도자 커리어 중 손에 꼽히는 시즌인 2005 롯데나 2016 LG의 경우, 성적도, 리빌딩도 모두 성공했다.[27] 7월 14일 하루 제외.[28] 비슷한 사례로 해설위원을 처음 시작한 2015년부터 매년 한화 이글스를 5강 후보(!!!)로 줄기차게 꼽으며(...) 고향팀 사랑을 뽐냈던 정민철이 있다. 물론 정민철의 예상은 2018년을 빼고는 모두 빗나갔다.[29] 44년 4억이라는 말을 양상문이 언급한 시점은 FA 협상 기간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공식적으로는 무적이긴 했다. 고유라 기자가 LG가 아닌 넥센 히어로즈 담당 기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식적인 인터뷰가 아닌 사석에서 던진 농담일 가능성이 높다.[30] 양상문 감독이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장면도 많이 보인다. 대개 선배에게 후배가 먼저 인사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예의를 갖추는 면이 양상문 감독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31] 04학번, 부산고 시절 장원준박근홍의 뒤를 받치는 우완 사이드암 투수였다.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은퇴했다.[32] 저 둘은 충암고가 아님에도 성격이 충암고 출신들과 비슷하다는 게 팩트인지라...[33] 박명환의 방송인 박명환야구TV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북한을 남한으로 바꾸려던 감독'이었다고 한다. 다만 정수근은 강병철과 매우 사이가 나쁜만큼 어느 정도는 걸러서 들어야 한다.[34] 그리고 아프리카 TV에서 LG 편파를 하고 있는 BJ 캐스터안이 검은 선글라스를 경기장에서 많이 쓴다는 이유로 '까만 안경'이라는 별명도 만들었다.[35] LG 트윈스 구단 공식 캐스터였던 안준모도 운영 관련해선 양상문을 상당히 싫어하는 편. 정수근도 은퇴 후 인터넷 방송을 통해 양상문 감독 시절 썰을 푼적 있었는데 롯데를 북한에서 남한으로 바꾸려 했던 사람이었다고 평가했지만 그거 말고는 썩 좋은 소리는 하지 않았다.[36] 문광은은 2019시즌에서 폭발적으로 잘하고 있다. 고척돔에서 무사 만루에서 막아낸 적이 있다.[37] 준플레이오프에서 NC에게 승리하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넥센에게 패배하여 3위가 아니라 4위[38]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에게 승리하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NC에게 패배하여 3위가 아니라 4위[39] 중도 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