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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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현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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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s20.postimg.org/OB1995.png파일:external/s20.postimg.org/doosan2001.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5
2001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2001 플레이오프 MVP



OB
/
두산 베어스 등번호 3번

이재우
(1991)

안경현
(1992~2008)


최주환
(2009)
{{{#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33번}}}
전병두
(2008.5.5.~2008)

안경현
(2009~2010)


김용섭
(2011)




파일:ahnssam.jpg

안경현
安庚鉉 | An Kyung-Hyun

출생
1970년 2월 13일[1] (54세)
강원도 원주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원주중앙초등학교 (졸업)
원주중학교 (졸업)
원주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 88 / 학사)
신체
182cm, 83kg[2]
포지션
2루수[3], 3루수[4], 1루수[5], 유격수[6]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2년 2차 2라운드 (전체 10번, OB)
소속팀
OB-두산 베어스 (1992~2008)
SK 와이번스 (2009~2010)
프런트
의정부 신한대학교 피닉스 단장 (2018)
해설위원
SBS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1~2021)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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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배우자
김윤정[1]
자녀
딸 안다희[2], 아들 안준[3]
본관
순흥 안씨
응원가
Peter, Paul & Mary - Oh, Rock My Soul[4][5]

1. 개요
3. 해설자 경력
3.1. 2011년
3.2. 2012년~2014년
3.3. 2015년
3.4. 2022년
4. 프런트 경력
5. 기타 경력
7. 기타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협회 회장. 선수 시절 포지션은 내야수.

OB-두산 베어스 출신의 내야수로 팀의 90년대와 00년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선수 중 한 명이다. 주로 2루수와 3루수로 활약하였으며 베어스 팀 역사상 최고의 2루수로 꼽힌다.[7]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한 때 영구결번까지 거론 됐을 정도로 팀 레전드지만 말년에 구단과의 마찰을 겪고 팀을 떠나 SK 와이번스에서 은퇴하였고 이후 해설위원으로 10년 동안 활동하였다.

선수 시절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안샘이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안경현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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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설자 경력[편집]



3.1. 2011년[편집]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1090201000218000014331.jpg
2011년 양준혁과 함께 SBS ESPN의 해설을 맡았다. 선수 인터뷰도 하였다. 봉중근은 아마 안경현과 인터뷰하면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르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

2011년부터 SBS, SBS Sports 해설위원으로 새롭게 시작한 그는 일본 전지훈련으로 김용희, 양준혁 해설위원과 함께 같이 동행하면서 공교롭게도 서로간에 어색할 정도로 김경문 감독과 만났다. 기사

2011년 1학기부터 그의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스포츠 교양과목인 야구를 강사 자격으로 가르쳤는데 우지원의 농구 과목과 함께 경쟁률이 상당히 치열한 강의가 되었다. 2013년 1학기에도 개설되면서 무려 5학기 연속으로 개설될 정도로 인기가 상당한 모양이다.

2011년 6월 1일자 인터뷰도 나왔다. 잡초같던 야구인생을 볼수있다.

이 인터뷰에서 장원진과의 불화설이나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설 등등을 해명하기도 했는데, 그 인터뷰에서도 약간은 좋지 않았던 듯한 뉘앙스가 보이기는 했다. 단체생활에서 늘 마음맞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 어느쪽도 탓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다. 지도자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열망을 강하게 품고 있다.

2011년 9월 9일 롯데 자이언츠SK 와이번스 간의 경기에서 김강민의 슬라이딩을 실드치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되었다.

해설 자체는 선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인지 내용 자체는 무난했지만 2011년에는 말투가 굉장히 웅얼거리며 지루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2년에는 예능감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해설 실력도 늘었다. 목소리가 은근히 강민닮았다....


3.2. 2012년~2014년[편집]


2012년 9월 14일 KIA vs 롯데 더블헤더 2차전에서 기아가 7:8로 뒤지고 있는 2사 상황에서 데뷔 첫 타석을 맞이한 황정립이 올라와 초구부터 호쾌한 스윙을 보여주자 첫 타석에 홈런치는 선수도 있다며 과거 데뷔타석 초구 대타 만루홈런을 때린 송원국을 언급했는데, 황정립이 정말 동점 홈런을 때리는 바람에 자신도 "제가 무슨 말을 한건가요?" 라며 어안이 벙벙해했다.


3.3. 2015년[편집]


2015년 7월 5일 넥센과 두산의 경기에서 고영민의 위험천만한 2루 베이스 블로킹을 보고 분노하셔서 후배 고영민을 신나게 깠다. 국제대회였다면 고영민은 들것에 실려나갔을 거라면서 극딜 자세한 건 고영민 문서 참고.

2015 WBSC 프리미어 12 11월 8일 일본전 경기에서 안경현은 국내 선수에 대한 지나친 옹호의 해설로 비난을 받았는데 그의 해설은 아무리 국제경기지만 객관적으로 해설자의 눈으로 보지 않을 뿐더러 잘하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깎아내리는 행태를 보여주었으며 대표팀의 내부문제와 실력을 생각하지 않고 구장탓, 적응기간 부족 탓 등 외부적인 탓만 하였다. 국가대항전이라 자국민으로서 어느 정도 편파중계는 있을 수 있겠지만 도가 지나칠 정도의 국뽕스러운 해설에 많은 야구팬들의 빈축을 사게 만들었고 많은 비난을 받았다.

다만 긍정 해설도 있었기 때문에 현지에서도 알고 있었다고.. 기사

하지만 일본과의 준결승 전에서 '오타니 제외하면 한국 타선 못 막는다', '오늘 경기는 수준차이가 아니다. 투수 구속이 10km 차이나는 것이다.' , '야구는 오래 이기고 있을 필요 없다. 마지막에 이기면 된다.'와 같은 끝임없이 까이던 긍정적인 발언이 현실이 됨으로써 졸지에 대한민국 최고의 야잘알로 등극했다.

3.4. 2022년[편집]


후술할 논란으로 인해 여론이 계속 악화되면서 결국 SBS Sports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면서 11년간 활동했던 해설위원 자리를 내려놓게 됐다. 안경현의 후임자는 김동수LG 트윈스 코치가 영입되었다.

대신 KBO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되는 퓨처스리그 해설진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스포카도티비 중계 시절 캐스터였던 임용수와 함께 6월 14일 한화 vs NC의 2군경기에 나왔으나 우천취소되었고, 7월 29일 고양 vs 두산 경기의 해설을 진행하였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퓨처스리그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9월 13~14일 강화 고양 vs SSG 경기의 해설을 담당했다.

4. 프런트 경력[편집]


2017년 12월 1일 코리아 드림 리그 소속 독립야구단 의정부 신한대학교 피닉스 초대 단장으로 선임되었다.


5. 기타 경력[편집]


2022년 3월 29일 MBN 예능 빽 투 더 그라운드의 고정멤버로 합류했다.

6. 비판과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안경현/비판과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기타[편집]


  • 별명으론 안쌤, 넘버3 등이 있다. OB 시절에는 구영탄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 1994년 윤동균 감독의 구타에서 비롯된 OB 베어스 항명파동 때 가담한 17명 가운데 마지막까지 두산에 남아있던 선수가 안경현이었으며 결국 2008년을 끝으로 팀을 떠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은퇴두산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장원진은 당시 항명에 참가하지 않고 전주 숙소에 남아있던 잔류파였으며, 김민호김태형 등 당시 현역이었던 선수 가운데 두산에 코치로 남았던 인물은 전부 항명에 참가하지 않은 잔류파들이거나 항명 이전에 팀을 옮기거나 떠난 사람들이다. 두산 프론트와 당시 17인 사이의 오랜 악감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8]
    • 안경현이 떠나기 전까지 팀 내에서 장원진을 따르는 인맥과 안경현을 따르는 인맥 사이의 파벌 갈등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김경문 감독은 선후배간 군기를 강조하는 장원진 쪽을 내심 밀어주었으며 결국 안경현과 그 인맥은 2014년 거의 팀을 떠났다. 안경현 파로 거론되는 선수들은 홍성흔, 나주환, 정원석, 그리고 김동주이다. 김동주는 프랜차이즈 스타로써 워낙 영향력이 확고하기에 도저히 내칠수 없었다고 한다.
    • 하지만 2011년 김경문 감독의 자진사퇴, 2013년 홍성흔FA 복귀(+주장), 2014년 시즌김동주의 쓸쓸한 은퇴, 2017년 안경현의 아들 안준이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는 등으로 파벌설이 잊혀진듯 하다. 따라서 지금은 파벌설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 야구 인프라가 열악한 강원도가 배출한 프로야구 선수 중 가장 유명한 선수였다.

  • 동계 스포츠가 활성화된 강원도 출신이라 그런지 원래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없었고 스케이트부가 있었다고 한다. 스케이트 선수 생활을 했었고,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고 부모님도 선수가 되는 걸 원했다. 그러나 스케이트부 생활 중 학교에 야구부가 생겼고 안경현은 스케이트부 연습이 끝나고 야구부 학생들과 같이 축구를 하며(?!) 놀았다. 그러다 야구부에서 안경현에게 방망이 한 번 쳐보라고 해서 몇 번 하다가 야구에 재미를 붙여 야구부로 전환했다. 처음 시작할때는 외야수를 했었다고 한다. 본인은 초등학교 때 야구부가 안 생겼으면 스케이트 선수 쪽으로 쭉 갔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스케이팅에 대해 어릴 적 꽤 애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길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해 개인적 호기심이나 아쉬움도 있는 듯. 안경현은 이를 밝히며 농담으로 '김연아 선수가 지금 하는 길을 제가 갔을지도 몰라요'[9]라고 했다.

  • KBS 아나운서의 지구촌 뉴스로 첫,재진행중인 앵커로 진행하는 김기만과 얼굴이 닮았다.

  • 긴급구조 119의 1997년 10월 1일 144회 방송분에서 <'넥타이 때문에' -대전서부소방서 산성파출소 편>에 차의 엔징을 확인하던 한 남편이 협착하여 사고를 당한 구조자였던 조청래(대원)의 얼굴이 닮았다.

  • 원주중-원주고 후배이자 두산 베어스 후배이기도 한 함덕주를 상당히 예뻐라 한다.

  • 절친한 친구인 김정준이 김성근 감독의 아들인 덕에 오래 전부터 김성근과 친분이 있던 사이다. 연세대 재학 시절 김정준과 안경현이 밖에서 술 한 잔을 먹고 집에 들어오면 김성근이 특유의 눈빛으로 "안경현이 너 아직도 술 마시고 다니냐?"라고 한 소리를 했다고 한다[10]. 자고 일어나면 김정준의 어머니, 즉 사모님께서 아침을 차려주시고 깨웠는데, 안경현의 말로는 아침 메뉴로는 항상 스팸을 잔뜩 구워주셨다고 밝혔다.

  • 2002시즌 종료 뒤 FA를 통해 LG 트윈스로 이적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당시 LG 감독인 이광환과 잘 해보자며 악수까지 했는데 모종의 이유로 그냥 두산에 눌러 앉았다고.[11][12]


  • 아들인 안준도 야구선수다. 포지션은 1루수. 휘문고등학교 동료인 이정후와는 달리 신인 지명은 받지 못했다. 2016년 12월 28일 열렸던 파주 챌린저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으나 2017년 1월 10일 두산 베어스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아빠와 아들 얼굴이 정말 닮았다.
파일:external/cdn.mydaily.co.kr/201701101203212222_1.jpg


  • 코미디언 김대희를 닮았다...... 아프리카 스포츠TV의 김마메의 프로야구 코믹스 12회에서 직접 언급했다. 심지어 한 식당에서 김대희로 오인한 팬이 몰래 식사값을 내주고 간 적도 있다고...

  • 2019년부터 유튜브를 시작했으며, 정우영 캐스터 등과 함께 '안경현의 넘버쓰리'를 진행하고 있다. #

  • 나이가 들면서 앞머리 가운데 흰머리도 생겼지만 워낙 풍성해서 탈모 걱정은 없어보인다.

  • 6개월 방위로 군 복무를 마쳤지만, 병역 이행으로 인한 공백기가 없이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 박명환야구TV에서 정수근이 '안다이'라고 지칭했다.[13] 일본 전지훈련 때 '다이조부(괜찮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라고 한다. 딸 이름(다희)에서 따왔다는 말도 있다. 포스트시즌에서 박명환과 함께 최우수선수에 선정됐고 상금을 나누라는 김인식 감독의 지시가 있었으나 아직까지 박명환은 상금을 나눠 갖지 못했다고 한다.

  • 2021년 10월 19일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강민호페르난데스의 스윙에 머리를 맞았지만 도리어 "강민호가 피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또한 이 경기에서 페르난데스가 사구를 맞았을 때도 "포스트시즌 경쟁 하는데 필요한 선수가 다치면 안된다"는 발언을 하며, "호미페는 가을야구의 핵심 선수이고, 강민호는 필요 없는 선수인가?"하는 논란을 야기시켰다. 두산은 아직도 NC SSG 키움과 5강권에 경쟁 중인 팀이고, 삼성은 6년만의 PS 진출을 확정한 팀이다. 거기다가 강민호는 포스트시즌 경기는 어느정도 뛰어봤지만 한국시리즈 경험은 없다. 안경현이 베어스 출신이고 마음을 더 쓸 수밖에 없다고 해도, 해설위원의 입장에서 저런 발언을 서슴없이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여담으로 나무위키에서도 악성 야구팬들에 의해 안경현 항목이 이상하게 수정이 된 바가 잠깐 있었다.

  • 2022년부터 야구예능 '빽 투 더 그라운드' 초기멤버로 합류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아들 안준 역시 청춘야구단: 아직은 낫아웃에 합류하면서 부자가 야구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다.

  • 2022년 8월 스톡킹의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라스의 단골 게스트인 서현철에 비견되는 입담을 자랑하면서 엄청나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로 인해 야구 팬들 사이에서 이렇게 말 잘 하는 줄 몰랐다면서 엄청 웃기다고 재평가받기에 이르렀다.

  • 같은 팀 후배 심정수가 엄청난 웨이트 괴물이라 은근히 묻힌 특징으로, 안경현 역시 현역 시절 웨이트 트레이닝을 아주 열심히 하던 선수였다. 그의 전성기인 2000년대 초반, 웨이트에 눈을 뜨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인터뷰와 기사가 여러 개 나왔다.[14]

8.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7 20:31:36에 나무위키 안경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빠른생일 적용으로 1969년생들과 함께 1976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2] 네이버 프로필 기준, 현역시절 기준[3] 팀 최고 유망주였던 김동주가 2년차인 99시즌부터 본격적으로 3루수로 기용되며, 본래 유격수도 가능하던 안경현이 2루수로 이동하게 된다. 두산으로 팀명을 변경한 후에 유입된 팬들은 안경현을 주로 2루수로 기억하며, 결과적으로도 가장 많은 경기를 2루수로 출전했고,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포지션이다.(99~05시즌)[4] 데뷔 초부터 98시즌까지 주로 출전했던 포지션으로, 이 당시에는 이명수가 2루수를 봤기 때문에 안경현은 3루수로 출장하게 되었다. 2루 전향 이후에도 가끔씩 3루수로 출장했다. 특히 01~02시즌의 경우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김동주를 지명타자로 돌리고, 안경현을 3루수로 투입하기도 했다.[5] 06시즌부터 주로 1루수로 출전했다.[6] 데뷔 초기 주로 3루수로 나오면서 가끔씩 나왔고, 96시즌엔 많은 경기를 유격수로 뛰었다. 이후에도 02시즌까지 가끔씩 유격수로 나왔다.[7] 팀의 최전성기에 활약한 오재원이나 임팩트 있는 활약을 했던 고영민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안경현에 비하진 못한다.[8] 다만 두산 프런트에서 이후 김상호시구자로 초청한다던가, 권명철이광우를 코치로 영입하면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9] 김연아가 한창 주목받던 2009년,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본인이 밝혔다.[10] 참고로 그 소리에 안경현은 "이 새x도 같이 먹었는데요?"라고 무의식적으로 답했다고 한다(...).[11] 아마 두산에서 전력 이탈을 막으려 억지로라도 잡은 듯 하다.[12] 그리고 이 선택은 두산의 옳은 선택이 되었다. 안경현이 2루수 자리에서 버텨주는 동안 고영민, 오재원이 성장했고 2008년을 기점으로 두산은 2루수 세대교체에 성공했다.[13] 한참 전인 프로야구 매니저 카드깡 방송에서도 그렇게 지칭했다.[14] 실제로 안경현의 전성기는 2001년부터 시작되어 2006년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