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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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부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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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KBO 리그 타격왕

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4번
팀 창단

고원부
(1986~1991)


이종호
(1993~1995.5.10.)
OB 베어스 등번호 39번
정재호
(1990~1991)

고원부
(1992)


조경택
(1993~1995.4.16.)
{{{#131B66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81번}}}
성기영
(1991~1993)

고원부
(1994~1995)


김성갑
(1996~1998)



파일:external/www.koreadaily.com/134425562.jpg

고원부
高元富 | 吉村(よしむら元富(もととみ

출생
1962년 4월 17일 (62세)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주쿄고등학교(中京高等学校)[1]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1년 드래프트 (난카이)
소속팀
난카이 호크스 (1981~1985)
빙그레 이글스 (1986~1991)
OB 베어스 (1992)
지도자
태평양 돌핀스 타격코치 (1994~1995)

1. 개요
2. 선수 경력
2.1. NPB 시절
2.2. KBO 시절
3. 지도자 경력
4. 기타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난카이 호크스, 빙그레 이글스, OB 베어스 소속의 재일교포 외야수이자 前 태평양 돌핀스 타격코치.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재일교포 출신 타격왕이다.


2. 선수 경력[편집]



2.1. NPB 시절[편집]


주쿄고교를 졸업하고 난카이 호크스에 지명되어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 2군 올스타전에서 MVP를 수상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구단이 1군에 진입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2] 1985년 팀을 떠나게 된다.


2.2. KBO 시절[편집]


파일:external/blog.koreadaily.com/04081426_1.jpg

이후 장훈의 주선으로 같은 해 한국에 건너오게 되고,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하게 된다. 첫 해에는 타율 0.245, 3홈런, 33타점, 13도루로 그다지 눈에 띄는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다음 해부터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는다. 특히 1989년에는 0.327의 타율로 타격왕을 수상하며 재일 교포 출신 야수가 최초로 개인 타이틀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3][4] 그와 함께 골든 글러브도 수상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내리막이 찾아왔고, 1991 시즌 종료 후 OB 베어스로 보내지지만 거기서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며 1992년 시즌 중 방출되었다.

OB로 트레이드 되기 전에 김영덕 감독과의 불화도 한 몫 했었다. 난카이 호크스의 선, 후배 간이나 한솥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부임 첫 해인 1988년부터 "낙인찍힌 사나이"가 되었으며 "시즌만 끝나면 방출"설이 나돌았었다. 이에 고원부는 "빙그레는 싫지 않지만 빙그레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시즌 중에도 이야기를 했었다고 한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80, 37홈런, 244타점, 52도루. 너무 빨리 찾아온 내리막이 아쉬웠던 선수 중 하나이다.


3.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1994년부터 2년 동안 태평양 돌핀스 타격코치를 지냈다. 특히 1994년에는 '족집게 도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돌핀스 타자들의 타격 향상에 기여하면서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팀이 현대 유니콘스로 바뀌는 과정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다시 일본으로 간 이후 나고야에서 유통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SK 와이번스 2군 매니저 나카니시 카즈미가 한국으로 유학을 갈 때 도움을 주기도 했다.


4. 기타[편집]


연습생으로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한 장종훈을 기술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잘 챙겨주고 신경써주었다고 한다. 한 일화로 슬럼프에 빠져있던 장종훈에게 숙소 옥상으로 밤 12시(자정)까지 방망이를 들고 올라오라고 했는데, 장종훈은 설마 올라오겠냐하고 반신반의하고 옥상에 갔더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새벽 3시까지 스윙하라"고 말하고 내려갔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에 장종훈은 고원부를 "자기 시간 제쳐두고 후배를 위해서 이렇게 할 수 있는 선배가 몇이나 되겠냐"라고 회고했다. 이후 장종훈은 KBO 리그에서 기록의 사나이로 등극했고 팀의 영구결번까지 받는 겹경사를 누렸는데 어느 정도 고원부가 기여한 셈이 된다.

1988년 5월 12일 청주 MBC 청룡전에서 유종겸을 상대로 KBO 최초로 그라운드 만루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다.

2015년 김은식 기자가 트위터에 근황을 알렸다.[5]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6
빙그레
84
310
.245
76
13
3
3
33
27
13
42
.335
.333
1987
104
380
.324
123
(2위)
14
1
7
51
51
14
55
.421
.405
(4위)
1988
98
321
.277
89
13
1
9
50
44
10
35
.408
.344
1989
109
342
.327
(1위)
112
16
2
6
45
51
5
47
.439
.405
(4위)
1990
107
288
.253
73
13
2
9
45
42
4
40
.406
.342
1991
39
83
.229
19
1
0
1
8
7
0
10
.277
.31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2
OB
53
157
.217
34
2
0
2
12
17
6
16
.268
.287
통산(7시즌)
594
1881
.280
526
72
9
37
244
239
52
245
.386
.360

6. 관련 문서[편집]


[1] 정식교명은 中京大学附属中京高等学校. 야구부는 전국 굴지의 명문이며, 코시엔 전국대회 통산 승수 (봄 대회 55승 및 여름 대회 78승, 총 133승), 우승 횟수 (봄 대회 4회 및 여름대회 7회, 총 11회) 모두 전국 최다이다. 우리나라의 전국체육대회 격인 국체에도 자주 출전한 학교다.[2] 이때 분을 참지못해 코칭스태프와 주먹다짐까지 갔다.[3] 투수 부문에서는 장명부가 첫 사례. 같은 재일교포인 홍문종은 1984 시즌 롯데에서 최다 안타를 기록했지만, 당시 최다 안타 부문은 시상 대상에 없었다. 기타 수상 경력을 따지면 1986년 올스타전 MVP였던 김무종이 있다.[4] 그러나 타격왕 경쟁 과정에서 김영덕 감독이 경기장에서 계산기를 쳐 가면서 타석 출장 여부를 결정하는 '타율 관리'로 인해 언론과 야구팬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5] 본문에 87년 타격왕 고원부라고 되어있는데, 고원부는 89년 타격왕이다. 87년 타격왕은 장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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