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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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irect 틀:SSG 랜더스/간략(코칭 스태프)
1. 개요[편집]
前 SK 와이번스,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 소속 내야수. 現 SSG 랜더스 1군 수비코치.
2. 선수 경력[편집]
3. 지도자 경력[편집]
2019년부터 SK 와이번스 루키군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
2019년 시범경기 자체중계에서는 잠시 문학구장으로 찾아와서 해설을 맡았다.
세대교체 자원으로 내야수는 김민재, 외야수는 최상민을 뽑았다.
2023년부터 2군 총괄코치로 선임되었다. 2군 감독이 없는 SSG이기 때문에 이대수가 사실상 2군 감독에 준하는 역할이다.
2024년 SSG 랜더스 가고시마 마무리 캠프를 앞두고 김원형 감독이 경질됐고 대규모의 코칭스태프가 물갈이 되었기에 2군 코칭 스태프들이 진행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2군 총괄코치인 이대수 코치의 지휘 하에 캠프가 진행되다가 새로 2군 감독에 부임한 손시헌이 11월 3일부터 지휘봉을 잡았다. 이대수는 지휘봉을 넘긴 후 수비 부문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또한 이대수 코치는 2024 시즌부터는 1군 수비코치로 승격돼 2019년 지도자 부임 이후 처음으로 1군 무대를 밟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한화 이글스 첫 시즌까지는 타격은 부족하지만 안정적인 수비력이 장점인 전형적인 수비형 유격수였다. 그렇다고 타격이 아예 답이 없다기엔 체격 대비 뛰어난 일발장타 능력과 함께 클러치에 강해서 하위타선의 뇌관 역할로는 충분했다. 수비 범위는 평이한 수준이지만 글러브질이 좋아 안정적인 포구 능력을 보여줬으며, 여기에 의외로 상당한 강견이기도 해서 수비 안정감은 믿을만 했다. 또한 한화 이적 전까지는 SK 와이번스에서는 정경배나 정근우, 두산 베어스 이적 후에는 고영민이라는 수비력과 수비 범위 하면 KBO에서 손꼽히는 2루수들과 키스톤 콤비를 이뤘기 때문에 다소 평범한 수비 범위가 충분히 커버되었다. 타 내야수들의 수비력에 문제가 있던 한화로 이적한 이후 이 약점이 부각될 수도 있었으나, 오히려 김민재 이후의 유격수들이 다들 처참한 수비력을 보여오던 참에 이대수가 그 자리를 꿰차면서 상대적으로 좋은 평을 들을 수 있었다. 다만 약한 체력으로 인해서 풀 시즌을 소화하는데 다소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10년 이전 규정 타석을 채운 시즌은 2006 시즌 뿐이고, 붙박이 주전으로 나선 것도 2007 시즌의 정도.
한화 이적 후 첫 시즌에 주전으로 뛰고 나서 체력적인 약점을 자각하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 관리를 시작한 이후로는 체력적인 약점이 상당히 해소되었으며, 타구에 힘이 붙으면서 타격 성적도 수직상승해 2011 시즌 골든글러브 수상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다만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인해 민첩성이 다소 줄어든데다 나이도 들면서 2012 시즌 이후로는 점차 수비력이 감소했고, 이로 인해 말년에 SK로 돌아온 후에는 3루수로도 꽤 자주 뛰었다. 그래도 유격수로나 3루수로나 안정감 자체는 크게 떨어지지는 않아서 말년에도 대수비 요원으로 쏠쏠하게 뛰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6. 여담[편집]
- 2004년 SK 와이번스의 오키나와 전지훈련 당시 보물찾기 이벤트에서 숙소 복도에서 불이 나간 전등 하나를 발견했는데 멀쩡한 다른 전등들에 비해 그것만 꺼져있어 ‘틀림없이 전구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그 전등을 뒤적거리다 어이없게도 감전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바로 발견돼 별 탈 없이 회복됐으나 손에 후유증이 남아서 전훈 기간 내내 애를 먹었다고 한다.
- 코치가 되고 난 후 프로필을 보면 더 늙어 보인다. 동갑내기인 심수창이 '대수'라고 칭할때 어색함이 느껴질 정도.
- 개그맨 김대희를 닮았다는 말이 있다. 또 의외의 노안 소유자이기도 하다.
- 한때 트레이드 상대가 나주환인 적 있었는데, 이 두 명 모두 코치 시절 88번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
6.1. 합성 필수요소[편집]
류현진이 1,000탈삼진 기록을 수립했던 2011년 6월 19일 경기, 그러나 타선의 부진으로 류현진의 승수 획득을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이대수는 9회말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후배의 완투승에 기여하게 된다. 이 날 그의 환희에 찬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다른 의미로 칰갤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다양한 명작 패러디를 양성했다.
장어대수
대수매직
돈대수
DJ대수
칰마에
7. 관련 문서[편집]
[1] KBO (2009년 3월 10일).《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제4판. 751쪽.[2] 정확히는 신시도 출신. 출생 당시에는 외딴 섬이었으나 현재는 새만금 방조제로 이어져 있다.[3] 신시도초등학교에서 4학년 무렵 전학을 갔다.[4] 후술할 청각장애로 인해 병역면제를 받았다.[5] 안타 안타 안타 안타 이글스 이대수~ 날려라~ 오 이대수우우우~ 삼성의 이정식도 같은 응원가를 썼다. [6] 한화 이대수 오오오오오오오~ (×3) 한화 이대수 안타를 날려줘요 (2번 반복)[7] 가수 임병수가 부른 아이스크림 사랑의 원곡이다.[8] 원래 신인선수인 양성우 응원가로 곡을 만들었으나 양성우가 1군에 못 올라온데다가 군대에 가버리면서 이대수가 그 응원가를 사용했었다. 양성우의 제대 후 양성우가 다시 사용했다.[9] 이대수 날려라~ 이대수 날려라~ 오오 와이번스 승리 위해~x4[10] 이적 초기에 잠깐 사용되었던 응원가[11] 워어어~ 와이번스 이대수 워어~ 안타 이대수~ (X2)[12] 안드레아스 프라코스와 같은 응원가이다. 그리고 현재는 이현석이 이 응원가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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