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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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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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2.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3.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4.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5.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6.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7.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8.svg파일:두산 2019V6.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
2014
2019





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
2004 KBO 리그 MVP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4, 2013 KBO 리그 다승왕

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
2005 KBO 리그 탈삼진왕

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
2004 KBO 리그 승률왕



파일: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구 로고.png2004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선정 올해의 선수



배영수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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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5번
정회열
(1999)

배영수
(2000~2014)


클로이드
(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37번
앨버스
(2014)

배영수
(2015~2016)


김진영
(2017~2018)
한화 이글스 등번호 33번
최윤석
(2016)

배영수
(2017~2018)


윤승열
(2019)
두산 베어스 등번호 25번
양의지
(2010~2018)

배영수
(2019)


이동원
(2020)
두산 베어스 등번호 91번
구강현
(2018~2019)

배영수
(2020~2022)


이영수
(2023~)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88번
이병규
(2022)

배영수
(2023)


김태형
(2024~)
SSG 랜더스 등번호 번


배영수
(2024~)


현역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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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956_m.png

SSG 랜더스 No.
배영수
裵英洙 | Bae Youngsoo

출생
1981년 5월 4일 (42세)
대구광역시 북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칠성초 - 경복중 - 경북고
신체
186cm, 102kg[1], O형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1차 지명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0~2014)
한화 이글스 (2015~2018)
두산 베어스 (2019)
지도자
두산 베어스 2군 투수보조코치 (2020)
두산 베어스 1군 불펜코치 (2020~2022)[2]
롯데 자이언츠 1군 투수코치 (2023)[3]
롯데 자이언츠 2군 총괄코치 (2023)[4]
SSG 랜더스 1군 투수코치 (202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불펜코치 (2023)
병역
예술체육요원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3위)
소속사
팀퓨처스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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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성주 배씨 (星州 裵氏)
가족
배우자 박성희[1](1982년생, 2010년 12월 19일 결혼 ~ 현재)
장녀 배은채(2011년생)
차녀 배채민(2013년생)
장남 배은준(2017년생)
등장곡
Queen - 《We Will Rock You
1. 개요
2.1. 수상 내역
4. 프런트 경력
5. 피칭 스타일
6. 논란
6.1. 부정투구
7. 여담
7.1. 펠릭스 호세와의 악연
7.2. 야구 관련
7.3. 이야깃거리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SSG 랜더스 투수코치.

2000년대 중반을 지배했던 최고의 투수로 손민한, 박명환과 함께 우완 트로이카를 결성해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었다. KBO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 공동 1위 선수(8회)[5], KBO 한국시리즈 최다 경기 등판 1위(25경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대구칠성초등학교, 경복중학교를 거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2000년대 삼성 라이온즈를 대표하는 간판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삼성 라이온즈의 첫 우승부터 마지막 우승까지 함께했으며, 배영수를 대표하는 별명인 '푸른 피의 에이스'는 이승엽의 별명 '라이온 킹'처럼 삼성 프랜차이즈 에이스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별명으로 유명하다.[6][7] 다른 별명으로는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상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8][9][10]

2014 시즌 종료 후 삼성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한화로 FA 이적했다. 어느정도 긍정적인 결과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좋지 못한 성적을 남겼고, 2018 시즌이 종료된 후에는 구단에서 은퇴를 제안했으나 현역 연장 의지를 밝히면서 한화를 떠나 2019 시즌 두산에서 활약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마무리 투수로 우승을 결정짓는 세이브를 기록 후 선수 생활을 좋게 끝마쳤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수상 내역[편집]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8회 (2002, 2005, 2006, 2011~2014, 2019)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4)
MVP (2004)
다승 1위 2회 (2004, 2013)
탈삼진 1위 (2005)
승률 1위 (2004)


3.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배영수/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프런트 경력[편집]


시즌이 종료된 후 2군 총괄코치를 계속 맡을 것으로 보였으나, 11월 11일 스카우트팀으로 이동하고 치바 롯데 마린즈로 연수를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11월 23일, SSG 1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긴다는 보도를 통해 연수는 없던 일이 되었다. 기사

5. 피칭 스타일[편집]



파일:f782dfc87d531025ea39ab4472f678db.gif

평균 145~8km/h, 최고 155km/h의 패스트볼[11]

파일:1539325574100.gif

140km/h 전후의 슬라이더[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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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km/h 초중반의 스플리터

커리어가 쌓여감에 따라 피칭 스타일이 굉장히 많이 달라졌던 선수로 파이어볼러에서 기교파로 변신했다.

과거의 배영수는 04년도 기준 KBO 리그 빠른 구속을 보유했던 선발 투수였고, 당시 KBO 선발 투수들 중 가장 뛰어난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 중 하나라고 평가받았다.[13]

포심와 함께 그를 상징하는 구종은 슬라이더로, 전성기부터 황혼기까지 결정구로 사용했다. 초기엔 빠른 슬라이더로 타자를 압도했으나 커리어가 쌓여감에 따라 완급조절을 더해 수싸움과 결정구 모두 써먹던 주무기였다.

투구 패턴은 패스트볼, 슬라이더, 스플리터 레퍼토리로 전형적인 타자를 윽박지르는 파워 피처로 투구폼은 존 스몰츠와 비슷했고 투구 패턴 또한 비슷했다. 정통파로 취급받는 우완 오버핸드 투구폼으로 150km/h를 쉽게 던졌는데 스트라이크 존 좌우를 구석구석 공략하는 패턴이 아닌, 하이패스트볼로 삼진을 잡거나 그냥 존에 쑤셔박아서 삼짐을 잡는 전형적인 스터프에 의존하는 방식이었다. 이 시기의 배영수는 무지막지한 직구와 변화구로 상대를 유린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위 믿고 스트라이크 존 안을 공략하는 방식을 택했다. 당시 스트라이크 존이 다소 넓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다른 투수들과 궤를 달리하는 구위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이닝 소화 면에서도 2004년 한국시리즈 10이닝 노히트노런을 비롯해 2005년도 최다이닝 4위, 2006년 팔꿈치 부상에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등의 연투능력이 있는 투수로서 강점을 보였다. 특히나 선발투수로서 9회가 지나도 구속은 150km/h를 넘나드는 뛰어난 체력도 갖췄고, 투구폼도 구속을 짜내기 위한 힘을 모으는 과정이 보이는[14] 스터프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스타일로는 KBO 리그 최고의 강속구 선발 투수였다.





2017년 한화 시절 투구. 154~5km/h를 넘나들던 패스트볼이 139km/h를 겨우 찍는다.

이후 팔꿈치 부상을 입고 토미 존 수술을 받으며 구속이 10km/h 가까이 줄어들었고[15] 구위도 감소하면서 더이상 타자들을 압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서 2008~2011 시즌을 말아먹고 말았다.[16][17] 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한 2012년 부터는 예전처럼 리그에서 탑급 선발은 아니지만 최소한 리그에서 2~5선발까지는 가능할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18] 그리고 그 플레이스타일을 보자면 예전보다 구속이 떨어진데 기인하여 제구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로 40% 초중반의 비율로 패스트볼을 던지고 그 이외에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2:2 비율로 던지고 나머지 커브나 체인지업등을 던지는 스타일로 전성기 투구스타일에서 패스트볼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슬라이더와 스플리터의 변화구가 채우고 보여주거나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 커브와 체인지업등 기타 구종이 들어왔다고 보면 될 듯 하다.[19] 그에 맞춰 투구폼도 변화하여 조금 더 구위와 제구를 잡기 위해서 박수를 치는듯한 투구폼[20]으로 예전의 투구폼보다 조금더 투구폼이 빨라졌으며 간결해졌다.[21]

다만 제구력이 좋다는 평에 비해 몸에 맞는 공이 많은데, 이는 빈볼에 호의적인 본인의 성향 때문.

하지만 근본적으로 공의 스터프 자체가 줄어들었기에, 경기당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인다. 잘 던지는 날에는 호투,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엄청나게 털리는 경향이 있는게 눈에 보일 정도. 다만 제구력만큼은 2005년 이후로 줄곧 리그 상위권이었다. 시즌 볼넷이 40개를 넘은 시즌이 손에 꼽을 정도. 능수능란한 컨트롤로 볼넷도 적게 내주고 타자를 요리하는데, 과거에는 실투가 나와도 강력한 구위로 범타에 그칠 수 있었지만 이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제구가 흔들리면 이를 커버해줄 스터프의 부재로 인해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간 공이 정타를 많이 맞으면서 털리기 쉬워진 것.

마지막으로 두산에서 1년을 보냈던 2019년에는 패스트볼 구사율을 25.4%까지 내리며 구종 구사율이 패스트볼:슬라이더:스플리터:싱커가 거의 1:1:1:1수준으로 떨어졌다. 마지막 시즌 슬라이더가 피안타율 .182에 피OPS .422를 기록하며 나름대로 슬라이더로 재미를 봤다.

화려한 전성기와 부진했던 황혼기를 모두 겪고 엄청난 갯수의 우승 반지를 가진 선수로 기억남는 대투수이긴 하나, 위상에 걸맞지 않는 부정투구 이력은 꾸준히 비판받는다.


6. 논란[편집]



6.1. 부정투구[편집]


2017년 4월 27일 롯데전 일정하지 않은 키킹 동작(현재는 영상을 확인할 수 없다)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잠시 멈췄다가 던지는 경우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일정한 패턴으로 던진다. 명백히 다른 시간차로 던지는 동작은 부정투구이며 부정 투구를 떠나 타자를 농락하는 것에다 명백한 룰 위반이다. SBS 주간야구에서도 이 점을 언급했다. 배영수 잘못도 크지만 심판의 자질에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우선 2사 주자 없음 상태에서 변칙 투구폼으로 던지는 것은 보크가 아니고 부정투구에만 해당되며 이같은 경우, 그 투구는 볼로 선언된다. 또한 해설의 문제도 있었는데 보크를 선언하라는 항의 하는 듯한 해설에 사람들 역시 보크로 기억하기 때문. 물론 타자를 기만하는 행위 자체가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지만 위의 두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2017년 7월 12일 롯데전에서 로진백을 이용한 부정투구를 여러 번 한 것이 포착되었다. 그러고는 한 달 뒤인 8월 20일 롯데전에서 또 부정투구를 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파일:부정투구2.gif


파일:부정투구1.gif


이는 샤인볼(공의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어 던지는 것)을 시도하는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행위이다. 규정에 의하면 로진백을 터는 행위는 스피드업 관련 규정에 따라 1회 경고, 2회부터 볼 판정을 받을 수 있으며, 현장 조사결과 허벅지에 왁스 바셀린 등이 묻어있어 부정투구임이 확인된다면 퇴장될 수 있다.




이후 엠엘비파크 등 각종 야구커뮤니티에서는 배영수가 이전에도 이러한 행위를 했는지 찾았으며 그 결과, 2번의 롯데전 부정투구 외에도 kt, 넥센전에서도 똑같은 방식의 부정투구 의혹이 있는 행위를 한것으로 재조명되었다. 이전 부정투구 의혹 영상들




2014년 삼성에 있을 때도 똑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22]

더군다나 전성기 삼성 시절 한국시리즈 우승 영상에서도 공을 문지르는 장면이 나왔다. 배영수 커리어 내도록 계속 이어져온 행동으로 배영수가 등판한 아무 경기나 풀영상을 찾아보면 문지르는 장면이 대부분 나왔다. 항상 이래왔다는 뜻.

배영수 본인은 매우 당혹스러워 하며 부정투구를 하지 않았고, 허벅지 유니폼에 문지른 기억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패널들 모두 영상이 증거로 남아있고, 고의성 여부를 떠나 의심의 여지를 두는 행동을 한 배영수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며 규정상 명백한 부정투구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후 KBO 측에서 부정투구가 맞으며 차후 적발시 엄중조치를 취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배영수는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7월 12일 경기에서 로진백으로 2루심에게 지적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비슷한 사례를 2014년 8월 28일 오주원(당시 이름 오재영)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오주원이 허벅지에 공을 문지르는 것을 김응용 감독이 보고 항의를 하여 구두경고를 받은 바 있다.

공 하나도 아껴써야 하는 한국 야구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반론도 있으나 가끔 한두번도 아니고 커리어 내내 지속적으로 공을 문지르거나 로진백을 바르는 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쉴드칠 여지가 없이 배영수의 잘못이다. 사정이 어찌됐든 여러번 주의를 받아온 만큼 배영수 본인이 자제를 했어야 했다. 더군다나 배영수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야구를 해왔을 선배들 중에 이런류의 부정투구로 논란이 된 사례가 없는 것을 생각하면 근거 없는 변명에 불과하다. 본인이 자백한 송진우를 제외[23]하면 나머지 선수들은 한두번 걸린 정도다. 환경 문제라면 같은 환경에 처한 다른 선수들이 다 그렇게 해야 하지만 배영수 수준으로 이런 행위를 반복하는 선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배영수 시대보다 더 열악했을 선배 선수들은 오히려 이런 문제 행위로 논란이 된 경우가 없었다.


7. 여담[편집]



7.1. 펠릭스 호세와의 악연[편집]



파일:/image/076/2013/06/25/2013062501002054200160873_59_20130625155406.jpg


파일:MVkfN0A.gif


"헤이, 영쑤! 돈 두 댓!"[24]


2001년 9월 18일 마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호세에게 빈볼성 투구로 볼넷을 준 뒤 후속타자인 훌리안 얀에게 또 다시 빈볼성 투구를 계속 던져 허리를 맞추자 얀이 분노, 심판이 말리고 있는 사이 1루에서 분노한 펠릭스 호세가 달려와 주먹으로 배영수를 강타했다. 마운드에서 날아갈 정도로 강하게 맞았다. 맞은 이후 공을 집어던지려다 참았다고 말했으며, 중재하던 이민호 심판도 하도 족발과 맥주병을 맞아서 심판을 그만두려고 했다고 한다. 훗날 배영수가 말하길, 호세는 벤치에서 사인도 있고 해서 계속 몸쪽으로 던진 거지만 얀에게는 슬라이더가 손에서 빠졌다고 해명했다. 이 사건으로 펠릭스 호세가 출장 정지를 먹자, 우용득 당시 롯데 감독대행은 다음 날 호세를 1군에서 말소하고 어느 신인 선수를 콜업하는데, 그 선수가 바로 전설의 이대호. 그리고 호세는 그해 KBO 역사에 남을 성적을 올리고도 폭행사건으로 깎인 이미지와 투표단의 용병 차별로 여러모로 본인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타자들에게 밀려서 MVP와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후 배영수가 성적이 좋아지자 호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참교육자라는 말과 함께 그의 죽빵을 강타한 펀치는 참교육으로 불렸다. 타팀 팬들이 자기 팀의 못하는 선수를 보고 죽빵을 때려달라면서 "참교육 한 번만 시켜주세요."라고 말한다[25] 그런데 정작 이 폭행 사건 당시 배영수의 성적이 엉망이었냐면 그건 또 아닌게, 2001년 당시 배영수는 13승을 거두며 이미 실력이 물이 오른 상태였다. 호세 또한 배영수의 실력을 알고 있어서 저런 선수가 몸에 맞는 공을 저런 식으로 던질 리가 없다는 생각을 가져서 화를 낸 것. 본인도 나중에 참교육 사건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사건 이후 제가 야구를 잘 하게 되었습니다. 예, 참교육 맞습니다 ㅋㅋ"라는 말을 했다.

2018년 11월 2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이승엽 유소년 야구캠프 with 대구광역시'에서 배영수 앞에 모인 초등학생들이 배영수 면전에 대고 호세 주먹 아팠냐?며 곤욕스러운 질문을 날리기도 했다. "호세 주먹 아팠나요?" 배영수 향한 초등학생 '돌직구' 은퇴 후 인터뷰에서는 하도 많이 들은 데다 팬들도 즐기는 거 같으니 그러려니 한다고 밝혔다.

2022년 두산 베어스 코치로 일하고 있던 중 KBO 레전드 40인에 선정되어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이에 베어스티비에서 두산 선수들을 대상으로 배영수 코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어봤는데, 대부분의 선수들은 축하드린다는 인사를 전하며 코치님처럼 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남긴 반면에 투수 이영하가 "호세가 아직 무서우십니까"라는 말을 화이트보드에 적는 독특한 행동을 보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배영수는 2023년부터 호세의 과거 소속팀이었던 롯데 자이언츠에서 코치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롯데가 교체한 올드 유니폼이 바로 위 짤의 원정 버전이다.

7.2. 야구 관련[편집]


  • 2013년 8월 8일 대구 한화전에서 선발 등판해 6⅔이닝 동안 3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를 추가하였는데, 이로써 배영수는 통산 112승째를 따내 김시진삼성 라이온즈에서 현역 시절 기록했던 111승을 뛰어넘어 삼성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스즈키 이치로에게 던진 공은 아예 해설이 일부러 맞춘 것 같다고 대놓고 말했지만, 그때 한창 30년 발언 덕에 이치로에 대한 반발심이 들끓을 때라 '열사' 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환영받았다. 그리고 당시 구대성과 짜고서 일부러 맞춘 거라고 후에 밝혔다.#[26]

  • 이러니저러니 해도, 21세기에 들어선 후 삼성은 2020년을 기준으로 8회 우승(통합우승 1회 포함) 중 7회가 배영수가 데뷔한 후 달성한 것이고[27], 이승엽이 떠난 2000년대 중반의 삼성의 최대 흥행카드이기도 했다. 게다가 윤성환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사실상 금지어가 되면서 다시 배영수가 주목받기도 했다. 실제로 배영수가 삼성시절 달성한 124승은 윤성환을 제외하면 삼성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다승이기 때문이다.

  •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에게 사구를 자주 던질 만큼 호전성이 강한 선수다. 펠릭스 호세와의 악연은 더 말해야 입만 아픈 수준이고, 2002년 6월 28일 LG와의 경기에서는 사구로 인해 조인성과 난투극을 일으킨 적도 있으며[28], 2015년에 던진 기아전 연속 사구 등 고의성이 다분한 사구를 정말 많이 던져 통산 사구 4위를 기록했다. 배영수 본인의 말로는 상대가 비매너를 하면 사구를 던져라라고 선배들한테 배운 대로 해 오고 있다고 한다.

  • KBO 통산 최다 보크 기록을 가지고 있다. 13개. 폭투도 98개로 통산 4위에 랭크되어있다. 이 중에는 2019년 9월 14일 전설의 끝내기 보크도 있다.심지어 이보크는 무투구 보크이다. 그래서 배0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보크가 아니라는 사람도 일부 보이지만 투수판을 밟고, 1루수가 루에서 멀찍이 떨어진 상태에서 1루 견제 시도를 한 거 자체가 보크다. 안 던졌으니 1루 위투에 걸리고, 설령 던졌어도 시간 지연 취급되어 보크다.

  • 슬라이더를 박명환에게 배웠다고 한다. 박명환야구TV에서 박명환이 술회하길 올스타전에서 만났을 때 배영수가 야구공을 들고 오더니 슬라이더를 가르쳐달라고 했고 2004년에 MVP 타는 걸 보면서 박명환은 괜히 가르쳐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7.3. 이야깃거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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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근과 묘하게 외모가 닮았다.[29] 그 덕분에 예전에 부산 원정을 갔을때 부산 사람들에게 정수근으로 오해받아 싸인요청까지 받았다고 한다. 본인은 정수근으로 오해받은 덕택에 밥을 공짜로 얻어먹게 되어서 좋았다고. 그 때문에 한때 붙었던 별명이 배수근. 그 외에도 은근히 닮은꼴이 많은데 가수 은지원, 버스커 버스커장범준, 성우 엄상현, 정준하 등이 닮은꼴로 꼽힌다.

  • 이대호처럼 어린 시절이 상당히 불우했던 선수 중 하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 후 모두 도망치고 할머니와 누나가 함께 돌봐줬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2005년 4월 2일 롯데와의 시즌 개막전 때 완봉승을 챙기는 날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날 경기할 때 모자 챙 안쪽에다 '할머니 생각'이라고 써놓았다.

파일:/image/109/2005/04/05/200504051752231500_1.jpg

  • 위에 기술된 부상과 재활 과정 때문에 비슷한 과정을 걸었던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이경필이 배영수에 대해 염려하기도 했다.

  • 김응용이 삼성 라이온즈 사장직에서 물러나며 한 인터뷰에서 그가 있었던 팀에서 생각나는 선수 3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선동열, 이종범 그리고 배영수를 꼽았다.

  • 삼성 팬들은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자신의 팔꿈치를 희생해가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배영수에게 까방권을 부여해 주었으며, 이 후 토미존 수술 후유증으로 극도의 부진에 빠졌을 때도 비난의 목소리 하나없이 묵묵히 배영수를 지지해주었다. 2012년 배영수의 부활은 3년동안 영구까방권을 사용해준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팬이라면 배영수를 절대 까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 그럼에도 배영수를 깐다면 '올림픽 금메달 이후에 야구 보기 시작한 뉴비' 취급을 당했었다. 하지만 2014년 FA 협상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상황이 달라져 신규 팬이든 올드 팬이든 배영수를 더 우선시하는 팬과 삼성을 더 우선시하는 팬들로 갈려 까방권도 퇴색되고 있으며 갈수록 배영수를 금지어 취급 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커뮤니티별로 살펴보면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그 존재 자체로 금지어 혹은 조롱거리 취급을 당하며 사자후는 2004년 한국시리즈를 지켜본 일부 팬들이 배영수를 동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경북고 진골이 삼성을 배신하고 갔다는 점 때문에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우호적인 곳은 사자 사랑방엠엘비파크. 사사방은 기본적으로 선수보다는 구단 프론트(+류중일)와 김성근을 더 싫어 하기 때문에 배영수보다는 삼성 프론트(+류중일)이나 김성근을 조롱하는 용도로 배영수를 언급하면 몰라도 배영수 자체를 욕하는 경우는 그 휴지통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든 편. 엠팍은 쓸데없는 키배거리를 만들기 싫어서인지 일부 삼성 팬이나 한화 팬이 삼성 시절 배영수를 언급하거나 혹은 삼성 팬이 한화로 간 이 후의 배영수를 조롱하는 글을 남겨도 서로 그러려니 하고 무시한다.

  • 하지만 배영수가 이적 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 처음으로 왔을 땐 그래도 삼성 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남기기도 했으며,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렸던 2017년 올스타전 때에는 3루쪽을 향해 인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또한 2017년 이승엽의 은퇴 투어 때는 이승엽/다른 삼성 출신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와 삼갤에서도 동정여론이 생겼다. 오히려 올스타전 때에는 팬들이 성대한 박수로 맞아주었다. 이후로는 서로의 앙금이 많이 풀렸는지 2022년 KBO 40인 레전드 시상식에서 삼성 팬들이 배영수를 연호해주기도 하였다.#

  • 2010년 12월 19일에 2살 연상의 1999 미스코리아 서울 미 출신 배우 규휘(본명 박성희)와 결혼하여 현재까지 딸 2명을 낳았다. 딸바보 등극. 2017년 5월 10일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 아내가 셋째를 임신했다고 한다. # 2019년 5월 5일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 득남한 것으로 보인다. #

  • 1981년생이지만, 워낙 어릴때부터 활약했던 것과 함께 손민한(빠른 1975년생), 박명환(1977년생)과 더불어 2000년대 우완 3대 에이스로 불렸던 것 때문에 노장 이미지가 있다. 우선 그가 투혼을 발휘했던 걸로 잘 알려진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당시 고졸 신인으로써 돌풍을 일으키며 그해 신인왕과 정규리그 MVP를 모두 차지한 한화 류현진과 맞대결을 펼치게 되자 노장과 신예의 대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2006년 당시 배영수는 만 25세에 불과했다. 배영수의 노장 이미지는 2009년에 나온 게임빌 프로야구 시리즈 중 하나인 2010 프로야구에서도 드러나는데, 투수 스킬 중 11년차 이상 투수에게 주어지는 '노련함' 이라는 스킬이 등장하는데, 배영수의 경우 2009년 기준 만 28세였는데도 '노련함' 스킬이 붙어 있었을 정도였다. 겨우 8개월 늦게 태어난 김성태와 선발 맞대결을 펼친 경기에서는 베테랑 배영수와 신예 김성태의 선발대결' 이라는 방송 멘트가 나오기도. 심지어 어떤 팬은 그에게 배영수 선수 이제 40살 가까이 되었지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얼굴 자체는 크게 노안인 편도 아니기에 지못미. 본인도 이에 불만이 많아서, 기자들에게 제발 자기 이름 앞에 '베테랑', '노장'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노장이 아닐 뿐 베테랑은 맞지만. 자신의 전성기가 지난 201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이한 윤성환과 동갑이다. 데뷔는 고졸인 배영수가 대졸인 윤성환보다 4년 빠르지만.

  • 개인 통산 100승 달성 후 인터뷰에서 고마운 사람으로 가족 다음으로 배우 박재정을 언급했다. 경북고 동문으로 박재정이 1년 선배인데, 박재정이 배영수 결혼식 사회를 봐줬을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 2013년 3월 30일 두산과의 개막전에서 오재원김현수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개만두를 시전하였는데 그 다음 등판인 4월 7일 NC전에서 "개만두 아십니까. 저, 개만두 됐습니다. 개만두!"라고 기자들한테 말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배영수의 멘탈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는 일화 중 하나다. #

  • 배영수 아줌마[30], 배영수 이모, 꽹가리 이모 등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유명한 팬이 있다.[31] 항상 배영수 유니폼을 입고 와서 꽹가리를 두들기며 응원하는 중년 여성으로 예전에는 김실을 응원하셨으며, 이 후에는 아들이 배영수와 동갑이라서 배영수를 응원했다고 한다. 삼성 팬들에게 워낙 유명인사였던 지라 2014년 7월 29일 경기에서는 삼성 구단에서 이 배영수 이모를 시구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날 경기는 차우찬핵폭발 하면서 패배했다. 이 분은 배영수 이적 후 김상수로 갈아타셨… 지만 2023년 김상수도 KT로 이적 크리.

  • 통산 승리 5위이다.

  • 두 번이나 팀을 옮겼는데도 권혁과 계속 같은 팀의 선수로 활약했다.[32][33]

  • 팔꿈치 부상 부위가 악화되어 6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 현역 시절을 종합하면 선발투수로 이룰 수 있는 모든것을 참 드라마틱하게 만들어낸 케이스이다. 데뷔 이후 고향팀 삼성 라이온즈에서 다승왕부터 탈삼진왕, 승률왕을 만들어내고, 한국시리즈의 기적같은 삼성의 2002, 2005, 2006년 우승과 노히트 노런을 만들어내고, MVP등극한 다음 팔꿈치 수술로 인해 몰락했을때 한화로 가서 재기선수상을 타냈으며, 그 이후 두산으로 이적해 한국시리즈에서 돌고돌아 두산 베어스에서 마지막 헹가래 투수까지 커리어에서 투수의 명예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전부 경험하게 되었다.

  • 야구게임 9M 프로야구에서 라이센스를 못 땄는지 배우승이라는 가명으로 나왔다.

  • 후배 투수인 권혁과도 인연이 깊다. 두 명 모두 삼성 왕조시절을 함께 한 것을 시작으로 2015년에 권혁이 FA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고 몇일 뒤 배영수도 한화 이글스와 계약을 맺고 쭉 한솥밥을 먹게된다. 그 이후 계약 기간 종료 후 배영수가 먼저 두산에 둥지를 틀고 권혁도 몇일 뒤 두산과 계약을 맺게 되며, 배영수가 1년 먼저 은퇴를 하여 권혁은 마지막 시즌이었던 2020년을 제외하고는 배영수와 계속 한솥밥을 먹은 셈이다.


8. 관련 문서[편집]


[1] 자신의 인스타그램 건강검진 결과다.[2] 11월 6일~[3] ~6월 26일[4] 6월 27일~[5] 또 다른 한명은 해태에서 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최다 경기 등판 2위(23경기)를 기록했던 가을 까치 김정수. 코칭스태프 포함 시 최다 우승 1위는 감독으로서만 10개의 우승반지를 챙긴 김응용, 선수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우승까지 포함하면 김평호도 해당된다.(8회)[6] 토미 라소다의 그 유명한 말을 인용한 별명이다.[7] 본인도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라고 한다.[8] 본인의 의사보다는 고참인 구대성의 입김이 있었다고 한다.[9] 한 때는 '초'절정'미'소년'배'영수"에서 따온 'CMB', 부진했을때 별명인 배민폐, 배0승, 패왕, 그리고 야구계에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쑤라는 별명이 유명하다.[10] 그리고 많이 알려져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양현종의 별명인 '대투수'라는 말도 배영수가 한화로 이적하면서 김성근 감독이 배영수를 위로할때 썻던말에서 유래된다.[11] 약 96마일.[12] 최대 144km/h[13] 2023년 기준으로도 평균보다 꽤 빠른 정도이며, 배영수가 뛰던 2000년대 초반 기준으로는 말 그대로 독보적인 구위였다. 당시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도 89마일 언저리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평균보다도 높은 구속을 가졌던 것. 지금으로 치면 대략 안우진과 비슷한 느낌이다.[14] 던지기 전에 힘을 모으기 위해 잠시 멈췄다가 투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15] 대략적으로 배영수 전성기의 평균 구속이 140km/h 중반 정도에서 형성되었고 최고 구속도 155km/h 임을 감안할 때 2017년 패스트볼 평균 속도 137km/h 최고구속 145km/h 에서 형성된다고 할때 시즌중 평균구속은 약 8km/h 최고 구속은 10km/h 정도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16] 이는 플레이 스타일의 급작스러운 변화로 해석될 수 있는데 팀 린스컴의 경우에도 보듯이 갑작스러운 구속과 구위 저하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플레이스타일이 먹히지 않았을 때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을 적용시키는데 린스컴이나 배영수 모두 제구력 보다는 구위와 구속으로 승부하던 스타일이었는데 둘다 급작스러운 구속 저하로 인해 타자들의 배트를 유도시키지 못하고 스트라이크존에 던지는 공이 맞아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에 시즌을 말아먹게 된 것.[17] 이와 같은 현상을 겪은 선수는 KBO에도 있다. 바로 정민철인데, 그도 배영수나 린스컴과 비슷하게 구위와 구속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선수였지만 데드암 증세 이후 자신의 스터프로는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구력형 피쳐로 변신해 한 시즌뿐이었지만, 2007년 2점때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기적같은 부활에 성공했다.[18] 재기에 성공했던 2012년 만큼은 팀 1선발로는 충분한 성적을 올렸고, 이후엔 평균자책점이 올라가긴 했지만, 승리기여도는 연평균 2.73으로 괜찮은 성적을 올렸다.[19] 부상 이후로 싱커(혹은 투심)와 서클 체인지업이 추가되었으며 커브도 구사비율이 조금 늘었다. 2011 시즌에는 커터 추가도 시도했으며#, 이외에도 2008년 포스트시즌 때는 너클커브를 던졌고#, 2013년 8월경에는 너클볼까지 선보였다.#[20] 정우람의 투구폼을 생각하면 될듯.[21] 메이저리그에서 이와 비슷하게 투구폼을 고친 사례를 보면 역시 나이가 들어서 구속이 줄은 잭 그레인키 가 있다.[22] 본영상 35초부터[23] 이쪽도 커리어 내도록 해왔던 루틴이라 자백했다.[24] 실제로, 펠릭스 호세가 저렇게 말을 한 것은 아니고, 디시 야갤에서 만든 유행어다.[25] 특히 방망이까지 들고 나와서 온몸으로 참교육을 거부했던 신승현의 성적이 떨어지면서 드립 소재가 되었다. 항목 참조.[26] 봉중근이 훗날 스톡킹에 출연해 밝히길 구대성이 '이치로를 맞추는 투수에게 내 돈 10만엔을 주겠다!'고 말하니 제일 먼저 자기가 맞추겠다고 손들었으나 구대성이 125km/h로는 아프지도 않다 얘기했다. 당시 봉중근의 구속이 부상 여파로 잠시 느려졌기 때뭉에 봉중근의 이 대회에서의 구속은 130km/h도 간신히 나왔다.[27] 다시 말해서, 배영수는 삼성의 모든 한국시리즈 우승을 겪어본 선수이다.[28] 아이러니하게도 조인성과 배영수는 훗날 한화 이글스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29] 그리고 14년 후 그는 정수근의 친정팀인 두산, 후에 롯데로 가게 된다.[30] 현지 대구쪽의 삼성팬들이 부르는 애칭은 영수아지매.[31] 원래는 김실의 팬이어서 실이아줌마라고도 불렸었다.[32] 삼성 라이온즈 ~2014, 한화 이글스 2015~2018, 두산 베어스 2019[33] 권혁은 1년 더 뛰고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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