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지역별 현황/영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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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광역시[편집]


1897년 설립된 부산유치원. 일본인 전용이었고, 지금의 용두산공원 자리에 있었다. 부산광역시가 부산시도 아니고 동래군이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부산 최초의 한국인을 위한 유치원은 1921년 동구 좌천동에 설립된 일신유치원이었고, 부산 최초의 불교계 유치원은 1927년 범어사에 의해 설립된 동래유치원이었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양산군, 동래군 등지에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부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한국인 원생들은 1915년~191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8~109세이다. 일본인은 1891~1914년생도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9다. 한편, 한국 최초의 유치원인 부산유치원의 마지막 졸업생은 1985년생으로, 현재 38~39세이다. 이렇게 되어 1986년, 1987년, 1988년생들(현재 35~38세)은 인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분산 배치됐다.

1915년생부터 1957년생(66~109세)까지는 유치원생 시기에 부산이 경상남도 소속이었으나, 1958년~1959년생(64~66세)은 유치원 재학 도중에 부산이 경상남도에서 분리됐으며 1960년생(63~64세)부터는 유치원 입학 이전에 부산이 경상남도에서 분리됐다.

의외로 부산에서 오랫동안 시골로 남은 강서구[1]에 유치원이 설립된 것은 1920년대로, 당시 시골치고는 상당히 빨랐다. 첫 원생은 1917년~1919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이 살아 있다면 106~107세가 됐을 정도. 1897년 일본인 자녀를 위해 세워진 부산유치원은 해방 이후 정부가 인수해 한국 최초의 공립유치원이 되었다.[2] 또한 부산도 시가지 팽창에 따라, 기존에 원도심 4개 구에 있던 유치원들 중 일부가 다른 구로 이전하기도 했다.

유치원이 드물었던 과거에는 양산군 등 주변 지역에서 부산으로 오는 경우도 있었고, 현재도 드물지만 양산시[3], 울산광역시[4], 거제시[5]에서는 간간히 부산으로 오기도 한다. 실제로 아침 시간대에 부산광역시 북구, 사상구를 가 보면 양산시, 김해시의 유치원 버스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고, 반대로 양산과 김해에서 부산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다.

기장군을 제외한 나머지 부산 지역의 사립유치원은 302곳인데, 이는 경남경북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숫자이다. 구별로는 중구 3곳, 서구 7곳, 동구 5곳, 영도구 11곳, 부산진구 41곳, 동래구 29곳, 남구 21곳, 북구 22곳, 해운대구 34곳, 금정구 23곳, 사하구 37곳, 강서구 9곳, 연제구 12곳, 수영구 17곳, 사상구 26곳이다. 특히 부산 중구는 사립유치원이 3곳밖에 없어 이 곳보다 사립유치원이 많이 있는 군이 전국적으로 널리고 널렸을 정도[6]이다. 심지어 기장군도 여기보다 사립유치원은 많다.

1950년대 북한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부산에 정착하면서 부산의 유치원에서 조부모나 증조부모가 북한 실향민인 경우도 늘고 있다. 또한 영도구의 경우 제주은행 지점이 있을 정도로 제주도 출신 이주민들이 많아 유치원에서 제주어를 들어 볼 수 있었을 정도이다. 대다수의 원생들이 동남 방언이나 표준어를 구사하지만, 영도구에서는 제주어를, 실향민 출신들은 주로 함경도 사투리나 함경도 억양이 섞인 동남 방언/표준어를 구사한다. 조부모 세대에서는 원생들은 매우 심한 동남 방언을 구사했고 시대적 배경 때문에 일본어를 섞어서 말하기도 했다.

지리적 특성상 눈이 잘 내리지 않아 폭설에 의한 휴원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지만, 태풍에 의한 휴원은 잦은 편이다. 그나마 부산은 국내에서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 중 가장 따뜻한 도시인 덕에 12월, 1월, 2월에도 패딩을 거의 입지 않는다고 한다.[7]

1990~1995년생들은 유치원 시절 부산 롯데월드 스카이프라자에 소풍을 갔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 곳이 1996년부터 1999년까지만 영업을 했기 때문이다.

부산 서구의 영생유치원은 현재 놀이아유치원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김열규 교수가 졸업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텍사스 레인저스에 진출한 야구선수 추신수와 그의 아내가 부산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8] 야구선수 이우민[9], 정치인 손수조[10], 사탐 강사 윤성훈[11], 개그맨 박성호 역시 부산에서 유치원을 다녔다.[12]

부산 역시 아파트가 많아 아파트 단지 하나에 유치원이 2곳 이상 있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사상구, 북구, 해운대구에서 볼 수 있다. 1960년대 142만 6,019명이던 인구가 1995년 388만 4,797명을 찍은 뒤 2021년 321만 7,401명까지 감소하는 등 인구 증감을 반복하는데도[13],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태종대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한국의 유치원 중 외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치원이며, 선암사유치원은 사립유치원 중 외국에서 가장 가깝다. 참고로 두 곳 모두 일본과 직선거리로 50~60km 떨어져 있다.[14]

부산의 유치원에서는 빈씨, 제씨, 하씨 성을 가진 원생과 교사를 보기가 서울에 비해서 쉽다고 한다. 다만, 이 세 성씨 모두 상위권은 아닌데 부산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강, 윤, 조, 장, 서씨로 정씨가 최씨보다 많다. 이로써 부산은 최씨보다 정씨가 많은 도시들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됐다.[15]

2020년 10월 5일에는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에 사는 유치원생이, 11월 10일에는 해운대구의 병설유치원 원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021년 1월 27일에는 남구의 사립유치원 원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021년 4월 7일에도 부산의 유치원생 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만약 2036년 올림픽이 부산에서 열린다면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서울의 유치원들이 단축수업을 한 것[16]처럼 부산의 유치원들도 단축수업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2030년~2033년생들이 이 혜택을 받게 된다.


1.1. 중구[편집]


1897년 부산유치원. 1992년 2월 폐원되었다. 첫 입학생은 1891년~1893년생이고, 첫 졸업생은 모두 사망했다.


1.2. 동구[편집]


1921년 일신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부산부. 첫 입학생은 1915년~191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108~109세이다.


1.3. 영도구[편집]


1921년 영선동 남부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부산부. 이로 인해 부산 영도는 전국에서 유치원이 가장 빨리 들어온 섬이 되었다. (2위는 1924년에 유치원이 들어온 제주도.) 첫 입학생은 1915년~191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108~109세이다.


1.4. 서구[편집]


1923년 영생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부산부. 현재의 놀이아유치원으로, 유명한 졸업생 중 김열규 교수[17]가 있다. 첫 입학생은 1917년~1919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106~107세이다.


1.5. 강서구[편집]


1923년 명지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김해군 관할.[18]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강서구 명지동강동동에 살았다고 한다. 첫 입학생은 1917년~1919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106~107세 이다.


1.6. 동래구[편집]


1927년 동래유치원, 당시 동래군 동래면 산하였다. 당시 원생들은 주로 지금의 동래구 수안동, 낙민동, 복천동, 칠산동, 명장동과 금정구 서동, 해운대구 반여동[19]에 살았다고 한다. 한동안 연제구, 금정구 지역 거주 유아들이 이 곳에 다니기도 했고, 1968년부터 1979년까지 11년 동안 휴원한 적이 있다. 첫 입학생은 1921년~1923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102~103세이다.


1.7. 사상구[편집]


1927년 사상교회 부설유치원, 당시 동래군 사상면. 그 전에는 사상역에서 기차를 타고 도심으로 가야 했고, 부산시 편입 이후에는 김해군 대저읍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당시 원생은 지금의 사상구 괘법동, 덕포동, 감전동, 삼락동에서 왔다고 한다. 첫 입학생은 1921년~1923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102~103세이다.


1.8. 사하구[편집]


1929년 당리유치원, 당시 동래군 사하면.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사하구 신평동, 하단동, 당리동, 괴정동에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사상구 학장동엄궁동에서 버스를 타고[20] 사하구로 가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첫 입학생은 1923년~192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100~101세이다.


1.9. 북구[편집]


1929년 구포유치원, 당시 동래군 구포면. 당시 원생은 북구 구포동, 덕천동과 강서구 대저1동, 대저2동[21], 사상구 모라동에서 왔다고 한다. 첫 입학생은 1923년~192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100~101세이다.


1.10. 부산진구[편집]


1933년 부전유치원, 당시 동래군 서면.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부산진구 부전동, 범전동, 부암동, 양정동, 전포동에 살았다고 한다. 한동안 연제구 연산동, 거제동과 사상구 주례동, 감전동 등지에서 오는 원아들도 받아 주었다.[22] 첫 입학생은 1927년~1929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96~97세이다.


1.11. 남구[편집]


1938년 문현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부산부 부산진출장소.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부산 남구 문현동, 대연동, 우암동에 살았다고 한다. 첫 입학생은 1932년~1934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91~92세이다. 당시 원생은 남구 문현동대연동에서 많이 왔다고 한다.


1.12. 해운대구[편집]


1939년 해운대유치원, 1993년 다시 설립된 해운대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 당시 동래군 남면. 원생들은 지금의 해운대구 좌동, 중동, 우동 일대와 수영구 민락동에 살았다고 한다. 첫 입학생은 1933년~193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90~91세이다.


1.13. 수영구[편집]


1941년 광안유치원, 당시 동래군 남면. 첫 입학생은 1935년~193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88~89세이다. 당시 원생은 수영구 수영동, 광안동, 남천동에서 왔다고 한다.


1.14. 연제구[편집]


1962년 브니엘유치원, 연제구가 아직 동래구였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과거에는 브니엘고등학교, 브니엘중학교, 브니엘여자고등학교와 같은 재단이으며[23] 개신교 계열이다. 과거에는 거제동[24] 살던 아이들이 거제역 등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진구로 가야 했다. 첫 입학생은 1956년~1958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67~68세이다.


1.15. 금정구[편집]


현존하는 금정구 소재 유치원 중에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78년 5월 10일에 개원한 부곡동의 소심유치원[25], 당시 동래구 관할. 그 전에는 버스를 타고 동래구 등지로 가야 했다.덕성유치원은 당시 부산직할시 동래구 부곡동에 위치했었지만 1940년대 초반때 생겨서 1980년대 중반에 폐원된 것으로 여겨진다 무궁화유치원과 마찬가지로 이 유치원도 건물이 철거된데다가 무궁화유치원보다 10여년전에 더 폐원되어서 남아있는 자료가 없는것은 물론이다 첫 입학생은 1972년~1974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1~52세이다.


1.16. 기장군[편집]


1981년 기장초등학교, 용암초등학교[26], 일광초등학교, 좌천초등학교, 칠암초등학교에 개설된 병설유치원들이 기장군 최초의 유치원이다. 기장군이 경상남도 양산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기장군에 유치원이 들어오기 전에는 동해선 열차를 타고 부산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주로 기장읍, 일광읍에 살았고 동래구, 해운대구로 갔다. 기장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사립유치원은 18곳 있으며, 모두 기장읍, 정관읍 지역에만 있다. 1960년대 5만 4,895명이던 인구가 2021년 17만 4,545명으로 늘면서[27],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여기보다 사립유치원이 더 적은 시가 널린 것은 물론, 경기도에도 이런 동네가 있을 정도. 심지어 사립유치원이 딱 2곳만 있는 세종특별자치시보다 많은데, 이는 세종시 주민들이 공립유치원을 훨씬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부산광역시의 구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기장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강-장-윤-조-서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야구선수 이택근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 울산광역시[편집]


1930년 설립된 울산유치원이 최초이다. 울산광역시가 아직 경상남도 울산시도 아니고 무려 울산군이던 시절에 울산광역시 중구 학성동에서 개원한 것이다. 광역시들 중에서는 가장 유치원이 늦게 개원[28]했으며, 심지어 제주도보다도 6년 늦었다. 다만, 1970년에야 유치원이 설립된 세종특별자치시 덕분에 2012년 7월 1일부로 울산은 ‘유치원이 가장 늦게 설립된 광역자치단체’ 타이틀은 피할 수 있었다. 울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4년~192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99~100세이다. 그 전에는 울산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기 위해서는 부산으로 가야 했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의 울산광역시 북구에 사는 아이들이 호계역, 효문역에서 동해선 기차를 타고 도 경계를 넘어 경주시의 유치원으로 가기도 했다.[29] 지금도 울산시 북구를 가면 경주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다.

1924년생부터 1990년생까지는 유치원생 시기에 울산이 경상남도 소속이었으나,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생은 유치원 재학 도중에 울산이 경상남도에서 분리됐으며 1995년생부터는 유치원 입학 이전에 울산이 경상남도에서 분리됐다.

지리적 특성상 울산의 유치원들이 가장 많이 휴원하는 사유는 태풍이고, 미세먼지, 황사, 전염병, 폭설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해방 이전 울산의 유치원은 주로 과거에 울산읍이었던 중구를 중심으로 설립되었으나, 울산의 시 승격과 공업단지 개발로 인한 시가지 확장에 따라 1970~80년대에 여러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울산광역시에 대학이 상당히 부족하고 그나마도 유아교육과가 있는 곳은 울산과학대학교 하나뿐이라 울산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대부분 부산 등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울산으로 온 사람들이다.

또한 시가지 팽창에 따라, 기존에 중구에 있던 유치원들이 다른 구로 이전하기도 했다. 울주군을 제외한 나머지 울산 지역의 사립유치원 개수는 95곳으로, 창원보다 6곳이 적다. 구별로는 남구 28곳, 중구 20곳, 동구 17곳, 북구 30곳이다. 1960년대 11만 2,848명이던 인구가 2021년 91만 3,479명으로 늘면서[30],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울산 역시 경주에서 매우 가까워 울산의 유치원에서는 경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구, 영천, 경산, 영덕, 청도, 포항 등 경주에서 가까운 지역이라면 자주 볼 수 있는 일로 주로 경주월드를 끼워서 간다.

울산광역시의 구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울산광역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강-윤-권-장-서 순서라 조씨보다 권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걸스데이 유라가 울산 병영유치원을 졸업했고 그 외에 울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유명인으로는 방송인 고퇴경[31], 양궁선수 강채영, 축구선수 정우영[32]이 있다.

2021년 2월 17일에는 울산의 유치원생 1명이 설날 가족모임으로 인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같은 해 7월 2일에도 유치원생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심지어 8월에는 스피치 강사발 확진자도 나오는 형편이다.

2.1. 중구[편집]


1930년 설립된 울산유치원이 최초이다. 울산광역시가 아직 경상남도 울산시도 아니고 무려 울산군이던 시절에 울산광역시 중구 학성동에서 개원한 것이다. 광역시들 중에서는 가장 유치원이 늦게 개원[33]했으며, 심지어 제주도보다도 6년 늦었다. 다만, 1970년에야 유치원이 설립된 세종특별자치시 덕분에 2012년 7월 1일부로 울산은 ‘유치원이 가장 늦게 설립된 광역자치단체’ 타이틀은 피할 수 있었다. 울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4년~192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99~100세이다.

2.2. 동구[편집]


1974년 현대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울산시 동구. 첫 입학생은 1968년~1970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5~56세이다.


2.3. 북구[편집]


1974년 새싹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울주군 농소면. 첫 입학생은 1968년~1970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5~56세이다.


2.4. 남구[편집]


1980년 아이사랑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울산시 남구. 첫 입학생은 1974년~1976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9~50세이다.


2.5. 울주군[편집]


1954년 천주교 부산교구 언양성당 부설로 개설된 안나유치원[34]이 최초였다. 주소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남부리 282-2번지. 현재는 폐원하였고 모텔건물이 들어선 상태. 현존하는 곳은 1979년 설립된 온양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참고로 울주군 첫 유치원은 울주군이 아직 경상남도 울산군 관할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울주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8년~1950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5~76세이다.

한편, 현존하는 울주군 최초의 유치원이었던 새싹유치원[35]은 1974년부터 1994년까지는 울주군 농소면, 1995년부터 1997년 6월 30일까지는 경상남도 울산시 울주구 농소읍이었다가 1997년 7월 1일 광역시 승격과 함께 울산광역시 북구로 넘어갔다.

사립유치원은 26곳 있으며, 모두 읍 지역에 몰려 있다. 인구는 달성군보다 적지만[36] 사립유치원은 울주군이 더 많아서, 울주군이 사립유치원이 가장 많은 군으로 등극했다. 1960년대 12만 629명이던 인구가 2021년 22만 2,538명으로 늘면서[37]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울주군에는 대학이 없어서[38] 울주군의 유치원 교사 중에는 부산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이 상당히 많다.

2022년 3월 인근 부산 기장군에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이 개장하면서 서생, 남창, 온산, 덕하 등지의 유치원에서는 부산 롯데월드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늘었으나, 두동, 두서 등 울주군 북부에서는 경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많다.

울산광역시의 구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울주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강-윤-서-장-권 순서라 조씨보다 권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다이빙 선수 김수지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 대구광역시[편집]


1910년 대구유치원. 대구광역시가 아직 경상북도 소속이었을 때 설립되었으며, 일본인 전용이었다. 대구 최초의 한국인을 위한 유치원은 1921년에 설립된 달성유치원이었다. 이 두 곳 모두 지금의 중구에 설립되었다. 대구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한국인 원생들은 1915년~191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8~109세이고, 달성유치원은 대구시의 지속적인 개발 등으로 인해 현재 폐원됐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인은 1904~1914년생도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대구시 중구 공평동, 교동, 계산동, 동성로 1•2•3가, 달성동, 수창동, 삼덕동 등 구도심 일대와 북구 고성동, 칠성동에 주로 살았다고 한다.

1915년생부터 1974년생까지는 유치원생 시기에 대구가 경상북도 소속이었으나[39], 1975년, 1976년, 1977년생은 유치원 재학 도중에 대구가 경상북도에서 분리됐으며 1978년생부터는 유치원 입학 이전에 대구가 경상북도에서 분리됐다.

해방 이전 대구의 유치원은 주로 시가지가 형성된 중구를 중심으로 세워졌고, 대구 시가지의 확장[41]에 따라 외곽 지역에도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대구의 시가지 팽창에 따라 기존에 중구에 있던 유치원들이 다른 구로 옮겨 가기도 했다. 대구에서 2번째로 오래된 유치원인 효성유치원이 그 예다. 효성유치원은 1926년 천주교 대구대교구에 의해 중구 계산동에서 설립되었고[42], 대구가 광역시로 승격된 이후에도 한동안 그 위치를 유지하다가 2005년 북구 국우동으로 이전했다. 삼덕유치원은 1952년부터 2003년까지 중구 삼덕동[43]에 있다가 수성구 범물동으로[44], 동신유치원은 1961년부터 1985년까지 중구 동인동에 있다가 1986년 수성구 만촌동으로 이전했다. 2018년에는 동구 지묘동의 위즈숲유치원이 전국 최초로 공립유치원과 사립유치원의 장점을 모두 살린 ‘개방형 사립유치원’으로 선정되었다.

달성군을 제외한 나머지 대구 지역에 있는 사립유치원 수는 243곳인데, 사립유치원의 총 개수는 인천보다 1곳 많지만 (인천 264곳, 대구 265곳) 자치구로 한정하면 인천보다 15곳 적다. 구별로는 중구 7곳, 남구 15곳, 동구 40곳, 서구 11곳, 북구 55곳, 수성구 45곳, 달서구 65곳으로 금호강 북쪽에 95곳, 남쪽에 148곳으로 금호강 이남에 사립유치원이 훨씬 많다.

대구 역시 생활권이 구별로 딱딱 나뉘지 않아 중구, 남구에 사는 아이들이 달서구, 수성구[45], 북구 등 여건이 더 나은 지역의 유치원으로 원정 가기도 하며, 아침 시간대에 대구를 가면 각 구별 유치원 버스들이 오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한편, 과거에는 대구의 유치원이 거의 중구, 남구, 서구와 북구 고성동, 칠성동, 동구 신암동에 집중돼 있어 북구 검단동, 산격동, 복현동, 침산동과 동구 효목동, 지저동 등은 중구로, 수성구 범어동, 수성동1~4가, 만촌동 등은 남구로, 달서구 두류동 등은 서구로 많이 갔다고 한다

지리적 특성상 눈은 잘 오지 않아 눈으로 인한 휴원은 적지만, 폭염이 심해 더위로 인한 개학 연기와 휴원이 잦은 편이다. 실제로 4월 중하순이나 10월 중순에 대구의 유치원을 가면 반팔을 입은 원생이 생기고[46], 5월 중순에는 아예 반바지 혹은 얇은 치마가 보일 정도로 덥다.

과거 유치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칠곡군[47], 경산군[48] 등지에서 기차를 타고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21세기 들어서는 칠곡군과 경산시에서의 원정 통학은 줄어들었으나 광주대구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등이 개통되는 등 고령군, 군위군, 청도군, 영천시[49]에서 대구로 향하는 교통편이 좋아지면서 고령군[50], 군위군[51], 청도군[52], 영천시[53], 합천군[54]에서의 원정 통학 건수가 오히려 늘었다. 이름만 봐서는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다는 오해를 사기 쉬운 칠곡유치원이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에 있다. 이는 1981년 경상북도 칠곡군 칠곡읍이 대구직할시 북구로 편입됐기 때문.[55]

1960년대 84만 5,189명이던 인구가 2003년 252만 9,544명을 찍은 뒤 2021년 215만 9,007명으로 (달성군 포함 시 240만 8,875명) 감소하는 등 인구 증감을 반복하지만[56]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2020년 대구에서는 신천지 대구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일명 신천지 사태)의 영향으로 인해 졸업식을 하지 못한 유치원이 늘고 있다.[57]

대구는 후방 지역 중 직업군인 자녀인 원생들이 그나마 많은 동네이다. 또한 도씨 성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살아서[58] 대구의 유치원에서는 도씨 성을 가진 원생과 교사가 많은 편이다. 또한 21세기에도 대구에 있는 유치원에서는 사투리를 쓰거나 사투리 억양이 섞인 표준어를 쓰는 원생이나 교사도 있을 정도이며, 그 밖에 사공씨[59], 석씨[60], 시씨[61], 여씨[62], 장씨[63], 제갈씨[64], 하씨[65] 성을 가진 원생도 쉽게 볼 수 있으며, 서씨[66]와 배씨[67], 권씨[68]의 비중도 높다. 실제 대구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권-장-윤-서-강 순서인데 경상북도 각지에서 권씨, 서씨들이 몰려온 것이 대구의 유치원에서 서씨들을 늘린 원인이 되기도 한다.[69] 본관까지 본다면 성주 이씨, 의성 김씨, 영양 남씨[70], 수성 나씨, 대구 빈씨들도 보기 쉬울 정도이다.

대구에서 유치원을 다닌 유명인으로는 배우 송혜교, 개그우먼 이수지[71], 영어강사 조정식[72], 축구선수 이민아, 박주영[73], 펜싱선수 구본길[74], 가수 이찬원[75], 전설적인 롯데월드 캐스트이자 테마파크 알바 유튜버 정대철[76]이 있다.

2020년 2월 23일에는 대구 모 유치원의 조리사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같은 해 9월 대구 수성구의 한 유치원에서 집단 장염 사건이 발생했다. 대구 신천지 사태 때에도 유치원생 확진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2021년 11월 25일과 26일, 그리고 12월 16일에 유치원발 집단감염이 발생했고, 12월 25일에는 온누리유치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12월 26일에 원생들이 검사를 받는 소동이 일어났다. 또 만약 2036년 올림픽이 대구에서 열린다면 올림픽 기간 동안 대구의 유치원들이 단축수업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1988 서울올림픽 때도 서울의 유치원들이 단축수업을 했기 때문에 아주 불가능한 방안은 아니다.[77]


3.1. 중구[편집]


1910년 대구유치원. 대구광역시가 아직 경상북도 소속이었을 때 설립되었으며, 일본인 전용이었다. 대구 최초의 한국인을 위한 유치원은 1921년에 설립된 달성유치원이었다. 이 두 곳 모두 지금의 중구에 설립되었다. 대구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한국인 원생들은 1915년~191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8~109세이고, 달성유치원은 대구시의 지속적인 개발 등으로 인해 현재 폐원됐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인은 1904~1914년생도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대구시 중구 공평동, 교동, 계산동, 동성로 1•2•3가, 달성동, 수창동, 삼덕동 등 구도심 일대와 북구 고성동, 칠성동에 주로 살았다고 한다.

3.2. 서구[편집]


1948년 성심유치원. 천주교 대구대교구 비산성당 부설. 당시 경상북도 대구시 서부출장소. 첫 입학생은 1942년~1944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81~82세이다. 그 전에는 중구로 원정을 가야 했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서구 비산동, 원대동, 상리동, 이현동, 평리동과 북구 팔달동, 금호동,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에 살았다고 한다.

3.3. 남구[편집]


1964년 계명유치원. 당시 경상북도 대구시 남구. 그 전에는 남구[78]에 살던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중구의 유치원으로 가야 했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대구 남구 대명동, 봉덕동, 중구 남산동, 대봉동, 달서구 성당동에서 살았다고 한다. 첫 입학생은 1958년~1960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65~66세이다.


3.4. 동구[편집]


1965년 동촌성모유치원. 천주교 대구대교구 동촌성당 부설. 당시 경상북도 대구시 동구. 공산동[79]의 경우는 1985년 대구공산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 (당시 대구직할시 동구)였다. 동구 지역 첫 입학생은 1959년~1961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64~65세이다. 반면 옛 공산면의 경우 첫 입학생은 1979년~1981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4~45세이다.


3.5. 북구[편집]


북구 중 원래 대구였던 지역의 경우, 1965년 침산유치원. 침산제일교회 부설. 당시 경상북도 대구시 북구. 첫 입학생은 1959년~1961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64~65세이다. 또한 칠곡지구[80]의 경우, 1978년 칠곡유치원. 당시 경상북도 칠곡군 칠곡면. 첫 입학생은 1972년~1974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1~52세이다.


3.6. 수성구[편집]


1978년 리리유치원. 당시 경상북도 대구시 동구. 당시 원생들은 대부분 수성구 수성동, 범어동, 만촌동, 황금동, 범어동에 살았다고 한다. 첫 입학생은 1972년~1974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1~52세이다. 그래서 수성구에서 태어난 50대 중반 이상인 사람은 동구, 남구, 중구, 심지어는 경상북도 경산시 등지로 원정을 가서 유치원을 다녀야 했다. 이는 수성구 시지지구 일대가 과거 경상북도 경산군 소속이었고, 이 때문에 지금의 대구 수성구 시지지구에 살던 유아들이 경산 시내 (당시 경산읍)로 가서 유치원을 다녀야 했다.

3.7. 달서구[편집]


1979년 보배유치원. 당시 경상북도 달성군 월배읍. 첫 입학생은 1973년~197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0~51세이다. 때문에 달서구에서 태어난 50대 이상인 어른들은 '고향에서 나름 잘 살아서 유치원을 다닐 수 있었지만, 고향에는 유치원이 없어서 버스 타고 갔다'[81]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3.8. 달성군[편집]


1981년 가창초등학교, 구지초등학교, 금포초등학교, 다사초등학교, 동곡초등학교, 하빈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개원되었다. 당시는 달성군이 아직 경상북도 관할이었던 시절이었다. 1975년~1977년생을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가 됐다. 그래서 지금의 달성군에서 태어난 50대 이상인 어른들은 ‘고향에 유치원이 없어서 못 다녔다.’거나, ‘고향에서 나름 잘 살아서 유치원 갈 형편은 되지만, 고향에는 그게 없어서 버스 타고[82] 대구까지 나가야 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과거까지 넓히면 1979년 월배읍에 설립된 보배유치원이 달성군 최초였으나, 설립 2년 만인 1981년에 경상북도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월배읍이 대구 남구로 넘어갔다(현재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대구 달서구). 이 때 성서읍과 공산면도 같이 대구로 넘어갔다. (성서읍은 서구->달서구, 공산면은 동구. 같이 넘어간 곳이 경상북도 칠곡군 칠곡읍 (대구 북구),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읍 (대구 동구), 경상북도 경산군 고산면 (대구 수성구)이다.)

1990년대 이후 달성군의 유치원은 주로 화원읍[83], 다사읍[84], 논공읍 등 대구광역시 자치구 지역과 가까운 읍 지역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옥포읍, 현풍읍, 유가읍의 경우는 테크노폴리스 조성 이후 본격적으로 유치원이 들어왔다.

사립유치원은 총 22곳이다. 화원읍에 5곳, 다사읍에 11곳, 옥포읍에 1곳, 논공읍에 3곳, 현풍읍에 2곳 있다. 이 때문에 유가읍은 달성군의 6개 읍 가운데 사립유치원이 없는 유일한 읍으로 남았고[85], 나머지 읍면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사립유치원을 다니려면 원정 통학을 해야 하는데 하빈면[86]칠곡군이나 다사읍으로, 유가읍구지면현풍읍, 논공읍, 옥포읍 등지로, 가창면수성구로 원정 통학을 하는 실정이다. 1960년대 13만 3,511명이었던 인구가 1980년 16만 1,922명으로 늘었다가 공산면[87], 월배읍[88], 성서읍[89]이 대구에 편입되고 대구 등지로 인구가 유출돼 1981년 대구직할시 승격 당시 7만 6,879명으로 줄었으나[90], 그 이후 계속 늘어 2021년 25만 9,339명까지 늘면서[91] 사립유치원 수도 급증했다. 미래에 달성군의 인구가 증가하면 경기도의 어지간한 도시 수준으로 사립유치원 숫자가 늘어날 전망. 현 추세로 보면 2050년대에도 사립유치원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군[92]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고령군[93], 성주군[94], 합천군[95], 창녕군[96] 등 인근 군 지역에서 달성군의 유치원으로 오기도 한다.

대구광역시의 구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달성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윤-권-서-장-배 순서라 조씨보다 배씨,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가수 신현희와 축구선수 이동경[97]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9. 군위군[편집]


1981년 설립된 우보초등학교[98] 병설유치원. 특이하게 군위읍보다 우보면[99]에 먼저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군위읍 최초의 유치원은 1993년 설립된 군위초등학교[100] 병설유치원이다. 두 곳 모두 군위군이 경상북도이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군위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다만, 군위읍의 경우는 1987년~1990년생들이 첫 원생으로, 첫 졸업생들은 현재 36~37세가 됐다. 다만, 군위군에 유치원이 생기기 전에도 다른 지역으로 원정 가는 방법으로 유치원에 다닌 아이들이 있었는데, 주로 우보역이나 화본역에서 기차를 이용해서 의성군이나 영천시 소재의 유치원으로 갔다고 하며, 군위읍과 소보면에서는 버스를 타고[101] 구미시 소재의 유치원으로 많이 갔다고 한다. 지금도 군위읍이나 소보면에 사는 유아들이 경상북도의 유치원으로 넘어가는 사례가 있는데, 주로 구미로 많이 보낸다.

1975년생부터 2016년생까지는 온전히 경상북도 군위군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고, 2017~2020년생은 유치원 재학 도중 군위군이 대구로 편입되었으며 2021년생은 대구광역시 군위군 시기에 최초로 신입생이 된다.

대구•경북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군위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홍-정-장-권-손-신 순서라 조씨보다 권, 손, 신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아직까지 사립은 물론 공립 단설유치원도 없다. 또한 교육기관이 없는 산성면[102]을 제외하면 모두 병설유치원만 있다. 아무래도 군위군은 구미, 대구와 가깝지만 팔공산 등 수많은 산으로 가로막혀[103] 구미, 대구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한 탓에 인구 유출이 계속되고 있고, 이 때문에 1960년대 8만 261명이던 인구가 2000년 3만 2,637명으로 준 뒤 2001년 3만 4,055명으로 늘었다가 계속 줄어 2021년 2만 3,256명으로 감소하는 등 안 그래도 적은 인구가 계속 줄어들어서[104] 사립유치원이 못 들어온 듯. 심지어 이웃한 구미시, 칠곡군, 의성군, 영천시, 대구광역시 동구에는 모두 사립유치원이 있어서 군위군 주민들은 자녀들을 공립 병설유치원을 보내거나 이웃 동네로 원정 통학을 시켜야 할 판이다. 그 중에서도 구미시나 대구광역시 동구, 북구로 가장 많이 간다고 한다. 의성군은 농촌 지역이고, 영천시의 경우는 우보면 등 군위군 동부에서만 원정 통학 수요가 있으며, 칠곡군 중 군위군과 접한 지역은 인구 밀집 지역 (왜관읍, 석적읍)과 떨어져 있기 때문. 그나마 다행인 건 군위군에서 자동차로 30분 이내에 사립유치원이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군위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고향에서 근무하려면 다른 지역의 대학[105]을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고향을 떠나거나, 대구광역시, 구미시 등지로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한다. 현재 군위군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은 의성군 의성읍의 에덴유치원이다. 또한 군위군은 사립유치원 없는 군 중 대도시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데 바로 아래에 대구광역시 동구가 있다. 그래도 산으로 막혀 군위에서 대구로 바로는 못 간다 때문에 군위군의 대구광역시 편입 법률안이 확정되고 2023년 7월 1일 군위군대구광역시편입되면서 군위군은 광역시 산하의 군들 가운데 유일하게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되었다.

컬링 해설위원 이슬비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106]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4. 경상남도[편집]



4.1. 밀양시[편집]


1910년 설립된 밀양유치원[107]이 최초로, 밀양시가 아직 밀양군이던 시절에 개원했다. 부산울산을 제외한 경상남도에서 최초로 개원한 유치원이다. 밀양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04년~190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19~120세이다.

이는 소도시치고는 굉장히 빠른 것이다. 밀양에 유치원이 설립될 당시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에는 아직 유치원이 없었다. 1988년 이전에는 밀양시가 '군'이었기 때문에 밀양이 행정 단위가 '군'인 지역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유치원이 들어온 지역이었으나, 1989년 밀양군 밀양읍이 밀양시로 승격되면서 이 타이틀은 1913년 유치원이 설립된 거창군으로 넘어간다. 현재까지도 시골인 지역이 남아 있는 도농통합 이전의 밀양군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도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 옛 밀양군 지역: 1981년 무안초등학교 병설유치원[108]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청도군에 사립유치원이 3곳밖에 없어서, 청도군에 사는 유아들 중 일부는 같은 생활권인 밀양에 있는 유치원을 다니는 경우도 있다.[109] 읍면별로는 청도읍과 화양읍은 밀양, 금천면, 매전면, 운문면은 경주, 각북면, 풍각면, 각남면, 이서면은 대구로 가는 경우가 많은 편.

사립유치원은 6곳(시내 5곳, 하남읍 1곳) 있다. 의외로 과거에 나름 중심지 역할을 했던 삼랑진읍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 1960년대 20만 6,115명이던 인구가 2021년 10만 4,831명으로 줄면서[110],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배드민턴 선수 손승모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밀양시는 서울에 비해 손씨의 비중이 높아 원생이나 교사 중 손씨인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물론 그 손씨의 대부분이 밀양 손씨[111]이다. 실제 밀양시 성씨 통계를 보면 10위까지의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손, 강, 장, 윤, 안씨로 손씨는 6위이다.

2021년 7월 16일 유치원생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4.2. 통영시[편집]


1911년 설립된 통영진명유치원이 최초이다. 통영시가 아직 용남군[112]이었던 시절에 개원했고, 위치는 지금의 통영시 문화동이다. 통영시보다 인구가 10배나 많은 울산시보다 19년이나 빨리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한편 광도면[113]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도 시골인 옛 통영군 지역[114]에는 1970년대가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통영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05년~190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18~119세이다. 참고로 통영시는 철도가 지나지 않는 도시들과 국회의원 1명도 제대로 뽑지 못하는 지역[115]들 중 유치원이 가장 일찍 들어왔다.


통영진명유치원은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인인 공덕귀 여사가 교사로 근무한 유치원이다. 또한 시인 김춘수, 김상옥, 유치환, 소설가 박경리가 졸업한 유치원이기도 하다.

사립유치원은 11곳 있는데, 그마저도 모두 시내에만 있다. (산양읍에도 없다.) 1960년대 13만 4,741명이던 인구가 2011년 14만 4,017명을 찍은 뒤 2021년 12만 8,293명으로 줄었는데도[116] 거의 그대로다.

통영에서 유치원을 다닌 유명인으로는 시인 김춘수[117], 김상옥[118], 유치환[119], 소설가 박경리[120], 축구선수 김민재[121]가 있다.

통영시는 최씨보다 정씨, 강씨가 더 많아[122] 통영의 유치원에서는 원생이나 교사의 성씨 분포상 정, 강씨가 최씨보다 더 많은 셈이다. 실제 통영의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강, 최, 조, 장, 황, 서씨 순서이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4.3. 거창군[편집]


1913년 거창읍 죽전리에 설립된 명덕유치원이 최초로, 거창군 인구의 20배 가까이 되는 울산보다 17년이나 빨리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첫 번째 원생은 1907년~1909년생이며, 첫 졸업생들은 살아 있을 경우 116~117세의 노인이 됐다. 현재 명덕유치원은 폐원되었고, 거창군에 현존하는 제일 오래된 유치원은 1979년 설립된 월천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1926년 거창교회에서 유치원을 설립했으나, 거창군의 인구 감소로 무기한 휴원 중이다. 거창읍 중앙리 소재로, 1920년~1922년생을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들이 103~104세일 정도로 유서가 깊은 유치원이었으나 농촌 인구 감소가 이런 안타까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해발 고도가 높은 거창군의 특성상 거창에 있는 유치원에서는 4월에도 눈놀이를 할 정도라고 한다.[123] 과거에는 군 단위 지자체가 많아서 이 곳이 군 단위 최초의 유치원이 아니었으나, 군 단위 지자체들이 지속적으로 시로 승격되면서 현재는 거창이 군 단위에서 최초로 들어온 지자체가 됐다. 다만, 거창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모두 다른 지역의 대학을 졸업[124]했다.

거창읍에 군 인구의 60%를 넘는 4만 1,184명이 거주하는 도시 구조 때문인지는 몰라도 관내 사립유치원은 2곳이고 모두 거창읍에만 있다. 1960년대 13만 6,673명이던 인구가 2021년 6만 1,502명으로 줄면서[125],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수원 백씨 집성촌이 있는 동네답게 거창의 유치원에는 백씨 성을 가진 원생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고, 거창 출신들은 유치원 시절 만난 교사들 중 적어도 한 명은 백씨였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또한 신씨[126], 장씨[127]도 상대적으로 많아서 한 반에 거창 신씨, 거창 장씨 성을 가진 원생이 꼭 몇 명은 있을 정도였다. 실제 성씨 통계를 보면 거창군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신, 강, 백, 임, 오씨 순서로 신씨[128]가 6위, 백씨가 8위일 정도.

배우 최리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4.4. 진주시[편집]


1916년 설립된 진주기독유치원이 최초이다. 진주시가 아직 진주군이었던 시절에 개원된 유서 깊은 유치원이었으나, 1947년 10월 19일 소실되었다. 현재는 80대 이상인 노인들만 진주기독유치원을 기억할 정도. 진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0년~191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13~114세이다. 이 지역은 국회의원을 2명만 뽑을 수 있는 지역들 중 유치원이 가장 일찍 들어왔다. 당시 진주는 경상남도의 도청 소재지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26년에 천주교 마산교구 옥봉동 성당 부설로 개원된 성모유치원이다. 본래 이름은 해성유치원이었으나, 1933년 일제의 탄압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1949년에 성모유치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재개원했다. 이 곳의 첫 원생들은 1920년~1922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3~104세이다. 불교계 유치원은 1931년 설립된 자명유치원으로, 통도사가 관리했다. 현재 자명유치원은 폐원되었다. 또한 2018년 대평면 마지막 교육기관인 한평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대평면에는 교육기관이 한 곳도 없어서 여기에 사는 유아들은 다른 면으로, 혹은 아예 시내로 원정 통학을 해야 한다. 한편 진주에서도 금산면[129]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아 있는 옛 진양군 지역에는 1970년대가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사립유치원은 21곳 있으며,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문산읍, 금산면 등지에도 있다. 1960년대 25만 4,159명이던 인구가 2021년 34만 8,096명으로 늘면서[130],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이 때문에 사립유치원이 없는 산청군, 의령군, 고성군, 하동군에서 진주로 원정 통학을 하는 유아들도 있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진주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강-최-하-조-윤-서 순서라 조씨보다 전, 안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펜싱 선수 박상영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3월 19일 진주시에 사는 유치원생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해당 유치원생들이 검사를 받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4.5. 고성군[편집]


1920년 고성읍 성내리에 설립된 신명유치원이 최초이다. 고성군의 인구 감소로 인한 원생 감소로 현재는 휴원.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79년 설립된 회화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고성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4년~191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9~110세이다.

사립유치원은 없다. 1960년대 13만 1,449명이던 인구가 2021년 5만 1,361명으로 줄면서[131],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때문에 고성군은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들 중 인구가 2번째로 많은 군(인구 5만 2,058명)이 되었고, 덤으로 고성읍 역시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의 군청 소재지 중 인구가 가장 많은 곳 (인구 2만 4,850명)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고성군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고성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진주, 사천[132], 통영, 창원 등 주변 도시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고성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고향에서 근무하려면 다른 지역의 대학[133]을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고향을 떠나거나, 진주시, 창원시 등지로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한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고성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강-황-장-허-서 순서라 조씨보다 허, 서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그나마 고성 이씨[134]들은 많은 편.

모델 박지나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8월 26일 고성군에서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 1명이 발생했다.


4.6. 양산시[편집]


1923년 설립된 양산유치원이 최초이다. 양산시가 아직 양산군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양산 시내 (당시 양산면)에서 개원했으며[135], 2015년 개원한 양산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 이 쪽은 물금읍 가촌리에 있는데, 2009~2012년생이 첫 원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14~15세인 신생 유치원이다. 양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7년~1919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6~107세이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양산 시내에 거주하는 유아가 다수였고 드물게는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이나 양산시 물금읍, 동면에서 오기도 한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원동면, 물금읍 등지에서는 경부선 기차를, 양산읍에서는 버스를[136] 타고 부산광역시의 유치원으로 원정 오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기장군 역시 여기 관할이던 시절에[137] 최초로 유치원이 들어왔고, 양산에 사립유치원이 본격적으로 들어선 시기는 부산광역시의 베드타운 역할을 시작하면서 인구가 급증한 1990년대 이후이다.

사립유치원은 37곳 있으며, 시내 (중앙동, 강서동, 양주동, 삼성동)에만 몰려 있지 않고 웅상 (소주동, 평산동, 서창동, 덕계동), 물금읍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5만 7,842명이던 인구가 2021년 35만 2,229명으로 늘면서[138],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경상남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양산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강-윤-장-서-조 순서라 조씨보다 서씨,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야구선수 서준원과 유튜버 변승주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1월 6일 양산시의 유치원생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9월 7일과 12월 20일에도 무더기 집단감염이 있었다.


4.7. 산청군[편집]


1924년 설립된 산청유치원이 최초이다. 산청읍 소재였으며, 지역 사찰인 대원사에서 설립하고 해인사가 관리를 맡았던 불교계 유치원이었다. 현재 산청유치원은 폐원되고 없으며, 산청군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79년 설립된 산청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현재는 80대를 넘은 노인들만 산청유치원을 기억할 정도이다. 산청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8년~1920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5~106세이다.

관내에 사립은 없고, 공립 단설유치원은 2019년에 겨우 생겼다. 진주시산청군 사이가 산으로 가로막혀 진주 시가지가 산청까지 확장되지 못해, 1960년대 11만 5,728명이던 인구가 2021년 3만 4,857명으로 감소했다.[139] 이것이 산청군을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만든 원인이다. 때문에 산청군에 사는 유아들은 거주하는 읍면에 있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진주시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산청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고향에서 근무하려면 다른 지역의 대학[140]을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고향을 떠나거나, 진주시 등지로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한다.

2021년 현재 산청군의 유치원 중 2곳[141]은 원아가 다 합쳐서 1명밖에 없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산청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강-최-권-민-조-오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전직 인터넷 작가이던 러브풀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142]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4.8. 의령군[편집]


1924년 최초로 의령유치원이 설립되었지만, 일제강점기에 폐원되었다. (2012년 설립된 의령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 의령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8년~1920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5~106세이다.

의령군 자체의 적은 인구와 지형상의 이유로 진주, 창원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한 탓인지, 1960년대 10만 4,773명이던 인구가 2021년 2만 6,800명으로 줄어[143], 사립유치원은 없다. 때문에 의령군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의령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진주, 창원으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의령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다른 지역의 대학을 졸업하고[144]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고, 사립유치원에서 근무하고 싶다면 고향을 떠나 진주창원으로 넘어가야 한다. 심지어 궁류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원아가 단 1명이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의령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강-전-허-서-조 순서라 조씨보다 전, 허, 서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가수 유진원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4.9. 창원시[편집]


1926년 설립된 대자유치원이 최초로, 창원시가 아직 마산시창원군으로 나뉘어 있던 시절에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추산동에 개원했다. 지역 사찰인 정법사에서 설립하고 통도사에서 관리를 맡았던 불교계 유치원이다. 1926년 ‘배달유치원’으로 개원했으나, 1940년에 명칭을 현재와 같이 바꾸었다. 정법사 증축 공사 때 대자유치원의 재건축도 결정이 되어 해당 원생들은 영도유치원을 다녔다.[145] 창원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0년~192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3~104세이다. 비수도권에 일반구가 있는 도시들 중 청주를 빼면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왔다.[146]

해방 전 창원의 유치원은 주로 마산합포구를 중심으로 설립되었으며 창원시의 시가지 확장에 따라 인근에도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또한 아직도 시골인 지역이 꽤 남아 있는 도농통합 이전의 창원군에는 1980년대가 돼서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됐다.

  • 진해구: 1949년 진해성심유치원. 천주교 마산교구 중앙동 성당 부설이다. 진해구 최초의 유치원이며, 개원 당시에는 창원군 진해읍이었다. 첫 입학생은 1943년~194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80~81세이다.
  • 의창구: 1970년 창원유치원. 의창구 최초의 유치원이며, 개원 당시에는 창원군 창원면이었다. 첫 입학생은 1964년~1966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9~60세이다.
  • 마산회원구: 1973년 새싹유치원. 당시 경상남도 마산시. 첫 입학생은 1967년~1969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6~57세이다.
  • 창원군 지역: 1981년 진전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 성산구: 1983년 리라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7년~1979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6~47세이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함안군, 의령군, 김해군 진영읍[147] 등지에서 버스나 기차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고, 지금도 사립유치원이 없는 의령군, 고성군(주로 배둔, 영현 등지) 등지에서 사립유치원을 보내기 위해 버스 등을 타고 여기로 원정 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 고성의 경우는 거리상 가까운 마산합포구[148]로, 의령의 경우는 마산회원구 쪽으로 많이 원정을 간다.

1960년대 41만 362명이던 인구가 2011년 109만 1,881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1년 103만 6,378명으로 감소했고[149], 창원시의 시가지 팽창에 따라 기존에 마산합포구 구마산, 신마산 일대[150]에 있던 유치원이 다른 구로 이전하기도 했다. 사립유치원은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동읍, 북면, 내서읍 등 읍면 지역에도 있으며, 웬만한 광역시 수준이자 경남에서 가장 많은 101곳이 있다. 이로 인해 창원은 비수도권에서 사립유치원 개수가 가장 많은 자치시로 등극했다.

2019년 7월 4일에는 성산구 반지동의 사립유치원인 보람유치원 설립자가 유치원 건물과 부지를 통째로 교육청에 기부했고[151], 2019년에 입학한 원아들을 고려해 2023년에 공립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창원은 전국에서 명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이 살고 있어서[152] 그나마 명씨 성을 가진 원생이나 교사를 많이 볼 수 있는 동네이다. 또한 갈씨[153], 감씨[154], 공씨[155], 구씨[156], 노씨[157], 변씨, 빈씨[158], 서씨[159] 설씨[160], 신씨[161], 여씨[162], 왕씨[163], 전씨[164], 제씨[165], 주씨[166], 진씨[167], 차씨[168], 천씨[169], 추씨[170], 팽씨[171], 표씨[172], 하씨[173], 허씨[174], 황씨[175] 성인 원생들도 상대적으로 많다. 본관까지 내려가면 벽진 이씨인 원생도 보기 쉬울 정도. 저 성씨들 중 10대 성씨는 서, 황씨밖에 없는데 창원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강, 조, 윤, 황, 서씨 순서이다.

배우 서경석은 진해 여좌유치원을 다녔다.[176] 또한 야구선수 나균안도 2001~2004년 사이에, 개그맨 김대범은 1983~1985년 사이에 진해동부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녔다.[177]

2022년 2월 창원에서 유치원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4.10. 김해시[편집]


1929년 옛 김해읍 지역에 설립된 김해유치원이 최초이다. 김해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3년~192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0~101세이다.

김해군 시절까지 범위를 넓히면 1923년에 설립된 명지유치원이 있다. 하지만 명지유치원은 1978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저읍 등과 함께 부산으로 넘어갔고[178], 현재는 폐원되고 없다. 그리고 2014년 부산 강서구에 똑같은 이름의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한편 김해에서도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아 있는 도농통합 이전의 김해군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도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때문에 김해군 시절 진영읍, 한림면에 살던 아이들은 기차를 타고 마산시, 부산광역시 등지로 원정을 가야 했다.


사립유치원은 2023년 기준 36곳 있는데,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장유신도시진영읍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19만 9,202명이던 인구가 2021년 54만 2,338명으로 늘면서[179],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경남도 내에서는 창원시, 양산시 다음으로 사립유치원이 많은데(2021년까지는 양산보다 많았으나 2022년을 기점으로 양산에 역전당했다) 원아 250명 이상의 대형 유치원들이 성업 중인 것도 눈여겨 볼 점이다.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인 여민지[180]도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김해의 유치원에는 서울보다 하씨 성을 가진 원생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한다. 다만, 하씨는 10위권 밖인데 김해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강, 조, 윤, 장, 서씨 순서이다.

2020년 8월 김해의 한 유치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2021년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9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4.11. 함안군[편집]


1929년 함안제일교회 부설로 가야읍 말산리에 설립된 성서유치원이 최초였으나 인구 감소로 무기한 휴원 중이고, 해방 이후로 한정하면 1945년 천주교 마산교구 함안성당 부설로 가야읍 말산리에 설립된 삼일유치원이 최초이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79년 칠원읍 구성리에 설립된 칠원유치원이다. 함안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3년~192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100~101세이다.

사립유치원은 7곳 있는데 칠원읍에 5곳(오곡리 숲속나라유치원, 자이채움널유치원, 해나라국제유치원, 구성리 주원유치원, 칠원유치원), 가야읍(말산리 우리유치원)과 함안면(광정리 꽃동산유치원)에 각 1곳씩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칠원읍이 창원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다 보니 가야읍보다 칠원읍의 인구가 더 많은[181] 도시 구조 때문이다. 1960년대 12만 3,176명이던 인구가 1990년 5만 9,820명으로 줄었다가 2021년 6만 4,182명으로 회복했는데도[182], 유치원이 줄었다. 이 추세라면 2030~2040년대에 함안군이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한다. 애초 2040년대에 사립유치원이 남아 있을 군은 얼마 없다 함안군에는 대학이 없어서 함안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모두 타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함안으로 발령받은 사람들이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함안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조-정-안-최-강-황-윤 순서라 최씨보다 조, 정, 안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배구선수 장광균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4.12. 함양군[편집]


1930년 설립된 함양유치원이 최초이다. 지역 사찰인 영각사에서 설립했고, 해인사가 관리를 맡았다. 소재지는 함양군 함양읍이며, 현재는 폐원되었다. 현재는 구순 넘은 어르신들만이 이 유치원을 기억할 정도이다. 함양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4년~192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99~100세이다.

지리적 특성상 기본적으로 3월까지는 눈이 오기 때문에 입학식을 눈 맞아 가면서 하기도 했고, 더 옛날에는 어린이날에도 눈이 와서[183] 유치원 어린이날 행사를 눈 맞아 가면서 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79년 설립된 안의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사립유치원은 함양읍 신천리의 꿈나무유치원 1곳만 있다. 이는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해 함양군의 인구가 진주, 부산, 대구 등지로 유출되면서 인구가 급감해 1960년대 12만 2,591명이던 인구가 2021년 3만 9,080명으로 줄면서[184],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함양군에는 대학교가 없어서 방통대나 사이버대학을 진학할 것이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함양군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거의 수도권이나 대구,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함양군으로 온 것이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함양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강-최-임-서-노-오 순서라 최씨보다 정, 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잔나비의 멤버 윤결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4.13. 사천시[편집]


1931년 설립된 삼천포유치원이 최초로, 현재의 사천시 선구동에 있었다. 사천시가 아직 사천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으나, 해방 직후 폐원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63년 옛 삼천포시 동동에 설립된 성광유치원이다. 사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5년~192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98~99세이다. 한편 옛 사천군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도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사립유치원은 8곳(삼천포 4곳, 사천읍 4곳) 있다. 심지어 시청이 있는 용현면[185]에도 없다. 1960년대 14만 8,522명이던 인구가 2021년 11만 1,105명으로 줄면서[186]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특히 서부 지역[187]에는 병설유치원만 몇 곳 있을 뿐이다. 이런 지역에 사는 유아들이 사립유치원에 다니고 싶으면 아예 진주[188]로 가야 한다. 사천시 역시 대학교가 없어서 방통대나 사이버대학에 갈 것이 아닌 이상 다른 지역에 가야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천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수도권이나 진주 등에서 대학을 다니고 고향으로 돌아온 케이스이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사천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강-최-조-장-문-서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가수 박서진, 농구선수 홍아란, 축구선수 백지훈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4.14. 합천군[편집]


1935년 합천성당 부설로 유치원이 설립됐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소실됐다. 현재 영업하는 곳 중에서는 1977년 천주교 마산교구 합천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모유치원이 가장 오래됐다. 또한 이 곳이 합천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이다. 합천읍 합천리 소재로, 일해공원과 가까이 있다. 합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9년~1931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94~95세이다. 성모유치원 최초의 원생은 1971년~197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52~53세가 됐다.

이렇게 된 원인은 합천군의 급속한 인구 감소 때문이다. 1960년대 18만 9,454명이던 인구가 2021년 4만 4,006명으로 줄면서[189],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때문에 면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거주하는 면에 있는 병설유치원에 다녀야 하고, 사립유치원을 다니고 싶으면 대구광역시 등 주변 도시로 가야 한다. 심지어 삼가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원생을 다 합쳐도 1명밖에 없다. 합천군에 대학이 없기 때문에 합천군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거의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전라북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진안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강-최-문-윤-권-전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프로게이머 이승훈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7월 21일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가 1명 발생해 해당 유치원에 선별진료소가 설치되었다.


4.15. 하동군[편집]


1946년 최초로 하동기독유치원이 설립되었으나, 1950년 폐쇄되었다. 현재는 칠순 넘은 어르신들만이 이 유치원을 기억할 정도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79년에 설립된 노량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하동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0년~194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83~84세이다. 한마디로 조 바이든의 동갑내기 정도만 하동기독유치원을 기억하는 셈. 1970년 하동성당 부설로 유치원이 설립됐으나 1990년에 폐원되면서 하동군 역시 양구군, 장수군 등과 함께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되었다. 1964년~1966년생이 하동성당 부설 유치원 첫 입학생이고, 첫 졸업생들은 현재 59~60세, 마지막 졸업생은 현재 40~41세가 됐다. 또한 하동군의 마지막 사립유치원이 폐원될 당시 군의 전체 인구는 6만 5,866명이었다. 이런 이유로 하동군은 대한불교조계종25교구 본사 소재지 중 유일하게 사립유치원 없는 지역이 되었다.

사립유치원은 없다. 광양과 하동 사이는 섬진강으로 가로막혀 있어 광양 시가지가 하동까지 확장되지 못하고, 진주와도 덕천강으로 가로막혀 시가지가 확장되지 못해 사립유치원이 들어올 정도의 인구 유입이 없었다. 그로 인해 1960년대 14만 2,380명이던 인구가 2000년 5만 9,556명으로 줄었다가 2001년 6만 298명으로 잠깐 늘었으나, 2021년 4만 4,785명으로 줄었고[190], 그래서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된 것이다. 때문에 하동군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하동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진주 등지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동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고향에서 근무하려면 다른 지역의 대학[191]에서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하며, 사립유치원에서 근무하고 싶으면 고향을 떠나 진주 등지로 가거나, 고향에 살아도 진주 등지로 원거리 출퇴근을 해야 한다.

하동군에 대나무 숲이 있어[192] 하동군 관내 유치원생들이 이 곳으로 소풍을 가기도 한다.

하동군은 이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하동 정씨[193]의 영향으로 전국에서 정씨 비율이 박씨보다 높은 유일한 지역이라 하동이 고향인 사람들은 자신이 유치원 다닐 적에 ‘선생님들 중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은 없어도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은 꼭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게다가 유치원 시절 같은 반 친구들 중 박씨는 1~2명인데 정씨가 7명이라거나, 박씨는 없고 정씨는 있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이다. 실제 하동군 10대 성씨도 김, 이, 정, 박, 강, 최, 조, 황, 서, 하씨 순서로 하동군의 상위 3개 성씨도 '김이정'이다.[194]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 중에서는 서천군과 같은 도의 고성군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서천군 53,125명, 고성군 52,433명, 하동군 46,529명) 현재 하동군에서 가장 가까운 유치원은 경상남도도 아닌 무려 전라남도에 있는데, 전라남도 광양시 광영동 소재의 혜화유치원이 그 주인공이다.

배구선수 전광인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4.16. 거제시[편집]


1949년 설립된 능포유치원이 최초로, 거제시가 아직 거제군도 아니고 통영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소재지는 현재의 거제시 능포동 (옛 장승포시)이었다. 현재는 폐원되었고, 거제군 복군 이후인 1971년 상문동에 설립된 큰별유치원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이다. 이 곳에 처음 입학한 사람은 1965년~196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8~59세이다. 거제도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3년~194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80~81세이다. 한편 거제시에서도 아직까지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아 있는 옛 거제군 지역에는 1970년대가 다 돼서야 유치원이 생겼다.

  • 거제군 지역: 1971년 큰별유치원. 첫 입학생은 1965년~196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8~59세이다.

이후 거제시의 유치원들은 주로 옛 장승포읍과 옛 신현읍 지역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사립유치원은 29곳 있으며, 칠곡군 등과 같이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고현지구 (舊 신현읍), 거제면[195], 사등면, 연초면, 장목면[196]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11만 7,875명이던 인구가 2021년 24만 5,754명으로 늘면서[197],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다만, 21세기 들어서는 거가대교의 개통으로 부산으로 가는 길이 편리해지자, 장목면 등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부산에 있는 유치원을 보내겠다는 경우가 늘고 있다.

거제는 전국에서 옥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고[198], 청주 다음으로 반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고 있어서[199] 거제의 유치원에서는 서울보다도 반씨, 옥씨 성을 가진 원생과 교사를 보기 쉽다. 다만 이들 성씨는 10위 밖인데 거제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윤, 강, 서, 장, 조씨 순서이다.

지리적 특성상 태풍으로 인한 휴원이 잦고, 폭설에 의한 휴원은 드물다.

개그우먼 신보라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4.17. 창녕군[편집]


1976년 설립된 창녕여자중고등학교 병설 창녕유치원이 최초이다. 국내 최초로 중고등학교에 부설된 유치원으로, 창녕에 5곳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이다. 그나마 과천시, 속초시보다는 많다 과거 부곡하와이로 유명했던 부곡면에는 병설유치원만 있다. 창녕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0년~197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3~54세이다. 그 전에는 유치원에 다니려면 버스를 타고 마산이나 대구로 가야 했는데, 당시에는 고속도로도 없어서 등하원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다반사였다. 그 때문에 창녕군 출신의 거물 정치인인 홍준표, 박원순, 박영선은 모두 유치원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과거에는 창녕군의 유치원생들이 부곡하와이로 소풍을 많이 갔으나[200], 부곡하와이 자체가 폐장된 2017년 이후에는 우포늪으로 가거나 아예 대구, 창원 등 주변 도시로 소풍을 간다. 창녕군에서 대구로 소풍을 갈 경우 보통 이월드로 많이 가는 듯.

사립유치원은 창녕읍에는 3곳, 남지읍에는 2곳 있다. 1960년대 15만 6,744명이던 인구가 2021년 6만 1,301명으로 줄면서[201],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다만, 대합면에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인구가 늘 가능성이 있으므로 산업단지 근로자의 자녀를 위한 유치원을 설립할 수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 동네에는 대학마저 없어서 창녕에서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으면 방통대나 사이버대학을 갈 것이 아닌 이상 무조건 다른 지역에 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창녕군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진학하는 지역은 당연히 수도권이나 대구이다.

창녕군에는 성씨 (창녕 성씨), 신씨 (영산 신씨) 집성촌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 창녕의 유치원에서는 원생과 교사들 중 창녕 성씨, 영산 신씨 성을 가진 경우가 많았으며, 지금도 창녕 성씨들이 많다. 실제 창녕군에서 성씨는 6위인데 창녕군 10대 성씨는 김-이-박-최-정-성-하-신-강-윤씨 순서이다.

배우 오연서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4.18. 남해군[편집]


1979년 설립된 성명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특이하게 남해읍보다 서면에 먼저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남해읍 최초의 유치원은 1994년 설립된 남해유치원이다. 이 곳의 첫 입학생은 1988년~1991년생으로 첫 졸업생이 35~36세일 정도로 역사가 짧다. 남해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3년~197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0~51세이다.

삼천포와는 바다로 가로막혀 시가지가 확장되지 못한 탓에 1960년대 13만 5,131명이던 인구가 2021년 4만 2,958명으로 줄었고[202], 이러한 인구 감소로 인해 사립유치원은 없다. 이런 이유로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들 중에서는 서천군, 고성군, 울진군, 하동군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군이 되었다. (1위 서천군 53,125명, 2위 고성군 52,058명, 3위 울진군 49,526명, 4위 하동군 46,146명, 5위 남해군 43,479명, 6위 신안군 40,122명) 남해군 자체에 사립유치원이 없는 것은 물론 바로 이웃한 하동군에도 사립유치원이 없다는 점 때문에 남해군의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남해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사천, 진주 등지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또한 남해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다른 지역의 대학[203]에서 유아교육과를 전공하고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어도 임용고시를 보지 않으면 고향에서 근무하지 못하고 아예 진주 등 주변 도시의 유치원으로 가야 한다. 현재 남해군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은 사천시 벌리동에 있는 꽃나라유치원이다. 그나마 눈은 잘 오지 않아 눈으로 인한 휴원은 드물지만, 태풍으로 인한 휴원은 더 많다.

경상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남해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강-하-장-조-류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그나마 그 류씨들 대부분이 진주 류씨다.

배구선수 임명옥과 스켈레톤 선수 윤성빈[204]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 경상북도[편집]



5.1. 김천시[편집]


1920년 설립된 금릉유치원이 최초이다. 김천시가 아직 김천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으며, 소재지는 현재의 김천시 남산동이다. 이 곳은 대구를 제외한 경상북도에서 최초로 개원한 유치원이다. 1928년 총독부로부터 인가를 받고 초대 원장으로 이정득이 부임하였으며, 6.25 전쟁 때 원사가 소실되는 바람에 현재는 폐원. 금릉유치원을 기억하는 사람은 대체로 80대 이상, 아무리 나이가 적어도 70대 중후반인 어르신들이다. 김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4년~191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9~110세이다. 참고로 이 지역은 국회의원을 1명만 뽑을 수 있는 지역들 중 유치원이 가장 일찍 들어왔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인을 위한 유치원이 지금의 김천시 황금동에 설립됐다. 이를 보면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서부 지역의 중심지가 김천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205]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47년 9월 26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 김천황금성당 부설로 설립된 마리아유치원이다. 이 곳의 첫 원생들은 1941년~1943년생으로 첫 졸업생이 현재 82~83세의 노인이 됐다. 과거에는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 (당시 선산군), 상주 (당시 상주군), 칠곡에 사는 아이들은 물론, 심지어는 충청북도 영동[206]에 사는 아이들도 경부선, 경북선 기차를 타고 원정 통학하기도 했다. 한편, 김천에서도 아직까지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아 있는 옛 금릉군 지역에는 1980년대에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됐다.


사립유치원은 김천 시내에 9곳, 율곡동에 2곳 있으며 나머지 읍면 지역에는 없다. 그래도 과천시보다는 많다 조선 시대 군현별로 보면 김산군, 개령현 지역에만 사립유치원에 있고, 지례현이었던 동네에는 없는 셈. 게다가 농소면[207], 남면[208]에는 교육기관이 아예 없다. 이는 1960년대 20만 9,827명이던 인구가 2000년 14만 9,864명으로 줄고 2001년 15만 858명으로 잠깐 15만 명대를 회복한 뒤 2010년 2월 13만 5,632명까지 줄었다가 2021년 14만 548명으로 회복되는 등 인구 증감을 반복하지만[209]사립유치원 수는 거의 그대로인 것이다.

김천소년교도소가 있는 지역답게 지역의 유치원에는 교정직공무원의 자녀도 있다.

유도선수 최민호가 김천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10] 김재범 역시 김천에서 유치원 생활을 했다.

김천시 역시 정씨가 최씨보다 많아[211] 원생이나 교사의 성씨 중 정씨인 경우가 최씨보다 더 많은 편이며, 경상북도 지역이지만 권(權)씨는 상대적으로 적다. 실제 김천에서도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강, 임, 장, 전, 윤씨 순서이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2. 울진군[편집]


1922년 설립된 동명유치원이 최초로, 울진군이 강원도 (현 강원특별자치도) 관할이던 시기에 울진교회 부설로 개원했다. 울진군이 강원도이던 시절에는 동명유치원이 강원도 영동 지방[212]에서 최초로 개원한 유치원이었으나, 1963년 울진군이 경북으로 넘어가면서 이 타이틀은 1923년에 개원한 강릉시의 금천유치원이 가져갔다. 울진군의 인구 감소로 원생을 모집하기 힘들어진 현재는 폐원되었고,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81년 설립된 울진남부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이렇게 사립유치원이 아예 없기 때문에 울진에서 유치원 추첨에 다 떨어진 아이들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로 넘어가서[213] 유치원을 다니는 경우가 있다. 울진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6년~1918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7~108세이다. 울진군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의 다솔유치원으로 울진군청에서 차로 48분 정도 소요된다.

1916년~1956년생들은 강원도 울진군 소속일 때 입학해서 졸업까지 했고, 1957년생과 1958년생은 강원도 울진군일 때 입학해서 경상북도 울진군일 때 졸업했으며, 1959년생부터는 경상북도 울진군 소속일 때 입학해서 졸업까지 했다.[214]

이후 울진군이 강원도였던 시절인 1951년에는 울진유치원[215], 1954년에 동림사 부설 동림유치원이 개원되었는데, 셋 다 울진읍에 있다.

경상북도인데도 지역적 특성상 폭설에 의한 휴원이 잦아, 울진이 고향인 사람들은 유치원 시절 겨울마다 제설차가 자신이 다니던 유치원 앞으로 지나갈 정도라고 한다. 또한 남씨 성을 가진 원생과 교사들도 많아서, 유치원 3년 다닐 동안 만났던 선생님이 모두 남씨였거나, 적어도 남씨 성 가진 선생님을 한 번쯤은 만나 봤다는 이야기도 할 정도이다. (물론 본관은 거의 영양 남씨) 여기에 주씨도 많아서, 울진에서는 주씨 성을 가진 원생과 교사가 반드시 한 명은 있을 정도이다. 실제 울진군 10대 성씨도 김, 이, 박, 장, 최, 황, 남, 정, 임, 전씨로 남씨가 무려 7위이다.

사립유치원은 2곳 있는데, 울진읍 고성리와 후포면 삼율리에 하나씩 있다. 물론 현재는 모두 휴원 중이라 실제 영업하는 곳은 없다. 이런 이유로 울진군의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삼척 등지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당연히 울진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다른 지역의 대학[216]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고, 사립유치원에서 근무하고 싶으면 고향을 떠나거나, 포항, 삼척 등지로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할 정도이다. 현재 울진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에 있어 사립유치원을 다니기 위해 매일 도 경계를 넘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 평해에도 없는 사립유치원이 후포에는 있었다. 이는 평해읍보다 후포면의 인구가 더 많은 도시 구조[217] 때문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지리적인 불리함[218]으로 인한 개발 저조와 그에 따른 인구 감소인데, 1960년대 11만 7,426명이던 인구가 2021년 4만 8,716명으로 줄면서 사립유치원이 2곳으로 줄었고 그나마도 무기한 휴원 중이다.

탤런트 이신애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3. 의성군[편집]


1922년 의성읍 도동리 의성교회 부설로 설립된 의성유치원이 최초이며, 현재는 폐원되었다. 시골치고는 상당히 빨리 유치원이 들어왔는데[219], 북한 치하로 넘어간[220] 개성을 제외한 경기도의 도시들 중 의성군보다 먼저 유치원이 들어온 곳은 없다. 또한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서 유치원이 가장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221] 의성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6년~1918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7~108세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62년 설립된 에덴유치원이다. 사립유치원은 2곳 있는데, 그나마도 도리원, 안계면[222]을 위시한 의성군 서부에는 없다. (심지어 단북면[223], 사곡면[224], 안사면[225]에는 교육기관 자체가 없다.) 의성읍 도동리에 1곳, 금성면 탑리리에 1곳 있었으나 금성면에 있던 것은 폐원돼 하나만 남았다. 군위군청송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어서 군위, 청송에 사는 아이들이 사립유치원을 다니기 위해 의성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한다. 다만, 의성군에는 대학이 없어서 의성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모두 다른 지역의 대학을 졸업했는데, 주로 거리상 가까운 도시인 대구[226]안동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의성으로 발령받고 온다.[227]

이렇게 된 이유는 지형상의 이유로 안동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해 안동, 대구, 서울 등지로 인구가 끊임없이 유출되어 1960년대 20만 3,753명이었던 인구가 2021년 5만 1,724명까지 줄어들었고[228], 이로 인한 경영 악화로 문을 닫는 사립유치원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 단촌면, 금성면 등 의성군 동부의 면에서는 안동이나 의성읍 에덴유치원으로, 다인면[229] 등 의성군 서부의 면에서는 상주로 많이 간다.

경상북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의성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권-최-정-신-장-오-황 순서라 최씨보다 권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그나마 그 권씨는 대부분 안동 권씨[230], 정씨는 대부분 동래 정씨[231]이다.

팀 킴의 컬링선수 중 김영미, 김선영, 김경애, 김은정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다만, 나머지 하나는 의정부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4. 포항시[편집]


1922년 지금의 북구 중앙동[232]에 포항유치원[233]이 설립됐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소실되면서 현재는 폐원됐다. 현존하는 곳 중에는 1947년 설립된 구룡포유치원이 최초로, 두 곳 모두 포항시가 아직 영일군이었던 시절에 개원되었다. 이후 1955년 북구 용흥동에 포항제일유치원이 설립되는 등 포항 시가지를 재건하면서 본격적으로 유치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부 수립 이전에 포항 시내는 물론 남구 구룡포읍에까지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포항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6년~1918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7~108세이다.

  • 남구: 1947년 구룡포유치원. 도농통합 이전의 영일군 지역 최초의 유치원이기도 하다. 첫 입학생은 1941년~1943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82~83세이다.

경주와 인접한 지리적 특성상 포항의 유치원에서는 경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많다. 이는 포항뿐 아니라 대구, 영천, 경산, 울산 등 경주에서 가까운 지역에서는 이렇게 경주월드까지 끼워서 하루 만에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23년 포항시의 한 유치원은 노란버스법 때문에 전세버스를 구하지 못하자 대구광역시 동구의 아쿠아리움 현장학습을 KTX로 가는 일이 있었다.

지리적인 특성상 태풍으로 인한 휴원이 상대적으로 잦은 편이다. 경주시에서 오는 원정 통학생들이 많은 편인데, 경주시는 개발을 하려고 땅만 파면 신라 시대 문화재들이 쏟아져 나와 개발이 더뎌 안강읍이나 강동면에 사는 아이들이 포항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도 있고[234], 교통이 발달한 현재는 영덕군 남정면, 강구면, 영덕읍은 물론, 더 멀리 있는 울진군[235]에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한다. 또한 울릉군이 고향이지만 유치원을 다녀 본 적이 있는 50대 중반 이상인 어른들은 대부분 포항으로 와서 다녔을 정도이다.

사립유치원은 58곳이 있고, 시내, 흥해읍, 오천읍[236]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27만 4,274명이던 인구가 2021년 50만 2,916명까지 늘면서[237]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포항은 전국에서 금씨[238], 편씨[239], 황보씨[240] 인구가 가장 많아서, 서울보다 금씨, 편씨, 황보씨 성을 가진 원생이나 교사가 많을 정도. 다만 이 세 성씨는 중하위권에 속하는데 포항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권-강-윤-장-서씨 순서이다. 경상북도답게 권씨가 상당히 많아 이 동네의 유치원에서는 권씨 성을 가진 원생이나 교사가 많은 편이다.

가수 박화요비, 축구선수 이동국김승대는 포항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5. 영주시[편집]


1924년 풍기성내교회에서 풍기읍 성내리에 박애유치원을 설립했으나 현재는 폐원됐고 현존하는 곳 중에는 1960년 설립된 영주유치원이 최초로, 영주시가 아직 영주군이었던 시절에 영주동 영주제일교회 부설로 개원했다. 설립 초기에는 봉화군 봉화읍에서 영동선 열차를 타고 영주유치원까지 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1918년~1920년생이 영주시 최초의 유치원생이었는데, 첫 졸업생의 나이가 벌써 105~106세가 됐을 만큼 유서가 깊다.

사립유치원은 8곳 있다. 읍, 면 지역에는 없고 모두 시내에 몰려 있다. 경기도에도 여기보다 사립유치원이 적은 시(과천시)가 있을 정도. 아직도 시골인 지역이 많은 도농통합 이전의 영풍군 지역에는 풍기읍 정도를 제외하면 1970년대까지도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 영주시 지역: 1960년 영주유치원. 첫 입학생은 1954년~1956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69~70세이다.

1960년대 15만 5,704명이던 인구가 1975년 17만 3,856명까지 늘었다가 2021년 10만 3,119명으로 줄면서[241] 사립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경상북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영주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권-정-최-강-장-임-안 순서라 조씨보다 권, 안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인근 단양군에 사립유치원이 없어서 단양에 사는 아이들이 사립유치원을 다니기 위해[242], 또 봉화군에 사립유치원이 하나밖에 없어[243] 봉화성심유치원 추첨에서 탈락한 봉화 (주로 봉화읍.[244]) 아이들이 사립유치원을 찾아 영주로 원정 오는 수요도 있다. 이들은 KTX-이음, 무궁화호, 버스 등을 이용해서 원정을 온다.

미스코리아 출신 대학교수로 유명한 금나나가 영주에서 유치원을 다녔다.[245]

2021년 10월 21일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가 1명 발생했다..



5.6. 영덕군[편집]


1924년 영덕읍교회 부설 신성유치원이 최초였으나, 인구 감소로 현재는 휴원 상태이며 소재지는 영덕읍 우곡리[246]였다. 원생들은 거의 영덕읍 덕곡리, 우곡리, 남석리에서 왔다고 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67년 천주교 안동교구 영덕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심유치원이며, 영해면 괴시리에 있던 영재유치원이 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인한 경영난으로 폐원된 이후 이 곳이 영덕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이 되었다. 영덕읍 덕곡리에 있었으나, 원생 수 감소에 따른 경영난으로 2023년 폐원되면서 1981년 군내 각 초등학교에 설립된 병설유치원이 현존하는 최초의 유치원이 되었다. 교육기관이 없는 달산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에는 공립 병설유치원만 있다. 1918년~1920년생이 첫 원생으로, 첫 졸업생들은 살아 있다면 105~106세의 어르신이 됐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영덕읍 성심유치원의 주 수요층은 영덕읍 남석리, 우곡리, 덕곡리, 화개리, 남산리 정도이며 멀리서는 지품면[247], 달산면, 강구면, 축산면에서도 오기는 하나 드물다. 다만, 교사들은 모두 수도권이나 대구 등 다른 지역의 대학을 졸업한 뒤 이 곳으로 왔는데 영덕에는 대학이 없기 때문이다. 2023년 영덕군이 경상북도에서 5번째로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하면서 영덕군에 거주하는 유아들은 안동, 포항 등지로 가야 사립유치원을 다닐 수 있다. 현재 영덕군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은 포항시 북구 장성동의 꽃동산유치원으로 영덕군청에서 차로 40분 걸린다.

이렇게 된 이유는 지리적인 이유에 의한 개발의 불리함[248]과 그에 따른 적은 인구의 영향이 크다. 포항 시가지가 영덕까지 확장되지 못한 데다 영덕군 자체의 인구가 1960년대의 11만 9,191명에서 2001년 4만 9,593명으로 줄고, 2002년 5만 2,602명으로 잠깐 5만 명대를 회복한 뒤 하향 일변도를 타면서 2021년 3만 7,096명으로 감소했고[249], 그로 인해 영덕군 내부의 사립유치원들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으면서 사립유치원 수가 1곳으로 줄어들게 만든 원인이다. 이런 이유로 면에 사는 아이들은 병설유치원을 다니고[250], 남정면에서는 아예 포항까지 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니기도 한다.[251]

영덕군의 유치원들은 삼사해상공원으로 소풍을 많이 가고, 아예 경주로 가기도 한다.

영덕의 유치원에는 영해 박씨, 영양 남씨, 평산 신씨[252], 진성 이씨 (진보 이씨), 평해 황씨, 경주 최씨, 안동 권씨 성을 가진 원생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한다. 또한 권씨, 신씨, 남씨도 서울보다는 많은 편이다. 어느 정도냐면, 영덕군 상위 10개 성씨가 김-이-박-최-권-신-정-윤-강-남 순서일 정도.[253]

축구선수 김진규는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254] 그 외에 축구선수 손준호[255]도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7. 고령군[편집]


1937년 고령읍교회 부설로 설립된 고령유치원이 최초로, 포항시경주시는 물론 경기도의 어지간한 시들에 비해 빨리 설립되었다. 고령유치원은 1964년 7월 14일 경상북도교육청제1호 정식 유치원으로 인가받았다. 대가야읍 지산리[256] 소재였다. 첫 원생이 1931년~1933년생으로, 고령유치원 첫 졸업생들은 현재 92~93세의 어르신이 됐다.

현재 고령유치원은 폐원되고 없으며, 고령군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81년 설립된 다산초등학교 병설유치원과 우곡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이 두 곳의 첫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이 48~49세가 된다.

사립유치원은 3곳 있으며, 대가야읍 (舊 고령읍)에 2곳, 다산면에 1곳 있는데, 리 단위까지 내려가면 대가야읍 지산리에 1곳, 대가야읍 연조리에 1곳, 다산면 상곡리에 1곳 있다. 낙동강이 대구와 고령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 대구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해 사립유치원이 들어올 정도로 인구가 유입되지 않아서 1960년대 7만 6,093명이던 인구가 2021년 3만 1,361명까지 줄어들어[257] 사립유치원의 경영이 날이 갈수록 악화돼 사립유치원의 숫자가 이렇게 적은 것이다. 심지어 다산면 호촌리, 곽촌리에 사는 아이들은 아예 낙동강을 건너 대구에 있는 유치원으로 가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고령군에는 대학교가 없어서[258] 고령군 출신의 학생이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으면 다른 지역[259]에서 대학을 나온 뒤 고령으로 돌아와야 하며, 다른 선택지는 방통대나 사이버대학 진학밖에 없다.

경상도에서는 그나마 고령 신씨[260]인 원생을 많이 볼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배씨 성을 가진 원생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261] 실제로 고령군 10대 성씨는 김-이-박-최-정-배-서-권-전-조씨이다.

배우 조선옥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8. 경주시[편집]


1942년 지금의 경주시 노서동에 난곡보육재단에서 설립한 경주유치원이 최초였으나, 1945년 8월 8.15 광복과 함께 폐원되었고, 1946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에서 설립한 근화유치원이 최초이다. 충청남도 공주시에도 같은 이름의 유치원이 있는데, 공주 근화유치원 역시 가톨릭계 유치원이다(천주교 대전교구 중동성당 부설). 경주에서 유치원을 처음 다닌 사람들은 1936년~1938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은 현재 87~88세이다. 경주에 남아 있는 유치원들 중 가장 오래된 곳인 근화유치원의 첫 입학생들은 1940년~1942년생이며, 첫 졸업생들이 이미 83~84세의 노인이 됐을 정도로 오래된 유치원으로 경주시가 아직 경주군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경주시 용강동에 설립되었다.

그 당시 안강읍, 외동읍, 울산광역시 북구 등에 살던 아이들이 동해선 열차를, 건천읍이나 영천에 살던 아이들이 중앙선 열차를 타고 원정 통학을 했을 정도이다.[262] 이는 당시 영천, 경주, 포항, 울산, 영덕 등을 아우르는 경상도 동부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가 경주[263]였기 때문이다.1970년대 산업화와 함께 포항시, 울산광역시가 공업도시로 개발되는 동안 경주에서는 땅만 파면 신라 시대 문화재들이 쏟아져 나와[264] 개발이 더뎌지면서 경주에 사는 사람들이 포항이나 울산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아침 시간대에 경주시 안강읍, 강동면을 가면 포항의 유치원 버스가[265], 외동읍에 가면 울산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다. 심지어 감포읍[266], 문무대왕면에서는 아예 시내로 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반면, 아직도 시골인 옛 경주군 지역에는 1970년대에야 겨우 유치원 하나가 들어왔다.

  • 경주군 지역: 1978년 안강제일유치원. 당시 월성군 안강읍. 첫 입학생은 1972년~1974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1~52세이다.

사립유치원은 18곳 있고, 시내, 안강읍, 강동면, 외동읍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29만 1,676명이던 인구가 2021년 25만 3,502명으로 줄었지만[267]유치원 수는 되려 늘어났다.

경주시에는 경주월드 등 관광지들이 매우 많아서 경주의 관광지에는 경주시 관내 유치원뿐 아니라 영천시, 포항시, 울산광역시 등 주변 도시는 물론, 심하게는 영덕군, 청송군, 경산시, 대구광역시에서도 경주로 소풍을 올 정도이다.[268]

경상도 자체가 기독교세가 약한 지역이라고 하지만, 경주시는 그 중 기독교 세력이 매우 빈약해 기독교를 믿는 원생의 수가 드물다. 경상북도의 여느 시군이 그렇듯 이 곳도 유치원생 중 권씨가 많은 편인데 경주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권, 손, 윤, 서, 강씨 순서이다. 이는 경주 손씨들이 경주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수 선미와 야구선수 최채흥[269]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9. 칠곡군[편집]


1948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왜관성당 부설로 설립된 순심유치원이 최초이다. 인근 순심여자중학교, 순심여자고등학교, 순심중학교, 순심고등학교도 모두 가톨릭 미션스쿨이다. 소재지는 왜관읍 왜관리이다. 칠곡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2년~1944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81~82세이다. 개원 당시에는 시골이었던 선산군 구미면[270]에서도 원정을 왔다고 한다. 이는 구미에 유치원이 들어온 시기가 1968년이었으나 칠곡은 20년 빨랐기 때문이며, 그나마도 유치원 교육의 혜택을 받은 지역은 칠곡군 약목면, 왜관읍, 석적면[271], 북삼면[272], 지천면 그리고 선산군 구미면[273] 정도였다. 나머지 가산면, 동명면, 기산면 지역에 살던 유아들은 1970년대에 와서야 유치원에 다녀 볼 수 있었다.

1960년대 11만 8,092명[274]이던 칠곡군의 인구는 인동면[275]과 칠곡읍[276]이 각각 구미, 대구로 편입돼 그만큼 인구가 빠져 나가[277], 1990년 7만 8,943명으로 줄었다가 2015년 12만 6,105명까지 늘어난 뒤 계속 감소해 2021년 11만 4,758명으로 감소하는 등 인구 증감을 반복하고 있다.[278] 그런 작은 군 지역치고는 사립유치원이 많은데, 총 12곳이다. 읍내에만 사립유치원이 몰려 있는 웬만한 군들과는 달리 북삼읍, 석적읍, 왜관읍은 물론 약목면 관호리에도 있다. 북삼읍은 구미와 연담화되어 있어, 여기에 사는 아이들이 구미에 있는 유치원에 다니는 경우도 있으며 멀리는 약목면[279], 기산면, 석적읍에서도 온다. 드물게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위군[280]이나 달성군 하빈면에서 여기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있고, 성주군 선남면에서도 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이유로 칠곡군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 중 일부가 구미나 대구에 주소를 둔 경우도 있고[281], 왜관읍, 북삼읍, 석적읍, 약목면, 기산면에서는 구미의 유치원 버스를, 가산면, 동명면, 지천면에서는 대구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다. 칠곡군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경북과학대학교 출신이거나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많다.

향후 칠곡군이 대구의 베드타운화가 가속화될 경우 지천면, 동명면에도 사립유치원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칠곡유치원은 칠곡군에 없고, 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다. 사실 이 곳은 1978년 설립할 당시에는 행정구역이 경상북도 칠곡군 칠곡면이어서 소재지와 맞았으나, 칠곡면이 칠곡읍을 거쳐 대구직할시[282] 북구로 편입되면서 소재지에 맞지 않게 된 것이다.

경상북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칠곡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장-권-강-조-윤 순서라 조씨보다 장, 권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이는 인동 장씨의 인동이 과거 칠곡군 소속이었고 지금도 칠곡군에 집성촌이 있기 때문.

축구선수 곽태휘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또한, 신현준은 1972~1974년에[283] 유치원생이었다.

2020년 2월과 3월에는 칠곡군 왜관읍에서 근무하는 병설유치원 교사 2명[284]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2021년 12월 7일에는 무지개유치원 원생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5.10. 안동시[편집]


1948년 안동교회 부설로 설립된 안동유치원이 최초로, 안동시가 아직 안동군이었던 시절 지금의 안동시 화성동에 개원했다. 첫 입학생은 1942년~1944년생이고, 첫 졸업생들이 현재 81~82세가 되어 벌써 팔순에 가까울 만큼 전통 있는 유치원으로 1950년 소실되었으나, 1953년 재건을 거쳐 1994년에 원사를 신축하였고, 2008년에 현재의 원사를 신축하였다. 반면 안동에서도 시골인 통합 이전의 안동군 지역에는 1970년대가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이들은 버스나 중앙선 열차 등을 타고 안동 시내에 있는 유치원으로 가야 했다. 심지어 의성군 등 안동 주변의 군 지역에서 원정 오는 경우도 있었다. 주로 의성군 단촌면에 살던 아이들이 그랬다고 한다. 물론 현재는 교통의 발달로 더 멀리 있는 청송군[285], 영양군[286], 예천군, 봉화군, 영주시[287]에서 원정 오는 건수도 드물게나마 있다.


사립유치원은 9곳 있고 9곳 모두 시내에만 있다. 특이하게 경북도청이 있는 풍천면에는 사립유치원이 없고 공립 단설 및 병설유치원이 1곳씩 있다. 사실상 안동시 풍천면과 홍성군 홍북읍을 제외한 나머지 도청소재지에는 모두 사립유치원이 있는 셈이다. 시내에는 옥동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 인근에 공립 단설유치원이 1곳 있다. 안동댐, 임하댐 건설로 인한 수많은 자연마을들의 수몰[288]과 산업화에 따른 인구 유출로 1960년대 26만 2,008명이던 인구가 1970년대 27만 188명을 찍은 뒤 2021년 15만 8,907명으로 줄면서[289] 유치원도 줄었다.

안동시는 전국에서 권씨 비율이 가장 높아서[290] 안동 출신 중에는 자신이 유치원 시절 만났던 담임교사의 성이 모두 권씨였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냐면, 안동에 있는 유치원 중 일부 학급은 권씨 비율이 김씨보다 높은 곳도 있을 정도이다. 그 외 안동 김씨[291], 진성 이씨, 풍산 류씨, 의성 김씨 성을 가진 원생들도 있을 정도. 실제 안동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권, 박, 최, 정, 강, 조, 임, 장씨 순서이다. 때문에 항렬을 매우 철저히 따랐던 과거에는 유치원에서 동갑내기 친구를 '할아버지'라고 부르거나 친구에게 '할아버지'라고 불리는[292] 경우도 있었을 정도이다.

웹툰 작가 엉덩국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293]

2021년 1월 28일 안동시의 유치원생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9월 26일에도 2명이 확잔됐다.


5.11. 상주시[편집]


1949년 지금의 상주시 서성동 (舊 상주읍 서성동)에 설립된 상주유치원이 최초로, 상주시가 아직 상주군이었던 시절에 개원되었다. 하지만 1928년에 상주읍교회에서 유치원 인가를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로 인해 상주보다 인구가 많은 경기도의 어지간한 도시들도 상주보다 유치원이 늦게 들어온 것이 된다. 상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2년~1944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81~82세이다. 한편 상주에서도 시골인 지역이 남아 있는 도농통합 이전의 상주군 지역에는 1980년대가 돼서야 유치원이 들어왔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인근 문경시[294]에서 버스나 경북선 열차를 타고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고, 반대로 상주시 함창읍, 공검면, 이안면에서 문경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충청북도 보은에서의 원정 통학은 그 건수가 적었는데, 보은에서 상주로 가려면 속리산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2010년대에는 서산영덕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가 상주를 지나는 등 교통의 발달로 충청북도 보은군[295], 경상북도 의성군[296]에서 상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늘고, 또한 상주에서 유치원 추첨에 다 떨어진 아이들은 차선책으로 김천시, 구미시 등지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한다. 애초에 김천이나 구미는 상주보다 유치원이 많아서 상주시 거주 유아들이 사립유치원을 찾아서 원정을 떠나기도 할 정도이다.

  • 상주군 지역: 1981년 함창초등학교 병설유치원, 화동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상주군 상주읍이 상주시로 승격되기 전에 설립됐다.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관내에 있는 사립유치원 6곳은 모두 시내에만 있다. 즉, 교육기관 자체가 없는 화남면을 제외한 나머지 읍면 지역에는 공립 병설유치원만 있다.

경상북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상주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안-조-장-윤-권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1960년대 25만 602명이던 인구가 2021년 9만 7,228명으로 줄면서[297] 지역 사립유치원의 경영상태가 악화되고 있고, 차후 상주시의 인구 감소가 계속되면 경영 악화로 문을 닫는 사립유치원의 숫자가 늘어날 듯.

농구선수 김진유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12. 예천군[편집]


1950년 교회 부설로 개원된 예천유치원이 최초이지만, 현재는 없다. 소재지는 예천군 예천읍 노하리이다. 예천군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81년 개원한 예성유치원인데, 공군부대 내에 있다.[298] 그래서 원생의 대다수가 제16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는 장교 또는 부사관의 자녀들이다.[299] 예성유치원에서 배출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가 됐다. 예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4년~194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9~80세이다. 1950년대~1960년대 출생인 공군 장교들 중 제16전투비행단으로 배치된 경우 이 유치원이 태어난 이후 방문한 최초의 유치원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1950~60년대 출생인 사람들이 유치원에 못 다닌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유치원이 드물었던 과거에는 경북선 열차나 버스를 타고 안동시, 영주시, 문경시 등 주변 도시로 원정 통학을 했다. 지금도 지보면, 풍양면은 문경시로 원정 통학을 하는 건수가 많은데 지보면은 지보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풍양면은 풍양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유일한 유치원이라 사립을 보내려면 그나마 가까운 문경으로 가야 했기 때문.

1960년대 16만 2,527명이던 인구가 2010년 4만 3,015명까지 줄어든 뒤 2021년 5만 5,613명으로 회복했는데도[300] 사립유치원 숫자가 줄어 현재 사립유치원은 유천면의 예성유치원과 예천읍의 룸비니유치원(불교) 2곳뿐이지만, 향후 인구가 증가할 경우 호명면[301]에 사립유치원이 생길 수도 있다. 교육기관이 없는 개포면[302], 보문면[303]과 사립유치원이 있는 유천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에는 병설유치원만 있다. 2020년 현재는 사립유치원이 있으나 규모가 작고[304], 호명면에는 설립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공립 단설유치원은 호명면에 3곳 있는데, 2곳은 경상북도청신도시 안에, 나머지 1곳은 호명면 소재지에 있다.

안동시의 영향으로 원생과 교사 중 권씨 성[305]을 가진 경우가 은근히 많은데 어느 정도냐면 예천군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권, 최, 정, 윤, 장, 황, 임 순서로 권씨가 최씨보다 많다.[306] 또한 예천군은 지척의 안동시의 영향을 깊숙히 받아 아동의 남녀 성비가 남초 쪽으로 기울어서 군내 유치원들은 대다수가 남초이다.

양궁선수 윤옥희김제덕[307]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13. 문경시[편집]


1950년 설립된 점촌유치원이 최초로, 문경시가 아직 문경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1944년생부터 1946년생까지를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이 현재 79~80세의 노인이 되었을 정도이다. 과거에는 상주시 함창읍, 공검면, 이안면이나 예천군 용궁면, 개포면에서 원정 통학을 왔을 정도이다,

사립유치원은 7곳 있으며, 그 중 5곳이 시내인 점촌(옛 점촌시 지역)에 몰려 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유치원은 1971년 개원한 상지유치원이다. 문경에서도 아직까지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아 있는 옛 문경군 지역에는 1980년대가 돼서야 겨우 유치원이 들어왔다.


광업이 흥하던 시절에는 문경읍가은읍에도 사립유치원이 있었으나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폐원되었다.

1960년대에 15만 8,783명이던 인구가 1975년 16만 1,018명까지 늘었다가 7만 1,406명으로 감소해[308] 지역 사립유치원의 경영이 악화되었고, 문경시의 인구가 계속 감소하면 경영 악화로 문을 닫는 사립유치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전국에서 전씨[309]가 가장 많아 유치원생 중 錢씨 성을 가진 경우를 보기 쉬운 편이다. 다만, 이 성씨는 상위권에 들지 못했는데 문경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권, 최, 신, 장, 황, 임씨 순서이다.

가수 루나와 공신닷컴 설립자 강성태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14. 영천시[편집]


1951년 설립된 샛별유치원이 최초로, 영천시가 아직 영천군이었던 시절에 현재의 영천시 성내동에 개원했다. 영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5년~194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8~79세이다. 그 전에는 중앙선이나 대구선 기차를 타고 대구경주 등지로 원정을 떠났고, 드물게 군위군 산성면[310]에서 기차를 타고 원정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영천에는 전국에서 황보씨들이 많이 살아서[311], 영천에 있는 유치원에는 황보씨가 한둘은 꼭 있을 정도이다. 다만, 황보씨는 상위권에 못 들었는데 영천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권, 조, 윤, 서, 손씨인데 여기서 조씨는 '조나라 조'자를 쓰지 않고 '무리 조' (성 조)자를 쓴다.

경주시와 인접한 지리적 특성상 영천의 유치원에서는 경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구, 포항, 영천, 울산 등 경주와 가까운 지역에서는 경주월드를 끼워서 당일치기로 경주를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천은 대구광역시의 베드타운에다 엄연한 인데도 불구하고 사립유치원의 개수가 어지간한 군 수준인 4곳에 불과하다. (심지어 대구광역시 달성군영천시보다 사립유치원이 5.5배나 많다.) 그리고 사립유치원도 모두 시내에만 있다. 교육기관 자체가 없는 자양면을 제외한 나머지 읍면 지역에는 병설유치원만 있는 셈. 영천에서도 시골인 지역이 많이 남아 있는 도농통합 이전의 영천군 지역에는 1970년대에야 유치원이 들어왔다.

  • 영천군 지역: 1974년 충성대유치원. 영천군 영천읍이 영천시로 승격되기 전에 설립됐다. 첫 입학생은 1968년~1970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5~56세이다.

1960년대 19만 8,471명이던 인구가 2021년 10만 2,015명으로 줄면서[312] 관내 사립유치원의 경영 상태가 악화되었다. 다만, 군위군 우보면, 산성면과 청송군 현동면에서 사립유치원을 찾아 원정 오는 아이들은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영천시도 사립유치원 없는 시가 될 수도 있다.

전직 프로게이머 손재범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15. 성주군[편집]


1951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성주성당 부설로 설립된 신성유치원이 최초이다. 성주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이며, 성주읍 경산리에 있다. 최초의 원생은 1945년~ 1947년생으로, 첫 졸업생이 벌써 78~79세의 어르신일 정도로 유서가 깊은 편이다.

영천시와 같은 해에 유치원이 들어왔다. 경북 남부에서는 이 곳보다 유치원이 늦게 설립된 곳이 경산시(!!!), 청도군, 구미시(!!!) 3곳이나 있다. (경북 남부에서 유치원이 설립된 순서는 김천-고령-경주-포항-칠곡-영천・성주-경산-청도-구미이다.) 경기도의 어지간한 시들은 여기보다 유치원이 늦게 들어왔다.

성주에 사립유치원이 하나밖에 없는 이유는 대구, 김천, 왜관 등과 가깝지만 이들 도시와는 산이나 강으로 가로막혀 시가지가 확장될 틈이 없어서 1960년대 12만 29명이던 인구가 2001년 5만 380명으로 줄고, 2002년 5만 1,761명으로 잠깐 회복한 뒤 2021년 4만 3,414명으로 줄어들었고[313], 따라서 사립유치원들이 경영 악화를 감수하고 성주에 추가로 설립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면에서 사는 아이들은 병설유치원이나 신성유치원으로 모이고, 선남면, 벽진면[314] 등 일부 면에서는 아예 김천시, 칠곡군[315], 대구광역시 등지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한다. 차후 성주군의 인구가 계속 감소하면 신성유치원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폐원되어 성주도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될 수도 있다. 이미 경상북도에 군위, 청송, 영양, 울진 4개 군에 사립유치원이 없으니 성주가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된다면 5번째가 된다. 성주군에는 대학교도 없어서 성주에 사는 사람이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으면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나온 뒤 성주로 돌아와야 한다. 굳이 성주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싶다면 방통대나 사이버대학을 가면 되겠지만.

성주는 전국에서 배씨 비율이 가장 높아서[316] 성주 출신들은 유치원 시절 한 반에 배씨인 원생이 꼭 몇 명은 있고, 심지어 유치원 시절 교사들 중 적어도 하나는 배씨였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는 실제 통계로도 증명되는데 성주군 상위 10개 성씨는 이, 김, 박, 정, 배, 최, 강, 장, 백, 여씨이다.

도경완과 하키선수 한혜령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16. 봉화군[편집]


1953년 봉화읍 내성리에 봉화제일교회 부설로 설립된 봉화유치원이 최초였으나 현재는 폐원되었다. 현존하는 곳 중에는 1969년 천주교 안동교구 봉화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심유치원이 최초이다. 봉화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이며, 봉화읍 내성리에 있다. 1947년~1949년생을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은 현재 76~77세가 됐다. 성심유치원이 설립되기 이전에는, 봉화읍에 사는 아이들이 봉화역에서 기차를 타고 영주에 있는 유치원으로 통학하는 경우도 있었고, 소천면[317]에 사는 아이들이 석포역에서 기차를 타고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의 유치원으로 통학하기도 했다. (그 때의 아이들이 지금은 50대 후반 이상이다.)

봉화군은 경상북도에 있지만 지리적인 이유로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은 편이며, 4월10월에도 눈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이다.[318] 기온이 낮아 4월과 10월에는 패딩을, 6월이나 8월 말에도 긴팔을 입는 원생이 있을 정도.[319]

경상북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봉화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권-정-최-강-장-안-임 순서라 조씨보다 권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봉화군 자체가 산지라 개발이 불리했고, 영주시 시가지가 지형상의 이유로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한 데다 교통까지 불편해서[320] 영주, 안동, 대구 등지로 끊임없이 인구가 유출돼 1960년대 11만 9,644명이었던 인구가 2021년 3만 1,494명으로 크게 줄어들어[321] 사립유치원들이 줄줄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아 1곳만 남게 되었다. 이대로라면 봉화읍 성심유치원이 경영 악화로 폐원되어 2020년대 안에 봉화군이 경상북도에서 5번째로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된다.[322] 봉화군에는 대학도 없어 봉화에서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고 싶으면 수도권이나 안동, 대구 등지로 가서 대학을 다닌 뒤 성심유치원에 취업하거나 임용고시를 봐서 합격하고 봉화군으로 발령받는 수밖에 없다.

축구선수 박병주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17. 경산시[편집]


1954년 설립된 경산유치원이 최초이다. 경산시가 아직 경산군이었고 대구 동구와 수성구의 일부분까지 관할하던 시절에 개원했다. 개원 초기에는 대구 고모동에서 기차로 통학하는 경우도 있었다(!). 1948년~1950년생을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들의 나이가 현재 75~76세로, 이미 노인이 됐다. 과거에는 하양읍에서 대구선 열차를 타고 대구로 유치원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현재는 교통의 발달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사월동,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은 물론 멀리 청도군에서도 원정 통학을 온다.

대구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상 경산의 유치원에서는 대구 이월드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경주로 가는 경우도 그나마 좀 있다.

사립유치원은 39곳 있는데, 면에는 없다. 심지어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압량읍[323]에도 없다. 시내, 진량읍, 하양읍에 몰려 있다. 하양읍, 진량읍, 압량읍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시골인 도농통합 이전의 경산군에는 1980년대에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되었다.[324]

  • 경산군 지역: 1981년 와촌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진량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청천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1960년대 15만 9,744명이던 인구는, 안심읍[325]과 고산면[326]을 각각 대구광역시 동구와 수성구에 내 준 이후인 1985년 13만 9,652명까지 줄었다가 2021년 26만 3,728명으로 늘면서[327]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경상북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경산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권-서-윤-장-강 순서라 조씨보다 권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철권 프로게이머 배재민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0년 8월 23일에 경산중앙유치원 원아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으나, 8월 24일과 25일 양일에 걸쳐 진행된 검사에서 다른 원생과 교사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지 않았다.



5.18. 청도군[편집]


1963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청도성당 부설로 설립된 청도성모유치원이 최초이다. 청도에 3곳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이다. 2곳은 청도읍 고수리, 1곳은 화양읍 범곡리에 있다. 이는 1979년 청도읍 고수리에서 화양읍 범곡리[328]로 군청을 이전한 영향으로, 청도군 인구의 대부분이 청도읍과 화양읍에 몰린[329] 도시 구조 때문이다. 때문에 2018년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이 사라진 이후로 교육기관이 없는 운문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 지역에는 공립 병설유치원만 있다. 청도성모유치원이 설립되기 이전에는 청도군에 사는 아이들이 경부선 열차를 타고 대구밀양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다만, 청도군의 지리적 특성[330]상 대구보다는 밀양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청도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7년~1959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66~67세이다. 경기도의 어지간한 도시들과, 서울의 일부 자치구들이 1970년대 이후에야 유치원을 설립한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빠르다.

청도군 자체의 인구가 1960년대의 12만 1,985명에서 2021년 4만 2,263명으로 감소하고[331], 비슬산최정산 등으로 가로막힌 지형상의 이유로 대구광역시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한 게[332] 청도의 사립유치원 숫자를 줄인 원인이다. 게다가 대학도 없어 청도에서 근무하는 유치원 교사들은 절대다수가 수도권이나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고 고향에서 근무하기 위해 돌아왔거나 임용고시를 봐서 합격한 뒤 청도군으로 발령을 받은 사람들이다.

청도군은 전국에서 예씨 인구가 가장 많아[333] 청도의 유치원에서는 예씨 성 가진 원생 보기가 서울보다는 상대적으로 쉽다. 다만, 그 청도군조차 예씨는 순위가 12위인데 청도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장, 서, 강, 손, 조씨이다. 사실상 경상북도에서 유일하게 권씨가 상위 10위에 못 드는 지역인 셈.

아나운서 윤재희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또한 김민경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으나, 대구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19. 구미시[편집]


1968년 설립된 선산유치원이 최초로, 구미시가 아직 선산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구미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62년~1964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61~62세이다.

특이하게 구미 시내(옛 선산군 구미읍+칠곡군 인동면)보다 선산읍에 먼저 유치원이 설립되었는데, 당시 선산군의 중심지는 현재의 구미 시내(옛 구미읍)가 아닌 선산읍(당시 선산면)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 구미 시내에는 선산유치원이 설립되고 3년이 지나서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이 곳의 첫 원생은 1965년~1967년생이며, 첫 졸업생이 현재는 58~59세이다.

  • 구미시 지역: 1971년 구미유치원. 선산군 구미읍 도량리(현 구미시 도량동)에 개원했으며, 구미 시내 최초의 유치원이다. 첫 입학생은 1965년~196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8~59세이다.
  • 구미시 강동 지역: 1981년 장천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선산군 장천면.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1968년 구미에 처음 유치원이 들어온 뒤 1990년대까지는 주로 강서 지역에 유치원이 설립됐으나[334] 1990년대 말부터 강동 지역에도 유치원이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다.

사립유치원은 경북에서 가장 많은 64곳이다. 시내 외에 선산읍, 고아읍, 산동읍 등지에도 분산되어 있다. 이는 특례가 없는 일반시들 중 가장 많은 수준이다. 2021년 산동면을 산동읍으로 승격하면서 남양주시, 용인시 등과 함께 면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는 시가 되었다. 과거에는 구미에 사는 아이들이 경부선 기차나 버스를 타고 김천의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한 적이 있었으나, 박정희의 구미시 육성 정책[335] 등의 영향으로 인해 현재는 역전되어서[336]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반대로 칠곡에서의 원정 통학은 지금도 많이 이뤄지고 있으며, 칠곡군 북삼읍에 사는 아이들이 자기 동네에서의 유치원 추첨에서 떨어지면 차선책으로 구미의 유치원에 가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김천시 아포읍, 칠곡군 북삼읍석적읍, 대구광역시 군위군 소보면•군위읍에서도 구미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다.

또한 구미시 오태동은 칠곡군 북삼읍 인평리, 오평리에 인접해 있어[337] 칠곡군 북삼읍에 사는 아이가 구미의 유치원으로, 반대로 구미에 사는 아이가 칠곡군 북삼읍의 유치원으로 통학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338]다.

경상북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구미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장-권-강-윤-임 순서라 조씨보다 권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1960년대 11만 6,725명이던 인구가 2021년 41만 6,328명으로 늘면서[339]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야구선수 이수민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340]

2020년 5월 25일에 구미에서 킨더하바유치원 교사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으나 원생은 모두 음성이었다. 2021년 12월 18일에도 구미에서 유치원발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났다.

5.20. 영양군[편집]


1969년 천주교 안동교구 영양성당 부설로 설립된 영양성모유치원이 최초이지만 현재 폐원하면서 현존하는 곳은 1981년 군내 곳곳에 세워진 병설유치원들이다. 영양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이었으며, 영양읍 동부리에 있다. 교육기관이 없는 청기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에는 공립 병설유치원만 있다. 1963년~1965년생을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은 현재 60~61세가 됐다. 마지막 졸업생은 2014년생으로 현재 유치원생이다.

영양군은 경상북도에 있지만 폭설에 의한 휴원이 강원도 수준으로 잦은 편이다.[341]

이렇게 된 이유는 영양군의 낙후된 지역 환경[342] 때문이다. 안동 시가지가 지형상의 이유로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한 데다 교통까지 불편해서[343] 1960년대 6만 8,153명이었던 인구가 1979년 7만 791명을 찍은 뒤 계속 줄어들어, 2021년 1만 6,692명으로 크게 줄어드는 등 인구가 2만 명도 안 되는 탓에[344] 사립유치원이 줄줄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아서 1곳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현재 영양군의 어린이 인구는 1,058명으로 1,000명 선 지키기도 위태로운 상황인데, 이렇게 되면 2020년 영양군의 어린이 인구가 1,000명 아래로 내려가고, 2030~2040년경 영양군이 인구가 1만 명 미만으로 내려가 영양군이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2020년 영양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이 문을 닫으면서 영양군에 사는 유아들이 사립유치원을 다니려면 안동으로 갈 수밖에 없다.[345] 그나마 2020년까지는 아랫동네 청송군보다 나은 편이었는데, 청송에는 사립유치원이 없기 때문이다.[346] 영양군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은 안동시 용상동의 안동영재유치원으로 영양군청에서 차로 1시간, 입압면에서 45분 가야 한다. 이건 영양군 출신인 유아교사도 마찬가지인데, 영양군에는 대학이 없어 안동시 등 다른 지역의 대학을 졸업하고 영양군의 유치원으로 발령받아야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고향을 떠나거나 매일 안동 등지로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한다.

안동 수준은 아니지만 영양의 유치원생과 교사들의 성씨 중 권씨가 최씨보다 많다고 한다. 이는 영양군 상위 10개 성씨가 김-이-박-권-정-최-조-오-황-남 순서이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영덕군 못지않게 남씨들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347] 영양군에는 남씨가 강씨보다 많이 사는 셈. 그나마 그 남씨들 대부분이 영양 남씨, 황씨는 평해 황씨다. 권씨들 중에 안동 권씨가 많은 건 안 봐도 비디오.

모델 장미관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21. 울릉군[편집]


1974년 설립된 도동유치원이 최초이다. 울릉도의 유치원 교육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시작이 늦은 편이었으나 경기도의 웬만한 도시들보다는 빨랐다.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는 김포시시흥시조차 198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유치원 하나가 설립되었다. 여담으로 울릉군은 타 지역과 육로로 연결되지 않아[348] 전국에서 유일하게 타 지역으로의 원정 통학이 불가능한 지역이다.[349] 이런 이유로 도동유치원이 들어서기 이전에 이 지역은 유치원 음영지역이었고[350], 도동유치원의 첫 원생이 1968년~1970년생, 첫 졸업생이 현재 55~56세[351]인 것이다.

도동유치원은 울릉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이고, 나머지 5곳은 모두 공립 병설유치원이다. 참고로 도동유치원은 울릉읍 도동리 소재로, 국내 최동단 사립유치원이자 국내 최동단 유치원이다. 지근거리에는 국내 최동단 공립유치원인 울릉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있다. 군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울릉읍에 집중된 도시 구조 특성상 북면과 서면에 사는 아이들은 대개 병설유치원에 다녀야 하는 실정이다. 또한 눈이 많이 내린다는 지리적인 특성상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은 편이다. 애초 울릉도에서 눈이 한 번 내렸다 하면 거의 미터 단위로 쌓이는 게 일상이다 보니(...). 울릉도가 고향인 사람들은 어린 시절 겨울만 되면 눈이 무릎까지 쌓이는 바람에 유치원이 휴원하고, 다니던 유치원 앞에 제설차들이 여러 대 지나갈 정도라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정도이다.

경상북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울릉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임-장-서-윤-손 순서라 조씨보다 손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1960년대 2만 2,016명이던 인구가 1975년 2만 9,479명을 찍었다가[352] 2020년 9,457명으로 줄었는데도[353] 사립유치원 수는 거의 그대로다.

현재 울릉군에는 공립유치원이 6곳, 사립유치원이 1곳 있다. 울릉도에는 대학교가 없어서 울릉도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모두 다른 지역[354] 소재의 대학을 졸업했다.

울릉경찰서 서장인 강영우 총경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355]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22. 청송군[편집]


1979년 설립된 진보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청송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3년~197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0~51세이다.

특이하게도 청송읍보다 진보면에 유치원이 먼저 들어왔다. 이는 청송읍보다 진보면의 교통이 편리해서 청송읍보다 진보면의 인구가 많은[356] 도시 구조 때문이다. (경북북부교도소도 진보면에 있고, 고속도로도 진보면 쪽으로 지난다. 심지어 청송읍에서 출발한 시외버스도 진보를 경유해서 안동이나 서울로 갈 정도이다.)

청송읍 최초의 유치원은 1981년 개원한 청송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며, 아직까지 사립은 물론 공립 단설유치원도 없다. (이름만 봐서는 청송군에 있을 법한 청송유치원은 경상북도 청송이 아닌 인천광역시 연수구부평구, 강원도 강릉시에 하나씩 있다.) 군위군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되면서 경상북도에서 가장 늦게 유치원이 들어온 지역은 청송군이 되었다.

아무래도 청송군은 안동과 가깝지만 산으로 가로막혀 안동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한 탓에 1960년대 8만 7,030명이던 인구가 2021년 2만 5,044명으로 감소하는 등 안 그래도 적은 인구가 계속 줄어들어, 군내에 인구 1만 명을 넘는 읍면이 하나도 없어서[357] 사립유치원이 못 들어온 듯. 심지어 이웃한 지역의 경우 영양군영덕군만 사립유치원이 없을 뿐 안동시, 의성군, 영천시, 포항시에는 모두 사립유치원이 있어서 청송군 주민들은 자녀들을 공립 병설유치원을 보내거나 이웃 동네로 원정 통학을 시켜야 할 판이다. 심지어 이 지역 출신인 유아교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고향에서 근무하려면 다른 지역의 대학[358]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하며, 사립유치원에서 근무하고 싶으면 고향을 떠나거나 안동시 등지로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한다.[359] 현재 청송군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은 의성군 의성읍에 있는 에덴유치원이다.

청송군은 경상북도이지만 강원도 못지않게 눈이 많이 내려[360] 청송 출신들은 어린 시절 겨울에 눈이 왔다 하면 자신이 다니던 유치원을 관리하는 아저씨들이 자신이 다니던 유치원 주변의 눈을 치우고 유치원 앞에 제설차들이 여러 대 다닌 것을 봤을 정도이다. 게다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361]를 배출하고도 사립유치원은 없다.

청송은 전국에서 심씨 비율이 가장 높아서 청송 출신들은 자신이 다니던 유치원에 적어도 심씨 성을 가진 친구나 교사가 한두 명은 꼭 있을 정도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강씨최씨보다 황씨가 더 많은 곳이 있을 정도[362]라고 한다. 실제 통계로도 증명되는데 청송군 10대 성씨는 김, 이, 박, 황, 권, 조, 윤, 최, 정, 임씨 순서이다.

유도선수 이원희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363]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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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2 07:36:57에 나무위키 유치원/지역별 현황/영남권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당시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가락면•명지면•녹산면과 창원군 천가면.[2] 2002년 사상구 엄궁동에 설립된 부산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3] 주로 동면과 옛 웅상 지역[4] 주로 울주군 서생면.[5] 주로 장목면. 이들은 태풍 등으로 유치원에 갈 수 없을 때에는 강제 결석하게 된다.[6] 게다가 부산 중구의 사립유치원 개수는 세종특별자치시와 같을 정도. 하지만 인구는 세종시 쪽이 8배 정도 많다.[7] 아마 부산 출신들이 자신의 유치원 시절 이야기를 하면 12월인데도 가을처럼 따뜻해서 패딩을 입어 본 일이 드물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이다.[8] 추신수와 그의 아내는 같은 유치원 출신이다. 박나래-박진주와 비슷한 케이스. 추신수는 1982년 7월 13일생(41세)이므로 1986~198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사실상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모두 유치원 시절에 봤던 셈. 다만, 추신수의 자녀들은 모두 미국에서 유치원을 다녔기 때문에 부모와 다른 나라에서 유치원을 다닌 셈이다.[9] 이우민은 1982년 5월 4일생(41세)이라 1986~198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 시절이면 풍납토성이 문화재라는 인식이 약해 토성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텐트를 치고, 겨울에는 눈썰매를 타서 토성 주변에 박스가 널브러져 있던 시절이고 대학교 졸업생 중 전과 1~2범 정도는 상대적으로 쉽게 보이던 시절이었다. 이우민과 추신수는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셈. 엄밀히 말해서 이우민이라는 이름은 성인이 된 후 개명한 것이므로 유치원은 개명 전 이름인 '이승화'로 다녔다.[10] 손수조는 1985년 4월 8일생(39세)이므로 1989~199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 시절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개장한 셈. 손수조와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사람으로는 김기리, 박주영, 박나래, 하승진 등이 있는데, 하승진은 유치원 시절 손수조보다 키가 최소 40~50cm는 더 컸다. 그녀의 유치원 시절 부산의 대중교통은 시내버스부산 지하철 1호선 그리고 기차, 택시 정도였는데 당시에는 이들 교통수단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11] 윤성훈은 1976년 9월 2일생이므로 1980~198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시절에는 부산의 대중교통이 사실상 버스 정도였고 담배에 대해서는 더 관대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 시절이면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라 유치원생 중 1% 미만만이 해외여행 경험이 있었을 정도이다.[12] 박성호는 1973년 3월 14일생(51세)이므로 1977~1979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사실상 이들은 일제 소학교, 국민학교나 간이학교 출신들이 아직 사회에서 활동하던 시기이자 100원, 500원 지폐가 있고 버스에서 담배 피우는 게 자연스러웠으며, 박정희가 사망한 시점(1979년 10월 26일 사망)에 유치원에 다녔던 셈. 그 시절이면 아줌마들 중에서도 문맹을 찾아볼 수 있었다. 유치원이 그리 많지 않던 1970년대에 유치원을 다닌 것으로 보아 그는 부유층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13] 중구 4만 1,523명 (1.3%), 동구 8만 8,901명 (2.7%), 서구 10만 8,135명 (3.3%), 영도구 11만 3,342명 (3.6%), 부산진구 35만 9,886명 (11%), 동래구 27만 1,528명 (8.3%), 남구 26만 7,731명 (8.5%), 북구 28만 3,952명 (8.9%), 해운대구 40만 2,169명 (12.5%), 사하구 31만 1,757명 (9.9%), 금정구 23만 2,666명 (7.4%), 강서구 13만 7,957명 (3.9%), 연제구 20만 9,157명 (6.4%), 수영구 17만 6,894명 (5.4%), 사상구 21만 2,586명 (6.8%)로 전체적으로 남부 권역에 사람이 몰려 있고, 유치원도 이들 지역에 몰려 있다. 기장군 인구 17만 4,545명을 포함한 부산시 전체 인구 339만 1,946명 대비 비율로 계산하면 중구 1.2%, 동구 2.6%, 서구 3.2%, 영도구 3.4%, 부산진구 10.5%, 동래구 7.9%, 남구 8.1%, 북구 8.5%, 해운대구 11.9%, 사하구 9.4%, 금정구 7%, 강서구 3.7%, 연제구 6.1%, 수영구 5.1% 사상구 6.4%, 기장군 4.8%이다. 과거 읍면대로 조합하면 부산부 37만 1,137명, 동래군 서면 59만 4,777명, 사상면 21만 2,586명, 사하면 32만 5,361명, 동래읍 62만 8,930명, 남면 45만 6,290명, 기장면 9,954명, 구포읍 28만 5,040명, 북면 14만 2,331명, 김해군 대저읍 1만 8,466명, 가락면 2,474명, 명지면 8만 702명, 녹산면 3만 2,625명, 의창군 천가면 3,690명이다. 참고로 부산은 비수도권 지역 중 해외에 이민 등을 간 사람들이 주소지로 가장 많이 두고 있는 지역이다.[14] 통일 이후에는 중국 랴오닝성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신의주시에 유치원이 들어서면서 이 타이틀도 신의주의 유치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15] 최씨보다 정씨가 많은 시도는 모두 비수도권에 몰려 있다.[16] 게다가 대회 개막식 날이 임시공휴일이고 대회 도중 추석 연휴와 국군의 날까지 공휴일이라 대회 기간 중 3일을 쉬기도 했다. 1982년 3월~1985년 2월생들이 이 혜택을 받았다.[17] 1932년 경상남도 고성군 출생, 2013년 사망. 그가 유치원을 다니던 해는 1938년이었는데, 당시에는 유치원이 매우 드물었던 시절이었고, 설날추석은 물론 크리스마스까지 평일이었다. 그는 이순재보다 2살 많았다. 그 시절이면 문맹률이 매우 높았던 시절이었고, 지금의 부산 시역 대부분이 시골이라 부산 삼락동, 엄궁동, 구포동 등에 살던 아이들은 낙동강에서, 만덕동에 살던 아이들은 근처 산에서 썰매를 타고 놀던 시절이었다.[18] 강서구의 부산 편입은 1989년.[19] 주로 반여4동.[20] 사상구에 철도가 있는 동은 주례동, 감전동, 괘법동, 덕포동, 모라동 5곳뿐이며 (그것도 경부선, 부산 도시철도 2호선, 부산김해경전철 3종류뿐이다.) 나머지 삼락동, 학장동, 엄궁동은 대중교통을 버스에 의존해야 한다. 다행히 학장동과 엄궁동에는 지하철 5호선이 개통할 예정이라 5호선을 이용할 수 있다.[21] 주로 부산 3호선 강서구청역 인근 거주 유아.[22] 아침 시간대에 주례동, 감전동을 가 보면 사상구 괘법동, 덕포동의 유치원 버스는 물론 부산진구 개금동, 가야동에 있는 유치원 버스도 볼 수 있다.[23] 개원 초기에는 같은 1962년에 개교한 브니엘고등학교(1962년 당시에는 브니엘고등기술학교)와 건물을 같이 쓴 적도 있었다. 1999년 브니엘학원 사태로 계열이 분리되었다.[2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역사상 첫 월드컵 승리 (폴란드 2:0)를 안겨 준 경기장인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이 있는 곳이다. 참고로 연제구에는 연산동과 거제동만 있다.[25] 비슷한 시기에 개원한 부곡3치안센터 옆의 무궁화유치원도 있었으나 이쪽은 1990년대 후반에 폐원하고 건물도 완전히 철거되어서 현존하지 않으며 워낙 오래전에 폐원해서 관련 자료도 남아있는게 없다. 현재 그 자리에는 기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26] 舊 대변초등학교.[27] 심지어 정관읍이 기장읍보다 인구가 많다. 기장군의 읍면별 인구는 정관읍 8만 2,029명, 기장읍 5만 3,230명, 일광읍 2만 2,549명, 장안읍 8,657명, 철마면 8,080명으로 정관읍에 50.4%, 기장읍에 33.7%가 거주하고 있다. 심지어 일광은 장안보다 인구가 많으며 2022년 4월 일광읍으로 승격되었다. 여기에 철마면마저 철마읍이 되면 관할구역이 모두 읍인 최초의 군이 될 수도 있다.[28] 부산 1897년, 인천 1900년, 대구 1910년, 대전 1913년, 광주 1920년, 울산 1930년.[29] 현재는 두 역 모두 폐지되었고 대신 북울산역이 신설되었다.[30] 남구 32만 64명 (35%), 중구 21만 7,595명 (24.3%), 동구 15만 6,806명 (17.4%), 북구 21만 9,014명 (23.2%)이다. 당연히 유치원도 인구가 많은 동해선 철도 연선에 설립되었다. 울주군 인구 22만 2,538명을 포함한 울산광역시 전체 인구 113만 6,017명 대비 각 지자체의 인구 비율은 남구 28.2%, 중구 19.6%, 동구 14%, 북구 18.8%, 울주군 19.4%이다. 옛 읍면대로 조합하면 울산읍 30만 7,653명, 방어진읍 16만 8,884명, 농소읍 15만 2,335명, 대현면 7만 3,463명, 하상면 12만 143명, 범서면 7만 6,362명, 강동면 1만 6,634명이다.[31] 고퇴경은 1990년 9월 21일생(33세)이므로 1993~199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90년생들은 유치원 1년차에 매우 시원한 여름, 2년차에 악명높은 1994년 폭염, 3년차에 Windows 95 발매, 4년차에 2자리 번호판 등을 경험한 셈.[32] 정우영은 1989년 12월 14일생(34세)이므로 1992~1995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89년생들은 악명높은 1994년 폭염Windows 95 발매 당시, 그리고 자동차 번호판의 용도기호가 70개(자가용 (기본): 가•나•다•라•마, 거•너•더•러•머, 고•노•도•로•모, 구•누•두•루•무 20개, 자가용(확장): 버•서•어•저•처•커•터•퍼, 보•소•오•조•초•코•토•포•호, 부•수•우•주•추•쿠•투•푸•후, 그•느•드•르•므•브•스•으•즈•츠•크•트•프•흐 40개, 사업용: 바•사•아•자•차•카•타•파•하 9개, 렌터카: 허 1개. 자가용 용도기호 확장형 중 버•서•어•저, 보•소•오•조, 부•수•우•주 12개는 1989년생들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2004년에 부활했고, 하•호는 2013년에 부활했는데 이 시점이면 1989년생들은 대부분 사회로 진출한 뒤다.)나 되던 시절에 유치원생이었던 셈.[33] 부산 1897년, 인천 1900년, 대구 1910년, 대전 1913년, 광주 1920년, 울산 1930년.[34] 처음 개원할 때는 소화(小花) 데레사 성녀의 이름을 따서 소화유치원이라고 했고, 1961년 4.19 유치원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1974년 재건할 때는 설립자의 세례명을 따서 안나유치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35] 1968년생부터 1970년생까지 첫 원생으로 받아들였다. 첫 졸업생은 현재 55~56세이다..[36] 달성군 26만 명, 울주군 22만 2,538명[37] 그나마 그 증가분도 대부분 읍 지역에 치중돼 있다. 울주군의 읍면별 인구는 범서읍 7만 703명, 온양읍 2만 8,688명, 언양읍 2만 8,540명, 삼남읍 2만 1,524명, 온산읍 2만 372명, 청량읍 1만 9,443명, 서생면 8,401명, 상북면 7,953명, 웅촌면 7,731명, 두동면 4,229명, 두서면 3,140명, 삼동면 1,814명으로 전체적으로 읍 지역에 인구의 85%가 몰려 있다. 심지어 범서읍은 어지간한 군(郡)보다 인구가 많다.[38] 애초에 울산광역시 자체가 대학이 부족하다.[39] 그 시절에는 대명동에 ‘대구대학’이 있던 시절이었고 검단동, 복현동, 산격동, 지저동, 신암동, 노원동, 침산동, 조야동에 살던 아이들은 금호강에서 썰매를 타던 시절이었다.[40] 이 때 편입된 지역 중 지금의 가창면과 월배면, 성서면, 공산면은 달성군으로 환원되었다.[41]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달성군 성북면, 수성면, 달서면이, 제1공화국 시기에 동촌면과 가창면 파동이[40], 1981년 직할시 승격 당시 공산면, 월배읍, 성서읍과 칠곡군 칠곡읍, 경산군 안심읍, 고산면이 대구로 넘어갔다. 수성구 등은 대구가 아직 조선모스크바라고 불릴 정도의 좌파의 성지이던 시절에 대구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칠곡은 대구가 좌파의 성지에서 우파의 본거지로 바뀐 뒤 편입된 셈.[42] 운영은 수녀회에 위탁되어 있다. 처음에는 예수성심시녀회에서 운영하다가, 2005년부터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에서 운영하고 있다.[43] 관할 법정동은 삼덕동1가, 2가, 3가이다. 박근혜가 1952년 2월 2일 이 곳에서 태어났으나, 아기 때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유치원은 서울에서 다녔다. 정확히는 서울 신당동 소재의 근화유치원.[44] 때문에 삼덕유치원은 이름과 실제가 달라져 버렸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게 중구가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45] 이 동네는 대구에서 학업 성적이 가장 뛰어난 동네이며,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이 이 곳의 대구스타디움에서 미국, 터키와 경기를 하기도 했다.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이 경기장에서 슬로베니아를 상대로 1대 0으로 이겼다.[46] 이상 고온이 심하다면 할로윈 무렵까지 반팔을 볼 수 있기는 하다.[47] 가산면, 동명면, 지천면은 사립유치원이 없어 사립유치원을 다니기 위해서는 대구로 가야 하는데, 이들은 거리상 가까운 북구에 있는 유치원으로 간다.[48] 경산군이 경산시로 승격된 현재도 대구 수성구의 유치원으로 가는 경산 유아들이 있어 대구 수성구의 도로에서는 경산시의 유치원 버스, 경산의 도로에서는 대구광역시 수성구의 유치원 버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49] 이들 지역은 생활권이 대구이고, 대구 시민들이 당일치기로 많이 찾는 지역이기도 하다.[50] 고령군의 경우 주로 다산면에서 대구로 원정 통학을 한다. 대체로 곽촌리, 호촌리에 사는 아이들이 대구로 많이 가는데, 주로 달서구의 유치원으로 간다.[51] 군위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으나 여전히 실질월경지이며,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를 통틀어 이런 군이 3개 더 있는데, 바로 경북북부교도소로 유명한 청송군울릉군에서 가장 가까운 본토 지방자치단체인 울진군, 스펀지에 신호등이 1개밖에 없는 지역으로 나온 영양군, 그리고 대게로 유명한 영덕군이다. 군위에서 대구로 유치원 통학을 하는 아이들은 거진 북구로 간다.[52] 주로 이서면에 사는 아이들이 대구로 원정 통학을 한다. 이들은 주로 생활권상 가까운 수성구에 있는 유치원으로 간다.[53] 시내보다는 금호읍에서 많이 온다. 이들은 주로 생활권상 가까이 있는 동구의 유치원로 많이 간다.[54] 주로 가야면이나 야로면에서 이러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 지역에서는 진주시, 거창군보다 대구광역시가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달서구달성군에 있는 유치원으로 간다.[55] 이 때 칠곡초등학교와 칠곡중학교도 소재지와 맞지 않게 되었다.[56] 중구 7만 6,548명 (3.5%), 남구 14만 6,632명 (6.8%), 동구 34만 1,920명 (15.9%), 서구 17만 700명 (8.1%), 북구 44만 263명 (20%), 수성구 42만 4,314명 (19.6%), 달서구 55만 8,631명 (26.1%)로 금호강 이북에 78만 387명 (35.9%), 금호강 이남에 139만 5,923명 (64.1%)이 살아 유치원도 금호강 이남에 주로 설립됐다. 달성군 인구인 25만 9,339명을 합한 대구시 전체 인구 241만 8,346명 대비 각 지자체 인구 비율은 중구 3.2%, 남구 6.1%, 서구 7.3%, 달성군 10.4%, 동구 14.2%, 수성구 17.6%, 북구 18%, 달서구 23.3%이다. 옛 읍면별로 조합하면 대구부 9만 4,994명, 달성군 성북면 16만 2,474명, 달서면 23만 242명, 수성면 60만 2,066명, 월배읍 29만 6,132명, 성서읍 21만 5,057명, 가창면 1만 2,821명 (파동만 편입), 동촌면 9만 268명, 공산면 1만 7,968명, 칠곡군 칠곡읍 21만 8,661명, 경산군 안심읍 12만 4,562명, 고산면 9만 3,562명이다.[57] 그 여파로 수도권의 병원들이 대구경북 거주 환자들의 진료를 거부했고,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구를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했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일본2월 26일, 캐나다2월 28일, 미국2월 29일, 영국3월 5일에 대구와 그 주변을 여행금지구역으로 지정했고, 일본은 한술 더 떠서 대구, 경산, 청도 외에 칠곡, 성주, 의성, 안동, 봉화, 군위, 영천까지 여행금지구역으로 지정했다. 당시 복무한 경찰청 의무경찰은 외부활동 때 대구, 경북 지역 방문이 금지됐고, 사회복무요원들은 담당자로부터 ‘절대 대구와 그 주변 지역으로는 가지 마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58] 당장 도씨의 본관이 대구의 옆동네인 성주군 (성주 도씨)이다.[59] 사공씨는 본관이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 사공씨)이다.[60] 석씨의 본관은 충주이지만, 대구에 집성촌이 있다.[61] 전국 시씨 인구가 2,235명인데 그 중 970명이 대구에 살고 있었다. 아무리 한국이 수도권 집중이 심각하다지만, 시씨만큼은 수도권보다 대구에 더 많다. 서울에서는 절강 시씨를 보기가 매우 힘든데, 대구 학교는 전교에 절강 시씨가 한두 명은 꼭 있을 정도.[62] 여기서 말하는 여씨는 한자가 呂이다. 함양 여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전체 인구 6만 522명, 수도권 거주 인구 2만 7,511명), 시군구 단위로 내려가면 대구 달서구에 가장 많이 산다.[63] 한자가 蔣이다. 아산 장씨는 전국적으로 2만 1,508명밖에 없는 희귀 성씨인데, 그 중 대구에만 4,042명이 살고 있다. 이 성씨의 유명인으로는 장정일이 있다. (실제 장정일 본인도 대구 출신이고 지금도 대구에 살고 있다. 1962년 1월 6일생(62세)이라 유치원에 다녔다면 1965~1967년 사이에 다녔을 것이다.)[64] 제갈씨는 전국 인구가 5,655명밖에 안 되는 희성이지만 대구가 전국 제갈씨 인구 1위이다. 서울보다도 많을 정도. 아이러니하게도 제갈씨는 남양 제갈씨 하나뿐이다.[65] 여기서 말하는 하씨는 한자가 夏이다. 전국적으로 2,475명밖에 없는 희귀한 성씨이지만 대구에서는 537명이 살고 있었다. 경기도나 서울보다도 많을 정도. 이는 해당 성씨가 달성 하씨 하나뿐이기 때문이다.[66] 서씨의 대종이 달성 서씨다.[67] 대구에서 배씨의 순위가 11위인 것은 성주 등지에 살던 배씨들이 대구로 넘어왔기 때문이다.[68] 경상북도 북부에 살던 권씨들이 대구로 많이 넘어와 대구에서 권씨는 순위가 6위이다. 그야말로 대구에서는 권씨가 강씨보다 더 많은 셈. (권씨 59,078명, 강씨 44,596명)[69] 다만, 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실제 대구에서 중구, 남구, 서구, 수성구 4개 구는 정씨가 최씨보다 많다.[70] 이 세 성씨들은 경상북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대구로 몰리면서 보기 쉬워진 것이다.[71] 이수지는 1985년 4월 2일생(39세)이므로 1989~199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야말로 국군의 날이 마지막으로 공휴일이고,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개장하고, 아직 양구에 사립유치원이 있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닌 셈. 이수지는 김기리, 박나래, 박주영, 하승진과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녔는데, 하승진의 경우 유치원 시절 이수지보다 최소 50cm는 키가 더 컸다.[72] 조정식은 1982년 7월 10일생(41세)이라 1986~198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82년생들은 1988 서울올림픽이 열릴 때 유치원을 다녔으며, 당시 대구의 인구는 214만 명이었다. 그 시절 인기 있는 피서지는 계곡해수욕장이었는데 대구에서는 영천, 청도, 군위 (현재는 대구광역시로 편입), 의성, 청송, 왜관 (대구에서 칠곡이라고 하면 북구 칠곡지구를 가리키고, 칠곡군 지역은 왜관이라고 더 많이 부른다.), 성주, 고령, 합천, 창녕, 밀양 등 인근 경북, 경남 지역의 계곡과 경주, 포항 등지의 해수욕장이 인기가 있었다.[73] 박주영은 1985년 7월 10일생(38세)이므로 1989~199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는 국군의 날이 마지막으로 공휴일이었을 때 유치원을 다닌 셈. 박나래, 하승진, 이수지와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녔는데 하승진은 유치원 시절 박주영보다 45cm 정도는 더 컸다.[74] 구본길은 1989년 4월 27일생(34세)이므로 1992~1995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89년생들은 토요일에도 유치원에 등원했고 그들의 유치원 시절에는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이 발생했으나 대구에는 아직 지하철이 다니지 않아 당시 대구의 대중교통은 버스가 유일했다. 게다가 국내에 최초로 판다 밍밍과 리리가 들어왔다.[75] 이찬원은 1996년 11월 1일생이라 1999~200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찬원의 유치원 시절은 공무원 시험에 행정법이 아직 없었고 양평군 등 경기도 북부 대부분의 지역에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이었다.[76] 정대철은 1991년 1월 3일생(33세)이라 원래라면 1994~1997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녀야 했으나 빠른 년생을 적용받아 1993~199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정대철의 유치원 시절은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이 덮치던 시기였고 판다 밍밍과 리리가 막 들어온 시점에, 일본이 월드컵에 한 번도 못 나간 것은 물론, 한국은 아직 월드컵에서 1승조차 올리지 못했다. 정대철은 사실상 대구를 고향으로 여길 만큼 대구에서 오래 살았으며, 정대철의 유치원 시절에는 훗날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 롯데월드 어드벤처서울랜드가 개장한 지 10년도 안 된 신생 테마파크였다.[77] 반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평창군의 유치원 대부분이 방학에 들어갔는데 평창군이 농촌 지역이라는 특성상 공립 병설유치원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78] 2020년 2~3월에 코로나19 사태를 엄청나게 키운 원인이 된 신천지 대구교회가 있는 곳이다.[79] 노태우 前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 정확한 주소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용동.[80] 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관문동, 관음동, 국우동, 구암동, 동천동, 읍내동, 태전1동, 태전2동.[81] 달서구에 철도가 생긴 것은 1996년 대구 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한 뒤이다.[82] 달성군에 철도가 생긴 것은 2005년이었다. 경부선은 다사읍 방천리를 지날 뿐 역은 없다.[83] 잘 알다시피 대구교도소가 있는 그 곳이다. 또한 박근혜 前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구입한 자택이 있었다. 다만, 대구교도소는 하빈면 감문리로 이전할 예정이다. 또한 축구선수 이동경이 이 곳에서 태어났다.[84] 추미애가 이 곳에서 태어났다. 추미애는 1958년 10월 23일생(65세)이므로 유치원에 다녔다면 1962~1964년 사이에 다녔을 것이다.[85] 게다가 유가읍은 달성군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동네라 2020년 총선에서는 박형룡이 가장 많은 득표를 얻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임대윤 후보가 권영진 후보에 앞선 유일한 동네가 되었고, 19대 대선에서 대구 유일의 더불어민주당 승리 지역이 될 뻔 했던 곳이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가 군수에 당선되었다.[86] 노벨상 수상 유력 후보인 현택환 교수의 고향이기도 하다. 2021년 대구교도소가 화원읍 천내리에서 하빈면 감문리로 이전한다.[87]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덕곡동, 송정동, 중대동, 신용동, 지묘동, 내동, 미대동, 신무동, 백안동, 용수동, 미곡동, 도학동, 진인동, 능성동, 평광동, 북구 연경동. 참고로 노태우 前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인구는 1만 7,968명.[88]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도원동, 진천동, 유천동, 월성동, 월암동, 대천동. 행정동 기준으로는 월성1동, 월성2동, 상인1동, 상인2동, 상인3동, 진천동, 도원동. 인구는 29만 6,132명.[89]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 호산동, 호림동, 신당동, 이곡동, 용산동, 죽전동, 감삼동, 장동, 장기동, 송현동, 본리동, 본동. 행정동 기준으로는 죽전동, 감삼동, 장기동, 용산1동, 용산2동, 이곡1동, 이곡2동, 신당동, 본동, 본리동, 송현1동, 송현2동. 인구는 21만 5,057명.[90] 이 때 보배유치원의 주소가 대구직할시 남구를 거쳐 달서구로 바뀌었다. 현재의 달성군 지역만으로 인구를 계산하면 1970년 9만 1,043명, 1975년 8만 8,471명, 1980년 7만 9,543명이었다.[91] 달성군의 읍면별 인구는 다사읍 8만 9,389명, 화원읍 4만 8,166명, 유가읍 2만 9,713명, 옥포읍 2만 5,337명, 현풍읍 2만 3,310명, 논공읍 1만 8,487명, 구지면 1만 3,263명, 가창면 7,972명, 하빈면 3,702명인데 전체적으로 달서구에 접한 다사읍, 화원읍의 인구가 많다. 이런 배경으로 읍의 개수가 면의 2배나 되는 상황이다. 만약 월배읍, 성서읍이 대구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다사읍과 하빈면이 월경지가 되지 않고, 인구가 77만 528명으로 늘어 선거구가 진작에 분구됐을지도 모를 판이다.[92] 2050년쯤이면 전국 대부분 군 지역에서 사립유치원은 원아 모집이 곤란해지고, 결국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폐원된다.[93] 주로 화원읍, 옥포읍, 논공읍.[94] 주로 다사읍. 하빈면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95] 주로 옥포읍이나 논공읍.[96] 주로 현풍읍. 유가읍과 구지면은 사립유치원이 없다.[97] 이동경은 1997년 9월 20일생(26세)이므로 2000~2003년 사이에 고향인 달성군 화원읍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1997년생들이 유치원을 다닐 시기에는 컴퓨터의 주력 운영체제가 Windows 98 SEWindows 2000에서 Windows XP로 막 넘어갈 시점이었고, 2002 한일 월드컵SARS를 유치원 시기에 겪은 셈. 이동경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과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녔는데, 세월호 참사 당시 그는 울산에 살고 있었다.[98] 현 대구우보초등학교[99] 면장이 집무실을 '컴퓨터 방'으로 개조하여 농민들에게 직접 컴퓨터 강의를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면장은 남재걸 (2000년 2월 15일~2001년 11월 30일).[100]대구군위초등학교[101] 군위읍에는 철도가 없다.[102] 2012년 면의 마지막 교육기관이었던 산성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교육기관이 없는 지역이 됐다. 다만, 군위군에서 유일하게 여객열차가 정차하는 역인 화본역이 이 곳에 있다.[103] 이 때문에 군위군은 대구광역시의 실질월경지가 되었으며, 오죽하면 이렇게 판도가 이상해진 대구를 두고 당근, 포도, 귀상어 등으로 조롱하는 사례가 생겼을 정도이다.[104] 심지어 군위읍의 인구도 8,193명 (군 전체 인구의 35.2%)밖에 안 된다. 군위읍도 이런데 나머지 면들은 상태가 더 열악해서 인구가 모두 5,000명 미만이다. 군위군의 읍면별 인구는 군위읍 8,193명, 효령면 3,768명, 의흥면 2,385명, 소보면 2,317명, 우보면 2,042명, 부계면 2,007명, 삼국유사면 1,355명, 산성면 1,189명이다.[105] 군위군에는 대학이 없다. 그나마 가까운 대학은 대구에 있으며, 군위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절대다수가 대구 시내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굳이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겠다면 방통대를 나오면 되겠지만(...).[106] 이슬비는 1988년 6월 25일생(35세)이므로 1992~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 시기에 매우 시원한 여름 (1993년)과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을 모두 겪은 셈. 군위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기 때문에 이슬비는 병설유치원 출신이거나 다른 도시에 있는 유치원을 나왔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군위군은 2023년 7월 1일 대구광역시편입되었기 때문에 이슬비는 경상북도 시절에 유치원을 다닌 셈이다.[107] 2015년 설립된 밀양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108] 전라남도 무안군과 한자 표기가 다르다. 그 쪽 무안은 務安, 이 쪽 무안은 武安. 참고로 김병지가 이 동네에서 태어났다.[109] 사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청도군에는 유치원이 없다시피해서 청도에 사는 유아들은 밀양, 경산 등지로 나가야 유치원을 다닐 수 있었다. 주로 청도읍, 화양읍, 금천면, 매전면, 운문면은 밀양으로, 각북면, 풍각면, 각남면, 이서면은 대구로 갔다고 한다.[110]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4만 288명에서 5만 2,876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19.5%에서 50.4%로 높아졌다. 밀양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5만 2,876명, 상남면 8,496명, 하남읍 7,165명, 삼랑진읍 6,682명, 부북면 5,240명, 무안면 5,024명, 단장면 4,315명, 산내면 3,962명, 초동면 3,424명, 상동면 3,066명, 산외면 2,821명, 청도면 1,760명으로 읍면 지역의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이런 이유로 버스 배차간격도 벌어지고 있다. 1960년대에는 상남면(21,937명), 무안면(20,003명)이 2만 명을 넘을 정도로 잘 나갔으나 상남읍, 무안읍으로 승격하지 못하고 그대로 몰락하면서 이 지역 주민들이 시내로 유치원 원정을 보내는 형편이다.[111] 밀양 손씨의 유명인으로는 손흥민이 있다.[112] 통영군1914년 용남군과 거제군의 합군으로 설립된 군이다. 이후 1953년 거제군이 다시 분리됐다.[113] 현지인들은 광도면 일대를 주로 ‘죽림’이라고 부른다.[114] 당시 통영은 시내가 충무시, 읍면 지역은 통영군으로 나뉘어 있었다. 옛날 지도에서 '충무시'가 나오면 통영 시내라고 이해하면 된다.[115] 쉽게 말해 복합선거구인 지역.[116]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5만 513명에서 7만 1,388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는 37.5%에서 56%로 높아졌다. 통영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7만 1,388명, 광도면 3만 1,088명, 용남면 1만 2,668명, 산양읍 4,667명, 도산면 2,933명, 한산면 2,025명, 욕지면 2,018명, 사량면 1,506명으로 읍면 지역의 인구가 매우 적다.[117] 1922년 11월 22일생, 2004년 11월 29일 82세로 별세. 그 시절이면 유치원이 매우 드물었던 시절이며, 그는 1926~1928년 사이에 유치원에 다녀 일본어에 매우 능통했다.[118] 1920년 5월 13일생, 2004년 10월 31일 84세로 별세. 그 시절이면 유치원이 매우 드물었던 시절이며, 그는 1924~192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119] 1906년 7월 14일생, 1967년 2월 13일 60세로 별세. 그 시절이면 유치원이 극히 드물었던 시절이고, 그는 1910~191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정황상 2회 졸업생으로 추정된다.[120] 1926년 12월 2일생, 2008년 5월 5일 81세로 별세. 그 시절이면 유치원이 드물었던 시절이고, 그녀는 1930~193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박경리라는 이름은 그녀가 성인이 된 이후 김동리가 지어준 필명이므로 유치원은 본명인 '박금이'라는 이름으로 다녔다.[121] 김민재는 1996년 11월 15일생 (27세)이므로 1999~200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유치원 시기에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렸으며 (1996년생들은 유치원생 때 파울루 벤투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디에고 시메오네를 TV에서 봤다. 다만, 벤투는 한국에서, 포체티노는 일본에서 3경기만 뛰고 귀국했다. 참고로 이 대회에서 네덜란드, 호주, 콜롬비아, 모로코는 떨어졌다.),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사람으로 테니스 선수 정현과 축구선수 황인범이 있다.[122] 정씨 7,408명, 강씨 5,217명, 최씨 5,021명. 1~3위는 당연히 김, 이, 박.[123] 거창군은 경상남도에 있지만 4월에도 눈이 내린다. 심할 때는 어린이날, 어버이날에도 눈이 왔을 정도.[124] 거창군에는 대학이 있지만, 그나마 있다는 대학들인 한국승강기대학교경남도립거창대학에는 유아교육과는 없다. 거창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는 대부분 대구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거창으로 발령받아 온 경우이고, 가끔씩 부산, 수도권 대학 출신이 오기도 한다.[125] 그 와중에 거창읍의 인구는 1960년대 3만 4,707명이었다가 2021년 4만 899명으로 늘어나, 읍내 집중도는 47.7%에서 66.1%로 도리어 높아졌다. 그만큼 거창읍을 뺀 나머지 지역은 매우 열악하다는 뜻인데, 거창군의 읍면별 인구는 거창읍 4만 899명, 가조면 3,732명, 남상면 2,341명, 마리면 1,987명, 위천면 1,965명, 웅양면 1,875명, 주상면 1,527명, 북상면 1,521명, 신원면 1,467명, 남하면 1,424명, 고제면 1,416명, 가북면 1,348명으로 거창읍에 인구의 66%가 몰려 있고, 거창군 2위인 가조면조차 거창읍 인구의 10분의 1 수준도 안 된다. 이런 점 때문에 거창군 주민들은 ‘거창군에서 거창읍을 빼면 시체’라는 말을 할 정도이고, 서브웨이, 맘스터치어지간한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은 모두 거창읍에 몰려 있다. 거창에 사는 사회복무요원들도 오토바이나 자전거, 자가용 출근은 거의 필수.[126] 여기서 말하는 신씨는 한자가 慎인 신씨이다. 거창 신씨는 전국 인구가 5만 1,865명인데 그 중 1,788명이 거창에 살고 있었다. 이는 해당 성씨가 거창 신씨 단본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인디가수 요조가 이 성씨다.[127] 한자가 章이다. 전국적으로 5,764명밖에 없는 극희귀 성씨이지만 거창에는 446명이 산다. 이는 해당 성씨가 거창 장씨 단본이기 때문이다. 거창에서 이 성씨는 30위이다. (張씨는 16위)[128] 흔히 신씨라고 하면 한자가 申인 신씨를 떠올리는데, 거창에는 그 신씨보다 愼이라는 한자를 쓰는 신씨 (거창 신씨)이다. 신씨 중 이름이 '-성', '-범', '용-' 중 하나라면 80%는 거창 신씨다. 거창에서 '삼갈 신'자를 쓰는 신씨는 6위, '펼 신'자를 쓰는 신씨는 18위, '매울 신'자를 쓰는 신씨는 54위이다.[129] 공군교육사령부가 이 곳에 있다. 그 영향으로 인구가 2만 1,848명까지 늘어 이 동네에도 사립유치원이 있다.[130] 옛 진주시의 인구는 1960년대의 10만 7,035명에서 27만 8,318명으로 늘었으나 옛 진양군 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의 14만 7,124명에서 6만 9,778명으로 줄어들어 시내 집중도가 42.1%에서 79.6%로 높아졌다. 진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27만 8,318명, 금산면 2만 1,074명, 문산읍 8,188명, 정촌면 8,046명, 집현면 4,727명, 내동면 4,132명, 명석면 4,025명, 대곡면 3,254명, 일반성면 2,635명, 수곡면 2,243명, 금곡면 2,238명, 진성면 1,915명, 미천면 1,631명, 이반성면 1,607명, 사봉면 1,523명, 지수면 1,481명, 대평면 1,059명으로 면 지역의 상태가 많이 열악한 편이다. 특히 이반성면은 경상남도 수목원이 있고 강호동이라는 유명인도 배출했지만 인구는 2,000명에도 못 미친다.[131] 그만큼 고성읍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매우 열악하다는 뜻이다. 고성군의 읍면별 인구는 고성읍 2만 4,493명, 거류면 4,328명, 회화면 3,605명, 동해면 3,088명, 하이면 2,760명, 하일면 1,848명, 마암면 1,764명, 삼산면 1,759명, 대가면 1,689명, 상리면 1,591명, 영오면 1,439명, 개천면 1,129명, 구만면 1,010명, 영현면 858명인데, 면 지역은 모두 인구가 5,000명 미만에 특히 영현면은 인구가 1,000명 미만이다. 반대급부로 고성읍의 비중은 높아졌는데 고성읍의 인구는 1960년대에 2만 5,254명이었다가 2021년 2만 4,493명으로 감소했지만 비중은 19.2%에서 47.7%로 높아졌다.[132] 주로 하일면, 하이면에 사는 경우.[133] 경상남도 고성군에는 대학이 없다. 고성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진주창원유아교육과가 있는 인근 지역의 대학을 졸업하고 고성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는 사람들이다.[134] 고성 이씨의 '고성'이 이 곳이다. 당시의 고성은 현재의 통영시까지 관할했다.[135] 이 때 교사로 근무한 사람 중에는 김원봉의 아내였던 박차정이 있다.[136] 양산 시내에 철도가 들어선 것은 21세기에 와서이다.[137] 정확히는 동래군이 기장군 지역만 남은 상태에서 폐지되면서 양산군에 흡수된 것.[138]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단연 물금읍이다. 이 동네는 2021년 인구가 12만 421명으로 이미 밀양시의 인구를 추월했다. 양산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물금읍 12맘 421명, 웅상지구 (舊 웅상읍) 9만 5,292명, 양산시내 (舊 양산읍) 7만 6,596명, 동면 3만 5,265명, 상북면 1만 2,918명, 하북면 8,371명, 원동면 3,366명으로 물금읍에 33.7%, 웅상지구에 26.7%, 시내에 22%가 거주한다. 또한 물금읍은 경상남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이다. (2위는 김해시 북부동) 웅상지구의 매곡동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가 있고, 하북면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절인 불보종찰 통도사가 있다.[139] 그만큼 산청읍도 인구가 매우 적다. 산청군은 읍면별 인구가 산청읍 6,840명, 신안면 5,732명, 단성면 5,603명, 시천면 4,156명, 금서면 2,884명, 신등면 2,106명, 생초면 2,035명, 삼장면 1,836명, 차황면 1,413명, 생비량면 1,187명, 오부면 1,065명으로 산청읍조차 1만 명은커녕 7,000명도 넘지 못하고 있으며 비중도 19.4%로 낮은 편이다. 심지어 산청읍 (6,840명)은 청송읍 (5,347명) 다음으로 군청 소재지의 인구가 적다. 그런데도 이런 시골 동네에서 성철 스님(단성면 묵곡리), 박항서(생초면 어서리)라는 유명인이 배출됐다.[140] 산청군에는 대학이 없다.[141] 단계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삼장초등학교 병설유치원.[142] 러브풀 (본명 이동훈)은 1980년 9월 10일생이고 2007년 6월 27일간암으로 사망했는데, 유치원은 1984~1986년 사이에 다녔다. 정황상 공립유치원을 다녔거나 다른 도시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녔을 가능성이 높다.[143] 1960년대 의령군의 인구는 경기도 용인군과 비슷한 수준에 경상남도 양산군보다 많았으나, 의령군의 인구가 계속 줄면서 현재의 의령군 인구가 1960년대 양산군 인구보다도 적다. 그만큼 의령읍도 인구가 매우 적다. 의령군의 읍면별 인구는 의령읍 9,543명, 부림면 2,844명, 지정면 1,854명, 가례면 1,701명, 용덕면 1,563명, 화정면 1,532명, 정곡면 1,431명, 칠곡면 1,199명, 유곡면 1,174명, 궁류면 1,156명, 대의면 1,041명, 봉수면 1,006명, 낙서면 756명으로 의령읍조차 인구 10,000명을 못 넘고, 면 지역은 3,000명을, 낙서면은 1,000명을 못 넘는다. 낙서면의 인구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인구 677명)을 제외하면 경상남도의 읍면동 중 가장 적은데, 경상남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인 양산시 물금읍 (인구 11만 8,579명)의 153분의 1 수준이다.[144] 의령군에는 대학이 없다. 그나마 군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도 창원에 있다.[145] 회원동 주민센터로 올라가는 길 골목에서 왼쪽으로 가면 현재는 다른 유치원이지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46] 전주시 1921년, 천안시 1921년, 포항시 1922년, 창원시 1926년, 청주시 1929년. 수도권에는 1960~70년대에 겨우 들어온 곳도 있다.[147] 김해군 폐지는 1995년.[148] 아예 고성군과 붙어 있다.[149]마산시는 1960년대 15만 4,600명에서 2021년 36만 7,005명으로, (마산합포구 17만 5,716명, 마산회원구 19만 1,289명), 옛 창원시는 1960년대 17만 5,266명에서 47만 6,978명으로 (의창구 26만 2,408명, 성산구 21만 4,570명), 옛 진해시는 8만 496명에서 19만 2,755명으로 늘었다. 각 지역의 비중은 옛 마산시가 37.6%→35.7% (마산합포구 17.1%, 마산회원구 18.6%), 옛 창원시가 42.7%→45.8% (의창구 24.5%, 성산구 21.2%), 옛 진해시가 19.6%→18.5%로 변해 전체적으로 옛 창원시 지역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읍면동별로도 (舊) 창원시 시내 40만 6,111명, (구) 마산시 시내 27만 7,915명, (구) 진해시 시내 19만 2,755명, 내서읍 6만 6,547명, 북면 4만 3,411명, 동읍 2만 51명, 진동면 1만 2,349명, 대산면 7,225명, 구산면 4,318명, 진전면 4,004명, 진북면 3,544명으로 삼진(三鎭) 지역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150] 마산고등학교마산여자고등학교, 성지여자중학교성지여자고등학교가 이 곳에 있고, 해당 학교 학생들이 자신이 졸업한 유치원을 방문하기 위해 구마산, 신마산으로 가기도 한다. 다만, 1970년대까지는 이런 경우가 드물었는데, 현재의 50대 이상은 유치원 취원율이 1%대에 불과하던 시절에 태어났기 때문. 실제 통계로 보면 1956년생이 유치원에 입학하는 1960년이 돼서야 취원율이 1%를 돌파했다.[151] 참고로 보람유치원을 교육청에 기부한 원장은 84세이다. 정황상 1935년생으로 추정된다.[152] 명씨 인구가 2만 9,110명인데 그 중 789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153] 갈씨는 전국에 2,086명만 있는 희성이지만 창원에 그나마 많다. 기초자치단체로 내려가면 87명의 창원이 1위이다.[154] 감씨 자체는 인구가 6,024명인 희귀 성씨이지만 창원에 그나마 많이 살아서 전국 감씨 중 1,228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155] 전국 공씨 인구는 9만 1,869명인데 그 중 3,239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156] 전국 구씨 인구가 19만 3,080명인데 그 중 7,315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진주 등지에 살던 능성 구씨들이 창원으로 넘어온 것과 아예 창원을 본관으로 삼은 창원 구씨의 영향이 크다. 이름이 '-서', '-회', '자-', '본-', '-모'로 끝나면 거의 능성 구씨, '-근', '병-', '-효'로 끝나면 거의 창원 구씨다.[157] 전국 노씨 인구가 25만 6,229명인데 창원에 6,334명이 살고 있었다. 아마 김해 등지에 살던 노씨들이 창원으로 많이 넘어온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다.[158] 전국 빈씨 인구가 5,593명인데 그 중 218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기 때문. 사실 빈씨 자체도 수도권 (1,927명)보다 동남권 (1,961명)에 더 많이 살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수도권 집중, 그러나 빈씨는 동남권 집중[159] 서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서씨 인구 1위는 창원이다. 수원은 16,245명, 창원은 17,830명으로 수원과 1만 명 이상 차이가 난다.[160] 설씨 인구 1위인 기초자치단체가 창원시이다.[161] 여기서 말하는 신씨는 한자가 辛이다. 신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전체 인구 19만 2,877명, 수도권 거주자 8만 6,321명),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가면 창원이 6,821명으로 1위이다.[162] 여씨 자체도 동남권에 몰려 살지만 그 중 창원에만 1,092명이 살고 있었다. 아마 의령 여씨가 여씨 중 대종이고, 그들이 대체로 경상남도에 살고 있기 때문.[163] 왕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고 있지만 (전국 왕씨 인구 2만 5,565명, 수도권 거주 왕씨 1만 4,833명), 시군구 단위로 내려가면 창원에 685명의 왕씨가 살고 있다. 다만, 왕씨는 대종이 개성 왕씨이다.[164] 한자가 田이다. 田씨는 18만 6,469명만 있고, 그 성씨 자체가 수도권에 더 많이 살고 있지만 창원에는 7,165명이 살고 있다.[165] 제씨 전체 인구는 2만 95명인데 제씨 인구가 1,000명을 넘는 기초자치단체가 창원 하나뿐이다. 전국적으로 수도권에 인구가 많다고는 하지만, 제씨는 동남권에 더 많이 사는데 이는 제씨가 칠원 제씨 단본이기 때문이다.[166] 주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전국 인구 19만 4,766명),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내려가면 창원이 4,516명으로 1위, 수원은 4,318명으로 2위이다.[167] 전국 진씨 인구가 15만 7,599명인데 그 중 6,744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수도권에서 진씨가 가장 많이 산다는 수원조차도 창원보다 적다.[168] 차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전국 차씨 인구 19만 4,782명 중 9만 6,646명이 수도권 거주 중), 시군구 단위로 가면 창원의 차씨 인구가 5,742명으로 1위이다.[169] 전국 천씨 인구가 12만 1,780명인데 그 중 3,388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수도권 1위인 수원조차도 천씨 인구는 창원보다 적다.[170] 전국 추씨 인구가 6만 483명인데 그 중 1,502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수도권 1위인 수원도 추씨 인구는 1,110명이다.[171] 전국 팽씨 인구가 2,935명인데 그 중 791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172] 전국 표씨 인구가 3만 743명인데 그 중 1,010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수도권에서 그나마 표씨들이 많이 산다는 수원도 표씨 인구는 842명이다. 다만, 표씨는 사실상 신창 표씨 하나뿐이다.[173] 전국 하씨 인구가 23만 481명인데 그 중 1만 40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참고로 하씨 인구 2위, 3위도 모두 경상남도인데 진주에는 7,294명, 김해에는 4,835명의 하씨가 살고 있었다. 이는 하씨의 대종이 진주 하씨이기 때문이다.[174] 전국 허씨 인구가 32만 6,770명인데 그 중 창원에 9,824명이 살고 있었다. 사실 이는 허씨의 본관 때문인데, 김해 허씨들이 경상남도에 많이 살아서 이런 인구 분포를 보이는 것.[175] 전국 황씨 인구가 69만 7,171명인데 그 중 1만 9,131명이 창원에 살고 있었다. 황씨 자체는 수도권에도 많이 살고 있지만, 창원 황씨의 영향으로 기초자치단체 중 황씨 인구 1위가 이 지역이다.[176] 서경석은 1972년 2월 15일(52세, 음력으로 1월 1일)이므로 유치원은 1976~1978년 사이에 다녔을 것이다. 1972년생들은 버스 등 대중교통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는데, 유치원에 입학하자마자 용인자연농원이 문을 열고 양정모 선수의 첫 금메달을 본 셈. 서경석이 진해 출신이 아닌데도 진해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것은 아버지의 직장 때문이라고 한다.[177] 김대범은 1979년 8월 19일생(44세)이므로 1983~1985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김대범이 유치원을 다닐 시절에는 양평, 가평은 물론 춘천에도 고속도로가 없는 것은 물론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아직 착공 단계였으며, 중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비록 강원도 동해시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유치원만큼은 고향인 경남 창원에서 다녔다고 한다.[178] 이 때 김해국제공항도 부산 관할로 바뀌었고, 김해교도소부산교도소로 개명했다.[179] 시내 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의 3만 9,460명에서 28만 1,153명으로 늘었다가 27만 5,689명으로 줄었으나, 시내 집중도가 19.8%에서 51.6%로 높아졌다. 김해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27만 5,689명, 장유지구 16만 5,079명, 진영읍 5만 5,932명, 주촌면 1만 8,209명, 한림면 7,656명, 진례면 6,587명, 대동면 6,122명, 생림면 3,841명, 상동면 3,223명으로 시내에 52.3%, 장유지구 (롯데 워터파크가 있는 그 곳이다.)에 29.3%가 거주하고 있다. 이런 지리적 특성 덕에 사립유치원이 분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경상남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 3곳 중 2곳 (북부동 8만783명, 내외동 7만 5,138명)이 김해에 있다. 나머지 하나는 양산시 물금읍.[180] 1993년 4월 27일생(30세)이므로 1996년~1999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이들은 유치원 시절에 IMF 사태를 겪은 셈이다.[181] 가야읍 18,949명, 칠원읍 20,186명.[182] 그만큼 함안군이 창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뜻이다. 함안군의 읍면별 인구는 칠원읍 1만 9,486명, 가야읍 1만 8,666명, 군북면 6,228명, 칠서면 5,404명, 대산면 3,478명, 법수면 2,888명, 산인면 2,771명, 함안면 2,401명, 칠북면 1,948명, 여항면 912명으로 제39보병사단 이전 버프를 받은 군북면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대부분 인구가 5,000명 미만이고, 심지어 여항면은 1,000명 미만이다. 또한 함안면이 6.25 전쟁으로 시가지가 박살이 나면서 (이건 철원군도 마찬가지. 이 쪽도 철원읍이 박살나면서 군청을 갈말읍으로 옮겼다.) 가야읍이 성장하기 시작했으나, 2010년대를 기점으로 칠원읍의 인구가 가야읍을 역전했고, 인구의 28.8%가 가야읍, 30.7%가 칠원읍에 거주하고 있어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이 이 두 지역만을 고려하고 있을 정도이다. 반면 함안면에는 함안역이 있다.[183] 과거 함양군은 어린이날, 부처님오신날, 개천절, 한글날에도 눈이 왔었다고 한다.[184] 그만큼 함양군의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뜻이다. 함양군의 읍면별 인구는 함양읍 1만 8,418명, 안의면 4,574명, 수동면 2,403명, 마천면 2,172명, 지곡면 2,044명, 서상면 1,836명, 유림면 1,656명, 휴천면 1,620명, 백전면 1,553명, 서하면 1,445명, 병곡면 1,359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가 5,000명 미만이고, 심지어 1,000명대인 면도 6곳이나 된다. 반대급부로 함양읍의 비중은 높아졌는데, 비록 인구는 1960년대에 2만 6,760명이었던 것이 2021년에 1만 8,418명으로 줄었지만 비중은 21.8%에서 47.1%로 높아졌다.[185]삼천포시와 구 사천군의 사이가 나빠 이 곳으로 시청이 정해졌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삼천포 출신의 이방호가 사천군 출신의 강기갑에 패배했을 정도. 이 동네에 밀양 박씨 은산군파의 집성촌이 있다.[186] 시내 (옛 삼천포시) 인구는 1960년대 5만 3,144명이던 시내 인구가 2021년 4만 5,559명으로 줄었으나 그 비중은 35.8%에서 41.5%로 높아졌다. 같은 시기 사천읍의 인구는 1만 7,322명에서 1만 8,003명으로 늘어 그 비중도 11.7%에서 17%로 높아졌다. 사천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舊 삼천포시) 4만 5,559명, 사천읍 1만 8,003명, 사남면 1만 5,549명, 정동면 1만 2,968명, 용현면 7,584명, 서포면 3,545명, 곤양면 3,443명, 곤명면 2,839명, 축동면 1,615명으로 사천시 인구의 89.4%가 시 동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런 상태이니 사립유치원 설립자들도 동부 지역만을 고려 대상으로 삼고 있다.[187] 조선 시대에 곤양현이었던 지역.[188] 하동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189] 합천군에서 인구 1만 명을 넘는 읍면이 합천읍 하나밖에 없을 정도. 합천군 읍면별 인구는 합천읍 1만 1,339명, 가야면 4,272명, 삼가면 3,280명, 초계면 2,480명, 야로면 2,428명, 율곡면 2,250명, 용주면 2,220명, 대병면 2,064명, 대양면 1,844명, 가회면 1,787명, 쌍백면 1,771명, 청덕면 1,655명, 묘산면 1,593명, 봉산면 1,444명, 적중면 1,429명, 쌍책면 1,282명, 덕곡면 866명으로 합천읍을 뺀 나머지 면들은 인구가 5,000명 미만이고, 심지어 덕곡면은 1,000명 미만이다. 게다가 가야면은 해인사라는 유명한 절까지 있는데도 (삼보종찰 중 법보종찰이 이 곳 해인사이다. 불보종찰은 통도사, 승보종찰은 송광사.), 율곡면은 전두환 前 대통령이라는 유명인을 배출했음에도 인구가 매우 적고, 합천읍의 비중도 25.8%에 불과하다. 소아과도 없어서 소아과 진료를 위해 대구로 가야 하고, 심지어 합천시외버스터미널은 주말만 되면 문화 생활을 위해 대구로 가려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여기 사는 사회복무요원들도 자가용이나 오토바이 출퇴근은 거의 필수일 정도. 게다가 제헌국회 시기에는 합천군 갑, 합천군 을 이렇게 2명의 국회의원을 뽑았으나, 현재는 거창군, 산청군, 함양군과 한 선거구를 구성한다.[190] 그만큼 하동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을 상황이 열악한 셈이다. 하동군의 읍면별 인구는 하동읍 1만 21명, 진교면 6,041명, 옥종면 4,344명, 금남면 3,527명, 악양면 3,494명, 금성면 3,120명, 화개면 3,058명, 고전면 2,293명, 적량면 1,945명, 횡천면 1,904명, 양보면 1,764명, 북천면 1,847명, 청암면 1,527명으로 인구 5,000명 이상인 읍면이 2곳뿐이다. 심지어 청학동마을로 유명한 청암면은 아예 인구 수 꼴찌다. 반대급부로 하동읍의 비중은 높아졌는데 1960년대 2만 1,199명이었던 인구가 2020년 1만 239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14.9%에서 22.1%로 높아졌다.[191] 하동군에는 대학이 없다.[192] 에버랜드 판다월드에 사는 판다 러바오, 아이바오, 푸바오, 루이바오, 후이바오가 이 곳에서 나는 대나무를 주식으로 먹는다. 정작 하동군에서 에버랜드는 매우 멀어서 하동군 관내의 유치원생들은 그 곳으로 소풍을 가지 않는데 유치원에서는 소풍을 먼 곳으로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경기도 포천시, 연천군, 가평군, 양평군, 남양주시 등에서 서울로 소풍을 가는 경우는 있지만.) 하동군에서 에버랜드는 관내 학교들이 수학여행으로나 가는 수준이다.[193] 하동 정씨 중 잘 알려진 인물로 정주영이 있다.[194] 안동시는 김이권, 강릉시•평창군•정선군은 김이최, 성주군은 이김박, 목포시•무안군•신안군•진도군은 김박이, 제주도는 김이고 순서이다.[195] 문재인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196] 김영삼 前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197] 시내인 옛 장승포시 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 1만 6,636명에서 2019년 7만 7,065명으로 늘었고 그 비중도 14.1%에서 31.7% (옛 신현읍 지역 포함 시 동 지역 인구는 19만 3,942명, 해당 지역의 비중은 78.2%가 된다.)로 높아졌다. 거제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고현지구 11만 4,828명, 시내 7만 7,065명, 사등면 1만 3,302명, 연초면 8,298명, 일운면 7,961명, 거제면 7,293명, 하청면 4,728명, 장목면 4,571명, 동부면 3,131명, 둔덕면 2,972명, 남부면 1,605명으로 면 지역의 상태가 열악한 곳이 많다는 뜻이다. 일운면에는 대명 리조트가 있고, 장목면은 김영삼 前 대통령의 고향, 거제면은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데도 인구가 1만 명을 못 넘고 있으며, 남부면은 아예 인구 수 꼴찌다.[198] 전국 옥씨 인구가 2만 5,107명인데 그 중 경상남도에 6,962명, 특히 거제에 2,862명, 창원에 1,659명이 살고 있었다. 모든 성씨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반례를 아주 잘 든 성씨인데, 이는 옥씨가 의령 옥씨 단본이기 때문.[199] 전국 반씨 인구가 2만 8,062명인데 그 중 청주에 1,457명, 거제에 1,094명이 살고 있었다. 창원은 640명, 음성은 622명이었고 수도권에서 그나마 반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산다는 수원조차도 인구가 555명에 불과하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반씨의 본관이 거제이고(거제 반씨), 음성에 살던 반씨들이 청주에 많이 정착했기 때문.[200] 이는 대구, 청도, 밀양, 창원 등도 마찬가지. 이 때문에 대구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유튜버 정대철도 부곡하와이로 소풍을 간 것이다.[201] 그만큼 창녕읍과 남지읍을 뺀 나머지 면들을 상황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창녕군의 읍면별 인구는 창녕읍 1만 6,994명, 남지읍 1만 2,263명, 영산면 5,546명, 대합면 3,878명, 부곡면 3,579명, 도천면 2,768명, 대지면 2,569명, 이방면 2,540명, 계성면 2,363명, 고암면 2,034명, 장마면 1,863명, 유어면 1,781명, 성산면 1,588명, 길곡면 1,535명으로 인구 5,000명 이상인 지역이 3곳밖에 없다. 그래도 읍 지역의 비중은 높은데, 창녕읍은 2만 2,865명에서 1만 6,994명으로, 남지읍은 2만 1,373명에서 1만 2,263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창녕읍이 14.6%→27.6%, 남지읍이 13.6%→19.9%로 높아졌다.[202] 남해군에서 인구가 1만 명을 넘는 읍면이 남해읍 하나일 정도. 남해군의 읍면별 인구는 남해읍 1만 3,222명, 창선면 5,567명, 삼동면 3,902명, 이동면 3,733명, 고현면 3,543명, 남면 3,534명, 설천면 2,876명, 서면 2,624명, 미조면 2,348명, 상주면 1,609명으로 남해읍과 창선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 심지어 남해읍의 비중도 30.7%밖에 안 된다. 1960년대에는 삼동면(23,128명), 창선면(20,548명)이 인구 2만 명을 넘을 정도로 잘 나갔으나 삼동읍, 창선읍이 되지 못하고 몰락하면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면내 유일한 유치원으로 남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군내 버스의 배차간격이 엄청나게 길고, 이 곳에 사는 사회복무요원들도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를 이용한 출퇴근은 거의 필수로 인식될 정도이다.[203] 경남도립남해대학이 남해읍 북변리에 있기는 하지만 유아교육과는 없어서 남해군이 고향인 사람들은 유치원 교사가 되려면 고향을 떠나야 한다. 남해군에서 근무하는 유치원 교사들은 대체로 수도권이나 진주, 부산으로 떠나서 교육을 받은 뒤 교사로 발령받아 남해군으로 돌아오는 듯.[204] 윤성빈은 1994년 5월 23일생(29세)이므로 1997~2000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윤성빈은 이동면 난음리에서 태어났고 남해군에 사립유치원이 없는 정황상 남해이동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1994년생들은 IMF 사태Y2K 문제를 유치원 시절에 겪은 셈.[205] 박정희 이후 김천은 구미에 그 역할을 넘겨야 했다. 다만, 자사고는 김천에 김천고등학교가 있으나 구미에는 없다.[206] 영동군에 최초로 유치원이 설립된 해는 1956년이고, 영동군 동부는 훨씬 늦다.[207] 2018년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인 농소초등학교가 혁신도시로 이전했다.[208] 2017년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인 운곡초등학교가 혁신도시로 이전했다.[209] 그 와중에 김천시내 인구는 5만 6,981명에서 7만 4,869명 (율곡동 포함 시 9만 7,356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27.2%에서 53.2% (율곡동 포함 시 68.5%)로 높아졌다. 김천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7만 4,869명, 율곡동 2만 2,487명, 아포읍 7,131명, 어모면 4,062명, 대항면 3,469명, 감문면 3,305명, 봉산면 3,196명, 남면 3,128명, 농소면 3,043명, 구성면 2,835명, 개령면 2,478명, 대덕면 2,294명, 조마면 2,237명, 감천면 1,942명, 지례면 1,576명, 부항면 1,260명, 증산면 1,036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가 5,000명을 못 넘는다. 심지어 대항면은 직지사라는 유명한 절이 있는데도 인구가 3,600명밖에 안 된다.[210] 최민호는 1980년 8월 18일생(43세)이므로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1000원 지폐 한 장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고, 1986 서울 아시안 게임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첫 골 (박창선)과 첫 승점 (대 불가리아전, 1:1 무승부)을 유치원 시절에 봤던 셈이다.[211] 김천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강-임-장-전-윤이고 조씨는 서, 권, 백씨보다 적다. 조씨 아래로는 송-문-신-손-황-안씨 순이다. 김천에서는 전씨가 조씨보다 많은 셈.[212]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통천군, 고성군, 양양군, 강릉군, 삼척군, 울진군의 6개 군이었으나, 통천군은 북한으로, 울진군은 경상북도로 넘어갔고 양양군에서 속초시가, 삼척군에서 동해시태백시가 분리되고 강릉군이 강릉시로 승격되면서 현재는 5시 3군이 됐다.[213] 이렇게 시, 도 경계를 넘어 유치원을 통학하는 경우는 드물게나마 있다. 수도권의 경우는 평택-천안, 이천-음성, 가평-춘천, 포천-철원 등 주로 비수도권으로 가거나 비수도권에서 오고, 비수도권 간에는 단양-영주, 서천-군산, 청도-밀양, 울진-삼척, 제천-원주 등이 있다.[214] 이사이민 등은 고려하지 않음.[215] 2019년 개원 예정인 울진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216] 울진군에는 대학이 없다. 울진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절대다수가 대구, 안동 등 주변의 큰 도시로 가거나 아예 수도권으로 가서 대학을 다니고 왔다. 굳이 울진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싶다면 방송통신대나 사이버대학을 가는 방법밖에는 없다.[217] 울진읍 1만 4,051명, 평해읍 2,869명, 후포면 7,546명. 평해읍보다 후포면의 인구가 약 3배 더 많다. 참고로 후포면은 울진읍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울진군의 읍면별 인구는 울진읍 1만 4,051명, 후포면 7,546명, 북면 7,399명, 죽변면 6,490명, 평해읍 2,869명, 근남면 2,768명, 기성면 2,548명, 매화면 2,022명, 온정면 1,753명, 금강송면 1,270명으로 전반적으로 남부보다 북부에 인구가 더 많다. 심지어 울진읍의 인구 비중은 28.8%밖에 안 된다.[218] 울진이 고향인 사람들은 '두 손으로 등을 긁을 때 어떤 손으로도 안 닿는 곳이 울진'이라는 말을 할 정도이며, 서울 등 수도권에서 울진으로 가려면 4시간 가까이 걸릴 정도이다. 실제 동서울터미널울진종합버스터미널을 잇는 버스는 경기고속강원여객이 나눠 운행하는데 경기고속은 4시간 5분, 강원여객은 3시간 50분이 걸린다.[219] 무려 울산, 수원, 제주도보다도 빨리 들어왔다. 제주도에는 1924년, 수원에는 1928년, 울산에는 1930년에 유치원이 설립됐다. 또한 세종특별자치시는 여기보다 50년 가까이 늦게 유치원이 들어왔다[220] 그나마 개성은 잠깐 남한 영토였던 적이 있었다.[221] 안동보다 26년, 구미보다 46년 빠르다.[222] 의성군 서부에서 그나마 인구가 많은 면이지만 5,000명을 못 넘는 곳이다.[223] 2014년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인 단북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224] 2011년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인 사곡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225] 2000년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인 안계초등학교 고산분교가 폐교되었다.[226] 다만, 대구권의 대학 상당수는 경산시에 있다. 게다가 의성군과 가장 가까운 대구광역시 지자체인 군위군에는 대학이 없다.[227]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대학을 다니고 의성으로 발령받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의성군이 고향인 사람들이 많다.[228] 그만큼 의성군의 고령화가 매우 심각하다는 뜻이다. 의성군의 읍면별 인구는 의성읍 1만 3,447명, 안계면 4,585명, 금성면 4,384명, 봉양면 3,953명, 다인면 3,822명, 비안면 2,553명, 안평면 2,143명, 단촌면 1,937명, 구천면 1,821명, 옥산면 1,820명, 단북면 1,802명, 단밀면 1,756명, 점곡면 1,598명, 사곡면 1,565명, 춘산면 1,468명, 가음면 1,466명, 안사면 839명, 신평면 815명으로 면 지역은 인구가 5,000명을 못 넘고, 심지어 1,000명 미만인 면도 2곳이나 있다. 신평면은 경상북도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읍면동인데, 경상북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읍면동인 포항시 북구 장량동 (인구 7만 741명)의 89분의 1 수준밖에 안 되며, 군 전체 인구도 포항시 장량동보다 적다. 반대급부로 의성읍의 비중은 높아졌는데 인구는 2만 4,306명에서 1만 3,447명으로 줄어들었으나 비중은 11.9%에서 26.1%로 높아졌다. 심지어 이 동네는 지역 소멸 지수도 가장 낮아서 소멸 위험이 매우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인구가 적은 시골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은메달리스트가 나왔다고 한다. 또한 제헌 국회 시절에는 의성군 갑, 의성군 을 이렇게 2명의 국회의원을 뽑았으나, 현재는 국회의원 1명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했다.[229] 이 동네에서는 다인초등학교 병설유치원 -> 다인초등학교 -> 다인중학교 -> 안동 등 타지의 고등학교 및 대학교 순으로 진학한다. 더 옛날에 초등학교도 남자반, 여자반이 있던 시절에는 (일부 초등학교는 남자반을 많이 편성하고 여자반은 1반만 편성하거나, 남학생 중 하위 몇 명을 발전하라는 뜻에서 여자반에 넣기도 했다.) 유치원을 못 다니거나 상주에 가서 다녔다.[230] 애초에 권씨들 대부분이 안동 권씨이다.[231] 의성군 다인면에 동래 정씨 집성촌이 있다.[232] 당시 경상북도 영일군 포항면 포항동.[233] 1982년 12월 24일 설립된 포항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234] 실제로 아침 시간대에 경주시 안강읍, 강동면을 가 보면 포항의 유치원 버스들이 안강읍, 강동면에 사는 유아들을 태우는 것을 볼 수 있다.[235] 울진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236] 외지인들에게는 해병대 교육훈련단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237] 옛 포항시 지역은 1960년대의 6만 5,927명에서 2021년 33만 741명까지 늘어났으나 영일군 지역은 20만 8,337명에서 17만 2,175명으로 줄었다. 이로써 시내 집중도는 24%에서 65.7%까지 높아졌다. 구별로는 북구 27만 2,494명, 남구 23만 422명으로 북구에 53.4%, 남구에 46.6%가 거주하고 있다. 포항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33만 741명 (북구 동 지역 21만 2,771명, 남구 동 지역 11만 7,970명), 오천읍 5만 4,839명, 흥해읍 4만 604명, 연일읍 3만 633명, 동해면 9,908명, 구룡포읍 7,568명, 기계면 4,920명, 청하면 4,827명, 장기면 4,117명, 대송면 3,500명, 신광면 2,873명, 죽장면 2,719명, 송라면 2,490명, 호미곶면 1,887명, 기북면 1,290명으로 전체적으로 동, 읍 지역에 인구가 많이 퍼져 산다. 1960년대에는 기계면이 24,530명이나 될 정도로 잘 나갔으나 기계읍으로 승격하지 못하고 기북면까지 분리되면서 그대로 몰락해 기계초 병설유치원만이 기계면 유일의 유치원으로 남게 되었다. 여담으로 경상북도에서 인구가 많은 읍면동 3곳 중 2곳이 포항시, 그 중에서도 북구 (1위 장량동이 인구 7만 1,707명, 2위 오천읍이 5만 4,972명이다. 3위는 구미시 인동동인데 이 곳의 인구는 4만 9,857명)에 있다.[238] 전국 금씨 인구가 2만 5,432명인데 그 중 794명이 포항에 살고 있었다. 이는 금씨가 사실상 봉화 금씨 단본이기 때문이다.[239] 전국 편씨 인구가 1만 6,689명인데 그 중 포항에 541명이 살고 있었다.[240] 전국 황보씨 인구가 1만 383명인데, 그 중 1,141명이 포항에 살고 있었다. 이는 황보씨가 영천 황보씨 단본이기 때문이다.[241]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4만 6,338명에서 7만 1,644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29%에서 69.4%로 크게 늘었다. 영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7만 1,644명, 풍기읍 1만 640명, 부석면 3,116명, 안정면 3,051명, 봉현면 2,739명, 이산면 2,370명, 장수면 2,206명, 순흥면 2,021명, 문수면 1,969명, 단산면 1,906명, 평은면 1,457명인데, 영주댐 건설로 인해 평은면의 인구가 많이 줄었다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이 곳은 외지인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관광지가 많은 곳도 아니다.[242] 이렇게 시, 도 경계를 넘어서 유치원 원정 통학을 하는 사례는 단양군-영주시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수도권비수도권 간 유치원 통학의 사례로 경기도 평택시-충청남도 천안시, 경기도 이천시-충청북도 음성군, 경기도 가평군-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등의 경우가 있으며, 비수도권 간 통학으로는 단양군-영주시 외에 충청남도 서천군-전라북도 군산시, 대구광역시 군위군-경상북도 구미시, 충청북도 제천시-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충청북도 제천시 등 시, 도 경계에 접한 지역들에서 자주 볼 수 있다.[243] 게다가 소천면, 석포면 등 봉화군 동부에는 아예 없다.[244] 봉성면, 법전면 등 봉화군 동부의 경우는 영주로 가는 교통편이 부실해 (영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영동선 철도를 타야 하는데 단선이고 교행 대기 시간 때문에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원정 통학 수요가 없다시피할 정도.[245] 금나나는 1983년 8월 19일생( 40세)이므로 1987~1989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1988 서울 올림픽롯데월드 어드벤처의 개장, 그리고 번호판에 차~파, 처~퍼, 초~포, 추~후, 그~흐가 쓰인 자동차들을 유치원 시기에 봤던 셈이다. 그 시절이면 일본이 아직 월드컵에도 나가 본 적이 없는 축구 변방이었고 서울 청량리역에서 영주역으로 갈 때 3~4시간은 기본이고 많게는 6시간도 걸리던 시절이었다.[246] 당시 영덕면 우곡동. 영덕역이 있는 그 동네이다.[247] 지품면에는 지품1터널부터 지품10터널까지 터널이 10개나 있다.[248] 타 지역에서 영덕으로 가는 경우는 대개 청송, 포항, 울진 중 한 곳을 지나야 하고, 서울에서 영덕으로 가는 경우는 무조건 청송군을 경유한다. 심지어 국회의원 선거구도 군위군·의성군·청송군·영덕군으로 편성돼 있다. 사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영덕군이 국회의원을 단독으로 1명 뽑았으나, 1960년대 들어 청송군·영덕군으로 바뀌더니 중선거구제 시절에는 아예 울진이 붙어 영덕군·청송군·울진군이 됐다가 청송군·영덕군, 청송군·영양군·영덕군,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심지어 영덕군은 4월에 무려 34도까지 오르기도 했다.[249] 영덕군에서 인구가 1만 명 이상인 읍면은 영덕읍 (인구 1만 1,040명) 하나밖에 없다. 현재 영덕군의 읍면별 인구는 영덕읍 1만 1,040명, 영해면 6,381명, 강구면 6,248명, 병곡면 2,786명, 축산면 2,657명, 남정면 2,371명, 지품면 2,018명, 창수면 1,688명, 달산면 1,124명으로 영덕읍 혼자만 1만 명을 넘고 영해면, 강구면을 제외하면 인구가 5,000명을 넘는 면도 없다. 심지어 영덕읍의 비중은 30.5%이다. 이런 이유로 영덕군에 사는 사회복무요원들에게 자가용, 자전거, 오토바이 출퇴근은 거의 필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동네에서 유명인이 2명 배출됐는데, 현직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류중일 (강구면 출신)과 전직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고 동시에 현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신태용 (지품면 원전리 출신)이 그 주인공이다.[250] 1999년 달산초등학교가 폐교된 이후 달산면에는 교육기관이 없어서 해당 지역에 사는 유아들은 아예 이웃 동네로 가야 한다. 게다가 영덕읍 성심유치원은 아예 폐원되었다.[251] 영덕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포항시이다. 과거 영덕에서 공부를 잘 했다는 사람들은 포항고등학교 (남자)나 포항여자고등학교 (여자), 전교권 학생들은 경북고등학교 (남자)나 경북여자고등학교 (여자) 등 대구에 있는 학교로 진학했을 정도이다. 때문에 1950~60년대에는 매년 12월이 되면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러 가기 위해 학교를 결석하거나 조퇴했다고 한다. 대학은 더 멀리 있는 수도권이나 대구로 많이 가는 편.[252] 과거에는 영해 신씨였다.[253] 여담으로, 영덕군에서 남씨 다음으로 많은 성은 황씨이다.[254] 김진규는 1985년 2월 16일생(39세)이라 1988~1990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말 그대로 1988 서울 올림픽이 열릴 때 그는 유치원생이었고, 그와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사람으로 박나래, 하승진이 있는데, 하승진은 유치원 시절 자신보다 키가 40~50cm 가량 컸다고 한다. 그 시절이면 버스나 기차에서 담배 피우는 정도는 자연스러웠고, 심지어는 군대 내무반에서도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라 유치원 통학버스에서 기사가 담배를 피우기도 했을 정도. 당시 영덕군의 인구는 7만 명 정도였다.[255] 손준호는 1992년 5월 12일생(31세)이라 1995~199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손준호가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이면 에버랜드판다 밍밍과 리리가 있었고 영덕군에는 철도와 고속도로가 아예 없어서 서울에서 영덕을 가는 데만 5시간 넘게 걸렸으며, 영덕군의 사립유치원은 영덕읍, 영해면에만 있어 강구면에 살았던 그는 병설유치원이나 영덕읍의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했다.[256] 당시 행정구역상으로는 고령면 지산동. 고령면은 1979년 고령읍으로 승격됐으나 2015년 4월 대가야읍으로 개명했다.[257] 고령군에서 인구가 1만 명을 넘는 곳이 대가야읍 하나뿐일 정도이다. 읍면별 인구는 대가야읍 1만 77명, 다산면 8,445명, 쌍림면 3,397명, 성산면 2,594명, 개진면 1,941명, 운수면 1,883명, 우곡면 1,591명, 덕곡면 1,433명이며, 21세기 들어서는 대가야읍 (舊 고령읍)과 다산면만이 인구 1만 명을 넘겨 본 적이 있을 정도이고, 대가야읍에 32.1%, 다산면에 27.1%가 거주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들 지역에 거주한다.[258] 예전에는 가야대학교가 있었으나 폐교 상태이다.[259] 주로 대구.[260] 고령 신씨는 전라도에 더 많다.[261] 고령군에서 배씨는 성씨 순위 6위이다.[262] 그 시절 경주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은 어린 시절 눈이 오면 신라 왕릉에서 비료 포대를 가지고 썰매를 타고 놀았던 기억을 할 정도이다. 지금이야 경주가 관광도시로 각광을 받으면서 시내의 문화재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해 전국의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여기에 경주월드에 있는 드라켄, 발키리, 파에톤 등 전국구급 롤러코스터도 한몫 한다.), 그 당시에는 신라 왕릉이 문화재라는 인식이 없던 시절이었다. 이들의 말로는 중학교 전교 1~2등만 경주고등학교경주여자고등학교를 바라볼 수 있고 나머지는 선덕여고, 근화여고, 계림고 등으로 빠지거나 포항, 울산 등지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고, 심하면 20세가 넘어서 겨우 고등학교 입학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263] 시 승격은 포항이 경주보다 빨랐으나 (포항 1949년, 경주 1955년), 인구는 경주가 좀 더 많았다. 포항이 경주보다 인구가 많아진 시기는 산업화가 시작된 1970년대 이후이다.[264] 어찌 보면 충청남도 공주시, 부여군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이 경주와 비슷한 처지이다. 다만, 이 쪽은 백제 시대의 문화재들이다.[265] 반대로 포항시 연일읍에서 경주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다.[266] 애초에 감포읍 자체가 양북면에서 분리된 곳이다. 남은 곳은 문무대왕면으로 개칭.[267]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8만 5,895명에서 13만 7,203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29.4%에서 54.5%로 크게 높아졌다. 경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13만 7,203명, 안강읍 2만 5,017명, 현곡면 2만 1,947명, 외동읍 2만 431명, 건천읍 9,502명, 강동면 6,323명, 양남면 6,322명, 천북면 5,730명, 감포읍 5,501명, 내남면 4,712명, 문무대왕면 4,327명, 서면 3,268명, 산내면 3,219명으로 현곡면, 안강읍 등 울산, 포항과의 접근성이 좋은 지역들에도 시내 어지간한 동 수준의 인구가 모여 산다. 반면, 건천읍은 KTX무궁화호가 정차하는 경주역이 있는데도 인구가 현곡면보다 적고, 1만 명을 못 넘고 있다. 이는 경주시 자체가 과거 신라의 수도여서, 땅만 파면 신라 시대의 문화재들이 쏟아져 나와 개발이 더디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과 비슷한 처지. 이 쪽은 백제.[268] 이건 서울과 수도권 지역도 비슷해서 수원시, 이천시, 광주시, 화성시, 여주시의 유치원에서 에버랜드로, 안양시, 군포시, 의왕시, 광명시의 유치원에서 서울랜드로, 구리시, 남양주시, 고양시, 의정부시, 성남시, 하남시 등 서울 주변 도시나, 심하면 양주시, 포천시, 연천군, 가평군, 양평군 등 경기도 북부와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에 있는 유치원에서 서울어린이대공원, 올림픽공원, 롯데월드 어드벤처 등지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있다.[269] 최채흥은 1995년 1월 22일생(29세)이므로 1997~2000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돼서 IMF 사태를 겪었고, 스타크래프트가 발매될 때 유치원을 다녔다. 그는 유튜버 정대철이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에 태어났기 때문에 정대철과는 유치원 재학 시기가 겹치지 않는다.[270]구미시 강서 지구 동 지역. 구미면은 구미읍으로 승격된 후 1978년 시로 승격됐다.[271] 현재의 석적읍. 중지리 한정.[272] 현재의 북삼읍. 율리 한정.[273] 현 구미시 강서지구 동 지역.[274] 저 인구는 인동면, 칠곡읍을 다 포함한 수치이다. 1966년, 1970년, 1975년, 1980년 당시 경상북도 칠곡군의 인구는 11만 8,092명, 11만 5,566명, 11만 9,396명, 11만 923명이었는데 인동면 (1970년 8,652명, 1975년 8,820명)과 칠곡읍 (1970년 1만 5,670명, 1975년 2만 876명, 1980년 2만 8,986명)을 뺀 현재의 칠곡군만으로 계산하면 각각 9만 3,450명, 9만 1,235명, 8만 9,689명, 8만 1,937명이므로 실질적으로는 칠곡군의 인구가 1960년대보다 늘었다고 볼 수 있다.[275] 구미시 신동, 구평동, 진평동, 인의동, 시미동, 황상동, 임수동, 금전동, 옥계동, 거의동, 양호동, 구포동. 현재의 구미시 강동 지구의 동 지역으로, 행정동상으로는 인동동, 진미동, 양포동이며 현재의 인구는 11만 1,402명.[276]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 국우동, 도남동, 관음동, 동천동, 읍내동, 학정동, 동호동, 태전동, 매천동, 팔달동, 금호동, 사수동. 행정동상으로는 관문동, 구암동, 읍내동, 태전1동, 태전2동, 국우동, 관음동, 동천동으로 현재의 인구는 21만 8,661명.[277] 만약 인동면과 칠곡읍이 안 빠져 나갔으면, 칠곡군의 인구는 44만 4,821명으로 늘고, 진작에 시로 승격됐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278] 그 와중에 왜관읍의 인구는 1960년대 2만 7,579명이었다가 2021년 3만 3,444명으로 늘어났고 읍내 집중도도 23.4%에서 28.9%로 높아졌다. 2위 석적읍의 인구는 3만 889명, 3위 북삼읍의 인구는 2만 4,305명으로 이들까지 합하면 읍 지역의 인구 비중은 76.8%까지 높아진다. 칠곡군의 읍면별 인구는 왜관읍 3만 3,444명, 석적읍 3만 889명, 북삼읍 2만 4,305명, 약목면 9,924명, 동명면 5,312명, 지천면 4,234명, 가산면 3,520명, 기산면 3,230명으로 다른 군에는 넘쳐나는 인구 5,000명 미만인 읍면이 3곳밖에 없다.[279]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촬영지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할머니들 (박금분, 강금연, 곽두조, 안윤선, 박월선, 김두선, 박복형, 이원순)은 1930년대에 태어났는데, 그 시절이면 소학교 취학률조차 30% 미만이었고 (여자는 더 낮았다.), 유치원 취원율은 0.1% 미만이었다. 당시의 유치원 취원율은 현재 서울대학교 합격률 (0.5%), 9급 공무원 합격률 (약 1~2%)보다 더 낮은 셈.[280] 군위군 동부는 제외. 이 동네에서는 오히려 영천, 경주로 많이 간다.[281] 신천지 대구교회발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2월 28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왜관중앙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근무 53세 여교사가 구미 형곡동에 살고 있었고 같은 해 3월 2일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왜관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근무 48세 여교사는 대구에 살고 있었다. 이렇게 직장은 시골에 두고 주변 도시에서 사는 경우가 지방에서는 아주 흔하다.[282]대구광역시.[283] 신현준은 1968년 10월 28일생(55세)이므로 1972~197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악명높은 미니스커트 단속을 유치원 시절에 봤고,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과외가 금지되었으며, 데모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안전 보장을 이유로 유치원들이 단축수업과 휴업을 강행해 며칠씩 유치원에 못 간 적이 있었던 셈. 그 시절이면 담배에 매우 관대해서 길거리, 버스, 택시, 기차, 지하철, 영화관, 병원, 학교, 식당은 물론 집 안, 심지어는 비행기에서까지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다.[284] 왜관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근무 48세 교사, 왜관중앙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근무 53세 교사. 이들은 각각 남편, 아들에게 옮았다. 확진 순서는 2월 28일 왜관중앙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근무 53세 교사가 먼저 걸리고 3월 2일에는 왜관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근무 교사도 걸렸으며, 전자는 대구광역시에 살고 있었고, 후자는 구미시 형곡동 삼우타운아파트에 살고 있었다.[285] 청송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286] 영양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287] 영주시에는 사립유치원이 있지만, 평은면 등 안동에 가까운 곳에는 없다.[288] 이 때 안동군 월곡면이 폐지됐다.[289]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6만 3,816명에서 11만 5,780명으로 늘면서 시내 집중도도 24.4%에서 73.3%로 크게 늘었다. 안동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11만 5,780명, 풍천면 6,702명, 풍산읍 6,390명, 와룡면 4,114명, 서후면 3,555명, 북후면 3,022명, 임하면 2,884명, 일직면 2,777명, 길안면 2,721명, 남선면 2,122명, 예안면 1,875명, 남후면 1,786명, 임동면 1,773명, 녹전면 1,771명, 도산면 1,635명으로 읍면 지역의 인구가 1만 명을 못 넘는다.[290] 안동에서 상위 3개 성씨가 ‘김이권’인 것도 이 때문이다. 안동 주변의 예천, 영주, 봉화 등지도 권씨 비율이 높은 축에 속한다. 권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전국 권씨 인구 70만 5,941명, 수도권 거주 권씨 인구 32만 8,273명),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가면 안동이 1만 6,051명으로 1위인데 이는 권씨 중 가장 큰 본관이 안동 권씨이기 때문이다.[291] 안동시에서는 정치판을 안동 김씨와 안동 권씨들이 나눠먹을 정도로 세력이 강하다. 실제 15대 이후 안동 국회의원은 안동 김씨나 안동 권씨에서만 나왔고, 안동 시장도 정동호를 마지막으로 안동 김씨나 안동 권씨에서만 선출되는 실정이다. 여기서 안동 김씨는 구 안동 김씨이며, 신 안동 김씨 (장동 김씨)는 잘 없다.[292] 예를 들면 자신이 36세손 '혁'자 항렬이고 (권혁진, 권혁경, 권혁현 등) 친구가 38세손 '용'자 항렬인 (권용준, 권용학, 권용빈 등) 경우. 심하면 교사가 원생보다 항렬이 낮은 경우도 있다.[293] 엉덩국은 1994년 12월 24일생(29세)이므로 1997~2000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 시절 Y2K 문제 관련 뉴스를 많이 듣고 20세기 마지막 윤달과 거스 히딩크의 감독 취임을 경험한 셈. '엉덩국'이라는 이름은 필명이므로 유치원은 본명인 '김영택'으로 다녔다.[294] 심지어 이 둘은 국회의원 선거구도 상주시·문경시로 획정돼 있다. 사실 1950년대에는 상주에서 2명, 문경에서 1명을 뽑았다가 중선거구제 시절 상주는 김천, 문경은 예천과 붙었고 13대 국회에서 다시 갈라진 뒤 15대에서 19대까지 상주가 1명 뽑을 동안 문경은 예천과 합쳐서 문경시·예천군 선거구에서 1명을 뽑고, 20대에서는 상주시·군위군·의성군·청송군영주시·문경시·예천군으로 나눠 뽑다가 21대에서 같이 뽑게 되었다.[295] 주로 속리산면, 장안면 등 보은군 동부.[296] 주로 도리원 등 의성군 서부.[297] 그 와중에 상주시내 인구는 1960년대 4만 7,558명에서 2021년 5만 371명으로 늘었으며, 시내 집중도도 18.9%에서 51.7%로 늘었다. 상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5만 371명, 함창읍 6,564명, 낙동면 4,062명, 공성면 3,956명, 사벌국면 3,853명, 화서면 2,784명, 외서면 2,730명, 청리면 2,673명, 모동면 2,570명, 모서면 2,507명, 공검면 2,145명, 이안면 2,060명, 화동면 1,993명, 내서면 1,960명, 외남면 1,668명, 화북면 1,565명, 은척면 1,526명, 중동면 1,414명, 화남면 827명으로 면 지역은 인구 5,000명 미만에 심지어 화남면은 인구가 1,000명 미만이다. 이런 상황이니 화남면은 1998년 평온초등학교와 평온초등학교 중눌분교가 동시에 폐교되면서 교육기관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사립유치원들도 자연히 시내로만 몰리게 된 것이다.[298] 애초에 예성유치원이라는 이름이 제16전투비행단의 별명인 ‘예성대’에서 따 온 것이다.[299] 유치원생의 부모의 계급은 장교일 경우 주로 소령~중령, 부사관은 중사~상사급이다.[300] 이 과정에서 호명면이 이미 예천읍을 추월했다. 예천군의 읍면별 인구는 호명면 1만 9,193명, 예천읍 1만 4,801명, 풍양면 3,165명, 지보면 2,721명, 감천면 2,657명, 유천면 2,531명, 용궁면 2,456명, 용문면 2,309명, 보문면 1,697명, 개포면 1,523명, 은풍면 1,366명, 효자면 1,194명으로 호명면에 31.5%, 예천읍에 27.7%가 거주하고 있다. 예천읍의 비중도 높아졌는데 인구는 2만 6,198명에서 1만 4,801명으로 줄었지만 비중은 16.1%에서 27.7%로 높아졌다.[301] 2020년 12월 기준 호명면의 인구는 1만 9,193명으로, 추후 읍으로 승격될 가능성 있음.[302] 2000년 개포초등학교 폐교.[303] 1999년 보문초등학교 폐교.[304] 예성유치원은 군부대 안에 있는 특성상 인원 공개를 하지 않음.[305] 대부분 안동 권씨.[306] 안동시는 한술 더 떠서 권씨가 박씨보다 많다.[307] 김제덕은 2004년 4월 12일생이라 2007~2010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김제덕의 또래인 2004년생은 장미란 (역도)과 박태환 (수영) 그리고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을 유치원 시절에 봤고, 그야말로 공휴일 지옥 속에서 유치원을 다닌 셈. 이는 2009년설날 연휴 하루, 삼일절, 부처님오신날, 현충일, 광복절, 추석 연휴 중 이틀, 개천절 등 공휴일 8개가 주말에 겹치고 2010년에는 설날 연휴 이틀,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 크리스마스 등 공휴일 6개가 주말에 겹쳐 날아갔기 때문.[308]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3만 3,102명에서 4만 1,588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20.8%에서 58.3%까지 높아졌다. 문경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4만 1,588명, 문경읍 6,968명, 가은읍 4,054명, 마성면 3,565명, 산양면 3,044명, 산북면 2,777명, 농암면 2,609명, 영순면 2,451명, 호계면 2,399명, 동로면 1,951명으로 읍면 지역이 모두 인구 1만 명 미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경시는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경상도 지역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서 문경시 문경읍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이다.)인데도 인구가 줄고 있다는 점이다.[309] 한자가 錢이다. 錢씨는 전국에서 3,678명밖에 없는 극희귀 성씨인데 문경에 148명이 살고 있다. 이는 '돈 전'자를 쓰는 전씨가 문경 전씨 하나뿐이기 때문이다.[310] 화본역이 있는 그 곳이며, 2012년 이후 교육기관이 없다.[311] 어느 정도냐면, 서울보다 영천에 황보씨들이 더 많이 살고 있을 정도.[312]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4만 4,305명에서 5만 5,310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22.3%에서 53.8%로 높아졌다. 영천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5만 5,310명, 금호읍 1만 1,088명, 고경면 5,874명, 북안면 4,448명, 임고면 4,242명, 청통면 4,161명, 신녕면 3,919명, 화산면 3,296명, 화남면 3,138명, 대창면 3,096명, 화북면 2,213명, 자양면 1,230명으로 육군3사관학교 버프를 받은 고경면을 뺀 나머지 면 지역은 상태가 매우 열악하며, 자양면에는 교육기관이 없다. 1960년대에는 화북면(21,053명), 고경면(20,483명)이 2만 명을 넘을 정도로 잘 나갔으나 화북읍, 고경읍으로 승격하지 못하고 그대로 몰락하면서 이들 지역의 사립유치원은 고경면의 충성대유치원이 전부일 정도로 줄었다.[313] 그만큼 성주군이 매우 열악하다는 뜻이다. 성주군의 읍면별 인구는 성주읍 1만 3,737명, 선남면 6,164명, 초전면 4,511명, 용암면 3,734명, 월항면 3,397명, 수륜면 3,111명, 벽진면 3,071명, 대가면 2,452명, 가천면 2,035명, 금수면 1,212명으로 성주읍을 제외하면 인구 1만 명을 넘는 읍면이 없다.[314] 잘 알겠지만 벽진 이씨의 ‘벽진’이 바로 이 곳이다. 이 곳에 사는 아이들은 벽진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신성유치원, 또는 김천의 사립유치원을 다닌다. 심지어 금수면은 1999년 금수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교육기관이 아예 사라졌다.[315] 주로 왜관읍.[316] 영월에서 5위인 성은 엄씨, 성주에서 5위인 성은 배씨이다. 심지어 성주에서는 최씨가 배씨보다 적고, 김씨보다 이씨가 더 많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김씨가 1위를 차지하지 못한 동네가 성주군일 정도. 과거에는 포천군도 이씨가 김씨보다 많았다.) 성주군의 상위 5개 성씨가 ‘이김박정배’, 10개 성씨는 ‘이김박정배최강장백여’일 정도. 전국에서 10위권에 드는 성씨 중 조씨, 윤씨, 임씨는 성주에서 10위권 밖인데 그나마 성주에서 조씨는 거의 함안 조씨이다. 이는 성주 이씨, 벽진 이씨, 성주 배씨 등 성주가 본관인 성씨들의 집성촌이 있는 영향이 크다. 수륜면에는 함안 조씨의 집성촌도 있다.[317] 그 당시에는 석포면이 소천면의 일부였다.[318] 과거 봉화군 지역은 추석 즈음에 얼음이 얼고, 개천절에 눈이 올 정도로 추웠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봉화군에서는 어린이날, 어버이날에도 눈이 왔을 정도이다.[319] 2021년 봉화군은 여름이 7월 4일부터 8월 13일까지 39일에 불과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짧았고, 광복절이 가을이었다.[320] 봉화군에는 고속도로가 없고 그나마 있는 영동선 철도도 단선이다. 수도권에서 봉화로 가려면 무조건 영주를 지나야 할 정도이다.[321] 그만큼 봉화군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봉화군의 읍면별 인구는 봉화읍 1만 8명, 춘양면 4,433명, 물야면 3,140명, 명호면 2,254명, 소천면 2,224명, 봉성면 2,116명, 석포면 2,029명, 법전면 2,014명, 상운면 1,754명, 재산면 1,522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가 5,000명을 넘지 못하며, 심지어 봉화읍조차 2020년 11월에 잠시 1만 명 미만으로 인구가 감소한 적이 있었으며 소천면은 인구도 적은 데다 대중교통이 영동선 철도 외에는 없다시피하다. 그만큼 봉화읍도 비중이 31.8%밖에 안 된다. 하지만 반대로 철도역은 많아서 (영주역청량신호소 방향으로) 문단역, 봉화역, 거촌역, 봉성역, 법전역, 춘양역, 녹동신호장, 임기역, 현동역, 분천역, 비동역, 양원역, 승부역, 석포역 등 14개 역이 있고 그 중 8곳이 여객 취급을 한다.[322] 다만, 경상북도에 사립유치원이 하나만 있는 군은 울릉군도 있다. 경영 상황에 따라 영덕군이나 울릉군이 봉화군보다 먼저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될 수도 있는데 그 중 영덕군은 2023년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했다.[323] 2019년 9월 압량면이 읍으로 승격.[324] 때문에 욕설로 유명한 공무원 시험 한국사 강사 전한길도 유치원은 다녀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보다시피 전한길 (본명 전유관)은 1970년 8월 21일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에서 태어났기 때문.[325] 이 지역의 현재 인구는 10만 5,684명. 신서혁신도시가 여기에 있다.[326] 현재 인구 9만 3,562명.[327]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당연히 시내이다. 1960년대 2만 334명이던 인구가 2019년 15만 9,179명으로 늘었고, 시내의 비중도 12.7%에서 60%로 높아졌다. 경산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15만 9,179명, 진량읍 3만 6,335명, 하양읍 2만 5,619명, 압량읍 2만 912명, 와촌면 5,985명, 자인면 5,558명, 남산면 3,760명, 용성면 3,346명, 남천면 3,034명인데, 대구와 가까운 시내, 하양읍 지역의 인구가 많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만약 안심읍과 고산면이 대구로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경산시의 인구는 48만 1,852명까지 늘어났을 것이다.[328] 신천지 대구교회와 더불어 코로나19 사태를 엄청나게 키운 청도대남병원이 있는 동네이다. 그 여파로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대구와 더불어 청도를 여행금지구역으로 지정했고, 청도의 유치원들도 졸업식을 하지 못했다.[329] 청도읍 1만 2,182명, 화양읍 8,372명.[330] 청도에서 대구까지는 40분, 밀양까지는 25분 걸려 밀양과의 교류가 많다.[331] 청도군의 읍면별 인구는 청도읍 1만 1,940명, 화양읍 8,305명, 이서면 4,507명, 풍각면 3,935명, 매전면 3,785명, 금천면 3,327명, 각북면 2,227명, 각남면 2,127명, 운문면 2,110명인데 면 지역의 인구가 5,000명을 넘지 못하고, 운문댐 건설로 인해 운문면의 인구가 많이 줄었다는 특징이 있다. (심지어 운문면은 2018년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인 금천초등학교 문명분교가 폐교된 이후로 교육기관이 하나도 없다.) 청도읍은 인구가 2만 7,440명에서 1만 1,940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22.5%에서 28.4%로 높아졌다. (화양읍은 19.4%)[332] 이서면, 각북면, 풍각면 정도만 대구와 접하고 있다. 심지어 이서면은 대구광역시로 바로 가는 시내버스가 있다. 이런 이유로 청도의 인구가 줄어 버스 배차간격도 나빠지고 (시간당 1대면 양반이다.), 청도군에 사는 사회복무요원들도 읍내에 살지 않는 이상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할 정도이다.[333] 예씨는 전국적으로 1만 3,568명, 청도군에도 484명밖에 없는 희귀 성씨이지만 청도군은 기초자치단체 중 예씨 인구 1위이다.[334] 강동 지역 최초의 사립유치원이 황상동에 있는 사랑유치원인데, 1992년에 설립됐다.[335] 박정희 前 대통령의 고향은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이다. 그의 둘째 딸이자 2017년 3월 10일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인 박근혜 前 대통령의 고향은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심지어 박정희와 박근혜는 은지원과도 친척이다.[336] 1960년대 김천 20만 9,827명, 구미 11만 6,725명 → 2020년 김천 14만 863명, 구미 41만 9,296명.[337] 오태동 자체도 과거 칠곡군의 영역이었다.[338] 이건 시군구 경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강동구 천호동과 성내동에 있는 유치원 재원생 중 송파구 풍납동 거주 원생이 있을 정도이며, 지방의 경우는 구미시 오태동과 칠곡군 북삼읍, 혹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과 속초시 같은 예가 있다. 심지어 시도 경계를 넘거나, 아예 수도권과 지방을 넘나드는 유치원 통학도 간간이 보인다. 전자의 예는 충청북도 옥천군에 사는 아이들이 대전광역시의 유치원으로 통학하는 것이 있고, 후자의 예는 경기도 여주시에 사는 아이들이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에 있는 유치원으로 통학하는 것이나,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에 사는 아이들이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는 유치원으로 통학하는 경우이다.[339] 시내 인구도 1960년대 2만 1,269명에서 2019년 21만 3,676명으로 늘어 시내 인구 비중이 18.2%에서 51.7% (옛 칠곡군 인동면 지역 (인동동, 진미동, 양포동)은 11만 1,650명으로 전체 인구의 26.9%이다. 이 둘을 합치면 31만 5,168명이 되고 전체 인구의 75.2%로 높아진다.)로 높아졌다. 구미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21만 3,676명, 인동지구 11만 1,402명, 고아읍 3만 6,487명, 산동읍 2만 6,619명, 선산읍 1만 5,001명, 해평면 4,133명, 장천면 3,183명, 도개면 2,225명, 무을면 1,873명, 옥성면 1,729명으로 산업단지가 들어선 산동면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면 지역의 인구가 많이 열악하다.[340] 이수민은 1995년 9월 11일생(28세)이므로 1998~200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20세기 마지막 윤달 (1998.6.24~7.22)과 21세기 첫 윤달 (2001.5.23~6.20), Windows 98Windows 98 SEWindows 2000Windows MeWindows XP 5종류의 운영체제 발매 (동시에 Windows 1.xWindows 2.xWindows 3.xWindows NT 3.1•3.5•3.51Windows 95 등등 7종류의 운영체제 지원 종료),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을 모두 유치원 시절에 경험한 셈.[341] 과거에는 이 곳에서 첫눈개천절 무렵이면 내렸다고 한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어린이날에 눈이 왔을 정도이다.[342] 인구가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1동과 비슷한 데다 (이 쪽은 풍납토성 문화재 때문에 낙후될 수밖에 없다.) 무려 1960년대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준으로 낙후됐다. 그 시절에는 강남 지역에 변변한 건물이 없었고, 대치동에도 초가집이 있었을 정도이다. 이런 이유로 영양군에서 아파트를 보기 힘든 건 물론 어린이는 산삼 수준으로 드물어졌다.[343] 영양군에는 철도, 고속도로가 모두 없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서 영양으로 가려면 거의 무조건 안동시를 지나야 한다. 서울에서 영양으로 오는 경우는 대개 안동을 경유한다.[344] 심지어 2006년에 이미 1만 9,989명을 기록하며 2만 명 선이 무너졌고, 인구가 5,000명을 넘는 곳이 영양읍 하나밖에 없다. 현재 읍면별 인구는 영양읍 7,305명, 입암면 2,141명, 석보면 2,042명, 일월면 1,772명, 청기면 1,739명, 수비면 1,693명으로 군청 소재지인 영양읍조차 인구 1만 명을 넘지 못한다. 다만, 영양읍의 비중은 43.3%이며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도 다닐 정도이다.[345] 다민 영양 주변의 군 중 봉화군은 아직 사립유치원이 있다. 울진군, 청송군, 영덕군은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지만(...).[346] 하지만 인구는 청송이 8,484명 더 많다. 청송의 인구는 2만 5,430명, 영양의 인구는 1만 6,946명이다.[347] 심지어 이 동네는 우씨와 금씨도 20위 이내에 든다. 우씨가 단양 우씨, 금씨가 봉화 금씨 하나뿐인 걸 생각하면 상당히 비중 있는 성씨인 셈.[348] 한반도 내의 주요 도시에서 울릉도를 갈 때는 주로 포항에서 배를 타고 간다. 일각에서는 이런 특수성을 감안해 울릉군을 특별자치군으로 승격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349] 게다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어린이 인구가 1,000명 미만이다. 다만, 울릉도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모두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울릉군에는 대학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울릉도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중요한 시험을 볼 수 없고, 방통대나 사이버대학을 가는 경우가 아닌 이상 울릉도에서는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없다.[350] 가끔씩 울릉도가 고향이지만 유치원을 다녔다는 어르신들은 아주 어린 시절에 포항 등 육지로 이사를 간 사람들이다. 애초에 울릉도 사람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포항으로 가서 치르고 국회의원 선거구도 포항시 남구·울릉군으로 편성돼 있을 정도이다.[351] 1968년생, 1969년생, 1970년생이 도동유치원 최초의 원생이었는데 (당시에는 4세와 5세 아동만 유치원생으로 받아 줬다. 3세 아동을 유치원에 받아 준 것은 1991년이다.), 1968년생은 55~56세, 1969년생은 54~55세, 1970년생은 53~54세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유치원 취원율이 아이비리그 합격률 (6.79%)은 물론 하버드 대학교 합격률 (4.5%)보다 낮았다.[352] 이 때 울릉읍의 인구 비중이 처음으로 50%를 돌파했다. 당시 울릉군의 읍면별 인구는 울릉읍 1만 6,750명, 북면 5,943명, 서면 6,782명.[353] 그만큼 울릉군의 생활 수준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울릉군의 읍면별 인구는 울릉읍 6,434명, 서면 1,322명, 북면 1,321명으로 울릉읍에 전체 인구의 70.2%가 몰려 있고, 그나마 거주하는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아파트 역시 울릉읍에만 있다. 현재 울릉군보다 인구가 적은 지방자치단체는 없다. 그나마 1960년대 경기도 과천시 (인구 7,945명. 당시 시흥군 과천면)보다는 많지만.[354] 주로 포항시, 대구광역시.[355] 강영우 총경은 1976년생(48세)이므로 1980~198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시절에는 한국이 아직 월드컵에 1번밖에 나가지 못한 약체였고, 모든 국민이 국기강하식을 경험했다.[356] 청송읍 5,293명, 진보면 6,629명으로 진보면의 인구가 1,336명 더 많다.[357] 진보면 6,438명, 청송읍 5,106명, 안덕면 2,609명, 현서면 2,532명, 부남면 2,507명, 현동면 2,097명, 주왕산면 1,860명, 파천면 1,805명. 때문에 군 전체 인구의 절반이 청송읍이나 진보면에 거주한다. 심지어 청송읍은 비중이 21%밖에 안 되고, 인구가 가장 적은 군청 소재지라는 오명까지 얻었다.[358] 청송군에는 대학이 없고 그나마 군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은 안동시에 있다.[359] 청송읍이나 진보면 기준이며, 현동면 (흔히 도평리라고 부른다.)은 오히려 포항으로 많이 간다.[360] 옛날에는 무려 개천절 무렵에 첫눈이 왔다.[361] 유도 이원희. 실제로 그는 이 지역에서 병설유치원을 다녔거나 유치원 시절 서울로 이사를 갔을 것이다.[362] 청송에서 황씨는 인구가 1,081명이 있고 4위인데, 최씨는 879명이고 8위, 강씨는 334명이고 아예 10위권 밖에 있다. 청송의 10대 성씨는 '김이박황권조윤최정임'이다. 그나마 그 황씨들 대부분이 평해 황씨다.[363] 이원희는 1981년 7월 19일생(42세)이므로 1985~1987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청송에는 사립유치원이 없기 때문에 병설유치원을 나왔거나, 청송에서 유치원을 다니다가 서울로 이사를 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