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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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명칭
3. 역사
4. 현황
4.1. 대한민국
4.2. 외국
4.2.1. 미국
4.2.2. 일본
4.2.3. 프랑스
4.2.4. 독일
4.2.5. 영국
4.2.6. 기타 유럽
4.2.7. 그 외
6. 대학에 대한 인식
7. 의의
8. 대학이 없는 나라와 지역
8.1. 4년제 대학만 없는 곳
8.2. 사립대학이 없는 곳
9. 국가별 최초의 대학
9.1. 아시아
9.2. 아프리카
9.3. 북아메리카
9.4. 남아메리카
9.5. 오세아니아
9.6. 유럽
10. 여러 나라에 캠퍼스가 있는 대학
1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고등교육법 제28조(목적)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대학()은 현대 각국의 교육시스템에서 가장 대표적인 고등교육기관이자 학문의 전당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하여 새로운 학문을 창출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는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학교 당국에서 정해준 과목만을 공부하는 교육기관이지만 대학교는 자신이 해야 할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하는 교육기관이다. 그 때문에 대학교가 여타의 학교들과 극명하게 차이 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학교는 의외로 수업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며 수업 시간도 자신이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대학생들은 자신이 할 공부를 찾는 방법을 몰라서 수업 시간 외에는 놀고먹는 것으로 착각했고 그 때문에 대학교가 놀자판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1]


2. 명칭[편집]


대학을 뜻하는 영어단어로는 유니버시티(University)와 칼리지(College)가 있는데, 전자는 종합대학, 후자는 단과대학이라는 의미가 강한 편이다.[2]

University에 대응되는 뜻으로 '대학(大學)'이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곳은 일본이며, 그 시초는 제국대학이다. 한국에서는 과거에 법률상 대학교와 대학의 구분이 존재했으나, 현재는 대학교와 대학의 명칭 차이는 없어졌다. 종합대학 문서 참고.


3. 역사[편집]


세계 최초의 대학이 어디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편이다. 우선, 흔히 최초의 대학으로 꼽히는 학교는 1088년 신성 로마 제국 시대에 세워진 이탈리아볼로냐 대학교로 볼로냐 대학교가 '서유럽' 최초의 대학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볼로냐 대학교가 정말 '전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있는데 그 후보들을 하나하나 나열해보면 이렇다.

  • 세계 최초의 '국립학교'이자 처음으로 '대학(University)'이라는 이름을 가진 교육기관은 425년 동로마 제국에 세워진 콘스탄티노폴리스 대학(마그나우라 궁정 대학, Πανδιδακτήριον της Μαγναύρας, Pandidakterion)이다. 그 이전의 교육기관들은 성당 부속이거나 사립 교육기관이었으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고등교육기관인 콘스탄티노폴리스 대학을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설립하였고 그곳에서 법학, 철학, 의학, 경제학, 공학 과정 교육이 진행되었다. 이후 제국 내 다른 대도시인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크에도 비슷한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학교들은 동로마 제국의 쇠망과 함께 명맥이 끊겨 현존하지는 않는다. 주로 그리스동로마 제국을 주목하는 쪽에서 이미 없어지긴 했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 대학을 최초의 대학으로 밀어주는 편이다. 다만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 대학의 자리에 세운 이스탄불 대학교를 판디닥테리온의 명맥을 이었다고 해서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보자는 시각도 있지만, 정통성이 한 번 끊겼기 때문에 논외로 치는 쪽이 주류이다.

  • 5~7세기에 세워진 인도의 날란다 대학이 최초라는 설도 있다. 인도의 날란다 대학은 불교학 교육과 불교 수도원 기능 외에 불교 외 종교, 철학, 문학, 수학 등 다방면에 걸친 교육을 제공하는 한편 날란대 대학의 도서관은 당시 세계 최대의 도서관으로 논리학, 문학, 점성술, 천문학, 의학 등의 분야까지 풍부한 자료를 구비하여 다르마 간자(Dharmaganja, '진리의 보물'이란 뜻)라고까지 불렸다. 날란다 대학은 이후 없어졌다가 현대에 들어 다시 건립되었지만, 어디까지나 현대에 다시 세운 것이기에 밑의 알 카라윈에게 기네스북 타이틀은 빼앗겼다. 주로 인도불교계에서 이 날란다 대학을 최초의 대학으로 밀어준다.

  • 이슬람 제국 건설 후 이슬람권 곳곳에 세워진 마드라사(مدرسة)라는 이슬람 교육기관들이 최초의 대학이라는 의견도 있다. 제일 대표적인 후보는 859년 이드리시 왕조 시대에 세워진 모로코알 카라윈 대학(جامعة القرويين)으로 이쪽은 무려 현대까지 모로코 페스에 현존한다. 그래서 기네스북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학' 타이틀은 볼로냐 대학교를 제치고 알 카라윈이 가져가게 되었다. 실제로 위에서 설명한 동로마 제국의 대학이나 날란다 대학은 역사가 끊기면서 사라져간 반면 알 카라윈을 비롯한 마드라사들은 볼로냐 대학교를 비롯한 이탈리아와 유럽의 대학들에 영향을 많이 준 편이라 '최초의 대학'을 논할 때 가장 많이 논쟁의 대상이 되는 편이다. 위키피디아Madrasa and university도 참고해보자.

알 카라윈의 설립자는 파티마 알 피흐리라는 여성과 여동생 마리얌으로 둘은 튀니지의 거상이었던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은 후 모로코로 이주했는데 이슬람에 대한 신앙심이 매우 깊었던 자매는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여러 교육기관들을 설립하는데에 힘썼고 알 카라윈도 그렇게 세워진 교육기관중 하나였다. 마드라사는 기본적으로 종교적 교육기관으로서 초기에는 이슬람에 관한 신학이나 이슬람 법률을 가르쳤지만, 후에는 종교적인 학문 외에도 문법, 약학, 수학, 천문학, 역사, 지리, 음악 등 다양한 학문을 가르쳤고 특히 화학, 물리학 등 과학 교육기관으로도 유명했다. 그중에서도 알 카라윈은 여러 과학자를 비롯해 많은 위인을 배출했는데 서양에도 널리 알려진 유명인으로는 훗날 기독교로 개종한 탐험가이자 작가 레오 아프리카누스, 교황(?!) 실베스테르 2세(945년~1003년, 출처) 등이 있다. [3]
사족으로 알 카라윈을 비롯한 마드라사들은 여성에게 최초로 문을 연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다만 여성이 정식 학생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한다. 그래도 '여성의 자존심'이라고 불린 파크르 운 니사등의 여성학자가 간간히 이름을 남겼다.

이렇게 세계 최초의 대학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학문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고등교육기관은 중세 이탈리아 이전, 고대 로마고대 그리스에도 있었고 동양에서도 국학과 국자감, 성균관 등 대학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교육기관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학'의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볼로냐 대학교(1088년), 알 카라윈 대학(859년), 콘스탄티노폴리스 대학(425년), 날란다 대학(5~7세기경) 모두가 '세계 최초의 대학'의 후보이다.

그러나 알 카라윈 정도를 제외한 다른 고·중세 대학들은 현재까지 내려오지 않고, 학과, 박사학위를 비롯한 현재의 대학문화를 확립하고 지금까지 내려오는 대학의 개념을 정리했으며, 대학을 뜻하는 영어 Univeristy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Universitas가 처음 포함된 것은 논란의 여지 없이 볼로냐 대학교다. 정리하자면, 대학과 유사한 교육기관은 고대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이 있었지만 그중 현재까지 내려오는 '대학'의 개념을 규정하고 원류가 된 것은 볼로냐 대학교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대학인 것이다.

특히 대학의 정체성을 '정치권력과 교계로부터 독립된 제3지대'인 이른바 리버럴아츠 칼리지로 인식한다면, 대학은 전형적인 서유럽적 현상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개념은 서구 바깥에서는 생소한 것이었다.

물론 우리의 강좌 범위 내에서는 대학교라는 현상의 모든 특성 가운데서 골자만이라도 설명한다거나 대학교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몇 가지 중요한 점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첫째는 체제로 본 대학교다

[
1208년~1209년의 교황 칙서[4]에서 최초로 명명되기 시작하는 'universitas'라는 명칭은 처음에는 일종의 사회학적 의미를 지니다가 곧 정신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사회학적으로는 연합, 일치, 조합, 총체, 가르치는 이들과 학생들을 위한 정당한 공적 체제를 의미한다. 둘째의 정신적 의미 역시 매우 일찍이 그 힘을 발휘하게 되며, 학문의 종합(universitas litterarum)·전체성·학문을 두루 포함하는 총체성을 뜻하며, 무엇보다도 신학·철학(교양)·법률학·의학의 네 학부의 종합을 의미한다
]
. 이렇게 대학교를 하나의 체제로 이해한다면, 어떤 위계질서에도 속하지 않는 기관이 바로 대학교다.[5]대학교는 사실 교회 측의 전권을 부여받은 기관이다. 물론 교황은 위임자를 통하여 강한 영향력을 대학교 내에 발휘하였으며, 이는 특히 파리 대학교의 경우에 더욱 심했다(이를 간섭이나 섭정이라고 한다면 완전히 틀린 말이다. 대학교는 교황 자신의 집이나 마찬가지다.[6] 물론 특정 지역이나 지방의 정치적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대학의 독립성이란 다름 아닌 교황의 특권에서 비롯한다). 그렇지만 대학교는 어떤 추기경좌 성전이나 수도원처럼 교회의 위계 조직에 종속시킬 수 있는 단순한 교회 기관도 아니다. 대학은 서양 역사에서도 새로운 어떤 것이며, 서양 문화 특유의 어떤 것으로 남을 것이요, 서양 그리스도교 특유의 어떤 것으로 표기될 것이다. 동방 그리스도교, 즉 동방교회는 이러한 대학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즉 신학부의 석사들(magistri) 전체로 이루어진 어떤 체제가 존재할 수도 있으며, 이러한 체제를 이해하거나 설명하기란 어렵지만, 그래도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관한 일이라면 교회의 위계질서 안에 어떤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매우 구체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동방교회는 애초부터 상상할 수도 없었다. 대학교란 처음부터 갈등의 소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는 체제였다. 그러나 대학교란 이미 서양 정신을 특성으로 표출하는 스콜라 철학의 출범 속에 숨겨져 있던 폭발성을 지닌 것이다. 그 밖에도 이러한 석사들의 권위는 대학교라는 말이 엄격한 의미로 쓰여지기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영국의 왕이던 헨리 2세는 영국 켄터베리의 교구장 토마스 베케트(Thomas Becket) 주교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자, 자신이 분쟁을 파리의 석사들에게 제시해 보자고 한다. 이것이 바로 파리 대학교가 정식으로 설립되기 이전인 1169년의 일이다.

둘째로, 중세의 대학교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교 전체를 위한 기구의 일종이며, 정상적인 경우라면 실질적으로 서양에 국한된 것이지만 원칙적으로는 그리스도교 문화 전체에 개방되어 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또한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으며, 더구나 오늘날의 대학교와 비교할 때는 더욱 그렇다. 옥스퍼드 대학교, 볼로냐 대학교, 파리 대학교, 툴루즈 대학교, 쾰른 대학교, 나폴리 대학교 등 어디서 가르치고 배우든 간에, 언제나 그 사람은 아무런 언어나 소통의 어려움을 겪지 않고서도 서양 그리스도교의 정신적 공간 안에 머물러 있다. 이는 물론 서양의 정치나 사회적 질서와 결합되어 있는 단순한 요소는 아니다.

셋째로, 중세의 대학교는 도시생활의 유행과 함께한다. 이 또한 단순한 사회적 현실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정신적 생동성의 구조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세뉘는 안셀무스의 제자들이 아벨라르두스의 제자로 바뀌어 버렸다고 말하기도 한다.[7]

안셀무스의 제자들은 비록 단 하나의 논지도 성서에 의존하지 않는 한 권의 신론(神論)을 자신들을 위하여 저술해 줄 것을 그들의 장상인 안셀무스에게 간청했지만, 그 학생들이란 수도원 소유지에 건립되어 있는 르 벡(Le Bec) 수도원학교에서 배출하는 하급생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들만의 외딴 골짜기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이었다. 이런 학생들에 비교하면 아벨라르두스의 제자들은 전혀 다른 사회적 유형에 속한다. 그들은 (말하자면 당시의 유행가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를 노래할 줄도 아는 가수이자, 이 대학교에서 저 대학교로 유랑하면서 동료를 끌어 모으기도 하고, 도시의 시민들이나 심지어는 교수들에게까지 반항을 일삼기도 하는) 철새와도 같은 부류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도시적 특색이며, 이런 특색은 특히 봉건 지주들로부터 벗어난 해방감과 새로운 자유로 이루어져 있다. 13세기 초반을 기점으로 하는, 모든 철학과 신학 영역의 저술들은 이제 더 이상 수도원이나 수도원학교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기존의 수도원들이 여전히 존립하고 있었고, 물론 거기서도 대작에 가까운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때부터 모든 학술적 문헌은 대학교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기존의 수도원들이 당대의 수준에 필적하는 연구서를 펴내고자 하면, 산골짜기에 묻혀 있는 수도원 회랑을 떠나 도시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8] 토마스가 파리에 도착하던 바로 그해에, 시토 수도원 역시 수사들을 교육하기 위한 학교를 파리에다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베네딕도 수도원도 곧 뒤따라 파리에 학교를 세운다. 탁발수도승들이 더 일찍이 대학교에 몸담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와는 다른, 직접적 요인들과 결부되어 있다. 즉, 새로 생긴 수도회들은 설교가들의 공동체로서, 오직 도시생활만을 원했으며, 도시 밖에서는 생활해 나갈 수도 없었다(산골짜기에서 구걸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구걸하면서 살아가겠다는 단순한 현실이 대도시로 진출하게 하는 길을 열었다고 감히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세 대학교의 특징이라면, 교회의 위계질서와 나름대로 팽창해 나가던 사회 사이의 중립적 지위, 서양 그리스도교 전체를 위한 유일한 교육 기구라는 특성 그리고 도시 문화에 의한 부상이라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전부다.

-Josef Pieper 씀, 신창석 옮김, 『토마스 아퀴나스』 100-104쪽


이 시대에 신학의 연구와 학문의 중심지는 오직 새로 설럽된 대학들이었다. 1200년경 파리의 여러 학교 교사들이 "교사단"(universitas magistrorum)이라는 고유한 단체로 결합하였고, 그것은 곧 독립된 존재로 교회와 국가의 승인을 얻었다. 그레고리오 9세는 1231년에 이 단체를 주교로부터도 독립시키고, 많은 특전을 부여하였다. 이 무렵 볼로냐에서도 또한 그러한 "단체"(universitas)가 발생하였는데, 그러나 여기에서는 학생들이 결합의 주요 대표자들이었다.(학생단. universitas scholariun). 다음 시대에 그러한 결합체들이 많은 곳에서 생겨났다. 그것들은 간단히 "대학"으로 불렸다. ... "학문의 어머니"인 파리는 최대의 명성을 누리고 가장 많은 학생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 사람들은 성권(sacerdotium) 및 왕권(Imperium)과 나란히 학문을 독립된 제3의 "세계적 직권"으로 평가하였다. 쾰른의 참사회원인 로에스의 알렉산데르는 1284년에 재치가 많은 은유시 「파보」(pavo)에서, 이탈리아인에게는 성권을, 독일인에게는 왕권을, 프랑스인에게는 학문을 서구 민족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한 각기의 특별한 사명으로 돌렸다. 이러한 대학 중 하나에서 박사학위의 수여는 귀족과 동등의 지위를 의미하였다. 학문이 귀족의 일원이 된 것이다!

-August Franzen · Remigius Bämer·Roland Fröhlich. 《세계 교회사》. 최석우 옮 김. 244-245쪽


볼로냐 대학교는 1088년 개설 초기엔 신학, 법학, 의학 3개의 학부밖에 없었다. 다만 시대가 지나면서 '자유7과'라고 불리는 7개 학부가 보편적으로 정착된다. 3학 4과는 각각 문법, 논리학, 수사학산술, 기하, 음악, 천문이다. 자유7과의 확립 이후 본래 있던 3학부는 철학과 더불어 자유7과를 배우고 나서 이들을 심화해서 배우는 과목으로 변했다.


파일:Mediaeval_universities.jpg

중세 유럽의 대학

중세 대학에서 수여하는 학위는 이수의 정도에 따라 '바칼로레우스(baccalaureus)', '마지스터(magister)', '리첸티아 도첸디(licentia docendi, 후일 doctor, '독토르'로 간략화됨)'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들이 각각 현대의 학사(bachelor's degree), 석사(master's degree), 그리고 박사(doctor's degree)에 직접적으로 해당한다. 리첸티아 도첸디는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이란 뜻인데, 따라서 이것을 따면 이론적으로는 그때부터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중세 대학의 학위들은 관습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얻은 학위인지 명시해 주었다. 이에 따라 모든 과목을 이수한 학생에게 신학과는 Theologiae Doctor (Th.D.), 법학과는 Jurisprudentiae Doctor (J.D.), 의학과는 Medicinae Doctor (M.D.), 그리고 철학과는 Philosophiae Doctor (Ph.D.)를 수여하게 된다. 여기서 의학과 학위의 Doctor인 Doctor Medicinae를 줄여서 의사 선생님을 영어로 Doctor라 부른다. 사족으로 라틴어는 이론적으로는 격변화를 하기 때문에 단어 순서가 의미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단어 순서에 따라 뉘앙스가 살짝 다른데, Doctor가 뒤에 간 형태는 학위의 레벨(Doctor)을 강조하는 의미, 앞에 가면 과목을 강조하는 의미다. 선배격인 3분야는 현대로 와서도 그대로이지만, 정작 제일 늦게 추가된 철학과는 과학혁명을 거치며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수많은 과목들로 분화되어 나중에는 아예 Ph.D. 뒤에 따로 전공을 명시해주는 수준까지 왔다. 이 경우 Ph.D. in Chemistry 등과 같이 전치사 in을 사용한다.

사족으로 중세 4학부의 맏이인 신학부와 막내인 철학부(현대에는 신학을 제외한 모든 인문, 사회, 과학 학문 분야 전체를 포괄)는 현대에도 전문직이라기보다는 학자의 양성에 가깝기 때문에 그 형식을 상당부분 유지해서 아직도 학사, 석사, 박사를 차례로 이수하고 수료하는 체계지만, 법학부와 의학부는 철학부나 신학부에 비해 짧은 기간, 즉 학사 학위 정도의 기간보다 살짝 긴 기간에 전문직으로서의 교육을 모두 마치면 J.D.나 M.D.를 수여한다. 한국 많은 의대에서 하는 "의사는 박사랑 동급으로 쳐 준다"는 이야기는 현대에는 인턴을 석사로 쳐주고, 레지던트를 박사로 쳐 준다고 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와전되어 있지만 사실 중세 대학의 4학부로부터 기원하는 유서 깊은(!) 인식으로, 전통이 잘 전해 내려오는 유럽 쪽에서는 의대나 법대를 졸업한 사람들은 프로필에 M.D.나 J.D.가 반드시 들어가며, 이는 Ph.D.나 Th.D.와 의전, 의례상 동등한 위상으로 취급해 주는 것이다. 만약 의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진학해 Ph.D.를 땄다면 둘을 병렬해서 M.D. Ph.D.로 적는다. 물론 현재는 의사도 학업을 지속하면 약학이나 생리학 등의 분야에서 Ph.D.를 따는 경우가 있다.

영어단어 University의 어원은 라틴어 universitas magistrorum et scholarium(교사와 학자의 공동체)란 라틴어에서 나왔다. 대학이 최초로 탄생한 이유는 종교, 정확히는 가톨릭사제 양성을 위해서였다. 먼저 위에서 예시로 들었던 학위들 중 최종단계에 해당하는 licentia docendi는 본디 가톨릭에서 사제 교육을 모두 수료하고 추가로 배움을 계속하여 다른 사제들을 양성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사제들에게 수여하는 면허다. 이 뜻을 직역하면 '교육 면허'쯤 된다. 사제를 양성할 교육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 기관이 필요했으므로 그런 기관을 설립한 것이 바로 최초의 대학이며, 이 형태의 교육기관이 바로 현대 대학의 직접적인 조상 되시겠다. 따라서 대학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했던 학부는 신학부였다. 법학부와 의학부는 중세 사회 전반을 지배하며 사회의 유지에도 책임을 지고 있던 가톨릭 교회가 사회에 꼭 필요한 전문직들을 사제들과 함께 양성하기 위해 대학에 합류시킨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로부터 licentia docendi를 수여할 권한을 위임받은 대학들은 의학과 법학부의 학생들에게도 같은 학위를 수여하였으며 대학은 차츰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된다. 나중에는 철학부도 여기에 추가되게 된다.

가톨릭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신학이 철학적으로 정당화되는 일대 혁명이 일어남에 따라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이 생기면서 철학을 교육할 필요성도 가톨릭 세계 내에서 대두되었기 때문이다.[9]

이때 대학의 공식 언어는 라틴어였으며, 이로 인해 일반인과의 거리는 멀어지게 되고 상아탑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된다.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 당시 전 유럽의 대학이 다 그랬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학생이 볼로냐 대학교에 가서 문제없이 공부하고 대화할 수 있었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였다. 물론 라틴어를 안 쓰면 벌을 주었다. 라틴어는 고대 로마의 공식 언어이자 그 문화와 지식의 명맥을 잇는 교회의 공식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라틴어만 할 수 있어도 성서부터 로마 시대 고문서, 로마가 지배했던 유럽 지역의 문서들을 다 읽고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문과 같은 개념이다. 한문을 쓸 수 있으면 번체자를 배운 중국이나 일본의 고급 지식인들과 대만까지 소통이 가능한 것과 같은 원리. 혹은 이공계 계통에서 알음알음 늘어가는 영어 강의를 연상해도 좋다. 캠퍼스 안에서는 쓰는 용어도 영어, 강의도 영어, 질문도 영어, 교과서도 영어, 과제 리포트도 영어, 시험도 영어라서 한국에서 공부하던 학생이 외국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도 큰 위화감이 없다.

중세 대학의 학생들은 대개 14~15세 때 대학에 입학하였고 그중 많은 사람들은 그전에 감독학교나 수도원에서 7, 8세 때부터 3학 4과, 즉 문법, 수학, 음학, 수사학, 논리학, 윤리학, 천문학 등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대학원에는 법학(교회법과 민법), 의학, 신학의 세 분야가 있었고 이 대학원 졸업생들은 중세 사회에서 최고의 직업을 가지고 최고의 대우와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

당시 대학생들은 현재보다 더 나이대가 다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당대 최고의 엘리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최고의 개망나니이기도 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현대 대학생들이 상상하기 힘들 만큼 암기를 해야 했다. 양피지 도서가 웬만한 책1권 쓰려면 최소 수십~수백 마리의 양을 도축해야 할 만큼 매우매우 고가였기 때문에, 당연히 학생들이 지금처럼 전공교재를 개별적으로 가질 수 없었다. 또 중세 대학식으로 토론수업을 진행하려면, 학생들이 미리 수업할 부분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암기(!)해 두고 수업에 임했다. 이런 학업과 기타 사정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술 마시고 싸우는 것으로 풀다 보니, 학교 주변 주민들과 대학생들은 원수지간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파리 대학교 등 일부 중세대학에는 무려 치외법권(!)과 유사한 특권이 주어지기도 했었다. 이는 중세 대학이 기본적으로 황제, 교황 등 강력한 권력을 가진 세력들을 뒷배경으로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주민들 역시 잘못이 없는 게 아닌 것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바가지를 씌우려 했다. 집 주인들만 해도 집세를 학생들한테만 일반인보다 더 비싸게 받는 짓을 저질렀다. 그래서 분노한 학생들이 집 주인들을 대상으로 시위를 하자, 겁을 먹은 집 주인들이 집세를 내리는 것으로 합의를 봐야 했다. 또한, 수시로 술먹고 패싸움하는 건 기본에, 여자 납치, 도둑질, 기물파손까지 있었고 이런 패싸움을 말리려고 수비대가 출동했다가 쌍방 간에 사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건 학교 안에서도 여전했는지 당시 대학의 학칙에는 '수업 중에 무기를 가지고 오지 말 것, 점수 가지고 선생에게 복수하지 말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레 미제라블에서도 당대 대학생들을 보는 시각이 잘 드러나 있는데, 팡틴 가지고 놀다가 임신시키고 튄 그놈이 대학생이었다. 더 무서운 것은(학생들을 통제해야 하니 당연한 말이지만) 교수들도 폭력적이었다는 사실. 교수회의 중에 자기랑 문제가 있던 동료 교수 여러 명을 끔찍하게 살해했다가 최종적으로 대학에서 추방당한 교수도 있었고, 자기를 비판한 사제에게 앙심을 품고 제자들을 시켜 살인을 지시하는 교수도 있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당시 대학이란 기관이 이론상으로는 수업료만 내면 농민의 자식들도 다닐 수 있어 계급 상승이란 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대학생이나 교수들이나 교회에 속하지 않은 당대 세속 지식인 사회는 북부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나 플랑드르 일대, 라인강의 제국 자유시들 같은 특출나게 도시화가 밀집된 지방들 빼곤 기본적으로 귀족 자제들, 특히 그중에서 상속에서 비껴나가서 고급 지식이라도 배워야 했던 차남, 삼남들이 많았다. 이러다 보니 기사 계급의 다혈질적 폭력성은 대학 문화에도 그대로 반영 되었고, 근대에 진입하면서도 이러한 역사적 유산은 지금도 독일, 오스트리아 같은 중동부 유럽에는 종종 있는 대학 결투 클럽 같은 결투나 폭력적 학생운동 같은 대학 문화에 흘러 들어갔다. 게다가 사실 근대 이전 유럽 사회가 깨끗한 식수가 마련하기 힘들어 어린 아이들 부터 일상적으로 물 대신 술을 마신 것도 있고, 계급과 배경 막론하고 어쨌든 현대에선 상상도 하기 힘들만큼 폭력적이었으며, 유혈 사태에 덜 민감했던 점도 감안해야 한다.

중세 대학생들은 거의 주당이어서 웬만해선 금전에 쪼달렸다. 집세와 책 대여료, 수업료가 비싼 것도 있다. 이외에도 생활비 역시 많이 들었다. 이 때문에 부모님이나 지인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방법을 설명하는 책자도 있었다고 한다. 덤으로 '어떻게 여자를 저녁 식사자리에 꼬시는가 하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등골 브레이커는 여전하다. 당시 학생들은 가톨릭 세계의 수호자이던 교회가 후원하는 미래의 사회지도자들로서 일종의 특권계층을 형성했고, 지금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권리를 누렸다. 대표적인 2가지가 '면책특권과 병역면제'였다. 이외에도 학생들은 자신들이 교수를 초빙하기도 하고, 수업이 맘에 안 들면 단체로 쫓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그 당시 교수들의 급여가 학생들이 낸 수업료에서 나왔기에, 대학에서 학생들의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개인/가족 단위의 기부금이 대학 운영 자금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학들은 학생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스탠퍼드 대학교, 예일 대학교, MIT 등. 요즈음이야 교수를 마음대로 쫓아내는 정도는 아니지만 학점 인플레가 바로 이러한 영향력이 낳은 결과이다.
볼로냐 대학의 특징은 학생이 대학 운영 전반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각 동향단은 학생장(rector)을 선출하여 조합을 대표하게 했다. 각 학생 조합은 자체 학생장의 재판권에 복종했으며 초기에는 스스로 교수를 채용하여 교수들에게 수업시간 준수나 강의의 체계성 등 상세한 규칙 조항을 준수하도록 규정했으며 그러한 조항에 입각하여 교수들의 봉급을 지불했다. 교수들은 전적으로 학생들의 수업료에 의지하여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에 의한 집단 수업거부는 교수들에게 매우 효과적인 위협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심지어 교수들은 학생장에게 복종을 맹세하고, 볼로냐를 떠나려면 허락을 얻어야 했으며, 강의를 늦게 시작하거나 너무 오래 끌면 벌금을 내야 할 정도였다.

-박승찬, 「중세 대학의 설립과 발전 -학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보루-」, 『가톨릭철학』, 제26권, 2016, pp.5-56, p.13.

이밖에도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교수에게 많은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법학과의 경우 간혹 저술 계획에 관해 묻는 경우가 있어 실제로 어느 교수는 자신이 서술한 책의 서문에 '시민법 교수인 누구누구는 학생들의 희망과 요구에 부응하고자 특별히 이 책을 쓴다'라는 책의 서술 목적을 분명히 밝혀 두었다.

또한 수업 역시 실습에 가까운 위주로 진행되어 법학과의 경우 일반적으로 두 명의 학생이나 두 조의 학생이 상호변론을 하거나 한 학생이 문제를 제기하면 반대 혹은 찬성의 논거를 들어 자신을 변호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했는데, 교수가 재판관의 역할을 해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밖에도 교수들 사이에 법률문제를 놓고 광장에서 변론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때는 학생들도 참석해 변론을 통해 논리력과 수사력을 키울 수 있으며, 이는 법학을 가르칠 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토론-중세 대학의 꽃

그리고 오늘날의 대학과 달리 중세 유럽의 대학들은 학교 건물이 없었다는 점으로 이는 당시 볼로냐 대학교파리 대학교 역시 마찬가지로 이때는 교수가 살고 있는 가정집이나 교회에 붙어 있는 부속 건물 등에서 수업을 해야 했는데, 교수 하나가 학생을 가르치는 글방과 같은 형식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학생 수는 교수의 인지도에 따라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500명으로 천차만별이었으며, 시험은 성당의 사교관이나 사제관에서 치러졌고, 중세 시대 이후에 점차 제대로 된 대학 건물들이 세워지긴 했지만 20세기까지 가정집에서 수업하는 곳이 많았다.

중세 중기부터 세워졌던 대학의 리스트는 영어 위키백과를 참고하면 된다.

한자 문화권에서 서양의 'University'에 대응되는 뜻으로 '대학(大學)'이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곳은 일본이며, 시초는 당시의 제국대학이다. 중국에서는 현재의 베이징대학에 해당하는 경사학당(京師學堂)이 일본의 역어를 수용함으로써 지금처럼 바뀌었고, 따라서 일본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4년제 고등 교육 기관은 대학이라고 통용된다. 한국에서는 4년제 대학[10]과 2·3년제 전문대학[11]으로 구분한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이나 식민지의 각 대학은 "파리 대학교식 교육 모델"이라 하여 중세의 자유학예 전통에서 조금밖에 발전하지 못하였으나, 1810년 프로이센에서 빌헬름 폰 훔볼트가 훔볼트식 교육 모델에 따라 세계 최초의 근대적 연구중심대학인 베를린 대학교를 설립한 뒤로 대학들은 전문가와 연구자를 양성하는 석박사 학위와 대학원, 발전하는 학계와 사회의 요구를 반영한 다양한 전공과 학과, 각 교육자 및 연구자의 자율성, 각 학생의 자기주도학습, 입시에서 성별, 종교, 인종 등에 따른 차별 금지 등을 보장하도록 서서히 개혁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미국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인 존스 홉킨스 대학교가 세워졌고, 세계 각지의 수많은 대학이 서로를 벤치마킹하여 새로 설립되거나 성균관 같이 이미 존재하는 교육기관들이 근대식 대학으로 전환됐다. 영국맨체스터 대학교, 미국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및 수많은 주립대학들, 일본 제국도쿄대학, 조선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처럼 변화하는 사회상을 따라 작은 기술대학, 사범학교, 농과대학, 의과대학 등으로 설립됐다가 19, 20세기에 걸쳐 중산층의 성장과 고등교육 수요의 급증에 따라 거대한 명문 종합대학으로 성장한 경우도 많았으며, 1898년 변법자강운동에 의해 청나라베이징대학이 설립되는 등 기존 대학이 없던 문화권에도 대학들이 생겨났다. 한편 미국에서는 중세의 자유학예 전통을 간직한 체로 교양교육 위주로 발전한 학부중심대학들도 등장했는데, 이들은 리버럴 아츠 칼리지라고 부른다.

19세기 이후에 등장한 신흥 대학들은 코넬 대학교처럼 앞서 언급한 근대적인 특징들을 모두 가진 체로 설립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19세기 이전에 설립된 대학들의 경우는 프랑스 혁명으로 사회 전체가 발칵 뒤집어져 버린 파리 대학교/소르본 대학교 정도를 제외하면 이 개혁들이 완벽히 자리 잡는데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예를 들어 영국 옥스브리지의 주요 칼리지나 미국콜로니얼 칼리지 등이 1960~1980년대가 돼서야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다던지.


4. 현황[편집]


20세기 이후로 형성된 대학의 면모를 다루는 문단이다. 특히 지방의 일부 부실한 학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지잡대 문서를 참조할 것. 요약하면 현재의 다수 대학은 사실상 취업사관학교가 되었고, 학문을 가르친다는 본연의 기능은 대학원(중에서도 사실상 박사과정)으로 옮겨갔다.

2023년 대한민국의 총대학 수는 전문대학 133개 일반대학 201개[12]를 합쳐 총 334개이다. 2005년에는 전문대학 158개 일반대학 202개로 총 360개였다. 앞으로도 전국에 있는 대학 수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저출산 현상과 더불어, 과거와 달리 대학교에 대한 세간의 인식 변화 등으로 인해 부실대학들을 폐교하는 등 더 많은 수준 미달의 대학들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7년 IMF사태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기준으로 할 때 대한민국의 명문 대학들은 사실 입학이 매우 어렵지, 졸업은 상대적으로 쉬우며 대학교 때 아무렇지 않게 술도 퍼마시고 연애도 하면서 노는 애들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서양 명문 대학의 경우 반대로 입학이 더 쉽고 졸업이 힘들며 입학 후에 갑자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1-2학년 때 자퇴율이 보통 20% 안팎으로 나온다. 그나마 유럽 대학들의 경우 학비라도 공짜지만, 북미의 명문대학들은 학비도 매우 비싸며 대다수의 현지인 부모님들은 자식한테 학비를 대주지 않기 때문에 거액의 학자금 대출을 받아 빚을 지는 경우가 많다. 커리큘럼 자체도 고등학교 커리큘럼에 비하면 넘사벽으로 어려워서 시험 기간이 되면 저절로 도서관에만 거의 하루 종일 박혀 있는 불쌍한 중생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고, 또 본인이 재학생이라면 스스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대학교의 과 중에서 더 실용적이고 취업, 돈벌이가 잘되는 일부 과가 있지만, 사실 현대로 오면서 한국이든 서양이든 더 많은 젊은이들이 덜 실용적인 과를 가는 경우가 많다. 설령 그쪽 분야로 손꼽히는 프로가 되기는 어려울망정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반드시 해봐야된다는 현대 젊은 세대들의 로망도 크게 작용하고, 여기에 대학교 졸업장 자체가 현대에 들어 많은 젊은이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타이틀로 부상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대학교에서는 주로 전공, 부전공과 연관된 이론적인 내용들을 많이 배우지만 사실 이 내용들을 대부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상 대학교 졸업장 자체가 관련분야에 이론적인 내용들을 수강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학점을 이수했다는 증빙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전 세계의 선진국에서도 요즘은 가게알바, 개인사업, 블루칼라 업종 등 일부 직업을 제외한 모든 직업에 대학교 졸업장을 형식적인 조건으로 두기 때문에 중요성이 없다고 말을 할 수는 없다.


4.1. 대한민국[편집]


삼국시대 이래로 국학, 태학, 국자감과 같은 고등교육 기관들이 국가의 주도로 운영되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과거 시험이 도입되면서 성균관이 대학교 역할을 했지만 사실 성균관에 입학하려면 과거에 급제해야되는 만큼[13] 현대 기준으로 보았을때 대학원에 더 가까웠다고 할수있다. 1:1로 매치하기는 쉽지 않은것. 어쨌든 구한말까지도 성균관이 최고 고등교육기관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가면서 성균관은 구제대학으로 인가받지는 못했기 때문에, 상당기간 동안 조선 내에서 제대로 된 종합대학이 존재하지 않았다. 구제전문학교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있었지만 구제대학의 지위는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민립대학설립운동이 펼쳐졌지만 이는 일제의 방해로 실패하고 말았고, 일제의 주도하에 한반도 최초의 제도적인 대학[14]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어서 광복 직전까지 유일한 대학의 자리를 차지했다. 대학교가 하나밖에 없었다는 것은 그 만큼 대학의 문턱이 너무나도 높았다는 얘기였고[15], 이 때문에 조선인들이 제국대학경성제국대학에 들어가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이 있더라도 실력이 부족하면 경성제대에 들어갈 수 없어 일본에 있는 사립대학에 진학하는 조선인도 많았다[16]. 경성제국대학을 비롯한 제국대학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남자만 입학이 가능했으나 실제로는 선과 제도를 통해 소수나마 여학생을 받았다. 모윤숙이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한 여학생 중 가장 유명하다.

해방 이후로 구제전문학교들이 대학교로 승격하고, 경성제대 해체 후 재 설립 과정을 거쳐 서울대학교가 되는 등 종합대학교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여 대학교육은 이전보다 양적인 부분에 있어서 크게 성장했지만 곧이어 분단과 전쟁의 타격으로 인해 1950년대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래도 전쟁 중에도 열악하게나마 전시연합대학으로 임시수도 부산에서 수업을 이어가고, 경성에만 대학이 있던 일제강점기와 달리 전국 주요 도시에 거점 국립대와 명문 사학이 자리잡으며 문맹퇴치 운동 등 교육열이 강하게 불어온 덕택에 대학생들이 매년 급속하게 늘어나며 대학교육은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그러나 대학이 성장한다 한들 이때까지도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해방 이후와 1950년대에 초등교육의 대중화가 간신히 이루어졌고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뒤인 1970년대가 되어서야 중등교육이 보편화 되었다. 그래서 대학진학률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전체 학생가운데서 소수에 불과했고,[17]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도 이어져서 대학 졸업장이 곧 지적 혹은 사회적 엘리트의 인증과 동일시되기도 했다.[18] 이 때문에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가난한 농촌에서는 단지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농사에 필수적인 소까지 팔아 가면서 학비를 대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리하여 대학은 상아탑의 현지화 버전인 우골(牛骨)탑이라는 씁쓸한 별명까지 붙었다. 이 당시 대학교에서도 교복을 입었는데 1980년대 초반에 폐지되었지만[19] 이 당시 대학생 교복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엘리트 인증이었던지라 아쉬워하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 시절에는 대학 졸업생을 '학사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대학설립준칙주의에 의해 대학 정원 자율화와 대학설립 규제 완화가 진행됐는데, 이로 인해 대학의 숫자는 넘쳐날 수준으로 늘어나고 대학생의 숫자는 몇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질 좋은 일자리의 숫자는 이에 수반해 증가하지 않은 탓에 취업률은 점점 떨어져갔다.[20] 그렇지만 여전히 대학에 다녀야 상대적으로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나 현실은 강했고, 이 같은 풍조가 결국 학력 인플레를 일으켜서 고등학생 84%가 대학에 들어가는 상황까지 이른다. 이제 대학교 자체가 통과의례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그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심지어 대졸자 5명 중 1명은 고졸자 평균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종합하자면, 2018년 기준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대학 졸업장 자체는 거의 의미가 없는 상황이며, 어느 대학의 졸업장인가가 중요한 상황이다. 상위권 대학 졸업장은 현재에도 가치가 있지만 하위권 대학 졸업장은 거의 대졸 인증 이상의 의미는 없는 상황. 다만 진로에 따라 학사 학위 혹은 학점 이수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하위권이라하더라도 의미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육군3사관학교로 편입하려는 사람들은 학벌이 의미가 없다. 좋은 학벌이면 애초에 ROTC나 학사장교로 빠진다.

그리고 이 대학설립준칙주의로 인해 이승만 정부까지만 하더라도 100% 학문 연구의 장이었던 전국의 모든 대학들이 너무 과잉공급되면서 대기업들 역시 정말 단순노무직이 아닌 이상 입사자격을 대졸로 인상하는 바람에 대학은 말 그대로 취업사관학교가 되어 단위만 커진 레알슐레[21]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대학교 판정을 받는 실업계 고등학교.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0.4%로 떨어졌다. 다만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은 30% 정도의 학생들이 정말 고졸 취업을 원하는지 아니면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지는 의문. 삼수를 해서라도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면 무조건 인서울이다. 지방대가 점점 영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군대 갔다왔더니 학교가 없어졌어요"가 되느니 차라리 몇 년 꿇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진학률이 낮아졌다고 고졸 학생들이 모두 고졸로 취업하는 건 아니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8%로 정점을 찍고 점차 내려오는 추세로, 특히 4년제 대학 진학률은 2018년 기준 47.4%[22]로, 동시기 일본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인 49.7%[23]보다도 낮아졌다.

물론 각 군 사관학교로 가면 평생 직업군인, 그것도 고급장교로서 보장이 되어 있지만 군장학생은 현시창. 최하 6년은 군복무해야 하는데 이 기간을 다 채우고 전역하면 기본 30살이 넘어간다. 문제는 이런 식이면 당연히 군 장교의 질적저하가 심각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악순환, 결국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내고, 취업하기 전부터 빚더미에 짓눌리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니 대학 평가를 통해 부실대학을 가려내어 지원을 끊고 폐교를 유도하거나 극단적으로는 강제적으로라도 폐교를 실시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조차도 지역 경제에 끼치는 영향 등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쉽사리 손을 대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대학에 대한 수요가 너무 높아서 등록금은 제멋대로 올라가고, 올라가도 수요가 여전하니까 더 올라가고, 그 중에서도 잘 나가는 대학은 더 올리고, 그러니까 다른 대학들도 덩달아서 올리고, 그것 때문에 대학 차리면 돈 좀 된다고 생각하는 지방 토호(土豪)들이 마구잡이로 대학을 신설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대학 설립인가를 너무 쉽게 내줘서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그 토호들도 등록금 인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각 대학별 등록금 지출내용에 대한 보고서를 전혀 받지 않아 각 대학교는 등록금을 필요 이상의 돈을 받고 계속 재정을 축적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부실대학의 경우 그렇게 축적된 재정이 이사장 개인의 사유 재산화 되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2021학년도 수능부터는 대학입학가능자원이 대학 정원보다 더 적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게다가 2021년에는 8만 명, 2023년이 되면 대학에 사람이 10만 명이 부족해진다고 한다. 하위권 대학들의 대거 통폐합•폐교 사태가 줄을 이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출생률은 해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계속 적어지고 있는 추세인데[24] 이렇게 된다면 출생률이 높아진다고 해도 20년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전국에 있는 부실대학 등의 수준 미달의 대학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존폐 위기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 때문에 지방대의 미래는 점점 암울해져 가고 심하면 서울 소재 대학교에도 영향이 간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대학교에는 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게다가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가히 살인적인데, 국립대학은 보통 등록금이 학기당 100~250만 원 정도로 그치는 반면 사립대학은 평균적으로 450~550만 원 정도의 등록금이 형성되어 있다. 쓰레기 같은 지잡대 중에는 심지어 자기 학교법인 및 학교법인 이사진들 배를 채우기 위해서 학기당 700 이상 부르는 곳도 있다. 국내 대학들의 경우 등록금으로 받아 먹는 건 엄청난 반면, 챙겨주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나마 국공립대학은 받아 먹는 것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의무교육을 받을 때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는 걸 배우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각 대학의 학교법인 이사장들이 많이 받아 쳐먹는 걸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것도 모자라서 아주 밑도 끝도 없는 인상으로 자기들 욕심이나 채워 먹으려 하고 있다. 집안에 돈이 남아 돌아서 등록금이 비싸든 말든, 등록금을 올리든 말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모르겠는데, 꼭 저소득층이 아니라도 이 정도의 비싼 등록금은 가계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일부 고등학생들은 아예 각종 사관학교처럼 국비로 학업을 이수할 수 있는 특수목적 대학에 지원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반대학에 진학하더라도 등록금 문제를 고민하다가 결국 군장학생을 지원하는 학생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그리고 정치권은 등록금 문제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소위 반값등록금 등의 공약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공약은 당선되고 나면 나몰라라 한다.

이처럼 수급의 현저한 불균형으로 말미암은 대한민국 대학의 질적 수준 저하 현상은 심각할 대로 심각해진 상황이고, 그리하여 대한민국에서 대학이 신성한 학문의 중심지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대학이 너무 많아짐에 따라 너무 대학 진학률이 높아져서 사실상 상위권 대학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지적 능력이 고졸과 차이가 없어지면서 대학의 의미가 퇴색된 것이다.

사실 대학의 다수를 차지하는 대학 같지도 않은 지잡대들이 자진 혹은 정부 차원에서 폐교시키거나 해서 대학진학률을 대폭 낮춰야 한다는 여론도 많은 편이다. 지금의 대학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대학이 너무 많아지고 사회 분위기가 개나소나 대학 가는 분위기라서 공부에 재능이 없는 다수의 학생들까지 무비판적으로 대학 진학을 하고 있는데, 지방의 하위권 대학에 진학해봤자 등록금과 시간만 낭비하는 인생적 비효율과 대졸이라는 이유로 눈만 높아져서 사무직만을 선호하고 이로 인해서 단순 노동시장 공급이 정체되는 노동시장 구조가 왜곡되는 사회적 비효율의 문제가 된다고 한다. 아예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이를 은근히 돌려 '대학 졸업생들이 눈을 낮출 필요가 있다.'라며 아예 마이스터 고등학교라는 과정을 만들었다.

대학의 과잉 진학률은 상당한 국가적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막상 강제로 대학 정원을 제한시키고 축소시키자니 바라던 대로 고졸 노동자 수가 늘어나고 사회생활 시작 평균 연령이 낮아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대학생과 대학의 과잉 진학보다도 더 비생산적이고 국가적 차원의 문제가 되는 고시낭인의 대량 양산 시나리오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게 문제고, 그래서 아직 미적대는 부분도 있다. 실제 공무원 시험에서 어떤 꼴이 났는지 보면 그 실태를 그대로 수능시험으로 옮기는 꼴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로 따지면 상단 말단 구성원(짐꾼)이나 머슴같이 그냥 일할 수 있는 분야조차 과거에 응시해서 합격해야 하는 수준의 심각한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의 근본적인 이유는 직업 환경에서 한국사회는 생산직 근무환경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즉, 고졸로 취업하면 대다수의 경우 연봉도 대졸에 비해 심히 낮고, 승진도 늦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로 고졸 취업으로 경력을 쌓거나 혹은 기술을 배운다는 선택을 하는 것이 대한민국에서는 상당히 불리하다는 것. 애초에 임금, 복리후생, 사회적 위치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고졸은 심히 낮다. 해외 국가라고 해서 고졸과 대졸이 동일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해외에서는 최소한 고졸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대졸과 대우나 임금 등의 면에서 일정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서 고졸로 성공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괜히 뉴스나 신문, 방송 프로그램에서 고졸 성공 신화 등의 제목으로 성공한 고졸들을 언론에 등장시키겠는가?

정부에서는 자꾸 대학 외에 다른 길도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길이 대학에 비해 상당한 차이로 노동환경[25]/복리후생/고용안정성[26]/평균임금에 있어 불리하기 때문에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27] 대학은 사회에서 연구, 교육, 사회봉사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그리고 이 여러 활동 중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연구이다. 이것이 훼손되면 대학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는 일이 되기에, 이 '대학으로서의 주 정체성'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졸업의 요건은 다른 국가에 비해 널널한 편이다. 예전에는 논문 제출이 필수였던 경우가 많았지만 사실 학사 학위를 위해서는 논문이 의무라는 조항은 아무 데도 없다. 게다가 학부 수준에서는 교과서나 인터넷에서 주워다 적당히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논문 제출이 학생도, 교수도 남는 것 없이 엄청 귀찮은 일이 되어 버린 것. 그리고 갈수록 학문보다는 취업을 중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최근에는 대부분의 학교가 어학성적 및 인증제 같은 걸로 대체하는 편. 특히 인문대에서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졸업요건을 채웠다고 쳐주는 학교가 많다.[28] 학부생 졸업 논문 내용이 허접하고, 연구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은 연구+수업+시험 채점에 교수들이 정신이 없기 때문에, 유급시키고 다시 논문을 쓰게 하기보다는 졸업을 시킨다. 반대로 졸업 논문을 잘 썼다면 당연히 반려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에 A로 졸업시키고 대학원 진학을 권유한다. 즉, '진짜 이건 대학생 수준이 아니다' 싶은 논문이 아니라면,[29] 혹은 아주 아무것도 쓰지 않은게 아니라면, 졸업은 시킨다는 것이다. 한국은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많은 편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졸업 논문을 심사하는 학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노력이 필요하다. 휴학은 당연히 안 되는 것이고, 낙제, 재수강도 최소화가 필요하고, 수강신청도 최대한 잘 해야 된다. 특히 남성의 경우는 군대 입영이 있기 때문에 입영 시기와 복학 시기를 잘 조율해야 한다. 물론 수업연한 내에 졸업하고 싶다면 대학교 재학 사유로 인한 입영연기[30]를 한 다음에 졸업하고 갔다오면 되긴 하지만[31][32][33] 5, 6급이면 병역도 해당이 없다.[34]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생이 교복을 입었다고 한다. 또한 1980년대 까지만 해도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체력장도 통과해야했다. 당시 대한민국 대학은 공부를 아주 빡세게 시켰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웠고 당시 인서울 대학만 보더라도 공부를 서울대 못지않게 아주 많이 시키고 학점도 짜게 줬기 때문에 대학공부를 하기 위해서 체력은 그야말로 필수였다. 하지만 이랬던 대학 문화가 1997년 IMF경제위기 시점에서 변하기 시작했다. 경제 위기가 들이닥치자 많은 학생들이 졸업 후 취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수들이 학점이라도 잘 받으라고 학생들한테 여유를 배풀어주었기 때문. 학점 인플레이션도 이때부터 생겨났다. 그리고 명실상부 이런 문화가 현재 2023년에도 많이 이어지는 중이다.

1978년생은 21세기 첫 대학 졸업생이고[35] 1982년생은 21세기 첫 대학 입학생이다.


4.2. 외국[편집]



4.2.1. 미국[편집]


미국에서의 수능격인 SAT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면 갑자기 힘들어진다. 미국의 여러 최상위권 대학교에서, 건들거리면서 학업을 이어가면 끝장이다. 들어가면 급격히 빡세지기 시작한다. 여러 최상위권 대학교들 같은 경우에는 붕붕드링크를 먹어 가면서 공부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일반적인 학부 중심의 대학은 평균적으로 교수 대 학생 비율이 많아야 1:10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국내에서 공부해서 해외 대학으로 유학 가는 경우, 학점 따기가 매우 어렵기에 처음에는 상당히 고생한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준 높은 각 지역의 주립대학교에 해당하는 얘기고 몇몇 사립대학교 같은 경우는 웬만하면 전체적으로 다 졸업시킨다.

몇몇 사립대학교들의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상대적으로 심각해서 기사에 종종 다뤄진다.(프린스턴, UChicago는 예외. 이 둘은 학점을 짜게 주기로 유명하다.)[36] 미국의 명문 사립학교도 일종의 기업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학생들 졸업시켜 준다.

이들 대학의 기업화가 어느 정도냐면 가족 중에 졸업생이 있는 경우 해당 학생에게 입학 특혜를 주는 레거시(Legacy Preferences / Admission)라는 전형이 있을 정도.[37] 평균 등록금 수준은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데, 학자금 지원(Financial aid)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가장 학비가 싼 편인 시립대나 주립대들의 경우에도 연 몇백만원에서 천만원 이상이 되는 경우가 많고, 사립대학교들은 연 1~2만달러대 학비면 굉장히 낮은 편이다. 학자금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하는 중산층 이상의 경우 심하면 1년 학비가 1억원 가까이 들기도 한다. 미국의 대학진학률은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매년 상승세에 있고 외국으로부터 수많은 유학생들이 몰려들다보니 등록금이 떨어질 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빚덩이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서 미국 내에서도 심각한 사회이슈로 떠올랐다.[38]


4.2.2. 일본[편집]


일본 역시 기본적으로 국립대학교를 사립대학교보다 높게 치는 경향이 전체적으로 많다. 와세다, 게이오 등의 사립대학보다 지방의 국립대가 편차치가 더 높은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일본 국립대는 2월 25일경에 원서접수를 받는 전기대학과 3월 10일경에 원서접수를 받는 후기대학으로 나뉘는데[39] 구제국대학은 모두 전기대학으로 분류돼 있다. 반면 사립대는 수험 일정만 다르면 무제한으로 지원이 가능하다.

일본 사립대 중에는 이공계열 학과가 없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은데, 특히 수학과물리학과가 없는 사립대가 많다. 또한 치과대학은 공대보다도 편차치가 낮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때문에 이공계열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국립대학으로 몰리고, 이공계열 학과는 남자가 많다는 특징까지 겹쳐 국립대학은 남초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대학마다 학점 체계가 다른데, A학점 위에 S학점이 있는 곳도 있다. 이들 학교에서 GPA를 계산할 때 S는 4, A는 3으로 계산한다.

1975년 일본의 의대들은 예과를 폐지했다.

1997년생은 레이와 시대 첫 대학 졸업생이다.


4.2.3. 프랑스[편집]


유럽 대륙에서는 "교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모토 아래 대학 등록금이 공짜인 나라가 상당히 많다. 무상교육 대표주자인 프랑스바칼로레아라는 대학 입학 시험에 붙으면[40], 본인이 바라는 학과를 다닐 수 있다. 물론 일반 대학만 다닐 수 있다. 모든 대학에서는 진급시험을 쳐서, 재학생들을 무척이나 많이 내쫓는다. 그래서 프랑스 대학은 '웃고 들어가서 울고 나온다.'는 소리도 떠돈다. 진급시험은 1, 2학년 때 세 번 치르며, 모두 불합격되면 프랑스 내 모든 대학에서 자신이 재학했던 학과로 재입학이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다만 그랑제콜일 때는 상황이 좀 다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일부 고등학교에 부설된 그랑제콜 준비반(프레파(prépa))에 들어가서 2년간 더 공부하고, 그랑제콜 시험을 치를 수 있다. 그랑제콜 입시에는 재수, 삼수가 넘쳐난다. 그리고 그랑제콜 입시에 실패하면, 일반 대학 3학년으로 편입학할 수 있다. 프레파가 일반 대학 1~2학년과 맞먹는 수준이라서 이렇다. 그랑제콜 입시는 무척이나 어렵지만, 그 대가는 아주 확실하다.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에 합격한 뒤 학사, 석사 과정을 거쳐 국립행정학교(ENA)에 합격하면 대학 입학만으로도 한국에서 고등고시 패스 수준의 혜택이 주어지고, 이공과대학(에콜 폴리테크니크)이나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면 월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대에 이르는 월급을 준다. 이런 지경이니 프랑스에서 대학생은 진짜 엘리트로 대접받는다. 조금이라도 뒤떨어지는 모습이 보이면 학생들을 가차없이 탈락시키기 때문이다.


4.2.4. 독일[편집]


독일에서는 대학서열화가 존재하지 않으며,[41] 거의 모든 대학교가 주정부 소속내지 공공법인 형태를 띄고 있으며,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대학 등록금이 공짜이다. 보통 '특별한 이유[42]가 없다면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지원해서 입학하게 된다. 가족과 가까운 곳에서 공부하려는 학생들도 많지만, 독립성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고향에서 먼 곳이라던지 대도시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다.

독일은 중학교에서 이미 실업계(하우프트슐레, 레알슐레), 인문계(김나지움)로 나뉘는 관계로 대학에 갈 아이들과 대학에 가지 않을 아이들이 이른 시기에 결정되는 편이다.[43]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통합되어 있는 시스템이라서 그렇다. 레알슐레에서 김나지움으로, 하우프트슐레에서 레알슐레로 올라가고 싶으면 시험을 쳐서 한 단계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실업계는 그나마 공부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레알슐레'와 "100의 10%는 얼마인가?"의 문제도 못 푸는 아예 막장들이 가는 '하우프트슐레'의 2단계로 나뉜다. 자세한 것은 독일 문서를 참조. 김나지움 과정에 입학한 학생들은 종합 대학과 전문 대학 둘 중 하나에 입학할 수 있다. 물론 요즘엔 통합고등학교(Gesamtschule:게잠트슐레)들도 많이 생기는 관계로 반드시 김나지움에 가야지만 대학에 진출하는 것은 아니다.

종합 대학(Universität, 우니베르지텟 줄여서 Uni(우니))은 일반적으로 이론을 중심으로 배우며 대학원 과정까지 준비하는 이들이 많고 대학을 졸업하면 주로 학계에서 일하게 된다. 독일의 종합대학은 주로 순수학문들을 가르치는 곳이다.

전문 대학(Hochschule 호흐슐레)[44]은 실기를 중심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인을 육성하는 대학이며, 한국과 달리 독일 전문 대학의 학위는 종합 대학과 동일하다. 이는 독일에서 많은 공과대학(Technische Hochschule)과 거의 모든 음악대학(Musikhochschule), 미술대학(Kunsthochschule) 등이 종합 대학 소속이 아닌 별도의 전문 대학으로 분리되어있기 때문이다.[45] 가령 한국에서 유명한 아헨공대도 전문대학이다. 단, 독일의 평생교육원, 시민대학도 Volkshochschule로 불리고 있으나 여기서는 대학 학위를 제공하지 않는다.[46]

독일의 대학 입시는 독일의 수능이라 할 수 있는 아비투어(Abitur)를 통해 진행되는데, 절대평가로 진행되며 일년에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다. 유럽연합 외의 국가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독일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대학입시 시험 외에 보통 스튜디엔콜렉이라는 1년 이수과정을 거쳐 아비투어와 법적으로 동일 취급받는 졸업시험(Feststellungsprüfung)을 통해 진행된다. 독일 대학 입학은 나름 한국에 비교하여 '쉽다'고 할 수 있지만, 졸업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다. 학부과정이 대부분 6학기로 압축되어있고,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중간고사 없이 매 주 제출하는 과제를 체점한 점수를 토대로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준다. 시험은 강의기간이 끝난 후 방학에 치루게 되는데, 과목 당 재시험 기회를 딱 두번만 준다. 첫번째 시험에서 낙방 한 경우 첫 재시험은 다음 학기가 시작하기 직전 즉 방학 끝마무리에 볼 수 있지만 두번째 재시험은 취소 1년을 꼴아야 한다. 동일 과목에서 시험을 3번 낙방하면 강제로 퇴학당하게 되며, 독일의 어느 대학교에서도 해당 과목이 필수 과목으로 들어가있는 학과에 다시는 입학할 수 없다. 시험은 당연히 모두 주관식, 서술형이며 교양과목이거나 2~4학점짜리 과목들이 아닌 이상 암기식 내지 문제은행식 시험출제는 절대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처음 1학기만 지나도 자발적으로 대학을 그만두는 학생들이 많아서 입학생 대비 졸업생이 60%정도 밖에 되지 않으며, 현지인들도 10년동안 학부를 다니는 경우가 많다.

의대와 법대의 경우에는 위의 제도와 별도로 또 최소 2~3차례의 국가 시험을 치루어야 하며 이 또한 3번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퇴학처리된다.

이렇다보니 그 수 많은 난관을 거쳐서 독일에서는 박사를 딴 사람을 부를 때는, 이름 앞에 법적으로 반드시 박사라는 호칭을 붙여준다. 확실한 엘리트 계층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 정부도 기술개발과 경제발전에 필요한 핵심인력들, 특히 STEM분야 인재들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점점 부족해지고 있는 추세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 진학율을 높이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학생들이 유급되던 말던 신경도 안쓰던 지난 10년전에 비하면야 독일 대학들도 학생들의 시험을 위해 방학중에 특별 강의를 연다던지, 교수가 기출 문제를 제공한다던지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시험 난이도가 줄어들거나 하는건 절대 아니어서 결국 학생 본인이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학습방법을 취득해 따라가지 못하면 졸업을 기대하기가 힘들다.[47]

참고로 독일의 학점은 한국이나 미국과 반대로, 1이 가장 높고 4가 가장 낮다. 4보다 낮은 5는 한국의 F학점에 해당한다. 5를 받으면 학점을 받지 못한다.

독일의 대학 진학율 내지 졸업율이 낮은 이유는 대학 진학할 아이들과 아닌 아이들을 구분하는 중등교육과정과 대학 교육의 높은 난이도도 있지만, 독일 사회에서 학사학위가 취직이나 연봉에 큰 메리트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레알슐레를 졸업하고 직업훈련을 한 뒤 최소 3년의 경력을 쌓은 사람이 갓 학사학위를 받고 졸업한 사람보다 연봉이 높은 구조이다.[48] 그리고 사무직이나 공무원 등 많은 직장이 학사 학위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보니 대학은 석사나 박사를 내다보고 가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보니 학계가 꿈의 직업이 아닌 이상 선호하지 않게 되는 것.

독일에도 전체 대학 들 중 약 10% 정도로 사립대학이 존재하는데, 이 중에서도 유력 가문들 자녀들이 들어간다고 여겨지는 사립대학은 정말 극소수이고 그 외의 사립대학들 대부분은 일부 전문의대 등을 빼면 평가가 좋지 못하다. 물론 유력 가문 자녀들이 간다는 사립대학도 당사자는 공부 할 마음도 없는데 부모 돈 덕에 학위받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한편. 물론 그 부모들은 학업보다는 자기 자녀들이 다른 가문들 자녀들과 친맥을 쌓으라고 보내는 곳이다. 그럼에도 독일의 기득권층 대다수는 여전히 공립대학을 신뢰하며 선호하고 있다.

독일 학계에서 논문을 느슨하게 감독하던 시기가 있어서 한동안 유력 정치인들이 논문 표절문제로 스캔들을 겪기도 하였다.


4.2.5. 영국[편집]


반면에 이런 유럽 내륙의 경향과 전형적으로 대조되는 대학 문화를 형성한 곳이 있는데, 바로 영국. 등록금도 비싸며, 철저하게 대학을 서열화한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대학이 변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는 않다. 그 이전부터 그래왔다. 영·미 학제의 영향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본격적으로 받게 되었는데, 이미 그 이전에도 일제의 영향으로 당시 식민지 조선이었던 한국에 대학 서열체계는 존재했다.[49] 일본의 경우 근대화 과정에서 성립된 학제는 영국에 비해서 대학이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엘리트를 양성하는 기관이라는 생각이나, 국립 최고학부의 존재 등은 독일이나 프랑스 고등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제국대학의 경우, 그랑제꼴과 그 성립 취지와 학사 운영이 굉장히 유사하다. 부속 중학교-부속 고등학교-대학 순으로 이어지는 일관제(중고일관교) 시스템을 여러 대학에서 운용하고 있다는 것도 특징.


4.2.6. 기타 유럽[편집]


스웨덴이 대학교가 의무교육이라는 설이 있는데, 근거없는 낭설이다. 수업료만 없고 다른 것은 다 돈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 또한 대학과정을 무상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대학 진학률은 10% 대에 그칠 정도로 저조하다.

산마리노에는 대학이 하나밖에 없다.

서유럽에서 유학하고 온 아무개 여대 법학과 교수의 말에 따르면 그런 이유로 서유럽, 북유럽에서 소위 '평등교육'을 지향한다는 한국의 인식과는 달리 고졸과 대졸의 사회적 대우 차이가 확실하고 대학에 가지 못한 고졸의 열등감, 자세히는 패배자 정서나 허무주의 정서에 가까운 것 또한 상당하다고. 엘리트가 될 싹수가 안 보이면 일치감치 포기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라 열등감을 드러내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즉, "뼈 빠지게 내는 세금으로 공부하는 거니까, 할 거면 철저하게 하고 그 정도도 못하면 대학 생활하지 말고 돈이나 벌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사립학교의 경우 비영리법인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등록금 등의 수입과 각종 지출이 회계적으로 관리되는 사업체이기 때문에 적자가 나면 유지가 어렵다. 일본의 경우 학령인구가 급속하게 감소한 탓에 많은 대학들이 문을 닫거나 경쟁력 있는 대학들에 흡수되는 한편, 유학생의 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부실대학 선정, 망해가는 대학의 흡수를 통한 사립 명문대들의 거대화, 사업 다각화 등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4.2.7. 그 외[편집]


이집트의 경우에는 절대평가를 통해서 대학 입시를 뽑는다. 그래서 만점에서 점수를 얼마나 받느냐가 중요하다.[50] 1학년 때는 학부[51]를 선택해서 간 후에 전체적으로 학과에 대해서 맛을 보고 나서 2학년 때 전공 학과를 결정해서 들어간다. 또한 각 학년당 일정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낙제로 같은 학년을 계속 다녀야 한다. 즉, 공부 안 하면 평생 1학년을 다니면서 졸업을 못한다는 얘기이다.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대학교가 되려 학업량이 살인적인 수준이다. 그래서 대학은 공짜에 지원자는 어지간하면 합격이라서 입학은 웃으면서 하지만 졸업은 울면서 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4년제인데 7년 만에 졸업하면 우수한 축에 들어가는 것이고 보통 10년 정도는 걸린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1996년부터 2001년까지는 남성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보수적인 종교 지도층의 입김이 큰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은 대학에서도 남녀 분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의 경우 비교적 서양쪽에 가까우며, 왕세자가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여성의 운전을 허락한 사례처럼 바뀔 가능성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대학교 자체가 굉장히 엘리트적인 인식이 강한데, 이 때문에 남학생들이 정장을 입고 다니는 편이다.. 의외로 여학생들의 경우 복장이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또한 한국과는 다르게 보안이 상당히 엄격해 대학교 전체가 철창에 갇혀 있고 입구가 한두 곳 뿐인 데다가 경비원이 이를 상시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하나인 우즈베키스탄 세계경제외교대학교의 경우 아예 입구에 개찰구와 얼굴 인식 기기가 설치되어 있어 특별한 용무가 아닌 이상 얼굴이 등록되어 있는 이들만이 대학에 들어올 수 있다.

북한의 대학은 주로 정치 사상에 기초하여 교육과정이 구성되어 있다. 또한 국가의 이념과 사상을 홍보하고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기관이기도 하다.

북한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의 경우는 대학생들도 교복을 입는다고 한다.


5. 대학에 대한 논쟁[편집]




6. 대학에 대한 인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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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는 고급 인력의 공급 자체가 많지 않아서 대학을 졸업하는 개인=중산층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사업가를 비롯한 상류층의 경우에는 대물림이 되거나 대학 졸업 여부와는 상관 없이 자수성가를 하는 케이스가 일반적이었고 현재도 그런 상황이라 대학을 졸업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와 같은 문제는 기술적으로 특화된 교육을 받는 노동자와도 연관성이 적어 사실상 중산층에 국한된 현상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신자유주의가 활성화 됨에 따라 법인 설립에 대한 규제가 느슨해지고 그 결과 중산층이 되고자 하는 신분상승 욕구를 가진 개인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우후죽순처럼 대학이 생겨났고, 그 결과 대학에서 통용시키는 지식과 담론이 예전만큼의 권위를 가지기는 어려운 상황까지 오게 되고 말았다.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나 안정적이라고 여겨졌던 중산층으로서의 삶이 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데에 대한 불만은 서구권에서도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 최근에 와서는 서구권을 비롯한 선발 자본주의 국가들은 대학 교육보다 이미 그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축적해 놓은 인프라와 연결된 직업 교육이나 사라질 이유가 없는 지역 사회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교육 체계로 중산층의 선호도가 옮겨가고 있는 상황. 여기에 고질적인 파벌싸움이 생산적인 경쟁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화 하고 있는 것도 한몫 하고 있다.

다만 과거 대학이 적었을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만 대학에 갔지만 현재에는 공부를 안 한 사람도 대학엔 용케 가더라도[52] 어떤 형태로든 저평가를 받게 되므로(학벌이나 학점 등) 상대적 교육수준이 사회계층에 미치는 영향력 자체가 과거와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다. 다만 대학 내의 평가가 얼마나 공정한지, 대학에 들어간 후의 발전 또는 퇴보를 제대로 고려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지표가 존재하는지는 의문이다.어차피 공부 안하는놈은 벼락치기한거 졸업하고 전부 다 까먹으니 차라리 프랑스처럼 혹독하게 굴리고 평준화 시킨뒤 무료로 풀어줘버리는게 낫다.(프랑스의 경우 모든 대학교가 최상위 수준으로 평준화가 법으로 정해져있고, 학생들도 한번 떨어지면 똑같은 학과에 다시는 지원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7. 의의[편집]


대학에서 가르치는 기술, 이른바 스콜라십이 그 사회 안에서 축적한 지식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그런 상황에서도 대학은 여전히 본원의 기능을 나름대로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오해하기 쉬운 것은 대학이 지식과 관점에 있어서는 그 사회 안에서 가장 앞서갈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절대 그렇지 않다. 최신기술은 학회나 연구소에서나 만날 수 있다.

대학은 그 사회에서 선행적으로 축적한 기술이나 관점을 차용해서 사용할 수 있으며, 반대로 대학에서 개인이 연구한 성과가 기업으로 이전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학이나 사회 어느 쪽도 반드시 한쪽만이 앞서가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대학만큼이나 그 사회에서 먼저 발견된, 특히 기업에서 연구를 통해 밝혀낸 성과 또한 그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학에서 양성하는 전문가와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에 그 구분 지점이 그렇게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 와서는 시민 사회의 취미 영역 안에서도 개인들의 전문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결과로 체계화되어 있는 대학으로서는 상대적으로 유연성이 떨어질 수 있는 부분에서의 활약이 있기도 하다.

문제는 대학 바깥에서 축적된 지식이 대학 내로 이식되는 과정이 직결적으로 이어져있지는 않다는 것인데, 그런 이유로 최근에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세미나가 대학에서 제공하는 지식을 어느 정도 커버하고 있는 상황. 이 와중에 대학은 이를 되려 쫓아가기 위해 커리큘럼을 개편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실은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의 핵심적인 동기가 되었다.


8. 대학이 없는 나라와 지역[편집]




8.1. 4년제 대학만 없는 곳[편집]




8.2. 사립대학이 없는 곳[편집]


  • 뉴질랜드 - 대학이 나라 전체에 8곳밖에 없고 그마저도 모두 국립대학이다.


9. 국가별 최초의 대학[편집]



9.1. 아시아[편집]




9.2. 아프리카[편집]




9.3. 북아메리카[편집]




9.4. 남아메리카[편집]




9.5. 오세아니아[편집]


  • 호주 - 시드니 대학교 (1850년)
  • 뉴질랜드 - 오클랜드 대학교 (1883년) - 모든 대학이 국립대학이다.
  • - 괌 대학교 (1965년)
  • 파푸아뉴기니 - 파푸아뉴기니 대학교 (1965년)
  • 오세아니아 12개국[60] - 남태평양 대학교 (1968년) - 대학 본부는 피지에 있고 나머지 11개 국가에 별도의 캠퍼스가 있다.
  • 사모아 - 사모아 대학교 (1984년)
  • 누벨칼레도니 - 누벨칼레도니 대학교 (1987년)


9.6. 유럽[편집]


유럽의 초창기 대학들은 남자들만 입학이 가능했고 여자는 입학이 불가능했다.


10. 여러 나라에 캠퍼스가 있는 대학[편집]


대한민국에 캠퍼스가 있는 외국교육기관에 대한 정보는 인천 글로벌 캠퍼스 문서 참조. 미국 대학의 해외 분교 혹은 이원화 캠퍼스 및 미국 밖에 위치한 미국식 대학의 전체 목록은 관련 영어 위키백과 문서 참조.



11. 대학교 목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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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대학을 무대로 한 작품(대학원 포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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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관련 문서[편집]


[1] 입시위주 교육의 폐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시켜서 하는 공부'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대학에 가고, 시키는 사람이 없다 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방황에 빠진 것이다. 이런 학생들을 노린 일부 지방대에서는 '취업사관학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학과별로 추천 진로를 정해 타이트한 진로별 교육과정을 시행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선호와는 별론으로 전국 터미널을 가면 4~5개의 학교들이 모두 전국 취업률 1등을 내거는 기이한 현상도 목격된다.[2]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는 Seoul National University이지만, 서울대에 소속된 인문대학College of Humanities 라고 표시한다. 다만 실생활에서는 종합대학/단과대학 모두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대학'이라고 하듯이 college라고 통용된다. 예컨대 "My son went off to college"라고 했다고 해서 꼭 아들이 단과대학에 갔다는 얘기가 아니다. 애초에 보스턴 칼리지, 다트머스 칼리지 등 칼리지를 이름으로 쓰는 대학도 매우 많다. 종합대학에 간 경우에도 일상생활에서 university/college를 혼용하며, 북미 구어체에서는 university student란 표현보다 college student란 표현을, 영국과 아일랜드 구어체에서는 줄여서 uni student란 표현을 압도적으로 많이 쓴다. 사실 이 부분은 영어를 일상생활에서 써봐야 정확히 와닿겠지만 college란 단어 자체가 반드시 단과대학을 의미하기보단 그냥 '대학'에 가까운 느낌이다. 예를 들어 북미에서는 대학농구란 식의 표현을 할 때 간단히 college ball라고 한다.[3] 이상할 건 없는게, 유럽기독교 국가들과 중동이슬람 국가들 간의 학술 교류는 매우 흔해서, 많은 유럽인 학생들이 아랍어를 공부해서 중동의 마드라사로 유학을 가는 일이 흔했고, 중동권의 학자들도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해 조언을 듣고자 동로마 제국 출신의 학자들을 초청하곤 했다. 실베스테르 2세의 본명은 제르베르 도리악으로 어려서 수도원에 들어가 비크의 주교였던 아토의 제자가 되었다가 아토가 레콘키스타 전쟁 중 후우마이야 왕조코르도바에 사절로 보내지면서 코르도바에 따라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이슬람 궁전과 과학, 문학에 관심이 많은 이슬람 군주들에게 매료되었고 본인 역시 수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을 열심히 공부했다. 실제로 실베스테르 2세는 그리스-로마와 아랍의 수학과 천문학을 장려하고, 서유럽에 주판과 혼천의같은 도구들은 물론 아라비아 숫자, 십진법을 도입하는등 역대 교황중 유럽의 과학 및 수학의 발전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교황중 한사람으로 평가받는다.[4] (책 속 주석)Seppelt, 『Kampf der Bettelorden』, I, 208 참조[5] (책 속 주석)Marie-Dominique Chenu, 『Introduction à l'étude de St. Thomas d'Aquin』, 18f[6] (책 속 주석)같은 책, 17[7] (책 속 주석)같은 책, 15.[8] (책 속 주석)같은 책, 16[9] 이런 형태의 대학으로 최초로 인정받는 곳은 바로 볼로냐 대학교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말의 의미는 '신학>철학'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중세 유럽 사회의 시녀들은 귀족 여성들을 바로 옆에서 모시는 존재들이며, 때문에 이들도 자신이 섬기는 사람과 거의 엇비슷한 수준의 신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왕의 X싼 거 치우는 것도 귀족만 할 수 있던 시대에 시녀도 하급 신분인 사람들이 채용될 리는 없었고, 그래서 이 당시의 시녀들은 주로 귀족이나 평민 부유층의 여식들이 일종의 신부수업 차 임시로 고용되어 일하는 직업이었다. 그러니까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은 곧 '신학을 이론적으로 지탱해주고 보완해주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는 뜻이다.[10] 건축학과는 5년, 의치한약수는 6년.[11] 간호학과는 4년.[12] 교육대학산업대학, 분교 포함.[13] 소과에 합격해야 했다. 입학후 대과를 준비한다.[14] 여기서 말하는 대학은 제도(制度)상의 진짜 대학(大學)을 말한다. 강습소, 의숙, 학원, 전문학교 등을 전신으로 한다며 오랜 역사가 있다고 주장하는 곳은 얼마든지 있지만, 실제 법령을 기반으로 대학원 등의 연구과를 두고, 학사, 박사 등의 학위를 부여받을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 즉 대학(大學)은 한반도에서 경성제국대학이 최초이다. 물론 국내를 떠나 아시아 최초라고 주장하는 성균관대학교도 이런 엄밀한 의미에서 근대적 교육기관으로써의 대학으로는 최초가 아니다.[15] 일본인 학생들의 티오가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일본인이 높았기 때문에 그렇다. 일본식 교육체계에서 대학은 입시는 기본적으로 구제고등학교 졸업을 요구했는데 당시 조선에는 고등보통학교만 있을 뿐, 구제고등학교가 없었으므로 자연스레 대학 티오의 여석은 일본 출신 일본인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조선총독부는 애써 세운 '조선반도 최고의 대학'이 일본에서 몰려온 일본인 고교 졸업자들이 죄다 차지해서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일을 막기 위해 예과를 설치해 조선인들의 입학을 늘리려 했다. 예과를 설치하면 고등보통학교 졸업자들도 대학 진학요건에 맞춰졌기 때문이다.[16] 오죽하면 해방 때까지 경성제국대학 전체 졸업자보다 일본 대학 졸업 조선인이 더 많을 정도였다[17] 게다가 이 시기에는 아직 남존여비 분위기가 강해서,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1980년대 당시 경영학과, 행정학과, 공과대학의 학과 같은 곳에 여학생이 사실상 전무했던 것도 그 이유다. 그나마 딸을 대학에 보내더라도, 남녀공학보다는 여대를 선호했다. 당시 이화여대숙명여대의 위상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18] 흔히 386세대가 대학 쉽게 가서 꿀빨았다는 얘기도 그 세대 내에서 최소 상위 20%, 즉 2010년대로 치면 최소 지거국은 간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애초에 386세대가 대학만 졸업하면 대기업에 쉽게 취직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공무원 취직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었던 이유도 대졸자들이 적었기 때문이었다.[19] 이 당시 중고등학교에서도 교복이 없어졌지만, 얼마 못 가 80년대 후반부터 교복을 부활한 중고등학교들이 생겨나 90년대 초반에 대다수의 중고등학교에서 부활하였다.[20] 사실 3저 호황이나 1990년대에 일자리가 많이 남아돈 건 사실이지만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당대에도 빡셌고, 나머지 일자리의 태반이 블랙기업 일자리인 경우가 많았다. 다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시절이었고 평생직장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취직해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으면 큰 잘못이나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오래갈수있다는 장점이 있었을 뿐이다. 물론 산업재해가 빈번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80~90년대라고 사람을 더 귀중하게 여긴 것은 아니었지만 챙겨주는 개념으로 평생직장을 보장했다.[21] 독일의 실업학교를 말한다.[22] #[23] #[24] 2013, 14, 15, 16년 출생아는 겨우 40만 명대, 한술 더 떠서 17년, 18년 출생아는 30만 명대이며, 19년 출생아도 30만 명 턱걸이 수준이다. 그래도 2001년 이전까지는 계속 60만 명 이상을 유지했는데 최근엔 출생아 수가 저렇다. 그리고 결국 20년 출생아는 20만 명대 후반(272,300명)으로 30만 벽도 무너졌다.[25] 아직도 평균 근로시간은 생산직이 눈에 띄게 더 긴 편이며, 그렇다고 일부 대기업 공장이나 사실상 전문직으로 취급해야 하는 최고위급 엔지니어를 제외하면 사무직에 비해 그렇게 페이가 쎄지도 않다. 주 52시간 제한도 일부 예외직종이라 해서 생산직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경우도 있고. 또한 안전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의 산업안전 실태나 산재발생율을 따지면 OECD 평균을 한참 뚫어버린다. 우스갯소리로 공장 가서 1년 일하면 동료 중 절반이 산재처리 후 해고되어 물갈이된다는 낭설과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접합/봉합 시술/수술 관련한 의학기술이 뛰어난 편인 이유가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워낙 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손가락을 잘라먹어서라는 낭설이 있을까.[26] 여기에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영향도 포함된다.[27] 쉽게 비유하자면, 잘 닦인 왕복 16차선 포장도로가 갑자기 왕복 8차선 포장도로로 줄어들고 나머지 8차선은 비포장도로가 된다면 당연히 트래픽은 왕복 8차선 도로로 몰리기 마련이다. 8차선 도로를 6, 4차선으로 줄인다고 해도 여전히 사회적 시스템으로는 인생 초반부의 여러 길 중에서 주간선이 될 수밖에 없는 대학 진학으로 트래픽이 쏠릴 수밖에는 없다.[28] 비록 공무원 시험 외에도 기업체 취직만 해서 취직계를 제출하면 졸업요건을 면제해주는 학교도 많다.[29] 인용처가 네이버 지식인이라든가, 인용 형식이 엉망이고, 잘못 인용했다거나, 위키피디아에서 그냥 베낀 수준이 아닌 이상에야 이렇게 써도 귀찮다고 통과시키는 대학도 있다.[30] 2년제 전문대는 만 22세, 3년제 전문대는 만 23세, 일반대학의 4년제 및 5년제 학과는 만 24세, 6년제는 만 26세가 되는 해의 12월 31일까지 대학교 재학 사유로 인한 입영연기가 가능하다.(참고로 대학원에 다녀도 연기가 가능하며, 대부분의 석사과정은 만 26세이나, 수업연한이 2년을 초과하는 경우는 만 27세에서 만 28세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리고 박사과정은 만 28세까지 연기 사용이 가능하다.) 물론 재학 도중에 퇴학, 제적, 자퇴 등의 처분을 당하거나 졸업해서 학교에 더 이상 남아있을 수 없게 되면 대학교/대학원 재학 사유로 인한 입영연기가 소멸되며, 새로운 입영연기 사유가 생기지 않은 이상 재학생입영연기 소멸 사유가 발생한 날의 다음날부터 병무청이 현역병 입영이나 사회복무요원 소집을 위한 통지서를 발부할 수 있다.(다만 보충역 판정자의 경우, 만 3년 동안의 사회복무요원 소집대기기간 동안 소집연기사유가 없는 상태에서 소집통지서가 나오지 않는다면 병무청의 심사를 통하여 전시근로역에 편입할 수 있다. 허나 정신과 사유 4급이 아닌 이상 소집순위가 3순위 이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장기대기 판정을 받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따라서 졸업 이후 2~6개월 이내에 소집통지서가 날아오며, 적체가 심한 지역도 1년 이내로 날아올 확률이 매우 높은지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낫다. 특히 사회복무요원 적체가 풀릴 것으로 예상하는 20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장기대기는 커넝 졸업하기 한참 전에 선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31] 다만 병역판정검사장에서 실시하는 신체검사에서 1~3급을 받은 현역병 입영대상자들과 4~5급 판정을 받았다가 심신 상태가 크게 호전된 후에 재검을 받아 3급 이상으로 올라간 병역의무 대상자들이 졸업 이후에 부사관이나 장교, 준사관(육군 항공준사관만 가능)으로 임관하여 병역의무를 수행하고 싶거나 아예 양성과정을 거치고 있다면 4년 만에 졸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관생도들은 중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4년을 채우고 졸업해야 하며, 만일 이를 어기면 퇴교는 물론이고 장교 임관 자격도 영원히 박탈당한다. 또한 이런 식으로 퇴교한 자들은 5~6급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현역병/부사관으로 입대하거나 보충역으로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다만 학군사관후보생은 조기졸업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으며, 실제로 그러한 사례가 있다. 허나 임관 이전까지는 과거 재학했던 학교의 학군단이 주관하는 군사훈련은 다 받아야 한다.[32] 그리고 대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상황에서 4급을 받아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자가 되었다면 재학생입영연기가 가능한 연령이 끝나는 해의 12월 31일까지 재학생입영연기가 가능하다. 즉, 본인이 따로 휴학이나 졸업유예를 하지 않는다면 정해진 수업연한 내에 졸업할 수 있다. 또한 2015년부터 사회복무요원 소집적체가 본격화되면서 정해진 TО보다 소집대기자가 과도하게 많은 지역에 사는 이들과 정신질환과 수형 사유(정확히는 6개월 이상~18개월 미만의 징역형 혹은 1년 이상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자만 해당된다. 다만 병역법/도로교통법/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자는 해당사항이 없다.)로 보충역에 편입된 5순위 대기자의 경우는 사회복무요원 선발경쟁에서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는지라 대학교를 다니는 기간 내내 사회복무요원이 되기 힘들다. 이런 경우에는 본인이 휴학이나 졸업유예를 하지 않는 이상 원치 않게 4년만에 졸업할 확률이 높으며(참고로 대학생이 현역병으로 입대한 이후, 훈련소/신교대 임시입소주에서 정신과 사유로 귀가조치 된 이후에 4급을 받거나 현역부적격 심의에서 4급을 받고 군문을 떠난 자가 우선소집원을 신청하지 않거나 기각된 경우라면 사회복무요원 소집순위에서 제일 낮은 5순위에 포함되기는 하나, 이미 군휴학을 썼기 때문에 순수한 미필 상태에서 4급을 받은 경우와는 많이 다른지라 논외.), 실제 사례도 적잖이 존재한다. 또한 공무를 수행 중에 전사/순직하거나 부상을 입고 상이 1~6급을 받은 군인이나 경찰의 아들/형제가 미필일 경우, 1명에 한하여 사회복무요원으로 6개월 동안만 복무하면 병역의무를 마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여기에 해당한다면 휴학하지 않고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복무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 만약 사회복무요원 소집대기자로 남아 있는 기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다면 병력특례를 포함한 일반적인 대체복무 과정에 지원해서 합격하거나 슈퍼 굳건이(현 슈퍼 힘찬이) 제도를 통해 질병을 완치해서 3급 이상으로 급수를 올리고 현역 입대를 하는 방법 뿐이나, 둘 다 매우 어렵다. 특히 슈퍼 굳건이 제도의 경우에는 현대 의술로 확실한 완치가 가능한 시력과 체중 사유 4급 판정자만 대상인데다가 해당 제도를 통해서 현역병 입영대상자가 되는 것보다 사회복무요원 소집대기자로 남는 것이 훨씬 좋기 때문에 실제 이용 사례가 저조하다.[33] 또한 2020년 하반기에 신설된 대체복무요원의 경우, 지원이 가능한 대상자가 매우 제한적인데다가 심사가 까다로우며, 복무기간도 3년에 달하기 때문에 병역의무 수행 사유로는 휴학기간을 2년밖에 주지 않는 대부분의 한국 대학교 현실 때문에 재학 도중에 갔다오는 것은 힘들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상자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4년 이내에 졸업하고 복무하는 것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본인이 대학교 재학 도중에 대체복무요원을 희망할 경우, 학과 측을 잘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체복무요원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시기는 2020년 10월부터인지라 아직 사회적 인식이 미약한데다 일체의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이들만 지원이 가능한 특성으로 인해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특히 복무기간이 긴 산업기능요원으로 선발된 학생이 드물거나 없을 가능성이 높은 인문계나 예체능 학과라면 더더욱. 그리고 합법적인 병역특례과정을 포함한 일반적인 대체복무를 희망할 경우, 산업기능요원예술체육요원을 제외한 나머지 과정은 모두 학사 혹은 석사 학위 이상을 갖춘 자만 편입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를 노린다면 휴학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병역특례제도 하나만 믿고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생활을 한다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병력특례에 선발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가능한 한 학부 저학년 과정에 재적중일 때 현역병이나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는 것이 좋으며, 그것이 싫다면 학석사 학위 취득 이후에 단기장교로 복무해서 병역의무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낫다.(특히 자신의 전공이나 희망하는 직업과 연관된 군사특기나 사회복무요원 TO가 있다면 거기에 지원해보는 것이 좋다. 해당 보직에 선발될 가능성이 다른 비전공자들보다 훨씬 높은데다가 추후에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기장교로 복무하면 현역병~하급 부사관/사회복무요원일 또래들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인맥까지 챙길 수 있다.[34] 참고로 5급의 경우, 대학교 재학하고 있다면 민방위훈련이 연기된다. 또한 중증 장애인으로 등록된 이후에도 5급이 유지되었다면 민방위훈련 자체가 면제된다. 따라서 평시 상황에서는 아무런 병역의무도 지지 않는다.(단, 이들은 전시에는 후방지원 분야에 동원되는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다.) 다만 추후에 중증 장애인 등록이 취소된 상태에서 5급이 유지된다면 민방위훈련 참석 의무가 생긴다.[35] 군휴학을 한 남학생은 1975~1976년생이 21세기 첫 대학 졸업생이 된다.[36] 평가 자체가 후해진것도 있지만, 심지어 학기가 꽤 진행되었음에도 특별한 제한이나 페널티 없이 수강을 취소할 수 있는 시스템의 여파도 크다- 요컨데, 해당 과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은 일찌감치 알아서 포기하기에 정말로 꽤 잘하는 학생들만 남는 것.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떨어져나가면 나머지는 당연히 좋은 점수를 받는다. 웬만한 이과계의 경우 아무리 명문대라도 수강 취소 시스템이 무자비한 곳들은 평균 학점이 영 좋지 않은 편이다.[37] 이 방법으로 조지 W. 부시는 명문 텍사스 대학교/오스틴 캠퍼스에 떨어졌지만 다른 대학교인 예일에 입학했다. 학점은 낮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졸업했다고 전해진다. 부시 가문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평가받는 동생 젭 부시텍사스 대학교/오스틴 캠퍼스 입학에 성공할 수 있었다.[38] 20세기 초가 배경인 소설 《음향과 분노》에서도 변호사 아버지가 하버드에 들어간 아들의 등록금을 대려고 농지를 파는 묘사가 나온다.[39] 3월 초에 원서접수를 받는 중기대학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공립대학이다.[40] 그랑제콜을 제외한 모든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어서 일정 점수만 넘기면 무조건 붙여주는 절대평가 방식이다.[41] 대신 정부 지정 우수 대학 제도가 있긴 하지만 지원금을 좀더 받는다는 것 빼면 서열화와는 관련이 없다.[42] 본인이 원하는 학과가 집 주변 대학들엔 없다든가.[43] 이에 대한 비판들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사민당 집권기에 통합고등학교가 도입되었다.[44] 고등학교가 절대 아니다. 독일어에 아직 익숙치 못한 한국인들이 영어 Highschool에 대입하여 고등학교를 Hochschule라고 말하는 실수를 하기도 하는데, 한국이나 미국의 고등학교는 독일어로 Oberschule이다.[45] 한국으로 치면 4년제 대학에 있는 단과대학들 중에서 몇몇 특성화 단과대학들을 전문대학으로 빼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46] 노동부에서 인증된 기관이라면 이 곳에서 받은 수료증도 취직/이직 등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47] 특히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다.[48] 물론 STEM 학과나 심리학 등은 제외[49] 그 중 최고는 당연히 경성제국대학이었다.[50] 낙제 기준은 50점. 그래서 그 이하로 받는다면 이집트인들은 그 수업에 낙제 했다고 생각한다. 상대평가가 없으니 전체 평균이 50점대 이하의 어려운 시험이었다고 해도 이해를 잘 못한다. 입학하고 나면 자유선택학부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51] 학과가 아니다! 인문학부 사회학부 할 때 그 학부 맞다![52] 특히 한국에서는 2020년 이후로 수험생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아져서 수능과 내신을 모두 망쳐도 눈을 많이 낮추다보면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이 있다.[53] 설치전공의 교수가 학생을 지도하여 논문을 심사하고 학위를 수여하여 연구와 지도의 허가를 주는 것[54] 서울대학교의 전신중 하나로 볼 수 있다. [55]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의 유일한 대학이었다. 정확히는 1924년에 대학예과가 청량리에 설립되고, 1926년에는 법문학부가 동숭동에, 의학부가 연건동에 설립되었으며, 1941년에는 이공학부가 공릉동에 설치되었다. 경성제국대학 예과는 원칙적으로는 남자만 입학할 수 있었으나 실제로는 선과 제도를 통해 구제전문학교 출신 여학생들이 소수나마 경성제국대학 본과에 입학했다.[56] 그래서 학위의 관점에서의 제도적인 대학은 홋카이도대학이 먼저라는 의견도 있다. 1886년에 제국대학령이 반포되기 전까지 학사 학위를 부여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구제 도쿄대학, 부성의 공부대학교, 개척사삿포로농학교, 농상무성의 코마바농학교, 사법성의 법학교 밖에 없었다. 초창기에는 남자만 입학할 수 있다는 원칙이 있었다.[57] 설립 당시에는 남양공학(南洋公學)이라는 중등교육기관이었다. 최초의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은 1898년에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베이징대학.[58] U15에 속해있는 명문 대학교이다.[59] 자메이카, 케이맨 제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세인트 키츠 네비스, 앤티가 바부다, 몬트세랫, 도미니카 연방, 세인트 루시아,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바하마, 바베이도스, 그레나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버뮤다.[60] 쿡 제도, 피지, 키리바시, 마셜 제도, 나우루, 니우에, 사모아, 솔로몬 제도, 토켈라우, 통가, 투발루, 바누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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