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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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은 문해력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1. 개요
2. 한국에서의 역사
2.1. 고려시대
2.2. 조선시대
2.3. 일제 강점기
2.4. 현대
3. 세계
4. 기타
4.1. 세계의 문맹률 지도
5. 문맹인 실존인물
5.1. 고대
5.2. 중세
5.3. 근세
5.4. 근대~현대
6. 대중문화
7. 관련 링크



1. 개요[편집]


문맹(, illiteracy)은 배우지 못하여 글을 읽거나 쓸 줄을 모름, 또는 그런 사람을 이르는 말로, 순우리말로는 까막눈이라고 한다. 반대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을 문해(, literacy)라고 한다. 보통 문맹은 언어는 구사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문자를 모르는 경우에 사용한다.[1]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의 비율을 문맹률(, illiteracy rate), 있는 사람의 비율을 문해율(, literacy rate)이라고 한다. 이는 이분법의 관계로, 문맹률과 문해율을 더하면 100%가 된다. 한국에서는 주로 '문맹률'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문해 능숙도( , literacy proficiency) 또는 실질적 문해율( )이란 한 사회에서 문서를 읽고 그 의도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구성원의 비율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글자를 읽고 소통할 수 없는 사람의 비율을 말하는 문맹률과는 구별되며, 문해율이 낮은 것을 실질적 문맹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국제적으로는 실질 문해율 개념만 쓰이지 '실질 문맹률'이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는다.


2. 한국에서의 역사[편집]



2.1. 고려시대[편집]


조선시대와 다를 바 없이 교육을 받는 귀족(양반)과 토호들은 문자를 익혔으나 무관들의 대부분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문맹이 매우 많았으며, 고려에는 조선과 달리 무과시험이 없었는데, 이는 병호제(세습 군인)를 기본으로 하고 군공과 특채로 무관을 선발했기에 일반 서민이나 천민층의 비율이 비교적 높았다. 이들은 엄연히 관료로써 귀족계층이었음에도 대부분 문맹일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무신정변을 전후해 고려시대 문관들이 무관들을 천시하는 대표적인 이유였다.[2] 하지만 같은 무관이라도 명문가 출신들은 당연히 문자를 익혔다.


2.2. 조선시대[편집]


조선시대에는 문맹률 통계조사가 실시되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일단 인구조사부터가 철저하게 시행되지 못했다. 물론 인구조사를 정례적으로 시행하기는 했지만 군역이나 세금을 내는 걸 회피하려고 인구조사를 일부러 안 받으려 하는 사람들이 위낙에 많아서 인구통계자료의 정확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3]

그리고 조선시대엔 의무교육이 행정력의 부족과 예산 문제로 실시되지 않았다. 서당 교육을 대대적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이나 의무교육을 시행하자는 의견 자체는 있었지만, 의무교육을 시행하기에는 재정적으로 애로사항이 많았기에 실제로 시행되지는 못했고, 각 고을의 수령과 유향소의 유생이 서당 교육을 장려하고 보조하는 선에 그쳤다.

전국적인 의무교육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1년에 적어도 수십만 권의 교과서정부 주도로 찍어내야 되는데, 당시에는 세율이 상당히 낮아서 심지어 사초에 쓰인 종이도 빨아서 재활용했을 정도로 재정에 여유가 없었다. 다시말해 교과서나 공책 등을 물려 쓰거나 했던 60~70년대 대한민국보다 더 심했던 것. 또한 현대의 교육과정과 같이 제도가 변하게 되면 이를 다시 해야하는 난관에 부딪힌다. 교통사정도 별로 좋지 않아 도로가 잘 닦여 있지 않았을 뿐더러, 당시에 초고속 이동수단(?)이었던 이나 마차는 공무용 정도로나 쓰일 정도로 비싼 물품이었기 때문에 그 만큼의 물품을 옮기려면 품이 많이 들었다.

이렇게 조선 정부의 재정이 늘 풍족하지만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성리학에 근간을 둔 조선의 통치이념상 백성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어 나라에 쌓아두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신대기근 항목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조선 정부는 예산을 지출하고도 남을 정도의 세금을 걷지 않았다. 낭비를 줄일 수 있었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는 힘들었다.

또 조선시대엔 여자들이 일반적으로 서당이나 향교로 교육 받으러 가는 일은 없었다. 여성을 위한 서당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최초로 여학교가 설립된 것은 1886년이다(미국인 감리회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부인이 세운 이화학당). 대다수는 집에서 한글을 익혔다.

게다가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도 전해져 내려오며, 당시의 기록이나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나 민담 중에서도 글을 배우지 못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존재하는 걸 보면, 조선시대엔 문맹률이 높았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백성들이 아예 까막눈은 아니었던 듯 하다. 단지 양반처럼 문서를 작성하고 한시를 짓는 등의 한문을 쓰지 못했을 뿐 기초적인 한자를 읽는 것 정도는 일반 백성들도 할 수 있었다. 한글의 경우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과 같이 한글조차 모르는 사람을 무식하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상당히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4]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조선과 이웃 나라들>이나 스카스 게일의 <전환기의 조선>에는 하층민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기록이나 "중국이나 인도는 1,000명에 1명만이 글을 읽을 수 있는데 반해 조선은 읽기가 보편적"이라는 기록을 볼 때,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관아 또는 포도청에서 붙이는 방을 읽기 위해서 기초적인 한자독해는 필수적이었기에, 사극에서 나오는 것과는 달리 일반 백성들도 기본적으로 한글과 천자문 정도는 떼었다고 볼 수 있다. [5]

1930년 국세조사에서 시행한 연령별 문맹률을 연령별 교육기간과 연계하여 역추산할 시, 조선후기 보편적인 교육을 받은 이들로 보이는 60세(1870년생 이전) 이상의 문맹률은 약 79%였다. 이정도면 전근대 기준으로는 훌륭한 편이나, 18세기부터 본격적인 근대교육이 시행되었던 국가들과 비교하였을 때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조선 역시 근대교육을 실시한 19세기 후반부터는 식자율이 증가하여, 구한말 ~ 일제초기 초등교육을 받은 25세~39세(1891년~1905년생)의 식자율은 33.3%로, 이는 당대 중남미, 1870년대 일본이나, 18세기 프랑스와 유사한 수준이였던 것으로 보인다.[6]

2.3. 일제 강점기[편집]


일본에서 의무교육제도가 1885년부터 도입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으로 오는 일본인들 대다수는 기본적으로 초등교육을 받아 가나 문자와 한자 수백 자 정도는 읽고 쓸 줄 알았다. 1909년에 조선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의무교육이 적용되었고, 조선 내에서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특권층에 속해 있었기에 조선에 살고 있던 일본인들은 문맹률이 낮았다.

반면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학교를 가지 못할 만큼 경제력이 열악했다. 경제력이 된다 해도 자녀 전부를 학교에 내보내는 경우는 좀체 드물었다. 설사 학교에 간다 해도 학비가 상당해서 가정에 상당한 부담이 되므로 기껏 학교를 다닌다 해도 중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었다.[7] 게다가 그 시절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에 못 가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여자의 문맹률이 더 높았다.

1910년대~1920년대까지의 문맹률 조사는 일본어 문맹을 기준으로 조사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흔히 일제 초기 조사에서 문맹률이 99%였다고 나오는 자료들이 일본어 문맹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다만 19세기 후반에 최초 발행된 신문인 한성순보가 순한문 신문이였던 점 등을 볼 때, 조선 후기에도 여전히 한글은 등한시되었고 문맹률은 높던 것으로 보인다. 주시경 등의 노력이 있기 전까지 한글 기준 문맹률이 낮았으리라 추측할 만한 근거는 없다. “고상한 학문과 해박한 지식은 그만두고라도 조선 글로 편지 한 장 쓰지 못하고 심지어 상점 간판과 정거장 이름 하나 몰라보는 사람이 열의 아홉”이라는 신문 기사가 일제 강점기에 실렸을 만큼, 조선인들은 한글조차 제대로 읽거나 쓰지도 못했다. 링크1


문맹률[8]
한글 문해율
가나 문해율
합계
73.95%
25.8%
6.8%

남성
59.9%
40.0%
11.5%
여성
88.0%
7.9%
1.9%
연령
0-14세
89.6%
10.4%
6.7%
15-24세
57.7%
40.3%
14.0%
25-39세
64.6%
32.3%
6.5%
40-59세
73.4%
26.5%
1.9%
60세 이상
79.8%
20.1%
0.4%
1930년 국세조사 당시 조사된 조선인 문맹률.

그래서 일제강점기에는 문맹률이 대체적으로 70%대 후반-80%대 정도에 달했다고 추산되며, 1930년 일본 국세조사에서도 조선인들의 문맹률이 77%[9], 일본어 문맹률은 93%로 나타났다. 아동이나 청소년층들도 문맹률이 70%에 근접했고, 이는 40-50대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일본어 문해율만은 연령이 내려갈수록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지만 일본어 문해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에서도 10%대에 그쳤고, 무엇보다 일본어를 읽을 줄 아는 조선인 중 대부분(99.5%)은 한글 역시 읽을 줄 알았기 때문에 전체 문맹률 수치에는 별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때문에 당시 근대교육의 보급이 문맹퇴치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나로드 운동은 생각보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또한 일제 당국에서 서당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해서 상당수의 서당을 폐쇄시키게 만들고 브나로드 운동을 탄압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던 점이나 일제강점기 내내 조선에서 유일한 종합대학이 경성제대 단 하나였던 점을 생각해 보면[10] 일제 당국이 조선인들의 교육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말로만 근대화를 내세웠을 뿐, 실제 근대화를 위한 기초 인프라 작업은 철처히 방기했고, 그나마도 일본인들 위주로 보급되었다는 점이다. 실제 경성제대조차도 일본인 학생이 조선인 학생보다 훨씬 많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사립 중고등학교들도 이 시기에는 대부분 일본인들을 위한 학교였다.

1930년대 후반-40년대 전반기에는 일본어 문맹률이 조금씩 낮아졌다. 당시 조선인들이 자녀의 출세를 위한 교육에 주목하면서 1920년대부터 학교를 늘려 달라고 했고, 더불어 일제가 황국신민화 교육을 위해 학교를 증설한 영향이 컸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전비로 예산의 대부분을 쓰는 바람에 자국민을 제대로 못 먹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예산이 충분치 못하여 교육의 질은 별로 좋지 못했다[11]. 그리고 이런 모든 정책은 성인들의 문자 해독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서 성인층의 문맹률은 여전히 매우 높았다.

일제는 한글 문맹 퇴치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특히 1940년대에 조선어 교육이 완전히 금지되면서 한글 문맹이 더 늘어났다. 그 결과로 1945년 광복 직후의 조선인(분단 직전)의 문맹률은 78%에 달했다.[12] 이는 식민지배를 당했던 다른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성을 보여준다. 베트남에서의 문맹률은 1945년에 80% 후반에 달했으며, 프랑스에게 지배당했던 프랑스령 알제리도 자원 배분을 피에누아르와 친불파[13]에게만 배분하여 대다수 아랍인들이 학교에 갈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인구가 문맹이었으며, 인도 제국도 인구의 80% 이상이 문맹이었다. 물론 예외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당시에는 드물었다.

총독부 후기에는 조선어 문맹률은 조사 대상에서 빠진다. 20년대 말부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구독자 확대를 목적으로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이는데, 자세한 통계가 남지 못했다. 그나마 이 문맹 퇴치 운동조차 조선총독부의 탄압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당시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이던 조선인 지식인들은 혹시 독립운동으로 번질까 봐 기본적인 숫자 계산이나 글자 읽고 쓰기 말고는 가르치지 않는 쪽이었는데, 조선총독부는 그조차도 봐주지 않았던 것이다.

2.4. 현대[편집]


광복 직후 문맹률은 같은 시기 말레이시아(62%: 1947년 기준), 짐바브웨(64% 역시 1947년 기준)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었고 광복 직후 남한 지역의 문맹률은 12살 이상 전체 인구(10,253,138명)의 약 78%(7,980,922명)[14][15]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으며 이 당시 최고 식자층이었다 할만한 사람들도 한글을 읽지못하는 한글 문맹이라서 한글교육을 다시 받는 일까지 일어났을 지경이었다. 일제는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한글의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에 당시 대다수의 국민이 한글을 알지 못하는 문맹 상태였다. 1945년 건국준비위원회에서 문맹퇴치를 주요과제로 삼았고 이는 미군정에서 이어받아 문맹 문제를 관장할 ‘성인교육위원회’를 조직하고, ‘국문 강습소’를 설치 운영하였다. 또한 공민학교를 설치하는 등 학령기를 초과하여 초등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한 아동, 청소년 및 성인들을 위한 교육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문맹퇴치가 사회적인 과제로 떠오르며 이전까지 금서나 마찬가지였던 역사책과 국어독본책의 발행량이 크게 늘어 종이부족문제까지 벌어질 정도로 교육열이 일어났고, 각 지역별로 공민학교와 국문강습소가 각 지역별로 속속 들어섰고, 농민단체에서도 농한기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글강좌에 나섰다. 이때 공민학교는 1만 6,800여개가 설치되었고, 교사도 15,000명이 근무하였다. 또한 1948년 1대 총선을 앞두고 더욱 강력하게 시행되었는데[16], 그 결과 1948년 문맹률은 정부 수립 시 약 41.3%(542만명/남한 내 12세 이상 인구 1,308만명)으로 광복 직후에 비해 절반수준으로 떨어졌다. 링크1

이것만 봐도 독립 후 한반도의 상황은 유독 다른 제 3세계 국가들보다도 열악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애초에 식자층 수가 극히 적었는데, 한반도 내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인 경성제국대학에 조선인 비율은 독립 이전까지 절반을 채 넘지 못했다.[17]

이후 6.25 전쟁으로 문맹퇴치작업이 지지부진해졌지만,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문맹퇴치작업이 농한기 농민들과 군입대한 장병들을 대상으로 활발히 진행되었다. 농민들의 경우에는 2~3달간 교육시키는 방식이었고 군대에서는 글을 읽지 못하는 장병들에게 별도의 교육을 시키는 식이었다.[18] 이러한 정책으로 1958년 문맹률은 4.1%까지 떨어졌다.

물론 이러한 문맹률 통계에 경우에는 맹점이 어느정도 있었는데, 이름 석 자 정도를 쓸 줄 알거나 기초적인 수준의 글을 읽고 쓰는 정도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글을 아예 못 읽어서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는 정도의 단순 문맹은 대부분이 퇴치되었지만, 이름만 자신 있게 쓸 수 있거나 읽을 수는 있는데 쓰지는 못하는 부분적인 문맹자는 1960년대 초중반까지도 상당수 남아있었다. 1958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문맹률이 4.1%로 나오지만 1960년 경제기획원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문맹률이 약 27%에 달하는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반문맹자도 문맹자로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맹퇴치 교육은 1970년대 초반까지 이루워졌으며 문맹률이 감소되었음에도 1967년 제7대 총선, 제6대 대선때까지 선거 후보자 기호도 작대기로 표기한 것도 반문맹자들을 배려해서이다.

그러나 국민학교 진학률이 100%에 육박하게 되고, 창칼 파동 이후로 중등교육이 급속히 확산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 대중화되었기에, 정부 차원에서의 문맹 퇴치 교육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게 되었다. 1950년대생 이후의 문맹은 거의 없다시피했지만 글을 못 읽는 할머니들이 여전히 있는 이유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의 문맹률에 대해 통계청이 공식적으로 잡은 통계는 1966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1960년도에 이미 의무교육 취학률이 96%에 달하면서 문맹률을 조사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져, 더 이상 기초 조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서는 문맹률을 약 1% 이내 정도로 보고 있으며, 유네스코에서 그걸 그대로 가져다 썼다. OECD에 들어가는 국가 정도 되면 대부분 문맹률은 1% 미만, 높아봐야 5%를 안 넘는 정도다. 그나마 그 문맹자들의 대부분이 고령층이거나 심각한 장애인이다.

한편, 북한에선 1945년 말에 문맹퇴치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불과 4년 만인 1949년에 문맹이 전부 퇴치되었다고 발표한다.[19] 1949년에 문맹이 완전히 퇴치되었다는 것은 의심이 가지만 남한과 마찬가지로 문맹퇴치가 빨리 이루어진 것 자체는 사실이고, 탈북자들의 증언에서도 북한에서 글을 모르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

문맹인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다.[20] 특히 할머니들이 그렇다.[21] 일제강점기와 그 직후의 한국전쟁 세대들은 전쟁으로 인해 의무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글자를 배울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고, 남성들은 후에라도 군대를 간다든지 경제 활동을 위해 글자를 익힌 사람이 비교적 많은 데 비해 여성들은 문자가 필요한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적었으므로 그대로 평생 글자를 모른 채 사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1920~30년 세대들은 일제가 아예 한국어 교육을 못하게 막아버려서[22] 배우기가 쉽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이때 한글을 못 배운 할머니들은 일본어는 가타카나, 히라가나, 한자 모두 읽고 쓸수 있는 경우도 많다.

문맹퇴치 교육이 몇 개월 단기과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배우기는 했는데 진도가 안 나간다거나 글을 잘 쓰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유로 까먹은 경우도 존재한다. 성인들도 일을 해도 겨우 먹고 사는 수준이었고, 학교로 보낸다 해도 학생 수가 매년 폭증하여 학교 자체가 터져나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성인이 꾸준하게 교육받긴 힘들었다. 그래서 농한기나 일요일, 혹은 근무시간이 끝난 뒤에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또 희귀한 경우이긴 하지만, 부모와 학교가 전부 관심이 없어서 중학생인데도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례가 TV에 나온 적이 있다. 이처럼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 것도 방임형 아동학대에 해당한다.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 정신장애, 치매 등 정신건강의학 부문 장애가 심해서 교육이 전혀 불가능한 경우도 있으나 이런 경우는 어차피 교육해도 글을 가르칠 수 없으므로 논외. 3급은 한글을 읽고 쓰는 것까지는 보통 교육 가능하나 2급은 꽤 어렵고 1급은 거의 불가능하다.[23]

현대 한국의 문맹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문맹률이 높으나 큰 차이는 아니다. 또한 단순한 문자해독을 넘어서 실질 문해율도 높은 편이긴 하나, MZ세대에서는 실질 문맹률이 다소 높은 편이다. 문해율 항목 참조.

21세기에도 시각장애인의 문맹률은 무려 86%[24], 청각장애인의 문맹률은 30%나 된다.


3. 세계[편집]


한 나라의 교육 수준을 판단하는 척도 중 하나이다. 교육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문자 등의 해독이고, 공용어를 읽고 쓸 수 있는 교육은 어느 나라든 초등 교육의 핵심이다. 문맹률이 낮을수록 그 나라에는 최소한의 교육을 받은 사람의 비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문맹률이 높은 나라는 학교시설과 교사수 등 교육 인프라의 부족, 교육 기회에 있어서 성별, 계층, 지역 등의 차별, 아동 노동이나 조혼 등으로 인해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몇몇 국가에선 의외로 문맹의 비중이 높아서, 연예인들 중에도 대본을 읽을 줄 몰라서 녹음한 것을 듣고 외웠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심각한 나라도 있다. 단순 문맹이 아니라 난독증 때문에 대본을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톰 크루즈. 혹은 공용언어가 여러 개인 나라인 경우도 있고, 방언의 차이로 인해서 대본을 읽을 수 없는 나라도 있다. 보통은 집이 가난해서 교육을 못 받은 아이일수록 문맹이 되며, 성룡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신생 소련은 문맹 퇴치에 성공하였다. 러시아 제국의 문해율은 24%였다. 소련의 경우 1922년부터 1937년에 걸친 대대적인 교육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1938년 소련의 문해율은 남성 90.8%, 여성 72.5%였다. 1950년대 소련의 문해율은 100%가 되었다. 터키의 국부인 아타튀르크는 문맹이 많았던 터키라틴 문자를 도입하여[25] 이를 국민들에게 가르치는 일로 말년을 보냈다.

과거 이탈리아에서는 문맹인 사람들에게는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선거권은 '21세 이상인 남성으로서 글을 아는 자'에게만 부여했기 때문. 사실 이 규정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브라질과 페루 같은 남미 국가에서도 존재했고, 미국도 남부지역에서 흑인 참정권 박탈을 위해 의도적으로 시행했다. 미국에서는 흑인들에게 의도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내고, 백인들에게 쉬운 문제만 내는 식으로 대놓고 차별을 가했고, 중남미에서는 교육 인프라의 미비와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초창기에는 소수계층이나 운 좋게 교육받은 사람들 정도나 투표에 참여하수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보통선거가 시행된것은 훨신 뒤의 일이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대원들 중에도 문맹이 많았다.

그런가 하면 고대 그리스고대 로마 시대에는 전체 인구의 무려 90%가 글자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그나마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가 고대 사회에서 문맹률이 낮았던 지역인데, 아테네에서도 글씨를 읽거나 쓸 줄 아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15%에 불과했으니 나머지 전체 인구의 85~90%는 문맹이었다.[26]

사실 이건 당연한 건데,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전 국민 의무교육 제도가 없었고, 비싼 돈을 낼 여유가 있는 상류층 사람들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히 문맹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로마의 관리들 중에서도 글자를 제대로 쓸 줄을 몰라서 아예 돈을 받고 글자를 대신 써주는 아르바이트 업무조차 있었을 정도로 문맹률이 높았다.[27] 그리고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유대 사회에서도 문맹률이 굉장히 높아서, 예수를 따르던 베드로 같은 12사도들 대부분도 문맹이었다.[28] 다만 사도 파울로스 같은 경우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숙한 뛰어난 지식인이었고,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 교리의 대부분은 사실 예수의 말이 아니라 파울로스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파울로스가 예수의 제자들 중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29]

아직까지는 시각장애인의 문맹률이 매우 높은 편인데 전 세계 시각장애인 중 무려 95%가 글을 모른다고 한다.

4. 기타[편집]


문맹 퇴치, 즉 문맹이 많은 지역에 글을 가르치는데 큰 공헌을 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유네스코에서 세종대왕 상(King Sejong Prize)를 수여한다. 이 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유네스코가 한글을 높이 평가하여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세종대왕 상은 1989년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상이며 유네스코의 세종대왕 상 사이트 상금도 한국 정부가 출연한 기금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문맹률과는 별개로 UN개발계획에서는 리포터로 전세계 문해율을 발표하고 있다. 2009년 보고에 따르면 문해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조지아다. 한국은 공동 21위. 이 순위에서 한국을 포함해 중상위권 국가들은 모두 문해율이 99%에서 소수점 단위의 차이만 보이고 있으니 큰 의미는 없다.

OECD에서는 IALS(국제성인문해조사)이후 국가간 문해 능숙도나 컴퓨터 활용능력, 수리처리 능력 등 성인들의 능력을 측정하고자 하는 사업을 확대해서 PIAAC라는 것을 시작했고 여기에는 한국이 공식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한국은 그 순위가 전체적으로는 중위권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16-24세)만 보자면 36개국 중 일본, 핀란드, 네덜란드에 이어 4위에 속하며, 중장년층(45세 이상)부터는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문해 점수를 보인다. 즉 한국은 세대 격차가 가장 크게 나는 국가들 중 하나이다.

국립국어원에서 2008년 발행한국민의 기초 문해력 조사 pdf 자료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문맹률은 1.7% 로 대다수 60~70대였지만, 그 인구를 포함한 전 국민의 7%, 약 260만명의 사람들이 국어 생활에 기초적으로 필요한 문해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고 한다.(p116-117)

먼 미래에는 문맹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 문자 그 자체를 도태시킬 정도로 기술이 발달하거나 글을 배우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 그렇지만 아직 문명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문자를 대체 할 만한 소통수단이 없다는 게 문제.

미래 학자 엘빈토플러(제 3의 물결 저자)는 현대의 문맹은 읽고 쓰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4.1. 세계의 문맹률 지도[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Literacy_rate_world.png
지도설명
파랑
문맹률이 매우 낮음 (3% 미만)
하늘
문맹률이 낮음 (3~10%)
연두
문맹률이 다소 낮음 (10~20%)
노랑
문맹률이 보통임 (20~30%)
주황
문맹률이 다소 높음 (30~40%)
빨강
문맹률이 높음 (40~50%)
암적
문맹률이 매우 높음 (50% 초과)
회색
자료가 부족하여 알 수 없음
보다시피 아프리카중동에서 빈곤 뿐만 아니라 식민지배 및 독립 이후 현지 기득권층들의 우민화 정책까지 맞물려 문맹률이 비교적 높은 편임을 알 수 있다. 선진국들은 문맹률이 낮고, 경제적으로 열악하더라도 북한이나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옛 공산권도 대체로 문맹률이 낮은 편이다. 이는 옛 공산권은 나라마다 수준이 다르긴 하지만 아무튼 무상교육을 일찍부터 시행해서 적어도 까막눈은 면할 수 있었고, 한편 사상교육이 매우 중요시되는 사회라 이걸 시키기 위해서 철저하게 관리되는 인민들을 철저히 문자를 교육시켜서 사상교육을 시키려는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은 국가 상관없이 문맹률이 매우 높으며 발달장애인들도 시각장애인들만큼은 아니지만 비장애인들에 비해 문맹률이 높은 편이다.


5. 문맹인 실존인물[편집]


생존 당시 문자가 없던 사회속에 있던 인물과[30] 전근대사회에서 굳이 글 쓸 일이 없었던 서민들은 제외한다.

5.1. 고대[편집]


  • 왕평(?): 구술로 대필한 글이 모두 조리 있고 역사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데도 아는 글자가 10자를 넘지 못했다고 나오는데, 문맹보다는 사실 난독증이 아니었냐는 설이 있다.
  • 석륵
  • 진백지[31]: 어린 시절에 수달 가죽을 쓰고 농작물을 훔치는 것을 즐겼으며, 훗날에도 계속 강도질을 하다가 왼쪽 귀도 잘려나갔다. 강주자사(江州刺史)를 지낼 때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라서 공문이 올라오면 대충대충 처리하고 일이 있으면 전첨(典籤)이 입으로 한 말을 전했다.
  • 무함마드(?): 문맹이 아니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본 항목 참조.

5.2. 중세[편집]


  • 카롤루스 대제(?): 이쪽은 논란이 있다. 글을 알았는데도 왕이 직접 글을 쓰는 것을 좋지 않게보던 당대 프랑크족 사회의 특성 상, 일부러 글을 모르는 척 했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카롤루스 대제프랑크 왕국에서 쓰이던 고대 독일어는 물론, 당시 프랑스 지역에서 쓰이던 갈리아 지역 불가타 라틴어와 로마에서 쓰이는 표준 라틴어에 모두 능통했다는 서술이 당시의 사료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 양업
  • 윌리엄 1세와 마틸다: 잉글랜드의 왕과 왕비. 중세 초만 해도 지배층이라고 해서 문맹률이 낮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 이름을 쓸 줄 몰라서 공식문서에 서명을 자신의 이름 대신 십자가를 그린 유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영문 위키백과의 관련 이미지
  • 말콤 3세
  • 이의민: 본디 천민이었다가 무신정변을 통해 갑자기 집권한 사람이라서 글을 읽을 줄 몰랐다. 그래서 자신의 고향인 경주시에서 숭배되던 토속신인 두두리를 섬기는 사당을 자기 집에 지었을 때, 두두리의 모습을 사당 벽면에 그려서 거기에다 절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 칭기즈 칸: 당시 몽골지방에서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한족이나 거란족, 여진족에 비해서 상당히 적었다. 몽골의 각 부족들은 문서를 교환하는 게 아니라, 사신이 직접 전달사항을 외워서 구전으로 전달했다. 이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에서도 묘사됐다. 몽골의 역사서인 원조비사도 구전으로 전해지던 걸 중원에 입성한 뒤에야 위구르 문자로 썼다. 하지만 칭기즈 칸은 주변 다른 사람들이 글자를 익히는 와중에도 결국 글을 익히는 데 실패했다.
  • 무라트 1세
  • 티무르
  • 잔 다르크
  • 프란시스코 피사로: 평생 글자를 몰라서 자기 이름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철판에 대고 이름을 썼다고 한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 미천한 출신이라 글을 배우지 못했고 사이쇼 조타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글을 읽어주는 역할을 전담했다.

5.3. 근세[편집]



5.4. 근대~현대[편집]


  • 조 잭슨(야구): 글을 몰라 사인도 할 수 없어서 입단계약서에 X로 서명했다.
  • 니키타 흐루쇼프: 정확히는 글을 읽을 줄은 알았지만 쓸 줄은 몰랐다.[32] 어렸을 적에는 농사일 때문에 초등학교를 불규칙하게 다닌 데다가 젊을 시절의 대부분을 광부로 보냈기 때문에, 커서도 글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쓸 줄 아는 것은 겨우 자기의 이름 정도밖에 없는 반문맹 상태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흐루쇼프의 회고록은 구술 녹음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야 했다고 한다.
  • 김두한: 드라마 야인시대에 나온 것처럼 실제로 문맹이었는데, 다만 나중에 정계에 진출하면서 한글이나마 깨치기는 했다. 하지만 당시의 국한문혼용은 살벌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것도 문맹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다만 문맹이었던 것과 별개로 머리 자체는 굉장히 좋았고 말실력과 처세술도 엄청난 수준이었다.
  • 이디 아민: 후에는 어설프게나마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집권 당시에서 지시를 구술로 내려야 했을 정도였다는 것을 보면 권좌에서 쫓겨난 후에야 글을 배웠을 가능성이 있다.
  • 성룡: 무명시절 한정. 실제로 대본을 못 읽어 동료들이 대본을 읽어주면 그것을 외워 연기를 했으며, 지금의 부인도 대본을 읽어주다가 맺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스타가 되고 나서는 문맹에서 벗어났다.

6. 대중문화[편집]


서브컬처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속성이다. 이고깽만 하더라도 언어나 문자 장벽으로 고생하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초반에 언어장벽에 부딪히더라도 나중엔 말을 할 수 있을 때 쯤이면 글도 다 깨우치는 경우가 많으니 코난 더 바바리안 같은 경우처럼 컨셉 자체가 야만인인 경우 빼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문자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한 작품에 출연하는 인물은 제외.

  • 7번방의 선물 - 소양호: 예승이를 만나기 전까지.
  • 귀멸의 칼날 - 하시비라 이노스케, 시나즈가와 사네미: 이노스케는 어렸을 때부터 멧돼지에게 길러져서 글을 모르며, 카마도 탄지로가 이름을 한자로 어떻게 쓰느냐고 물었을 때 쓸 줄 모른다며 몹시 당황했다. 사네미는 글을 읽을 줄은 알지만 쓸 줄은 모르는 반문맹이라 탄지로가 쓴 편지를 받아도 답장을 하지 못해서 선물을 주고 가는 것으로 대신한다.
  •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 - 비스킷 그리폰을 제외한 철화단 대부분의 인원들: 취학경험이 있는 비스킷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고아출신의 소년병들이라 글을 모른다.[33] 2화에서는 주인공 미카즈키 오거스가 콘솔 화면에 뜬 건담 발바토스의 영문 스펠링을 보고는 "이거 뭐라고 읽어?"라는 말을 한다. 이후 쿠델리아 아이나 번스타인이 그들에게 글을 가르쳐 준다.
  • 다이어트 고고 - 블랙캣
  • 대조영 - 설인귀
  • 대항해시대 4 - 샤를로트 미첼: PK에서만 라파엘 카스톨 시나리오에서 나오는 캐릭터로, 펜서콜라 항구의 개항 이벤트와 관련하여 등장하는 집시 소녀다. 유럽에서 살 당시에는 오랜 기간을 극심한 차별에 시달리면서 유랑생활을 했던지라[34], 정규 교육따위는 받지도 못했고[35]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글을 익혀서 라파엘에게 어렵사리 편지를 써서 보낼 때까지 단 한 줄의 글도 읽지 못했다. 그녀와 러브라인을 타던 라파엘도 엔딩 때에서야 동료인 에이레네에게서 샤를로트가 문맹임을 알고 미안해했다.
  • 대런 섄 시리즈, 크렙슬리 전설 시리즈 - 라텐 크렙슬리
  • 더 리더 - 한나 슈미츠 : 본인도 이를 매우 수치스럽게 여겼고, 2차대전 이후의 나치 전범 재판에서 자신이 문맹임을 밝히면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음에도 끝내 이를 거부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 레드 데드 리뎀션 2 - 션 맥과이어: 반 더 린드 갱단의 다른 조직원들과는 달리 문맹이다. 다른 조직원들이 이미 글을 배운 상태거나 어려서 조직에 들어온 뒤 보스인 더치에게 글을 배운 것과는 대조적. 본인도 글 배우기를 싫어한다. 아예 "신께서는 내게 글을 안 읽는 능력을 주셨다."라고 변명할 정도다.
  • 레옹 - 레옹: 중반까지만. 그 뒤에는 마틸다가 글을 가르쳐 주면서 편지 같은 것은 읽을 수 있게 된다.
  • 로스트 바이킹 - 올라프
  • 말괄량이 삐삐 - 삐삐 롱스타킹: 알파벳을 못 읽어서 아버지의 편지도 친구들이 대신 읽어준다. 다만, 모순적이지만 글을 쓸 줄은 안다.
  • 말모이 - 김판수: 영화 초반에는 문맹이었다.
  • 메이플 타운 이야기 - 그레텔
  • 맥시멈 라이드 - 아리: 6권 내용 중 맥스가 영국에 있는 한 식당에서 아리에게 "뭐 먹고 싶냐"고 메뉴판을 건네면서 묻자, 아리가 머뭇거리면서 물을 골랐다. 그리고 그 후 자신은 글을 읽지 못한다고 했다.
  • 무인시대의 무관들 : 문맹이다보니 문자를 쓰거나 봐야 할 때 고충을 겪는 무관들을 묘사했다. 심지어 이의방, 이고, 채원 정변 주동자 세 사람조차 문맹으로 묘사된다. 물론 정중부, 경대승, 최충헌처럼 예외도 많다.
  • 무직전생 - 길레느 데돌디어
  • 바이올렛 에버가든 - 테일러 바틀렛
  • 배트맨 시리즈 - 카산드라 케인
  • 별의 커비 애니메이션 - 디디디 대왕
  • 사우스파크 - 바브레이디 경감
  • 살육의 천사 - 아이작 포스터 : 이쪽은 가정이 아예 파탄나서 고아원에서 읽고 쓰는 법도 못배우고 자랐다. 스무살이 된 지금도 스스로도 이것을 인정하는 편.
  • 선생 김봉두 - 최씨 할아버지 : 한글을 아예 몰라 김봉두에게 한글을 가르쳐 달라고 말한다. 김봉두의 지도로 문맹에서 벗어나 수 년 된 손주들의 편지를 재미나게 보느라 밤을 꼴딱 샌다는 대사가 백미.
  • 소녀종말여행 - 유리 : 아주 모르는 건 아니고 맞춤법을 틀리긴 했지만 치토에게 '미언해'라고 쪽지를 남기는 등 더듬더듬 읽고 쓸 수는 있는 듯. 치토처럼 독서를 하거나 일기를 쓰는 건 불가능하다.
  • 소닉 붐 - 너클즈 디 에키드나 : TVA 기준으로, 설정부터가 완전한 바보가 되어버려서 글 자체를 못 읽는다.
  • 스타크래프트 2 - 밤까마귀
  • 수호전 - 양산박 108 호걸들 절반: 송강같은 원래 아전이었던 호걸들이나 군관 출신의 호걸들(노지심은 제외), 오용같은 학자 출신의 호걸들은 글을 알고있지만 대부분의 일원들은 평민이라 대충 읽는 수준이거나 모르는 경향이 많다. 애초에 성수선생 소양이 이들 앞에서 글을 낭독하는 글셔틀이다.
  • 슈퍼스트링 -
  • 식물 vs 좀비 - 횃불나무
  • 심슨 가족 - 광대 크러스티, 대통령[36]
  • 아기공룡 둘리 - 둘리[37]
  • 아웃브레이크 컴퍼니 - 뮤셀 포아란: 작중 초반엔 글을 읽고쓰지 못하는 문맹이었으나, 카노 신이치의 도움으로 일본어를 깨치면서 문맹에서 벗어난다.
  • 아쿠에리온 로고스 - 진리의 종족: 진리의 세계에 접하는 것이 무엇보다 고귀하다고 여기는 종족. 이들은 문자라는 전달 수단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힘이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참고로 고대 그리스인에서는 책과 문서를 혐오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하고 논쟁하고 토론해야 지식인이지, 방구석에서 혼자 책만 읽으면 골방철학자가 된다는 논리였는데, 쉽게 말해 현대의 TV가 바보상자라 불리던 것과 같다) 진리의 종족의 수장격인 네스타는 언젠가 자신들에게 해악이 될 것이며, 거짓조차 전달하는 문자의 만연, 그 끝에 있는 것은 존엄을 잃은 인간의 가엾은 미래라며, 문자의 폐지를 주장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문자의 종족의 전사인 키류가 처형 직전 남긴 편지의 내용을 읽지 못했고, 편지를 건네주었던 병사의 왜곡된 진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버린다. 이는 현실세계와 진리의 세계, 양 측 사이에 '로고스 월드'라는 공간이 만들어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 야인시대 - 김두한[38], 개코, 문영철, 김무옥[39], 임화수[40]
  • 왕좌의 게임 - 다보스 시워스: 작중 초반엔 글을 아예 읽지못하는 문맹이었으나, 시린 바라테온이 글을 가르쳐주어서 문맹에서 탈피.
  • 유니미니펫 - 이어벳, 스네이크딩동
  • 이세계식당 - 아렛타
  • 인사이드 아웃 - 빙봉: 정확히는 글을 읽을 줄은 아는데 잘못 읽는다. 더빙판 기준으로 "위험!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써져있는 글자를 멋대로 "질.러.서.가.는.길! 지름길!"이라고 읽었고 겨우 살아남아 하는 말이 "위험(Danger) 표시라도 써놓았다!".
  • 제로의 사역마 - 히라가 사이토: 중반까지 할케기니아 문자를 몰라서 문맹이었지만 11권(애니 3기)부터 타바사의 도움으로 글을 깨쳤다.[41]
  • 카스텔라 레시피 - 옥스: 온갖 마도서와 기밀문서가 넘치는 대학 도서관 관리를 위해 어려서부터 사서교육예정자는 민감한 내용에 반응하지 않도록 읽기교육을 차단하며 발음교육과 기억력 훈련만 받게 된다.
  • 크라임씬3/섬마을 살인사건 - 박해녀
  • 키테레츠 대백과 - 코로스케: 애니판에서는 본인 스스로 글을 읽을줄 모른다고 하였다. 다만 이것은 코로스케가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유년의 로봇인지라 글 읽기 학습이 완전하지 않아서 그런 것.
  • 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 - 다이
  • 태극기 휘날리며 - 이진태[42]
  • 포켓몬스터 SPECIAL - 사파이어: 한자를 거의 읽지 못한다. 그래서 원규랑 시합하기 전에 필기시험을 치를 때도 한자를 읽지 못해 애를 먹었으며 답안을 작성할 때도 죄다 히라가나로만 적어서 원규에게 한소리 들었다. (단 포켓몬 지식은 풍부해서 시험 자체는 최초로 만점.) 정발본에서는 글자 자체 뜻을 모르거나 글씨가 나쁘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나왔다.
  • 폴라리스 랩소디 - 오스발[43]
  • 폴아웃 4 - 누카 월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레이더들. 주인공이 굳이 자신이 점령한 지역에 굳이 유치하게 깃발을 달아야 하냐고 묻자 포터 게이지는 레이더들은 글을 읽는 것이 재능일 정도로 문맹률이 높아서 그래야 알아본다고 한다. 레이더가 아닌 보통 황무지인들의 문맹률도 상당히 높을 것으로 추정.
  • 피를 마시는 새 - 소리 로베자
  • 파워 디지몬 - 몽트몬: 할 줄 아는 말이 죄다 중화 요리 음식 메뉴[44]다.
  • 프리큐어 시리즈
  • 하프블러드 - 레온
  • 활자 잔혹극 / 의식 - 유니스 피치먼 / 소피[45]
  • 홍루몽 - 왕희봉
  • D. H. E. 시리즈
    • 유그드라 유니온 - 밀라노, 키리에, 니체, 러셀, 쿠르스
    • 블레이즈 유니온 - 가롯트[46]
  • Fate/Apocrypha - 룰러: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이름 쓰는 게 한계였고 기도문 외우는 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질 드 레가 "그거면 됐습니다."라고 위로해줬다고 한다.
  • Kingdom Come: Deliverance - 스칼리츠의 헨리 : 게임 초기에는 문맹이라서 책 아이템을 습득해도 사용할 수 없다. 우지츠의 서기에게 돈을 내고 글을 배운 뒤, 문맹을 탈출하여 독서가 가능해진다.
  • 중앙역(Central Station) : 1998 브라질 영화. 주인공 도라는 역에서 문맹인들을 대신해 편지를 읽고 써주는 직업을 갖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90년대 브라질의 문맹률을 짐작할 수 있다.
* 해병문학 - 등장 해병 대부분

서브컬처 커뮤니티에서 애니를 많이 시청해서 일본어를 듣고 말하는 건 대충 가능한데, 정식으로 일본어를 배운 적은 없어 일본어로 된 글은 읽지 못하는 오타쿠를 문맹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근데 사실 이게 전근대사회에서 문맹이 탄생하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뼈 있는 농담.

7. 관련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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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과 글 둘 다 안 되거나, 글은 아는데 말은 모르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문맹이라고 칭하지 않는다.[2] 그런 수준이였기에 군대 내 소통을 위한 필담은 불가능했다.[3] 다만 조선을 지배했던 국가 이념인 성리학에서는 원래 세금을 적게 걷는 것을 이상적인 통치로 간주한 반면, 호구를 철저히 조사하여 세금을 많이 걷는 것을 나쁜 정치라고 보았던 점도 유념해야 한다. 실제로 조선과 같은 시기, 중국 명나라의 재상인 장거정은 전국의 호구를 철저히 조사하여 세금을 정확하게 걷어서 무려 10년치 국가 재정을 마련했는데 이 점 때문에 오히려 엄청난 욕만 먹었다(...)[4] 모르는 게 당연하면 속담이 생길 일이 없고 특이하게 무식하니 까내리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5] 다만 천자문의 교재로서의 완성도는 낮은 편이라, 실용 한자의 습득률은 지역 훈장의 역량을 크게 탔을 것이다. 또한 1천자를 모두 뗐다기보다는 생활어휘 300-400자 정도 떼어 포고문 정도는 떠듬떠듬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6] 일각에서는 일제의 우민화 교육의 실태를 은폐하기 위해서 일제 강점기 문맹률이 이전 문맹률 보다 향상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다.[7] 2천 만 국민 중 80∼90%가 문맹자였던 1920년대, 1928년 3월 16일자 「동아일보」에는 “어찌하면 우리는 하루 바삐 이 무식의 지옥에서 벗어날까. 어찌하면 이 글장님의 눈을 한시 바삐 띄어볼까…….”라는 기사를 통해 ‘글장님 없애기(문맹퇴치) 운동’을 선언했다. 4월 2일에는 안재홍, 방정환, 최현배, 최남선 등 명사 30여 명의 강연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조선총독부가 3월 29일 문맹퇴치운동 금지령을 내리며 막았다. 링크1[8] 여기서는 한글과 가나를 둘 다 모르는 비율.[9] 다만 이 수치 자체는 일반적으로 문맹률을 계산할 때는 빠지는 아동 인구를 포함해서 높게 나온 면도 있다. 당시 15세 이상 조선인 문맹률은 69.9%였다.[10] 정작 일본 본토에서는 같은 시기 도쿄나 오사카 같은 도시들에 여러 개의 대학들이 세워졌다. 교육에 있어서도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훨씬 심한 차별에 시달렸던 것이고, 그래서 해방이 되자 조선인들의 억눌렸던 학구열이 폭발하여 각종 대학교들이 무수히 생겨났다.[11] 당시 일본은 전비만으로 국가 예산의 80% 넘게 쓰고 있는 상황이었고 1940년대가 되면서 국가 예산의 98%를 전비로만 사용했다.[12] 1947년 미 군정청 조사 결과.[13] 세파르딤, 하르키[14] 지역별 문맹률은 서울, 경기가 68%, 충청북도 83%, 충청남도 78%, 전라북도 81%, 전라남도-제주도는 77%, 경상북도 80%, 경상남도 78%. 강원도 80%였다.[15] 동시기 북한의 12세 이상 문맹자는 230만명 정도였다.[16] 투표를 하려면 후보자 이름과 공약을 알아내야되는데 후보자 이름은 커녕 자기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투표하려면 애로사항이 꽃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17] 경성제국대학의 입학생들 중 절반 이상은 조선에서 살던 일본인들이었다. 그런데 조선 거주 일본인들의 숫자가 약 80만 명이었고, 조선 전체의 인구가 약 2천만 명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경성제국대학에서조차 조선인들이 받았던 교육 차별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18] 이런 이유로 제1공화국 시절에는 "군대에 가야 사람이 된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사실 그 시절 군대에서는 장병들한테 단순히 글만 가르치는게 아니라, 농기계 사용법까지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19] 김일성이 집권 이후 제일 먼저 제기한 안건이 소학교 설치와 문맹퇴치였고, 교육문제를 직접 챙기면서 민심을 얻게 된다.[20] 2008년의 통계에서 노인 문맹률이 6.6%로 집계되었다. 노인 인구에 고학력층이 계속해서 유입되는 동시에 문맹자들은 유입 없이 사망으로 빠지고 있으므로 16년이 지난 현재는 이보다 낮을 것으로 추산된다.[21]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한자는 능숙하게 사용하지만 반대로 한글을 제대로 못 읽는 특이한 사례도 가끔 존재한다.[22] 1938년 3월 15일 조선어를 수의과목으로 격하하고 몇 년 뒤에는 아예 삭제했다.[23] 2019년 7월 1일부로 정신건강의학부문 장애등급은 중증으로 통일되었다.[24] 후천적 요인으로 시각장애인이 된 경우는 거의 문맹이 아니다.[25] 당시에는 터키어의 음소 구조와 괴리가 컸던 아랍 문자를 쓰고 있었다.[26] 현대에 저 정도 문맹률을 보이는 집단은 시각장애인 정도에 불과하다.[27] 서기 184년,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스 호르무 마을에서 근무했던 로마 제국 서기관 페타우스는 "지방 서기관인 나 페타우스가 이 서류를 제출합니다"라는 문장조차 제대로 쓰지를 못해서 계속 마지막 단어를 빠뜨렸다(...) 출처: 성경 왜곡의 역사/ 바트 어만/ 청림 출판[28] 이런 이유로 신약성경에 포함된 문헌들 대부분은 12사도들 본인들이 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12사도들의 이름을 사칭해서 쓴 위작이라는 견해도 유력하다. 한 예로 사도 베드로는 평생 동안 고기를 잡는 어부로 살았는데, 그가 썼다고 전해지는 베드로1서는 유창한 그리스어로 적혀 있기 때문에, 베드로 본인이 쓴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대부분 무지하고 천한 자들이라고 묘사되었는데, 이는 그들 대부분이 글자를 읽거나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29] 원래 초대 기독교에서 사도 파울로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른바 파울로스파는 예수를 구세주로 섬기는 것 이외에는 유대교의 율법을 그대로 지키던 율법파보다 훨씬 교세가 약한 소수 세력이었다. 그러다가 율법파가 서기 70년대에 로마 제국에 맞선 대규모 반란에 가담했다가 로마군에 의해 전멸당하고 나서, 살아남은 파울로스파가 기독교의 주류가 되어 오늘날 기독교 교리의 근간을 이루었다. 출처: 그리스도교의 탄생/ 정기문 지음/ 도서출판 길[30] 예를 들어 잉카 제국의 경우에는 '키푸(quipu)'라고 끊을 묶어서 정보를 기록하는 결승문자가 있기는 했지만, 정규적 기준으로의 문자는 없었다.[31] 陳伯之, 생몰년 미상, 남조 양 시기에 활약한 장군이자 진호아의 아버지.[32] '글을 읽을 줄 아는데 쓸 줄 모른다'는 것은, 쉽게 말해 몇몇 사람들이 어려운 철자법을 가진 한자를 읽을 수는 있지만 막상 쓰라고 하면 못 쓰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33] 그나마도 리더인 올가 이츠카한자만 알고있다.[34] 오죽 그녀의 삶이 기구하고 비참했으면, 마초 기질이 강한 상남자 클라우디오 마나우스가 샤를로트의 하소연을 듣고 너무 불쌍하다며 통곡했을 정도다.[35] 물론 게임의 배경이 되는 17세기만 해도 중국이나 조선을 제외하면 공교육에 대한 관념이 희박했던건 감안해야 한다. 동시대의 유럽 원주민들도 알파벳만 간신히 떼고 어릴 적부터 온갖 잡일에 동원되던 시대에 집시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36] 영화판 한정. 맥베인과 똑같이 생긴 캐릭터(아놀드 슈왈제네거 패러디)인데 나왔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나는 지도를 하지 독서는 하지 않아(I lead, not read!)"라는 말이 나온다.[37] 2008년판에서 새해아침에서 고길동이 일기쓰라고 공책을 주었는데 날씨를 꾸물꾸물이라고 적은거 보면 문맹으로 나왔다.[38] 다만 교동보통국민학교를 2년간 다닌 적은 있는데다가 후에 정치인이 된 후 신문을 혼자서 읽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정계에 진출하면서 글을 깨친 듯 하다.[39] 1부 한정. 2부에서는 편지를 읽을수가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40] 나중에 눈물의 곡절에게 한글을 배우게 되며, 신문을 혼자서 읽는 장면이 나온다.[41] 알파벳만 배웠더니 마법의 힘으로 머릿속에서 일본어로 자동으로 변환되어서 하루만에 글을 익힌다. 사이토가 문맹이란 걸 밝혔을 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일개 메이드인 시에스타가 독서를 한다는 것에 루이즈가 놀라는 등 문맹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42] 동생 진석의 뒷바라지와 어려운 집안 살림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초반에 같이 구두닦이를 하던 용석이 진석에게 맞춤법을 묻자, "나한테 글자 묻지 말랬지?"라며 면박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어머니께 쓴 편지를 보면 맞춤법이 서툴긴 해도 아예 글자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43] 물론 정체를 생각하면 노예 코스프레를 위한 구라였을수도 있다.[44] 원판에서는 라멘 메뉴.[45] 문맹이라는 사실이 작품의 핵심을 담당한다.[46] 작중 그래도 귀족 집안 자제인 레온에게 너한테 문맹 탈출은 무리라고 대놓고 디스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