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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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5세기부터 20세기인 1997년까지 존속했던 영국의 식민제국을 부르는 호칭.[7] 1607년 최초의 13개 식민지 건설을 시작으로 1997년 홍콩 반환까지 지구상의 모든 대륙에 걸쳐 있던 식민제국으로서의 영국을 일컫는 명칭으로 앵글로색슨 제국이라고도 부른다.[8]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 이전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5대양 6대주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던 최초의 강대국이였다.[9] 최전성기에는 전세계 육지 면적의 1/4과 전세계 인구의 1/6을 보유했으며, 영토 면적으로는 세계 최대,[10][11] 인구 수로도 당대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하면 보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국가이다.
2. 영향력[편집]
대영제국은 나폴레옹 전쟁 승리 이후 전성기를 달리며 19세기 중엽[13] 에 그 세력과 영향력이 전세계에 달해 세계 패권국에 이르렀다.We are not interested in the possibilities of defeat; they do not exist.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패배 따위엔 관심 없습니다.[12]
흔히 대영제국(British Empir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영국 정부가 썼던 공식 국명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영국과 영국이 지배하는 식민지들을 통칭하기 위해 편의상 붙여진 명칭이다.[14] 영국 국왕은 영국령 인도(인도 제국)에 한하여 황제 지위를 겸했을 뿐, 통합된 국가의 수장을 지칭하는 명칭은 어디까지나 '국왕'이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로마 황제만을 적법한 황제로서 인정해왔으며[15][16] , 러시아 제국의 경우 아예 제3의 로마라는 말을 만들고 동로마 제국의 후예를 자처했다. 로마 제국의 속주 중에서도 로만 브리튼으로서 변방, 그것도 완충용 속주 정도로 인식되었던 영국이 로마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하기에는 그 정통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17]
전성기 대영제국의 대항마로 꼽혔던 것은 그나마 전반기에는 프랑스 식민제국, 후반기에는 러시아 제국이 꼽혔지만, 전자는 7년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등 여러 사건을 거쳐 결국 영국이 명확하게 우세를 차지했고[18] 후자는 그레이트 게임으로 불리는 패권 경쟁을 했지만 영국이 국력에서 우세한 상황 하에서 러시아의 거대한 영토와 인구, 군사력의 잠재력을 감안해 미리 대비해 견제한다는 성격이 강했다.[19] 20세기 초에 신흥 열강으로 떠오르던 미국도 영국의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고 미국에 대한 견제 정책을 수립하려 했으나,[20] 또 다른 열강 독일 제국이 급부상하는 바람에 당장 유럽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느라 바빠 지원을 얻으면 얻었지 미국을 견제할 상황이 아니었다.
대영제국은 현대 문명의 형성에 있어, 단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나라이다. 대영제국은 영어, 의회민주주의, 자본주의, 시간대, 산업 혁명, 정장 등등 수없이 많은 오늘날의 인류의 보편 문화를 만들어 놓은 엄청난 문화력과 산업력을 가졌고, 또 그것을 실현 가능하게 했던 실행력과 국력을 가졌다. 당시 대영제국이 건드리지 않은 국가가 거의 없었기에, 현대의 보편 문명을 전세계에 전파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세계의 여러 방면의 표준이 영국식이 된 것도 바로 대영제국의 영향력 때문이다.
당장 이들의 언어인 영어가 현재 전 세계 공통어 노릇을 하고 있으며, 세계의 시간 체계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원점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들의 복식인 양복이 전세계의 정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산업, 사상, 정치, 군사 등등 현대문명의 기준이 된 것들 중 상당수가 대영제국에서 만들어져 확산되었다.
그나마 영향이 적다고도 할 수 있는 음식 분야에서마저도, 커리가 지구 반바퀴를 돌아 카레로 변하게 하거나 차 문화를 세계적으로 퍼트리는 등, 이들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영역은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영제국이 직접 건드리지 않은 국가들도 결국 영국의 영향을 받은 다른 국가들과 교류를 하거나 침략을 당했기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으니 가히 전세계가 대영제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반면에 부정적인 영향도 있었는데, 특히 서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분쟁에 꽤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사례만 봐도 팔레스타인 문제, 예멘 내 남북 갈등, 이집트-수단 국경분쟁(비르타윌 문서 참고), 로힝야족 및 카렌, 카친족 분리독립 문제, 과테말라-벨리즈 영토 분쟁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농담삼아 현대 세계의 분쟁의 원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십중팔구 영국과 연결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올 정도다.
현재는 영연방이라는 회원국 간 외교 기구로 바뀌었다. 영연방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연합왕국, United Kingdom)과 자치령(Dominion)[21] 정부 간 연합 조직으로서 출범했다. 본래 대영제국(British Empire)은 본토인 영국(연합왕국)이 다수의 자치령, 식민지 등을 거느리는 형태였지만, 1차 대전 때 영국을 도와 피흘려 싸운 자치령들이 그 전보다 많은 권한을 달라고 요구, 영국 정부가 1931년에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그 요구를 수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치령들이 외교권, 군사권까지 자체적으로 가지게 돼 사실상 독립국[22] 이 되었는데(물론 일부 권한은 예외적으로 영국이 계속 가지고 있기도 했다[23] ), 이들이 완전히 남남이 되는 건 아니었으므로 영국과 자치령들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한 조직으로서 영연방을 창설하게 되었다. 물론 대영제국 시절 식민지였던 이집트, 수단, 짐바브웨 같은 국가들은 일부 빠지고 타국 식민지이던 모잠비크, 카메룬(다수지역) 등이 영연방으로 들어오며 구성국과 그 형태는 사뭇 달라졌다. 자세한 것은 영연방 문서 참조.
3. 해체[편집]
1차대전에 따른 전쟁특수는 미국의 GDP가 대영제국의 전체 GDP를 확연히 추월하도록 만들어 주었으며, 1930년대부터 국제 금융 영향력[24] , 과학과 학술의 중심지의 이동[25][26] , 1930년대 노벨상 수상급 업적과 학술의 양적, 질적 아웃풋 등의 부분에서 미국이 서유럽 과학강국을 서서히 웃돌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 등[27] , 웨스트민스터 헌장, 신인도통치법등 영국의 국력이 이미 한계에 달해 지속적인 대영제국의 세력 퇴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대영제국의 시대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으며 세계의 중심이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국제 정세는 분명히 있었다.[28]“(수에즈에 대한) 영국의 조치는 쇠퇴한 강대국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아마 미국은 200년 후에 영국의 심정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20세기 초중반,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의 무렵 미국이 대영제국의 국력과 영향력을 제치고 새로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대영제국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갔다.[29] 종전 이후 인도 제국이 독립하는 등, 제국은 내리막길을 걷다가 결정적으로 왕년의 위상을 잃은 사건은 1956년의 제2차 중동전쟁에서 미국과 소련에 굴욕을 당하면서 부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영국을 압도하고 대영제국의 세계적 영향력을 흡수했고[30][31] , 결정적으로 1956년 제2차 중동전쟁 당시 미국과 소련이 초강대국의 자리를 대체했다는 권위를 굴욕적으로 인정하며,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다.
이때 미국은 영국에 대해 제재를 단행하면서 자유진영에서 서열이 누가 더 위인지 각인시켰다. 미국에서 단행한 미국이 보유하던 영국의 파운드화를 매각과 미국 석유의 영국 수출 중단은 영국은 이제 경제적으로 자립이 불가능한, 미국의 재정 도움이 없이는 자국 군대를 유지할 수도 없는 종이호랑이임을 드러냈다.
이후 대영제국에 지배를 받던 수많은 지역들이 미국, 인도, 캐나다, 네팔등으로 독립해 나가면서 영국은 대영제국 시기 3550만 ㎢까지 확장했었던 거의 대부분 영토들을 죄다 잃어버리고 홍콩 반환을 마침표로 24만 3610㎢의 섬나라로 남게 되면서 대영제국은 완전하게 해체된다.
결국 영국은 대영제국으로써 세계의 패권에 개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미국과의 급속한 결속을 통해 자국의 무역로를 보장받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4. 무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http://obj-sg.the1.wiki/d/2a/c3/2af8a3cde73220d4d2ce2a2d6cd7ab6096df203a6cf8021431522ae01d6c0ecb.png)
5. 인구[편집]
1750년을 기준으로 영국의 지역별 인구는 다음과 같다.
6. 역사[편집]
영토 확장을 기준으로 크게 제1제국(1607년 ~ 1783년)과 제2제국(1783년 ~ 1997년)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1783년은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인정한 해이다.
6.1. 제1제국[편집]
-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로 유명한 튜더 왕조의 뒤를 이은, 스튜어트 왕조의 첫 왕 제임스 1세 때 아메리카의 제임스타운에 도착하며 시작(1607년) 잉글랜드 제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동군연합
- 내전 끝에 사형된 스튜어트 왕조의 찰스 1세를 거쳐, 올리버 크롬웰 호국경의 잉글랜드 연방
- 다시 찰스 2세가 돌아와 스튜어트 왕조를 부활시킴. 허나, 제임스 2세 때 명예혁명이 발생해 오렌지공 윌리엄이 상륙, 하노버 왕조가 시작됨.(자코바이트도 생성)
- 하노버 왕조의 조지 시대 중, 조지 3세가 미국 독립전쟁에서 패할 때까지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에 험프리 길버트 경이 현재 캐나다의 뉴펀들랜드에서 영국의 아메리카 최초의 영유권을 선포하고 1585년 월터 롤리 경이 보낸 함대가 현재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로어노크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미스테리하게 사라져버렸고, 실질적인 대영제국의 식민지 건설의 시작은 1607년으로 본다.
이후 영국은 발견한 카리브 해의 무인도를 장악했고 7년 전쟁을 통해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인도의 벵골 지방과 캐나다의 퀘벡 주도 정복한다.[32] 그러나 1783년에 미국 지역에 있던 아메리카 13개 식민지가 영국의 정책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일으킨 미국 독립전쟁에서 승리하고 파리 평화 조약에서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승인하게 되었다.
영국의 아메리카 주요 영토 지배 시기는 다음과 같다.
- 카리브 섬
- 세인트키츠 (1625년~)
- 바베이도스 (1627년~)
- 앤티가 (1632년~)
- 자메이카 (1655년~)
- 그레나다 (1763년~)
- 트리니다드 (1797년~)
- 영국령 기아나 (1803년~)
- 북아메리카 식민지
- 버지니아 (1607년~)
- 매사추세츠 (1620년~)
- 메릴랜드 (1632년~)
- 코네티컷 (1635년~)
- 로드아일랜드 (1644년~)
- 노스캐롤라이나( 1662년~)
- 사우스캐롤라이나 (1662년~)
- 뉴욕 (1664년~)
- 뉴저지 (1664년~)
- 뉴햄프셔 (1679년~)
- 펜실베이니아 (1681년~)
- 델라웨어 (1704년~)
- 조지아 (1713년~)
- 캐나다
- 노바스코샤 (1713년~)
- 로어/어퍼 캐나다 (1759년~)
6.2. 제2제국[편집]
비록 영국은 가장 중요한 식민지였던 미국을 상실했으나 여전히 캐나다와 벵골 등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국은 1788년 제임스 쿡의 태평양 탐험을 통해 발견한 호주를 식민화하고 나폴레옹과의 투쟁 과정에서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거점을 확보하게 된다. 이로써 새롭게 구성된 제2차 식민 제국으로 불리는 대영제국의 중심은 동인도 회사가 직접 통치하기 시작한 인도였다. 나폴레옹 전쟁을 끝낸 워털루 전투 (1815년) 이후부터는 증기선과 전신 등의 새로운 기술을 통해 전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대륙별 초기 영토 지배 지역은 다음과 같다.
- 아시아
- 인도 (2,921,000㎢)
- 동인도회사보호지 (1,592,000㎢)
- 벵골 (571,000㎢)
- 포트세인트조지 (368,000㎢)
- 데칸디스트릭트 (236,000㎢)
- 봄베이 (154,000㎢)
- 실론
- 모리셔스
- 싱가포르
- 말라카
- 페낭
- 인도 (2,921,000㎢)
- 아프리카
- 케이프오브굿홉
- 시에라리온
- 세네갈
- 고레
- 페르난도포
- 오세아니아
- 오스트레일리아
- 유럽
- 지브롤터
- 몰타
- 아일랜드
이후에는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과 이집트의 카이로를 연결하는 종단 정책을 펼쳤고 연이어 카이로에서 인도의 캘커타를 연결하는 3C 정책을 펼치며 중동 지역으로 진출을 꾀하였으며,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고 형성된 경로를 따라 싱가포르 방면으로도 진출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도 승리했던 영국은 1920년에 정점에 올라서 35,500,000㎢의 영토와 458,000,000명의 인구를 통치하는 판도를 이룩해낸다. 그러나 이어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영국 본토의 국력은 크게 소모되었고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연방 등 여러 자치령과 식민지들은 독립을 요구하면서 제국은 조금씩 해체되기 시작했다.
사실 결정적인 이유는 전술했듯이 2차 세계 대전으로,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영국과 다른 지역과의 연결망에 큰 타격을 입었고, 급기야는 1942년 일본 제국과의 말레이 해전과 실론 해전으로 동양 함대가 소멸하거나 나치 독일과의 해전에서 주력 수상함 다수와 맞바꾼 전과를 세우고 라이온급 전함 개발안도 뱅가드 전함으로 엄청나게 축소되었으며, 미국의 지원을 얻는 대가로 해외의 여러 해군 기지나 항구를 넘겨주는 등 재해권을 기반으로 했던 대영제국의 영향력이 크게 손상되었다. 그 대신 전쟁 기간 내내 영국은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이라크[33] , 시리아, 마다가스카르를 나치 독일과 비시 프랑스에서 해방시켰고 결국 마지막에 전쟁에서 승리하기는 했다.
영국은 1947년에 인도가 독립하고도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항로를 장악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나 1971년에는 수에즈 동쪽의 주둔 영국군 5만 명을 전면 철수시켰고 1984년에는 브루나이의 독립을 승인하였으며 1997년에는 홍콩을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했다. 실질적으로는 학계와 일상을 막론하고 1997년에 발생한 홍콩 반환을 제국의 완전한 종말로 간주하고 있다.
7. 평가[편집]
제국주의 시대 식민제국의 대명사로써 대영제국은 감히 세계 최대의 규모를 가졌다고 평가받고 있으나, 그에 비례해서 전세계 식민지 국가의 주권을 가장 많이 침범했다고도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평가는 좋지 못하다. 이들의 결과물은 여러 국가에서 현재까지도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대영제국의 범죄 행각은 대표적으로 보어 전쟁 당시 보어인 학살과 감금, 인도,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한 착취와 학살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국이 인류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인류 근대문명이 영국의 역사라고 봐도 과언은 아닌데, 이전 수천년간 세계는 부가가치가 매우 낮은 농업이 주류 시스템으로서 사실상 정체됐던 인류의 소득, 인구는 영국이 촉발한 '산업화, 자유무역, 1차 세계화, 중상주의' 이후 비로서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도 한때 노예무역에 가담하긴 했으나, 열강 중 최초로 이를 금지시키고 국가예산의 40%라는 막대한 돈을 지출하여 아프리카 현지 추장과의 반노예 협정체결 및 다른 열강에게도 압박을 행사하는 등, 노예무역 근절활동 통해 보편적인 인권향상에 기여했다. 그 외 백신, 항생제, 마취제 등을 통해 수십 억 인류의 생명을 살린 것과, 축구, 골프, 럭비, 배드민턴, 뮤지컬 등과 같은 현대인들이 오늘날 누리는 여가의 폭을 넓혀준 것은 덤이다.
더불어 제국의 규모에 비해 다른 식민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결국 역사는 늘 강대국 간 '패권국' 지위를 가지고 싸워왔는데, 지금의 미국이 절대선은 아니지만 중국,러시아 보다는 낫다고 평가받듯이, 당시 대영제국이 패권국으로서 '프랑스 제국, 스페인, 네덜란드, 러시아, 독일' 같은 나라는 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관점이다.
대영제국은 피지배 지역에 관용적이고 피지배민들을 잘 대우해줬을 뿐 아니라, 영국은 다른 식민제국처럼 정복지를 자국으로 직접 병합하기보다는 해외 식민지 개념으로 보고 현지의 문화적 요소까지 강압적으로 말살하려 하지는 않은 데다가[34] , 일상 행정 업무 다수는 현지인들에게 맡기고 간접적으로 통치를 한 경우가 많아 중앙 권력의 직접적인 탄압을 받은 경험이 적었던 편이기 때문이다.[35] 미국 독립 전쟁으로 식민지를 포기한 경우도 있지만 다른 식민제국보다는[36] 상대적으로 식민지들의 독립을 쉽게 허락했던 편이다. 이러한 평가는 주로 비교 대상인 프랑스가 탈식민화 과정에서 인도차이나와 알제리에서 식민지군들과 거대한 전면전을 벌이면서(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알제리 전쟁) 많은 인명피해를 냈던 것과 달리 영국은 비교적 평화적으로 탈식민지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37] 때문에 아직도 상당수의 구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 뒤에도 영연방에 소속되어 있고 현재도 회원국만 56개국 인구 24억명에 이른다. 때문에 누구보다 제국주의를 혐오하고 비판했던 조지 오웰조차 기존 대영제국이 이를 위협하는 다른 신흥 제국보다 나았음을 시인했었다.
다만 이건 다른 식민지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것일 뿐이지 악행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종종 보이는 '세계사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십중팔구는 영국 때문', '악명을 가려준 콧수염 퓌러에게 감사해야 할 인성쓰레기 깡패 나라' 같은 혐성국 밈에 너무 매몰돼서 모든 것을 영국 탓이라고 하는 건 잘못된 평가이지만[38] 그렇다고 정확히 그에 반대로 영국의 식민지배도 좋은 점이 있다고 하는 것 역시 너무 나간 것이다.나는 이미 제국주의는 사악한 것이며, 내가 일을 때려치우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그것에서 더 잘 벗어날 수 있으리라 결심하였다.ˑˑˑˑˑ 이론적으로 나는 미얀마인들을 지지했고, 영국인들에 반대했다. ˑˑˑˑˑ 내가 하고 있던 일에 관해 나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그것을 싫어했다. ˑˑˑˑˑ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전망할 수 없었다. ˑˑˑˑˑ 나는 영제국이 사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했고, 영제국을 밀어내려 하는 더 젊은 제국들보다 영제국이 훨씬 낫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조지 오웰 - 《코끼리를 쏘다》 中
대표적인 게 "영국의 식민지들은 잘살고 무역과 상업이 발달했다"라는 평가. 이건 근본적으로 일본이 한국을 발전시켰다는 주장과 똑같은 주장이다. 그리고 이 주장이 틀린 가장 큰 이유는 이 주장에 부합하는 국가가 어디가 있고 얼마나 있는지를 보면 된다. 수많은 식민지 중에 홍콩, 싱가포르, 호주,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키프로스, 몰타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식민지도 단순히 하나의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치령, 보호령, 위임령'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는데, 전문가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영제국이 더 오랫동안 그리고 더 직접적으로 통치한 지역일수록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나 경제수준이 발전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인도는 현재도 가난하지만, 영국령 기간동안 최소 인구가 수억명 늘어난 것이 사실이며, 뭄바이와 캘커타의 경우 원래 허허벌판이던 지역에서 영국의 막대한 투자로 인도 최대의 상업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또한 그렇다면 '프랑스 제국,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 네덜란드, 독일' 같은 타열강의 식민지들은 현재 과연 어떤 상태인지를 반문해 볼수 있는데, 애석히도 이들 대다수 국가는 현재까지도 '커피, 담배, 카카오, 마약' 같은 농업에 의존하면서 높은 빈곤율과 범죄율을 자랑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위 주장은 근본적으로 '한국-일본' 이라는 협소한 관계를 나라마다 각기 상이한 전세계 모든 식민지-피식민지에 그대로 동치시키는 일반화 오류에 해당되는데, 역사에 대한 인식은 나라마다 다르며 일례로 영국의 대표적인 식민지였던 인도만 해도 영국의 근대화 기여 등 공과사를 모두 인정하는 편이다.
또한 '호주,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같은 경우는 죄수나 하층민 위주였다곤 하지만 어쨌건 본토 영국인을 이주시켜 그들로 인구 대부분을 구성하게 된 지역이라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식민지가 아니니 결과를 부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영국-캐나다 관계는 조선-일제의 관계하고 식민지라는 명칭만 같을 뿐이지 속내는 완전히 다르다는 뜻이다.[39] 미국 독립 전쟁 역시 당시의 영국인들은 한국으로 치면 경상도나 전라도가 독립전쟁을 일으켜 다른 나라로 떨어져 나가는 그런 내용으로 받아들였다.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초대수상인 자와할랄 네루 역시 영국이 인도에 서구적 의회정부와 개인의 자유라는 개념을 가져다 주었고, 인도인들 사이에 정치적 통일감을 발생시켜 하나의 단일 민족으로 탈바꿈 시켜주고 민족주의 발단에 불을 지폈다는 영국인들의 주장에 "많은 진실이 있다" 라고 인정했다. 영국이 인도에 서구를 향한 인도의 창을 처음 열고 '철도, 전신, 전화' 등과 같은 산업주의의 전령을 도입함으로써 인도에 서구 산업주의와 과학을 알려준 공로를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네루의 자서전 - 《자유를 향하여 (Toward Freedom), 1942》 中
그러나 이는 남아메리카의 사례만 봐도 바로 반박할 수 있는 주장이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계'가 대거 이주하여 현재도 이들이 후손으로서 백인비율이 높은 우루과이 (88%), 아르헨티나 (85%), 코스타리카 (83%), 브라질 (47%)라는 훌륭한 예시가 있기 때문이다. 또 예시로 든 미국만 해도 영국 이전에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가 이미 진출해 있었으며, 네덜란드인들이 통치하던 뉴욕 (뉴 암스테르담)같은 경우엔 영국 이전까지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낙후되어 있던 실정이었다.
그리고 영국이 거느렸던 아프리카의 식민지 중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보는게 맞지만, 유럽인 이전 특히 사하라 이남지역은 청동기 수준으로서 애초에 문명적으로 매우 낙후됐던 지역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하며,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공이나 로디지아 같은 경우는 그래도 아프리카내에선 나름 목소리를 내며 잘 살던 나라였다. 다만 로디지아 (현 짐바브웨)의 경우는, 독립 직후 아프리카의 빵 바구니라 불릴정도로 잘 살았으나 아이러니 하게도 오히려 독립 이후 독립운동가 출신인 로버트 무가베에 의해서 수십년간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인도의 경우엔 매우 많은 인구의 힘[40] 으로 경제대국 반열에 있는 것이지 1인당 소득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하지만 영국 이전 인도는 애초에 수백개로 쪼개져 있다가 영국에 의해 비로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통일이 됐으며, 독립 후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미얀마 역시도 매우 가난한 나라인데, 마찬가지로 독립 직후만 해도 동남아내에서 나름 잘사는 축에 속하는 나라였으나 군부의 쿠데타와 수십년간의 독재 그리고 사회주의 노선으로 현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듯 나라마다 상이하기 때문에 단순히 지도를 보고 영국의 식민지 중 못사는 나라가 더 많다는 논리로 모든 것을 전부 부정하거나, 그 반대로 미화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다만 확실한건 다른 열강에 비하면 그래도 영국의 식민지가 상대적으로 발전한 국가가 많다라는 점이다.
그리고 영국은 식민지인들의 문화적 요소까지 강압적으로 말살하려 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말살하려 든 적이 여러 번 있다. 윌 듀란트는 인도에 관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영국에 의한 명백히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인도 문화 말살에 대해 나는 놀라고 분개한다...(중략)...인도의 여러 곳에는 마을 공동체들이 관리하던 공동 학교 시스템이 있었다. 동인도회사 직원들은 이 마을 공동체들을 파괴했다. 인도 총독은 교육을 장려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주민들에게 음주를 권장했다."
위 문장에서 말하는 마을 공동체의 개념은, 영국이 진출하기 전 인도 전역에 널리 퍼져 있던 다르마(dharma)라는 공동체 의식에 대한 개념에서 비롯한다. 깊게 알고 싶다면, KIEP의 대외경제 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연구 자료 인도인의 공동체의식을 참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 식민지는 아니지만 아일랜드 역시 오랜 세월 종교와 고유언어를 탄압당했다. 이 역시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보다는 덜 했다는 거지 영국이 안한 것이 아니다. 다만 아일랜드는 우리나라 고려시절에 해당하는 무려 800년전이란 시간이 존재하며 중세 유럽에선 카톨릭-개신교간 종교전쟁이 일반적이였기 때문에 단순대입은 어렵다.
결과적으로 동시대 영국과 패권국 지위를 경쟁했던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벨기에, 독일제국' 등이 약탈경제 체제, 대량 학살체제, 적극적인 동화정책으로 운영되어 20세기 이후 식민지 해체물결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하며 결말이 매우 좋지 않았던 것에 비해, 영국은 상당한 자치권 부여와 함께 가급적 문화 및 종교는 건들지 않았고, 독립 문제도 비교적 깔끔히 해결했기에 아직도 56개국 24억명이라는 많은 구 식민지들이 영연방에 자발적으로 소속되어 수평적인 관계에서 영국과 친목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얼마 전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의 날에 과거 식민지였던 인도가 '국가 묵념의 날'을 지정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8. 한자어 명칭[편집]
한자문화권에서는 영어 명칭 British Empire에 대응 요소가 없는 대(大) 자를 붙여서 대영제국(大英帝國)이라 관습적으로 칭하고 있고 여기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때문에 영국 제국, 영 제국, 브리튼 제국, 제국주의 영국 등의 대안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실제 쓰임은 일반적이지 않다. 한국에서는 일본 제국, 청나라 등의 예에서 보듯이 실제 정식 국호에 '대'를 붙였던 제국들조차 대를 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기에 대영제국은 꽤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명칭이 보편적으로 쓰이게 된 경위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비판적인 관점으로 영국을 타당한 이유 없이 높여 부르는 이름이면서, 동시에 영국 자국도 고수하지 않은 제국주의적인 명칭으로 불러주는 것이므로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때문에 요즘의 역사 교과서나 학술자료에서는 중립성을 강조하기 위해 '영제국', '영국 제국', 아니면 그냥 ‘영국’이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앞둔 무렵 고려대학교 총장 현상윤은 대한민국을 국호로 정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처럼 대한(大韓)이란 이름을 제국주의와 연관시키는 인식은 주류가 아니므로 걸러 들어야겠지만 대한민국의 국호가 그러한가를 떠나서, 대한이 대영제국, 대일본제국과 궤를 같이하는 표현이라는 인식이 존재했음은 확인해 둘 만하다. 참고로 오늘날 대한(大韓)의 이름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정치형태가 크게 다르지만) 대한제국을 계승한다는 입장에 있으며, 대한(大韓)이란 말은 한반도 토착 세력이었던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三韓)이 의미가 확장되어 고구려, 백제, 신라(변한지역의 가야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의미로 쓰인 것이며,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나온 단어는 아니다. 즉, 대한(大韓)이란 고구려 백제 신라(가야)를 아우른 큰 한(大韓)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높이는 의도에서 사용되어 온 것은 대조선(大朝鮮)의 사례처럼 사실이긴 하다.셋째로 대한(大韓)이란 대(大) 자는 대영(大英)이나 대일본(大日本)과 같이 제국주의 사상을 본따서 지었던 것이니 오늘날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를 국시로 표방하는 때에 이것을 국호로 채용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동아일보》_〈헌법 제정과 나의 의견〉, 현상윤, 1948.6.23.
한편 일본에서는 일본 개화기에 영국을 서양 문명의 중심으로 여기던 것과 영일동맹을 매개로 서양의 위대한 대영제국과 자신들의 대일본 제국을 대비시키려던 의식 등이 대영제국이란 명칭을 즐겨 쓴 배경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다만 일본에서도 정설이 딱히 없기 때문에 일부의 견해고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대영제국 명칭의 출처가 일본이라는 결론은 섣불리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서양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다는 점 때문에 묻히는 경향은 있지만 중국 역시 제국주의의 범주에 들어가는 국가고 스스로를 대로 붙여 높여 불렀던 점 역시 일본과 같았으므로 비슷한 관점에서 대영제국을 인식했을 가능성은 있기 때문이다.
다른 관점으로는 대영 제국은 과거에 영국을 대영(大英) 또는 대영국(大英國)이라고도 칭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그 자체는 제국주의나 사대주의 등과 관계없다는 입장이 있다. 지금은 대영제국,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대영도서관(British Library), 대영백과사전(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Encyclopædia Britannica) 등의 일부 명칭에 붙어있는 것을 제외하면 용례가 사라진 표현이지만 예전에는 영국을 대영이나 대영국이라 칭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조선, 청나라의 공식 외교 문서에서 영국을 대영국이라 표기한 예도 있다.
영국이란 표현은 본래 잉글랜드(England)의 음역인 영길리(英吉利)에서 유래했다. 과거부터 영국 밖에서는 연합왕국(United Kingdom)인 영국을 잉글랜드로 대표해 부르거나 둘을 잘 구분하지 않고 영국을 잉글랜드로 부르거나 하는 경우가 흔했고 한자문화권 역시 같은 사정으로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연합 왕국에 대해서도 영길리·영국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잉글랜드와 그레이트 브리튼을 같은 한자어 영국(英國)으로 표기하면 필요할 때 둘을 구분할 수가 없으니 잉글랜드와 구분해 연합 왕국을 지칭할 때는 대영·대영국 표현이 같이 쓰였다는 것이다.
영국과 같이 연합왕국의 형식을 따르는 것이 특이한 형식이어서 정확히 부합하는 예를 찾기 쉬운 것은 아니지만 영어 표현에서 'Greater ~'는 어떤 중심 국가와 그 국가의 지배력 또는 문화권이 미치는 주변 권역을 의미하는 범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현재의 이란보다 넓은 페르시아 제국들의 영향권을 지칭하는 'Greater Iran', 중화권을 뜻하는 'Greater China', 현재의 인도 공화국보다 넓은 남아시아 지역 혹은 그 밖에 인도 문화의 영향력이 미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권역을 지칭하는 'Greater India',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그 바깥의 스칸디나비아 문화권까지 함께 지칭하는 표현 중 하나인 'Greater Scandinavia' 등이 있다. 이러한 용어들은 현재는 주로 '범(凡)- 권'의 형태로 번역되지만 '대(大)-' 또는 '대(大)- 권' 형태로 번역된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본토를 제외한 권역 일부를 지칭한다는 면에서 정확한 의미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위 용례들과 같이 영어로는 'Greater Greece'로 번역되는 '마그나 그라키아(Magna Graecia)'가 '대(大) 그리스'로 번역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영국'과 '대영제국'의 관계도 그러한 사례를 참고해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처음 대영국이란 표현이 등장한 기사다.
조선에도 이미 영국의 존재는 중국에서 들어온 서적 등을 통해 알려져 있었고[45][46] 영국 배가 다녀간 적[47] 도 있었으나 필담이나마 조선의 관리와 문답한 기록은 이것이 최초다. 영길리국을 대영국이라고도 부른다는 사실은 이 기사에서 처음 알려진 것으로 이 기사에 한해서 보면 대영국은 연합 왕국인 영(길리)국을 강조해 부르는 말로서 쓰였다. 다만 이 기사에서도 대영국이라 부르는 이유에 관한 인용 이후에는 다시 영국이라 부르고 있고 실록 전체적으로 아주 드물게 쓰인 표현이다. 외국인과 한자로 나눈 필담이 실록에 실린 것들을 보면 프랑스인이 자신을 "대불란서에서 왔다"라거나 미국인이 "대미국에서 왔다"라고 했다는 경우가 보이는데 그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조선 측이 일일이 대불란서, 대미국으로 불러 주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위 기사를 근거로 대영국은 여러 국가를 통일한 국가라는 의미에서 대를 붙인 것이므로 훗날 고종이 대한이란 국호를 선포할 때 "삼한(三韓)이 하나로 통합된 국가니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1897)라고 했던 것과 같은 것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6월 25일 어느 국가 배인지 이상한 모양의 삼범 죽선(三帆竹船) 1척이 홍주(洪州)의 고대도(古代島) 뒷 바다에 와서 정박했는데 영길리국(英吉利國)의 배라고 말하기 때문에 지방관인 홍주 목사(洪州牧使) 이민회(李敏會)와 수군 우후(水軍虞候) 김형수(金瑩綬)로 하여금 달려가서 문정(問情)하게 했더니 말이 통하지 않아 서자(書字)로 문답했는데 국명은 영길리국(英吉利國) 또는 대영국(大英國)이라고 부르고 난돈(蘭墩)과 흔도사단(忻都斯担)[41]
이란 곳에 사는데 영길리국·애란국(愛蘭國)·사객란국(斯客蘭國)[42] 이 합쳐져 한 국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대영국이라 칭하고 국왕의 성은 위씨(威氏)[43] 고 지방(地方)은 중국(中國)과 같이 넓은데 난돈(蘭墩)의 지방은 75리(里)고 국중에는 산이 많고 물은 적으나 오곡(五穀)이 모두 있다고 했고 변계(邊界)는 곤련(昆連)에 가까운데 곧 운남성(雲南省)에서 발원(發源)하는 한줄기 하류(河流)[44] 가 영국의 한 지방을 거쳐 대해(大海)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북경(北京)까지의 거리는 수로(水路)로 7만 리이고 육로(陸路)로는 4만 리이며, 조선(朝鮮)까지는 수로로 7만 리인데 법란치(法蘭治)·아사라(我斯羅)·여송(呂宋)을 지나고 지리아(地理亞) 등의 나라를 넘어서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순조실록 32권(순조 32년 1832년 7월 21일 을축 4번째 기사)
최남선의 인식으로는 대한과 달리 대영은 영국을 높여 부르는 의미였다는 것으로 앞에 소개한 현상윤의 주장과 비교했을 때 그 취지는 반대되지만 대영에 관한 인식은 동일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대한이라 함은 한(韓)은 한이지만 옛날 같은 작은 한이 아니라 지금은 커다란 한이라는 뜻을 보인 것이다. 이렇게 '대한'이란 것은 두 자가 다 합해 국가 이름이 되는 것이요, 결코 대명이나 대영과 같이 높이는 뜻으로 대자를 붙인 것이 아니고 '한국'이라 함은 실제 대한을 간단하게 부르는 것이다.
《조선상식문답》_최남선, 1946.
일본에서 메이지 덴노 시절 대일본제국 헌법을 만들 때 헌법에서의 일본 국호 앞에 대를 붙여야 하는지에 관해 논의하던 중 나온 발언으로 초안엔 대가 없었기 때문에 넣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헌법 기초자 중 한명인 이노우에 고와시(井上毅)는 이렇게 답변했다.
프랑스의 브르타뉴와 구분해 불렀다는 것은 영어에서 영국을 가리키는 명칭 중 하나인 Great Britain에서 앞에 Great가 붙은 유래에 관한 것이다. Great Britain은 좁게는 아일랜드를 제외한 영국 본토 섬의 지명이자 넓게는 영국 전체의 통칭이기도 해서 Great Britain에서 Great를 '대'로 번역해 대영국이라 한다. 여기서는 영국(Great Britain)을 가리킬 때 대영국이라고도 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으로 일본이 예전에 영국과 맺은 조약 등에서는 영국을 대불렬전국(大不列顛國)이라 표기했다. 대불렬전 또한 Great Britain의 역어로 대는 Great의 직역, 불렬전은 Britain의 중국어 음역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Great Britain을 グレートブリテン(Gurēto Buriten)으로 가타카나로 표기하지만 중화권에서는 지금도 공식적으로 大不列颠(Dà Bùlièdiān)이라 표기한다.皇室典範には大日本と書けども、憲法は内外の関係もあれば、大の字を書くこと不可なるが如し。若し憲法と皇室典範とは一様の文字を要するものなれば、叡旨を受て、典範にある大の字を削り、憲法と一様にせんことを望む。英国に於て大英国(グレイト・ブリタン)と云ふ所以は、仏国にある「ブリタン」と区別するの意なり。又大清、大朝鮮と云うものは、大の字を国名の上に冠して自ら尊大にするの嫌いあり。寧ろ大の字を削り、単に日本と称すること穏当ならん。
황실 전범(典範)에서는 대일본이라 쓰지만, 헌법은 대내외의 관계도 있거니와, 대 자를 쓰는 것은 불가할 듯하다. 만약 헌법과 황실 전범이 같은 글자여야 한다면, 말씀을 받들어, 전범에 있는 대 자를 지우고 헌법과 일치케 하길 바란다. 영국에 대해 대영국이라 하는 까닭은 프랑스에 있는 브르타뉴와 구별하려는 뜻이다. 또 대청, 대조선이라 하는 것은 대 자를 국명 앞에 붙여 스스로를 지나치게 높이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대 자를 지우고 단순히 일본이라 칭하는 것이 온당하리라.[48]
대영국이라는 표기는 일치하지만 문맥상 국호를 높여 부르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예도 있다.
조선은 후기 들어 국호를 대조선·대조선국으로도 표기했는데 조약 등에서 조선과 상대국을 나란히 쓸 때는 상대국에도 으레 대를 붙여 표기했고 그 아래 줄에서 보듯이 조선을 조선이라고 표기하면 영국도 영국이라고만 표기하는 일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대를 붙여 부른 다른 국가의 예는 아래와 같다.대조선국 대군주(大君主)와 대영국 대군주 겸 오인도[49]
대후제(五印度大后帝) 양국의 우호(友好)를 영원히 돈독하게 하기를 간절히 염원해 피차 왕래하면서 오래도록 통상하기를 의정(議訂)한다.(중략)
조선에 있는 영국 인민과 그 재산은 영국에서 파견한 법률과 소송을 처리하는 관원이 전적으로 관할한다.
조영수호통상조약, 1883.
청나라는 본래 세계의 상국을 자임해 외국에 칙유(勅諭)[52] 외에는 보낸 일이 없다가 나중에 평등한 입장에서 외국에 외교 국서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스스로를 대청국이라 하듯이 상대국 국호 앞에도 대(大)를 붙여 표기했다.대조선국과 대아메리카 합중국〔大亞美理駕合衆國〕은 우호 관계를 두터이 해 피차 인민들을 돌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중략)
이후 대조선국 군주와 대미국 대통령과 그 인민들은 각각 모두 영원히 화평하고 우애 있게 지낸다.
(중략)
미국 선척이 조선의 근해에서 태풍(颱風)을 만났거나 혹은 식량·석탄·물이 모자라고 통상 항구와의 거리가 멀리 떨어졌을 때는 곳에 따라 정박해 태풍을 피하고 식량을 사고 선척을 수리하도록 한다.
조미수호통상조약, 1882.
대조선국(大朝鮮國) 대군주(大君主)와 대프랑스 민주국[50]
〔大法民主國〕 대통령〔大伯理璽天德〕[51] 은 양국의 영원한 우호를 간절히 염원해 피차 왕래하면서 오랫동안 통상하는 일을 의정했다.(중략)
조선에 있는 프랑스〔法國〕 인민과 그들의 재산은 프랑스에서 파견한 형명(刑名)과 사송(詞訟)을 처리하는 관원에게 돌려보내서 전적으로 관할하도록 한다.
조불수호통상조약, 1886.
9. 피지배국[편집]
캐나다, 13개 식민지(미국), 호주, 뉴질랜드는 영국이 본국 직할 속령으로서 완전한 자국 영토로 생각하고 개발한 영토다. 영국이 대영 제국이라 불리던 시절 아일랜드 섬은 연합 왕국의 일원으로써 해외 영토(식민지)가 아닌 영국의 본국 영토로 있었지만 식민지와 다를 바 없어서 결국 독립 투쟁을 벌여 독립했는데 그 과정에서 일시적이지만 자치령으로 있었다.
- 아프리카
- 이집트 (1881~1922, 1952)[73]
- 앵글로-이집트 수단 (1899~1956)[72]
- 나이지리아 (1861~1960)
- 남아프리카 공화국 (1795~1910)
- 남로디지아 (1889~1965, 1979~1980)
- 케냐 (1888~1963)
- 우간다 (1894~1962)
- 골드코스트 (1867~1957)
- 영국령 소말릴란드 (1884~1960)
- 소말리아 (1941~1949)
- 감비아 (1821~1965)
- 시에라리온 (1800~1960)
- 베추아날랜드 (1885~1966)
- 바수톨란드 (1868~1966)
- 스와질란드 (1906~1968)
- 북로디지아 (1890~1964)
- 니아살랜드 (1891~1964)
- 모리셔스 (1810~1968)
- 세이셸 (1814~1976)
- 탕가니카 (1916~1961)
- 잔지바르 (1890~1963)
- 카메룬 (1916~1961)
- 리비아 (1942~1951)
- 에리트레아 (1941~1952)
- 이집트 (1881~1922, 1952)[73]
- 유럽
- 아일랜드 섬
- 몰타 (1800~1964)
- 지브롤터 (1704~현재)
- 이오니아 제도 (1815~1864)
- 코르시카 (1794~1796)
- 연합군 점령하 이탈리아 (1943~1945)[75]
- 연합군 점령하 독일 서북부 (1945~1949)
- 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 남부 (1945~1955)
- 남극
10. 관련 문서[편집]
11. 매체에서의 등장[편집]
한때 전세계적인 위세를 떨쳤던지라 여러 매체에서 직간접적으로 나오거나 모티브가 되고 있다. 어딘가 흔히 말하는 영국풍 제국이 나올 경우 십중팔구 대영제국이거나 대영제국을 모티브로 한 가상국가다. 영국의 창작물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일본 등의 해외 창작물에도 많이 등장한다.
11.1. 영상매체[편집]
-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모든편에 개근하고 있다.[80]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실사화에서도 배경으로 나온다.
- 디즈니 피터팬 시리즈에서 초반, 후반에 나온다. 1편은 1차대전 전 또는 후의 대영제국, 2편은 런던 대공습 시기 대영제국이다. 그리고 잘 따지고 보면 웬디, 존, 마이클 등의 달링 가족과 후크선장도 영국인이다.
- 레이튼 교수와 영원한 디바에서는 20세기 경의 전성기 대영제국 본토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들을 영국 고고학 박사 레이튼 교수가 풀어나간다. 그러나 소재가 소재인 만큼 대영제국의 정치, 군사적 면은 느끼기 힘들다.
- 코드기어스 시리즈에서는 대영제국 + 미국을 모티브로 한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이 나온다. 설정상 미국이 독립 전쟁에 실패하고 영국은 나폴레옹에게 패배해 본토를 버리고 아메리카로 도망쳐 거기서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을 세운다.
- 황비홍 시리즈도 청나라 말엽이 무대인 만큼 미국, 일본 등과 더불어 황비홍의 조국 청나라를 괴롭히는 악역으로 나온다. 황비홍 시리즈가 아니라도 청나라 말엽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대영 제국이 선역으로 나온 적은 거의 없다. 비유하면 한국 영화에서 다뤄지는 조선 말기나 일제강점기에서 일제가 철저히 악역 포지션으로 나오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 빅토리아&압둘에서는 인도인이 주인공임에도 부분적 선역으로 등장한다.
11.2. 게임[편집]
- 다이스(EA Digital Illusions CE)가 제작한 게임이자 제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FPS 게임인 배틀필드 1에서 협상국인 미합중국, 프랑스 제3공화국, 이집트, 러시아 제국과 함께 등장 세력으로 나온다.
- 대다수 스팀펑크의 경우 과거 산업혁명 시점이나 직후 대영 제국 본토의 분위기를 모티브로 한다.
- 모든 전략적 전쟁게임에 영국또는 대영제국이 있다.
- ANNO 1800의 주요 시대 모델이다.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도 시기상 자주 출현하는 편이기도 하다. 켄웨이 부자와 셰이 패트릭 코맥 등 굵직한 주요 인물들이 미합중국의 독립을 전후로 활동한 대영 제국 출신이며 어쌔신 크리드: 신디케이트는 아예 배경이 1868년 산업 혁명 당시의 대영제국이다.[81]
- 문명 시리즈에서는 문명 1부터 문명 6에 이르기까지 개근했다. 다만 게임 자체가 특정한 시기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 전체를 다 다루는 만큼 대영제국이라기보다 그냥 영국으로 보는 게 옳으며, 심지어 원문으로는 영국도 아니고 잉글랜드다. 다만 빅토리아 여왕이나 레드코트도 두 번(문명 4, 문명 6) 나오고 문명 6에서는 산업혁명을 문명 특성으로 주는 등 대영제국의 면모도 간간이 반영되고는 있다.
- Victoria II에서는 게임의 이름답게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며 막강한 해군을 이용해 대륙 구석구석을 침략하고 상륙전으로 플레이어를 피곤하게 하는 국가로 악명이 높다. 시작부터 인도라는 사기급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어 산업발전에 필요한 대부분의 자원이 충족되어 잘 큰 독일이나 미국이 아닌 이상 영국의 산업력을 뛰어넘기가 힘든 최강 국가.
- Victoria 3에서도 역시나 등장한다.
-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에서 영국이 파시즘 정권이 되었을때 국명이 대영제국이다. 다만 인도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자치령/식민지로 분리되어 있다. 물론 플레이어의 역량에 따라 나중에 자치령을 합병시킬 수도 있다.
- 역사의 시대 2에서도 등장한다. 직접 플레이 할 수 있으며, 캐나다+호주+뉴질랜드+인도제국+말레이+영국 플레이도 가능하다.
11.3. 서적[편집]
- 이원복 교수의 만화책에도 나온다. 먼나라 이웃나라 영국편에서는 완전히 영국 중심이고, 학습만화 세계사의 경우, 영국정부 포지션일 때는 영국 신사로서 나온다. 6권 쯔음부터 표지를 장식하며 본격적으로 나와서 11권에는 제목에 엘리자베스 1세가 있고, 12귄에는 넬슨 제독으로 추정되는 삽화, 15권 뒤쪽에 세포이 항쟁, 17권 앞표지에 마크 전차, 그렇게 6화 쯔음부터 20화까지 한 화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학습만화 한국사에서도 대한제국 시기에 등장한다.
- 서유럽 여행 가이드에도 무조건 영국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영국이 들어가는 가이드책에는 무조건 대영제국이라는 표현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