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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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 제71대 총리. 이른바 철의 여인(The Iron Lady)[2] 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정치인이다. 1979년부터 1990년까지 3차례나 영국 총선을 보수당의 승리로 이끈 정치인이자,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다.[3]
2. 위상[편집]
역대 보수당 최장수 내각, 전후 최장수 내각의 2관왕이며, 역대로 치면 5번째다. 현대 영국 보수당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윈스턴 처칠 이후 영국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구가한 총리로서 친구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함께 1980년대의 집권기에 보수우파 진영에서 당시 막 떠오르던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를 현실에 구현하려고 하였으며, 이후 둘 다 자국 및 세계의 정치 지형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그 때문에 세계적으로 평가가 극히 갈리는 정치인으로, 대처를 수식하는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철의 여인'부터 '신자유주의의 마녀'까지 평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여러 의미에서 역사에 이름을 새긴, 영국에서 여성으로서 최고위에 도달한 사람.
3. 생애[편집]
자세한 내용은 마거릿 대처/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정책노선[편집]
자세한 내용은 대처주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평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마거릿 대처/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기타[편집]
- 의회 정치에 단련된 영국 정치인 답게, 현역 때는 놀라운 화술을 자랑했다. 영국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로빈 데이의 압박형 인터뷰에도 굴하지 않고 특유의 구체적인 수치와 팩트 중심의 논변을 보여주었다.
-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사망했을 때 "장례식은 민영화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이 실시되자, 이 청원에 3만여 명 가량 참여했다고 한다. 대처 총리 연간에 있었던 일련의 강력한 민영화 정책들을 패러디한 것. # 심지어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는 '대처 사망'이란 가상 기사 가상의 타블로이드 신문 옆으로 샴페인과 폭죽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도 보인다[6] . 대처 본인도 이미 생전 자신의 장례는 "절대 국장으로 하지 말고 검소하게 치러달라"고 유언까지 남겼다. 그리고 본래 전 총리급 인물은 예우에 따라 영국 공군이 공중 퍼레이드를 하는 것이 관례이나, 대처는 자신의 장례식 때 이런 번잡한 행사를 금해달라고 당부했었다.
영결식 행렬의 예행연습을 위해 영국 국기로 덮인 빈 관을 싣고 리허설 주행 중인 장의차.
이에 따라 실제로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국장 대신 '국장에 준하는 공식적인 장례식'을 통해 장례를 치렀다.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 2002년 엘리자베스 왕대비의 장례식 규모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 로열 블루[7] 와 진주를 아주 좋아해서 애용했는데, 진주는 '신뢰'와 '경솔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하며 로열 블루는 영국 보수당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얻었다. 패션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평가받았다.
- 심리학자들에게 영원히 고통받는 비극적인 운명이기도 하다. 지각심리학에서 시각적 착시를 다룰 때 종종 쓰이는데, 사람의 얼굴 사진에서 눈과 입을 상하로 뒤집은 사진을 흔히 "Thatcherized faces" 라고 부른다. 이 사진이 흥미로운 점은, 그냥 뒤집힌 사진을 보고 있으면 두 사진이 뭐가 다른지 그다지 느낌이 오지 않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서 보는 순간 둘 중 한 사진이 갑자기 혐짤로 변하는 착시가 일어난다. 사람의 얼굴을 뒤집어 놓아도 눈과 입 모양만 그대로 보존시켜 놓으면 이상한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착시였으며 이러한 착시는 대처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실제로 대처의 얼굴이 가장 만만한 사례로 학생들에게 소개되곤 한다.
- 대처는 잉글랜드 동부의 링컨셔에서 태어났으나 옥스퍼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용인발음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 특유의 내리까는 목소리 톤[8] 때문에 당대에도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대처의 임기 중 대처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비웃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한다.[9]
- 재임중이던 1986년 5월 방한했는데, 김포국제공항에 마중 나온 노신영 당시 국무총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심지어 꽃다발을 전달하러 온 소년에게도 똑같이 대했는데, 통상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인사 예절이 서양에선 사실상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당시 영상
- 자식 농사에 실패했다. 아들 마크 대처는 가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켜 대처가 살아생전 그렇게나 대처의 속을 썩였다. 심지어 용병과 무기밀매를 하던 아들 마크가 2004년에는 뜬금없이 적도 기니의 쿠데타에 관여하다가 짐바브웨에서 체포당하자 마크의 보석금을 마련하려고 정말 죽을 고생을 했다. 이렇게 된 건 이유가 있는데 대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철의 여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 하였으나 정작 자기 아들 마크한테만은 무조건 오냐오냐로 일관했기 때문이다.[10]
6.1. 이름의 발음[편집]
Thatcher에서의 Th는 통상적으로는 '번데기 발음'으로, 음성학적으로는 무성 치 마찰음(/θ/)이라고 한다. 1986년부터 시행된 영어의 외래어 표기법을 그대로 따르면 마거릿 힐다 새처라고 표기하여야 한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당시 외래어 표기법(정식 명칭 '로마자의 한글화 표기법')이 /θ/ 발음도 ㄷ으로 적도록 규정했기에 당시에는 대처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였고, 이 표기가 굳어져 현재까지도 대처가 표준 표기로 인정되고 있다. 다만 영국 영어상에서는 /ˈmɑːɡɹɪt ˈθatʃə(ɹ)/(마그릿 사처)에 가까우며 /ˈθætʃɚ/(대처·새처)는 미국 영어의 발음이다.
7. 선거 이력[편집]
8. 미디어에서[편집]
영화
- 《007 유어 아이즈 온리》 (1981)
- 《빌리 엘리어트》 (2000)
-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2015)
- 탄광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풀 몬티>, <브레스드 오프> 등에서도 극중 대사를 통해 대처를 대놓고 저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외 마이크 리나 켄 로치, 데릭 저먼 같은 1980년대 두각을 보인 영국 영화인들에게는 마르고 닳도록 까이는 존재다.
드라마
- 《라이프 온 마스》 (2006)
- 《셜록》 (2010~2017)
반면 다우닝 가 10번지에서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침공대응방안을 논의하면서도[19] 참모총장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직접' 요리를 하고, 망나니 아들 마크를 편애하면서 딸 캐롤은 막대하는[20] , 여성은 여성의 역할이 있다는 보수적인 인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와중에도 투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면모는 여전하여 재무장관을 위시한 내각의 반대를 무릅쓴 채 포클랜드 전쟁 개전을 밀어붙인다. 에피소드 5는 전쟁의 승리로 자신이 주인공인 영광스러운 승전식을 만끽하는 대처를 보여주지만, 대처의 정치적 영광과 페이건으로 대표되는 서민 노동계급이 대처의 개혁으로 겪었던 엄청난 고통을 대비시켜 묘사함으로써 대처 내각의 명암을 극명히 드러낸다. 에피소드 8에선 남아공 경제 제재를 완강히 거부하며 여왕과의 갈등이 극에 달한다.[21] 엘리자베스 2세가 버킹엄 궁 공보관을 통해 언론에 총리와의 갈등 사실을 흘림으로써 선공을 걸어오자 등장 총리 중 사상 최초로 접견에서 여왕과 정면대결해 찍어눌러버리는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완패시켜 지시대로 사실을 흘렸을 뿐인 공보관을 꼬리자르기 식으로 해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하지만 에피소드 10에선 측근들의 배신에 의해 정치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크게 상처를 입는다.[22] 내각에서 대처를 향한 불신임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이를 반란[23] 이라고 여긴 대처는 총리의 권한인 “의회해산요청권”을 발동한다. [24] 이에 여왕은 해산요청이 통상적으로 내각과 합의하여 이루어지는 관례에 따라 이번에도 내각과 상의 했는지 묻고 대처는 내각과 상의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총리의 권한이라고 응수한다. 여왕은 힘이 있다고 모두 사용하는 것이 옳은지 되묻고 권위를 잃은 힘은 무용지물이라고 덧붙인 후 내각과 의회, 여론조사까지 등돌린 상태에서 대처가 이 권한행사를 강행하는 것을 재고해보길 권한다. 결국 이어지는 장면에서 대세가 기운 것을 안 마거릿 대처는 총리직을 사임하고 관저를 떠난다. 여왕은 총리에서 물러난 마가렛 대처에게 군주의 재량으로 24명에게만 주어지는 메리트 훈장을 직접 수여해주며 그간의 수고와 업적을 치하한다. 1980년대 영국을 이끈 두 여성지도자의 모습이 비교되는 이 시즌 하이라이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여담으로 질리언 앤더슨은 제작 과정에서 목소리와 제스쳐에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역대 마거릿 대처 배우들 중 이정도로 특유의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를 매력적으로 구현한 배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
- 《비밀일기》 1, 2권
만화
- 《브이 포 벤데타》
"지금은 1988년이다. 마거릿 대처가 자신의 3번째 임기를 시작하고 있고, 다음 세기가 되어서도 무너지지 않고 계속될 보수당의 집권에 대해 자신 있게 얘기하고 있다.[26] 내 막내딸은 7살이며,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에이즈 환자를 수용소에 격리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폭동 진압을 위해 투입되는 전투 경찰은 자신들을 태운 말과 마찬가지로 검은색 복면을 쓰고 있으며 그들이 모는 밴에는 회전하는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 정부는 모든 동성애의 싹은 물론 그 추상적 개념마저도 잘라내고 싶다는 욕구를 표명했으며, 이제 어떤 소수자가 불법의 대상이 될 지는 추측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난 몇 년 안에 가족들을 데리고 이 나라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냉정하고 비열한 이 곳이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잘 자라, 영국. 잘 자라, 홈 서비스. 그리고 승리의 브이 사인. 반갑다, <운명의 목소리>. 그리고 브이 포 벤데타."
- 《대물》
- 《St. Swithin's Day》
게임
- Hearts of Iron IV의 모드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에도 등장한다.
- GTA 산 안드레아스에선 켄트 폴의 친구인 매커가 오디오 녹음 중에 자위행위를 하며, 이름을 외쳐댄다.[28] 매커가 또라이인데다 매드체스터 붐을 이끌었던 해피 먼데이즈의 숀 라이더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라는걸 생각하면, 인물의 똘끼를 강화하는 요소라 보는게 정확하다. 매드체스터의 중심지인 맨체스터는 대처 쇼크의 직격탄을 받은 동네기 때문이다.
기타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2005)
9. 어록[편집]
정확히는 최영 장군의 예처럼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라고 하니 본인의 말은 아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한 말이란 의견도 있지만 이 자료에 따르면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진 문장인 것 같다. 다만 청와대에서 대처의 죽음을 거론하며 추모한 글에서도 올라온 것이니 많은 사람들이 대처의 어록으로 여기는 것 같다."생각을 조심하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하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하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You know, if you just set out to be liked, you would be prepared to compromise on anything, wouldn't you, at any time? And you would achieve nothing!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한다면 언제나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당신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에서 따온 말이다. 그러나 대처는 공과를 떠나서 영국에 화합을 가져오지는 못했다.Where there is discord, may we bring harmony. Where there is error, may we bring truth. Where there is doubt, may we bring faith. And where there is despair, may we bring hope.
분열이 있는 곳엔 화합을, 오류가 있는 곳엔 진실을, 의심이 있는 곳엔 믿음을. 그리고 절망이 있는 곳엔 희망을.
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 There are individual men and women, and there are families. And no government can do anything except through people, and people must look to themselves first. It's our duty to look after ourselves and then, also to look after our neighbour. People have got the entitlements too much in mind, without the obligations. There's no such thing as entitlement, unless someone has first met an obligation.
"사회라는 것은 없습니다. 남성과 여성, 개개인이 존재할 뿐이고 개별적인 가족 공동체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고 정부란 국민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국민들은 먼저 스스로를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보고, 더 나아가 우리 이웃을 돌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의무는 생각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합니다. 의무를 먼저 다하지 않는다면, 권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
"나는 언제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세상 누구도 나를 굴복시킬 수 없다."
I don't mind how much my ministers talk, as long as they do what I say.
"나는 장관들이 내가 말한 것을 수행하는 한 그들이 어떤 말을 쏟아내도 신경 쓰지 않는다."
We had to fight the enemy without in the Falklands and now we have to fight the enemy within, which is much more difficult but just as dangerous to liberty.
"우리는 포클랜드에서 외부의 적과 싸워야만 했다.(그러나) 우리는 항상 내부의 적을 알고 있어야 한다. 내부의 적은 더 싸우기 어렵고 자유에 더 큰 위험이 된다."
In politics, if you want anything said, ask a man; if you want anything done, ask a woman.
"정치에서 뭔가 말해야 한다면 남성에게 요구하라. 뭔가 이뤄져야 한다면 여성에게 요구하라."
1965년 6월 20일 National Union of Townswomen’s Guilds의 회원들에게 한 연설
그런데 다름 아닌 대처 스스로가 이 예상을 뒤집었다. 외무장관도 2007년 대처 생전에 토니 블레어 내각에서 마가렛 베켓(Margaret Beckett)이 외무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예상이 뒤집혔다. 하지만 대처 생전은 물론 현재까지도 영국에서 여성 재무장관은 배출되지 않았고, 2013년 대처 사후인 2016년과 2022년에야 비로소 2명의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테레사 메이, 리즈 트러스)No woman in my time will be Prime Minister or Chancellor or Foreign Secretary—not the top jobs. Anyway I wouldn't want to be Prime Minister. You have to give yourself 100%.
"내 생전에 여성 총리나 여성 재무장관, 여성 외무장관같은 고위직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총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스스로에 100% 열중해야 한다."
1969년 10월 26일 그림자 내각 교육부 대변인에 임명되었을 때의 Sunday Telegraph와의 인터뷰에서출처
"비전이 없는 사회의 사람은 틀림없이 망한다."
브렉시트 당시 보수당과 노동당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매우 놀라겠지만.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보수당이 친유럽, 노동당이 반유럽이었다. 대처 역시 당시에는 친유럽 정치인 중 한명이었고. 둘의 입장이 바뀐건 1990년대가 지나고서다.Everyone should turn out in this referendum and vote yes, so that the question is over once and for all, we are really in Europe, and ready to go ahead.
모두가 이번 국민투표에 참여하여 찬성표를 던져야 합니다. 그러면 질문이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우리는 정말로 유럽에 있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975년 영국 EEC 잔류 국민투표 당시 텔레비전 인터뷰.
일반적으로 "I want my money back"(이제 내 돈을 돌려받길 원한다)로 알려져 있다.We are not asking for a penny piece of Community money for Britain. What we are asking is for a very large amount of our own money back, over and above what we contribute to the Community, which is covered by our receipts from the Community.
우리는 영국을 위해 유럽 공동체에 약간의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불하여 유럽 공동체에 기여한 아주 많은 돈을 돌려받기를 요구합니다.
1980년 더블린 정상회담에서 다른 유럽 정상들에게.
"오른손의 장바구니에[29]
가득 찬 것은 1974년 보수당 시절에 1파운드로 살 수 있었던 식료품입니다. 왼쪽은[30] 현재 노동당 정권에서 1파운드로 살 수 있는 식료품입니다. 만일 노동당이 다시 5년간 집권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1파운드로 쇼핑을 하려면 장바구니가 필요 없고 그저 작은 종이봉투 한 장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당신에게 식료품 가격에 대해 간섭하지 못하도록 합시다."
실제로 영어권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설득시켜 정치를 주도하는 것을 이르는 Conviction politics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서 유래했다.영어 위키백과I am not a consensus politician. I'm a conviction politician.
"나는 여론 수렴형 정치인이 아닌 확신형 정치인이다."
I love argument, I love debate. I don’t expect anyone just to sit there and agree with me, that’s not their job.
"나는 논쟁도, 토론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냥 앉아서 나에게 동의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직업이 아니다."
1980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To those waiting with bated breath for that favourite media catchphrase, the U-turn, I have only one thing to say: You turn if you want to. The lady's not for turning.
"숨죽인 채로 그 좋아하는 언론 유행어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유턴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원한다면 여러분이 유턴하세요. 여인(나)은 유턴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처는 마크의 구출 비용을 모두 자비로 부담했다.I must pay the £1,191. We can therefore say that no extra cost has fallen on the British taxpayer.
"1191파운드는 내가 내겠다. 그래야 납세자들에게 추가로 한 푼의 세금도 사용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 2월에 대처의 아들 마크가 파리-다카르 랠리에 참가했다가 아프리카 사막에서 실종되었을 때 구출 비용을 비서(private secretary)에게 듣자.
포클랜드 전쟁은 6월 11일에 아르헨티나의 항복으로 종결되었다.We fought to show that aggression does not pay and that the robber cannot be allowed to get away with his swag. We fought with the support of so many throughout the world: the Security Council, the Commonwealth, the European Community, and the United States. Yet we also fought alone – for we fought for our own sovereign territory.
"침략은 반드시 응징당하고 도둑은 훔친 물건을 가지고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싸워서 보여줬다. 우리는 전 세계 많은 이들 -안보리, 영연방, 유럽공동체, 미국- 의 지원을 얻어 싸웠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웠다."
Just supposing Alaska was invaded, now you've put all your people up there to retake it and someone suggested that a contact could come in ... you wouldn't do it.
"알래스카가 침략당해 전쟁을 벌인다면 당신은 모든 사람들을 그곳에 투입해 되찾으려 할텐데 누군가가 연락을 해서... 당신도 그렇게 하지는(협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덩샤오핑과 대처의 발언은 2007년에야 공개되었다."There is nothing I could do to stop you, but the eyes of the world would now know what China is like."
"우리가 당신을 막지는 못하지만, 전 세계의 눈은 이제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1982년 영국과 중국의 홍콩 반환 협상에서 덩샤오핑이 "지금 당장이라도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상륙할 수 있다."라는 위협을 가하자.
There is no week, nor day, nor hour when tyranny may not enter upon this country if the people lose their supreme confidence in themselves and lose their roughness and spirit of defiance. Tyranny may always enter — there is no charm or bar against it. The only bar against it is a large resolute breed of men.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최고의 신념을 잃고 용기와 반항심을 잃으면 언제라도 전제 정치가 시작될 수 있다. 전제 정치를 막을 부적이나 차단봉 같은 것은 없기에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확고함뿐이다."
"웅변일랑 남들이 하도록 떠넘기고 나는 행동만을 해 나가겠다."
그러나 대처는 이 발언 바로 다음 날 2차 투표 출마를 포기하고 총리직을 사퇴했다.I fight on, I fight to win
"나는 계속 싸울 것이다. 싸워서 이길 것이다."
Home is where you come to when you've got nothing better to do.
"가정은 더 이상 잘할 것이 없을 때 오는 곳이다."
Remember minister, even in diplomacy there is something called 'loyalty'.
"차관님, 외교에도 의리라는 것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