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그랑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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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그랑프리
파일:british gp logo.png
대회 정보
첫 개최 연도
1926년
개최 서킷
브룩랜즈[1]
실버스톤 서킷[2]
에인트리 모터 레이싱 서킷[3]
브랜즈 해치 서킷[4]
개최 횟수
78회
총 주행 거리
306.198km, (52랩)
2023년 폴 포지션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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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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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르스타펜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
1:26.720

2023년 순위
우승 -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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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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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르스타펜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

2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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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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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도 노리스
(맥라렌 F1 팀)
3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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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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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해밀턴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포뮬러 원 팀)
최다 우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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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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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해밀턴 (8회)
최다 우승 컨스트럭터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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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데리아 페라리 (17회)
랩 레코드[5]
실버스톤 서킷
1:27.097 (막스 베르스타펜, 레드불 레이싱 RB16, 2020)
브랜즈 해치 서킷
1:09.593 (나이젤 만셀, 윌리엄스 FW11, 1986)
에인트리 모터 레이싱 서킷
1:55.0 (짐 클락, 로터스 25, 1962)

1. 개요
2. 역사
3. 사건 사고



1. 개요[편집]


포뮬러 1 월드 챔피언십 캘린더에 소속된 영국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레이스. F1 월드 챔피언십이 처음 열린 해인 1950 시즌부터 빠짐없이 캘린더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중 현재까지 그랑프리로 개최되는 실버스톤 서킷이 사상 첫 시즌부터 가장 많이 개최 장소가 되고 있다.


2. 역사[편집]



2.1. 포뮬러 1 월드 챔피언십 이전 (1926~1949)[편집]


파일:1927 영국 그랑프리.jpg
영국 그랑프리의 첫 개최 전엔 자국 출신의 성공적인 레이서인 헨리 세그레이브(Henry Segrave)의 그랑프리 레이스에서의 활약으로 영국에선 모터 레이싱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고, 마침내 1926년, 영국에서 드디어 그랑프리 레이스가 개최되었다. 서킷은 1907년, 수도 런던의 근외곽에 지어진 콘크리트 오벌 트랙인 '브룩랜즈(Brooklands)'였다.

사상 첫 영국 그랑프리인 1926년엔 110랩의 길이의 레이스였고, 당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들라주(Delage) 레이스카를 몰았던 루이스 바그너와 로베르 세네샬이 공동 우승을 차지하였다. 물론 자국 관중들을 조용케 할 만한 포디움은 아니었다. 자국 출신의 말콤 캠벨이 부가티 레이스카를 이끌고 우승을 차지한 바그너보다 10분 뒤에 결승선을 통과하며 화려하게 포디움에 입상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1927년엔 당시 시리즈인 월드 매뉴팩쳐러 챔피언십의 최종전으로 영국 그랑프리가 개최되었다. 당해 시즌의 강력한 챔피언십 선두였던 들라주 레이스카를 몬 로베르 베노이스트가 125랩을 3시간 49분 14초만에 가장 먼저 주파하며 시즌 4번째 우승과 함께 챔피언을 차지하게 되었다.

파일:1937 도닝턴 그랑프리.png
두 시즌을 끝으로 정식 챔피언십 경기는 개최되지 않았으나, 1936년과 1937년엔 도닝턴 파크 서킷에서 논-챔피언십 레이스인 도닝턴 그랑프리가 개최되었다. 당시 나치 독일의 최강 팀인 메르세데스와 아우토 유니온 팀들 역시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었고, 당시 최고의 레이서였던 베른트 로제마이어(Bernd Rosemeyer)와 타지오 누볼라리(Tazio Nuvolari)가 각각 1937년, 1938년에 아우토 유니온 소속으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1939년에 유럽 대부분의 스포츠와 문화를 일시정지시키고 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영국 내의 그랑프리 레이스 역시 종전 직전까지 일체 개최되지 않았다. 심지어 처음으로 개최된 트랙인 브룩랜즈는 전쟁으로 인해 트랙이 심각하게 파괴된 수준이었고, 결국 브룩랜즈는 더 이상 영국 그랑프리 개최지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종전 이후엔 대부분의 새로운 서킷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은 군용 활주로 위에 지어졌는데, 현재까지도 그랑프리로 개최되는 실버스톤 서킷 역시 이 중 하나였다.

파일:1948 영국 그랑프리.jpg
마침내 영국에서도 종전 이후 첫 그랑프리 레이스가 1948년에 실버스톤 서킷에서 개최된다. 이탈리아 출신의 루이지 빌로레시가 당해에 마세라티 레이스카로 우승을 차지하였고, 그 뒤로 알베르토 아스카리와 자국 출신의 밥 제라드가 들어오며 종전 이후 첫 영국 그랑프리를 화려하게 마칠 수 있었다. 다음 해인 1949년엔 서킷이 대대적으로 변경되어 현재의 실버스톤 서킷과 조금이나마 비슷한 틀의 서킷 위에서 개최되었다. 폴 포지션을 차지했던 빌로레시가 엔진 문제로 아쉽게 리타이어한 가운데, 같은 레이스카를 탑승한 스위스 출신의 엠마누엘 드 그라펜리드가 우승을 차지하며 마세라티의 강세를 이어갔다. 밥 제라드는 다시 한 번 2위로 포디움에 입상하며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2.2. 포뮬러 1 월드 챔피언십 경기[편집]



2.2.1. 1950년대[편집]


파일:1950 영국 그랑프리.jpg
그러던 1950년, 그랑프리 레이스가 포뮬러 1 월드 챔피언십으로 개편되어 재출범하였고, 영국 그랑프리는 역사적인 F1의 공식 첫 레이스로 선정되었고, 5월 13일, 해당 경기를 보기 위해 영국의 국왕 조지 6세를 비롯한 여러 왕실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적인 첫 레이스가 펼쳐졌다. 직전 1949 그랑프리 시즌엔 단 1번의 우승만을 기록했던 알파 로메오는 개막전 연습 세션부터 페라리마세라티를 압도하는 페이스를 보였고, 결국 이탈리아 국적의 알파 로메오 소속 주세페 파리나가 폴 포지션을 차지하였다. 여기에 파리나는 레이스에서 타 드라이버들보다 매우 우세한 페이스를 보이며 화려한 우승을 차지하여 초대 영국 그랑프리 및 F1 그랑프리 우승자로 올라섰다. 여기에 패스티스트 랩까지 2랩 째에 1분 50초 6을 기록하며 F1 첫 패스티스트 랩도 작성하였다.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영국 그랑프리는 이듬해인 1951년에도 공식 캘린더에 포함되었다.[6] 1951 시즌은 지난 시즌과 당해 시즌 초까지 시즌을 지배한 알파 로메오 팀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바로 또 다른 이탈리아 팀이자 탄생한지 4년이 된 스쿠데리아 페라리가 정상에 우뚝 서게 된 것이었다. 당시 페라리를 탄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세 프로일란 곤잘레스는 퀄리파잉에서 P2를 차지한 후안 마누엘 판지오를 1초 차로 제압하고 폴 포지션을 차지하였고, 레이스에선 곤잘레스가 판지오와 중반까진 치열하게 배틀하였지만, 이후부턴 확실하게 리드를 유지하며 페라리에게 F1 역사상 첫 우승을 안겨다 주었다. 반면, 직전 영국 GP 우승자였던 파리나는 완주까지 15랩을 남겨두고 클러치 문제로 리타이어하였다.

1952 시즌엔 실버스톤 서킷의 스타트/피니쉬 라인이 팜 스트레이트에서 우드코트 코너를 지난 스트레이트로 옮겨지며 서킷에 변화가 있었다. 아울러, 직전 시즌까지 시즌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했던 알파 로메오가 F1 판을 떠나버렸고, 이 때문에 페라리가 시즌을 압도하는 형국이 되었다.[7] 그리고 레이스에서도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챔피언십 1위를 달리고 있던 알베르토 아스카리가 압도적인 페이스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한편, 당해 시즌에 데뷔했던 마이크 호손쿠퍼 레이스카를 타고 조국에서 3위로 포디움에 오르며 데뷔 첫 포디움을 기록하였다. 아스카리의 압도적인 질주는 이듬해인 1953 시즌에도 아스카리의 압도적인 질주는 계속되어 그는 영국 그랑프리 2연승을 기록하였다. 자국 출신의 마이크 호손은 이번 영국 GP엔 페라리 소속으로 출전했으나, 실력 있는 드라이버들에 밀리며 5위에 그쳤다.

1954 시즌에는 영국 GP 직전 프랑스 GP에 전쟁 직전까지 그랑프리를 지배했던 메르세데스가 복귀하였고, 당해 영국 GP에서도 이들은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여기에 당대 최고의 레이서로 불렸던 후안 마누엘 판지오까지 메르세데스를 몰았고, 퀄리파잉에선 폴 포지션으로 이어졌다. 직전 시즌까지 F1을 지배한 페라리 팀 드라이버들과의 격차를 1초 이상으로 벌린 기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레이스에선 오프닝 랩에 페라리의 호세 프로일란 곤잘레스가 선두 자리를 꿰차더니 모든 랩을 리드하며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하였다. 마이크 호손도 2위로 들어오며 페라리의 원투 피니쉬를 달성케 하였다. 폴 시터였던 메르세데스의 판지오는 4위로 아쉽게 마무리하였고, 그의 팀메이트인 카를 클링은 7위로 들어오며 레이스는 다소 아쉽게 마무리지었다.

1955 시즌부터는 1961 시즌까지 홀수 해에는 에인트리 모터 레이싱 서킷에서 영국 GP를 개최하였다. 해당 기간 동안 짝수 해에는 본래의 실버스톤 서킷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1955 영국 GP에선 메르세데스가 차량의 전반적인 퍼포먼스가 아예 다른 차원 수준으로 상승하며 그리드 위를 지배했다. 퀄리파잉부터 4명의 드라이버가 1-2, 4-5 그리드를 차지한 것은 물론, 레이스에서도 톱4를 모두 메르세데스 드라이버가 차지하며 말 그대로 압도한 것이었다. 여기에 자국 출신의 스털링 모스가 폴 포지션으로 경기를 시작한 데에 이어 레이스에선 마지막랩까지 이어졌던 판지오의 공세를 막으며 단 0.2초 차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는 모스의 F1 데뷔 첫 우승이기도, 영국 그랑프리 사상 첫 영국 출신 드라이버의 우승이었기에 모스에게도, 관중들에게도 더욱 경사스러운 일이었다. 한편, 레이스가 종료된 후 며칠 뒤, 르망 24시 경기에서 참사가 발생하여 영국 GP 다음으로 열릴 예정이었던 독일, 스위스, 스페인 GP가 일절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11점 차로 챔피언십 선두였던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사실상 영국에서 F1 통산 3번째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확정지은 거나 다름없게 되었다.

르망 참사로 인해 메르세데스가 철수하자, 1956 시즌엔 디펜딩 챔피언인 판지오와 그의 팀메이트였던 모스는 각각 페라리와 마세라티로 이적하여 F1 커리어를 이어갔다. 당해 시즌엔 페라리가 미세하게 우세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으나, 퀄리파잉에선 모스가 판지오보다 근소하게 앞서 폴 포지션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레이스에선 페라리를 탄 판지오가 전반적으로 우세한 페이스를 보였고, 오히려 모스는 94랩 째에 액슬 문제로 리타이어하며 당해 우승은 판지오에게 돌아갔다. 또 다른 영국 드라이버인 피터 콜린스는 64 랩째에 오일 압력 문제로 차를 세웠으나, 다른 드라이버에게 차를 넘겨받아 완주하면 포인트를 절반씩 부여받을 수 있었기에, 팀메이트였던 알폰소 데 포르타고에게 차를 넘겨받아 2위로 완주하였다.

파일:브룩스 모스 영국 공동우승.webp
1957 시즌엔 영국의 반월 팀의 상승세가 두드러졌고, 반월 소속으로 옮긴 스털링 모스가 판지오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시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모스가 에인트리 모터 레이싱 서킷에서 열린 영국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폴 포지션을 차지함으로써 F1 통산 최초로 영국의 팀이 영국에서 폴 포지션을 차지한 경기로 기록되었다. 비록 레이스에선 51 랩째에 엔진 문제로 차를 세웠으나, 직후에 팀메이트이자 같은 나라 출신인 토니 브룩스에게 차를 넘겨받아 1위로 완주함으로써 영국인 두 명의 드라이버가 영국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하는 경사를 맞이하였다.

판지오가 은퇴한 이후 첫 경기였던 1958 시즌은 매우 치열한 혼돈의 시즌이었다. 챔피언 자리를 두고 페라리의 마이크 호손과 반월의 스털링 모스가 지속적으로 겨뤘으며, 경기를 앞두고는 모스가 호손과 같은 점수 차로 챔피언십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다. 퀄리파잉에선 모스가 2위인 해리 쉘을 0.4초 앞서 폴 포지션을 차지하였고 호손은 4위에 그쳤으나, 레이스에선 모스가 25랩만에 엔진 문제로 리타이어하는 변수가 발생하였다. 설상가상, 당해 시즌부터 시트 공유로 포인트를 나눠받는 제도가 폐지되었기에, 모스는 차에 내려 피트로 들어서게 되었다. 라이벌이던 호손은 2위로 완주하여 챔피언십 선두가 바뀌었다. 한편, 이 경기에서 영국 출신의 피터 콜린스-마이크 호손-로이 살바도리[8]가 모두 포디움에 오르며 F1 첫 영국 GP에서 영국인들이 모두 포디움을 석권하는 기록이 나왔다.

1959 시즌엔 더 강력해진 클라이맥스 엔진과 함께 시즌을 호령한 쿠퍼 팀과 잭 브라밤이 시즌을 평정하고 있었다. 그들을 그나마 위협할 수 있던 팀은 페라리였으나, 이들은 당시 이탈리아에서의 노동쟁의로 인해 영국 GP에 불참하며 사실상 쿠퍼 팀과 BRM 팀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브라밤과 쿠퍼 팀이 폴투윈과 함께 그들의 강세를 여실히 드러나며 1959 영국 그랑프리가 마무리되었다.

2.2.2. 1960년대[편집]



2.2.3. 1970년대[편집]



2.2.4. 1980년대[편집]



2.2.5. 1990년대[편집]



2.2.6. 2000년대[편집]


* 2000 시즌

* 2001 시즌

* 2002 시즌

* 2003 시즌

* 2004 시즌

* 2005 시즌

* 2006 시즌

* 2007 시즌

2007 시즌 전반기는 전 시즌까지 최상위권이었던 르노의 페이스가 내려가고, 그 자리를 페라리맥라렌이 다투는 판도였다. 펠리페 마싸키미 래이쾨넨, 페르난도 알론소루이스 해밀턴이 25점 차 내의 챔피언십 배틀을 이어가고 있었고, 신인 드라이버인 해밀턴이 챔피언십 포인트를 2위인 알론소보다 14점 앞선 상황에서 영국 GP를 맞이했다.

파일:2007 영국 GP 라이코넨 우승.jpg
레이스 스타트 전, 포메이션 랩에서 펠리페 마싸의 엔진이 스톨되어 마싸는 피트레인에서 스타트하게 되었다. 레이스 스타트에선 폴시터인 루이스 해밀턴이 순위를 지키며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피트레인에서 시작한 마싸는 분노의 추월쇼를 선보이며 최하위에서 13위까지 올라오게 되었고, 이후 데이빗 쿨싸드니코 로즈버그가 배틀하는 사이, 로즈버그를 추월해 12위까지 올라왔다. 이후 쿨싸드와 야르노 트룰리를 추월하며 10위권까지 올라왔다.

선두였던 해밀턴은 레이스 중반에 피트인을 하였으나, 피트박스에서 연료 주입이 완료되기도 전에 나가려다 시간 손해를 보며 우승 도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결국 다음으로 피트인한 키미 래이쾨넨에게 추월당했고, 해밀턴의 팀메이트인 페르난도 알론소도 해밀턴을 추월하며 해밀턴은 3위까지 떨어졌다. 2위에 위치했던 키미는 이제 선두인 알론소를 추격해 나갔다. 한편, 중하위권에서 사고가 있었다. 스캇 스피드가 알렉산더 부르츠와 배틀하다가 선두인 알론소를 보내주었고, 베일 시케인에 진입하는 사이 기습적으로 부르츠가 안으로 파고들다가 스피드의 왼쪽 앞 타이어를 들이받는 사고가 난 것이었다. 이 사고로 스피드는 서스펜션이 부러져 리타이어하였다.

맥라렌 듀오가 먼저 2번째 피트스톱을 하게 된 사이, 키미가 오버컷 전략 수행 후 2번째 피트스톱을 한 결과 선두로 올라섰다. 2위로 내려간 알론소는 키미를 추격하였으나 끝내 잡지 못하였고, 래이쾨넨이 2.5초 차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알론소가 2위를, 그리고 폴 포지션에서 출발한 해밀턴이 3위로 완주하였다. 피트레인에서 스타트한 마싸는 막판에 로버트 쿠비차를 잡지 못했으나, 5위까지 올라서며 4점을 획득했다.

* 2008 시즌

2008 시즌도 2007 시즌과 마찬가지로 페라리와 맥라렌의 챔피언십 경쟁이 이어졌다. 페르난도 알론소가 르노로 이적하여 헤이키 코발라이넨이 맥라렌으로 이적함으로써 맥라렌은 젊은 피로 중견급 에이스들인 페라리를 상대하였다. 영국 GP가 열린 시점에는 맥라렌이 근소한 우위를 점했고, 특히나 레이스 전에 많은 비가 내려 결과를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파일:2008 영국 GP 해밀턴 홈 그랑프리 우승.jpg
레이스 스타트에선 2위에서 시작한 마크 웨버가 좋지 못한 스타트로 4위까지 내려간 가운데, 루이스 해밀턴이 엄청난 스타트로 헤이키 코발라이넨의 바로 뒤인 2위까지 올라섰다. 얼마 뒤 웨버가 마곳-베켓 코너를 돌아나가다 빗물을 밟고 스핀하며 최후미로 밀려났다. 오프닝 랩에서의 이변은 끝나지 않았는데, 이번엔 펠리페 마싸가 베일 시케인에서 스핀을 하며 최후미까지 밀려났다. 5랩 째엔 해밀턴이 코발라이넨에 바짝 붙은 뒤 슬립 스트림으로 추월에 성공하며 레이스 리더가 되었다. 2위로 떨어진 코발라이넨은 11랩 째에 마싸가 스핀한 베일 시케인에서 스핀하며 키미 래이쾨넨에 밀려 3위가 되었다. 다음 랩엔 아드리안 수틸이 같은 시케인에서 스핀하기도 하였다.

24랩 째엔 닉 하이트펠트가 좋은 추월장면을 보여줬는데, 마지막 코너에서 빗길 속에서 페이스가 크게 떨어지는 페르난도 알론소티모 글록을 모두 추월하며 2계단이나 올라갔다. 한편 피트인을 했던 키미는 후미 차량들보다 무려 5초나 느린 페이스를 보여줬고, 결국 하이트펠트와 코발라이넨에게 추월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코발라이넨 역시 빠르지 못했다. 34랩이 돼서야 로버트 쿠비차에게 추월당하며 BMW 자우버 듀오가 해밀턴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킷에 비가 퍼부으며 더 많은 리타이어가 속출했다. 37랩 째엔 베일 시케인에서 넬슨 피케 주니어가 스핀하며 그라벨에 빠져 리타이어, 쿠비차와 해밀턴도 잔디에 돌진하는 등의 실수를 보였다. 마싸는 마곳-베켓 코너에서 또 한 번 스핀하며 포인트권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챔피언을 잃은 순간 vol 4 38랩 째엔 젠슨 버튼이 스핀하며 리타이어했고, 다음 랩엔 챔피언십 경쟁자인 쿠비차가 스핀으로 리타이어하였다.

쿠비차의 리타이어 직후 하늘이 갰고, 더 이상의 혼돈은 일어나지 않았다. 홈 그랑프리를 맞이한 루이스 해밀턴이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마싸의 노 포인트 피니쉬로 챔피언십 선두에 올라서게 되었다. 하이트펠트가 안정적인 레이스로 2위, 그리고 루벤스 바리첼로3년 전 미국 GP 이후 처음으로 포디움에 올랐다. 동시에 혼다 데뷔 이후 첫 포디움에 올랐다.

2.2.7. 2010년대[편집]



2.2.8. 2020년대[편집]


* 2020 시즌

2020 시즌에는 일정상 다소 큰 변화가 있었다. 전 세계에 들이닥친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스포츠의 본래 일정이 변경되거나 취소되었고, F1과 영국 GP도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시즌이 7월 초에서야 개막했고, 영국 GP는 8월 초에 개최되었다. 퀄리파잉에서는 당해 시즌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해 왔던 메르세데스루이스 해밀턴이 팀메이트인 발테리 보타스를 0.3초 차로 누르고 가볍게 폴 포지션을 기록하였다. 메르세데스가 타팀 대비 1초나 빠른 기록을 보이며 레이스에서도 손쉬운 우승이 예상되었다.

파일:해밀턴 타이어 3개로 우승.jpg
레이스 스타트는 폴시터인 해밀턴이 좋은 스타트로 앞서나가며 시작됐다. 그렇게 오프닝 랩이 잘 진행되는 듯 하였으나, 케빈 마그누센알렉산더 알본이 충돌해 마그누센이 리타이어했고, SC가 발동되었다. 이 사고로 알본은 페널티를 받았다. 13랩 째엔 다닐 크비얏이 마곳-베켓 코너에서 리어 타이어 펑쳐로 벽에 충돌해 리타이어했으나, 이후까진 별다른 이슈 없이 레이스가 진행되었다. 그러다 완주까지 4랩을 남겨둔 48랩 째부터 키미 래이쾨넨을 시작으로 발테리 보타스,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 그리고 선두인 해밀턴마저 마지막 랩에 타이어 펑쳐가 발생했다. 그러나 2위였던 막스 베르스타펜이 50랩 째에 피트인을 했기에 격차가 상당했고, 해밀턴은 타이어 3본으로 우승하는 진기명기를 선보였다. 이와 함께 해밀턴은 홈 그랑프리에서 7번의 우승을 기록하게 되었다. 2위를 기록한 베르스타펜은 매우 아쉬워하기도 하였다.

영국 GP가 끝난 다음 주에는 같은 서킷인 실버스톤 서킷에서 F1 70주년 그랑프리라는 이름으로 더블 헤더가 펼쳐졌다. 해당 경기에선 발테리 보타스가 폴 포지션에서 출발하고 막스 베르스타펜이 4위에서 출발했으나, 레드불의 좋은 전략과 베르스타펜의 좋은 레이스 페이스로 메르세데스 듀오를 뿌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 2021 시즌

2021 시즌에는 메르세데스의 독주가 끝나고 레드불의 페이스가 향상되어 양팀이 챔피언십을 다투는 시즌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맞이한 영국 GP에선 메르세데스의 업데이트 성공으로 메르세데스가 가장 빠른 랩타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 경기는 F1 역사상 최초로 스프린트 레이스가 펼쳐진 경기였는데, 이 때문에 금요일 오후에 퀄리파잉이 펼쳐졌다. 메르세데스의 업데이트와 함께 루이스 해밀턴이 챔피언십 선두인 베르스타펜을 0.07초 차로 누르고 폴 포지션을 따냈으며, 스프린트 레이스에선 베르스타펜에게 1위를 뺏겼으나 2위에서 레이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파일:막스 영국 GP 충돌 후 리타이어.jpg
레이스 스타트에선 상당히 큰 사고가 발생하였다. 폴시터인 막스가 레이스 스타트에서 해밀턴의 공세를 잘 방어한 뒤 우드코트 코너를 지나 해밀턴과 사이드 바이 사이드를 형성했다. 콥스(Copse) 코너에서 해밀턴이 기습적으로 막스의 안쪽으로 찔렀으나, 안쪽으로 라인을 유지하지 못하고 막스의 오른쪽 뒷 타이어와 컨택해 막스가 스핀하며 벽에 충돌해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상당히 큰 충돌[9]로 인해 막스는 검사 차원에서 엠뷸런스에 자력으로 탑승해 병원에 후송되었고, 해밀턴은 이 충돌 사고를 일으킨 이유로 10초 페널티를 받게 되었다. 사고 직후 3위에 있던 샤를 르클레르가 선두로 올라섰고, 해밀턴의 페널티 수행과 함께 선두 자리를 계속 유지해나갔다. 하지만 시즌 초반동안 별다른 이슈가 없었던 페라리 엔진에 마이너 이슈가 발생하며 출력이 미세하게 저하되었고, 완주까지 2랩을 남겨두고 남다른 페이스로 맹추격해온 해밀턴에게 추월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레이스 우승은 홈 그랑프리를 치룬 루이스 해밀턴이 차지하였고, 2위는 르클레르, 3위는 보타스가 차지하였다. 해밀턴은 이 우승으로 홈에서 8번의 우승을 기록하게 되었고, 르클레르는 우승엔 실패했으나 시즌 처음이자 유일한 포디움을 수확했다.

* 2022 시즌

2022 시즌레드불페라리의 경쟁 속에서 레드불이 우세한 페이스로 앞서나가고 있었다. 8년 연속 컨스트럭터 챔피언 팀인 메르세데스는 대규모 규정 변경과 함께 왕좌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이 상황 속에서 맞이한 영국 GP 퀄리파잉에선 세션 도중에 내린 비로 인해 이변들이 속출했다. 하위권에 있던 윌리엄스니콜라스 라티피가 Q3에 진출하는 이변을 보여주었고, 페라리의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데뷔 첫 폴 포지션을 차지하였다. 세션 막판 챔피언십 선두인 막스 베르스타펜이 스핀을 하여 제대로 된 랩타임을 기록하지 못한 것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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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스타트 직후 상당히 큰 사고가 발생했다. 스타트 직후 조지 러셀저우관위를 추월하려던 피에르 가슬리가 저우와 러셀 사이에 샌드위치 되어 저우의 왼쪽 뒷 타이어와 컨택하였고, 저우가 이 사고로 차가 뒤집혀 벽까지 뒤집힌 채 미끄러져 충돌해 리타이어하였다. 러셀도 타이어가 빠져 리타이어하며 시즌 내내 이어오던 5위 이상 완주 행진을 종료하였다. 사고 당시 저우의 레이스카의 루프홀이 뭉개져버리며 드라이버의 생명에 위협을 줄 정도였으나, 헤일로가 결정적으로 저우의 머리를 보호하며 부상 없이 차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하위권에서는 저우관위의 사고 여파로 많은 드라이버들이 거의 정차했고, 이를 피하지 못한 제바스티안 페텔알렉산더 알본과 충돌해 알본이 리타이어하였다. 오프닝랩에선 3명이 리타이어. 이 사고들과 함께 사건/사고에 후술된 Just Stop Oil이 5번 에인트리(Aintree) 코너를 지난 직선 주로에 앉아 시위를 벌여 레드플랙이 나왔다.

재개된 레이스에선 사인츠가 좋은 스타트로 선두를 유지했다. 하지만 9랩 째에 페이스가 좋았던 막스 베르스타펜이 마곳-베켓 코너를 지나 사인츠를 추월해 선두로 올라섰고, 그대로 막스의 크루징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알파타우리 드라이버들 간의 충돌로 인한 데브리가 막스의 플로어로 들어가 막스의 페이스가 현저히 느려졌고, 12랩 째에 사인츠가 자신이 추월당한 직선 주로에서 막스를 재추월하였다. 페이스가 느려진 막스는 펑쳐인 줄 알고 피트인하여 타이어 교체를 했으나, 교체 후에도 페이스 저하를 막을 수 없었고, 중위권까지 쳐지게 되었다. 선두권에선 샤를 르클레르의 좋은 페이스와 후미에 있는 루이스 해밀턴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페라리는 팀 오더를 내려 르클레르를 선두로 올렸다. 하지만 39랩 째에 에스테반 오콘이 옛 메인 스트레이트에서 엔진 문제로 정차하여 SC가 발동되었고, 페라리는 선두인 르클레르는 오랫동안 주행한 하드 타이어로 계속 달리도록 피트인 시키지 않고 2위였던 사인츠를 새 소프트 타이어로 교체시키는 기이한 전략을 선보였다.

재개된 레이스에서 선두인 르클레르는 시작하자마자 5번 에인트리 코너를 지나 2위인 사인츠에게 추월당하였고, 해당 랩의 막판엔 오프닝 랩 프런트 윙 교체로 인해 최하위권까지 떨어진 이후 다시 올라온 세르히오 페레스와의 경합 과정에서 해밀턴의 더블 오더테이크와 함께 2계단의 순위를 잃었다. 이 때부터 수랩동안 해밀턴, 페레스, 르클레르, 알론소, 노리스가 레이스 완주까지 2~3위 경쟁을 벌이며 레이스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해 나갔다. 이후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가 안전하게 52랩을 완주하며 F1 데뷔 7년만에 첫 그랑프리 우승을 기록하였다. 2위는 페레스가, 그리고 3위는 홈 그랑프리를 맞이한 해밀턴이 차지하였다. 또 다른 축하를 받은 드라이버는 2년차인 믹 슈마허였다. 마지막까지 베르스타펜과의 치열한 배틀 끝에 0.2초 차 뒤로 완주했으나, 8위로 완주해 데뷔 첫 포인트를 획득하게 되었다. 레이스 종료 후 미카 하키넨제바스티안 페텔의 축하를 받은 것은 덤.

* 2023 시즌

2023 시즌에는 레드불이 당해 시즌 22전 21승을 기록하는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RB19를 내세우며 시즌을 호령하였다. 그리고 당해 영국 GP에서도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세르히오 페레스가 16위로 Q1 탈락을 하였으나, 막스 베르스타펜이 여유롭게 폴 포지션을 기록하였고, 레이스에서도 큰 문제 없이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시점부터 최하위에 머물렀던 맥라렌의 페이스가 상위권까지 올라와 레드불을 제외하곤 가장 빠른 팀에 등극했는데, 퀄리파잉에선 랜도 노리스가 2위, 신인 드라이버인 오스카 피아스트리가 3위를 기록하였고, 레이스에선 노리스가 2위, 피아스트리가 세이프티카가 타이밍이 좋지 않게 나와 시간 손해를 보며 4위로 완주하였다. 반면, 지난 경기에서 1위와 4위를 기록한 사인츠와 르클레르는 각각 10위, 9위를 기록하며 부진했다. 하위권을 전전하는 윌리엄스는 자신들의 강점인 직선 주로 세팅이 제대로 먹히며 알렉산더 알본이 8위로 완주할 수 있었다.

3. 사건 사고[편집]


2022년 7월 3일부터 시작된 2022 영국 그랑프리 경주 도중 사고가 발생해 잠시 중단되었고, 이 틈을 타 환경단체인 Just Stop Oil 시위자들이 경주장 내로 무단침입을 해 경기 재개를 방해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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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26~1927 개최[2] 1948~1954, 1955~1960년은 짝수 해에, 1963~1985년은 홀수 해에 개최, 1987~ 개최[3] 1955, 1957, 1959, 1961~1962 개최[4] 1964~1986 중 짝수 해에 개최[5] 이 서킷에서 열린 레이스 도중 기록된 가장 빠른 랩타임.[6] 당시 F1 시즌엔 논-챔피언십 레이스들이 공식 캘린더에 포함된 레이스보다 훨씬 많았다.[7] 실제로 이 시즌은 1위 팀(페라리)와 2위 팀(고디니)간의 격차가 F1 역사상 가장 큰 시즌으로 기록되고 있다.[8] 심지어 이 경기가 살바도리의 F1 데뷔 첫 포디움이었다.[9] 충돌 당시 기록된 횡G만 무려 51G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