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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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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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2~1943의 이탈리아 왕국과 1943~1945의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파일:whattheydo.png 파시즘 여부 논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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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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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Fascism | 結束主義

파일:attachment/Fasces_Mussolini-Hitler_mark.jpg
대표적인 파시스트 지도자
왼쪽부터 베니토 무솔리니아돌프 히틀러[1][2]


파일:파스케스.png

파시즘의 상징 파스케스

1. 개요
2. 파시즘의 역사
2.1. 사상적 기초
2.2. 어원
2.3. 당기
3. 파시즘의 사상
4.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4.5. 중간계층 이론
4.7. 부정론
4.8. 정치 종교
4.9. 합의파 이론/일반적 파시즘 이론
5. 파시즘의 특징
5.1. 좌익의 수사를 기회주의적으로 취사선택한 극우파
5.5. 우르 파시즘
6. 파시즘 국가/정당 목록
6.2. 정당
6.3. 인물
7. 파시즘의 분파
8. 논란: 누가 파시즘인가?
8.3. 권위주의 국가인가? 파시즘 국가인가?
8.5. 연구의 영역에 있는 파시즘
9. 참고 문헌
10. 픽션에서의 파시즘
10.1. 픽션에서의 파시스트
11.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자유주의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부정한다. 파시즘은 국가가 개인의 진정한 실체라는 것을 확인한다. 파시즘은 국가와 개인의 자유가 진지하게 숙고될 수 있는 국가 내에서 유일한 자유를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파시스트에게 모든 것은 국가 안에 있고 국가 밖에서는 아무것도 법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이 존재할 수 없거나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파시즘은 전체주의적이다."[3]

베니토 무솔리니, 파시스트 독트린.


파시즘(Fascism, 結束主義[한글])은 독재자군국주의적 통제 및 탄압으로써 통치하는 극우 전체주의국수주의 사상[4][5], 또는 그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 대중 중심의 정치 및 운동을 말한다.

1차 세계대전 시기, 전쟁에 대한 참전여부를 놓고, 이탈리아의 사회주의자들은 분열되었다. 이탈리아 사회당(PSI)지도부는 참전에 반대하였지만, 민족주의 성향의 사회당원들은 참전할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베니토 무솔리니를 필두로 한 민족주의 세력은 갈등을 빚고는 탈당하여,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처럼 반민족적인 볼셰비즘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자들의 전쟁을 선포하며, 자신들의 사상을 파시즘이라고 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과거 1890년대 시칠리아의 농촌 사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조직을 파시라고 한 적은 있었지만, 파시즘이라는 단어는 이때 처음 등장하였다. 독일아돌프 히틀러의 파시즘은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주의, 우생학 등이 추가되어 나치즘(민족사회주의)이라 불린다.

파시즘이란 단어는 1890년대 시칠리아 농민 사회주의 집단인 파시(fasci)의 사상이란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파시라는 조직명은 고대 로마 집정관의 상징인 파스케스에서도 유래되었다. 파쇼는(fascio) 파시의 복수형이다.

사회주의, 자유주의 등과 달리 핵심적 뿌리가 되는 사상가들이 없고 정교한 이론 체계도 없어서 여러 파시즘들 사이의 '최소치'라는 것을 산출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파시즘의 실체를 부정하는 주장도 있다. 이를테면 파시즘이란 그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의 국가 파시스트당의 운동만 해당할 뿐, 나치즘이나 기타 여러 나라의 파시즘은 파시즘이 아니라 그저 그 나라의 개별적인 사례들에 불과하단 것이다. 하지만 파시즘 연구가 팩스턴의 경우에는 그럼 중구난방의 의미로 쓰인 자유주의나 나라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 공산주의도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파시즘의 최소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일반적 파시즘 이론/합의파 이론이라고 한다.

2. 파시즘의 역사[편집]



2.1. 사상적 기초[편집]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반니 젠틸레(Giovanni Gentile)가 파시즘의 이론적 기초를 세웠다. 그는 마치니, 로스미니, 죠베루티 등 이탈리아의 지식인에 영향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독일 이상주의자에도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 젠틸레는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해왔다. 그가 파시즘의 기본 이론을 세운 이유조차 그것이 사회주의를 가장 잘 실행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젠틸레에게 파시스트란 국가 정체성을 가진 사회주의자였다. 젠틸레에게 있어 모든 사적 행동은 사회 공헌에 집중되어야 하므로, 사익과 공익을 동일하게 여겨 구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행정적인 부분의 관리 책임이 국가에 있다 보았고, 이는 곧 사회와 국가에 대한 개개인의 자발적인 복종으로 이루어진 참 민주주의의 실현이 주된 핵심이었다. 이러한 사상이 집약된 저술이 루이지 피란델로,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와 주세페 운가레티 등 많은 작가와 지식인들이 서명한 '파시스트 지식인의 선언' (Manifesto degli Intellettuali del Fascismo)이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젠틸레의 말을 통치의 정당화에 이용하기 시작했고 저서인 '파시즘의 원리'에서도 젠틸레의 말을 되풀이했다. 후에 ‘파시즘의 철학자'로서 베니토 무솔리니 파시즘의 에세이 교리(1932년)를 대작했을 당시에도 젠틸레는 무솔리니를 지지했으며 심지어 1943년 파시스트 정권의 붕괴 이후에도 충실하게 무솔리니를 따랐다.

그 외에도 미래주의와 같은 아방가르드적 예술문학과 아나키즘 그 중에서도 에고이즘적 아나키즘[6]이 큰 영향을 끼첬다.[7]가브리엘 단눈치오(Gabriele d'Annunzio)의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8]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결론적으로 유일자(보통 '영웅'이라고 표현된다.)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다만 이 유일자가 되기위해서는 삶의 활력, 열정적인 투쟁, 영웅적인 혈투, 진보적인 노동등이 있어야하기에 두체등으로 표현되는 영도자는 먼저 깨우친 유일자로서 이들을 자신과 같은 '영웅'으로의 길로 올려놓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미래주의 철학은 이런 영웅적 민중이 유일자가 되기 위한 길을 열어주는 진보의 톱니바퀴가 되며 그러기 위해서 생디칼리슴적 조합주의를 가저오게 된다. 조합주의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등을 가리지 않으며 모두 가입되며 나아가서 성별, (민족내에서의) 인종, 나이를 가리지않고 모두가 민족의 영웅적 투쟁을 위해 나아가는 행동이 된다.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의 헌법에서 나오는 인간의 영적인 삶을 깨워줄 음악,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자유인의 감명적인 예술, 그리고 미지의 세상을 만들어낼 위대한 노동과 자신의 죽음마저 두려워하지않으며 (니체가 말하던) 삶을 누구보다 위험하게 살기위해 조국의 영광과 방어를 위한 성별, 인종을 가리지 않는 징집은 바로 이러한 영웅으로의 길을 위해 있는 것이다. Fatica senza fatica라는 단어로서 표현되는 노동에서의 아픔이 아닌 노동으로서의 영웅화는 바로 이러한 철학을 기반으로 둔 것이다. 조비네차등에서의 이탈리아 파시즘에서의 삶의 역경을 뚫어낸 이의 아름다운 노래, 청춘의 열정적인 혈기, 인생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내용들은 바로 이러한 철학을 기반으로 둔 내용이다. 다만 부르주아조차도 영웅적으로 만들어야하기에 계급적 협동을 중요시하고 대신 그 부르주아에게 소유자의 미친듯한 창의력을 요구하는 것이 다른 사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파시즘의 계급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무솔리니가 결국 로마 진군으로 정권을 잡고서 기존 기득층과 미래주의자, 사회주의자들과의 불안전한 줄타기 속에서 권력을 잡기위해 미래주의를 숙청하고,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면서 점점 모습이 변하게 되었고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시기 베로나 선언문을 처참히 뭉개버리며 미래주의, 사회주의등은 파시즘에서 오히려 철저히 숙청당하게 되었다.

2.2. 어원[편집]


파일:external/www.bible-history.com/roman-fasces.gif

파시즘(Fascism)이란 단어의 근원은 파시즘의 상징이기도 한 속간(束桿)에서 비롯되었다.[9] 고대 로마 시절 집정관의 경호원들인 릭토르(Lictor)가 들고 다니던 것으로 라틴어로 '파스케스(Fasces)'라 불리며, 집정관의 권력과 권위, 그리고 "결속을 통한 힘"을 상징했다. 파시즘이란 사상은 개인을 비롯한 그 무엇보다도 국가를 무조건 우선시하고, 결속을 통한 힘을 강조한 사상이었기에, 파스케스는 그 상징이자 이름의 유래로서 매우 적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파스케스는 로마 공화정을 뜻하는 의미도 있었기 때문에 공화정을 채택한 국가에서 권력기관의 상징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미국 상원 의장에도 속간이 들어가 있고 링컨 기념관에서 링컨이 앉아있는 의자에 속간이 새겨저 있으며 프랑스 대통령의 문장에도 속간이 그려저 있다. 이러한 공화정의 속간이 파시즘의 상징이 되었다는 건 민주주의 사회의 국민들이 애써 얻은 권리와 의무를 다시금 국가에게 돌려줬다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2.3. 당기[편집]


파일:FJfVz14XsAoaMUt.jpg
전 세계의 파시즘 정당과 조직들의 로고[10]

파일:8H1tFzD.png
파일:국가 파시스트당 로고.png
국가 파시스트당의 당기와 로고

깃발에 그려진 나무뭉치에 묶인 도끼는 본래 로마 집정관의 경호원들이 들고다니던 파스케스(fasces)라는 것으로, 집정관의 권력과 권위, 그리고 "결속을 통한 힘"을 상징했다고 한다.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는 개인의 모든 활동을 민족이나 국가 같은 전체를 위하여 바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상이므로, "결속을 통한 힘"을 상징하는 파스케스는 그 역사적인 배경부터 시작하여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상징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3. 파시즘의 사상[편집]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집단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인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

-로버트 팩스턴,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이론적으로 파시즘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개중에는 광신적 인종주의적 관점[11]생활권, 그리고 인종청소의 개념을 사용하며 자본가들과 적극적인 동맹관계에 있던 나치즘이나 무솔리니미래주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등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이탈리아 파시즘, 나아가서 조르주 소렐과 같은 혁명적 조합주의민족주의를 결합한 민족생디칼리슴도 존재한다, 즉 애초에 파시즘이란 것이 하나로 제대로 잡혀있지 않고 그렇기에 필리포 마리네티, 가브리엘로 단눈치오히틀러의 관계처럼 이새긴 파시스트가 아니라 부르주아 애널서커다.라는 발언이 오갈 정도로 서로를 다르게 여긴다.

그러니 여기서 우리는 크게 우리가 파시즘이라 부르는 3가지의 파시즘 분파, 이탈리아 파시즘, 나치즘, 민족조합주의의 간략한 사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첫번째로 이탈리아 파시즘이다, 이들의 중요한 철학관은 미래주의, 막스 슈티르너, 니체 그리고 혁명적 조합주의이다. 하지만 이들은 보통 후기 파시즘으로 칭해지며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기 미래주의혁명적 조합주의로 시작되는 원시 파시즘(proto-fascism)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그럼 무엇을 이야기했는가? 대표적으로

예술의 노동화, 그리고 노동(예술을 포함한), 군인, 농민의 영웅화, 그리고 독재자의 반대 혹은 독재자의 임기제한, 과거의 분쇄을 둘 수 있다. 왜 예술의 노동화를, 그리고 영웅화를, 독재자의 반대를 외첬을까? 이는 아래의 미래주의자 선언과 미래주의당 선언 그리고 카르나로 헌법을 토대로 살펴보자.

1. 예술이란 무엇인가? 노동이란 무엇인가?

국가는 재산의 소유권이 절대적인 개인의 소유권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며 재산의 소유권은 사회적 기능의 가장 유용하고 책임있는 자가 가지는 것으로 본다. 소유권이 제한된 사람은 어떠한 재산도 소유할 수 없으며 게으른 소유자가 자신의 재산을 모아만 두고 있거나 심하게 처분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에 맞는 정당한 노동뿐이다. 오직 노동만이 일반 복지에 대한 유익하고 유용한 관리인이다.

국가는 물질적, 정신적 발전을 위해서 공동체를 통해 국민의 열망과 노력을 나타낸다, 노동자들은 국가의 부와 힘을 위해서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시민들이다. 이는 국가의 성장과 발달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노동자와 국가는 하나의 존재이다.

이탈리아 카르나로 지방에서 음악이란 사회적, 종교적 제도이다.

천년, 이천년에 한 번 나올 명곡은 사람의 영혼에서 솟아나 영원히 흐른다.

고귀한 민족은 자신의 형상대로 신을 창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노래도 만들어야하는 것이 진정으로 고귀한 민족이며 인종이다.

고귀한 민족의 재탄생은 서정적 힘, 전체 민족에 대한 모든 감정을 일깨워줄 잠재력을 가진 서정시에 있으며, 의례의 언어인 음악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성취와 생명을 높이는 힘이 있다.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 헌법


첫번째로 원류 파시스트가 세웠던, 그리고 이상주의의 극치를 달렸던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Italian Regency of Carnaro)의 헌법에서 이들은 일단 파시즘이 무엇인가를 따지기 전에 노동이 무엇인지를 따젔다. 왜냐면 노동이 무엇인지를 따저야 이들의 가장 핵심적 사상 영웅의 해방을 애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들은 노동이 무엇인 지를 애기했다.

일단 노동은 모든 것의 근원이다, 노동은 모든 것의 근원이며 노력하는 이들이 하는 것이며, 노동 그 자체는 세상을 진보하는 행동이다, 즉 노동은 나라는 존재가 세상을 더욱더 진보시키는 행위이며 이는 진보를 가로막는 물질적인, 관념적인 억압에 맞서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며 이는 곧 노동자의 진보적 해방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예술은 바로 이 노동을, 삶을, 세상을 돋보이게 해주는 존재이며 노래 없이는 활력이 없고 활력 없이는 진보가 없다는 가치아래 이들은 예술을 적극적인 노동화로 만들기 위해 작업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음악 자체가 국가의 헌법인 위의 카르나로 헌법이다.

2.그럼 해방이란 무엇인가?

우리 중 제일 나이 많은 이가 서른이다: 우리 작업을 끝내는 데 최소한 십 년은 걸린다. 우리가 마흔이 되었을 때, 우리보다 더 젊고 강인한 이들이 아마도 쓸모없는 원고처럼 우리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릴 것이다 –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대는 반대하는가? - 알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미 안다 ··· 우리는 이해한다! ··· 교묘하고 속임수에 능한 지능이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재탕이자 확장에 불과하다 – 아마도! ··· 고작 이뿐이라면 그럴 것이다! -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 우리에게 또다시 그런 수치스러운 단어를 말하는 이들에게 비탄 있으리라!

그대의 머리를 들라!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서라, 다시 한번 우리는 별들을 향해 저항을 투척하리라!

미래주의의 기초와 미래주의 선언


초기 파시즘의 해방은 우리 생각과 다르게 억압의 격정적인 분쇄이다. 이들은 끝없는 진보를 외첬고 앞서 말했듯이 그렇기에 끊임없이 사회를 바꾸어나가는 노동자를 중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 노동자에는 프롤레타리아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역시 들어간다, 부르주아는 관념적으로 진보적생각을 만든다면 프롤레타리아물질적인 해방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눈치오드 암브르시오의 파시즘 선언 등을 읽어보면 이들은 노력하는 이들에게 노력의 대가를 줘야하고, 노력할 수 있게 해야한다.라고 말하지만 이들이 프롤레타리아이여야 하는지, 부르주아여야 하는지를 애기하지 않는다. 단지 노력하는 모든 이들은 노동하며 모든 이들이 영웅이 돼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럼 그렇게 영웅이 된 자는 어떤 이인가? 여기서는 니체의 말이 이용해본다,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 이들은 과거를 끊임없이 부수며, 미래로 나아가길 원했다, 그렇기에 자기들 이름을 미래주의로 지었고 이들은 그 끝이 자신들의 반동화일지라도 그걸 반겼다, 그리고 그렇게 끊임없이 과거를 부수고 미래로 진보하여 해방하는 사회를 꿈꾼 것이 초기의 파시즘 이론이다. 파시즘에서 유난히 지방자치, 조합주의적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은 바로 중앙집권제와 어느 한 계급의 독재는 미래를 만드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3.그렇다면 독재자는 왜 반대하는가?

국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모든 인민을 단합시키고 인민의 승리를 위한 노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함이 한 사람의 의지와 헌신에 달려있음을 알게될 때 대국민 평의회는 가장 엄숙한 회의에서 아렝고의 구두적 투표아래 '독재자(독재관)'을 지명할 수 있으며 국가 최고 권위를 그에게 부여한다. 독재자는 로마 공화정에서의 독재관의 임기가 6개월이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그가 통치할 기간을 6개월로 하게한다.

모든 시민권자는 관직이 있든 없든 독재관에 선출될 자격을 얻는다.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 헌법


독재자를 반대(알체스테 드 암브리스)하거나 선거독재관(가브리엘 단눈치오 등)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하게도 위험하게만 살면 뒤저서 해방 못하니까.이다. 하지만 그 독재자의 연속적인 독재는 곧 중앙집권제이기에 선거를 두자는 쪽인거다, 물론 반대하는 쪽은 독재자 자체가 중앙집권제라서 반대하기도 하였다, 즉 초기의 파시스트들에게 독재자는 다 위험하게 살다가 죽어버려서 해방 못하지 못하게끔 가끔씩만 나와서 막아주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어느 한 누구만이 독재자가 되는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될 수 있게 그 자격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나아가서 이들은 국가의 해체를 거부하였는데, 왜냐면 국가가 해체되는 순간 위험하게 살 수 있는 매개체가 사라지고 모두가 진부하게만 살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에게 철학관은 아나키즘보다는 니체에 더 가까웠다.

니체는 언제나 세상 속에서 위험하게 살아야한다고 주장했고, 그럼으로서 위버멘쉬가 된다고 말했다, 즉 국가가 사라지고, 위험하게 살 의지가 사라진다면 위버멘쉬가 될 수 없기에 국가와 전쟁은 사라저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나키즘, 에고이즘아나키즘 특히 막스 슈티르너에게는 위버멘쉬 자체가 권위였다, 이들은 권위의 본산을 적극적으로 부셔버리기 원했으며, 오직 나(Ego)의 해방을 애기했다.

니체는 국가의 권위와 반기독교를 내세우며 신은 죽었다.라고 외첬지만 이들을 완전히 없애길 원하지 않았다, 해방을 할려면 이들이 필요하기에, 그렇기에 니체의 사상은 국가를 포용하는 사상이다. 하지만 막스 슈티르너에게는 그 해방과 위버멘쉬자체가 권위주의였다, 국가는 필요하지 않으며 오직 나(Ego)만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위버멘쉬마저 부수길 원했다.

그럼 이탈리아 파시즘은 여기서 무엇이 바뀌었는가? 이탈리아 파시즘노동자미래주의와 같은 초기 파시스트를 철저히 배신하며 이루어젔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권을 잡아야하기에 보수와 기존 가톨릭 종교원들을 잡아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였고 이들 없이 이루어젔던 선거에서의 참패를 기억하기 때문이였다, 이에 대해 필리포 마리네티는 아래와 같이 애기하였다.

우린 카르스트를 향해 가고있다, 이는 우리가 절대로 반동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이후 무솔리니로마 진군이라는 방법으로 집권하자, 마리네티는 다시 무솔리니에게 돌아왔지만 무솔리니미래주의를 철저히 탄압하였고 결정적으로 베로나 선언을 진압하며 오히려 해방, 위버멘쉬를 겉만 차용하여 이용한 채 철저히 부셔버렸다, 즉 이탈리아 파시즘의 사상은 초기 파시즘의 사상을 어느정도 가저왔지만 이를 집권을 위한 선전용도로만 사용하였지 이를 실천할 의지가 없었다.(할려고도 안했거나) 실제로도 원시 파시스트들은 인종주의를 배제한 민족주의를 원했는데, 미래를 향해 나아갈 의지만 있으면 부르주아든 프롤레타리아든 병사든 심지어 다른 인종(유대인도!)이든 상관 안하고 썼기 때문이다.[12]

하지만 무솔리니는 정치적 이유때문에 반유태인법을 창설했고, 이미 무솔리니의 자본가와의 협력때문에 정이 떨어젔던 단눈치오와 드 암브르시오(전자는 쿠데타 계획 중 감시행, 후자는 이탈리아를 떠남)와 다르게 끝까지 남아서 미래주의가 올 수 있다고 믿은 마리네티의 뒤통수를 까버리고 결사반대하던 마리네티를 협박하여 이 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무솔리니와 초기 파시스트들의 생각의 차이점은 다음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Le sue idee sul sindacalismo d'urto, estraneo ad ipotesi di pace con l'organizzazione economica italiana, di ieri di sempre, cozzano con quelle di Rossoni e, perché no, con le mie. Il tema da lui preferito:"Tutto il potere ai sindacati", io non lo condividevo affatto. Ero per lo Stato, un nuovo Stato. E basta. L'avventura dannunziana della quale De Ambris era stato protagonista sociale, era irripetibile, nella forma e nella sostanza»

이탈리아 경제 조직(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의 평화을 거부하는 폭력적이고, 충격적인 생디칼리슴에 대하여 그(암브리스)의 대한 생각은 로마냐와 충돌하고, 나와도 충돌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 노조에게 모든 권한을을 보며 나는 이 말에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나는 국가, 새로운 국가를 원할 뿐이였다. 드 암브리스와 사회적 주인공이였던 가브리엘 단눈치오의 모험은 새 이탈리아에서 형식과 그 내용 모든 면에서 번복될 수 밖에 없다.

Benito Mussolini parlando di De Ambris con Yvon De Begnac sui "Taccuini mussoliniani"


인용문을 제외한 출처는 다음과 같다.
Finzi sarà fucilato dai tedeschi alle Fosse Ardeatine nel 1944.
Il dannunzianesimo dopo Fiume Archiviato il 22 febbraio 2014 in Internet Archive..
Renzo De Felice, D'Annunzio politico: 1918-1938, Bari, Laterza, 1978,

나치즘은 어떠한가? 나치즘은 사실 그 이론적 토대의 작업이 이탈리아 파시즘보다 부실한 작업을 거첬다, 왜냐하면 독일 보수혁명시기 당시 독일식 사회주의[13]를 만들기 위한 이론적 작업을 했던 이들이 나치가 되지 않거나 혹은 나치에 있다가 숙청당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른스트 윙거는 노동자: 그 지배와 형상과 총동원을 집필하며 노동자에서 아나크[14]로 가는 방법을 전술하며 총력전(이는 관념적인 의미의 총력전이다.)를 통하여 해방을 향해 나아가야한다. 여기서 부르주아적인 그 모든 것(심지어 단어마저도)을 없애고 새로이 노동자만의 것을 만들어야한다.라고 말하였다.[15] 흡사 원시주의와 비슷해 보이는 말을 할정도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부르주아의 잔재를 없애자고 한 인물이였다, 에른스트 윙거는 노동자를 고결하게도, 숭고하게도 묘사하지 않았다, 다만 노동자는 병사이며, 그 자체가 전쟁터이기에 살아가는 것이 총동원인 존재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 총동원이 하나로 뭉친다면 부르주아적인 것을 모조리 부셔버리고 곧 아나크가 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에른스트 윙거나치를 격렬하게 반대하는 인물로 남아있었고 실제로도 그다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진 못하였다.

그 외에도 나치즘좌익(사회주의적인이 아닌)적인 색체를 보여줬던 그레고어 슈트라서등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유물론적인 관점으로서 자본주의를 본 것이 아니라 현대 유대자본의 타락한 순수성이 아닌 고대 독일인의 비이기적 순수성의 사회주의를 원했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우리 민족 사회주의는 경제의 국유화를 포함하여 경제의 혁명을 원한다, 우리는 착취적 자본주의 체제 대신 영혼없고 유대적인 유물론적 관점이 아닌 믿음 있고 희생성 있으며 비이기적이였던 고대 독일인의 순수한 고대 사회주의를 원한다, 커뮤니티와 경제의 목적을 진심으로 느끼는 사회 말이다, 우린 민족혁명을 위해 사회혁명을 외친다.

Childers, Thomas (2017). The Third Reich: A History of Nazi Germany. New York: Simon & Schuster p. 84.


하지만 히틀러는 역시 무솔리니처럼 집권을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필요했다, 우리 생각과 달리 파시즘은 절대적인 1인 독재의 체계를 만들지 못했기에 무솔리니히틀러든 어떠한 방법으로든 동맹세력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 방법은 바로 자본가와의 정경유착복지정책이였다, 다만 무솔리니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지방자치의 역사가 깊고 자본가뿐만 아니라 전통적 기독교 세력이 있기에 굳이 미래주의자본가의 절대적인 지지를 필요하지 않았기에, 나치즘보다는 조합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동맹 세력이 하나 더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치즘반교권주의를 내세웠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기업가와의 더욱더 유대를 할 필요가 있었고 프로이센부터 이어지던 전통적인 계급 융커 또한 무시할 수 없었기에 계속하여 반자본주의, 반국방군, 인민군, 엘리트 계급(특히 융커)의 전복 등을 애기하던 당내의 좌파를 정리해야한다고 느낀 히틀러는 당 내의 좌익 인물들을 장검의 밤을 통해 죽여버렸고, 실제로도 이에 반대하며 아예 나치를 탈당하고 새로이 흑색전선 등(정식 명칭은 Kampfgemeinschaft Revolutionärer Nationalsozialisten로 혁명적 국가사회주의자의 전투적 동맹이다.)[16]을 차렸던 인물들도 잡혀 죽거나 살해당하였다, 거기에 인종주의적 면모를 위버멘쉬와 연관시키며 강력한 정경유착으로서 군수경제를 살리고 위버멘쉬를 위해 노동자를 전장으로 보내는(그러면서 실업위기를 해소함과 복지를 만들어 이를 장려하는) 나치의 모습이 탄생하게 한다.

인용문을 제외한 출처는 다음과 같다.
Wistrich, Robert S. (4 July 2013). Who's Who in Nazi Germany. Routledge. p. 248
Ian Kershaw, Hitler: A Profile in Power, first chapter (London, 1991, rev. 2001).
Nolte, Ernst (1969). Three Faces of Fascism: Action Française, Italian fascism, National Socialism. New York: Mentor. pp. 425–426.
Ian Kershaw, 1991, chapter III, first section.

다음은 혁명적 민족조합주의이다, 생디칼리슴 등으로 애기되는 이들이며 이들의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JONS(Juntas de Ofensiva Nacional-Sindicalista)로 대표되는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Ramiro Ledesma Ramos)이다, 위에서는 부르주아와 노동자가 같이 힘을 합처서, 혹은 부르주아가 노동자를 지원하는 형태로서, 혹은 아예 둘의 경계 자체를 애매하게 만들어서 노동자를 부르주아로 만들기도 혹은 부르주아를 노동자로 만들기도(둘 다 거부하면 불이익을 주는) 형태를 띄웠다면 이들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조국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라는 색다른 계급으로 묶길 원했다.

이들은 당시 스페인에서 있던 노동조합인 CNT, 카를로스파 노조인 자유노조등과 애기해가며 국가는 있되 그 국가가 노동조합의 나라인 국가를 만들기 원하며 이들은 단일 노동조합이 아닌 지방노동조합에 부르주아, 기술공, 일반 노동자가 모두 포함되어 생산을 꾸리는 사회를 원했다. 레데스마 자기 자신은 히틀러를 존경했지만 히틀러의 사상을 거부했다.(특히 인종주의를) 제 3의 위치이라며 코뮌주의자본주의 둘 다에 반대하는 원류의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이들이기도 하였다.

이들은 말했듯이 조국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서 모두를 묶어 노동조합을 꾸리고, 그 노동조합이 국가의 모든 것이 되는 노동조합국을 만들기 원했다,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는 나아가서 독재자란 개념을 거부하고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선호했으며 국왕은 멍청한 구체제의 잔재라며 거부하였고, 종교는 민족통합을 위해서는 쓸 수도 있는데 자신은 그다지 안믿는 편에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최종적 목표는 노동조합의 국가가 된 스페인 제국이 옆 나라 포루투갈 제국과 함께 지브롤터, 북아프리카 등의 나라를 정복하여 스페인 제국의 땅과 포루투갈 제국의 영토를 수복하고 이들을 모두 스페인, 포루투갈 제국인으로 만들어 노동조합 스페인 제국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특히 이들은 팔랑헤와 함께 있다가 탈당했는데 그 이유는 팔랑헤 역시 자본가와 손을 잡아야하는 권력적 입장에 있었기에 그들과의 화해 특히 지주들과의 연대를 함에 있어 이들이 부르주아 개새기 냄새가 난다.라며 당을 탈당하고 새로이 독립했기 때문이다, 물론 스페인 내전 당시 사회주의자 민병대에게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가 죽고, 팔랑헤프랑코의 손에 넘어가면서 강제로 국민전선을 통합시켜버려 통합 팔랑헤를 만들며 부르주아의 냄새가 나는 수준을 넘어 부르주아 그 자체가 되버렸지만.

출처
Morales et al, Gustavo (1996). De la protesta a la propuesta. Madrid: Barbarroja. «(...) Establecer un sistema de democracia participativa que permita la participación popular a través de lo municipal y lo sindical además de a través de las asociaciones políticas.»

Payne, 1986, p. 152. "Al revés que muchos otros movimientos fascistas, la Falange sí elaboró un programa oficial, los Veintiséis Puntos, antes de fines de 1934. Estos tenían las características principales de la doctrina fascista y en la esfera económica pedían el establecimiento de un estado completamente nacionalsindicalista. [...] Que los falangistas tenían algunas características propias es algo innegable; pero éstas no les impedían compartir todas las calidades y características generales que compondrían un inventario del fascismo genérico"

Primo de Rivera, José Antonio (1971). Obras Completas. Madrid: Cronológica. p. 335. «En cambio, con lo que queremos nosotros, que es mucho más profundo, en que el obrero va a participar mucho más, en que el Sindicato obrero va a tener una participación directa en las funciones del Estado, no vamos a hacer avances sociales uno a uno, como quien entrega concesiones en un regateo, sino que estructuraremos la economía de arriba debajo de otra manera distinta, sobre otras bases, y entonces sucederá, señor Gil Robles, que se logrará un orden social mucho más justo».

Stanley G. Payne, Falange. Historia del Fascismo Español.Sarpe, Madrid 1985Morales, Gustavo (septiembre de 2004).

«Juventud, acción e izquierda en Ramiro Ledesma Ramos». El Catoblepas. Consultado el 10 de enero de 2018. 등

즉 파시즘은 전체주의의 한 갈래이나 전체주의가 곧 파시즘인 건 아니다. 비슷한 예로 공산주의사회주의의 한 갈래일 뿐 모든 사회주의가 공산주의는 아니다. 전체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의 결합이 파시즘이란 데에서는, 배타적 민족주의 요소가 거의 없었던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사례를 들어 반론이 제기된다. 또한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가 파시즘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가령 대한민국 역시 1970년대~80년대 당시 국외 문화의 유입을 "민족문화의 창달""건전한 민족문화 육성"이라는 명분으로 통제하고 상당부분 금지했기 때문에, 한국도 배타적 민족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를 파시즘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단순한 민족주의가 아닌 전체주의 사상을 띈 민족주의에 단일민족설+주전성향의 우파 집권까지 파시즘의 단어적 정의에는 완전히 부합한다는 게 근거. 단지 파시즘의 정의 자체가 논쟁의 여지가 많은 것 또한 사실. 역사적으로 파시즘 정권은 이론적 기반이 희박하고, 그때그때 기회주의적 성향을 자주 보여왔기 때문에 '무엇이 파시즘인가?'는 정답이 없다.

4. 파시즘이란 무엇인가?[편집]


파시즘은 수수께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절묘한 힘의 균형을 본다. 파시즘은 권위주의를 주장하는 한편 반역을 조직한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맞서 싸우면서도, 과거 지배 체계의 복권을 옹호하지 않는다. 강국의 주조자(鑄造者)를 자처하는 듯하나, 그 수단이 도리어 국가 와해를 촉진하므로, 파괴적 당파나 비밀 결사에 견줄 만하다.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건, 파시즘은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그와 반대되는 것이며,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니다….

—호세 에르테가 이 가제트(José Ortega y Gasset)[17]

, 「파시즘에 관하여 Sobre el Fascismo」(1927)

파시즘의 광풍이 세계를 휩쓴지 7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파시즘에 관한 연구는 스페인 내전 이전부터 거슬러 올라가지만 아직까지도 학계에서는 파시즘의 정체에 대해서 합의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나치즘조차 파시즘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파시즘은 오로지 이탈리아 파시즘과 이를 이념으로한 무솔리니의 국가 파시스트당을 말할 뿐이며 파시즘을 세계적인 정치현상으로 보는 것은 오류라는 주장인데 이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소수설이다.

따라서 파시즘이 무엇이냐고 단정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워낙 다양한 정의가 존재하고 용어가 지는 윤리적 거부감으로 인해 정치적인 이유에서 특정한 정치적 대적자를 파시즘으로 매도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날에서의 파시즘은 사실상의 욕설로 쓰이며[18] 진짜 파시스트라서 쓰이는 말은 대부분은 아니다.


4.1. 민족주의[편집]


나치의 경우 고대 아리안 종교에 대한 관심과 함께 "게르만 족의 생활 공간 (레벤스라움)," "고유 영토" 등의 개념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보여주며, 나치당은 비스마르크, 프리드리히 대왕, 더 나아가서는 바르바로사 대왕 등을 민족 영웅으로 내세우며 선전에 나섰다. 아돌프 히틀러 본인은 로마 제국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일천년 동안 유지될 자신의 제국이 로마와 같이 많은 유산들을 남길 것이라는 몽상을 품고 있었다. 일본제국의 경우 물질주의적 서구에 대항해 이른바 "야마토 정신"으로 일컬어지는 정신주의로 무장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고, 좀 정도가 심했던 황도파의 경우 이른바 쇼와 유신이라는 미명 하에서 천황이 친정을 하는 절대군주제를 주장하기에 이르른다.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로마 제국의 부활, 지중해의 이탈리아 내해화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었다. 각 파시즘의 분파의 공통점은 "외압"으로 부터의 자유에 대한 주창이다. 흔히 일본제국대동아공영권, 나치당의 초기 선전 포스터의 표어 인 "Arbeit, Freiheit und Brot"(일자리, 자유[19] 그리고 빵)으로 알수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외압으로의 자유를 위해 내세운 대안(전쟁)이 역으로 다른 민족을 탄압하는것이었다는 점이다.

파시즘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기회주의적으로 변해왔으며, 여러가지 이념들을 혼합하여 취사선택하는 짬뽕 잡탕의 성격을 가졌지만, 민족주의만큼은 언제나 항상 일관적으로 파시즘의 기반을 형성하였다. 민족주의는 파시즘의 핵심중의 핵심이었다. 파시즘의 일관되지 않고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인하여 파시즘에 대한 이론 역시 학자마다 다양하지만, 극단적 민족주의는 모든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이로 인하여 일반적 파시즘론에서는 파시즘의 최소치로 민족주의를 포함시킨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민족주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전체주의 이론[편집]


한나 아렌트가 1951년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을 통하여,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을 본질적으로 동일한 전체주의적 이념이라고 규정하였다. 꽤나 전통적인 파시즘 이론이다. 1970년대에 냉전의 데탕트시기에 쇠퇴하였다가 1990년대 소련의 붕괴로 공산권의 내부자료들과 실상이 알려지고, 당시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유행하면서 다시 부상하였다. 렌조 데 펠리체-에밀리오 젠틸레 계열의 학자들은 파시즘을 일종의 전체주의 혁명이라고 해석한다. 전체주의 이론의 문제점으로 파시즘이 사악한 독재자가 민중을 탄압했다고 주장하면서, 지나치게 '위로부터의 독재'를 강조하여 대중들의 수동성을 가정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하여, 대중들이 파시즘의 민족주의 프로파간다에 열광하면서 자발적으로 동참하였다는 사실을 무시한다는 한계점이 지적되고 있다. 또한 전체주의 이론에서는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철저한 상명하복의 통제가 이뤄진다고 보는데, 실제로는 파시스트 정권 내부에서도 워낙 다양한 출신과 배경의 사람들이 한데 모였기에 다양한 목소리가 있었고, 설령 같은 목표를 추구해도 제각기 다른 이유에 근거하였으며,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전체주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3. 포스트 모더니즘 이론[편집]


파시즘이 근대주의라는 인간의 합리성에 기반한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며, 주로 포스트 모더니즘 학자들에 의하여 주장된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이 유행할때 많이 퍼졌다. 국내에서는 포스트 모더니즘 학자인 임지현 교수가 유명하다. 임지현 교수는 1999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를 통해 국내 진보진영에게 민족주의 비판 담론을 소개하였으며, '우리 안의 파시즘'을 통해 일상적 파시즘 개념을 주장하였고, 파시즘은 위로부터의 강압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민중의 자발적인 동의를 얻어낸 합의 독재인 대중독재 였으며, 따라서 정치적 체제인 파시즘뿐만이 아니라, 민중의 평범한 일상속에도 내면화된 파시즘적 양상의 문화가 만연하다고 주장하였다. 임지현은 오랫동안 한국사회에 스며든 지도자 숭배와 복종의 문화, 가부장주의와 성차별주의, 가정폭력, 민족주의적 과대망상증과 외국인 혐오, 386세대와 같은 운동권의 군사주의와 서열주의, 성추행 등을 일상적 파시즘이라고 비판하였으며, 진보진영 내부에도 이러한 파시즘적 모습이 있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었다.

강준만 교수는 임지현 교수가 정치사회적 파시즘 비판은 외면한 채 '일상 속의 파시즘' 과의 전쟁만을 선포하고 있으며, 일상적 파시즘'이 대안이 없는 '진보 허무주의'라고 비판하였다.# 임지현 교수는 2022년에 우리 안의 파시즘 2.0을 출간하면서, 일상적 파시즘에 대하여 보충하였다.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동유럽 역사가들의 자기 비판적 역사 평가 작업을 문득 떠올렸다. 특히 선명하게 기억에 와닿은 것은, 1996년 “희생자인가 공범자인가?” 라는 제목으로 바르샤바에서 개최된 세미나와 1997년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동독-근대적 독재?” 라는 학술 대회였다. 이 작업들이 공유하는 문제 의식은 노멘클라투라의 독재권력이 민중들의 일정한 합의를 바탕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는 “합의 독재”(Consensus Dictatorship) 개념으로 압축된다. 민중은 독재 권력의 희생자였지만 동시에 공범자였다는 통렬한 자기 비판이 그 밑에는 깔려 있다. 위로부터의 강압에 의한 폭력적 지배가 독재 권력의 한 축이었다면, 아래로부터의 민중의 자발적 동의도 독재 권력을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이었다는 것이다.

가장 폭력적인 통치 체제인 나치즘이나 스탈린 체제조차도 힘에 의한 억압뿐만 아니라 민중의 자발적 동의를 어느 정도 전제했다는 평범한 역사적 사실에서도 그것은 다시 한번 확인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인 학살을 집행한 101 경찰예비연대 병사들의 대부분은 열렬한 나치당원이 아니라 예비군으로 각지에서 소집된 평범한 독일 아저씨들이었다. 나치즘의 사회적 기반은 소수의 광신자들이 아니라 바로 이들 평범한 독일인들이었다. 스탈린의 장례식에 몰린 엄청난 애도 인파와 그 큰 슬픔의 문결 속에서 깔려 죽은 평범한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스탈린의 죽음을 애통해 하면서 흘린 큰 지식인 사하로프의 눈물 또한 “합의독재”의 상징이다. “신경제정책”(NEP)을 유토피아적 기획으로부터의 일탈이라 보고 눈을 흘겼던 소련의 애국 시민들은 자발적 스탈린주의의 기둥이었다.

임지현, 우리 안의 파시즘, 7p


파시즘의 집단심성이 한국 사회의 결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 징후는 수없이 많다. 그것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긴 목록을 구성한다.

정작 큰 문제는 대안 세력으로 자처하는 이들의 사고와 운동 방식조차 밑으로부터 파시즘을 떠받치고 있는 한국 사회 고유의 결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자신만이 절대적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일부 좌파들의 도덕적 폭력은 극우 반공주의의 매카시즘적 폭력과 결을 같이한다. 상대방에게 이러저러한 딱지를 붙임으로써 자신의 헤게모니를 확보하려는 권력 지향적 글쓰기가 여전히 지배적이며, 좌파들의 논쟁 또한 권력 지향적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는 공공적 논의를 아예 사유화하려는 조짐까지 엿보인다. “현실 정치 공간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이라는 사이버 공간의 의사 소통 역시 쌍방향적 민주적 의사 소통의 방식보다는 언어와 논리의 폭력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현실 정치 공간의 논리를 그대로 재현한다. 파시즘적 현상을 비판하는 논리 자체가 파시즘의 인식 지평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가장 자유롭고 재기 넘치며 신선해야 할 학생 운동조차 행동 양식과 의식 구조는 파시즘의 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일상적 파시즘이 우리 사회의 저변에 얼마나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예들이다.

임지현, 우리 안의 파시즘, 10p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적 관점은 1990년대 전체주의론에 어느정도의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무언가 폭력적이거나, 권위적이거나, 집단주의적 요소가 있으면 죄다 파시즘이나 전체주의로 몰고 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파시즘 연구자들이 다루지는 않는다. 포스트 모더니즘적 관점에서는 파시즘을 정치적 현상보다는 생활양식으로 접근하는 편이다.

4.4. 독점자본주의 이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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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중간계층 이론[편집]


파시즘이 부르주아 금융자본의 사주를 받은 도구이며 하수인이라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인 독점자본주의 이론이 가진 모순과 한계로 인해서 비판받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파시즘이 중산층 집단의 지지를 받았으며, 권력획득의 과정에서 급진사회주의적 반자본주의적 색채를 정리하면서 부르주아 자본계급과 타협하고 협조관계를 형성하였다고 보는 이론이다. 하지만 이 역시 파시즘의 초계급적 민족주의로서의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했고, 노동자 집단의 파시즘에 대한 지지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한계로 인하여, 파시즘은 모든 계층과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는 포퓰리즘 운동이라는 관점으로 대체된다.

4.6. 포퓰리즘 이론[편집]


본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전전 일본 천황제 파시즘과 독일 나치즘 체제 속에서 공히 나타났던 “열광(熱狂)의 정치” 현상에서 찾고 있다. 열광의 정치란 20세기 대중민주주의의 심각한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무기력감과 좌절감에 빠지게 된 대중들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혼란을 해결해 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적 리더십을 갈망하게 되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선동적-전체주의적 정치지도자들이 등장하여 “국가와 민족의 신성화”(神聖化)라는 대중조작을 통해 국민들에게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심어 주어 국민 전체를 국가와 민족의 신화에 열광하게 만들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정치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열광의 정치 과정에서 전체주의적 독재자들은 사회혼란이나 위기에 처한 국민들로부터 자신의 정치권력에 대한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정치적 희생양을 국내외적으로 반드시 찾는다. 그 동안 20세기에 있어서 일본과 독일이 일으킨 무모한 전쟁들의 원인에 대해 히틀러 및 소수 조력자들, 일본 군부라는 한정된 소수자 집단의 비이성적인 일탈행위에서 찾거나, 혹은 당시 양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대응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열광의 정치의 분석이 이러한 기존의 연구들과 가장 차별되는 점은 당시 파시즘과 나치즘을 열광적으로 지지하였던 독일 국민과 일본 국민들에게도 전체주의적 독재권력의 등장과 이들이 일으킨 전쟁들에 대해서 상당히 중요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박한규, 열광의 정치황제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대한정치학회보, 2008, vol.15, no.3, pp. 121-143 (23 pages)#


포퓰리즘은 문자 그대로 ‘국민(people)’에 호소하고 ‘국민’을 동원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때 정치적 목적이 무엇인지는 포퓰리즘인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데 중요하지 않다. 대중 동원의 호소력을 높이기 위해 기성 엘리트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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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탈리아는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강력하고 새로운 형태의 포퓰리즘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 연구 대상이다. 기실 이탈리아는 이미 20세기 초반에 파시즘이라는 전대미문의 포퓰리즘운동의 진앙지였고, 이 파시스트 포퓰리즘운동은 실제로 20년 이상 권좌를 차지한 바 있었다.

장문석, 이탈리아의 ‘정상국가’ 담론과 포퓰리즘 : 파시스트 포퓰리즘에서 ‘포스트모던’ 포퓰리즘으로, 역사비평, 2013, vol., no.105, pp. 157-181 (25 pages)#


아도르노가 대중운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비판하고 있는 지점은 혁명 지도자와 추종자의 동일성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 동일화 작업은 세가지의 특징을 가진다. 첫 번째 특징은 실제의 적대자보다 더 한 이미지를 만들어 적과 동지의 구분을 확실하게 해 집단 내에 연대감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연대감에 의해 조성된 대중 안에서 저항하는 개별적 주체들은 사라지고 집단과 동일화된 주체만이 존재하게 된다. 두 번째 특징은 낙관주의적인 유토피아를 제시해 대중이 초월적 가치로부터 구원이 도래한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운동은 본인이 속한 연대에 어긋난다고 여겨지는 다른 집단이나 사람들에 대해 논의 과정 없이 비난하는 데에 그친다. 세 번째 특징은 나르시시즘을 기반으로 한 대중이 자신과 지도자를 동일화하면서 다른 주체들에게 자신이 걸린 최면상태를 강요하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지도자와 동일화된 대중이 세 가지의 특성을 거치면서 자신이 속한 집단, 자신과 다른 것을 주장하는 집단, 그리고 비판적 사고를 하게 해주는 이론 등을 사유하지 않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김진애, 대중운동의 파시즘적인 폭력의 가능성과 그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 철학연구, 2017, vol.144, pp. 141-166 (26 pages)#

전통적인 전체주의 이론과 독점자본주의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이다. 파시즘이 민족주의 프로파간다를 통하여, 부르주아나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계급을 초월하여, 민족주의로 통합하였다. 따라서 파시즘은 전 계층 모든 대중의 자발적이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일단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하여 다수의 동의하에 집권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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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부정론[편집]


파시즘의 일관된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파시즘이 무엇에 반대하는 이념이었다고 규정하려는 이론적 시도이다. 예를 들자면, 파시즘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이념이면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이념이었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부정론에 대립하는 이론으로 일반적 파시즘 이론(합의파 이론)이 있는데, 파시즘이라는 이념적 실체가 존재한다고 보고, 파시즘의 최소치와 최대치를 규정하여, 어디서부터 파시즘이며, 어디까지가 파시즘인지를 규정하려 하였다.


4.8. 정치 종교[편집]


파시즘은 세속화된 종교, 정치적 종교, 시민종교 라고 보는 입장이다. 에밀리오 젠틸레(Emilio Gentile)가 주장하였다.Fascism as political religion

이 시대는 정치적으로 유럽에서 고전적인 의회민주주의가 퇴조하고,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그리고 러시아의 스탈린주의와 같은 이른바 전체주의 체제가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미 1930년대 오스트리아의 정치 철학자 에릭 푀겔린(Eric Voegelin)은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독재체제들이 발휘한 대중적 흡인력과 대중적 지지에 기초한 역동성을 응집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정치종교’ 개념을 이론적으로 차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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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종교’ 개념으로써 강조되는 것은 전체주의적인 체제들이 “정치의 신성화”(에밀리오 젠틸레)를 통해, 다시 말해 국가, 민족, 계급, 인종 등 여러 형태로 상상된 정치공동체의 신격화 및 역사, 혁명, 자유 등 정치적 이념의 절대화, 그리고 신화와 상징 및 정치적 숭배(cult)와 의례를 통해 대중을 체제 내로 통합시켰고 스스로를 적법화 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개념은(심지어는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에 이르기까지) 전체주의 체제가 자행한 폭력과 테러의 근저에 놓인 종교적 모티브와 이것의 대중적 호소력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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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비교사 연구를 위해 이 개념은 보다 세밀한 범주들로 유형화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획일성과 강력한 연대를 갖는 우애회적(fraternalist) 종교, 비교적 느슨하고 관용적인 민족 형성(nation building)의 종교, 그리고 공산주의적 정치종교라는 폴 브루커(Paul Brooker)가 시도한 정치종교의 세 가지 유형화는 하나의 좋은 실례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종교를 전적으로 양 차 세계대전기에 나타난 전체주의 체제에 고유한 현상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이 수정되어야 한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정치종교를 “대중의 국민화/민족화”(조지 모스)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정치적 숭배(cult)와 애국주의적인 도덕으로 이해한다면 정치종교야말로 모든 근대민족국가와 민족주의 운동을 위한 정치적 통합 요소로 기능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양한 정치종교들의 공통분모는(몇몇 경우를 제외한다면) 민족주의적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독재와 정치종교 : 독일 나치즘과 일본 파시즘의 상징의 정치#


4.9. 합의파 이론/일반적 파시즘 이론[편집]


새로운 합의란 90년대 로저 그리핀(Roger Griffin)이라는 영국의 정치학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파시즘 분석 이론을 가르키는 말이다. 새로운 합의에서는 파시즘에서 나타나는 신화적인 특징을 강조한다. 그리핀은 파시즘의 이런 신화적인 면을 "재탄생(Palingenetic[20])의 국수주의" 라고 표현 했는데, 몰락의 길을 걷는 민족 공동체가 머지않아 탈자유주의적인 질서 속에서 새롭게 부활하게 되리라는 신화적인 믿음에 근거한 극단적 민족주의를 의미한다. 특정한 정치 이념, 운동 등이 여러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을 파시즘이라고 규정하기 위해선 이런 신화적인 특징이 존재해야 한다. 여기서 몰락하는 민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새로운 엘리트는 극단적인 행위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신화적인 서사를 이용하여 대중을 동원한다.[21]

조르주 소렐 이론의 신화란 인간의 감정적인 직관으로만 포착될 수 있으며 그것이 맞느냐 틀리냐는 합리적 추론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그리고 이 간극에서 온갖 신화가 탄생한다. 소렐에 의하면 인간은 이런 사실 판단 여부에서 벗어난 것을 믿고싶어 하는 비합리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다. 신화는 이러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서 인간 상상력을 장악하고 감정을 자극하여 행동에 나서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소렐에 의하면 신화는 대중의 정서와 감정을 자극하여 그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선동하여 행동에 나서게 한다.[22]

새로운 합의에서는 이런 신화 이론을 파시즘을 정의하기 위한 최소 요건으로 삼음으로써 파시즘이 체계적인 이념이라는 입장과 파시즘은 실체없는 주장과 구호들의 집합체라는 주장 모두를 거부한다.

쇠락하는 민족이 새롭게 부활하리라는 신화적인 주장은 파시스트들이 민족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민족은 하나의 유기체로서 공동의 운명을 가지며, 유기체의 부분을 이루는 각 구성원은 사사로운 개인의 삶을 버리고 민족에 스스로를 바쳐야 하며 그래야만 개인의 한계를 초월한 더 높은 실체의 일부가 되어 인정 받을 수 있다. 이점에서 파시즘은 자유주의, 다원주의 등과 양립할 수 없는 국수주의적인 형태를 가진다. 파시스트들의 민족 구원의 신화에선 민족 공동체의 부흥을 위한 합당한 구성원과 그렇지 않는 구성원이 구분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런 주장을 밀어붙인다. 파시즘 정권에서 자유주의, 개인주의, 마르크스주의, 유대인, 성소수자, 장애인들이 민족 퇴폐의 주범으로 낙인 찍혀 탄압을 받은 것은 이러한 민족 공동체의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23]

파시스트들은 운터멘쉬에 대한 탄압을 자행할 뿐만 아니라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울 파시스트적 신인류를 만들어 내길 원한다. 신인류는 자유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기존의 인간과는 달리 민족의 구원에 대한 헌신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버린다. 1차대전의 참화 속에서 기존 세속사회의 계급 차이를 넘어 민족을 위해 단결하여 폭력으로 조국을 구하고자 했던 인간 처럼, 좌파와 우파,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같은 구분이 없이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제3의 인간형이다. 공동체의 적을 제거하고 신인간을 창조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는 파시스트 민족 신화는 파시즘에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적인 특징을 지니게 한다. 이 과정을 위해 파시스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면에서 인간의 삶을 통제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전체주의적인 수단과 권력을 공공연히 주장하며 자랑스럽게 내세운다.[24] 이 과정에서 계급 정체성이 사라지고 민족 공동체에 대한 신화만 남으므르 파시즘은 다양한 직업 집단과 모든 사회 계급을 아우르는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25]

파시즘은 변화를 위한 급진적인 해결책을 원하므로 필연적으로 혁명적인 성격을 가진다. 파시즘은 역사를 뒤로 돌리고자 하는 단순한 반동세력과는 다르며, 현상 유지를 원하는 자유주의, 보수주의 세력과도 궤를 달리한다. 파시즘은 분명 일종의 근대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자유주의 같은 근대 이념은 부정했지만 근대의 기본적인 자본주의적인 체제와 과학같은 물질적인 성과는 긍정했다는 점에서 "반동적 근대주의(reactionary modernism)"라고 규정될 수도 있다.[26] 파시즘의 이러한 극단적인 융합은 파시스트의 민족 공동체 신화를 위해서 방해되는 것은 모조리 파괴하려 한다는 점에서 능동적 허무주의의 일종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27] 이 점에서 합의파는 파시즘을 기존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거부하고 민족공동체의 재탄생을 통해 실현될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제3의 위치의 일종으로 분석하고 있다.[28]


5. 파시즘의 특징[편집]




5.1. 좌익의 수사를 기회주의적으로 취사선택한 극우파[편집]


파시즘에 대한 초기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1933년 코민테른의 테제이다. 이에 따르면, 파시즘이란 “금융 자본의 가장 반동적이고 국수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인 분파의 공공연한 테러 독재”이다. 이 공식 해석에서 파시즘은 명백히 ‘자본주의의 도구’이거나 ‘대자본의 대리인’으로 간주된다. 물론 파시즘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당대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파시스트 운동에서 확인되는 소부르주아 대중의지지 기반을 강조함으로써 파시즘에 대한 좀더 복합적인 해석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양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들은 기본적으로 파시즘을 자본주의적 계급 관계의 맥락에서 파악하며 그 속에서 대자본의 영향력이 관철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동일한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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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처럼 파시즘과 대자본의 결탁을 강조하는 해석은 다양한 논자들에 의해 강력히 비판받았다. 이미 오래 전에 데 펠리체(Renzo De Felice)는 파시스트 당의 후원금 기록에 의거하여 파시스트 운동의 실제 기부자들이 개별 동조자들, 상인들, 중소 사업가들, 전문직 종사자들이었음을 밝히면서 거대 자본가들이 파시즘의 강력한 후원 세력이었다는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을 반박한 바 있다. 특히 데 펠리체의 견해의 연장선상에서 멜로그라니(Piero Melograni)의 수정주의적 해석은 파시즘과 자본주의의 관계라는 테마와 관련하여 새로운 정통 해석으로 자리잡은 듯하다. 그는 제조업 분야의 거대 기업가들이 파시스트 생디칼리슴과 같은 파시즘 내부의 급진적인 경향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는 점을 밝히면서 기업가들이 파시즘을 통제하고 조종했다고 볼 수 없고 파시즘이 대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었다고 주장했다. 확실히 이러한 견해는 파시즘을 자본주의적 계급 관계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전통적인 관점-다양한 방식으로 마르크스주의적 방법론에서 영향을 받은-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함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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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3일, 밀라노의 산 세폴크로(San Sepolcro) 광장에서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와 190여 명의 파시스트들이 훗날의 ‘파시스트 국민당(Partito nazionale fascista, PNF)’의 전신인 ‘이탈리아 전투단(Fasci italiani dicombattimento)’을 결성했다. 이렇게 파시즘이 이탈리아의 정치 무대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좌파 운동의 한 변종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초기 운동에 가담한 자들의 경력이 그렇게 보였다. 초기 파시스트들은 대부분 왕년의 공화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 생디칼리스트들이었다. 미래주의자들도 우상파괴적인 문화적 좌파로 보였다. 더욱이 전투단이 내건 구호들, 그러니까 21세 이상의 성인남녀의 보통선거권, 상원의 폐지, 8시간 노동제,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 반교권주의 등은 그 자체 혁명적이지는 않더라도 민주주의를 달성하고 국가를 혁신하려는 좌파적 강령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데 펠리체는 이탈리아 파시즘이(독일 나치즘과는 달리) 그 기원상 좌익 급진주의의 특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그러나 파시즘이 갖는 정치적 좌파의 이미지는 곧 불식되었다. 파시스트들은 ‘볼셰비즘의 위협으로부터 조국을 구하자’라는 구호 아래 사회당 건물과 노동조합 사무실을 방화하고 사회주의자들과 노동 운동가들에게 린치를 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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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사실들로 미루어볼 때, 파시즘은 데 펠리체의 생각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정치적 좌파라기보다는 오히려 우파로 인식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톰슨(Doug Thompson)은 파시즘이 줄곧 강조한 바 있는 민족이 “훈육되어야” 하며 강력한 법률에 의해 지배 계급의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부와 특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우파 이데올로기의 핵심이라고 본다. 맨(Michael Mann)도 파시즘이 질서를 숭배하고 사적소유권을 보호하며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와 유기적 민족주의를 포용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우파에 속하는 운동임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는 파시즘을 정치적 우파의 계보에 위치시키는 것만으로는 파시즘의 특성을 이해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아래로부터의 대중동원과 준군사주의(paramilitarism)가 보통의 권위주의로부터 파시즘을 구별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톰슨도 전통적 우파에서는 볼 수 없는 파시즘만의 새로움이 “모든 이탈리아인들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에 더 이상 천착하지는 않으며, 파시즘과 우파 정치의 공통성을 강조하는 데 주력한다. 따라서 파시즘이 종래의 우파와 구별되는 지점을 좀더 분명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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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포는 파시즘 내부에 극우 민족주의 이외에도 극좌 생디칼리슴의 경향이 있음에도 주목한다. 이 ‘혁명적’ 생디칼리슴은 점차 ‘민족적’ 생디칼리슴으로 변형되었는데, 여기서 유의할 대목은 이탈리아의 생디칼리스트들이 혁명을 대체하여 민족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혁명의 주체로서 계급 대신 민족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견해는 파시즘의 분석에 좌/우의 구별뿐만 아니라 급진/온건의 범주도 도입해야함을 시사한다. 사실 루포는 파시즘이 급진주의에 기초한 “20세기에 전형적인 우파의 새로운 존재 방식” 즉 “새로운 우파”라 본다. 그리고 이 때의 급진주의란 정치적 내용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행위 형태의 측면에서 규정된다. 즉 급진주의자는 현재의 상태와 거리가 멀면 멀수록 좋은 것이라는 믿음 아래 미래를 위해 투쟁하며 낡은 세계와의 타협을 경멸하고 이념들과 계급들과 민족들 사이의 공공연한 투쟁의 이념을 고양시키려는 새로운 정치 양식의 옹호자로 간주된다. 결국 이렇게 보면 파시즘은 보수적인 내용을 급진적인(혹은 혁명적인) 방식으로 제기한 새로운 정치 현상인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파시즘의 급진성이 파시스트들과 기업가들이 충돌하게 된 주요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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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스트들과 기업가들의 그러한 불편한 관계는 공공연한 충돌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그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토리노 파시즘의 지도자 데 베키(Cesare Maria De Vecchi)와 아넬리의 관계이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충돌은 데 베키가 피아트 노동자들의 분노를 이용할 심산으로 해고 노동자들을 원조하기 위해 ‘노동기금’을 만들려고 한 1920년 11월 중순에 발생했다. 그런 가운데 이듬해 1월 17일, 데 베키는 아넬리의 사저 앞에서 피아트 해고 노동자들의 ‘샤리바리(charivari)’를 조직함으로써 그와의 정면대결을 불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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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에도 파시즘과 피아트의 정략결혼은 굳건히 유지되었다. 그러나 두 배우자는 같은 침상에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피아트의 전망은 더 많은 이윤과 경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 반면에 파시즘은 전체주의적 권력 독점의 전망 아래에서 사회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부단히 증대시키려고 했다. 물론 이 두 개의 전망은 상당 부분 겹쳐 있었다. 국가가 기업의 특권을 존중해주는 한 국가 통제는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기업이 더 많이 생산할수록 기업은 파시즘의 전체주의적 야심을 실현할 수 있는 확고한 경제적 군사적 기반이 되었다. 그렇지만 기업이 자신의 이윤과 자유를 희생하지 않으려고 할 때, 그것은 파시스트들의 눈에 전체주의 체제에 어울리지 않는 자본주의적 탐욕의 결정체로, 혹은 부도덕한 경제 동물로 비쳤다. 그런가하면 파시스트들이 국가의 우월성을 극한으로 추구할 때, 그것은 기업가들의 눈에 자본주의적 질서를 위협하는 전체주의적 권력의 화신으로, 혹은 현대 자본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야만인들로 비쳤다. 요컨대 기업이 이윤의 논리에 묶여있었다면 파시즘은 권력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양자 사이에는 근원적으로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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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6월 10일, 무솔리니가 베네치아 궁의 발코니에서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탈리아가 2차대전에 참전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와의 알프스 전투, 그리고 잇따른 그리스 및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전쟁이 개시되고 전황이 신통치 않자 무솔리니는 책임을 다른 데로 떠넘기려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부르주아’가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차노(Galeazzo Ciano)는 1940년 8월 12일자 일기에서 부르주아에 대한 무솔리니의 적의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나는 소심하고 비열한 부르주아에 대한 공격을 개시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물리적으로 파괴할 필요가 있고, 아마 그 중 20% 정도만, 꼭 그만큼만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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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피아트가 차츰 전열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1942년 11~12월 연합구의 토리노 폭격으로 피아트는 참혹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 비상사태에서 발레타는 파시스트 당 고위관료들이 보여준 무능력과 무책임에서 피아트가 느낀 실망감과 불쾌감을 “어느 누구도 감히 입 밖에 내뱉을 수 없는 표현으로써” 그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했다. 피아트의 체제 이탈을 가속화시킨 계기는 1943년 3월의 토리노 대파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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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1943년 3월의 토리노 대파업 이후 피아트가 보인 행보는 퍽 의미심장하다. 회사의 내부 문서들을 보면, 4월부터 피아트가 군부 고위층 및 왕실 핵심 인사들과 접촉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하면 1935년에 사망한 아넬리의 아들이자 피아트의 ‘황태자’ 에도아르도(Edoardo)의 후임으로 피아트 최고경영진에 합류한 반파시스트 자유주의자 비스콘티 베노스타 후작(marchese Giovanni Visconti Venosta)이 비슷한 시기에 옛 자유주의자들 및 졸리티주의자들과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었다. 그리고 7월에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한 직후에는 피아트에서 미국 모건은행을 대표하고 있었던 품미(Giovanni Fummi)가 연합국과의 직접적인 통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3월 파업이 갖는 전환점으로서의 성격은 비단 피아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파업 직후 도네가니, 피렐리, 볼피(Volpi)와 같은 주요 기업가들이 연합국 측과 접촉하려고 한 증거들이 있다. 요컨대 3월 파업 이후 피아트 경영진은 물론이요. 상층 부르주아지의 중요한 일부가 파시즘의 붕괴 이전에 그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시즘 편에서도 중요한 변화들이 있었다. 무솔리니는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 직후인 1943년 7월 24~25일에 그란디(Dino Grandi)가 주도한 파시스트 최고평의회의 ‘궁정 쿠데타’에 의해 실각하고 그란 사소(Gran Sasso)의 요새에 감금되었다. 그는 독일 공수부대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뒤, 1943년 9월 18일 북부에서 독일군의 후원과 재건된 파시스트 조직들을 토대로 이탈리아 사회공화국(Repubblica Social Italiana)을 수립했다. 이 즈음 무솔리니는 자신의 몰락을 설명하는 논리를 개발했는데, 이른바 ‘부르주아지의 배신’이라는 테제가 그것이다. “부르주아지가 배신했다. 우리는 교활한 산업과 그에 못지않게 교활한 은행을 갖고 있다” 이제 파시즘과 부르주아지의 균열은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이상의 과정을 거치면서 파시즘의 집권 이후 줄곧 유지되었던 파시즘과 피아트의 정략결혼의 관계는 끝이 났다. 피아트의 이탈이 이미 파시즘의 붕괴 이전에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양자의 관계 결렬은 예정된 이혼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파경은 다른 배우자의 사망, 혹은 사망이 유력해보이던 시점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차라리 사별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이든, 양자의 관계 결렬은 이미 정략결혼 직후부터 잠재해있던 (그러나 종종 수면 위로 부상했던) 긴장과 갈등이 사실상의 패전을 배경으로 표면화된 것이었다. 패전의 상황은 기업가들에게는 과거와의 단절과 적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을 맹목적으로 외치는 파시즘의 관념적인 급진적 성향을, 그리고 파시즘에게는 오직 자신의 생존과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돌보려는 기업가들의 물질적인 부르주아적 성향을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파시즘은 우파 정치와 급진주의를 결합한 새로운 정치 운동으로서 이탈리아의 정치 무대에 등장하여 놀랍도록 짧은 시간 안에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미 운동 초기부터 확인되는 파시즘의 정치적 우파 성향과 급진주의적 색채는 비록 시기에 따라 형태와 의미를 달리 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파시즘이 몰락할 때까지 공존하면서 파시즘과 대기업의 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변수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먼저 톰슨, 맨, 루포 등의 논의를 토대로 파시즘의 우파정치와 급진주의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 뒤, 이 두 가지 요소들 중 어느 하나를 특권화시키는 대신 두 요소 모두에 관심을 안배하면서 시기에 따라 변화하는 파시즘과 대기업의 관계를 피아트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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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을 그 자체 권위주의적 우파의 정치적 경향성과 전체주의로 이끌리는 급진적 정치 양식이 모순적인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는 현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파시즘의 그러한 모순성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그것이 보여준 파괴력과 동시 그 한계를 단순한 상황론이나 본질환원론이 아니라 철저하게 파시즘의 내적 논리에 따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될 것이다.

장문석, 이탈리아 파시즘과 대기업 : 피아트의 사례를 중심으로, 역사교육, 2005, vol., no.95, pp. 243-274 (32 pages)#


파시즘은 우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라기보다는 우파이면서 동시에 좌파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끝으로 파시즘은 카테고리 상으로 명확히 구별되기보다는 우파에서 좌파로 연속되는 폭넓은 정치적 스펙트럼 속에서 식별된다. 이로부터 ‘일반적 개념으로서의 파시즘’에 대한 합의 학파의 정의가 전제하고 있는 파시즘의 고정된 ‘본성’을 상정하기보다는 파시즘을 변화하는 ‘과정’과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장문석, 파시즘의 알리바이? :1930년대 영국과 프랑스의 파시즘을 둘러싼 쟁점과 시각, 영국연구, 2013, vol., no.29, pp. 209-240 (32 pages)#


파시즘이 2차 세계대전 시기의 후기 파시즘의 극우적 모습이 주로 알려져 있지만, 1차세계대전 전후와 경제대공황시기의 초기 파시즘은 극좌적 성격이 강했다. 파시즘의 기원인 파쇼는 원래 이탈리아의 사회주의 공동체에서 사용하던 이름이었으며, 초기 파시즘 운동은 공산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물론 파시즘은 극단적인 민족주의 사상이므로 극우적 요소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파시즘을 극우로 분류한 것은 파시즘이 자본가들의 사주를 받은 하수인이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독점자본주의 이론 때문이었는데, 이것은 모순과 한계로 비판받고 사장되었다. 오늘날 파시즘을 극우로 분류하는 경우에는 파시즘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지적하지, 파시즘이 극단적 자본주의였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없다. 파시즘이 극우적 사상이라는 통설은 1980년대 제브 스테른헬(Zeev Sternhell)이 출간한 저서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Neither Right Nor Left)를 통하여 도전받았다. 그는 왕정복고 근왕주의적 양상이 있는 파시즘들을 극우 파시즘으로, 생디칼리슴과 사회주의 노동조합운동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 파시즘을 극좌적 파시즘으로 분류했다. 제브 스테른헬은 이탈리아 파시즘이 조르주 소렐[29]이나 조반니 젠틸레 같은 아나키스트나 공산주의자와의 연관된 사실을 지적하였다. 로버트 팩스턴 역시도, 무솔리니는 집권한 이후에도 스스로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파시즘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기회주의적 포퓰리즘 세력이며, 파시즘 내에서는 파시즘 좌파와 파시즘 우파가 공존했다고 말하였다. 이렇게 좌파도 우파도 아니라는 지적에 반대하여, 좌파인 동시에 우파였다는 의견도 있으며,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을 거쳐서 '혁명적 우파로' 전환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파시즘이 민족주의라는 극우적 본질을 사회주의의 이론체계를 통해 구현하려고 한 '혁명적 민족주의'라고 본다. 파시즘의 스펙트럼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냐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초기 파시즘은 극좌적 성향이 강했으나, 2차 세계대전 시기의 후기 파시즘에서는 극우적 성향이 강화되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이러한 좌우 스펙트럼에 대한 논의는 1980년대의 스테른헬 논쟁이후로 벌어진 비교적 최신의 연구동향이므로, 1970년대와 같은 옛날 논문에서는, 지금은 학계에서 사장된 독점자본주의 이론의 흔적이 있다.

파시즘적 생디칼리슴과 같은 조합주의 등은 사회주의적 요소라고 볼 수는 있지만,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를 사회주의의 주체로 보는 마르크스 사회주의와는 다르다. 이것은 기업의 이익과 노동자들의 이익을 파시즘 국가가 통제하는 구조를 일컫는 것이다. 이런 구상들은 집권 이전 포퓰리즘적 구호로 이용되었을 뿐 실제로 파시스트들이 집권하게 되면 이들이 과거에 내세웠던 이데올로기적 정책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총통이나 두체(Duce)에 대한 충성만을 강조한다. "총통은 독일이며 독일은 총통이다"라는 유명한 구호가 이를 증명하며, 나치당의 강령 등을 내세워 사회주의적 요소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히틀러 본인의 행동[30]등 이러한 파시즘의 특성에 대해서 영국의 여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독특한 해석을 한 바 있는데 그녀에 따르면 파쇼란, 대부분 자의식 과잉에 빠져있는 이들이 파쇼가 되기 때문에 항시 자기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세우려 한다고 해석했다. 파쇼들은 기존의 여타 사회 집단에 적대적인 것은 물론이고 같은 파쇼들 사이에서도 적대적인 권력 암투를 계속하기 때문에[31] 충분히 일리가 있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파쇼들이 마르크스 사회주의 노선을 걷지 않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부정하는 제3의 위치[32]를 취하게 된 원인에는 많은 연구가 있다. 파쇼들 중에는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가입한 사람들도 있었고, 파시즘의 민족 공동체에 관한 아이디어는 대부분 아나키즘에서 유입된 것이다. 노동계급이 국민국가와의 협조로 민족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개념은 분명 생디칼리즘의 영향이다.[33] 때문에 이 문제는 더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일단 알아둬야 할 점은, 파쇼들은 어떠한 특정한 사상의 공유를 통해서 생성된 철학적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파시즘이 먼저 있고 그를 공유하는 파쇼들이 파시즘의 가치 아래 모인 것이 아니라, 파쇼라는 집단이 먼저 모여서 활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외부에서 파쇼들의 언행 등을 관찰하다가 정립한 개념이 파시즘이라는 것이다. 파쇼들이 서로 모이게 된 배경은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가 심각하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 부조리의 원인이 되는 암적 요소들을 제거해야 된다"는 비교적 원초적인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다는 게 통설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파쇼들이 마르크스 사회주의 노선을 걷지 않은 원인이 비교적 명확해진다. 1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심각한 정치적 혼란을 겪었는데, 그 중심에 있던 것이 볼셰비즘 혁명가들이었다. 이들은 맑시즘이 볼셰비즘으로 완성(?)된 이후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에 있던 기존의 사회주의자들과는 차이가 있다.[34] 지금도 같은 사회주의 진영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을 비판할 때 자주 나오는 얘기지만 소련이 형성된 이후에는 유럽 전역에 직업적인 혁명가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는데, 이걸 굳이 나쁘게 말하자면 밥만 먹고 다른 사람 마녀사냥이나 하러 다니는 인간들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이런 혁명가들 중 소련 외부에서 활동한 이들은 결국 "우리도 공화국이 돼서 연방에 가입하자"는 주장을 할 뿐이니 마치 외세를 떠받들자는 주장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런 "마녀사냥"과 "매국 행위"에 대항하여 사회의 기본 형태를 지켜야된다는 식의 경계심이 폭발하여 끝내 광기로 이어진 것이 파시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35]

경제혼란기에 노동자와 빈민계층이 사회주의 사상에 몰리면, 공산혁명을 방지하기 위하여 자본가와 대기업이 파시즘을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는 기존 정치권의 자유주의자들마저 공통적으로 보이던 행동이다.[36]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파시즘이 태동했던 대도시 밀라노가 아니라 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라는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가난한 농촌이었다. 이 농촌의 지주 계급들은 사회주의 사상이 퍼져 자신들의 지배권에 위협이 될까 두려워해 파시즘을 지원한 것이었다. 또한 파시즘이란 사상 자체의 기회주의적인 면도[37] 종래의 경제체제를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그대로 내버려두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

그렇다고 파시즘을 단순히 공산주의자들 때려잡으라고 보수가 키운 극우라고 정의하면 크나큰 오류가 생긴다. 대기업들이 나치당에게 지원을 해준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그보다 훨씬 많은 지원을 전통적 보수세력에게 했었다. 기업 관련 기록 문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독일 기업가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할 수 있겠다는 기미만 보이면 어떤 비사회주의 계열에도 지원을 해줬었다. 쉽게 말하자면, 분산투자를 한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시즘 정당이 진짜로 행했던 반 자본주의적 행동을 설명할수 없게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나치당은 1932년 말에 모든 기업 트러스트를 없애는 법안을 지지하고 베를린 운송 노동자 파업에서 공산주의자들과 협력했다.[38] 또한 검은 오케스트라에 의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융커와 군부같은 전통적인 보수 기득권 세력은, 나치와 어느 정도 대립관계를 형성했으며, 군부에서는 히틀러를 보헤미안 상병이라고 조롱했다.

또한 파시스트들은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한다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기업들에게 군수품의 생산량을 할당하며 통제하는 전시계획경제를 시행하였는데, 나치당은 군비경제계획에 부응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와 생산을 강력히 통제하였다.#

파시즘은 근본적으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체계이기 때문에 자본가들 역시 정권에 충성을 바치지 않으면 상당히 인생이 팍팍해지게 된다. 또한 파시즘의 가장 깊은 기반은 "생계수단이 없으며 사회에 무차별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무법자들"에 있기 때문에[39] 파시즘도 최종적인 목표는 기존 경제체제의 전복이었다. 그러나 이미 파시스트 본인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부정했으므로, 파시즘이 결국 혁명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전쟁이였다. 즉, 어느 정도 우발적으로 벌어진 면이 있었던 1차 대전과 달리 2차 대전의 경우는 파시즘에 의해 사실상 의도적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5.2. 협동조합주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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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지도자 원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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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미래주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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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우르 파시즘[편집]


우르 파시즘은 여전히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으며, 때로는 사복을 입고있다. 만일 누군가가 "나는 아우슈비츠를 다시 열고 싶어, 검은 셔츠단이 다시 이탈리아 광장을 행진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쉬운 일일 것이다.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르 파시즘은 가장 무해한 가면을 쓰고서 되돌아올 수 있다. 우리의 의무는 날마다 세계 어디서든 새로이 등장하는 파시즘을 폭로하고 규탄하는 것이다.

— 움베로토 에코, 우르 파시즘 #

움베르토 에코는 파시즘이 단일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몇가지 특징적 요소를 중심으로 응축되는 유기적인 사상이라고 주장한다. 아래의 모든 특징을 충족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에세이 우르 파시즘(ur-fascism)은[40] 그 특징을 다음 14가지로 나열한다.

1. 전통 숭배
파시스트의 전통 문화는 배타적이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신비로운 과거의 역사를 파해치고 경외하기 위해 온갖 이론과 오컬트 등을 이용하는 것엔 관용적인 극도로 모순적이고 혼합주의적인 특징을 갖는다. 결과적으로 파시스트들이 원하는 사실은 이미 잠들어 있는 채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해석으로 어떠한 지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모호한 해석만이 이어질 뿐이다. 율리우스 에볼라가 이 방면에서 악명이 높다.

2. 근대성의 부정
일반적으로 전통주의자들은 과학 기술이 전통적 정신을 해친다고 생각해서 부정적으로 보지만, 과거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은 과학기술을 숭배했다. 이 처럼 계몽주의의 유산인 자유주의, 합리주의, 인권 등은 부정하나 그것의 물질적인 산물인 과학과 생산력 등을 긍정하는 것을 반동적 근대주의라고 한다.

3. 행동을 위한 행동 숭배
행동은 지적인 성찰이 있기 전에 이루어져야 하며, 생각은 거세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에코는 이러한 특징이 비합리주의와 반지성주의와 연계되어 있다고 한다.

4. 비동의는 반역이다.
비판적 사고는 차이를 만들며, 차이는 근대성의 징후이다. 현대 과학계에서 비동의는 지적 분석과 지식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서 존중된다. 파시스트는 비판적 사고가 파시즘의 부조리와 모순을 폭로시킬 것을 두려워 하여 이를 반역죄로 탄압한다.

5. 다름에 대한 공포
파시스트는 낯선 것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를 이용하고 악화시켜 포퓰리즘적인 동의를 이끌어낸다. 공동체 내외부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선동이 대표적이다.

6. 좌절한 계층에 대한 호소
역사적으로 파시즘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좌절한 중간 계급을 향한 호소였다. 옛 프롤레타리아가 쁘띠 부르주아가 되고있는 오늘날, 미래의 파시즘은 새로운 다수로 부터 지지세력을 얻고자할 것이다.

7. 음모론에 대한 집착
뚜렷한 사회적 정체성을 박탈당한 이들에게 파시스트는 일종의 민족주의에 기반한 소속감을 부여한다. 파시스트가 민족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국가의 적이다. 따라서 파시스트 사고의 뿌리에는 국제적인 음모에 대한 집착이 있다. 추종자들은 포위당하고 있다고 느껴야 한다. 나치의 유대인 음모론과, 오늘날 온갖 음모론을 혼합시킨 큐애넌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8. 적은 강하면서 약하다.
파시스트는 추종자들의 굴욕감과 원한을 선동하기 위해 강하고 사악한 적을 상정하지만, 그들은 결국 인민의 압도적인 의지에 패배할 것이다. 즉 파시스트 레토릭에서 적들은 강하지만 약하기도 한것이다. 나치 프로파간다에서 유대인은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초월적인 존재지만, 동시에 유전적 결함을 가진 열등인간 이었다.

9. 평화주의는 이적행위다.
파시즘 논리에선 투쟁은 삶은 위한 것이 아니며 삶이 곧 투쟁을 위한 것이다. 여기엔 모순이 존재한다. 파시스트들은 민족의 궁극적인 승리를 위하여 영원한 전쟁을 부르짖으나, 최종적으로 승리한다면 적들이 사라짐으로써 영원한 평화가 도래해야 한다. 파시스트들은 이런 모순논리를 해결하지 않는다.

10. 약함에 대한 경멸
파시즘은 대중적 엘리트주의를 주장한다. 모든 시민은 세계에서 가장 우월한 민족이며 당원은 시민들 중에서도 우월하다. 지도자는 자신의 권력이 민주적으로 위임된 것이 아닌 대중의 약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며 대중이 지배 받아야 하는 무력한 존재라 생각한다. 집단은 군사적인 위계질서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상관은 그들의 부하를 멸시한다. 이런식으로 대중적 엘리트주의가 강화된다.

11. 영웅을 위한 교육
모든 신화에서 영웅이란 예외적인 존재이지만, 파시스트는 영웅주의를 일반적 규범으로 만든다. 이 영웅주의에 대한 숭배는 죽음에 대한 숭배와 이어진다. 파시스트는 영웅적인 삶에 대한 최고의 보상으로 선전된 영웅적인 죽음(카미카제 같은)을 갈망한다.

12. 남성성 숭배
영원한 전쟁과 영웅주의는 어려운 일이기에 파시스트는 자신의 권력욕을 성적인 문제로 이전한다. 여성에 대한 업신여김 그리고 동정에서 동성애에 이르기 까지 비표준적인 성적 특징에 대한 비난과 편협함 등이 있다.

13. 선택적 포퓰리즘
민주사회에서 시민은 개인의 권리를 갖지만 양적인 수치에 의해서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에게 개인은 개인으로서의 선천적인 권리가 없으며, 민중은 공통의 의지를 가진 단일체로 여겨진다. 대중은 만장일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지도자는 자신이 민중의 의지의 옳은 해석자임을 자처한다. 여기서 민중이라는 표현은 그저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 파시스트는 이 방식으로 기존 기관이 민중의 의지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민주적 기관의 파괴를 정당화한다.

14. 신어
파시스트는 비판적 사고를 억제하기 위해 빈약한 어휘를 사용하고 언어를 통제한다.



6. 파시즘 국가/정당 목록[편집]



6.1. 국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파시즘/국가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2. 정당[편집]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다양한 형태에 부합하는 국가 와 정당, 조직 및 운동, 별 목록. 이중에서는 파시즘이 아니었다고 반박하는 주장도 있으니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가 붙은 정당은 논란이 있는 경우.

지역
정당
년도
지도자
이념
국가
유럽
국가 파시스트당
1921년~1943년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파시즘
이탈리아
산마리노 파시스트당(PFS)
1922년~1944년
줄리아노 고지
이탈리아 파시즘[41]
산마리노
주데텐란트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당
1930년대
???
범게르만주의, 나치즘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1920년~1945년
아돌프 히틀러
나치즘
독일국
독일 사회주의 국가당
1947년~1952년
오토 에른스트 레머
나치즘
독일연방공화국
오스트리아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
1918년~1938년
발터 리엘(Walter Riehl)
나치즘
오스트리아
조국전선
1933년~1938년
엥겔베르트 돌푸스[42], 쿠르트 슈슈니크
오스트로파시즘[43]
오스트리아
화살십자당
1939년~1945년
살러시 페렌츠
나치즘
헝가리 왕국[44]
전위조국당[45]
1927년~1941년
코르넬리우 젤레아 코드레아누, 호리아 시마
나치즘
루마니아[46]
네덜란드 국가 사회주의 운동
1931년~1945년
안톤 뮈세르트
나치즘
네덜란드[47]
렉스당
1935년~1945년
레옹 드그렐
나치즘
벨기에[48]
국가사회주의 덴마크 노동자 당
1930년~1945년
프리츠 클라우센
나치즘
덴마크[49]
국가사회주의 스웨덴 노동자 당
1933년~1945년
스벤 올로프 린드홀름(Sven Olov Lindholm)
나치즘
스웨덴
국민연합
1933년~1945년
비드쿤 크비슬링
나치즘
노르웨이
팔랑헤(통합 팔랑헤☆)
1921년~1977년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50],프란시스코 프랑코
국민생디칼리즘
스페인 제2공화국, 스페인국
국민대중행동
1930년~1974년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국민생디칼리즘
포르투갈
국가조합주의당
1932년~1934년
프란시스코 롤라오 프레토
나치즘
포르투갈
프루동 모임 (Cercle Proudhon)
1911년~1914년
조르주 발루아(Georges Valois)
프로토파시즘, 프랑스 파시즘
프랑스[51]
르 페소(Le Faisceau)[52]
1925년~1928년
조르주 발루아(Georges Valois)
프랑스 파시즘
프랑스[53]
불의 십자단(Croix de Feu)☆
1927년~1936년
프랑수아 드 라 로크
프랑스 파시즘
프랑스[54]
프랑스 인민당(French Popular Party)
1936년~1945년
자크 도리오
나치즘
프랑스
우스타샤
1929년~1945년
안테 파벨리치
나치즘
크로아티아
라푸아 운동
1929년~1932년(-1944년)
비흐토리 코솔라
나치즘
핀란드
육군전우협회(Army Comrades Association-ACA)
1932년~1933년
이오인 오더피
파시즘
아일랜드
신당(New Party)[55]
1931년~1932년
오스왈드 모슬리
영국 파시즘
영국
영국 파시스트 연합(British Union of Fascists-BUF)
1932년~1940년
오스왈드 모슬리
영국 파시즘
영국[56]
페르콘크루스츠(Pērkonkrusts)[57]
1921년~1943년
구스타우스 첼민슈(Gustavs Celmiņš)
나치즘
라트비아
알바니아 파시스트당[58]
1939년~1943년
테픽 모르자
이탈리아 파시즘
알바니아
공화 파시스트당[59]
1943년~1945년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파시즘
이탈리아
아메리카
브라질 통합주의 행동[60]
1932년~1937년
플리니오 살가도(plinio salgado)
|국민생디칼리즘
브라질
민족 해방 동맹(Alianza Libertadora Nacionalista-ALN)
1931년~1955년
후안 발리스타 몰티나(Juan Bautista Molina)
아르헨티나 파시즘
아르헨티나
아메리카 은색 군단(Silver Legion of America)
1933년~1941년
윌리엄 더들리 펠리(William Dudley Pelley)
나치즘
미국
아프리카
남아프리카 기독교 국가 사회주의 운동(Suid-Afrikaanse Nie-Joodse Nasionaal-Sosialistiese Beweging)[61]
1930년~1940년
루이스 바이하르트(Louis Weichardt)
나치즘
남아프리카 공화국
오서바브란트바흐(Ossewabrandwag)
1939년~1952년
요하너스 판 렌스뷔르흐(Johannes Van Rensburg)
나치즘
남아프리카 공화국

6.3. 인물[편집]


파시즘 을 여러 측면과 시각으로 구분짓는 인물들의 국가와 출생과 사망,

지역
관련자
출생
사망
국적
분파
유럽
베니토 무솔리니
1883년 7월 29일
1945년 4월 28일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파시즘
아돌프 히틀러
1889년 4월 20일
1945년 4월 30일
독일국
나치즘
에리히 루덴도르프
1865년 4월 9일
1937년 12월 20일
독일 제국
국가사회주의[62]
프란시스코 프랑코
1892년 12월 4일
1975년 11월 20일
스페인국
팔랑헤주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1889년 4월 28일
1970년 7월 27일
포르투갈 제2공화국
살라자르주의
미켈레 비앙키
1883년 7월 22일
1930년 2월 3일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파시즘
에드몬도 로소니
1884년 5월 6일
1965년 6월 8일
에밀리오 데 보노
1866년 3월 19일
1944년 1월 11일
비흐토리 코솔라
1884년 7월 10일
1936년 12월 14일
핀란드
교권 파시즘
프랑수아 드 라 로크
1885년 10월 6일
1946년 4월 28일
프랑스 제3공화국
프랑스 파시즘
비드쿤 크비슬링[63]
1887년 7월 18일
1945년 10월 24일
노르웨이
나치즘
안테 파벨리치
1889년 7월 14일
1959년 12월 28일
크로아티아
교권 파시즘
그레고어 슈트라서
1892년 5월 31일
1934년 6월 30일
독일국
나치즘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64]
1892년 7월 22일
1946년 10월 16일
오스트리아
나치즘
엥겔베르트 돌푸스
1892년 10월 4일
1934년 7월 25일
오스트리아 파시즘
헤르만 괴링
1893년 1월 12일
1946년 10월 15일
독일
나치즘
프리츠 클라우센
1893년 11월 12일
1947년 12월 5일
덴마크
안톤 뮈세르트
1894년 5월 11일
1946년 5월 7일
네덜란드
이탈로 발보
1896년 6월 6일
1940년 6월 28일
이탈리아
이탈리아 파시즘
오스왈드 모슬리
1896년 11월 16일
1980년 12월 3일
영국
영국 파시즘
살러시 페렌츠[65]
1897년 1월 6일
1946년 3월 12일
헝가리
나치즘
파울 요제프 괴벨스
1897년 10월 29일
1945년 5월 1일
독일
나치즘
쿠르트 슈슈니크
1897년 12월 14일
1977년 11월 18일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파시즘
자크 도리오
1898년 9월 26일
1945년 2월 22일
프랑스
프랑스 파시즘
코르넬리우 젤레아 코드레아누
1899년 9월 13일
1938년 11월 30일
루마니아
루마니아 파시즘
하인리히 힘러
1900년 10월 7일
1945년 5월 23일
독일
나치즘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
1903년 4월 24일
1936년 11월 20일
스페인
팔랑헤주의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66]
1905년 5월 23일
1936년 10월 29일
스페인
민족생디칼리슴[67]
윌리엄 조이스
1906년 4월 24일
1946년 1월 3일
영국
영국 파시즘
호리아 시마
1906년 7월 3일
1993년 5월 25일
루마니아
루마니아 파시즘
레옹 드그렐
1906년 6월 15일
1994년 3월 31일
벨기에
렉스주의
아시아
기타 잇키
1883년 4월 3일
1937년 8월 19일
일본 제국
국가개조론
쇼와유신론
오카와 슈메이
1886년 12월 6일
1957년 12월 24일
이시와라 간지
1889년 1월 18일
1949년 8월 15일
다치바나 고자부로
1893년 3월 18일
1974년 3월 30일
고노에 후미마로
1891년 10월 12일
1945년 12월 16일
대정익찬회
이범석
1900년 10월 20일
1972년 5월 11일
대한민국
일민주의
안호상
1902년 1월 23일
1999년 2월 21일
양우정
1907년 11월 15일
1975년 10월 11일
아메리카
후안 바티스타 몰리나
1882년
1958년경
아르헨티나
나치즘
윌리엄 더들리 펠리
1890년 3월 12일
1965년 6월 30일
미국
교권 파시즘
폴리누 사우가두
1895년 1월 22일
1975년 12월 8일
브라질
브라질 통합주의
프리츠 쿤
1896년 8월 15일
1951년 12월 14일
미국
나치즘


7. 파시즘의 분파[편집]


파시즘의 범위에 대해 여러 추측으로 나누어진다.

독일의 파시즘연구가 E.놀테는 파시즘을 유럽적인 현상이라고 이해하여,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 즉 1919∼1939년이라는 기간의 특유한 현상이라고 지적하였다. 이 입장에서는 유럽 이외의 현상인 일본의 군국주의(군부 파시즘)이나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는 문제가 되지 않고, 또 네오 파시즘운동이나 네오 나치즘운동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편, 대중사회이론(大衆社會理論)이나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 선 파시즘론에서는 현대사회의 모든 반동적 독재정치운동을 파시즘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대표적으로는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파시즘과 그 파생 사상들[68] 및 나치즘을 말한다.


7.1. 이탈리아 파시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탈리아 파시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파시스트 이탈리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국가 파시스트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2. 나치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나치 독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나치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3. 민족 생디칼리슴[편집]


스페인의 팔랑헤당과 포르투갈의 민족 생디칼리즘 운동이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도 파시스트 조합주의가 유행했었다.

7.3.1. 팔랑헤주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팔랑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3.1.1. 프랑코주의[편집]



7.3.2. 국민급진주의/통합주의[편집]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유행한 Integralism을 뜻한다.

7.3.2.1. 살라자르주의[편집]



7.4. 교권 파시즘(종교 파시즘)[편집]




7.4.1. 오스트리아 파시즘[편집]



1934년의 오스트리아 내전 이후로 사회민주당/공산당을 비롯한 기독사회당의 반대파 정당들이 청소되었으며 독재권력을 확립한 기독사회당은 스스로의 이름을 조국전선(Vaterländische Front)으로 바꾸고 오스트리아의 파시스트 역시 이탈리아 파시즘과 비슷하게 가톨릭의 교권주의와(교권 파시즘) 오스트리아 내셔널리즘, 협동조합주의 등을 조합하여 만든 오스트로파시즘(Austrofascism)을 기반으로 오스트리아 연방국을 통치했다. 그러나 나치즘 정당이었던 오스트리아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과 갈등이 점차 심해졌고 결국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으로 오스트리아 파시즘의 시대는 끝났다.

7.5. 네오 파시즘[편집]




8. 논란: 누가 파시즘인가?[편집]


파시즘은 좁은 의미로 이탈리아 왕국 안에서 무솔리니가 이끈 정치운동에 한정되어 서술되지만, 넓은 의미로는 그와 유사한 성격의 모든 운동들을 지칭한다. 이는 반파시즘적 정치 운동가들이 원색적인 비난을 위해 파시즘이란 단어를 오용한 것도 한몫하지만, 파시즘 체제 자체가 오랜 논의 없이 전쟁에서 패배하여 붕괴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8.1. 일본 파시즘[편집]





8.2. 프랑스 파시즘[편집]




8.3. 권위주의 국가인가? 파시즘 국가인가?[편집]


또한 우익 권위주의 국가는 싸잡혀서 파시즘 국가로 비난당하는 경우가 많고 이중에서도 프랑코스페인이나 살라자르포르투갈의 경우는 적어도 전체주의 국가에는 속한다는 분석이 많고 파시즘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서구학계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의 독재정권[69]은 파시즘의 정의에는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허나 이베리아 독재정권들이 추구한 조합주의(corporatist)적 경제방식이나 반정부적 인사들에 대한 수용소 건설, 무솔리니의 군사통치법 및 식민지에 대한 종주국의 의무(civilization) 등을 강조한 점, 아동들에게 교권주의적/군국주의적 관점을 세뇌시키는 등 보수반동적이었던 가톨릭 교회와 적극 협력하며 가톨릭 국가의 순수성과 피지배민족에 대한 우월성을 강조하고 그들(서사하라, 앙골라, 모잠비크 등)을 문명화를 시켜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목표를 보면 단순한 권위주의 정권들로 치부하기도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이 점에서는 서구 학계는 파시즘의 도구를 빌린 것으로 설명한다. 특히 스페인은 1945년 이후 프랑코가 추축국과 거리를 두면서 파시즘 색채가 빠져 50년대부터는 온건 파시즘 국가 정도로 통치가 완화(?)되었다.

8.4. 좌익 파시즘[편집]




8.5. 연구의 영역에 있는 파시즘[편집]


여러 학자들마다 서로간의 견해 차이로 인해 구분법 또한 나누어지게되는데 공통적으로 파시즘에 영향을 받은 다른나라들을 파시즘으로 보는가 아닌가에 따라 구분을 달리한다.

  • 유사 파시즘
    • 파시즘 연구자인 그리핀이 정의한 이념으로, 파시즘의 주요 특성인 대중운동, 팽창주의, 과격한 민족주의/국가주의/인종주의, 국가조합주의 등을 모두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어느정도의 개념을 차용해서 국가 통치의 기법으로 삼게된 사상이다. 대표적으로 교권주의자/민족주의자들과 타협해서 국가 통치의 핵심으로 이용한 살라자르의 포르투갈/메탁사스의 그리스 등이 있다. 또한 일본의 국가주의처럼 직접적으로 유럽 파시즘과는 관련이 없더라도 큰 틀에서의 팽창주의, 군국주의적 행동이 일치하면 유사 파시즘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 식민지 파시즘
    • 후지이 다케시 교수가 창안한 개념. 3세계에 흔히 보이는 우익 권위주의 독재자들은 파시스트인가 아닌가를 논하면서 나온 개념이다. 많은 3세계 국가들에게서 파시즘과 유사한 면모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몇가지만 지적하자면 지도자를 문화, 민족정체성의 상징으로 내세우고 열광적으로 숭배한다거나, 좌우파를 망라한 기존 정치를 경멸하고, 경제에 대한 공동체 및 국가 개입을 강조하는 면모 등이 있다. 이 때문에 후지이 다케시는 이탈리아나 나치 독일과 같이 제국주의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저항적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식민지 파시즘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바가 있다. 제6공화국 이전 대한민국과 현재의 북한, 중국 본토, 아프리카, 중남미, 이슬람권이 이 유형에 해당된다.

9. 참고 문헌[편집]


  • 파시즘, 로버트 팩스턴, 교양인.
  • 파시즘, 장문석, 책세상.
  • 파시즘, 캐빈 패스모어, 고유서가.
  • 장제스와 국민당 엘리티스트, 정두음, 선인.
  • 비시 신드롬, 앙리 루소, 휴머니스트.
  • 암흑의 대륙, 마크 마조워, 후마니타스.
  • 사회사상과 정치 이데올로기, 앤드류 헤이우드, 오름.
  • 영국 파시즘 연구 -대륙 파시즘과 구별되는 모슬리 파시즘의 특징들-, 김명환, 영국 연구 제11호.
  • 체임벌린의 후기 사상과 모슬리 파시즘의 비교, 김명환, 역사와경계 92, 부산경남사학회.
  • 모슬리의 조합국가론, 김명환, 역사와경계 50.
  • 모슬리 파시즘의 현실인식, 김명환, 영국 연구 제10호.
  • 프랑스 파시즘에 대한 논쟁, 김용우, 서양사론 제68호.
  • 1930년대 프랑스의 파시즘과 보수주의 -불의 십자가 논쟁과 그 문제점-, 김용우, 서양사론 제60호.
  • 프랑스 파시스트 이데올로기 형성에 관한 연구, 김용우, 서양사론 제45호.
  • 파시즘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김용우, 프랑스사연구 제32호.
  • 파시즘의 알리바이?, 장문석, 영국 연구 제29호.
  • 파시즘과 대중기반, 이국영, 국제정치논총 38(3), 한국국제정치학회.
  • 비교사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파시즘과 권위주의, 채오병, 경제와사회 111, 비판사회학회.
  • 루마니아의 파시즘, 엄태현, 동유럽발칸학 제8권 2호.
  • 열광의 정치: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박한규, 대한정치화회보 14집 3호,


10. 픽션에서의 파시즘[편집]



10.1. 픽션에서의 파시스트[편집]



11. 둘러보기[편집]





[1] 위의 문구는 ‘두개의 하나의 투쟁’.[2] 우표 왼쪽은 국가 파시스트당의 상징인 파스케스이고 오른쪽에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3] 전체주의란 표현도 무솔리니의 이러한 정의에서 시작되었다.[한글] 결속주의[4] Turner, Henry Ashby, Reappraisals of Fascism. New Viewpoints, 1975. p. 162.[5] https://archive.org/details/routledgecompani00davi/mode/2up[6] 막스 슈티르너 부류의 아나키즘[7] 에른스트 윙어의 노동자:그 형상과 지배에서 말하는 '아나크'라는 단어가 이 아나키라는 단어와 유사하다 보면 된다. 다만 아나키는 아니다.[8] 피우메 자유국, 피우메 음악국등으로 말해지나 정식 국명은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이다.[9] 속간에 묶여 있는 몽둥이는 태형을 집행할 권리를, 도끼는 사형을 집행할 권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동양에서 도끼를 부월이라고 부르며 도끼 모양이 임금 왕자가 된 것과 비슷한 원리[10] 학자나 개인에 따라서 파시즘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섞여 있을 수 있다[11] 민족주의와 다른 개념으로 쓰인다.[12] 대표적인 것이 바로 下位 春吉(Harukichi Shimoi)라는 인물로 일본인인데 이탈리아로 건너와서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 시기 같이 일하던 인물인데 당시 단눈치오는 이 사람을 이탈리아의 사무라이라며 높이 평가한다. 당시 초기 파시즘이 얼마나 반인종주의적임과 동시에 민족주의적인가를 알 수 있는 모습[13] 진짜 사회주의가 아니고 말 그대로 우리만의 새로운 사회주의를 만들자는 뜻이기에 사이비 사회주의이다.[14] 아나키즘에서의 그 아나키가 맞으나 실제로 에른스트 윙거의 소설과 노동자: 그 지배와 형상에서 쓴 아나크는 아나키즘에서의 아나키와는 거리가 멀다도 그 스스로가 말하였다.[15] 사랑은 아나크적이지만 결혼은 그렇지 못하며, 전사는 아나크적이지면 '병사'는 아니다, 우발적인 살인은 아나크적이지만 계획된 고의적 살인은 그렇지 못하다. 예수는 아나크적이지만 사도 바울은 그렇지 못하다. 즉 이미 아나크는 그 전에 있던 노동자적인에 익숙하다. - 노동자: 그 지배와 형상[16] 현재 민족볼셰비키라며 검과 망치를 이용한 휘장을 들고 다니는 이를 볼 수 있는데 바로 흑색전선이 처음 사용했던 휘장이다.[17] 스페인 태생의 철학자. https://plato.stanford.edu/entries/gasset/[18] 조지 오웰이 이런 말하길. 지금 사회에서의 파시즘은 개새끼와 동의어다."라고 했었다.[19] 개인 단위의 자유가 아닌 (1차대전 승전국의)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20] 다시를 뜻하는 그리스어 palin와 탄생을 의미하는 genesis의 합성어[21] Roger Griffin, "Revolution from the Right : Fascism," in David Parker, ed., Revolutions and Revolutionary Tradition in the West 1560-1989(London : Rout-ledge, 1999), p. 187.[22] David Gross, "Myth and Symbol in Georges Sorel," in Seymour Drescher, David Sabean, Allan Sharlin, eds., Political Symbolism in Modern Europe. Essays in Honor of George L. Mosse(New Brunswick : Transacion, 1982), pp. 100-117.[23] Jeremy Noakes, "Social Outcasts in the Third Reich," in Richard Bessel, ed., Life in the Third Reich(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pp. 83-96.[24] Benito Mussolini, The Doctrine of Fascism(Firenze : Vallecchi, 1938), p. 14.[25] Detlet Mühlberger, Hitler's Followers. Studies in the Sociology of the Nazi Movement(London : Routledge, 1911), p. 202.[26] Marshall Berman, L'Esperienza della Modernita(bologna : II Mulino, 1985), p. 26, Emilio Gentile, "The Conquest of Modernity : From Modernist Nationalism to Fascism," Modernism/Modernity 1(1993), p. 58[27] Roger Griffin, The Nature of Fascism, p. 47.[28] Zeev Sternhell, Naissance de l'Ideologie Fasciste, p. 11 ; George L. Mosse, The Fascist Revolution, pp. 7-11.[29] 다만 소렐은 아나키스트가 아니였다. 소위 말하는 '혁명적 조합주의'와 '아나키즘적 조합주의'는 다른 분류이며 소렐은 전자에 속하지 후자에 속하진 않는다.[30] 에른스트 룀을 숙청한 "장검의 밤" 때 나치당 내의 좌파적 인사들까지 함께 죽였다.[31] 무솔리니의 라스 숙청, 히틀러의 장검의 밤[32] 파시즘은 사실 당시의 좌익 사상과 우익 사상을 적절히 혼합한 것이기 때문에 좌도 우도 아닌 제3의 위치로 불렸다. 민족 무정부주의, 민족 생디칼리슴, 페론주의, 슈트라서주의 등이 이에 속한다.[33] 이 때문에 생디칼리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르주 소렐의 경우, 좌우파 모두에게 존경을 받게 된다.[34]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개념이 확실히 잡힌 현대의 기준으론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맑시즘이 볼셰비즘의 형태를 취하는 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다는 걸 생각하면 이러한 차이가 이해되지 않을 것도 없다.[35] 이건 다르게 말하면 소비에트 연방과 그에 동조한 볼셰빅들의 의도와 달리, 분명 유럽 사회 일각에서 보기에는 소련이 주장하는 세계화가 러시아 제국주의의 연장선으로, 그리고 소련의 사주를 받는 혁명가들이 그저 백수 건달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결국 제2 세계가 무너진 지금에 와서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곁가지로 밀려나버린 소련식 혁명은 처음부터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36] 독일에서 제1당이지만 불과 32%의 지지율을 얻었던 나치당이 연립정부로 집권한 것도 좌파에 대한 과도한 경계심으로 여타 정파들이 나치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37] 이는 파시즘이 튼튼한 이론적 근거가 있지 못하다는 점을 나타내기도 한다.[38] 로버트 팩스턴 <파시즘>[39] Zetkin, Clara; Foner, Phillip Sheldon. <Clara Zetkin: Selected Writings>. New York: International Pub, 1984[40] 혹은 영원한 파시즘(Eternal Fascism), 한국에선 원형 파시즘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41] 이탈리아가 파시스트 국가가 되자 이에 영향을 받아 득세한 정당이다.[42] 오스트리아 나치당원들에게 암살되었다[43] 이 또한 이탈리아 파시즘에 영향을 받았다.[44] 1939년 5월 선거에서 200만 표 중 75만 표를 획득하며 크게 선전했으나 그 당시에는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의 통치가 굳건하여 의미 없는 승리였다.[45] 대천사 미카엘 군단, 철위대(Garda de fier)등 여러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46] 이들은 이온 안토네스쿠와 협력하여 국민군단국가를 수립했으나, 안토네스쿠와 점점 대립하게되고, 이들은 1941년 폭동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어 해체된다.[47] 1935년 선거에서 7.94%의 지지를 확보했다.[48] 가장 성공적인 서유럽의 파시스트 정당으로 1936년 5월 선거에서 11.5%의 지지와 202석 중 21석의 의석을 차지했지만 1937년 4월 선거에서 카톨릭에서 공산주의자들까지 대동단결해서 파울 반 젤란드를 중심으로 모여 이들을 무너뜨림으로써 해산되고 만다.[49] 1939년 선거에서 5,000명의 당원, 덴마크 의회에서 1.8% 의 득표율로 3석을 얻어 원내 진출에 성공하였다. 또한 나치 독일의 덴마크 침공을 지원하였다.[50] 1936년, 스페인 제2공화국 정부에 의해 처형당했다. 그 이후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1937년에 팔랑헤를 중심으로 왕당파, CEDA, 카를로스파를 통합하였다. 다만 팔랑헤와 달리 통합 팔랑헤는 유사 파시즘 정당으로 분류된다.[51] 프랑스 파시즘의 시초로 평가받는 단체. 정당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싱크탱크에 가까운 단체였다.[52] 프랑스어로 파스케스라는 뜻[53] 프루동 모임과는 별개의 정당. 국가 파시스트당에 영향을 받았으며 한때 준군사조직인 푸른셔츠단의 회원만 25,000명에 달할 정도의 세력이 있었지만 내부 분열로 해산.[54] 후신은 프랑스 사회당(1936~1940). 성공 가능성이 높은 파시스트 정당이었으나 1940년에 예정된 선거가 독일의 침공으로 무산되면서 프랑스의 파시스트화는 적어도 프랑스인들의 손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55] 후에 영국 파시스트 연합(BUF)에 합당 하였다.[56] 1932년 설립 이후 1934년까지 빠르게 성장하여 데일리메일 발행자 로더미어 자작을 비롯한 여러 거물의 지지를 받으며 5만명의 당원을 확보했으나 1934년 올림피아 박람회장 난동 사건과 장검의 밤 때문에 충격받은 영국인들이 파시스트를 성토하고 기존 파시스트 당원들도 90%나 집단 탈당함으로 쇠락했다. 1936년 케이블가 전투를 벌이는 바람에 공공질서법이 통과되어 이들의 제복 착용이 금지되었고 1939년까지 2만명 수준의 당세를 회복했으나 영국 보수파들의 세력 회복과 거국내각의 등장으로 인해 망해버렸다.[57] 라트비아어로 "천둥 십자가"라는 뜻이여서 Thunder Cross-썬더 크로스 라고도 불린다. [58] 창당 시기를 보면 알겠지만 이탈리아 보호령 시기에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창당한 정당이다.[59] 국가 파시스트당의 잔당들이 창당한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의 정당이다.[60] 포르투갈어로 아사우 인테그랄리스타스 브라질레이라-Ação Integralista Brasileira.[61] 이니셜을 쓰지 않고 '회색 셔츠단'(Gryshemde)으로 통칭했다.[62] 독재 권력이 국가와 결합해 국가 체제가 제한적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 인물이라 원류 파시즘의 선구자로 불린다.[63] 나치 독일괴뢰국의 수장이여서 결국 종주국의 이념을 따라갔다. 사상과 별개로 우주주의라는 범신론 종교를 창시하기도 했다.[64] 오스트리아 출신이지만 오스트리아 나치당에 입당하는 등 나치즘 성향이였다.[65] 1939년 나치즘 성향의 정당인 화살십자당(Nyilaskeresztes Párt)을 설립하고 당수로 활동하다가 반정부 활동 혐의로 체포되어 형무소에 투옥되었고. 1940년 아돌프 히틀러의 압력으로 석방되어 독일로 건너간 후에 독일이 1944년 헝가리를 침공했을 때 나치의 지원을 받은 살러시 페렌츠와 화살십자당은 나치즘 인사로 집권했었다.[66] Ramiro Ledesma Ramos. 스페인 조합주의 파시즘의 창립자쯤 되는 인물이며 하이데거 철학의 권위자였다.[67]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가 만든 스페인 최초의 조합주의적 파시즘 사상. 팔랑헤보다 더 급진적이며 팔랑헤의 전신 JONS에서 만든 사상이며 기술자, 기업가, 노동자 모두를 포함한 노동조합을 통한 직장민주주의 실현과 노동조합의 자가관리 실현 및 지방자치위원회의 직접민주주의실현과 이를 통한 노동조합 국가적 전체주의를 주장하던 좌파 파시즘적 성격을 가진 사상. 이후 레데스마 라모스 자체가 팔랑헤부르주아냄새 난다며 탈당하면서 팔랑헤 자체에서 축출된 사상이다.[68] 팔랑헤주의, 오스트로파시즘 등[69] 특히 살라자르의 포르투갈은 파시즘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온건적인 모습을 보여줬다.[70] 작중 한국은 사실상 파시즘화된 삼균주의를 따르고 있다.[71] 랩처의 설립자이자 독선으로 자멸한 앤드루 라이언은 자기 오디오 일지에서 그녀를 미친 파시스트라고 씹었다. 실제로 게임 2편 내에서도 그녀는 랩처 가족이라는 집단을 세워서 자기 뜻대로만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만들었다.[72] 다만 테란 자치령은 아크튜러스 황제 사후 아들 발레리안 멩스크가 집권하면서 민주적인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73] 루돌프 폰 골덴바움 시대 한정[74] 루돌프 폰 골덴바움 재위기간 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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