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왕국 (r20220720판)

문서 조회수 확인중...

프랑크 왕국 관련 역사 둘러보기 틀
[ 펼치기 · 접기 ]









프랑크 왕국 관련 둘러보기 틀
[ 펼치기 · 접기 ]







프랑크 왕국
Regnum Francorum
Francia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Carolingian_Empire_map_1895.jpg
843년경 베르됭·메르센 조약으로 나뉜 프랑크 왕국 강역
481년 ~ 843년
위치
중서부유럽
수도
투르네 (481년 ~ 508년)
파리 (508년 ~ 768년)
아헨 (768년 ~ 843년)
정치체제
군주제
국가원수
왕 (481년 ~ 800년)
황제 (800년 ~ 843년)
주요 군주
클로비스 1세 (481년 ~ 511년)
다고베르투스 1세 (629년 ~ 634년)
피피누스 3세 (751년 ~ 768년)
카롤루스 대제 (768년 ~ 814년)
주요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
언어
고대 프랑크어[1], 라틴어
종교
아리우스파와 게르만 신화 → 가톨릭
종족
프랑크족, 로마인
주요사건
481년 건국
800년 카롤루스 황제 등극
843년 베르됭·메르센 조약으로 서·중·동 분할
통화
데나리우스
성립 이전
게르마니아
서로마 제국
수아송 왕국
알레만니
부르군트 왕국
프리시아 왕국
랑고바르드 왕국
작센
바이에른
황제 대관 이후
신성 로마 제국
왕조
메로베우스 왕조
카롤루스 왕조
분할 이후
서프랑크 왕국
프랑스 왕국
중프랑크 왕국
부르군트 왕국
이탈리아 왕국
동프랑크 왕국
독일 왕국
오늘날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


파일:리히텐슈타인 국기.svg


파일:모나코 국기.svg


파일:바티칸 국기.svg


파일:벨기에 국기.svg


파일:산마리노 국기.svg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스페인 국기.svg

(일부)
파일:슬로베니아 국기.svg


파일:안도라 국기.svg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일부)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일부)
파일:프랑스 국기.svg



언어별 명칭
라틴어
Regnum Francorum / Francia
프랑스어
Royaume des Francs
네덜란드어
Frankische Rijk
독일어
Fränkisches Reich
이탈리아어
Regno franco
서플람스어
Frankisch Ryk
영어
Kingdom of the Franks
그리스어
Βασίλειο των Φράγκων
아랍어
إمبراطورية الفرنجة
중국어
法兰克王国

1. 개요
2. 역사
3. 역대 프랑크 국왕
4. 역대 왕조
5.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
6. 프랑크 왕국의 후손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이 세운 나라.[2] 중세 초에 서유럽중부유럽을 거의 통일했던 나라이자 오늘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기원이 되는 국가이다. 서로마 제국의 계승국임을 서방 세계에서 인정 받아 신성 로마 제국의 기원이 되었다.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분할되었다. 다만 이것이 프랑크가 붕괴되었다거나 망했다거나 소멸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조약은 어디까지나 분할을 의미할 뿐 정치체의 단절이 아니며, 당장 이후의 프랑스부터가 프랑크와 동일한 국호(Francia)를 사용한 연속된 국가이다.[3]

후대 여러 유럽 왕위에 영향을 끼친 살리카법이라는 법전을 편찬하기도 했다.[4]


2.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메로베우스 왕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카롤루스 왕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역대 프랑크 국왕[편집]


프랑크 국왕

[ 펼치기 · 접기 ]
메로베히 왕조
흘로트비히 1세
분할
흘로타르 1세
분할
흘로타르 2세
다고베르트 1세
분할
흘로타르 3세
힐데리히 2세
분할
토이데리히 3세
흘로트비히 4세
힐데베르트 3세
다고베르트 3세
힐페리히 2세
토이데리히 4세
메로베히 왕조
카를 왕조
힐데리히 3세
피핀
카를 1세
루트비히 1세
♔: 신성 로마 황제

서프랑크 국왕 →
중프랑크 국왕 →
동프랑크 국왕 →







4. 역대 왕조[편집]



4.1. 메로베우스 왕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메로베우스 왕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카롤루스 왕조[편집]





5.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편집]


동로마 제국과는 당연히 사이가 나빴다. 일단 로마의 발상지이자 이 당시에는 동로마 영토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중부 이탈리아를 피핀 3세가 멋대로 교황에게 바치는 바람에 사이가 틀어졌으며 이후 카롤루스가 동로마의 봉신국이던 베네치아와 직할령인 남부 이탈리아까지 노리면서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표면적으로나마 교황이 카롤루스에게 서로마 황제 자리를 수여하였고 카롤루스가 당시 동로마 여제 이리니와의 혼인을 통해 동로마 황제 자리까지 노리면서[5]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동로마 제국의 입장은 476년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제위를 동로마 제국에게 바쳤기 때문에 자신들이 동서로마 황제 자리를 동시에 보유한 로마 제국이며, 따라서 프랑크 왕국이 서로마 제국이라는 칭호를 받는 것은 자신들의 정통성에 도전하는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글자를 몰라서 열십자를 긋는 걸로 서명을 대신하는 무식쟁이 게르만인이 로마 주교와 결탁하여 멋대로 로마 황제를 자칭했다고 생각하여[6] 자존심이 상한 동로마인들은 자기들 여제가 아예 황제 자리를 넘겨주려 한 사실이 발각되자 결국 폭발하여 이리니를 폐위시키고 새 황제로 니키포로스 1세를 추대한 다음 프랑크 왕국과 전쟁을 벌였다. 양측은 베네치아와 아드리아 해를 중심으로 전쟁을 펼쳤다.

하지만 카롤루스는 막강한 경제력과 해군력을 가진 동로마로 인해 이탈리아에서 더이상 세력을 확장할 수 없었고 도리어 유능한 아들만 하나 잃었으며 동로마는 북쪽 국경에 나타난 신흥 세력 불가리아와의 전쟁에서 니키포로스 1세가 전사하는 참극을 겪으면서 멀리 떨어진 프랑크 왕국보다 직접적으로 제국을 위협하는 불가리아를 더 큰 위협으로 보았기에 양측은 곧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되었다. 따라서 양측은 전쟁 전 세력권을 그대로 유지하며 동로마 측에서 로마 제국 황제가 아닌 황제 칭호만 인정해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후 둘은 프랑크 왕국이 분할되어 멸망할 때까지 친교를 유지한다.


6. 프랑크 왕국의 후손[편집]


프랑크 왕국이 워낙 큰 나라이기 때문에 여러나라에 걸쳐있으며 프랑크 왕국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베네룩스의 공동 역사다.

다만 당대에나 현대에도 프랑크 왕국의 정통성은 프랑스쪽이 가장 많이 이었으며, 이는 다른 나라들도 인정하는 편이다. 독일어로 프랑스를 프랑크라이히(프랑크인의 국가)라고 부르며, 네덜란드어로는 프랑크라이크(프랑크인의 국가)라고 부른다.

정리하자면 프랑크 왕국의 '프랑크적 문화 정체성'을 프랑스가 이었고, '제국으로서의 권위'는 독일이 신성로마로서 이어 나갔으며, 프랑크 왕국의 언어인 프랑크어는 네덜란드네덜란드어가 이었다.

현재 서유럽 '대륙'에서 가장 강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결국 이 한 나라에서 기초한다. 서프랑크는 프랑스 왕국으로, 동프랑크는 독일 왕국으로, 중프랑크는 이탈리아 왕국으로 이어진다.


7. 관련 문서[편집]





[1] 이 언어의 직계 후손뻘 되는 언어가 의외로 프랑스어나 독일어가 아닌 네덜란드어다.[2] 메로베우스 왕조를 비롯한 중세 전기는 반천 년(476년부터 888년, 혹은 1,000년까지)이라는 비교적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서유럽 역사 중 고고학 활동이 가장 활발하지 못한 시기 중 하나인데, 이것은 다른 시기(고대 로마 시대, 중세 후기, 르네상스, 바로크 유럽과 근현대)에 비해 적은 역사적 자료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세 전기는 유럽 역사 연대기의 구멍이라면 구멍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 분야의 권위자로는 프랑스 소르본 대학의 브뤼노 뒤메질(Bruno Dumézil) 교수가 있다.[3] 동로마를 생각하면 쉽다. (서)프랑크냐 프랑스냐의 구분은 어디까지나 편의상의 구분일 뿐, 프랑스는 서프랑크와 동일한 국가이며, 서프랑크는 동프랑크와 함께 프랑크의 연속된 정치체이다.[4] 다만, 살리카법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확대, 과대 해석이다.[5] 이리니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귀족들에 맞서 새로운 지지세력을 확보하려던 것이었겠으나, 살리카법에서 알 수 있듯이 게르만족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작위 계승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롤루스의 눈으로 보면 동로마는 그냥 황제 자리가 빈 거나 다름없었다. 사실 이리니는 그 이외에도 서로마 제국 작위를 자칭하는 자가 나타나자, 테오도시우스 1세 이후로 동서로 나뉜 로마 제국의 재통일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착각한 것도 있었다. 당연히 당대인들은 그런 그녀의 생각에 대해 이뭐병을 외쳤지만(...).[6] 사실 카롤루스 마뉴스는 분야가 좀 달랐을 뿐 결코 무식한 왕은 아니었고, 정말로 문맹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