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보나파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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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1제국 초대 황제
나폴레옹 1세
Napoléon I


파일:나폴레옹1세.jpg
대관식 복장을 걸친 나폴레옹 1세, 프랑수아 제라르, 1805년

출생
1769년 8월 15일
프랑스 왕국 아작시오
(現 프랑스 코르시카 코르스뒤쉬드주 아작시오)
사망
1821년 5월 5일 (향년 51세)
영국세인트헬레나 롱우드
재임기간
프랑스 집정정부 제1집정
1799년 11월 9일 ~ 1804년 5월 18일
재위기간
프랑스인의 황제[1]
1804년 5월 18일 ~ 1814년 4월 11일
이탈리아 국왕
1805년 3월 17일 ~ 1814년 4월 11일
프랑스인의 황제 (복위)
1815년 3월 20일 ~ 1815년 6월 22일
서명
파일: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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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보나파르트 가문
이름
프랑스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éon Bonaparte
이탈리아어: 나폴레오네 디 부오나파르테[1]
Napoleone di Buonaparte
아버지
카를로 부오나파르테
어머니
레티치아 라몰리노
형제자매
조제프, 뤼시앵, 엘리자, 루이, 폴린, 카롤린, 제롬
배우자
조제핀 드 보아르네 (1796년 결혼 / 1810년 이혼)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루도비카 (1810년 결혼)
자녀
나폴레옹 2세 포함 3남3녀
학력
파리 왕립 육군사관학교 (졸업)
종교
가톨릭 (이신론)
신체
168.6cm[2], 79kg[3], O형


1. 개요
2. 이름
3. 모어
7. 나폴레옹의 26인 원수
10. 대중 매체
11. 어록
12. 관련 문서
1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말 위에서 도시를 살펴보는 황제를 — 그 절대정신을 — 나는 보았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나폴레옹의 생애는 1천 년 내 가장 비범한 생애였다. 나폴레옹은 분명 위대하고 특출한 인물로서 생애만큼이나 자질도 비범했다. 나폴레옹은 확실히 내가 본 인간 중에서 가장 대단했고, 우리 세대에 살았던, 아니 여러 세대 동안 살았던 인간 중 가장 놀라운 인물이라고 나는 믿는다.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

이탈리아프랑스인으로, 프랑스 왕국의 변두리였던 코르시카 섬에서 법률가(= 변호사)[2]의 자녀로 태어나 1789년 프랑스 혁명의 혼란한 시대 속에서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통해 프랑스 혁명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후 1799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통해서 집권하였다. 이후 스스로 황제에 올라 혁명을 퇴보시켰지만, 동시에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서 프랑스 혁명을 통해 수립된 자유주의 이념을 유럽에 전파시켰다. 이때 천재적인 군사적 재능을 통해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어 당대 세계적 강대국들이 몰려 있던 유럽을 정복하고 프랑스 제1제국을 수립하였다.

그는 집안의 가세가 너무 어려웠던 상황에서 프랑스에서 최하위 군사학교인 브리엔 군사학교에 입학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뛰어난 군사전략과 정치력으로 35세에 황제까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카를 3세 이후 프랑스 최초의 황제가 된 인물이며 그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했기에 그의 몰락과 빈 회의 이후 근대 유럽의 외교사는 어떻게 하면 이런 인물이 다시 유럽을 집어삼키는 걸 막는가를 기준으로 진행될 정도로 프랑스 이외의 모든 유럽 국가들이 포스트 나폴레옹의 출현을 경계하였다 한다. 이런 배경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은 나폴레옹의 군사적 재림으로 여겨졌으며 파리가 함락되었을 때 히틀러는 나폴레옹의 묘에 참배까지 할 정도였다. 다만 불멸의 전략가이자 전투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는 나폴레옹과 후방 벙커에 숨어 소리만 지르는 히틀러의 군사적 능력의 차이는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나폴레옹이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면서 그 스스로가 갖춘 사상과 철학인 법치주의, 능력주의, 시민 평등 사상을 온 유럽에 퍼트렸고,《나폴레옹 법전》등 여러 업적을 남겨 세계사적으로 크나큰 획을 그었다. 기본적으로 현재 세계의 근간이 된 근대 세계는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해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전 세계에 전파된 정치 혁명, 그리고 영국의 산업혁명이 야기한 경제구조의 대변혁이 어우러져 완성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나폴레옹은 세계 역사상 최고의 군사 전략가 중 한 명으로 당대 주변국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으며 대표적으로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그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또한 프랑스 육군의 모든 부분을 전반적으로 선진화시켜 세계 최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주역이었다. 이후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나폴레옹을 따라 군제를 개편한 만큼 사실상 전쟁사의 근대를 완성시킨 인물이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개인으로서 세계사의 변혁을 이끌어낸 인물이며 유럽이 18세기 시민 혁명 시대에서 19세기 제국주의적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풍미한 인물이었다. 지리적으로 프랑스와 큰 접점이 없는 한국에서도 그의 유명세 덕에, 설령 프랑스사나 프랑스의 인물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나폴레옹의 이름과 말을 탄 그의 화상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2021년은 나폴레옹의 사망 200주기였다. 비록 프랑스는 제국에서 공화국이 된 지 150년이 넘었지만,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나폴레옹의 묘가 있는 앵발리드에 방문해서 헌화했다.


2. 이름[편집]


프랑스어 이름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보나파르트는 이름이 아니라 성이고, 나폴레옹이 이름이다. 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전체 이름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으로 표기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다만 서적 등에서는 보나파르트로 적는다. 아마도 이름 + 성 구조의 서양식 작명을 몰라서 그랬거나 황제가 되면서 이름인 나폴레옹으로 불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유럽 군주의 명칭은 일반적으로 이름이 왕명이 되고 성은 왕조의 명칭이 되기 때문이다.[3] 황제가 되기 전에는 당대에 보나파르트라고 불렸다.

이탈리아어 이름은 나폴레오네 디부오나파르테(Napoleone di Buonaparte).[4] '나폴레오네'로 쓰든 프랑스어인 나폴레옹으로 쓰든 이름의 뜻은 '황야의 사자'이다. 그러나 그가 그의 이름을 코르시카 사투리로 발음하면 ‘라 파이유 오 네(La paille au nez. 코에 박힌 지푸라기)'로 들려 많은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이름은 멋지지만, 성 부오나파르테(보나파르트)는 게르만족 롬바르드족의 성씨 보니파르트가 어원으로서 영어로 하면 Good Part(좋은 부분)라는 뜻이다.

프랑스 황제로서의 칭호는 나폴레옹 1세. 프랑스 제국의 황제위 요구자들 또한 '나폴레옹 ~세' 라는 명목상의 칭호를 대대로 쓰고 있다. 이탈리아 국왕으로서의 칭호는 나폴레오네 왕인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탈리아 왕국을 포함한 여러 이탈리아계 국가의 군주들 중 유일하게 이름이 나폴레오네였기 때문에, '나폴레오네 2세' 라는 이름의 군주가 배출되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탈리아에서의 칭호가 '나폴레오네 1세' 가 되는 일은 이탈리아의 군주제가 부활하지 않는 한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문으로는 음차하여 나파륜(拿破崙)이라고 표기한다. 한국에는 나폴레옹의 음차가 '나팔륜'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일반적으로 '破'는 한국어로 '파'라고 읽지 '팔'이라고 읽지는 않는다.


3. 모어[편집]


이탈리아 가문 출신으로, 그의 모어코르시카어였고 이탈리아어프랑스어는 성장기에 학교 등에서 배운 제2언어이다. 프랑스 변방에 위치한 코르시카는 나폴레옹이 태어날 즈음 프랑스에 병합되었으며, 이전까지는 프랑스와 관계 없는 이탈리아령 제노바 공화국 소속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탓에 그는 다중언어(multilingual) 화자이긴 했으나 의식적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해야 했으며 평생 프랑스어 철자법에 서툴렀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역설적이다.

머리가 특출났던 나폴레옹이 학창 시절 국어 성적이 안 좋았다는 이야기도 철자법 문제에서 나온 일화이다. 논술식 시험 답안지에서 철자법이 틀린 어휘들이 감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4.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신체적 특징 및 사생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신체적 특징 및 사생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가족에 관한 내용도 사생활의 일부로 간주하여 해당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7. 나폴레옹의 26인 원수[편집]






8. 기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기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가족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보나파르트 가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대중 매체[편집]



10.1. 도미네이션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나폴레옹(도미네이션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전설 유물/나폴레옹의 이각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2.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편집]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 선악과를 가졌던 인물로 밝혀지며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에서 장교로 활동하던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3. 그 외[편집]


  • 일단 나폴레옹 전쟁은 유럽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 벌어진 전 유럽의 운명을 놓고 일어난 최후의 대규모 전쟁이므로 수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 등에 소재로 쓰이고 있다.


  • 몽테크리스토 백작》에도 나폴레옹이 언급된다. 나폴레옹이 직접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에드몽 당테스가 누명을 쓰고 인생이 망가지게 되는 배경이 나폴레옹의 심복 베르트랑 장군과 공화주의자 누아르티에가 사주한 나폴레옹의 편지를 외부로 전달했다는 것이었다.《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짐 커비즐이 주연한 2002년 영화에는 초반 섬에 들른 에드몽에게 직접 자신의 명령이 담긴 편지를 부하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 코난 도일의 전설적인 추리 소설 시리즈인《셜록 홈즈》시리즈에서는 주인공인 셜록 홈즈가 존 왓슨에게 자신의 라이벌이자 영국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인 제임스 모리아티범죄 세계의 나폴레옹이라고 묘사했다. 왼손잡이였기 때문인 듯.

  • 막스 갈로의 장편소설 나폴레옹이 있다. 총 5권으로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제 1권의 제목이 다름아닌 출발의 노래다.

  •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샤프 시리즈》에서도 등장. 에서 샤프는 먼발치에서 백마를 타고 있는 그를 목격했다. 이후 에서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샤프와 직접 대면하는데 이때 나폴레옹은 만약 샤프가 프랑스군이었다면 자신이 직접 준장으로 진급시켰을 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드라마판 배우는 론 쿡.[5]

  • 현재까지 나온 나폴레옹이 주연인 영상매체로 가장 유명한 것은 1927년작 영화《나폴레옹》과 70년작《워털루》및 2002년 제작된 프랑스의 TV 미니시리즈《Napoléon》이 있다. 아벨 강스의 27년작《나폴레옹》은 무성영화 시절 막바지 들어 영화에 대한 감독들의 권한이 극에 달해 있던 시절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1부부터 6부까지 연이어 만들어질 계획이었으나 1부만 해도 그 내용이 330분(!!)에 달했고, 거기에다가 후반부의 전투 장면은 1.33:1 화면 세 개를 붙여서 만들어진 4:1 화면으로 상영해야만 했다. 이런 엄청난 길이와 전례 없는 기술적인 난제 때문에 영화는 일부 공간에서만 제한적으로 상영되었고, 영국과 미국에 가서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야 할 때 즈음에는 유성 영화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묻혀버렸으며, 그나마도 4:1 시퀀스가 전부 1.33:1로 잘려나가고 러닝타임이 훨씬 더 짧아지는 등 수많은 부분들이 잘려나간 뒤에야 상영될 수 있었다. 당연히 영화는 상업적으로 실패했고, 나폴레옹 2~6부는 촬영조차 들어가지 못했다. 이 영화는 1980년에 가서야 완전하게 복원되었지만[6], 이나마도 VHS레이저디스크로 발매된 이후 한동안 홈미디어로 발매되지 않았으며[7], 오늘날에도 1~2년에 한 번씩 대형 오페라 극장에서 오케스트라 반주와 함께 상영되어야만 운 좋게 볼 수 있다. 영화 자체는 후기 무성 대작들 중에서 최고 수준은 아닐지라도 그 사치스러운 세트 구성과 기술적인 대담함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51HSs%2BybqXL._SY300_.jpg
  • 미니시리즈는 크리스티앙 클라비에[8](나폴레옹 역), 제라르 드파르디유(푸셰 경시총감 역), 이사벨라 로셀리니(조제핀 역) 등등 당대 프랑스 최고의 배우와 존 말코비치(탈레랑 외무장관 역)가 출연한 걸로 화제를 모았다. 유투브에서도 나폴레옹 관련 검색어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 특히 아스테릭스나 비지터 시리즈 등 코미디 연기로 그동안 알려젔던 크리스티앙 클라비에가 열연한 나폴레옹은 그간 나폴레옹을 맡은 배우 중 실제 인물과 가장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말코비치 역시 당대 최고의 외교관이자 책략가로 유명했던 탈레랑의 모습을 훌륭히 보여주었다. 라 마르세예즈와 합성한 동영상도 유투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라 마르세예즈》그 외 콜드플레이의《Viva la vida》와 합성한 동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본래 이 곡은 샤를 10세몰락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곡이지만 가사 내용이 나폴레옹의 삶과도 매치되는 부분도 있어서 종종 합성되는 듯. Viva la vida와 합성한 동영상

  • Désirée(1954)에서 말론 브란도가 나폴레옹을 연기했다. $2,720,000의 제작비로 $9,000,000 벌어들이며 흥행엔 성공했다. 평은 그냥저냥. 다만 말론 브란도의 높은 나폴레옹 싱크로율은 개봉 당시에도 꽤 화제였다고 한다.


  • 토탈 워 시리즈》중 <나폴레옹: 토탈 워>는 나폴레옹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이유인지 플레이 도중 나폴레옹만은 부대가 전멸해도 죽지 않고 부상당해 본국으로 귀환했다는 메세지만 뜨고 나중에 다시 돌아온다. 그래도 부상당해서 본국 귀환하면 레벨이 떨어지니 조심해야 한다.[9] 캠페인하면서 경험치가 쌓여서 자동전투를 시키면 두 배 정도의 적은 간단히 이긴다.

  • 가면라이더 고스트에서 가면라이더 다크 고스트의 고스트 체인지의 모티브가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영혼이 담긴 나폴레옹 고스트 아이콘을 통해 고스트 체인지한 형태. 1분 단편 드라마에서 나폴레옹을 쓰러트리고 얻은 아이콘으로 극장판 본편에 고스트 체인지했으며, 이 폼으로 가면라이더 고스트 투혼 다윈 다마시와 맞붙는다. 투혼 부스트 다마시와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 왼쪽 어깨에 장착된 바리언트 코트로 적의 공격을 무효화 할수 있다. 후드의 모양도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비콘을 모방하고 있다.

  • 코에이에도 나폴레옹을 소재로 한 게임으로 1990년에 발매한《랑펠로[10]가 있다. 다만 모든 코에이 게임들 중 가장 어려운 데다[11] 후속작이 안 나온 관계로《삼국지 시리즈》나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 비하면 인지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4》에서는 프랑스 대혁명 도중에 이벤트로 등장한다. 군주로서의 능력치는 6/3/6으로 본 게임내 최고 수준. 원래 유럽 깡패인 게임 내의 프랑스와 혁명 효과, 나폴레옹의 능력치가 합쳐져 실제 역사대로 전 유럽 영토에 삼색기를 휘날릴 수 있다.



  • 진정남 나폴레옹》이라는 만화도 있다.[12] #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보자. 이게 나폴레옹인지, 켄시로인지 싶어질 거다.

  • 한국만 해도 어린이들이 읽는《위인전 시리즈》에 그가 나오지 않은 시리즈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1세대 판타지 소설《불멸의 기사》2부가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전쟁 시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당연히 등장한다. 그런데 나폴레옹의 정체를 다름 아닌 루이 16세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 충격과 공포다.

  • 국내 웹툰《플린트 락 머스킷》은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한 수인물이다. 주인공 로제타 듀베르용기병[13] 여성이지만 나폴레옹 본인도 수인화되어 출연한다.


  • 포켓몬스터》의 엠페르트는 나폴레옹이 모티브. 이름의 조합이 황제를 뜻하는 영단어 Emperor+보나파르트다.

  • 나폴레옹의 명성 때문에 19세기에서 20세기 초의 유럽 대체역사소설계에서는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이겼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든지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대체역사적 가정이 단골 떡밥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역사학자들이 다룬 대체역사인《What if》에서는 "나폴레옹이 중간에 전쟁을 그만두고 정치와 외교로 해결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만일 나폴레옹이 틸지트에서 승리하고 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좀 더 너그러운 방향으로 조약을 맺었다면, 유럽은 나폴레옹의 손을 들어줬을 것이고, 결국 영국도 굴복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챕터의 제목이 우주의 왕 나폴레옹이다.

  • 해리 터틀도브대체역사소설《두 명의 조지》에서는[14] 프랑스 왕가가 1980년대까지 존속하게 된 영웅으로 묘사된다. 루이 16세의 목숨을 노리는 파리 민중들에게 대포 사격을 하는 바람에 소요를 진압한 장교가 바로 나폴레옹이다.

  • 겁스 무한세계》의 보나파르트 세계들은 나폴레옹이 승리한 평행세계들이다. 그중에 하나인 보나파르트-6은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인으로 태어나 통일 이탈리아를 건국했다![15] 또한 레비아탄이라는 세계에서는 바다에서 아틀란티스인들이 갑툭튀해서 프랑스가 시망하자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지대에서 모래 제국을 건국했다.

  • 한국에서 나폴레옹 관련 영화를 하면 주로 양지운이 더빙을 맡았다.

  • 코드기아스 시리즈》에서는 현실 역사와 달리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 해군을 관광보내고 영국에 상륙[16], 영국 왕실과 귀족들이 신대륙으로 피난케 함으로써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이 건국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원래 설정으로는 전 유럽의 황제가 되었으며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직후 독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으나,《코드기아스 망국의 아키토》에선 황제가 되지 않고 공화정의 장군으로서 살았던 걸로 설정이 변경된 것 같다.

  • 베르사유의 장미》6권(완전판 기준)에서 지나가는 포병장교로 잠시 등장한다. 스무 살의 라 페르 포병연대 소위로 나온다. 죄드폼의 맹세 사건이 터져서 심란해 하던 오스칼이 스쳐 지나가다 눈빛에 매우 놀라 식은 땀을 다 흘리며 나폴레옹을 불러세운 후 관등성명을 묻고 그 이름을 기억해둔다. 이후 다시 식은 땀을 흘리며 "사람의 몸을 얼어붙게 할 것 같은 그런 눈빛이야…! 보통 사람의 눈이 아냐."[17] 이후 에필로그에서 황제에 즉위한 모습으로 한 컷 등장한다. 그리고 이케다 리요코는《베르사유의 장미》연재를 마친 후《황제 나폴레옹》이라는 만화책을 냈다.


  • 심지어 한국 고전문학에도 등장한다.《토끼전》과 최남선의 시《해에게서 소년에게》에 나파륜이나 나팔륜이라는 음차표기로 등장하며, 이를 토대로 개화기조선에서도 유럽의 역사적인 인물로 이름이 알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원복은 그를 패러디한《거지황제 나풀대용》이라는 만화를 그렸다.

  • 스탠리 큐브릭은《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찍은 이후 나폴레옹에 관한 대작을 찍기 위해서 고군분투했지만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1970년 작인 워털루가 쫄딱 망하면서 투자를 못 받아 계속 연기했고 결국 죽을 때까지 꿈을 이루지 못 했다. 나폴레옹 역으론 잭 니콜슨이 낙점된 상태였는데 잭 니콜슨은 큐브릭에게 나폴레옹 역을 제안받고 매우 기뻐했으며 큐브릭이 자신을 불러주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으나 그 전에 큐브릭이 세상을 떠나면서 무산되었지만 니콜슨은 이 인연으로《샤이닝》의 잭 토렌스 역으로 출연하게 된다.[18]

  • 키아누 리브스가 이름 없던 시절에 나온 영화《엑설런트 어드벤처(1989)》에서는 우연히 타임머신에 타게 되어 현대 미국으로 오는데 현대 세계에서 바로 수영장[19]의 미끄럼틀에 반해 종일 그것만 타고 논다. 두 주인공이 친척 아이에게 부탁하여 맡기는데 나중에 그 아이가 "형, 저 바보 남잔 대체 누구야?"라고 질문한다. 주인공 둘이 나폴레옹이라고 답변하자 "웃기지마! 미끄럼틀만 종일 타고 아이스크림만 신나게 먹는 저런 띨띨이가 나폴레옹이라고?"라며 전혀 믿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위인들이 죄다 맛탱이가 가서 현대 미국에서 활약하긴 한다. 칭기즈 칸은 백화점에서 마네킹을 신나게 부수고, 잔 다르크는 에어로빅 강사를 칭하며 신나게 에어로빅을 춤추듯 하다가 진짜 에어로빅 강사와 경비원들에게 끌려가며 빌리 더 키드는 백화점에서 미치도록 총을 천장에 쏘다가 경비원들에게 끌려가고, 베토벤은 전자 키보드를 신나게 연주하며 프로이트는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정신분석학을 연설하는데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게 바라보고, 에이브러햄 링컨은 백화점 안에서 연설하는데 사람들이 무슨 미친 놈 바라보듯이 한다.

  • 나폴레옹 전쟁이 배경인《혼블로워》에서는 주인공이 영국 해군이다보니 절대악으로 묘사가 된다. 그리고 주인공 혼블로워의 활약은 나폴레옹에게 치명타를 준다.

  • 1994년 캐나다 토론토에서《뮤지컬 나폴레옹》이 초연이 올라왔고 큰 인기를 끌었다. 2017년 7월, 라이센스 공연이 샤롯데시어터에서 올라왔다. 나폴레옹 역에는 한지상, 임태경, 마이클 리가 캐스팅됐다. 조제핀 역에는 정선아, 박혜나, 홍서영이 캐스팅 됐다. 여기서 특히 한지상의 광기 넘치는 나폴레옹 연기가 압권이다. 다만 여기에서의 나폴레옹은 전쟁광의 이미지만 보이고, 정치면에서는 시종일관 탈레랑에게 이용당하는 것으로 나와, 실제 나폴레옹보다 못한 모습으로 묘사돼 나폴레옹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고 파리로 진격할 때, 권력의 변화에 따라 태도가 달라졌던 대표적인 당시 신문이였던, 프랑스 대혁명 당시 프랑스 시민들과 혁명 정부를 지지해 시민들의 지지를 얻은 신문이었지만 나폴레옹 집권 후 변절해 철저한 친(親) 나폴레옹 신문을 표방하다가 나폴레옹의 엘바 섬 유배와 루이 18세의 등극 이후 철저한 반(反) 나폴레옹 신문으로 돌아섰다가 나폴레옹의 엘바 섬 탈출 후 다시 극적으로 입장을 바꾼 '모니퇴르' 지를 비꼬는 유머가 있다. 버전은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나폴레옹에 대한 호칭이 멸칭에서 점점 경칭으로 바뀐다는 것이 포인트다.


  • 워낙 유명한 인물이다 보니 대한민국의 광고에서도 몇 번 활용되었는데 몇몇 광고들은 그냥 선전에만 관심을 두고 고증 따위는 쿨하게 씹어 버려서 역덕후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였다. 짧은 수면에 관한 진실 단락에 제시된 광고는 영상 밑 주석에도 적혀 있듯이 보나파르트 집안이 아무리 깡촌 코르시카 출신이라 해도 엄연히 귀족 가문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 어부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과 다른 가정을 하고 있다.

  • 365mc병원 지면광고(지하철) 중 지방이가 나폴레옹 코스프레를 한 것이 있다. 빼볼래용이라는 광고 문구가 압권이다.

  • 중국 SRPG인《성녀전기》에서는 주인공 폴린 보나파르트의 오빠로 등장한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어 사형을 면하고 혁명파와 거래를 한 세계관이라 폴린은 실제 역사와는 달리 성녀의 힘을 지닌 군인으로 등장한다. 덕분에 나폴레옹은 작중 주인공을 돕는 오빠의 포지션으로 나오지만 초반에는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다. 아예 뮈라나 란 같은 캐릭터들은 폴린의 부하로 활동한다. 중간에 나오는 퀘스트에서는 조제핀과 데이트 계획을 짠다는게 군사 회의를 여는 것처럼 변하는 개그를 보여준다.[20] 그러나 여전히 유능한 군인인데다가 자코뱅 파에 속해 있어 동생을 돕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 이효석의 단편소설 중 나폴레옹의 최후를 묘사한《황제》라는 작품이 있다. 말년에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임종을 맞이하는 나폴레옹이 목사와 3명의 의사, 시녀, 시종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는 형식의 1인칭 소설. 화자인 나폴레옹이 죽음을 앞둔 상황에 처했다는 점을 반영해서인지 특이하게 작품의 모든 문장에 쉼표와 마침표 등의 문장 부호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21] 나폴레옹의 일생과 유럽 근대사를 아는 이라면 한번 읽어 보자. 동아시아식 영웅 소설을 연상케 하는 문장과 표현에서 색다른 장엄함과 비장함을 느낄 수 있다.[예]






  • 국내 대체역사소설임꺽정은 살아있다》에서는, 임꺽정 일당의 활약으로 전 세계에 자유주의와 정치적 종교적 관용이 확립되어 문화의 발전이 원역사보다 200년 정도 더 빨라지고 이탈리아에 원역사보다 빨리 민족주의 통일 국가가 들어선 나비 효과로,[22]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이름하여, 이탈리아 연방의 종신독재관 겸 두체 "나폴레오네 디 부오나파르테"(Napoleone di Buonaparte). 원역사의 천재성이 그대로 재현되어서, 로베스피에르 서기장이 이끄는 프랑스 대동주의 인민공화국을 격파하여 친이탈리아 군부 정권을 출범시키곤 영국과 슬라비아[23]를 제외한 온 유럽을 정복한다. 그러나 이후 영국-슬라비아-동방삼국[24] 연합군에게 전세가 역전 당하고, 이탈리아 본토에 연합군이 상륙할 정도로 패색이 짙어진다. 이때 이를 나라 안의 배신자들과 유대인들 탓으로 돌려 민심을 돌리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나폴레오네는 이 주장을 모두 거절하고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여 밀라노 전범재판에 당당히 선다. 이 점이 참작되어 사형을 면하고 여생을 타네가시마에 유배되어 보낸다.

  • 국내 대체역사소설 《명군이 되어보세!》 4부에서는 원역사와 비슷한 행보를 걸어 프랑스 황제가 되었으며,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팔지 않은 덕분에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후 사략선장 홍경래[25]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루이지애나로 파천, 누벨프랑스 제국을 세운다. 프랑스에 복위한 부르봉 왕조에서 보낸 군사들도 누벨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나폴레옹에게 투항하고, 유럽에서 박해받는 자유주의자들이나 폴란드인들이 스스로 그를 찾아올 정도로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서쪽의 대한제국과는 현상 유지, 동쪽의 미합중국과는 동맹을 맺고, 남쪽의 멕시코 제1제국을 쳐서 멸망시키고 보호령으로 삼는다.

  • 국내 대체역사소설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에서는 동시대 인물인 조선인 주인공이 돈벌겠다고 영국인들에게 나폴레옹x알렉산드르 1세 BL도색잡지[26]를 출판해서 작중 조선인중국인, 그리고 나중에는 유럽인들에게도 동성애자 취급을 당한다. 하필이면 실제로 알렉산드르 1세와 사이가 나빠지기 전 자신이 여자였다면 그와 결혼했을 거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어서 유럽인들이 나폴레옹을 욕할 때도 하는 말이 "알렉산드르 1세에게 소설처럼 엉망진창 범해져라!"다.[27] 나중에는 나폴레옹 본인도 엘바 섬에 잡혀있을 때 그 소설을 읽어서 미친 듯이 화를 낸다.

  • 국내 대체역사소설 《대통령 각하 만세》에서는 시대상 이미 사망했지만 종종 언급이 되고 있다. 작중 주인공인 조지원은 나폴레옹처럼 혼란한 조국을 구한 혁명가이자 군인이었고 지도자로 올랐지만 (표면적으로) 면류관을 집어 던지면서 공화국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최종적으로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과 비교되면서 찬양을 받았다. 작중에서도 대중들과 혁명가들에게 조지원은 혁명의 워너비로 꼽히지만 나폴레옹은 혁명의 배신자로 취급 받고 있다.

  • 2000년대 초, 6차 교육 과정의 초등 교과서에서 나폴레옹의 이야기가 수록된 적 있었다. 코르시카에서 태어나 유배되기까지...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였다.


11. 어록[편집]


"«Impossible» n'est pas français."[직역]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28]

[29]


"내 키는 땅에서 재면 가장 작지만 하늘에서 재면 가장 크다."[30]

[31]


군대는 잘 먹어야 진격한다.[* 그걸 잘 아는 사람이 러시아 원정을 떠났단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100여 년 후 한 장교가 이 말을 정면으로 거슬러 전쟁사에 길이 남을 대형 참사를 일으킨다. 물론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시 보급의 중요성을 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 나름대로 병참장관에게 충분한 식량과 건초, 그리고 이를 나를 마차를 준비하라고 하였고, 여기에 12,000프랑 한화로 1억 넘는 상금까지 걸면서 최초로 병조림을 얻게 되었고 그 결과 나폴레옹이 준비한 어떤 전역보다 방대한 보급체계가 갖춰졌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걸로 택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러시아 원정의 경우 나폴레옹이 무리하게 전선을 늘려서 러시아를 공격하다가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참사가 일어난거다. 즉 보급문제도 있지만 무리하게 전선을 늘린 게 가장 큰 패배의 원인이었다. 대표적으로 일본 제국과 나치 독일이 무리하게 전선을 확대하다가 끝내 패배했다.]


신은 가장 강한 포병대가 있는 군의 편이다.


제식은 곧 전투력이다.


적이 실수를 계속할 때는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이다.[32]


인간 최고의 도덕은 애국심이다.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내 손 안에 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다.


나는 내가 가는 모든 곳에 자유의 씨가 뿌려지길 원한다.[33]


당대 사상의 선두에서 나아가면, 사상이 당신을 따르고 지지할 것이다. 당대 사상을 뒤따라 가면, 사상이 당신을 끌고 갈 것이다. 당대 사상을 거슬러 가면, 사상이 당신을 전복시킬 것이다.[34]


오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35]


La mort n'est rien, mais vivre vaincu et sans gloire, c'est mourir tous les jours.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승리하지 못한 삶을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뛰어난 두 명의 지휘를 받는 군대보다는, 어리석을지언정 한 명의 지휘를 받는 군대가 낫다."[36]


La victoire appartient au plus persévérant.

승리는 가장 끈기 있는 자에게 돌아간다.


승리를 원한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이것이 통치다.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다. 반대하는 모든 것들을 정복하는 능력을 가진 생명체이다.


"적을 이길 수 없다면 적과 합류하라."[37]


"내가 쓰러진들 혁명가들에게 프랑스를 넘겨주진 않을 것이다. 그들의 손에서 내가 프랑스를 구해내지 않았던가?"


대혁명은 끝났다. 내가 대혁명이다.


"내 가족은 매춘부 가족이란 말인가!"[38]


"단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소.

단 하룻밤도 그대를 내 팔에 끌어안지 않은 적이 없소.

어떤 여인도 그대만큼 큰 헌신과 열정, 자상함으로 사랑하지 않았소.

공감과 사랑, 진정한 감정으로 묶인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오."[39]


"나의 치세는 내가 더는 강력하지 못하여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를 멈추는 날 끝날 것이다. 나는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한 뼘의 땅도 넘겨주지 않겠다. 왕좌에 앉을 운명을 타고난, 그대의 군주들은 큰 마음 먹고 스무 번 패해도 되고 언제나 수도로 되돌아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의 힘으로 출세한 군인이기 때문이다."[40]


"그대는 군인의 정신이 어떤지 전혀 모르오. 나는 전장에서 성장했소. 나 같은 사람은 백만 명의 목숨도 개의치 않소."[41]


"정복자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잔인해야 한다. 내가 좀 더 잔인했더라면 세계를 정복했을 것이다."[42]


소설 같은 나의 생애여! 내가 죽으면 나에 대한 연민이 물결칠 것이다.[43]


"내가 권력을 찬탈했다고? 나는 그 누구에게서도 왕권을 뺏지 않았어. 나는 그저 시궁창에 버려진 왕관을 주워서, 진정한 가치를 부여한 것 뿐이야. 그리고 나는 그 왕관을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머리에 썼어. 나는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한 거야."[44]


"내가 종교를 갖는다면, 태양을 택하겠어. 태양은 모든 것을 잉태하는 지상의 진정한 신이야."


"한 나라의 정부가 은행가의 돈에 의존하면, 정국도 정부 지도자가 아닌 은행가가 장악하기 마련이다. 돈주머니를 쥔 쪽이 아무래도 돈을 쓰는 쪽보다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돈에는 조국이 없다. 금융재벌은 무엇이 애국이고 고상함인지 따지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이익을 얻는 것이다."



12. 관련 문서[편집]




13. 둘러보기[편집]




[1] 군주 칭호의 정식 명칭은 프랑스인의 황제(Empereur des Français)이다. 왕정의 군주였던 "프랑스 국왕"의 칭호는 국왕이 프랑스라는 국가를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를 시사했다. 반면 프랑스인의 황제는 명목상 프랑스인의 총의로 추대된 존재로서, 명목상 공화정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봉건제도가 폐기되고 공화정에 기반한 국민국가가 탄생했으며 황제는 그것을 계승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이는 지극히 로마 제국다운 칭호인데 로마 제국 황제의 공식 명칭도 로마인의 황제로 비록 전제군주제 국가가 되었어도 공화정의 전통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2]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아버지 샤를마리 보나파르트피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이후 코르시카 섬에서 법률가(= 변호사)로 활약했고, 훗날 프랑스로 전향하면서 귀족의 특허장을 얻게 된다.[3] 이는 군주만 그런 것이 아니라, 헝가리를 제외한 유럽 국가의 사람들은 모두 이름 + 성(가문명) 식으로 작명된다.[4] 레 미제라블을 보면, 왕당파인 질노르망 노인(남주인공 마리우스 퐁메르시의 외조부)가 나폴레옹을 멸칭 조로 일부러 "부오나파르테"라고 부르는 묘사가 나온다.[5] 한정. 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다.[6] 정확히는 완벽 복원은 아니고 2000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3시간 30분 판본으로 복원 완료되었다. 이 영화의 극렬빠로 케빈 브라운로라는 영국 영화 비평가가 있다. 어린 시절 접한 후 이 영화를 복원하고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고 한다. 때문에 이 사람의 주 연구 분야 역시 무성영화/고전 영화다.[7] 그러나 2016년 영국 영화 협회에서 드디어 블루레이 출시되었다. 3시간 30분 판본[8] 타임슬립 코메디인 비지터 시리즈에서 머슴 자꾸이 역할을 맡았던 프랑스 국민 코미디 배우다.[9] 정확히 말해 당대의 5대 강국의 가장 유명한 지휘관 1명은 다 이런다. 프랑스는 나폴레옹이고 영국은 아서 웰즐리, 오스트리아는 카를 대공, 러시아는 쿠투조프, 프로이센은 블뤼허.[10] 정확한 독음은 랑페뢰[11] 징병이 1년에 딱 한 번만 가능하고 (게다가 승리 후 남은 적군의 예비병도 흡수 불가능하다.) 스페인, 러시아의 경우는 완전 점령을 못할 경우 게릴라의 습격으로 물자, 병사를 잃게 된다. 숨겨진 시나리오인 엘바 섬 탈출은(PC판만 있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깰 수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이 시나리오를 깰 수준이면 코에이의 모든 게임을 깰수있다는 말까지 있었다.[12] 원제는 《사자의 시대 - 나폴레옹》[13] 작품에선 용을 타는 기병. 본래 뜻은 용기병 항목 참조.[14] 조지 워싱턴과 영국왕 조지 3세의 극적인 협상 타결로 미국 독립 전쟁은 소요로 끝나고, 영국령 북미연방으로 남게 된 후 1980년대 찰스 2세 집권 시기를 다루고 있다.[15] 코르시카의 혁명가 파스콸레 파올리가 없어서 코르시카가 제노바령이었다.[16] 이 세계관의 호레이쇼 넬슨은 그냥 삼류 제독이 된 걸로 추정.[17] "앙드레, 저 눈빛 봤니? 저건 독수리의 눈빛이야. 제왕의 눈이야!"라고 말했다는 말도 있다.[18] 샤이닝 촬영으로 두 사람은 상당히 안 좋은 사이가 된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촬영 일화들은 상당히 악명 높다. 같은 장면을 별 설명도 없이 다시 찍고 다시 찍고 해서 백번 넘게 찍었던 (심지어 길거나 복잡하지도 않은 장면) 일화는 니콜슨을 질리게 만들었다. 심지어 큐브릭은 니콜슨을 놀리려고 쉬는 시간에 그에게 사진을 찍어준다면서 그 뒤쪽 거울에 비친 자신과 딸을 찍었던 적도 있다.[19] 이름이 Water loop다.[20] 나폴레옹이 폴린에게 조제핀이 좋아하는게 뭔지 물어보는게 "적의 약점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거나 말이다.[21] 현재 출판되는 작품집에 실린 버전에는 문장 부호가 포함되어 있으나 원문에는 문장 부호가 없다.[예] "내 하는 수 없이 북국(北國) 정벌을 계교하고 5월 드레스덴에 40만 병을 거느리고 니이멘 강을 건넜을 때에는 60만을 넘어 8월 스몰렌스크를 떨어뜨리고 9월 노장 쿠소프보로디노에 깨뜨리고 일로 모스크바를 들어갔으나ㅡ실패는 여기서 왔다. 그 북쪽의 호지(胡地, 오랑캐 땅) 눈과 추위와 거기다 화재는 나고 군량은 떨어지고 수십만 부하를 눈 속에 빼앗기고 간신히 목숨만 얻어 가지고 되땅(되놈의 땅, 즉 오랑캐 땅)을 벗어나온 것이 다음해 7월ㅡ한 번 기울기 시작하는 형세는 바로잡을 도리 없어 어리석은 자의 옥편(玉篇) 속에만 있던 불가능의 글자가 어느덧 내 마음속에도 살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22] 즉, 코르시카가 프랑스에 팔리지 않았다.[23] 러시아[24] 조선-일본-금나라[25] 원역사에서 홍경래의 난을 일으킨 인물. 여기서는 난이 소규모의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홍경래 본인은 처벌을 피해 도주하였다가 사략선장이 되었다.[26] 놀랍게도 실제로 있던 사례라고 한다.[27] 그 와중에 나폴레옹이 박는 쪽인 소설을 지지하는 영국신사들도 있어서 누가 공수(동인)인지를 두고 영국 신사들끼리 토론을 할 정도다.[직역] " '불가능(Impossible)'이란 단어는 프랑스어가 아니다."[28] 위의 직역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내 사전"은 사실 의역에 가까운 말이다.[29] 원래는 당시 자신의 라이벌 영국을 비꼬는 말이었다.[30] 실제로는 당시 프랑스 성인 남성 평균 키 164cm 보다 더 168.6cm였다. 항상 큰 키에 높은 곰털모자까지 쓰고 다니는 프랑스 제국 근위대와 다니다 보니 그런 인식이 생긴 듯. 사실이 아닌 역사적인 "사실들"[31] 본인의 이 발언과 프랑스와 영국의 시스템 차이로 나폴레옹은 땅딸보란 인식이 생겨났다. 비슷한 예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있다. 노년의 아인슈타인이 유년의 자신을 회상하며 그리 똑똑한 아이가 아니었단 식의 발언을 몇 번 했고 독일과 스위스의 시스템 차이(독일은 최고점이 1등급, 스위스는 최고점이 6등급)로 아인슈타인이 스위스에서 수학을 낙제했단 오해가 생겨났다. 실제론 아인슈타인은 평생 수학, 물리 시험에서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쳐본 적 없는 영재였다.[32]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어록남긴 사람이 있다.[33] 자신이 정복한 유럽 각국들의 봉건적인 제도들을 폐지하면서 한 발언으로, 나폴레옹 최고의 이타적인 명언. 이것이 나폴레옹이 후대에 그를 모범으로 삼은 전 세계의 군사독재자들과 가장 다른 면모이다.[34] 이 말도 후대에 그를 모방하려고 했던 전 세계의 군사독재자들과 가장 다른 나폴레옹의 면모.[35]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후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유배 중 한 말로 유명하다.[36] 총재정부 시절 나폴레옹의 군사적 명성에 위협을 느낀 프랑스 공화정부가 군부에 대한 나폴레옹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공동 사령관을 임명하여 하루 간격으로 번갈아 지휘하도록 지시한 일이 있었는데, 이에 나폴레옹이 "차라리 내가 사령관을 그만두겠다"라고 반응하며 한 말이다. 결국 나폴레옹보다 나은 사령관을 찾을 자신이 없던 총재정부가 물러서야 했다. 이후 군사 부문에서 '지휘 체계의 통일성'(unity of command)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고 있다. 구 일본군의 실패가 대표적인 사례.[37] 운동화를 신은 마윈[38] 카롤린 뮈라와 조아킴 뮈라 부부의 배신에 열받아 외친 말이다.[39] 조제핀 드 보아르네의 죽음에 한 말.[40] 1813년 6월 26일 메테르니히에게 한 말이다.[41] 위의 발언과 같은 상황에서 한 말이다.[42]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된 이후 한 말이다.[43]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16세의 나이에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24세의 나이에 장군이 되었으며, 34세에 황제가 된 소설 같은 삶이었다.[44] 역시 위와 같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회고록을 구술하며 했던 말이다. 참고로 영화 '워털루'에서도 똑같은 대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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