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범수용소/북한/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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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용 대상
1.1. 과거
1.2. 최근
2. 처참한 참상
2.1. 상세
2.1.1. 입소 과정
2.1.2. 성행위 및 결혼
2.1.3. 비인간 취급
2.1.4. 의복
2.1.5. 성폭력
2.1.6. 기아
2.1.7. 영아 살해
2.1.8. 우민화 교육
2.1.9. 열악한 환경
2.1.10. 중노동
2.1.11. 구류장
2.1.12. 구타 및 가혹행위
2.1.13. 고문
2.1.14. 연좌제
2.1.15. 인격모독
2.1.16. 간접 통제
2.1.17. 생체실험
2.1.18. 경비/수색견들 악용
2.1.19. 시신 처리
2.1.20. 처형
2.1.21. 그 외
3. 기타



1. 수용 대상[편집]


종파분자와 계급의 원수는 그가 누구이건 3대에 걸쳐서 씨를 없애야 한다.

1968년 김일성 교시

정치범수용소 형성 과정이 애초에 김일성 유일 체제에 반대한 간부들을 직접 지정한 정치적 숙청 대상이냐, 아니냐에 따라, 혹은 시대 분위기에 따라 범위가 좀 달라지기는 한다. 예를 들어 장성택과 그 파벌들의 유가족들은 전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지만, 그 중에서도 김씨 일가의 친척과 같이 뒷배가 있는 사람들은 풀어주고 누구는 잡아가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괄적인 기준을 세우긴 어렵다.

주로 다음 사항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다.


1.1. 과거[편집]


자세한 내용은 정치범수용소/북한/형성을 참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종파주의자나 반당반혁명분자와 그 가족 3대를 씨를 말리라'는 교시에 따라 자신과 직계 가족은 물론 6촌까지 수감된다. 단 그 기준은 경중에 따라 바뀔 수 있어서 황장엽의 경우 11촌까지 끌려와서 약 3천 명이 숙청되었고, 원칙상 친가, 외가, 처가까지 끌려가야 하지만 처가가 출신 성분이 괜찮은 경우나 뇌물을 바치거나 하는 경우엔 이혼시켜서 인척 관계를 해소하고 아내는 빼주거나 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현재에도 마찬가지.



1.2. 최근[편집]


최근에는 단순 탈북자들의 경우 잡혀도 노동단련형으로 처벌 받는 것으로 끝나고, 여기에 뇌물까지 쓴다면 처벌 없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1] 물론 여러 번 탈북을 시도하다가 잡히면 처벌이 가중되지만 역시 노동교화형일 뿐이고 정치범으로 분류되는 일은 드물다.

과거에는 탈북 시도가 적발되거나 탈북한 것이 확인되면 본인 및 그 가족 친척까지 연좌제로 모두 수용소로 끌려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탈북자가 10만 명에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자만 무려 3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현재는 탈북자의 일가족 친인척을 전부 수용소로 보내는 건 불가능하기에 현실을 인정한 것으로 보이고, 요새는 탈북자가 북한 내 가족에게 송금하는 돈의 일부를 뜯어가는 조건 하에 눈감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 실제로 이렇게 송금되는 돈은 해당 마을을 감시하는 노동당 간부의 주 수입원이기도 하다.[3] 다만 탈북자가 한국에 가서 북한 정권을 비난할 경우 여전히 위험하다.

외국 방송 청취자/소지자는 보위부에 뇌물을 바치고 무마하거나 3년 이내의 노동교화형으로 끌려가지 정치범수용소 대상자는 아니다.[4] 그러나 단순 남한 영상물을 소지한 경우면 처벌이 높아지고, 삐라나 김씨 일가를 비방한 내용이면 성격이 달라진다.

  •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통치를 비판하거나 그 우상화물에 손상을 가한 자: 예를 들면, 김씨 왕조의 얼굴이 나온 로동신문의 지면으로 벽면을 도배하는 경우. 심지어 실수로 손상시킨 경우에도 끌려갈 수 있다. (예: 오토 웜비어) 집마다 있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초상화를 관리를 못하거나 훼손한 경우도 마찬가지. 그리고 김정숙에 대해 '키가 작고 못생겼다'고 한 사람도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 숙청의 대상이 된 자: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박남기[5]처럼 본인은 공개처형 당하고 박남기의 친척 전체가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가 1년도 안 되어 끔찍한 최후를 맞은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장성택처럼 요직에 있던 인물인 경우 수용소로 보냈다간 김씨 일가의 비밀이 아랫것들에게 새어나가기 때문에 바로 사형 당하는 경우도 있다.

  • 종교를 믿는 자: 단순 탈북자가 달러를 벌어서 돌아가면 재수 없어도 뇌물로 좀 떼어주면 풀려나지만 한국인이나 외국인 선교사라든가 목사, 신부, 승려 등을 접촉하거나 성경이나 불경 같은 종교 경전을 소지하거나 반입한 경우에는 정치범이 된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강철환의 증언에 따르면 요덕 제15호 관리소의 혁명화 구역에 수감된 개신교 신자의 가족 전체가 얼마 못 가 요덕수용소의 다른 구역인 용평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갔다.[6] 가톨릭 등 기독교의 다른 종파 뿐 아니라 불교 등 다른 종교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성경책 뿐 아니라 십자가 묵주나 염주 또한 같은 처벌을 받는다.

  • 월북: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이곳에 온다. 실제로 수많은 월북자들이 이곳에서 잔혹하게 처형되었다. 안명철의 증언에 의하면 월북자들은 주로 승호 수용소와 요덕 제15호 관리소 등지에 수감된다고 한다. 이 두 수용소에는 납북된 외국인들도 수용되어 있다고 한다. 다만 북한의 실상이 너무나도 잘 알려진 현재는 월북자의 선전 따위가 먹힐 리 만무하기 때문에, 별다른 이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냥 돌려보낸다고 한다. 이 경우 해당인은 한국으로 신병이 인도되는 즉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게 된다.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남북교류협력법에 저촉된다.

  • 보안원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거나 김씨 왕조 혹은 높으신 분 또는 권력기관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끌려오기도 한다.





  •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 반감을 가지거나 의문을 제기한 자: 전 북한 외교관인 고영환은 말도 안 되는 구라[7]로 점철된 이 교과서에 의문을 조금만 제기해도 바로 수용소로 직행한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김일성의 우상화를 위해 프랑스에서 고용한 번역자가 번역할 우상화 자료에 의문을 표했다가 미국 CIA 공작원이라는 누명을 받고 여기로 끌려간 후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 최고지도자의 '업적'에 대해 반감을 가지거나 의문을 제기한 자: 위와 마찬가지로 허위거나 과장되어 있는[8] 최고지도자의 업적에 의문을 제기하면 최고지도자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되어 끌려갈 수 있다.

  • 또 위의 사항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직계 혈통들도 같이 끌려간다. 북한은 아주 철저한 연좌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2. 처참한 참상[편집]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특히 완전통제구역은 '백두혈통'과 그들을 보위하는 조선로동당의 권력자들의 영구적인 집권과 특히 김씨 일가와 북한 체제에 조금이라도 순응하지 않는 인민 전원을 최대한의 고통을 최대한 길게 느껴가게 하면서 학살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즉,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은 나치 독일의 절멸수용소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살인공장이랑 다를 바가 없다.[9]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활개치는 서아시아 지역에서도 벌어지지 않을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추악하고 잔인한 행위들은 탈북자들이 지은 정치범수용소에 관련한 책들을 읽거나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탈북자들의 수기를 찾아보면 그 슬픈 참상 중에 일부나마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심지어 증언들이 전해지는 곳들은 절대다수가 형기를 채우면 석방될 수 있는 '혁명화구역'이지 김정은의 특별 지시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완전통제구역'이 아니다. 그나마 낫다는 혁명화구역이 이 정도인데 완전통제구역은 그야말로 그 어떤 지옥에서도 볼 수 없는 참상이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0][11] 특히 완전통제구역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존재하지 않는데 북한에서는 이것이 '들어온 순간부터 아예 사람 취급 일절 없이 짐승으로 막 대한다'는 암묵적 신호라고 한다.[12] 거기다 정치범수용소의 상당수는[13] 완전통제구역이다.

아래의 참상은 스탈린 시절의 소련에서 운영하던 악명 높던 굴라크의 이야기도 아니며 인류 역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나치 독일아우슈비츠, 민주 캄푸치아뚜올쓸라엥의 이야기도 아니다. 비록 세간에서는 악명 높던 학살과 압제가 이루어진 이런 기관들과 비교하지만 애초에 굴라크는 목적 자체부터 학살이 아니라 노동착취이기 때문에 다른 예시들과 비교가 불가하다.[14]

물론 이오시프 스탈린이 집권하던 시절의 소련의 굴라크가 북한의 수용소만큼 혹은 그보다 더 가혹한 지옥이었다고 하며 누군가는 나치 독일아우슈비츠는 북한의 절멸수용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효율적이고 악독한 방식으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잔혹성이라는 면에서 731 부대의 악행을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보다 더 극악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바로 밑인 대한민국에서조차 아주 잠시이기는 했지만 삼청교육대가 만들어져 내부 규정에 의해 초법적으로 보장되는 가혹행위로 인한 간접적 집단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의 굴라크는 말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확률이 있었고 심지어 석방되는 경우도 많아 평생 자유는 제한되어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으며 삼청교육대도 노동력 착취가 목적이 아닌 '사회 안전에 위해가 되는 자들 색출'이라는 최소한의 명분이 있었을 뿐더러 사망률도 몇% 되지 않지만[15]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상술한 수용소들에 비해서도 인권 탄압이나 가혹행위 면에서 훨씬 극악하고 일단 수감되면 구조상 탈옥 자체가 불가능하며 일반적으로 영구 수감이 원칙이라 김정은의 지시가 없는 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곳에서 아사하든 폭행으로 사망하든 할 수밖에 없다.[16]

731 부대도 죄 없는 인간들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악랄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죽게 만든 인간으로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기관이지만 적어도 그 목적은 일본군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나마 아우슈비츠가 자국에 어떠한 이득도 없이 그낭 학살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지만 그곳마저도 정치범수용소처럼 극단적으로 고통스럽게 괴롭히다가 서서히 죽어가게 만든 것이 아니라 속전속결로 다수의 유대인들을 처형하는 방식이어서 죽기 전까지의 과정이 그나마 덜 고통스러우니 이마저도 재소자 처우를 감안하면 정치범수용소보다는 그나마 낫다는 것이 중론이다.[17]

게다가 상술한 수용소들은 전부 사라진 반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지금까지 남아 있으며 저런 정신나간 행위가 실제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도 신장 재교육 캠프가 만들어져 대량학살이 일어나고 있으나 신장 재교육 캠프는 설립 목적 자체부터 위구르인을 아예 절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고문하고 세뇌시켜서 중국인으로 동화시키는 것이다.[18] 설립 목적 자체부터 반정부, 아니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인민들을 김씨 부자 말마따나 가족까지 씨를 말려 버리는 것이고 그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전원 숙청당해서 죽여 버릴 생각이며 사실상 정치적 생명이 끝난 반동분자들의 멀쩡한 몸뚱아리를 죽여서 없애 버리기는 '아까우니까' 죽을 때까지 노동력만 뽑아쓰다가 죽든 말든 하는 것이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악질이다. 이 극악한 반인륜적 기관인 북한정치범수용소는 북한이란 나라가 국민을 위한 국가가 전혀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는 곳이며 나아가 그들의 체제와 정권이 얼마나 극악무도하고 비인간적인지 알려주는 곳이다.

이렇듯 인류의 역사 속에서 손 꼽힐 만한 말도 안 되는 수용소가 존재하는 것을 본다면 예측할 수 있겠지만 이런 곳이 상시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북한 전체가 감옥과 같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감옥이란 인간이란 종족이 집단의 법칙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구성원을 벌 주기 위하여 행동을 제약하는 장소의 이름이다. 대체로 국가는 감옥에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윤리와 도덕을 어긴 사람을 가둔다. 북한은 김씨 일족과 그 측근들을 위해서 그들이 인정한 지배층들을 제외한 모든 북한 국민들을 범죄자마냥 취급하는 것이다.[19]

이러한 취급은 북한 국민들을 유순하게 만들기 위하여 세뇌하고 조련하기 위한 것이다.[20] 북한에서는 삼백처벌이라고 하여 굶기는 것 자체를 공식적인 처벌로 활용한다. 빠삐용바퀴벌레라도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처럼 사람을 완전히 정신적, 육체적으로 쇠약하게 만든다. 가끔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부모가 훈육 목적으로 아이를 굶기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조차 '아동 학대'로 분류될 정도로 사람을 굶기는 것은 정말 잔인한 짓인데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외치며 지상락원을 표방한 곳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악한 짓이 다 벌어지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2019년 유엔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은 북한은 나라 전체가 감옥이라고 일갈하였다.

그나마 민주 캄푸치아에서는 크메르 루주 수뇌부 정도를 제외한 모든 국민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혁명화구역에서 받는 대우와 엇비슷한 대우를 받았으나 크메르 루주는 민주주의 국가의 정권 교체 기간에 불과한 고작 4년도 안 되어 망했다. 북한은 저걸 아주 짧게 잡아도 6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으니 저기서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수준까지 오게 된 것이다.

2.1. 상세 [편집]



2.1.1. 입소 과정[편집]


처음 정치범수용소로 끌려오면 각종 고문을 하고 난 뒤에 24시간 동안 꼼짝 없이 무릎 꿇고 앉혀놓거나, 가부좌 자세를 시킨다. 이 때 허리는 반드시 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소리 내면 문 밖으로 손등을 내밀게 한 다음 손등을 몽둥이로 마구 내려치거나, 발바닥을 내밀게 한 다음 회초리로 발바닥을 마구 내리쳤다.

상술한 김정일의 지시 전에는 처음 수용소에 끌려오면 설사약을 강제로 먹여서 설사가 나오게 한다. 행여 입으로 삼켜서 숨기거나 여성의 경우 에 숨긴 귀중품을 죄다 토해내게 만들어서 죄다 몰수했다. 만일 귀중품을 숨기고 들어온 것이 적발되면 보위부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게 된다.

2.1.2. 성행위 및 결혼[편집]


혁명화 구역에 한해 '표창 결혼'이라는 이름의 짝짓기를 실시한다. 명목은 결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접붙인다는 표현이 더 맞다. 이러한 짝짓기는 수용소에서 일을 잘한다고 판단되는 남녀 수감자를 대상으로 수행되며, 당연하게도 당사자들의 의사는 철저하게 무시된다. 명목상 거절할 수 있지만 한 번 거절한다면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으며, '표창 결혼'이라는 짝짓기를 제외하면 모든 성행위는 일체 금지된다. 이마저도 완전통제구역에서는 남녀를 철저하게 분리하여 애초에 불가능하다.[21]

때문에 가족 단위로 방을 쓰는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성욕 해소를 위한 근친상간까지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22] 출처.

악명 높았던 스탈린 시기의 소련에서 운영하던 굴라크에서조차 강제 낙태는 전혀 없었고, 수감자는 원하는 상대와 같이 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북한의 수용소처럼 일을 잘하는 수감자를 대상으로만 이런 포상을 부여하는 형태였고, 처음 일주일간의 합방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게 해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2.1.3. 비인간 취급[편집]


북한의 최하위 계층인 적대계층은 대우가 매우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북한 인민으로서 인간 취급은 받고 북한 당국의 법률상의 관리 체계에 속한다. 하지만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면 공민증부터 말소되어서 법률 체계의 관리 밖으로 빠진다. 이렇게 법률 체계의 관리 밖으로 쫓겨난 수감자들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며, 북한 정부의 주도하에 수용소 밖의 사회에서는 없었던 존재처럼 취급된다. 실제로 끌려간 사람들은 숙청당해서 사망한 사람으로 간주되며, 곧 정치적 생명이 다한 사람들인 것이다.[23]

정치범수용소 자체가 어차피 숙청당해 죽을 사람들을 살려두고 노동력만 한계치까지 뽑아다 쓰는게 목적이니만큼 밖에서는 사실상 죽은 사람 취급이며 정치범수용소 보위원들은 수용자들을 '인간'이 아니라 '짐승'으로 취급한다. 수용자들은 보위원들의 개인적인 자비를 제외한 어떤 긍정적인 조치나 대우를 기대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아닌 짐승이니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강제로 먹이거나 하는 행위를 가한다. 수감자들이 비위생적인 환경이나 폭력으로 죽는다 해도 보위원들은 어떠한 제재를 받지 않는데, 이러한 이유도 수감자들이 북한 정부가 공인한 사람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강간의 경우에는 처벌을 하는데, 이건 수감자에 대한 강간을 수간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수감자들에 대한 짐승 취급은 북한 체제상 중요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숭배를 수감자들이 못 하게 하는 것으로도 드러나는데, 북한 정권은 북한에 사는 인민이라면 누구나 김씨 삼부자를 찬양하도록 시키기 때문에 정부 기관부터 학교, 기업, 가정집까지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 김씨 삼부자의 초상화를 두지만, 북한 정부는 수감자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범수용소 중에서도 완전통제구역은 초상화가 없다. 이러한 정부 차원의 조치는 암묵적인 것이 아니다. 북한 정부는 보위원에 대한 기초 교육 기간부터 임관 때까지 수감자들을 인간 취급하지 말라고 세뇌시키는 교육을 진행한다.

김용의 증언에 따르면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들은 문자 그대로 '가족'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말살되었는데, '죄'를 저지른 남자는 따로 수용시켜 부부를 분리시키고 열두 살 미만의 어린이들이 있는 경우 인민학교 4학년까지 어머니가 데리고 있게 했으며, 4학년이 되면 자식 중에서는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분리시켰고, 엄마는 엄마대로 서로 분리시켰다고 한다. 심지어 이조차 오늘날 정치범수용소보다 나은 상황이라고 한다.

2022년경까지는 가족이 입소하면 입소할 때 같은 관리소 안에서 부모와 아이를 별도로 격리해 수용시켜왔으나, 2023년 중앙에서 지목한 가정, 친척, 가문 입소자의 자식들을 "다른 관리소로 보내라"는 특별 지시가 내려져 집행 중이라고 하는데, 이는 "가장 악질적이고 반동적인 자들[24]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장(장기) 하나하나가 찢어져 문드러지는 최상의 고통을 받게 해야 한다는 사상에 따라 죄를 지은 부모가 자식과 같은 공간에라도 있다는 위안마저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라고 한다. # 나치 독일조차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수감할 때 의도적으로 가족을 다른 수용소로 흩어놓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악마도 선하게 보이게 만들 수준이다.

2.1.4. 의복[편집]


김정일정치범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의 옷을 몰수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특별지시를 하긴 했었다. 그러나 후술할 기아 읽어보면 알겠지만 워낙 식단이 부실하다 보니 결국 수용자들은 보위원들과의 밀거래를 통해 약간의 생존품을 구하게 되며, 결국에는 옷을 몰수하지 않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처참한 몰골이 되고는 만다.

신발 같은 건 아예 꿈도 못 꾼다. 여태 나온 여러 증언들은 공통적으로 폐타이어로 만든 고무신이라도 신으면 다행이라는 수준. 아니면 쥐를 잡아서 가죽으로 쓰든지 하는 것이다. 오직 처음 입고 온 의복에 처음 지급된 담요만으로 평생을 버텨야 한다. 여기서는 안 쓰는 물건이 아예 없다. 닳아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써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살아남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2.1.5. 성폭력[편집]



정치범수용소에서 보위원은 생살여탈권을 가지므로 여성들은 꼼짝 못하고 강간당한다. 특히나 관리소에 갓 들어온 젊은 여성들은 '살이 붙어 있는 동안(영양실조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기 전)'은 임신할 때까지 관리소 요원들에게 돌려가며 집단 강간을 당하는 성노예 신세다. 관리소 요원들은 여성들을 강간하면서 "짐승이 사람에게 몸을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는 막말까지 서슴치 않으며, 이 때문에 정치범수용소 여성 대다수가 정신 질환에 시달린다. #

임신할 경우 강제 낙태시키거나 살해당하는데, 보위원은 수감자와 개인적인 접촉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보위원들은 처벌 당하기 전 다른 구실로 강간 피해자를 죽이거나 낙태 시키는데, 규정상 보위원들의 처벌은 보통 생활제대이며 군관이라면 로동당에서 축출 당하고 탄광으로 추방된다. 그러나 이들에게 적용되는 죄목은 강간이 아니라 수간. 즉 '짐승'과 성관계를 했기 때문에 처벌 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폭력이 만연한데 성범죄를 저지른 보위원도 역시 자신도 처벌 받을 수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비밀 유지를 위해 피해자를 완전히 걸레 쪼가리로 만든 뒤 비밀리에 죽이거나, 몰래 탈출이나 다른 죄목으로 덮어 씌워서 처형해버린다. 여자가 자신을 꼬셔서 자기 인생을 망쳤다는 이유라서다. 한 마디로 적반하장.

특히 젊은 여성 수감자들은 간수들에게 농락 당하는 게 보통이다. 임신이라도 하면 강제로 낙태시키고 비밀스럽게 살해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증언을 동료 수감원 김영일을 통해 들은 김용(가명)이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14호 관리소에는 간부 초대소라는 것이 있는데, 이곳은 평양에서 부부장급이 내려오면 숙식하는 일종의 특각입니다. 평양에서 간부들이 내려오면 여성 수감자 중에서 얼굴이 반반한 21~25세 사이의 처녀들을 선발하여 목욕을 시킨 후 간부들에게 바친다고 합니다. 간부들은 이런 여성들을 온갖 노리개로 삼은 후 비밀 유지를 위해서 '도주분자'로 몰아 비밀리에 죽인답니다."[25]


2000년 이후 수용소에서 보위원들이 정치범 여성들을 강제로 성폭행하거나 변태적 성고문을 가하는 일은 아무런 법적 제재도 받지 않을 정도로 관행화됐으며, 보위원들이 남녀 정치범들의 옷을 벗긴 뒤 때리는 고문이나 성폭행으로 임신한 정치범 여성들을 죽이는 일은 서로 봐주며 덮어주고 있다는데, 이는 김정일 자신이 기쁨조로 온갖 타락한 생활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을 간부들이나 보위원들도 다 알게 되면서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26] 이는 김정일 시기 증언이기에 김정은 시기에도 이 모양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북한의 인권 실태를 보면 이런 상황이 나아졌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

2.1.6. 기아[편집]


일반적으로 성인 기준 하루 500g 이하의 옥수수가 주어지며, 심한 경우 200g 가량으로 떨어지기도 한다.[27] 처벌 받는 경우에도 200g의 식량으로 줄어드는데 이것을 삼백처벌이라 한다. 규정을 어기거나 일을 제대로 못하여 처벌을 받아 감소된 분량의 경우, 일을 잘한 수감자 그룹에게 더 주어서 일을 잘 하도록 한다.

이 때문에 수감자들은 만성적인 영양실조를 앓고 있으며, 펠라그라병[28]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 신장 170cm 기준으로 42kg은 허약 1도, 40kg은 허약 2도, 38kg은 허약 3도로 분류하고 보통 1달 이상 못 버틴다. 그리고 이렇게 허약 3도까지 가버려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된 사람들은 수용소 내 격리 수용 구역에 따로 수용된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매일 같이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고.

때문에 재배나 수확 중인 양배추 같은 작물은 당연하고, 작업 중 풀(잡초)을 뜯어먹거나 소똥에 박혀있는 강냉이나 돼지 여물로 줄 음식물 쓰레기, 생선 저장 탱크를 세척한 물에 밥[29]을 말아 먹기도 하고 고기를 먹을 수 없기도 하다 보니 벌레, [30], 개구리, 도마뱀 등의 야생 동물을 잡아먹기도 한다. 한마디로 당장 먹어 소화시킬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먹는다. 특히 쥐 같은 경우 수용소 내에서도 흔히 보이기 때문에 자주 잡아먹는다. 얼마나 기아가 처참한지 자기 자식의 인육을 먹었다는 사례가 최소 2건 보도될 정도였다. #1 #2

그러나 이런 허용되지 않은 음식들은 강력히 금지되어 있으며, 보위원에게 적발되면 두들겨 맞거나 감시 수색견에게 죽는 등 엄벌을 받으며, 혁명화 구역에서는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야생 것을 그대로 먹기 때문에 당연히 질병 감염에도 취약하다. 그래도 먹을 사람은 어떻게든 먹어서 수용소 안에는 쥐가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

수감자들이 사망한 원인 대부분은 질병과 추위, 영양실조. 일단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사람은 오래 버틸 수 없고 오히려 덩치가 작고 재빠른 사람이 오래 살아남는다. 덩치가 있으면 그만큼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먹어야 되는 식량도 더욱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기아에다 중노동까지 더해져서 수감자들은 2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바짝 마르는 게 보통이며, 영양실조로 배가 튀어나오고 허리가 휘어지는 등 몸이 완전히 망가진다고 한다.

강철환의 증언에 따르면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들은 '김일성 부자가 내려준 정치적 생명이 없는 짐승'으로 간주되어 태양절광명성절[31]에 어린이들에게 주는 사탕, 과자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혁명화구역 수감자들은 그나마 '정치적 생명'은 살아 있는 자들이라서 김일성 부자의 생일에 선물을 줬다고는 하며, 이는 "당연히 죽어 마땅한 죄인들의 가족이지만 당과 수령의 은혜는 이토록 깊다"는 의미라고 한다.[32] 그리고 이때에는 누더기 같은 죄수복을 입던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되는 김씨 부자 연구실에서 열리는 혁명역사교육 시간을 위해 입을 선물로 고급 테트론 교복과 신발, 나일론 양말도 받는다고 한다. #[33]

2.1.7. 영아 살해[편집]


'종파분자와 계급의 원수는 그가 누구이건 3대에 걸쳐서 씨앗을 없애야 한다'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서 수용소에 가족 단위로 수감된 예외적인 경우, 표창 결혼으로 태어난 경우를 제외하고 태어난 아기는 모두 살해 당한다.

바닥에 눕힌 임산부의 배 위에 긴 널빤지를 가로질러 올려놓고 다른 수감자 두 명이 그 위에서 널뛰기를 하도록 강요했다는 목격담도 있다.[34] 강제 낙태 실패로 영아가 살아 나온 경우도 당연히 살해 당한다. 웃긴 것은 북한이 중국과 친하게 지내겠다고 스스로 달려들어서 중국과 친해졌음에도 중국인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 수감자의 경우에는 '한족 놈의 씨를 뱄다'고 철저히 유산을 시킨다. 단, 평생 수용이 원칙이라면 그냥 내버려두기도 한다.

참고로 평시에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들도 아닌, 젖먹이 아기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계획적, 조직적으로 살해한 사례는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제외하면 킬링필드를 저지른 크메르 루주 시절 캄보디아밖에 없다.[35]


2.1.8. 우민화 교육[편집]


대부분의 학교 생활이 강제노동에 할당된다. 요덕 제15호 관리소에 존재하는 혁명화구역에 한해서는 주체사상김일성-김정일의 혁명 역사 등의 교육 시간표 자체 일반 학교와 동일하지만, 혁명화구역에서도 학교 시간표에 따라 돌아가지 않으며 강제노동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참고로 강제노동은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대부분은 학교에서 덧셈, 뺄셈, 작업 지시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만 교육 받는다. 이러한 교육의 담당자는 수용소 경비병들과 보위부원들이지만, 이들을 "선생님"이라 부르라고 교육을 한다고 한다. 또 보위원의 자녀들을 부를 경우 "선생님의 아들/딸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2.1.9. 열악한 환경[편집]


보위원들이 수시로 폭행하기 때문에 온몸이 흉터와 멍 투성이가 된다. 당연히 그래도 의료시설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제대로 된 치료는 꿈도 못 꾼다.

거기다가 거의 씻지도 못하기 때문에 위생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 그 자체다. 몸에 가 들끓고 썩는 냄새가 나는 것은 기본이다. 수감실은 벽이 말려진 진흙으로 되어있고, 천장은 나무 널판지 위에 지푸라기가 올려져있는 형태로 물이 새고 썩은 상태라고 한다. 또한 바닥은 말린 지푸라기로 만든 매트라고 한다. 수감실은 약 50제곱미터이며 이 수감실 안에 30명~40명 사이의 수감자들이 취침한다고 한다.

각기병과 각종 폐 질환들 또한 수감자들 사이에서 만연하다. 씻을 기회조차 없어 진흙에 뒤덮여 있기 때문에 벼룩이나 빈대가 많아 가려움증 때문에 창살에 매달려 잔 적도 있다는 증언도 있다. 따라서 수감자들은 아토피습진, 무좀 등 여러 가지 피부병에 시달린다. 게다가 거주 환경은 물론 노동 환경마저도 열악해서, 노동을 하는데 오직 노동만 위한 장비만 주어져 그 외에 필요한 기본적인 장비[36]도 없어서 갖은 사고가 자주 난다.

게다가 냉난방도 허술해서 추운 지역의 경우 얼어죽는 사람, 더운 지역의 경우 쪄죽는 사람이 많이 발생했다. 겨울에는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져 수감자들이 동상에 걸린다. 수용소의 건물은 그냥 창고 수준이기 때문에 수감자들은 한겨울에는 추위에 바들바들 떤다고 한다. 중장년을 넘긴 노인 계층이 가장 많이 죽는 것은 이 겨울 무렵으로, 추위를 이기지 못해 얼어 죽거나 못 먹고 병들어서 죽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어차피 보위원들은 수감자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고 잡혀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대놓고 죽일 작정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답 나오며, 이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은 열악한 환경은 결코 개선되지 않는다.


2.1.10. 중노동[편집]


수감자들은 대개 새벽 5시에 기상하여 6시까지 아침 식사를 마치고 7시에 작업 집합, 8시부터 12시까지 오전 작업, 12시부터 30분간 식사, 그 이후 20시까지 오후 작업. 작업 계획에 따른 작업량이 달성되지 않으면 보통 23시까지 작업을 하나 이마저도 달성되지 않으면 둔기로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을 또 가하는데, 수감자 간부들과 보위원들에게 2중으로 당한다.

그리고 경비대원들이 수감자들을 약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참고로 이 중노동하는 나이는 수용소마다 다르지만 보통 만 6세부터 하게 되는데, 한국 기준으로 보자면 유치원에 갈 나이부터 평생 이런 강도의 노동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아동노동은 국제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은밀하게 북한에서만 행해진다는 소리.[37] 노인의 경우도 처참하기 짝이 없는데, 혁명화 구역에서는 면제되지만 완전통제구역에서는 그런 거 없고 죽을 때까지 중노동을 하게 된다. 즉 고령의 노인들도 끔찍한 고문과 폭행을 당한다.

이는 여자라고 예외가 없다. 수감자는 여자라고 해도 바위를 날라야 한다.

한편 수용자들의 수는 북한 인구의 1% 정도에 불과(?)하나, 그들이 북한 경제에서 담당하는 비중은 3~5%에 이른다. 즉, 수용자 1명이 일반인 5~7명의 노동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애초에 정치범수용소의 원조격이었던 굴라크가 노동력 충원에 큰 도움이 되었으니 그럴 만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굴라크가 애초에 노동력 충원이 목적인 반면 여기는 학살이 목적인 곳임을 기억해야 한다.

20대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서 상당한 강도의 노동을 하기 때문에 사망할 확률이 제일 높은 연령대라고 하며, 20대를 수용소 안에서 넘기면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고 한다.

2.1.11. 구류장[편집]


수용소 안에서도 구류장이란 곳이 있는데, 그 곳은 온갖 험한 일 다 겪은 수감자들도 매우 치를 떠는 곳으로 악명 높다.

구류장에서는 먹을 것도 평소보다 훨씬 적게 줄뿐만 아니라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이나 빨래판이 있는 자리가 있다. 취침 시간과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그 자리에서 나뭇가지들을 오금 사이에 끼운 채로 양 무릎을 붙이고 무릎 꿇고 발을 가지런히 모은 뒤에 발등을 바닥에 붙여 뒤꿈치엉덩이를 밀착시키고 허리를 곧게 펴고 각을 잡으며 계속 꿇어앉아 있어야 한다. 이는 조선시대에 행해졌던 압슬이란 형벌과 유사하다. 이 형벌은 알몸인 상태로도 행해지며, 무릎과 허벅지 위에 무거운 을 올려놓아서 발로 밟거나 올라타서 뛰는 형태로도 가해진다.

기본적으로 팔을 펴고 양 손은 양 무릎에 주먹을 쥔 상태로 각을 잡고 앉아있는데, 양 손을 낭심이나 배꼽 위에 올리는 공수 자세를 취하게 하기도 한다. 다만 꿇어앉은 상태에서 눈을 감고 양 팔을 귀에 딱 붙여서 하늘을 향해 들고 있게 하거나[38], 앞으로 나란히 자세를 시키고 수용자의 겨드랑이나 발바닥을 간지럽히기도 한다.

그러다가 수용자가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엉덩이가 발뒤꿈치에서 떨어지거나 다리를 오므리지 않는 등 무릎을 제대로 안 꿇거나, 신음소리를 내거나, 울거나, 졸면 바로 회초리로 치거나 채찍질이 날아온다.[39] 매일 이런 죽는 것보다 못한 지옥같은 생활을 하다 보면 불과 1달 안에 폐인이 되어 끔찍한 모습으로 죽게 된다.


2.1.12. 구타 및 가혹행위[편집]


말이 필요 없이 수용자를 다루는 것은 보위원 마음대로이며, 내키는 대로 폭행을 가한다.

신동혁[40]의 말마따나 "죽느냐? 사느냐?"가 바로 이것으로 보위원의 기분에 따라 생사 여부가 결정된다. 보위원이 기분 좋으면 욕설이나 몇 방 쥐어터지는 걸로 끝나지만, 기분이 나쁘면 무작위한 폭행에 황천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장난 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 격. 뿐만 아니라, 보위원들의 마을은 수용소 내부에 있는데 이 마을에서 나온 보위원 자녀들도 수감자들을 괴롭힌다.

이 때문에 수용자들은 보위원들의 분노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늘에 빌어야 할 판이다.


2.1.13. 고문[편집]


체벌은 기본이고 온갖 끔찍한 고문이 가해지는, 인간의 잔인성의 끝을 보여주는 살인 공장이며 매일 24시간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 항목 참조. 심지어 그 끔찍한 고문들조차 혁명화구역과 노동교화소 내에서의 고문이며, 완전통제구역 내 고문들은 '전혀'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완전통제구역석방이 절대 불가능한지라 거기서 살아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후술하듯 완전통제구역의 간수들이 전국민에 대한 가스라이팅으로 악명 높은 북한 내에서도 극단적인 세뇌를 당한 사람들이란 것을 감안하면 완전통제구역 내 고문들은 혁명화구역, 노동교화소도 가볍게 능가할 정도로 잔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41]


2.1.14. 연좌제[편집]


정치범 가족은 물론이고 일가친척까지 다 끌고 온다. 문제는 피가 하나도 안 섞인 며느리나 사위, 형수, 매부, 처남, 올케, (외)숙모, 이모부, 고모부 등의 인척들도 해당된다. 다만 요즘은 아예 수용소에 자리조차 없어서 며느리나 사위 등은 나치의 경우처럼 강제 이혼 후 타지로 추방 당하는 정도로 그치는 편이다. 또한 현재는 정치범의 가족이어도 배우자와 그 자식들의 경우 정치범 당사자와의 이혼을 조건으로 수용소행이 면제되기도 한다.

실제로 1997년 4월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경우, 그가 망명한 뒤 그의 직계가족들은 물론이고 11촌까지 포함해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부 정치범수용소로 들어갔다고 한다. 황장엽의 아내는 그의 망명 후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자식들 역시 모두 수용소에 수감되어 이혼까지 당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평양에서 살던 황장엽의 한 친척은 "당에 충성하던 내가 얼굴도 본 적 없는 황장엽 비서 때문에 왜 수용소로 가야 되느냐!" 라며 저항하다가 자살을 선택했다고 한다.

본인만 수감될 경우에 가족에게도 통보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만 가족 때문에 같이 끌려온 경우 혁명화 구역에서는 나갈 방법이 있는데, 그게 바로 죄를 지은 당사자의 사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얼떨결에 끌려온 가족들은 "저 인간 언제 죽나" 하고 더 이상 가족 취급을 하지 않고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밥 먹듯이 하게 되고, 당사자는 눈칫밥 때문에 미칠 노릇이라고 한다. 완전통제구역에서는 평생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자살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2.1.15. 인격모독[편집]


보위원, 경비원, 간부 수감자는 수감자를 "무슨 새끼"로 부르는데, 이는 나이나 남녀노소 상관 없이 그렇게 부른다.

바닥에 가래침을 뱉은 후 수감자에게 개처럼 낲작 업드려서 핥아 먹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수감자를 앞에 무릎 꿇고 공손하게 앉힌 뒤에 입에 직접 넣는 경우도 있다.

간수들을 보면 무릎 꿇고 허리를 세우고 두 손을 배꼽 위에 올린 뒤 공손하게 앉아서 엎어서 절을 하듯이 머리를 땅에 처박고 고개를 숙여야 되며, 이 때 발등이 바닥에서 떨어지거나, 엉덩이를 발뒤꿈치에 붙이지 않거나, 양 무릎을 오므리지 않거나, 절하는 자세가 조금이라도 뻣뻣하면 가차없이 군화 신은 발로 쪼인트를 까거나 주먹과 개머리판과 욕설이 날아온다.

2.1.16. 간접 통제[편집]


마을 형태의 수용소인 관리소에서는 수감자가 매우 많아서, 일을 잘하는 수감자들의 일부에게 총반장, 작업반장, 탄광사무, 통계원, 학급장, 조장 등의 직책을 주고 그들에게 수감자들을 통제할 권한을 준다. 권한뿐만 아니라 질 좋은 식사, 피복 지급 등 일반 수감자에 비해 좋은 대우를 주면서 이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기 때문에, 간부급 수감자들은 직책에 더 오래 있기 위해서 보위원들보다 훨씬 더 심하게 수감자들을 학대한다고 한다.

이보다 더 도를 넘은 경우에는 보위원들조차도 그들을 제지할 정도라니 말 다했다. 여기까지 언급된 간수들의 사례들만 봐도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텐데, 그런 보위원들에게도 강력히 제지 당할 정도면 사람이란 게 극한 상황에 몰리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보위원들이 수감자들 중에서 스파이를 또 뽑아 서로 감시하고 잘못을 찾아내 고발하게 한다. 나치 독일유대인 경찰 제도 혹은 카포와 비슷하다.

2.1.17. 생체실험[편집]


회령 수용소에서는 가스 실험을 수감자들에게 행한 적이 있으며, "개천 제14호 관리소"에서는 에 감염되어 가려움증에 시달리는 수감자들에게 치료라는 명목으로 정체불명의 하얀 약물을 실험했는데, 그 약물에 노출된 수감자들은 피부가 변하고 고열에 시달리다가 모두 사망한 케이스가 있다. 생체실험과 관련된 문서를 확보했다는 기사도 있다.


2.1.18. 경비/수색견들 악용[편집]


이곳 경비견들을 굉장히 반인륜적인 짓을 하도록 훈련시키는데 도주를 시도하거나 반항을 하려는 낌새가 보이는 수용자를 물어 죽이거나 잡아먹도록 훈련시켜 놓았다.

실제로 1989년 지금은 폐쇄된 13호 관리소에서 13세 여학생 2명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도중 경비견에게 공격당하고 잡아 먹힌 사례가 있다. 소장은 이에 대해 "개를 사납게 잘 키웠다"는 망언을 했다.

2.1.19. 시신 처리[편집]


수감자가 사망한 경우 장례식조라고 하면서 수감자들에게 시체를 처리하게 하는데, 묻어주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 그 자체.[42]

수감자의 시신은 대개 백골이 드러나도록 아무 곳에나 방치해두며 가끔은 경비견의 먹이로 주기도 한다. 개천 제14호 관리소에서는 돼지 거름에 수감자의 시체를 던져 넣어버린 케이스가 있다. 강철환의 언급에 따르면 보위원의 눈을 피해 시신을 매장한 곳을 가족에게 알려주기도 하는데, 알려줬다는 것이 발각되면 그 인부는 그날 이후로 남아날 수 없다고 한다.

2.1.20. 처형[편집]


도주를 시도하다 잡히면 공개처형 당한다. 처형 방식은 총살형이 일반적이며, 교수형이나[43]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하도 많이 봐서 효과가 떨어지자 비밀처형으로 바꾼 경우도 있다. 공개처형의 경우 도주를 시도한 수감자를 본보기로 처벌한다고 한다. 도주를 시도했던 한 수감자는 차 뒤에 줄로 매달려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거리를 끌려 다닌 다음 나무에 묶여 총살 당했다고 한다. 그것도 1발이 아니라 몸 전체에 여러 명이 난사한다고 한다.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이미 나무에 묶이기 전에 피투성이가 되어서 살아있는 거 같지도 않았다고 한다.[44] 만약에 도주한 사람을 찾지 못하면 그 사람의 책임자도 처형된다고 한다. 그리고 사살된 수감자는 경우에 따라서 수감자들에 의하여 돌팔매질 당한다고 한다.

재판부터 공개 처형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25분에 불과하다. 처형당하기 전 처형자의 입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서 한마디라도 비방하는 말이 나올경우 남아있는 가족들의 삶은 더욱 참혹해진다. 당연히 변호사랑 최후 변론도 없다.

2.1.21. 그 외[편집]


15호 관리소에서는 경비대원들이 공명심에 일부러 수감자들에게 수용소 경계선 근처로 오게 한 뒤에 사살한 일화도 있다. 하지만 사살당한 사람 중에 수감자로 위장한 보위부원도 있어서 원하는 대로 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자살도 하지 못하게 늘 감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자살 방법이 거리에 떨어진 녹슨 못을 몰래 주워 먹거나 못에 머리 혹은 몸통을 뚫으려 시도하거나, 죽을 때까지 벽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하고, 목을 매거나, 양잿물을 마시기도 한다. 이것들마저도 불가능하면 혀를 깨물기도 한다. 허나 이것도 혀를 깨물면 죽는다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흔해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로는 사망 확률이 매우 낮은 방법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리고 자살을 한다 해도 남아있는 가족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일단 자살 행위 자체를 북한 정부에서 민족반역행위로 낙인찍는 데다가 유서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 한 마디 욕이라도 적혀 있다면 살아있는 가족의 삶은 더욱 참혹해지게 된다. 물론 완전통제구역의 경우에는 아까도 언급되었듯 수감자들과 그 가족들은 전부 동물 취급이기에 저런 말이 적혀있어도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 물론 혁명화구역, 완전통제구역 할 것 없이 자의로 죽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도주를 시도하거나 간수에게 대들면 맞아 죽거나 총살당할 수 있다.

3. 기타[편집]



  • 혁명화구역 수용자들은 출소할 시 정치범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함구하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발설할 시 최대 사형까지 당할 수 있다.

  • 북한에서도 가장 악명 높기로 유명하고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최고 형량의 수용소는 요덕 제15호 관리소청진 제25호 관리소인데 여기에는 김정일, 김일성, 김정은의 사진이 걸려 있지 않다. 북한 기준으로는 수감자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선언이다.[45]

  • 다음의 링크로 가면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형성 과정이 매우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끝 부분의 '보설' 편을 보면 지하 수용소가 존재한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범수용소들은 그나마 구글 어스상으로 관측이 가능한 지상 수용소. 지하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의 삶은 지상 수용소에서의 삶에 비해도 훨씬 비참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냥 원시적으로 만든 지하 감옥에 가두고는 죽게 방치해 두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그야말로 존재 자체의 말살이 주된 목적인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최악의 완전체라고 볼 수 있겠다. 게다가 북한에는 명간 제16호 관리소 등 핵 실험에 필요한 사람들을 가둬놓은 수용소도 존재한다. 그들이 방사능에 노출되어 어떤 피해를 입으며 죽어가는지 북한 당국에서는 '그런 거 알 게 뭐냐'는 태도다.[46]

  • 남한 주도의 남북통일이 된다면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할 곳이다. 또한 생존한 수감자가 있다면 반드시 구출해 내 영양 공급 및 치료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도 참혹할 것이고, 무엇을 상상하든지 그 이상일 것이다. 다만 북한 체제의 특성상 강철환 등 이미 탈출한 사람이나 간수들을 제외하면 남북통일 이후 정치범수용소 생존자는 거의 없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현재도 완전통제구역에서 수용자 신분으로 탈출, 생존한 것이 확실한 사람은 없다. 물론 경험자는 몇 명 있으나, 이들도 혁명화구역으로 이송되어서 생존한 것일 뿐이다. 거기다 이 학살에 참여했던 보위원 또는 고위층들은 무조건 체포, 도주했다면 전국 지명수배나 경우에 따라서는 인터폴의 협조를 받아 국제 적색수배가 발령될 것이고 당연히 대한민국 경찰, 해경 (관계자들의 밀항 단속 목적), 검찰, 국가정보원, 군부대 등등 대공 관계기관의 고가치 표적이 될 것이며, 저항을 준비 또는 실행하거나 무기류를 갖고 있다는 제보가 입수된다면 즉각 사살될 것이다.[47]

  • 문제는 통일이 확정되면 북한 수뇌부에서는 통일이 될 때까지 무조건 정치범 수용소의 흔적을 지워 없애려고 발악할 것이 뻔하다. 왜냐하면 이 자체가 군사재판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통일을 앞둔다면 수용자들은 전부 정리정돈하고 그 영구는 화장 후 흔적조차 없이 다 뿌려버릴 것이며, 건물 역시 모조리 철거할 것이다. 자기들이 만들어 수용소를 운영했는데 통일 이후에는 남한 법무부에 의해 자기들의 최후가 이 정치범수용소의 수용자들과 다름 없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48]

  • 사실 간수나 경비병들도 엄격히 말하면 북한 체제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완전통제구역의 경비병이었던 안명철의 증언에 의하면 수용소의 수인들을 인간 취급하지 말라고 세뇌시킨다고 한다.[49] 또 한 가지로 강철환의 일화에 따르면 수용생들에게 좀 잘해주었던 교원이 있었는데, 해당 보위원은 교체 당하고 용평에서도 악명 높은 교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잘해주면 안 된다고 세뇌를 당한데다 조금이라도 잘해줬다가는 자기도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당연히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저지른 잘못을 아예 덮어줄 수는 없지만[50]. 정치범수용소 해방 이후 이들의 앞날은 매우 어두운데, 실상이 드러날 경우 남한에서는 냉정하게 대응한다 쳐도 북한 주민들의 분노가 상상 이상일 가능성이 크므로, 만약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북한 주민들이 납득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 통일 이후 몇몇 간부나 경비원들은 분노한 북한 주민들에 의해 사적으로 살해당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오히려 이런 근거 있는 공포감이 북 간부들에게 체제가 망하지 않도록 더욱 악착 같이 충성하도록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1] 특히 여자들이 물건 팔고 돈 벌러 간다고 하면 담배 같은 뇌물을 바치고 왔다갔다 왕래하는 걸 묵인할 정도인데, 나이 든 여성들은 식구들이 북한에 있어서 탈북할 위험이 적다고 보기 때문이고 남자의 경우는 까다롭다고.[2] 북한이 아무리 탈북자들을 잡아서 처벌하려고 해도 그 행위에서 나오는 이익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 사람들을 수용할 수용소도 지어야 하고, 거기에서 일할 인력들도 따로 편성해야 하는데 돈에 쪼들리는 북한이 그럴 여력이 있을까? 이렇다 보니 아무리 북한이라도 이런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3] 탈북자 가족은 적대계층으로 분류되긴 해도 탈북자가 보내준 돈 덕분에 오히려 동요계층 시절보다 경제적으로 더 윤택해지기도 한다.[4] 다만 김정은이 특별 지시로 최근 9천여 명이 자수해서 자아비판과 조리돌림으로 망신을 당하고 단기간의 노동교화형으로 퉁쳤지만, 법을 개정해서 단순 시청도 15년 이하 노동교화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개정하였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그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5] 북한의 화폐개혁에 대한 실패를 뒤집어썼다.[6] 용평 지역은 완전통제구역 중에서도 최고의 악명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나마 인위적으로 죽이지 않는 회령이나 개천은 어떻게 버티고 버티면 수십 년을 살아남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여기는 성인이 되면 일부러 광산으로 보내 죽인다. '수용소의 노래'에 실린 강철환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수감되기 몇 해 전에 용평에서 수감자 봉기가 일어난 뒤, 16세 이상 남성 수감자는 용평에서도 따로 수감되어 광산처럼 위험한 곳에 배치된다고 한다.[7]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모래로 쌀을 만들었으며,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넜다든가, 축지법을 써서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을 격멸했다는 등.[8] 예를 들어 보천보 전투에서 김일성이 지휘한 200명도 안되는 항일군이 수십만의 일본군을 무찔려서 이겼다는 거나(물론 실제로는 완패) 1934년에 조선인민혁명군을 창설시켰으며 지금의 조선인민군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거나(역시 거짓이다. 애초에 조선인민혁명군은 실존하지도 않았다.) 등등... [9] 혁명화구역은 나치 독일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 대응된다.[10] 완전통제구역에 대해 증언한 사람은 극히 드문데 그것조차 진짜 수감자 출신은 정치보위부 중좌, 즉 고위 관료였던 김용 1명뿐이고 그조차 탈출이 아닌, 국가보위부 고위 간부의 '배려' 덕분에 다른 수용소로 이감되어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김영순은 실제로는 혁명화구역 수감자였으나 완전통제구역에 '파견근로자'로서 작업반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라 보기는 힘들고 안명철은 수용소 경비원이지 수용소 수감자가 아니었다. 신동혁은 주장 대부분이 거짓으로 탄로난 데다 본인도 해제민 출신이었으니 논외.[11] 참고로 완전통제구역이 어떤 곳인지는 김용의 증언과 안명철의 책 '완전통제구역'(안명철이 직접 그린 그림이 첨가되어 있는데 보면 '인세의 지옥'이 어떠한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을 참고할 것. 이 자료들만 봐도 완전통제구역이 어떤 곳인지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12] 실제로 장성택이 처형되기 직전에 재판을 받은 재판소에서도 김일성 부자의 사진이 배치되지 않았다.[13] 요덕 제 15호 일부, 개천 제 18호를 제외하면 전부 완전통제구역이다.[14] 굴라크는 사망자 수가 많기는 하지만 애초에 정치범들을 강제노역으로 써먹기 위하여 만들어진 곳이다. 이오시프 스탈린 자체가 잔혹함도 있지만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던 독재자였기 때문에 노동력을 정치범수용소로 충원한 방면 북한은 무조건 강압적인 공포정치로 인민들을 최대한 괴롭혀서 권력을 잡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목적 자체도 학살이며 그 내용도 잔혹하기 짝이 없다. 하다못해 혁명화구역도 본인이 보기에 죽을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적대계층들을 잡아서 괴롭히고 거기서 죽든 말든 하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15] 물론 말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던 대한민국에서 강제수용소를 만들어서 초법적인 학살을 했던 것부터 사망률이 몇%이건 간에 문제가 많기는 하다. 애초에 스탈린 치하 소련, 중국, 일본 제국, 나치 독일은 손에 꼽히는 최악의 독재국가다.[16]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나와서 글을 쓴 사람들은 재일교포 출신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서는 석방된 사람들이 아닌 탈출을 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탈북자 가족들도 전부 죽을 때까지 못 나오며 그곳에서 태어난 아기도 영원히 거기서 살다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아래의 실상을 똑같이 겪고 요절하게 된다. 심지어 이것도 전술한 것처럼 단 1명을 빼고 모두 혁명화구역 출신의 증언이다.[17] 다만 나치 독일의 수용소 중서도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처럼 죽을 때까지 굴리면서 노동력을 뽑아 쓰다가 죽으면 시체를 길바닥에 내버리는 곳이 있었다.[18] 이에 비록 규모 차이가 있지만 삼청교육대같은 곳과 비슷하지 않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신장 위구르 캠프 쪽이 민족을 완전히 세뇌시키고 고문이나 학살도 더 잦은 등 더욱 심각한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잡아서 고문하고 세뇌시켜 사회에 편입하는 것이 목적인 캠프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목적 자체가 학살이며 수감자들은 이미 숙청당해 죽은 사람 취급이다. 즉 어차피 처형당해 죽을 목숨인 거 최대한 노동력이나 뽑아다 정권의 배터리나 되어 죽어가라는 것이다.[19] 유사 이래 북한 수준의 '감옥국가'는 민주 캄보치아는 논외로 치더라도 1차 탈레반 정권 시절 아프가니스탄과 마시아스 응게마 시기 적도 기니를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디 아민 시기 우간다와 엔베르 호자 시기 알바니아 오늘날의 에리트레아조차 북한보다는 자유로운 편이다. 그 일례로 북한에서는 자신이 사는 도가 아닌 다른 도로 이동하려고 해도 당국의 허가를 받고 려행증을 발급받아야 가능한데 심지어 그것조차 김일성 시절보다 완화된 것으로 김일성 시절에는 자신이 사는 군이 아닌 다른 군으로 이동하는 것도 려행증을 발급받아야 가능했다고 한다.[20] 비슷하게 사이코 스릴러 영화 '펫'에서는 유기견 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이 사나운 유기견을 길들이는 수법인 며칠 굶긴 뒤에 음식 주기를 활용하는데 사람을 납치, 지하의 철장에 가둬 놓고 며칠 굶겨 놓은 뒤에 음식을 주는 식으로 순응하게 만든다.[21]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북한인권백서2021' 에 수록된 내용에 따르면 완전통제구역에서는 부모형제 관계에 있는 사람마저도 함께 살 수 없다고 한다.[22] 모자관계나 남매관계에서. 전자에 경우엔 성교육을 위해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23] 북한에서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따라 육체적 생명과 정치적 생명을 구분한다. 그래서 정치적 생명이 다한 사람을 비인간 취급 혹은 육체는 죽었으나 정치적 생명은 건실한 자를 영생한다고 하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오브라이언과 같은 논리를 펼치는 것이 북한에서는 가능하다. 전자의 인물들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인물들이라면 후자의 인물들은 김일성, 김정일 등 백두혈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중국에서도 전 주석들이 사망했을 때 '~동지는 영원불멸할 것이다.'와 같은 조문을 올리는 등 이런 식으로 예우해준다.[24] 이 변한 방침을 전한 데일리NK소식통에 따르면 14호 관리소에는 중앙과 지방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을 엄중 위반한 개인과 가족이 집중적으로 입소했고, 17호 관리소에는 국가 형법상 중범죄, 간첩죄, 반역죄 등을 저지른 개인과 가족이, 18호 관리소에는 탈북 시도자들과 국가반역음모자들이 집중 입소했다고 한다.[25] 북한의 개혁·개방과 인권 허만호 著 P.240.[26] 사실 김일성 시절에는 여죄수와 보위원이 '간통'을 하면 보위원이 해고되는 등 어느 정도의 기강은 잡혔다고 한다.[27] 흔히 생각하는 제대로 조리된 식용 옥수수를 생각하면 안 된다. 제대로 손질도 안 되어 있고 옥수수 수염이나 흙먼지 등이 섞인 거의 쓰레기 수준의 옥수수를 대충 갈거나 삶는 등의 최소한의 조리만 해서 준다.[28] 비타민 B3(나이아신) 결핍증. 특별한 처리를 거치지 않은 옥수수에는 비타민 B3가 없다. 수용소에선 가장 흔하며 이 병의 초기 증상은 설사, 피부병, 의식 장애 등이다. 더 심해지면 무관심, 무표정, 발열, 공포심, 망각, 환각 등이 나타나고 급기야 죽게 된다. 수용소 내에서는 '삐라그라'라고 부른다.[29] 당연히 남한 사람(한국인)이 생각하는 '밥'이 아닌 가축용 옥수수를 잘게 부숴 만든 '밥'을 말한다. 한 마디로 농업 폐기물을 '밥'이라 말하는 셈.[30] 강철환이 언급한 일화에는 일부러 쥐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31] 각각 김일성/김정일의 생일이다.[32] 특히 옥수수와 시래기, 쥐 고기를 뜯던 아이들이 1년에 한 번 김일성·김정일이 내주는 사탕·과자를 받아 안으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만 생후 몇 개월 정도밖에 안 됐는데 수용소에 끌려온 아이들은 단맛을 알지 못해 생전 처음 먹는 사탕을 뱉어버리기도 했다고 한다.[33] 김정일의 '선물정치'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다.[34] 이건 일제강점기일본 경찰이 저질러 공분을 산 적이 있다. 북한이 일제강점기에나 했던 만행을 저지르는 것.[35] 이쪽도 "풀을 죽이려면 뿌리도 죽여야 한다"라는 폴 포트의 말에 따라 '반동분자'들이 자식을 낳기가 무섭게 그 아기를 잔혹하게 살해한 것으로 유명하다.[36] 목장갑, 안전화, 안면마스크, 안전모, 고글 등. 막노동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장비들이다.[37] 다만 북한 외의 국가에서도 빈곤이거나 가족이 고령이나 부상, 질병 등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계 유지를 위해 아이가 노동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는 아동노동을 금지하면서 생계 지원이 미비한 국가들에 한정되며 한국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38] 이 때 양 손은 주먹을 쥐고 있어야 하는데, 제대로 주먹을 안 쥐거나 눈을 뜨면 따귀를 갈기기도 한다. 이는 무릎 꿇고 손 들기라는 간접체벌의 일종이다.[39] 꿇어앉혀놓은 상태에서 앞 허벅지를 두꺼운 각목으로 마구 내려쳤다는 기록이 전해지기도 했다.[40] 다만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신동혁은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도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41] 아마 야세노바츠 강제수용소, 이디 아민 시기 우간다의 강제수용소에서나 일어날 것 같을 정도로 피비린내나기 이를 데 없는 일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자행되고 있을 수도 있다.[42] 이를 북한 말로 '평토해치운다'라고 한다. 평토해치운다고 하는 이유는, 봉분이 없이 구덩이에 묻은 뒤 평평하게 묻어 '평토' 라고 한다.[43] 강철환의 증언에 따르면, 인민군 출신 수감자 두 사람이 탈출하려다 붙잡혀 처형 당할 때는 수용소 측에서 총알이 아깝다고 교수형으로 집행했다고 한다(수용소의 노래 '총알이 아깝다' 편 참조). 안명철도 총살형과 교수형으로 사형이 집행된다고 증언했고, 표창 결혼한 사람이 아닌 임신한 수감자는 초기에 드러날 경우 강제 낙태에 처하며 낙태를 할 주수가 지났다면 비밀처형한다고 증언했다.[44] 요덕 제15호 관리소 수감자였던 김정일의 전 보디가드 이영국의 증언 외 다수가 있다..[45] 북한에서는 원래 어느 건물을 가든 최소한 김일성의 사진, 보통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 많으면 김정은 사진을 걸어둔다. 이들이 계속 최소한의 관심을 가지고 북한 주민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인데, 사진을 치워버린다는 건 그 관심마저 거둔다는 것으로 중세 기독교 사회의 파문에 버금가는 사회적인 사형 선고에 해당한다. 사실 주체사상에는 알게 모르게 기독교 교리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46] 후지모토 겐지의 <김정일의 요리사>에 의하면, 1995년 12월 30일 당 선전부장 김기남이 "현재 핵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나 머리가 빠지는 등 피폭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아주 비참한 상태입니다."라고 보고했으나, 그에 대하여 김정일은 아무 말이 없었다고 한다.[47] 당연하면 당연하겠지만 이들이 정치범수용소의 실상과 실체를 부인한다고 해도 요즘 인터넷과 인공위성으로 다 보이는 세상인지라 필연으로 발각되어 국제 지명수배를 받아 전 세계의 표적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은 거의 100%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48] 물론 통일한국은 인도주의적 국가이기에 이렇게 가혹한 행위들을 똑같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럴 필요도 없이 즉시 사형 집행을 할 확률이 더 높을 뿐이지.[49] 이 링크에서 정치범수용소(정황상 혁명화구역일 가능성이 높다) 간수들이 받는 '전문성 훈련 교육'의 내용을 엿볼 수 있다. 완전통제구역 간수들에게 가해지는 세뇌 교육은 그보다 더 극악한 내용일 것이라는 것만 알아두면 될 듯 하다.[50] 동독에서 탈출자 사살을 담당한 경비병들은 그것이 명령에 의한 것임이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참작을 받았을 뿐 처벌 자체는 면치 못했다. 어쨌건 비인간적 명령에 따른 것 자체가 범죄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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