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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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특징
3. 원인
4. 탈북자
5. 탈북 경로
5.1. 6.25 이전 탈북
5.2. 해외 주재 중 탈북
5.3. 중국 + 제3국 루트
5.3.1. 태국 경유
5.3.2. 몽골 경유
5.3.3. 기타 동남아 국가
5.4. 전면돌파 휴전선/NLL 루트
5.4.1. 휴전선 루트 귀순 사례
5.5. 러시아 루트
5.6. 전투기
5.7. 기타
6. 가짜 탈북자
6.1. 북한 측
6.1.1. 위장 탈북자의 진짜 탈북
6.2. 돌아갈 수가 없다
6.3. 기타
7. 관련 사건
8. 탈북을 다룬 영상물



1. 개요[편집]


탈북(, North Korea defection) 또는 북한 이탈( )은 북한 지역 주민이 북한 내부에서 획득한 재산, 능력, 자산을 보유한 상태로 죽음위협을 이겨내고 전체주의 독재체제에서 탈출하여 대한민국(남한)이나 제3국으로 도피·망명·귀순하는 행위를 말한다. 반대말은 월북이다.[1]


2. 특징[편집]


파일:남북의 창 로고.png


[클로즈업 북한] “남한 방송 보며 동경”…다양해진 탈북 이유
(2023년 5월 27일 방영분)


북한은 이동이나 여행의 자유가 심하게 제한된다. 북한 내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조차 허락을 받고 려행증을 발급받지 않거나 없으면 불가능하다. 심지어 수도인 평양은 특별한 허가증이 없으면 출입이 불가능한 데다가, 출신 성분이 불분명한 이들은 아예 허락조차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국내 이동에조차 여권이 필수라는 말이 된다.[2]

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탈북이 많이 일어나는 곳은 국경 지역, 그것도 신의주 같은 평안도 일대보다는 그나마 통제를 피할 수 있는 동북쪽 함경도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즉 탈북하고 싶어도 지리적 여건이나 형편이 함경도민들 외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 한국 정착 탈북자 중 두만강 국경지대인 회령, 온성, 무산 출신이 절반이라는 주장도 있다. #

평안북도압록강 중류나 하류가 인력으로 도강을 할 정도가 되지 못하다 보니 이쪽 출신도 별로 없다는 점이 크다. 두만강은 압록강 하류보다는 건너기가 수월한 듯하다. 브로커를 끼고 탈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함경북도나 량강도 같이 함경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지역은 연변 출신 조선족으로 위장할 수 있으나 평안도 쪽은 그것이 어려워 더 발각되기 쉽다고 알려져 있다.[3]

해외여행은 꿈에서나 가능할 정도다. 설사 해외로 나왔다고 해도 북한 국가보위성에서 파견한 보위원의 감시 하에 일거수 일투족이 보고되는 것은 기본이고, 그 감시 체계를 벗어난다는 것 역시 엄청난 모험이다. 그나마 뇌물이라도 상납하면 못 본 척 넘어가긴 하지만, 일반 주민들이 그런 금액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렵다.

냉전 시기에는 탈북자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반공 태세를 강화하는 데 이용했는데, 이 경우는 보통 탈북이 아니라 귀순[4]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탈북은 1994년 고난의 행군 이후 급격히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쓰게 된 명칭이다.

과거 냉전 붕괴 이전에 남한과 북한의 체제 경쟁이 심할 때에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아주 훌륭한 선전 효과를 가졌기 때문에, 탈북자가 남한에 들어오면 대대적인 환영 행사와 언론 보도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북한 경제가 급격히 막장테크를 타면서 탈북자의 수가 매년 1~2천명으로 늘어나고, 체제 경쟁 구도도 약해지면서 이런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

물론 탈북자들에게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현재 탈북자들은 경기도 안성시에 소재한 통일부 하나원에서 남한 사회에 대한 적응 교육을 받고, 공식적으로는 새터민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하나원에서는 북파공작원 전역자들에 대한 적응교육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교육에도 불구하고 새터민들이 하루아침에 복잡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지라 사기 피해를 매우 많이 당하는 편이다. 또한 정부에서는 소정의 지원금을 주는데, 이것을 위해 탈북 전문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정착금 300만원을 받았는데 이중에서 브로커 비용이 290만원인지라 딱 10만원 남았다는 후기도 있었다.

탈북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탈북, 탈북 계획은 물론 탈북 방조까지도 북한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탈북에 실패한 탈북자들의 처벌은 기본적으로 교화소[5]에서 몇년의 노동교화형으로 시작하며,[6] 요덕 제15호 관리소를 비롯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종신형을 보내기도 하며, 가족이나 친척들은 평생 감시와 사회적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 북한은 연좌제가 버젓이 살아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급증하는 탈북자를 두고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말이 갈린다. 실제로 어느 탈북자는 몇번이나 탈북 기도하다가 걸렸음에도 운 좋게 구타 및 욕설과 석방 가능한 수용소 생활 끝에 나왔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을 취조하던 군 간부가 "탈북하려는 거 보니 돈 좀 있는 모양이지? 그거 좀 주면 내가 봐주겠네."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사실 북한도 고위간부급이 되지 않는 이상 당원이라도 월급이 좀 박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당원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서민층들보다는 돈을 모으기 상대적으로 수월하기는 하다. 운 나쁘게 걸려들지만 않는다면 탈북하기는 쉬울 수 있다.

실제로 중국, 그것도 동북 3성 지역에서 탈북자들이 잡혀 북송되면, 그들이 중국에서 모은 돈은 보위부에서 전부 다 뺏는다. 그리고 이 북한이탈주민들은 돈을 바쳐서 나와 이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일하다가, 결국 중국을 거쳐 동남아시아를 통해 10여명의 탈북자 동료와 같이 남한으로 오는데 성공했다. 그 중에는 절반이 같이 수용소에서 탈북기도하다가 걸려 수감된 이들이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북한의 경제가 더욱 악화되어, 감시자들이 탈북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받는 돈의 금액이 정해져 있을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지방에서는 '기획탈북'이라는 것까지 생겼는데, 지역의 정치지도원이나 경찰간부가 탈북을 시켜준 후 탈북자에게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하도록 브로커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돈을 받았다는 인증사진까지 찍어서 탈북자에게 보내준다고 한다. 더욱 기막힌 것은, 아예 이를 위해 간부가 오히려 탈북하라고 부추긴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한겨레중고등학교 재학생들과 인터뷰를 한 것 중에는 탈북 도중에 혼자 잡혀서 북한으로 돌아갔는데 3달 가량 감옥에 갇혔다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고는 고아원에서 도망쳐나와 친척집에 머물다가, 남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닿아 재차 탈북을 시도해 성공했다고. 탈북자에 대한 처우도 때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한데, 탈북자라고 해서 다 같은 탈북자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연상하는 탈북은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에 들어오는 것을 패키지로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 탈북자들이 흔히 탈북했다가 잡혔다는 말을 할 때 의미하는 탈북은 북한을 탈출하는 행위까지인 것이다. 묘하게도 탈북하기 전 한국으로 가겠다고 미리 결심한 후 탈북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이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 실정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 일단 북한을 뜨자는 일이 대부분이고, 한국행을 결정하는 것은 중국이나 러시아로 나왔다가 거기에서 대한민국과 관련된 매체나 정보를 접한 뒤 가겠다고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북한 탈출 후 중국 등지[7]에서 유랑 생활을 오래 하다가 들어온 탈북자들이 많다. 이 역시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생활을 하다가 한국과 관련된 뉴스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나서야 한국의 실상을 알고 남한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국경지역이나 한국 드라마를 비밀리에 접할 수 있는 사람들 빼고는 남한에 대한 실상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곧바로 남한으로 직통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이와 같이 직통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은 처음부터 남한까지 오는 것을 계획하고 북한을 탈출한 고위층이거나, 이미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기획하여 가족을 데려오는 경우 등이다.

북한에서도 탈북해서 중국으로 가는 것 자체로는 그다지 처벌이 중하지 않아서 노동교화형이나 노동단련형 정도로 처벌받고 석방되는 경우가 많지만, 남쪽으로 오는 순간 엄청난 중죄가 된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잡힌 경우는 북한에서도 생계형 탈북으로 봐서 길게는 5년 정도 형을 마치고 풀려나지만 중국 동북 3성과 다른 성[8]의 접경지역, 3국의 국경 지대, 중국의 공항이나 항구, 중국 영해 등에서 잡히게 되면 다른 나라, 특히 한국으로 가려는 의도로 봐서 그 처벌 수위가 기본 10년형의 중형으로 늘어난다. 심한 경우에는 한번 들어가면 절대 사회로 복귀할 수 없는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 가거나 끔찍하게 처형된다.

그래서 탈북자 가족들은 현지에서 대부분 탈북자에 대해 '행방불명'이나 '가족들 몰래 중국으로 간 것'으로 해놓고,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을 이용하여 보위부에 뇌물을 먹이고 눈 감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탈북했는데 가족들에게 뭔 돈이 있냐 싶지만, 놀랍게도 남한에서 번 돈을 북한에 송금하는 것이 가능하다.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남한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한 중국에 한국 원중국 위안으로 환전하거나 미국 달러로 환전해서 송금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북한의 우방국인 중국에서 이 돈을 북한으로 송금하는 것도 마찬가지니, 2단계만 거치면 돈이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중간에 브로커 여러 명이 끼기 때문에 30% 정도가 수수료로 들지만, 어차피 남한 경제력은 북한에 비하면 매우 양호하니 송금 액수 자체가 커서 나머지 70%의 돈이 가족에게 전달되면 그 가족은 동네 안에서는 꽤 부자가 된다.

하지만 재입북자가 하나원 동기들을 기억해 내서 신상을 발설하는 순간, 탈북자 한 기수 가족들이 줄줄이 수용소행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본 문서의 '돌아갈 수가 없다' 문단 참조.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중국과 북한이 국경을 폐쇄 하면서 탈북이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3. 원인[편집]


탈북자들은 입을 모아 "철저히 세뇌당한 사람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주민들은 도망치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한 에피소드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 사이에 '가장 똑똑한 놈은 북한과 중국을 모두 탈출하여 남한으로 가고, 그 다음 똑똑한 놈은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으로 가고[9] 가장 바보같은 놈은 그대로 북한에 남는다'는 말이 성행했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어떤 마을은 주민 절반이 탈북하고, 어떤 지방은 거의 탈북자가 없어 지역별 차이가 크다. 탈북자의 약 76%가 함경북도, 양강도 출신이다.

가령 자강도는 국경을 마주하고, 옆에 탈북자가 많은 양강도를 이웃하는데도, 함경남도는 물론 인구비례로는 개성시[10]보다도 탈북자가 적다. 탈북자들의 탈북경로를 들어봐도 알 수 있듯, 탈북이란 것 자체가 그 위험성은 말 할 것도 없고, 엄청난 결단과 비용을 요구하는 일이다.

고난의 행군 이래 북한은 전세계적으로 순위권의 빈국이자 파탄국가로 전락함과 동시에 대다수 주민들의 삶이 궁핍해져, 살고 싶어서라도 북한보다 나은 곳으로 가고파 할 이유로 탈북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적어도 어디 가서 굶어 죽을 걱정만 없었더라도 그렇게 탈북자가 증가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워낙 엄청난 이펙트를 준 대재앙이었던지라 많은 탈북자들이 상당수 이 시기에 탈북했다.

이처럼 대다수 탈북자들은 생계형 탈북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일부 고위급 탈북자들이 지금은 풍족하더라도 언제 숙청당해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북한을 빠져나간 케이스도 있다. 특히나 그토록 충성해온 체제에 배신감을 느껴서 도망치는 케이스도 여기에 속한다.

고위층 엘리트층은 겉으로는 화려하다시피 한 삶을 살지만, 언제든지 그 화려한 삶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릴 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 김씨 일가의 기분에 따라서 마음대로 숙청당할 수 있어서다. 거기다가 연좌제가 살아있어서 친인척 중에 누군가 체제에 반하거나 중범죄를 범할 경우,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얄짤없이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수 있다.

그 외 2010년대 들어서 차츰 개방되고 외부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이 살던 조국의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탈북하는 사람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토록 찬양하고 충성을 다했지만, 정작 굶고, 배고프고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데, 우연히 접한 외부의 문물이나 소식통을 통해 해외의 다른 나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보다 골백배 이상 낫다는 것을 인지하고 은연중에 심한 반감을 품고 있다.

게다가 장마당도 원칙적으로는 불법이지만 보위부 측에서도 뇌물만 잘 바치면 그냥 눈감아주기에, 버젓이 외부의 문물들을 밀수해서 팔고 있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김정은은 매번 '비사회주의'와 투쟁한다면서 이런 현상을 막고자 하지만, 법과 현실이 너무 거리가 멀어서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뇌물 등을 받는 것이 만연하여, 2019년 말까지는 이런 것을 완벽히 막아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2020년 1월부터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유행하자 이를 빌미로 김정은이 말을 안 들으면 간부까지 숙청하는 등 가혹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심지어 국경과의 연락조차 승진과 근무지 배치 특혜를 내걸고 보위성의 사람들끼리 경쟁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국경경비대를 견제하는 특수부대도 배치했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김여정이 탈북민을 때려잡자는 등 대대적인 광기에 가까운 반응도 보인다. 탈북을 시도하다 적발되면 본보기로 총살까지 당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김성은 갈렙선교회 목사는 2021년 7월 "탈북도 살려고 하는 것이지, 누가 죽으려고 강을 건너겠냐" 라며 "뇌물이 통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 국경지대는 매우 삼엄하다" 라고 밝혔다.

또한 2020년 이후 중국과 북한이 국경을 폐쇄 하면서 탈북이 매우 어려워졌다. 2019년까지는 탈북민 수가 천 명은 넘어갔지만 2020년에는 229명, 2021년에는 상반기에 온 57명조차 2019년까지 국경을 넘었던 사람이라 100명이 안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고 실제로 100명을 넘지 못했다. # #

코로나 사태가 2022년 하반기 들어 중국에서 조금 진정되고, 북한도 더 이상 방역을 빌미로 외부 교역을 완전 차단할 수 없게 되자 탈북이 코로나 이전보다 비용이 너무 높고, 중국이 또다시 탈북을 더 심하게 처벌하며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불안한 정세 때문에 러시아 등지의 해외 노동자도 동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국경을 사람이 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보이나 폭풍군단도 이제 외부 문물을 맛보다보니 '사상적으로 변질'되어 철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 그동안 북한 당국이 차단하려던 국경에서의 개인간 '밀수'도 작은 물건을 중심으로 2022년 10월경부터 북한 당국이 인지할 정도로 행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 2023년 3월 기준 무리하게 많은 탈북민이 동시에 이동하지만 않는다면 북한 외부로 나온 사람이면 2021년 수준의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다고 한다. #

북한은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 위해 여러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다. 2023년 7월 초에는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 위해 국가보위성 차원에서 국경 인근의 군인들에게 두만강 강바닥을 사람 키보다 더 깊게 파도록 지시한 바가 있는데, 심지어 군인들은 무더운 날씨에 강바닥을 기계 하나 없이 손으로 파내야 하는 고된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이러한 명령은 국민들의 해외 도피를 막기 위해 나라에 있는 (개인 소유의) 배들을 모조리 불태우라고 지시한 적도 기니의 독재자 마시아스 응게마의 행각과 상당히 흡사하며, 당연히 군인들도 고된 작업에 직급 관계없이 반발하고 있다. #

2023년 8월부터는 함경북도의 북중 국경 일대에 감시카메라를 빼곡하게 설치한 것을 넘어 주요 탈북 경로[11]지뢰까지 매설하여 탈북을 시도하다가 사상자가 속출하는 판이라고 한다. 무산군에서는 지난 9월에도 주민 3명이 탈북을 시도하다 지뢰를 밟아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시신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었으며, 더욱 안타깝게도 이들은 지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더 나은 삶을 위해[12] 도강(渡江)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거라고 한다. 그리고 10월 중순에도 무산 국경 일대에서 지뢰 폭발로 두만강을 건너 탈북하려던 주민 5명이 사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일행이었던 이들은 한꺼번에 다같이 움직이면 위험하다는 판단에 두 그룹으로 쪼개져서 강 건너기를 시도하다가 양쪽 그룹 모두에서 지뢰 폭발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

다만 지뢰는 장마철이나 압록강, 두만강이 범람할 경우 중국 쪽으로 지뢰가 유실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가 이로 인해 탈북 시도자는 물론 밀수업자 등 중국측 사망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살상용 무기인 조명탄을 매립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고 한다. 물론 조명탄을 밟은 후 몸에 직격으로 맞아 다치는 사례도 여럿 보고되었다. #

4. 탈북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북한이탈주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탈북 경로[편집]


많은 주민들이 탈출하고 싶어함에도 불구하고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매년 몇천 명밖에 안 된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아예 연 천 명 정도까지 줄다가 코로나 사태로 국경을 봉쇄한 2020년 이후 급격히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줄어 2021년에는 63명에 그쳤고, 2022년에는 67명이 되었다.[13]

인구가 1200만인 쿠바가 공산화 때~1993년 기준 120만 정도고, 북한과 비견될 독재국가인 에리트리아의 탈출인구가 월 4~5000명 수준에 독립 직후 지금까지 약 40만 명으로 추산, 베네수엘라가 전체인구 약 3000만 중에 560만 정도가 탈출했음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인데,[14] 이는 북한을 탈출하는 난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아서 험난하기로 악명높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어떻게든 걸어서라도 브라질까지만 도착하면 되지만, 북한은 일단 두만강압록강이 국경을 가로막고 있다. 즉, 휴전선을 제외하면 배나 항공기 둘 중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2020년대에는 호수와 군사시설이 없는 곳은 모조리 철조망이 쳐졌다. # 압록강 두만강, 백두산 기슭은 기본이고 기나긴 서해안, 동해안마저 모조리 철조망이 생긴 것이다.


5.1. 6.25 이전 탈북[편집]


주로 어선을 통하여 탈북하였다. 강원도 주문해변에서는 1948년 기준 하루 평균 50여명이 탈북해왔다고 한다.[15][16] 황해도나 평안도 출신 월남민은 주로 삼팔선 이남에 살짝 걸쳐있는 문제 때문에 육지는 별도 합의로 전체가 소군정 관할이 되었지만 바다는 미군정 관할인 해주시 남쪽 반도지역에서 배를 타고 옹진이나 연백을 거쳐 월남한 경우가 많았다.[17] 이 방법으로 탈북한 사람은 대표적으로 김형석이 있다.


5.2. 해외 주재 중 탈북[편집]


대만, 싱가포르, 쿠웨이트, 이집트, 러시아, 잠비아, 홍콩, 영국, 오스트리아, 체코, 키프로스[18]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이런 사례가 있다. 중국 - 러시아를 통해 다른 나라로 밀입국해서 하는 탈북과는 물리적 난이도가 다르다. 대신 가족들과 함께 탈북하는 것이 어려우며, 해외 주재 시 항상 북한 당국의 지속적인 감시가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중국령이지만 1국가 2체제인 홍콩에서는 치안이 좋아서 홍콩 경찰을 뚫고 밀입국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1996년 이후 탈북이 거의 없으며, 2016년에 탈북 사태가 발생했다. 홍콩 소재의 홍콩과학기술대학교에서 열리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석한 북한 고등학생이 한국 총영사관을 통해 탈북한 것이다.#

대만이나 싱가포르 역시 중국 대륙과 떨어져 있고 치안이 좋아서 밀입국할 방법이 없다. 싱가포르는 중국과 멀리 떨어져있고, 대만타이완 해협을 기준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마쭈진먼 역시 경비가 삼엄하다.

탈북작가 림일은 1997년 쿠웨이트로 해외 노동자로 파견되었다가, 그 곳에서 한국 대사관을 통해 귀순했다. 그리고 많은 국외 거주 북한 주민들이 외국에 소재하는 외교공관을 통해 한국으로 귀순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를 통한 탈북도 어느 정도 막기 위해, 북한에서는 11살 미만의 어린이를 제외하면 해외 출장 등이 있다 해도 가족 전원이 해외로 나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북한에 남은 가족을 인질로 삼아 탈북하면 수용소행 내지는 사형이라는 압박을 하는 것이며, 집단 탈북이 발생했을 시에는 그들의 가족을 매체에 출연시키며 "남한에서 이들을 납치했다"는 식의 여론전을 펼치는 경우도 많다.

드물게 납북되었다가 탈북한 경우도 있는데, 영화배우 최은희와 영화감독 신상옥 부부는 1978년 홍콩에서 납북되었다가 납북 8년만인 1986년에 오스트리아 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도망쳐 탈출하는 데 성공한 바가 있다.

당시 최은희, 신상옥 부부는 때마침 알고 지내던 일본 교도통신 순회 특파원이 빈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연락을 취해 다음날 만나자는 약속을 받았다. 다음날 그가 숙소로 찾아오자 이들 부부는 식사하러 가는 척 하며 북한 감시원들을 따돌렸다.

호텔에서 택시를 잡은 후, 이들이 탄 택시가 숙소를 벗어나자 택시기사에게 차를 돌려 미국 대사관으로 가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미국 대사관 앞에 이르렀을 때, 이들은 택시요금을 낼 겨를도 없이 곧장 택시에서 내려 황급히 미국 대사관으로 뛰어들어갔다.

김정은 정권에 들어서 외교관 탈북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UN의 대북제재가 시작되면서, 본국으로 송금해야 할 김씨 일가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외교관들이 본국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탈북을 결심한다고 한다. 또한 친척 또는 동료의 숙청 발생 시 연좌제로 연루되고 싶지 않아 탈북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에 벌목공으로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탈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16년 8월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된 북한 외교관 2명이 탈북하였고 동년 10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10명이 총영사관에 자발적으로 망명 의사를 밝혔다.#, #

그런 만큼 일반인보다 고위층들은 가족들과 있으면 탈북이 더욱 쉬워진다. 다만 한국으로 가는 탈북은, 모든 가족을 탈북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갔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아예 외국으로 가기도 한다. 실제로 고위층이 한국을 많이 가는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대표적으로 2016년에 탈북한 태영호 의원은 가족을 탈북시키는데 성공, 정치활동을 한다. 2018년 11월에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의 조성길 대사대리가 미국으로 망명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

당시 딸을 못 데리고 왔기 때문에 탈북에 실패한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러다가 2020년에 한국에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2019년 말 전일춘의 사위로 추정되는 주 쿠웨이트 북한 대사대리가 남한으로 망명하였다는 보도가 발표되었다.


5.3. 중국 + 제3국 루트[편집]



2019년 양강도 혜산시에 거주하던 5인 가족이 중국동남아를 통해 탈북하는 영상 (갈렙선교회)

일반 북한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으로 압록강두만강을 야간[19]에 넘어 중국으로 이동한 후 중국 본토[20] 혹은 제3국[21]을 거쳐 한국으로 입국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두만강을 통해 탈북한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 단속에 열을 올리는데, 이는 북한과 맺은 협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를 방치하면 중공에는 도움이 될 것이 없기 때문에 단속을 하는 것이다. 즉 북한이탈주민에게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이민관리국 요원이나 중국인민무장경찰 요원의 단속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에서는 돈이 많은 계층이나 여권을 발급받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외국으로 갈 때 여권이 따로 필요하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걸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 루트로 가기 위해서는 주로 량강도에 위치한 위연역을 이용한다.[22]

위연역은 압록강과 별로 멀지 않아서 걸어서 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곳의 정치장교들에게 뇌물을 주고 강을 건넌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간부들이 어슬렁거리다가 한 눈에 봐도 탈북할 것 같은 사람들이 보이면 접근하고 꼬드겨서 꽤 많은 양의 뇌물을 받아챙긴다고 한다. 아마 거기 간부들의 주 수입원일 것이라고 한다. 물론 정보 당국에 의해 이러한 행적들이 발각되는 정치장교들은 최소 무기노동교화형 내지는 사형된다.

한편, 중국으로 건너가는 것 자체는 그리 큰 처벌과 어려움이 없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 이유는 중국과의 밀무역이다. 현재 북한의 장마당에는 상당량의 중국 물품이 들어와 있는데, 즉 중국과 북한 간의 밀무역이 활발하다는 증거이다.

밀무역 과정에서 북중국경을 넘는 일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때문에 탈북 목적이 아닌 단순 밀무역을 위해 국경을 넘는 경우도 상당하다. 북한 보위부 입장에서도 이거 막을 만한 인력이나 자원도 없고, 함부로 막았다가는 굶거나 폭동[23]이 일어날 판이니, 탈북정황이 확실하지 않으면 적당히 삥을 뜯거나 협박하는 선에서 끝난다는 주장도 있다.

단, 잡히는 위치가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동북 3성 지역이라면 상관없지만, 광둥성, 푸젠성, 저장성, 장쑤성 등 남부 지역이거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의 서부 지역이면 그대로 끝이다. 여기까지 와서 밀무역을 한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 북송을 시키는 국가에서는 우리가 뉴스에서 한번쯤은 봤던 현지의 대한민국 대사관에 현지 경비를 뚫고 들어가 신변보장을 받는 방법을 썼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대사관 주변에 공안의 감시가 심해지자, 제3국의 대사관으로 집단 돌진하는 것이 한때 유행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경찰들이 모든 대사관 정문의 경비를 강화하면서 점점 힘들어지고 있으며, 특히 막무가내로 뚫고 들어가는 건 이젠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담을 넘어서 들어가는 것도 전기 철조망이 담에 쳐져있어서 불가능하다. 중국 주재 일본 대사관은 아예 공안이 대사관 안에 걸어들어와 북한이탈주민 체포하는 것을 방기하다 걸려 국제적으로 욕을 바가지로 먹은 바가 있다.

이외에 신분증을 만드는 브로커를 통해 여권을 위조하거나 죽은 사람의 호적을 사서 위명여권을 발급받은 뒤 무비자로 입국 가능한 제주도로 비행기를 타고 와 제주국제공항 출입국사무소나 제주지방경찰청 등지에 자수하는 방식으로 입국하기도 한다. 혹은 브로커가 여객항의 직원을 매수한 뒤, 인천항으로 밀항하는 경우도 있다. 타 루트에 비하면 거리가 짧고 일단 비행기가 뜨면 안심할 수 있지만, 출국심사나 공항 보안 검사 중에 걸리면 도망칠 길도 없기 때문에 위험성이 큰 루트다. 그래서 이들은 위명 여권을 구입하고 출국할 때까지 긴장을 한다.[24] 그마저도 이 방법은 전산화가 되기 전인 2000년대까지의 이야기이고 전산화가 완료된 2010년대부터는 아예 불가능해진 방법이다.

여성들의 경우 조선족들에 의해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중국의 시골 노총각들이 중국 여성과 결혼하기가 힘들어지면서, 돈 몇 푼 주고 북한 여성을 아내로 사오려고 하기 때문이다. 탈북자는 중국에서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정식 혼인신고도 불가능해서 신분을 보장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결혼 뒤에도 이웃의 밀고나 중국 경찰의 검문으로 잡히면 언제든지 북한으로 추방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때문에 이들의 결혼생활은 불안의 연속이라고 한다. 게다가 중국의 낮은 인권의식과 '돈으로 사온 여자'라는 인식 때문에 온갖 가정폭력에 시달리기도 한다.[25] 이러한 북한 여성들은 세가지 운명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첫 번째는 중국에서 불안에 떨며 지내다가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당하는 것이고,[26] 두 번째는 자신을 사간 중국 남편이 괜찮은 인품을 가졌고, 어찌되었든 중국 시골의 생활수준이 북한보다는 훨씬 낫기에 현실에 수긍해 중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만약 아기까지 낳게 된다면 전근대적 유교적 가치관을 지닌 북한 여성들은 중국 시골마을에 정착해 살아가는 것이다. 이들은 추후에 중국에서 살면서[27] 중국어를 익히고 스마트폰으로 한국의 실상을 알게 되고 다른 탈북 여성들과 연락망을 구축하면서 브로커를 구해 결국 한국에 입국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케이스의 탈북 여성들은 나중에 한국에 정착했어도 중국에 있는 남편, 자식과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기도 한다. 세 번째는 브로커를 찾아 중국 대륙을 횡단해 탈북에 최종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보통 먼저 탈북한 가족이 있고 이들이 준비한 브로커를 잘 만나면 몇주 만에 태국 난민 수용소까지 도착할 수 있다.

매매혼 말고도 유흥업소 등에 팔려 가서 감금 상태로 혹사당하기도 한다. 너무 늙지만 않으면 이런 식으로 인신매매를 당해서 온갖 고생을 다 겪다가 겨우 한국으로 탈출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연 때문인지 이러한 경로로 귀국한 북한이탈주민들은 중국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그래도 제일 짧은 거리의 탈북 루트이기 때문에 중국을 통하는 것이 여전히 제일 보편적인 루트다. 제일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중국 루트를 통하여 들어왔으며,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의 1차 목적지인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 뿐만 아니라 북한과 가까운 선양의 총영사관 및 대련 영사관 출장소에도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 어느 정도냐면 시위를 막을 때 버스를 붙여서 방벽을 만들어 아예 건물 자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2020년에 본격적으로 터져나온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그 이전부터 삼엄해진 국경 감시 때문에 중국 루트가 거의 막혀 간다는 복수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국경의 감시가 전자 장비까지 동원될 정도로 고도화되고, 북한도 탈북을 좌시하지 않으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하고자 중국 정부의 이동 통제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BBC 코리아, 자유아시아방송, VOA, 아시아프레스, 데일리NK, 동아일보의 주성하 기자까지 한 목소리로 탈북이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탈북 자체가 끊기긴 어려운 것이 북한의 근본적인 먹고사니즘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워낙에 심각하고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 중국과 북한 정권은 고작 코로나 19 따위로 취급할 정도로 더더욱 악랄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고작 전염병 하나 때문에 탈북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2022년 중국의 코로나 거리두기 정책이 극심했을 때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더욱 탈북이 어려워진 이유를 설명했는데, 안면인식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현금 없이 위챗으로 결제를 해야 하기에 개인정보 및 백신패스 관련 정책들이 큰 난관이 된다고 한다. 탈북자들은 모두 신원 미상으로 표기되므로, 한 성에서 또다른 성으로 이동[28]을 하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도 상당히 어려워지게 된 것.

2023년 7월 초에는 국가보위성[29]이 국경 지역 경비 근무를 담당하는 국경경비대에게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 위해 두만강 강바닥을 사람 키보다도 깊게 파 사람들이 강에 들어설 수 없게 하라'고 지시했는데,[30] 강의 중간이나 중국 쪽 가까이의 강바닥을 파지 말고 우리(북한) 쪽만 파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국경경비대 군인들은 무더운 날씨에 기계도 아닌 손으로 물살을 이겨내며 헛고생을 해야 하니 "이렇게 이치에 맞지 않는 지시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느냐"고 불평했고, 상급 군관들조차 "국가보위성 지시니 형식적으로나마 작업하면서 물장난이나 치며 시간을 보내고 혹여 위에서 내려와 얼마만큼 팠느냐고 물으면 팠는데 모래와 자갈이 고스란히 흘러 들어왔다고 보고하라"고 이들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5.3.1. 태국 경유[편집]


태국을 탈북 루트로 사용하는 경우, 주로 메콩강을 따라 배 타고 내려와서 라오스, 미얀마, 태국 3국의 접경지인 골든 트라이앵글[31]에서 내린다.

이 때 탈북자들은 태국에 내렸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태국이 아니라 미얀마 땅이며, 여기서 폭 100m 정도의 얕은 강을 걸어 건너서 태국 땅에 가야 한다. 북한이탈주민들은 "굳이 강을 건너야 하게 만든다"며 불평하지만, 뱃사공 입장에선 태국 국경을 잘못 넘어서 밀입국하다 걸리면 벌금형이나 감옥살이를 해야 하므로 태국 땅에 안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

태국 경찰에 체포된 북한이탈주민들은 밀입국 벌금을 내야 하는데, 뭔지 몰라도 돈 내라니까 거부하다가 감옥살이를 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많다. 하지만 북한이탈주민들이 너무 많아져서, 예산이 부족한 경찰서에서 탈북자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32]

어쨌든 태국 경찰에 무사히 체포되면 이후 방콕 이민국 수용소로 이송된다. 태국에 도착하면 한국을 포함한 원하는 나라로 추방될 수 있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태국까지만 도착하면 매우 기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고 한다.[33]

참고로 일부 탈북자들의 경우 북한과 중국을 지나며 경찰에 대한 공포증에 걸려 태국 경찰서로 가라는 브로커의 말을 거부하고 한국 대사관으로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5.3.2. 몽골 경유[편집]


몽골도 북한이탈주민들을 인도적으로 대우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 쪽으로도 많이 간다. 다만, 중국 국경에서 몽골까지 가는 경로는 고비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어 매우 혹독하기 때문에 여기서 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몽골 국경수비대에게 무사히 체포당하면 살지만 그 전에 사막에서 발견되는 게 문제다. 모래사막을 건너야 하는 몽골 루트의 위험성은 영화 크로싱경계에서도 묘사된다.[34] 이쪽은 북송 걱정은 없어도 목숨이 간당간당하다.#

그리고 몽골 국경수비대는 발견한 북한이탈주민들을 한국 대사관에 인도하며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보호 하에 울란바토르에서 한국 행 비행기를 탑승한다.


5.3.3. 기타 동남아 국가[편집]


말레이시아[35],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북송을 시키지 않는 국가에서는 현지 이민국에 불법입국으로 자수하는 방법을 택한다. 단 필리핀과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동티모르는 섬나라여서 가장 힘든 쪽에 속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라오스, 베트남이나 독재 국가로서 친중파가 많은 캄보디아, 미얀마는 탈북자 단속이 상당히 되는 편이다.

라오스는 한국 정부가 직접 손 걷어붙이고 나서자 갈등하다가 북송을 취소한 적이 있는데, 중국보다야 대화의 여지가 더 있다지만 이 정도의 외압이 없으면 라오스에서도 북송된다는 얘기다. 2013년 라오스 탈북 청소년 사건이 있었는데, 현지 한국대사관은 탈북자들의 신병이 억류되어 있던 18일 동안 단 한 차례도 영사면담을 하지 않았다. 결국 청소년 9명이 북쪽으로 압송되어, 이 루트는 현재 사실상 붕괴된 상태다.

베트남의 경우 베트남의 경제 대부분을 한국에 의존하다보니 옛날보다 한국에 훨씬 우호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2004년 베트남은 체류 중이던 468명을 이틀에 걸쳐 2차례 전세기편에 태워서 한국에 도착시킨 다음 정부가 베트남과 직접 교섭하여 대거 입국을 성사시킨 적이 있다. 당시 북한이탈주민 대부분 식량난, 생계 문제로 국경을 넘었는데, 여성 70%, 어린이 20%였다. 하지만 그 이후 베트남 지역을 경유하는 탈북 루트는 현재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36]

5.4. 전면돌파 휴전선/NLL 루트[편집]


파일:귀순표지판.jpg
백령도에 설치된 탈북 유도 표지판[37]
휴전선을 뚫고 비무장지대를 통과하여 남한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있다. 지도상으로는 가장 가까운 탈북 경로이고 동사나 아사의 위험도 적고, 실패하든 성공하든 북송될 위험도 없는 사망과 탈출의 극을 달리는 경로지만, 휴전선을 통한 탈북자는 극소수며 중국 - 북한 간 국경을 이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 이유는 휴전선이 극도로 위험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탈출로이기 때문이다. 일단 탈북을 방해하는 요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휴전선 주변은 역사상 육군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유명한 마지노선이 휴전선의 3배 길이에 40만 명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조선인민군 육군의 70% 가량이 250km밖에 안 되는 원산시 이남 및 휴전선 근처에 전진배치되어 있다.

  • 북한군의 감시를 피하고 비무장지대에 들어서면 대한민국 측에도 민경부대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국군은 귀순하는 탈북자인 줄 알면 보호해 주지만, 일단 저 멀리서 은밀하게 진입하는 게 탈북자인지 무장공비인지 알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오히려 규정대로 했다가 거수자가 사망할 경우 살인죄가 될 수 있기에 난감한 상황.

탈북하는 사람 입장에선 뒤에서도 총알이 날아오고 앞에서도 날아올 가능성이 있는 아주 위험한 환경이다. 대한민국 민정경찰의 GPGOP, 잠복호 근무병들은 무조건 사살 태세로 근무한다. 만약 비무장지대를 건너는 도중에 재수가 없으면 총 맞고 사망할 수 있다. GP나 GOP 쪽에 수기(백기)나 호루라기 등이 비치되어 탈북자가 GP나 GOP에 다다랐을 때 수기를 흔들거나 호루라기를 불면 귀순의사로 인식하고 탈북에 성공한다고는 하지만 관리도 제대로 안 되어있고 무엇보다 국군 측에서 귀순자임을 확인해도 귀순 유도하기 위험하고 귀찮다는 등의 이유로 남파간첩으로 보고하고 사살해 버리는 사례도 있으니 완전히 안심할 수만은 없다. 그래도 2020년대엔 명백한 탈북민임을 인지했음에도 간첩으로 보고하고 사살하는 것을 걸리면 그대로 해당 인원들은 군법재판에 회부되고 불명예 전역을 당할 것은 확정이며, 해당 부대 장교들도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갈 테니 전보단 위험은 적다.

  • 5m 높이의 콘크리트 수조[38], 최고 10,000V 전압의 전기 철조망 또한 탈북을 방해한다. 쇠막대기를 이용해 전기를 땅으로 흘려보낸 뒤 철조망 밑으로 구덩이를 파고 통과해야 한다. 수십m 이상의 폭을 자랑하는 지뢰밭도 큰 문제다. 한반도의 휴전선은 전 세계에서 지뢰 밀집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다.

  • 휴전선을 돌아서 바다로 오자니 물살도 가파르고,[39] 수심이 깊다. 뗏목을 타고 오거나 운좋게 수영에 성공하는 사례도 있다.

중앙분계선을 넘어가면 대한민국 국군 GP가 보이는데, 이 때도 재수가 없어서 수하를 듣지 못했거나 겁에 질려 도망치기라도 하는 등 대남 도발로 오인받을 행동을 하면 국군 근무자에 의해 사살될 수도 있다.

현재 휴전선에는 그나마 여기까지 천우신조로 온 탈북자들을 안내하기 위해 푯말과 전화기를 두긴 했는데, 관리는 영 부실하다.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무사히 한국군에게 발견된다면 안보지원사에서 조사를 받고 하나원으로 가게 된다.

그런 고로 휴전선 경로를 이용하는 탈북자들은 북한군 민경부대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휴전선 인근에서 복무하면서 비무장지대의 지형 조건과 북한군과 남한군의 경계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휴전선은 지뢰밭[40]이나 한국 측의 오인사격, 북한 측의 공격 등의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 아주 위험한 루트이기 때문에, 이들 또한 아주 급박한 상황이 아닌 이상 중국을 경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한 보위부 군관이였던 이철호의 경우도, 권총 1자루만 들고 혈혈단신 휴전선을 넘은 경우다.


5.4.1. 휴전선 루트 귀순 사례[편집]



  • 2013년
    • 8월 24일, 40대 남성이 북한에서 교동도까지 헤엄쳐 민가의 문을 두드리고 귀순했다. 교동도 동남쪽이 주민 어업지대인 탓에 철책과 초소가 없었다고 한다.




  • 2017년
    • 6월 13일 저녁 7시 55분경 귀순자가 발생했다.
    • 6월 24일. 열하루 만에 북한 군인 1명이 또 귀순했다.
    • 11월 13일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가까스로 구조된 귀순병사의 목숨이 위태로웠으나, 치료를 받고 다행히 살아났다.
    • 12월 21일 오전 8시 4분경 19세 초급 병사가 총을 휴대한 채로 귀순했다. 탈영 이유는 부조리 때문이라고 유튜브에서 밝혔다. [41]





예전에는 귀순자에게 바로 식사를 줬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탈이 날 수도 있어 일선 부대에서는 물 이외에는 제공하지 않고, 국정원에 인계한 후에야 건강체크 후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2000년대 중반 중부전선을 통해 발생한 귀순 사례에 따르면 그냥 교대근무자들 먹는 밥을 퍼다 줬다는 얘기도 있다.[42]


5.5. 러시아 루트[편집]


의외로 러시아로 직접 탈출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특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에서 제일 가까운 한국 외교공관은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대한민국 총영사관이다. 하지만 북한도 바보는 아니므로 그만큼 더욱 경계를 철저히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 이유는 북한과 러시아가 국경을 맞댄 곳은 라선시 하나뿐인데, 이곳은 경제특구 지역으로 북한 내에서도 접근이 곤란한데다 라선시 일대가 두만강 하류인지라 강폭이 워낙 크기 때문에 탈북이 어렵다. 그러나 직접 도강하는 경우도 발견되었다.#

북한 특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북에 성공한 사례가 존재하며, 사실 이 사람은 일반 탈북자가 아닌 무역대표부 소속 외교관이라고 한다. 이는 몇 안 되는 고위급 간부가 탈북한 사례 중 하나이다.#

2005년에 러시아 - 카자흐스탄 루트로 탈북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하나원에서 교육하는 탈북자 중 5~10%는 러시아를 거쳐서 온다고 한다. 다만, 곧바로 러시아로 탈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는 중국 또는 중국 - 몽골을 거쳐서 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가는 것도 엄청나게 먼 길이지만 중국은 최소한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라도 있지,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의 교통 사정을 생각해 보자. 엄청난 대장정이 아닐 수 없다.

2023년 1월 25일, 러시아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 9명이 대한민국에 입국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북 소식통은 "이들이 현재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고 밝혔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터지면서 동요가 일어 한국에 들어오려고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통일부는 "탈북민 관련 사안은 신변 보호를 위해 확인이 불가하다"고 밝혔고, 국정원 역시 "탈북민 관련해서는 확인해드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와 활동가들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탈북민들의 중국 내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그나마 러시아가 새로운 경로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

하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는 한러관계가 나빠짐과 동시에 북한과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이므로, 탈북민들이 러시아로 탈출하는 순간 북송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존에는 공산권출신 국가 치고는 의외로 범죄 혐의 또는 북한의 송환 요청이 없는 한 탈북자 강제북송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곤 하나, 2016년 러시아도 북한과 탈북자 강제송환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고 이미 우크라이나전 발생 전에도 탈북자를 북송한 전적이 있었다.#


5.6. 전투기[편집]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들로 북한 공군 소속 조종사들이 전투기를 몰고나와 그대로 귀순하는 경우다.


  • 이웅평 대위(1983년): MiG-19 - 가장 유명한 사례로 당시 공습경보가 울려서 당시 국민들이 혼란에 빠진 적이 있다.



5.7. 기타[편집]


어선, 무동력선 등을 타고 서해안 혹은 동해안으로 빠져나와 남한 영해로 진입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1987년 '따뜻한 남쪽 나라'[43]를 찾아간다며 일가족을 이끌고 귀순한 김만철 씨와 박명호 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동해안으로 빠져나올 경우 해류에 따라 일본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바다를 통해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들을 탈북자 사회에서는 직통생[44]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가기 위해 기름칠 하는 비용이 급등해서 바다를 통해 넘어오는 것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리스크는 크지만 2016년 탈북자 강연에 따르면 비용은 중러를 통해 오는 일반생들에 비해 상당히 싸다고 한다.

또한, 낙후된 북한 강원도에서 배를 타고 탈북하여 강원도 고성이나 속초, 양양으로 들어와서 귀순하는 탈북자도 있다. 상당수는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해군이나 해양경찰청에 걸리며, 일본으로 떠내려갈 경우 해상보안청에게 걸려 구조된다. 일본 역시 탈북자가 원하면 대한민국으로 보내준다.[45]

바다를 통한 탈북이 늘자, 북한도 2007년부터 바다 출입증을 만들기 어렵게 하거나 형제나 친척 등 가족이 한 배에 탈 수 없도록 하는 법, 그리고 자신의 거주지 이외의 지역에서 배를 탈 수 없다는 규정을 신설하는 등 바다를 통한 탈북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으로 가는 길목인 지중해와 달리 이쪽을 통해 고향을 떠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2023년 5월 18일 황해남도 강령군[46]에서 9인 가족이 나룻배를 타고 귀순에 성공하였다. 이 사례는 2023년 북한 일가족 NLL 귀순 사건 문서를 확인하자.

하지만 실제로는 바다로 헤엄쳐 탈북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탈출 과정이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일단 서해 바다쪽은 수심이 얕아 썰물 때를 노려 몇시간 헤엄치면 황해도쪽에서는 탈북이 가능하고 탈북에 성공한 사례도 존재한다. 동해쪽은 수심이 깊고 중간에 경유할 섬도 없어 수영으로 탈출한다는 전제가 불가능하다. 다만 바다이다 보니 물살이 워낙 심해 수영하기가 힘들고 수온도 상당히 차기 때문에 바닷물에 몇시간만 들어가 있으면 저체온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겨울철이면 더 심각한데 바닷물에 몇 시간만 있어도 얼어 죽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수영장에서의 수영도 한 두시간만 해도 온 몸이 피로로 찌드는데, 해류와 해풍, 망망대해라는 심리적 영향이 있는 바다수영은 체력이 배로 소진된다. 북한의 특성상 대부분의 시민들은 열약한 환경에서 자라 체력이 상당히 약하기 때문에 이런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그 수영 잘한다는 박태환만큼 실력이 좋아도 바다로 헤엄을 쳐서 탈북을 시도하는 것은 사실상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띄울 수 있는 큰 물건을 띄우고 헤엄을 쳐서 탈북에 성공한 극소수의 사례가 있다.

돌파거리가 짧고 수심이 얕은 한강 하구의 경우 갯벌을 따라 내려오다가 헤엄쳐 탈북하는 사례도 있기는 하다. 단, 이 경우는 거리가 강폭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가끔 TV조선 등에 얼굴을 비추고 있는 가수 출신 방송인 한옥정 씨도, 1998년에 중국으로 건너간 후 2003년에 탈북한 경우다.

당연히 기사 중에서 탈북민에 대한 기사 또한 보이는데, 간혹 상세하게 알려주면 '기자가 아니라 스파이', 김씨왕조에게 탈북 경로를 발설하는 거냐?' 라는 빈축을 사기도 한다.#

영화 <그물>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북한 해군의 장교 한 사람이 배고파서 고기를 잡으러 어선을 타고 먼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에 휩쓸려서 대한민국 해군에 구조된 경우가 있는데, 이 장교는 탈북할 의사가 없었기에 비무장지대를 통해 북한으로 돌아갔다.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빈곤함 문서에도 나와있는 사례이다. 문서를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이쪽도 심히 비참하다.

엄밀히 따지면 '탈북'은 아니지만 가끔 사망한 북한군이나 북한 주민들의 시신이 바다나 강을 통해 한국으로 떠내려 오기도 하는데, 이 경우 남한에서 혐의점을 조사한 뒤에 북한 측에 시신을 인계했다. 혐의점을 조사하는 이유는, 간혹 간첩이 침투하다가 사고로 죽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영으로 내려오다가 익사한 간첩의 시신이 떠내려와서 발견된 사례들이 있다. 만약 북측이 시신 인수 의사를 밝히지 않는 경우에는 무연고자로 처리해 화장하여 납골당에 안치하고, 추후 유골 인계를 요구할 경우에 대비해 유품을 보관한다.#

이와 다른 케이스로, 중국의 탈북 브로커들이 "돈을 벌 수 있다"고 사람을 속여 강제로 데려온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는 있다. 하지만, 해당 보도를 다룬 언론사와 기자의 경력을 보면 가려들을 필요는 있다.# #

일부 종북주의자들은 이런 사례를 과장하면서 사기 혹은 강제로 이뤄진 탈북이 일반적이고, 이게 기획 탈북이라는 개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기획탈북 자체가 언론에 탈북과정 등을 노출시켜 후원을 더 받으려고 하는 짓이기 때문에 오히려 강제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욕먹긴 하는데 탈북 루트 및 탈북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해서 다른 탈북자들을 탈북을 못하게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일 뿐이고 탈북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번외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 점령지에 보내지면 탈북민으로썬 다행일 수도 있다. 아무리 러시아군이 개판이라도 북한보단 나을 테고, 드니프로강 등 문제가 없진 않지만 자포리자주-도네츠크주 전선 쪽에서 우크라이나에 투항 형식으로 탈북할 수 있기 때문. 우크라이나에 도착해서 주우크라이나 대한민국 대사관을 찾거나 우크라이나의 우방이자 한국의 협력 파트너인 폴란드로 가는 데 성공하면 한국행 비행기를 태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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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짜 탈북자[편집]



6.1. 북한 측[편집]


북한도 탈북자의 현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일부 엄선된 인원을 고의적으로 탈북시킨 뒤 재월북을 지시해 "남한이 좋은 줄 알고 탈북해서 생활해 봤더니 오히려 살기 더 힘들다. 수령님의 품이 그리워서 다시 월북했다."는 식으로 선전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탈북해 봐야 별 거 없다고 선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미 탈북한 사람들 중 적응을 못하고 있는 탈북자들에게 "다시 돌아오면 김정은이 다 용서해 준다"는 식으로 선전하기 위함이다. 아니면 탈북자로 위장하면 간첩을 더 쉽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임무는 정보 수집이나 선동을 이용한 교란 등이다. 주로 조선족을 고용해서 행한다.

한편 탈북자가 저들에게 속아서 재입북, 즉 월북을 하게 되면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재월북한 탈북자에게 1년 동안 남한을 비방하라고 시킨 뒤 정치범수용소에 수감한 사례가 있다.# 다만 이것도 요새는 말이 다르다고는 하며 남한에 있다가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다시 월북했는데, 보위부에 뇌물을 많이 건네자 눈감아주겠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들은 북한 당국이 만든 대본을 외우고 연습해서 기자회견과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북한 주민을 상대로 강연을 하다 그러다가 조용히 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김광호 씨 가족처럼 사라지기 전에 운 좋게 다시 탈북한 사람도 있다.#[47]

탈북자가 워낙 많아지고 정세와 전략 변화에 따라 정치범수용소에 가지 않고 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보위부의 감시를 받으며 한국에서 간첩임무를 받고 돌아왔거나 한국에서도 적응 못하고 돌아온 사람으로 여겨져, 주민들에게 왕따를 당한다고 한다.

북한으로 돌아오라는 속임이 통하지 않을 경우 북한 당국이 탈북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걸어 협박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공작원들이 나름대로 정보 수집 등의 간첩 활동을 벌이는 부수 효과도 있다.#

가짜 탈북자들은 진짜 탈북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재월북을 권유하며 유혹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북시탈tv의 멤버 중 정하늘이 이런 꾐을 받은 적이 있었으나 당연히 거절을 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도 이런 문제를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이 불거지기 한참 전에 이미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가짜 탈북자와 진짜 탈북자를 철저하게 찾아서 조사를 하고 먼저 가려낸다. 여기서 가짜 탈북자로 상당히 의심되는 사람은 '대성공사'라는 한국판 관타나모 수용소같은 곳에서 강도높은 심문[48]을 받게 된다.#

이 대성공사라는 곳은 건물 구조가 참으로 골때리는데 모든 층이 지하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창문이란 창문을 죄다 막아놓아서 빛이 아예 안 들어온다. 그리고, 대부분의 통로를 싹 막아놓아서 특정 루트로만 드나들 수 있어서 진짜 지하실같은 느낌이 든다.

6.1.1. 위장 탈북자의 진짜 탈북[편집]


위에 서술된 고의로 탈북시킨 일부 엄선된 간첩 중에서도 아예 진짜로 탈북하면서 귀순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북한의 입장에서는 배반, 반역이다.

사실은 조선로동당의 당원이라고 해서 전부 다 잘 사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한평생 권력 투쟁에 내몰리며, 권력에서 밀리면 처참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한 때는 김정일의 장남이고 백두혈통이라는 김정남도 객지에서 비명횡사하는 마당에 일개 당원 따위가 무사할 리도 없다. 그리고 명색이 조선로동당의 당원이고 권력자인데도 정작 삶의 질에서는 남한의 중산층은 고사하고 서민층과 동급 또는 그 이하인 경우도 많다. 일례로 황장엽이 자신의 도시락을 이야기했다. 이에 환멸감을 갖게 된 가짜 탈북자로 간첩질을 하러 월남했다가 진짜로 남한에 귀순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김씨왕조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준 꼴이다.

사실 고난의 행군 때 노동당원도 많이 굶어 죽었다. 노동당원 간에도 생존과 연계되는 계급이나 지위, 위치가 있을 것이 당연하고, 고난의 행군 때도 김씨 부자와 백두혈통은 배불리 먹고 잘살았었다.

김일성김정일 시대만 하더라도 권력의 핵심간부들은 매우 심각한 체제도전이 아닌 이상 어지간해서는 숙청은 당하지 않는 편이었고, 김씨왕조도 역시 이들에 대한 대우는 아쉽지 않게 잘해주는 편이었다. 그러던 것이, 김정은 시대가 열리면서 통치기반 강화를 목적으로 고위급 간부층까지 무차별 숙청이 되면서, 간부층이 흔들리는 상황으로 변했다.

예를 들면, '무하마드 깐수'로 알려졌던 정수일도 원래는 남파공작원 출신으로, 간첩인 것이 들통나 옥살이를 마치고 지금은 남한에서 학자로 근무하고 있다. 사실 정수일 교수는 북한 당국에게 아랍 관련 학술 정보를 주로 보내고, 비학술 정보는 언론에 보도된 것들만 보내서 북한이 "첩보 활동은 뒷전이고 쓸데없는 자료만 준다"라고 투덜거렸다고 말할 정도로 딱히 남한과 관련된 이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것도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아내가 옥바라지를 열심히 해서 감동을 받아 전향했다. 그리고 현재는 지금까지의 행적을 모두 반성하고 본업으로 돌아와 계속 연구를 하는 중이다. 사실 정수일의 경우는 남한에서 간첩활동은 제껴놓고 본업[49]인 학술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진짜로 그 분야의 권위자가 되어 버린 경우다.[50]

북한 측에서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족을 인질로 삼아서 귀순하면 가족을 죽이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보낸다고 협박하는 식으로 막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아예 버리고 혼자서 진짜 탈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단, 고령 중심의 간첩만 탈북하는 경우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가짜 탈북자를 엄선할 때 세뇌된 청년층 중심으로 보냈다고 하는데, 현재는 북한 청년층도 '남조선 물'이 들 대로 들어 더 이상 세뇌가 먹히지 않기 때문에 이 방법도 안 통하고 있다.

6.2. 돌아갈 수가 없다[편집]


한국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북한이 점유한 영토를 불법점유지로 보며 한국의 남측 주민이 북한이 실효지배하는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는 행위로 보는데,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의 국내 거주 이전의 자유와 출국의 자유를 가지지만 월북을 금지하는 것은 공익적 필요에 의한 합당한 제한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만, 북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귀순하고자 탈북하는 것은 입국의 자유와 국내 거주 이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

그러므로 북한 사람은 탈북 이후 한국 국적을 가지게 되면 공식적으로는 통일 이전까지 이북으로 귀향할 수 없다. 위장 탈북, 기획 탈북 등의 경로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국으로 이주해 온 경우라도 북한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며, 본인이 탈북 의사가 없음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의 조사에서 이를 밝힌다고 해도 공식적으로 탈북자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북한 사람이 다시 북한으로 보낼 수 있는 경우는 북한에 있다가 실수로 남한으로 내려온 경우에, 그것도 완강하게 자신은 북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북한 측에서도 월북을 허용하라고 한 지시가 내려졌고 UN군이나 중립국에서도 실수로 넘어온 것이라고 간주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간첩은 간첩죄로 처벌받게 되어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월북할 수가 없다.

실제로 북한 바다에서 낚시를 하던 배가 표류되었고 남한으로 흘려내려오면서 해경에 구조된 사례가 있었는데, 구조된 5명 중 북한 귀환 의사를 밝힌 2명은 판문점를 통해 돌아갔다. 여기서 북한이 구조된 선원들의 가족을 판문점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 하지만 기사에 따르면 정작 탈북한 3명은 로동당원이라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돌아간 비로동당원 가족들이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현행법상 한국 국적 포기는 타국 국적 취득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북한의 국적은 대한민국에서 국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법률적인 문제다.[51]

또한, 이러한 조치는 탈북자와 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을 볼모로 재입국을 강요하는 경우라고 해도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가 송환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협박이 매우 불합리한 조치고, 또한 협박에 굴복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2011년 탈북한 김련희의 경우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김련희와 같이 돌아가겠다고 주장하더라도, 한국 정부 입장에선 이북 땅에서 목숨 걸고 넘어온 탈북자들의 위치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나쁜 전례를 만들 수 없는 입장이다. 위 상세 단락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사실 탈북자들이라고 하여 다 같은 탈북자가 아니다. 북한에서도 탈북해서 중국 가는 것 자체로는 그다지 처벌이 중하지 않아서 노동교화형(남한의 징역형과 유사)이나 노동단련형(남한의 단기 징역형과 비슷한데 전과가 안 남음) 정도 처벌받고 석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행이 발각되면 본인은 그냥 사형이나 용평 완전통제구역 직행에 가족들은 정말 봐주는 게 함경북도 오지로 보내지는 거다. 그래서 북한 현지의 탈북자 가족들은 대부분 행방불명이나 가족들 몰래 중국으로 간 걸로 해 놓고,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을 이용하여 보위부에 뇌물 먹이고 눈감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재입북자가 하나원 동기들을 기억해 내서 신상을 발설하는 순간 관련 탈북자의 가족들은 모조리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김련희와 같은 케이스에서, 본인은 자발적으로 발설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더라도 과연 재입북 후 보위부에서 조사받으면서도 그 결심을 지킬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6.3. 기타[편집]


F4(재외동포)나 H2(방문취업) 비자가 중국 조선족들에게 적용이 사실상 안 되던 2012년 이전, 탈북민들에게 거액의 정착금을 일시금으로 주던 2004년 이후부터 중국 조선족은 자신들의 말투가 탈북자들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을 이용하여 탈북자에게 지원되는 정착금이나 한국 국적 등을 노리고 탈북자로 위장하여 입국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국가정보원, 통일부, 대한민국 경찰청, 이북5도위원회,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도 가짜 탈북자들을 보고만 있지 않는다, 이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비교적 손쉽게 조선족을 구분해 낸다고 하는데, 실제로 탈북자는 조사과정에서 자신이 북한의 어느 지역에서 학교를 나왔거나 자신이 북한에서 성장하고 거주했음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가짜 탈북자라면 해당 지역의 학교, 병원, 기차역 같은 기본 상식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거주 지역 지리를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다.바보였으면 언론이 대서특필했을 것이다.

한 탈북자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살던 지역의 100여개에 달하는 건물을 대부분 맞추고 나서야 '진짜로 탈북자 맞네' 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북한 어느 지역에 수십년간 살던 사람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니지만, 그 지역에 연고도 없는 타지 위장탈북자, 조선족이 지어내서 통과하기에는 매우 쉽지 않은 관문이다.

그리고 국정원도 늘 하는 일이 탈북자 검증이라 북한 위성 지도에 빠삭해서, 탈북민들도 국정원들이 자기보다 자기 고향을 잘 안다며 혀를 내둘렀다. 국가정보원, 통일부, 이북5도위원회의 일이 북한 지역 분석이다보니 그 지역에 대한 데이터가 많다. 그리고 북파공작원들의 업무가 해당 지역을 조사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사를 자주 하면 고향 동네의 지리를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북한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태어나서 수십 년 동안 오래 사는 게 보통이라 고향 동네 지리를 모를 수가 없다.

또는 지역과 맞지 않는 사투리를 구사하는 문제로도 검증이 된다. 연변 쪽 조선족 말투가 함경도 사투리와 큰 틀에서 같은 계통이긴 하지만, 세세하게 따지면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상도 사투리 중에서도 경남 말투와 경북 말투가 다르고, 외지인들은 경남 말투와 경북 말투가 얼마나 다른지 잘 몰라도 경상도 현지인이나 그 외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한 사람은 쉽게 구분한다.[52]

북한 지역 역시 평안 방언, 함경 방언, 황해 방언이 다 다르고, 그 도 안에서도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다. 이런 사투리라는 것은 대충 연습한다고 쉽게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쉽게 발각된다.

그 외 출신 학교 교가나 북한 군가를 못 부른다던지 하는 다양한 이유로 발각이 된다. 또한, 탈북자들은 3만명이 넘는 기존 탈북자와 어떻게든 인맥이 연결되는 것이 흔한데, 이 경우에는 그러한 인맥이 전무한 상황이다. 여러 검사를 통해, 가짜 탈북자인 것이 탄로날 경우 추방당한다고 한다.

한편 중국 등지에서 북한 국적으로 거주하는 교포인 조교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복잡한데, 조교의 경우는 일단은 북한 국적이기에 탈북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헌법 및 판례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되므로 원칙적으로는 당사자가 정착을 희망하고 조사를 통해 조교가 맞고 간첩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면 국적 확인을 받고 대한민국에 거주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북한에 살다 온 것이 아니므로, 북한이탈주민보호법에 따른 탈북자로 간주되지는 않기 때문에 탈북자와 같은 지원을 받지는 못한다. 실제로 조교가 국내 정착을 원하는 사례가 흔하지 않다 보니 관련 법률이 미비하여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실정으로, 사실상 무국적자에 가까운 대우를 받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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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사건[편집]



8. 탈북을 다룬 영상물[편집]


  • 국경의 남쪽
  • 신이 보낸 사람
  • 크로싱
  • 천국의 국경을 넘다 2 3부작 (2011)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천국의 국경을 넘다 2016 - 브로커 (2016)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밀항선
  • 풍산개(영화)
  • 태풍(영화)
  • 김정일리아 - N.C 헤이킨이 만든 탈북 다큐멘터리 작품. 실제 정치범수용소/북한에서 목숨을 건져 나온 12명의 탈북자의 증언으로 다큐멘터리가 시작되었다.
  • 48m
  • 채널A 특별취재 - 탈북: 탈북의 전 과정을 PD가 따라다니며 직접 녹화했다. 그리고 휴스턴 국제영화제 방송다큐멘터리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나온 꽃제비 출신의 김신혁 군[54]이 7살의 어린 나이로 탈북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한국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오이를 먹고, 고기도 먹고, 일도 하고 싶다"고 답했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17~18회 - 엄마 찾아 사선을 뚫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불어라 미풍아 (2016년 드라마)
  • 그물 (2016년 영화)
  • 남과북 -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파워무비 채널에서 단편영화 프로젝트로 6달간 만들어졌다. 내용은 남한과 북한의 21세기 정보전쟁을 다룬 영상물이지만, 1화에 가짜로 탈북하는 사람이 나오므로 넣었다.
  • TV조선 - 끝까지 간다 (4화,5화) - ' 이주성 ' 군외 3명이 개그맨 정성호와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의 도움으로 탈북하는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특히 이주성 군은 먼저 탈북한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홀로 백두산을 넘어 탈북한 12살 아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비욘드 유토피아(2023년 영화) - 갈렙선교회
[1] 탈북을 말 그대로 뒤집은 '탈남(脫南)'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속어에 가깝고 사전에 등재된 말은 아니다. '탈남'은 탈북자가 북한이나 제3국으로 이동하는 경우를 가리킬 때 제한적으로 사용하긴 한다. #[2] 연방제도 아니고 한 나라 안에서 이동하는 것조차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게 만든 독재자는 폴 포트, 이디 아민, 마시아스 응게마,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그나마 이는 일부 지역에만 적용되었다),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처럼 당대에도 정말 도를 넘은 수준의 독재자밖에 없다. 정작 연방제의 대명사 미국에서는 여권이 필요없으며, 소련도 다른 지역을 이동하려면 국내 여권이 필요했으나 소련은 여러 '공화국'들로 이루어진 국가라 공화국들 사이를 이동하는 데에 여권이 필요한 경우였기에 북한과 비교하기는 힘들다.[3] 반대로 상당히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개성 출신이라 경기 방언을 쓰다보니 거꾸로 중국에서 남한 사람으로 위장하기 쉬웠다는 개성 출신 북한이탈주민의 증언도 존재한다.[4] 평범한 민간인이 아닌 군인이나 고위 관료의 탈북은 여전히 '귀순'이라는 단어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5] 북한의 교도소[6] 말이 노동교화형이지 수년간의 열악한 수감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게 대다수다.[7] 대부분 동북 3성 지역에서 활동한다.[8] 랴오닝성/헤이룽장성과 허베이/내몽골자치구의 경계 지역[9] 보통 남한 다음으로 똑똑한 놈은 중국 국적을 부여받고 주로 중국 중부 또는 남부지역에서 머물고, 북한보다는 덜 바보같은 놈은 중국 위명여권을 가지거나 중국 국적 없이 주로 동북 3성 지역에서 머물게 된다.[10] 여기도 북중 국경을 건너가는 방식으로 탈북한다고 한다.[11] 정확히는 강폭이 좁아 주민들의 탈북 시도가 비교적 잦은 곳들에 상당히 조밀하게 지뢰를 설치했다고 한다.[12] 남한에 가려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돈을 벌려고 탈북한 것이었다고 한다.[13] 그나마 탈출 가능성이 있는 함경도 지방 국경지대 출신이 탈북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이들의 고향에서는 '한 집 건너면' 탈북자의 가족이 있다든가 심지어 '마을 전체'가 탈북하는 등 많은 사람이 탈출했다는 증언 등을 토대로 알 수 있다.[14] 여담으로 난민 배출의 끝판왕격 국가는 북한은커녕 민주 캄푸치아도 울고 갈 수준의 생지옥이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치하의 적도 기니로, 단 10년 만에 인구가 30만 명 정도인 나라에서 10만 명(인구의 1/3이나 된다!)이 탈출했다고 한다. 물론 응게마는 국민들의 도피를 막으려고 나라의 모든 카누를 불태우는 엽기적인 행각까지 저질렀으나 주민들이 강을 헤엄쳐서라도 탈출하려 하는 등 탈출을 막는 데에는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15] 다만 반동분자도 여럿 섞여있었다고 추정된다.[16] 제헌의원 최헌길 의원의 발언중[17] 일단 이 지역에서 감시를 피해 배에 오르기만 하면 바다가 미군정 관할이라 경비병이 추격할 수가 없었다.[18] 대개는 북키프로스에서 탈북한 경우가 많았다.[19] 보통 인적이 적은 새벽 2~5시 사이에 도강을 많이 한다. 강폭이 넓고, 수심도 깊어서 뗏목이 필수이다. 그마저 아니라면 산소통에 물갈퀴가 필요하다.[20] 중국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관으로 가는 방법[21] 태국, 몽골, 러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22] 간혹 검문을 피해가면서 도보나 자전거 등을 이용해 국경까지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황해도에서 도보만으로 국경까지 이동해 월경한 탈북 사례도 존재한다.[23] 그런데 2020년 이후부터 이 예상을 깨고 김정은은 코로나19라는 구실이 생기자 이를 최중대사로 여겨 이것도 차단하고자 하였다. 혜산시 문서를 보면 중앙당 간부 같은 권력이 많은 사람이 연루된 밀무역도 처벌한 사건이 있다고 한다. 무역량이 99% 이상 줄기도 하는 등 비현실적인 통계 속에서 진짜로 굶어죽는 사태가 있다는 말도 들리는 형국이나 그런 불만을 몇 배 더 잔혹하게 처벌하고 이런 처벌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후한 혜택을 주면서 막는 것으로 보인다.[24] 대한항공 등의 한국 국적기를 탄 순간부터 대한민국 항공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한국 국적기에 타기만 해도 탈북은 성공한 것이다. 설령 타 국적기를 탄다해도 현실적으로 고작 탈북자 한 명 잡겠다고 이미 이륙한 비행기를 다시 회항시켜서 체포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25] 물론 윤설미의 중국인 시부모, 남편처럼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긴 있다.[26] 한국이나 미국 국적이 없기 때문에 중국 동북 3성 지역이 아니더라도 잡히면 거의 무조건 북송된다.[27] 대부분 동북 3성 지역에 산다.[28] 동북 3성 지역에서 중국 중부나 동부, 서부, 남부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에 해당된다.[2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에 직속된 조직으로, 단적으로 말하자면 사실상 김정은에 직속된 조직이다.[30] 링크에 건 적도 기니의 독재자 응게마도 국민들의 해외 도피를 막기 위해 황당한 지시를 내렸다는 것만큼은 김정은과 대동소이하지만, 강을 깊게 파내는 대신 나라에 있는 개인 소유 선박들을 모조리 불태우게 했다. 물론 이 상황 속에서도 강을 헤엄쳐 적도 기니를 탈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31] 주변부가 마약 온상지. 90년대 마약 세력이 저물며 주로 녹차를 재배했다가, 근래에 다시 마약 재배가 증가하는 추세.#[32] 실제로 한 탈북자 유튜버는 경찰서에서 잡아주지 않아, 경찰서 앞에 뻐기거나 태국 여행을 하는 등 3주 정도를 경찰서를 거점으로 죽치고 앉아있었다고 한다.[33]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 태국을 통해 한국으로 넘어온 탈북 여성의 경험담이 방송된 적이 있다.#[34] 계속 사막 벌판만 나오다가 굶어 죽는 경우가 대다수.[35] 특히 말레이시아는 김정은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로 자신의 이복형을 죽인 사건 이후로 북한과의 관계가 매우 안 좋다. 최근에는 북한과 단교했으며, 아예 탈북자에 대해 관대해졌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36] 이때 이만갑 출연진 중 한 명인 유현주 씨가 탈북했다. 입국일이 7월 27일이었는데, 같이 온 사람들과 함께 "탈북의 7.27~"이라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37] 이 표지판에는 ‘대한민국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아래에 있는 전화기의 신호단추를 누르시면 안전지역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라고 적혀있다.[38] 전기철조망 앞에 있어서 감전될 확률을 높이고, 넘어가는 순간에 잠복호의 사격 대상이 된다.[39] 큰 조차로 인한 빠른 조류는 주로 서해안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서해 NLL을 통한 탈북 사례를 살펴보면 물때를 파악해서 연안 조류를 고려해 탈북했다는 언급이 많이 보인다.[40] 가장 위험한 요소로 1953년 정전 이후 비무장지대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지형상의 변화 등의 이유로 지뢰가 어디로 쓸려내려갔는지 한국 측도 북한 측도 아무도 모른다.[41] 귀순을 유도한 분대장은 30박 31일 휴가를 받았다고 한다.[42] 해당 링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근무병력들이 먹기 싫은 밥을 대충 퍼먹고 잔반처리하는 것을 본 탈북병사의 한마디가 "인민이 용서치 않을 겁네다"였다고 한다.[43] 이 남쪽 나라에 대한 의견이 매우 분분한데, 이는 당사자가 자주 번복을 하기 때문이다.[44] 원래는 북한의 교육체제 하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을 뜻하는 단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는 것이 당연한 남한과 달리, 북한은 군 생활을 거친 후 대학생이 되는 경우가 직통생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북한 사회에서 직통생이 되려면 가문 배경, 학업 성적, 당성 등 다양한 부문에서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까다롭고 어려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라서 그렇게 부르게 된 듯 하다.[45] 물론 일본에 잔류하거나 제3국 특히 미국 등지를 선택하는 경우도 소수 있다.[46] 대한민국 헌법 상 황해도 옹진군.[47] 김광호 씨 일행이 재탈북 과정에서도 중국공안에 체포됐는데 이미 한국국적이 있는 김광호 씨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처남은 결국 북송되었다고 한다.[48] 말이 심문이지, 실질적으로는 감금과 고문에 더 가깝다.[49] 아랍학자로 급조되어 사칭한 게 아니라, 중국에 있을 때부터 베이징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하고 외교관과 아랍어 통역사로 일하고 있었고 북한에서도 아랍학자로서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던 사람이었다.[50] 그런데 이런 경우가 없진 않다. 현재 먹는 딸기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칠레에 파견되었던 프랑스의 스파이가 식물학자를 사칭해서 첩보활동을 했다가, 진짜로 식물학에 맛들려서 칠레산 딸기 품종을 연구해서 보급한 데에서 유래했다.[51] 물론 지금은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한하여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를 통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외국 국적을 가질 수 있다.[52] 대부분의 탈북민과 연변 출신 조선족은 고향에서 함경도 사투리를 구사하여 여기에 해당된다.[53] 귀순 병사의 증언에서 시작된 논란이다.[54] 방송 당시에는 '김진혁'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으며, 그 아이의 일행들도 다 가명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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