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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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叔瞻
(생몰년 미상)
1. 개요[편집]
고려 중기의 문신.
정세유의 아들이자 정진의 동생. 최씨 무신정권의 초대 집권자인 최충헌의 사돈인 동시에 최우의 장인이다. 정숙첨의 딸인 정씨 부인과 최우의 사이에서는 딸인 최씨 부인이 태어났고 후에 김약선에게 시집갔다. 아들 정안이 있다.
2. 생애[편집]
1206년에 좌승선을 지내면서 책명 의식을 거행할 장소를 논의하기 위해 금나라의 사신에게 파견되었고, 여러 차례 승진해 추밀원지주사가 되었으며, 고종 초에는 참지정사가 되었다. 대요수국의 난 당시 행영중군원수에 임명되어 토벌군 총사로서 대군을 인솔하여 출정했으나, 군사들이 달아나고 명령이 시행되지 않아 부대에 기강과 군율이 없어서 사람들이 모두 원망했다.[1]
개경에서 일어난 승려들의 반란과 연계되었다는 혐의를 받아 송환되었으며, 1211년에 희종이 최충헌을 죽이려 했고, 김약진과 함께 중방에 있다고 사태가 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궁궐로 들어가 최충헌을 데리고 나갔다.
최우를 사위로 삼고서는 세력을 믿고 교만하게 굴어 최충헌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2] 최충헌이 죽이려 했지만, 최우가 힘써 구해준 덕에 하동으로 유배되었다가 이후 최우가 집권하자 풀려나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다.
그의 형인 정진이 윤세유와 사이가 나빠서 윤세유로부터 정진과 함께 역모를 꾸민다는 무고를 받기도 했지만, 도리어 최충헌이 윤세유를 붙잡아 국문했다.
3. 대중매체에서[편집]
- <무인시대> - 정숙첨 (이대로 분)
- <무신> - 정숙첨 (정욱 분)
- 소설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에서는 거란유족의 침공 때 최충헌에게 불만[3] 을 토로하는 설정이 나온다.
[1] 이는 최충헌의 탓이 컸다. 용맹한 사람들은 모두 최충헌의 사병들이었고, 나가 싸우겠다고 하면 모두 귀양보냈기 때문. 군대에 동원된 사람들은 모두 어린이, 노약자들이었다.[2]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이라는 책에서는 정숙첨이 최충헌 자신이 외적을 끌어들여 놓고 자기보고 적을 막으라고 했다면서 불평했다고 나왔다.[3] 최충헌은 변경의 급보를 전한 자를 오히려 귀양보내고 또 용맹한 사람들은 모두 최충헌의 가병들인 데다가 전선에 나선 사람들은 어린이와 노약자였던 현실을 병사들에게 토로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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