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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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고려의 문신. 본관은 인천 이씨다.
이한의 차남인 이자상의 장남으로 평장사(平章事) 이오의 형이다.
2. 생애[편집]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고 이후 여려 관직을 거쳐 상서공부원외랑(尙書工部員外郞)에 이른다. 이후 딸이 문종의 왕자 국원공(선종)과 혼인한다. 순종이 승하하고 선종이 즉위하니 외척이 되었으며, 그 덕으로 선종 3년인 1086년 이예의 처 왕씨[7] 가 상궁의 내직을 받는다. 이듬해 선종 4년인 1087년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지내던 이예에게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더해진다. 선종 9년인 1092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올랐다가 이듬해 지중추원사 한림학사 승지(知中樞院事 翰林學士 承旨)로 승진한다.
선종 2년인 1085년에는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중추원사(中樞院使) 노단과 함께, 선종 11년인 1094년에는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예부시랑(禮部侍郞) 위계정(魏繼廷)과 함께 과거 시험을 주관하고 인재를 선발한다.
헌종 원년인 1095년 정당문학 형부상서(政堂文學 刑部尙書)에 오른다. 종질인[8] 이자의가 역모를 일으켰다고 해서 그 당여(黨與)[9] 들이 유배형 등의 처벌을 받을 때 이예도 관직에서 파면된다. 한참 뒤 예종 원년인 1106년에 검교태위 형부상서 정당문학 판어서원사(檢校太尉 刑部尙書 政堂文學 判御書院事)의 관직에 오를 수 있었는데, 이는 이예의 외손녀 연화궁주(延和宮主)가 예종의 비가 된 덕분이다. 이예는 예종의 부름으로 함원전(含元殿)으로 가 관직과 함께 술과 음식, 의복과 말 등을 하사받고 은퇴한다. 후일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승진한 뒤에 사망한다.
3. 가족관계[편집]
최씨와 왕씨 두 처를 뒀다. 최유선의 딸인 해주 최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이공수를, 왕가도의 손녀인 상궁 왕씨와의 사이에서 딸 정신현비를 뒀다.
- 조부: 이한(李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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