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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蔡松年
? ~ 1251년(고종 38)
1. 개요[편집]
고려의 인물. 동주 평강현(오늘날의 강원도 평강군) 출신으로 시호는 경평(景平)이다. 평강 채씨의 중시조이다.
2. 생애[편집]
고려 명종 때 어전의 행수(行首)로 낭장에 임명되나 본인의 직함은 바꾸지 않은 채로 둔다. 최충헌이 왜 새 직함으로 바꾸지 않았느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곁에 있던 사람이 "그의 아버지는 지금 참직(6품 이상 벼슬)에 임명되지 않았는데, 만약 직함을 바꾸고 조로(朝路)에 나가면 그 아버지가 멀리서 보다가 아들인 줄 모르고 하마해 피해갈 것을 염려하는 것입니다."(其父今未拜叅, 若改銜出朝路, 恐乃父望見, 不知其子而下馬避走耳.)라고 대신 그 이유를 답한다. 고려시대의 법제에는 두 관료가 말을 타고 가다 길에서 마주치면 벼슬이 더 낮은 쪽이 말에서 내리거나 피해가야 하는 피마(避馬)의 규정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최충헌은 채송년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겨 그 부친에게 참직의 벼슬을 주는데 채송년의 손자 채인규의 묘지명에 따르면 종5품 벼슬인 태묘서령. 채송년 본인도 최충헌 덕에 고위 관직을 두루 역임한다.
고종 15년(1228) 병마사에 있을 때 압록강가의 청새진(淸塞鎭)이 용주(龍州, 평안북도 용천군)와 더불어 반란을 일으키려 한 정황을 조사한다. 채송년이 추궁한 끝에 청새진의 호장이 반란을 부추기는 동요를 만든 정황이 드러나 호장을 처형한다. 고종 17년(1230) 최충헌의 막내아들 최향이 정권 탈취를 위한 반란을 일으킨다. 병마사 채송년은 지병마사 왕유, 부사 김의열과 함께 파견돼 10영(領)(1영=1,000명이니 10영은 약 1만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토벌한다. 최향은 북산으로 도망갔다가 끝내 잡혀 옥에 갇힌다.
고종 18년(1231) 몽골의 제1차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북계병마사로 임명된다. 집권자 최우의 집에서 열린 재상 회의에서 결정된 안건으로, 채송년은 9월에 각도(道)에서 삼군을 모집해 출병한다. 삼군은 음력 10월에 구주(龜州) 안북성(安北城)에 주둔해 농성한다. 안북성 전투에서 후군진주 대집성 등이 활약
고종 23년(1236) 승선(承宣)직에 있을 때 내전에서 연회가 열린다. 채송년은 고종에게 복야 송경인이 처용무를 잘 춘다고 아뢰는데, 송경인은 부끄러운 내색 없이 춤을 춘다. 둘은 이 해에 같이 추밀원부사에 임명된다.
고종 38년(1251) 음력 윤10월 28일, 양력 12월 12일에 죽는다. 사망 당시 관직은 중서시랑평장사였다.
3. 가족관계[편집]
- 부: 채영
- 모: 무주 지씨[1]
4. 대중매체에서[편집]
실제 역사에서는 동선령 전투에서 승리한 명장이나, 드라마 무신에서는 이상하게도 졸장으로 나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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