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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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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閔令謨
(1115~1194)
1. 개요[편집]
고려의 문신.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여흥 민씨의 중시조이다.
2. 생애[편집]
1138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이부원외랑이 되었으며, 1175년(명종 5) 형부시랑으로 고시관이 되었다. 또 명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꿈에 본 재상과 민영모가 닮았다고 해서 추밀원부사에 탁용되었다.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했다.
1181년 총재직(冢宰職)에 있으면서 인사행정을 크게 잘못하였다. 이 때 낭사(郞舍)의 지방관 재직연한에 기준한 인사가 실시되어야 한다는 상소가 있었으나, 최충렬과 한문준의 노력으로 무마되었다.
1183년 70세가 못 되었으나 이광정 등의 압력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1194년에 사망했다.[1]
족보에는 3월에 사망했다고 한다.
3. 가족관계[편집]
- 아버지: 민의
- 어머니: 미상
- 본인: 민영모
- 부인: 배씨
- 아들: 민식
- 아들: 민공규
4. 출처[편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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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족보에는 3월에 사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