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숙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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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제27대 국왕
충숙왕 | 忠肅王

출생
1294년(충렬왕 20년) 7월 30일
즉위
1313년 3월 28일
고려 개경 정궁 강안전
(現 경기도 개성시)
사망
1339년 5월 3일 (향년 44세)
고려 개경 침전
(現 경기도 개성시)
능묘
의릉(毅陵)
재위기간
제27대 국왕
1313년 4월 20일 ~ 1330년 2월 18일[1] (15년)
제27대 국왕 (복위)
1332년 3월 21일 ~ 1339년 5월 3일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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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개성 왕씨

고려: 도(燾) → 만(卍)

: 아라트나시리(阿剌忒訥失里)
부모
부왕 충선왕
모후 의비
형제자매
3남 1녀 중 2남
배우자
복국장공주, 조국장공주, 경화공주, 명덕태후
자녀
3남
종교
불교

의효(宜孝)
봉호
강릉대군(江陵大君)[1]
시호
고려: 의효대왕(懿孝大王)

: 충숙왕(忠肅王)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가족관계
5. 대중매체에서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고려의 제27대 군주.

묘호는 없고 시호는 '충숙의효대왕'(忠肅懿孝大王). 원래 이름은 '도'(燾)였으나 군주로 즉위한 후에 '만'()으로 개명했다. 자는 '의효'(宜孝), 몽골식 휘는 '아라트나시리'(阿剌忒訥失里)였다.

최초의 한•몽 혼혈 군주였던 제26대 충선왕의 차남이자 한국사 최악의 폭군인 충혜왕과 반원 개혁 군주인 공민왕의 부왕이었다. 그리고 충숙왕의 어머니는 충선왕의 제1비 계국대장공주 보르지긴 부다시리가 아니고, 제2비인 의비(懿妃) 예수진(也速眞, 야속진)이었다. 의비 예수진은 몽골인이었는데 원나라 보르지긴 오복 키야트 씨족, 즉 황금씨족 출신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의 역대 왕들 중에서도 가장 고려 혈통이 희미한 왕이다. 아버지 충선왕은 아버지가 고려인이고 어머니가 몽골인이다. 충숙왕 본인은 아버지가 고려와 몽골의 혼혈이고 모친은 몽골인이다. 할아버지만 고려인이고 할머니와 외조부모 모두 몽골인이다. 그래서 충숙왕은 생물학적으로는 몽골인에 가깝다. 그러나 고려어를 거의 못했을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원에 머무른 아버지와 달리 고려에 머물며 통치하였다. 상왕이 되어 원나라로 가던 도중 황주에서 아들 충혜왕을 만나게 되었는데 충혜왕이 자신에게 몽골식 복장을 입고 몽골식 예법인 호례를 올렸고, 이를 본 충숙왕은 아들을 엄하게 꾸짖는다.

네 아비와 어미가 모두 고려 사람이거늘 어찌 내게 호례를 행하느냐? 그리고 옷은 또 뭐가 그렇게 사치스럽느냐? 다른 이에게 보이기 민망하니 어서 갈아입거라!


말이 꾸짖은 것이지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충숙왕의 훈계에 충혜왕이 눈물을 흘리며 물러났다고 기록되어 있는지라 단순히 한 마디 하고 만 것은 아닌 모양. 아버지와 자식들보다도 고려인 혈통이 옅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은 역대 혼혈 고려 왕 중에서 가장 강한 왕이다. 자신보다 고려의 혈통이 2배 더 짙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군주가 아닌 원나라의 정치인에 가깝게 행동한 아버지와 비교하면 고려 군주로서 더 훌륭한 자세라고 평가할 만하다.

2. 생애[편집]


역대 강릉(江陵)의 가신
1대
강릉대군(江陵大君)
왕만(王卍)
2대
강릉부원대군(江陵府院大君)
왕전(王顓)
3대
강령부원대군(江寧府院大君)
왕우(王禑)

1299년 강릉군에 봉해졌고, 이후 강릉대군(江陵大君)으로 진봉되었으며 그의 친형인 세자 왕감이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해 1310년 부왕인 충선왕에 의해서 살해당한 뒤에 후계자가 되었다. 1313년 원나라심왕 자리를 지키던 아버지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지만 이 책임감없고 이상한 아버지 충선왕은 평생 아들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결정을 남겼다. 안 그래도 충선왕이 상왕으로 건재해서 충숙왕의 왕권이 약한 상황에서 충선왕이 1316년 자신의 원나라 작위인 심양왕, 즉 심왕 자리와 고려의 세자 자리를 이복형 강양공[2]의 차남인 연안군 왕고에게 물려준 것이다. 물론 온전한 자의가 아닌 정치적으로 압력을 받은 탓에[3] 조카에게 물려준 듯하나 이는 충숙왕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고려 조정을 어수선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으며, 명목상으로 포괄하게 된 요동의 영토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심왕 왕고는 고려 국왕 자리에 욕심을 품고, 지속적으로 사촌인 충숙왕을 모함했다. 결국 왕이 주색에 빠져 정치를 소홀히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충숙왕은 원나라에 소환되었다가 풀려나기를 반복했다.[4]

하지만 업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1318년의 업적이 특히 많다. 원나라에 보내는 무리한 세공을 삭감하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보기도 했으며, 당시 백성들의 큰 고통이었던 공녀환관들을 원나라로 보내는 것을 줄여 달라고 청원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사용(使用, 또는 士用)·김성(金成)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검교평리 송영(宋英)을 보내어 안무하게 하였다. 같은 해 폐단이 많았던 사심관을 폐지하였으며, '제폐사목소'(除弊事目所)를 설치했다가 '찰리변위도감'(察理辨違都監)으로 고쳐 권문세족이 점령한 땅을 색출하여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했다. 채무에 있어서 고리대금업을 막아 이자가 원금에 상당할 때는 정지시키는 등 단속에 힘을 기울였다. 고려에 남송의 대학자 주자의 성리학을 들여 온 안향문묘에 배향했으며, '화자거 집전민추고도감'(火者據 執田民推考都監)을 설치했다. 최소한 고려 국왕이라는 책임감이 부족해 대도에서 원격 통치를 하며 자신의 학문 사업과 원나라의 정치 싸움에만 몰두하던 부왕 충선왕보다는 충숙왕의 치세가 그나마 나았다.

1321년 심왕 왕고가 원나라 영종의 명령으로 충숙왕이 압송되자 2년간 고려 국왕을 자칭하기까지 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충숙왕이 잘 해보겠다는 의욕을 상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싫증이 난 충숙왕은 왕 노릇을 못 해먹겠다며 자신을 위협하던 심왕 왕고에게 양위할 뜻을 내비쳤으나 중신들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충숙왕은 이전에도 왕고의 형제들에게 작위를 주는 등 심왕파에게 유화적인 자세로 나갔었다. 왕고는 지속해서 사촌인 충숙왕을 모함했으며 1323년 심지어는 원나라 황제에게 "고려를 (省)으로 만들고 원나라가 직접 통치하죠"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는데 이를 입성책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입성책동'은 굳이 그럭저럭 안정된 정국에 괜히 평지풍파일으킬 필요가 있냐는 원나라 조정 내부 반대 의견과 대학자 이제현의 노력 등으로 무산되었다[5]. 이때 고려가 원나라의 직할령 시도를 방어하는데 내세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원종과 세조 쿠빌라이 칸이 각자 태자 시절[6] 맺은 협약인 세조구제였다. 실제로 원나라가 몇 차례나 고려를 완전 합병하려 할 때마다 '세조구제'는 가장 확실한 방어막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도 심왕 왕고와의 알력이 계속되자 1330년 충숙왕은 아들 왕정에게 양위하고, 원나라로 갔는데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이 바로 한국사 최악의 폭군인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의 막장 짓을 보다 못한 원나라는 결국 2년만에 충혜왕을 폐위시키고, 다시 충숙왕을 복위시켰으나 정치에 뜻을 잃은 충숙왕은 신하도 만나지 않고, 사냥과 음주가무로 소일하다가 8년만인 1339년 3월 향년 46세에 승하했다. 시호는 '충숙의효대왕'(忠肅懿孝大王)이었다.[7] 그나마 충숙왕에게 다행한 일은 어린 충정왕이 폐위된 이후 3남인 공민왕이 즉위했다는 점이다. 공민왕도 초기에는 반원 개혁을 일으키며 고려를 부흥시키는데 노력했지만 부인인 노국대장공주의 승하 뒤 폐인이 된채 암군으로 타락해버렸고 끝내 자제위에게 참혹하게 시해를 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여러모로 자식 농사에는 완전히 실패한 왕이라 할 수 있는데 장남 충혜왕은 말할 것도 없고, 3남 공민왕도 초반에는 잘했다가 나중에는 암군으로 타락했으며, 차남 용산원자는 어린 나이에 요절했다. 큰손자 충목왕은 명군의 자질이 보였으나 요절했고, 둘째 손자 충정왕과 셋째 손자 우왕도 좋은 임금이 되지는 못했다.


3. 기타[편집]


  • 아버지 충선왕의 이해못할 짓으로 의욕없이 왕위에 있었다가 원나라에 자주 끌려다니며[8] 귀찮은 재위 기간을 보낸 임금이었다. 여러 혼란이 많았지만 재위 기간이 25년으로 원나라에 끌려간 기간을 빼면 20년, 충혜왕에게 물려준 기간을 더하면 22년~27년으로 길다는 것도 특이하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아버지 충선왕보다 단명했다.

  • 개인적으로는 글씨와 문장에 두루 능했으며, 성품은 침착하고 총명하며 결단력이 있었다고 《고려사》는 전하지만 그 평가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애초에 원 간섭기의 모든 군주들이 그렇듯 뭘 해 보고 싶어도 할 수 없던 것이 현실이었지만 말이다. 제26대 충선왕과 제29대 충목왕 사이에서 충숙왕은 재위가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친위 세력을 기르려던 흔적을 보이지 못한다. 아들 충혜왕의 막장 짓거리 때문에 아들을 자주 혼냈다고 전하는데 아들에 대한 스트레스도 그의 단명을 앞당겼을지도 모른다.

  • 고려 말의 명장이자 영웅이었던 최영우왕의 난봉짓을 보다 못해
"충숙왕도 놀기를 좋아하셨지만 그래도 농번기를 피해 놀아서 백성들 원망을 듣지는 않으셨는데 지금 전하는 시도 때도 없이 놀으니 백성들이 원망한다."
고 간언했다.

  • 조선왕조실록》에는 충숙왕이 예천군 권한공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을 '거사'라고 칭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성계가 이 고사를 본따 당시 북쪽 변방에 나가 있던 정도전에게 태조 자신의 호인 '송헌거사'라는 발신자명으로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이성계의 정도전에 대한 두터운 신임이나 임금과 신하가 사적으로도 이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더라 하는 보기 좋은 미담으로 소개되어 있기는 한데 정작 고사에 나오는 권한공은 채홍철, 유청신 등과 함께 심왕 왕고에게 붙어서 충숙왕에게 고려의 왕위를 왕고에게 넘겨주라고 권하거나 '입성책동'에 찬성했고, 결국 충숙왕에 의해 유배까지 갔던 문제적인 간신이자 부원배였다.

파일:external/img.segye.com/20160929001559_0.jpg

"왕께서 그 곳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대해주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라는 구절이 있기에 당시 고려에 그리스도교인들이 있었다는게 확인되었다. 영상에서 라틴어 번역자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고려 왕 당신은 하느님의 좋은 종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낸 신자들을 환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편지 내용을 요약해주는데 만약 '우리가 보낸'이라 는 것이 번역자가 임의로 붙인 내용이 아니라면 당시 동아시아에 존재하던 네스토리우스파 신자가 아니라 가톨릭 신자가 고려 땅을 밟은 셈이 된다.[9] 임의로 붙인 내용이라면 고려 왕실은 몽골 황실과 연결되어 있었고, 몽골에서는 네스토리우스파가 황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므로 아마도 고려에 거주하던 네스토리우스파 신자들을 가리키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다만 해당 기사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서유럽고려 간에 교류가 있어서 고려의 금속활자가 서유럽의 금속활자에 영향을 줬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신빙성이 낮으며, 서유럽의 금속활자는 동양의 금속활자와는 다른 독자적인 체제를 통해 만들어졌기에 근거가 마땅치 않다. 해당 문건은 고려시대 당시 한반도 내 크리스천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증거로서 봐야 한다. 해당기사 오류 지적[10]

그런데 "위의 편지가 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것이라는 주장은 라틴어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는 반박 주장도 나왔다. 편지를 받는 'Regi Corum'의 'Corum'을 고려인의 복수로 보는 건 라틴어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 편지를 받는 당사자는 라틴어 문법으로 보든, 당시 정황으로 보든 충숙왕일 수 없다는 것이다. 기사1, 기사2. 해당 논문을 살펴보면 'Corum'의 문법적인 형태를 고려해 볼 때 'Corum'은 'Ci'이고, 이는 'Khitan'에 더 근접해 있으며, 'Khitan'은 그런데 'Chigista'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또다른 가능성도 있는데 'Sece de Chigista'를 'Seecede Chingista'로 읽을 수 있으며, 이 경우도 고려와는 무관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편지를 받는 'Regi Corum'은 충숙왕이 아니라 원나라 황제이거나 서방 칸국의 칸들 중 한 명으로 보인다. 또한 해당 서신은 아비뇽에서 칸발리크(대도, 오늘날의 베이징)으로 가는 여정에서 여행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종의 통행증이었는데, 칸발리크보다 더 동쪽에 있는 고려의 왕에게 보내는 서신일 수 없다. 마지막으로 '고려'를 이르는 당대 라틴어 어형은 몽골어 '솔롱고스'에서 유래한 'Solangi, 또는 혹은 '高麗'의 중국어 발음 '가오리'에서 유래한 'Caule'였으므로 'Regi Corum'은 '고려 왕'이 될 수 없다는 게 논문의 요지다.


4. 가족관계[편집]


  • 제1비 : 복국장공주(濮國長公主) 이린친발라(亦憐眞八刺) - 원나라 영왕(營王) 에센테무르(也先帖木兒, 원 세조 쿠빌라이 칸의 손자)의 딸
  • 제2비 : 조국장공주(曹國長公主) 금동(金童) - 원나라 위왕(魏王) 아무케(阿木哥, 원나라 추존 황제 순종 다르마발라의 아들)의 딸[11]
  • 제3비: 경화공주(慶華公主)[12] 바얀후트(伯顔忽都) - 원나라 여인
  • 제4비 : 덕비 홍씨 - 남양 홍씨 홍규의 5녀[13]
  • 후궁 : 수비 권씨(壽妃權氏) - 안동 권씨 권렴의 딸


5. 대중매체에서[편집]


  • 코에이의 게임 <원조비사>에서 시나리오 3 '원조의 성립'에서 고려 군주로 등장하는데 이 시나리오의 시작년도는 1271년[14]으로 태어나기도 전에 고려의 군주가 되어 있다. 덩달아 아들인 제28대 충혜왕과 제31대 공민왕도 등장하며, 수하 무장으로 최영이성계가 있다. 능력치가 그저 그렇다 보니 많은 유저들이 충숙왕을 죽이고, 그의 차남인 공민왕을 후계자로 해서 플레이하기도 했다.
  • 2005년 MBC 드라마 <직지>에서는 배우 이정길이 연기했다.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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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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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 - 제신(諸臣) ]
92권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 유금필 · 최응 · 최언위 (최광윤 최행귀 최광원) · 왕유 왕자지 · 박술희 · 최지몽 · 왕식렴 · 박수경 · 왕순식 이총언 견금 윤선 흥달 선필 태평 · 공직 · 박영규
93권
서필 · 최승로 최제안 · 쌍기 · 최량 · 한언공 · 류방헌 · 김심언 · 최항 · 채충순
94권
서희 서눌 서공 · 유진 · 강감찬 · 최사위 · 황보유의 장연우 · 양규 (양대춘) · 지채문 지녹연 · 하공진 · 김은부 · 주저 · 강민첨 · 곽원 · 왕가도 · 김맹 · 류소 · 윤징고 · 위수여 · 전공지 · 이주헌 · 이주좌 · 안소광 · 조지린
95권
최충 최유선 최사제 최약 최윤의 · 이자연 이자량 이자인 이혁유 이자현 이자덕 이예 이공수 이지저 이오 이광진 · 박인량 박경인 박경백 박경산 · 황주량 · 류신 · 왕총지 · 위계정 · 소태보 왕국모 고의화 · 문정 · 정문 · 김원정 · 손관 · 최사량 · 김선석 · 임의 임원후 임극충 임극정 임부 임유 임익 임항 · 김한충
96권
최사추 · 김인존 · 윤관 윤언순 (윤언식 윤언민 윤언이) 윤인첨 윤세유 윤상계 · 오연총
97권
김부일 김부의 · 고령신 · 김황원 이궤 · 곽상 곽여 · 유재 호종단 신안지 · 김경용 (김인규) · 최홍사 · 한안인 · 이영 · 한충 · 임개 유녹숭 · 김준 · 류인저 · 강증 · 허경 · 문관 · 정항 정서 · 김극검 · 김약온
98권
김부식 김돈중 김군수 · 정습명 · 고조기 · 김정순 · 정극영 · 박정유 · 최사전 · 김향 · 최자성 · 김진 · 임완 · 최기우 · 김수자 · 최유 · 이숙 이위 · 허재
99권
양원준 · 최유청 최당 최린 최선 최종준 최온 최문본 최평 최옹 · 이공승 · 신숙 · 한문준 · 문극겸 · 류공권 류택 · 조영인 · 왕세경 · 이순우 · 임민비 · 최척경 · 함유일 · 염신약 · 이지명 · 유응규 유자량 · 현덕수 · 최균 최보순 최윤개 · 김거공 · 한유한
100권
두경승 · 우학유 · 노영순 · 조위총 · 방서란 · 박제검 · 기탁성 · 홍중방 · 경대승 · 진준 · 최세보 · 박순필 · 이영진 · 백임지 · 이준창 · 최충렬 · 정세유 정숙첨 정안 · 정국검 이유성 · 정방우 · 정언진
101권
민영모 민식 · 송저 · 김광중 김체 · 안유발 · 최여해 · 최우청 · 왕규 · 차약송 기홍수 · 정극온 · 류광식 · 권경중 · 김태서 김약선 김미 · 문한경 권세후 백돈명 · 노인수 · 김의원
102권
금의 · 이규보 이익배 · 유승단 · 김인경 김승무 · 이공로 · 이인로 오세재 조통 임춘 · 조문발 · 이순목 이수 · 김창 · 송국첨 · 최자 하천단 · 채송년 채정蔡楨 · 손변 · 권수평 · 이순효 장순량 · 송언기 · 김수강 · 김지대 · 이장용
103권
104권
조충 조변 · 김취려 김문연 김변 · 이적 · 채정蔡靖 · 박서 송문주 · 김경손 김혼 · 최춘명 · 김희제 · 이자성 · 김윤후 · 김응덕
김방경 김구용 김제안 김흔 김순 김영돈 김영후 김사형 박구 · 한희유 · 나유 나익희 · 원충갑 · 김주정 김심 김종연 김석견
105권
류경 류승 류돈 류만수 · 허공 허종 허관 허금 허부 허유 · 홍자번 홍승서 홍영통 · 정가신 · 안향 안우기 안목 · 설공검 · 유천우 · 조인규 조서 조연 조덕유 조린 조연수 조위
106권
백문절 백이정 · 박항 · 곽예 · 주열 · 이주 이행검 · 장일 · 김구 · 이승휴 이연종 · 김훤 김개물 · 정해 정오 정포 정공권 · 조간 · 심양 · 추적 이인정 채우 · 김유성 곽린 · 윤해 윤택 · 이영 · 엄수안 · 안전 · 최수황 · 박유 · 홍규 홍융
107권
108권
한강 한악 한수 한방신 · 원부 원충 원호 원선지 원송수 · 김련 · 김부윤 · 정인경 · 권단 권부 권준 권렴 권용 권적 (권고) 권화 권근 · 민지 민상정
민종유 민적 민사평 민변 민제 · 김지숙 김인연 · 정선 · 이혼 · 최성지 최문도 · 채홍철 · 김이 · 이인기 · 홍빈 · 조익청 · 배정지 · 손수경
109권
박전지 · 오형 · 이진 · 윤신걸 박효수 · 허유전 · 박충좌 · 윤선좌 · 이조년 이승경 · 이곡 · 우탁 · 안축 안종원 안보 · 최해 · 장항 · 이성 · 조렴 왕백 · 이백겸 · 신군평
110권
111권
최유엄 · 김태현 김광재 · 김륜 김경직 김희조 김승구 · 왕후 왕중귀 · 한종유 · 이제현 이달존 이보림 · 이능간
염제신 · 이암 이강 · 홍언박 홍사우 류연 · 류탁 · 경복흥 · 김속명 · 이자송 · 조돈 조인옥 · 최재 · 송천봉 · 홍중선 · 김도 · 임박 · 문익점
112권
이공수 · 류숙 류실 · 이인복 · 백문보 · 전녹생 · 이존오 · 이달충 · 설손 설장수 · 한복 · 이무방 · 정습인 · 하윤원 · 박상충 · 박의중 · 조운흘
113권
안우 김득배 이방실 · 정세운 · 안우경 · 최영 · 정지 · 윤가관 · 김장수
114권
윤환 · 이성서 · 이수산 이념 · 이승로 · 황상 · 지용수 · 나세 · 김선치 · 전이도 · 구영검 · 오인택 · 김보 · 변광수 · 정지상 · 임군보 · 나흥유 · 목인길 · 김유 · 양백연 · 지용기 · 하을지 · 우인열 · 문달한 · 김주 · 최운해
115권
116권
117권
이색 · 우현보 · 이숭인
심덕부 · 이림 · 왕강 · 박위 · 이두란 · 남은
정몽주 · 김진양 · 강회백 · 이첨 · 성석린
118권
119권
120권
조준
정도전
윤소종 윤회종 · 오사충 · 김자수
121권
「양리(良吏)」
「충의(忠義)」
유석 · 왕해 · 김지석 · 최석 · 정운경
홍관 · 고보준 · 정의 · 문대 · 조효립 · 정문감
「효우(孝友)」
「열녀(烈女)」
문충 · 석주 · 최루백 · 위초 · 서릉 · 김천 · 황수 · 정유 · 조희참 · 정씨 · 손유 · 권거의 노준공 · 신씨 · 윤구생 · 반전 · 군만
유씨 · (현문혁의 처) · (홍의의 처) · (안천검의 처) · (강화부 세 여인) · 최씨 · 배씨 · 문씨 · 김씨 · 안씨 · 이씨 · (권금의 처)
122권
「방기(方技)」
「환자(宦者)」
「혹리(酷吏)」
김위제 · 이녕 (이광필) · 이상로 · 오윤부 · 설경성
정함 · 백선연 · 최세연 · 이숙 · 임백안독고사 · 방신우 · 이대순 · 우산절 · 고용보 · 김현 · 안도치 · 신소봉 · 이득분 · 김사행
송길유 · 심우경
123권 「폐행(嬖幸)」
유행간 · 영의 · 김존중 · 정세신 · 백승현 · 강윤소 · 염승익 · 이분희 이습 · 권의 채모 이덕손 · 임정기 (민훤) · 주인원 · 이지저 고종수 김유 · 인후 인승단 · 장순룡 차신 노영 · 조윤통
124권 「폐행(嬖幸)」
윤수 윤길보 (송화) · 이정 김문비 이병 · 원경 · 박의 · 박경량 · 전영보 · 강윤충 · 배전 · 민환 · 윤석 · 손기 · 정방길 임중연 강융 · 신청 박청 · 왕삼석 양재 조신경 최노성 윤현 안규 · 최안도 이의풍 김지경 이인길 · 노영서 박양연 송명리 · 김흥경 · 반복해 · 신원필
125권 「간신(姦臣)」
문공인 · 박승중 · 최홍재 · 최유칭 · 박훤 · 송분 · 왕유소 · 송방영 · 오잠 석주 · 김원상 · 류청신 · 권한공 · 채하중 · 신예 전숙몽 · 이춘부 · 김원명 · 김횡 · 지윤
126권 「간신(姦臣)」
이인임 · 임견미 · 염흥방 · 조민수 · 변안열 · 왕안덕
127권 「반역(叛逆)」
128권 「반역(叛逆)」
129권 「반역(叛逆)」
환선길 · 이흔암 · 왕규 · 김치양 · 강조 · 이자의 · 이자겸 · 척준경 · 묘청 (정지상)
정중부 이광정 송유인 · 이의방 · 이의민 · 정방의 · 조원정 석린
최충헌 최이 최항 최의
130권 「반역(叛逆)」
131권 「반역(叛逆)」
한순 다지 · 홍복원 (홍차구 홍군상 홍선 장위 류종) · 이현 · 조숙창 · 조휘 · 김준 · 임연 · 조이 김유 이추 · 한홍보 · 우정 · 최탄 · 배중손
조적 · 조일신 · 김용 · 기철 · 노책 · 권겸 · 최유 · 홍륜 · 김문현 · 김의
132권 「반역(叛逆)」
신돈
133·134·135·136·137권
신우(우왕) (신창(창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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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321년부터 1324년까지 3년간 대도에 압송되어 고려 국새을 빼앗겼다.[2] 제25대 충렬왕과 고려인 정화궁주 왕씨의 아들. 이름은 '왕자'였다.[3] 제국대장공주 보르지긴 쿠틀룩켈미쉬나 그 소생인 충선왕이 아니었다면 고려의 왕위는 당연히 강양공 왕자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충선왕 입장에서 심왕 자리를 조카에게 준 건 미안한 마음에 챙겨준 보상 비슷한 것이었을 수 있다.[4] 심왕 왕고의 모략 때문만이 아니라 충숙왕의 아내인 복국장공주 보르지긴 이린친발라가 갑자기 승하한 일이 있었는데 충숙왕이 복국장공주를 피흘릴 정도로 두들겨 패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원나라에서 문제삼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사실 복국장공주는 고려에 올 때부터 몸이 이미 좋지 않은 상태였으며, 애당초 부부의 사이는 좋지 않아서 하루가 멀다하고 부부싸움을 벌였다고 한다.[5] 실제로 원나라 내부에서 고려를 간접종속국이 아닌 직할통치령, 즉 원나라 영토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의사가 있었다 한들, 이 시기의 원나라 상황을 감안했을 때 현실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원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한줌도 안 되는 극소수의 몽골인들이 절대 다수의 한족 및 소수민족들을 통치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불안정한 국가 구조를 안고 갈 수밖에 없었고, 더군다나 이 시기는 원나라 후기여서 안 그래도 허약한 행정력 때문에 내부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6] 그리고 원종은 아들 충렬왕을 쿠빌라이의 딸 제국대장공주에게 장가 보내어 사돈을 맺었다. 따라서 쿠빌라이는 충렬왕의 장인이기도 하다.[7] 원나라의 시호를 쓰지 않는 경우에는 '의효왕', 고로 '의왕'(懿王)으로 줄여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 전대인 제18대 의종과는 한자가 다르다.[8] 충렬왕과 충선왕은 대부분 제 발로 원나라에 자주 들락거렸으나 충숙왕이 원나라에 갈 때는 강제 호출된 경우가 많았다.[9] 당시 원나라 수도 대도에는 가톨릭 성직자들이 파견되어 있었으므로 고려에 가톨릭 신자가 가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10] 이 시대에는 고려인 무슬림도 있었다. 수도 개경에는 몽골에서 건너와 고려에 체류하던 튀르크계 위구르인들이 지은 마스지드가 있었고, 당시에는 그 곳을 예궁(禮宮)이라 불렀다.(출처 : 《조선불교통사》)[11] 20세기에 편찬된《신원사》에는 제31대 공민왕의 왕후 노국대장공주가 위왕 아무케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원사》에 위왕 아무케가 제27대 충숙왕 때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기에 노국대장공주는 위왕 자리를 물려받은 아무케의 차남 베이르테무르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 즉 아무케의 딸 조국장공주는 노국대장공주의 고모인 셈이다. 위왕 아무케는 원나라 제3대 황제인 무종과 원나라 제4대 황제인 인종의 이복형이었지만, 훗날 이들과의 계승 다툼에서 밀려나 대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탐라(제주도)로 유배되어 죽었다.[12] '숙공휘령공주'라고도 한다.[13] 제26대 충선왕의 후궁 순화원비 홍씨(順和院妃 洪氏)의 친동생이다. 즉 이들은 부자지간이면서 동서(同婿)지간이 된다.[14] 실제 역사상으로 이 때 고려 군주는 제24대 원종이다. 일본 원판에서는 군주가 원종이지만 한국에 수입되면서 비스코에서 몽골과 관련된 인물들로 고려 측을 싹 갈아버려서 제27대 충숙왕이 대신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