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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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光胤
생몰년도 미상


1. 개요[편집]


고려, 요나라의 관료. 본관은 경주다. 신라3최 중 하나인 최언위의 아들.


2. 생애[편집]


빈공진사(賓貢進士)로 후진(後晉)에 유학을 갔다. 그런데 후진이 요나라의 침공을 받으면서 최광윤은 포로기 되었고, 요나라는 최광윤의 학식과 재주를 인정해 그를 관료로 삼았다.

947년, 요나라가 고려를 침공할 낌새를 보이자 당시 사신으로 구성(龜城)으로 간 최광윤은 ‘거란이 장차 고려를 침공하려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고려에 알렸다.

그 결과, 정종은 거란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광군을 창설하고, 청천강 일대에 많은 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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