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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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叔昌, ?~1234
1. 소개[편집]
고려 시대 무인으로, 조영인의 손자이자 조충의 아들이며, 조계순의 형이다. 제1차 여몽전쟁 당시 몽골군에 항복하여 각 성에 항복을 권하고 다녔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승진하여 대장군, 상장군의 직위를 거쳤고, 1234년 필현보ㆍ홍복원의 난에 연루되어 효수당한다.[1]
2. 생애[편집]
생년 미상으로 조충의 아들이다. 1231년 방수장군으로 함신진을 수비하고 있었으나 살리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이 침공하자, 조숙창은 부사 전간[2] 과 함께 싸우지도 않고 투항한다.[3] 이후 삭주 선덕진에도 투항을 권유하였다.
몽고와의 강화 체결로 인해 대장군이 되어 몽고에 가서 저고여 살해사건을 밝히는 표문을 올렸다. 이듬해 상장군에 올라 설신과 함께 칭신하는 표문을 올렸다.
1234년 필현보ㆍ홍복원의 난에 연루되어 효수당했다.
3. 기타[편집]
아버지 조충과는 다르게, 고려사 반역 열전에 수록되어 있다.
4. 대중매체 및 기타 창작물에서[편집]
드라마 무신에서는 배우 여호민이 연기했다. 거란유족의 침공 당시부터 등장했고, 이후 제1차 여몽전쟁 때는 역사대로 함신진을 지켰으나[4] , 지레 겁을 먹은 나머지 문대[5] 가 대신 전쟁을 지휘하게 된다. 이후 전세가 불리해진 뒤 성이 함락되자 몽골군에 투항하게 되고, 역사처럼 살리타이에게 거란유족 토벌에 참전하여 원수 합진과 의형제를 맺은 조충의 아들이라 밝힌다. 그 뒤 다른 성에도 항복을 권했으나 철주에서 이희적, 이원정의 질책을 듣는다. 이후 홍복원이 몽골군에 항복해 고려를 공격할 계책을 내놓자, 이에 분노하나, 홍복원에게 각 성에 항복할 것을 권하지 않았냐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에 자신은 마음이 약해 죽지 못했다고 한 뒤, 홍복원처럼 개 같은 짓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 뒤 홍복원과 함께 몽골군의 사신으로 개경에 파견되어 투항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홍복원과는 달리 조정 신료들에게 몽골군의 침공으로 인해 군민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한다.
제1차 여몽전쟁이 끝난 뒤 각 장수들과 함께 논공행상 자리에 참석한 이후 등장은 불명.
소설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에서는 제1차 여몽전쟁 당시 몽골군이 쳐들어오는 걸 우가하의 군대가 노략질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뒤 이를 박서에게 보고하였고, 전간과 함께 몽골군과 대치하다가 1일 만에 항복하였고[6] , 이후의 행적은 역사와 같으나 필현보가 처형당하기 직전 조숙창이 반란을 돕지는 않겠지만, 실패한다면 몽골군에게 알려 도움을 주겠다고 자백함으로 인해 1234년 효수당하고 김취려가 이에 대해 한탄하는 설정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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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이라는 책에 보면 필현보가 처형당할 때 조숙창이 반란을 돕지는 않겠지만 실패 시 몽골에 연락을 주겠다고 진술한 게 나왔다.[2] 조숙창과 함께 몽골군에 투항했으나, 이후 함신진에서 몽골군을 기습한 뒤 조정에 배를 보내 달라고 연락한다. 다른 백성들은 대부분 개경으로 갔으나, 전간은 가족과 함께 태풍으로 인해 익사하게 된다.[3] 조숙창은 이 과정에서 자신이 살리타이에게 거란유족의 고려 침공 당시 거란군과 싸웠던 조충의 아들이라고 밝힌 뒤 곳간을 풀어 몽골군의 배를 채웠다.[4] 부사 전간과 같이 수비하였던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문대와 함께 함신진을 수비했다.[5] 함신진 전투 뒤 문대는 함신진 함락 뒤 철주성에 투항하지 말 것을 당부하나, 몽골군에 의해 죽고 만다.[6] 부사 전간은 조숙창이 삭주 선덕진에도 항복을 권하는 것을 보고 조숙창을 반역자라고 생각하여 조숙창과 함께하지 않고 함신진에서 백성들을 돌봤다. 이후 행적은 정사와 동일.